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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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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
김대중 15대 대통령 당선자의 ‘국민의 정부 경제개혁정책’ 총괄책임자였던 장하성은 한국 자본주의 문제는 선진국들과는 크게 다르다고 말한다. 선진국들의 핵심 문제인 소득 불평등, 양극화 심화, 고용 없는 성장과 함께 극도로 불공정한 시장의 경쟁구조,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 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선진국들과 다른 한국 자본주의 문제들의 원인과 과정을 낱낱이 파헤치고, ‘정의로운 경제’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이 책은 우선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진단하고 발전 과정을 살펴본 후, ‘주주 자본은 자본주의 모순의 근원인가, 한국 경제는 정말 먹튀에 휘둘렸나, 삼성은 왜 스스로 M&A 논쟁을 일으켰나’ 등의 질문을 던지면서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적인 이슈의 논쟁들을 비판하고 재구성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대안을 논의한다. 저자는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로 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달려 있으며, 정의롭고 공정한 소유, 경쟁, 분배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저자
장하성
출판
헤이북스
출판일
2014.09.25

 

제1부 한국 자본주의 톺아보기 

1. 고장 난 한국 자본주의 

 번져가는 자본주의 회의론

 2009년에는 세계경제가 성장률을 공식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50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했다. 세계은행(IVRD,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국제부흥개발은행)이 세계경제성장률 자료를 공식 집계하기 시작한 1960년 이후 50년 만에 처음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성장률은 각각 2008년 -0.3%, -0.8%, 2009년 -2.8%, -5.2%였다. 그리고 세계경제의 성장률은 2008년 1.4%, 2009년 -2.1%였다. 경제성장률은 세계은행의 자료에 근거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시작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세계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1.7%로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세계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1960년대 5.5%, 1970년대 4.0%, 1980년대 3.1%, 1990년대 2.7%, 그리고 금융 위기 발생 이전 2000년부터 2007년까지는 3.3%였다.)

 

 G7(미국·일본·영국·르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 등 선진 7개 국가)

 G20(G7에 속한 7개국과 유럽 연합 의장국을 비롯한 한국·아르헨티나·오스트레일리아·브라질·중국·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터키 등 신흥 시장 12개국을 더한 20개 국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세계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1.8%였다. 같은 기간 동안 고소득 국가들의 연평균 성장률은 0.8%, 중간 소득 국가들은 5.3% 그리고 저소득 국가들은 5.9%였다.)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위기는 경기가 침체해서만은 아니고 경제가 성장 잠재력을 잃어서도 아니다. 체제 위기란 그 체제가 정당성을 잃었다고 믿을 때 온다. 지금의 체제 위기 핵심은 성장으로 얻은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고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제는 호황기도 있고 불황기도 있으며, 경기순환적인 부침은 수없이 경험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문제는 경기순환과 관계없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연평균 성장률이 각각 3.5%, 3.1%, 3.2%로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소득이나 부의 불평등 정도는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어서, 불평등 심화의 원인이 성장률의 둔화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한국도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한 1999년부터 2012년까지의 연평균 성장률이 4.8%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고, OECD 평균인 2.0%의 두 배 이상을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지 저성장 때문에 분배가 악화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자본주의 위기론은 성장의 둔화가 아니라 불평등 구조의 심화 때문이며, 성장의 결실이 일반 국민들의 삶으로부터 유리되었기 때문이다.

 

 OECD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시장 근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던 1980년대 중반부터 글로벌 금융 위기가 시작된 2008년까지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급격하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보고서는 1985년부터 2008년까지의 가처분소득을 기준한 통계다. 22개 조사 대상 국가들의 평균 지니계수(Gini係數)는 1985년 0.29에서 2008년 0.31로 증가했으며, 터키와 그리스의 2개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20개 모든 국가에서 지니계수가 증가했다. 지니계수는 소득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표이며 0에서 1의 숫자로 측정하는데, 숫자가 커질수록 불균형이 큰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1980년 중반에 소득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서 이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참고로 한국의 2008년 지니계수는 0.31이며, 이는 OECD 보고서에 포함된 나라들의 평균에 해당한다.

 

 조사 기간 중 미국의 경우 상위 10%의 소득은 연평균 1.5% 증가했지만 하위 10%의 소득 증가는 연평균 0.1%에 불과했다. 영국도 상위 10%의 소득은 연평균 2.5% 증가한 반면 하위 10%의 소득은 연평균 0.9%의 증가에 그쳤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북유럽의 대표적인 나라인 스웨덴의 경우에는 소득분배가 다른 나라들보다 비교적 평등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고 양극화가 진행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스웨덴은 OECD 국가 중에서 지니꼐수(Gini係數)가 가장 많이 상승했으며, 상위 10%의 소득은 연평균 2.4% 증가한 반면에 하위 10%의 소득은 연평균 0.4% 증가에 그쳐서 부유층과 빈곤층의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가 됐다. (@스웨덴은 지니계수가 1985년 0.2에서 2008년 0.26으로 증가해서 증가 폭이 가장 큰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2008년 기준 지니계수가 가장 낮은 나라다.)

 

 선진국들의 문제들이 시장 근본주의적인 정책의 산물이라면 한국의 문제들은 시장경제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발생한 문제다.  

 

 소득재분배 정책의 실패

 ο 악화되는 소득불평등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한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OECD 회원국 중에서 중간 정도에 속한다.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한 한국의 2010년 지니계수는 0.31이다. OECD 회원국들의 평균 지니계수는 0.314로 한국은 평균에 해당한다. 지니계수의 순위에서도 한국은 34개 회원국 중에서 17위로 중간에 위치한다. 총소득으로 지니계수를 측정할 경우에 한국의 소득 자료가 왜곡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에 관한 국제 비교는 모두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한다. 세금과 공적부조(公的扶助)를 제외하지 않은 총소득을 기준할 경우에 한국의 지니계수는 2010년 0.34로 자료가 제공되고 있는 OECD 31개 국가 중에서 가장 소득 불평등이 낮은 나라로 나타난다. 한국의 지니계수 0.34는 소득 불평등이 낮은 나라로 알려져 있는 북구의 스웨덴(0.44), 노르웨이(0.42), 덴마크(0.43)보다 훨씬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나서 한국의 소득 자료가 왜곡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소득 자료에는 상위 소득자들의 소득이 누락되거나 낮게 보고되고 있어서 이를 반영해 보정한 자료에 의하면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소득자들의 누락된 소득과 실제보다 낮게 보고된 소득을 보정할 경우에 2010년 한국의 지니계수는 0.31에서 0.37로 높아진다. 이는 2010년 OECD 회원국 중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것이며, 선진국 중에서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인 미국의 0.38과 비슷한 수준이다.) 가처분 소득을 기준으로 최상위 10%의 소득은 최하위 10%의 소득보다 4.8배 높으며, 이는 OECD 회원국 중에서 여덟 번째로 높다. 최상위 20%의 소득은 최하위 20%의 소득보다 5.7배 높으며 이는 아홉 번째로 높다.  

