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s

대리사회

728x90
 
대리사회
2015년 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통해 저자 김민섭은 대학에서 보낸 8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지었다. 스스로를 대학의 구성원이자 주체로서 믿었지만 그 환상은 강요된 것이었고, 그는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면서 강의실과 연구실에만 존재했다. 강의하고 연구하고 행정 노동을 하는 동안 그는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 받을 수 없었고 재직증명서 발급 대상조차 아니었다. 이후 대학에서 나온 그는 그 시간이 ‘대리의 시간’이었음을 알았다. 대한민국 사회에 은밀하게 자리를 잡고 앉은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고, 발화하고, 사유하지 못하게 만들며 모두를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대리인간’으로 만들어 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힌다. 마치 자신의 차에서 본인의 의지에 따라 운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대리사회에서 한 인간은 더 이상 신체와 언어의 주인이 아니었고, 사유까지도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고 있었다.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린다고 해도 저자는 더 이상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 사회 여러 공간에서의 경험에 따라 ‘순응하는 몸’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이 사회의 ‘대리인간’이었다. 『대리사회』는 그러한 공간에서 저자가 익숙하게 체험한 3가지 통제를 바탕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노동 현장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
김민섭
출판
와이즈베리
출판일
2016.11.28

 

추천의 말

지방대학 시간강사가 대리기사가 되었다. 대학의 ‘유령’이 밤거리를 달리는 ‘몸’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러나 주인 옆에서 주인 자리에 앉는 몸은 행위가 통제되고 말이 통제되며 사유가 통제된다. 핸들과 액셀과 브레이크를 작동하는 손과 발이 남아 있지만 그조차 내비게이션의 규율 아래 있다. 그리하여 《대리사회》는 정확히 은유한다. 우리 모두 스스로 주체라고 믿지만 실은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대리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모두 ‘갑’을 욕망하면서 ‘을’의 공간을 체제의 필연인 양 받아들이고 있을 뿐 아닌가. 대리기사는 타자의 주체화를 위해 요구되는 역지사지보다 한 단계 높은 덕목을 가질 수 있을 듯하다. ‘을’의 자리에서 사유하는 차원을 넘어 ‘을’의 자리에 자신의 몸을 부단히 갖다놓기 때문인데, 거기서 비롯된 성찰이 저자에게 “이 거리에 사람이 있다”고 말하게 했을 것이다. 자발적 경계인이 몸의 언어로 쓴 이 책을 부디 많은 독자가 만나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기 바란다.

 

 

 

프롤로그 - 대리인간으로 살아왔음을 고백하며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 은밀하게 자리를 잡고 앉은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고, 발화하고,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 모두를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힌다. 자신의 차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운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대학에서의 10년보다, 거리에서의 1년이 더욱 가치 있었다. 강의실과 연구실은 대학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대학은 이 사회의 일부일 뿐이었다.

 

“내가/우리가 이 사회에서 주체성을 가진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가”

 

이 글은 타인의 운전석이라는 가장 좁은 공간에서 바라본 우리 사회의 모습 그대로다. 사실 굳이 그 안과 바깥을 구분하고 싶지 않다. 마치 서로를 축소하거나 확대해 놓은 것처럼 닮아 있는 공간이다.

 

주체적으로 행위하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사유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와도 같다.

 

타인의 운전석은 이처럼 한 개인의 주체성을 완벽하게 검열하고 통제한다. 신체뿐 아니라 언어와 사유까지도 빼앗는다. 그런데 운행을 마치고 운전석에서 내려와도 나의 신체는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여전히 ‘대리’라는 단어에 묶여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어느 공간에서도 그다지 주체적인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했다.

 

나는 이제 대학의 바깥에서, 이 사회를 대리사회로 규정한다. 우리는 더 이상 온전한 나로서 현상을 바라보고 사유하지 않는다. 스스로 판단하고 질문하는 법을 점차 잊어가고 있다.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러한 통제에 익숙해진 대리인간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틀을 만들고, 스스로 사유해야 한다. 끊임없이 불편해하고,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강요된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믿으며 타인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굳이 나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그들은 동류였고, 나아가 언제든 동료가 될 수 있는 이들이었다. 내가 용기 내어 한 걸음 다가가면 그들은 나에게 두 걸음 더 다가왔다.

 

 

 

1부. 통제되는 감각들

1. 맥도날드 알바에서 다시 대리운전 기사로

무작정 번화가를 향해 걸어 나가는 동안 가라앉아 있던 아침의 공기가 나를 무겁게 감싸왔다. 처음 마주하는 무거운 공기였다. 그렇게 어깨가 짓눌려서는 가장 외로운 아침을 천천히 걸었다.

 

모두가 존중할 만한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에 없던 자각, 노동은 그러한 성찰을 가능케 했다.

책상에서 글로 배웠던 ‘노동의 가치나 신성함’ 같은 것들이 비로소 삶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몸으로 배운 가치들은 삶의 태도를 보다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무엇보다 타인의 입장에서 사유할 수 있는 연습을 반강제로 시켰다. 그것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환희와 기쁨이었다. 그래서 ‘지방시‘의 어느 장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되든 육체노동을 반드시 하겠다”고 썼다. 거기에도 덧붙였지만 나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렵게 배운 삶의 태도를 잃어버릴 것 같아 두렵기 때문이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어떠한 목적성 때문이든, 건강한 노동에는 그러한 힘이 있다.

 

언젠가 점장에게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 주나요?”라고 묻자 그는, “저희는 법을 지키는 것뿐이에요”라고 간단히 답했다. 우문에, 현답이었다. 월 60시간 노동하는 것으로 나는 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를 모두 보장받았다. 노동하는 한 인간에게 허락되어야 할 그 당연한 감각을 대학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그렇게 맥도날드라는 노동의 현장으로 스스로를 내몰고서야, 아니 밀려나고서야 나는 비로소 한 발 물러서서 대학이라는 공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대학 연구실 바깥으로 간신히 나오고서도 나는 또다시 내가 앉은 책상과 거기 진열된 책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했다. 그러면 내가 앉은 공간과 책의 두께만이 세상의 전부가 되는 것이다. 책을 덮고 일어나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어느 날 아침처럼 밖으로 나왔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나는 무엇으로 규정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답을 얻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대학에서 조교와 시간강사로 존재했던 8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리의 시간’이었다. 온전한 나로 존재하지 못하고 타인의 욕망을 위해 보낸 시간이었다. 실존에 대한 고민은 책상에서 일어섰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임을, 대학을 그만두고 몇 달의 시간을 허비하고서야 다시 배웠다. 이제는 그 바깥에서 “나는/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한다.

 

눈물이 쏟아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감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았습니다. 그렇게 잠시 눈을 감았다가 “안녕히 나의 모든 것” 하고는, 일어났습니다.

 

학생들에게 힘든 티를 내서는 안 됩니다. 고난함은 온전히 제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힘들수록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웃으면서 강의실의 문을 엽니다.

 

연구할수록 가난해지고, 강의할수록 힘겨워지는데, 대학은 ‘학문의 길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환상과 검열을 강요합니다.

 

물론 그들로서는 ‘지방시’를 내부 고발로 여길 수도 있을 테고, 누군가는 저의 삶을 거짓으로 재단할 수도 있을 테지만, 저는 어떤 작은 기적을 바랐습니다. 그들이 “많이 힘들었지, 우리도 많이 힘들었어, 고생 많았다”라는 말을 먼저 해주었다면, 그러한 공감이 선행되었다면, 저는 그들과 함께 다시 한 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술잔을 앞에 두고 날것의 표현들이 오갔습니다.

 

아카데미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 단순히 동료 연구자들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면, 저 스스로가 먼저 납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야 비로소, 대학 바깥에 더욱 큰 대학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대학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그저 일부일 뿐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명제이지만, 저에게는 그간 저를 포위해 온 어떤 세계를 깨뜨리는 일이었습니다. 강의실과 연구실이 대학의 전유물이 아닌 것 역시, 뒤늦게 알았습니다. 인문학은 내 주변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모든 이들은 존중할 만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고, 누구라도 내 인생의 지도교수가 될 수 있다는 자각, 이러한 삶의 태도를 얻었기에 저는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

 

2. 대리인간, 대리국민이 되다

손님은(차의 주인은) 언제나 나보다는 더 자신감 있는 몸짓과 표정으로 말한다. 대화의 주체로서 함께 참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는 대개 운전에 집중하면서 “네, 맞습니다” 하고 웃으며 답한다. 그렇게 신체와 언어가 구속되고, 자연스럽게 사유가 통제된다. 하지만 나를 주체로서 일으켜세우는 이들이 있다. 그러면 나도 공간의 주체로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타인의 운전석, 말하자면 우리 사회 어디에나 있을 ‘을의 공간’은 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할 존재를 위축시킨다. 그래서 결국 어느 대화에 주체로서 참여할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은 그가 정의로운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간단한 문제와는 다르다.

 

사실 ‘을의 공간’에 자리한 대화의 피주체에게 가장 먼저 통제되는 것은 말과 행동이 아니다. 그 이전에 ‘주체로서 사유할 자유’를 잃는다. 일상의 대화에서는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사유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 말하게 된다.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그것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고자 한다. 하지만 주체와 주체가 아닌, 주체와 피주체의 대화는 일방적이다. 여기에는 듣고 말하는 행위만 남고 중간의 과정은 모두 생략된다.

 

문제는 강단에 서 있는 나에게 있었다. 토론 주제에 대해 설명하면서 내가 이미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리곤 했던 것이다. 그럴 때면 학생들 대부분이 나의 의견에 맞춰 말하려고 했고, 그것이 싫은 학생들은 침묵하는 편을 택했다.

 

그들의 소통은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것”이 되는 일이 많았다.

교수들은 종종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데 소극적이라고, 그래서 주체적이지 않다고 비판하곤 한다. 그러나 학생을 주체로 대하지 않는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음은 알지 못한다. 교수와 학생 중 강의실에서 더 주체의 자리에 있는 이는 언제나 교수다. 고작 한 뼘 높이의 강단은 갑과 을의 자리를 선명하게 구분해 낸다. 교수에게는 학생 평가라는 절대적 권위가 있고, 학생은 제도적으로나 관습적으로나 현실에서는 피주체의 자리에 머무른다. 그런데 학생들에게는 그 높낮이의 차이가 명확히 보이지만, 정작 강단에 선 교수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주체로 명명되는 이들은 상대방의 처지를 섬세하게 고려하는 대신 소통하고 싶은 자신의 욕망만을 상대의 자리에 대입하기 쉽다. 우리는 그것을 ‘공감 능력의 결여’라고도 부른다.

교수자가 강의실의 유일한 주체가 되어 말을 쏟아내는 순간 그 안의 학생들은 타인의 운전석에 앉은 대리기사가 되어버린다. 스스로 사유하기를 멈추고 영혼 없는 대답만 기계적으로 하게 된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는 질문에 주체적으로 답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학생들은 강의실 밖으로 나오며 오히려 사유와 발화의 자유를 되찾는다. 마치 운행을 마친 대리운전 기사처럼 다시 온전한 몸으로 돌아온다.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리며, 나의 신체를 되찾는다. 무엇보다 사유하고 발화할 자유를 되찾아 온다. 더 이상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기계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조금씩 주체의 자리에서 이탈하는 데 익숙해져 갔다. 상대방이 말하는 대로 수용하고 긍정하는 간편한 대화의 방식, 말하자면 ‘순응’이 어느새 자연스럽게 몸에 각인된 것이다. 누군가 나를 주체로서 대우한다고 해도 익숙해진 몸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어디에서든 주체로서 발화할 수 없게 된다. ‘순응하는 몸’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타인의 운전석과 다름없는 ‘을의 공간’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차의 주인과 대리기사와 같은 역설의 관계 역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어디에서, 주체의 욕망은 쉽게도 타인을 잡아먹는다. 예컨대 의사 결정권자는 언제나 자유롭게 회의 안건을 내고 소통하자고 하지만 그 누구도 화답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상상과 수용 가능한 범위가 제한되어 있음을 모두가 안다.

