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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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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의 시간
『축적의 시간』은 서울공대 26명의 석학들이 던지는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을 담은 책이다. 각 분야 전문가들과 집중 인터뷰를 통해 오늘날 한국의 산업 전체가 당면하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의 원인을 균형있게 파악하고, 처방 또한 특정한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키워드를 제시한다. 이 책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현상은 창의적이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 즉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이는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를 전제로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축적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창조적 역량이다. 이에 ‘축적’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제시하고, 이러한 공통 키워드 추출의 결과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얻을 수 있는 유용한 통찰을 정리하였다. 또한 유사한 산업 분야별로 개별 인터뷰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저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출판
지식노마드
출판일
2015.09.25

 

발간에 부쳐

문제를 풀기 위한 첫걸음은 그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입니다.

 

 

 

들어가는 말 - 멘토들에게 길을 묻다

1983년 2월 8일 한국의 삼성전자가 반도체 D램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하자, 일본의 미쓰비시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조롱 섞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일본이 세계 반도체시장을 미국과 양분하던 시기를 거쳐, 1991년 일본 반도체회사들이 세계 1~3위를 휩쓸기까지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가질 수 있던 자신감의 발로였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3년 5월, 미국의 데이터퀘스트 사는 통쾌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992년 반도체시장 분석 결과 D램 분야에서 삼성이 일본 도시바를 제치고 세계 1위 메이커로 올라섰다.’

 

위기를 경고하기는 쉽다. 그러나 위기의 심층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안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산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많은 전문가가 공통으로 지적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창의적이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 즉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청사진을 제시하는 이 개념설계 역량이야말로 고부가가치 영역이면서, 산업의 패러다임을 설정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발돋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역량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이런 개념설계 역량은 논문이나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는, 경험을 통해 축적된 무형의 지식과 노하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데 있다. 즉, 우리 스스로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를 전제로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축적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창조적 역량이다. 이런 축적된 경험지식이야말로 선진국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경쟁력의 결정체이자 가장 철저하게 보호하는 대상이며, 이에 바탕을 둔 개념설계 역량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국가 간 산업경쟁력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 산업이 압축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경험을 축적하기보다는 선진국으로부터 개념을 받아 온 후 실행하는 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왔고, 그 모델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지금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고 우리 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해법은 긴 호흡으로 경험을 쌓아가기 위한 축적의 시간을 어떻게 벌 것인가에 달려 있다.

 

 

 

PART 1. ‘창조적 축적’, 한국 산업의 미래를 여는 키워드

0. 창조적 축적 지향의 패러다임으로 바꾸어야 한다 - 이정동(산업공학과 / 기술경영 · 정책)

2014년 현재 GDP 규모로 세계 14위, 무역 규모는 1조 달러를 넘어 수출 7위, 수입 9위의 교역국이 되는 등 불과 50년 만에 명실상부하게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나라 중 하나로 올라섰다. 세계은행의 통계에 의하면 1960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107달러였다(2005년 달러 가치 기준). 당시 아르헨티나는 3,732달러, 멕시코는 3,299달러, 터키가 2,345달러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이 2014년 기준 2만 4,565달러로 22배 성장하는 동안, 아르헨티나는 2.1배, 멕시코는 2.6배, 터키는 3.7배 성장하는 데 그쳤다.

 

과거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가로 성장할 것으로 평가받던 국가들이 있었지만, 2014년 현재 필리핀이 1,649달러, 인도네시아가 1,866달러, 말레이시아가 7,304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시적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익성이 지속해서 악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통계에 의하면, 장기적인 추세로 볼 때 1960년대에 10%를 넘던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1970년대 8%대, 1980~90년대 7%대로 하락하였다가, 2000년대 들어 6%대, 그리고 최근 들어 5% 이하를 거쳐 거의 수익을 내지 못하는 수준으로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거시적으로 잠재성장률potential economic growth이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해야 할 현상이다. 잠재성장률은 한 국가 안에 존재하는 모든 자원을 최대로 활용하였을 때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달성 가능한 국내총생산의 최대 증가율을 의미하는 지표로서, 외부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겉보기 경제성장률과 달리 한 국가 경제의 잠재적 성장 역량을 대표한다. 그런데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전문연구기관들의 분석에 의하면 대체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9%를 웃돌았으나, 1990년대 6%대로 하락한 이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4%대 초반에 머무르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다시 3%대로 하락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심지어 2020년대에는 1~2%대까지 잠재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라는 국제기구들의 전망도 나오고 있는데, 이는 경제성장이 사실상 멈출 수도 있다는 걱정스러운 예측이다.

 

잠재성장률 :: 한나라의 경제가 보유하고 있는 자본, 노동력, 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사용해서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이룰 수 있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말한다.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최고의 노력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성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경제 성장이 얼마나 가능하느냐를 가늠하는 성장 잠재력 지표로도 활용된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통상 5∼10년간 성장률을 감안해 산출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5%라면 물가상승 없이는 5%를 초과해 성장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한편, 잠재성장률과 달리 실질성장률은 한 나라의 경제가 실제로 생산한 모든 최종생산물의 시장가치를 말한다. 폭발적인 호황으로 생산 요소가 정상 수준 이상으로 사용되면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웃돌 수 있다. 반면 불황기에는 높은 실업률, 낮은 가동률 등에 의해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돌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잠재성장률 [potential growth rate] (한경 경제용어사전)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1970년 4.53명에 이르던 합계출산율이 1980년 2.82명으로 떨어졌고, 2005년에는 기록적으로 1.08까지 떨어진 후 2014년 말 현재 1.21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감소세는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 그 결과 2015년 현재 5,100만 명에 이르는 인구가 203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만일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2040년에는 생산가능인구가 현재의 80% 수준으로 줄고 2060년에는 현재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우선 생산 측면에서 노동투입이 줄어들어 생산잠재력이 위축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내수기반이 축소되어 경제의 규모 자체가 축소되는 훨씬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총고정투자율은 1990년대 중반 43%대로 양호한 수준을 보이다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30%대로 갑자기 하락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이후로도 하락추세를 지속하여 2011년에 30% 이하로 떨어진 이후 2014년 말 현재에도 30%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하는 말이다.

 

오프쇼오링 :: 오프쇼어링은 기업들이 서비스 분야의 업무 일부를 인건비가 싼 해외로 이전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2001년 이후 미국의 제조업체들이 생산, 용역 등을 인건비가 싼 중국과 인도로 이전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오프쇼어링은 아웃소싱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생산설비 등과 같은 국한된 제조 영역에서의 이전을 뜻하는 아웃소싱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다.오프쇼어링은 첨단 정보통신기술(IT)의 발달과 선진국ㆍ개발도상국 간의 임금격차로 인해 발생한다. 여기에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아웃소싱 분야 중 콜센터, 데이터 분석, IT 서비스 기능과 관련한 엔지니어링, 제품 연구 및 신제품 디자인 등의 업무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미국 기업들의 오프쇼어링이 증가하고 있는데, 정보통신 숙련 노동력이 풍부하게 존재하며 영어 구사능력을 갖추고 임금이 낮은 인도에 IT 관련 서비스를 발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하지만 오프쇼어링은 국내 자본과 설비가 해외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주로 대체 가능한 저학력·미숙련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프쇼어링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독일 역시 최근 미국과 유사하게 제조업에 정보통신기술의 혁신을 결합해서 산업경쟁력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는 국가적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핵심과제들을 정비하고 있다. 미국과 비교할 때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의 결합이라는 겉으로 드러난 정책 방향은 비슷하지만, 그 추진배경은 사뭇 다르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제조업에서 축적된 노하우에 기반을 둔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혁신, 특히 독일이 취약한 정보통신 분야의 최신 기술혁신 결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산업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지향을 가지고 있다. 정보통신 분야의 혁신은 강하지만 제조업이 약한 미국과 반대되는 상황에서 전략이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제조업과 당대의 기반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인 정보통신기술을 결합하고자 하는 비슷한 지향을 가지고 있으며, 다만 각자의 장점으로 약점을 보완하는 전략을 쓴다는 측면에서 접근 방법이 다를 뿐이다.

일본은 전통적인 산업 강국으로서 특히 전 세계에 고부가가치의 부품소재를 공급하는 기지로서 그 역량을 과시해왔다. 이런 지식집약적인 부품소재 영역에서는 수십 년의 축적된 노하우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경제는 경기순환적으로 다소 부침이 있을 수 있으나 무시할 수 없는 근본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장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10여 년 전부터 일본의 제조 역량이 약해졌다는 문제의식 하에 제조를 중시하는 ‘모노즈쿠리物作り’ 운동을 국가적으로 펼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전통적인 모노즈쿠리 정신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장기간 심화되어온 고령화 현상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특히 고급 인력의 공백에 대비해서 인력 양성과 노하우의 전승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생산’ 중심의 제조업에서 ‘생산과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커버할 수 있는 융합적 제조업으로 진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비용 문제로 해외로 진출한 일본의 제조기업들을 다시 불러들이겠다는 로드맵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전략적 신흥산업 발전계획’을 통해 내수시장이 가진 규모의 경제를 충분히 활용하여 차세대 산업 영역에서 선두주자로 나서겠다는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중국의 이러한 전략은 과거 산업발전기 우리나라의 선별적 산업육성 전략을 떠올리게 한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가 수출시장을 발판으로 삼았다면, 중국은 수출뿐 아니라 거대한 내수시장을 지렛대로 삼아 첨단기술과 노하우를 확보해나가겠다는 전략을 쓰고 있는 점이다.

 

2035년까지 자국의 제조업을 미국, 독일, 일본의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2049년에는 세계 제1의 제조업 국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결국, 저임금에 의존한 단순 제조가 아니라 혁신을 주도하는 산업구조로 업그레이드해나가겠다는 지향이다.

 

주변국의 정책을 살펴보면 일정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우선 모든 나라가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제조업이 주목받는 것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를 다수 만들어내는 원천이면서, 서비스산업을 포함한 전후방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는 국가 경제의 중추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조업은 경기 변동이나 외부적 환경 변화에 서비스업보다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경제기반을 구축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에서 유일하게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독일이 제조업 강국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물론 산업선진국에서 강조하는 제조업은 단순한 가공산업이 아니라 최첨단의 혁신적 지식이 집약된 고부가가치 제조업이다. 따라서 특히 정보통신기술 혁명이나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등의 혁신적 지식을 제조업과 어떻게 결합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조업으로 변화시킬 것인가가 논의의 초점이 된다.

 

산업선진국들이 취하고 있는 전략의 또 다른 공통 특징은 현재의 산업지형도와 자신이 가진 강·약점을 고려하여 메타 수준의 청사진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점이다. 미국은 전통적인 혁신 역량을 바탕으로 부족한 제조 역량을 끌어올리는 비전을 제시하는 반면, 독일은 그 정반대 방향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은 고령화에 따라 사라질 위기에 놓인 축적된 노하우를 계승ㆍ발전시킨다는 전략을, 중국은 거대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고부가 제조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나라별로 몇 개의 핵심 키워드로 쉽게 축약할 수 있는 산업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고정관념 1] 생산활동은 개도국으로 아웃소싱하고, 우리나라는 고부가가치 지식노동을 해야 한다.

생산활동은 3D산업이기 때문에 아웃소싱하고, 우리나라는 깨끗한 고부가가치의 지식노동을 하도록 국제적으로 분업해야 한다는 일반의 잘못된 시각에 대해 멘토들은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 고정관념과 달리 현실에서는 생산현장이 없이는 질 좋은 고용을 창출할 방법이 없고, 생산을 지원하는 지식기반서비스업의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생산현장이 없으면 고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 되는 고급의 경험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여지도 없다. 불행하게도 지난 10여 년 이상 우리나라에서는 생산공장을 개발도상국으로 내보내고, 국내에서는 지식산업이나 서비스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가 팽배하였는데, 이는 미국을 포함한 산업선진국이 생산현장을 고도화하거나 아웃소싱해오던 기업의 생산활동을 다시 자국 영토 안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 정반대의 길이다.

 

[고정관념 2] 첨단 특허 한 건, 세계적 논문 한 편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

멘토들은 탁월한 특허와 논문이 분명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결정적으로는 이 혁신적 아이디어가 스케일 업scale-­up되어 실용화 단계로 나가지 못하면 무용지물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스케일 업 할 수 있는 역량은 오랜 경험이 축적되어야 비로소 확보할 수 있는 고도의 축적된 경험지식의 영역이라는 데 어려움이 있다. 국내 산업계는, 전례가 없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스케일 업 할 수 있는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므로, 설사 국내에서 세계적 논문이 나온다 하더라도 그 혜택은 다른 나라가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기업들이 시행착오를 각오하면서 스케일 업 할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고정관념 3] 필요한 경험과 지식은 살 수 있다.

멘토들이 가장 우려하는 잘못된 관념의 하나는 경험과 지식은 돈으로 사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우리 산업계도 이미 표준적인 기술에서는 글로벌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창의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고급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지식은 교과서나 매뉴얼, 논문 혹은 특허에 명시적으로 표시된 지식과 달라서 문자나 기타의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사람의 머릿속에, 그리고 일하는 방식, 즉 루틴에 체화되어 있어서 심지어 필요한 경험지식을 가진 기업을 인수·합병을 한다고 하더라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멘토들은 여러 가지 실제 사례를 통해 결국 최고급의 기술 역량을 확보해나가는 과정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며, 중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스스로 시행착오를 축적해나가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정관념 4] 중국은 우리의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멘토들은 한ㆍ중 간의 관계에서 한국이 부품소재를 공급하면 중국이 조립하거나, 혹은 한국의 기업들이 설계도를 보내면 중국이 생산하는 방식의 도식적 관계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여러 가지 실례를 들어 강조한다. 중국은 이미 생산공장이 아니라 혁신공장innovation powerhouse으로 등장하였다. 공학인력 배출 수, 논문 및 특허의 양과 질, 그리고 생산현장에서 제시되는 창의적 아이디어의 사례 등을 고려할 때, 혁신의 관점에서 중국은 이미 대부분의 산업 영역에서 한국을 뛰어넘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부 멘토는 이를 강조하기 위해 어떤 품목의 경우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이미 상식이 되었기 때문에 절대 부끄러워하지 말고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중국에 대해 가져왔던 사고방식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말하는 것이다.

 

[고정관념 5] 한국 대학들의 공학교육이 급속히 발전했다.

국제적 평가지표로 볼 때 한국 대학의 공학교육 순위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멘토들은 공통으로 여전히 학과 간 장벽이 높고, 논문 위주의 평가로 산업계의 현실과 더욱 거리가 멀어지는 방향으로 교육연구체제가 형성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개념설계와 같이 창의적인 역량을 가르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특히 온라인 강의의 확산처럼 새롭게 등장하는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기초적인 학문에 대한 교육이 무시된 채 무분별하게 난무하고 있는, 소위 준비되지 않은 융합교육에 대해서도 경종의 목소리를 던지고 있다.

 

글로벌 수준에 오른 극소수 대기업들 혹은 극소수 대학의 성과가 과대평가되면서 평균적으로 우리 산업계가 질적으로 성장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산업 분야와 상관없이 우리 산업이 처한 공통적인 문제를 가려 뽑고자 할 때 가장 많이 제기된 키워드는 ‘개념설계conceptual design’ 역량의 부재였다. 개념설계 역량은 제품개발이 되었건,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건 산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가 있을 때, 이 문제의 속성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창의적으로 해법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량으로서, 실행 역량이 필요한 단계보다 더 선행 단계에서 요구되는 창조적 역량이다.

 

예를 들어 독특한 해양환경을 극복하고 작동해야 하는 해양플랜트의 개념을 창조적으로 제시하는 역량, 새로운 화학물질을 생산해내는 프로세스를 최초로 설계하는 역량, 사물인터넷IoT이라는 새로운 기술플랫폼에 기반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는 역량, 새롭게 등장하는 산업수요에 맞추어 시스템IC의 개념도를 제안하는 역량 등이 그것이다. 산업의 종류를 막론하고 우리 산업에서는 바로 이처럼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실현할 최초의 설계도를 그려내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 멘토들의 진단이다.

 

창의적 개념설계 역량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현재 우리나라 산업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는 표준화된 생산기술보다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산업의 수익성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은 표준화된 기술 영역에서 중국 등 개도국이 빠르게 추격해오면서 수익이 더 약화하고 있지만, 새로 개척해나가야 할 고부가가치 개념설계 영역에서는 선진기업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지 못한 결과이다.

둘째, 개념설계는 글자 그대로 제품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후속 생산 단계를 포함한 가치사슬 전반에 위치한 기업들의 전략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새롭게 버전을 바꾸어 출시될 때마다 전 세계 모든 전자기업의 전략이 바뀌는 것을 보면 그 파급효과를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개념설계의 역량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산업의 가치를 지배하는 진정한 리더십을 확보할 수가 없다.

 

멘토들은 흥미롭게도 개념설계의 역량이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반드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시행착오를 ‘축적’해야 얻어지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멘토들은 산업현장의 살아 있는 사례를 제시하면서 새롭게 접하는 문제에 대해 창의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해법으로 제시해보고, 실패하고, 또다시 시도하는 시행착오와 실패 경험의 축적 없이는 개념설계 역량을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쉽게 말해서, 창의적 경험지식의 축적된 결과가 성공적인 개념설계로 나타나는 뜻이다. 반대로 표현하자면,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고, 그 원인은 사실 다양한 실패의 경험을 축적해오지 못한 데 있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표준적인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역량과 달리, 창의적 개념설계에 필요한 지식은 교과서나 논문, 특허 등에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지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가장 창의적일 수밖에 없는 개념설계의 역량이 가장 진부하다고 할 수 있는 시행착오의 축적 과정을 통해서만 얻어진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문제 인식의 핵심이다. 이런 점에서 핵심적인 개념설계 역량의 확보 과정을 ‘창조적 축적creative accumulation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창의적 개념설계 역량의 부재는 결과일 따름이고, 진정한 원인은 축적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산업 분야에서 개념설계 역량은 가치사슬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역량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우리 산업이 처한 공통의 문제로서, 처방도 어느 한 산업에만 한정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산업이 같이 움직여야 하는 문제가 된다.

멘토들은 결국 선진기업들이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실패해본 시행착오의 경험을 계속 반복하면서 경험지식을 축적해온 결과 우리 기업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개념설계 역량을 가지게 되었고, 바로 이 점이 산업의 종류에 상관없이 한국 기업들이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의 실체라고 보는 것이다. 한편으로 보면 우리가 이런 창조적 실패의 경험을 축적하지 못한 것은 사실 우리의 성공적인 발전모델이 가져온 불가피한 어두운 그림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50년간 후발 추격 국가로서 선진국에서 이미 검증을 마친 개념설계를 빠르게 확보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고, 생산에 적용하는 데 특화되어왔다. 이와 같은 산업발전모델에서는 개념설계 역량을 확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일단 선진기업들에 의존함으로써 임시 대응하고, 일시적 자원 동원으로 해결 가능한 규모집약적인 영역을 우선시해왔다.

 

축적된 경험지식의 존재 여부는 산업선진국과 산업후진국을 가르는 잣대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속성으로 산업발전을 이루었으나, 결국 진정한 의미의 산업선진국이 되기 위한 축지법은 없었던 셈이다.

 

중국은 ‘시간’적으로는 근대 산업기술의 경험이 길지 않지만, ‘공간’적으로 내수시장이 크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매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비유하자면 산업선진국들이 100년에 걸쳐 경험하게 될 개념설계의 사례들을 10년 만에 10배 많은 수의 사례를 접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의 축적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은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입각해 특정한 기관이나 기업에 경험을 집중시켜 축적하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최근 중국이 해양플랜트, 자동차산업, 가전, 휴대폰 등 거의 전 산업 영역에서 전 세계에서 최초의 모델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 벌써 축적의 시간적 한계를 공간의 힘으로 극복하는 전략의 결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산업 차원의 축적 노력으로는 선진국과 중국의 축적된 경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산업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틀을 바꾸어 국가적으로 축적해가는 체제를 갖추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 전반의 인센티브 체계, 문화를 바꾸어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주체가 축적을 지향하도록 변화해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축적의 범위를 산업의 바깥 경계로 극적으로 넓혀 생각할 때, 비로소 선진국의 시간과 중국의 규모를 극복할 수 있는 우리만의 고유한 축적양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일순간 얼마나 많은 자원을 몰아갈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는 유량flow 중심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축적된 경험에 관심을 두는 저량stock 중심의 사고방식이 자리잡아야 한다.

 

벤처도, 교육도, 연구도 시작부터 글로벌화를 지향해야 한다.

 

중진국을 막 벗어나고 있는 우리 산업계가 안고 있는 최대의 과제는 창의적인 개념설계를 할 수 있는 축적된 경험지식의 영역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이다.

 

 

 

PART 2. 멘토들에게 길을 묻다

1. 선진국의 비밀은 제조업의 경쟁력에 있다 - 김태유(산업공학과 / 기술정책)

과거 1800년대 초에 고전경제학자 세이Jean-Baptiste Say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주장을 했고 그것이 학계의 정설로 인정받아왔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상품의 공급은 많은데 살 사람이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죠. ‘풍요 속의 빈곤’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세이의 법칙은 틀렸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저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시금 세이의 법칙이 들어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즉 혁신적인 신제품이 신수요를 창출하는 것이지, 원래 수요가 있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신제품이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세이의 법칙 ::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활동한 프랑스의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이(1767∼1832)가 주장한 것으로 공급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따른 수요가 있기 마련이라고 하는 이론이다. 가령 애플에서 새롭게 나오는 아이폰 시리즈나 매번 업그레이드돼 출시되는 자동차는 반드시 소비자가 원해서 등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기업가들은 끊임없이 더 좋은 것을 소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 욕망을 부추기는 재화와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는다. 이렇게 부추김을 당한 소비자들은 그 재화가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사게 된다. 현대 문명의 이기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즉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이의 법칙 [Say`s law] (매일경제, 매경닷컴)

 

휴대폰의 경우를 봐도, 사람들이 지금까지 피처폰을 쓰고 있었다면 더 이상 수요가 없어 휴대폰을 만드는 회사들은 대부분 망했을 겁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라는 혁신적인 신상품을 만들어내니까 소비자들이 피처폰을 더 이상 쓰지 않고 새로운 것을 사게 되었죠. 이렇듯 신제품이 신수요를 창출함으로써 그 옛날 세이가 말했던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시대’가 다시 온 것입니다.

 

세이의 법칙이 성립하던 1800년대는 물자가 귀한 시절이어서 먹을 게 없고, 입을 게 없고, 쓸 게 없으니까 공급만 있으면 수요가 무한정 대기하고 있던 시절이었죠. 20세기 들어 대량생산이 발달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지 않는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신기술이 신수요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즉 신상품을 개발하고 만들어내는 제조업이 수요를 창출하고 있는 셈입니다.

 

독일은 경제적으로 유로존에서 가장 빛나는 반면, 그리스는 유로존을 위험에 빠뜨린 암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양국의 산업을 비교해보면 그리스는 서비스업이 강하고, 독일은 제조업이 강하죠.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은 나라 이름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서 일명 ‘피그스’PIIGS라 불리며 사람들의 조롱을 받고 있는데, 이 나라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서비스업이 강한 나라들입니다.

 

그리스는 제조업 비중이 10% 수준에 불과하고, 서비스업이 76% 수준에 이릅니다.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서비스 업종이 대접받고 잘되는 나라는 경제가 나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죠.

 

대조적으로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을 보면 하나같이 제조업 강국입니다. 영국은 지금 금융 쪽으로 너무 치우쳐서 문제가 있지만 미국, 중국, 일본 등 제조업을 잘하는 나라들은 경제가 발전하고 있어요.

 

위그노 :: 프랑스 프로테스탄트 칼뱅파(派)교도에 대한 호칭.
16세기 초부터 프랑스에서 확산된 교회개혁운동은 정부의 탄압으로 많은 망명자를 낳았는데, 1559년 파리에서 열린 프로테스탄트교회회의에서 칼뱅파의 의견을 많이 반영한 신앙고백이 성립되었다. 이후 신자수는 증가하였으나 동시에 가톨릭과의 대립도 격화하여 1562년 바시의 학살이 발단이 되어 위그노전쟁이 일어났다.
1572년 성바르톨로메오의 학살 때는 많은 사망자가 나왔는데, 1598년 위그노의 신앙 자유를 보장하는 이른바 '낭트칙령(勅令)'의 발표로 전쟁이 일단 종결되었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절대군주제를 근간으로 하는 프랑스의 통일을 원하여 1685년 '낭트칙령'을 폐지하였다. 이후 프랑스 국내에서 지하운동을 계속한 신자도 있었으나 국외로 도피한 자도 많았는데, 프랑스혁명 때까지는 그들의 자유를 회복할 수 없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위그노 [Huguenot]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17세기까지만 해도 프랑스가 유럽의 중심 국가로서 국토도 제일 넓고 인구도 제일 많았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종교의 자유를 허락했던 낭트 칙령을 폐기하고 위그노라고 불리던 개신교도들을 전부 해외로 내쫓았어요. 그때 프랑스 상류층은 가톨릭이었고, 소위 사회의 하류층, 상공인들은 전부 개신교도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쫓겨난 개신교도들이 제일 먼저 이주한 나라가 네덜란드였습니다. 국토가 육지로 연결되어 있어 가까웠고, 또 네덜란드가 개신교의 나라였기 때문이죠. 상공인들이 대부분인 위그노들이 네덜란드로 많이 이주하면서 네덜란드의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이 영국 런던을 점령하고 영국 왕 윌리엄 3세William III가 됐어요. 그가 네덜란드의 귀족과 상공인, 경제인들을 영국으로 많이 데리고 갔습니다. 그 후 영국이 발전한 것입니다.

네덜란드와 영국 다음으로 위그노들이 많이 간 나라가 독일이었습니다. 독일의 프레드릭 대왕Fredrick the Great이 포츠담 칙령(1685)을 내려서 프랑스의 위그노 상공인들을 독일로 영입하고 특별 대우를 해주면서 상공업 즉, 제조업을 키웠어요. 결과적으로 상공인들이 이주해 간 나라가 모두 선진 강대국으로 발전했습니다.

 

프레드리히 빌헬름 :: 독일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選帝侯:재위 1640∼1688).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으로 발트 해안의 여러 지방을 획득하고, 교묘한 동맹외교로 폴란드령 프로이센에 대한 종주권을 확립하는 등 독일이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발전의 기반을 이룩하였다. 
대선제후로 불리며, 독일이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발전의 기반을 이룩하였다.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으로 발트 해안의 여러 지방을 획득하고, 스웨덴 ·폴란드 전쟁에 즈음해서는 교묘한 동맹외교로 폴란드령 프로이센에 대한 종주권을 확립하였다. 그 후 신성로마황제와 동맹하여 루이 14세에 대항, 프랑스와 동맹한 스웨덴군을 격파하였으나 황제의 배신으로 점령지를 반환하고(1679) 프랑스와 우호관계를 맺었다.
내정에서는 프로이센 절대주의와 중상주의정책의 창시자로 근대적인 전문관료제와 강대한 상비군체제를 확립하는 한편, 신세(新稅)인 소비세를 도입하여 국가재정제도를 정비하였다. 또, 종교에는 관대하여 프랑스에서 탈출한 위그노를 받아들여 이를 활용함으로써 식산흥업(殖産興業)에 기여토록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리드리히빌헬름 [Friedrich Wilhelm]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프랑스나 스페인에서는 귀족이 장사를 하거나 공업에 종사하면 귀족의 작위를 빼앗아 버리기도 했습니다. 귀족의 위신을 훼손했다는 이유에서였죠. 영국은 이와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그 중요도에서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과 쌍벽을 이루는 아크라이트 방적기를 만든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라는 사람은 신분상 제일 비천한 사람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을 잘라서 사고파는 떠돌이 이발사였는데, 아크라이트가 방적기를 만들자 영국의 국왕이 그에게 기사 귀족의 작위를 수여하고 주지사로 임명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기업가와 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대우가 그만큼 좋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죠.

 

아크라이트 :: 영국의 방적기계 발명가, 면방적 공업 창시자. 무명방직기에 관한 첫 특허를 얻어 수력을 동력으로 하는 대방적 공장을 각지에 세웠다. 그의 기계는 수력방적기라 하고 면방적 공업에 혁신적인 역할을 했다.
가난한 집안의 7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이발사·가발직공으로 일하였다. 1769년 무명방직기에 관한 첫 특허를 얻어 두 친구와 '니드, 스트러트 앤드 아크라이트상회'를 창립, 1771년부터 수력을 동력으로 하는 대방적 공장을 각지에 세웠다. 1775년 제2의 특허를 얻었으나, 그의 발명은 색스니 방적기와 폴-와이엇기(機)를 교묘하게 결합시킨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특허에 관한 소송의 결과 1785년에 패소(敗訴)의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그의 기계는 처음부터 수력동력을 예정하고 있었으므로, 수력방적기(water frame)라 하고, 면방적 공업에 혁신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특허소송에는 패소했지만 50만 파운드나 되는 유산을 남겼고, 1786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리처드 아크라이트 [Richard Arkwright]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보몰William J. Baumol이라는 경제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서비스업을 해서 발전하는 나라도 있고, 서비스업을 해서 망하는 나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몰은 서비스업이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발전적 서비스업과 퇴행적 서비스업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퇴행적 서비스업에는 금융보험업, 호텔, 영화, 오락, 의학, 의료, 의료교육, 비영리기관이 모두 포함됩니다. 이런 서비스업들이 고상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국가발전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한편 발전적 서비스업 부문에는 방송·광고, 교역, 부동산, 경영·전문가서비스 등이 포함됩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비교해보면, 제조업이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것은 명백하지만, 반대로 서비스업이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통계적인 자료로 나와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조업은 전 산업에 대한 생산유발 효과가 크기 때문에 제조업이 발전하면 모든 산업이 발전하는 효과를 낳습니다. 서비스업의 규모가 실질적으로 굉장히 커지고는 있지만, 경제성장 기여도는 제조업의 비중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저는 생산적 가치창출을 기준으로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산업을 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가치창출과 가치이전을 중심으로 한 분류가 그것입니다. 산업은 크게 ‘가치창출산업’과 ‘가치이전산업’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가치창출산업은 ‘기반가치산업’과 ‘확장가치산업’으로, 또 가치이전산업은 세부적으로 다시 ‘생산지원서비스’와 ‘개인·공공서비스’로 유형화할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유형의 산업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기반가치산업’인데, 유형의 재화를 생산해내는 산업입니다. 그리고 형체가 없는 무형의 재화를 생산하기 때문에 현재 서비스업으로 분류되고 있는 컴퓨터 게임, 소프트웨어산업과 같은 것도 원형origin이 있으니까 저는 제조업과 같은 기반가치산업이라고 봅니다.

 

기반가치산업에서 만들어낸 새로운 재화와 용역을 시·공간적으로 이동시킴으로써 기반가치에 가치를 추가하는 산업을 확장가치창출산업이라고 보면 됩니다.

가치이전산업 중 생산지원서비스업에는 금융서비스, 법률서비스 등 가치창출 활동을 돕는 서비스업이 포함되고, 개인·공공서비스업에는 마사지, 이발소 등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활동이 포함됩니다.

 

금융이 없으면 가치창출도 없겠지만, 모두가 금융에 올인all-in한다면 이 또한 가치창출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처럼 금융이 어느 수준까지는 가치창출에 순기능을 하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가치를 파괴하는 역기능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후진국에서는 금융이 부족해서 금융을 성장시키면 경제가 발전하지만, 미국 같은 나라는 금융이 너무 비대해져서 월스트리트가 세계를 망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금융산업은 그 자체로 본원적인 가치를 창출하지는 않습니다. 좀 전에 든 예에 따르면, 금융산업은 자동차회사에 돈을 빌려주고 자동차회사가 가치를 창출한 다음에 그 자동차회사가 창출한 가치 중 일부를 돈을 빌려준 대가로 받습니다. 그러니까 돈 빌려주는 사람이 우수해야 되는 게 아니라 자동차 만드는 사람이 우수해야 돈을 빌려주는 사람도 결국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산업자본은 기술을 개발하고 고용을 창출해서 사람들을 많이 고용하고 노조와 갈등을 빚으면서도 고용을 만들어가는데, 순수 금융자본은 고용 없이 실제로 가치를 창출하지도 않으면서 돈을 벌어갑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빈부의 양극화를 만드는 주범으로 금융산업이 지목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봐도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산업이 크게 발전할 때는 빈부의 격차가 줄다가, 1980년대에 금융자유화를 하면서 규제가 완화되고 나서부터 빈부 격차가 급속히 커졌어요. 그러니까 빈부 격차가 늘어나는 주범은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저의 산업 분류에 따르면 가치이전산업, 즉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산업입니다.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은 고용을 많이 하고, 설비에 투자하고, 기술을 많이 개발하기 때문에 빈부의 격차를 늘리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이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을 너무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수 싸이가 빌보드 차트에 올라갔으니까 싸이의 노래와 같은 것을 잘 발굴해서 문화산업으로 키우자고 야단법석이죠. 싸이는 빌보드 차트 2등 한 번 했고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습니다. 그러나 비틀즈는 빌보드 차트의 싱글 차트를 20번 석권했고, 1964년에는 노래 5곡이 빌보드 차트 1등부터 5등까지 동시에 석권했었습니다. 그런데 비틀즈가 그렇게 성공을 했을 바로 그 시점이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이 경제적으로는 일본에 완전히 따라잡히고 있던 때입니다. 지금 싸이가 한 100명 나오면 비틀즈 비슷하게 따라갈 것 같은데, 실제로는 싸이 100명이 동시에 나오는 일은 생길 리도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아도 과학기술과 제조업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10조 원하고 산업자본 10조 원이 있는데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자본 10조 원으로 자동차 10만 대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지요. 그러면 우리나라 총자산은 부동산 10조와 산업자본 10조를 합쳐 20조 원이 되겠죠. 그런데 내가 강남에 있는 부동산을 10조 원에 산 뒤에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그 값이 20조 원이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다음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 10조 원을 더 붙여 팔아서 값이 30조 원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지요. 이렇게 부동산 가격이 원래의 10조 원에서 3배 올라서 30조 원이 됐다고 하면, 산업자본 10조 원과 합쳐 총자산이 40조 원이 된 셈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산하는 자동차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10만 대 그대로죠. 한 경제에 존재하는 물적 생산량은 그대로인데, 돈만 2배로 늘어났으니, 실물에 대비한 돈의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것을 최초의 돈의 가치로 다시 환산하면, 산업자본의 가치는 5조 원으로 떨어지고, 부동산의 가치는 15조 원으로 올라간 셈입니다. 즉 부동산 투기하는 사람(금융자본)이 가치창출 부문(산업자본)에서 5조 원을 약탈해 간 것과 같은 거예요. 부동산 투기하는 사람, 서브프라임모기지 가지고 엄청난 자본을 만들어서 주식 가격을 뻥튀기하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남의 것을 약탈하고 있는 셈입니다. 옛날에 몽고군이나 로마군은 칼이나 창을 들고 와서 찌르면서 약탈했는데, 지금의 금융자본은 이처럼 소리도 없이 약탈해 가고 있습니다.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부동산, 금융 등의 비생산적인 부문이 열심히 일하는 가치창출 부문의 돈을 아무도 모르게 약탈해 가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농업사회에서는 토지가 자본입니다. 모든 가치는 토지에서 나오죠. 그런데 산업사회에서는 돈이 자본입니다. 선진국들은 한때 저축률이 20%가 넘어가면서 자본을 많이 축적했는데, 자본이 많이 축적되니까 이자율이 떨어지기 시작했죠. 그래서 선진국은 이자율이 3%일 때 후진국은 이자율이 15~20%까지 됩니다. 이처럼 이자율 차이가 나기 때문에 선진국 자본이 후진국으로 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축하지 않으면 한국 자본이라는 게 안 생기지요. 선진국은 이미 오래전에 엄청난 자본을 축적해서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자본을 영원히 못 갖는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옛날 농업사회로 치면 선진국이 토지를 다 점령하고 우리는 거기서 고용살이만 하는 세상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지금은 이자율이 반으로 떨어지니까 전셋값이 2배로 오를 수밖에 없는 거예요. 다시 이자율이 반으로 더 떨어지면 전셋값은 4배로 오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젊은 사람들은 부모가 집을 사주지 않으면, 영원히 집을 살 수 없습니다.

 

흔히들 의료산업, 금융산업, 법률산업을 3대 서비스업이라 하는데, 공교롭게도 이 세 가지 산업이 현재 이공계 핵심인재를 빼가는 분야입니다.

 

이것은 단지 한 개인의 진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 중요한 두뇌의 가치를 수십만 배 확장해서 사회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데 기여하도록 만들 것이냐, 아니면 그 두뇌가 혼자 병원에 앉아서 환자 한 명씩 치료하도록 할 것이냐의 문제, 즉 국가적 차원에서의 인적자원 활용 문제이기도 합니다.

 

자동차 생산이 2배로 커져서 자동차 수출이 2배로 늘면 고용이 2배로 늘고, 그래서 서비스업도 2배로 느는 거예요. 그 역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조업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실제로 디트로이트가 미국 자동차산업의 본거지였지만, 자동차산업의 쇠퇴와 함께 이 지역이 완전히 망했어요. 오하이오 주의 영스타운Youngstown도 철강산업의 본거지이자 한때 미국 최고의 부자 도시였는데 철강산업의 쇠퇴와 함께 지역 인구가 절반으로 줄고 인구 중 4분의 1이 빈민층이 되었습니다. 무비판적으로 서비스업 육성을 내세우는 정부나 일부 사람들의 주장대로라면 그리스가 인구 대비 의사, 변호사 숫자가 타 유럽 국가에 비해 단연 높으니 그리스가 제일 선진국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앞으로 수술비용의 80%는 로봇회사가 벌게 될 거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현재 미국 유망 직종 순위를 보면 대부분 공학입니다. 이공계 아닌 것은 13위의 재정학public finance 하나 들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공학입니다. 또 고소득 직업군을 보더라도 5위에 오른 경제학economics 하나만 빼고 나머지는 다 이공계가 차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가치창출이라는 동전의 앞면은 과학기술이고 뒷면은 기업입니다. 그러니까 과학기술, 공학이 기업활동과 결합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이 세계적인 선진국이 된 가장 큰 계기는 제임스 와트James Watt의 증기기관 발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증기기관 기술은 프랑스의 드니 파팽Denis Papin이 먼저 개발했는데 프랑스 사회가 그것을 받아주지 않아서, 결국 그 기술이 영국에 가서 꽃을 피웠죠. 제임스 와트도 처음부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업을 하다가 크게 실패해서 망했었고, 한때는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매튜 볼튼Matthew Baulton이라는 걸출한 사업가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을 살펴보고서는 성공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겁니다. 증기기관을 이용하면 당시 수력으로 돌리던 섬유공장, 직조공장을 강물이 없는 지역에서도 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거죠. 그래서 합작회사를 만들기 위해 실사를 해보았더니,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 특허를 내놓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특허 만료가 고작 7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매튜 볼튼이 의회에 청원해서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특허만 20년을 연장해줬습니다. 사실 이것은 형평성을 중시하는 법률가들의 시각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제임스 와트의 특허를 연장해주는 바람에 증기기관이 대규모로 실용화되었고,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영국이 세계의 종주국이 되었죠.

 

하나의 기술 그 자체로 영국이 강국이 된 것이 아닙니다. 시대를 바꿀 수도 있는 그 기술의 가치를 알아보는 기업가가 있었고, 또 기술을 가진 이와 기업가를 법률과 제도로 뒷받침해준 의회와 정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니까요. 우리의 산학관계도 이처럼 대학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업가들이 앞장서며, 또 이런 활동을 제도적으로 지원해주는 정부와 국회가 있어야 합니다.

 

 

 

2. 축적된 경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지식을 구하라 - 김용환(조선해양공학과 / 해양 플랜트)

배는 모두 주된 항로가 다르고, 속도와 화물의 양도 배마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박은 한 번 나오면 시리즈로 나오든가 단발성 모델로 나오게 되는데, 주어진 조건들이 조금씩 달라서 스펙이 완전히 동일한 배는 전 세계에 많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항로와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춘 배를 매번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특징으로부터 한국의 성공요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조선소들은 주문자 중심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일본의 조선업계는 한국과는 반대의 길을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 앞서 한때 세계 조선시장을 석권했던 일본 조선업이 몰락한 근본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로 일본에서는 ‘표준선’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던 것에 주목해보아야 합니다. 일단 표준적인 배를 만들고 나서 ‘싸게 줄 테니 사라’는 식이죠. 따라서 일본의 조선업은 주문자들의 요구에 대응하는 데 소극적이었고, 한국은 정반대로 고객 대응 마인드가 매우 강했으니 주문자 입장에선 한국 업체들이 좋을 수밖에 없겠죠.

 

선박건조에 쓰이는 부품의 90~97% 정도가 국산일 정도로 국산화율도 매우 높습니다. 선박을 건조할 때 사소한 거울이나 시계 하나까지도 그 배에 맞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은 주로 부산과 경남 일대의 선박부품단지 내 기자재 전문업체들이 공급합니다. 국가적으로 산업의 파급효과가 엄청난 거죠.

 

2010년까지만 해도 조선업계에서 해양플랜트가 차지하던 비중이 크지 않았는데, 2012년과 2013년을 거치면서 국내 조선회사들 평균 매출의 50~75%가 해양플랜트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선박건조와 해양플랜트 건설의 위상이 완전히 역전된 거죠.

 

한국 조선업계가 해양플랜트 부문으로 옮겨가게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 조선산업에서 진행되었던 ‘규모의 전쟁’이 있습니다. 전 세계 1위부터 4위까지를 독차지한 한국의 조선회사들이 규모가 큰 배와 해상 구조물들을 만드는 데 자신이 있었던 겁니다.

 

TEU :: 20ft(609.6cm)의 표준 컨테이너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컨테이너의 규격은 길이에 따라 20ft, 40ft, 45ft, 48ft, 50ft 등이 있는데, 컨테이너 규격이 다양함에 따라 발생하는 통계 작성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 TEU다. 20ft 컨테이너 하나를 1TEU라고 하며, 40ft 컨테이너 하나는 2TEU로 계산한다. TEU는 전 세계적으로 컨테이너선의 적재능력이나 하역능력, 컨테이너 화물의 운송실적 등 컨테이너와 관련된 모든 통계의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40ft 컨테이너를 기준으로 하는 단위는 FEU(Forty-foot Equivalent Units)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TEU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약 320미터 정도 되는데, 우리나라가 한창 조선업계 세계 1위로 맹위를 떨칠 때는 그 정도 크기의 선박을 연간 120~130척씩 납품을 했으니까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2000년대 후반 세계경제의 침체가 시작되면서 선박 주문이 급감해서 선박건조 활동이 침체한 상황에서 조선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다변화를 시도하게 됩니다. 현재로서는 사실상 실패한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풍력, 태양광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주력 생산 제품군을 해양플랜트로 확대하면서 사업의 다변화를 모색합니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사업다각화를 통해 새로운 이윤을 계속 창출하고자 하는 사업가적 기질과 도전의식이 작용했겠죠. 경쟁기업들이 너도나도 해양플랜트로 진출하는 상황을 맞아 ‘우리도 한번 해볼까?’ 생각하게 되면서 대대적으로 해양플랜트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해양플랜트 분야는 한국의 조선 3사가 글자 그대로 수주를 위해서 피나게 경쟁하는 구도가 되었습니다. 15~20년 전 한국 조선회사들이 서로 제 살 깎아 먹기 식 경쟁을 했었는데, 지금은 해양플랜트에서 몇 년 사이에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었습니다. 실제 입찰 과정에서 무조건 경쟁회사보다 5~10% 깎아준다고 제안서를 써대니 원가를 보전할 수가 없을 지경이지요.

 

우선 해양구조물은 어떤 바다에서 시추 활동을 하게 될지에 따라 위치적 특성을 더 철저하게 반영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사이트 의존성site dependency’이라고 합니다. 가령 석유를 호주 앞바다에 가서 채굴하는지, 캐나다 앞바다에서 채굴하는지에 따라 플랜트의 설계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주문자 맞춤 제작의 필요성이 조선의 경우보다 더 크게 요구되는 것이죠.

 

해양플랜트를 만드는 전체 과정인 EPCI에 대한 간단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EPCI에서 E는 엔지니어링engineering, P는 구매procurement, C는 시공construction, I는 설치installation를 의미합니다.

 

조선과는 사뭇 다르게 훨씬 더 정확하게 구분되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특화된 전문회사들이 전 세계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링만 가지고 몇조 원씩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있고, ‘수심 몇 미터 들어가면 어느 회사에서 나온 어떤 강재가 필요하겠다’는 등의 판단을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하는 구매전문 회사들도 전 세계에 있습니다.