 

 상용 근로자 총소득의 분포에서 한국은 임금 수준 최상위 10%가 최하위 10%의 4.8배로 OECD 회원국 중에서 세 번째로 격차가 크다. 뿐만 아니라 2000년에는 4.0배였으나 2005년에는 4.5배로 격차가 더욱 확대되었고, 2010년에는 4.7배, 2011년에는 4.8배로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추세여서 임금 소득의 불평등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또한 중간 임금의 3분의 2 수준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25.2%를 차지하고 있어, 이는 미국과 함께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시장 소득이란 일해서 받은 근로소득과 이자와 배당 등 투자로 번 재산 소득을 합한 총액의 개념이다. 가처분소득은 시장 소득에서 세금 납부액을 제외하고 연금, 정부 보조금, 복지 지원 등을 반영한 소득이다. 따라서 가처분소득은 시장 소득에서 정부의 조세정책과 복지 정책 등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반영된 소득을 의미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시장 소득으로 측정한 소득 불평등보다도 가처분소득으로 측정한 소득 불평등이 더욱 심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소득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기능을 거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ο 확대되는 양극화

 소득 불평등(income inequality)은 소득분포가 얼마나 특정 계층, 특히 상층에 집중되어 있는가를 의미한다면, 양극화(polarization)는 소득분포가 상층과 하층 양쪽으로 쏠리면서 중산층이 줄어드는 현상을 의미한다. 소득 불평등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양극화가 심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에 1983년부터 2010년까지의 28년 동안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함께 나빠진 경우는 열한 번이고 함께 개선된 경우가 아홉 번이며, 소득 불평등만 악화된 경우는 여섯 번, 양극화만 악화된 경우는 두 번이었다. 2001년 이후에는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함께 개선된 것은 2010년이 유일하다.)

 

(@중산층을 정의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준은 OECD가 사용하는 중위 소득의 50~150% 사이에 있는 소득 계층이다. 중위 소득이란 전체 가구 또는 개인의 소득분포에서 중간에 해당하는 소득이며, 평균과는 다른 것이다. OECD 기준 이외에도 연구에 따라서 중산층을 중위 소득의 80~125%, 66.7~133.3% 또는 50.5~200%로 다양하다. 이정우, 이성림(2001)은 이 네 가지 정의 중에서 어떤 것을 적용해도 중산층이 축소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2000년 초반에는 양극화의 심화 속도가 소득 불평등의 악화 속도보다 빨랐으며,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양극화의 결과로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중간 소득 계층이 5.8%포인트 감소했는데, 이는 중산층이 11%나 감소한 것을 의미한다. 중간 소득 계층에서 이탈한 사람들 중에서 62%는 저소득 계층으로 하락했고, 38%는 고소득 계층으로 이동했다. (@소득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중위 소득의 50~150% 사이의 중간 소득 계층은 2000년 51.5%였으나 2012년 45.5%로 5.8%포인트가 감소해서, 중산층이 약 11% 줄어들었다. 중위 소득 150% 이상의 고소득 계층은 같은 기간 동안 30.3%에서 32.5%로 2.2%포인트 증가했으며, 중위 소득 50% 미만의 저소득 계층은 18.5%에서 22.1%로 3.6%포인트 증가했다.)

 

 

 양극화가 경기변동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심각성을 보여준다.

 

 3無 성장: 고용, 임금, 분배

 ο 고용없는 성장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고, 경기 호황이나 불황에 관계없이 양극화가 확대되는 현상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문제들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 자체가 경제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으며 단지 잘사는 수단이나 과정일 뿐이다. 

 

 한국은 외환 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실업률이 가장 낮은 나라였으며, 최근에는 OECD 회원국 중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았다. (@한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외환 위기 직후의 두 해를 제외하고는 항시 OECD 회원국 중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한국은 2012, 2013년 두 해는실업률이 3.2%와 3.1%로 34개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았고,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한 2008년에는 네 번째, 2009년과 2010년에는 두 번째로 낮았다. 외환 위기 이전인 1994년부터 1997년까지도 OECD 회원국 중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은 나라였다. 외환 위기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는 2002년에 네 번째로 실업률이 낮았고, 이후 2003년에는 세 번째, 2004년에는 두 번째 등으로 이후에지속적으로 두 번째 또는 세 번째로 실업률이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문제는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이슈 중의 하나다. 그 이유는 한국은 실업률뿐만 아니라 고용률도 낮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용률은 OECD 회원국 중에서 지난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중간 이하로 낮은 나라에 속한다. (@한국의2013년 고용률은 64.4%로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스무 번째다. 한국의 고용률은 34개 OECD 회원국 중에서2012년에도 스무 번째였고, 2011년에는 스물두 번째, 2010년에는 스물한 번째, 2009년에는 스물두 번째, 2008년에 스물세 번째 등으로 지속적으로 하위권에 속했다.) (@고용률은 15세 이상 생산 가능 인구 중에서 취업자의 비율이다. 실업률은 생산 가능 인구 중에서 스스로 취업을 포기한 사람을 의미하는 비경제활동인구를 제외한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실업자의 비율이다. 따라서 실업률은 취업을 원하는 사람 중에서 실업자의 비율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활동인구에는 현실적으로 취업할 수 없는 군인 등이 제외되며, 비경제활동인구에는 학생·가정주부·구직 단념자·취업 준비자 등이 포함된다.)

 

 외환 위기때조차도 한국의 실업률은 OECD 회원국 중에서 중간 정도에 (@외환 위기 상황이었던 1998년과 1999년에 한국의 실업률은 각각 7.0%와 6.8%였다. 이러한 실업률은 34개의 OECD 회원국들 중에서 1998년에는 열세 번째, 1999년에는 열두 번째로 낮은 것이었다.) 불과했을 정도로 한국의 실업률 통계는 신뢰할 수 없다. 

 

 ο 고용 없는 제조업 성장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3.6%로 OECD 회원국들의 평균인 1.7%보다 두 배 이상 높았으며, 이는 34개 회원국들 중에서 일곱 번째로 높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만 봐도 연평균 성장률이 2.9%로 OECD 회원국 평균인 0.6%를 크게 앞질러 다섯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의 고용률은 10년 동안 1.3%포인트 증가에 그쳐서 OECD 국가들 중에서 중간 수준에 머물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 문제의 원인 중 하나는 한국 산업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용 창출 효과가 적은 제조업의 비중이 다른 나라들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인 것이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고용유발계수는 10억 원 규모의 생산에 필요한 일자리 수를 나타낸다. 한국의 2011년 고용유발계수는 제조업이 5.5명이고, 서비스업은 11.5명이다.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제좆업은 고용창출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제조업 자체의 성장이 빨랐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 즉 서비스업의 성장이 훨씬 더디었기 때문이다. (@제조업은 2000년 10.4명에서 2011년 5.5명으로 10여 년 동안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서비스업은 2000년 16.2명이었으나 2011년 11.5명으로 약 30%가 줄었다.) (@2012년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1.1%이며,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8.2%이다. 10년 전인 2002년에 제조업의 비중은 26.5%였고 서비스업의 비중은 59.8%였다.)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27.3%, 2008년 27.9%, 2009년 27.8%였으나 2010년에는 30.3%, 2011년 31.3%, 그리고 2012년 31.1%로 증가했다. 반면에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60.0%, 2008년 60.8%, 2009년 60.4%였으나 2010년에는 58.5%, 2011년 58.0%, 2012년 58.2%로 오히려 줄었다. 전체 고용 중에서 제조업의 비중은 2008년 16.8%에서 2012년 16.6%로 큰 변화가 없고, 서비스업의 비중은 2008년 67.9%에서 2012년 69.6%로 늘어났다.) 특히 금융 위기 이후에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증가했으나, 전체 고용 중에서 제조업의 고용 비중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 반면에 국내총생산 중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했는데도 불구하고 고용 비중은 오히려 증가했다. 금융 위기 이후 서비스업의 이러한 현상은 서비스업에서 질이 낮은 일자리가 늘어난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33.8%로 34개 OECD 회원국 중에서 두 번째로 높다. (@2011년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에너지산업 포함)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33.8%로 노르웨이의 36.4%에 이어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2009년과 2010년에도 두 번째로 높았다.) 일본은 21.9%, 미국은 16.2%, 그리고 독일은 26.2%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제조업 비중이 다른 나라들보다 크게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고용 창출 효과가 높은 서비스업의 비중은 매우 낮다. 한국의 2011년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7.6%로 OECD 회원국들 중에서 세 번째로 낮다. (@2011년 OECD 회원국 중에서 국내총생산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낮은 나라는 노르웨이로 56.3%, 두 번째로 낮은 나라는 칠레로 57.5%이다.) 일본은 71.4%, 미국은 78.8%, 독일은 68.3%로 한국보다 월등히 높다. 다른 나라들은 고용 효과가 큰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반면에 한국은 고용 효과가 낮은 제조업이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이기에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의 문제는 산업구조로 인한 당연한 결과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발전하고, 특히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 경제는 서비스화 되어 간다. 한국에서는 이를 ‘산업구조의 고도화’라고 부르고, 경제학에서는 ‘경제의 서비스화’라고 부른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제조업 자체가 갖는 상대적으로 빠른 생산성 증가와 더불어 소비의 대중화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생산성 증가가 빠른 제조업에서는 오히려 고용이 축소되고, 이때 서비스 부문은 제조업에서 방출된 노동을 흡수하게 된다. 여기에서 전제는 제조업에서 창출한 고부가가치가 서비스 상품에 대한 소비 여력을 만드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즉 제조업으로 번 돈을 서비스업에 쓰는 것을 말한다.  

