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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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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일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 『인생학교: 일』.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문제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마주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전하는 책이다. 인생학교 창립 멤버이자 교수인 로먼 크르즈나릭의 《일》편에서는 실존적 고민을 해소하고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줄 ‘일’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나눠본다. 저자는 인생의 2/3을 일터에서 보내는 우리에게 그 어떤 주제보다 본질적인 행복감과 충만함을 좌우하는 주제인 ‘일’이 인생에서 갖는 철학적, 정서적 의미를 명확하게 밝히고 일을 바라보거나 일에 임하는 독창적이고 신선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일에서 만족감을 찾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전하며 의미를 찾고 기꺼이 몰입하는 가운데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일을 찾는 방법을 소개한다. 이와 같은 혜안과 성찰을 통해 우리에게 천직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고자 한다.
저자
로먼 크르즈나릭
출판
쌤앤파커스
출판일
2013.01.11

 

머리말

애초부터 인간이라는 존재는 ‘일’을 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을 ‘선택’하는 존재라는 놀라운 원초적인 발상을 우리에게 다시 가능하도록 하는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Chap 1. 시작하며 : 성취감이 아니면 죽음을!

“행복해야 마땅했는데, 불행했어요. 지식경영이라든지 IT처럼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최신이론에 대해 마치 전문가인 양 설명해야 했죠. 그러나 정작 전 제 일에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했어요. 아무리 애써봐도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사실 직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잖아요? 하물며 전 ‘좋은’ 직업이 있으니 불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딴생각 안 하고 적응하는 데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방법도 먹히지 않을 땐 주말만 기다리며 버텼어요. 그 세월이 10년이었어요. 그 정도면 생활에 적응할 만도 한데, 안 되더라고요. 결국 몸이 버티지 못하고 만성 스트레스에 불안증세가 나타났어요. 어느 날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와서 비서에게 앰뷸런스를 불러달라고 했어요. ‘이렇게 죽는구나’하는 느낌이 들면서 겁이 더럭 나더라고요. 의사는 공황장애라고 했어요. 다행히 죽을병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걸 깨달았죠.”

 

“결코 간단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대안이라고는 직업을 바꾸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뿐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사표를 던진다는 건, 어릴 때 그렇게도 벗어나려고 애썼던 리버풀의 불안정한 삶으로 돌아간다는 뜻이었으니까요. 절대로 그렇게는 살기 싫었어요. 어떻게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불확실한 삶과 바꾸겠어요? 지금까지 일궈온 것들을 전부 내버려야 하잖아요? 게다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세상에서 ‘의미’니 ‘성취감’ 타령은 사치처럼 느껴져서 죄책감도 들었고요. 할아버지였다면 그렇게 태평한 상황에서 불평하셨을까? 가혹하게도 인생은 돈과 의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들더군요.”

 

“신혼여행을 가서 시칠리아의 해변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어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죠. 결혼이라는 인생의 거사를 치르고 행복에 겨워야 할 때였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변호사라는 꿈도 이루고 평생의 동반자까지 곁에 있으니, ‘이만 하면 내 인생은 완벽해’라고 불꽃이 팍팍 튀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해변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제는 바로 제 일이었어요. 제 일의 미래가 너무도 확실하게 보였는데, 그게 끔찍하더라고요. 앞으로 40년 동안 책상에 앉아서 부자들의 배를 더 불려주면서 보낼 게 빤하잖아요. 그 일이 과연 절 행복하게 할까요? 아닌 것 같았어요. 변호사가 되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누구보다 변호사들을 동경해왔는데,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이 드니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부자들의 집사 노릇을 하는 게 이 일의 전부는 아닐 거야’라고 위안도 해봤지만 ‘이게 전부일까? 이 일이 내 삶의 전부인 걸까?’하는 비관론이 항상 이겼어요. 제 직업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제 자신을 지탱할 힘이 없어지더라고요.

다른 직업이요? 아뇨, 법이 아닌 다른 일은 생각하기조차 두려웠어요. 법은 곧 제 자신이었거든요.‘사미라 칸’이라는 사람을 설명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저 말고도 많은 변호사들이 법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마도 변호사가 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공부해온 기억 때문일 거예요. 법이라는 정체성을 잃는다면 발가벗은 듯 공허함을 느낄 게 분명했어요. ‘변호사가 아니라면 난 뭐지? 난 누구지?’ 신혼여행을 마치고 직장에 복귀했지만, 예전처럼 고민 없이 일하는 건 이미 불가능했죠. 직업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고 절망에 빠져드는 저 자신을 보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한 번은 하도 답답해서 구글에 ‘자기 직업이 싫어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검색까지 해봤다니까요.”

 

“흥미로운 직업이고 보람도 있지만, 솔직히 저 같은 사람에게는 좀 평범한 게 사실이죠. 이 직업이 ‘변하지 않는 진정한 나permanent me’라고 느껴지지는 않아요.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에 앉아 있다가 문득창문에 비친 제 모습을 볼 때가 있어요. 양복을 차려입은 40세의 백인 중산층 남성이고 런던의 평범한 교외에 살고 있죠. 그 평범한 남자를 보고 있자면‘지하철에서 물구나무서서 기타를 치던 남자는 어디 갔지?’하는 생각이 들어요.

비록 겉모습은 이렇지만, 전 한순간도 제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도 물론 그렇고요. 모순이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현재 시점에선‘모순’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편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죠. 먹여 살려야 하는 어린 자식들이 있는 데다 아내도 일을 쉬고 있어서 당분간은 평범하게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가끔 ‘정말 죽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하고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에요.”

 

이른바‘천직’에 대한 열망은 철저히 현대에 등장한 발명품이다. 1755년에 출판된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의 사전에 ‘성취fulfillment’라는 단어는 나오지도 않는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대부분 실질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바빴다. 먹고사는, 말 그대로‘생존’의 문제 말이다. 그런 마당에 재능을 십분 활용하고 행복을 만끽하게 해주는 흥미로운 직업인지 따질 여유가 있었을까? 직업을 행복이나 자아성취의 길로 인도하는 모험으로 여기게 된 것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심적 자유가 생기기 시작한 현대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취감을 만끽하는 직업을 찾지 못한다. 인생의 비극은 여기에 있다. 하루 중 3분의 1을 일터에서 보내는데, 그 일이 내 기대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중 일부는 직업을 선택할 기회 자체가 없었거나, 자신감이 부족해서 감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직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기나긴 시행착오를 거쳐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찾은 용감하고 운도 좋은 사람들도 만나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절대다수가 어디 있을지 모르는 이상향을 찾아 헤매는 중이며, 어디서부터 탐색의 길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의미 없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깨달음이 찾아와 걷잡을 수 없는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직업을 바꾼다면 만사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직업을 바꿔 본 사람들은 모두 안다. 직업을 바꾸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찬란한 이야기도 아니다. 수십 수백 번의 고민과 두려움,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반대와 우려를 무릅써야 하는 고된 분투의 과정이다. 설령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결단을 내렸다 해도 그 실행과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의 경험담은 현대의 일터에 역사상 유례없는 두 가지 치명적인 유행병이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직업에 대한 불만족과, 올바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모호하다는 불안감이다. 일터에서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아진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직업 만족도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대답한다. 유럽 전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연구에서는 노동자의 60%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직업을 선택하겠다고 대답했다. 미국인들의 직업 만족도는 45%에 그치고 있다

 

직업 선택은 더 이상 여드름투성이 10대 청소년과 세상물정 모르는 20대 초반의 애송이 시절에 내리는 결정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하며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맞닥뜨리는 평생의 딜레마가 됐다.

 

보보스 :: 자본가 계급을 뜻하는 부르주아(bourgeois)와 자유분방한 예술가를 의미하는 보헤미안(Bohemians)을 합성한 신조어이다. 고급스러운 예술적 가치를 즐기는 동시에 물질적 실리를 누리는 정보화 시대의 신엘리트 계층을 뜻하며 미국 
신경제
의 활황으로 나타났다. <천국에 사는 보보스(BOBOS in Paradise, 2000)>를 집필한 미국 기자출신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처음 고안하였다. 그는 보보스를 '보헤미안 또는 히피족의 자유로운 정신 및 문화적 반역성과 부르주아 기업가들의 세속적 야망을 함께 지닌, 새로운 문화 및 기업 권력'이라고 정의하였다. 또한 보보스가 야망ㆍ성공에 대한 집착, 경제적 풍요를 중요시하는 부르주아와 방랑ㆍ저항ㆍ창조성을 지닌 보헤미안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고 설명하였다. 이것은 보보스가 1960년대 히피족(hippie : 탈사회적 청년층)과 1980년대 여피족(yuppies : 젊은 부자)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보스는 반문화주의와 만능주의가 뒤섞인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며 대부분 정보화로 무장하고 있고 경제적인 여유를 바탕으로 격조 있는 소비감각을 즐긴다. 또한 창의성을 중시하고 높은 교육 수준에 연간 1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으며 자유로운 전문직에 종사한다. 그러나 그들은 물질주의, 성공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아 실현, 환경문제 등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가족ㆍ종교를 중시하는 부르주아 문화를 이해한다. 자유로운 사고를 지니고 있어 직장에서도 정장 대신 편안 차림을 선호하며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부유한 생활을 누리더라도 반물질주의적인 태도, 높은 교육수준, 창의성이 없으면 보보스가 아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보스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이상적인 직업’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억지로 웃어가며 참기’다. 기대 따위는 최대한 억누르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류에게 일은 언제나 고역이었으며, 이는 미래에도 변함없으리라는 것을 아는 관점이다. 성취감 운운하는 허황된 꿈일랑 잊어버리고 ‘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할 필요악’이라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명언을 신봉하는 자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일의 역사는 보람 없는 고통으로 가득하다. ‘일’이라는 단어 자체에 그 역사가 들어 있다. 일을 뜻하는 러시아어로 ‘보타robota’는 노예를 뜻하는 라브rab에서 유래한다. 라틴어 ‘라보르 labor’는 고역이나 고생을 의미하며, 프랑스어‘트라베유travail’는 고대 로마시대 고문에 사용된 3개의 말뚝을 뜻하는 트리팔리움tripalium에 기원을 둔다.

초기 기독교의 관점에서도 일은 일종의 ‘저주’다. 에덴동산에서 저지른 죄악에 대한 벌로 신은 인간에게 일용할 양식을 직접 땀 흘려서 마련하도록 하지 않았는가. 기독교가 구미에 맞지 않는다면 불교에서는 어떨까?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이 고통 받고 있다고 믿는다. 불교사상가 스티븐 배첼러Stephen Batchelor는“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이 되기를 원할 때 번뇌가 생긴다.”고 했다.

억지로 웃어가며 참기’학파에서는 이 모든 것이 어쩔 수 없는 숙명이므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일을 마친 후 ‘진짜 생활’을 추구할 만한 시간이 허락되는 정도라면 그냥 참으라는 것이다. 아울러 성취감의 페달을 힘껏 밟고 있는 낙관적 권위자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용 또는 체념의 철학을 발전시키고, 의미 있는 직업을 찾을 생각일랑 일절 하지 않는 것이 되겠다.

 

성취감을 주는 직업을 찾으려는 열망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 널리 퍼졌다. 그 뿌리는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에 도래한 ‘개인주의individualism’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잘 알다시피 르네상스 시대에는 예술과 과학의 놀라운 진보가 이루어져 중세 교회의 교리와 사회적 순응이라는 족쇄를 끊는 데 이바지했다. 그뿐 아니라 초상화나 일기, 자서전 양식, 편지에 찍는 개인의 봉인 등 지극히 개인적인 문화의 혁신이 이루어진 시대였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과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나간다는 생각을 정당화했다. 우리 현대인은 그 시대의 자기표현 전통을 물려받은 셈이다. 따라서 입는 옷과 듣는 음악으로 개성을 표현하듯, 자신을 있는 그대로 원하는 대로 표현해주는 일을 찾아야 한다.

 

지난 20세기를 거치면서 놀랄 만큼 넓어진 직업 선택지는 우리에게 목적의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렇다. 기대치가 높아졌다. 우리는 예전 세대보다 일에서 더욱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됐다.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활기찬 표정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낭비에 불과하고 입안에 쓴 맛만을 남기는 직업이 아니라,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답변 말이다.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직업의 핵심요소는 무엇인가?’가 첫 번째 질문이다. 우리가 일에서 실제로 기대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본질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바로 의미와 몰입, 자유다. 셋 다 얻기 힘들고 추구하다 보면 양립하기 힘든 요소들 간의 긴장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는 돈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직업을 택해야 하는가? 삶을 변화시킬 수 있고 명분을 추구하는 일을 하는 것은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발상인가? 어느 한 분야에서 높이 성취하는 것high achiever이 바람직한가, 아니면 통섭의 정신으로 다양한 분야에 널리 도전하는 성취자wide achiever가 되는 편이 나은가? 직업에서 일가一家를 이루고자 하는 프로로서의 야망과 자상한 부모에게 요구되는 역할, 그리고 더 큰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적인 욕구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맞춰야 할까?