30년 전쯤의 과거에는 석유 메이저가 스스로 프론트 엔드 엔지니어링 디자인Front-End Engineering and Design, 약칭 피드FEED라는 것을 해서 해양구조물을 부유식으로 할지 아니면 고정식으로 할지, 부유식이라도 실린더 모양으로 할지 컬럼(기둥)을 4개 두는 방식으로 할지, 크기는 어느 정도로 할지 등을 정했습니다. 그다음에 집 주인이 토목공사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엔지니어링 회사에 설계 따로, 전기공사 따로 맡기는 식으로 여러 회사에 나눠 줬습니다. 그러다가 20년 전쯤 석유 메이저가 하나의 종합건설사와 계약을 해서 그 회사에 모든 과정을 맡기는 방식, 즉 턴키turnkey 방식으로 바꿉니다. 요즘도 대부분 이런 형태로 일이 진행됩니다. 한국 조선회사들은 그동안 외국의 EPCI 전문회사들 틈바구니에 끼어들 들어가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해서 주로 시공을 맡아왔습니다. 한국이 Cconstruction, 즉 시공을 너무 잘했으니까요.

그런데 C를 잘하니까 욕심이 생기게 된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땀 흘려 짓는데 마진은 얼마 남지 않는다는 사실에, ‘엔지니어링이 뭐 별거 있나’. ‘외국 가서 엄청난 돈을 들여가며 왜 설계도면을 계속 사와야 하지?’, ‘구매? 구매 스펙도 우리가 정해보자. 혹시 구매할 때 기자재를 국산으로 쓸 수는 없을까? 조선은 97%가 국산인데. 없으면 국산화해서 써 보자.’, ‘설치installation도 우리가 한번 해보자.’ ‘해본 김에 시운전과 해체까지 우리가 해보자’. 이렇게 EPCI, 거기에 C(commissioning, 시운전), D(de-commissioning, 해체)까지 더해서 전 과정을 맡아서 해보겠다고 의욕적으로 시작한 것이지요.

 

프론트 엔드 엔지니어링 디자인 :: FEED(front end engineering design)는 개념 설계 또는 타당성 조사가 완료된 후에 수행되는 기본 엔지니어링이다. 수정된 입찰 견적이 제출되기 전에 프로젝트 비용을 관리하고 프로젝트를 철저히 계획하는 데 사용된다. 사전 프로젝트 계획(PPP), 프론트 엔드 로드(FEL), 타당성 분석 또는 초기 프로젝트 계획이라고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해양 FEED [offshore front end engineering design] (해양학백과)

 

이 회사들은 모두 엄청나게 오랜 시간 동안 도면을 그리고, 구매를 하고, 설치를 해왔던 전통이 있는 회사들입니다. 이 회사들의 축적된 노하우는 한국 조선업체들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최소 거의 반세기에서 한 세기 동안 전문적으로 해온 노하우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술에는 학문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기술이 있고, 산업체 자체적으로 경험을 통해 얻어야 할 기술이 있습니다.

 

구매를 학문화할 수 있겠습니까? 도면 그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적인 것은 가르쳐줄 수 있지만 구조물을 지을 사이트가 프로젝트마다 모두 다른데 학교에서 그런 것을 체계화해서 가르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해양플랜트 만드는 것을 학교에서 학문화하기란 원래부터 매우 힘듭니다. 외국에도 해양공학을 가르치는 곳은 있지만, EPCI를 같이 가르칠 수 있는 학교는 없습니다.

그것은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할 영역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습득해야 할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설계를 어떻게 하고 구매를 어떻게 하는지에 관한 것은 결국 회사의 일입니다. 즉, 학교나 연구소가 제공할 수 있는 데 한계가 크고, 회사의 경험과 노하우가 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한국의 조선회사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은 시공에 대한 기술뿐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평가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조선회사들은 새로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도기에 치러야 할 일종의 수업료 정도로 생각하고 손해를 감수하면서 몇 년 경험을 쌓는다면 E, P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너무 쉽게 생각한 겁니다.

 

2012~2013년 무렵의 자료를 살펴보면, 설계인력과 생산인력을 포함해 우리나라 조선업계의 기술인력 구성을 보면 조선 관련 인력이 75%, 해양기술 인력이 25%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이런 인력 구성과 전혀 다르게 지난 2년 동안 매출의 75%는 해양플랜트 쪽에서 나왔습니다. 단순히 수치상으로만 봐도 인력에서 불균형이 심한 상황입니다. 기업들도 기술 격차가 있다는 점을 인식은 했겠지만 하다 보면 경험을 재빨리 축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기술이 부족하더라도 우리가 경험을 쌓기 위해 인력을 해양플랜트 쪽에 배치하고 외국 연수도 보내면 경험지식 기반을 쉽게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겁니다. 우리가 조선에서 그런 추격 역량을 충분히 보여줬거든요. 하지만 앞서도 말씀드렸듯 단계별로 오랜 노하우를 축적한 강자가 존재하는 해양플랜트 부문은 그렇게 쉬운 분야가 아닙니다.

해양플랜트 쪽은 시장의 부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아주 많아 시장의 변동성이 조선에 비해서 큽니다.

 

요즘은 시추 깊이가 훨씬 깊어졌습니다. 예전에는 200~300미터 깊이였던 것이 15년 전쯤부터 1,000미터로 깊어지더니, 최근 들어 2~3년전부터는 3,000미터까지를 목표로 합니다. 그런데 3,000미터 아래서 원유 유출 사고가 일어나면, 손도 쓸 수 없는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 공사를 발주하는 측에서도 검증된 기술이 아니면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신뢰성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아주 보수적인 시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오랜 전통과 검증된 기술을 가진 회사에 일을 맡기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조선소가 그 시장에 뛰어들어 컨소시엄을 주도하여 프로젝트 전체를 담당하고, 최근에는 설계부터 설치까지 다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심지어는 비용도 깎아주겠다고 하니 석유 메이저들이 고개를 쉽게 끄덕이기 어렵죠.

 

재량껏 해서 겨우 남길 수 있는 부분이 시수man-hour인데 경험이 부족해서 시행착오를 범하다 보면, 대부분의 경우 예측한 시수보다 더 많은 시수가 들게 되기 일쑤입니다. 일단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어렵게 경쟁 상대를 제치고 나서 설계변경design change order을 통해 불리한 초기 계약조건을 다소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프로젝트에 뛰어들었지만,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면서 전체 공사 기간의 지연이 자기 발목을 잡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현재 한국 조선·해양플랜트산업이 맞고 있는 어려운 현실입니다. 공사 기간이 지연되니 비용은 계속해서 예상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죠.

사실 E-P-I 부문에서 한국 회사들이 기술을 습득하려면 앞서 얘기한 외국 회사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특히 그들이 가진 교과서 밖의 경험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 과정을 생략한 채 지난 1~2년간 우리 자체적으로 해보겠다며 그야말로 무리수를 던졌던 겁니다.

 

2000년에 엑슨과 모빌이 합병을 해서 엑슨모빌Exxon-Mobil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합병한 그해에 1만 2,000명을 구조조정했어요. 경제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았기 때문에 합병하면서 몸집을 줄인 것입니다. 그해에 쉘Shell도 1만 6,000명을 해고했습니다. 한국에서 만약 B조선이 1,000명을 해고한다고 하면 그 즉시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나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한국의 기업, 문화, 시스템 등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진국은 그게 되는 거죠. 해고 이후 6개월이나 1년쯤 지나 유가가 회복되었을 때 회사는 사업을 진행해야 되니까 해고한 사람들을 다시 고용합니다. 노동시장이 상당히 유연하게 움직이는 거죠.

 

결국, 한국 조선회사들은 불황 타개책으로 사업 확장에 나선 겁니다. 경기 변동과 시장의 상황에 따라 고용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보유 인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다른 사업을 찾아 나선 거지요. 해양플랜트로의 확장은 노하우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무리한 시도인 것처럼 보이는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한국적 경제사회 환경에서 피치 못해 떠밀려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 1위를 목표로 달릴 때는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되었지만, 1위로 계속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앞서서 육성했다기보다는, 산업이 호황을 맞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본격적인 정책 지원, 특히 기술개발 지원도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즉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산업이 커지는 것을 보고 나서 뒷북을 친 셈입니다.

 

정부가 나설 때는 잘될 때가 아니라 어려울 때입니다.

 

중국은 내수시장에 쓰이는 배의 50%를 무조건 중국 조선소에서 지어야 하는 규정이 있고 해양플랜트의 경우에는 내수시장의 대부분을 무조건 중국 업체들이 담당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국에는 시눅CNOOC이라는 국영 석유업체, 석유 메이저도 있습니다. 이 회사는 규모에서 한때 엑슨모빌을 제쳤을 정도로 큰 회사입니다. 그렇게 엄청나게 큰 자체 내수시장이 있고 자국 업체들이 그 수요를 충족시키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그런 게 없으니 오로지 수출만 해야 합니다. 배를 만들든 해양구조물을 만들든 무조건 해외에 팔아야 하는 거죠. 그래서 해외에서 주문이 쇄도하면 호황이고, 끊기면 불황이 됩니다. 그렇게 우리나라 조선·해양플랜트산업은 글로벌 경기의 충격에 굉장히 취약한 구조입니다.

 

한국에서 제가 공부할 당시 조선학과는 전국에서 서울대, 인하대, 울산대, 부산대 단 4개였지만 지금은 40개나 됩니다. 조선산업의 전망이 좋다고 하니 우후죽순처럼 마구 생겼던 거죠. 그런데 중국은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조선해양공학과를 정리했지요. 그래서 조선해양공학에 대한 교육을 상하이교통대학, 우한대학, 하얼빈공정대학 3개 대학으로 집중시켰습니다. 양보다는 질에 초점을 맞춰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한 것입니다. 하얼빈대학 조선해양공학과 같은 경우 학생이 300명 정도인데, 확실하게 인재로 키워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유학도 보내주고, 외국 학생들도 유치하고, 외국 교수도 뽑고, 대규모 연구시설도 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이런 식의 집중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영국의 조선산업이 사양화할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나서서 정리했어요. 그 결과 영국은 뉴캐슬Newcastle University, 스트라스클라이드University of Strathclyde, 사우스햄프턴Southhampton University의 3개 대학으로 선택과 집중을 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선제적으로 정리하고, 집중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는 각 학교와 지자체가 앞장서서 정원을 늘리면서 한 해에 배출하는 조선 관련 학과의 졸업생만 2,000명이 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조선산업이 지금까지 성장하는 데 한국 대학이 한 역할이 별로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조선산업에서 세계 1등이 될 때까지 한국의 대학이 해준 유일한 공헌은 인력 공급뿐이라고 해도 크게 지나침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창피하지만 세계 1등 조선산업이 있는 나라에 한국어로 쓰인 제대로 만든 교재 시리즈도 없는 형편입니다. 아주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산업이 세계 1등인 만큼 학문적으로도 많이 발전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거죠. 다시 말하면 산업체는 세계 1등이 되었지만 대학은 그만큼 성장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산업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기술적으로 성공한 부분이 많습니다. 조선회사들이 박사 수십 명, 수백 명을 뽑아서 연구 인력만 몇백 명씩 데리고 자체적으로 연구개발을 해왔죠.

 

한국의 조선 · 해양플랜트산업의 성장은 대학에서 배출된 우수 인재들이 이룬 업적이기는 하나 기술적으로는 산업체에서 스스로 노력한 덕분으로 보는 것이 정직한 평가입니다.

 

 

 

3. 축적된 경험 없이는 프로젝트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 - 고현무(건설환경공학부 / 토목구조)

건설산업 자체가 다른 제조업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제조업은 선공급-후수요, 즉 제품을 먼저 생산하고 시장에서 수요를 만들어내는데, 건설은 선수요-후공급의 특성을 가집니다. 수요자 혹은 시장으로부터 주문이 있어야 비로소 공급 프로세스가 진행되죠.

 

일반 제품의 경우에는 제품을 생산해서 수요자한테 구매 의욕을 일으키는 기술이 경쟁력의 핵심이지만, 건설에서 경쟁력은 결국 수주 경쟁력으로 요약됩니다.

수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사업 발굴과 프로젝트 기획 능력, 프로젝트 파이낸싱 능력도 있어야 하고,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능력도 갖추어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능력이 모여야 비로소 건설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데, 우리가 학교에서 얘기하는 것은 주로 기술적인 면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기술 중에서도 대부분의 교수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요소기술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 기획 역량인데,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서 아직 경쟁력이 매우 떨어집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외국 건설사들과 프로젝트 수주 경쟁을 벌일 때도 바로 전체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능력과 초기 디자인 능력이 떨어져서 어려움을 겪고 있죠.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낮추는 것 중 하나가 건설산업에서의 수주, 계약 관행입니다. 예를 들어 외국의 철도 사업에 참여해서 우리가 수주를 하려면 자격심사를 받게 되는데, 보통 그 회사가 어느 정도 길이의 철도를 설계하고 시공한 경력이 있는지를 심사하게 되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국내에서 어떤 사업을 할 때, 공정한 경쟁보다 공평한 분배를 중시하여 나눠 주기 식으로 공구를 분할해서 발주합니다. 가령 100km짜리 철도공사를 시행한다면 여러 회사에 5km, 10km씩 골고루 나누어 주는 셈이지요. 만약 대규모 패키지로 묶어 발주하면 특정 대기업을 위한 특혜라는 불만이 나오니 정부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있어요. 그런데 이런 관행 때문에 민간의 개별 회사가 일정 길이 이상의 철도건설 경력을 갖추기가 힘듭니다. 결국 국제 입찰에서 요구하는 자격요건을 충족시키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제도와 관행이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셈입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부분입니다. 보통 공학자 입장에서는 기술만을 얘기하는데, 대규모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프로젝트 파이낸싱 능력이 없으면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그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건설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수주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되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부분에서 여전히 부족한 상태죠. 우리나라 회사들이 수주에 성공해서 지금 짓고 있는 터키 보스포러스Bosporus해협 대교 건설의 경우만 보더라도,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분은 외국 금융회사를 거쳐서 해결하고 있습니다. 외국 은행들은 이렇게 큰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 자체적으로 기술 평가를 해서 이익을 낼 수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어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활발하게 일으키는데, 우리나라 금융권은 그런 능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은행은 큰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섣불리 리스크를 안고 참여하려고 하지 않죠. 반면 외국 금융회사들은 충분한 기술 평가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평가를 해서 장기적으로 투자한 만큼 회수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면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금융권은 보통 안전한 자산에만 투자하려는 보수적 성향이 강합니다. 사업의 수익성 평가보다 해당 기업의 담보 능력을 우선시하는 성향이 강해서 투자가 아니라 자금 대출을 주로 하게 됩니다. 1,000원을 투자해서 확실하게 몇 년에 걸쳐서 1,100원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투자를 기피하는 겁니다. 결국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뒷받침해줘야 하는 상황이 자꾸 만들어질 정도로, 우리나라가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물론 사업 보증 분야가 매우 취약한 상황입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하기 위해 기술과 수익성을 평가하려면 그러한 능력을 갖춘 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금융권에는 엔지니어가 거의 없습니다. 외국에서는 금융권도 엔지니어를 매우 적극적으로 채용합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 은행 등 금융기관이 사회간접자본 등 특정사업의 사업성과 장래의 현금흐름을 보고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기법.
대규모의 자금이 필요한 석유, 탄광, 조선, 발전소, 고속도로 건설 등의 사업에 흔히 사용되는 방식으로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금융기법이다. 프로젝트 자체를 담보로 장기간 대출을 해주는 것이므로, 금융기관이 개발계획의 조사와 입안(立案)의 단계부터 참여하여 프로젝트의 수익성이나 업체의 사업수행능력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심사를 한다.
대출 상환은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원천으로 하므로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캐시 플로(cash flow)를 유지·확보하는 것에 초점이 집중되며, 정상적인 캐시 플로를 방해할 수 있는 사항은 모두 리스크로 간주된다.
이는 모회사(母會社)와는 별도로 설립된 프로젝트 회사에 금융이 제공되므로 모기업의 담보와 신용을 근거로 하는 일반금융과는 달리 해당업체의 신용보다는 특정사업 자체에 사업성이 있을 경우에 금융기관들이 공동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만일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모회사는 차입금 상환에 대한 부담이 없지만 최근 프로젝트 리스크가 커짐에 따라 모회사가 직·간접으로 보증을 서는 변형된 형태의 프로젝트 금융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석유 및 플랜트업체, 종합상사 등이 국내외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자금을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의해 조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다양한 유형의 직·간접 금융기법을 효율적으로 결합시켜 필요자금을 최소의 비용으로 조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국내외 재원유형과 각각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여야 한다. 최근에는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화의절차가 진행 중인 기업의 주요사업에 대하여 이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로젝트 파이낸싱 [project financing]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우리나라 금융권에도 엔지니어들이 많이 가서 이런 일들을 해줘야 하는데,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은 엔지니어를 채용하는 데 크게 관심이 없어요.

 

대한민국 장대교長大橋 건설 역사에서 처음으로 우리의 자립 기술로 건설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인천대교입니다. 그전까지는 우리 자체 기술로 기획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었기 때문에 인천대교가 우리 자체 기술로 장대교를 건설한 시발점이라고 평가됩니다.

 

인천대교 건설 이후, 기획부터 시작해서 전체를 우리 독자적인 기술로 건설한 것이 이순신대교입니다. 교각 사이의 중앙 경간이 1,545m에 달하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이고, 전 세계 최장 다리 순위로 보면 현재 사용 중인 다리 중에서 5~6위 정도에 해당합니다. 물론 이 다리 건설에서도 부분적으로는 외국 엔지니어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전체 기획부터 우리가 독자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인천대교 :: 인천대교 건설사업은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인천경제자유구역인 송도국제도시를 잇는 최대 6차로, 총길이 21.38 km의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이중 서해를 횡단하며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교량 구간이 인천대교이며, 그 길이는 18.38 k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긴 다리이다. 바다를 건너는 구간은 민간자본투자사업으로 건설하였으며, 영종도 내 고속도로와 송도국제도시 통과 구간은 국가재정사업으로 진행하였다. 한국도로공사가 전체 사업을 총괄관리하였으며, 민간투자사업 구간에 대해서는 인천대교주식회사가 시행을 담당하였다. 2005년 6월에 착공하여 2009년 10월에 완공하였다.
해상구간은 사장교(1,480m), 접속교(1,778m)와 고가교(8,400m)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주항로부에 있는 사장교의 주경간장은 800m로 사장교 형식으로는 준공시점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4번째로 길다. 주탑의 높이는 230.5m로 국내에서 가장 높다. 또한 BTO(Build-Transfer-Operate) 방식으로 추진되어 국내 최초로 사회간접자본 사업에 외국인이 시행자로 참여하였다. 인천대교(주)가 민간사업구간 사업비 중 약 52%인 8,2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고 완공 후 30년 동안 운영권을 가진다.
국고구간은 다양한 형식의 특수교량과 토공부 도로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교량으로는 하이브리드 중로 아치교(213m), 스트럿이 부착된 박스 거더교(2,209m), 나비형사장교(230m) 및 엑스트라도즈교(308m)가 있다.
인천대교는 설계와 시공을 병행하는 패스트트랙(Fast Track)방식으로 진행하였으며, 초속 72m의 강풍과 진도 Ⅶ(7)의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고 주항로부에는 선박과 교량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세계최대 규모의 돌핀형 충돌방지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국내 최초로 교량의 하부구조 및 상부구조 설계에 하중·저항계수설계법(LRFD)을 적용한 것을 비롯하여 세계적 수준의 최신 토목기술을 총동원하여 건설하였다.
인천대교의 완공으로 인천과 서울 남부, 수도권 이남 지역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그리고 인천국제공항에서 송도국제도시까지 소요되는 주행시간이 40분 이상 단축되었으며 특히, 공항에서 송도까지 걸리는 시간은 15분대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물류비와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감소되는 효과를 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천대교 [Incheon Bridge, 仁川大橋]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인천대교 이전에 건설한 영종대교는 프로젝트 기획과 초기 설계를 완벽하게 일본 기술에 의존했습니다. 자정식 현수교self-anchored suspension bridge라는 타입인데 세계 최초였습니다. 케이블 형상도 3차원이었고, 자정식이라고 해서 케이블을 앵커리지에 묶지 않고 교량 내에 묶는 아주 독특한 형식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회사가 우리보다 20년 정도 앞서서 시작해서 워낙 장대교를 많이 설계했기 때문에, 축적된 설계기술 역량이 아주 뛰어났습니다. 일본의 아카시明石 대교를 건설할 때의 사례를 보면, 그 기술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공사 도중 고베 지진이 일어나서 땅이 1m가 넘게 어긋났는데도, 다리가 그것을 버텨낼 수 있도록 설계를 한 덕분에 큰 사고 없이 공사를 끝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최근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잇는 오클랜드 베이브리지가 완공되었는데, 그 프로젝트에 영종대교와 비슷한 형식의 교량이 선정되어 3차원 케이블 묶음과 관련해서 우리 엔지니어들이 전문기술을 자문해줬을 정도로 수준이 많이 올라갔죠.

 

장대교를 건설할 때 가장 민감한 부분이 케이블입니다. 케이블이 모든 하중을 받는데, 다리가 계속해서 무거워지고 커지니까 케이블에서 항상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케이블이 버티는 힘을 인장 강도라고 하는데, 보통 1,850~1,860Mpa 정도의 케이블을 보편적으로 썼습니다.

그런데 고강도 케이블을 개발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고강도 케이블을 개발하더라도 그것을 실제로 쓰려면 여러 장비도 동시에 바뀌어야 하고, 시스템이 초고강도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도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강도의 케이블이 개발도더라도 그것을 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1,960Mpa짜리 고강도 케이블을 처음 개발하고 그것을 쓰면서 가설 장비도 개선했어요. 그래서 2~3년 전부터 새 케이블이 상용화되었고, 중국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기술과 가격, 공기입니다. 가격에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능력까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기술 측면에서 보면 아까 얘기한 초기 설계, 프로젝트 기획 설계와 시공의 편의성 등의 부분들에서 우리가 아직 많이 뒤떨어지는 편입니다.

 

유럽에는 아주 역사가 길고, 전문성이 있는 기술로 특화된 중소기업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케이블을 긴장하는 후레시네Freyssinet라는 회사가 있는데, 현장의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케이블을 설치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과 경험이 있는 회사는 이 회사를 포함해서 전 세계에 몇 개가 없어요. 그런 회사들은 굳이 자기들이 큰 프로젝트 전체를 따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 기술이 필요한 기업은 원하는 금액대로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런 회사들은 인건비나 단가가 아주 비쌉니다.

 

중소기업들은 일부 장비나 기술을 제외하고는 사실 회사의 중추가 전부 사람입니다. 저 회사를 1억 달러 주고 샀는데 사고 나서 보니까 엔지니어는 다 빠져나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핵심지식을 축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건설 인력의 가장 큰 문제가 보통 기술자general engineer는 공급 과잉인데 고급 및 전문인력professional engineer & expert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 있습니다.

 

학교에서 지금 시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는 절대로 안 됩니다. 진짜 1% 인재를 위한 특성화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상위 1% 인재란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나 찾는 인재, 전문기술 과제를 소화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로서의 해결사를 뜻합니다. 세계가 인정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인재 양성 프로그램 자체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미국의 GE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으로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최고의 인재를 양성하는 ‘크로톤빌 연수원’이라는 인재양성소가 있다는 사실은, 인재 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 대부분의 선진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사내 대학이나 대학원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이유도 건설에서 인재 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정도의 시스템을 갖춘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지금의 학교 체제만 가지고는 힘듭니다. 학교와 정부, 산업체가 같이 힘을 모아 제3의 독창적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말 1%의 고급 인재를 키워내기 위한 새로운 개념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고급 기술은 1%의 사람이 결정해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건설산업은 진짜 뛰어난 소수의 엔지니어가 수주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해야 합니다. 매년 10명씩만 양성을 해도 10년이 지나면 우리나라에 적어도 100명이 됩니다. 그런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좋은 인재들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교량건설의 경우 우리는 건설환경공학부 내에 있는 구조공학 전공에서 하잖아요. 그런데 중국은 아예 교량공학과가 별도로 있어서 그 한 학과에만 교수 숫자가 40~50명이나 됩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상대가 안 되는 거죠.

 

세계 시장에서 강화되고 있는 품질(Q), 안전(S), 보건(H), 환경(E) 관리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여야 합니다.

 

4. 교과서에 없는 것은 직접 경험하면서 배워야 한다 - 한종훈(화학생물공학부 / 플랜트 설계)

엔지니어링산업이라고 하면 주로 플랜트산업을 의미합니다. 보통 가스, 오일, 석유화학, 발전플랜트, 해수담수화와 관련된 분야의 산업입니다.

 

위기는 한국 플랜트산업의 구조적인 약점들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첫째로, 우리나라 플랜트 회사들이 기본설계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못합니다. 엔지니어링은 기본적으로 설계 능력이 굉장히 중요한데, 우리는 주로 선진국에서 설계 패키지를 사오고 있습니다. 플랜트 건설에 필요한 세 공정을 보통 E-P-C라고 하는데, 엔지니어링Engineering, 구매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의 머리글자입니다. 엔지니어링은 설계 과정을 의미하고, 구매는 자재를 구입하고 공급하는 과정, 시공은 글자 그대로 건설하는 과정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가 상당히 다양한 케이스에 대해 구매와 시공은 잘하고, 세계적인 경쟁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 단의 엔지니어링은 다시 개념설계conceptual design, 기본설계basic design, 상세설계detail design로 구분되는데, 전체 구조를 잡는 개념설계를 우리나라 회사들이 못합니다. 사실 개념설계뿐만 아니라 기본설계도 거의 못하고, 상세설계를 주로 하지요. 그러다 보니 가령 전체 프로젝트 비용이 총 1조 원이라고 할 때, 설계 비용이 보통 5%에서 15%를 차지하니까, 500억~1,500억 원을 라이선스 비용으로 지출하게 됩니다. 라이선스 비용을 내고 설계도서design package를 사 오는 이유는 설계도서에 따라붙는 보증guarantee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증이란 ‘이 기본설계에 기초하여 상세설계를 해서 플랜트를 건설하면 원하는 제품이 나온다’는 것을 보증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 회사도 기본설계 역량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플랜트 프로젝트의 경우 규모가 너무 크고 플랜트 설계상의 작은 실수 하나라도 운이 없으면 건설 후 플랜트 운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설계에 대한 성과를 보증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설계도서를 사 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설계도서를 라이선스 형태로 자꾸 사오다보니 자체 설계 경험, 즉 레퍼런스가 축적되지 않습니다.

플랜트뿐만이 아닙니다. 제2롯데월드나 영종대교, 인천대교도 모두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설계도서를 사왔습니다. 개념설계와 기본설계는 가장 수익이 많이 나는 고부가가치 영역이에요. 수익률이 30%에서 50%까지로 높죠. 설계도서로 바인더 20권 정도를 가지고 오면, 그것에 대한 대가로 500억~1,000억 원씩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로 사 오는 개념설계와 기본설계를 합쳐서 프론트 엔드 엔지니어링 디자인(FEED; Front End Engineering Design), 즉 피드라고 하는데, 이 피드 단계에서 플랜트에서 사용할 자재나 장비에 대한 사양이 모두 정해져 버립니다.

 

한국 회사들이 수주할 때 보통 일괄총액계약, 즉 럼썸lump-sum 계약방식으로 많이 합니다. 전체 금액과 기간을 정해서 주계약자인 A엔지니어링 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전체 1조 원 공사비에, 공사 기간 36개월’ 등과 같은 방식으로 묶어서 한 번에 계약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기간을 넘기면 공기 지연에 따른 연체금을 물게 됩니다. 주계약자인 A엔지니어링 회사가 책임을 지게 되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설계하는 회사들은 설계만 책임질 뿐 나머지 전체 공사에 대해서는 지연되어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선진국에서는 럼썸 방식으로 계약을 맡으려고 하는 회사가 많지 않아요. 리스크가 큰 데다, 시공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없으니까 대부분 고부가가치 설계 분야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수익이 많이 남는 쪽에서 자기들 몫을 싹 챙겨가는 거죠. 최근 우리나라의 엔지니어링 회사들이 조 단위의 큰 손해를 보고 있는데, 바로 이런 계약 방식 때문입니다. 경험을 많이 쌓아 온 영역에서야 피드 도서를 받아 오더라도 전체적으로 기간이 얼마 걸릴지 계산해서, 수익도 포함시켜 계획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한국 엔지니어링회사들이 손해를 본 해양플랜트에서는 경험이 없는 신시장이므로 잘못 예측한 겁니다. 그래서 공사가 지연되어 막대한 지연 연체금을 물어야 했던 거죠.

 

엔지니어링 분야는 유럽과 미국이 가장 경쟁력이 높은데, 그 배경에는 중세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까지 약 500~600년 동안 축적된 데이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데이터들을 절대로 공유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진국으로 유학 가서 공부한 사람도 많기 때문에 이론적인 계산을 하는 능력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은 이론일 뿐입니다. 계산하고 난 후에는 실제로 검증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할 수 없으니 앞서 말한 보증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진국 회사들이 보증을 해줄 수 있는 이유는 전에 유사한 케이스를 많이 해보았기 때문이죠. 해봤으니까 ‘이대로만 설계하면 원하는 성능이 나온다’는 것을 보장해줄 수 있는 겁니다. 우리도 사실 설계도면만 그리라고 하면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보증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전체 1조 원이 드는 플랜트 공사에서 설계비 1,500억 원을 벌겠다고 나서서 보증을 해주었다가, 만약에 잘못되면 1조 원을 보상하게 되는 일이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니 겁이 나서 직접 할 생각은 못 하고 계속 사 오게 되는 겁니다.

 

국내 모 엔지니어링회사가 너무 급하고 절박해서 미국에 있는 어떤 설계회사를 M&A 해봤답니다. 그래도 안 되더랍니다. 회사는 한국 회사에 속하게 되었는데도 설계 엔지니어링을 안 가르쳐주더라는 거죠. 경험이란 결국 사람들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M&A를 해도 안 되니 이번에는 강제로 연합팀을 만들었답니다. 그 회사의 핵심 엔지니어와 한국 엔지니어링회사의 엔지니어를 하나의 팀으로 묶어서 공동으로 책임을 지게 했답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아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만 조금 이야기해주더랍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와 노하우를 보호하는 데 굉장히 철저한 거죠.

 

교과서나 논문에는 나와 있지 않은 축적된 경험지식이야말로 선진국들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보루, 선진국 기술경쟁력의 결정체거든요.

 

또 다른 문제는 플랜트에 들어가는 핵심기자재를 자체 생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장은 공급자가 전 세계에 몇 곳 없기 때문에 구매자들이 가격에 대한 조정을 협상할 수 있는 여지도 거의 없습니다. 공급자가 달라는 대로 지불하고 기자재를 받아 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전체 공사 비용에서 수익은 얼마 남지 않게 됩니다.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겨우 8~10%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데, 만일 어떤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수익은 고사하고 대규모 적자로 이어질 수 있는 높은 리스크를 갖는 프로젝트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계 최고 명문대학에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은 많아도 국내 엔지니어링산업이 요구하는 고급 엔지니어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국내의 가장 우수한 인력을 선발해서 세계적인 메이저 회사에 인턴으로 보내서 취직을 시키자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 5년, 10년, 15년 동안 그곳에서 일을 한 후에 계속 남아도 좋고 돌아와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개념설계 및 기본설계,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핵심기자재, 이 두 분야에서 우리가 못 가진 핵심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진국의 메이저 산업체에 가서 배우고 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관련된 기술은 선진국들이 절대로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습득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한국 산업은 지금까지 논문이나 특허처럼 공개된 정보를 보고 따라잡아 왔는데 이 방법은 이미 다 노출되어 중국과 인도가 똑같은 방법으로 매우 빠르게 우리를 따라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핵심기술의 장벽을 뛰어넘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느냐, 아니면 뒤따라오는 중국,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 선상에 남게 되느냐 하는 역사적 갈림길 앞에 서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몇조 원이 투자되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프로젝트는 아니더라도 엔지니어링을 포함한 소규모 플랜트를 중국 회사가 맡을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는 것입니다. 개념설계와 기본설계 모두를 중국 회사에 맡기는 거지요. 처음 건설하는 플랜트는 설계 오류나 최적화 미숙으로 수율이 60% 정도밖에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몇 번 해보며 설계 경험이 축적되자, 자체적으로 전체 설계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수율 또한 급격히 올라가서 일부 수水처리플랜트 같은 경우는 선진기술에 거의 근접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이 같은 자체 설계 역량 강화 정책을 시행한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것은 중국이나 인도가 다 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다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똑똑하면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중국이 우리만큼 열심히 하는 데다 똑똑하고 돈까지 많으니 위기일 수밖에 없는 거죠.

 

중국은 정부가 중간에 나서서 기업이 자국 시장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상세설계 분야에서는 국내 5대 엔지니어링회사와 3대 중공업회사를 포함해서 수만 명의 인력이 있습니다. 누가 틀을 잡아 놓으면 자세하게 채우는 것이 상세설계입니다. 물론 상세설계도 상당한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데, 이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경쟁력이 있습니다. 또 수천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잘 관리해서 주어진 기간 안에 끝낼 수 있는 엔지니어링Engineering, 구매Procurement, 시공 Construction 부분도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수준입니다. 그런데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앞쪽의 피드 영역의 설계인력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며, 초대형 프로젝트를 계약·기획·관리할 인력이 없다는 것도 또 다른 큰 문제입니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한국 건설회사들이 중동에 진출하면서 점차 경험을 쌓고, 일을 빨리 또 열심히 하며 책임감도 높다는 평가를 얻었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경쟁력을 가진 EPC 분야에서는 미국이나 일본도 진출할 엄두를 못 낼 정도가 되었습니다. 럼썸 방식으로 계약하는 것도 우리나라가 책임감이 있으니까 하는 거지 선진국은 좀 거칠게 말하면 약아서 안 합니다. 그래서 중동 국가들이 제일 선호하는 것이 바로 한국 기업입니다. 그러니 설계 부분과 기자재 부분만 자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겠죠.

 

MIT 등 미국 명문대학의 문제점은 미국의 산업계가 워낙 경쟁력이 높고 박사도 많고 보유하고 있으니까 학교로부터 직접 도움받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기업이 학교에 원하는 것은 우수 인력 공급이나, 새로운 이론이 나왔을 때 개념 정도를 소개받는 것이지, 실제 설계 문제에 관해서는 학교와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설계와 같은 영역은 미국의 명문 대학교들도 할 능력이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500명, 1,000명씩 모여서 수행하는 일을, MIT 교수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학교가 하는 것은 설계에 대한 개념을 강의하고 설계 이론을 연구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박사과정을 거쳐도 실질적으로 설계는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학교에서 실제 설계를 하고 있는 한국이 더 나은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한국 대학이 무비판적으로 MIT 모델을 따라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늘 최고를 지향하다 보니 MIT의 예를 자주 드는데, 저는 대학도 우리 환경에 맞는 발전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공과대학들에서는 산학 연구가 대단히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교수가 되려면 산업체 경험이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어느 독일 대학교의 총장님을 만났더니 자기 대학의 세계 순위가 실력에 비해 낮게 나온다고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세계 공과대학의 순위를 보면 독일 대학들의 순위가 한국의 서울대나 카이스트보다도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과연 그 대학들이 서울대나 카이스트보다 실력이 떨어질까를 생각해볼 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은 산학 간의 밀접한 교류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어서 대부분 영문판인 국제학술지들에 많은 논문을 게재하는 것이 부차적인 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정체되어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우리도 학술 논문 게재 건수를 높여서 세계 랭킹을 높이는 것보다도 우리 국민이 잘살 수 있도록 산학협력을 더욱 활성화시켜 독일과 같이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과거 국내의 많은 플랜트 엔지니어링회사들이 ‘석사, 박사 필요 없다. 우수한 학부 출신이면 된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박사들을 채용하면 너무 학술적인 것만 하면서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대개 산업체에서 최소 4년 정도는 지나야 적응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맞는 석박사 과정을 만들자고 해서 설립한 것이 EDRC입니다. EDRC에서는 박사과정에서 학위 자체를 현장설계 문제를 가지고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 많은 교육 과목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세계 최초로 이런 프로그램을 시도하는 것이죠.

EDRC에서 진행하고 있는 또 하나의 사업은 우리의 우수 인재를 선발하여 세계 초일류 기업에 해외인턴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외국 대학으로 인턴을 보낸 예는 상당히 있으나 세계 초일류 기업에 인턴을 보낸 적은 전혀 없습니다. 사실 미국 명문대 재학생조차도 엑슨모빌이나 쉘과 같은 세계 초일류 회사에 인턴으로 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희 EDRC에서는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설계 과목들을 제공하여 우수한 성적을 받고, 영어 성적도 좋은 학생들을 선발한 다음, 해외 메이저 기업에 특공대처럼 인턴으로 보내자는 생각입니다. 보통 그런 회사들은 인턴을 뽑을 때 3단계에 걸친 인터뷰를 해서 우수한 인재를 뽑고, 진짜 일을 시켜본 후에 그중에서 절반 정도를 정직원으로 선발합니다. 그런 곳에 ERDC가 우수한 인재를 양성해서 직접 보증까지 해주면서 보내자는 거죠. EDRC에서 이수한 과목의 성적이 어떠했는지, 교육과정 중에 기업의 실제 설계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 그 과정을 통해 나타난 성격이나 인내력, 창의력 등은 어떤지에 대해 서술하고, 그에 덧붙여 회사에서 원하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돌려보내라고 비행기 표까지 제공해서 보내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현재 우리 산업의 앞길에 놓인 장벽은 논문을 보고 얻은 지식만으로는 쉽게 뚫고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MOOC(Massive On-line Open Course) :: MOOC는 ‘온라인 공개 수업(Massive Open Online Course)’의 약자다. 보통 ‘무크’라고 읽는다. MOOC의 사전상 의미는 ‘대규모 사용자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온라인 공개 수업’이다. 일반적으로 대학 수업을 온라인으로 접속해 들으면서 동시에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강의를 MOOC라고 표현한다. 광범위하게는 테드(TED)같은 1회성 강의도 MOOC에 포함되고, 유료 강의도 역시 MOOC로 보기도 한다. MOOC는 2012년께부터 본격적인 관심을 받았으며, 최근엔 MOOC 플랫폼 수도 점점 늘어나면서 그 영향력이 확장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MOOC - 전세계 대학 수업을 온라인으로 듣다 (용어로 보는 IT, 이지현)

 

5. 기술을 아는 CEO가 없다 - 신창수(에너지자원공학과 / 에너지자원 기술서비스)

관련된 분야의 기술 전문가들이 채용되더라도 꾸준히 기술적 역량을 축적할 기회는 없이, 그저 단순한 기술행정원으로 이리저리 떠돌게 되어 있습니다.

 

특허를 출원하고 라이센싱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돈이 있으면 중요한 기술개발 결과는 논문도 쓰지 말고, 특허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당연히 자본을 투입해서 스스로 스케일 업을 해야지요.

제가 개발한 것은 프로토타입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원래 이 단계에서 라이선스를 주는 것은 사실 아까운 일입니다. 바로 이어서 실제 자료로 보정계산calibration을 하고, 제3의 외국기관에 그 결과를 보내서 확인verifiation받고, 인증을 받으면 그때부터는 핵심자산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도 자본이 필요하고, 경험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돈이 없기 때문에, 간단히 말해서 이런 후속 작업을 할 정도의 컴퓨터를 못 갖추고 있기 때문에 라이선스를 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현재 제 기술을 가져간 글로벌 회사가 지금은 저보다 그 기술의 장단점과 가능성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잘 쓰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글로벌 기업 내부에 있는 고도의 기술 전문가들이 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실제 데이터를 적용해가면서 기술을 더 심화시켜 나간 것이지요.

 

논문 게재도 마찬가지이지만, 핵심기술 분야에서 특허를 출원한다는 것은 사실 정보를 공개하는 행위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카피해 가라고 알려주는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회사의 변리사들과 핵심 기술자들은 내가 아무리 강력하게 특허의 청구항claim을 걸어두어도 시간이 좀 걸릴 뿐, 결국 우회해나가는 방법을 다 찾아냅니다. 우스갯소리로 돈 있는 자가 훔치면 도둑이 아니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능력과 자본이 있다면, 특허는 안 내는 게 맞지요. 스스로 돈을 들여서 스케일 업하고, 핵심비밀로 하고, 그걸 바탕으로 수주하고, 경쟁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특허란 것은 돈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는 정말 최후의 수단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글로벌 기업에 라이센싱하기 전에 먼저 국내에서 제 기술을 스케일 업하려고 여러 군데 접촉해보았습니다. 희한하게도 다들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라이센싱한 기업에 이메일을 보내서 이런 기술이 있는데 관심이 있느냐고 연락했더니, 바로 비행기 타고 날아와서 검토하고 라이선스를 체결했습니다. 그 후에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기업이 가지고 가서 내부 역량으로 스케일 업해서 자신들의 핵심자산의 일부로 만들어 잘 쓰고 있지요. 우리 기업과는 아주 대조적인 행보인데, 생각해볼 점이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술을 이해하는 경영자가 적으니 기술 축적을 하는 데 관심이 없고, 기술은 아웃소싱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모두 시행착오의 과정을 오랫동안 축적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입니다. 이렇게 축적된 지식에 관한 것은 교과서가 없습니다. 절대로 안 가르쳐줍니다.

 

글로벌 무대에서는 모든 기업이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은 것, 특허, 논문, 잡지에 실리지 않은 것들을 핵심자산으로 해서 경쟁하고 있습니다.

 

무정전 전원장치(UPS) :: 무정전전원공급장치라고도 한다. 일반 전원 또는 예비 전원 등을 사용할 때 전압 변동, 주파수 변동, 순간 정전, 과도 전압 등으로 인한 전원 이상을 방지하고 항상 안정된 전원을 공급하여 주는 장치이다. 컴퓨터의 보급 확대와 더불어 그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 방송, 산업 등 신뢰성이 요구되는 시스템이 증가함에 따라 병렬운전 UPS의 도입이 확산되고 있으며 정보화 사회로의 급진전으로 모든 시스템이 네트워크화 됨에 따라 UPS도 네트워크상에서 관리할 필요성이 증대되었으며 공급자인 UPS 제조업체에서도 원격으로 감시, 제어할 뿐만 아니라 원격 진단, 사후 관리를 함으로서 제품의 고부가가치화, 신뢰성 제고 및 경비절감 등을 꾀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UPS [uninterruptible power supply]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단순성에서 창의성이 나오고, 복잡성에서는 테크닉이 나옵니다. 창의적인 것은 핵심적인 개념의 변형에서 오는 것이지, 복잡한 문제를 푸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도 기초적인 개념에 대한 고찰이지 복잡한 수식풀이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기본적인 개념을 몸으로 확실히 체득해서 알아야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사람도 열역학적인 기초개념이야 이해했겠지만, 요즘 개발된 그런 복잡한 열역학 관련 수학 문제를 완전히 이해하고 그걸 풀어서 만든 게 아닙니다. 몇 가지 기본개념만을 확실히 이해한 채,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라이트 형제도 나름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고는 하지만, 요즘 비행기 설계하는 사람들처럼 베르누이 정리를 이용해서 복잡한 편미분방정식을 풀어서 비행기를 만든 게 아닙니다. 이런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이 문제 푸는 테크닉이 아니라 정말 기초가 되는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SCI 논문 1편이 아니라 10편보다 강의 하나 잘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이렇게 좋은 강의를 해야 창의적인 학생들이 생기고, 대학원에 좋은 학생들도 들어오고, 우리 연구 수준도 올라갑니다. SCI 논문 많이 쓴다고 강의를 소홀히 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닙니다.

 

SCI :: 미국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Clarivate Analytics)가 구축한 국제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를 뜻한다. 애널리틱스사는 매년 학술적 기여도가 높은 학술지를 엄선하고, 동 학술지에 수록된 논문의 색인 및 인용정보를 데이터베이스(SCI DB)화하여, 이를 필요로 하는 수요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SCI에는 방대한 양의 과학기술정보가 수록되어 있으며, 특정 논문이나 책 등이 얼마나 많이 인용되었는지, 또 어떤 다른 논문에 인용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매년 전 세계에서 출판되고 있는 과학기술저널 중에 자체 기준과 전문가의 심사를 거쳐 등록 학술지를 결정한다. 따라서 SCI의 등록 여부는 세계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학술지 평가기준이 된다. 또한 SCI의 인용도에 따라 과학논문의 질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SCI의 수록 논문 수 및 인용도는 국가 및 기관 간의 과학기술 연구 수준을 비교하거나 연구비 지원, 학위인정 및 학술상 심사 등의 반영자료로도 활용된다.
SCI에 등재된 논문 중 10년 동안 인용 빈도가 상위 0.1%에 속할 경우 국제적 영향력을 지닌 최우수 논문으로 평가되며, 최근 2년 내 발표된 논문 중 상위 0.1%는 핫페이퍼(hot paper)라고 부른다.
한편, 애널리틱스사는 SCI외에 사회과학논문 인용색인(SSCI: Social Science Citation Index), 예술 및 인문과학논문 인용색인(A&HCI: Art and Humanities Citation Index) 등도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6. 급속한 ICT 패러다임 변화의 물결 속에 한국이 잠기고 있다 - 이병기(전기정보공학부 / 정보통신)

흔히 통신산업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용어를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정보통신 융합의 시대에 들어섰기 때문에 통신만 따로 떼어내서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정보와 통신이 함께 어우러지는 정보통신산업, 혹은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산업이라고 칭하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ICT산업은 다른 산업과 성격이 조금 달라서, 제조와 서비스가 긴밀하게 합쳐진 산업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휴대폰을 생각해보면, 그 자체는 제조업의 산물인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서비스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단말기를 만들거나, 무선통신장비를 만드는 것은 제조업의 영역이고, 이러한 장비를 이용하여 기지국을 설치하고 통신망을 구축하여 통신사업을 하는 것은 서비스 영역입니다. 이처럼 ICT산업은 제조산업과 서비스업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돌아갑니다.