 

 ο 임금없는 성장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동안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8%를 기록했으나 실질 임금 증가율은 2.1%에 그쳤다. 지난 10년 동안 경제 전체는 45.6% 성장했는데도 실질임금은 이것의 절반인 23.2% 증가에 불과했다. 특히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5년 동안 경제성장과 실질임금 증가 간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의 연평균 성장률은 3.2%였으나 실질임금 증가율은 0.5%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금융 위기 이후 5년 동안 경제는 17% 성장했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은 고작 2.5% 증가에 그쳐서 경제성장의 성과로부터 노동자들이 갈수록 배제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물가지수로 환산한 실질임금을 구하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5년 동안의 명목임금의 연평균 증가율은 3.8%이며, 소비자물자지수의 연평균 상승률은 3.3%여서 실질임금의 연평균 증가율은 0.5%이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동안 1인당 국내총생산은 38.8%가 증가해서 연평균 성장률이 3.3%이다. 그러나 실질임금은 같은 기간 동안 23.2% 증가해서 연평균 증가율이 2.1%였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금융 위기 이후 5년 동안 1인당 국내총생산은 13.7%가 증가했으나 실질임금은 2.5% 증가에 그쳐 경제성장과 큰 격차를 보였다. 

 

 ο 분배 없는 성장

 (@노동소득분배율은 기업이 만들어낸 부가가치 중에서 노동자들에게 분배된 몫의 비중이다.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은 한국은행이 집계하고 발표하는 국민 계정 통계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 정체 상태로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국민 계정에서 제시한 통계는 정확한 노동소득분배율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자영업자 소득의 상당 부분은 자영업을 하는 사람 자신의 노동소득으로 간주해야 하며, 특히 영세한 자영업자의 소득은 대부분 노동소득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국민 계정 통계는 자영업자 소득을 모두 사업 이익으로 간주하고 집계한 것이기에 노동소득분배율을 계산하기에는 무리다. 더욱이 한국은 노동자 열 명 중에서 세 명이 자영업일 정도로 자영업자 비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자영업자의 비중이 네 번째일 정도로 다른 나라들보다 매우 높다. OECD 통계에 의하면 2012년 한국 자영업자 비율은 28.2%이다. 34개 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보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나라는 터키 37.1%, 그리스 36.4%, 그리고 멕시코 28.2%이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자영업자 비율은 16.2%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노동소득분배율은 공식 통계가 집계된 1975년 이후 40여 년 기간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연구에 의하면 노동소득분배율은 1998년 80.4%였으나, 2000년 75.4%로 낮아졌다. 그리고 금융 위기가 발생한 2008년에는 70.9%로 더 하락했으며, 2011년 67.6%, 2012년 68.1%로 이 통계가 작성된 197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 지난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8%였으나 실질 가계가처분 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1.8%여서 가계소득의 증가가 경제성장률보다 연평균 2.0%포인트나 낮았다. 결과적으로 10년 동안 경제는 45.6% 성장했는데 가계소득의 증가는 17.1%에 불과해서 가정살림과 국가 경제성장 사이의 격차가 매우 크게 벌어졌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5년 동안에도 경제는 17% 성장했는데 실질가계소득은 경제성장의 3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는 5.3% 증가에 그쳤다.

 

 한국의 이러한 가계소득 증가율과 경제성장률 격차는 OECD 회원국 중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 지난 10년 동안 26개 국가 중에서 12개 나라는 가계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았으며, 나머지 14개 나라는 가계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았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6%이고, 물가 상승을 조정한 실질 가계 가처분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2.8%여서 그 차이가 연평균 0.8%포인트다. 이와 같은 차이는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가계소득 통계가 제공된 26개 국가 중에서 다섯 번째로 큰 것이다. 한국보다 연평균 가계소득 증가율과 경제성장률의 차이가 더 큰 나라는 헝가리, 네덜란드, 슬로바키아, 폴란드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의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9%이며, 연평균 가계소득 증가율은 2.1%이다. 이는 OECD 회원국 중에서 금융 위기 이후 기간의 가계소득 통계가 제공되는 28개 국가 중에서 일곱 번째로 큰 것이다. 28개 국가 중에서 16개 국가는 금융 위기 상황에서도 가계소득의 증가가 경제성장보다 높았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 세계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도 28개 국가 중에서 16개 나라는 가계 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았고, 금융 위기를 만든 장본인인 미국과 영국마저도 가계소득 증가가 경제 성장을 앞질렀다. 

 

 일반적으로 국민들이 더 잘살게 되면 예금이나 투자와 같은 금융자산을 더 늘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경제가 성숙 단계에 들어서면 근로소득의 비중은 줄어들고 자산소득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은 국민소득이 높아졌는데도 가정살림을 꾸리는 데에서 임금으로 받는 근로소득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진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2012년 가계소득 중에서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86.3%였는데, 이는 1990년대에 비해서 오히려 높은 수준이다. (@가계소득 중에서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9년 86.3%, 1990년 85.8% 1991년 85.1%, 1992년 85.3%, 그리고 2000년 84.1%, 2001년 84.2%로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유지했으나 이후에 다시 증가했다.)

 

 벼랑 끝 비정규직 노동자

 ο 악화되는 비정규직 문제

 정부 통계에 의하면 자영업자를 제외한 임금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의 비중은 2013년 32.6%이다. 임시직과 일용직을 비정규직에 포함하는 노동계의 통계에 의하면 비정규직의 비중은 45.9%이다. 

 

 정부 통계를 따르더라도 현재 전체 임금노동자의 3분의 1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은 10년 전인 2003년에도 33%였으며, 2004년에는 37%까지 증가했으나 2007년에 기간제 노동자 보호에 관한 법이 통과된 이후에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이후 다시 10년 전의 수준으로 늘어나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월평균임금격차는 2003년 61%에서 2007년에는 64%까지 약간 개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에 격차가 급격하게 확대되어 2013년에는 정규직의 절반 수준인 56%까지 떨어졌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노동시간이 짧은 점을 감안하여 시간당 임금으로 비교하자면, 2003년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72%였으나 2013년에는 65%로 역시 격차가 더욱 확대되었다.

 

 노동계의 통계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중은 46%로 이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81%인 반면에 비정규직 노동자는 40%로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고용보험과 건강보험 가입률은 정규직이 각각 71%와 83%인 반면에 비정규직은 43%와 46%로 큰 차이가 있다. 퇴직금과 상여금 수혜율도 정규직은 80%가 넘는 반면에 비정규직은 40%만이 혜택을 받고 있다. 시간외 수당을 받는 비율도 비정규직은 25%에 불과하고, 유급휴가를 받는 비율은 33% 정도다. 또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이 17%인데 반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은 3.0%로 실제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비정규직은 극히 소수다.