두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새로운 직업을 모색할 경우, ‘어떤 방법으로 직업을 바꾸고 그 과정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에 따르는 혼란과 두려움의 근원을 이해하는 것이 그 시작점이다. 생각을 버리고 ‘여러 개의 자아’, 즉 우리의 인성을 이루는 여러 측면에 적합한 직업의 범위를 찾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직업 변화의 표준 모델과 정반대로 해보는 것이다. 꼼꼼하고 조심스럽게 계획을 세운 후 행동하는 대신, 먼저 행동을 개시한다. 자기 내면의 다양한 자아를 끄집어내 실제로 실험해보는 것이다.‘근본적 안식기radical sabbatical’를 고려해보는 것은 어떤가?

 

근본적 안식기 :: 일상의 업무를 완전히 접고 다른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것.

 

 

 

Chap 2. 천직을 찾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제 앞에 놓인 선택지가 너무 많은 것처럼 느껴져요. 캔버스에 휘갈겨진 수많은 곡선은 앞으로 뭘 해야 좋을지 몰라서 혼란스러워하는 제 머릿속 같고, 저 기둥은 잘못된 결정을 내릴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같다고나 할까요. 저널리스트가 제 천직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하지만 제게 꼭 맞는 직업을 어떻게 찾아야 하죠?”

“얘야, 넌 아직 젊다.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해볼 수 있어.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사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단다.”

 

일말의 불확실함도 느끼지 않은 채 직업을 택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대부분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고민을 거듭하고, 나처럼 진로를 정해놓고도 이 길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해 막연한 두려움에 빠진다.

우리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할 때 어떤 사람들은 이왕 가기로 한 길이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한번 해보라고 등을 두드려준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조언한다.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을 찾는 건 이처럼 간단치 않다.

 

직업 선택이 너무도 어려운 근본적인 세 가지 이유가 숨어 있다. 첫째, 근대 역사에서 직업 선택의 확대가 이루어졌지만 우리에게는 심리적으로 그것에 대처할 능력이 갖춰져 있지 않다. 둘째, 우리가 받은 교육, 특히 어린 시절에‘선택과목’으로 택한 교육과정이 훗날 직업의 선택지를 한쪽 방향으로 재단해버린다. 셋째, 과학적 방법이라 신봉하는 ‘성격검사’는 사실 우리가 찾는 직업을 정확히 알려주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인생의 상당 부분은 우리를 둘러싼 강제적인 힘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데 동의하는가? 이 사실을 기억하고 이제부터 직업 선택 딜레마의 원인을 찾아보자. 그것이 직업 선택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역사의 상당 기간 동안, 직업을 정할 때 사람들은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이라는 것은 자유와 선택이 아닌 운명과 필요의 성격을 띤 문제였다. 그리고 벤저민 프랭클린의 경우에서 보듯 그 결정은 대개 부모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에게 가업을 물려주었다.

 

산업혁명 이후 직업 선택의 폭이 몰라보게 넓어졌다. 이는 분명 엄청난 순기능을 했지만, 역기능도 없지는 않았다. 우리는 새로운 선택의 시대가 어떻게 출현했는지뿐 아니라, 어렵게 손에 넣은 자유 때문에 어떻게 심리적으로 억압당하게 됐는지도 알아야 한다.

직업 선택이라는 주제를 가장 먼저 진지하게 고찰한 사회사상가 중 한 명으로 칼 마르크스Karl Marx를 꼽을 수 있다. 그는 18세기와 19세기에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임금노동이 등장하면서부터 어느 정도 변화의 희망이 생겼다고 보았다. 노동자들이 저마다 ‘팔고자 하는 어느 시장에서든 자신의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자유로운 노동력 판매자’가 된 것이다. 이것은 확실한 진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 자유가 허구에 불과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노동력의 잠재적인 구매처가 대부분 등골 휠 정도로 힘든 산업 노동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들은‘노동력을 착취하는’흡혈귀 같은 자본주의 체제의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19세기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극심한 빈곤과 탄광, 방직 공장에서의 지옥 같은 노동의 시대인 동시에, 공공교육의 확대와 개인의 재능에 개방적인 새로운 직업의 등장으로 직업 선택의 혁명이 이루어진 시대이기도 하다.

 

찰스 디킨스 :: 해군 경리국에 근무했던 하급관리의 아들로 남영국의 포츠머스 교외에서 출생하여 후에 런던으로 이사하였다. 아버지는 호인이었으나 금전관념이 희박하여 디킨스는 소년시절부터 빈곤의 고통을 겪었으며, 학교에도 거의 다니지 못하고 12세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하였다. 자본주의 발흥기(勃興期)에 접어들던 19세기 전반기의 영국 대도시에서는, 번영의 이면에 무서운 빈곤과 비인도적인 노동(연소자의 혹사 등)의 어두운 면이 있었다. 이러한 사회의 모순과 부정을 직접 체험한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자력으로 노력하여, 15세 때 변호사 사무실의 사환으로 일하였고, 이듬해 법원의 속기사, 그리고 신문사의 통신원이 되어 풍속(風俗)의 견문(見聞) 스케치를 써서 보내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이런 것들을 모아 단편소품집 《보즈의 스케치》를 1836년에 출판함으로써 문학가로서 출발하게 되었다.
이듬해인 1837년에 완결시킨 장편 《피크위크 페이퍼스》는 전작(前作)의 확대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이어 《올리버 트위스트》(1838)로써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작가로서 위치가 확고해졌다. 그 후 《니콜라스 니클비 Nicholas Nickleby》(1838∼1839) 《골동품 상점 The Old Curiosity Shop》(1840∼1841) 《크리스마스 캐럴》(1843) 《바나비 러지 Barnaby Rudge》(1841) 《돔비와 아들 Dombey and Son》(1846∼1848) 등의 장편·중편을 발표하여 문명(文名)을 더욱 떨치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몸소 체험하여 알게 된 사회 밑바닥의 생활상과 그들의 애환을 생생히 묘사하는 동시에, 세상의 모순과 부정을 용감하게 지적하면서도 유머를 섞어 비판한 데에 있다.
1850년에 완결된 자서전적인 작품 《데이비드 코퍼필드 David Copperfield》를 쓸 무렵부터 그의 작품의 경향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여 디킨스 후기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다음 작품 《황폐한 집 Bleak House》(1853)이 그 좋은 예로서, 그의 전기작품(前期作品)에서처럼 한 사람의 주인공의 성장과 체험을 중심으로 쓴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사회의 여러 계층을 폭넓게 바라보는 이른바 파노라마적인 사회소설로 접근해 갔다. 개인의 힘으로써는 어찌할 수 없는 사회의 벽에 직면하여, 그의 자랑거리인 유머도 그 빛을 잃고 무력감과 좌절감이 전편(全篇)을 흐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창작력은 조금도 쇠퇴되지 않아, 공장직공의 스트라이크를 다룬 《고된 시기 Hard Times》(1854), 프랑스혁명을 무대로 한 역사소설 《두 도시 이야기 A Tales of Two Cities》(1859), 그리고 다소 자서전적인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1860∼1861) 등의 작품 이외에도, 대단히 많은 단편과 수필을 썼으며, 한편 잡지사의 경영, 자선사업에의 참여, 소인연극(素人演劇)의 상연, 자작의 공개낭독회, 각 지방의 여행 등, 참으로 쉴사이 없는 정력적인 활동을 계속하였으므로, 그의 건강상태는 나빠졌지만 쉬려고 하지 않았다.
더욱이 1858년에는 20년 이상 함께 살아 왔고 10명의 아이를 낳은 부인 캐서린과 별거하는 등 정신적인 고통도 겹쳐, 1870년 6월 9일 추리소설풍의 《에드윈 드루드 Edwin Drood》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세계의 각계각층의 애도 속에 문인 최고의 영예인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안장되었다. 그의 소설은 지나치게 독자에 영합하는 감상적이고 저속한 것이라는 일부의 비난도 있지만, 각양각색의 인물들로 가득찬 수많은 작품에는 심각함에서 우스꽝스러움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태가 다 묘사되어 있고, 그의 사후 1세기를 통해 각국어로 번역되어 셰익스피어 못지않은 명성을 누리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찰스 디킨스 [Charles John Huffam Dickens]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직업 선택에 관해 19세기에 일어난 주요 사건이 공공교육의 확대라면, 20세기에는 일하는 여성의 숫자가 늘어난 것이었다. 1950년에 미국에서는 여성의 30%가 일을 했고 20세기 말로 접어들어 그 숫자는 두 배로 증가했다. 그러한 변화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나타났다.

부분적으로 그 원인은 참정권을 얻기 위한 투쟁에 기인하기도 하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징집된 남성 대신 여성이 공장에서 일하면서 여성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된 덕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면 더욱 중요한 원인은 피임약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1955년에 피임약이 처음 개발된 이래 15년도 채 되지 않아 경구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은 2,000만 명을 넘어섰고 1,000만 명 이상이 피임 루프를 삽입했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있게 됨으로써 원치 않는 임신이나 육아의 방해를 받지 않고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커졌다. 그러나 여성들이 획득한 자유는 남녀 모두에게 심각한 딜레마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가정과 일의 균형을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서구 국가에서 직업이 ‘운명’에서 ‘선택’으로 점차 변화했고,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그 변화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오늘날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100년 전보다 훨씬 많은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당신은 지금까지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에 비해 얼마나 더 많은 직업 선택지를 누릴 수 있었는가?’

 

윗세대들이 보기에 당신은 행운아다. 아버지가 보기에 내가 그랬듯이. 그런데 우리는 왜 직업을 선택하고 성취감을 주는 일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힘들어하는 것일까?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현대인은 선택지가 너무 넓은 데다 거기에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슈워츠는 선택권 없는 인간의 삶은 도저히 견딜 수 없지만, 선택권이 지나치게 많아도 과부하의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그 지점에 이르면 선택권은 더 이상 당신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오히려 약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압박요인으로 작용 할 수도 있다.”

슈워츠는 저서《선택의 심리학》에서 소비자가 매일 직면하는 선택의 과잉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네 마트에서 파는 비스킷 종류만 해도 285가지, 샐러드드레싱은 175가지나 된다는 것이다. 그는 전화 산업에 대해서도 말한다. 당신이 선진국의 국민이라면 집 전화를 설치할 때 10개 이상의 통신사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저마다 다른 요금제와 옵션, 계약 규정을 제시하는 회사들 사이에서 선택하기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몇 가지 선택지가 있는지 찾고 분석하는 데만도 몇 시간이나 걸린다.

슈워츠에 따르면 선택의 역설은 첫째, 너무 많은 선택권은 자유가 아닌 무기력을 초래한다. 그래서 쉽게 포기해버리고 이미 이용하고 있는 전화 회사를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둘째, 설령 무기력 상태를 극복하고 결정을 내린다 해도 선택지가 적은 경우보다 결과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진다. 역설의 주요 원인은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라며 이미 내린 결정을 후회하고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슈워츠는 오늘날 벤저민 프랭클린의 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만큼 선택의 여지가 넓어졌기 때문에 직업 결정의 이슈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마치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무방비로 노출된 산토끼처럼 심리적으로 무력해지는 경우도 제법 많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선택 과잉에 대처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슈워츠는 크게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선택지를‘제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옷을 사러갈 때는 좀 더 괜찮은 디자인이나 가격을 찾아 끝없이 헤매지 말고 두 군데 매장만 들르겠다는 나름의 규칙을 세운다.

둘째, 최적화보다는‘만족’을 추구한다. 완벽한 청바지를 사려고 하기보다는‘그 정도면 괜찮은’청바지를 사야 한다는 뜻이다. 즉 기대를 낮춤으로써 선택 과잉이 일으키는 불안과 시간낭비를 상당수 피할 수 있다.

 

실제로 물건을 구입할 때는 위의 전략이 통할 수 있지만 직업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때는 그리 적절하지 않다. 선택지를 쉽게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A로 시작하는 직업군만 살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무조건 이력서를 두 군데만 보낼 수도 없고.

게다가 일은 우리의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므로 ‘그 정도면 괜찮은’수준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고 더 큰 성취감을 얻고 싶다면, 작은 만족에 안주하지 말고 보다 큰 만족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일단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직업의 핵심요소를 숙고해서 선택의 폭을 좁힌 다음, 그중 가장 적절한 선택을 시험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고안해내야 한다.