 

소통은 주체가 된 이들의 논리를 확인하고 강요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다. 부하 직원은 직장 상사에게 아이디어를 내지 않고, 학생은 교사의 의도에서 벗어난 답을 제출하지 않는다. 아이 역시 부모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털어놓지 않는다. 자신이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부터 시작해 교사,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을의 공간’에서 순응하는 방법을 주로 배워왔다.

그렇게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 된다. 모든 개인은 주체와 피주체의 자리를 오가면서 주체가 되기를 욕망하고, 타인에게 순응을 강요한다. 그런데 그것은 사회가 개인에게 보내는 욕망과 그대로 일치한다. 특히 국가는 순응하는 몸을 가진 국민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 어떤 비합리와 비상식과 마주하더라도 그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국민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대신 순응하지 않는 이들을 감시하고 격리해 나가면서 자신들의 욕망을 대리할 ‘대리국민’을 양산해 낸다. 그러한 국민/개인들은 국가/조직이 얼마든지 간편하게 통치/통제할 수 있다.

국가 시스템에 효율적으로 통제되면서도 자신을 주체로 믿는, 동시에 사유하지 않고 모든 현상을 바라보는 국민은 지금의 국민국가가 지향하는 ‘대리사회’의 이상향이다. 그렇게 ‘대리국민’이 된 이들은 국가를 위한 싸움에 스스로 나선다.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국가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자신들의 국가’를 위해, 그에 순응하지 않는 이들과 몸소 싸워나간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는 개인들을 주저앉힌다. 하지만 그것이 대리된 욕망임은 알지 못하고 주체로서 정의로운 행위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직접 ‘을의 공간’으로 내려와 손을 내미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정말이지 많은 손님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의 운전석에 앉은 이들을 주체로서 일으켜세운다. 그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이거나, 반갑게 맞이하는 인사와 미소이고, 무엇보다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담배를 피우기 전에, 음악을 틀기 전에, 전화 통화를 하기 전에, “죄송하지만 제가 무엇을 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선생님의 차인걸요. 묻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꼭 덧붙인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그 공간의 한 주체로서 존중한다는 의미다. 그 자체로 나는 ‘함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직 대리사회의 괴물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개인이 존재한다. 그들로 인해 우리는 잊고 있던 몸의 감각을 깨운다.

 

3. 나에게는 호칭을 결정할 권한이 없었다

신체를 아직 만나지도 않은 가상의 손님이나 시스템에게 스스로 헌납한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빨리 가는 것이 중요했다. 수락 버튼을 누른 그 순간부터 나라는 주체는 이미 타인에게 귀속되었고, 수단보다는 목적이 중요해졌다.

 

나에게는 나의 호칭을 결정할 권한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직 대학이라는 공간에 젖어 있던 나의 신체를 우악스럽게 현실로 잡아끌었다. 나는 지금 대학이 아닌 거리에, 그리고 세상에 있다. 아저씨에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뛰었다.

 

1.5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걷고 뛰고 하는 동안, 노동은 운동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이것은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었다. 헬스장에서는 힘들면 언제든 러닝머신에서 내려올 수 있고, 어느 한계까지 나를 내몰고서도 곧 쉬고 싶은 만큼 쉴 수 있다. 하지만 노동은 내 몸의 형편을 돌봐주지 않았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의자를 조금 앞으로 당기고 싶었지만 그가 자신의 신체에 맞춰두었을 그 공간을 훼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계속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첫 운행을 무사히 끝내고서는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사고가 나지 않았음에 안도했고, 손님이 술에 많이 취하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무엇보다도 맡겨두었던 나의 몸도, 호칭도, 다시 되찾은 것 같아 더욱 소중했다. 타인에게 나의 모든 것을 내주었다가 간신히 다시 돌아온, 그런 기분이었다.

 

4. 호칭이 주는 환각에 익숙해질 때 우리는 대리인간이 된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그에게 익숙해진 하나의 어법 같았다. 대단히 정중하면서도 어떤 간절함과 절박함을 함께 담고 있었다.

 

나는 그 익숙함에 이끌려 택시에 올랐지만, 이것은 하나의 문화충격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느 지역의 음주 단속 횟수는 그 지역 대리기사들의 생계와도 관계가 있다. 이전에는 그저 세금을 더 걷기 위한 수단쯤으로 생각했는데, 거기에도 이런저런 생태계가 얽혀 있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누구도 자신을 어떻게 호칭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는 아저씨가 되고 그는 사장님이 되었다.

 

그러한 호칭에는 듣는 대상의 자존감이나 주체성을 갉아먹는 힘이 있었다. 모든 관계는 호칭에서부터 그 범위가 상상되고, 확장 또는 축소된다. 호칭을 결정할 자유를 빼앗겼을 때부터 나의 신체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운전석에서 내리면서는 나를 되찾아온 것처럼 후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또 다른 운전석‘들’이 떠올랐다.

작년까지 강의실에서 나는 ‘교수님’, 혹은 ‘선생님’이라고 주로 불렸다. 학생들은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호칭을 다르게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강단에 서 있는 모두가 ‘교수’였다. 그런데 ‘교수’라는 호칭은 나를 은밀하게 주체로서 고양시켰다. 4대보험이 보장되지 않는 4개월짜리 계약직 노동자이면서도, 마치 유령처럼 강단에 존재하면서도, 정규직 교수가 된 것과 같은 환각에 잠시 빠졌다. 허상임을 알면서도 수십 명이 나를 교수로 규정하는 순간만큼은 주체로서 고양되는 것이다. 반복되다 보면 위화감도, 어떤 서글픔도, 모두 옅어진다.

호칭은 한 인간의 주체성을 대리하는 수단이 된다. 자신을 그 공간의 주체라고 믿게 만드는 동시에, 그를 둘러싼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덮어버린다. 나 역시 내가 속한 공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나는 그 구성원이라는 환상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그 환각에 익숙해질 때, 우리 모두는 ‘대리’가 된다. 그 공간에서는 더 이상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없다. 누군가의 욕망을 대리하며 ‘가짜 주인’이 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대학뿐 아니라 내가 속했던 여러 공간에서 대개 주체로 서지 못했다. 누구도 호칭 뒤에 숨은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고, 나도 스스로 한 발 물러서서 그와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의도치 않게 밀려나고서야 나는 누구였는지 나는 거기에서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았고, 그때는 너무 늦었다.

나는 계속해서 ‘아저씨’가 되어 타인의 운전석에 앉는다. 하지만 대학의 강의실에서 ‘교수님’으로 호칭되었을 때와 달라진 것은 없다. 강의실에서도 나는 대리인간으로서만 존재했다. 스스로 물러서서 나를 둘러싼 구조와 마주하지 못하고 호칭이 주는 환각에 취해 살아왔다. 오히려 아저씨가 된 지금, 더욱 주체적인 ‘나’로서 타인과 마주할 수 있다.

 

5. 거리의 문법을 배우기 위해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동류이기는 하지만 동료가 될 수 없는 관계다.

 

처음에는 ‘그냥 하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나도 나의 가족도 모두 지쳐갔다. 결국 ‘공부’가 필요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나를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우선 ‘공부’가 필요했다. 그때 나는 고작 대리운전인데 그냥 몸으로 부딪히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가벼운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거리에는 저마다의 문법이 있다. 그것을 익히지 않으면 어느 생태계에서든 살아남을 수 없다. 작년까지 논문을 쓰던 책상에서, 이제는 대리운전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논문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생존의 문제였다. ‘길을 잘 모르니까’ 하는 것이 삶의 핑계가 될 수는 없었다.

 

새롭게 거리의 문법을 배우는 일은 즐겁다. 각각의 점이 선으로 연결되어 간다. 그것은 인접한 도시이기도 하고, 대중교통의 노선이기도 하고, 거기에는 어떠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그 점과 선을 다시 면으로 구성하고 나면 나름 대리기사로서의 기초문법을 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지명을 외우고 막차 시간을 계산하는 데서 나아가 그 안의 ‘사람’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그들은 언제 어떻게 나가고 들어오는지, 그들의 도시는 어떻게 외부와 소통하는지, 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투쟁은 그러한 사유로도 확장된다. 그렇게 경험한 삶의 문법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대리가 아닌 온전한 주체로서 내 몸에 남을 것을 믿는다.

 

다른 이의 차를 운전하다가 사고가 났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했다. 주체로서의 사고와 대리인으로서의 사고는 다를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닌 재난이다. 사고가 나더라도 책임질 수 있는 주체로서 낸 사고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6. 환대할 수 없는 존재들

운전 중 수다스러운 대리기사는 거의 보지 못했다.

말이 검열되고 통제되는 것처럼, 차 안에서의 모든 행위 역시 그렇게 된다. 그 무엇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손님이 있는 데까지 도착하고 나면 에어컨 바람이 간절해지지만, 차 안의 온도를 조절하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다. 가만히 앉아 땀을 흘리면서, 차의 주인이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이 고작이다. 에어컨뿐 아니라 라디오를 켜고 끄는 것도, 창문을 올리고 내리는 것도, 모두 차의 주인이 판단한다. 사이드미러나 백미러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도 그럭저럭 운행할 수 있으면 웬만해서는 그대로 두고, 의자도 많이 불편하지 않으면 기울기를 조절하기보다는 몸을 빠르게 적응시키는 편을 택한다.

 

내가 조작할 수 있는 것은 운전대와 액셀, 브레이크, 아마도 이 세 개가 전부다.

이처럼 타인의 운전석에 앉으면 거기에서의 대화뿐 아니라 거의 모든 행위 자체가 철저히 검열되고 통제된다. 운전석은 차의 주인에게 정밀하게 맞춰진 공간이고 거기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의 소중한 공간을 잠시 점유하기 위해서 온,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환대받을 수 없고 누군가를 환대할 수 없는 존재다.

 

반면 같은 ‘운수업’에 종사한다고 할 수 있는 택시 기사들의 태도는 많이 다르다. 택시에서 말하는 주체는 거의 언제나 택시 기사다. 그들은 대리기사와 달리 먼저 화제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하고 대화를 주도해 나간다.

 

오히려 조수석의 손님이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

 

택시 기사와 대리기사는 운전석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이처럼 서로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된다.

 

단순히 서로의 운전석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에게 운전석이란 온전히 자신만의 공간이다.

 

손님이 조수석에 오르는 순간, 택시 기사는 그를 초대한 ‘공간의 주인’이 된다. 그래서 거기에서의 모든 주도권을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져오는 것이다.

 

하지만 대리기사에게 운전석이란 온전한 타인의 공간이다. 손님이면서도 주인의 역할을 잠시 대리하기 위해 침입/침투한 불편한 존재가 된다. 그러한 감각이 자연스럽게 모든 행위를 검열하고 통제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자신이 어느 공간에서 주체로서 존재한다는 감각, 바로 그것이 저마다의 행동양식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은 장소에서 만난다. 그리고 초대한 사람이 초대받은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것으로 ‘환대’가 시작된다. 집에서든 사무실에서든 아니면 익숙한 식당에서든,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장소에서는 모두가 초대한 사람, ‘주인’이 된다. 그래서 날씨가 더운데 오는 길이 힘들지 않았는지, 여기는 어떤 음식이 맛있으니 먹어보자든지, 그렇게 주체에게만 허락된 발화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환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택시 기사의 ‘오지랖’ 역시 어쩌면 환대의 한 방식이다.