 

 ο 기간제 노동자 보호법의 배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일환으로 2007년 기간제 노동자 보호법이 제정되었으며, 이 법은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동일한 노동자가 2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면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되도록 강제적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2007년 이후 이 법이 시행된 지 6년이 지난 2013년까지 임금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의 비율은 줄어들지 않았다. (@기간제 근로자의 비중은 2007년 15.9%, 2008년 14.7%, 2009년 17.1%, 2010년 14.6%, 2011년 15.2%, 2012년 15.3%, 2013년 15.1%이다.) 이 법에도 불구하고 기간제 노동자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사업자들이 비정규직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보다는 2년 기간이 채워지기 바로 직전에 계약을 종료하고 다른 노동자를 다시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청년 취업자의 36%가 첫 일자리를 계약직인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며, 이 중에서 90%이상이 1년 이하 또는 일시적인 일자리다. (@청년층의 첫 일자리 중에서 계약직에 해당한 비중은 2006년에는 1년 이하가 8.7%였으나 2013년에 21.2%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첫 일자리 중에서 안정적인 고용에 해당하는 계약 기간을 정하지 않은 경우는 2004년 69.9%였으나 2013년 61.6%로 크게 감소했다.)    

 

 기업과 가계의 불균형 성장

 ο 노동자와 주주의 몫이 줄었다

 (@연도별 인건비 대비 배당금의 비중은 다음과 같다. 2004년 9.7%, 2005년 8.3%, 2006년 7.6%, 2007년 8.8%, 2008년 3.1%, 2009년 5.0%, 2010년 6.7%, 2011년 5.6%, 2012년 4.5%.)

 

 순이익 중에서 배당으로 지급한 금액의 비율을 배당성향이라고 한다. 최근 10년간을 보면 한국 기업들의 배당성향은 전체 이익의 약 5분의 1인 20% 수준이다. (@2012년의 배당성향은 20.2%이며, 이는 순이익의 약 5분의 1이 배당으로 지급된 것을 의미한다. 2012년의 배당성향은 2003년의 21.1%, 2004년의 20.9%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며 2005년 이후에는 오히려 줄어들었다가 2012년에 20.2%로 늘어났다. 지난 10년간의 배당성향은 줄어들었다가 다시 증가했으나 아직 2003년 수준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상장회사 중에서 배당하지 않고 자사주를 매입한 기업은 약 5% 내외이며,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함께 사용하는 기업도 약 20% 미만이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은 1990년대보다 2000년대에 배당을 크게 늘렸다. 그 결과로 2000년부터 2012년까지의 연평균임금 증가율은 8.7%인 반면에 배당 증가율은 10.4%로 배당 증가율이 임금 증가율을 앞서고 있다. 상장회사들의 배당은 반드시 임금과 제로섬(zero-sum) 관계가 아니다. 즉 임금을 제한 이익의 전부를 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내유보를 하기 때문이다. 이 기간 중에 상장회사들의 사내유보율이 더 많이 늘어났는데 이렇게 보면 사내유보, 배당, 임금의 순서로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반드시 배당 때문에 임금 몫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임금을 더 지불할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늘리지 않고 사내유보금을 늘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상장회사들의 임금 대비 배당의 비율도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증가했지만 금융 위기 이후에는 다시 감소해서 2012년에는 2000년 수준으로 하락했다. (@상장회사들의 임금 총액 대비 배당 총액의 비율은 2000년 10.3%, 2001년 9.3%였으나 2002년 11.2%, 2003년 15.2%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2007년 20.7%에 이른다. 그러나 금융 위기가 발생한 해인 2008년에는 11.5%로 급격하게 하락하고 2012년 10.4%에 이른다.) 금융 위기 이후에 노동분배율은 감소하고 배당성향은 늘어나지 않았으나 사내유보율만은 증가했다.

 

 한편 비상장회사의 현황은 이와는 좀 차이가 있다. 상장회사는 수만 또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불특정 다수의 일반 투자자들이 주식을 보유한 반면에, 대부분의 비상장회사는 창업자를 비롯한 소수가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상장회사가 배당하는 것은 수많은 주주들이 이익을 공유하여 소득 분배 효과가 크지만, 비상장회사의 배당은 소수의 주주들에게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소득분배 효과가 제한적이거나 오히려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배당이 노동소득분배를 악화시키지 않았다는 결과는 임금과 배당의 본질적 특성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임금은 회사와 노동자 간의 계약으로 그 금액이 정해져 있다. 임금은 이익 규모와 관계없이 항시 지급해야 하며 극단적으로 회사가 파산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면 임의로 줄일 수 없다. 그러나 배당은 약속된 금액이 없기 때문에 회사가 이익이 발생하면 배당할 수도 있지만 손실이 발생한 경우에는 배당하지 않는다. 또한 배당음 임금, 이자, 세금을 모두 지급하고 남은 이익으로 배분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의 이익 규모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즉 임금은 금액이 확정적으로 정해져 있고 증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배당은 확정적인 금액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익에 따라 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임금 증가와 배당 증가 간에 일정한 관계가 성립되기 어렵다.

 

 한국은 주가에 대한 배당금의 비율인 배당수익률은 2003년에 2.1%였는데, 2012년에는 오히려 이보다 줄어든 1.1%에 불과했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 기업들의 현금 배당성향은 22%로 선진국 평균 49%는 물론이고 신흥 시장 국가 평균인 41%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순이익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도 배당을 한 형태인데 현금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합한 금액으로도 한국 기업들의 배당성향은 32%이며, 이는 선진국의 평균인 71%보다 크게 낮고, 신흥 시장 국가의 평균인 44%보다도 낮다.)

 

 ο 줄어든 가계소득, 늘어난 기업소득

 경제 전체로 본다면 경제활동을 통해서 만들어진 모든 소득을 국민총소득(GNI, gross national income)이라고 하며, 이는 가계소득, 기업소득, 그리고 정부 소득의 합이다. (@가계소득은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과 예금과 투자로부터 받은 이자와 배당의 합계다. 기업소득은 영업이익과 예금에 대한 이자와 다른 기업의 주식에 투자한 대가로 받는 배당의 합계다. 정부의 소득은 세금 등으로 얻게 되는 정부의 수입이다.) 한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국민총소득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정부 소득의 비중은 안정적이다. 결과적으로 경제 활동으로 만들어낸 부가가치가 가계소득이 아니라 기업소득으로 다시 환류 됨으로써 기업은 갈수록 부자가 되고 있고 가계 살림은 오히려 어려워지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에는 국민총소득 중에서 가계소득과 기업 소득은 경제가 성장한 만큼 비슷하게 증가했다. 기업과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1990년부터 1999년까지 기업이 6.0%, 가계가 5.7%로 큰 차이가 없었다. 같은 기간 동안 실질 국민총소득의 연평균 증가율도 5.9%였기 때문에 국가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가계와 기업의 소득이 함께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는 기업소득의 증가가 가계소득 증가를 크게 앞질러서 경제성장의 성과 중에서 기업이 가져가는 몫이 갈수록 켜졌고 가계에게 배분된 소득의 몫이 지속적으로 줄었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실질 국민총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3.5%였는데, 실질 기업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이보다 훨씬 높은 7.5%였다. 그러나 실질 가계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국민총소득 증가율보다 낮을 뿐 아니라 기업소득 증가율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2.4%에 불과했다. 경제가 어려웠다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기간을 보더라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실질 국민총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2.1%였고 기업소득은 이보다 높은 5.1%인 반면에 가계소득은 1.4%에 불과했다.