 

성취감과 거리가 먼 직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데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는 부담감 외에 또 다른 힘이 작용한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주입된 교육을 바탕으로 직업을 선택하고, 그 과거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에 깊이 뿌리 내린 과거가 정해준 제한된 직업의 길을 걸어간다. 가슴 뛰는 삶을 살기 위해 기꺼이 감당해야 할 모험으로 나아가는 데 당연히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언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가? 대부분 학창시절에 이루어진다. 학교 교육과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평범하게 자란 사람이라면 청소년 때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이때 선택한 교육의 길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직업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A레벨(A-level)‘ :: 영국의 대학입학 준비과정으로,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할 몇 가지 과목을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학습한다.

 

외국어 교사가 되고 싶은 학생은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역사 과목을 선택한다. 그들 중 대다수는 과학 과목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 학생들 중 의사나 수의사가 나올 수 있을까? 뒤늦게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과학에 대한 기초지식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난 과학은 몰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뿌리 박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의사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지워버린다는 데 있다.

한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5~6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학생은 대부분 의사가 된다. 의사가 아닌 그래픽 디자이너나 콘서트의 세션맨session man이 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의사들이 아무리 고된 업무와 극심한 스트레스에 대해 불평해도, 다른 직업을 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처럼 교육은 우리를 특정한 직업군에 가두어버린다. 적어도 진로를 정하는 데 상당한 강제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우리가 자신의 성격이나 미래의 관심사를 올바르게 평가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일찍 정한 만큼 일찍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래의 관심사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은 일생 동안 당신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의미 있는 직업’이 무엇인지, 고등학생 때나 20대 초반부터 알고 있었는가? 그때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직업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시기가 아닌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 나이에 인생 경험도 부족하고, 자기 성격이 어떤지도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 적극적으로 조언해주는 사람이 곁에 아무리 많이 있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성격이나 이상, 기대와는 별로 맞지도 않는 직업을 택하고, 그 사실을 깨달은 후에는‘이미 늦었다’며 어쩔 수 없이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에 받았던 교육과 연결된 선택지를 벗어나기는 이처럼 어렵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었죠. 고작 열여섯 살에 변호사가 되기로 결정하다니.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그 나이에 무슨 수로 알겠어요? 열여섯 살의 나와 마흔다섯의 나는 분명히 다르잖아요. 가치관과 견해, 동기가 같을 수 없는데 말이죠.”

 

마지막까지 그녀를 괴롭힌 것은, 부모의 반대가 아니라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한 기나긴‘세월’이었다. 변호사의 한 길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이제 그 기간이 전부 시간낭비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녀를 못 견디게 했다.

“변호사가 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그만둔다는 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얼마나 노력해서 얻은 결과인데 지레 포기하다니요. 저 자신에게 실망하게 될 게 분명 했죠.”

그녀의 생각은 경제학자들이 말하는‘매몰비용sunk cost’의 함정과 비슷하다. 매몰비용이란 투자나 지출을 했을 때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비싸게 산 신발이 엄청 불편한데도 들인 돈이 아까워 내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미라는 변호사라는 직업에서 아무런 성취감도 느낄 수 없지만, 거기에 들인 10년이라는 시간이 아까워서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인생에서 10년 세월은 그냥 접어버리기에는 너무 큰 비용이므로.

지금까지 애써 일궈놓은 업적이 시간낭비가 된다는 생각은, 우리가 직업을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커다란 심리적 장벽이다.

 

‘우리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일’이란 대개 현재 직업보다 밥벌이가 시원찮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막상 새 길을 떠나고 싶다고 하면서도 현재의 직업 덕분에 누리고 있는 사회적 지위나 직업적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다기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과거의 희망과 끊임없이 투쟁하지만, 과거의 희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지금 우리는 두 가지 후회 가능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첫 번째는 수년 동안 시간과 에너지, 감정을 쏟아부은 직업을 ‘왜 버렸을까’하는 후회이고, 두 번째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돌이켜볼 때 전혀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던 직업을‘왜 버리지 못 했을까’하는 후회다. 두 가지 후회 모두 뼈아프지만, 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의 일이란 것이, 아무리 최상의 결정을 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후회를 피할 방법은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렇다면 새로운 결정을 내릴 때 이 두 가지 후회 중에서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까?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와 저지르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어느 쪽이 그나마 덜 아플까? 최

근에 나온 심리연구 결과에 따르면 후자가 정신건강에 더 해롭다고 한다.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만큼 강력한 후회는 없다. 하지 않은 선택은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 속에서 커져가고, 점점 커진 후회는 인생에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해보고 후회하는 일은 결과를 경험했으니 빨리 잊고 쉽게 단념할 수 있지만, ‘만약 그때 했더라면…’하는 생각은 이제 와서 어쩌지도 못하고 평생 마음속에 담아둘 수밖에 없다. 철학자 A. C. 그레일링A. C. Grayling도 비슷한 결론을 제시했다. “세상에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는 것이다.”

 

성격검사는 표준화된 질문에 답함으로써 자신의 성격유형에 가장 적합한 직업을 파악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자신의 천직을 알 수 있다니 얼마나 구미가 당기는가. 그러나 거기에는 장점 못지않게 본질적인 결함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실현 가능성 없는 기대치만 올려준다는 문제점도 있다. 설마 그럴 리가 있느냐고? 있다. 심지어 증거도 있다.

성취감을 느낄 만한 일을 찾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조언이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는 답을 주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19세기 미국에서는 골상학이 유행처럼 번졌고, 지식인들 대다수가 골상학에 집착했다. 어찌됐든 직업상담이 골상학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비밀 중 하나다.

그러나 골상학은 애초의 의도부터 불온하다. 훌륭한 두상(?)을 가진 백인종이 다른 인종들보다 우월하다는 인종차별적 이론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역사학자가 쓴 문헌에 따르면“ 1820년대부터 지원자들에게 추천서와 함께 골상학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구인 광고가 많아졌다. 대부분의 골상학 보고서에는 당사자의 두상을 토대로 한 직업 조언이 함께 들어 있었다.”

이처럼 수상쩍은 과학을 근거로 삼았던 직업상담은 20세기 전반에 들어서면서 변화를 맞이했다. 머리 바깥쪽의 생김새를 측정하는 대신 성격검사로 ‘머리 안쪽’을 조사하게 된 것이다. 성격검사는 프랑스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가 1905년에 IQ 검사를 고안한 이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 후 1970년대에 이르러 심리측정 검사로 성격유형을 분석하는 것이 직업상담사들의 표준적인 방식으로 자리매김했다.

 

IQ :: 지능지수(知能指數)라고 하며, 다음 식(式)에 의하여 산출된다.
IQ = (정신연령 ÷ 생활연령) × 100
지능검사 창시자 중의 한 사람인 프랑스의 A.비네는 검사의 결과를 정신연령(지능의 발달 정도가 일반 생활연령으로 몇 살, 몇 개월 되는 사람의 평균지능에 상당하는가를 표시하는 것)으로 나타내었는데, 이 방법으로는 피검사자의 생활연령과의 관계 여하에 따라 지능의 양부(良否)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그후 독일의 O.슈테른과 미국의 L.M.터먼 등은, 정신연령의 생활연령에 대한 비(比)를 구하는 IQ를 고안하게 되었다. 이에 의하면, 평균지능이 100점이 되어 지능의 우열을 따지는 데에 이해하기 쉽다는 이점이 있으나, 수리통계학적으로 반드시 엄밀한 의미를 전제로 하는 숫자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는 지능편차치(知能偏差値)를 아울러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능편차치는 전체 인구를 대표하는 표본집단의 지능검사 성적이 정규분포를 시현한다는 통계적 사실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은 식에 의해 산출된다.
[(개인의 득점)-(집단의 평균점)]/[1/10(집단 득점의 표준편차)]+50
이 식에서 보는 바와 같이 편차치에서의 평균지능은 50점이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IQ [intelligence quotient]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직업상담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성격검사를 진지하게 참조한다. 하지만아무리 정교한 검사라도 결점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심리측정 검사인MBTI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도 예외는 아니다.

MBTI는 융Carl Gustav Jung의 성격유형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검사방법으로, 해마다 2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이 검사를 한다. 직업지도 프로그램이나 입사시험에도 포함돼 있고, 기업의 인사정책에도 거론되곤 한다. MBTI는 외향 대 내향, 논리 대 감정 등으로 분리된 경향에 따라 사람의 성격유형을 16가지로 나눈다.

그런데 MBTI에 관한 흥미로우면서도 우려스러운 사실이 있다. 매우 널리 알려진 대중적이고 권위 있는 검사이지만, 30년 넘게 심리학 전문가들에게 꾸준히 비판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MBTI의 문제점 중 하나는 통계학자들이‘검사—재검사 신뢰도’라 부르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검사를 받고 5주 후에 한 번 더 검사를 받으면, 지난번과 다른 성격유형이 나올 가능성이 약 50%나 된다.

심리학 전문가들이 두 번째로 비판하는 MBTI의 문제점은, 성격을 반드시 ‘둘 중 하나’에 속하는 상호 배타적인 유형으로 가정한다는 점이다. MBTI에서는 성격이 내향형 아니면 외향형, 즉 둘 중 하나일뿐 두 가지가 섞여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성격유형이든 양 극단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다. (100% 내성적이거나 외향적인 사람은 사회생활 자체가 어렵지 않을까?) 가령 MBTI로 신장을 측정한다면 당신은 키가 크거나 작거나 둘 중 하나에 속하는 셈이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간에 속하는데 말이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검사결과가 각각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나왔어도 실제로는 거의 똑같을 수 있다. 그러나 MBTI 검사 결과에서는 둘 중 하나에만 속해야 하므로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분류된다.

 

MBTI :: 성격유형을 측정하기 위해 캐서린 브리그스(Catharine Briggs)와 이사벨 마이어스(Isabel Myers)가 1900년부터 1975년에 걸쳐 개발한 검사로,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부터 1990년에 걸쳐 심혜숙과 김정택이 표준화하였다. 대상은 중학교 3학년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일반인이다. 성격유형검사로서 융(Jung)의 성격유형이론을 근거로 제작되었다. MBTI 검사지는 모두 95문항으로 구성되어 있고, 네 가지 척도의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 결과는 E(외향)-I(내향), S(감각)-N(직관), T(사고)-F(감정), J(판단)-P(인식) 중 개인이 선호하는 네 가지 지표를 알파벳으로 표시하여(예, ISTJ) 결과 프로파일에 제시한다. 이에 따라 MBTI의 성격유형은 열여섯 가지 유형으로 나타날 수 있다.
MBTI의 근간이 되는 융의 심리유형이론의 요점은 인간의 행동이 겉으로 보기에는 제멋대로고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무쌍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질서정연하고 일관성 있게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관성과 상이성은 각 개인이 외부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인식과정), 자신이 수집한 정보에 근거해서 행동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데(판단과정) 각 개인이 선호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각 지표는 인식, 판단 기능과 연관된 네 가지 근본적 선호 중 하나를 대표한다. 이 선호성은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는가와 그들이 인식한 것에 대하여 어떻게 결론을 내리는가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말하는 심리적 선호 경향(preference)이란 '내가 더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활용하는 것' '더 자주, 많이 쓰는 것' '선택적으로 더 좋아하는 것' '상대적으로 편하고 쉬운 것' '상대적으로 더 쉽게 끌리는 것'을 의미한다.
외향형-내향형을 보면, 개인의 주의집중과 에너지의 방향이 인간의 외부로 향하는지 아니면 내부로 향하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외향성의 사람들은 주로 외부세계를 지향하고 인식과 판단을 할 때도 외부의 사람이나 사물에 초점을 맞춘다. 내향성의 사람들은 내적 세계를 지향하기 때문에 외부세계보다는 자기 내부의 개념이나 생각 또는 이념에 좀 더 관심을 둔다. 감각형-직관형을 보면, 정보를 인식하는 방식에서의 경향성이 반영되어 있다. 감각기능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자신의 오관에 의존하며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감각형의 사람은 순서에 입각해서 차근차근 업무를 수행해 나가는 성실근면형이며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직관형의 사람은 자신의 예감이나 직감과 다양한 정보 간의 연관성을 중시하고 통찰과 유추에 가치를 둔다. 이들은 미래 지향적이고 창의적이며 새로운 접근을 중시한다.
사고형-감정형의 경우는 인식된 정보를 가지고 판단을 내릴 때 쓰는 기능이다. 사고형은 객관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정보를 비교 분석하고 논리적 결과를 바탕으로 판단을 한다. 감정형은 친화적이고 따뜻한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판단형-인식형의 경우는 외부세계에 대한 태도나 적응에서 어떤 과정을 선호하는지를 말한다. 판단형은 의사를 결정하고 종결을 짓고 활동을 계획하고 어떤 일이든 조직적 · 체계적으로 진행하기를 좋아한다. 인식형은 삶을 통제하고 조절하기보다는 상황에 맞추어 자율적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MBTI 자가채점방법은 다음과 같다. 원점수 계산방법은 네모에 X가 표시된 부분을 찾아 그 옆의 숫자를 세로로 모두 더한다(T와 F는 남녀에 따라 점수 부여가 다르다). 점수합계란에 각 축의 원점수 합을 기재한다. 환산점수 계산방법은 원점수가 높은 쪽이 I, S, T, J일 경우에는 (높은 점수-낮은 점수)×2-1로 계산한다. 원점수가 높은 쪽이 E, N, F, P일 경우에는 (높은 점수-낮은 점수)×2+1로 계산한다. 양극의 원점수가 동점일 경우에는 E, N, F, P로 기입하며 환산점수는 각 1점이 되고, 양극성 지표에서 환산점수가 높은 쪽이 선호도의 유형이 된다.
MBTI를 해석할 때 점수의 의미는 1~9점은 낮은 선호도(low), 11~19점은 중간 정도의 선호도(moderate), 21~39점은 뚜렷한 선호도(F=21~29), 40점 이상은 아주 뚜렷한 선호도(F=30 이상)를 나타낸다. 환산점 최고점수는 E=53, I=55, S=67, N=51, T=63(남자), 65(여자), F=39(남자), 43(여자), J=55, P=65다. MBTI는 상담 · 심리치료 분야, 교육 분야, 인간관계 훈련분야에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1980년대 이후 인사관리, 인력개발, 조직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어 교육훈련전문가들에게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다. 열여섯 가지 성격유형은 ISTJ, ISTP, ESTP, ESTJ, ISFJ, ISFP, ESFP, ESFJ, INFJ, INFP, ENFP, ENFJ, INTJ, INTP, ENTP, ENTJ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이어스-브리그스 성격유형검사 [Myers-Briggs Type Indicator, -性格類型檢査] (상담학 사전, 2016. 01. 15., 김춘경, 이수연, 이윤주, 정종진, 최웅용)