그러고 보면 누구에게나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주체로서 존재해야 할 소중한 공간이 있다.

 

자신의 공간에서 주인이 되고 싶어 했고, 그에 따라 타인의 공간을 존중해 주었던 것이다.

운전석에 앉은 대리기사는, 그래서 외롭다. 조수석에 앉은 차의 주인도 함께 외롭고 민망할 것이다. 주인은 손님이 되고 손님은 주인의 역할을 대리하며, 그렇게 서로의 가면을 바꿔 쓰고 목적지까지 간다. 이러한 관계의 역전은 모두 겪어본 바가 없고, 그래서 어떻게 상대방을 환대해야 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환대’는 가능하다. 언젠가 자신을 관악구의 경찰공무원이라고 소개한 이는 나에게 “선생님의 차라고 생각하고 편안히 운전해 주십시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 그것은 그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역설적인 발화이자, 그 뒤틀린 공간의 주체가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방식의 환대였다. 여전히 운전대와 액셀과 브레이크를 조작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지만, 나는/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조금은 더 편안히, 목적지까지 운전했다.

 

7. 이제 다시는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 오른쪽 도로를 탈 일이 생기면 다음 수업이 몇 시였지, 논문을 몇 쪽까지 썼더라, 하는 생각들이 어느새 나를 감싼다. 이것은 오랜 시간 동안 익숙해진 몸의 감각이라서 어쩔 도리가 없다.

 

대학의 냄새는 누구에게나 짙게 밴다. 표정에도, 목소리에도, 나 대학에 있다, 하는 것이 묻어난다. 그에게는 그러한 표시가 없었다.

 

작년 겨울까지 수없이 왕복했던 그 잊혀진 길에, 다시 올랐다. 그러고 보니 내가 “죄송합니다 사장님, 제가 길이 좀 익숙지가 않아서 내비게이션을 좀 켜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길이었다. 가는 길에 신호등이 몇 개 있는지, 어느 구간에 단속 카메라가 있는지, 아니면 어느 정도의 힘으로 액셀을 밟으면 한 번도 신호를 받지 않고 모든 건널목을 통과할 수 있는가 하는 것까지, 내 몸은 여전히 모두 기억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위한 길이 아니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완벽한 타인으로 도로 위에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이 거리의 주인이 아니었고, 어떤 추억을 되살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서둘러 거리에서 벗어났다.

 

내가 가장 합리적인 공간으로 믿었던 ‘대학’도 역시 우리 사회의 욕망을 최전선에서 대리하는 공간일 뿐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괴물이 되기 위한 경쟁에 내몰렸다가 밀려났다. 그 이전에 스스로 한 발 물러서는 연습을 했다면 나와 내 주변인들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주체로서 한 발 떼어놓을 만한 특별한 인간이 되지 못했다.

 

학교는 어둠 속에서 그 거대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외부인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을 요새, 아니면 성채처럼 내게 다가왔다. 모든 것을 단단히 걸어 잠근 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안에 존재할 때 나는 대학이 누구든 환대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믿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노천극장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운동장의 트랙을 걷는 일이, 모두에게 가능한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무 관계 없는 타인이 되어 바라본 대학의 울타리는 높았다. 내가 저기에 들어가도 되나, 하는 생각이 우선 드는 것이었다.

 

나는 대학을 둘러싼 ‘울타리’의 존재에 대해서 사실 알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이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은 벚꽃과 은행잎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몇몇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이용하는 것이 고작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도서관은 학생증 없이 통과할 수 없고, 그 외의 모든 시설은 잘 은폐되어 있다. 나는 지역 주민과 구별되기 위해, 울타리 안의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학교 마크를 높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교문 안에 들어서면 우선 마음이 편안했고, 특히 연구실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거기에 취해서 학교를 온전한 ‘나의 공간’으로 믿었다.

그런데 외부에서 타인이 되어 바라본 대학의 울타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폭력이었다. 여권 없이 어느 국경지대에 선 기분이었다. 교문 안에 들어서기라도 하면 난민, 그러니까 불법체류자가 될 것만 같았다.

 

우리가 아는 여러 사회의 상식은 대학의 울타리를 넘지 못했다.

 

대학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욕망을 최전선에서 ‘대리’하는 공간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나는 그 대리인으로 아주 오래 존재했다. 그렇게 나를 주체로 믿으면서도 단 한 번도 스스로 물러서서 나의 공간을 바라보지 못했다.

대리사회의 괴물은 개인에게 주체로서 자신을 정비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설 수 없게 만든다. 자신의 눈으로 공간을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패배’로 규정한다. 자신을 주체로 믿던 누군가 밀려나고 나면 그를 잉여, 패배자로 규정하고는 곧 다른 대리인간을 세운다. 나는 대학을 우리 사회의 가장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공간이라고 믿었고, 그것을 의심해 본 바가 없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밀려나고서야, 그 맨얼굴과 마주했다.

스스로 한 발 물러서서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공간을 바라보는 일은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은 주체들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행위다. 그러고 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행동과 말은 통제되더라도 사유하는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을 아주 어렵게 배웠다.

 

밀려나고서야 물러서는 법을 배운 부족한 한 인간은, 다시 타인의 운전석에 앉을 준비를 한다. 이제 다시는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을 것이다.

 

상식은 언제나 대학 바깥에 있다. 고인 먹물들, 그래서 썩어버린 검은 물들, 안녕히.

 

8. 손님의 품격

아이/아내와 나눠 먹으라며 빵을 한 아름 안겨주었던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차의 ‘가격’보다도 훨씬 ‘품격’이 있는 손님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에 더해 “여기 높으니 버스 타고 가요” 하고 2천 원을 건네주었던 어떤 이는 자신이 가진 차의 가격과는 별개로 가장 품격이 있는 손님이었다.

 

이것은 그가 소유한 차의 가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온전히 그가 가진 품격이다.

 

“차가 많이 낡았죠” 하고 웃던 그는, 차의 ‘가격’과는 별개로 내가 만난 가장 ‘품격’ 있는 손님이었다. 대리기사와 자신을 함께 주체로 만들었다. 그러한 힘은 상대방의 처지에서 공감하고 또한 경청하는 데서 나온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대리기사와 자신을 함께 대리로 격하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하대하지만 결국 자신도 그 밑에 존재함을 알지 못한다.

 

9. 모든 인간은 주체로서 아파하고 주체로서 절망한다

일을 나갈 때마다 아내는 나에게 “조심해요”라고 하는데, 그건 운전보다도 아마 사람을 조심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한번은 새벽에 젊은 커플을 태우고 막 출발하는데 그들에게 계속 전화가 왔다. 받지 않기에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근처 사거리에서 중년의 대리기사 한 명이 전화를 하며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코너를 돌면서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았어야 했다. 분노도, 절망도, 허무함도, 그 무엇도 아니면서 더욱 아픈 어떤 감정이 그 찰나의 순간에 그대로 전해졌다. 한 집안의 가장임이 분명할 그는 차의 백미러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전화가 몇 번이고 다시 왔다. 나는 차를 세우고 차의 주인에게 욕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먼저 와서 다행이잖아, 하는 감정이 조금씩 밀고 올라왔다. 나도 아내와 아이가, 내가 돈을 벌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차의 주인도, 운전을 하고 있는 나도, 동시에 혐오스러워서 나는 묵묵히 운전을 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들에게 따로 인사를 하지 않고, 말없이 내렸다.    

순간의 감정으로 욱, 하는 이들보다 오히려 타인의 수고를 농락하는 이들이 더 밉다. 양쪽에서 전화를 받아 누가누가 먼저 오나 경주를 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요구에 따라 거리를 내달려 온 이들을 취소 문자 하나로 돌려세우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 일상의 ‘갑질’이다. 당하는 이들에게는 대리가 아닌 주체의 아픔으로 오래 남는다. 대리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고 해서 감정까지 대리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그 어떤 비정함에 무뎌질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인간은 주체로서 아파하고 주체로서 절망한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아직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어떻게 왔는지 이야기해 주니 “저도 대리기삽니다!” 하고 내 말투를 따라 하고는 웃겨 죽겠다며 말을 못 잇고 한참을 웃었다. 나도 같이 웃다가, 눈물이 났다.

우리는 그 새벽에 함께 웃으면서 울었다.

 

공통의 화제가 가끔은 ‘말의 통제’를 넘어서서 ‘주체의 언어’로 대화하게 만든다.

 

 

 

2부. 대리인간이 되는 가족들

10. 아내에게 생긴 버릇 1대리, 2대리

면접이 끝나는 대로 바로 가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숨을 쉬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차라리 화를 냈으면,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상은 한없이 평온하다가도 어느 날 이렇게 가혹하게 다가온다.

 

면접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갑자기 “우리 사회 참 갑질이 문제야……”라면서 자신의 ‘갑질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을 예로 들기도 했고, 대리운전에서 일어날 여러 상황에 대해 걱정하기도 했다. 그것이 꽤나 길어서, 나는 자꾸만 병원에 있을 아내와 아이가 떠올랐다. 10분이 넘어가자 ‘저 선생님, 이게 ‘갑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라고 말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맨스플레인 ::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를 합친 단어로, 어느 분야에 대해 여성들은 잘 모를 것이라는 기본 전제를 가진 남성들이 무턱대고 아는 척 설명하려고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뉴욕타임스는 2010년 맨스플레인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으며,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 이 단어가 등재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레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통해 ‘맨스플레인’이 널리 알려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맨스플레인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그러고 보면 인생의 어느 중요한 결정을 두고, 나는 아내의 동의를 구한 일이 별로 없다. 오늘 저녁엔 뭘 먹을까, 하는 사소한 말은 주고받으면서도 정작 더 중요한 일들을 제대로 상의하지 않았다. 홀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통보하는 식이었다. 대학을 그만둘 때도 “나 대학에서 나와도 될까?”가 아니라 “나 대학에서 나오려고 해”라고 말했다. 아내는 나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지만, 만약 그러지 않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믿어달라고 자주 말했다. 가족이 가진 삶의 무게를 온전히 내가 감당하고 끌어올려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되지 않았고 그것이 오히려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함께 있으면서도 외롭고, 서로를 바라보며 지쳐갔다. 나는 아내와 아이를 위한 대리인생을 살아가는 동시에, 또 그들의 삶을 대리로 격하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가족 중 그 누구도 주체로서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가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아내에게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아이의 장난감을 사 왔기에 저건 얼마야, 하고 묻자 “응 저건 대리를 두 번 뛰면 살 수 있어”라고 했다. 모든 물건을 살 때마다 1대리, 2대리, 하고 화폐의 단위처럼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 정말 사야 할 물건만 사게 된다고 해서, 나는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를 고민했다. 하긴, 그러면 무엇도 쉽게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어쩌면 가족은 끊임없이 서로를 위한 ‘대리’로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위해, 너는 나를 위해, 우리는 너를 위해, 그렇게 끊임없이 주체와 대리의 경계를 넘나든다. 나는 아직 모든 가족을 주체로 두는 방법을 잘 모른다. 하지만 아내하고든 아이하고든, 조금은 더 많이 대화하려고 한다. 기꺼이 그들을 위한 대리의 삶을 살며, 그렇게 조금은 더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

 

아내는 갈증이 나는지 앞의 편의점에서 물을 사다 달라고 했다. 나는 아니, 물 한 병에 500원이야, 하고 답했다. 그동안 목이 말라도 물을 거의 사 먹지 않았다. 500원을 벌기 위해 몇백 미터를 뛰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집에 가서 시원한 물을 마시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는 정말로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그게 아깝냐고 물었다. 딱히 할 말도 없고 민망해진 나는 물을 사러 갔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는 나에게 “그런 거 아까워하면 마음이 아프다”라고 했다. 내가 일하는 이유는 나의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도와주러 나온 아내가 목이 마르다는데 고작 그것에 과민하게 반응했다. 나도 마음이 아프다. 물값을 아끼고 뛰어다니는 것은 나 혼자서만 하면 그만이다. 나의 할머니는 차비 몇백 원을 아끼겠다고 몇 정류장을 걸어 다녔다. 나의 어머니도 그랬다. 덕분에 나는 행복했나 보다.