둘째, ICT는 특정 분야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산업에 활용 가능합니다. 소위 ‘전통산업의 ICT화’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ICT는 모든 산업에 인프라로 들어가서 효율을 향상시켜주는 수단으로 쓰입니다.

셋째, ICT는 정부에서 규제를 하는 산업입니다. 산업체를 정부가 지원해서 부양하려고 노력하는 다른 산업들과 달리, ICT서비스 분야에서는 정부가 오히려 규제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규제를 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서비스사업자들 간에 경쟁을 고취해서, 이용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통신시장을 예로 들어본다면, 만약 공정한 경쟁이 되지 않고 특정 회사가 독점해서 시장이 왜곡되는 경우에 신규사업자의 진입을 허용해서 시장 경쟁구도를 조절하는 등의 기능을 합니다.

 

제조업에 관련된 부분을 먼저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통신산업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시점이 1986년에 한국통신에서 TDX라는 전자교환기를 개발했을 때입니다. 사실 TDX는 미국의 AT&T가 오래전에 개발했던 전자식 교환기를 거의 모방하다시피 해서 만든 것이었어요. 그렇지만 우리나라 ICT산업 발전 과정에서는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TDX로 인해 우리나라 전화요금이 매우 저렴해졌고, 누구나 전화를 가질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대용량 교환기를 만들거나 광전송 장비를 만드는 등 우리나라 통신 제조업이 점차 발전하기 시작했고 세계적인 무대에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TDX :: TDX 전전자교환기는 1986년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된 세계 10번째의 전전자교환기이다. 전전자교환기(TDX) 개발은 한국의 과학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사건이며, 통신·인터넷 분야 강국으로 자리잡게 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1976년부터 국산 전전자교환기 개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1977년 한국통신기술연구소(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전신)가 발족, 본격적인 개발계획 수립과 더불어 연구개발이 시작되었다. 결국 1·2차 시험기 개발을 기반으로 1981년에 3차 시험기가 제작되어, 1982년 7월 경기도 용인군 송정우체국에 362 전화가입자를 대상으로 시험운용하기 시작했다. TDX는 반수동으로 작동되던 전화자동교환기를 전전자교환기로 교체함으로써 전화 적체를 해소시켰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전전자교환기 개발이 이뤄져, 유선·무선·인터넷용 교환기 기능이 하나로 통합되는 등 통신기술 발전에 일조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TDX전전자교환기 (매일경제, 매경닷컴)

 

TDX가 나온 지 10년 후인 1996년에 우리나라가 CDMA 상용화 제품을 개발해내면서 세계적으로 ICT 기술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CDMA는 2세대(2G) 무선통신 방식 중의 하나인데, 이론적으로만 가능했던 것을 우리나라가 상용화 개발에 성공하면서 CDMA의 종주국으로 부상했습니다. 그 후 CDMA 단말기나 네트워크 장비들도 모두 개발했는데, 안타깝게도 정작 외국에 많이 수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각국의 통신사업자들과 제조업체 간에 긴밀한 협력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로운 사업자를 들여오려면 예전 사업자와의 관계를 끊어야 하는데, 기존의 통신장비를 유지보수하면서 서비스를 해야 할 필요도 있기 때문에 기존 사업자를 등한히 할 수 없습니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해외시장에 들어가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그 이후로 무선 4세대4G로 진입하기 전에 우리나라가 크게 승부를 걸었던 게 와이브로WiBro입니다. 이 기술은 기존의 GSM이나 CDMA 방식이 아니라 이와는 전혀 다른 올아이피All IP의 인터넷 방식이었습니다. GSM, CDMA가 전통적인 통신 방식이라면 와이브로는 인터넷에 쓰이는 IP 패킷 방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유리한 점이 있었습니다. 통신기술은 아무리 좋은 기술이어도 세계적인 표준이 아니면 쓸 수가 없는 법인데, 우리나라가 앞장서서 와이브로를 세계 표준으로 만들기까지 했어요. 그리고 시스템도 경쟁 시스템보다 2년이나 먼저 개발했지만, 안타깝게도 꽃피우지 못했습니다. 시기적으로 3세대(3G) 이동통신서비스와 충돌한 점도 있지만, 정부의 실책도 컸습니다. 와이브로가 너무 빨리 확산되면 3G 시장이 축소될까 봐 와이브로를 적극적으로 확산시키는 정책을 쓰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시 정부에서 판단을 잘못한 셈이고, 그래서 결국 타이밍을 놓쳐버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상용화되지 않으니 해외에 진출할 때에도 신뢰를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주춤하는 사이에, 에릭슨Ericsson 사가 주도한 LTE 시스템이 완전히 세계 표준으로 굳어지게 되었죠.

 

CDMA :: 미국의 퀄컴(Qualcomm)에서 개발한 확산대역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이동통신방식으로 사용자가 시간과 주파수를 공유하면서 신호를 송수신하므로 기존 아날로그 방식(AMPS)보다 수용용량이 10배가 넘고 통화품질도 우수하다.
확산대역(spread-spectrum)기술을 사용한 다중접속방식의 한 종류로서 부호분할다중접속·코드분할다중접속라고도 한다.
확산대역통신이란 전송하려는 신호의 대역폭보다 훨씬 넓은 대역폭으로 신호를 확산시켜 전송하는 것으로, 신호의 전력밀도가 낮아지므로 신호의 존재유무를 검출하기 어렵다. 또한 수신기에서는 수신된 신호를 역확산시키는 과정에서 원래의 신호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확산할 때에 사용한 부호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므로 통신의 비밀이 보장되며, 외부의 방해신호는 역확산 과정에서 반대로 확산되므로 통신을 방해하지 않는다.
다중접속기술은 한정된 자원을 많은 사용자들이 공유하는 방법으로 주파수분할, 시간분할, 공간분할, 극분할 및 부호분할 따위가 있다. 그러나 코드분할을 제외한 다른 방식들은 각각의 물리적인 영역에서 직교분할되어 사용자간에 간섭이 없지만, 코드분할의 경우는 부호로만 분할되어 있으므로 간섭이 크다.
이 방식에는 신호를 확산시키는 방법에 따라 직접시퀀스(direct sequence) 방식과 주파수도약(frequency hopping) 방식, 그리고 이 두 가지 방식을 합한 하이브리드(hybrid) 방식이 있다. 직접시퀀스 방식에서는 송신하려는 디지털 데이터에 주기가 훨씬 짧은 확산부호를 곱하여 주파수 대역폭을 넓히고, 주파수도약 방식에서는 신호의 반송파 주파수를 확산부호에 따라 변화시킨다. 이때 디지털 데이터의 주기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경우와 느리게 도약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는 1991년부터 국책연구과제로 지정되어 1995년 연구개발에 성공하여 세계에서 처음으로 1996년 1월부터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CDMA [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WiBro :: 무선 광대역 통신(휴대 인터넷) 서비스로 Wireless(무선) + Broadband(광대역)의 약자 합성어이다.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한 2006년 상용화되었으나 5G기술 도입 등 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2019년 부터 서비스가 종료됐다.
와이브로는 시속 100km 안팎으로 달리는 차에서도 인터넷에 접속해 대용량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고 인터넷 전화까지 할 수 있다. 36면 분량의 신문 한 부를 0.7초, MP3 10곡은 24초만에 내려 받을 수 있다. 와이브로 전송속도는 최대하향(다운로드) 240Mbps 상향(업로드)6 Mbps로 고속하향패킷접속(HSPDA)대비 1.4배에서 3배정도 빠르다.
2007년 10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파총회(RAㆍRadio Assembly)가 와이브로를 포함하는 모바일 와이맥스(Mobile Wimax) 표준을 ITU의 IMT-2000 표준 중 하나로 채택했다. 3세대 이동통신 국제표준의 6번째 표준으로 채택됐다.
와이브로는 한국에서 기술을 개발하면서 붙인 이름일 뿐 모바일 와이맥스(IEE 802.16e)와 사실상 동일하다. *와이파이, 와이맥스, 와이브로 무선 인터넷 기술은 와이파이(WiFi)에서 와이맥스(WiMax)로, 와이맥스에서 와이브로로 진화해 왔다. 와이파이의 사용가능 환경은 기지국 중심으로 반경 30~200m이고 와이맥스의 사용가능 지역은 기지국 중심 1~45㎞ 정도이다. 와이브로는 사용 가능 지역이 이보다 더 확장되 초고속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와이브로 [WIBRO] (한경 경제용어사전)

 

정부는 플랫폼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직접 현재의 시장을 상대로 사업을 하거나 개발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부가 직접 사업에 관여하는 것은 옛날 얘기입니다. 우리가 농경사회에서 제조업사회로 막 진입했을 때는 우리나라 국민의 80%가 농사를 짓고 있었고, 제조업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를 때입니다. 그때는 정부가 민간보다 먼저 배워서 경제기획원을 만들고 상공부도 조직해서 정부 주도로 산업개발을 밀고 나갈 필요가 있었고, 그 결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매우 다릅니다. 지금처럼 기업이 고도의 전문성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나가고 있는 시대에 정부가 어떻게 비즈니스에 대한 전문성을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산업화시대처럼 정부가 주도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그것을 깨치지 않는 한 지식창조시대에 성공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10년, 20년 후의 먼 미래를 보고 기초원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는 회사는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국가가 앞장서서 꾸준하게 지원해서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곳에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투자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 경기를 부양하고 당장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에 집중해서 자금과 노력을 투자하는데, 이것은 문제입니다.

 

1990년대 들어서서 PC 통신을 할 때만 해도 기존에 전화 통신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보냈었어요. 그 후 ADSL을 거쳐, 2000년대 들어와서 인터넷이 점점 발전하면서, 데이터 통신 방식이 회선 방식에서 IP 패킷 방식으로 완전히 바뀌게 되었죠. 즉 예전에는 전화를 걸어서 전화를 끊을 때까지 회선을 독점하기 때문에 사용한 시간에 따라서 돈을 냈다면, 패킷 방식은 패킷이라는 소포에 자기 정보를 넣어서 전달하면 되기 때문에 회선을 독점하지 않고, 싼값으로 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ADSL 망이 점점 넓어지고 기술이 발달하니까 패킷을 좀 더 빠른 속도로 보낼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음성까지도 패킷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죠. 올아이피All-IP 패킷 방식이 4세대 이동통신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기존의 교환기는 필요 없어지고, 데이터를 소통시키는 라우터 같은 장비들이 중요해졌습니다. 그에 따라 교환기를 만들던 회사들은 쇠락의 길을 걷고, 라우터를 만드는 회사들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산업의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ADSL :: 기존의 전화선을 이용하여 컴퓨터가 데이터 통신을 할 수 있게 하는 통신수단이다. 별도의 회선을 설치하지 않고도 기존에 사용하던 전화선으로 통신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1988년 미국의 벨코어가 주문형 비디오(VOD)의 상용화 서비스를 위해 개발한 기술이다. 그러나 VOD의 상용화가 진척되지 않아 ADSL도 크게 부각되지 못하였다. ADSL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인터넷 붐과 함께 통신속도가 문제가 되면서부터이다.
ADSL은 전화국과 각 가정이 직접 1:1로 연결되며 전화국에서 사용자까지 데이터가 내려가는 하향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최저 1.5Mb 이상의 고속 데이터 통신이 가능하고, 반대로 사용자로부터 전화국까지의 상향 신호는 상당히 느리다. 따라서 상하향이 같은 대칭형 서비스가 아닌 비대칭형 서비스라고 한다.
장점은 전화선이나 전화기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고속 데이터 통신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한 전화선으로 일반 전화통신과 데이터 통신을 모두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모뎀은 전화와 데이터 통신을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 ISDN은 동시 사용이 가능하지만 데이터 통신 속도가 절반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ADSL은 음성통신은 낮은 주파수 대역을 이용하고 데이터 통신은 높은 주파수 대역을 이용하기 때문에 혼선이 일어나지 않고 통신속도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쌍방향 서비스로 이루어지는 원격진료나 원격교육 같은 서비스에서는 효율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ADSL [Asymmetric Digital Subscriber Lin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인터넷을 만들어냈던 컴퓨터산업이 점점 통신 기능과 융합하면서 일으킨 것이 ‘스마트 빅뱅’, 그리고 이것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애플의 아이폰이죠. 7년 전까지만 해도 애플은 통신사업자들에게 전혀 관심거리도 아닌 회사였습니다. 컴퓨터만 만들었으니까요. 그런 컴퓨터회사였던 애플이 지금은 통신시장을 완전히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예전의 통신서비스는 간단했습니다. 통신사업자가 있고, 거기에 장비를 공급하는 제조사가 있고, 사용자는 통신사업자에게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 간단한 구조였죠. 100년 동안 이런 구조를 유지해 왔었죠. 2세대 이동통신과 더불어 데이터 콘텐트가 새로 들어왔지만 그때까지도 콘텐트 공급회사들은 통신사업자들을 경유해서 사용자들에게 콘텐트를 제공했었습니다. 그런데 애플이 들어오면서 세상을 바꿔 버렸습니다. 애플이 제조업체와 통신사업자 중간에 앱스토어app store라는 열린 장마당을 들여놓은 거예요. 콘텐트 공급자는 이 앱스토어를 직접 상대하게 되면서 까다로운 통신사업자를 상대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단순히 앱스토어에 올려놓기만 하면 수익의 70%를 콘텐트 공급자가 가져가고 나머지 30%는 앱스토어를 관리하는 쪽에서 가져가니, 통신사업자는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죠. 전혀 다른 게임의 룰이 생긴 겁니다.

 

통신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비즈니스의 환경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예전에는 벤처중소기업이 만든 제품을 세계 시장에 판매하려면 광고도 해야 하고 세계적인 판매망도 구축해야 했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니 주저앉아 버리는 경우가 많았겠죠. 그런데 지금은 콘텐트를 앱스토어에 올려놓고 거기서 광고도 하고, 소비자도 원격구매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런 것들이 벤처중소기업의 숨통을 틔워주었습니다.

방송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핵심은 콘텐트입니다. 송출하는 것은 사실 한 회사가 해도 됩니다. 사실 그편이 비용이 훨씬 덜 들고 송출 품질에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방송국의 본질은 콘텐트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채널을 채워주는 모든 것들이 콘텐트라고 볼 수 있는데 축구 경기도, 드라마도, 무대공연도 모두 콘텐트입니다. 축구선수도, 작곡하는 사람들도,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도 모두 콘텐트를 만드는 사람들이죠. 그런 면에서 보면 통신이나 방송 모두 콘텐트를 유통하는 하나의 채널에 불과해졌습니다. 콘텐트는 세계적으로 유통이 가능하죠.

 

그런데 이런 개별적인 콘텐트를 수출하는 것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디즈니 채널이나 BBC 채널처럼 채널 자체를 수출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데 현재 해외에 수출된 한국 채널은 한두 개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한국 콘텐트 수출경쟁력의 실상입니다. ‘대장금’ 드라마 하나는 단편적으로 팔리고 끝납니다. 계속해서 수출이 일어날 수 없죠. 그래서 채널을 만들어서 세계 각국에 내보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채널을 양질의 콘텐트로 채워야 하고, 그런 콘텐트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문화 강국이 된다는 게 다른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 콘텐트가 세계 각국에 팔려나가서 세계의 시청자들이 우리나라 콘텐트를 시청하게 될 때 우리가 문화 강국이 되는 거예요.

 

구글도 애플과 마찬가지로 본래 제조업체가 아닙니다. 앱스토어를 둘러싸고 애플과 경쟁을 해야 하니까 구글은 애플이 콘텐트 제조업자들로부터 받는 30%의 수수료도 받지 않고 그것을 통신사업자들에게 돌려주면서 통신사업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입니다. 여기에 광고주들도 끌어들여서 수입은 광고로부터 취하면서 전체적인 콘텐트 생태계가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구글의 방식입니다. 이렇게 애플과 구글이 제각각 앱스토어를 중심에 놓고 우군들을 모아서 에코 클러스터, 즉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 빅뱅 이후에는 ICT산업의 경쟁이 생태계 간의 경쟁으로 변했습니다. 판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빅뱅‘의 정체입니다.

 

한가지 애석한 것은 5G만을 위해서 남겨둔 획기적인 신기술이 없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기술들을 조합해서 새 표준에 맞추는 것이지요. 이것은 1984년 미국 벨 시스템의 붕괴 이후 트랜지스터, 레이저, 셀룰러 개념 등과 같은 기초원천적인 발명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모든 회사가 목전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할 뿐, 누구도 인류의 장래를 위한 기초원천 연구는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산업체 연구원들은 실현 가능한 것에 집중하지만, 대학의 학생들은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캡스톤 디자인 :: 공학계열 학생들에게 산업현장에서 부딪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졸업 논문 대신 작품을 기획, 설계, 제작하는 전 과정을 경험하게 하는 교육 과정을 뜻한다.
즉 산업 현장의 수요에 맞는 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창의적 종합 설계'라고도 한다.
캡스톤은 돌기둥이나 담 위 등 건축물의 정점에 놓인 장식, 최고의 업적 · 성취를 뜻하는 단어다.
[네이버 지식백과] 캡스톤 디자인 [capstone design] (한경 경제용어사전)

 

산업현장에서 멀어지면 추상적으로 학문을 하게 돼요.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창의력이라는 게 머리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만들고 궁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겁니다.

 

올해 인터넷 강의를 활용해봤는데, 먼저 제가 스튜디오에 가서 강의를 녹화해서 올려놓으면 학생들은 미리 그 자료를 보고 공부하고, 실제 수업시간에는 강의 내용에 대한 질문을 받거나 토의하는 것으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실제로 학생들의 성적 분포가 달라지더라고요. 기존 강의 방식에서는 A+가 조금 있고 C가 많았는데, 강의 방식을 바꾸고 나서 A, B 학점을 받는 학생의 비율이 높아졌어요. 큰 강의실에서 칠판도 잘 보이지 않고 산만한 분위기에서 공부하다가 인터넷 강의를 통해 모니터 바로 앞에서 일대일 강의처럼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으니까 확실히 효과적인 것이죠. 이제는 그렇게 공부해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대학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를 서두르지 않으면 장차 학생들이 외국 대학의 강의를 인터넷으로 보고 듣고, 우리나라 교수들은 그 인터넷 강의의 조교가 돼서 질문이나 받아주는 처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양질의 강의를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비싼 등록금을 내고 공과대학을 다녀야 할 분명한 이유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만약 전통적인 방식으로 대학 졸업한 사람이나 인터넷 강의를 듣고 학점 이수한 사람이나 실력이 똑같다면 회사 입장에서도 대학 졸업생을 채용할 특별한 이유가 전혀 없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학생들이 이런 능력을 다 갖추어서 졸업하도록 해서, 인터넷 강의만 들은 사람들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듣는 것이 공과대학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이고,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대학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길입니다.

 

7. 기초와 응용을 넘어선 제3의 지식, 아키텍처의 영역에 도전하라 - 박영준(전기정보공학부 / 나노 · 바이오 응용)

반도체는 보통 두 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메모리죠. 메모리가 전체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 정도 될 겁니다. 전 세계의 반도체시장이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대략 300조 원쯤 되니까 메모리시장은 90조~100조 원 정도 되는 규모죠. 한국 회사들이 그중에서 70% 정도를 점유하고, 나머지 30%를 일본과 대만 회사들이 나누고 있습니다. 메모리시장에서는 현재 한국이 현재 절대강자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200조 원 규모의 비메모리시장에서는 한국이 10%도 안 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메모리시장에서의 절대강자는 인텔, 퀄컴, 그리고 TSMC라고 하는 대만 회사인데 TSMC는 외부 업체가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받아 생산·공급하는 파운드리foundry 회사죠.

 

파운드리 :: 반도체의 설계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으로부터 제조를 위탁받아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파운드리의 원래 의미는 짜여진 주형에 맞게 금속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의미하였는데, 1980년대 중반 생산설비는 없으나 뛰어난 반도체 설계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반도체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고 파운드리의 개념이 반도체 산업에 적용되어 쓰이기 시작하였다.
반도체 산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은 크게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팹리스(Fabless), 파운드리, OSAT(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and Test) 네 가지로 구분된다. IDM은 설계부터 최종 완제품까지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기업이며, 팹리스는 반도체 설계만을 전담하는 기업이다. OSAT는 파운드리가 생산한 반도체의 패키징 및 검사를 수행한다. IDM 중 일부는 자사의 반도체뿐 아니라 다른 기업의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기능을 함께 수행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IDM이면서 파운드리 기능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IDM이 수행하는 파운드리와 구분하기 위해 설계 능력이 없는 기업들이 수행하는 파운드리를 ‘퓨어 플레이 파운드리(Pure Play Foundry)’라 부르기도 한다.
1987년에 세워진 대만의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가 최초의 파운드리 회사이며, 이외 UMC(United Microelectronics Corporation),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GlobalFoundry), SMIC(Semiconductor Manufacturing International Corporation) 등이 대표적인 파운드리 기업에 해당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파운드리 [Foundry]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우리나라 기업의 임원들과 이야기하면서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ICT, 심지어 바이오, 메디컬, 플랜트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아키텍처, 그리고 그 아키텍처를 만드는 설계자, 즉 아키텍트arthitect가 존재하는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적어도 반도체, ICT 분야에는 좀 심하게 얘기해서 아키텍트가 없습니다. 모두 매일 현업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조금 더 큰 시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부족하죠

비메모리라는 용어보다는 시스템 IC라는 용어가 더 정확한 표현인데, 시스템 IC라는 용어 안에 바로 아키텍처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인텔이 지금까지 메모리 분야의 아키텍처를 정해주고 있죠.

 

과거에는 데이터센터들이 모두 하드디스크 중심이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점점 하드디스크가 낸드플래시 메모리NAND flash memory로 대체되고 있죠. ICT 분야의 기술 경쟁에서 절대 명제가 ‘저전력과 속도’라고 한다면,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회사들의 입장에서는 데이터를 빨리 보내주고 전력이 적게 소모되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하드디스크가 싸니까 큰 데이터를 하드디스크에 저장하고, 데이터를 처리할 때 반도체 메모리로 가져온 다음 CPU로 처리해서 전송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지금 기준으로는 하드디스크가 너무 느려서 이것을 반도체메모리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메모리 필요량이 절대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현재 메모리 분야가 호황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덕분에 메모리를 주로 만드는 국내 반도체회사들의 실적이 좋은 것이지요.

메모리 분야는 지금까지 아키텍처가 덜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마치 건물을 짓는 사람이 유리창의 크기를 다 정해주는 것처럼, 인텔이 아키텍처를 정하면서 메모리의 기능과 스펙을 다 정해주었으니까요. 그러나 인텔이 정해주는 건물의 지배력이 약해지고 있고, 새로운 건물 구조에서 새롭게 메모리에 대한 의존도는 급속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메모리 부문에서도 아키텍처가 중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낸드플래시 메모리 :: 전원이 꺼지면 저장된 자료가 사라지는 D램이나 S램과 달리 전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메모리에 데이터가 계속 저장되는 플래쉬메모리의 일종. 데이터의 저장 및 삭제가 자유롭다. 시스템반도체가 데이터를 우선 인식하거나 연산하면, 단기 저장장치인 D램을 거쳐 낸드플래시에 저장된다.
플래쉬메모리는 내부방식에 따라 NOR 형과 NAND형으로 나누는데, NOR형이란 셀이 병렬로 연결된 방식이고, NAND형이란 셀이 직렬로 연결돼 있는 구조다. 낸드플래쉬메모리는 USB드라이브, 디지털 카메라나 MP3 등에 쓰이는 메모리카드 등이 있다.
한편 노어플래쉬메모리는 MMC카드나 Compact flash 메모리에 쓰인다. NAND형은 NOR형에 비해 제조단가가 싸고, 대용량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NOR형은 NAND 형에 비해 더 빠르며 데이터의 안정성이 우수하다. 2020년 10월 말 현재 삼성전자와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분을 인수한 SK 하이닉스가 각각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1위와 2위로 일본 도시바(3위)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NAND Flash Memory] (한경 경제용어사전)

 

한국이 현재 메모리에서 절대강자의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은 우리 자신도 잘 모르는 사이에 메모리에 대한 플랫폼을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전 세계 R&D, 상품, 마케팅 등의 흐름이 플랫폼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반도체 공정의 예를 들어 플랫폼의 의미를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반도체는 전체 설계에서 시작해 청정실에서의 복잡한 공정을 거쳐 만듭니다. 거기에 수십억 개의 요소들이 잘 작동하는지 신뢰성 측정도 잘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패키징을 하는데 이 기술도 엄청난 하이테크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시스템을 플랫폼이라고 하는데, 한국이 이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겁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100조 원이라도 투입해서 사람과 장비를 사서 시스템을 갖출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산업의 사이클이 굉장히 빠르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30나노 기술 공정에서 25나노로 내려가면 가격과 전력 소모 면에서 경쟁력이 비교가 안 되게 올라가지요. 30나노 기술만 가지고 있는 회사는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30나노에서 25나노 공정으로 가는 데 3년을 기다려주는 시장이 아닙니다. 지금은 그 사이클이 6~8개월 정도입니다. 그사이에 앞서 말한 설계부터 패키징까지 모두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기술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반도체 공장에 12인치짜리 웨이퍼가 매달 1만~2만 장이 들어갑니다. 이것이 모두 매끄럽게 들어가는데 단 하나의 에러도 있으면 안 됩니다. 오류를 범했을 때 다시 해볼 수 있는 사치를 누릴 시간이 없습니다. 이 산업의 짧은 사이클을 고려할 때 한두 번 실패하면 도태되어버리는 게임이니까요. 30나노 공정에서 20나노 공정으로 바꿀 경우, 사실은 이것이 엄청나게 바뀌는 것인데요, 이것을 기존 기술에서 어떻게 바꾸어 안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해 통계적 가능성 여부까지 짧은 시간 안에 알아낼 수 있는 전체적인 플랫폼을 바로 한국 회사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후발주자는 플랫폼 기술을 구축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입할 수 없는 시장의 대표적인 예가 D램 분야입니다. 그 플랫폼을 중국이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만일 지금 엄청난 투자를 해서 3년쯤 뒤에 인력과 시스템을 갖춘다고 해도, 그때쯤 되면 이미 경쟁 상대가 두세 단계 앞서 가 있을 것을 알기 때문에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부문으로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플랫폼, 기술의 체계를 한국이 가지게 된 비결을 무엇으로 보시나요?

매우 단순합니다. 지난 30~40년간 한국 최고의 인재들이 반도체 분야에 공급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전자과에 최고 인재들이 입학하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 말부터입니다. 그 인재들이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물론 정부와 기업도 좋은 결정을 했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이죠. 비단 전자 분야뿐 아니라 재료, 물리, 화학, 화공 등의 분야에 좋은 인력들이 갔고 그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공헌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미래의 위기요인 중 하나는, 지금 누구나 걱정하고 있듯이 최고의 인재들이 이 분야로 유입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새로운 아키텍처는 결국 제품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역할을 합니다. 노키아와 애플을 비교해보세요. 우리가 들고 다니는 휴대폰을 애플은 들고 다니는 컴퓨터로 봤고, 노키아는 통신기기라고 봤죠. 휴대폰을 컴퓨터라고 정의한 순간 애플에게 경쟁력이 생긴 겁니다. 저는 스티브 잡스가 아키텍트였고 좋은 아키텍트들을 곁에 많이 두고 있었다고 봅니다. 바로 이 아키텍처를 가진 혁신가의 생각이 노키아와 애플의 성쇠를 가른 것이죠.

 

우리가 서울공대를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여갈 것인가를 많이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아키텍처를 찾고자 하는 질문입니다. 가령 현시점에서 북한의 상황이 어떻고, 전 세계 에너지 부문의 동향이 어떻고, 선진국 시장의 상황이 어떻고, 중국의 동향이 이러하다고 할 때, 우리 공대는 향후 10~15년을 내다보는 전망을 해야 합니다. 이 전망을 바탕으로 그에 걸맞게 어떤 학생들을 어떻게 선발하고, 학부와 대학원 교육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를 매년, 매달 토의하고 모니터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공학교육의 설계자인 아키텍트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 작업을 하면서 계속해서 계획을 만들고, 세운 계획을 업데이트하고, 그 실행을 위해서 집약된 노력을 하는 중에 아키텍처가 다듬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실행 전략과 교수 그룹도 길러지고, 행정력도 길러지고, 미래에 산업의 아키텍처를 끌고 갈 인력도 길러집니다.

물론 학생들이 방정식을 푸는 능력과 같은 각론에 해당하는 역량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컴퓨터 아키텍처의 디테일한 기술적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일을 해냈다고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디테일은 그런 면에서 중요합니다. 현재 우리 교육과정을 보면 대학교 1학년 동안 교양과정에서 각각 흩어져 있는 과목을 배웁니다. 전기공학부 같은 경우는 회로, 오래전부터 배워왔던 전자기학 등 각론을 배웁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이렇게 세부 각론을 배우면서도 비록 학생들 스스로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전체의 일관된 흐름 속에서 그것을 공부하도록 해서 아키텍처를 볼 수 있고,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공학교육의 철학, 공학교육의 아키텍처가 현재 우리 교육체계 안에 있느냐에 대해선 전 의문을 갖습니다. 요약하면 각론도 중요하지만 아키텍처가 있어야 각론이 빛을 발합니다.

 

어떤 학부가 있다고 할 때, 시장이 앞으로 장단기적으로 어떻게 변할지, 중국은 어떻게 변할지를 전망해야 하고, 그럴 경우 어떤 강의가 어떤 방식으로 행해져야 하고, 이에 맞추어 어떤 학생을 뽑을지, 그 학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지를 정하는 것이 고등학생 중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드는 학생들을 어떻게 더 뽑아 올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현재의 문제는 공대 안에 아키텍처를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사고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설계자인 아키텍트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스템 IC 부문에서 아키텍트의 부재로 인해 현재 한국의 반도체회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이름난 대학들에서는 아두이노Arduino라는 사물인터넷 플랫폼을 이미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두이노는 이탈리아에서 만든 일종의 오픈 소프트웨어인데 IoT를 디자인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해외에서는 벌써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것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례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플랫폼을 이용하면, 아이디어를 구현해내기가 쉬우니까요.

그런데 우리 공대에서는 제가 여러 번 칼럼을 쓰고 학교에 건의했는데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스탠퍼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소프트웨어 분야의 세계 최고의 대학 아닙니까? 그 스탠퍼드대학 전기공학부에서는 아두이노를 전격적으로 커리큘럼에 반영하여 교육과정에 쓰고 있습니다. 제가 아누이노의 팬이어서가 아닙니다. 지금 IoT는 전기공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흐름을 바꾸는 문제이기 때문에 얘기하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폰이 전 세계를 바꿔놓았듯이 이번엔 IoT가 전 세계를 바꾸어놓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IoT의 등장이라는 큰 아키텍처의 변화에 직면해서 우리 공대는 이것을 이렇게 해석하고, 이런 비전을 가지고 있으니, 앞으로 이런 학생을 선발하고, 이렇게 교육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초ㆍ중ㆍ고 교육에도 메시지가 가고, 심지어 사교육 학원도 바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전기나 센서 전공하는 사람들만의 문제입니까?

마찬가지로 빅데이터 문제도 그렇죠. 그것이 왜 전기전자공학, 소프트웨어 전문가들만의 문제입니까? 건축을 바꾸고, 사회의 가치를 바꾸고, 비즈니스를 바꾸는 것인데 말입니다.

 

아두이노 :: 물리적인 세계를 감지하고 제어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객체들과 디지털 장치를 만들기 위한 도구로, 간단한 마이크로컨트롤러(Microcontroller) 보드를 기반으로 한 오픈 소스 컴퓨팅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을 말한다. 
아두이노는 다양한 스위치나 센서로부터 입력 값을 받아들여 LED나 모터와 같은 전자 장치들로 출력을 제어함으로써 환경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단순한 로봇, 온습도계, 동작 감지기, 음악 및 사운드 장치, 스마트 홈 구현, 유아 장난감 및 로봇 교육 프로그램 등의 다양한 제품들이 아두이노를 기반으로 개발 가능하다. 또한 아두이노는 회로가 오픈소스로 공개되어 있으므로 누구나 직접 보드를 만들고 수정할 수 있다.
마이크로컨트롤러란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입출력 모듈을 하나의 칩으로 만들어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작은 컴퓨터를 말한다. 아두이노는 이러한 마이크로컨트롤러 보드와 관련된 개발 도구 및 환경을 모두 포함한다. 아두이노는 처음 아트멜(Atmel AVR) 마이크로컨트롤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용도에 따라 다양한 보드가 있으며 개발 툴과 여러 기능에 대한 라이브러리가 제공되고 있다. 아두이노와 유사하게 피지컬 컴퓨팅(Physical Computing)을 가능하게 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와 플랫폼은 다양하지만 아두이노는 마이크로컨트롤러를 기반으로 하는 작업을 단순화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다양한 강점을 가진다.
1. 저비용 : 아두이노 보드는 다른 마이크로컨트롤러 플랫폼에 비해 저렴하다.
2. 크로스 플랫폼 : 아두이노 소프트웨어는 윈도우즈, 맥OSX, 리눅스 운영체제 모두에서 작동한다.
3. 간단하고 명확한 프로그래밍 환경 : 아두이노 프로그래밍 환경은 초보자들이 사용하기 쉬울 뿐 아니라 실력자들이 여러가지 다양한 시도를 하기 위한 유연성을 제공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통합개발환경(IDE)가 제공되며 컴파일 된 펌웨어(특정 하드웨어 상에서 동작하는 소프트웨어)를 USB를 통해 손쉽게 업로드 할 수 있다.
4. 오픈 소스 : 아두이노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는 오픈 소스 툴이기 때문에 고급 프로그래머들에 의해 작성된 확장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들을 구할 수 있으며, 회로 설계자들이 손쉽게 자신만의 모듈을 만들고 개선할 수 있다.
최초의 아두이노는 2005년 이탈리아 이브레아(Ivrea)에서 시작되었다. 마시모 반지(Massimo Banzi) 교수와 데이비드 쿠아르티에예스(David Cuartielles) 교수는 인터랙션 디자인 전문학교(IDII)에서 공부하는 하드웨어 미숙련자 및 비전공 학도들을 위해 기초적인 지식만으로도 쉽게 프로그램 작성이 가능하고, 또한 저렴하게 구입 가능한 마이크로컨트롤러 보드를 개발하고자 하였다. 아두이노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오픈소스로 개방되면서 수많은 개인과 기업들이 아두이노를 기반으로 다양한 모양과 성능의 아두이노 및 아두이노 호환 보드를 개발하였으며, 2013년에는 70만 개의 아두이노 공식 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두이노 통합 개발 환경은 소스 코드를 작성하고 편집할 수 있도록 하며, 코드를 아두이노 하드웨어가 이해할 수 있는 명령어로 컴파일하여 보드에 이를 업로드 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소스코드는 C++ 언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아두이노에서는 C 언어의 표준라이브러리 함수가 사용 가능하다. 아두이노 하드웨어는 실세계와 연동되어 동작하는 센서, 가속도계, LED, 스피커, 디스플레이 등의 여러 구성품들이 쉽게 탈부착 가능하도록 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을 통해 작성되고 업로드 된 코드(명령어)가 실행된다.
다음의 그림은 아두이노 제품 중 megaAVR 시리즈 중 주요 모델인 Uno 보드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두이노 [Arduino]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플랫폼의 전환, 즉 아키텍처의 변화에 직면해서 이것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는 대학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글로벌 최상위권 대학의 특징이 바로 구성원들이 매일 아침 함께 아키텍처에 대해 고민을 한다는 겁니다. 그곳의 교수들은 커피 마시면서, 길거리에서, 점심 먹으면서 매일 아이디어를 얘기하고, 어떻게 할지 대책을 얘기하고, ‘우리 것보다 나은 것 같은데?’라고 판단되는 아이템들이 있으면 가져다 쓰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램버스Rambus를 창업한 바 있는 호로비츠Mark A. Horowitz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분야의 구루인 사람이 스탠퍼드대학에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두이노를 가지고 IoT 디자인을 가르치는 실험 과목의 책임을 맡았더라고요. 이런 것이 바로 차이를 만듭니다.

 

원천기술과 응용기술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어느 것이 중요한지를 두고 쓸모없는 논쟁을 반복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런 논쟁은 시간 낭비이자 핵심을 비껴가는 논쟁입니다. 공대는 원천기술을 잘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그것을 응용기술로 옮기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이들이 모두 제가 말하는 설계자, 즉 아키텍트와 함께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모두 필요한데 논쟁을 하다 보면 자꾸 0 아니면 1의 선택의 문제로 빠지기 때문에 끝이 안 나는 거죠.

 

현재 세계적인 트렌드는 회사가 직접 원천기술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상용화하는 추세가 아닙니다. IBM이나 벨연구소Bell Lab가 탁월한 원천기술을 스스로 개발하고, 비즈니스도 만들었다고 알려졌는데 그것은 옛날 얘기죠. 현재는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도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일을 안 합니다. 대학, 특히 미국 대학에서 싸게 잘한다는 것을 아니까 한국의 중소기업도 글로벌하게 외국 대학의 기술을 찾습니다. 한국 기업이니까 당연히 서울공대에 맡길 거라는 기대는 우리 스스로 하는 착각입니다. 회사들은 투자 대비 성과를 생각합니다. 전 세계 비즈니스 트렌드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사이클이 짧아지면서, 실수를 용납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에 원천적인 것은 대학이나 상대적으로 값이 싼 솔루션을 가진 사람들에게 맡기는 추세입니다. 우리도 그런 점에서 대학과 기업이 서로 역할이 다르다는 점을 빨리 인식하고, 상호보완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8. 반도체, 7~8년 뒤가 문제다 - 이종호(전기정보공학부 / 반도체 소자)

한국 반도체산업의 위기는 핵심인력의 위기입니다. 사람에 대해서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LSI(large scale integration) :: 대규모 집적회로 또는 고밀도 집적회로. IC에 포함되는 소자의집적도가 높은 것, 설계·제조 등의 기술도 IC보다 훨씬 높다. 집적도는 칩 1개당 논리회로를 1백∼1만개, 기억용량으로 64킬로바이트 정도로 소형화, 저소비 전력화, 고속화를 실현하고 신뢰성의 고도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 소자가 1천개 넘는 IC를 LSI라 부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LSI [large scale integration] (한경 경제용어사전)

 

사람의 나라, 중국에 똑똑한 학생이 저렇게 많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 2개 학교만 합쳐도 학생 수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미국에 다녀온 적도 없는 학생들이 영어도 막힘 없이 자신감 있게 잘합니다.

 

제가 국내 반도체회사 인사담당 임직원들께 시간 나면 중국 베이징대, 칭화대 가서 학생들을 한번 만나보고 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말로 전하면 실감이 안 날 테니 직접 한번 보고 오시라고요. 직접 보면 소름 끼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거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가 중국 우시에 진출하기 전에 국내 반도체 관련 인사들은 중국이 반도체는 함부로 시작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었습니다. 반도체 생산라인 하나에 5조 원 또는 그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데 누가 함부로 시작할 수 있겠느냐고 했었죠.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 중국 정부가 100조 원 이상이 들더라도 하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중국의 규모에서 실제로 100조 원을 동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일본은 정부가 100조 원씩 투자 안 합니다. 기업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죠. 하지만 중국은 다릅니다. 정부가 전략산업이라고 판단하고, 충분한 국내외 인력과 어느 정도의 실력이 있다는 확신이 서면, 안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몇 년 전에 모 회사의 경영진이 굳이 국내 인재를 쓸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기술 중심적인 산업에서는 기술을 잘 아는 똑똑한 한국의 인재가 주도권을 쥐고, 그다음에 여러 나라의 인재와 같이 일할 수는 있겠지만, 그 반대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핵심인력을 키워내는 데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거기에 필요한 재원의 일부는 기업도 같이 투자해야 합니다. 대학의 책임 있는 자리에 계신 분들이 한국의 큰 기업과 같이 논의해서, 그 기업의 사업과 관련 있는 분야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 교육혁신을 할 수 있도록 대학원생이나 대학생 교육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해달라고 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차피 그렇게 육성된 인재가 그 기업에서 일하게 될 테니까요. 기업에서 미리 대학에 있는 인재에게 투자를 해서, 그렇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 단 10%의 질적 향상만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향후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 지속적으로 더 큰 발전과 성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저도 제가 연구하는 것이 미래에 먹거리 산업이 될지 안 될지 단정 지어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적어도 서울대학교에서 월급을 받고 있다면, 회사가 생각하지 못하고 선진국의 대학에서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그것이 영향력을 가지도록 하고, 나아가 그걸 가지고 산업계가 돈을 벌게 하는 식의 활동을 끊임없이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가능한 한 기존과는 다른 방향에서 먼저 시도하고, 그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를 구축하여 관련 기술을 장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설사 기존의 기술 영역에서 후발국이 추격을 해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확보된 기술로 새로운 사업을 해가면서 또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계속해서 만들어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부단히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앞서 제가 말씀드린 10% 더 높은 경쟁력을 가진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나마 벤처로부터 성장해서 대기업이 되었다고 평가되는 회사들 대부분이 게임회사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기업들이 게임사업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만일 도덕적인 비난을 무릅쓰고 게임사업에 진출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지금 있는 게임회사들은 인력이나 기술이 빠져나가서 어려움에 처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주요 대학의 기술개발 풍토를 보면 아주 미래의 기술을 연구하는 것과 새롭지만 실용성이 높은 연구를 하는 경우로 나누어지는 것 같아요.

 

국내에서는 연구과제를 선정할 때 기술 실용화보다는 ‘높은 인용지수를 갖는 저널에 논문을 출판했느냐’, ‘인용지수가 얼마냐’ 등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실용화에 대한 도전정신이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에서는 팬시fancy한 연구, 상업적 가치와 상관없이 학계에서 많이 언급되고, 선진국에서 유행하는 키워드와 관련된 연구에 매달리게 되죠. 그렇게 되면 한국의 미래는 더 어두워집니다.

 

기술은 과학이라서 과학적인 기준을 벗어날 수 없거든요. 관련 기업에서 어떤 기술을 개발한다고 하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결국 어느 범위에 다시 들어오게 되어 있으니까 약 5년 정도 뒤의 것을 예상해서 준비할 수 있습니다.

 

기업도 당연히 할 수 있죠, 왜 못하겠습니까? 단지 담당하는 사람들이 당장 내년에 자신의 거취가 어떻게 될지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더 먼 앞을 내다보고 미래를 준비할 기술을 예측하려고 노력한다거나, 투자한다거나, 필요한 노하우를 축적하려는 생각을 하기 어렵겠죠. 회사 담당자에게 새로운 기술적 토대가 등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내년이면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데요. 특히 대기업 구조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장 자신들이 질문해서 듣고 싶은 얘기를 듣고 나면 나머지는 필요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상황의 제약에서 오는 당연한 귀결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말씀하신 대로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루틴이 계속되면, 지금까지 우리 대기업들이 해왔듯이, 누군가 앞서 갔던 길을 빠르게 뒤쫓아 가는 것은 할 수 있어도 리더의 위치에서 패러다임을 설정해나가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정책 관계자에게 의견을 이야기했더니 미국, 일본, 유럽이 안 하는데 왜 한국이 해야 하느냐고 말하더군요.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으니 정부기관에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최근 그런 차원에서 제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있는데요, 정부가 아니라 오히려 한 기업의 연구재단이 그것을 하라고 지원해주더군요. 제가 보기에 오히려 그런 것은 공공 R&D로 이루어져야 할 부분인데 말이죠.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기 위해 연구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하고 꼭 필요한 국가 R&D 전략입니다.

 

9. 반도체의 성공 경험이 모든 사업에서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 황기웅(전기정보공학부 / 디스플레이)

우리나라 기업들이 반도체사업을 시작할 때, 당시의 우리 수준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메모리 디바이스에 먼저 치중을 하다 보니까, 기업에서도 우선 메모리 중심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엔지니어를 계속해서 요구해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사업의 주안점도 반도체 공정이나 공정 재료 쪽 연구에 치우쳤기 때문에 시스템 IC 분야는 연구개발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의 인력 양성이 제대로 되지 못했던 겁니다.

 

만약 특정 산업에서 패러다임이 바뀌어서 한국이나 중국이 똑같은 선상에서 출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가 꼭 유리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중국이 엄청난 투자를 바탕으로 우수 인력도 몰려들고, 인건비도 싸기 때문에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업계 내부에서 이제 디스플레이산업은 중국에 넘겨줘야 할 산업이 되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들마저 나오는 상황입니다.