 

 이러한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간의 격차가 지속적으로 벌어지면서 국민총소득 중에서 가계소득의 비중이 1990년에는 71.5%였으나 2000년 68.7%로, 그리고 2012년 62.3%로 더욱 축소되었다. 반면에 기업소득의 비중은 1990년에는 16.1%였으나 2000년 16.5%로 약간 증가했고, 이후로는 크게 증가해서 2012년 23.3%로 늘어났다. (@한국은행 2005년 기준 국민소득 계정 중에서 제도 부문별 소득 계정 통계로 구했다. 금융 위기 이후의 연도별 비중은 기업소득이 2008년 21.0%, 2009년 22.2%, 2010년 23.5%, 2011년 23.7%, 2012년 23.3%이며, 가계소득은 2008년 63.7% 2009년 63.4%, 2010년 62.0%, 2011년 62.0%, 2012년 62.3%이다.) (@국민총소득 중에서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6.5%에서 2012년 23.3%로 늘어났으며,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68.7%에서 2012년 62.3%로 줄어든 것이다.)

 

 2011년에 한국의 가계소득 비중이 61.6%인데, 이는 OECD 평균인 69.0%보다 크게 낮은 것이다. 반면에 국민총소득 중에서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에 한국은 24.1%인데 이는 OECD 평균인 18.1%보다 크게 높은 것이다.

 

 ο 줄어든 가계 저축, 늘어난 기업 저축

 한국 기업들의 사내유보율은 2002년 89.5%, 2003년 88.4%, 2004년 88.9%로 안정적이었으나 2005년 90.9%, 2006년 92.1%, 그리고 2012년 95.2%까지 이르렀다.

 

 기업 저축률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11%에서 12% 사이를 유지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는 증가하기 시작해서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한 2008년 16.8%, 그리고 2010년 19.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기업 저축률은 OECD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금융 위기 이전인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기업 저축률은 15.1%로 열한 번째였던 것과 비교하면 금융 위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은 한국 기업들이 다른 나라들의 기업과 비교해서도 금융 위기 이후에 급격하게 내부유보를 늘려간 것이다. 반면에, 가계의 순저축률은 1990년대 중반까지는 20%를 넘었으나, 2007년 이후에는 2%에서 4% 사이로 크게 줄어들었다. 가계 저축류링 이렇게 떨어졌다는 것은 1990년대에는 가계들이 소득 중에서 5분의 4를 소비하고 5분의 1을 저출했는데, 최근에는 소득이 거의 대부분을 생활비로 쓰고 있을 만큼 가계 살림에 여유가 없다는 의미다.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1990년대에는 5년이 지나면 1년 소득만큼의 재산을 모으게 되었는데, 이제는 20, 30년이 지나야 1년 소득만큼의 재산을 모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금융 위기 이전인 2000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의 연평균 가계 저축률은 5.6%로 열한 번째였는데, 금융 위기 이후인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기간에는 3.8%로 스무 번째다. 많은 나라들은 금융 위기 이후에 가계 저축률이 오히려 증가했는데 한국은 반대로 감소했다. OECD 회원국 중에서 15개 국가는 증가했고 12개 국가는 감소했는데, 한국보다 더 많이 감소한 나라는 6개 국가뿐이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2.9%이다.)

 

 한국의 총저축률은 OECD 회원국 중에서 금융 위기 이전 10여 년 동안 매년 1위에서 3위 사이에 해당할 정도로 높았다. 금융 위기 이후에도 한국의 총저축률은 금융 위기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OECD 국가 중에서 2위 또는 3위로 가장 높은 나라다. 이렇게 한국 총저축률은 다른 나라보다 높은데도 가계 저축률이 낮다는 것은 경제성장의 성과가 가계로 배분되는 몫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의 과다한 내부유보금

 ο 투자가 아니라 소비가 부족하다

 국민총소득의 성장률에서 소비와 투자가 기여한 비중을 비교하면 한국은 소비가 투자보다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훨씬 더 크며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에는 소비가 투자보다 성장 기여도가 평균적으로 더 컸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았다.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는 국내총생산 성장률에서 지출 항목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국내총생산의 지출 항목은 크게 최종 소비지출(소비), 총자본형성(투자), 수출과 수입의 네 가지로 구성된다. 최종 소비지출은 민간 지출(민간 소비)과 정부지출로 구성되고, 총자본형성은 총고정자본형성(투자)과 재고 증감으로 구성된다. 총고정자본형성은 건설투자, 설비투자, 무형 고정자산 투자의 합이다. 1990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의 국내총생산 성장률에 대한 최종 소비지출의 평균 기여도는 65.1%이며, 총고정자본형성의 평균 기여도는 47.9%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소비의 기여도가 투자의 기여도보다 훨씬 더 컸으며,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투자는 오히려 경제성장에 마이너스 기여를 했다. 가장 최근인 2012년 국민소득 성장률에 대한 최종 소비지출(소비)의 기여도는 75.0%였으나 총고정자본형성(투자)의 기여도는 –25.0%였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동안 국내총생산 성장률에 대한 최종 소비지출(소비)의 평균 기여도는 78.8%이며, 총고정자본형성(투자)의 평균 기여도는 6.1%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기간인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총고정자본형성은 2009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4년 동안 기여도가 마이너스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5년 동안은 기업소득과 내부유보가 급격하게 증가했기 때문에 기업이 보유한 자본이 크기 증가한 기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가 소비보다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크게 낮았다.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서 투자가 늘어나는지도 의문이지만, 투자의 성장 기여도가 소비보다 크게 낮은 사실에 비춰 본다면 역대 정부가 가계소득을 높이거나 소비를 촉진시키는 정책에는 관심이 없고 투자 촉진에만 열을 올리는 접근 방법을 택한 것은 전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한국은 투자가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 대비 투자의 비중이 2012년에 OECD 회원국 중에서 두 번째로 높다. 1990년대에도 줄곧 1위였는데, 투자 비중이 줄어든 2000년에 들어서도 여전히 1, 2위다. 투자 중에서도 건설투자는 압도적 1위였으며, 설비투자는 1990년대에는 2위, 2000년대는 5위로 최상위권에 속한 나라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국내총생산 대비 투자의 비중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는 건설투자가 줄어든 것이며, 설비투자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금융 위기 이후에 건설투자가 줄어든 것은 주택 미분양 사태가 날 정도로 주택 시장이 크게 위축되었기 때문이고, 세계적인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설비투자는 크게 줄지 않았다.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가 성장에 기여하는 체제는 제조업에서 달성한 고부가가치가 경제 전체의 소비력을 진작시키기 때문인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제조업의 부가가치가 사회 전체에 확산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부문의 종사자들이 소득이 오를 만큼 삶의 질을 높이는 소비를 하게 되고, 이것이 서비스 부문의 성장을 촉진하고 고용을 창출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처럼 임금도 정체되어 있고, 가계소득도 늘어나지 않고, 소비도 늘어나지 않으며, 서비스업도 정체되어 있고, 고용도 늘어나지 않는다면 제조업이 아무리 고부가가치화 되고 투자가 늘어난다고 해도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는 것이다. 

 

 1997년 ‘외환 위기 이전에 한국은 국내 총생산과 민간 내수의 장기 성장률이 서로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2000년 이후에는 민간 내수 증가율이 국내총생산 성장률보다 크게 낮으며 그 격차는 2006년 이후 더욱 벌어졌다. 특히 ’민간 소비 증가율은 국내 경제에 특별한 충격이 없는 상황에서 12분기 연속(2009년 3/4분기부터 2012년 2/4분기까지)으로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하회하였는데, 이는 1990년대 이래 처음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의 2000년 이후 소비 수요 부진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국내총생산 성장률과 민간 내수 증가율 간의 격차를 비교하면 통꼐 비교가 가능한 OECD 국가 중 2000년부터 2008년까지 기준으로 한국이 아이슬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격차가 크고, 2000년 이후 10년간 기준으로는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헝가리에 이어 네 번째로 크다. 한국보다 격차가 큰 국가들은 2008년 금융 위기를 직접적으로 겪었던 국가들이란 점에서 이들 금융 위기 국가를 제외하면 한국이 OECD 내에서 가장 격차가 크다. 