 

11. 엄마와 아빠는 섬그늘에 굴따러 간다

그러는 동안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알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교차했다. 굳이 규정하자면 지금 이 시간에 여기에 있어야 하는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이 가장 컸다.

 

아이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울고, 싸고, 넘어지고, 다치고, 모든 것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는 또 운다. 그러다가 웃고, 춤을 추고, 달려와서 안기고, 밥도 잘 먹다가, 또 웃는다. 아이의 하루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하루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지난 2년 동안 몸으로 배웠다. 가끔은 내가 두 돌 아이의 아버지인 것을 알게 된 손님이 “집에서 애 보기 싫어서 운전하러 나온 거죠?” 하는 농담을 건넨 적도 있다. 그러면 나는 “앗, 어떻게 아셨나요?” 하고 웃으며 답하는데, 그도 나도 육아가 대리운전보다 훨씬 더 손이 많이 가는 노동임을 잘 알고 있다.

 

아내는 내가 어디로 내려올지 계산하고 차를 세워두었다. 평소 같으면 번화가까지 다시 걸어가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기뻤다.

 

나중에 부모를 이해할 만큼 자란 아이가, 이 글을 읽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가 궁금하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 동요 ‘섬집아기’  

 

아내가 차를 가지고 와서 도와주니 확실히 편했다. 멀어서 갈 수 없었던 곳도 가게 되었고, 적어도 두 개의 콜을 더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땀에 푹 젖어 들어오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잠든 아이를 보면서 내일도 나가자는 말을 둘 다 먼저 꺼내지 못했다.

 

그때부터 아내와 나는 함께 일했다. 저녁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우리는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이가 깨어 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대화도 하고, 라디오도 듣고, 가끔은 길에서 파는 떡볶이도 사 먹었다. 그러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물론 운행을 시작하면 그 즉시 모든 행위는 중단된다. 나의 신체는 타인에게 귀속되고 아내 역시 그 길을 따라온다. 하지만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리면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만큼은 서로를 대리하면서 동시에 주체로서, 그러니까 ‘부부’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나와 아내는 내일도 아이를 위해 하루보다 좀 더 긴 하루를 함께 보낼 것이다. 아이는 잘도 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어제보다 서로에게 한 발 더 다가서는 법을 배운다.

 

12. 아내는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했다. 내가 몇 시간을 더 걸으면 아내와 아이가 그 시간만큼 더 잘 수 있는 것이다.

 

대리운전 기사와 차의 주인은 딱히 친해지기 힘든 사이지만 가끔은 이처럼 내밀한 이야기가 오간다. 운행이 끝나고 나면 다시 마주칠 만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의 운전석은 대화의 가능성이 가장 차단된 공간이면서, 동시에 무한대로 열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것저것 묻고는 와 좋네요, 와 생각보다 많이 버네요, 와와, 하고 반응했다. 그다지 생기 있거나 발랄하지도 않은, 무언가 적당한 한숨이 섞인 정말이지 순수한 감탄이었다.

 

그가 저 이거 해볼래요, 하고 말하지 않은 것처럼 나도 그에게 이거 한번 해보세요, 하고 말하지 않았다.

 

13. 부부는 함께 나란히 앉아 있을 때 가장 어울린다

나는 차차 그들과의 만남에 익숙해졌다. 아니 어쩌면 무뎌졌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다.

 

그 어떤 관계에서든 사랑하는 이들은 함께 앉아 있는 편이 훨씬 잘 어울린다. 그 공간의 완벽한 타인이 된 나의 눈에는 더욱 그렇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부부는 가장 보기 좋은 손님이다.

 

그때부터 갑자기 차 안이 조금씩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감정은 운전만 하고 있는 나에게도 조금씩 와 닿았다.

 

그러다가 긴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거기에 오른 순간, 갑자기 온 세상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존재들이 나에게 지금인 것 같다고, 그렇게 입을 모아 말했다. 이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오고 나면 다시는 그런 기회가 없을 거라고들 속삭였다. 그래서 나는 A에게 저 누나 좋아하고 있어요, 하고 말했고 그와 동시에 우리는 바닥에 닿았다.

제가 6년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나도 그랬다면 좋았겠어, 하던 남자와 여자는 그때 아마도 자신들을 둘러싼 세상이 반짝반짝 빛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지금 어떤 사이가 되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남자가 먼저 내렸고, 조금 더 가서 여자도 내렸다. 덕분에 나는 스물한 살의 어느 반짝이던 날을 기억하면서 다시 합정역으로 돌아갔다.

 

14. 나의 대리가 된 이들을 추억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서 내 삶은 많이 바뀌었다. 대학 연구실과 강의실만 오가던 한 인간에게 처음으로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박사과정 수료 후 4년 동안 1년에 한 편씩 꾸역꾸역 써낸 논문은 내가 대학이라는 공간에 유령이 아닌 연구자로서 존재한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그것은 생계도, 그 어떤 사회적 안전망도 보장하지 않았지만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나는 분투해 왔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이와 마주하는 순간 그동안 내가 지켜온 그 무엇도 의미가 없어졌다. 연구자라는 허울을 벗고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야 했다. 연구실에서, 거리로 나갔다.

 

자신의 하루보다 긴 하루를 전부 아이에게 쏟아부었다.

 

강의가 끝나고 연구실에서 논문 쓸 자료들을 챙겨 집에 들어오면 집은 전쟁터였다. 특히 아내는 언제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힘들다’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특히 아이는 방긋방긋 웃거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도 아무 이유 없이 한참을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러면 나는 당황해서 아이를 조심스레 안고 흔들어주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1시간 넘게 계속되기도 했다. 나는 정말이지 이것저것을 다 해보다가 아이를 안고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하면 괜찮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벌을 섰다. 아이가 울음을 그쳐가는 동안 나는 땀에 젖었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야, 이거 헬스장에 갈 필요가 없겠는걸, 하고 좋게 마음먹기로 했다.

 

아이를 바라보다가 ‘너 때문이야’ 하는 원망이 문득 생겨나기도 했다. 그런 마음은 아이에게도, 그리고 지켜보는 아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을 것이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상대방을 배려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가족을 위해 자신만이 그 시간을 견디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악담을 퍼붓는 사이에도 아이는 계속 칭얼거렸다.

 

미안함이나 부끄러움보다는 ‘추억’으로 그것을 이야기했다.

 

1년만 참자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혼잣말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연구자이면서 남편과 아버지도 되어야 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장모님을 1년쯤 모시고 살면 어떨지 아내에게 물었다. 몸도 머리도, 그리고 감정도, 지칠 만큼 지쳤을 때였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두 세대의 희생이 필요한 시대다. 아이의 부모는 일하고, 은퇴한 조부모가 손자를 돌보고, 이것은 어느덧 한 ‘집안’이 살아남는 방식이 되었다.

 

역시나 ‘엄마 친구 아들’들은 모두 저녁이 있는 삶을 살며 육아도 척척 해내는 인간으로 진화한 모양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구걸’을 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끊임없이 나를 대신할 ‘대리인간’을 찾아다녔다. 부모에게, 아내에게, 어쩌면 나의 아들에게까지 나를 위한 대리의 삶을 살아줄 것을 강요/부탁했다. 이것은 우선 내가 나약하고 못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은 강의하고 연구하는 한 인간을 노동자로도, 사회인으로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 학문의 길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환상만을 덧입히면서 그 대상을 어디에서도 주체로 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만일 연구하고 강의하는 것으로 나의 가족이 그럭저럭 생계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혹은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면, 나는 여전히 대학에서 학문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교수 아내’, ‘교수 부모’가 되는 것으로 그들의 희생이 보상받을 수는 없다. 그러한 고난을 추억으로 강요하는 것은 너무나 염치없는 폭력이다. 소중한 이들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 대학의 학자라면, 나는 하지 않기로 했다.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자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고, 더 이상 대학이라는 괴물의 욕망을 대리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대학의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타인에게 내 삶을 대리하기를 강요하던 때보다, 오히려 지금 타인의 운전석에서 나도, 나의 소중한 이들도, 더욱 자신의 자리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

 

사회는 우리를 ‘대리인간’으로 만든다. 나아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한다. 그러한 대리사회의 욕망은 결국 모두를 집어삼키고, 주체로서의 자리 역시 빼앗는다. 하지만 그러한 고난의 시간을 추억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 대학에서 10년 가까이 연구자로 있는 동안, 외로운 한 존재를 바라보는 이들은 그보다 더 외롭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들이 상처받기 이전에 ‘고맙다’거나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을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나가면 모두 추억이 될 것이라 믿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나의 역할을 대리하는 소중한 이들이 있다. 아내는 지금도 하루보다 긴 하루를 살아낸다.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나의 부모님은 아직도 나의 걸음마를 지켜보는 듯하다. 내가 버텨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추억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온전히 기억하고 아파할 것이다. 그렇게 어제보다 조금은 더 아이의, 아내의, 그리고 내 소중한 이들의 눈을 조금 더 오랫동안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운 나날들이다.

 

15. 나는 빠주의 대리운전사

이 사회 어디도 타인의 운전석이 아닌 곳이 없구나

 

아이를 보는 데는 두 사람의 하루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이미 몇 년 전에 논문을 쓰겠다며 내 주변인들에게 나의 역할을 부탁/강요하고는 연구실로 도망쳤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마저 아내에게, 아니면 어머니와 장모님에게 떠넘기려 했다. 나와 주변인들을 모두 ‘대리인간’으로 만들었음이 아프게 다가오던 참이었다. 다시는 그러지 않고자 마음먹었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먼저 나에게 도망치라고 말해 주었다. 빈자리는 자신이 어떻게든 메꾸겠다고 했다.

 

파주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 물으셔서 김혜자와 백종원이 잘 차려주고 가끔 혜리도 밥을 해주더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불단밥’ 먹어…… 라고 한다. 불에 닿은 밥, 참 고마운 표현이다. 단어를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남긴다. 그것과 별개로 오늘은 편의점에서 어떤 도시락을 먹을까, 하고 들떠 있는 건 민망하다.

 

16. 원주를 떠나며, 나의 아내에게

강태공은 내가 아는 가장 유명한 낚시꾼이다. 낚시터에서의 선문답을 통해 관직을 얻은 그는 폭군 주왕을 몰아내는 데 공을 세웠고, 제나라의 제후가 되어 화려하게 고향 땅을 밟았다. 그는 바늘 없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 시대를 들어 올렸다.

 

젊은 날의 강태공은 가난했다. 그러나 그는 집안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책만 읽었다. 그가 공부에 매진하는 동안 아내는 홀로 많은 것을 감당해야 했다. 어느 날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큰비가 왔지만 강태공은 여전히 책만 읽었다. 집에 도착한 아내는 마당에 널어둔 곡식이 모두 떠내려간 것을 보았다. 가난한 그들에게 그 곡식이 어떤 의미였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결국 강태공의 아내는 결별을 선택한다. 강태공이 만류했지만 더 이상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집을 나온다.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허생전》의 허생 역시 강태공과 닮았다. 《허생전》에는 “허생은 글 읽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고 적혀 있다. 아내가 글을 읽어 무엇하느냐며 도둑질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허생은 “아깝다. 내가 당초 글 읽기로 10년을 기약했는데 이제 겨우 7년인걸……” 하고는 책을 덮는다.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아는 허생의 이야기다.