 

많은 분이 어떻게 해서 삼성전자나 LG디스플레이가 단기간에 소니나 파나소닉 같은, 당시에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대기업들을 누르고 세계 시장을 제패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물어봅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동성, 순발력을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국내 기업이 LCD 디스플레이 최신 생산라인을 새로 짓는 것과 같은 큰 투자 결정을 내릴 때, 최고의사결정권자가 결정을 해서 하자고 하면 바로 그다음 날부터 땅을 파기 시작하고, 동시에 기계 발주 내면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일본은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이사회까지 거치는 동안 아주 신중하게 검토에 검토를 거듭하느라 1~2년 결정이 늦어졌습니다. 디스플레이산업에서 1년이라는 시간은 엄청난 경쟁 격차가 벌어질 수 있는 시간입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그룹의 오너 경영구조가 특정 산업에서는 좋은 역할을 한 면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일본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기에 굉장히 어리석은 짓을 했습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의 방송표준을 정할 때 아날로그 기술을 그대로 끌고 간 겁니다. 자국의 표준을 국제 표준으로 밀어붙이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했지요. 반면 한국은 국제 표준을 따라서 디지털로 갔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신속한 결정이 있었고, 그에 따라 과감한 투자를 했고, 또 세계적인 기술의 변화를 우리가 정확히 파악해서 국제 표준을 선택해서 나간 것이 복합적으로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우리가 일본을 누르고 세계 시장을 제패할 수 있었던 겁니다.

 

중국이 저렇게 빠르게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한국을 따라올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장비ㆍ재료회사들의 기술적 지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중국 회사에서는 장비를 발주할 때 그와 관련된 공정기술까지 모두 요구합니다. 국내 회사들이 주춤하면서 투자 결정을 못 내리고 있을 때, 중국 회사들은 중앙 정부나 성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공장을 지으면서 한국 장비회사들을 대거 불러들였습니다. 중국에서 이 장비를 쓰면 어떤 장점이 있는지 데이터를 가지고 설명해달라고 요구하니, 업체 입장에서는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이렇게 학습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 회사들을 추격하는 데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수월성 교육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평균을 지향하면 최고 수준에 있는 학생들 수준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나중에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상대들은 소수의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시장에 나가면 1등 아니면 명함도 못 내밉니다. 세계 최고의 한두 개 회사가 시장을 독식하지, 10~20등에게까지 파이가 내려오지 않습니다. 강조하지만 평균적인 인재를 많이 길러 내는 것보다 소수여도 세계 시장을 뒤흔들 탁월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중요할 때입니다.

그런데 여러 교수님이 우리 대학원에 들어온 학생들 수준이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상위 20~30%에 속하는 수준의 학생 비중이 예전에는 그래도 40~50%였다면, 지금은 10~20%밖에 안 되는 실정입니다.

 

10. 시스템업체의 소재부품업체 수직계열화 방식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 김형준(재료공학부 / 반도체 소재)

반도체산업은 크게 메모리반도체와 비메모리반도체로 나눌 수 있는데, 비메모리반도체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쓰는 용어이고 통상 시스템반도체라고 하지요. 일반적으로 전 세계 반도체시장의 80% 정도가 시스템반도체이고, 메모리반도체가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약 60%에 이르는 시장점유율로 단연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또 기업들이 메모리반도체에서 확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연관 산업인 디스플레이산업이나 태양광산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장벽이 낮은 디스플레이와 태양광 부문은 중국의 추격으로 시장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우리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서 기반이 되는 것은 결국 반도체산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메모리반도체 공정과 관련해서는 우리 기술력이 중국에 비해서 훨씬 앞서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이 부문에 큰 규모의 투자를 하더라도 한국을 추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메모리 사업을 시작하기보다는 한국 기업들의 공장을 자국에 유치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의 시안과 우시에 공장을 세웠지요. 그러나 중국은 향후 10년간 1조 위안, 우리 돈으로 약 180조 원을 투자하여 반도체를 국산화하겠다고 지난 6월에 발표하였습니다. 또한 세계 3위 메모리반도체회사인 미국의 마이크론 사를 중국 업체가 인수하겠다고 할 정도로 반도체 분야의 무역수지 적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실리콘을 재료로 사용할 때 가능한 미세공정의 한계가 7나노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리콘 이외의 다른 재료, 예를 들어 산화물, 칼코제나이드chalcogenide, 그래핀graphene과 같은 재료가 차세대 반도체의 재료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재료를 바꿈으로써 한계를 극복하려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도전 방향은 반도체의 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집적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메모리 디바이스는 현재까지 크기를 계속해서 줄이며 발전해왔습니다. 같은 크기의 칩에 들어가는 트렌지스터의 숫자를 계속해서 비약적으로 늘려온 것입니다. 피치pitch 크기가 10나노라는 것은 20나노였을 때보다 같은 면적에 들어가는 트렌지스터 개수가 4배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저장 용량의 증가와 함께 에너지 효율의 개선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집적도를 향상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대안이 반도체를 적층 구조로 만드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예전 방식이 단위면적당 짓는 단독주택의 수를 늘려가는 것과 유사하다면, 적층 구조는 고층 아파트를 지어서 집의 수를 늘려가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흔히 V-NANDVertical-NAND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입니다. 또는 실리콘 관통전극TSV, Through Silicon Via 공정을 이용해서 칩과 칩을 수직으로 쌓는 방식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습니다. 면적은 똑같이 유지하면서 메모리 집적도를 높이는 새로운 방법입니다.

 

그래핀 :: 탄소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자 1개의 두께로 이루어진 얇은 막.
연필심으로 쓰이는 흑연 즉 ‘그래파이트(graphite)’와 탄소이중결합을 가진 분자를 뜻하는 접미사 ‘-ene’를 결합하여 만든 용어이다. 2004년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연구팀이 상온에서 완벽한 2차원 구조의 그래핀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는데, 당시 연구팀은 스카치테이프의 접착력을 이용하여 흑연에서 간단하게 그래핀을 떼어냈다고 한다.
흑연은 탄소를 6각형의 벌집모양으로 층층이 쌓아올린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래핀은 흑연에서 가장 얇게 한 겹을 떼어낸 것이라 보면 된다. 탄소동소체(同素體)인 그래핀은 탄소나노튜브, 풀러린(Fullerene)처럼 원자번호 6번인 탄소로 구성된 나노물질이다.
2차원 평면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두께는 0.2nm(1nm은 10억 분의 1m) 즉 100억 분의 2m 정도로 엄청나게 얇으면서 물리적·화학적 안정성도 높다.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고, 반도체로 주로 쓰이는 단결정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전자를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다. 강도는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며, 최고의 열전도성을 자랑하는 다이아몬드보다 2배 이상 열전도성이 높다. 또 탄성이 뛰어나 늘리거나 구부려도 전기적 성질을 잃지 않는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그래핀은 차세대 신소재로 각광받는 탄소나노튜브를 뛰어넘는 소재로 평가받으며 ‘꿈의 나노물질’이라 불린다. 그래핀과 탄소나노튜브는 화학적 성질이 아주 비슷하고, 후공정을 통해 금속성과 반도체성을 분리할 수 있다. 하지만 탄소나노튜브보다 균일한 금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산업적으로 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래핀은 구부릴 수 있는 디스플레이나 전자종이, 착용식 컴퓨터(wearable computer) 등을 만들 수 있는 전자정보 산업분야의 미래 신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래핀 [graphen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옥사이드(oxide, 산화물) :: 산소와 다른 원소와의 2원화합물의 총칭으로 산소의 다른 원소에 대한 친화력 때문에 주로 발생하며, 공유결합성 분자로 이루어진다. 비금속원소의 산화물은 주로 산성산화물이며 금속원소의 그것은 염기성산화물이다. 산화수가 중간인 경우는 양쪽성산화물을 생성하기도 한다.
산소는 다른 원소와 친화력이 강하여, 비활성기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원소와 화합물을 만드는데, 일반적으로 원소 간의 직접반응 또는 산화제와의 작용에 의해서 생성된다. 정확하게는 산소와 플루오린을 제외한 원소와의 화합물을 말한다. 예를 들면, 탄소나 황 또는 금속마그네슘을 산소 속에서 연소시키면, 각각 이산화탄소 CO2, 아황산가스 SO2, 산화마그네슘 MgO 등의 산화물을 얻는다.
산화물 중에서 전형적인 비금속원소의 산화물은 대부분 공유결합성 분자로 이루어지며, 일반적으로 물에 녹아 산을 생성하므로 산성산화물이라고 한다. 이것들은 비금속원소의 전기음성도가 약해지면 산으로서의 성질이 약해져서 거대분자를 생성하여 물에 난용성이 되는 경향이 있다. 또 전형적인 금속원소의 산화물은 대부분 O2-을 함유하는 이온결정이며, 물에 녹아 알칼리성을 보이므로 염기성산화물이라 한다.
또한 산성산화물과 염기성산화물을 생성하는 중간 원소의 산화물은 산에 대해서는 염기, 염기에 대해서는 산으로 작용하므로 양쪽성산화물이라 한다. 한 금속원소가 몇 개의 산화수를 보이는 것에서는 산화수가 높은 산화물은 산성산화물, 산화수가 낮은 산화물은 염기성산화물, 중간의 것은 양쪽성산화물을 생성하는 일이 많다.
[네이버 지식백과] 산화물 [oxide, 酸化物]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세계적인 반도체회사로 인텔이 있습니다. 부동의 세계 1위 반도체 제조회사입니다. 인텔은 PC에 사용되는 시스템반도체인 CPU를 제작합니다. 인텔은 이런 CPU 하나만 생산 판매해서 세계 1위의 반도체회사가 되었고, 기술적으로도 가장 앞서 있는 반도체 제조회사입니다. 삼성을 비롯하여 많은 반도체 제조회사가 인텔의 CPU를 능가하는 반도체 칩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결국은 실패하였습니다. 기술적인 장벽이 아주 높다는 것을 의미하죠. 마찬가지로 중국이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서 메모리반도체의 생산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술적인 장벽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은 SMIC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시스템반도체에 집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반도체도 바로 시작하기에는 아직 기술이 많이 부족하니까, 외부 업체가 설계한 제품을 위탁받아서 생산, 공급하는 파운드리foundry 비즈니스를 먼저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대표적인 반도체 파운드리 회사인 TSMC는 파운드리 비즈니스를 통해 거의 삼성만큼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파운드리 분야에서 50%에 육박하는 세계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장도 크고 또 부가가치가 큰 분야인데, 이것을 중국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파운드리를 하려면 팹리스fabless 회사, 즉 칩 설계와 개발만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설계 전문회사들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팹리스 회사들은 모두 영세합니다. 파운드리의 고객은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하고 그것을 파운드리 회사에 맡겨서 칩을 만들어 판매할 회사들인데, 그런 고객 회사들이 한국에 없는 겁니다. 결국 칩 설계 산업이 없으니 파운드리도 안되고, 시스템반도체도 안 되고 있습니다.

 

팹리스 :: 시스템반도체의 설계와 개발만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회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자체적인 생산시설을 갖추지 않고 연구개발 인력들이 반도체 설계와 개발만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반도체 설계전문회사로, 팹리스(fabless)란 ‘제조설비’를 의미하는 패브리케이션(fabrication)과 ‘~이 없는’이란 뜻의 리스(less)를 조합한 말이다.
1980년대에 미국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디지털산업의 발전으로 각종 IT기기와 전자식 장치의 제어 및 운용을 책임지는 시스템반도체의 사용범위가 증가함에 따라 시스템반도체의 핵심인 설계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팹리스회사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으로 부각되었다. 대표적인 회사로는 CDMA 원천기술을 통해 휴대전화 반도체시장을 장악한 미국의 퀄컴(Qualcomm)과 브로드컴(Broadcom)을 꼽을 수 있다.
반도체산업의 업계는 크게 설계에서 생산까지 전과정을 수행하는 종합반도체회사(IDM),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회사, 팹리스회사나 종합반도체회사로부터 위탁받아 반도체 제작을 전문적으로 맡는 파운드리회사(foundry company), 반도체 원판(웨이퍼) 조립이나 패키징 등 후공정을 전문으로 맡는 패키징&테스트회사(packaging&test company)로 구성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팹리스 [Fabless]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제가 볼 때는 파운드리 사업을 키우려면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업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파운드리 전문회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파운드리는 팹Fab 비즈니스입니다. 즉, 설계도면을 받아서 제조 관련 프로세스를 대신 해주는 것인데, 현재와 같이 사업부의 형태로 모기업에 속해 있어서는 고객사들에게 절대로 신뢰를 줄 수 없습니다. A사 내부의 파운드리 사업부에서 고객사의 경쟁자인 휴대폰 사업부로 물량을 공급하는 현실에서 어떤 외부의 회사가 믿고 A사에 물량을 맡기겠습니까?

그러니 확실하게 파운드리 전문기업으로 독립해서 TSMC 같은 회사들과 정면으로 경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룹 내의 회사도 독립해 나간 파운드리회사에서만 독점적으로 물량을 공급받을 것이 아니라, 다른 외부 업체와 경쟁시켜서 물량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경쟁하면서 가격이 내려가고 기술도 발전하게 됩니다. 지금과 같이 사업부 형태로 내부 고객에만 공급하게 되면, 완전히 포획된 시장captive market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셈이 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정신 차리고 고쳐나가야 할 가장 큰 문제가 이것입니다. 아직도 20세기형 수직계열화된 사업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래서는 시스템업체도, 소재부품업체도 모두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 거라고 봅니다. 애플은 물론 심지어 샤오미까지도 전 세계 회사들을 상대로 양질의 가격 경쟁력 있는 부품을 납품받아 상품을 제조합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계열사들 사이의 배타적인 공급망 속에 안주하면 조만간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대학과의 협력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중장기적으로 협력해서 공동으로 연구하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인력 확보에만 관심이 있지 기술력을 높이기 위한 협력관계를 디자인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내부의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나가거나 최소한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점점 줄이고 있지 않습니까?

 

현재 반도체회사들의 사업을 보면 모든 것을 철저히 단기적인 손익 관점에서만 판단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업을 할 때 항상 ‘시장 규모가 얼마인지, 그리고 얼마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겁니다. 그런 관점으로는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하는 메모리반도체산업만큼의 시장 규모를 가진 게 어디 있습니까? 메모리반도체도 처음부터 지금의 규모를 가지게 된 게 아닙니다. 잘 준비해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꾸준히 경험을 축적해서 키워온 결과로 나중에 꽃이 핀 건데, 미래를 그런 관점에서 보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여전히 메모리반도체만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시스템반도체사업을 하려면 갈 길이 굉장히 멀고 험하니 도전을 주저하게 됩니다. 하지만 만일 국내 굴지의 반도체기업들이 시스템반도체를 포함하는 종합반도체기업으로 거듭나려면 지금이라도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기업이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을 때 과감한 투자로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제 결정을 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봅니다.

 

공학교육의 문제점 중 하나는 학부제라는 시스템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학부제를 실시하면서 기존에 있던 전공과목을 상당히 줄였기 때문에 소위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들만 키워내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제너럴리스트란 원래 다재다능한 사람을 칭하는 용어이지만, 저는 여기에서 프로패셔널과 대립되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학생들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간적인 한계 때문에 모든 분야를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학생들이 졸업할 때 적어도 한 분야는 확실하게 알고 나가야 하는데, 이것저것 얕은 지식만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제너럴리스트 수준에 머물고 프로패셔널이 되지 못합니다. 물론 학부에서 대략적인 부분을 건성으로 배우고 대학원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함양해도 되겠지만, 산업체에서는 이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부제의 문제에 더해 서로 다른 분야가 융합해야 한다는 트렌드가 유행하면서 한 분야에 대한 지식의 깊이가 더 얕아지고 있습니다. 자기 전공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가져야 그것을 바탕으로 융합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수준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공학교육의 심각한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부 교육의 목표가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인지, 혹은 제너럴리스트를 양성하는 것인지에 대해 분명한 교육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볼 때는 현재 전국의 대학이 모두 제너럴리스트를 만드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할 때 각각의 악기를 잘 다룰 수 있는 연주자들이 모여야 합니다. 이 악기 저 악기를 조금씩 다룰 줄 아는 사람들만 있거나, 또는 훌륭한 지휘자들만 모여 있다고 해서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되지 못합니다. 각자 맡은 악기의 명연주자들이 모이고, 한 사람의 훌륭한 지휘자가 모든 악기의 음향과 전체적인 연주 방향을 조율할 때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부교육은 각 악기의 훌륭한 연주자를 육성하겠다는 게 아니라 지휘자를, 그것도 어중간한 수준의 지휘자들만 육성하겠다는 목표로 운영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대 연구가 너무 논문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수들의 연구가 산업체와 점점 유리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서울대학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공과대학의 전반적인 문제입니다. 교수 입장에서는 논문으로 업적을 평가해서 신규 채용과 승진 심사에 반영하는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산학협력을 한다고 특별히 인정받는 것도 아니어서, 논문 쓰기도 바쁜데 굳이 산업체와 더불어 연구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겁니다.

 

반도체회사에서 학교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학교와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대기업들이 몇조 원에 달하는 생산라인을 가지고 아주 미세한 공정까지 다 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대학의 반도체연구소는 기업과 같은 규모의 시설을 갖출 수가 없으니 당연히 그 부분에서는 뒤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대학이 미세공정을 놓고 기업과 경쟁하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학교는 원리적인 문제, 재료의 문제 등에 대해서 해법을 찾아주는 등의 방법으로 기여할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학교와 산업체 간에 서로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면, 장점을 중심으로 협력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정부에서 반도체 연구를 계속 지원하고는 있지만, 최근 지원 규모가 대폭 줄었습니다. 산업체가 수익을 많이 내고 있으니 산업체 스스로 연구를 끌고 나가라는 취지이지요.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산업체는 인력 확보에만 관심이 있을 뿐, 학교에 연구비 지원은 거의 안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차세대 미세微細소자 등 산업체에서 장차 필요로 하게 될 것들에 대한 연구에 산업체가 스스로 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조차 안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부는 기업이 수익이 많이 나니 자체적으로 연구개발 투자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해서 손을 떼고, 기업은 중장기 기술개발에 관심이 없으니, 그 사이에서 공백이 생겼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이라는 겉모습과는 달리 국가 전체적으로 차세대를 내다보는 기술개발 투자가 줄어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도체를 연구하던 인력 중 다수가 연구비가 없어서 디스플레이나 나노, 태양광 등 다른 분야로 옮겨가고 있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당장 중국의 도전을 감안해서라도 시급하게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입니다.

 

11. 차세대 기술에 대한 투자는 시기가 있다. 놓치면 따라잡지 못한다 - 이창희(전기정보공학부 / 차세대 디스플레이)

전 세계 디스플레이산업에서 한국의 두 회사가 합쳐 약 45% 정도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어 우리나라가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OLED가 대표적인 차세대 기술인데, 국내의 한 회사는 소형화해서 스마트폰에 활용했고, 다른 회사는 대형에 집중해서 TV를 개발했습니다. 각자 자신이 가진 강점에 잘 접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OLED :: 형광성 유기화합물에 전류가 흐르면 빛을 내는 전계발광현상을 이용하여 스스로 빛을 내는 자체발광형 유기물질을 말한다. LCD 이상의 화질과 단순한 제조공정으로 가격경쟁에서 유리하다. 
유기발광다이오드 또는 유기EL이라고도 한다. 형광성 유기화합물에 전류가 흐르면 빛을 내는 전계 발광현상을 이용하여 스스로 빛을 내는 '자체발광형 유기물질'을 말한다. 낮은 전압에서 구동이 가능하고 얇은 박형으로 만들 수 있다. 넓은 시야각과 빠른 응답속도를 갖고 있어 일반 LCD와 달리 바로 옆에서 보아도 화질이 변하지 않으며 화면에 잔상이 남지 않는다. 또한 소형 화면에서는 LCD 이상의 화질과 단순한 제조공정으로 인하여 유리한 가격 경쟁력을 갖는다.
휴대전화나 카오디오, 디지털카메라와 같은 소형기기의 디스플레이에 주로 사용하고 있다. 2004년 현재 OLED의 기판 재질로는 유리를 사용하고 있으나 필름을 사용하면 구부려서 들고 다닐 수 있는 디스플레이장치를 만들 수 있다.
주요 컬러 구현 방식으로 3색(Red, Green, Blue) 독립화소방식, 색변환 방식(CCM), 컬러 필터 방식 등이 있다. 그리고 사용하는 발광재료에 포함된 유기물질의 양에 따라 저분자 OLED와 고분자 OLED로 구분하고, 구동방식에 따라 수동형 구동방식(passive matrix; PM)과 능동형 구동방식(active matrix; AM)으로 구분한다.
한국은 2004년 현재 수동형 OLED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를 달성하였으며 삼성에서는 OLED를 초대형화할 수 있는 SGS(Super Grain Silicon) 기술을 적용한 17인치 능동형 OLED 개발에 성공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OLED [Organic Light Emitting Diodes]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중국이 10년 전부터 외치던 모토가 ‘LCD에서 배워서 OLED에서는 세계를 제패하자’는 겁니다. 중국이 LCD에서는 확실히 우리에게 뒤처져 있음을 인정하고, LCD에서 기술을 배워서 차세대 기술에서는 한국을 잡겠다는 목표로 OLED 분야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R&D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LCD :: 액정표시장치 또는 액정디스플레이라고도 한다. CRT와는 달리 자기발광성이 없어 후광이 필요하지만 동작 전압이 낮아서 소비전력이 적고 휴대용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손목시계, 컴퓨터 등에 널리 쓰고 있는 평판 디스플레이이다.
1888년 오스트리아의 라이니쳐(F.Reinitzer)가 액정을 발견한 이후, 1900년대 초반에 이를 디스플레이에 이용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1960년대 미국의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와 영국의 RRE(Royal Radar Establishment)의 연구실에서 액정 기술에 관한 많은 연구를 하였다. 1970년 스위스에서 액정의 TN(twisted nematic) 효과를 발견하여 특허가 나왔으며, 이 기술을 이용하여 액정을 사용한 손목시계를 생산했다. 1971년 미국의 ILIXCO사(현재의 LXD Incorporated)에서 TN 효과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LCD를 생산하였다. 1972년 미국의 피터 브로디(T.Peter Brody)는 능동형 구동방식(active-matrix)의 LCD를 최초로 만들었다.
LCD는 구조에 따라 수동형(passive-matrix)과 능동형(active-matrix)으로 나눌 수 있다. 손목시계, 전자계산기처럼 간단하고 작은 장치에는 만들기 쉬운 수동형을 사용한다. TN-LCD를 기반으로 STN(super-twisted nematic), DSTN(double-layer STN), CSTN(color-STN) 등이 있다. 하지만 수동형은 응답속도가 느리고 높은 해상도로 만들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따라서 LCD TV, 모니터처럼 고해상도 장치에는 능동형을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TFT(Thin-Film Transistor, 박막트랜지스터)가 있다.
최근에 널리 쓰는 박막트랜지스터(TFT) 액정디스플레이는 박막트랜지스터와 화소 전극이 배열된 하판과 색상을 나타내기 위한 컬러 필터 및 공통 전극으로 구성된 상판, 그리고 이 두 유리기판 사이에 채워져 있는 액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두 유리기판의 양쪽 면에는 가시광선(자연광)을 선평광하여 주는 편광판이 각각 부착되어 있다. 상하판 전극 사이에 있는 액정으로 인해 축전기(capacitor) 및 보조 축전기가 형성되고, 이 곳에 영상 정보가 저장된다.
화소를 이루고 있는 TFT의 게이트에 전압을 인가하여 트랜지스터를 turn-on 상태로 만들면 액정에 영상전압이 입력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영상전압을 인가하여 액정에 영상정보를 저장한 뒤 트랜지스터를 turn-off 하면 액정 충전기 및 보조 충전기에 저장된 전하가 일정한 시간 동안 영상 이미지를 표시하도록 한다. 액정에 전압을 인가하면 액정의 배열이 변화하는데 이 상태의 액정에 빛이 지나가면 회절이 일어나고, 이 빛을 편광판에 투과시켜 원하는 영상을 얻는다.
1990년대부터는 액정디스플레이가 상용화되면서 시장규모가 급격히 팽창하였다. 현재에는 컴퓨터 표시장치나 TV 등의 분야에서 CRT를 대체하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LCD [Liquid Crystal Display]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최근 전 세계에서 나오는 OLED 논문의 저자들을 보면 대부분 중국계입니다. 중국에서 나오는 논문 수만 해도 우리의 10배 이상입니다. 연구자가 그만큼 많다는 것은 새로운 기술 개발이나 산업 발전의 기반이 탄탄하다는 의미입니다.

 

일본은 패널이나 TV 세트 부문에서 한동안 선두에 있다가, 우리나라에 자리를 내준 이후로는 경쟁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샤프Sharp 같은 회사에서도 더 이상 LCD를 만들어서는 원가를 못 맞추고 있습니다. TV도 옛날에는 소니 TV가 세계 최고였는데, 이제는 한국 업체들에게 선두 자리를 내주고 말았어요. 그렇지만 일본은 워낙 바닥부터 다져온 산업적 기반이 있기 때문에, 소재와 장비 분야에서는 아직 넘볼 수 없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재와 장비가 사실은 부가가치가 더 높은 분야입니다. 패널은 마진이 기껏해야 5~10% 정도인데, 소재의 경우는 독점이라면 이익률이 50% 이상이고, 웬만한 소재업체들의 이익률도 20~30%입니다. 이런 알짜배기 분야인 소재와 장비에서는 여전히 일본과 독일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죠. 그래서 우리나라는 패널과 TV 세트 부문에서 경쟁력을 잃어버린다면 디스플레이산업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중국이 이미 세트 부문에서 가격경쟁력을 앞세우며 우리나라를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중국은 아직은 OLED 패널을 자체 생산하지 못해 한국 디스플레이회사에서 수입해 세트를 조립하고 있는데도, OLED TV를 우리나라보다 싸게 팔고 있습니다. 만약 중국에서 패널까지 자체 생산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나라는 가격경쟁력에서 더욱더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추세로 보면 5년 이내에 중국이 따라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사이에 우리가 한 단계 도약하지 못한다면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OLED의 다음 세대 기술로는 양자점quantum dot LED가 주도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OLED는 유기박막으로 LED를 만드는 것인데, 양자점 LED는 유기박막 대신 반도체 나노 입자를 가지고 발광을 합니다.

 

QLED :: 스스로 빛을 내는(자발광) 퀀텀닷(양자점) 소자를 활용한 디스플레이를 뜻하며 양자점발광다이오드라고도 한다. 퀀텀닷은 물질의 크기가 나노미터로 줄어들 경우 전기적·광학적 성질이 크게 변화되는 반도체 나노 입자를 말한다. 물질 종류의 변화 없이도 입자 크기별로 다른 길이의 빛 파장이 발생돼 다양한 색을 낼 수 있으며 기존 발광체보다 색 순도, 광 안정성 등이 높은 장점이 있다.
유기물 소재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는 색의 수명이 다르기 때문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색이 변하는 번인 현상이 발생한다. 반면 QLED는 무기물(퀀텀닷)을 사용하기 때문에 수명이 길고 색 재현율이 좋다. 또한 백라이트가 있어야 하는 LCD보다 더 얇게 만들 수 있어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한편, QLED라는 용어는 2012년 디스플레이 학계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고, 2017년 삼성전자가 QLED TV를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QLED TV는 학계의 정의(기술용어로서의 QLED)와는 다른 방식인데, 백라이트 유닛(BLU)에 ‘양자점개선필름(QDEF)’을 부착해 색 재현율을 끌어올린 TV를 말한다. 이에 현재 QLED 기술은 아직 개발·상용화되지 않은 상태로, 상용화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네이버 지식백과] QLED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그 밖에도 다양한 신기술이 많았는데, 지금은 대부분 정리가 된 상황입니다. 기존의 LCD라는 거대한 산업에 도전해서 LCD를 능가할 만큼의 장점을 가진 기술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나마 살아남은 기술이 OLED입니다.

그 전에 상당히 유망했지만 주류가 되지 못한 기술 중 하나가 아마존 킨들Kindle에도 들어간 e-잉크입니다. 전력 소모가 굉장히 적어서 전자책용으로는 최고인데, 기술적으로 풀컬러full-color를 구현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결국 LCD에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자책뿐만 아니라 동영상도 같이 보기를 원하기 때문에 e-잉크는 수요를 잃어버렸습니다.

FEDField Emission Display도 7, 8년 전에는 차세대 기술 중 하나로 많이 연구되었습니다. FED는 CRT와 비슷한 원리인데, 기존 CRT가 큰 전자총에서 나온 전자를 형광체에 때리는 반면, FED는 미니 CRT처럼 화소pixel 하나하나마다 작은 전자총을 만들어 거기서 나온 전자가 형광체를 때리는 원리로 작동합니다. 속도도 빠르고 디스플레이 질도 상당히 좋으며, 화소를 반도체 공정으로 만들기 때문에 대량생산에도 유리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원가가 비싸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LCD와 PDP 디스플레이의 가격 하락 속도가 워낙 빨라 원가를 따라잡을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사라져버리고 말았죠.

현재로서는 LCD와 비교해서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술은 없습니다. OLED는 아직 비싼데도 디스플레이의 질이 탁월하게 좋으니까 프리미엄을 주고 사는 마니아층이 있어서 시장에서 남을 수 있었죠. 또한 앞으로 LCD만큼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투자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LCD에서 일본 업체가 투자 시점을 놓치는 바람에 우리나라 기업들에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한 번 투자 시점을 놓치면 OLED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 기업들에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기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외국에 수출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올라서 현재 일본 장비를 상당수 대체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내 대기업들과의 밀접한 관계 때문에 오히려 외부에 마케팅을 하는 데서 판로를 제한받고 있기도 합니다. 일종의 전속관계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베프 필름(DBEF Film; 이중휘도향상필름) :: LCD 패널에 사용되는 백라이트유닛(BLU)의 밝기를 향상시키기 위한 핵심 광학 소재. 그동안 거의 모든 LCD 패널에 사용됐지만, CCFL 및 LED 광원의 효율이 높아지고 대체 기술개발이 이뤄져 서서히 사라질 전망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DBEF [Double Bright Enhancement Film] - 이중 휘도 향상 필름 (지형 공간정보체계 용어사전, 2016. 1. 3., 이강원, 손호웅)

 

이 분야의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국내 대기업들과의 밀접한 협력관계를 통해서 사업 규모를 키웠습니다.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다 나와서 창업을 한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대기업과 밀접하게 일하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경우도 있죠. 대기업 입장에서도 소재나 장비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정책적으로 키워준 회사들이 많습니다. 대기업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라왔지만, 앞으로 더 성장하려면 이제부터는 대기업과 이어진 탯줄을 끊고 독자적으로 제품을 개발해나가면서 히든챔피언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의 디스플레이 업계 풍토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워낙 이윤이 박하기도 하고, 정말 잘되면 대기업이 흡수해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니까요. 그렇게 대기업에 흡수되고 나면 계열사로 안주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그동안 산업을 키운 공로도 있지만 중소기업들을 수직계열화해서 지나치게 통제해온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혹자는 이런 생태계를 동물원이라고 표현했는데, 중소기업은 그 동물원 울타리 안의 각자에게 주어진 영역 안에서 성장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울타리 안에만 있으면 더 클 수가 없어요. 그 틀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세계 시장에 나가야 하는데 대기업들의 통제가 여전합니다.

 

중소기업들 스스로 대기업 보호 아래 안주하는 곳도 많습니다. 대기업 하청 물량만으로도 1,000억 원까지는 고속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울타리 안에 안주하는 것은 대기업에 전적으로 자기 운명을 맡기는 셈입니다. 정말 현명한 경영자라면 자기가 우수 인력을 뽑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못 뽑으면 아웃소싱과 협력을 통해서 연구개발 과제를 해결해나가야 하는데, 과감하게 그런 시도를 하는 경영자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 1등을 하기 시작한 2007년 무렵에 공교롭게도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고, 정부 예산도 부족해지면서 오히려 디스플레이 분야에 대한 정부 투자가 둔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제 세계 1위 산업이 되었으니, 이제 국가가 주도하기보다 산업계에서 스스로 이끌어나가라며 손을 놓아버린 것이죠. 그렇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는 차세대 연구에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데 부담을 느껴, 다음 세대를 제대로 대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기적인 문제해결 위주로 가다 보니 기존에 회사들과 산학과제를 함께하던 일부 교수들만 계속 과제를 수행할 수 있었고, 그 이후에 배출된 신진 인력들은 연구비를 받기가 어려워지자 상당수 연구인력이 다른 분야로 떠났습니다.

 

세계 1등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투자가 매우 중요한데, 우리는 항상 첨단의 팬시한 것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요. 정부 지원의 경우, 산업 응용을 위한 연구를 지원할 때조차 항상 <네이처>, <사이언스> 등에 실릴 만한 연구 결과를 요구합니다. 사실 그런데 게재된 논문에 소개되는 데이터는 소량의 시료에서 얻은 최상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 실험 결과 대로 양산을 하려면 적어도 5~10년의 연구개발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연구개발 지원체제에서는 그런 수준을 목표로 제시하지 않으면 과제로 선정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높은 목표를 잡고 제안서를 내다 보니, 과제가 선정되더라도 목표 달성이 어렵습니다. 결국, 편법을 써서 개별 부분으로 쪼개서 각각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식의 결과를 내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보면 양산 가능한 제품화가 불가능합니다.

 

반도체는 차세대 로드맵이 분명합니다. 만약 올해 공정이 15나노 핀펫FinFET이라고 하면 내년에는 14나노 핀펫에 도전하는 식으로 목표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반도체는 명확하게 세계 첨단의 목표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반면 디스플레이는 그렇게 눈에 들어오는 목표를 제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현재 디스플레이 수준이 UHD(ultra high definition, 4K)까지 왔는데, UHD보다 더 높은 수준의 목표를 제시하기 힘듭니다. 물론 논리적으로야 UHD 다음에 8K로 가야 한다고 설정할 수 있지만, 이것은 비현실적인 목표입니다. 현실적인 목표라면, 예를 들어 같은 해상도라 하더라도 색감을 더 좋게 개선하는 등의 방식으로 산업계에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과제를 선정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산업에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과제를 제안하면, 이미 UHD TV가 나와서 판매 중인데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식으로 지적합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는 차세대 기술을 위한 기초적인 연구를 정부 과제로 제안해도 참신성에서 밀려 지원을 못 받고, 기업은 당장 내년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만으로도 벅찬데 어떻게 5~10년을 내다보고 준비하느냐고 생각합니다. 결국 겉보기에는 잘나가는 산업이지만, 묘하게도 차세대 기술을 위한 연구는 비어버린 셈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잘 따라잡아서 리더의 자리까지 올라왔지만, 앞으로도 계속 리더 자리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준비가 부족한, 걱정스러운 상황입니다.

 

대학 입장에서 보면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과 고생하면서 같이 연구할 동인이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크려면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중소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과제들을 많이 연구해줘야 하는데, 적은 연구비를 감수하더라도 작은 회사를 정말 키워주겠다는 의지와 인센티브가 대학에 없는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학도 대기업에서 주는 지원금에 안주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 시작부터 글로벌을 지향하지 않는 소프트웨어는 무의미하다 - 차상균(전기정보공학부 / 빅데이터)

우리나라가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하드웨어 강국이라고 하는 게 옳습니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메모리 반도체기업도 있는 등 제조업 분야에서는 확실히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제품의 가치는 부품,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로 점점 옮겨가고 있습니다. 향후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IT산업만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자체가 쇠퇴할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정부가 추진한 소프트웨어산업 진흥을 위한 큰 사업의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정책적으로 상당히 많은 지원금을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정작 그 지원금을 받을 만한 회사를 찾기가 어려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 소프트웨어산업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작은 회사들은 자체 기술보다는 대기업의 시스템 통합SI: System Integration 소프트웨어 사업 위주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이 모두 자체 SI 회사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소규모 기업들은 ‘을’의 입장에서 말 그대로 연명을 하고 있었고, 그마저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규모가 큰 회사 중에서도 소프트웨어 분야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회사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특정한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과거부터 우리 소프트웨어산업 구조의 문제가 역사적으로 누적되어 만들어진 현실입니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강점을 가지고 있는 제조업과는 속성부터 많이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제조라인 코스트가 없다는 점이죠.

 

제조라인의 비용이 없다는 것은 누구라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소프트웨어 또는 서비스를 만들어내서 그 소프트웨어를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곧바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제조업과는 다르게 누군가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어 앞서 나가버리면, 그를 뒤따라 퍼스트 무버의 상품을 카피해서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은 것 또한 특징입니다. 조그만 회사가 퍼스트 무버들이 내놓은 서비스를 따라 하면서 ‘우리는 싸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해서는 규모의 경제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승자독식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분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조건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은 글로벌 퍼스트 무버들의 제품을 카피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꾀하고 있고, 핵심기술을 개발할 역량과 의지가 없기 때문에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목표를 정해서 꾸준하게 시행착오를 축적해가면서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과거 우리나라에서 국산 OSoperating system, 국산 DBMSdata base management system 같은 프로젝트를 국가적으로 지원했지만 흐지부지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시장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근본적으로는 대부분 처음부터 아마추어적인 발상으로 이루어진 사업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실패한 경험도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실패하였던 한국산 OS와 같은 경우도, 어려움과 실패에도 경험을 계속 축적하면서 끈질기게 그것을 연구하고, 시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서 진화하려고 노력했다면 뭔가 나왔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영국 교수 중에 XEN이라는 오픈소스 기반의 가상화 클라우드 소프트웨어를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그 팀은 원래 캠브리지 대학에서 BSDBerkeley Software Distribution라는 버클리의 유닉스를 업그레이드하는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최초에 하던 프로젝트는 그다지 혁신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OS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면서 구성원들의 경험이 축적되었고, 마침내 XEN이라는 하이퍼바이저hypervisor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뭐든지 한 가지를 지속적으로 끝까지 할 수 있었다면, 거기서부터 경험이 쌓이고, 그 결과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DBMS ::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정리·보관하기 위한 기본 소프트웨어. DBMS는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수행과정인 데이터의 추가, 변경, 삭제, 검색 등의 기능을 집대성한 소프트웨어 패키지이다. DBMS는 계층형과 네트워크형, 그리고 관계형으로 나눠지며 최근에는 관계형이 DBMS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계층형에서는 이름과 같이 계층구조로 데이터를 보존유지하게 되는데 데이터를 대분류, 중분류, 소분류 등으로 분류·정리할 수 있을 경우에 계층형 DBMS가 적용된다. 네트워크형에서는 데이터끼리의 상호관계를 네트워크로 나타내는데 대규모 데이터베이스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엔 객체 지향 기술을 사용한 DBMS도 제품화돼 있다. 관계형에서는 DBMS가 정보계 시스템용으로 업계표준이 되어 있는데 최근엔 트랜잭션(transaction) 처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계의 DBMS로도 사용되게 됐다. 정보계 시스템용 DBMS는 기간시스템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사용자가 자유롭게 검색·가공하도록 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영업의 기획 등 여러 면에서 클라이언트/서버 시스템에 대응하기 쉽도록 돼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DBMS (매일경제, 매경닷컴)

 

우리나라의 성과주의 문화가 소프트웨어산업을 위축시킨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지금까지 모두 하드웨어 분야에서 나왔고, 하드웨어로 성공한 사람들이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저질러보고 경험할 기회를 아예 주지 않았고, 한 번 실패하면 재기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지원하기 위한 수단, 즉 임베디드 소프트웨어embedded software로서, 일종의 하드웨어의 부품의 하나 정도로만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소프트웨어산업은 가장 글로벌화되어 있지만, 역설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가 그만큼 어려운 산업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국내시장 위주로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생각 자체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노려야 합니다.

 

세계 시장을 겨냥해야 하는 이유는 우선 현재 국내시장에서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받는 처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적으로 소프트웨어의 값을 높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이 부족한 벤처기업들은 기술이 있더라도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도전 없이 고착된 업계의 관행이 소프트웨어 정책의 변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면도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소프트웨어 벤처기업들이 경쟁력 있는 회사로 커나갈 수가 없습니다.

세계 시장을 보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벤처기업들은 궁극적으로 해외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벤처기업들이 우리나라와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고 성장하게 되면, 해외 기업과 M&A를 하거나 국내 대기업과 M&A를 하거나, 혹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대기업이 될 수도 있는데, 어느 경우나 국가적으로도 좋은 일이지요.

 

제 경험에 비추어볼 때 우리나라 기업들이 SAP처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은, 리더십과 자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SAP는 1972년에 만들어진 오래된 기업이지만, 설립자는 여전히 혁신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연구하던 것을 SAP가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 인수했습니다. 제가 SAP에 들어가게 된 것 자체가 그 회사가 추구하던 혁신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혁신을 위해 새로운 플랫폼을 만드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자신감, 그리고 미래에 유망한 부문을 예측하고 기술과 자본을 투자하는 리더십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소프트웨어산업이 지나온 길을 살펴보면, 오라클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한동안 혁신하지 않고 정체하는 사이에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등장해서 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시장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통신회사들이 보수적으로 운영하는 동안 카카오 같은 회사가 자신들의 시장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같은 원리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에서도 SAP처럼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회사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것은 SAP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만들어놓은 시장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겠다는 자세입니다. 우리나라는 자본이 모자란 편도 아니고 소프트웨어 분야의 인력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있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는 리더십을 키우는 것입니다.

 

전 세계 사용자들의 데이터가 축적되고 그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하면 전 세계 사람들의 패턴이나 동향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를 통해서 사용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알맞게 제공할 수 있게 되거나, 나아가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할 수도 있게 되겠죠. 이것이 빅데이터 프로세싱의 기본적인 개념입니다.

 

저는 빅데이터를 분석해서 계획을 하고, 그 계획을 시뮬레이션하고, 그리고 실행하면서 계획했던 것과 실행 결과 간에 생긴 차이를 모아 판단해서 다시 계획에 반영하는 전체 루프, 즉 빅데이터의 분석부터 활용, 기획, 실행 전체를 루프로 만들어주는 ‘플랫폼’이 큰 시장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아직 이 사업을 중점으로 하는 회사는 없습니다. 새로운 영역이죠. 저는 ‘플랫폼’ 쪽에 창업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아마도 거기서 새로운 SAP와 같은 회사가 탄생할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그 방향으로 ‘빅데이터연구원’이 우리나라를 뒷받침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기술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느낄 때는 0과 1의 디지털 세계에도 현실과 마찬가지로 높은 국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출신 엔지니어들이 기술을 가져야 하고 그것이 대한민국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결국 사람이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면서 만난 동료 중에 인도인들이 많았습니다. 그중 한 친구는 그 글로벌 기업에서 유능한 엔지니어였고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결국 인도의 인포시스Infosys CEO로 가더군요. 저 역시 글로벌 기업에서 중요한 일을 했지만, 가끔 글로벌 회사들에도 결국 본국이 있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글로벌 비즈니스를 해야 하고, 당연히 성공적인 글로벌 모델을 지향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자본, 즉 자국의 인력과 회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미래가 항상 남들의 손에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제가 이스라엘 사람들 하고도 일을 한 경험이 있는데, 그 친구들은 항상 주장이 강한 편이었지만 그다지 뛰어나게 똑똑하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스타트업에는 맞지만 대기업 문화하고는 잘 맞지 않는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이스라엘 인재들의 네트워크와 일을 하고, 이스라엘 안에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양성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작은 나라임에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잘 해나가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그 훌륭한 잠재력을 가진 인재들이 대기업에서 창의적인 일을 하지 못하고, 단순한 소프트웨어 이식 작업 등 창의성을 억누르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그것을 구현할 기회가 없다면 그들은 좋은 엔지니어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계에는 리더십도 부족하고 충분한 자본과 여건을 갖춘 곳도 부족합니다. 우리나라의 작은 회사들은 핵심기술을 개발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규모가 있는 인터넷 포털과 SNS 회사들이 있지만, 이 회사들은 복잡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에 가까워서 글로벌 무대에서는 존재감이 없습니다. 결국, 소프트웨어산업이 발전하려면 핵심 소프트웨어, 달리 말하면 시스템 소프트웨어 부문의 핵심 리더 층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제 주장의 핵심입니다.

 

소프트웨어산업의 인력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인데, 마치 양파처럼 전형적인 동심원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극소수의 핵심기술을 가진 사람이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이 동심원의 가운데에 있는 핵심기술을 가진 사람은 오라클Oracl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IBM, SAP, 구글Google, 아마존Amazon 같은 기업들에 2,000여 명 정도 있을 것이라고 추산됩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회가 되려면 500명의 핵심기술을 가진 인력, 즉 아키텍트architect를 키워내면 된다고 봅니다. 500명의 핵심기술을 가진 엔지니어가 있으면 그들을 중심으로 한 사람당 200명씩 계산한다면 약 10만 명이 산업인력을 구성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인력이 이미 몇만 명 수준은 됩니다. 다만 지금은 제대로 위계로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핵심인력을 중심으로 역할이 잘 구분된 10만 명의 소프트웨어산업 인력을 갖출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소프트웨어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소프트웨어 분야만큼은 리더십을 갖게 될 겁니다. 소프트웨어산업이 강해지면 한국이 기존에 강점을 가지고 있던 하드웨어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소프트웨어 서비스로 하드웨어를 최적화할 수 있기 때문이죠.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하다 보면 데이터가 나옵니다. 그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야 그에 따라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할 수 있습니다. 지금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인 사물인터넷IoT도 외형은 단지 센서가 달린 하드웨어에 불과합니다. 센서를 통해 들어오는 데이터를 처리하여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사물인터넷의 진정한 핵심입니다. 이제 빅데이터가 프로세스의 핵심이 됩니다. 빅데이터가 소프트웨어산업의 중심에 들어온 것이죠.