 

아주 중요한 사실이 또 있다. 공식적으로 MBTI는‘이 검사를 통해 당신이 좋아하고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직업유형을 알 수 있다’고 선전한다. 가령 나처럼 INTJ(내향성에 직관적, 사고와 판단을 선호하는 경향), 흔히‘과학자형’이라 부르는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은 경영 컨설턴트나 IT 전문가, 엔지니어다.

그렇다면 내가 그런 직업으로 바꾼다면 더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까? 더 행복해질까?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데이비드 피텐저David Pittenger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그는 이렇게 단정한다.

“MBTI 유형과 직업의 성공 사이에 긍정적인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 또한 어떤 직업에 특정 유형이 다른 유형보다 더욱 적합하다는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처럼 결함이 많은 MBTI가 그렇게 대중적으로 퍼져나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피텐저는 MBTI의 성공요인에 대해‘성격을 별자리 운세처럼 보기 좋게 요약해서 분석해놓은 점과 꾸준한 마케팅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성격검사는 우리 자신에 대한 과학적‘진실’을 드러내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쓸모가 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울 때, 어쩌면 지금의 직업보다 다른 직업이 내게 더 잘 맞을 수도 있다는 진단을 해줌으로써 정신적인 위안을 줄 수 있다. 또한‘내가 이런 사람이란 말이지?’라는 가설을 줌으로써 자기성찰의 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해도 그것이 ‘꿈의 직업’을 귀띔해주는 마법의 공식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백이면 백 제각기 다른 인간의 성격이 어떻게 고작 16가지에 한정되겠는가? 인간은 심리검사에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다. 심리검사의 수백 가지 질문에 답하는 것보다 현실 속에서 여러가지 직업을 직접 경험해보는 쪽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을 찾는 데 더 유용하다.

 

나에게 꼭 맞는 의미 있는 직업을 찾는 여정에 혼란이 가득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쯤이라면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어느 길을 택할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당신만이 아니라는 것과, 그것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역사적인 변화 덕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심리적 대응력을 넘어서는 과분한 선택권을 유산으로 받았다.

 

‘당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혼란을 가져다주는 세 가지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

‘직업을 바꾸는 데 따르는 가장 커다란 세 가지 두려움은 무엇인가?’

‘현실에서 당신을 가로막는 가장 힘든 도전은 무엇인가?’

 

 

 

Chap 3. 무엇이 당신을 일하게 하는가?

도스토옙스키는 모든 인간에게 가장 끔찍한 벌은‘평생 동안 아무 쓸모도 의미도 없는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의미’는 정말 중요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의미는 몰입, 자유와 함께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직업의 세 가지 핵심요소다.

 

직업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다섯 가지 측면을 살 펴보고자 한다. 그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돈’을 버는 것,

둘째는 사회적‘지위’를 획득하는 것,

셋째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기여’하는 것,

넷째는 ‘열정’을 따르는 것,

다섯째는 ‘재능’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는 일에서 추구할 수 있는 의미인 동시에, 거꾸로 말하면 당신을 특정한 직업으로 이끄는 동기부여의 원천이기도 하다.

어떤 일을 왜 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힘이 생긴다. 그리고 그 힘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측면인 ‘돈과 지위’는 ‘외재적 동기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일을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가지, 즉 기여, 열정, 재능은 일의 가치를 그 자체로 평가하는‘내재적 동기요인’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정해진 답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우선순위다.

 

뭐니 뭐니 해도 ‘돈’

돈 때문에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는 건 노동의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고 강력한 동기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돈에 대한 욕망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스며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돈벌이 자체를 경멸하고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들을 비난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늘날의 돈은 지칠줄 모르는 프로테우스Proteus 처럼 인간의 변화무쌍한 소원과 다양한 욕구의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따라서 사람들이 돈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 인간에게 돈은 추상적인 행복이다.”

 

프로메테우스 ::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처음 등장한다. 모든 사물로 모습을 변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메넬라오스는 트로이에서 돌아오는 항해 도중에 애를 먹고 이집트의 파로스섬에서 프로테우스로부터 장차의 예언을 듣기 위해 그를 체포한다. 프로테우스는 사자·뱀·표범·늑대·물·나무 등으로 변신하여 도망치려고 한다. 그러나 메넬라오스가 붙잡고 놓아 주지 않으므로 체념하고 귀국하는 길을 가르쳐 준다. 해신인 네레우스는 물론 여신(女神) 테티스도 변신술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 모범은 이 프로테우스이다. 뒤에 나오는 전설에서는 프로테우스가 이집트 왕으로 불리는 수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로테우스 [Proteus]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돈에 대한 욕망이 당연하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은 맞지만, 돈을 행복과 동일시한 것은 잘못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부의 추구가 개인의 행복, 즉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에 이르는 길이 아님을 말해주는 증거는 수도 없이 쏟아졌다. 현대의 사회과학이 발견한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높은 소득 수준과 행복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득이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이후에는 소득이 더 높아져도 인생의 만족도가 그다지 올라가지 않는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의 말대로 우리가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돈이 많아지고 소유물이 늘어날수록 기대치도 높아지기에, 과거와 같은 수준의 행복감을 충족시키려면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하고 더 많이 벌고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또다시 기대치가 올라가버린다.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타는 바닷물처럼, 돈과 행복 사이에도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갈증이 계속 반복된다.

 

에우다이모니아 ::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인간의 고유한 기능이 덕에 따라 탁월하게 발휘되는 영혼의 활동.’ 이 최상의 좋음은 성취 가능하고, 완전하고 자족적이다.

 

인간은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 무엇도 인생의 만족감과 성취감을 끌어올려주지 않으며 오히려 불안과 우울감만 증폭된다.

 

심리치료사 수 거하트Sue Gerhardt는 저서 《이기적인 사회》에서 이 주제에 관해 현명하게 논했다.

우리는 TV와 인터넷이 보여주는 소비행태에 맞추려고 분투하고, 그 탓에 늘 불만족에 사로잡혀 있다. 재화와 용역을 축적하고자 하는 욕망은 중독성이 있다. 아무리 넘치도록 가져도 그것을 제어할 경고 시스템이나 내재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 끝없는 욕망이다. 우리는 계속 더 원한다. 특히 다른 사람들보다‘더’가지고 싶어 한다.

(…) 우리는 상대적으로 더 큰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정신 적인 풍요는 가지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정말로 중요한 것을 빼앗겼다.‘정서적인 안전’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물질에서 안전을 찾으려고 한다.

우리는 엉뚱한 곳에서 성취감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존재가 아니라 소유에서. 공감할 수 있고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인간관계를 만드는 데서가 아니라 소유를 늘리는 데서 말이다. 이제 돈을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해서 의미 있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직업이 가진 여러 요소들 중에 우리에게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돈이 최우선’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실제로 컨설팅 회사인 머서Mercer가 유럽과 미국, 중국, 일본, 인도의 노동자 수천 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높은 월급’은 12가지 핵심요소 중 겨우 7위를 차지했다. 그들은 직장 내 인간관계의 수준, 즉 ‘존중’과‘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마찬가지로 다른 설문조사에서도 동료들과의 좋은 관계, 일과 생활의 균형, 직업 안정성, 자율성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돈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직업을 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주택 대출금은 물론이고 여기저기 들어갈 돈도 많으며,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다. 돈을 떠나서 직업을 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정도’다. 돈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어야 하는가?

 

‘돈에 대한 당신의 태도 중 어떤 것을 가장 바꾸고 싶은가?’

 

사회적 ‘지위’가 자존감을 높여준다

사회적 지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외교관이나 방송국 PD, 외과의사, 운동선수, 교수나 작가처럼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업이 가져다주는 지위다. 얼마 전 내제자 한 명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 언제나 친구들에게 멋있게 보이는 직업을 원했어요. 현대인도 고대 로마인들처럼 명성과 영광에 대한 욕망이 강하니까요.”

두 번째는 타인과 비교했을 때 나의 위치가 높은가 낮은가의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연구가 있다. 남들이 5만 달러를 받고 자신은 2만 5,000달러를 받는 것과, 남들이 20만 달러를 받고 자신은 10만 달러를 받는 것 중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연구 결과, 전자를 택한 이들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행동경제학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이 연구는, 자신에게 돌아오는절대적인 금액보다 남들과의 차이에 더욱 민감한 인간 심리를 적나 라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는 직업 계층 안에서 자신의 상대적인 위치에 몹시 신경 쓴다.

 

18세기 철학자 루소Jean Jacques Rousseau가 경고한 것처럼“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판단하는 것, 즉 명성에 대한 보편적인 욕망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문제는 또 있다. 우리가 어떤 지위에 도달하자마자 그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동료집단은 계속 바뀌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만족하는 지위는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나니아연대기》로 유명한 작가이자 영적사상가 C. S. 루이스C. S. Lewi는 이 문제를 이렇게 이해했다. 대부분의 인간은 사회적으로 존경받거나 중요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내부 패거리inner ring에 속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그 내부 안에는 언제나 또 다른 내부가 존재하게 마련이므로, 우리가 원하는 ‘내부’에는 영원히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당신의 지위를 판단한다고 생각하는가? 가족, 친구, 동료? 당신은 그들에게 그럴 권리를 주고 싶은가?’

 

이 직업이 제게 어떤 의미가 있냐고요? 전 사람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돌봐줍니다. 마치 제가 떠나는 것처럼 온 정성을 다하죠. 덕분에 고인의 가족들이 보낸 감사편지가 한가득이에요. 제가 이 일을 하는 중요한 이유죠.

제가 받은 편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고인의 아내가 보낸 편지였는데, 죽은 남편이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인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면서, 꼭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런 내용도 있었죠.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 정말 고와서 가족 모두 무척 기뻤다고, 애써줘서 정말 고맙다고요. 조문 온 친구들이 고인을 보고 ‘죽이게’ 멋지다고 했대요.

 

“현대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잖아요. 제 직업이 장례지도사라고 말하면, 열에 아홉은 흠칫 놀라곤 하죠. 적어도 저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못 봤어요.”

트레버의 직업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그 일을 함으로써 그가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얻기 때문이다. 여기서 ‘존중받는다’는 것은, 마치 마피아 보스처럼 주위 사람들이 어려워하거나 공손하게 대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일에 쏟아붓는 노력을 사람들이 감사하게 여기고, 그 가치를 인정해준다는 뜻이다. 트레버의 경우, 고인의 가족들이 그의 능력을 인정해주기 때문에 그 역시 존중받는 느낌을 갖게된 것이다. 트레버처럼 특수한 직업이 아닌 일반 직장인들이라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거나 일을 체계적으로 잘 마쳤을 때, 동료들이 해주는 칭찬이나 인정을 통해 존중받는다고 느끼곤 한다.