많은 이들이 강태공의 아내를 ‘악처’로, 허생의 아내를 철없는 인물로 기억한다. 남편을 끝까지 내조하지 않고 도망쳤고, 배고픔과 같은 사소한 욕구를 이기지 못해 남편의 앞길을 막았다고 비난한다. 말하자면 아내의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태공은 아내에 대한 원한이 깊었다. 제후가 된 자신을 찾아온 아내의 앞에 물 한 동이를 쏟아붓고는 그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가 얼마나 아내를 원망했는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부부는/가족은 한 동이의 물을 함께 지고 버티는 존재다. 하지만 강태공도 허생도 물동이를 지려고 하지 않았다. 조금만 버티면 그것을 내려놓게 해주겠다면서 그 역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물이 가득 찬 물동이를 홀로 위태롭게 지고 있던 한 여인은, 결국 그것을 놓아버렸다. 물을 쏟은 책임은 우선 자신의 역할을 외면한 이들에게 있다. 그러나 강태공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대신 아내를 원망했다. 허생 역시 아내에게 7년 동안 홀로 물동이를 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아내에게 자신의 ‘대리인간’이 되기를 강요했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는 동안 나는 당신을 강태공과 허생의 아내로 만들었다. 강태공이 그랬듯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있을 것이라는 주문을 외웠고, 허생처럼 몇 년이라는 시간을 벼슬처럼 정해 두기도 했다. 내 주변의 연구자들도 대개 나와 같았다.

 

결혼을 앞두고 당신이 나의 주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공부하는 사람을 잘 내조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제가 잘할게요, 하고 말했고 그것으로 결혼할 자격을 부여받았다. 질문한 사람들은 만족했고 나 역시 곁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제대로 된 삶의 방식이 아니다. 그러한 희생이 ‘내조’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숙명처럼 강요된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어쩌면 그때의 나를 비롯해 강태공과 허생은 자신들이 홀로 물동이를 지고 있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신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있고, 아내는 그 보조적 역할을 한다고 믿는 것이다. ‘내조’라는 단어에는 그러한 ‘보조’의 의미가 선명하게 담겨 있다.

 

다시 한번 내 역할에서 도망쳐 나왔다. 글쓰기와 대리운전으로 번 돈을 꼬박 생활비로 부치고는 있지만, 그것은 내가 맡아야 할 여러 역할 중 일부이고 가장 간편한 방식이기도 하다.

 

삶의 무게는 힘겹지만, 어떻게든 그 누구도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당신도 나도 잘 버텨내기를 바란다. 어서 돌아가 물동이의 무거운 부분을 내가 받치고 싶다. 서로를 삶의 주체로 두는 가운데 글쓰기도 그 무엇도 계속해 나가고 싶다.

 

열흘 만에 아이와 만났다. 공을 잡아 들더니 농구 골대에 가져다 넣는다. 그런 지 며칠 되었단다. 그런 기적 같은 순간에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죄스럽다. 생일을 축하해 주고 내일이면 다시 혼자 서울로 올라간다.

 

17. 내일은 좀더 오래 살아남고 싶다

식자층 :: 학식과 견문이 있는 계층. 또는 그런 계층에 있는 사람들.
인쇄술의 발달로 식자층이 확대되었다.
[네이버 국어사전] 식자층 [識者層]

 

새벽에 먹는 햄버거는 무슨 맛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자극적인 소스들도 새벽 내내 몸에 쌓인 피곤을 밀어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새달사에 접속해서 “주황색 택시를 찾았는데 5천 원에도 안 간다는데요” 하고 답글을 달았다. 그러자 댓글을 달았던 기사가 곧 다시 답글을 남겼는데, 나는 그걸 보고는 새벽에 일산 한복판에서 혼자 쿡쿡 웃었다.

“택시 기사님들 열 분 중에 일곱 분은 태워주십니다. 그분들은 기사님들이시고…… 놈에게 걸렸다 생각하십시오.”

 

어쩌면 ‘거리의 아재’가 되는 게 ‘대학의 꼰대’로 남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다.

 

 

 

3부. 주체가 될 수 없는 대리노동들

18. 우리 시대의 노동은 대리노동이다

대학의 시간강사는 학기 중에만 고용되는 4개월짜리 계약직이다. 그에 따라 방학 중에는 아무런 수입이 없다. 나는 대학에서 강의하는 4년 동안 여덟 번의 실직과 복직을 반복해야 했다. 계속 연구하기 위해서, 아니면 숨을 쉬면서 살아가기 위해서, 나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나는 대리업체의 사무실에 가지 않았다. 그만큼 절박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만큼 부당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그 어느 곳의 입장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노동의 관계도는 가장 간단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계약의 주체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용자는 그 중간에 ‘대리인’을 끼워 넣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주체로서 감당해야 할 여러 책임에서 벗어난다. 노동 현장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사용자는 자신이 고용한 이들이 아니기에 법적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현장에서 노동자가 죽거나 다쳐도 이들이 지급하는 것은 ‘위로금’에 불과하다. 노동자에게 온전히 돌아가야 할 노동의 대가 역시 아웃소싱 업체를 거치고 그 일부만 남는다.

기업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노동자의 주체성을 농락한다. 자신을 대신해 내세울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에게 언제나 가혹하다. 그런데 그것은 명백한 위법이나 합법도 아닌,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주로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법의 틈새를 이용한 ‘편법’이다. 인턴이라는 정체불명의 직함을 부여하고서는 무임금으로 사람을 부리고, 언제든지 해고하고,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망조차 보장하지 않아도, 기업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에 더해 국가/정부는 기업을 위한 법안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간다. 결국 노동자는 노동 현장의 주체가 아닌 대리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매장의/학교의 주인처럼 일하라’는 수사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이것은 정말이지 파렴치한 역설이다. 노동자의 주체성을 강탈하는 동시에 그 빈자리에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히는 것이다. 그것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자신을 주체로 믿는 대리가 된 노동자만이 존재한다. 어쩌면 ‘열정 착취’보다도 한 단계 진화한 방식이다. 노력뿐 아니라 행복과 만족까지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영혼 착취’라고 규정하고 싶다.

우리 시대의 노동은 ‘대리노동’이다. 노동자는 여전히 노동의 주체이면서, 또한 주체가 아니다

 

대리기사들은 그 축제에서 가장 적당한 거리에 있었다. 그 축제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콜이 들어오면 언제든 타인에게 귀속된 대리로 변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기하는 동안 핸드폰만 간절히 바라보기도 하지만, 어떤 흥겨운 일이 있으면 그렇게 주체가 되어 참여한다. 서울 시내 번화가에는 그렇게 수십 개의 ‘코뮌’이 새롭게 생겨난다. 어쩌면 그들은 그 거리에서 가장 주체적인 인간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상상해야 할 ‘우리’는 아직 너무나 많다.

 

코뮌 :: 프랑스 중세의 주민자치체.
12세기에 북프랑스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성립되었다. 본래 서로 평화를 서약한 주민의 공동체로서, 사회의 혼란이나 영주권(領主權)의 남용에 대해서 사회질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주민이 상호부조를 맹세하고 단결하며 왕 또는 영주로부터 특별히 사회단체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서약을 깨뜨린 사람은 집을 파괴당하거나 추방되었다. 농민의 자치체도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시민의 자치체, 즉 자치도시가 많았는데 보통 시장(市長), 기타의 임원을 선출하여 자치행정을 행하고 재판권도 가지고 있었다. 중세 말기에 왕권의 간섭이 강화되자 도시는 과두정치화하여 백년전쟁의 혼란 속에 쇠퇴해갔으나 자치체의 개념만은 1871년의 파리 코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후에도 존속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코뮌 [Commun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19. 대리전쟁에 동원되는 노동의 주체들

대리운전 시장을 장악하려는 카카오와 그것을 저지하려는 기존 업체들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빼앗으려는 새로운 갑과, 빼앗기지 않으려는 기존 갑의 충돌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전쟁은 갑과 갑이 아닌 갑과 을, 아니면 을과 을이 맞붙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갑과 마주하려는 을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또 다른 을‘들’이다. 그들은 한 걸음 물러서거나 밀려난 을에게 “너는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갑의 욕망을 대리하는 대리인간이면서도, 자신을 그 공간의 주체로 굳게 믿는다. 자신들이 괴물이 되었음을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노는 주변의 을이 아닌 저 너머의 갑을 향해야 하고, 공고하게 구축된 시스템에 닿아야 한다. 모두가 돌아서서 갑과 마주하고, 대리사회의 괴물과 싸워나가야 한다.

 

누구나 웃을 만한 터무니없는 이야기이기는 했으나, 누구도 웃어넘길 수 없었다.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떠돌며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노동의 주체인 대리기사들은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자신들을 둘러싼 시스템이 바뀌기를 기대했으나 오히려 그것이 더욱 고착화되었고, 강요와 협박에 시달렸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동류’이지만 ‘동료’가 될 수 없는 사이였다.

 

자본을 가진 갑과 갑의 전쟁에서 피해자가 된 것은 결국 노동의 주체인 ‘을’이었다. 너와 나를 구분하고 어느 편에 서야만 했으며, 그렇게 자연스레 ‘갑의 대리인’으로서 참전했다.

나는 ‘지방시’라는 글을 세상에 내놓으며 계속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그러기 위해서 쓴 글이었다. 교직원이나 보직 교수가 그것으로 트집을 잡으면 그와는 싸워나가고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온 것은 동료들이었다. 같은 연구실의 연구자들이, 같은 교양과목을 강의하던 시간강사들이, 왜 자신들을/대학을 모욕했는지를 나에게 물었다. 내 앞을 막아선 것은 갑이 아닌 을이었다. 대학의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었다.

동료였던 이들과 마지막 술자리에서, 나는 당신들이 나를 응원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나를 향한 성토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이것이 마지막 자리가 될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당신의 논문에 대해 내가 가볍게 말한 일이 있다며 사과했고, 누군가와는 가볍게 포옹을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눈물이 흘렀다. 나는 며칠 후 연구실 자리를 정리하고 대학에서 나왔다.

대학이라는 ‘갑’은 전쟁의 주체로 나서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주체로 믿는 대리인들이 자연스럽게 그 전쟁을 수행하게 했다. 그런데 나의 앞을 막아선 그들을 미워할 수가 없다. 나 역시 갑을 위한 ‘대리전쟁’에 수차례 동원되어 왔기 때문이다. 대학을 그만둔 선후배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아니라 대학의 입장에 섰다. 아무 문제가 없는 공간에서 왜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는지 알 수 없다면서 나간 자들의 나약함을 탓했다. 그들의 앞을 직접적으로 막아선 것은 아니지만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들이 한 발 나서면 언제든 그 앞을 막아설 준비도, 아마 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을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또 다른 을이다. 반드시 폭언이나 폭력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전쟁의 수행자가 된다. 내 주변의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그와 나 사이에 선을 긋는 것 역시, 갑의 욕망을 대리하는 행위인 것이다.

분노는 주변의 을이 아닌 저 너머의 갑을 향해야 하고, 공고하게 구축된 시스템에 닿아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을은 계속해서 동원되고 희생될 것이다.

 

갑의 욕망을 위한 ‘대리인’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위한 주체로 함께 싸워나가야 한다.

 

손님은 창문 바깥으로 내다보더니 좀 긁혔네요, 하고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좀’이라는 부사가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저 사람의 ‘좀’은 얼마만큼의 ‘좀’일까, 그냥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일까 아니면 보험 처리를 해야 하는 정도일까, 하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좀’의 범위를 상상하면서 나는 가는 내내 불안했다.