 

대학은 학술적인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논문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증적인 연구 노력도 평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는 논문보다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더 가치있게 인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논문 이외에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공개 같은 일에도 큰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구체적 사례로 카네기멜론대학에 있는 한 그룹이 그래프랩GraphLab이라는 오픈소스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그래프랩은 데이터 분석 중에서도 그래프를 기반으로 소셜네트워크 같은 대용량 데이터를 분석해주는 프로그램인데, 기존에 있던 오픈소스인 하둡Hadoop을 기반으로 구현하는 것보다 적어도 몇 배 이상 빠릅니다. 그래서 요즘 SNS서비스의 친구 추천, 인터넷 쇼핑몰의 상품 추천 같은 기능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카네기멜론대학의 이 연구 그룹에서 여러 명의 박사가 배출되었는데, 그 사람들이 논문만 쓰고 말았다면 지금만큼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수와 연구자들이 논문 이외의 업적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러한 활동보다 논문 몇 편 더 내는 것이 업적 평가에 더 도움이 되고 승진이나 연구비 확보 측면에서 안전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수들이 논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제도의 변화와 더불어 필요한 것이 관계된 사람들의 인식 변화입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논문이 아닌 쪽에 인센티브를 준다고 해도 위험이 크기 때문에 단기간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남들이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성공사례가 아직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것 자체에 가치를 두는 젊은 교수들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에 전망은 밝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에서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주어진 문제를 푸는 알고리즘을 만들 때 종이와 연필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실제로 만들어 대규모 데이터에 대해 검증하고 최적화하는 연구를 한다면 노력은 몇 배로 들지만, 한 편의 연구결과가 학술적으로나 실용적으로 더 큰 임팩트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엔지니어가 된다면 국가의 소프트웨어 경쟁력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될 겁니다. 우리 학생들의 잠재력은 높습니다. 제가 SAP와 일을 하면서 서울대 졸업생들을 포함해서 많은 인력을 데려갔고 현재 140여 명 정도가 그곳에서 핵심 글로벌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데, 그들 모두 훌륭한 재원들이라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잠재력 있는 재목들이 한국의 현재 시스템에서는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대기업에 들어가 다른 일을 하느라 바빠 정작 자신의 아이디어를 끝까지 구현해보는 경험을 해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소프트웨어 분야는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것이 특히 중요하기 때문에 대학의 아이디어들이 빠른 시간 안에 바로 벤처로 나갈 수 있도록 시장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안되면 실리콘밸리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독일은 정부출연연구소들을 대학 주변에 붙여놓았습니다. 독일의 프라운호퍼연구소는 우리나라 정부출연연구소의 형태와 달리 60여 개로 나뉘어서 전문 분야별로 대학들 옆에 붙어 있습니다. 독일은 벤처를 하는 분위기가 아니니까 그렇게 대학 중심으로 국가출연연구소들을 포진시켜서, 국가출연연구소가 대학과 기업의 인터페이스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실력을 인정받은 교수가 프라운호퍼 지역연구소장을 하기도 하고, 실력이 출중한 지역연구소장이 대학교수를 겸직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대학에서 나오고 주변의 연구기관이 대학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뒷받침해서 같이 연구할 수 있는 관계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효율적인 R&D 체계가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3. 변화와 도전을 반기는 사회분위기에서 혁신이 꽃핀다 - 서승우(전기정보공학부 / 차세대자동차)

미래자동차 개발은 2개의 큰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통상 무인자동차로 언급되는 자율주행자동차이고, 다른 하나는 친환경자동차입니다.

 

한국에서는 한 회사가 전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독특한 구조 때문에 신기술의 개발이나 도입이 지체되는 경우가 없지 않아, 혁신의 측면에서 우려가 큽니다. 예를 들면 외국에서 신형 자동차에 새로운 기능을 많이 탑재해서 출시한다고 해도, 우리나라에는 그대로 들여올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을 통해서도 이미 많이 이야기되었듯이, 외형적으로는 여러 가지 국내 규제 때문에 신기능을 삭제한 채로 수입할 수밖에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과감한 혁신이 국내시장에서 받아들여지고, 경쟁 압력으로 작용하도록 제도와 시장 환경이 진화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혁신적인 제품을 시장에서 잘 볼 수 없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개방하고, 받아들인다고 해도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재와 같이 혁신이 지체되는 상황이 결국 우리나라 자동차산업계의 미래자동차 기술개발에 대한 인센티브 또는 동기를 왜곡시키게 될까 걱정입니다.

 

우리나라의 미래자동차 분야 기술이 매우 크게 뒤처져 있다는 것을 예시해주는 것 중 하나는, 국내에서 전기자동차용 고급 모터를 만들 수 있는 곳이 없지는 않지만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초기의 전기자동차에 사용하던 무겁고, 성능도 떨어지고, 자동차에 사용하기에는 불편한 모터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제법 있겠지요. 하지만 자동차에 장착했을 때 가솔린자동차에 버금가는 성능을 내는 세계적 수준의 모터를 만들 기술은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자동차용 모터는 냉장고나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는 일반적인 모터와는 요구되는 동작 특성이 다릅니다. 보통 주행감이 좋은 차라면 RPM(분당 엔진 회전수)에 따라서 토크toque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차를 말하는데, 특정 RPM에서 토크가 불안정하다면 덜컹거려서 자동차용 모터로는 쓸 수 없습니다. 물론 그런 모터를 장착한 전기자동차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상품성이 떨어져 당연히 소비자들이 외면하겠지요. 이처럼 자동차에 장착하려면 일반 모터와는 다른 고급 요구사항이 충족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밖에도 경량이면서 소형이어야 하는 등 요구사항이 굉장히 까다롭고 많은데 그런 다양한 요구사항을 만족시키는 국내산 모터를 만들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수준을 보통 5단계로 나눕니다. 사람이 목적지를 설정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데려다주는 완전 자동주행이 5단계로서 최종 목표죠. 그 아래 다양한 단계의 자율주행 수준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인식하고 적절히 바꿔주는 정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굳이 등급으로 얘기하자면 5단계 중 2단계 정도의 기술력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율주행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행법으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운전자가 타고 있을 때 운전자가 졸거나 운전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전하게 그 순간을 보호해주는 정도의 기술개발이 시작되고 있는 정도입니다.

 

자율주행자동차에서 사람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하는 센서도 그러한 요소기술에 포함됩니다. 이 분야에서 일명 라이다Light Detection And Raging라고도 부르는, 빛을 쏘아 물체를 인식하는 레이저 스캐너 센서, 카메라 센서, 레이더 센서 초음파 센서, GPS 등이 자동차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값싼 초음파 센서조차도 전량 수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싼값에 센서를 공급해주는 회사가 전 세계에 많으니 굳이 생산할 것 없이 사다 쓰면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하는 데는 결국 한계가 있습니다. 개발하지 않고 사오는 부품으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의 사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력 있는 혁신적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요소기술에서 자체 기술력을 가져야 하는 겁니다.

기술이전도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습니다. 센서기술과 같은 핵심기술을 가진 나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모든 기술을 내어줄 리가 없지요. 즉 거래 가능한 기술이 있고, 그렇지 않은 기술이 있는 것이 당연한데, 모든 것을 수입해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특히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는 이전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론 어떤 수준까지 가질 것인가는 고민을 해봐야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까지 기술적으로 축적해놓은 것이 너무 적다는 점입니다. 자동차산업의 외형은 커졌지만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기술 종속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이다 :: 레이저 빔을 발사하여 대상 물체로부터 반사되는 신호를 받아 물체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술.
라이다의 동작 원리는 레이더(radar)와 유사하다. 레이더가 전파를 사용하는 반면에 라이다는 적외선(IR), 가시광선(VL), 자외선(UV), 레이저(LASER) 빔을 사용한다. 라이다 시스템은 레이저 빔을 목표물에 발사하여 목표물로부터 반사되어 되돌아오는 신호를 레이저 센서로 검출한다. 레이저 빔의 속도(c)에 되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t)을 측정하면 목표물까지의 거리는 ct/2 로 계산할 수 있다.
특히 적외선 레이저를 사용하는 라이다는 850~1550 nm(nanometer) 정도의 매우 짧은 파장인 근적외선(NIR: Near Infrared Radiation)에서부터 단파 적외선(SWIR: Short Wave Infrared Radiation)을 사용하기 때문에 거리 정확도가 수 센티미터 정도로 좋을 뿐만 아니라 공간 분해능(spatial resolution)을 0.1° 정도로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활용하여 특정 공간이나 목표 지점의 3차원 측정 결과로 3D 지도(3D map)를 작성한다. 특히 라이다는 입사광과 출력광 간에 공간 결맞음(spatial coherence) 특성을 가진 레이저를 이용한다. 높은 공간 결맞음은 레이저 빔을 매우 정교하게 한 지점에 집중시키는 특성으로 레이저 포인터(laser pointer)에도 활용된다.
라이다는 905nm와 1550nm 파장의 근적외선과 단파 적외선을 사용한다. 이 중에서 905nm 라이다는 비나 안개가 있는 환경에서 1550nm 라이다보다 신호 감쇄가 4~5배 적을 뿐만 아니라 눈이 내리는 환경에서도 신호 감쇄가 2배 정도 적다. 탐지거리는 905nm와 1550nm 라이다 모두 수백 미터까지 가능하다.
라이다 빔 파장이 905nm 인 경우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붉은 빛(700nm)에 가까워서 1550nm 파장보다 눈의 망막이나 시신경 등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다. IEC60825(Safety of laser products-ALL PARTS) 표준에서는 레이저를 사용하는 제품으로부터 사람의 눈을 보호할 수 있는 기술기준을 마련하였다. IEC60825에서는 905nm 파장을 사용하는 경우 펄스 당 최대 에너지는 0.5uJ(microjoule)로 권고한다. 따라서 IEC60825 표준 기준을 만족하면 905nm 라이다와 1550nm 라이다 모두 눈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주변 환경에 대한 3차원 영상을 얻는 방법으로는 하나의 레이저 빔을 스캔(scan)하는 방식과 동시에 여러 빔을 복사하는 플래시(flash) 방식이 있다. 플래시 방식의 라이다는 8~128개의 레이저 빔(또는 채널)을 사용한다. 라이다를 이용하여 얻은 고해상도의 3차원 영상정보는 물체의 정확한 탐지 및 분류를 통하여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운행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다만 라이다는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날씨에는 비나 눈을 물체로 인식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이러한 날씨 환경에서는 레이더가 라이다보다 성능이 뛰어나다.
라이다는 대상 물체까지의 거리는 물론 물체의 속도와 운동 방향, 온도, 그리고 주변의 대기 물질 분석 및 농도 측정 등 많은 곳에서 활용된다. 구름, 빗방울, 에어로졸 등을 감지할 수 있어 정밀한 대기 분석 및 지구환경 관측을 위한 중요한 관측 기술로 활용되며, 우주선 및 탐사 로봇에 장착되어 사물까지의 거리 측정 등 카메라 기능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상에서는 3D 리버스 엔지니어링과 자율 주행 자동차를 위한 레이저 스캐너의 핵심 기술로 활용되면서 그 활용성과 중요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라이다 [Light Detection And Ranging] (IT용어사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당연히 우리도 언젠가는 테슬라와 같은 차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창의적인 시도를 하는 도전의식에 관한 것입니다.

 

테슬라 이전에는 기존의 자동차에 최신 기술이 적용된다고 해도, 그 컨셉이 기본적으로는 바퀴 달린 무언가에 컴퓨터 같은 기술을 얹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테슬라 자동차는 기존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 도전을 감행했습니다. 말하자면 컴퓨터에 바퀴를 달았다고 할까요? 차와 컴퓨터의 조합이니 똑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개념적인 차이가 큽니다.

엄밀하게 말해 테슬라모터스는 자동차 판매 수익만을 고려하면 적자입니다. 탄소배출권 거래 등 제도적 기반을 통해서 겨우 수익을 내는 형편이죠. 그럼에도 창업자인 엘론 머스크Elon Musk가 제2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우면서,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혁신적 아이디어, 미래지향적인 방향성이 너무나 새롭기 때문입니다. 이런 창의적인 시도가 가능했던 것은 도전적인 시도를 그 사회가 받아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억제당하지 않도록 가능하면 개방적인 틀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 3학년 수업의 첫 강의와 마지막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엔지니어로서 평생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게 뭡니까?”라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학생들의 대답은 ‘아직 모르겠다’였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학교를 다니는 목적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것을 찾기 위해서 다닌다’라고 대답한 학생이 많았습니다.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런 식의 생각을 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면, 선진국 최우수 대학의 학생들이 대학 입학 때 가지는 비교적 뚜렷한 목적의식과 비교해볼 때 우리 학생들은 이미 4~5년 이상 뒤처지고 있는 것입니다. 뚜렷한 흥미와 목표의식을 가지고 입학해서 바로 졸업 후의 창업이나 진학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졸업 후에야 비로소 목표를 가지게 된 사람이 서로 경쟁이 되겠습니까?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켜야 합니다.

또한 안정지향성이 지나쳐서 심지어 대기업으로 가는 길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 학생들은 로스쿨이나 각종 고시, 의학전문대학원, 여러 자격증 시험으로 빠지고 있습니다. 안정된 직장에 가서 창의성을 묻어둔 채 일하는 것도 국가 차원에서는 손해인데, 대기업조차 좁은 문이 되었으니, 경쟁에 강한 학생들이 더욱 창의적이지 않고 안전한 길을 택하고 있는 거죠. 이 역시 어떻게든 되돌려놓아야 합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쓸데없는 자만심을 빨리 버려야 합니다. 우리 학생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세상에서도 당연히 활동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국내 대기업들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열정과 도전은 필수입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비롯한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은 인재를 선발할 때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가를 중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무슨 능력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만큼 회사에 잘 적응하고, 동료와 성공적으로 협업하고,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인지를 봅니다. 서류상으로 표시할 수 없는 그런 ‘능력’을 원하기 때문에 복잡한 단계의 선발과정을 거칩니다. 어떤 기업은 신입사원 한 명을 선발하는 데 6개월 동안 30명과 인터뷰를 하도록 합니다. 즉석에서 과제를 주고 그 처리 과정을 보기도 합니다. 교과서에 있는 답이 아니라 문제가 주어졌을 때 창의적으로 답을 구하는 능력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지요. 이 과정을 통과할 수 있는 한국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요? 지금부터라도 국내 대기업 일자리에 안주하는 분위기를 반전시켜서, 도전의식으로 충만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도록 중지를 모아야 합니다.

 

14. 위험과 성과를 공유하는 파트너십형 산학협력이 필요하다 - 최만수(기계공학 / 나노기계 응용)

기존에 서로 다른 산업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노기술을 통해 융합되면서 새로운 산업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의 한국 산업이, 우리가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실력과 패러다임으로 갈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준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제 그 틀을 깨고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산업체들로 발전하기 위해서 혁신적 사고에 기반한 새로운 기술들을 많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중국에 곧 잠식당해버리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대학이나 산업체도 뭔가 새로운 기술을 좀 더 과감하게 도입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약하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도약이 필요한 시점인데, 제가 현재 실험실에서 하는 연구도 그러한 도전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드 패러티(grid parity) :: 석유나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가 고갈과 대기오염 등의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개발하고 있는 태양에너지ㆍ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발전원가와 화석연료 발전원가가 같아지는 균형점을 말한다. 현재까지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발전원가는 기존의 화석연료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원가에 비해 상당히 비싸 비경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재생에너지의 개발에 힘쓰고 있는 이유는 환경문제와 화석연료가 점점 고갈되어가고 있어 이를 대체할 에너지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재생에너지의 대량생산과 보급을 확산시키기 위한 부품개발과 기술개발 등을 통해 생산원가를 낮춰 기존 화석에너지의 생산원가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 국제유가가 상승할수록, 신재생에너지 관련 부품의 가격이 하락할수록 그리드패리티에 가깝게 도달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리드패리티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박막 안에서 빛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해서 전하를 계속 뽑아내는 기술을 플라즈모닉스plasmonics 기술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나노기술이 응용됩니다.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 ABX3 화학식을 갖는 결정구조로 부도체·반도체·도체의 성질은 물론 초전도 현상까지 보이는 특별한 구조의 금속 산화물. 1839년 러시아 우랄산맥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러시아 광물학자 과학자(Perovski)의 이름을 땄다. 회티타늄석이라고도 불린다.
AMX3 화학식 (A, M은 양이온, X는 음이온)을 갖는 페로브스카이트 결정은 화학적으로 합성이 가능하다.
실리콘태양전지를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태양전지 소재로 떠오르고 있어 주목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페로브스카이트 [perovskite] (한경 경제용어사전)

 

페로브스카이트의 경우에는 실리콘과 같은 반도체 공정도 필요 없으니 굉장히 싼 공정으로 실리콘보다 저렴하게 만들 수 있어서 다소 효율이 떨어진다고 해도 상쇄할 수 있습니다.

 

현재 효율이 높이 나오니까 사람들이 곧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실리콘 태양전지가 20년의 수명을 가진 반면, 현 상태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내구성이 아직 확보되어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수명 연장, 안정성 향상 등을 위한 굉장히 고통스러운 연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구가 원래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개선을 위한 연구는 개념 자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그 과정이 지루하고 투자가 많이 필요합니다. 이런 개선 연구는 그 속성상 대학 혼자 끝까지 끌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때 기업들이 파트너로 참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은 지금과 같은 단계에서는 투자를 안 합니다.

 

IBM, 인텔, 애플 같은 최고 수준의 기업들이 가진 공통점 중 하나가 대학에 있는 원천기술을 가져다가 상용화시키는 역량을 가진 기업들이라는 점입니다. 한국 기업들의 경우에는 굴지의 큰 기업들조차 완성된 기술을 원합니다. 하지만 완전한 기술을 대학에서 만들어내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죠. 이런 스케일 업 기술은 대학보다 산업체가 오히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대학도 시각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에서는 기술을 산업체에 단순히 팔고 끝내겠다는 개념이 아니라, 기업체와 함께 파트너 개념으로 같이 개발해나가는, 그래서 그에 대한 위험과 성과를 함께 나누자는 개념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반대로 기업도 위험을 지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확실한 기술, 100%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 아니면 가져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런 태도를 바꾸자는 것입니다. 파트너로서 어떻게 보면 동업자로서 같이 개발하고, 성공하면 함께 나누는 모델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기업과 대학이 서로를 파트너로 봐야지, 기술을 만들어서 사고파는 소비자와 공급자로 보는 사고의 틀을 유지해서는 안 되겠다는 말씀이지요.

 

원천기술이나 특허가 있다고 해도, 완성된 형태로 제품화까지 하려면 대학의 역량만으로는 안 됩니다. 특허를 받아놓은 기술도 개량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고, 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로 좀 더 업그레이드되어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기업들이 참여해서 같이 할 때에도 우리 교수님들의 능력이나 아이디어가 더 투입되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학교와 산업체가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셈이지요.

 

기업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산학협력을 하자면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거기서 실패를 용인하고 시행착오를 통한 축적의 가치를 인정하는 긴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설령 어떤 대기업에서 투자했다고 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하면 책임자가 물러나야 하는 분위기 아닙니까? 벤처를 만들었다가 성공을 하지 못하면 집안이 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정말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 태어날 수 있도록 만들고, 또 기존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게 하려면 실패를 용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문화가 안 되어 있는 것이 지금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가 되면, 누가 과감하게 도전을 하겠습니까? 우리 대학도 산업체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겠지만, 산업체도 남들이 지금까지 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류기업, 예를 들어 인텔과 같은 기업이 되려면 지금과 같은 보수적인 문화를 바꾸어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분야에 관한 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그 목표를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나가는 것을 저는 성숙도라고 봅니다. 전 우리 대학원생들의 성숙도가 좀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수동적이고, 수세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선진국 대학의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본인들 일로 생각하고 굉장한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자랑스럽게 얘기하는데 우리 학생들은 마치 누가 시켜서 하는 것처럼 다소 수동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독일 학생들의 경우, 일단 대학원에 들어와서 연구를 시작할 때의 마인드가 다릅니다. 그들은 뭔가 성취하겠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반면 우리 학생들은 학업에 대한 성취 욕구가 없는 상태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수동적일 수밖에 없죠. 내가 정말 논문을 통해서 대단한 업적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자기가 전 세계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스스로 찾아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수들이 주제를 주고 그것을 풀었는지 확인해야 하죠.

그러나 학생들만을 탓할 것은 아닙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 것인지에 대해 교수와 대학의 매우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어떤 대학에서는 입학생들에게 “너희가 졸업할 때쯤 되면 그 분야에서 교수들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얘기한다고 하더군요. 학생들이 그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죠. 그런데 그런 질을 담보하기에는, 분야에 따라서는 현재 대학원 학생의 수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물론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분명 대학원생 수가 많아야 할 필요도 있지만, 반대로 대학원생 수가 많으니 프로젝트를 많이 수행해야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근본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대학원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학원은 진정 훌륭한 연구자를 만들어내는 데 그 존재 의의가 있는 겁니다. 주어진 프로젝트만을 수행하다 보면 수동적으로 됩니다.

 

대학원생들뿐만 아니라 학부생들도 수동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자기 미래를 능동적으로 개척해서 나아가려는 학생들도 있지요. 그러나 평균적으로 볼 때 수동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최근 모 기관에서 연구자 중심의 연구체계 혁신에 관한 글을 발표하면서,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엄격하게 나누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글에서는 기초과학은 창의성과 자율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노벨상 등을 목표로 10~20년 연구를 지원해야 하는 반면, 공학 쪽은 3~5년 정도로 상대적으로 짧게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문제해결, 기술이전 등에 더 많은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조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공대가 논문만 쓰지 말고, 산업계와 협력하고 교류해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대에는 산업체가 당면한 단기적인 문제의 해결을 돕는 역할 뿐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야 할 매우 중요한 역할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당장은 산업체에서 가져다 쓰기 어렵지만, 10~20년의 미래를 내다보고 산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도전적이고 그야말로 창의적인 연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근래 들어 대학이 꼭 감당해야 할 이런 역할이 무시되고 있는 것 같아서 우려됩니다. 공학 분야에서도 새로운 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큰 원천기술 개발을 위해서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적 연구 지원이 꼭 필요합니다.

 

공대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산업체와의 연계만을 너무 강조하다가 자칫 공과대학이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역할은 못 하고, 산업체의 단기적인 문제해결을 뒷바라지만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물론 기존 산업의 애로점들을 함께 해결해주는 역할도 공과대학이 마땅히 해야 할 역할 중 한 부분이지만, 공과대학의 모든 연구활동이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 산업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상당히 먼 미래를 내다보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원천기술도 공과대학이 당연히 추구해야 합니다. 이런 부분은 기초원천 연구로 간주해서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당연히 산업체도 인식을 같이하고 또 기여해야겠지요.

 

15. 기초가 없는 융합은 거짓말이다 - 현택환(화학생물공학부 / 나노소재)

퀀텀닷(quantum dot, 양자점) TV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SUHDSuper Ultra High Definition TV라고 하죠. 그 TV에 들어가는 것이 퀀텀닷인데, 말하자면 반도체 나노입자입니다.

 

나노기술은 기본적으로 기반기술입니다. 저는 대중강연을 할 기회가 있으면 항상 나노기술은 한마디로 ‘도우미기술’이라고 얘기합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완성된 제품에서 나노기술 자체를 볼 수는 없지만 기존 기술들의 기술적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나노과학기술은 미국에서 시작된, 상당히 최근에 나온 학문 분야입니다. 시작된 지 기껏해야 20년, 길게 잡아도 25년 정도 되었으니 한국도 늦게 시작한 것이 아니죠.

 

미국에서 나노기술을 국가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 말인 1999년에 발표한 내셔널 나노테크놀로지 이니셔티브, 즉 NNINational Nano Initiative입니다. 나노기술이 당시에는 정확하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굉장히 중요한 기반기술이라고 소개하면서, 나노기술을 이용하면 예를 들어 각설탕만 한 크기의 스토리지에 미국 국회도서관이 소장한 모든 정보를 다 저장할 수 있고, 암세포가 발생하는 초기에 이를 감지해낼 수 있으며, 강철의 3배 강도를 가지면서도 무게는 강철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선전되었습니다. 실제로 당시에 이야기되었던 것들이 많이 현실화 되었습니다.

 

실제로 나노 분야가 학문적으로 시작된 것이 1982, 83년경이니까 약 30여 년 되었습니다. 1982년, 83년 무렵에 처음 논문이 나왔으니까요.

 

나노기술 분야의 역사가 짧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노기술 분야에서 한국의 수준이 굉장히 높습니다. 미국이 단연 1등이고, 그다음이 일본과 독일, 그다음이 한국일 겁니다. 현재 3~4위 정도 됩니다. 기술의 역사가 짧고, IT가 기반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한국이 상당히 빨리 따라잡은 것이죠. 학문과 산업적 기술 양 측면에서 모두 그렇습니다. 학문과 기술이 함께 가니까요.

현재 공대 교수 중에서 약간 과장하면 절반 이상, 적어도 3분의 1 정도는 나노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죠. 재료공학부의 3분의 2, 화학생물공학부의 반 이상 되는 교수들이 직간접적으로 나노와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고 있거든요.

 

현재 한국의 산업이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그동안 너무 선진국을 빨리 뒤쫓아 가는 것에만 익숙해지면서, 여기에 특화된 산업구조를 갖게 된 때문입니다. 그것도 정부 주도의 대기업 지원을 통해서 이루어졌죠. 이것이 성공해서 지난 20~30년간 선진국을 많이 쫓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을 따라가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새로운 게임을 주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저도 연구를 하면서 처음 10년 정도는 다른 연구자들을 따라가는 일을 했습니다. 그때는 오히려 쉬웠죠. 그런데 저를 앞서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지는 순간부터, 세계 최고의 수준에서 계속해서 주도해나가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남들을 따라잡을 때는 남의 기술을 그냥 가지고 와서 바로 생산에 투입하는 것으로도 충분했습니다. 필요하면 뭘 좀 베껴 오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실제로도 문제가 없었죠. 하지만 리더가 되는 순간부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벤처 하면서 학문적인 전문성도 잃고, 사업도 성공하지 못하는 사례들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한국에서는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한국에는 벤처캐피털이 없습니다. 대부업체들만 있지 진정한 의미의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없어요. 많은 기술은 5년 안에 개발이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특허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 특허들이 같이 조합이 되어야 하나의 기술로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당연히 성과를 내기까지 축적과 시행착오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벤처는 원래 성공확률이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잘되면 크게 수익을 내는 거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기다려주는 투자자가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벤처 캐피털리스트들이 들어와서 “당신은 기술만 담당하시오. 나머지는 우리가 해결해주겠소”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미국 환경에 비해 우리는 기술을 가지고 벤처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CEO가 되어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합니다. 벤처가 실패하게 되면 그 책임을 전부 창업을 시도한 교수가 져야 합니다. 글자 그대로 망하는 겁니다. 미국의 경우는 벤처캐피털리스트들과 운영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돈을 가지고 위험을 감수하고 들어왔으니 얼마나 열심히 하겠습니까? 기술자들도 역시 자기가 지분을 가지고 있고, 내 기술로 만든 회사이니 당연히 매우 열심히 하죠.

 

나노기술이 벤처 하기에는 가장 좋은 분야입니다. 왜냐하면 일단 대기업에서 하기는 불가능하거든요. 원천기반기술이기 때문에 과학science이 기반이 되어야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러나 좋은 기술이 개발되면 그 영향력은 굉장히 크지요. 하지만 좀 긴 시간을 두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아무래도 기술의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하다 보면 의도하지 못한 발견, 변이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어떤 연구가 됐든 엄청난 돈과 시간이 투자됩니다. 우리 대학원생들이 누적하여 투입한 귀한 공헌은 말할 것도 없지요. 사실 상당 부분은 돈으로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개발한 핵심기술을 가지고 기업과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경우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그런 유무형의 축적된 투입에 대해 충분히 인정하고 보상하려는 자세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적은 금액을 지불하고는 그 연구로부터 나오는 모든 지적재산권은 기업의 것이 되도록 계약 관행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기업과 대학의 관계가 갑을관계가 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그동안 선진국으로부터 이미 완성된 것을 가져다 쓰는 턴키Turn-key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기술의 씨앗을 뿌려서 그것이 꽃을 피우기까지 시간을 가지고 키워본 경험을 축적하지 못했습니다.

 

턴키 :: 턴키는 열쇠(key)를 돌리면(turn) 모든 설비가 가동되는 상태로 인도한다는 뜻으로, 건설업체가 공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책임지고 다 마친 후 발주자에게 열쇠를 넘겨주는 방식을 말한다. 한 업체가 설계와 시공을 다 함께 맡아서 해 준다는 의미의 ‘설계시공 일괄입찰’로도 말할 수 있으며 영미권에서는 ‘design-build’라고 부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턴키 [Turn key] (시사경제용어사전, 2017. 11., 기획재정부)

 

하나의 기술이 산업계에 쓰이려면 스케일 업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것은 원래 대학이 잘할 수 없고, 산업계가 맡아서 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우리 산업계는 이런 스케일 업의 경험을 축적하지 못했습니다.

 

나노기술은 전형적인 복합학문입니다. 따라서 실제로 나노 분야를 잘하려면 기본적인 물리, 수학, 화학, 생물 등이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학부부터 나노를 한다는 것은 사실 옳지 않은 일입니다. 학부에서는 기초과목을 잘 가르쳐서 튼튼한 토대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런 토대가 안 되어 있으면 융합이나 응용을 할 수가 없죠. 트렌디하고 어려운 것 융합, 나노 같은 것은 대학원에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노 관련 학과가 학부에 과도하게 많이 생겼습니다. 산업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부에서 나노를 전공한 학생들은 취직하기가 애매한 경우가 많을 겁니다.

 

학부 교육은 이처럼 철저하게 기초 역량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지금은 융합 아닌 게 없습니다. 그러니 공대가 더 이상 ‘융합’이라는 키워드를 따로 강조해서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융합은 너무 당연해서 기본으로 전제되어 있는 것이니까요. 이제는 여러 분야에 걸쳐 같이 해야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융합을 제대로 하려면 선수들끼리 모여야 진짜 센 게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 조금, 저것 조금 어정쩡하게 아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융합이 나오지 않습니다. 융합을 잘하려면 적어도 자기가 하는 분야에서는 최고수가 되어야 합니다. 각 분야의 고수들끼리 만나야 비로소 서로 존중하고, 보완해가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큰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분야별로 기초가 튼튼한 고수들이 없으면 융합한다고 해봐야 공염불입니다.

 

대학원 교육은 연구하면서 배우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대학원 석박사, 특히 박사를 키운다는 것은 하나의 독립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자를 만드는 일입니다.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자기가 연구를 해내고, 연구해서 나온 결과들을 분석하고, 그것을 가지고 실제로 좋은 논문을 써서 저널에 기고해보기도 하고, 논문이 거절되었을 때는 편집자에게 반박편지rebuttal letter도 써보고, 그 결과 논문이 받아들여지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것들로 특허도 내보고, 만든 기술들이 실제로 산업계에 흘러갈 수 있도록 해보는 등의 다양한 경험들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진짜 혼자서 전 과정의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내야 합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현실의 문제에 부딪쳐가면서, 자기 연구를 해나가면서 배우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석 박사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에서는 과목을 수강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기보다는 실제로 연구하면서 배우는 것이 훨씬 더 큽니다.

 

현재 한국의 문제는 미래에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될 의료산업, 생명공학 분야가 너무 약하다는 겁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되는 생명공학기업, 의료기업이 없습니다. 이름 있는 모 그룹에 속해 있는 생명공학회사의 매출이 그 그룹에 속한 화학회사의 몇십 분의 1밖에 안 될 정도입니다. 또 우리나라 제약회사를 다 합쳐도 화이자Pfizer의 10분의 1 규모밖에 안 되고 R&D 투자는 100분의 1이 될까 말까 한 수준입니다. 20년, 30년이 아니라 10년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의료산업, 생명공학 분야가 활성화되어 있지 못한 것은 큰 문제입니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의대와 대학병원에서 R&D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R&D를 수행할 환경이 전혀 안 된다는 겁니다. 이공계 학생들 중 가장 똑똑한 인력은 다 거기에 있는데 말입니다. 그중에는 정말 연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진료 부담이 너무 커서 연구가 불가능합니다. 현재 의대가 모두 MDMedical Doctor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PhDDoctor of Philosophy가 제대로 기를 펴고 연구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죠. 하지만 PhD도 제대로 키워야 합니다.

 

많은 똑똑한 인력들은 다 의대에 가 있고 병원에 가 있는데, 현실은 그 사람들이 창의적이지 않은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셈입니다. 의대에 있는 국가적 인재풀을 어떻게든 바이오산업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끌어내지 못하면 바이오ㆍ의료산업 육성은 불가능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연구비 지원 면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나라가 중국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국에서 속된 말로 잘나가는 교수들에게는 연구비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16. 중견기업을 히든챔피언으로 만드는 감동 스토리를 써라 - 차국헌(화학생물공학부 / 정밀화학)

보통 정유회사들은 1년치씩 정유할 원유를 저유소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격이 지금보다 높았을 때 사놓은 원유를 정제해서 싼값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분기당 1,000억 원 이상씩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사우디의 오일 메이저인 아람코Aramco가 석유화학 사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원유 시추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석유화학도 시작했는데, 자신들의 연구소를 한국에 짓고 있습니다. 한국이 축적한 그나마의 경험마저 뽑아서 사업을 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오일 메이저가 이제 폴리프로필렌polypropylene까지 하는 상황입니다.

 

폴리프로필렌 :: 나타와 지글러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플라스틱 중 하나를 발명하다.
폴리프로필렌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플라스틱 중 하나로 카펫, 실내 장식품, 산업용 밧줄의 인공 섬유뿐만 아니라 음식 및 화장품 병, 장난감, 가구, 자동차 부품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중합체는 우리 생활에서 매우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중합체가 머리카락, 뼈, 근육, 식물 섬유의 주요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1920년대 과학자들은 중합체 체인을 더 길고 무겁게 구성하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였다.영국에서 1931년 폴리에틸렌(고분자 형태로 사람이 만든 최초의 중합체)이 제조됨으로써 이러한 연구에 대한 뛰어난 성과가 이루어졌다. 폴리에틸렌은 전 세계 플라스틱 시장을 지배하였지만 과학자들은 이 물질의 약한 성질에 실망했다. 그리하여 더 나은 플라스틱 개발을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다.이탈리아 과학자인 줄리오 나타(1903~1979)는 독일 과학자인 카를 지글러(1898~1973)와 함께 새로운 중합체 개발을 도울 수 있는 촉매제를 개발하고 있었다. 티타늄을 기반으로 한 지글러와 나타의 새로운 촉매제는 중합체 제작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1954년 나타는 프로필렌을 중합하였지만 지글러와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특허를 신청하였다.전 세계 다른 그룹들이 지글러-나타 촉매제를 사용하여 폴리프로필렌을 열심히 만드는 동안 정작 지글러와 나타는 법적 공방을 진행하였다. 결국 나타가 폴리프로필렌에 대한 권한을 갖는 대신 모든 로열티의 30퍼센트를 지글러에게 지급하는 조건으로 소송이 매듭지어졌다. 이 두 사람 간의 불화는 1963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수상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우리 사회에는 플라스틱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비닐로 구성된 표범 피부가 멸종위기에 처한 합성 물질이 되어 가고 있다.”릴리 톰린, 코미디언 겸 여배우
[네이버 지식백과] 폴리프로필렌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상을 바꾼 발명품 1001, 2010. 1. 20., 잭 챌리너)

 

최근 전자산업 분야의 모 기업이 자사의 석유화학 부문을 매각했지요. 앞서 말했듯이 석유화학산업이 장치산업이라서 애물단지처럼 큰 땅만 차지하고 수익률도 높지 않은 데다, 국내외적인 환경이 녹록하지 않으니까 매각을 단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치사슬을 잘 들여다보면 생각할 점들이 많습니다. 휴대폰에 들어갈 새로운 기능이나 새로운 소재를 만들 때, 예를 들면 딱딱한 휴대폰이 아니라 유연한 휴대폰을 제조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필요한 소재가 완전히 바뀌게 되겠죠. 그런 지점에서 석유화학적인 기술이 없이 어떻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까요? 이처럼 전자산업이나 다른 산업과 적극적으로 융합해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희망이 없습니다.

 

실험실에서 연구원이 새로운 화학물질을 만들어냈다고 합시다. 그 물질의 물성을 알아서 공정을 통해 양산하는 프로세스를 최초로 설계해야 하는데, 이것을 스케일 업이라고 합니다. 고도의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하죠.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지금까지 단순히 턴키turn-key 방식으로 외국 회사에서 들여온 장비 등을 최적화해서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잘 해왔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을 스케일 업하는 데는 경험도 없고 미숙하지요. 한국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엔지니어링회사도 상세 설계는 좀 하지만 기본 골격을 설계하고, 새로운 프로세스를 디자인할 수 있는 역량, 즉 기본적인 아키텍처를 만들 역량은 없습니다. 또한, 그런 것에 관련한 노하우는 글로벌 엔지니어링회사들이 절대로 주지를 않죠. 우리도 다 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일부 전문가들이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직 경험이 충분치 못합니다.

우리 선배 세대가 한창 일선에서 활약할 때는 물량으로 승부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이제는 물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전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현재 그런 경험을 해본 산업계 리더들이 드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연구자와 현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 간에 굉장히 큰 인식의 격차가 있습니다. 생산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양적으로 많이 만들어서 우리가 그것 때문에 돈을 벌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안 하던 일을 하려면 실패도 어느 정도 용인해주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큰 시장을 개척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일해본 경험이 없는 겁니다.

 

독일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굉장히 신중합니다. 하지만 한 번 결정을 하면 정말 전폭적으로 투자합니다.

 

저는 한국 사람이 한국 회사에만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자원이 없는 나라의 인력들은 글로벌 경쟁의 무대로 빨리 나가야 합니다. 네덜란드 같은 나라를 보세요. 우리보다 인구도 적지 않습니까? 어차피 나라가 작으면 전 세계로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글로벌 무대로 가서 자꾸 많은 것을 배워야죠. 중국인들은 자국에 엄청나게 큰 시장이 있는 데다가 이제는 비즈니스에서도 자신감을 얻어서 뭘 해도 자신이 있어 보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인들은 지난 20년간 침체되어 있어 많이 위축되었죠. 요즘 들어 한국인들도 일본인들과 비슷하게, 외국에 나가서 진취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는 태도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편한 게 제일 좋은 거라는 분위기 탓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일본처럼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넓은 중국이나 인도 시장을 우리에게 유리한 기회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중국 사람들이 이미 너무 충분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어버렸어요.

바스프뿐만이 아니라 다우케미컬을 비롯한 미국의 화학회사들도 중국에 지사를 만들지 않은 회사가 없습니다. 이들을 통해 중국은 글로벌 기업들이 가진 축적된 노하우를 빠르게 흡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무서운 것입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우수한 학생들이 이제 국내 대기업에 가서 안주하지 말고 좀 더 큰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글로벌 명문대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대기업에 가서 안주하지 않습니다. 벤처기업을 만들거나, 이후에 새로운 것들, 자기 사업을 하기 위해 컨설팅 회사에 배우러 갑니다. 그런데 한국 학생들은 어떻습니까? 대부분 대기업 가서 편안하게 월급 받고 안주할 수 있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특히, 서울대 학생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되죠. 한국 산업계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지 못하면 저는 서울대학이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존경받는 대학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서울대가 단지 대기업에 취직하는 학생을 배출하는 것은 전혀 감동적이지 않습니다.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한정되어 있는 일자리에 경쟁해서 들어가는 것이니, 그냥 남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져가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MIT 졸업생 중에서 대기업에 가는 비율은 20%도 안 됩니다. 거의 다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하죠. 그런 것들을 적극 장려하는 학교의 풍토도 잘 조성되어 있고요.

 

서울대학교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을 수 없다고 한 얘기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강조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수한 학생들을 받아서 키운 다음, 기존 회사로 보내는 일은 다른 대학들도 잘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지금까지 우리가 한국 산업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토대를 제공한 공은 있지만, 그럼에도 한국 산업이 과거의 틀을 벗고, 성숙해나가야 하는 패러다임 변화의 시기를 맞아 서울대학교가 선제적ㆍ주도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옛날 타성에 젖어 있는데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에 저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IBM에 근무했었습니다. 당시 IBM 연구소는 2,500명의 박사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있던 캘리포니아 알마덴Almaden 연구센터에도 박사가 1,000명에,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이 5~6명 있을 정도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다 없어졌어요. 기업들이 그런 중앙연구소를 운영하기에는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드니까 없앤 겁니다. 대신 학교에서 벤처창업을 굉장히 장려하고 있습니다. 수백, 수천 개의 벤처회사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그중에서 몇 개가 살아남으면 대기업에서 몇백 배를 주고 사는 모델로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회사들의 경우에는 사실 대학이 연구 계약을 맺어서 공동으로 일을 도모할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상근 연구원이 박사만도 수백 명이고, 연구원들까지 다 합치면 2,000~3,000명씩 있는 데다가 심지어 외국에 새로운 연구단지도 만들고 있을 정도 아닙니까? 저는 우리 대학이 대기업을 도와주는 것 위주로 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대기업의 경우에는 대학이 좋은 인력을 양성해서 보내주는 역할만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대학이 해야 할 진정한 가치 있는 기여는 중견기업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거기에 벤처 정신을 집어넣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미국은 대기업이 있으면 그 밑을 실력 있는 많은 벤처기업이 받쳐주는 구조입니다. 또한, 실패가 용인되는 환경이어서 교수들이 회사를 창업하기도 합니다. 그 교수들은 흥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면서 계속 산업에 관여하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단 실패가 용인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겁이 나서 시작을 안 하죠.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안정되어 보이는 대기업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중견기업과 벤처의 성과가 어떤 형태가 되었든 글로벌 기업과 연계될 수 있도록 해야 전체 산업이 살아날 수 있다

 

이제 그 수십 개의 세부 분야에 걸쳐 회사에서 써먹을 만한 것들을 모두 가르치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도 저마다 다른 목적과 지향점을 가진 다양한 대학이 생겼기 때문에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는 우리 산업의 리더를 키워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기본입니다. 기본을 튼튼하게 닦으면, 똑똑한 학생들은 스스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수학, 물리, 화학, 생물과 같은 기초적인 과목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심하게 말하면 그 외에는 학부에서 더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이제는 대학원 교육도 많이 활성화되었으니까 대학원 가서 지도교수와 함께 전문 영역에 해당하는 전공을 공부하면 됩니다. 학부 때는 인문사회과학을 포함해 이런 기초과목들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감동을 줄 정도로 잘 가르쳐야 하죠. 제가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강의를 하나 들었는데, 그 수업을 위해 담당 교수가 엄청나게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감동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엉터리로 다섯 과목을 가르치는 것보다 한 과목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봅니다. 논문도 마찬가지죠. 형편없는 논문 5편 쓰는 것과 진정 영혼을 울릴 수 있는 논문을 1편 쓰는 것은 다릅니다.

 

제가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정유를 한 뒤에 남는 막대한 양의 ‘황’입니다. 지구 상에 탄소, 수소, 산소, 질소 다음으로 많은 원소가 황이기도 합니다. 정유를 하고 나면 생기는 황은 일부가 황산을 만드는 데 쓰이거나 타이어 제작 등에 사용되는데, 그러고 나서도 전 세계적으로 매년 700만 톤 정도가 과량으로 쌓입니다. 산유국에서는 탈황 처리하고 남은 황가루가 날리는 등 공해의 원인이 되기도 하죠. 만일 이렇게 남아서 골칫덩이가 된 황을 고부가가치 재료로 쓸 수만 있다면, 원재료 값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버려지는 물질에 가까운 것이니까요. 만일 거기에 새로운 화학적·물리적인 지식을 투입해서 부가가치를 1만 배 올릴 수 있다면, 그 이상의 값으로 비싸게 받고 팔 수 있겠죠.

 

가능하면 어떻게든 기존에 남들이 안 하는 곳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생각의 틀을 뒤집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황은 첨가물로 소량 쓰이는 물질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회사에서 황을 쓴다고 할 때, 고무 80~90%에 황은 첨가물로 기껏 10% 미만을 쓰는 정도예요. 발상을 바꾸려면 황이 80%가 되고, 다른 첨가물을 10% 미만으로 쓰는 그런 아이템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에도 쓰일 수 있도록 제품화한다면 황을 몇백만 톤 단위로 소비할 수 있고, 황으로 인한 공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발상을 전환하는 데 과거 IBM에서 회사 생활 하던 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거의 버리다시피 하는 싼 원재료에 새로운 지식을 투입해서 부가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지식산업이죠.