 

 ο 재벌과 대기업의 꼼수

 (@상장회사들의 부채비율은 2000년 157%였으나 이후에 급격하게 감소해서 2007년 79.5%로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금융 위기가 발생한 2008년 97.9%로 증가했지만 이후 다시 낮아져서 2013년 90.0%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수익성이 좋고 부채 상환 능력이 충분한 기업의 경우에는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세금 절감 효과 때문에 주식 발행이나 내부유보금 적립보다 비용 면에서 더 유리하다. (@부채로 조달한 자금에 대해서는 이자를 지급하고 주식에 대해서는 배당을 지급하는데, 이자는 회계상 비용으로 인정되지만 배당은 비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부채는 이자 지급에 대해서 법인세를 덜 내는 효과가 있다. 이것을 부채의 법인세 절감 효과라고 하는데, 부채 자금이나 주식 자금이나 파산 등의 다른 위험 조건이 동일하다고 하면, 부채 자금은 항시 법인세 절감 효과만큼 더 싼 자금이다.) 그리고 이익 유보로 조달하는 내부 자금과 주식 발행을 통한 조달 자금 사이에는 자본비용 측면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 (@주식을 발행해서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자금은 발행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거래 비용이 발생한다. 반면에 내부 자금은 발행 절차가 없기 때문에 외부 감시와 감독을 받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로 인한 위험이 존재하고, 이에 따른 비용을 치러야 한다. 주식 발행에서 발생하는 거래 비용과 내부 자금이 수반하는 도덕적 해이 위험으로 인한 비용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큰지는 단정할 수 없고, 기업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용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주식 발행으로 조달할 자금과 내부 자금은 모두 같은 자기자본(Equity Capital)이기 때문에 자본비용이 동일하다.) 따라서 내부유보금을 늘려갈 여력이 있을 정도로 수익성이 좋은 기업들이 내부 자금보다는 채권이나 주식을 발행해서 외부 자금을 조달한다고 해서 비용면에서 더 불리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유리한 면이 있다. 또한 부채가 아니더라도 상장 대기업들은 주식을 발행해서 신규 투자 자금을 조달할 여력이 충분하다. 하지만 한국 대기업들은 주식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신용도가 높은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들은 지난 10여 년 이상 주식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지 않았다.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는 1999년 이후 지난 15년 동안 단 한 번도 주식을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한 적이 없다. 2위인 현대자동차와 3위인 포스코(Posco)는 1998년 이후에 주식을 발행하지 않았다. 금융 기업을 제외한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중에서 지난 12년 동안 일반 투자자들 대상으로 주식을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한 기업은 단 한 기업도 없었다. (@주식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한 마지막 해는 시가총액 4위인 포스코는 1998년, 5위인 SK하이닉스는 2012년이다. 6위인 네이버는 상장 이전인 2004년에 주식 발행을 했으나 2008년 상장 이후에 한 번도 하지 않았다. 7위인 기아자동차는 2002년, 8위인 한국전력공사는 1995년이며, 9위인 LG화학은 1990년 이후에 유상증자를 한 적이 없다. 10위인 현대중공업은 1999년에 마지막으로 주식 발행을 했다. 시가총액 5위인 SK하이닉스가 2012년에 주식 발행을 한 것은 일반 투자자들에게 공모한 것이 아니라 SK텔레콤이 하이닉스를 인수할 수 있도록 SK텔레콤에게 제3자 배정으로 주식 발행을 한 것이다.) 이렇게 대기업들이 비용이나 수익 측면에서 훨씬 유리한 외부 자금의 조달 방식을 꺼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주식을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려면 투자자들에게 기업의 경영 상황을 상세하게 공개하고 자금 조달 목적을 설명하는 등 시장에서 검증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내부 자금을 사용하는 것이 투자 목적을 밝히지 않고 시장의 검증을 피하는 편한 방법이다. 

 

 대기업들이 주식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을 회피하는 더 직접적인 이유는, 매우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총수들이 자신들의 지분을 유지하기 위한 개인적인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주식을 발행하면 할수록 총수의 지분은 축소될 것이고, 경영권 장악도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가 화두인 이유 

 정실주의(Cronyism) :: 공직임용은 개인의 능력이나 일정한 자격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나 인사권자가 개인적 친분관계를 임용기준으로 하는 인사 제도를 말한다. 정실주의는 정치적 이념이나 신조, 그리고 정당관계 등을 임용기준으로 하는 엽관주의와 구분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실주의 [情實主義] (경찰학사전, 2012. 11. 20., 법문사)

 

 ο 헌법 제119조

 경제민주화는 단지 일부 학자나 시민 단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1988년에 개정된 헌법 제119조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①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1988년 헌법 개정 시에 이 조항을 만드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김종인은 제119조 2항의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라는 부분은 ‘양극화 등으로 경제,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어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거나 흔들릴 우려가 커질 때 정부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붕괴를 막기 위해 원용할 수 있는 비상 안전장치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경제민주화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공생 원리’라고 규정하며, ‘경제민주화의 뜻은 어느 특정 경제 세력이 나라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의 저자인 존 롤즈(John Rawls)가 규정한 정의의 두 가지 원칙 중에서 ‘차등의 원칙’으로 알려진 두 번째 원칙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의 두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a) 사회의 최소 수혜자 성원에게 최대의 기대 이익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b) 공정한 기회균등이라는 조건 아래 모든 이에게 개방된 직책과 직위에 결부되어야 한다.

 롤즈는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은 그 자체가 불의가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한다면 사회 구성원 가운데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유리한 불평등’이라면 정의로운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시장경제 때문에 발생한 불평등과 양극화를 저소득 계층들에게 유리하도록 바로잡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는 의미다.

 

 한국의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경제민주화는 정확하게 롤스의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며, 한국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빈곤층, 저소득 계층에게 가장 유리한 분배가 이뤄지도록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제어하고 조정함으로써 정의로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2. 뒤죽박죽 한국 시장경제 

 계획경제체제의 유산

 ο ‘경제개발 5개년 계획’부터 ‘MB 물가지수’까지

 세계에서 가장 유별난 관치 경제의 틀에서 ‘한강의 기적’이라고까지 불린 눈부신 산업화를 이룩했던 한국식의 발전 패러다임은 1960년대 초부터 1997년 외환 위기를 맞을 때까지 4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한국이 개발 연대의 계획경제체제에 변화를 시도하고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으로 볼 수 있다. 1960년대 초에 본격적인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정부는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이름부터 ‘계획경제’임을 명시하고, 경제를 5년 단위로 운영하였다. 이 체제는 4차까지 이어져 1981년에 종료되고, 1982년부터는 ‘경제사회 발전 5개년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7차까지 지속되었고, 7차 계획 종료 이후에도 경제는 여전히 그 이전의 방식과 틀에 따라 운영되었다. 계획경제의 마지막 단계이자 시장경제로의 전환의 일환으로 김영삼 정부는 출범과 함께 ‘신경제 5개년 계획’을 1993년부터 추진했지만 1996년에 조기 종료되었다. 1993년에는 모든 금융거래에 실명을 의무화하는 ‘금융실명제’가 도입되었다. 1994년에는 계획경제의 상징이자 주무 부처였던 경제기획원이 폐지되고, 재무부와 통합되어 재정경제원으로 변신하였다.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로써 1995년부터 민영화를 포함한 시장 자유화 정책들이 추진되었다. 이렇게 보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된 것은 1995년이라 볼 수 있다.

 

 계획경제 시절에는 정부가 음식 값, 목욕탕 요금, 여관 숙박료, 미용실 요금, 그리고 심지어는 다방 커피 값까지 결정했다. 예를 들어 목욕탕 요금을 업주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은 1990년 9월이었다. 그러나 자율화 이후에도 오랫동안 정부는 소위 ‘행정지도’라는 명목으로 요금을 규제하기도 했다. 