 

그러고 보면 을의 자리에서는 단어 하나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좀’이라는 부사 하나로도 나는 오만 가지 상상을 했다. 많이, 적당히, 조금, 이런 모호한 부사들은 듣는 사람을 난처하게 만든다. 우리는 갑의 자리에서 별 생각 없이 툭툭 말을 던지곤 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헛기침이나 하품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폭력이 된다. ‘말조심’은 을이 아니라 오히려 갑이 더 해야 하는 것이었다. 글을 쓸 때 쉼표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말을 할 때도 그렇게 조심을 해야겠다. 의미 없는 단어로, 몸짓으로,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말아야겠다.

 

20. 밀려난 사람들, 서울로 향하지 않는 밤

어린 시절에는 ‘마을‘이나 ‘동네‘라는 단어가 어울렸지만,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주상복합 아파트가 경쟁하듯 들어선 지금은 무어라 규정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무일푼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있기가 민망해 K에게 “저한테 왜 이리 잘해 주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는 “저는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그뿐이에요” 하고 답했다.

 

자신의 도시 이주 역사를 들려주면서, 그는 자꾸만 ‘밀려났다’는 표현을 썼다. 서울에서 역곡으로, 역곡에서 광명으로, 광명에서 다시 안산으로 ‘밀려났다’고 했다.  

 

“여기에서 아내와 아이와 함께 계속 살고 싶어. 지금은 그게 유일한 목표야.”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망원동을 정말이지 사랑한다. 그에게 다른 도시로의 이주는 아마도 ‘밀려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밀려나지 않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연락할 때마다 언제나 일하고 있거나 일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와 밥 한 끼를 먹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도 나도 한 걸음 밀려나면 다시 밀고 들어오기가 어렵고, 대신 한 걸음 더 밀려나기는 쉽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모두가 지금 자리에서 버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많은 도시들이 밤이 되면 사람들을 먹어 삼키고는 내보내지 않는다.

 

나는 밀려난 이들과 함께 서부간선도로에 올라 광명으로, 부천으로, 시흥으로, 그리고 그 어디로 움직인다. 이것은 각 세대가 필연적으로 겪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생존을 위한 유목이다. 그 누구도 서울을 향하지 않는 밤이다. 그렇게 모두를 밀어내고 나면 비로소 서울의 밤이 찾아온다. 오늘 하루를 버텨낸 이들의 안도, 그리고 불안과 함께 밤이 조금씩 깊어간다.

 

책임져야 할 가족을 두고 먼저 간 그의 친구의 절박함 때문에 나는 먹먹해졌다. 그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얼마나 아팠을지,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어떠한 감정이었을지를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그도 아이와 아내를 누구보다도 사랑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는 타인의 자살을 두고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라고는 도저히 말을 못 하겠다. 그것을 순간적인 잘못된 판단으로 폄하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먹먹해진다.

 

21. 명절에도 역시 숨은 노동자

내 주변에는 자신의 지도교수를 아버지로 표현하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지도교수가 그들을 아들로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한 관계 설정은 많은 문제를 만들어냈다. 교수-학생, 교직원-근로조교 아르바이트는 가족이 아니다. 가족적 우애가 노동에 대입되는 것은 전근대적인 폭력이 되기 쉽다. 그 과정에서 많은 비상식이 상식으로, 비합리가 합리로 탈바꿈하게 된다. 나는 그런 것을 충분히 보아왔다.

 

아마도 근로조교 아르바이트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남성일 그 ‘복학생’은 명절 선물을 주는 행위를 통해 교직원들에게 근로조교 아르바이트 집단의, 혹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공간의 일원이 되는 방식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관계의 모순이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조직을/사용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다.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근로조교 아르바이트들은 아마도 돈을 모아 부서의 교직원들에게 선물을 했을 것이다. 나는 교직원들이 그 선물을 받지 않았기를 바란다. 자신들이 준비한 명절 선물과 함께 되돌려주면서 “우리 부서를 위해 성실히 일해 주어 고맙다”고 말해 주었기를 바란다. 그것이 학생으로도, 또한 노동자로도 부서의 근로조교 아르바이트들을 위하는 방식일 것이다.

 

명절뿐 아니라 모든 일상에서 그렇게 ‘당연한’ 것들이 있다.

 

포장을 벗겨내고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우리가 아는 상식의 공간은 비상식이며, 비합리의 공간은 합리가 된다.

 

첫날 직원이 “거기 세 분은 저를 따라오세요”라고 해서 따라간 ‘세 분’이 있다. 나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우리에게는 가장 힘든 일을 시켰다. 모두 30대이고 그럭저럭 일을 시켜먹기 쉽게 생겼다는 특징이 있었다.

 

명절 택배 상하차 작업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는 우체국의 담당 국장이 나와 모두를 찾아다니면서 인사를 건넸다. 아무런 사고가 없었고 성실하게 일해 주어서 고맙다며 먼저 고개 숙여 손을 내밀고는 악수했다. 마지막 작업을 하고 있던 나는 그런 대로 그것이 고마웠다. 그것은 노동하는 한 인간에게 갖추는 최소한의 예의로 다가왔다.

 

사실 내가 받은 첫 명절 선물은 멸치가 아닌 ‘악수’와 ‘맥도날드 컵’이다. 대학보다도 택배물류센터와 맥도날드가 오히려 더 구성원들을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노동자로 대했다. 내가 아는 한, 대학은 우리 시대의 가장 전근대적인 공간이다. 대학은 학생과 졸업생을 노동에 동원하면서도 그들을 숨은 노동자로 만든다. 말하자면 내부의 ‘대리인간’을 양산해 낸다. 나는 8년 넘는 시간 동안 대학에서 학생이자 노동자로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노동자로서의 감각을 느껴본 일이 없다.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가장 사람을 위하지 못한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어느 관습과 제도에서도 멀어진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존재한다.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는 것은 어렵고, 그 축적된 절망을 간단한 투정으로 치부해 버리기는 쉽다. 하지만 우리는 명절뿐 아니라 그 어느 일상에서든 모두에게 공평한, 혹은 최소한의 대가가 돌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주변의 대리인간들에게 주체로서의 숨결을 불어넣는 일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대리기사가 대리기사처럼 보이지 않으면 그건 그런 대로 문제가 있다. 역할에 따른 가면을 빠르게 바꿔 쓰고 그에 적합한 신체를 만들어야 한다.

 

대리기사의 눈에는 대리기사가 보인다. 동류는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다. 그렇게 언제든 동료가 될 수 있다. 

 

22.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데 걸리는 시간

대리운전으로 인한 노동의 대가는 즉각적으로 지불된다.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일했다면 날이 밝는 대로 그만큼의 돈이 입금되는 것이다. 나는 우습게도 이것에 한동안 감격했다. 노동하고 ‘곧’ 대가를 받는다, 이런 감각에 한동안 무뎌져 있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작가들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연구하며 강의하는 많은 ‘프리랜서’들은 자신들의 창작물에 대한 보상을 대개 늦게 받는다. 주로 한 달이나 두 달이 지나 잊을 만한 때가 되면 통장에 돈이 입금된다. 애초에 원고료나 강의료가 얼마인지 먼저 물어보는 것도 민망한데 언제 지급되는지는 차마 물어보기 어렵다. 청탁하는 곳에서도 먼저 ‘글값’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언제까지 지급된다는 말은 웬만해서는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얼마를 드릴 테니 청탁에 응해 주십시오, 하는 것이 아니라 청탁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참, 원고료는 부족하지만 얼마입니다, 하는 식이다. 나에게 허락된 지면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나를 필자로 섭외해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글값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것은 아마도 나를 위한 배려이거나, 아니면 부족한 비용 책정에 대한 민망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맥락의 이해와는 별개로 그 대가는 최소한 제때, 제대로, 지급되어야 한다.

 

나에게 “지급은 무조건 되니까 조금 더 기다리세요”라고 말한 이들도 있다. 사실 그다지 많지도 않은 돈이다. 적으면 5만 원이고 많아 봐야 50만 원이다. 하지만 나의 가족이 숨 쉬고 살아가야 할 생활비이고, 나에게는 그들이 받는 월급만큼이나 소중한 노동의 대가다. 그러한 돈을 푼푼이 모아 나의 ‘월급’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지급을 몇 달씩 미루거나, 아니면 잘 모르고 있었다는 말로 웃어넘기면 그 때문에 나와 나의 가족이 곤란해진다.

 

지불이 늦어지는 것은 담당자의 게으름이나 실수 때문이 아니다. 그 조직이 특별히 나빠서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는 가장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조직일수록, 개인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늦게 지불한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출판사, 신문/잡지사, 대학, 방송국, 관공서와 같은 곳이 그렇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임직원들에게 매달 정해진 날짜에 맞춰 급여를 지급하는 것과는 별개로, 외부인에게는 더욱 복잡한 지급 절차를 거친다. 실제로 큰 조직일수록 “내부 결재가 복잡해서 지급일을 확인해 주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지금 내 주변에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작업실이 있는 망원동 근처에는 젊은 작가도, 감독도, 미술가도, 음악가도 많다. 각자의 원룸에서 칼럼을 쓰고, 카페에서 시나리오를 짜고, 스튜디오에서 그림과 음표를 그린다. 모두가 그 노동의 시간을 제대로 보상받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창작한 글, 그림, 음악을 사용했다면 그에 대한 대가는 제때, 그리고 절차를 갖춰 지급되어야 한다. 적어도 얼마의 금액을 언제까지 입금해 주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노동에 대한 예의이며 그들을 노동의 주체로 대우하는 방식이다.

 

‘신명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는 것은 성경에 명시된 ‘율법’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정말이지 기뻤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 시기에도 노동의 대가를 제때 지불하는 것의 중요성을 모두 알았고, 그것이 노동자를 주체로 대하는 방식임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 합리와 상식으로 가려진 구조 안에서 개인/노동자는 더욱 주체성을 잃고 소외된다. 말하자면 주체가 아닌 대리가 되어간다. 이것은 우리 시스템의 문제인 동시에, 창작자/연구자의 수고로움을 노동으로 여기지 않는 개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두 달 전에 쓴 글의 원고료와 어제 한 대리운전의 품삯을 같은 날 지급받는다. 어느 편이 더 상식과 합리인지는 명확하다. 타인의 운전석이, 우리가 믿는 그 어느 합리적인 공간보다도 오히려 더 인간을 주체로서 대우한다.

 

23. 대리사회의 개인은 잠시 즐겁고 오래 외롭다

열없는 위로

 

조개탄 :: 무연탄을 주원료로 하여 이것에 목탄분말(숯가루) ·콜라이트(coalite) 등을 혼합하고 펄프폐액(廢液)이나 전분(澱粉)을 점결제로서 첨가하여 조개 모양으로 성형(成型) 건조시킨 것으로, 1개는 약 50 g이다. 1920년에 처음으로 제조되었으나 최근 목탄분말을 많이 사용하여 착화성(着火性)을 용이하게 한 것이 만들어지고 있다. 대부분은 가정용으로 그 연소기구는 풍로, 작은 화로 등이다. 목탄분말로만 만들어진 조개탄은 성형목탄(成型木炭)이라고 한다. 성상(性狀)은 수분 4 %, 회분 25 %, 휘발분 16 %, 고정탄소 55 %이며, 발열량은 5,800 kca1/kg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개탄 [oval briquettes]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요즘 TV를 틀면 다들 뭘 그렇게 맛있게 먹더라고요.”

그의 말처럼 TV를 틀면 요리하거나, 맛있게 먹거나, 하는 모습이 언제나 나온다. <냉장고를 부탁해>, <집밥 백선생>, <맛있는 녀석들>, <백종원의 3대천왕> 등등, TV를 자주 보지 않는 나도 당장 몇 개의 요리/음식 프로그램을 손에 꼽을 수 있다. 인터넷 개인방송에서도 얼마나 많이, 빨리, 맛있게 먹는가 하는 것이 인기의 척도가 된다. 그에 따라 돈으로 환전 가능한 별이나 풍선 같은 것들을 선물받는다. 이른바 ‘먹방의 시대’다.