 

17. 선진화된 사회시스템이 히든챔피언 기업을 만든다 - 박진우(산업공학과 / 생산시스템관리)

해방 당시 국내에서 배출된 이공계 분야 학사 학위자가 32명에 불과할 정도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의 이공계 공부를 철저히 제약하였습니다. 따라서 해방 이후의 이공계 교육은 거의 백지상태에서 시작한 것과 같습니다.

 

고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이 처음 포항제철소를 건설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박 회장이 제철소 건설 초기에 당시 모든 관련된 사람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용광로나 제철소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보라’고 했답니다. 당시 손을 든 사람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금속공학과 졸업생들조차 제철소 한번 제대로 구경조차 못 해본 형편이었던 겁니다.

 

급속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제반 중요 사업에 대해, 첫째 계획은 대충 세우고, 둘째 실천은 과감하게 하고, 셋째 사후관리를 하지 않는 좋지 않은 관행이 만들어졌습니다.

 

많이 이야기하듯 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질 방법은 기본적으로 자신들만의 고유한 기술력을 갈고닦는 것입니다. 그래야 시장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중소기업의 성장에 다른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인맥입니다. 대기업의 1차 하청기업들의 배경을 잘 살펴보면 대기업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만든 회사가 많습니다. 물론 이 사실 자체만으로는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주로 거래할 대기업의 사람들을 알고 그 기업의 현황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의 연결고리와 함께 그에 합당한 기술력을 갖고 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별로 뛰어나지 않은 기술력을 가지고도 연줄이 있으면 회사의 매출을 올리고 키워갈 수 있는 상황에서는 기술력을 가진 히든챔피언이 나올 수 없습니다. 또 이와 반대로 좋은 기술을 갖고 창업을 해서 회사를 성장시켰지만 관리 능력이나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여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얼마전 국내의 기계 분야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는 1차 벤더회사를 방문해서, 대표 및 기술자와 회사 제품의 기술 및 품질 수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경영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일본제나 독일제보다는 못하지만 중국제보다는 좋고, 그래서 독일 기계는 10억 원 받아도 되지만 우리 기계는 그 절반도 못 받을 겁니다”라는 식의 두리뭉실한 자체 평가밖에 하지 못하더군요. 실제 측정치나 기술적인 요소를 정확히 거론하면서 자사의 제품을 일본, 독일, 중국 등의 경쟁사 제품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감에 의존하는 품평은 영업부서에서나 하는 얘기지, 기술을 제대로 아는 경영자가 할 얘기는 아니지요.

 

중소기업 지원을 통해 성장한 회사들에서 성장을 거부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으로 회사가 커지면 더 이상 중소기업에 집중되는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니 회사를 키우지 않고 가장 실적이 좋은 부서를 다른 회사로 분리하는 방법 등으로 새로운 중소기업들을 만듭니다. 사장은 회장으로 직함을 바꿔 달고 동시에 분리된 회사의 사장 자리에는 지인이나 부인, 친인척을 앉히고 계속 정부 지원을 받아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편법을 쓰지 않도록 감독하는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보았을 때 정부 지원금의 규모보다는 지원 후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을 통해 철저하게 관리해야 이러한 비도덕적 행위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테일러 ::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하였다. 처음에는 법률가를 지망하였으나 안질(眼疾) 때문에 단념하고, 1874년 필라델피아에 있는 기계공장의 도제(徒弟)로 들어갔다. 뒤에 미드베일제강소의 기계공·기사장(技師長)을 거쳐 베슬리헴 스틸사(社)에서 일하면서, 노동자들의 태업·파업을 목격하고 과학적인 작업관리의 필요성을 통감한 나머지, 과학적 관리법(테일러시스템)을 창안하여 공장개혁과 경영합리화에 큰 공적을 남겼다.
테일러 시스템은, ① 노동자의 표준작업량(과업)을 과학적으로 결정하기 위한 시간연구, ② 과업의 달성을 자극하기 위한 차별적 임금(성과급), ③ 계획 부문과 현장감독 부문을 전문화한 기능별 조직 등을 축으로 한 관리시스템이다. 1901년 이후에는 주로 테일러 시스템의 보급·지도에 힘쓰며 저작에 종사하였다.
저서에 《벨트 장치에 관한 기록 Notes on Belting》(1893), 《금속절단기술에 관하여 On the Art of Cutting Metals》(1906), 《과학적 관리법 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1911)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 [Frederick Winslow Taylor]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어떤 품질 검사 라인에서 생산품에 대한 품질 검사가 이루어진다고 합시다. 품질 검사를 하는 개수에 따라서 검사원들에게 성과급이 지급된다면 품질 검사원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제대로 품질 검사를 하지 않고 검사 수량만 늘리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비해서 품질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를 검사하는 재검사 단계가 존재합니다. 품질 검사 후 이를 검사하는 재검사가 한 번 더 이루어지고 최종적으로는 이미 불량의 내역을 다 알고 있는 생산품 중 일부를 다시 최초의 검사 과정에 투입시켜서 테스트를 해보는 겁니다. 이러한 3단계 정도의 검사 과정이라면 스마트하고 ‘선진화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공학은 모든 산업 분야에서 원가, 생산성, 품질과 같은 산업의 기본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전공한 사람들입니다.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 전사적 자원관리 또는 기업자원관리. 한마디로 기업내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이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미국 코네티컷주 정보기술 컨설팅회사인 가트너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가트너 그룹은 ERP를 '제조업무시스템을 핵으로 재무회계와 판매, 그리고 물류시스템 등을 통합한 것으로 가상기업을 지향하는 시스템'이라고 정의했다. ERP는 인사·재무·생산 등 기업의 전 부문에 걸쳐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인사정보시스템·재무정보시스템·생산관리시스템 등을 하나로 통합, 기업내의 인적·물적 자원의 활용도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경영혁신기법이다. 따라서 ERP를 구축한 기업의 경우, 한 부서에서 데이터를 입력하기만 하면 전 부서의 업무에 반영되어서 즉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ERP (매일경제, 매경닷컴)

 

대기업이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인정하는 관행을 만들어야 합니다. 독일의 경우, 예를 들어 자동차 부품업체인 보쉬Robert Bosch GmbH에게 자동차 제조사인 BMW가 이래라저래라 못 합니다. 또 보쉬도 자신들의 협력사인 중소기업에게 이래라저래라 못합니다. 그 협력회사들에 우수한 인재들이 근무하고 있고, 그들의 전문적 판단과 노하우를 대기업들이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중소기업에는 어떻게 이처럼 우수한 인재들이 포진해 있을까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 한 축은 마이스터meister 제도와 같이 현장 기술인력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제도이며, 다른 한 축은 마이스터들이 속해 있는 바로 그 회사가 지속적으로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사회경제적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독일이나 스위스에서는 대학교에 가는 학생들이 전체의 3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기술을 갈고닦아 마이스터가 되면 같은 연령대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에 못지않은 보수를 받습니다. 독일의 마이스터에 대한 유무형의 지원책은 상공회의소 같은 민간기구를 통해 제도적으로도 보장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이스터는 전국 어느 지역의 어느 회사에서 일하든지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보수와 같은 개념이 존재합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기술자들에 대한 범국가적인 인센티브 시스템이 사실상 없습니다. 대기업에서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사람들을 명장이라고 해서 박사급 인력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주는 경우가 있는 듯하지만 일부 기업의 경우이고, 대부분의 기술자는 제대로 신분을 보장받거나 제대로 대우받고 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중형 사출성형기 부문에서 세계 1위를 하는 오스트리아 기업인 엥겔Engel 사가 있습니다. 한국에도 공장을 가지고 있지요. 이 기업은 1945년에 세워져 1965년에 창업자의 사위가 사장직을 승계했고, 그 이후 다시 그의 사위가 승계했으며, 현재는 4대째가 사장직을 승계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70년이 된 회사입니다. 오스트리아는 가업 승계에 특혜를 주는 제도가 있는데 가업을 승계한 다음, 유관 분야의 사업을 영위하면서 종업원의 수가 줄지 않으면 승계로 인해 발생하는 상속세를 거의 징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분야에 오랜 경험을 가진 백년기업이 나오는 데는 이러한 제도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가 한국에 공장 건설을 타진하던 당시 이 일의 책임자로 거론되던 한국인 기술자가 오스트리아에 가서 그 회사 오너 회장을 만난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최고경영자인 그 회장은 창업자의 사위의 사위인데 일흔이 넘은 이분이 직접 차를 운전해서 일주일 동안 회사의 여러 곳을 보여주면서 회사를 소개하더랍니다. 그 다음으로 가업을 이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 회장의 아들도 비엔나 공대를 졸업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겸손한 최고경영자 그리고 가업 승계를 장려하는 제도와 같은 뒷받침이 있기 때문에 사업을 오래 유지하면서, 오랜 기간 기술적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해서 히든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8. 동북아 섬유클러스터로 통일을 대비하라 - 강태진(재료공학부 / 섬유 · 소재)

섬유패션산업은 2014년에도 여전히 우리나라 전체 고용시장에서 10% 정도를 차지할 만큼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업체의 수출이 180억 달러 정도이고, 또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의 제3국에 만든 해외 공장에서 생산해서 판매하는 금액도 180억 달러에 달합니다.

 

일본의 최고 부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유니클로라는 의류 브랜드 회사의 회장입니다. 유니클로는 중저가 의류 브랜드인데, 이 회사의 회장이 지난 10년 사이에 일본의 최고 부자로 올라섰습니다. 유니클로는 우리나라 시장에 진출해서 2014년 한 해에만 1조 원 가까이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도요타나 소니가 아니라 옷을 파는 회사의 회장이 일본의 최고 부자라는 것이 참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그만큼 섬유패션산업이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섬유는 의류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서 쓰이는 기초소재를 만드는 산업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자동차산업에서도 섬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자동차의 차체가 복합소재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파워 트랜스미션의 경우 샤프트와 같은 부품들이 현재 매우 무거운 철강재로 되어 있는데, 연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품들을 복합소재를 사용하여 경량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탄소섬유 베이스의 복합소재들로 바뀌어가는 추세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공산업에서도 섬유가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보잉787 드림라이너Dream Liner’를 들 수 있습니다. 동체를 탄소복합소재로 만든 최초의 여객기인데, 2009년에 첫 비행을 한 이래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동안 가장 많이 판매된 여객기로 알려졌습니다. 이 비행기는 최첨단 탄소복합소재를 사용함으로써 여객기 무게를 대폭 줄이고, 이로 인해 연료 효율성을 30%가량 향상시켰습니다. 더욱이 이 소재 덕분에 승객들도 훨씬 더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행기는 일반적으로 9,000미터 이상의 고도에서 비행하는데, 이때 내부에 비해 외부의 기압이 낮아서 기체 내부의 압력 때문에 동체가 약간 팽창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팽창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동체 소재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실제로 1988년에 알로하항공 243편이 기내 압력을 기체가 못 견디고 위 뚜껑이 날아가면서 승무원이 같이 빨려 나가는 사고가 일어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기내 압력을 상압의 70% 정도인 3,000미터 고도에 해당하는 압력으로 맞추어서 팽창 압력에 견딜 수 있게 조절하는데, 이 때문에 승객들은 낮은 산소 농도로 인해 피로감을 크게 느낍니다. 그런데 드림라이너는 기내 압력을 상압에 더 가깝게, 2,000미터 고도에 해당하는 압력에 맞출 수 있게 된 겁니다. 탄소섬유는 신축성이 있어서 변형이 크더라도 그것을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관심은 이 분야의 비즈니스가 지속가능한가입니다. 앞서 언급한 국내의 성공한 기업들은 지금 1세대들이 잘해서 베트남에 가서 공장도 짓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데, 2세대로 내려갔을 때도 지금처럼 글로벌 비즈니스를 계속 잘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푸는 것이 현재의 당면 과제입니다. 지속가능하게 만들려면 섬유패션산업이 시스템적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하는데, 이 분야는 선각자적인 사람들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크다는 점에서 고민입니다.

 

세계 10대 혁신기업을 살펴보면 구글Google, 샤오미Shaomi, 드롭박스Dropbox, 에어비앤비Airbnb, 우버UBER 등이 있습니다. 모두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관심을 받는 기업들입니다. 그런데 10대 혁신기업에 전통적인 섬유사업의 주인공인 나이키가 들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나이키의 비즈니스 패턴, 그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혁신적이기 때문입니다. 나이키는 섬유패션산업에 혁신을 가져다줄 지속가능한 섬유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만든 것이 ‘메이킹Making’이라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인데, 아이튠스iTunes에서 바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메이킹은 일종의 섬유패션 재료 데이터베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폴리에스테르라는 섬유를 검색하면, 이 섬유가 환경에 주는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이산화탄소가스가 얼마나 발생하는지, 섬유를 만들기까지 에너지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등 환경에 영향을 주는 모든 데이터를 알 수 있습니다. 나이키는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자사가 만드는 모든 섬유패션 제품 중에서 환경이나 인체에 해로운 물질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목표를 추구합니다. 그런데 디자이너 입장에서 보면 옷을 만들 때 이 섬유가 환경에 부담될지 안 될지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제한요소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키가 이 메이킹 앱을 만든 후 런던디자인대학London College of Design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메이킹을 이용해서 인체에 해가 없고 환경친화적인 옷을 디자인하라는 과제를 준 것이지요. 그런데 예상했던 우려와 달리, 이것이 디자인에 제한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상력을 북돋워준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나이키처럼 우리도 미래에 오래갈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 해법은 기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웨어러블 테크놀로지wearable technology를 통해 옷에 부여되는 기능성이 점점 중요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옛날에는 한 가지 기술을 가지고 하나의 기능성을 더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지금은 한 개의 옷에 여러 기능이 복합적으로 들어가야 하므로 하나의 기술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여러 기술의 융합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그룹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모든 패션 관련 종사자들이 아웃도어 쪽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특수한 목적으로 개발된 기술들을 일상복으로 가지고 들어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군사용으로 개발해서 이라크전쟁에서 사용하면서 지난 10여 년 사이에 발전시킨 아주 간단한 기술이 있습니다. 심전도를 측정하는 센서와 체온계, GPS를 병사들이 입고 있는 스판덱스spandex 셔츠에 붙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각 병사의 맥박, 숨, 체온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하여 지휘본부에 보냅니다. 대대장은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해당 병사가 지쳤는지, 부상당했는지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어서 개별적으로 상황에 맞게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기존의 명령체계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군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웨어러블 테크놀로지의 시초였는데, 미군은 이 셔츠를 착용한 2개 대대를 이라크전쟁의 실전에 배치해서 시험을 다 끝냈습니다.

유럽에서는 ‘마이하트’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똑같은 기술을 민수용으로 바꾸어 심장병 이력이 있는 사람에게 센서를 부착해서 건강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적용했습니다. 이후 여러 회사가 이 기술을 가져다가 아웃도어웨어에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웨어러블 테크놀로지가 급격하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스포츠 선수들도 웨어러블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요즘 축구선수들은 유니폼에 GPS와 맥박 센서를 달고 훈련을 하기도 합니다. GPS를 달면 이 선수가 총 얼마나 뛰었는지, 공을 쫓아갈 때 가속을 얼마나 빠르게 하는지, 순발력은 어떤지, 체력이 떨어졌는지 등의 정보를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A라는 선수의 정보를 보고 이 선수가 한계 이상 뛰었다고 판단되면 선수를 교체해주는 식으로 의사결정 자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럽 프로축구팀들이 채택한 유니폼에 마이크로 마사지 기능을 넣어서 근육을 툭툭 치게 하여 피로감을 덜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웨어러블 테크놀로지가 앞으로 큰 트렌드 중 하나가 될 겁니다.

 

‘호가나스’라는 스웨덴 의류회사는 평범한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티셔츠에 냄새나는 것을 줄여주고, 땀을 많이 흘려도 바로 건조시키는 기능성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무게도 145g으로 안 입은 것처럼 아주 가볍게 만든 티셔츠를 91달러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1kg당으로 계산하면 이 옷의 재료비는 2,000~3,000원에 불과한데 완성된 옷은 70만 원 이상을 받고 판매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스위스의 ‘마무트’라는 회사도 아웃도어 의류에 스판덱스를 집어넣어서 신축성을 좋게 하고, 몸에 달라붙게 해서 몸의 형상에 맞게 디자인했습니다. 또한 방풍성, 발수성, 보온성이 뛰어나면서도 초경량으로 제작하여 850달러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섬유패션 재료 1kg당으로 부가가치를 계산해봤더니 155만 원 정도가 나오더군요. 이처럼 기능성을 넣음으로 인해 엄청난 부가가치가 발생합니다. 이들 회사는 일상복에도 기능성을 집어넣어서 스포츠웨어와 평상복의 구별을 없애버렸습니다. 그냥 스포츠 센터에 가서 운동하고 그 옷을 그대로 입은 채로 업무 보러 가고 데이트하러 갈 수도 있게 디자인해준 것입니다. 고가임에도 이러한 브랜드들이 성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섬유패션산업의 공급사슬을 보면 상당히 단순합니다. 첫째는 섬유 원료로서 면이나 모, 캐시미어같이 자연에서 나오는 천연섬유 재료와 석유화학에서 나오는 합성섬유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원료를 가지고 실을 만드는 스피닝 공정과 실로 평면 구조인 천을 만드는 제직 공정, 그다음에 천에 색깔을 넣는 염색가공 공정, 마지막으로 가공된 천으로 옷을 만드는 봉제 공정으로 구성됩니다.

공급사슬 면에서 한국의 글로벌 패션산업의 역할은 봉제 공정까지입니다. 이렇게 봉제한 것을 여러 백화점이나 브랜드에 납품을 합니다. 이 영역이 현재 우리나라 섬유패션산업에 속한 대부분의 회사가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분야입니다.

최근의 웨어러블 테크놀로지에 대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봉제 공정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섬유소재를 생산하거나 직물을 만드는 데까지 수직적으로 심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재 단계에서부터 기술 융합을 하고 웨어러블 테크놀로지를 개발해서 봉제까지 하는 클러스터를 만들어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유니클로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국내에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브랜드를 빌려다 만들어서 번 돈으로 해당 브랜드에 떼 주고, 백화점에 떼 주고 있습니다. 유니클로 같은 회사의 제품도 이런 식으로 한국 사람의 섬유패션업체가 다 만들어서 대주고 있습니다.

 

브랜드라는 것이 그 나라의 문화와 같이 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폴로Polo도 그 사회의 문화 수준이 밑바탕이 되어서 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폴로의 디자인이 중국 사람한테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탈리아의 페라가모, 구찌 같은 명품들도 모두 선진국 산업이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볼륨(양적) 비즈니스를 해왔습니다. 미국에 가면 고급 제품이 아니라 그저 월마트에서 10달러, 20달러에 파는 그런 옷들을 만드는 겁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한국 섬유패션산업이 축소되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브랜드를 키우고 싶어도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이 아직 세계 수준에 못 미치기 때문에 쉽게 키울 수가 없습니다. 선진문화가 뒷받침되어야만 디자인을 통해 그 나라의 감성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섬유패션산업을 문화산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현재의 섬유패션산업을 고부가가치화할 수 있는 방향은 두 가지가 있겠군요. 하나는 나노, 바이오, IT 등과 결합해서 새로운 소재와 웨어러블 기술 등을 통해 고부가가치화하는 방법이 있겠고, 다른 하나는 안목을 높여서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어 고부가가치화하는 방법, 이렇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당에서 지속적으로 이념교육을 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래서 개성공단을 이용해서 북한의 노동력을 폭넓게 활용해야 합니다. 개성공단에는 2015년 현재 5만3천 명이 종사하고 있는데, 5만3천 명 중 봉제 인력이 4만여 명에 달합니다.

현재의 봉제 부문을 개성공단에서 가동하지 말고, 30~4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남포, 평양, 해주 지역으로 옮김으로써 개성공단에 있는 4만 명의 봉제 인력이 섬유패션 소재를 생산하도록 하는 계획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개성공단 전체를 봉제 작업 위주의 생산 구조에서 부품소재를 공급하는 기지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개성공단의 4만 명이 부품 소재를 생산하게 되면, 봉제에서 30만 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해주, 신의주, 평양, 남포 등 근처 지역까지 경제적 혜택이 확산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면 개성공단이 우리나라의 산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남북협력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일단 개성공단에 방직, 제직, 편성, 염색가공 기능을 넣는 것입니다. 현재 남북 간의 여러 긴장된 조치들과 상관없이 그 제약 범위 안에서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것입니다. 봉제는 손이 많이 가서 결국 노동력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것을 굳이 개성공단에서 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제가 앞서 말한 대로 바꾸면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것을 가지고 개성 부근에 30만 명의 일거리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전통적으로 섬유패션산업의 중심인 경북 대구, 그리고 경기 북부를 개성공단과 묶어서 지역 연계 클러스터 시스템을 만들면 됩니다. 경기 북부나 대구 같은 지역은 그것을 지원하기 위해서 기초소재나 장비를 공급하는 공급사슬의 한 고리가 되는 것입니다.

 

공급 사슬은 다운스트림down stream, 미들스트림middle stream, 업스트림up stream,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업스트림은 원사부터 석유화학petro-chemical 같은 것으로 사실 큰 규모의 설비투자가 필요합니다. 미들스트림은 방직, 제직, 편성, 염색가공 등으로 몇백억 원 규모, 다운스트림인 봉제는 몇십억 원 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현재 중국이 두 가지를 추구하고 있는데, 하나는 노동자 임금을 두 배로 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시진핑 주석이 앞으로 5년 이내에 임금을 두 배 높인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과거에 중화학공업에 투자했듯이 중국도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려고 움직이고 있어서 이제 봉제 같은 수공업은 못 들어오게 한다는 전략입니다. 이미 채산성이 안 맞아서 중국에 있던 우리나라 기업들도 모두 철수하거나 다른 개발도상국으로 옮기는 상황입니다.

 

이번에 한중 FTA에서 중국은 개성공단에서 생산하더라도 한국제로 인정하겠다고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잠재력이 큰 광활한 중국이 우리의 시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산업에서 가장 큰 대외적인 돌파구가 될 것입니다.

 

전자제품이든 화장품이든 다른 산업 부문에서도 앞으로 5년 안에 중국의 임금이 두 배로 된다면 중국이 엄청나게 큰 소비재시장으로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2015년의 한 조사에 의하면 방적ㆍ제직 공장을 세우려면 단일공장 투자액이 500억 원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500억 원에 대해 적어도 70%인 350억 원 정도는 정부가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 보장을 해주어야 합니다.

미국도 OPICOverseas Private Investment Corporation라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과거 미국에는 AT&T와 ITT라는 대표적인 전화회사가 있었습니다. 이들 기업은 교환기 방식에서 ITT가 AT&T한테 밀리면서 ITT가 미국시장에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ITT는 미국에서 잃어버린 시장을 남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에서 복구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 통신산업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면서 AT&T와 대등한 매출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통신산업이 국유화되자 ITT는 더 이상 아르헨티나에서 사업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ITT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OPIC를 통해 해외의 불확실성에 기인한 손실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미국의 국민이나 기업이 제3국에 투자했을 때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국유화를 당하거나 손해를 봤을 때 보상을 해주는 제도가 OPIC 제도입니다. OPIC은 2015년 현재 최대 10년간 최고 2억5천만 달러까지 지급 보증을 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봉제 위주로 개성공단이 운영되어왔는데, 제도적으로 변화가 없다면 향후 10년 동안에도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산업은 자유로운 시장논리에 의해서 돌아갈 수 있게끔 정부에서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정책을 만들고, 법으로 보호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합니다.

 

공학교육에서 바뀌어야 할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글로벌화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공학의 학문적 특성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교육도 글로벌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공학교육에서는 완전한 오픈 마인드로 다른 외국의 유수 대학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시각으로 학생들한테 가르치고 있는지를 보고, 내가 그것을 받아서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내 강의를 그것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제일 잘하는 걸 도쿄대학에도 보내주고, 미시간 대학에도 보내주고 하면서 글로벌 차원에서 서로 개방해야 합니다. 저는 공학교육이야말로 이런 글로벌 오픈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19. 뿌리산업에 첨단의 날개를 달아라 - 권동일(재료공학부 / 소재기초)

소재 부문에서 제일 오래된 기술이 금속입니다. 인간이 금속을 사용하게 된 것은 오래되었지만, 본격적으로 많이 쓰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입니다.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용광로에 강하게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엔진이 생겼고, 여기에 17~18세기에 등장한 코크스가 결합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철강이 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이 쓰이기 시작했죠.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은 철강 구조물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철도를 시작으로 자동차 등의 수송기계에도 철강이 많이 쓰였죠. 이 추세는 일반적인 금속소재로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금속소재는 역시 구조용 소재, 즉 힘을 받는 소재로서 가장 많이 쓰입니다. 그리고 경량화되어 자동차, 항공기 등을 비롯한 수송기계 등에 널리 쓰이고 있죠. 다시 말하면 금속소재와 관련해서는 강도가 높고 기계적 성질이 좋은 소재와 가벼운 소재에 대한 수요가 계속 있습니다.

다양한 소재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당분간은 철강의 역할이 클 것입니다. 일단 매장량도 많고 저렴해서 굉장히 쉽게 쓸 수 있는 소재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장점이 크기 때문입니다. 탄소섬유는 강도는 훨씬 좋지만 비싸죠. 타이타늄도 내식성이 좋고 가볍지만 역시 굉장히 비쌉니다. 타이타늄이 비싼 이유는 매장량도 적지만 제련 과정이 철강보다 훨씬 어려워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류가 비철소재나 비금속소재를 철강보다 획기적으로 싸게 만들어서 대체하지 않는 이상 범용적인 환경에서는 철강 소재를 중심으로 더 강도를 높이고 경량화하면서 계속 쓰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수강에서 일본의 경쟁력이 높은 원인은 일단 축적된 기초지식과 노하우에서 격차가 있고, 큰 초기 투자비용이라는 진입장벽도 있습니다. 또한 특수용 소재는 수요가 크지 않아 수익모델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원자력발전소에서 쓰이는 고열을 견디는 금속소재, 석유플랜트에 들어가는 내부식성 금속소재들은 굉장히 비싼 소재이긴 하지만 대량생산이 필요한 것은 아니죠. 이처럼 특수하지만 작은 기존 시장을 뚫고 들어가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국제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는데, 최근에 국내에서는 철강회사가 새로 생겨서 오히려 철강생산량이 늘었습니다. 현재는 한국 철강회사들이 앞으로 어떤 철강 소재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답을 찾아야 하는 절박한 시점입니다.

 

제련사업에서는 공정 일부를 바꾼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니까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공법의 표준화가 철강산업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하나의 방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표준화를 통해 전체적으로 단가를 낮춤으로써 결과적으로 부가가치를 높이자는 것이죠. 우리가 철강 플랜트를 해외에 수출하는 데도 당연히 도움이 될 테고요.

또 다른 방향은 새로운 소재, 지금까지 안 쓰던 소재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소재의 경량화도 당연히 추구해야 할 방향입니다.

 

금속과에서는 예전에는 현미경으로 구조를 보기 전에 금속을 연마polishing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금속을 깨끗하게 연마한 다음 산성액으로 에칭을 하면 우리 눈에는 안 보이는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미세조직을 현미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과거에는 마이크로미터 수준에서 조작을 했던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구조를 눈으로 본 후, 이 구조의 전기적 성질과 기계적 성질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이해했습니다. 이제 인류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노 수준 이하까지 측정하고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획기적인 발전입니다. 옛날 연금술사가 했던 것처럼 이것저것 일단 섞어보는 시행착오를 통해서가 아니라, 마치 기계공학처럼 미리 설계를 통해서 재료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선先설계 개념으로 재료를 개발할 수 있게 되면,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나노기술이 또 다른 발전 방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뿌리산업은 대개는 금속가공 기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대부분의 금속소재를 만드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녹여서 금속을 끄집어내는 것이 정련, 제련이고 그렇게 해서 얻은 금속을 녹은 상태에서 틀에 붓는 것을 주조, 그것을 다시 두드려서 가공하는 것을 단조라고 하죠.

 

반도체산업만 보더라도 장비에 엄청난 투자를 하죠. 교수연구실 방만 한 크기의 제조장비가 100억 원 이상씩 하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전부 일본 제품입니다. 그러니 좀 심하게 말해서 반도체 많이 팔아서 우리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일본 돈 벌어준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제조장비의 국산화,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측정장비의 국산화가 굉장히 시급합니다.

 

계측장비는 외국 제품을 보고 우리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수십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격을 낮추어온 외국 제품들에 비해 우선 가격경쟁력 측면에서도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장비를 쓰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절대 싼 것을 쓰지 않습니다. 돈이 더 들더라도 정확도와 신뢰도가 보장된 것을 쓰려고 하죠. 측정장비는 가격이 낮은 것이 아니라 성능이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 수준의 업체들만 살아남습니다. 2위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과거 산학 과제 하면, 모두 소재 개발 혹은 공정 개발 위주였습니다. 측정하는 사람들은 참여하기가 쉽지 않았죠. 통상적으로 기업에서 분석 파트는 개발에 들어가는 부분이 아니라 후평가post evaluation를 주로 맡아 하는 기능입니다. 오류가 있는지, 물성이 제대로 나오는지를 사후적으로 조사하는 개념이지, 미리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부터 측정 개념을 도입하는 수준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죠. 지금도 그 틈새를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계측 분야 전공자들이 메워주겠다고 제안하면, 처음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과제 하나 제안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너무 산만하고 되지도 않는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겁니다. 공정 개발해서 3년 후에는 무엇이 결과로 나올 것인지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측정에 관한 얘기를 하면 직접적으로 말은 안 하지만 ‘또 논문만 쓰려고 하는구나’라고 여기는 듯합니다. 이처럼 계측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이라는 것을 설득하는 일은 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중소기업이 어려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술인력 문제입니다. 기술인력이 유입되지 않고 정체된 상태에서 단지 생산성만 높여서 승부를 보려고 하는데, 이런 전략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죠. 작은 기업이라도 누가 넘보지 못할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괜찮을 텐데,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비즈니스 규모만 작은 것이 아니라 기술도 작습니다. 그러니까 계속 대기업에 예속됩니다. 대기업 하청을 받아 똑같은 것을 남보다 잘 만들어주면 되니까, 요구하는 ‘품질’만 맞추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기업에 예속된 상태가 이어지니 변화가 없습니다.

 

기존의 것을 더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사업이 필요하거든요.

 

대학은 원래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교수들에게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컨설팅하라고 강제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중소기업에 기술을 이전해주든, 자문을 해주든, 그에 대한 보상 인센티브를 체감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합니다. 제가 전해 들은 얘기로는 대만이 그런 것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교수가 나가서 컨설팅하고 회사와 일을 하면 미국식에 가깝게 인센티브를 준다고 합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가는 난리가 날 겁니다.

창업도 그렇습니다. 공대 교수가 창업을 하거나, 자기가 나서서 일을 하려면 수업 면제도 안 되고, 창업 자체에 대한 시각도 굉장히 부정적이어서 어렵습니다. 교수가 강의나 하지 돈 벌러 다니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죠. 그렇게 학내외에서 인정을 못 받는데 누가 창업에 나서겠습니까? 모든 교수가 창업을 하도록 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한 역량과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에게 문호를 열어주라는 것이죠.

 

대형 사업을 하게 되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는데 그 심사 기간이 통상 3년이 걸립니다. 만일 제가 올해 아이디어가 생기면, 내년에 구체적인 계획으로 만들어서 얘기를 시작해야 하고, 지원을 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고 예산을 받으려면 다시 1년이 더 소요되니까 아무리 빨리 일이 진행되어도 3년이 걸리게 되지요. 이러는 사이에 기술과 산업의 판도가 다 변하게 됩니다.

또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하려면 예산이 필요한데,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그것을 모두에게 원하는 만큼 배분할 수는 없으니 일종의 제로섬게임이 벌어집니다. 누가 새로운 주제로 예산을 지원받으려면, 기존에 사업을 하고 있던 누군가는 예산이 줄어야 하니까요. 결국, 기존 사업 외에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기가 아주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한 축으로는 지원을 약속한 프로젝트에 대해 기본적으로 꾸준하게 지원하는 한편, 다른 축으로는 변화하는 상황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정부는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매년 투자계획을 짜둡니다. 3년에서 5년짜리 사업들을 주로 추진하다 보니까 새로운 장관이 취임해도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는 재정적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들어가도 결국 논의하다 보면, 기존 사업의 틀 안에 들어가서 할 수밖에 없죠. 정부는 책임을 지고 정립된 틀을 잘 유지하는 일관성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정부의 장점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런 장점이 단점으로 변하는 거죠. 구조적으로 순발력이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해보면, 정부 측은 스스로 변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동력이 정부 밖에서 주어져야 합니다.

 

20. 벤처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에코시스템이 없다 - 박희재(기계항공공학부 / 반도체 장비)

우리나라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 불과 1990년대 초입니다. 그 후 IT 분야의 장비와 이를 뒷받침하는 기반기술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그전까지는 전부 일본이나 유럽, 미국 것을 턴키 방식으로 들여와서 사용하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2000년대 들어 선진국의 기술을 복제해서 장비의 국산화를 시도하면서 비로소 우리 기업이 IT 관련 장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불과 20년도 안 된 산업이지만,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의 산업이 급성장하였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하는 장비산업도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장비를 크게 나누면 전前공정 장비와 후後공정 장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후공정 장비에서는 비교적 많이 성장한 반면, 핵심기술이 들어가 있고 기술의 전문성으로 인해 진입장벽이 큰 전공정 장비에 대해서는 아직도 일본이나 미국, 유럽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1~2년 정도가 아니라 10~20년 이상의 격차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전공정에 관련된 핵심장비들은 여전히 미국이나 일본이 아주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데, 그 리더십을 깨는 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뒤에서는 중국이 엄청난 속도로 쫓아오고 있으니,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 일본 수준까지 빨리 올라가야 하는데 그 수준까지 올라가는 길을 큰 기술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셈이죠. 그 장벽이란 결국 축적된 경험의 깊이입니다.

 

일본도 물론 초창기에는 독일이나 미국 것들을 복제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그것을 내재화시켜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죠.

 

여기에 더해 일본 특유의 회사 내 도제식 훈련 방식을 통해 매뉴얼의 내용을 배우고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되어 있습니다. 도제시스템의 원조인 독일을 본받아 교육과 트레이닝을 시킴으로써 경험 많은 인력들이 만들어놓은 축적된 노하우를 다음 세대에게 잘 전수해주는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일본은 이처럼 경험을 정리하고, 지식으로 만들고, 그 지식을 전달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데, 우리나라는 기업 역사도 짧지만 축적된 지식의 전달 시스템도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분야에서 특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설계기술인데, 제일 중요한 것 또한 설계기술입니다. 왜 이렇게 설계를 했는지 분명히 알아야 설계 능력이 확충될 수 있는데, 우리가 처음에 일본 등의 외국 장비를 복제하는 것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설계에 관한 기본지식이 굉장히 약합니다. 설계 능력에는 기본적으로 계산 능력, 디자인하는 창의력 등이 필요한데 우리나라 공과대학, 특히 기계공학 계열이나 연관 계열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대다수는 설계와 관련된 실무 능력이 거의 없는 상태로 학교를 졸업합니다.

설계 부문은 사실 도제식 교육이나 숙련 과정을 통해 배워야 할 측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설계를 가르칠 만큼 고도의 설계 경험을 가진 교수님들이 크게 부족합니다. 산업체에서 일해본 경험을 가진 분이 많지 않으니 실제로 학생들한테 가르치는 수준이 초보적인 밑그림을 그리는 수준에 그치는 측면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장비산업, 기계산업에서 설계를 담당하는 사람 중에는 역설적으로 공과대학의 기계과 출신이 많지 않습니다. 체계적인 설계 훈련 없이 현장에서 뛰면서 실무 감각을 익혀서 설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기계공학과에서 체계적인 공학적인 원리로 설계를 배워서 현장에 투입되는 사람은 참으로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설계교육은 학교의 기계공학이 산업현장과 유리되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영역입니다.

 

설계교육의 경우 옛날에는 T자를 대고 그리든지, 컴퓨터로 밑그림만 그려도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계산할 수 있어야 하고, 수치화하고, 시각화해서 이게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을 산업현장에서 요구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학교에서는 그런 것을 안 가르칩니다. 여전히 설계라고 하면 CAD로 기초적인 그림을 그리는 기능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구만 컴퓨터로 바뀌었을 뿐이지 옛날 T자를 들고 다니면서 그리던 것과 기본 개념에서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렇게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교육이 잘 안 이루어지니까, 회사에 입사한 뒤 모든 것을 다시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외국 공대들은 우선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강도가 높을 뿐 아니라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실습을 많이 하도록 해줍니다. 모름지기 기계공학과를 다닌다고 하면 무엇보다 설계를 많이 시킵니다. 그리고 실제 산업체에 가서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거기서 역량을 보여주어야만 학점을 받고 졸업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인턴십 제도 등을 학교와 기업이 같이 운영해서 학생들이 방학 또는 강의 중 일정 기간 동안 기업체에 가서 실제로 일도 해보고, 직접 만들어볼 기회도 줍니다.

 

기계공학을 전공해서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이 아주 명확합니다. 설계할 줄 알아야 하고, 만들 줄 알아야 하고, 기계를 돌려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 기계공학의 아주 기본적인 능력인데 대학에서는 그것을 해볼 기회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설계 과목이 과제양이 많이 부과되는 전공선택 과목이라서, 편하게 공부하고 학점 잘 나오는 과목들만 선택해서 듣는 요즘의 많은 학생은 상대적으로 피하게 됩니다. 지금같이 하면 기계공학과를 졸업하더라도 기계공학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현장과 기업에서 뭘 하는지도 잘 모르고 졸업하게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영어 시험 준비나 하고 봉사 활동으로 스펙을 쌓는 식의 뜬구름 잡기 식의 사회 진출 준비만 합니다. 기계공학을 포함해서 우리나라 전체 공학교육이 현장과 산업으로부터 아주 걱정스러울 정도로 유리되어가고 있다는 게 대단히 큰 문제입니다.

 

창업에서 전형적으로 범하는 실수 중 가장 큰 것이 시장과 영업에 대한 역량을 고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부분 기술개발에는 성공해서 창업하지만, 결국 영업과 시장 진출에서 첫 번째이자 가장 큰 걸림돌을 만나게 됩니다. 대학 창업의 경우, 학교 안에서 뭔가 물건을 만들더라도, 그것을 국내든 해외든 소개해주고 마케팅을 담당해주는 회사가 따로 없으니 직접 물건을 들고 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뭐가 필요한지, 어떤 고객들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필요한데, 과거에는 종합상사가 그런 역할을 했었습니다. 종합상사들이 중소ㆍ벤처기업으로부터 상품을 가지고 와서, 해외시장에 소개하고 글로벌 고객과 연계를 해주는 일을 했었는데, IMF 위기를 거치면서 대기업 계열 종합상사들이 거의 대부분 대기업 내부의 물건을 소싱sourcing하는 조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기업, 특히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만든 물건을 해외 구매자와 연결해주고, 판매해주는 채널이 없어져버렸습니다. 현재 그 역할을 코트라KOTRA나 무역협회 같은 곳에서 하고는 있지만 전문성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KOTRA :: 무역진흥과 국내외 기업 간의 투자 및 산업·기술 협력의 지원을 통해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설립된 정부투자기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라고도 한다. 대한무역진흥공사법에 따라 정부가 전액 출자한 비영리 무역진흥기관으로, 1962년 6월 대한무역진흥공사로 출범하였다. 2001년 10월 1일 현재의 명칭인 KOTRA로 변경되었다. 1960년대에는 수출 주도형 경제개발 전략에 맞추어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하였고, 1970년대에는 정부의 수출진흥정책에 따라 수출정보센터 설치, 수출상품아이디어 뱅크 운영, 수출시장 확대를 위한 국내외 조사 및 연구업무 추진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서울교역전 주관, 해외 순회세일즈 실시, 중화학플랜트 수출촉진 활동 등으로 시장개척 업무를 강화하고, 동구권 시장 조사와 개척, 해외 전시활동의 대형화 등으로 수출기반을 확대하고 다지는 데 주력하였다.
1980년대에는 중소기업의 국제화에 따라 중소기업 위주의 지원정책을 추진하였다. 1982년 서울국제무역박람회를 개최하였으며, 1988년 이후에는 격년으로 무역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1986년 이후에는 통상마찰대응책을 수립하고 대일무역 불균형 개선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였으며, 1992년에는 중소기업 수출 성약지원, 수출유망상품 발굴 지원, 해외무역관 중소기업 지사화 등의 3대 전략사업을 추진하였다.
1995년 국내 업체의 해외투자 지원 및 선진 외국기업의 대한투자 유치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로 이름을 바꾸고 2000년 7월에는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해외 시장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홈페이지를 통해 각종 사업에 온라인 형태로 참가할수 있으며, 각국 해외무역관의 서브페이지가 개설되어 있어 현지 무역관과 온라인으로 직접 교류할수 있다. 이밖에 실크로드21이라는 거래알선 포털 사이트와 전자 카탈로그 사이트 KOBO가 개설되어 있다. 이 두 사이트를 통합하여 무역 포털사이트(www.buykorea.org)를 운용하고 있다.
주요 활동으로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수출 외에 다양한 형태의 무역거래 알선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해외시장 정보수집 및 제공사업, 해외 전시사업, 해외 홍보사업, 투자진흥사업, 국내 산업과 상품의 해외소개 및 선전, 해외무역관 설치 운영, 기타 산업자원부장관이 정한 수출입업무 등의 무역진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조직으로는 사장과 감사, 이사회가 있으며, 경영지원본부, 중소기업지원본부, 전략마케팅본부, 정보통상지원본부, Invest KOREA, 종합행정지원센터 등 5본부 23실 16센터(단,원) 10개 지역본부로 구성되어 있다. 해외에는 86개국에 126개 무역관을 두고 있으며, 국내에는 본사 외 인천공항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릉로 13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KOTRA [Korea Trade-Investment Promotion Agency]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학교에서 기술을 개발하면 산학협력단이나 공학연구소 조직 안에 적극적으로 판로를 개척해서 시장과 연계해주는 곳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기능이 없어요. 나라별로 비교해보면 일본은 글로벌 역량을 탄탄하게 가지고 있는 종합상사가 있어서 새로운 기술과 물건을 글로벌 시장과 고객에게 소개해주는 채널 역할을 합니다. 미국은 마케팅 전문회사를 찾아가면 해결해주고, 유럽은 거미줄 같은 관계망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중소기업·벤처기업 사장들이 직접 들고 뛰어야 합니다. 마케팅, 수주, 수출계약을 포함한 영업 및 마케팅은 훈련받지 않고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만큼 실수할 가능성이 크고 위험요소가 많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장애물은 창업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대학교수나 연구인력이 혼자서 영업도 하고 자금도 마련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금융 쪽에서의 투자는 10년 전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졌습니다. 15년 전만 하더라도 벤처캐피털이 학교 벤처로 많이 유입되었습니다. 따라서 아이디어가 있으면 투자를 받거나 자금을 확보해서 R&D를 비롯한 여러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여건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자기 전공 기술이나 핵심역량과 관련 없는 사람이 낸 반짝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창업은 한두 달 혹은 몇 달 정도만 지나면 그 후에 나오는 더 좋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새로운 사람이나 기업에 밀릴 가능성이 커서 굉장히 수명이 짧습니다. 경쟁력을 쉽게 잃지 않으려면 단단하고 차별화된 실력을 축적하고, 제대로 된 R&D를 통해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해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역량을 가진 사람이 창업을 해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커가려면 기술금융의 지원이 대단히 절실합니다. 지금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매우 취약하지요. 지금 정부가 하는 창업 및 기술금융도 재작년부터 사정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이 정도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엔지니어들은 자기가 잘하는 기술개발을 하고, 그 결과가 마케팅 잘하는 사람과 자금을 제공하는 투자자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한다면 완벽한 시스템이죠. 우리는 그 시스템의 구성요소 사이마다 모두 높은 벽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금융회사는 담보를 가지고 오라고 하고, 마케팅할 사람이 없어서 엔지니어가 직접 몸으로 뛰어야 하니 창업이 어렵고, 성공확률이 높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부딪쳐보면, 기술이란 것은 ‘있으면 좋은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할 뿐, 금융기관들이 요구하는 것은 결국 담보입니다.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 입장에서 보면 이미 기술보증기금이나 신용보증기금 같은 곳에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는 만큼 한도까지 받은 상태이고, 공장 건물 등과 같이 담보로 제공할 수 있는 자산은 이미 대출의 담보로 들어간 상태가 대부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작 기술 개발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서 본격적으로 사업화해나가야 할 단계가 되어 추가로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기술력을 인정해주는 기술금융이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이 단계에서 기술을 알아주는 사람도, 제대로 평가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좋은 모델이 영국의 테크 시티Tech City에서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SEISSeed Enterprise Investment Scheme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클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인데, 투자자 입장에서 기술기업에 투자할 때 사업화에 실패해도 투자자금에 대한 세금공제 등을 통해서 상당 부분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한 공적인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리스크를 부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니 기술금융이 저절로 활성화됩니다. 예를 들어 은행에 예금하면 금리가 낮아 2~3%의 이자밖에 못 받는데, 기업에 투자하면 성공할 경우 수십 배의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실패할 경우에도 투자금액의 최대 75%까지 세금환급 등으로 돌려받을 수 있죠. 투자한 회사가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일종의 안전장치가 붙어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만일 1억 원을 투자했다면 어떤 경우라도 기본적으로 7,500만 원의 원금은 돌려받을 수 있다는 보증장치가 있고, 만일 성공하게 되면 투자액의 몇 배가 돌아올 수 있으니 많은 사람이 투자하면서 선순환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개인이 자기 책임으로 투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수시로 기업이 주관하는 투자설명회IR가 열립니다. 기술을 소개하고 제품을 소개하는 설명을 듣고 개인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투자에 나서게 되니 이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을 통해 많은 기업이 창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15개 기업밖에 없던 런던 북부 지역에 불과 2~3년 사이에 약 2,000여 개의 기업이 생겼습니다. 이 사례를 보면, 정부가 직접 나서서 뭘 하겠다는 게 아니라, 초기에 시스템을 만들어 주고 그것이 자생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GDP 대비 비율이나 정부 예산 대비 비율로 보면 거의 세계 최고 수준에 가깝고, 절대적인 액수 면에서도 세계의 여러 나라와 비교해보면 미국, 중국, 독일, 일본, 프랑스 다음으로 많은 예산을 R&D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투자를 하는데도 실제 결과가 잘 안 나오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국가 R&D 예산에서 시장이나 산업현장과는 동떨어진 연구를 하는 비중이 너무 높다고 봅니다. 국가 R&D는 결국 글로벌 환경에서 산업과 시장에서 국가의 경쟁우위를 높이기 위해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 산업현장에 있는 이슈들이 국가 R&D와 긴밀하게 연계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큰 괴리가 있습니다. 현장·시장의 경험과 계획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산업화나 사업화와는 거리가 먼 주제만 연구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고급 과학기술인력의 83%가 대학과 출연연구소에 몰려 있습니다. 일반 산업체에도 우수한 연구개발인력이 아주 많은 선진국의 인력 분포와는 크게 다릅니다. 그러니 선진국과 같은 방식으로 국가 R&D를 운영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이 우수 인력이 모두 현장·산업과 괴리된 연구만 하고 논문을 쓴다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제품은 개발은 누가 하고, 시장 개척은 누가 합니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산업의 경쟁력 높이는 게 국가 연구개발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 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더욱이 우리나라 정부 R&D 예산의 과반 정도가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산업·시장과 괴리된 연구가 중시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국가 지원을 받아서 R&D를 수행하는 기관들이 기업과의 기술협력을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하고, 또한 이런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는 기업이 되도록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에서 정부 출연연구소 한 군데를 법인화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그 후 기업 지원과 다양한 산학협력을 추진해서 영국 산업의 경쟁력 확보에 성공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도 정부출연기관의 R&D 효율성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거버넌스 구조에 대해 적극적으로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비 지원 방식에서도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비를 기업에서 받아 오는 부분에 비례해서 지원하는 쪽으로 바꾸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일정 부분만이라도 그렇게 만들면 분위기가 많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독일의 프라운호퍼Fraunhofer도 처음에는 전액 정부 지원을 받아서 비슷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산의 30%에 대해서는 기업 수탁을 받도록 하고, 이를 전제로 정부예산을 매칭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나서 기업과의 협력관계가 제대로 자리 잡혔습니다. 이렇게 바뀌면 중소기업이 많은 돈을 내지 않고도 정부 출연연구소로부터 R&D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기술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정부만 쳐다볼 게 아니라, ‘기업을 지원하되 기업이 필요한 연구계약을 진행하는 것에 비례해서 정부가 연구비 지원을 해준다’와 같은 원칙 하나를 정하여 예산을 지원하면 아마도 상당 부분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동안 R&D가 기업이나 산업현장, 시장과 멀어져서 우리나라 평가시스템은 결국 연구자들이 기획 단계에서 만들어 오는 숫자들을 기준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목표 숫자를 잡을 때 연구자들이 올해는 100, 내년에는 200, 내후년에는 300, 이런 식으로 설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실제로 300까지는 필요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150 정도의 새로운 기술적 혁신 목표면 되고, 오히려 추가적인 혁신보다는 시장이 요구하는 부가적인 기능이 더 필요한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현행 연구개발 평가와 관리 시스템에서 성공적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오로지 기술적인 관점에서 무조건 300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연구를 시작한 지 6개월에서 1년 지나면서부터는 연구를 위한 연구가 되어버립니다. 산업현장에 필요한 것보다는 평가를 잘 받기 위한 연구가 되기 시작하는 거죠. 이 점이 지금 R&D 연구 관리 및 평가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어떻게 시장의 상황을 반영하여 관리 및 평가의 유연성을 확보할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R&D 예산을 월별로 집행하다 보면 어느 달에 갑자기 큰 예산이 지출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특정한 달에 연구 예산을 특별히 많이 쓰는 상황이 발생하면, 관리기관으로부터 집중적으로 감사를 받게 됩니다. 연구라는 게 자로 잰 듯, 첫 달은 얼마 쓰고 둘째 달은 얼마 쓰고 이렇게 기계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진국에서는 일단 연구 책임자한테 R&D 과제를 맡기면 그 사람이 책임과 리더십을 가지고 재량껏 집행할 수 있게 권한을 주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유연성과 융통성이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신뢰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지금의 R&D 관리 및 평가 시스템이 만들어진 게 30년 됐는데 이제 혁신적으로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현재 진행 중인 융합에 관한 논의에 대해서 버블과 과장이 크다고 생각해서 유보적인 입장입니다. 강조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IT와 제조업의 융합을 논하기에 앞서 먼저 제조업을 제대로 교육하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제조업과 연계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고 할 때 제조기술의 산업현장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더라도 산업현장에 유용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낼 수가 없습니다. 실제 현장과 기계, 그리고 제조기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논의를 보면, 일의 선후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산업현장에서 기계를 한 번이라도 돌려보고 오퍼레이션을 해봐야 참으로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습니다. IT 융합을 실현한다는 것이 정책적ㆍ선언적 주장처럼 쉽지 않습니다. 산업현장 관점에서 보면, 공허한 이야기로만 들리는 것이지요.