 

 ο 사회주의적 발상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에 박정희 정부가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 시작은 이승만 정부였다. 이승만 정부는 1958년에 ‘경제개발 3개년 계획(1960~1962)’을 수립했고, 다음 해인 1960년 4월 15일에 국무회의에서 의결했으나 4·19 혁명으로 정권이 무너져서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에 같은 해 8월 출범한 장 면 정부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해서 1961년 초부터 실행에 들어갔으나, 같은 해 5월에 일어난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이 무너져서 이 계획은 중단되었다. 따라서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군사정부가 1962년에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행한 것은 사실 이승만 정부, 그리고 뒤이은 장 면 정부의 5개년 계획에 바탕으로 두고 이어받은 것이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군사정부가 정권을 잡고 있었으며, 박정희 정부가 수립된 것은 1963년 12월 17일이다. 박정희가 의장을 맡은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모두 행사한 초헌법적 기구였다. 1962년 12월 17일 국민투표로 권력구조를 대통령제로 바꾸는 헌법개정이 이뤄졌고, 다음 해인1963년 10월 15일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어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12월 17일에 박정희정부가 출범했다.)

 

 군사정부는 이런 종합 계획을 수립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전 정권의 계획을 일부 수정하여 발표했던 것이다. 이후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군사정부에 이어서, 김영삼 정부에서 수립한 신경제 5개년 계획까지 30년 이상 지속되었다. (@1962년 군사정부에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이후에 1981년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까지 이어졌고, 이후 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는 명칭을 ‘경제사회 발전 5개년 계획’으로 변경해서 5, 6, 7차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1993년 김영삼 정부는 다시 명칭을 ‘신경제 5개년 계획’으로 변경했으나 1996년 이를 폐기했다.)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사실은 북한이 한국보다 앞서 경제개발 계획을 먼저 실시했으며, 1970년대 중반까지는 북한이 한국보다 잘살았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부터 경제 부흥 3개년 계획, 1957년부터 제1차 5개년 계획을 시행함으로써 성공적인 전후 복구를 달성하고 연평균 20% 안팎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제1차 계획은 목표를 계획보다 일찍 달성했고, 곧 이어서 실시된 중공업 육성에 초점을 맞춘 ‘제1차 7개년 계획(1961~1967)’은 계획보다 3년이 늦춰진 1970년에 완료되었다. 1961년부터 1970년까지의 기간 동안 북한의 공업은 연평균 12.8%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렇게 한국보다 먼저 계획경제를 실시해서 북한은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더 컸고, 1인당 국민소득도 한국보다 더 높았다. 일부 연구에서는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보다 높았다는 결과도 있다. (@UN의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한국보다 1973년까지 더 높았고, 1974년에 같은 수준이었다.)

 

 계획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공산 체제인 북한에서 경제개발 계획을 한국보다 먼저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계획경제의 시초는 구소련 초기인 1921년에 레닌(Vladimir Ilich Lenin)이 수립한 신경제계획이었다. 이후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이 1928년에 수립한 ‘제1차 국가 경제 5개년 계획’으로 이어졌고, 1991년에 구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13차에 걸친 5개년 계획을 실시했다. 5개년 계획을 시행하고 있는 또 다른 대표적인 나라인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1953년에 제1차 계획을 시작해서 현재까지 제12차 계획(2011~2015)을 시행중이다. 이같이 계획경제는 사회주의(Socialism) 공산 체제의 산물이다. 한국은 1948년 건국 헌법에서는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적인 경제체제를 채택했다가 1954년 헌법 개정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했다. (@‘1948년에 제정된 한국의 헌법은 원래 주요 산업의 국유화, 근로자에의한 기업이윤 분점등을 골자로 하는 사회민주주적인 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1954년의 개헌으로 이것을 자유기업을 원칙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시킨바 있다.’) 한국이 지금의 스웨덴이나 독일처럼 사민주의체제로 시작해서 시장경제로 전환하고서는 경제 발전은 오히려 공산주의(Communism)방식인 계획경제를 통해서 달성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중국도 1978년에 개혁개방정책을 채택하기 이전까지 네 번의 5개년 계획을 추진했지만 경제 발전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중국이 지난 20여 년 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개혁개방으로 사회주의에 시장경제를 도입한 것이 중요한 이유이지만 중국 정부가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를 통제할 수 있는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계획경제로 고도성장을 달성한 것도 박정희 정부의 독재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군사정권이 청산되고 민주화가 이뤄진 김영삼 정부에서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로 전환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보수 우파의 박정희 향수

 ο  향수인가, 환상인가?

 박정희 향수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조사된 것이 없지만, 계획경제 시대의 고도성장이 재현되기를 바라는 것과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라는 것 두 가지로 짐작해볼 수 있다. 박정희의 리더십을 말할 때 그 개인의 역량이나 자질에 초점을 맞추는 주장들이 있다. 하지만 박정희의 강력한 리더십은 5·16 군사 쿠데타로 시작해서 유신헌법(維新憲法)으로 이어진 독재 체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박근혜 정권이든, 그와 동일한 선상의 정권이든 아니면 어떤 정권이든 박정희 시대에 이루었던 고성장을 다시 재현할 수는 없다. 그것은 향수가 아니라 환상일 뿐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류가 있다. 첫째는 경제법칙 때문이고, 둘째는 한국 내부 요인 때문이고, 셋째는 외부 환경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경제 규모가 커진 성숙 단계에 진입하게 되면 더 이상 개발 도상 단계의 고성장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정희 집권 첫해인 1961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92달러였고, 이는 세계 78위였다. 그리고 박정희 집권 18년 동안 한국 경제는 연평균 8.3%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집권 마지막 해인 1979년 1인당 국민소득은 1,747달러에 이르러 세계 48위로 상승했다. (@박정희 집권 기간 동안 1인당 국민소득은 1961년 91.6달러에서 1979년 1,747달러로 1인당 국민소득은 19배가 증가했고, 이 기간 동안 연평균 성장률은 8.3%였다.) 그러나 당시에도 국민소득 2000달러가 되지 않은 개발 도상 단계의 후기 또는 중진국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었다. 여기에서 훨씬 더 나아가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박근혜 시대에 국민소득 2000달러도 되지 않았던 개발도상국에 머물러 있던 30년 전 박정희 시대의 8~10%의 고성장을 다시 달성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이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한 해는 1995년이다. 그 이후 10년 동안의 경제성장률은 1만 달러를 달성하기까지 걸린 10년 동안의 성장률보다 크게 하락했다. 그러고 2만 달러를 달성한 2007년의 전후를 비교해도 마찬가지로 2만 달러를 달성한 이후에 성장률은 더욱 하락했다.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한 해는 1995년이고, 1986~1995년 10년 동안의 평균 성장률은 8.7%였고, 달성 이후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의 평균 성장률은 4.5%였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한 해는 2007년이며,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 동안의 평균 성장률은 4.4%였고, 달성 이후 5년인 2008년부터 2012년까지의 기간 동안 평균 성장률은 2.9%이다.) OECD 회원국들의 경험에서도 국민소득 1만 달러와 2만 달러를 기준으로 전후 10년 기간의 성장률을 비교해보면 각 단계마다 성장률은 뚜렷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경제체제와 정치체제의 변화에 있다. 박정희 시대는 정부가 경제를 직접 운용하는 계획경제체제였다. 독재 체제인 박정희 시대의 계획경제체제에서는 정부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절대적인 통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의 영역과 자율성이 확대되었고, 민주주의가 자리 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독재 체제에서나 가능했던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계획경제 시대에 정부의 통제가 극에 달한 것이 유신 체제였다. 유신 체제에서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 없이 ‘긴급조치’라는 이름으로 법을 스스로 만드는 권한도 가졌다. 긴급조치 중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것이 1975년 4월에 고려대학교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긴급조치 7호’였다. 그 내용은 고려대학교에 휴교를 명하고, 군대가 학교를 점령하고, 고려대학교 내의 시위를 금지하며, 이를 어기면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하고,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박정희 시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정부 시책에 걸림돌이 되는 어떠한 장애도 허용하지 않은 철저한 통제가 이뤄졌다. 설혹 독재 정권의 통제 체제가 고성장의 기반이었고, 그래서 지금의 시장경제를 다시 계획경제로 되돌리고 싶다고 해도, 어렵게 쟁취하고 25년 이상 발전해 온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를 용인할 수 없다.