손님은 이어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다들 노래도 불러요”라고 했다. TV를 틀면 모두가 노래를 부른 지는 좀 되었다. 전 국민을 가수로 만들겠다는 듯 모든 채널에서 노래 오디션에 열을 올렸다. 일반인들을 슈퍼스타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인기를 끌었고 나는 가수다, 선언하는 이들을 모아 우열을 가렸다. 흘러간 명곡을 다시 부르기도 하고, 섭외하기 힘든 두 가수를 두고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노래해 왔고, 지금도 남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러니까 마치, 우리에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맛있는 걸 먹고 노래나 부르면서 다 잊으라고 하는 것 같아서, 당장은 재밌어도 조금 지나고 나면 허탈해져요.”

 

진심을 담은 목소리에는 그만한 진심으로 화답해야 한다.

 

TV를 틀면 모두가 즐겁다. 노래를 부르고, 요리를 하고, 그것을 듣고 먹으면서 평가한다. 드라마에서도 갈등이 해소된, 몇 대에 걸친 대가족이 모여 밥상 앞에서 한바탕 웃고 떠든다. 하루 종일 별로 웃은 일이 없는 나는 그것을 그저 지켜볼 뿐이다. 화면을 바라보는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즐겁다.

 

타인의 즐거움을 보며 대리로서 즐거워야 한다면, 역설적으로 나는/우리는 지금 그만큼 즐겁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이 만족스럽다면 남들이 먹고 노래 부르는 것에 지금처럼 필요 이상으로 열광할 이유는 없다. 결국 많은 이들이 새벽에 연구실에 앉아서 기약 없는 논문을 써 내려가는 것만큼이나 외롭거나, 아니면 절박한 심정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전에는 출연자들이 외국을 배경으로 평생 먹을 일이 없을 것만 같은 이국적인 음식을 먹고 즐겼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주변의 맛집이나 거리로 간다. 평범한 냉장고에서 누구나의 집에 있을 법한 재료를 꺼내 몇 분 만에 요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일상의 공간에까지 이제 그들은 침투했다. 그리고 익숙함을 무기 삼아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묻는다. “우리는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데, 너도 그렇지?”

그들은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즐거워하고, 우리는 그들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삶의 고단함과 절박함을 잠시 잊는다. 익숙한 공간이 재현되며 이전보다 더욱 주체가 되어 함께 그 즐거움에 동참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러한 대리만족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누구에게도 대리시킬 수 없는 허탈함이 찾아온다. 특히 자신을 둘러싼 사회구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남들처럼 즐거울 수 없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일상을 특별하게 재현한 지금의 먹방은 보는 이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같이 즐거울 수 없으니 더 외로워지는 게 아닐까요”

 

현실은 그저 웃고 잊을 만큼 간단하지 않다. 오히려 외로움이나 허탈함과 함께 어떤 분노를 이끌어 낼 만큼 가혹하다.

 

‘힐링’이라는 단어의 소멸 이후 ‘분노’와 ‘혐오’가 우리 사회를 뒤덮었다. 개인들은 이제 더 이상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둘러싼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N포 세대’로 대변되는 허무와 고독, ‘노오력’이나 ‘헬조선’이라는 비아냥과 냉소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차근차근 임계를 향하던 개인의 감정들이 최근에 이르러 실체를 드러냈을 뿐이다.

하지만 대리사회의 괴물은 여전히 개인들이 그 분노를 온전히 발산할 수 없게 만든다. 대신 대리만족의 기제를 계속 내보내면서, 행복하지 않은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마취되고 나면 개인의 분노는 자신을 둘러싼 구조, 그 괴물에게 향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의 개인이나 스스로를 혐오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더욱 자극적인 마취/환각제를 원하게 되고, 그에 따라 점점 더 강한 쾌락의 기제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아주 잠시 즐겁고, 오래 외롭다.

 

드라마의 평범한 가족들은 이런저런 부침을 겪으면서도 커다란 식탁 앞에서 함께 식사한다. 아들, 손주, 며느리, 다 모여서 목청도 좋게 웃는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그렇게 자주 모이지도 못하고 그렇게 웃을 만한 일도 별로 없다. 저마다의 삶을 살아내는 데만도 바쁘다. 모두가 함께 모여 웃으며 밥을 먹은 게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것이 꼭 내 잘못 같아서 나는 죄인이 된다.

 

공유하는 감정은 결국 ‘분노’다. 현실이 가혹하고 절박할수록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상의 판타지가 강요된다. 처음에는 그것이 공감과 즐거움을 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저마다에게 외로움을 주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분노를 토로하는 개인들도 많아졌다. 아마도 곧 노래와 음식을 넘어 또 다른 대리만족을 주는 무언가가 새롭게 등장할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 다시 열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리인간이 되기를 거부하는 개인들은 다시 다양한 방식으로 분노할 것이다. 다만 그 분노가 개인을 향한 혐오가 되어서는 안 되고,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어서는 더욱 안 된다. 익숙한 공간에까지 이미 침투한 대리사회의 괴물에게 온전히 닿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강요된 환각에서 깨어나 온전한 나로서/우리로서 ‘즐겁게’ 싸워나가야 한다. 그러면 외롭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호의를 베푸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새벽에 다가온 한 줌의 온기였다.

 

24. 새벽 두 시의 합정은 붉은 포도송이가 된다

간이 정류장이 하나 있고, 거기에 대여섯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뒤에는 작은 24시간 편의점이 하나, 맞은편에는 작은 삼겹살집이 하나, 심지어 길가에는 택시도 두어 대, 그것이 마치 오아시스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대리기사들은 거리에 마치 하나의 포도송이처럼 존재한다. 그렇게 하나의 ‘코뮌’으로 조직되었다가 해체되기를 반복하면서, ‘함께’ 살아남는다.

 

주워섬기다 :: 들은 대로 본 대로 이러저러한 말을 아무렇게나 늘어놓다.
그는 아는 산 이름을 모조리 주워섬기며 전문 산악인이나 되는 것처럼 행세했다.
[네이버 국어사전] 주워섬기다

 

빠꿈이 ::
1.영리한 사람을 이르는 말.
2.인색한 사람을 이르는 말.
[네이버 국어사전] 빠꿈이

 

택시 기사는 내가 조수석에 앉아 합정역의 지도를 보고 있자, “거 꼭 빨간 포도송이 같네, 허허” 하며 웃었다. 합정역부터 홍대입구까지 점점이, 그리고 겹겹이 모인 그 붉은 점들은 정말이지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적확한 표현이기도 했다. 기사들은 곳곳에 흩어진 점이면서, 동시에 포도송이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느 새벽에 나는 그들과 함께 하나의 ‘코뮌’을 조직했다. 그것으로 이동의 자유를 얻었고, 어디서든 그렇게 손을 내미는 주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경험을, 그리고 용기를 함께 얻었다. 사람의 인연은 쉽게 끊을 수 없으니 누군가 먼저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곧 잊고 있던 선을 기억해 내고 서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대리기사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오래 기억하고 싶은 날이다.

 

그들은 “아이고 여기서 뭐 해요? 같이 내려가서 택틀 타고 구리역으로 갑시다” 하고는 사거리 방향을 가리켰다. 나는 그때 그들이 한 명은 예수님, 한 명은 부처님, 그렇게 나를 구원해 주기 위해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여기는, 따뜻하고도 무서운 생태계다.

 

25. 기계들의 밤

적당한 곳을 정해 앉고는 콜을 기다린다. 곁에는 나를 닮은 ‘우리’가 점점이 늘어난다. 누군가는 콜을 잡아 일어나고, 누군가는 새롭게 자리를 잡고 앉는다. 운이 좋으면 바로 일어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1시간 넘게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한다.

 

택시에 탔을 때는 미터기의 ‘말’이 달리는 것을 보며 뭐 이렇게 돈이 거침없이 올라가나 싶었는데, 내가 운전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왜 이리 돈이 안 올라가나, 프로그램이 고장 났나, 싶어 불안하다. 저마다의 처지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기계와 한몸이 되어 기다리고, 걷고, 뛴다. 기계가 신체에 종속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다. 지문이 없어진 그들의 신체는 이미 기계화되었다. 막차가 끊긴 시간부터 첫차가 움직이기 이전까지 ‘기계들의 밤’이 열린다.

 

나는 대리운전 기사다. 지문 잠금이라니, 그렇게 생체 정보를 입력하고 화면을 잠가두어야 할 만한 여유는 나에게 없다. 센서가 지문을 인식하는 1초는 너무나 길고, 말하자면 사치에 가까운 시간이다. 나는 곧바로 핸드폰에 걸린 모든 잠금을 풀었다. 나는 이 기계가 보내는 모든 신호에 즉각 반응해야만 한다. 눈을 깜빡이거나, 코로 숨을 쉬거나, 귀로 듣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한몸이 되어 교감해야 한다. 핸드폰은 나와 연결된 하나의 생체, 외부의 장기와도 같은 존재다. 그러지 않으면 거리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기계와 한몸이 되어 기다리고, 걷고, 뛴다. 기계가 신체에 종속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다. 지문이 없어진 그들의 신체는 이미 기계화되었다. 막차가 끊긴 시간부터 첫차가 움직이기 전까지 ‘기계들의 밤’이 열린다.

그렇게 기계가 된 이들을 다시 사람으로 호출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기사와 손님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거기에는 사람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을 여전히 기계로 두는 이들이 있다. 그저 핸드폰에서 간단한 클릭 몇 번을 하는 것으로 자신이 해야 할 그 무엇을 타인에게 대리시키면서, 그 기계 너머에 사람이 있음을 잊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달려오는 것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고로움을 상상하지 못한다. 쉽게 호출을 취소하기도 하고, 아니면 기계를 대하듯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발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간편함에 이끌려 사람을 상상하는 법을 잊게 되면, 그 역시 기계가 되어버린다. 타인의 처지에서 사유하거나 공감하지 못하고, “여기에 사람이 있어요”라는 누군가의 절망에도 무뎌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기계들의 밤이 열린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기계가 아니다. 나는 ‘지문’이 있는 한 인간으로서 그 밤을 걷는다. 이 거리에, 사람이 있다.

 

운전을 시작하면 손님은 가족에게 전화를 한다. 그러지 않더라도 곧 전화가 오곤 한다. 그런데 “대리 불러서 가고 있어”라고 하는 이들이 있고, “대리 오셔서 가고 있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부르다’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고, ‘오시다’의 주체는 타인이다. ‘(내가) 대리를 불렀어’와 ‘(대리가) 왔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가끔은 ‘대리……’ 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불렀어’ 하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 망설임은 아마도 상대방을 주체로 상상하기 위한 시간일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주체의 언어로 말하는 데 인색하다. 별것 아닌 말의 습관이라 할 수 있겠지만, 상대방을 동등한 주체로서 대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가 된다. ‘대리 오셨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보이는 그 삶의 태도에 대해 순수한 존경을 보낸다.

 

대리운전 기사도, 조수석에 앉은 차주도, 뒷좌석에 앉은 그의 일행도, 다 함께 기뻐하는 어느 순간이 있다. 그때는 대리운전 기사가 먼저 “와 오늘 ……” 하는 감탄사를 내뱉고, 조수석의 차주는 ‘기사님 오늘 돈값 하셨네’ 하는 미소를 보내고, 뒷좌석에서도 “오늘 대리는 탁월한 선택이었어!” 하는 격려를 보낸다. 당연하겠지만, 예고에 없던 음주단속을 하는 날이다. 단속이 가까워질수록 차의 분위기는 흥겨워지고, 내가 더더더더, 하는 네 박자에 맞춰 입김을 분 이후에는 더없이 훈훈해진다.