많은 이들이 사회적 지위를 원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그 일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가 여부가 의미 있는 직업을 판단하는 핵심요소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에 따르면 우리는 존중받음으로써‘완전하고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어쩌면 직업 만족도 설문조사에서‘존중’이라는 키워드가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따라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을 찾을 때 사회적 지위만 보지 말고 ‘존중’ 요소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 기준에서는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은 좋은 대안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규모 조직에서는 개인의 노고를 인정받기 어렵고 관료주의적 전통도 강하다. 그보다는 직원 개개인을 고유한 인간이자 동등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우해주는 곳을 찾아보는 것은 어떤가? ‘존중’이라는 요소는 개개인의 생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게 마련이므로, ‘존중받는 직업’ 또한 남들이 말하는 획일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혹시 당신도 장례식장에서 일하고 싶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

‘내 일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루 종일 지루하게 이메일 답장을 보내고 있거나, 관심도 없는 상품을 마케팅하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좌절감에 빠져 있는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요즘처럼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판치는 시대에도 많은 이들이 이와 같은 꿈을 꾼다. 마치 고대 그리스인들이 ‘목적 있는 삶’을 살고 역사에 길이 남을 고결한 업적을 세우고자 했던 것처럼 말이다. 무릇 인간은 과거를 돌아봤을 때, 거기에 남겨진 자신의 흔적을 보고 싶어 한다.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윌리엄 데이먼William Damon이 실시한 유명한 연구에서는 ‘좋은 일’, 즉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일관되게 직업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생명윤리학자인 피터 싱어Peter Singer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커진‘개인적 성취감’에 대한 열망은, 우리의 삶을, 그리고 가능하다면 우리의‘직업’을 자기 자신보다 더 큰 ‘초월적 명분’에 바치도록 만든다. 이를테면 동물의 권리나 빈민구제, 환경운동 같은 윤리적 사안 같은 것 말이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봉사할 수 있으므로 누구나 위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아요. 기꺼이 위험도 무릅쓰고 바보 같은 짓도 하되, 어떤 경우에도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면 안 돼요. 극심한 생존경쟁이 주는 그 어떤 지위나 금전적 보상보다 이게 훨씬 값진 보상이에요.

 

어떤 직업을 택하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음의 두 가지 어려움에 봉착한다.

첫 번째는 행동의 영향력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데서 좌절감이 온다. 수년간 학자로서, 그리고 개발 컨설턴트로서 라틴아메리카의 가난과 인권에 관한 글을 써온 나도 절감하는 문제다. 내 손끝에서 나오는 글들이 정말 그들의 생활을 좀 더 낫게 만들어주는 걸까? 내가 사는 옥스퍼드에서 지역사회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는 그나마 나았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한 영향력도 그다지 대단하지 못해서 또 다른 좌절을 안겨주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이런 일을 하는 것과 돈을 버는 것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이다.

좋은 일을 하려면 반드시 고소득을 포기해야 할까? 현실적으로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돈이, 정확히는 돈이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창업 초기에 아니타 로딕은 남편과 함께 일했는데, 그때 제품 수송 트럭에 실종자들의 사진과 연락처를 붙이고 영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몇 주만에 3만여 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실제로 실종자들 중 몇 명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또한 1988년에는 솝워크스Soapworks라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글래스고의 빈민지역에 비누공장을 세워 지역사회에 수익을 환원했다. 1991년에는 더바디샵 재단의 자금으로〈빅 이슈Big Issue〉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알다시피〈빅 이슈〉는 노숙자들이 판매하는 잡지로, 현재 8개국에서 매주 30만 부가 팔린다.

그뿐 아니다. 더바디샵은 공정무역의 첫 주자가 되어 브라질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지역주민들과 직접 계약을 맺어 제품의 원료를 생산했다. 훗날 아니타 로딕은 아예 기업을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대형 석유회사 셸Shell이 나이지리아의 니제르델타에서 원유를 채굴하면서 오고니족의 생활 터전을 파괴하자, 더바디샵은 그들의 생존권을 되찾아주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셸을 전 세계적으로 곤경에 빠뜨려 결국 4년 만에 셸로부터 생존권 및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더바디샵이 수십 년 동안 급진적인 사회정치적 어젠더를 천명하고 실천하면서, 아니타뿐 아니라 수많은 직원들은 자신의 일에서 매우 큰 성취감을 느꼈다.

 

기업을 공개한 후, 대개의 기업이 그렇듯이 주주와 투자자들, 경영진에 대한 의무가 더바디샵의 도덕관을 좀먹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아니타 로딕은 걸프전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자 했으나, 최고경영진이 판매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갈등이 고조됐다. 경영진은 컨설턴트들을 투입해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수익을 늘릴 방안을 모색했으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더바디샵의 사회 참여 운동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로딕이 1990년대 후반에 떠밀리다시피 CEO 자리에서 물러난 후, 더바디샵은 윤리적 경영이라는 가치관을 잃어버렸다. 현재는 로레알 그룹에 속한 채 예전의 가치관은 입도 벙긋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당신의 재능과 세상의 필요가 교차하는 곳에 당신의 천직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 말이야말로 지난 3,000년 동안 등장한 직업에 관련된 수많은 조언 중에서 가장 유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재능은 세상의 필요와 어느 지점에서 교차하는가?’

 

‘열정’과 ‘재능’을 좇아서

돈이나 사회적 지위는 잊어라. 세상을 내 손으로 바꿔보겠다는 야망도 내려놓아라. 그 대신 당신이 좋아하고 정말로 잘하는 일을 하라.

 

“뭔가를 잘하게 되려면 터널 시야를 가져야 해. 거기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취미나 관심사를 직업으로 승화시킨 것이 성취감에 이르는 전환점이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취미는 취미로만 머물러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취미가 모형 기차 만들기라고 해서 그것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회사를 차린다면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려서 원래 갖고 있던 열정과 즐거움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매출이 나오지 않아 걱정인 어느 날이면, 비 오는 일요일 오후에 자동차 엔진을 손보던 아련한 추억에 사로잡혀 서글퍼할지도 모른다.

 

일과 놀이를 일치시키는 것은 위험하긴 해도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 평론가 팻 케인Pat Kane이 말했듯, 우리는‘자신의 세상에서 자기 자신과 열정, 열의를 가장 중요시하는 놀이 윤리’를 만들고 그에 따라 살아갈 필요가 있다.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 Francois Rene de Chateaubriand도 이미 100여 년 전에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진정한 삶의 고수는 일과 놀이, 노동과 여가, 몸과 머리, 공부와 휴식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는 두 가지 중 뭐가 뭔지도 잘 알지 못한다. 무엇을 하든 그저 탁월함을 추구하고 그에 걸맞게 완성할 뿐, 그것이 일인지 놀이인지는 타인의 판단에 맡긴다. 그 자신은 언제나 두 가지를 모두 하고 있다.

 

20세기 서구사회는 재능을 이용해 성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웨인 데이비스처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 이데올로기는 산업혁명 시기에 처음 등장한 노동 분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업무를 세분화해 처리함으로써, 효율성과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기업 전문 세무사나 도서관 정보제공 사서, 마취과 의사처럼 한정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해당 직무에 필요한 기술을 갖추고 있고, 그 일에 열정도 있다면 ‘전문화’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아니, 전문가라는 자부심도 덤으로 느낄 수 있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싫증’이다. 전문직의 특성상 똑같은 업무가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 외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연구에 따르면, 편도선이나 맹장 수술만 전문으로 하는 외과 의사들의 경우 쉽게 지루함을 느끼기 때문에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불만족이 생긴다고 한다.

 

직업 정체성은 존재의 핵심에 숨어 발견되기만을 기다리는 단 하나의 보물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가능성으로 구성된다. 인간은 여러 개의 자아로 이루어진 존재다.

 

여러 분야에 널리 도전해서 성취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동시에 여러 직업에 도전하는 ‘르네상스 제너럴리스트’와 한 번에 하나씩 차례로 시도해보는 ‘연속 스페셜리스트’가 그것이다. 그 두 가지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첫째, 르네상스 제너럴리스트는 자신이 가진 여러 재능과 성격적 특성을 개발해야만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을 모델로 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르네상스 제너럴리스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일 것이다. 그는 화가였을 뿐 아니라 엔지니어, 발명가, 과학자, 철학자인 동시에 음악가였다.

 

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인 케네스 클라크Keneth Clark의 말마따나 다빈치는 ‘역사상 가장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의 소유자’였다.

 

일찍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Charles Handy가 만들어낸 신조어 ‘포트폴리오 노동자portfolio worker’의 본보기였다. 포트폴리오 노동자란 여러 가지 다양한 직업 포트폴리오를 개발해서 각각 파트타임으로, 그것도 가능하면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이다. 일주일에 사흘은 개발 경제학자로, 나머지는 웨딩 사진작가나 온라인 서점 경영자로 일하는 것이다.

 

핸디는 이것이 경제적으로 불안한 시기에 실업률을 낮춰주는 현명한 생존전략이라 보았다. 하지만 포트폴리오 근무를‘어쩔 수 없는 생존전략’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동시에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다는 르네상스적 관점을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면 내면의 다중 자아를 분석하고 개발할 수 있다.

 

연속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것은 어떤가? 이 방법을 활용하면 자신의 다양한 재능과 열정에 흠뻑 취할 수 있다. 한꺼번에 여러 직업에 도전하는 대신 여러 가지 직업을 차례로 섭렵하는 것이다. 우선 PR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해서 유스호스텔 운영, 프리랜서 정원사까지 뻗어갈 수도 있다.

이렇게 여러 분야에 널리 도전해서 성취하는 방식은 은퇴 시기가 계속 앞당겨지고 수명은 점점 길어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은퇴 이후에 펼쳐지는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직업에 시도해볼 수 있으니 말이다.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에요. 대학원에 진학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진로를 쉽게 바꿀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평생 한 가지 일만 하면서 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세상에 흥미진진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한 가지 일만 하고 살아야 하죠? 누구든지 살면서 적어도 한 번쯤은 직업을 바꿔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기와 야망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데다 우리가 미래의 관심사를 정확히 예측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연속 스페셜리트의 길이야말로 다양한 재능과 열정을 개발해서 마치 눈 속에 파묻힌 씨앗처럼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은 다양한 인생을 살아볼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 당신은 어떤 분야들을 두루 성취할 수 있는가?’

 

첫 번째는 선택지도다. 어느 길로 갈지 초점을 맞추기 전에,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것이 목적이다. 우선 10분 동안 지금까지 당신이 거쳐온 직업을 지도로 그려보자. 어떤 형태든 괜찮다. 지그재그로 선을 그리거나 나뭇가지 모양이나 미로를 그려도 된다. 어떤 모양이든 이 지도에는 지금까지 당신이 거쳐온 직업뿐 아니라, 그 길을 택하도록 영향을 미친 동기와 영향력도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또는 사회적 지위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는 사실도 표시한다. 재능이나 열정, 가치관에 따른 결정도 마찬가지다. 또한 교육에 관련된 선택이나 부모의 기대, 전문가의 조언이나 기회 등의 요소가 있다면 그것도 반드시 적어둔다. 지금까지 단 한 가지 직업만 가졌더라도 왜 그 직업을 선택했고 어떤 경로로 거기에 도달했는지 표시한다.

이제 10분 동안 완성된 그림을 보면서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답해보자.

1. ‘당신이 그린 선택지도에서 볼 때, 당신은 지금까지의 워킹 라이프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는가?’2년 이상 똑같은 일을 한 적이 없다든가, 스스로 주도적으로 직업을 선택하기 보다는 어쩌다 시작하게 됐다는 등 반복되는 패턴이 보일 것이다.

2. ‘돈, 사회적 지위, 존중, 기여, 열정, 재능 중 당신이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기는 무엇인가?’중요 한 순서대로 순위를 매겨보자.

3. ‘앞의 동기 중에서 미래의 직업 선택에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싶은 두 가지 요소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다음의 과제를 통해 직업에 대한 당신의 모호한 생각을 좀 더 구체적인 직업 선택지로 발전시킬 수 있다.

‘5개의 별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각각의 별에서 1년 동안 머무르면서 무엇이든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다섯 가지 직업을 생각해보자.’

 

현실로 돌아와 당신이 선택한 다섯 가지 직업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 직업들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을 적고 다시 읽어보면서 아래 질문에 답해보자.