 

대학교육, 특히 공학교육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일단 공대에서 가르치는 교과목 수도 굉장히 적어졌고, 융합을 강조하면서 소위 도제식 교육, 또는 정말 축적과 숙련에 의해서만 파악되는 지식을 학습하는 부분이 상당히 적어졌습니다. 무엇보다 교수님 중에 전공과 관련된 산업 경력이나 현장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분이 대단히 적거나 거의 안 계시니까 실제로 학생들한테 가르치는 수준이 초보적인 수준, 즉 아마추어적인 그림을 그리는 수준 정도밖에 안 됩니다.

한마디로 공학의 기본기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관심이 너무 사이언스 중심의 융합, 첨단 이런 쪽으로만 몰려가 있는 상태입니다. 사상누각이죠. 기본기가 없으니 남의 것을 그대로 복제해서 한 번은 쓸 수 있지만, 조금만 바뀌면 응용하지 못합니다. 기술을 응용해서 새롭게 적용하고, 그것을 바꾸어 무엇인가 지속적으로 창의적인 아키텍처를 만들려고 하면 공학적인 원리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21. 중국의 인재를 뽑고, 한국의 인재와 섞어 경쟁시켜라 - 설승기(전기정보공학부 / 전력전자)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0년대 후반부터 전력시스템을 건설하기 시작해서 1970년대에 완전히 끝났습니다. 그런데 시스템은 수명이 있습니다. 길게 봐서 40년 정도 간다고 봤을 때, 지금 대부분의 선진국이 시스템 교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이제까지 전력 분야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던 중국이나 기타 후발국들도 최근 들어 전력 분야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시장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력산업은 어느 나라나 대체로 국내시장 위주였습니다. 국가 인프라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자국의 인프라를 다른 나라에 쉽게 내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나라마다 표준이 달라서 각각의 표준을 따라가기도 매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값싸고 안정된 전력 공급을 우선시하는 체제로 운영되어왔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전력을, 그것도 매우 낮은 가격에 공급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안정적이지만 마진이 낮은 시장 상황은 역으로 국내 업체들에 신기술을 개발해야 할 유인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반도체산업 같은 경우는 애초에 국내시장이 거의 없는 상태여서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노리고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전 세계와 경쟁하면서 끊임없이 기술력을 키워왔고, 결국 세계 1등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중국은 규모가 큰 국내시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기술혁신의 관점에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우리나라 전체 발전설비량에 맞먹는 규모의 발전소들을 매년 짓는데, 그렇게 10년 이상 해오면서 경험을 축적하여 굉장한 기술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게다가 중국의 전력회사들은 모두 국영기업체이기는 하지만, 내수 규모가 커서 서로 경쟁하면서 상당한 기술력을 쌓아왔습니다.

 

표준기구나 국제기구에서 중국계 인사들이 주요 직책을 많이 맡기는 하지만, 사실 중국사람들은 이제는 그런 자리에 크게 연연하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중국이 가장 큰 시장이니까 자국의 기준이 곧 세계 기준이 되기 때문에 누구라도 중국 시스템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황을 반영하여 기술력을 가진 일부 일본 기업도 중국과 합작으로 중국에 들어가는 상황입니다. 여러 측면에서 우리에게는 엄청나게 큰 위기입니다.

 

부가가치가 큰 고속전철의 경우에도 중국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실제 테스트라인까지 설치했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고속전철 테스트라인이 없어서 새벽에 차 안 다닐 때 서울-천안 구간에서 잠깐씩 시험하는 실정입니다. 지금 중국은 고속전철 기술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서 가 있습니다.

 

HVDC(high voltage direct current) :: 발전소에서 생산된 교류(AC)를 직류(DC)로 변환해 필요한 곳까지 송전한 뒤 다시 교류로 바꿔 수요자에게 공급하는 차세대 전력전송기술이다. 직류방식은 항상 일정한 전압과 극성을 가지고 있어 교류 방식에 비해 송전 과정에서의 전력 손실을 대폭 줄일 수 있고 전력 안정화에도 도움이 돼 대규모 순환정전이나 블랙아웃의 위험성이 적다. 주파수 제약도 없어 상대적으로 많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 장거리 송전망을 중심으로 도입이 늘고 있다. 또 해상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도 대부분 HVDC케이블이 사용됀다.
HVDC 기술은 반도체 소자의 동작 원리에 따라 ‘전류형’과 ‘전압형’으로 구분된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전압형 HVDC는 재생에너지 연계가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송전탑 크기가 작고 지중화가 가능해 국민의 사회적 수용성도 높다.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DC가 외면받은 이유는 설치 비용이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DC 송전에 필요한 핵심 반도체 기술의 발달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DC 송전 방식으로 전환해 전력 효율을 높이는 것이 설치 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는 공감대도 생기고 있다.
이미 중국, 인도 등지에서는 HVDC 방식으로 시스템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장거리 송전에도 전력 손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 비용도 줄일 수 있다. AC 송전 방식에 비해 전력 손실이 적어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적다.
[네이버 지식백과] 초고압직류송전 [high voltage direct current] (한경 경제용어사전)

 

현재는 전 세계 HVDC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엄청난 시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이 기술을 다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술을 안 주면 못 들어오게 막으니까 특허를 침해당해도 아무도 중국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합니다. 전력산업은 국가 기간망이기 때문에 기업이라고는 해도 일종의 국영기업입니다. 그래서 사실상 국가를 상대로 항의해야 하는데, 아무리 큰 회사도 중국이라는 국가를 상대로 특허를 뺏겼다고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중국이라는 엄청난 시장을 잃으면 매출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런 조건을 이용해 중국은 자유롭게 기술을 들여와서 전력망을 건설해나가면서 자체 기술력을 점점 향상시켰습니다. 현재 우리도 수퍼그리드와 관련하여 몇 년 동안 연구하고 시험라인을 조그맣게 만들어서 시험하고 있는데, 중국 시스템을 많이 사오고 변압기도 중국 기술을 사서 배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중국에 배운다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술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뒤져 있을 때는 배워야지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현재 그나마 노력하는 우리나라 굴지의 회사들은 모두 중국으로부터 배우고 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확실한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에서는, 매우 우수한 인력이 꾸준히 전력공학 분야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우리와 달리 의사란 직업의 전망이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우수한 학생들이 대부분 공과대학으로 갑니다.

 

국제학회를 가도 중국인이 대부분이고, 미국과 유럽 주요 대학에도 많은 중국인이 교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소위 C9이라고 하는 9개 우수 대학(베이징대학, 칭화대학, 저장대학, 푸단대학, 상하이교통대학, 난징대학, 중국과학기술대학, 하얼빈공업대학, 시안교통대학)의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보다 훨씬 좋은 실험 설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에 중국의 모 대학을 방문했을 때는 미국 대학에서 스카우트된 굉장히 유명한 전력 분야의 교수 한 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40대 초반의 젊은 교수인데 부임하자마자 받은 연구 설비만 100만 달러어치이고, 실험실을 다 세팅해주고, 조교수 3명도 붙여주었다고 하더군요. 빌딩 하나가 이 교수의 연구소였습니다. 그는 미국에 있을 때보다 연구환경이 더 좋고,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미국에서 유명한 교수였다고 해도 우리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파격적인 대우입니다.

 

중국 하얼빈대학에는 제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의 교수 숫자만 해도 서울대학교에 있는 제 분야의 대학원생 수보다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중국과 경쟁해나갈 수 있는지 길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중국의 교수 중에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78학번입니다. 68학번 이후로 10년 동안 문화혁명 중에 서양식 교육을 안 했기 때문입니다. 68학번 이전 세대들이 모두 은퇴를 한 이후 10년 동안 중국은 완전 공백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78학번 세대가 50대 중반이 되어 이들을 정점으로 한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들 위로는 아무도 없으니 이들은 상부의 눈치 볼 것 없이 상당히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다 할 수 있습니다. 만나서 직접 얘기해보면 실제로 여러 보직을 거치면서 경험을 많이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면이 우리에겐 상당히 무서운 점입니다.

 

중국 칭화대의 경우 지역균형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기 때문에 3,400만 인구를 가진 산시 성에서 칭화대를 갈 수 있는 학생은 1년에 30명입니다. 그러니까 인구 100만 명 중에서 한 명을 뽑는 셈입니다. 인구 100만 명 중에서 한 명이라면,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대구 경북 지역을 모두 합해서 5명 안팎이 입학하는 셈입니다.

 

C9대학이 대학별로 평균 3,000명 정도씩 학생을 선발한다고 할 때 9개 대학을 대충 합하면 약 2만 7,000명 아닙니까? 14억 인구 중 가장 우수한 2만 7,000명과 한국의 5,000만 인구 중에서 3,000등 안에 있는 학생 중 의대 진학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곳으로 빠져나간 인원을 제하고 서울공대에 온 1,000명을 비교하면 어떨까요?

 

요즘 우리나라 학생들을 보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교육을 받지만,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 수준이 10년 전 혹은 20년 전보다 올라갔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습니다. 시험에서 실수 안 하는 학생들만 뽑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뭔가 시키면 굉장히 잘하고 성실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획기적인 사고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도 요즘은 의과대학으로 많은 학생이 빠져나가지 않습니까?

 

1991년, 92년 당시, 제가 처음 대학교에 와서 강의를 하던 때에는 시험 문제를 아주 어렵게 내서 평균 점수가 100점 만점에 20점밖에 안 되어도 100점 만점을 연속 세 번씩 받는 학생들이 클래스에 두세 명은 꼭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학생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공과대학이 그동안 너무 과대평가되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당시에도 전 세계에서 공학에 열광하는 나라는 한국, 인도, 중국 3개국 정도였으니까, 어쩌면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 표준을 따라간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인도와 중국은 아직도 공학이 휩쓸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공학을 전공해서는 미래가 밝지 않다고 보니까 공대에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왔다가도 많은 학생이 의학전문대나 로스쿨로 가버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국내 기업의 임원들 중에서 우리나라의 좋은 인재를 어떻게 확보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분들에게 저는 반드시 국내 학생만 뽑으려고 하지 말고, 중국에 뛰어난 인력이 많으니 그들을 뽑아와서 우리나라 박사와 동일한 연봉과 대우를 해주면서 한국 R&D센터, 한국의 R&D 인력과 경쟁시키라고 조언합니다. 제 논리에 수긍하다가도 막상 실행할 단계가 되면, 기술 유출이다 뭐다 걱정이 많아서 그렇게 실행하지는 못합니다. 설사 몇 명 뽑더라도 한국에서 다 설계한 것을 중국에 맞게 약간씩 고치는 일 같은 단순한 일만 시키는 경우가 많으니 뛰어난 중국의 인재들이 붙어 있을 리가 없지요.

저는 어느 정도 장애와 걱정이 있더라도 중국의 뛰어난 천재들을 뽑아서 회사를 키워나가는 것이 당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모 그룹이 MIT 미디어 랩Media Lab 출신의 젊은 외국인 인력을 본사 상무로 데려왔다고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았습니까? 30대의 젊은 나이인데도 그런 천재들을 엄청나게 대우해주니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사의 지식을 배워서 가지고 나갈까 봐 두려워했다면 그런 혁신적인 인사는 할 수 없었을 겁니다. 폐쇄적으로 지키기만 하면서 발전이 없는 것보다는, 리스크가 있더라도 차라리 문을 열고 받아들여서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같이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우수한 중국 학생들과 경쟁하다 보면 우리 학생들도 자극을 받게 될 겁니다. 호랑이가 우리 앞에 달리고 있는데, 정신 차리지 못하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맙니다. 그러니 우리는 호랑이 등에 타고 같이 가야 한다는 겁니다.

 

산업 육성과 관련하여 신산업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람을 많이 쓸 수 있는 좋은 직장을 제공할 수 있는 산업 부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많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제조업을 키워야 합니다. 고용을 증가시키기 위해 서비스업이나 금융업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산업은 국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될 때 성장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결국 두드리고 만들어서 파는 기본을 잘 갖추어야 합니다. 독일도 SAP과 같은 소프트웨어 회사도 있지만, 무엇보다 세계 최고의 제조업을 든든한 산업의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교수들에게 논문을 많이 쓰라고 요구하는데, 사실 독일에 있는 세계 수준의 공과대학 교수들과 이런 이야기를 해보면 대개 웃습니다. 우스갯소리로, 기껏 힘들게 연구해서 개발한 것을 왜 논문으로 발표해서 남들에게 알려주느냐면서 말입니다. 저널에 연구 논문을 보내면 심사위원들이 보고 어떻게 해서 이 결론이 나온 건지 자세하게 쓰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출판되지 않지요. 결국, 밤새워 열심히 개발한 것을 남들에게 고스란히 가르쳐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실적을 논문으로 따지니까, 교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학위를 심사받을 때도 SCI 저널에 논문 몇 편 이상 실어야 학위 심사 자격이 된다는 규정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정 국가 사례를 자꾸 들어서 그렇습니다만, 산업 강국이라는 독일의 대학에는 이런 규정이 전혀 없습니다. 과거 연구의 질을 평가하는 우리 시스템이 미흡할 때에야 학위 논문 심사에 관여한 그 어떤 교수도 서로 믿을 수 없으니, 해외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는지 아닌지를 가지고 연구자의 질을 가늠했지만, 현재는 엄연히 심사위원회가 있는데 그런 규정을 내건다는 것은 실제로 심사의 권한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입니다.

 

우리나라 산업을 이끌 만한 새로운 것을 개발해서 세계적인 특허를 냈다 하더라도, 논문이 없으면 현재 우리 기준으로는 임용하기 어렵습니다. 특채로 뽑았다 한들, 아무리 탁월한 업적을 쌓아도 논문을 쓰지 않으면 승진이 안 될 겁니다. 학교의 전체 규정에 어긋나니까요. 산업의 기반을 닦고자 한다면, 공과대학 교수가 실제로 필요한 산업기술에 얼마나 획기적으로 기여했는지를 평가 기준에 넣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공과대학에서는 논문 업적보다 국가적 관점에서 산업의 성장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기준으로 교수와 연구자를 평가해야 합니다.

 

20년 전만 해도 학교에서 논문으로 쓰거나 연구한 것을 가져다 쓸 만한 산업체가 거의 없었습니다. 기업들이 관심도 보이지 않았고 또 그것을 수용할 수준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앞서 가고 있어서 산업체에서 연구한 것들이 바로 저널에 내도 될 만큼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사실 영업비밀에 해당하기 때문에 저널에 못 내게 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니 다행스럽고, 바람직한 일입니다. 참고로, 우리 학생 중에도 진짜 세계를 휩쓰는 제품에 들어가는 것을 개발했는데도 발표하지 못하게 해서 저널에 실린 논문이 한 편도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드린 대로 아주 수준 낮은 저널에라도 한 편 이상 논문을 내지 않으면 규정상 졸업을 못 합니다. 이 학생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제품이 전 세계에서 팔리는데도 학교에서 제시하는 졸업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최근 서울대에서 로봇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촉망받는 젊은 연구자를 교수로 영입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논문 업적이 충분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현재 기준으로 하면 임용이 되기도 어렵지만, 임용되어도 아마 승진이 안 돼서 버티기 어려웠을 겁니다.

 

적어도 공과대학이라면 논문이 없더라도, 세계적인 특허를 냈거나 회사에서 우리나라 산업을 이끌 만한 기술을 개발한 사람들이라면 교수로 뽑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회사에 있는 사람 중 정말 역량이 검증된 사람들을 교수로 임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가장 큰 문제가 교수들의 산업계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거든요. 실제로 산업에 필요한 일을 하려면 산업현장에서 뭘 하는지, 뭘 요구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우리 교수들은 공부만 합니다. 공부만 하다가 미국에 가서 몇 년씩 경험을 쌓기도 하지만, 문제는 외국 산업과 우리나라 산업이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 안식년을 이용해 국내외 산업체에 가 있어보기도 하지만, 교수 신분을 가진 채로 산업체에 가 있는 것은 아무래도 경험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요약하면, ‘우리나라 산업’에서 경험을 쌓아본 교수들이 아주 소수입니다. 그러니 산학협력이 활발할 수가 없습니다. 회사와 학교 간에 서로 뭘 하는지, 뭘 요구하는지 몰라서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독일의 경우는 공학 분야의 교수를 뽑을 때 박사 학위 받고 나서 대체로 10년 가까이 산업체에서 일해본 경력이 있어야만 교수 지원 자격이 됩니다. 그런데 논문 수를 중시하는 우리는 그런 인력을 뽑을 수 없습니다. 산업체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논문을 내지 못하니 우리 기준으로 하면 자동으로 자격 미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끔 우리 학부 학생 중 몇 명이 모여 게임 소프트웨어 같은 것을 만들어서 벤처 한다고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은 채 몇 년 동안 방황하는 경우를 보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제대로 된 벤처를 하려면 적어도 10여 년 정도 탄탄하게 축적된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한 다음에 하는 게 맞습니다. 소프트웨어 벤처는 진입 장벽이 낮아서 잠시 성공해서 반짝하는 듯 보이지만, 1~2년 만에 사라지고 그다음에 또 다른 사람이 비슷한 것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오래 축적된 경험을 가지고 만든 기술기반의 제조업 벤처는 하루아침에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쉽게 크지도 않지요.

 

공과대학에서 만약 창업을 지원한다면 지금 학부 학생들에게 지원하지 말고, 졸업한 동문 중에서 뽑아서 도와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졸업 후 업계에서 10년 이상 충분한 경험을 쌓고 나면, 대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쯤 될 텐데, 그러면 학교에 있는 교수님들과도 어느 정도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 중에서 선발해서 자본을 연결해주고, 공간도 빌려주고, 학교 교수들이 자문해주는 등의 지원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벤처가 경영관리나 법적인 이슈들에 특히 취약한데, 이런 부분들에 대해 공대가 조직적으로 컨설팅을 지원하면서 창업을 도와준다면 상당히 좋은 시스템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22. 공대는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평가받아야 - 강신형(기계항공공학부 / 유체기계)

기계과가 무엇을 하는 학과냐고 물어보면 ‘에너지를 어떻게 잘 사용할 것인가’와 관련된 학문을 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에너지를 잘 사용하는 데 관련된 각종 기계를 설계하고, 만들고, 효율을 높이는 것이 기계학의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발전 관련 회사가 5개, 6개로 나뉘어 있지만, 국내에서 서로 경쟁할 뿐 해외시장에 나가 경쟁력을 가질 정도는 안 됩니다.

 

기술 수준도 중요하지만 ‘브랜드 명성이 있느냐’, ‘세계 시장에서 마케팅을 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항공엔진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름난 민간항공기 엔진회사는 없습니다. 이 부문은 GE, 롤스로이스Rolls-Royce, 프랫&휘트니P&W와 같은 회사들이 석권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들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은 기술 수준 외에 정치, 외교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기술을 축적해온 역사적인 배경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스터빈도 마찬가지입니다. GE, 지멘스Siemens, 알스톰Alstom, 미쓰비시Mitsubishi 등의 4개 회사가 최고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중에서 미쓰비시는 비교적 뒤늦게 뛰어든 셈인데, 현재 위치까지 올라오는 데 무려 40년이 걸렸습니다.

 

이 분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제품의 제원이나 성능과 같은 기술적 효율성보다도 신뢰성reliability입니다. 즉, 실제 운용 중에 고장이 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이것을 실제로 운용되는 터빈에 장착하려는 구매자가 나서지 않는 형편입니다. 만일 구매해서 사용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구매와 사용을 결정했던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유명 브랜드의 검증된 제품을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이니 예를 들어 복합발전과 관련된 플랜트를 우리나라의 엔지니어링 회사가 수주하고자 경쟁에 뛰어들 때도, 미리 GE 등의 회사에 ‘가스터빈을 만들어줄 수 있는가’라고 물어 ‘예스’라는 답변을 들어야 비로소 입찰에 들어갈 수 있는 형편입니다. 기술력이 있다고 해도 기존 회사들의 브랜드 명성을 딛고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기가 어렵습니다.

 

가스터빈 개발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파트너가 될 만한 국내 중공업 분야의 큰 기업들을 대상으로 참여를 설득했었습니다. 모 회사의 경우에는 ‘이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회사이니 당연히 이런 종류의 사업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제안하니 투자한 금액을 회수할 만큼의 수익을 단기에 올릴 가능성이 있는지 묻더군요. 당시 여러 부문에서 수익을 내 자금력이 충분해 보이는 국내 굴지의 기업이었으니 ‘당장은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산업의 백년대계를 위해 꼭 필요하니 추진하자’라고 할 만도 한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좀 강하게 표현하자면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중공업 회사들이 겉모습은 대형회사이지만 그 속내는 중견기업만도 못하다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공과대학 교수 임용을 위한 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1년 이상 산업체 근무 경험이 있는 자’라는 조건을 걸겠습니다. 아니면, ‘부교수로 승진하기 전에 반드시 1년 이상 산업체에 다녀와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겠습니다. 그만큼 산업체에서의 경험이 공과대학에는 중요합니다.

저 자신도 지난번 안식년을 이용해서 국내 모 기업에서 일했습니다. 교수님들은 ‘산업체 과제 혹은 산학협력, 그거 마음만 먹고 시간 나면 아무나 하지’라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게다가 학술진흥재단에서 기초 연구조사에 지원하는 돈만 해도 1억 원이 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6,000만 원 수준의 과제만 지원하더라도 엄청나게 크다고 생각하는 상황이니, 교수님들이 산업체 과제를 해야 할 이유를 못 느끼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현장의 사람들과 부대끼고 속을 파헤치고, 서로 약점을 알고 도와줄 부분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회사도 문제가 있습니다. 회사 측의 말로는 산학협력을 하지 않는 이유로 ‘수익이 나지 않아서 못한다. 바빠서 못한다’는 핑계를 대는데, 현장에 직접 가보면 실제로는 실력도 모자라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회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들을 잘 모아서 설계자료로 만들고, 그럼으로써 제품 성능의 신뢰도를 높여서 구매자를 설득하고, 제품의 브랜드 명성을 높이는 것이 글로벌 기업으로 가는 길인데 현재 우리나라 회사들이 그것을 못 하고 있는 겁니다.

 

학술적인 논문을 구상하고 쓰는 데 들이는 시간만큼 산업체와의 교류에도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자연대학이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과대학은 학술적인 과제가 아니라고 해서 산업체가 겪는 문제를 모른 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엔지니어들이지 않습니까.

 

치프chief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통 20~30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어서, 예를 들어 압축기를 만드는 부서라면 거기에서 온갖 일을 다 해보고 그야말로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말로 마스터라고도 부릅니다. 엔지니어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방향을 정하고 결정을 내려주는 것입니다. 그런 치프 엔지니어의 역할을 해줄 사람을 우리나라 산업체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치 중간에 무엇인가 빠져 있는 느낌입니다. 지금 제일 시급하게 필요한 인력이 프로젝트 매니저급인데 그 역할을 할 경력 20년 되는 고참 부장급들 자리가 비어 있는 셈입니다.

 

회사에서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맡겨서 시키다가 나이가 들면 조기 퇴출시키는 분위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미국만 해도 엔지니어에게는 은퇴 개념이 없지 않습니까? 제 동기생들도 엔지니어로서 미국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은퇴라는 개념이 없으니 아직도 모두 왕성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 회사에서 치프 엔지니어급으로 일하던 제 동기생들은 지금 다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한국 회사들이 예전과 같은 노하우 전수체계도 갖추지 않은 채 그저 일만 바쁘게 하는 분위기가 아닌가’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엔지니어들이 일을 해나가면서 체계적으로 경험을 갖도록 하고 경력도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중요한데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현재 한국에 건설된 발전소의 총 발전용량이 80GW가 넘는데, 중국이 1년에 새로 짓는 발전소들의 총 발전용량만도 60~70GW를 넘을 것 같습니다.

 

중국은 이미 우리 돈으로 16조 원을 투자하여 독자적인 가스터빈 개발을 시작한 상태입니다. 인도도 조만간 시작할 것입니다. 이렇게 큰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는 중국과 인도 등이 가스터빈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데, 이들이 굴지의 글로벌 회사들과 합작해서 필요한 노하우를 배우고, 스스로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면 가스터빈에 관한 한 한국의 입지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 벤처 창업, 융합, IoT(사물인터넷) 등 새로운 키워드를 쫓아가는 쪽에 자원을 집중적으로 배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외국에서 유행하는 팬시fancy한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편중된 지원을 하는 사이, 기간산업 부문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해 현재 인력 배출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업계에서는 중공업, 중화학공업 쪽의 인력수요가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인력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아주 심각하고, 앞으로 큰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봅니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기술개발 지원정책이 균형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출연연구소가 어떤 연구가 필요해서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국가적인 미션에 부합하는지만 집중적으로 체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좀 심하게 말하면 정부가 연구하는 과정까지 일일이 간섭합니다.

 

사실 조금 실용적인 이런 분야에서는 경험적 지식이 기계연구원과 같은 곳에 제일 많이 쌓여 있어야 정상인데, 현재는 그렇지 못한 상황입니다. 미국식으로 한다면 국책 연구기관인 기계연구원 같은 곳에 있는 50대 후반에서 60대쯤 되는 책임자들이 학교 교수들과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팀을 이끌고, 일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독일에서는 예를 들어 어떤 엔진회사가 새로운 엔진을 개발할 경우,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엔진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의 것을 업데이트해서 새로운 스펙을 가진 것으로 진화시키는 전략을 씁니다. 그래도 할 일이 많고 예산도 많이 들어갑니다. 그 일을 한 회사에서 통째로 맡아서 하다가 실패하면 회사에 치명적인 손실이 됩니다. 이 문제에 독일이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 그러한 엔진 개발 과정에서 손을 봐야 할 아이템이 예를 들어 20가지가 나오면 그중 일부는 어느 대학에서 하고, 어떤 것들은 연구소에서 하는 식으로 거의 분업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산학연 협력을 수행합니다. 그러니까 실제 시스템에 장착될 물건을 학교에서 실험해서 그 데이터를 사용하는 수도 있고, 부품을 학교에서 실제로 설계해서 산업체로 보내주는 식으로도 산학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집니다. 한국도 공과대학의 산학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항상 그런 식의 분업의 자세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몇 년 동안 정부 관계자와 만난 경험을 통해 정부기관이 어떤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대개 1년이나 1년 반이면 정부기관의 담당자들이 바뀌고, 또 최신 트렌드에 맞는 키워드를 따라가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부의 관점에서는 연구개발에 지원하는 것 말고도 중요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연구개발로 나온 결과물에 대해 레퍼런스 실적을 쌓아주기 위해 국내에서 구축하는 시스템에 선도적으로 채택하도록 하고, 또 우리나라에서 수주한 해외 플랜트에 얹어서 세계 시장에도 진출시켜주는 식의 청사진을 가지고 한 10년 정도 꾸준히 지원해야 합니다. 정부는 바로 그런 곳에 투자하고 힘을 써줘야 합니다. 연구비 이외의 것은 산업체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일본과 미국은 현재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GDP 대비 기술투자가 거의 4%에 가깝다고 합니다. 이는 세계 1~2위 수준이라고 하는데 산업의 기초가 되는 분야에 전략적인 투자를 지속해서 해나가면, 국제경쟁력을 가지는 산업이 하나 생기게 되는 겁니다.

 

유행하는 부문 중심으로 자원을 집중하거나, 혹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며 무작정 투자하는 현재의 정책 방향은 실리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기계산업에서의 연구는 대부분 제품개발을 목표로 합니다. 그래서 설계와 생산, 그리고 생산된 물건에 대한 성능 평가 및 데이터 구축, 이 세 가지가 기본 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고루 발전해야 기술이 축적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중 어느 하나가 빠지면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요즘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오히려 뭔가 빠진 느낌이 듭니다. 설계한 것을 실제로 만들어보고 평가하고 해야 할 텐데 소위 ‘일류대학’이라고 하는 곳으로 갈수록 논문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교수님들의 지향과 맞물려서 실제 디자인하고 평가하는 일의 가치가 잊히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공학교육은 여전히 기초과목들을 필수과목으로 철저하고 깊이 있게 가르치고, 성적 인플레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엄격하게 평가하여 학점을 주고, 산업체로 취업할 때 교수의 추천이 큰 역할을 하도록 하는 사뭇 복고적인 분위기가 다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물건을 하나 만들려면 뭘 더해보고 빼보기도 하고, 강도strength 계산도 해보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런 수업 과정들을 통해 그런 교육 효과가 일부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합니다. 불행하게도 현재 서울공대 기계과의 일부 모습은 멋있어 보이는 것만을 하거나 물리학에 해당하는 것들만 하고 있어서 기계과의 기본과는 많이 멀어진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서울대를 졸업한 학부생들이 회사에 가면 학부 때 최신의 좋은 경험을 해본 타 대학 졸업생들에게 실력 면에서 뒤지는 상황이 충분히 생길 수 있을 겁니다.

 

‘서울대학교가 세계 대학 순위 30위권에 들어갔다, 서울공대는 세계 공과대학 중 10위권 내에 들어갔다’는 식의 평가를 여러 차례 듣습니다. 이처럼 대학의 등수를 매기는 데는 교수들의 논문 수, 영향력 등이 고려되겠지요. 그러나 저는 중국이 한국의 주력산업 부문 전반에 걸쳐, 그리고 연구에서도 저렇게 무서운 속도로 추격을 해오고 있는데 서울공대가 지금 교수들이 출간한 논문 편수에 연연해야 하는가, 대학 순위에 목매달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한국의 산업계가 위기에 처해 있고 쇠락해가는데 서울공대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저는 공과대학은 산업을 리드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엔지니어가 해야 할 일 아닌가요?

 

정부 연구비를 못 받더라도, 세계 공과대학 순위에서 몇 위가 되든 상관하지 말고 우리는 한국 산업에 이러저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공헌하겠다는 꿋꿋한 소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23.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전략을 왜곡시킨다 - 김승조(기계항공공학부 / 항공우주)

항공우주산업 중에서는 항공기산업의 시장 규모가 4,000억~5,000억 달러로 제일 큽니다. 그다음으로 어디까지를 우주산업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조금 다르겠지만, 인공위성 및 발사체의 세계 시장을 현재로서는 약 1,000억 달러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둘을 합치면 항공우주산업의 규모가 5,000억~6,000억 달러 규모로 엄청나게 큽니다. 지금 스마트폰산업이 2,500억 달러, PC산업이 1,000억 달러 수준이고, 조선산업도 최고 정점을 찍을 때가 1,000억 달러가 채 안 되는 규모이니까 항공우주산업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죠.

 

항공기의 경우 비행기 전체 형상을 설계, 개발해서 굉장히 엄격한 시험을 거쳐 인증을 받게 되는데, 이 전 과정을 소화할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부품, 소재, 재료 등을 공급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데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항공기는 자동차와 달리 범용 부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임의로 부품을 선택해서 장착할 수 없습니다. 만일 최종적으로 여객기를 만드는 회사가 인정하지 않는 부품을 공급해서 장착한 후 사고가 나면 수십조 원의 손해를 입게 되지요. 자칫 회사 자체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최초의 개념적인 체계system 설계를 할 때부터 이미 엔지니어가 사용할 부품을 다 정해줍니다.

그래서 항공산업은 부품산업부터 성장한다는 개념이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체계를 만드는 사업을 해야 하는데, 체계를 하자고 제안하면 경제관료들은 우선 경제성이 있는지부터 묻습니다. 검토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 예산 배분을 안 해주죠. 항공우주산업이 가지는 국가적 중요성과 달리, 경제성을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체계 중심의 사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국가 사업이니까 그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2000년대 초중반에 정부에서 중요한 결정을 했습니다. 당시 항공우주 과학기술에 굉장히 우호적이었던 정부가 항공우주 부문을 지원할지 그만둘지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로 한 것으로 압니다. 결국, 오랜 기간 검토를 거친 뒤 전체 의견을 모아 국가적으로 지원하자고 결정하였고, 그 후 항공 관련 산업의 재무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이나 기타 여러 가지 국가적 지원을 계속해온 것입니다.

국가의 지원이 결정된 후에도 어떻게 체계를 갖출 것인가가 굉장한 고민거리였는데 그 물꼬가 트인 것이 바로 군용기 쪽에서입니다. 우리가 군사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군용기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큽니다. 그런데 국방 현장의 수요는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어떻게 보면 눈높이가 너무 높은 것은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든 고등훈련기는 아주 높은 사양으로 설계되었지요. 처음에는 사양이 너무 높아서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한 수출에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최근 그 가치가 인정되면서 개발도상국에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훈련기 대체 수요 시장에 일부 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경험을 축적해나가면 훈련기와 초·중급 전투기 모두를 양산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헬기도 교체 수요가 많아 개발 가능성이 크고, 이미 성공한 부분도 많습니다.

 

민간항공기 부문도 중요한데, 국내는 수요가 많지 않아 어렵습니다. 또 민간 항공사들은 제조에 뛰어들 만한 돈이 없죠. 국내 최대의 항공사라고 해도 1년 매출이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아주 작고, 그중에서 항공우주사업을 담당하는 부분의 매출은 10분의 1에 불과할 정도입니다. 비행기 구매하고 나서 오프셋offset으로 받은 기계를 가공해서 부품을 일부 조달하는 기술 부문을 운영하는 단계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만들어진 비행기를 판매할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내놓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직접 민항기를 판매한 이력이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우리와 같이 개발하고 판매를 해줄 선진 항공사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항공사업을 버려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아까 말씀 드렸듯이 전체 항공우주산업의 규모가 5,000~6,000억 달러 규모입니다. 만일 우리가 자동차나 전자산업 못지않게 그중 10%의 시장을 점유할 수만 있다면 500억~600억 달러의 매출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의 질문은 이렇게 바꾸어야 합니다. ‘500억~600억 달러의 시장을 그냥 포기할 것이냐?’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항공우주시스템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남과 북이 강력하게 대치하고 있고 극동아시아의 정세를 고려할 때 우리가 공군 전력을 운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자체로 양산이 안 되면 구매를 해서라도 공군력을 유지해야 하죠. 그런데 전투기를 사서 쓰면 개발비가 들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구매 이후에 그것을 운용하는 약 30년이란 기간 동안 엄청나게 큰돈을 쓰게 됩니다. 우리가 기술을 가지고 양산을 하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게다가 산업으로서의 성장 가능성도 있습니다.

향후 한국이 새로 뛰어들 수 있는 5,000~6,00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시장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1,0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조차도 잘 안 보이지요. 그러니 큰 시장에서 미래를 보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항공우주산업은 더 성장할 테니까요.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IT 쪽에서 돈을 번 사람들이 대부분 벤처회사를 만들어서 우주 관련 사업에 뛰어들고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수요가 있고, 돈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항공 쪽에서 앞으로 크게 성장할 산업 부문이 있는데 개인용 이동수단으로서의 항공기personal air vehicle입니다. 이는 현재 있는 개인용 항공기와 달리 파일럿 없이 간단한 조작만으로 비행할 수 있는 항공기를 말합니다. 현재의 무인기 기술이 신뢰성이 높아지면 파일럿 없이 항공기 운항이 가능하게 되어서 수요가 엄청나게 늘 겁니다. 아마도 그 최종적인 형태는 도어-투-도어door to door 이동이 가능한 수직이착륙 비행기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승용차와 유사한 개념이 되지 않겠습니까? 현재 자동차가 전 세계적으로 연간 8,000만 대 정도 판매되는 데 그중에서 5%만 개인용 항공기로 바뀌어도 400만 대죠. 한 대에 10만 달러로만 계산해도 4,000억 달러, 자동차의 10%가 전환하면 8,000억 달러의 시장이 새로 탄생하게 됩니다.

이 밖에도 상상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주산업과 관련해서 흔히 얘기하는 우주관광도 있을 수 있고, 또 우주의 궤도 상에서 할 수 있는 궤도산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우주정거장이 있는데 우주정거장에 일반인들이 오갈 수 있게 되면 그것이 바로 우주호텔이 될 것입니다. 우주호텔을 운영하려면 사람, 화물, 음식, 쓰레기 등을 실어 나를 어마어마한 규모의 발사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발사장도 있어야 할 테고요. 실제 엘론 머스크Elon Musk의 경우에는 발사체로부터 벤처를 시작했죠. 결국, 우주산업의 성패는 발사체를 얼마나 싸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나로호의 성공을 계기로 해서 2014년 한 해 예산만 2,000억 원 넘게 집행했고, 2015년에도 비슷한 규모로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이렇게 앞으로 계속 노력을 축적해서 우리 발사체를 개발할 예정입니다.

인공위성도 앞으로 정지궤도 위성, 레이더 위성, 중형 위성 등을 포함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일 분야입니다. 이것으로 우주산업을 키우는 토대를 만들고 우리도 가격경쟁력이 있는 발사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엘론 머스크는 현재의 발사 비용을 10분의 1로 낮추겠다고 공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현재 우주호텔을 비롯해서 우주산업이 활성화되고 있지 못한 데는 안전성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발사 비용이 너무 비싸 대중화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발사 비용을 낮출 수 있게 되면 우주산업 쪽에서 엄청나게 큰 기회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주태양광발전도 또 하나의 가능성 있는 상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3만6천 킬로미터 떨어진 정지궤도에 태양광을 모을 수 있는 설비를 해놓고, 손실 없이 들어오는 태양광을 모아서 지구로 전송하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 배 정도 프리즘화해서 지구로 보내 물을 끓여 발전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우주태양광발전 때문에 20년쯤 후에는 에너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 발사체 비용 문제도 있고 정지궤도에 어떻게 그 엄청난 시설물을 설치할 것인가, 어떻게 에너지를 지구로 전송할 것인가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에너지 전송 방식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마이크로웨이브를 이용한 전송의 효율이 크게 좋아졌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전송 방식을 둘러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양광발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구 상에서 얻어지는 자원을 이용한 그 어떤 에너지 생산 방법도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우주로 눈을 돌릴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단 자꾸 상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공우주산업은 항공이나 우주를 전공한 사람들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항공우주산업 전 분야에 걸쳐 실제 종사하고 있는 엔지니어 중 10~20% 정도만 항공우주 쪽 소양이 강할 뿐입니다. 사업이 좀 더 커지게 되면 부족해지긴 하겠지만, 조금만 노력을 하면 인력 문제는 해결되리라 봅니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항공우주 분야에 와 있는 인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MBA, 의사, 변호사 하겠다고 다 빠져나가는 상황이니까요. 이 분야의 전망이 좋아지면 인력이 누출되지 않으리라 봅니다.