어제는 콜을 받고 가는 길에 음주단속을 하는 것을 보고 일부러 그 길로 살짝 돌아갔다. 차 안은 ‘위아더월드’가 되었다.

 

26. 요정들의 밤

어느 외국인은 “한국에는 요정이 산다”라고 했다. 술에 취하면 대신 운전해 집까지 데려다주는 요정이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술을 얼마나 마셨든지 자신의 안방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자동차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고에 얌전히 주차되어 있고, 마치 요정이 다녀간 듯하다. 그래서 그들에게 한국의 대리운전 기사는 ‘요정’이 된다. 외국에는 대리운전 서비스가 없나, 하고 궁금해서 찾아보니 거의 없거나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다. 있다고 해도 요금이 아주 높았다. 아마 술을 마신 이후의 문화도 우리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대리운전은 정말이지 요정이 다녀간 것과 같은 노동이다. 웬만해서는 타인에게 운전석을 허락하지 않는 이들도 처음 대면하는 대리기사에게는 순순히 키를 내준다. 그는 갑자기 어디에선가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서 자신을 사장님이라 부르고는 집까지 대신 운전해 준다. 그리고 주차까지 마무리하고 곧 사라진다. 그가 다녀갔다는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 덕분에 만취 상태에서도 차와 함께 집에 무사히 귀가해서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편히 잠에 든다. “술을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농담이 현실이 된다. 마치 산타클로스가 다녀간 듯하다.

대리기사들뿐 아니라 여기저기에 보이지 않는 요정이 산다. 누군가의 수고를 덜어주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항상 존재한다. 타인이 버린 쓰레기와 배설물을 치우고, 사고를 대신 처리해 주고, 모두가 꺼리는 그 어떤 번거로운 일을 대신해 준다. 그러니까 이것은 ‘대리노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 사실 노동의 본질은 ‘대리’다. 우리는 스스로 하기 어렵거나 귀찮은 일을 타인에게 대가를 주고 대신하게 한다. 하지만 과정의 수고로움은 잘 드러나지 않고 결과만이 남는다는 점에서 노동 그 자체는 대개 은폐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노동하는 모두는 누군가에게는 요정이다.

 

사람의 노동이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되고, 우리가 노동자를 ‘요정’으로 상상하게 된 것은 기계 때문이다. 우리에게 선사한 편안함과는 별개로 기계는 사람의 노동을 은폐시키고 그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게 한다. 게다가 우리가 느끼는 편안함만큼 기계의 발전에 맞춰 노동환경이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기계를 위한 매뉴얼은 있어도 사람을 위한 매뉴얼은 없다. 기계만큼이나 복잡하고 치밀한 법과 제도만이 노동자를 옭아맨다. 합리와 효율이라는 허상은 쉽게 보이고, 그 너머의 사람이 어떠한 처지에 놓이는가는 잘 보이지 않는다.

 

O2O라는 새로운 시스템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편안함을 주는 동시에 더욱 그 너머의 사람을 상상하기 힘들게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 주변에는 더욱 많은 요정이 양산될 것이고, 우리의 신체도 은밀하게 점점 투명해져 갈 것이다. 

 

O2O :: ‘Online to Offline’의 약어로, 이용자가 스마트폰 등의 온라인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주문하면 오프라인으로 이를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정보통신기술과 근거리 통신기술의 발달을 기반으로 성장한 O2O 서비스는 일상생활의 다양한 분야에 침투해 있다. 음식 배달, 택시 승차 요청, 숙박 예약 등이 구체적인 예이다. 국내에서는 특히 다양한 배달음식주문 서비스가 O2O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요기요’, ‘부탁해’ 등의 음식 배달 어플리케이션이 이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카카오택시’나 미국의 ‘우버’ 콜택시 등이 있다.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주문과 결제를 하면 서비스 제공 매장에서 이를 처리하여 오프라인으로 배달 또는 배송해주는 형태로, 국내의 O2O 산업은 2016년 현재 음식배달 어플리케이션 서비스 12조원, 퀵·화물 10조원, 택시 8조 5000억원, 렌트카 4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 중이다. 뿐만 아니라,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하여 고객 정보를 파악하여 근거리에 있는 매장으로의 방문이나 구매를 유도하기도 한다.국내에서는 롯데백화점 어플리케이션에서 이러한 마케팅을 활용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고객이 자주 찾는 브랜드 매장을 지나가면 관련 정보나 쿠폰을 제공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O2O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모두가 잠든 시간에 자신의 노동을 시작하는 이들이 이처럼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은 대개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노동이다.

도시는 언제나 그 공간이 품은 사람만큼의 폐기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쓰레기와 배설물은 하루가 지나면 어디론가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지고, 우리는 거기에 익숙하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시공간으로 밀려난 노동이 있다. 우리는 쓰레기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그것이 사라지는 과정 역시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느 대학/회사에서는 청소 노동자가 일반 복도를 걸어 다니지 못한다. 그들을 위한 쉼터도 마련되지 않아서 화장실 청소도구실에 숨어서 밥을 먹는다.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는 언제나 우리를 위한 요정이 있다. 그들을 노동자가 아닌 요정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의 신체를 지워버리는 것은 결국 우리다.

 

밤의 거리는 언제나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핸드폰을 들고 밤거리를 누비는 요정이 되고 나니 숨어 있던 거리의 요정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놀랄 만큼 많고, 또 다양하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나타났다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그들은 요정이 아닌 ‘노동자’다. 그리고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가려진 노동, 숨은 노동자, 그렇게 밀어냄에 따라 밀려난 그림자와 같은 이들이 언제나 주변에 있다. 우리는 그들을 요정이나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호출해야 한다. 기계 너머의 타인을 상상하기란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가지만, 결국 그들을 주체로서 고양시키는 일은 역시 사람의 몫이다.

어느덧 우리의 신체는 서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투명해졌다. 모두가 대리인간이 되어간다. 은폐된 노동을 기억하고 상상하는 일은, 결국 점점 지워져 가는 우리의 신체를 되찾는 일이다.

나는 노동하는 한 인간으로서 밤을 걷는다. 이 거리에, 노동자가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생활하고 거의 평생 살아가는 그 세계를 나는 잠시 방문했을 뿐”

 

 

 

에필로그 - 경계인에게만 보이는 것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중간’의 어느 지점에 있었다. 어느 조직에나 관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장 노동자도 아닌, 중간자가 존재한다. 그것은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대학에서 ‘중간자’이자 ‘경계인’이었다. 대학원생 조교로 학과사무실과 연구소에 있으면서, 시간강사로 강단에 서면서, 계속해서 경계를 넘나들었다.

중심부나 주변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 경계에 있는 이들에게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균열’이다. 조직의 시스템이 가진 어느 균열이 희미하게나마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조금 더 중심부에 다가서게 되면 그것을 곧 바로잡겠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경계에서 멀어질수록 그 균열은 점차 보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경계를 완전히 벗어나고 나면 그 시스템이 완벽하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이들을 많이 보아왔다. 함께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던 이들이, 어느새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저 경계에서 한 발 나아간 것뿐인데 마치 자신이 비판하던 시스템의 대리인이 된 것처럼 사유하고 말한다.

 

나는 경계에서 한 걸음 스스로 물러난 특별한 인간이 아니다. 다만, 밀려났을 뿐이다.

 

나는 밀려나고서야, 희미하게나마 보이던 그 균열을 들여다보았다. 스스로 물러났다면 지금 나의 삶은 조금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그동안 나아가는 법만 배워왔지 물러서야 한다고는 그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다. 그것은 어느 공간에서의 패배를 고백하는 것이고 경쟁에서 도태된다는 의미와도 같다. 무엇보다도 ‘우리’에서 이탈해 고립되기를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경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그런 평범한 개인이었다.

 

대학의 강의실도, 연구실도, 또 다른 타인의 운전석이었다. 반쪽짜리 주체로서 나는 그 공간에 존재했고, 경계인에게 허락된 만큼의 사유와 발화만을 해왔다.

 

대리운전이라는 노동과 타인의 운전석이라는 공간을 통해, ‘대리’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나를/우리를 포위해 왔음을 알았다. 나는 대학뿐 아니라 여러 공간에서 제대로 된 ‘주체’로서 존재하지 못했다. 공간도, 시간도, 그 무엇도, 온전한 나의 것이 아니었다. 언제 장착되었는지 알 수 없는 내비게이션은 나의 삶을 은밀하게 통제해 왔고 나는 그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해 왔다. 그러면서도 삶의 주인이라는 환상에 취해, 나는 살아왔다.

우리는 모두가 한 사람의 대리운전 기사다. 자신이 그 차의 주인인 것처럼 도로를 질주한다. 하지만 조수석에는 이미 누군가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시동을 걸기 이전부터 거기에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것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의 욕망은 내비게이션을 통해 끊임없이 전달되고 개인의 의지는 통제되고 검열된다. 차를 멈추고 운전석에서 잠시 내려, 그렇게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어느 균열의 지점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액셀을 더 강하게 밟는 데만 힘을 쏟는다. 단속 카메라가 보이면 브레이크를 밟고, 경로를 이탈했다는 경고음에 다시 도로로 올라오면서도, 자신이 주체라는 환상에 빠져 계속 운전대를 잡는다. 그렇게 대리사회의 욕망을 대리하는 ‘대리인간’이 된다.

대리사회의 괴물은 대리인간에게 물러서지 않는 주체가 되기를 강요한다. ‘주인 의식’을 가지라고 끊임없이 주문하는 가운데, 정작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을 주체로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봉쇄한다. 결국 개인은 주체로서 물러서는 법을 잊는다. 내가 그랬듯 밀려나고서야 자신이 어느 공간의 대리로서 살아왔음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다. 밀려난 개인은 잉여나 패배자로 규정되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대리인간이 들어선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말하자면 우리 사회를 포위한 ‘대리올로기’의 서사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누구도 가르쳐준 바 없지만, 결국 우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한다. 밀려나기는 쉽지만 스스로 물러서기는 어렵다. 그것은 공간의 주체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고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그러고 나면 시스템의 균열이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그 균열의 확장을 통해, 그동안 자신의 욕망을 대리시켜 온 대리사회의 괴물과 마주할 수 있다. 그때부터는 ‘사유하는 주체’가 된다. 여전히 행동과 언어는 통제될지라도, 정의로움을 판단하고 타인을 주체로서 일으키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강요되는 천박한 욕망을 거부할 용기를 얻는다.

우리 모두는 경계에 있다. 다만, 한 걸음만 물러설 용기를 가지면 된다. 대리인간으로 밀려날 것인지, 스스로 물러서고 다시 나아오는 주체가 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책상에 앉아서 쓰는 한 편의 글보다 거리에서 문득 떠오른 한 줄의 문장이 더욱 가치가 있었다. 《대리사회》는 그렇게 하루의 밤과 한 줄의 문장을 조금씩 쌓아가며 썼다.

 

대학은 세상의 전부가 아닌 조금 특별한 일부일 뿐이다. 나는 대학 바깥에서 얼마든지 ‘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대학에서 나온 몇 개월 동안 몸의 언어로 배웠다.

그래서 나는 계속 거리의 언어를 몸에 새겨나가려고 한다. 이 책은 내가 써나갈 글의 서론과도 같다. 제도권과 거리의 경계에서, 언제까지고 경계인으로만 존재하며 그 균열을 탐색하고 싶다. 그 세상의 틈을 통해, 계속 괴물과 마주할 것이다.

다시 거리로 나아간다.

728x90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0) 2023.06.28
사축일기  (0) 2023.06.27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0) 2023.06.25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0) 2023.06.24
소프트웨어 장인  (0) 2023.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