‘이 다섯 가지 직업은 이전 과제에서 답한, 미래의 직업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두 가지 동기 요소에 부합 하는가?’ 당신이 앞에서 ‘세상에 기여하기’와 ‘사회적 지위’라고 답했다면 상상의 직업에서 쓴 직업들이 그 두 가지를 충족시켜주는지 확인한다. 당신이 직업의 어떤 점을 중요시하는지, 진정으로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 파헤쳐보는 것이 이 과제의 핵심이다.

 

이 과제는 일반적인 진로탐색 방법과는 정반대다. 회사가 낸 구인 광고를 보고 일자리를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홍보하는 구직광고를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제는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인생의 어떤 점을 소중하게 여기는지에 대해 1쪽 미만의 분량으로 정리해 스스로를 홍보하는 구직광고를 써본다.

무슨 내용을 쓰는 게 좋을까? 당신의 재능이나(몽골어를 할 줄 안다 거나 베이스 기타를 친다거나), 열정(꽃꽂이나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한다거 나), 당신이 믿는 핵심가치나 명분(야생동물 보호, 여성 인권 등) 등에 대해 쓴다. 성격적인 특징이나 장단점도 적는다(재치가 있다거나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그 밖에 당신에 관한 중요한 사실이라면 빼놓지 않고 다 적는다(당신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급여 수준이나 해외에서 근무하고 싶다 거나). 다만 특별히 선호하는 직업이나 학력, 경력 등은 밝히지 말라. 여기서는 기본적인 동기와 관심사 정도만 쓴다.

둘째, 이제 흥미로운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모니터링 및 추천이다.

경찰관인 삼촌이나 만화가인 친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이 만든 구직광고를 이메일로 보내고 거기에 어울리는 두세 가지 직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한다. 단, 구체적이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직업이 어울리겠네.”가 아니라 “리우데자네이루의 노숙자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자선단체가 좋겠어.”처럼 자세하게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주위 사람들의 피드백을 모아보면, 당신이 지금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양한 ‘유망 직업 리스트’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직업에 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뿐 아니라 당신의 여러 자아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이 과제의 목적이다.

 

 

 

Chap 4.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고민하라

페미니즘의 선구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는 1787년에 아일랜드의 부잣집 가정교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작가라는 고난의 길을 택했다. 당시만 해도 그런 결정을 내리는 여성은 거의 없었다. 고갱Paul Gauguin은 파리에서 주식중개인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으로 성공을 누렸지만 1882년에 전업화가가 되었다. 그리고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오르간 연주자와 신학자라는 빛나는 직업을 내버리고,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은 후 1913년에 아프리카 열대 지방으로 건너가 나병 환자를 위해 병원을 세웠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 영국 런던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투기로 인해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거처 또한 여러 번 옮겨다녀야 했다. 덩달아 아버지의 가정폭력까지 심해지며 어머니와 여동생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는 소설, 동화, 여행기, 역사서 등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작가였으며 당대 가장 널리 퍼진 계몽사상의 성별 편향을 비판하는 여러 저서를 썼다. 특히, 《여성의 권리옹호(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 1792)》는 현재까지도 여성주의 철학서의 시초로 평가받곤 한다. 그는 이 책에서 프랑스의 사회계약론자인 계몽주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남성중심성을 비판한다. 루소는 남성만을 위한 인민주권 이론과 직접 다수결의 민주주의를 주장한 바 있다. '여성은 비이성적인 본성 때문에 정치적인 삶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남성에게 종속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에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남성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이성'이라고 반박한다. 그는 특히 남학생과 달리 여학생은 이해심 많은 아내이자 어머니로 교육해야 한다는 루소의 주장에 맞서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옹호하면서 교육의 차이가 여성의 열등성을 후천적으로 구성했다고 말한다. 여성 역시 남성과 마찬가지로 태생적으로 이성적 존재임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삽화가이자 교육자인 패니 프란세스 플러드(Fanny Frances Blood)와 평생에 걸쳐 깊은 친밀감을 나누었다. 길버트 임레이(Gilbert Imlay)와의 사이에서 패니 임레이(Fanny Imlay)라는 딸을 두었고, 이후 무정부주의자 철학자인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과 결혼하여 둘째 딸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Mary Wollstonecraft Godwin)을 낳았다. 이후 울스턴크래프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산욕열로 사망했다. 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퍼시 비니 셸리(Percy Bysshe Shelley)와 결혼하여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쉘리(Mary Wollstonecraft Shelley)가 됨)은 후에 소설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을 저술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Mary Wollstonecraft]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절반이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그중 4분의 1은 두려움과 자신감 부족으로 감히 변화를 추구하지 못하고 있다.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사디Sa’di는 “상어를 무서워하면 결코 진주를 손을 넣을 수 없다.”고 했다.

 

변화를 시도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어떤 결과가 뒤따를지 알 수 없는 불안의 단계에 이르는데, 웬만한 긍정적 사고방식으로는 떨쳐내기 어렵다. 불안을 극복하려면 낙천적인 생각 외에 다음의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두려움의 심리, 즉 직업진로를 바꾼다는 생각이 왜 불안을 일으키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둘째, ‘근본적 안식기’나 ‘가지치기 프로젝트’, ‘대화 리서치’처럼 실험적인 프로젝트로 잠재적인 자아를 직접 시험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셋째,‘몰입’의 개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몰입은 의미, 자유와 함께 일의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다. 또한 효과적인 선택을 하는 데도 유용한 기준이 되어준다.

전통적인 경력변화 모델에서는 먼저 촘촘히 계획을 세운 후에 행동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변화에 도전해 평생의 직업을 찾기 바란다면 정반대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질 것이다.다시 말해서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생각해야 한다.“ 경험은 내 정부 情婦다.”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아슬아슬한 신조를 기꺼이 따라야 한다.

 

“보통은 불안하다는 표시를 하지 않죠. 겉으로는 자신감 넘쳐 보이지만 속으로는 내가 중간이나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첫해에는 완전히 길을 잃은 느낌이었어요. 일을 제대로 하기는커녕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동료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제 능력 밖이라는 생각뿐이었죠. 예컨대 회의를할 때도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다 아는 얘기를 저만 못 알아듣는데도, 그냥 이해하는 척했어요. 다들 어찌나 유능해 보이던지, 바보가 된 느낌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친한 동료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제 고충을 털어놨더니 동료가 그러더라고요. 다른 사람들도 전부 다 ‘아는 척’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말이에요. 그 말을 듣고 나서는 확실히 제 능력에 대해 덜 의심하게 됐어요. 좌절감과 자괴감도 줄어들었고요. 생각해보니 그 전에 하던 일도 처음에는 벅차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너무 오래전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죠.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대니얼 카너먼Danial Kahneman은 1970년대에 인간이 잠재적 손실과 이익을 평가하는 방식에 대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인간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을 2배 더 싫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도박에서든 직업 진로를 바꿀 때든 똑같았다.

 

“사람은 긍정적인 자극보다 부정적인 자극에 훨씬 더 민감하다. (…)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은 한정돼 있지만, 나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험난한 아프리카 초원 지대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초기 인류는 위험을 민감하게 감지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었다. 그 결과‘위험에 대한 민감성’은 중요한 생존도구가 되어, 시간이 갈수록 그것을 더 집중적으로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조상들에게 불확실한 앞날의 목표란, 사자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벗어나 먹음직스러운 열매가 잔뜩 매달린 나무를 찾아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이유로 사람들은 직업을 바꾸려고 할 때 잘못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지고 최악의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린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새 직업이 자신에게 잘 맞을지 안 맞을지 생각할 때, 자신의 강점보다 약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잘 떠올려’가 아니라‘난 사회적 기업을 경영하기에는 사업수완도 없고, 감각도, 머리도 안 따라주는걸’하고 생각하기 쉽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약점에 대해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고 능력을 의심하게 되므로, 성취감을 느끼지도 못하는 현재 직업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자기 확신이 없으면 인간은 요람에 누운 아기와 같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관건은 위험을 무릅 쓰기 싫어하는 본능과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변화에 필요한 용기를 찾느냐다.

 

“서른 번째 생일 때까지 1년 동안 30가지 직업에 도전해보기로 했어요. 제게 맞는 직업을 찾는 데 1년이라는 시간을 통째로 쏟아붓기로 한 거죠. 요즘 저는 음악 행사의 프로그램 기획자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어요. 나머지 시간에는 평소 제가 동경해온 직업이나, 흥미를 가진 직업에 대해 조사하죠.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연락해서 한 달만이라도 함께 일할 수 없는지 물어보고 기회를 달라고 부탁해요. 지금까지 패션 사진작가, 숙박업소 리뷰작가, 광고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고양이 호텔 사장, 유럽의회 의원, 재활용 센터 소장, 유스호스텔 매니저 같은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그들과 함께 일하며 그 직업을 체험해봤어요.”

 

어떻게 보면 남자친구 사귀는 것과 비슷해요. 전 미혼이었을 때 마음속으로 남자친구의 조건을 목록으로 만들어놓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정작 그 기준에 일치하는 남자들에게서는 아무런 끌림도 없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해당사항이 몇 가지 안 되는 남자가 나타나 제 마음을 사로잡아버렸죠. 직업을 찾을 때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어느 광고회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밑에서 일을 배우며 알게 된 사실이에요. 광고회사에서 일한다는 게, 솔직히 제 이상과는 전혀 맞지 않는 조건이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 일에 푹 빠져버렸어요. 이리저리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될수록 많은 직업과 사귀어보는 게 방법인지도 몰라요. 진정으로 푹 빠질 수 있는 직업을 만날 때까지 말이죠.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고민하라’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프랭크 파슨스가 보스턴에 직업국을 세운 이후로 새 직업을 찾으려면 ‘실행하기 전에 먼저 계획하라’는 조언이 쏟아졌다. 이 모델은 자신의 강점과 약점, 기술, 관심사, 야망의 목록을 만드는 심오한 내면탐색으로부터 시작한다. 더불어 성격 검사나 상담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다음에는 각종 산업 분야와 직종을 철저하게 연구해서 자신의 능력과 선호도에 가장 잘 맞는 직업을 찾는다. 그것을 토대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 후 행동계획을 세우고 이력서를 보내 구직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델은 문제점이 있다. 한마디로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실전 경험을 하지 않은 채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기 때문에 자신과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책만 읽고 목수가 될 수 없듯이, 실제 행동을 취하지 않고는 직업을 바꿀 수 없다. 우선 우리는 목적과 의미를 주리라 기대되는 직업, 즉‘잠재적 자아’를 찾아야 한다.

 

진로를 바꿀 때 사람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첫 단계를 밟지 않고 미룬다는 것이다. (…) 변화를 창조하는 유일한 방법은 잠재적 자아를 움직이도록 하는 것뿐이다. 잠재적 자아가 일을 하고 기술을 익혀서 충분한 경험을 쌓도록 해야만 실제 단계를 밟을 때 도움이 된다. (…)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시험함으로써 자신에 대해 배운다. (…) 자기성찰은 나중에, 어느 정도 가속도가 붙어 새로 들여다볼 것이 생겼을 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직접 경험보다 나은 배움은 없다.

 

우리가 사회적 관계와 동료집단의 구조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만약 당신이 변호사이고 다른 변호사들이나 관련 전문직 종사자들과 주로 어울린다면 당신의 이상과 야망도 그들과의 교류에 좌우될 것이다.

 

우리의 사회적 환경은 독일의 사회학자 칼 만하임Karl Mannheim이 ‘세계관Weltanschauung’이 라 부른, 선호도와 믿음 체계를 이루는 기본적인 마음의 틀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우리가 세계관이 크게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에 따르면 사람은 대부분 “본능적으로 인생관이 비슷하고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당신은 양봉업자나 주술을 이용한 치료사 등 과 교류한 적이 있는가?

비슷한 사람들과의 교류는 결과적으로 기존의 우선순위와 가치관을 흔들어놓는 게 아니라 더욱 강화한다.

 

슈타이너 학교(Steiner school) :: 독일의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설립한 학교. 주입식 교육이 아닌 영혼과 정신, 육체를 조화롭게 성장시키기 위해 육체 활동과 예술 교육을 강조한다.