 

인공위성과 같은 것을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발사체와 그렇지 않은 발사체는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궤도에 올리지 않고 그냥 올라갔다 내려오는 발사체는, 농담으로 하는 얘기이지만 전문가 몇 사람이 성패 여부에 대해 입을 맞추어 이야기하면 실제로 성공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이와 달리 궤도에 무언가를 올려야 하는 경우라면 그 위치가 정확히 파악되기 때문에 적당히 넘어갈 수가 없죠.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수준의 발사체를 개발하는 데는 어떤 어려운 점이 있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무엇이 핵심인지, 그런 것들에 대해 이번에 분명히 수억 달러의 로켓값 이상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값을 따지기 힘든 경험들이었습니다.

한편, 우리 사회 전체가 나로호는 무조건 발사에 성공해야 한다는 과도한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이 대단했습니다. 물론 그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도 없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도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시행착오를 각오하고서라도 장기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도전적인 설계, 즉 양산을 전제로 한 설계를 해야겠다는 개념이 약해집니다. 그에 따라 장기적으로 고비용 구조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당장 실패하지 않는 물건 제작하는 데만 신경을 쓰지 말고, 앞으로 더 싸게 만들 방법을 찾는 데 상당한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실패를 용인하겠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GDP 대비 국가 R&D 투자 비중에서 세계 최고 수준 아닙니까? 그러나 연구비를 배정할 때 선진국처럼 지원하지 않습니다. 잘못 선정해서 뿌리면 문제가 생길까 봐 전부 위원회를 통해서 결정하죠. 그런데 그 위원회는 교수들로 구성합니다. 그러니까 선진국과 같은 규모의 연구비를 집행하더라도 한국의 교수들이 더 바쁩니다.

주변에 계신 교수님들이 외부 활동 다니는 것을 보면 적게 잡아도 대략 3분의 1 정도는 남의 것을 평가하러 다니는 것이더군요. 자꾸 돌아다니면서 그런 자리에 나가 아는 사람의 범위를 넓혀야 차후에 자기 것 평가받을 때도 잘 받으니까요. 이렇게 자기 것 평가받느라 바쁘고, 남의 것 평가하느라 바쁩니다. 노벨상을 타겠다는 자연과학대학의 교수들이 외부 일로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 하고, 연구실에 있을 시간이 없더군요. 그렇게 바빠서야 맡은 프로젝트인들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런 현실은 당연히 교육도 멍들게 하죠.

이처럼 교수들이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데가 많아지면, 교수들의 연구에 대한 시간 투입이 적어질 텐데 어떻게 노벨상을 탈 수 있겠습니까? 사실 저는 예전에 연구 때문에 교육이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와 현실을 보니까, 연구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로 연구인지도 모를 정도예요. 그렇게 바깥에 다니기 바쁜데 그것을 어떻게 연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앉아서 자기 고민할 시간이 없는데 말입니다.

 

미국은 지속적인 연구 지원을 통해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지요. 특히 자연과학 계열은 더 조용합니다. 부산스럽기 짝이 없는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 차이가 큽니다.

교육도 그렇습니다. 교수가 앉아서 고민할 시간이 있어야 교육을 위해 이것저것 따져가며 창의적인 생각을 해낼 것 아니겠습니까? 그럴 시간이 전혀 없어요. 이공계의 강의 내용이야 어차피 미국이나 선진국에서 하는 것들과 비슷하니까, 비록 시간이 없어 원천적인 아이디어는 못 내더라도 인터넷을 검색하든지 해서라도 이것저것 모아올 방법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조차 할 시간이 없습니다. 전국에서 불러대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어요. 정부출연연구소마다 불러내는 교수들이 수백 명입니다. 선정, 평가를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해서 최고점 평가자 하나, 최하점 평가자 하나를 빼려면 기본적으로 평가위원 풀도 커야 하니 생기는 현상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R&D 자금 중에서 이러저러한 평가에 지출되는 돈이 결코 적지 않을 겁니다. 정부 부처마다 연구개발 평가기관을 만들 기세입니다. 이와 같은 현실은 생각하지 않고 투자만 늘리면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모양인데, 제가 보기에는 반대로 점점 멀어지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따러 다니지 않고, 장기적으로 집중해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항공우주 분야의 학생들에게 크게 3개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학문 후속, 다음으로 연구개발, 세 번째로 산업기술 정책이라고 봅니다. 항공우주 분야의 경우는 학문 후속 3분의 1, 연구개발 3분의 1, 산업계와 정책 3분의 1, 이렇게 인력이 배분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여타의 산업 분야는 상식적으로 산업계로 가는 인력이 훨씬 더 많아야겠지요. 그러나 항공우주 분야는 지금 상업화가 많이 진전된 상태가 아니고 국가에서 직접적인 관여를 많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정책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관련 분야를 전공한 엔지니어들이 정책을 입안하는 공무원이나 관련 분야로도 많이 진출해서,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국가적 관점에서 산업을 같이 이끌고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국의 산업발전, 국가발전에 국가출연연구소들이 엄청난 역할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그 점을 충분히 인정해주어야 해요. 하지만 근본적인 질문들은 계속 던져야 합니다. 국가출연연구기관이 그렇게 세분화되어 많이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큰 틀에서 출연연구소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체질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특정 분야의 경우 같은 역할을 하는 유사 연구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과제가 너무 소형화되고 숫자도 많습니다. 모 연구소의 경우 한 명의 연구원이 5~10개 과제를 맡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일부 연구소의 경우 중소기업에서도 할 수 있는 과제를 수행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미션이 불확실하니 국가가 지원하는 출연연구소가 중소기업과 경쟁을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초래되는 것입니다.

 

출연연구소는 특정한 미션, 국가적인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견이지만,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계열과 산업체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연구를 하는 계열, 그리고 매우 특정한 국가적 미션을 가진 계열 등 3~4개의 큰 집단으로 성격을 다시 정의하고, 그에 맞추어 조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4. 수직계열 체제를 깨야 기계산업이 산다 - 주종남(기계항공공학부 / 정밀기계)

이제는 경쟁력의 핵심이 어떻게 디자인해서 더 얇고 예쁘게 만드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디자인을 구현하는 단계에서는 기계적인 기술을 둘러싼 싸움이 핵심입니다.

 

스마트폰도 이제는 디자인 싸움이 되어버렸죠. 애플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제품은 알루미늄을 통째로 깎아서 만들기 때문에 후면 커버를 열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배터리를 교환할 수 없게 되어서 불편하긴 하지만 튼튼하고 예쁘죠. 이런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계적인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또 반도체 분야에서도 장비 쪽은 기계적인 이슈가 굉장히 중요해요.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전자 분야뿐만 아니라 화학, 소재, 의학 분야 등 거의 전 산업에 걸쳐서 기계적인 요소들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실제로 기계과를 졸업한 인력들이 가장 많이 취업하는 곳이 전자회사입니다. 정밀기계회사로 가는 비율은 생각만큼 크지 않아요. 그만큼 기계 인력을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로 한다는 반증이죠.

 

기계기술은 천천히 발전하고 오래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자동차 내연기관 엔진은 발명된 지 140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쓰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조금씩 발전되어오긴 했지만 극적인 변화가 없이 그 기본 형태나 원리가 똑같죠. 사실 기계는 먼저 이해하고 만드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140년 전에 자동차 엔진을 만들 때 역학이나 열역학 이론으로 해석한 다음에 만든 게 아닙니다. 그냥 엄청나게 많은 시도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한 것이죠.

기계 분야는 이론을 바탕으로 기기를 만들기보다는, 만든 후에 이론적인 해석이 나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현상이 너무 복잡해서 이론적으로 예측하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계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죠. 반면 전자 분야는 프로그래밍을 하면 버그는 있을지언정 프로그래밍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렇게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굉장히 빨리 쫓아갈 수 있고, 잘못 되었을 때에도 금방 바꿀 수가 있어요. 하지만 기계는 이론을 가지고 예측해서 만들기가 어려워 결국 많이 경험하고 많이 실패해본 사람의 실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등 세계적 강국들은 공통적으로 기계산업이 강합니다. 국력과 기계산업의 경쟁력이 비례한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산업이 성장하면서 무역흑자가 나면 날수록 반대로 기계류 부품의 무역적자는 더 커졌었습니다. 대부분의 기계 부품을 수입해서 썼기 때문이죠. 특히 일본에서 수입하는 비율이 점점 커지면서 오랫동안 만성적자를 기록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약간씩 흑자로 돌아섰는데, 우리가 중국에 기계부품을 수출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부품의 품질은 독일이나 미국, 일본보다 떨어지는 수준이었는데, 중국에서는 그다지 좋은 품질의 부품이 필요하지 않았던 거예요. 질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대신 가격이 싼 부품이 필요했죠. 우리에게 딱 맞는 시장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부품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상당한 매출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좋은 상황이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이제 중국도 자체 기술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중국이 기계부품들을 더 이상 수입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만들기 시작한다면 중국 시장에서조차 우리는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럴 때를 대비해 우리가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아직 그 수준까지는 올라가지 못했어요. 이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기계산업의 미래가 상당히 불확실하죠.

 

산업구조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미사일이나 유도시스템에도 들어가는 초정밀 베어링은 그동안 일본에서 수입을 해왔던 부품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많은 자금을 들여서 이것을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어요. 문제는 이 제품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시장 규모가 너무 작아서 팔아도 이익이 안 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세계 시장에 들어가기에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이미 전 세계를 상대로 판매 중인 일본을 뚫고 들어가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더구나 기계 분야는 상당히 보수적입니다. 검증된 것이 아니면 잘 바꾸려 하지 않죠. 도입한 기계를 10년 정도는 써야 하는데 쓰다가 망가지면 구매 결정을 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할 테니 검증된 제품이 아니면 사용하기를 꺼립니다.

우리나라 내수시장이 충분히 크면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었을 때, 내수시장부터 시작해서 키워나가면서 나중에 세계 시장으로 나가서 경쟁해 볼 수 있을 텐데, 특수한 부품들은 내수시장이 너무나 작습니다. 그러니 부품 업계가 매우 살아남기 힘듭니다.

 

이제는 하이엔드high-end 쪽으로 가서 전문기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 내수시장이 워낙 작으니 전문기계를 만들어도 몇 대 팔지 못해 채산성을 맞출 수 없습니다.

 

대기업들이 수직계열화를 통해 회사가 쓰는 부품을 자기네 계열사가 만들도록 한 것이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가 그동안 빨리 성장할 때는 도움이 되었죠. 남들 하는 것 따라갈 때는 빨리 카피해서 싸게 만들어 파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그 정도 수준의 산업은 중국 같은 신흥국이 모두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질적으로 차별성 있는 쪽으로 가려면 부품회사들이 기술을 개발해서 현대, 삼성, GM대우 등 여러 회사에 기술적으로 차별성 있는 제품을 납품하면서 함께 커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복수 납품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리고 또 웬만한 부품은 자기 계열사에서 만들어 버리니 건강한 산업 구조가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계열사 입장에서도 판로가 이미 정해져 있으니 기술 개발을 열심히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결국 계열사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완성 제품의 경쟁력도 떨어지게 되며, 다른 부품회사들도 성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와 제철을 한 회사가 운영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회사의 자동차 부문은 계열사인 제철회사에서 만든 철강재를 가져다가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다른 나라는 차량을 경량화하기 위해 알루미늄 등 경량소재를 쓰는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이 자동차회사는 계열사가 만든 철강재를 쓰느라 새로 개발된 새로운 소재를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자동차회사의 경쟁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철강회사도 혁신에 소홀해지게 됩니다.

정부가 지금까지 중소기업을 위해 많은 연구개발비를 투자했지만, 이러한 시장 구조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대기업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깨고 동반성장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기계 분야의 기술 벤처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벤처란 본질적으로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남보다 한발 앞서서 치고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술적인 우위보다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계 분야는 모든 프로세스가 상당히 느립니다. 1년, 2년 앞서서 개발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짧은 기간 안에 완성품이 나오기는 어렵기 때문에 크게 유리한 점이 없어요. 기계 분야는 많이 실패해본 사람이 실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벤처는 한번 실패하면 끝입니다. 이러한 기계 분야의 특성 때문에 벤처가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그룹사들이 자체적으로 생산기술을 연구하는 곳을 다시 만들면서 중소업체에서 많은 인력을 데려가서, 중소기업은 기술인력 유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기계 분야 국책연구소의 역할도 제한적입니다. 거기서 할 수 있는 게 극히 일부분이에요. 분야가 워낙 다양한데 적은 인원으로 연구를 하니 한계가 있죠. 이 기관들은 정부 산하여서 직간접적으로 과제 형식으로 정부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기업체와 매칭을 해서 실제 매출을 올리는 것을 연구비 지원 조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그 조건이 매우 형식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결국 국책연구소의 연구원은 정부 연구비를 확보하기 위해 중소기업과 대학을 연계하는 매니저 역할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저는 3D 프린팅이 너무 과대 평가되어 있다고 봅니다. 3D 프린팅은 3차원으로 만들어서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는 점과 제대로 만들기 전에 임시로 만들어서 끼워보고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그걸로 실제 상품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많은 경우 3D 프린팅으로 뭔가를 만들어도 실제로 쓸 수 있는 정도의 강도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3D 프린팅 기술이 진보해서 쇠로 물건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그걸로 볼트를 만들어서 조이면 그냥 깨져버려요. 형태만 똑같이 만든다는 것이지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부품 역할을 하지는 못하는 거죠. 그러니 힘을 안 받는 데만 쓸 수 있는데 그런 분야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조각품으로 감상하는 용은 만들 수 있지만, 실제로 하늘을 나는 용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정부에서 3D 프린팅에 상당히 많은 R&D 자금을 지원하고 있어요. 가까운 미래에 3D 프린터를 집집마다 하나씩 갖게 될 거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집에서 뭘 만들어 쓸 수 있는지에 대한 얘기는 없습니다. 제가 전공이 기계라서 실용성·현실성에 비중을 더 두는 성향이 있어요. 그래서 먼 미래를 보고 꿈꾸는 것은 좋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보이는 게 없는데 당장 엄청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처럼 과장해서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만들어서 쓰려면 형태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쓸 수 있는 물리적 특성이 나와야 하고 합리적인 시간과 비용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정부 정책이나 R&D 자금이 지나치게 미국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의 산업과 우리의 산업환경이 완전히 다른데, 어떻게 미국과 똑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과 비교해서 우리가 뭘 잘할 수 있느냐를 살펴보지도 않고, 미국이 한다니까 우리도 따라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의 몇 %에 불과한 연구비를 투자하면서 미국과 동등하게 행동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인 거죠. 유행에 휩쓸려서 정부 정책과 엄청난 R&D 자금이 투자되는 일은 이제 지양하고, 우리나라 환경에 맞는 산업을 찾아 육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들이 기존 관습에 익숙해져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중소기업에서 도움을 받고 싶다고 저를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파이프 배관을 받치는 브래킷을 만들어 파는 회사였어요. 이 브래킷을 현장에서 조립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무거운 파이프를 올려놓으니까 미끄러지면서 찢어지는 문제가 생기는데 이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더군요. 들어보니 이건 재료의 문제가 아니고 설계 문제더라고요. 볼트 모양만 조금 바꿔도 해결되는 문제죠. 그 회사에서는 옛날부터 이렇게 만들어왔으니, 그 틀 안에서만 개선할 방법을 찾으니까 안 보이는 거예요. 관점을 바꾸어 다른 시각에서 보면 어렵지 않게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나올 만한 높은 수준의 지식이 아니더라도 기업들이 간단한 부분에서 놓치는 것들을 골프의 원포인트 레슨처럼 학교에서 잡아주는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창의성을 키운다는 것과 기계의 특성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어요. 기계 분야에서는 대개는 기발한 것들이 기계 성능의 관점에서 보면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거든요. 그동안 검증된 방법으로 만든 것들이 오히려 결과가 더 좋죠. 저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장려하기 위해서 새로운 아이디어에 가산점을 주긴 하지만, 기존 방법으로 만든 것과 비교할 때 성능이 떨어지는 데도 기발하다는 이유만으로 점수를 더 줄 수는 없습니다. 기계 분야에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보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자세가 더 중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 기준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는 저로서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난제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렇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내보고 실패도 하면서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상당히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만들어보는 경험을 많이 하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까지 뭔가를 만들어본 경험이 전혀 없이 매일 문제만 풀다가 대학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학생들에게 과제를 줄 때, 모든 학생이 다 할 수 있을 만큼 너무 쉬워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내서 아무도 못해내도 안 되죠. 어렵지만 열심히 하면 해결할 정도의 과제를 줘야 합니다.

 

25. 기술을 아는 사람이 중심에 있어야 일류기업이 된다 - 주한규(원자핵공학과 / 원자로 설계 해석)

초기에 국가적 차원에서 원자력 기술 자립을 위한 정책을 체계적으로 펴 원자력산업을 지원한 데 힘입은 바 큽니다. 또한, 당시 원자력산업에 투입됐던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우리나라 원자력산업의 부흥이 시작되었던 시기가 우연하게도 미국 내에서 반핵운동이 시작되면서 원자력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렸습니다. 1979년에 스리마일 섬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미국 내 반핵 분위기가 거세어졌습니다. 게다가 1986년에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면서 이를 계기로 미국 내에서 원전을 새로 건설하려던 계획이 모두 무산됐습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소 건설계획을 계속 추진하고 있어서 미국이 원전산업에서 잠시 손을 놓은 사이에 미국의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습니다. 1986년 당시 전수받은 원전기술이 토대가 돼서 한국형 원전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수출까지 하게 됐지요.

 

1980년과 상대적으로 비교해보면 GDP가 약 13배 정도 상승했습니다. 우리나라 발전량을 비교해보면 같은 기간 거의 똑같이 약 13배 증가했습니다. 즉, GDP의 증가와 전력생산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전기요금은 1.7배 올랐을 뿐이에요. 그동안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전기요금은 엄청나게 떨어진 거죠. 전기요금이 그렇게 쌌던 것이 우리나라 제조업의 성장에 아주 중요한 기여를 했는데 싼 전기요금에 일조한 것이 바로 원자력입니다.

 

물론 시설 비용이 비싸긴 하지만 연료값은 들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결국 1980년대 원자력발전이 우리나라 전력의 많은 부분을 생산한 덕분에 급격하게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원자력을 없애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 움직임은 신중한 편입니다. 예를 들어 스위스가 원자력발전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스위스의 전력의 50% 이상이 원자력발전을 통해 생산되며, 가동 중인 원전을 일부러 중단할 계획은 없습니다. 급격한 변화를 주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국가의 경우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점점 늘어날 조짐도 보입니다. 대표적인 국가가 중국입니다.

 

기본적으로 원전이 앞으로도 에너지 공급에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봅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원자력발전이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에 영향을 덜 받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의 저유가는 전 세계의 정치·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저렴한 셰일가스 공급이 지금의 유가 하락 원인인데, 그에 따라 러시아 경제가 갑자기 위축되고 있습니다. 중동 국가들도 유가가 떨어지면 영향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에너지 가격과 공급 여건의 변동이 이처럼 국가적으로 큰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이때 국가 에너지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보면, 원자력이 1차 에너지원으로부터 발생하는 외부적인 변동에 의한 경제적 충격을 완충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원자력산업계가 우리보다 큰 곳이 미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정도입니다. 한국이 약 5위 정도 된다고 보면 될 겁니다. 미국은 한동안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사도 직접 설비 제작을 하지 않고 있는데, 한국의 중공업 회사가 웨스팅하우스의 원자로를 다 맡아서 제작하고 있지요. 프랑스에는 AREVA라는 회사가 있는데 공기工期를 잘 맞추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이 회사는 최근 핀란드에 짓던 원전의 공기를 맞추지 못해서 내야 하는 벌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가 결국 최근 매각됐습니다. 한국이 규모로는 5위 정도이지만, 시공과 관리 등에서의 강점까지 고려하면 그보다 높은 수위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국내에서 계속 원자력발전소를 지어본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요.

 

중국이 스스로 지어보면서 노하우를 빠른 속도로 쌓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추격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현재 원자력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은 두 가지로 종합해 볼 수 있는데, 사용 후 핵연료 처리와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정성 보장 문제입니다.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는 또 새로운 개념의 발전소 건설과도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우선 핵연료 사용 후 처리 문제와 관련해서 말씀드리면, 사용 후 연료 중 초우라늄 원소는 반감기가 수만 년 이상이 됩니다. 이것을 땅에 묻을 수도 있지만 그 방법도 문제가 많아서, 보완책으로 방사성을 오래 유지하는 초우라늄 원소를 파쇄하여 방사성 반감기를 짧게 만듦으로써 단기간만 관리해도 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초우라늄 원소를 파쇄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죠. 이 방법은 소위 핵변환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핵변환을 하려면 초우라늄 원소를 분리하는 재처리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재처리 과정에서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따로 뽑아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미국에서 못 하도록 막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이 개발 중인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은 재처리를 하면서 초우라늄 원고를 분리할 때 플루토늄만 선별해서 추출하기 힘든 기술입니다. 아메리슘Am이나 넵투늄Np 같은 불순물이 같이 나오게 되죠. 그래서 이 공정에서 나온 추출물을 가지고는 핵무기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현재 파이로프로세싱에 대해 실험실 규모를 더 크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원자력협정이 개정되어 있습니다.

 

파이로프로세싱 :: 원자력발전소에서 연소되어 원자로 밖으로 꺼낸 핵연료인 사용후핵연료에 포함된 우라늄 등을 회수하여 차세대 원자로인 고속로의 핵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핵연료 건식재처리기술 또는 건식정련기술이라고도 불린다.
전문가들은 이 기술을 실용화하면 우라늄을 반복 재활용함으로써 우라늄 활용도를 높일 수 있고, 사용후핵연료의 부피, 발열량 및 방사성 독성 감축효과가 있어 고준위폐기물 처분장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용후핵연료에는 우라늄 약 96%, 플루토늄 약 1%, 넵트늄·아메리슘·큐리움·세슘·스트론튬 등 핵분열생성물(장반감기 핵종과 고방열 핵종)이 약 3% 포함되어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이 사용후핵연료를 500℃ 이상의 고온에서 소금을 녹인 것과 비슷한 용융염 매질과 전기를 이용해 전기화학적으로 처리하는 기술이다. 고온 용융염을 이용한 전해환원 공정을 통해 산화물 형태인 사용후핵연료를 금속 형태의 사용후핵연료로 바꾼 뒤 고온의 용융염 매질에서 정련 공정을 통해 우라늄을 선택적으로 회수하고, 다시 제련 공정을 통해 잔여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포함한 미량의 핵물질군을 함께 회수하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는 또 다른 방법인 습식처리기술의 경우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순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고, 방사선을 방출하는 반감기가 수만 년에 이르는 장반감기 핵종과 많은 양의 방사선을 방출할 뿐 아니라 엄청난 고열을 내는 고방열 핵종을 별도로 분리할 수 없다. 반면 파이로프로세싱은 공정의 특성상 플루토늄을 단독으로 분리할 수 없어 핵 비확산성이 보장되고, 장반감기·고방열 핵종들을 그룹으로 분리하여 장기간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소멸 처리하기에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파이로프로세싱 [pyroprocessing]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아메리슘 :: 1944년 G. T. 시보그, R. A. 제임스, L. O. 모건 등이 원자로에서 플루토늄을 조사(照射)함으로써 발견되었다. 이 원소가 악티늄계열의 7번째 원소에 해당하므로, 대응하는 란타넘계열의 7번째 원소인 유로퓸과 대비시켜 아메리카대륙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슘이라 명명하였다.
11종의 동위원소가 있는데, 맨 처음 만들어진 질량수 241, 반감기 458년의 것이 가장 다량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질량수 243의 것이 수명이 가장 길며, 반감기는 7.6×103년이다. 플루오린화 아메리슘을 진공로 속에서 1000∼1200℃로 가열하여 바륨으로 환원시키면 금속을 얻는다. 은백색으로 전연성(展延性)이 있으며, 화학적 성질은 희토류원소, 특히 유로퓸과 비슷하다. 화합물 속에서는 +3가의 것이 가장 안정하다. 염화물·질산염·황산염은 물에 녹지만, 플루오린화물은 녹기 어렵다. 수용액은 연분홍색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메리슘 [americium]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넵투늄 :: 원자번호 93번의 원소 넵투늄(neptunium, Np)은 첫 번째 초우라늄(transuraninium) 원소이다. 초우라늄 원소는 원자번호가 92인 우라늄(uranium, U)보다 더 큰 원자번호를 갖는 원소들을 말하는데, 이들은 모두 방사성 원소로 반감기가 지구의 나이보다 짧아 지구 생성시 만들어진 것들은 모두가 붕괴되어 지금은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인공적인 핵반응을 통해 합성하여 발견된것들이다. 넵투늄은 주기율표에서 행성 천왕성(Uranus)를 따서 이름지은 우라늄 바로 다음에 있으므로, 원소 이름을 천왕성 다음에 있는 행성 해왕성(Neptune)을 따서 지었다. 넵투늄은 238U에 중성자를 쪼여 239Np(반감기 2.355일)를 얻음으로써 1940년에 처음 발견되었는데, 이후 237Np(반감기 214.4만 년)가 합성·발견되었고, 우라늄 광석에서도 몇 가지 동위원소들이 발견되었다. 237Np는 사용 후 우라늄 핵 연료에서 분리하거나, 플루토늄(239Pu) 생산의 부산물로 얻는다. 237Np는 고에너지 중성자 검출 장치에 쓰이며, 우주탐사선 등에 사용되는 원자력 전지의 재료인 238Pu를 제조하는데도 사용된다. 또한 핵 분열될 수 있어 이론적으로는 핵 연료로도 사용 가능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넵투늄(Np) [Neptunium] - 첫 번째 초우라늄 원소 (화학원소, 박준우)

 

또 다른 흥미로운 주제는 핵변환을 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원자로를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 가동되고 있는 원자로들은 에너지가 낮은 중성자를 이용하는 열중성자로입니다. 중성자를 감속시켜서 주위 매질의 온도와 동화시켜 낮은 에너지에서 핵분열을 일으킵니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준위가 낮아질수록 반응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쉽게 핵분열을 구현하려고 열중성자 원자로를 쓰는데 경수로형 원자로가 열중성자를 만드는 데 아주 유리합니다. 중성자가 물 분자에 있는 수소 원자와 충돌하면 에너지를 빠르게 잃거든요. 그래서 현재 가동되는 원자로는 대부분 물을 쓰는 경수로형 원자로인데, 초우라늄 원소를 파쇄하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높은 에너지의 중성자로 바로 때려줘야 파쇄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고속증식로라는 원자로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게 원자력 기술계에서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일본 몬쥬에 있는 고속증식로가 대표적이죠.

경수로가 물을 냉각재로 쓰는 데 비해 몬쥬에 있는 고속증식로는 소듐, 즉 나트륨을 냉각재로 씁니다. 소듐을 쓰는 이유는 소듐이 무거워서 중성자와 부딪쳐도 에너지가 잘 줄어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냉각재로는 유동이 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액체금속을 쓸 수밖에 없고, 그래서 다른 용어로는 액체금속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복잡하고 비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수로 :: 원자력발전에 사용되는 원자로 중 하나로, 감속재로 물을 사용해서 '경수로(輕水爐)'라는 명칭이 붙었다. 감속재로 흑연을 사용하면 흑연로라고 하며, 중수(일반 수소보다 중성자 1개가 더 있는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 생긴 물)를 쓰면 중수로라고 한다. 여기서 감속재란 중성자와 충돌하여 중성자의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물질을 가리킨다. 감속재는 중성자와 충돌은 하되 중성자를 흡수하지 않고 속도를 줄일 수 있어야 하는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경수로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원자로에 비해 핵무기 제조가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4년 제네바합의 당시 북한이 영변의 흑연로를 해체하는 대가로 미국 등이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를 무시하고 플루토늄 추출을 시도하다 미국의 불만을 샀고,결국 2003년 경수로 지원이 중단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당시 제네바합의에 따라 1997년부터 시작된 함경남도 신포 금호지구의 200만kW급 경수로 건설공사는 공정률 34% 단계에서 중단된 바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수로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고속증식로 :: 고속중성자를 이용하여 핵분열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생산함과 동시에 천연 우라늄의 99%를 차지하고 있는 비핵분열성 물질인 우라늄238을 핵분열성 물질인 플루토늄239로 변환시키는 원자로다. 액체금속인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액체금속로'라고도 불린다. 종래의 원자로는 우라늄235분열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중성자 속도가 저속인 데 비해 고속증식로는 중성자 속도가 고속이다.
특히 원자로 내에서 핵연료를 태우면 핵분열성 물질의 양이 줄어드는 것이 보통인데 증식로는 처음 플루토늄의 양보다 더 많은 플루토늄을 만들 수 있다. 즉, 고속증식로에는 플루토늄과 함께 천연우라늄이 함께 장전되는데, 이때 연료인 플루토늄은 소모되지만 우라늄이 반응을 통하여 플루토늄으로 바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소모되는 플루토늄보다 더 많은 플루토늄을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우라늄238 1g을 사용하면 이것은 원자로 내에서 1.17g 정도의 플루토늄239로 증식되어 연료로 사용된다. 이 같은 액체금속로가 실용화될 경우 우라늄의 이용 효율을 60배 정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냉각재로 사용하는 액체나트륨이 물ㆍ공기와 결합할 경우 폭발을 일으키고 파이프를 쉽게 부식시키는 등 안정적으로 다루는 기술의 확보가 매우 어려워 실용화에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동안 고속증식로는 프랑스의 슈퍼피닉스(124만kw급 1989년 가동, 1998년 12월 폐쇄)와 일본의 몬주(28만kw급, 1995년 8월 상업운전 개시, 1995년 12월 가동 중지)가 건설된 바 있다. 그러나 2018년 3월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후쿠이(福井)현 쓰루가(敦賀)시에 있는 고속증식로 몬주 폐로 계획을 정식으로 인가했다. 고속증식로의 폐쇄는 일본에선 처음 있는 일로, 향후 30년에 4단계에 걸쳐 폐로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속증식로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핵변환과 관련해서 납냉각고속로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납-비스무스Lead-Bismuth 냉각 원자로죠. 이 방식도 단점이 있는데, 납이 튜브를 잘 부식시키고 침식시킵니다. 그래서 내부식성 튜브재 등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의 단점은 납이 밀도가 높아 무겁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자로를 크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납냉각고속로는 작게 모듈로 만들어서 여러 개를 붙이는 방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 납-비스무스 냉각원자로 부문에서 제일 앞서 있는 나라는 러시아입니다. 이미 이 방식을 사용한 원자로를 만들어서 잠수함에 장착, 운용을 했었죠.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부식 문제 때문에 사용을 중단했다가 다시 납 부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산화막 기술이 나와서 현재 민수용으로 개발해 원전을 짓고 있습니다. SVBR이라는 원전이죠.

 

벨기에에 있는 원자력연구소에서 납냉각 방식을 사용한 거대한 장치를 만들고 있죠. 그런데 이것은 기존 원자로와는 개념이 좀 다릅니다. 기존 원자로는 한번 핵반응이 시작되면 그대로 놔둬도 자체적으로 연쇄반응이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자칫 연쇄반응이 계속 증가해서 출력이 갑자기 올라갈 가능성도 있죠. 그러나 지금 말씀드린 벨기에의 신개념 원자로는 연쇄반응이 단독으로는 일어나지 않도록 중성자를 조금 모자라게 두고, 그 모자라는 부분을 외부에서 양성자가속기를 가지고 양성자를 가속한 다음에 이것을 표적에 때려서 나오는 중성자를 공급해줍니다. 원자로에 이 중성자 공급이 끊기면 연쇄반응이 멈추고 꺼지게 되죠. 이러한 방식의 원자로를 ‘미임계원자로’라고 합니다. 벨기에에서 EU가 출자해서 진행 중인 ‘미라MYRRHA 프로젝트’가 바로 이 미임계원자로에 관한 연구입니다.

 

임계로는 위험하지만 미임계로 방식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EU에서는 현실적 대안으로 미임계원자로 개발을 지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가 언급하는 것이 TWRTraveling Wave Reactor인데, 거기에도 소듐이 쓰입니다. 고속증식로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증식’이라고 하는 것은 연료를 소모하면서 또 새로운 연료를 만든다는 뜻이죠. TWR는 실제 연쇄반응이 일어나서 에너지가 생기는 부분이 아래쪽에 있는데, 여기서 위로 나오는 중성자가 우라늄238을 플로토늄239로 변화를 시킵니다. 즉, 플로토늄239라는 핵분열을 잘 일으키는 물질을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증식이 일어나는 것이죠. 마치 초와 같다고 보시면 비슷합니다. 초에 불을 붙이면 타면서 밑의 부분을 액체로 약간 녹이는 것처럼, 원자로의 연료가 타는 데서 중성자가 나와서 그 밑에 있는 것을 잘 탈 수 있도록 연료화하는 것이죠.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소듐 관련 문제가 있긴 하지만 한번 연료를 장착하면 60년을 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 역시 도전해볼 만한 과제입니다.

 

쇼듐 :: 소듐(Sodium)은 나트륨(Natrium)이라는 이름으로도 우리와 친숙하다. 소듐은 소금의 구성 원소로, 고대부터 사람의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듐의 과다 섭취가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소듐은 어떤 원소이고, 어디에 사용되며, 어떤 소듐 화합물들이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네이버 지식백과] 소듐(나트륨, Na) [Sodium/Natrium] - 소금과 소다의 구성 원소 (화학원소, 박준우)

 

원전은 단지 건설비용만 회수하는 산업이 아니라 향후 운영에 필요한 비용까지 포함해서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UAE 공사의 경우 향후 운영수익이 추가로 약 20조 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만큼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한 셈이죠.

 

현재 원자력 분야의 연구개발 체제는 과제를 상향식bottom-up으로 도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기획해서 국가적 차원에서 하향식top-down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원자력 분야는 특성상 단위 연구비가 크고, 또 국가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도 있어서 하향식이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대규모 실험설비도 만들어야 하고 여러 분야와 협력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획을 잘해야 합니다. 몇 사람이 모여서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규모의 연구가 아닙니다. 많은 전문가가 모여서 장기 계획을 수립해야 하죠. 그렇다고 큰 규모의 연구만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역량을 집중해야 그나마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상향식으로 많은 과제, 특히 이전에 하고 있던 과제나 그것이 조금 변형된 주제에 연구비를 쪼개서 나누어 주는 방식은 예산을 낭비하는 셈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상위에 있는 기관의 전문성이 최고로 높아야 합니다. 결국 사람이 중요한데, 올바른 철학을 가지고 있고, 전문가로서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상위 단계의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즉, 가치사슬의 상위 기관에 가장 뛰어난 전문가가 있고, 하위 기업들에는 낮은 수준의 전문가가 있어서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기술의 체계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지금은 사실상 거꾸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기업이기 때문에 경영에 관련된 부분은 경영 전문가가 담당하는 것이 맞지만, 기술과 관련된 부분은 지금보다 더 많은 고급 전문가들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기술과 관련해서는 전문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핵심적인 위치에 가야 합니다. 원자력산업은 특수한 분야라서 산업과 기술 자체가 가진 속성을 모르고는 일반관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기술 중심 회사로서의 속성을 더 강하게 살려서 최고의 전문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죠.

그런데 현재는 생태계 안에 있는 모든 기업의 의사결정자들이 모두 비리 근절에 초점을 두고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꼭 해야 할 일이지만, 그 결과로 기술이 무시되고 있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전문성을 떨어뜨리는 또 다른 원인 중 하나가 외주관리의 전문성 문제입니다. 민간 부문이 점점 성숙함에 따라 외주화가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경향에 맞추어 외주관리도 더 전문화되어야 합니다. 상당히 많은 영역에서 외부 용역업체의 미숙한 인력들이 점점 더 많이 업무에 들어오는 데서 유발되는 사고가 적지 않습니다.

 

요즘 융합을 많이 강조하는 추세입니다. 융합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마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저는 융합보다 오히려 기초공학과목을 깊고 단단하게 배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나 연구소에서 필요한 지식은 대학을 마치고 나서 실제로 필요할 때 새로 습득하는 수밖에 없어요. 대학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공학의 기초를 잘 가르쳐야 합니다. 예를 들면 공학수학, 열역학, 재료역학처럼 공학의 기초가 되는 과목들이 중요합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게 된 것에 제일 중요한 공헌을 한 집단이 엔지니어이고, 우리나라가 현재 가진 국부를 창출하는 데 원동력이 됐던 산업이 엔지니어링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인식은 사회적 기여와 상관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돈’을 더 잘 버는 집단이 우대받게 되어 있어요. 최근 들어 그런 경향이 조금 완화되긴 했지만 아직도 고등학교 상위권 학생들은 의대, 치대, 약대를 선호하고 있죠.

 

26. 기술로 승부하는 기업은 경험 축적 없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 김민수(기계항공공학부 / 열공학)

냉동·공조산업은 냉장고, 에어컨과 같은 가정용 제품뿐만 아니라 큰 건물의 냉난방시스템, 중앙냉방, 중앙난방, 그리고 좀 더 나아가면 지역냉방과 지역난방까지 포함하고 있는 매우 큰 영역입니다. 냉동·공조산업의 국내시장 규모는 대략 10조 원 정도 되는 규모입니다. 더 확장하면 태평양에서 잡은 참치를 얼려서 가지고 오는 냉동보관부터 식품의 냉동·냉장 및 냉동창고, 환기장치, 가습장치, 제습장치 등의 생산, 설치, 운용 등이 냉동·공조산업에 포함됩니다. 가정이든 사무실이든 너무 춥거나 덥지 않도록 만들어주고, 산업체에서도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모두 냉동·공조산업에 포함되는데,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큰 분야입니다.

 

예전에 골드만삭스에서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굉장히 높게 예측했었는데, 그 주된 이유로 든 것이 한국의 가전산업입니다. 중국이나 인도, 동남아시아와 남미 같은 신흥시장이 성장하면서 냉장고, 에어컨, TV, 청소기, 세탁기와 같은 가전제품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국이 이 시장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냉동·공조산업이 IT 산업과 연관되어 아주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스템에어컨 같은 경우 판매자가 운전 상태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는데,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의 초기 형태인 셈이죠

 

냉동·공조산업은 진입장벽이 높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이름 있는 대기업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중소기업에서도 성능만 잘 맞출 수 있으면, 부품들을 사서 시스템을 구성하고 패키징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도 관련 중소기업이 매우 많고 이 분야의 중소기업 종사자도 매우 많습니다.

참고로 냉장고에 들어가는 부품 중에는 압축기가 가장 핵심인데, 전 세계에 압축기만 만드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개발도상국 기업들과 가격으로는 경쟁할 수 없으니 기술력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데, 기술력을 갖춘 일본과 가격경쟁력을 갖춘 중국 사이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냉동·공조업계에서 가장 기술력이 좋은 회사는 일본의 다이킨Daikin이라는 회사입니다. 다이킨은 무려 9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업으로 냉동·공조 분야에서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토대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이킨은 에어컨뿐만 아니라 의료장비에 들어가는 냉동기까지 만듭니다. 온도를 낮추면 낮출수록 의료장비의 해상도가 좋아지는데, 의료장비에 사용하는 극저온 냉동기도 다이킨이 만들죠.

 

중국은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서방에 나가 있던 과학자들을, 마치 한국이 예전에 KIST를 만들 때처럼 기존 연봉의 몇 배를 주면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과거 중국의 체제가 싫어서 떠났던 사람들도 지금은 생활하기가 그렇게 불편하지 않고, 보수 수준도 높기 때문에 중국으로 돌아가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죠.

과거에는 우수한 잠재력을 가진 중국 사람들이 자국 내에서 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찾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중국의 적극적인 과학기술 육성정책에 힘입어 사정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칭화대학에서 걸어 나오면 길 맞은편에 구글을 비롯한 다양한 IT 관련 업체들의 건물이 눈앞에 버티고 서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IT 하는 사람들은 다 여기로 와라’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셈입니다.

사람 숫자 면에서도 우리를 압도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도 중국 인력의 수준이 한국 인력에 비해 떨어지지 않습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월급으로 불과 몇천 달러 받던 중국 교수들에게 요즘은 대학의 연구 활동을 촉진한다는 차원에서, 연구 수주를 하면 총액의 상당한 부분을 인센티브로 주는 제도도 시행 중입니다. 결국, 중국의 추격은 시간문제라고 봐야죠.

 

냉동·공조산업에서는 사실 휴대폰처럼 예전에 없었던 새로운 제품이 나와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급하는 식의 발전이 쉽지 않습니다. IT와는 다른 기계 시스템이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서서히 변해갈 수밖에 없어요. 노키아처럼 하루아침에 시장을 잃을 수도 없고, 애플처럼 하루아침에 세계 시장을 장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특성(자본을 투자한다고 해서 금방 따라잡을 수 없음)을 전제로 하고, 이 분야에서 변화를 일으킬 만한 것을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뭘 필요로 하나, 무엇이 있으면 좋겠는가’를 고려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개인 휴대용 냉방장치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개 같은 동물은 온몸이 털로 덥혀 있지만 여름에도 혓바닥 하나로 열을 내보내면서 더위를 이겨냅니다. 비슷한 원리로 우리가 온몸이 다 시원해야만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손에 얼음 하나만 쥐고 있어도 몸 전체가 다 시원해집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머니 난로도 개인 휴대용 난방으로 볼 수 있을 텐데, 개인 휴대용 냉방도 비슷한 컨셉이죠. 그런 아이디어를 구현해서 개인용 냉방을 위한 장치를 제작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건물 전체 냉난방을 하는 것이 제일 편하고 좋겠지만 요즘 화두가 되는 친환경과 효율을 고려했을 때, 냉방장치도 전기는 덜 쓰면서 더 시원하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개인 휴대용 에어컨처럼 전혀 다른 발상을 해볼 수 있는 거죠.

또 한 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IT와 연관 지어서 냉동·공조 제품들을 좀 더 지능화시키는 것입니다. 현재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 중 큰 부분이 가전입니다. 가전 중에서도 에어컨, 냉장고와 같이 전기를 많이 쓰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스마트그리드 시스템 시장이 커진다면 냉동·공조 시장도 같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세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역시 IT와 더 밀접하게 연결해서 스마트홈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광고 중에 스마트폰 앱으로 냉난방을 조절하는 장면이 있는데, 최종적으로 기능을 구현하는 것은 냉동·공조 제품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스마트홈 개념은 이미 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최근에는 사물인터넷과 연관해서 이런 기기들이 지능화되고 기능이 확대되면서 집집마다 변화를 일으키고, 이에 따라 시장도 성장했습니다. 예를 들면 보일러 같은 제품도 늘 시장이 포화됐다고 하는데, 포화돼서 더 이상 팔 수 없는 게 아닙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교체수요가 발생하여 시장이 형성되거나, 스마트 기능이 추가되면서 새로운 시장을 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회사 중의 하나가 한국의 한 보일러 회사인데, 현재 러시아에서 제일 인기 있는 보일러가 바로 이 회사 제품입니다. 품질도 좋고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인기가 좋죠. 이는 해외에서 기존 제품들을 약간 지능화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는 사례입니다.

네 번째로는, 정확히 냉동·공조 분야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관련이 있는 가정용 열병합발전 시스템입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는 주로 전기와 열의 두 가지 형태인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전기를 더 싸게 만들어서 쓰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열과 전기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소형열병합발전, 연료전지 시스템 등이 해당되는데, 일정 부분만 대체할 수 있는 정도의 열과 전기를 동시에 생산해도 전기 사용료를 훨씬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초기에 투자비용이 좀 들어가긴 하겠지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아무래도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일 텐데, 에너지 절감이나 성능 향상에 관련된 부분을 들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건물에서 냉동·공조 부분이 사용하는 에너지 소비량이 건물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30~40%를 차지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와 관련한 규제는 에너지 이용 효율 향상 및 이산화탄소 발생량 저감 측면에서 점점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냉동·공조 관련 기술이 겉보기에는 기술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여전히 성능 향상을 위한 신기술이 계속 개발·적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10여 년 동안만 봐도 효율 및 성능 부분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예를 들어, 동절기 난방 성능 향상을 위한 인버터제어 기술이나 가상냉매 주입기술은 핵심적인 신기술의 사례입니다.

 

현재 대기업들의 경우에는 회사 내부적으로 차세대 기술개발에 관한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고, 정부의 R&D 투자나 산학 협력도 잘하고 있다고 보지만, 장기적인 안목이 좀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사결정자가 바뀌면 전체적인 연구 방향이 갑자기 확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방향을 정했으면 꾸준히,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독일 회사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하는데, 독일 회사들은 단기적인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거의 가업처럼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굉장히 오랜 기간 이어온 기술적 바탕 위에서 지금의 히든챔피언이 나오는 거죠. 하루아침에 고부가가치 부품을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회사뿐 아니라 사회도 호흡이 짧다는 생각입니다.

 

기업과 대학이 공동으로 수행하는 연구개발 역사가 짧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업은 자본이 투입되면 바로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지만 단기에 뭔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받죠. 기업들이 대학에 과제를 맡기면서 바로 쓸 수 있는 아웃풋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관점에서는 기업이 대학의 연구 결과물에 만족을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투자를 했으니 대학이 사내 연구소처럼 기능해서 뭔가 결과물을 내주길 바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무리가 있는 기대입니다. 중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대학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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