 

내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세계관은 꿈을 펼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마음의 장애물이다. 대학 졸업을 앞둔 내가 떠올릴 수 있었던 직업 선택지라고는 투자은행에 취직하거나 공무원이나 저널리스트가 되는 것뿐이었다. 상상력의 범위가 왜 그렇게 좁았던 것일까? 왜냐하면 당시 내 주위에 있던 대학 동기들이 염두에 두었던 직업이 하나 같이 그런 종류였기 때문이다. 거의 모두가 그런 것처럼 나 역시 대중을 따랐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정말로 변호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다면 변호사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줄이는 편이 현명하다. 그들이 아무리 좋은 친구들이라도 말이다. 그 시간만큼 당신이 새롭게 가고자 가는 길로 이미 진로를 바꾼 사람들과 대화해보면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베르베르족 :: 아프리카 북부 지중해 연안이나 사하라 사막에 아랍인 ·베두인족과 더불어 분포되어 있는 함어계(語系)의 인종.
세분하면 30여개의 종족군으로 나뉘며, 인구는 약 1,000만이다. 그들의 언어는 J.H.그린버그의 분류에 따르면 아프로아시아 어족(語族) 중의 베르베르어인데, 전에는 서(西)함어족에 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베르베르라는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바르바로이라고 하지만 스스로는 이마지겐이라고 일컬었는데, 고귀한 종족의 출신자라는 뜻이라 한다. 인종적으로는 코카소이드에 속하는데 베르베르-유로아프리카 인종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흑·백  양인종의 접촉지역에 살기 때문에 양쪽의 특징이 혼합되어 있다. 또한 베르베르족과 아랍 베두인족과도 인종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인종학적인 통일체는 아니다.
12세기 이래 페니키아인이나 로마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특히 카르타고와 로마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농경민족으로서 발달하여, 일찍이 베르베르족은 농경, 아랍인은 유목이라고 하는 식으로 구별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각기 지리적 환경에 적응한 다양한 생활양식을 지니고 있어서 일괄해서 규정할 수는 없다. 종교적으로는 아랍 베두인족을 매개로 하여 11세기에 북서 아프리카에 이슬람교가 침투하여 사하라 전역에 미쳤기 때문에 베르베르족도 일찍부터 이슬람교화되었다. 그러나 사하라 동·남부에서 흑인계 수단 문화와의 접촉도 옛날부터 있었으므로 사하라 본래의 전통적 신앙의례(信仰儀禮)를 지니고 있다고 하는 그들의 문화에는 흑인 아프리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인종·언어·종교·문화가 베르베르·아랍·흑인 3자에 의하여 복합 및 교차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것들이 사회계층에도 반영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베르베르족 중의 웅족(雄族)인 투아레그족은 베르베르어를 사용하며 ‘베일을 쓰는 민족’으로서 베르베르문화와 순혈(純血)을 자랑하는 지배층과, 그들에게 예속된 하층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배층에는 귀족과 평민의 구별이 있는데 평민은 인종적으로 흑인과의 혼혈이 비교적 뚜렷하지만 귀족층보다는 덜 이슬람화되어 있다.
11세기에는 아프리카·이베리아 지역에 무라비트왕국을, 12세기에는 무와히드왕국을 건설하였으나 모두 아랍의 지배층과 세력을 다투면서 건설한 것이었으므로 영속성이 없었다. 귀족은 전사(戰士)로서 평민을 외적으로부터 수호하여 주는 동시에 유목 캠프의 지도자이기도 하였다. 평민은 특정한 귀족에의 공납(貢納)으로 귀족과 경제상의 공존관계(共存關係)를 유지하였으며 흑인은 노예로서 부유한 지배층의 경작지의 일부를 소작(小作)하는 외에 천민 카스트로서 대장질이나 피혁가공의 일에 종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르베르족 [Berber]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이제 책을 내려놓고 행동을 취할 때가 오고 있다. 지금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생각해두었던 잠재적 자아 세 가지를 떠올려보자. 그것을 시험해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본다.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고민’하는 방법이다.

지금부터 30분 동안 생각해보고 시작하라. 관심 있는 단체에 전화를 걸어 자원봉사자를 구하는지 문의하는 것은 어떤가? 사업 아이디어가 있다면 인터넷 도메인을 등록하는 것도 좋다. 들을 만한 강의가 있는지 알아보고, 여러 분야에 도전해서 성취한 친구에게 연락해 조언을 듣는 것도 훌륭하다.

비록 작은 발걸음이지만 행동으로 변화를 추구한다는 생각에 활력이 솟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도만으로도 새로운 미래를 여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시간이 없다고? 너무 피곤하다고? 아무도 대화에 응해주지 않을까봐 걱정된다고? 괴테의 말을 기억하라. 괴테는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고민하는 지혜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저하면 미루게 되고 지난날을 애통해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게 된다.

당신이 진심이라면 바로 이 순간을 잡아라. 당신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꿈꾸든 지금 시작하라.

대담함은 그 속에 천재성과 힘, 마법을 지니고 있다.

 

가지치기 프로젝트 등의 실험을 통해 잠깐이나마 경험해 본 직업 세계에 대해 스스로에게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당신이 경험해본 직업은 애초의 기대와 어떻게 달랐는가?’

‘당신이 사람들과 가장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눈 직업은 무엇인가?’

‘당신이 원하는 가장 큰 의미를줄수있는 직업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시도해본 새로운 직업에 대해 ‘의미‘외에 다음의 질문도 떠올려봐야 한다.

‘가장 몰입이 잘된 일은 무엇인가?’

‘몰입’은 우리에게‘의미’가 미처 채워주지 못한 일상의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몰입은 과연 직업 선택에 어떤 도움이 될까?

몰입flow 개념은 1970년대, 헝가리 출신의 미국 심리학자 미하이칙센트미하이가 처음 소개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 미국의 심리학자로서 '긍정심리학'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자이다. 창의성과 관련된 몰입(Flow)의 개념은 많은 분야에서 인용되고 있다.
1934년 이탈리아 에이드리에틱의 피우메(Fiume)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이탈리아 주재 헝가리 영사였다. 로마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가족끼리 운영하는 음식점 일을 돕는 한편 졸업 이후에는 사진사, 여행가이드 일을 하기도 하였다. 1958년 시카고 대학에서 행동주의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시카고대학교에서 40년 넘게 심리학, 교육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이후 캘리포니아 클레어몬트 대학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삶의 질 연구소' 소장으로 긍정심리학을 연구하였다.
'긍정의 심리학' 분야의 선구적 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의 이론들은 경영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며 또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1996년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칙센트미하이 교수를 가장 좋아하는 저술가로 꼽기도 하였다.
창조성과 행복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연구했던 그는 창조적인 사람의 요건 3가지를 전문지식, 창의적 사고, 몰입(Flow)이라고 제시하였다. 창조적 발견은 갑자기 우연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이해와 숙달을 통한 전문지식이 기초가 될 때만이 가능하며 또한 몰입에 의해서 창조의 과정이 완성된다고 보았다. 창의적인 순간에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인간의 속성과 더불어 제한된 자아감을 극복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우월하게 느끼고 행복을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의 저서에는 《창의성의 즐거움 Greativity》(1958), 《몰입의 기술 Beyond Boredom and Anxiety》(1975), 《자아의 진화 The Evolving Self 몰입의 재발견》(1993), 《몰입의 즐거움 Finding Flow》(1997)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칙센트미하이의 말대로‘다른 것은 전혀 염두에 없을 정도로 그 일에 열중한 상태’다.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우리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거나 내재적 동기를 제공하는 일에 즐겁게 몰입한다. 생계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는 일인 까닭이다. 일반적으로 몰입을 경험할 때는, 마치 불교의 명상을 수행하는 것처럼 현재에 완전히 집중하며 과거와 미래는 희미하게 멀어진다. 칙센트미하이는 외과의들을 대상으로 한 유명한 연구에서 수술을 집도할 때 외과의의 80%가 시간 감각을 잃거나 평소보다 시간이 훨씬 빨리 흘러가는 느낌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에 완전히 집중했다는 증거다.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몰입의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외과의 같은 ‘고급’직종뿐 아니라 푸주한이나 용접공, 농장 노동자 같은 직업군에서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몰입할 수 있는 행동은 어떤 유형인가? 대개는 자신이 가진 기술을 활용해서 결코 만만치 않지만 실패가 두려울 만큼 어렵지는 않은 일을 할 때다.

 

직업을 선택할 때 몰입의 개념을 두 가지 면에서 활용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대화를 통해서다. 흥미로운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할 때 “박제사는 직업으로 하기에 어떤가요?”같은 애매모호한 질문 말고 일에 몰입하는 느낌을 얼마나 자주 느끼는지, 정확히 무엇을 할 때 몰입하게 되는지 물어보라.

두 번째는 ‘몰입 다이어리’로 일상생활에서 몰입의 경험을 찾는 것이다. 한 달 동안 몰입을 경험했던 활동을 다이어리에 메모한다. 직장에서 까다로운 보고서를 쓸 때라든가 일요일에 10명이 넘는 사람들을 초대해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것 등 무엇이든 좋다. 몰입 다이어리의 내용이 성취감 있는 직업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Chap 5. 당신의 일은 속박인가, 자유인가?

경제학자 E. F. 슈마허E. F. Schmacher는 저서《굿 워크》에서 서구사회에 널리 퍼진‘자유에의 갈망’을 시적으로 묘사한다.

나는 끝없는 경쟁에 내 삶을 바치고 싶지 않다.

나는 기계와 관료제의 노예가 되어 권태롭고 추악하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바보나 로봇, 통근자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군가의 일부분으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좀 더 소박하게 살고 싶다.

나는 가면이 아닌 진짜 인간을 상대하고 싶다.

내겐 사람, 자연, 아름답고 전일적인 세상이 중요하다.

나는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가 풀어가야 할 딜레마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안정적인 월급쟁이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가, 스스로 일을 만드는 자영업을 할 것인가?

둘째, ‘직업적 성취’나 근면한 노동윤리를 내팽개치고 적당히 게으르게 살며‘삶의 성취감’을 추구할 것인가?

셋째, 일에서 성공하고 싶은 야망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바람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둘 다 손에 넣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머릿속만 복잡해질 뿐 아니라 여가시간이 사라져 심리적으로 엄청난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한다.

 

“순간의 안전을 얻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자는 자유도 안전도 누릴 자격이 없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인간은 탯줄이 잘리는 순간부터 혼자라는 외로움 속으로 던져지고 정서적, 물질적 안전을 찾으려고 한다.

 

그가 집에 돌아와 즐거운 마음으로 정원에서 땅을 일구는 이유는 그 곳에서는 공장 주임이나 매니저, 상사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매일 똑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단조로움과 속박에서 자유로우며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일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언제 어떻게 일할지 결정할 자유가 있다.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책임진다.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기 때문에 일한다.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자신의 보스’가 되고 싶어 한다. 세상에는 자기만의 작은 땅이나 가게, 사업을 남몰래 꿈꾸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성공 가능성이 낮고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낙관적이지도 않은데도 그들은 꿈을 접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자율성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과 북미 지역에는 자영업자가 전체 노동인구의 20%에 이른다. 영국의 노동재단The Work Foundation에 따르면 “자영업 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준다. 직업에‘매우 만족’하는 직장인은 17%에 불과하지만, 자영업자는 47%에 이른다.”

 

“자영업은 멋지지만 동시에 끔찍해요. 휴가는커녕 아파도 쉬지 못하고, 안정성도 보장되지 않으니까요. 자기계발도 자기 돈 들여서 하지 않는 한 기회가 없죠. 잘한다고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기를 하나, 열심히 일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나. 조금이라도 부주의했다가는 새벽이나 한밤중, 심지어 주말까지 일해야 하죠. 문제가 터져도 탓할 사람도 없고 의논할 사람도 없고.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아요. 스스로 일정을 관리할 수 있고 원하는 사람들과 돈독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어서 좋아요. 혼자 힘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고요. 수강생들이 긍정적인 힘을 얻었다고 고마워할 때는 작게나마 변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뿌듯해져요.

안정적이지 않다고요? 물론 그렇죠. 하지만 처음부터 각오한 일인 걸요. 대기업에서 일할 때처럼 안정감이 없어졌다고 속상해하지 말고 그런 안정감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돼요. 사실 직장인들도 하루아침에 해고되거나 병에 걸릴 수 있잖아요. 인생은 아무리 짧은 순간에도 우리 마음대로 흘러가리라는 보장이 없 으니까요.”

 

우리에게는 인간이 경험한 이래 최초로 인생을 일에 맞추는 대신, 인생에 맞춘 일을 창출할 기회가 생겼다. (…) 이 기회를 놓친다면 미 치고 말 것이다.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안전과 순응, 보신주의에 길들어서 상황을 바꿔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안정된 미래는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모험정신에 가장 해로운 것이다. 인간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자유가 반드시‘직업을 통해’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오히려 ‘직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닐까? 지긋지긋한 지금의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인가?

 

IT 애널리스트 제임스 램James Lam은 이렇게 단정했다. “모든 노동은 자발적인 노예화 형태를 띤다.”

 

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힘들게 하면서 사는 것일까?

첫째, 먹고살기 위해 당연히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현대 노동에 나타나는 파우스트적 거래다.

둘째, 사회학자들은 17세기 유럽에서 등장한 이데올로기, 즉 열심히 일하면 신에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개신교의 노동윤리가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낀다.

셋째, 오늘날 소리 소문 없이 유행하는‘일중독’때문일 수도 있다. 영국인 중 100만 명 이상이 초과 근무를 자청하는 워커홀릭이다. 일본에서는 남성 사망자 중 과로사karoshi의 비율이 10%나 된다. 생각 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일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것도 아니면서 사서 고생을 하다니? 일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일을 완벽하게 마쳤다는 만족감이나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날 자르진 않겠지’하는 안심 등 긍정적인 점에 이끌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나중에는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일에 집착하게 된다.

 

우리 스스로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노동윤리에 지나치게 결박돼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한다. 많은 일을 한다고 반드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직업적 성취감’이 아니라 ‘삶의 성취감’아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면 중요도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직업적 성취’를 찾는 게 아니라 ‘삶의 성취감’을 만끽하게 해주는 일을 찾는 것이다.

 

《월든》에서 그는 “인간의 부유함은 그가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둘 수 있는 것들의 수에 비례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월스트리트에서 일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봤다. 모두들 아침에 출근할 때 보다 더 죽을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들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여전히 20% 줄어든 수입으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인생의 오묘한 신비를 떠올려보라. 수입이 늘어나도 수중에 남는 돈은 늘어나지 않는 수수께끼를. 어지간히 재정관리를 잘하지 않는 한, 돈은 늘어나는 만큼 많이 쓰게 돼 있다. 그 반대로 일을 줄여서, 또는 마음이 원하는 일을 하느라 수입이 줄어들면 새로운 경제사정에 맞춰 먹을거리나 옷, 여흥에 들어가는 돈도 줄어들고 그럭저럭 적응하면서 살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아니, 실제로는 가장 값비싼 소모품인 ‘시간’이 충분해지므로 돈 많던 시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낭비하지 않으면 부족함도 없다’

 

‘예술은 불필요함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피카소Pablo Picasso의 철학을 받아들여야 한다.

 

버트런드 러셀 :: 영국의 논리학자·철학자·수학자·사회사상가. 논리학자로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의 전사(前史)를 집대성했으며, 철학자로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고 유연한 입장 변화를 보였다.
잉글랜드 만머스셔에서 태어났다. 명문 귀족의 아들로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한때 동대학 강사로 근무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중의 반전운동(反戰運動)이 화근이 되어 대학에서 쫓겨났고, 1918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유럽 각국과 러시아·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대학 강의를 맡으며 저술활동에 주력했다. 여러 가지 사회운동을 한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19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논리학자로서 고틀롭 프레게(Gottlob Frege)의 업적을 계승했고 주세페 페아노(Giuseppe Peano) 등의 영향을 받았다. 리하르트 데데킨트(Richard Dedekind),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 등이 남긴 현대수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삼아 19세기 전반에서 비롯된 기호논리학의 전사를 집대성했고, 앨프리드 화이트헤드(Alfred Whitehead)와 함께 《수학원리》(3권, 1910∼1913)를 저술했다. 논리의 개념이나 연산을 이용해 전체 수학을 도출했고, 수학적 대상을 실재로 간주하는 논리주의를 구상했으며, 이를 실수(實數) 도출에도 적용했다. 이외에 집합론 역리(逆理)의 발견, 그것의 해결을 꾀하는 계형이론(階型理論), 환원의 공리(公理), 기술이론(記述理論) 등 다양한 창의에 따른 성과를 남겼다. 이러한 여러 이론이나 논리주의 구상은 이후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을 비롯한 여러 학자가 부정하거나 수정했지만, 이 분야에 남긴 그의 업적과 의의는 지금도 유효하다.
철학자로서 버트런드 러셀의 성과는 이론철학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조지 에드워드 무어(George Edward Moore),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등과 함께 케임브리지학파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19세기 말부터 영국에서도 유력한 학설이었던 관념론에 대해 실재론을 주장했다. 다만 시대에 따라 다른 입장을 보였는데, 한동안 영국 헤겔학파의 영향 하에 놓이거나 마이농류(流)인 개념실재론(槪念實在論)의 경향도 보인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인식론 ·존재론의 일반적인 경향은 한편으로는 자기의 논리를 소재(素材) 방법으로 삼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 고유의 경험론의 전통을 근거로 삼았다. 또한 '논리적 원자론'이라는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실재의 이론적 단위를 설정하여, 그것으로 환원하거나 그것을 분석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그의 사상은 빈학파나 훗날 영국 철학이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윤리학자로서 처음에 그는 조지 에드워드 무어와 비슷한 입장을 취했으나, 후에 논리실증주의자의 정서설(情緖說)에 가깝게 입장을 바꿨다. 또한 사회사상가로서 케임브리지대학교 졸업 직후 독일 사회주의자들과 조우하며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를 방문해 혁명지도자와 혁명 후의 실정을 접하고는 오히려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그의 경향은 서구적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민주주의로써 정치이론도 과학이론과 같이 이데올로기나 광신적 독단에서 해방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한편 실천가로서 1907년 하원의원으로 입후보했지만 낙선했고, 1920년대 일반대중을 위한 다수의 책을 저술하였으며, BBC 방송 출연 등으로 유명해졌으나 크게 환영받지는 못했다. 1960년 ‘100인 위원회’를 구성해 핵무장 반대 연좌농성을 이끌어 네번째 부인과 함께 금고형을 받기도 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철학자로서 긴 경력을 쌓으면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고, 유연한 입장 변화를 보였다. 기호논리학의 수법으로 철학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그의 시도와 성과는 20세기 철학에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대표 저서로는 상기한 것 외에도 《외계의 지식》(1914) 《수리철학 서설》(1919) 《정신의 분석》(1921) 《물질의 분석》(1927) 《의미와 진실의 탐구》(1940) 《서양 철학사》(1945) 《자서전》(3권, 1969)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불안정한 꿈보다는 불만족한 현실이 익숙하니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 에리카 종Erica Jong은 “해방된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녹초가 될 자격을 획득했다.”고 선언 했겠는가.

 

여성이 일과 육아를 둘 다 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남편이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녀 모두 일에서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동등한 사회에 살고 싶다면 구태의 문화적 관습에 맞서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딜레마에 남녀가 함께 맞섬으로써 현명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아이가 생겨도 남성은 예전과 똑같이 일할 수 있다는 ‘당연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당연히 여성이 일을 그만두고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여성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도우면서‘두 사람 모두’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멀리 내다보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날 필요가 있다. 인생은 여러 단계로 이루어지고 각 단계마다 당신의 다른 모습이 표현된다고 생각해보자.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가 말한‘일곱 나이Seven Ages of Man’처럼 말이다. 일에 모든 것을 바쳐 집중하는 단계가 있고, 그다음에는 육아에 헌신하는 단계를 거치며, 또다시 일로 돌아가는 단계가 찾아온다고 생각하면 어떤가. 다시 말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목표를 좀 더 긴 시간에 걸쳐 추구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삶을 떠받쳐줄 수 있을 때 ‘직업’이 되는 것 같습니다.

 

 

 

Chap 6. 마치며 : 찾는 게 아니라 키워가는 것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말이다.

 

천직은 ‘찾는’것이 아니라 ‘키워나가는’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천직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는 거대한‘운명’처럼.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처럼 낭만적인 접근법보다는 역사적 기원의 차원에서 정의해 보겠다.

천직은 성취감(의미, 몰입, 자유)을 주는 직업일 뿐 아니라, 매일 아침 일어나야 할 이유가 되는 명확한 목표나 목적이 들어 있는 직업이다.

 

수천 년 동안 서구사상이 발견한 가장 중요한 진리를 한 가지 꼽자면, 분명한 목표나 목적이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정답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것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명백하게 인식한 최초의 사상가였다. “누구나 좋은 인생을 위해 추구해야 할 목표가 있어야 한다. (…) 그 목표는 앞으로의 모든 행동에 관련된다. 목적 하에 조직되지 않은 삶은 그 자체가 엄청난 어리석음의 증거다.”

의미 있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16세기 들어 개신교의 ‘소명calling’이라는 개념으로 재등장했다. 누구나 신에 의해 미리 정해진 길 또는‘부름’을 따라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칼뱅 Jean Calvin은 주어진 소명에 최선을 다하면 우리가 종종 느끼는 ‘큰 불안감’이 치유되고 인생이 뒤죽박죽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 역시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그 어떤 것도 견딜 수 있다.”는 말로 인생의 지침이 되어 주는 미션의 의미를 강조했다.

 

1940년대 오스트리아의 심리치료사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고통이 적은 상태가 아니라 자신에게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1934년에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 마리 퀴리는 자신의 노동 철학을 이렇게 요약했다. “누구한테나 인생은 쉽지 않은 법이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끈기와,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어떤 일엔가 재능이 있다고 믿어야 하며, 어떤 희생을 치르든 그것을 달성해야만 한다.”

 

‘천직은 찾는 것이 아니라 키워나가는 것’

 

흔히 사람들은 천직이 순간적인 깨달음으로 찾게 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한다. 자리에 누워 있다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 퍼뜩 알게 된다고 말이다.

 

신탁神託을 받는 것과도 비슷한 이런 발상은 그럴듯하고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에게서 책임감을 앗아갈 뿐이다. 무언가 또는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삶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 퀴리는 기적 같은 통찰의 순간을 거쳐서 방사능 물질 연구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지 않았다. 그 목표는 쉬지 않고 과학 연구를 하는 동안 서서히 그녀의 삶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라듐을 발견한 후 의심 많은 학계에 그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몇 년간의 후속 연구를 거쳤다.91 하늘에서 큰 소리로 천직이라고 알려준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조금씩 목표에 열중해갔다.

대부분 천직은 이렇게 나타난다. 간혹 폭발적인 깨달음의 순간으로 천직을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확고해진다.

 

의미와 몰입, 자유라는 세 가지 요소가 충족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에 헌신하면 된다.

 

몇 차례 상담을 하고 나서 상담사가 그러더군요. ‘직장을 그만두지 않으면 평생 이런 절망 상태에서 살아야 한다는 걸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일단 그만두면 조금씩 안개가 걷힐 겁니다. 그러니 날짜를 정합시다.’그러면서 6월 1일에 직장을 그만두자고 그러더라고요. 그 때가 5월 중순이었는데 말이죠! 제가 너무 이르다고 하니까 상담사가 그랬어요.‘안 그러면 절대 실행에 옮기지 못할걸요.’맞아요, 그 때까지도 전 진짜로 그만둘 생각은 없었어요. 어쨌든 정한 날짜대로 6월 1일에 직장을 그만뒀어요. 회사 다니기 싫다고요? 그럼 그냥 그만둬야 하는 거죠.”

 

불편한 진실이지만 언젠가는 생각을 멈추고 행동에 옮겨야 할 때가 온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삶의 지혜다. 이 삶의 기술은 인생에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몇 세기 넘게 여러 형태로 변주돼 표현되어왔다.

 

작가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의 소설《미들마치》에 나오는 대목에서도 이러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나는 해변을 따라 기어가느니 별을 지표 삼아 바다 한가운데로 노를 저어가겠다.”

 

소로의 말마따나 “삶의 모든 원기를 흡수하는 것”이다. 위기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더욱 심오하고 활기 넘치는 존재가 될 수 없다.

다만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최종 결단을 내리기 어렵다면, 충격을 완화해줄 대비책을 몇 가지 마련해두자. 몇 달 동안 저축을 해서 여유자금을 만들면 새로운 일이 실패로 돌아가 생활이 궁핍해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줄어든다.

 

삶을 사랑하는 주인공 조르바는 억눌린 성격의 영국계 청년 바실과 해변에 앉아 있다. 바실은 조그만 사업을 해보려고 그리스의 섬으로 왔다. 조르바는 바실을 위해 산에서 목재를 운반하는 수송장치를 만들지만 처음 가동하자마자 고장 나버린다. 두 사람의 사업계획이 시작도 해보기 전에 완전히 망가진 것이다. 상심에 빠져 허탈해하는 바실에게 조르바가 말한다.

“빌어먹을, 대장. 난 당신을 좋아하니까 꼭 말해야겠어요. 당신은 한 가지만 빼고는 다 갖췄어요. 광기! 사람이라면 약간의 광기가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그다음 이어지는 말에서 조르바의 인생관이 드러난다.

“…감히 자신을 묶은 밧줄을 잘라내 자유로워질 엄두조차 내지 못 하죠.”

바실은 자리에서 일어나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조르바에게 춤을 가르쳐달라고 한다. 열정적으로 인생을 살고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현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인생에 몹쓸 죄악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을.

조르바의 말은 좋은 삶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메시지다. 우리는 대부분 억압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살아간다. 밧줄을 잘라 자유로워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실험정신을 발휘해 내면에 자리한 광기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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