 

 세 번째 이유는, 지난 30년간 한국을 둘러 싼 세계 경제가 개방체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개방경제체제 하에서는 각국의 경제는 정부의 미시적인 시장 개입조차도 감시와 견제를 받는다. 각종 정부 보조와 지원은 통합된 세계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훼손하는 요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며,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개방경제체제의 일원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수출로 먹고살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개방체제에 역행하는 정책을 시행할 경우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계획경제 기간 동안 한국은 일종의 변형된 폐쇄경제를 유지했었다. 적극적인 수출 지향 정책을 채택했기 때문에 얼핏 개방경제 체제로 보일 수 있으나, 수입은 철저하게 통제했다. 외환은 단 1달러 소지도 불법이었고, ‘국가 안보’차원에서 철저하게 관리되었다.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각종 특혜와 지원금, 보조금으로 수출 단가를 맞춰주었다. ‘낭비성’ 품목은 수입 금지 품목으로 지정하든지, 아니면 매우 높은 관세를 부과해서 실질적으로 수입을 막았다. 반대로 수출 원자재나 중간재의 수입 물가가 오른다 싶으면 관세를 깎아주거나 면제시켜주었고, 운송료도 보조해주었다. 

 

 이렇게 수출과 수입에 대한 비대칭적인 통제 정책이 가능했던 것은 WTO(World Trade Organization, 세계무역기구) 체제 이전의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체제 하에서 한국이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인정받아 높은 관세 등으로 수입을 규제하면서도 정부가 기업에 수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허용하고, 선진국들이 한국 상품에 대해서 낮은 수입관세를 적용하는 등의 혜택을 누렸기 때문이다. 경쟁 국가들의 불평도 있었으나 한국의 최대 시장이었던 미국은 ‘반공’의 최첨단에 서 있는 한국을 지원, 옹호하였다. 

 

 한국 정부는 1995년에 창설된 WTO에 가입하면서 개방체제로 전환했다. 때문에 과거와 같은 고성장 시대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다시 폐쇄경제로 회귀해야 하는데, 한국의 경제구조에서 이는 자살행위에 가까운 것이 될 것이다.

 

 실제로 개방경제로 전환한 이후에 정부가 과거와 유사한 방식으로 수입 규제 조치를 취해서 심각한 국제분재잉 발생한 사례도 있다. 국내보다 가격이 훨씬 싼 중국산 마늘의 수입으로 마늘 생산 농가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되자, 2000년 6월 한국 정부는 중국산 마늘에 대한 수입관세를 대폭 인상해서 수입을 억제하려고 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일주일 후에 보복 조치로써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취했다. 한국 정부는 마늘 관세 인상이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서 허용되고 있는 WTO 규정에 합당한 조치라고 주장했지만, 중국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구조상 중국에 대한 협상력을 가질 수 없었다. 당시에 중국산 마늘의 연간 수입액은 1,800만 달러였지만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의 중국 수출액은 8억 달러로 마늘 수입액의 무려 50배가 넘은 규모였기 때문에 ‘마늘 분쟁’으로 인한 피해는 한국이 훨씬 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분쟁이 시작된 지 두 달 만에 한국 정부는 수입관세를 다시 낮추고 중국은 수입 금지 조치를 해제하는 데 합의했다.

 

 ο 자기모순에 빠진 보수 우파

 ‘박정희 향수’는 50대, 60대 이상의 세대만이 아니라 한국 보수 우파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공감대이기도 하다. 보수 우파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주창하고 있다. 보수 우파의 정치 세력을 대표하는 새누리당의 당헌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 이념’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보수 우파의 경제 세력을 대표하는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도 ‘자유 시장경제의 창달’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좇는 이념과 박정희 향수라는 정서 사이에는 어떤 합리적 설명으로도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다. 박정희 정권은 정치적으로는 개인의 자유가 제한된 반민주적인 독재 체제였으며,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와는 정반대인 계획경제체제였다. 따라서 한국에서 보수 우파 세력들이 지향하는 정치적 자유가 허용된 자유민주주의도 아니었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 시장경제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보수 우파의 ‘박정희 향수’는 자신들이 주창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스스로 부정하는 형용모순이며 시대착오적이다.

 

 진보 좌파의 박정희 향수

 ο ‘시장=신자유주의’?

 선진국의 소위 ‘신자유주의’는 미국과 유럽에서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극단적인 시장 근본주의를 말하는 것이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정책의 틀이었던 케인지안(Keynesian) 패러다임으로부터의 전환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는 그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던 복지 비용 부담이 단지 정부 재정을 압박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장 동력 자체를 훼손한다는 시장 근본주의자들의 진단에 근거한 것이었다. 복지 예산의 삭감을 위한 재정 감축에서 출발했던 논의가 한 발짝 더 나가서 일반적인 감세 논쟁으로 이어지고, 기업 활동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허용하는 자유방임과 규제 완화 논쟁으로 발전하였다.  노조 때문에 기업 경쟁력이 저하된다고 노동시장의 유연성 논쟁으로 번지더니, 아예 노조에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치는 정치적 이념으로까지 치달았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선봉격인 레이거니즘(Reaganism)과 대처리즘(Thatcherism)이 등장한 배경이다. 서구의 ‘신자유주의’는 먼저 사상적으로는 자유주의 세례를 받은 사회가 한쪽 극단으로 경사되는 조류를 말한다. 그 배경에는 서구 자본주의를 뒷받침해 왔으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자유 지상주의’와 ‘공동체 주의(Communitarianism)’의 양극단 사이에 존재했던 다양한 이념들 간의 조화와 긴장 관계가 깨진 것이다. 

 

 하지만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의 자본주의가 드러낸 문제들의 근원은 미국과 유럽에서 나타난 현상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한국의 경우는 선진국과 문제의 기원 자체가 다르며, 한국 경제가 시장 근본주의로 경사된 적도 없다. 외환 위기 이후 개혁의 일환으로 시장 기능을 ‘과거에 비해’ 상당한 폭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이는 상대적인 비교이지, 이를 서구와 같이 시장 근본주의 정책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침소봉대 격이다. 일부 좌파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 구조를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이 단어는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의 기원을 일컫는 ‘주홍 글씨’가 되어버렸다.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는 일종의 ‘모순’이라는 말과 등치되어 사용되면서 용어의 편리함은 있지만 진단에서 틀렸고, 틀린 진단에 근거한 대안에서도 심각한 오류를 불러올 수 있다. 더욱이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이끌어 온 시장 개혁을 수포로 돌릴 위험도 가지고 있다.

 

 첫째, 한국은 서구와 같이 케인지안 정책을 추진한 적도 없고 복지의 부작용은커녕 복지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한국에는 고복지 비용을 부담하기 위한 고세율 정책도 없었고, 더구나 과도한 재정 적자와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inflation)이 성장을 저해하고 실업을 양산하는 경험 따위는 들어본 적도 없다. 물론 표면적으로 보면 정부의 시장 개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기능과 개입이라고 해서 모두 동일한 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다. 정부 규제의 입안부터 추진까지 최소한 전제되어야 할 엄정성과 공정성은 찾아보기 어렵고 관료의 임의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규제였다.

 

 둘째, 일부 좌파 세력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는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근원에 대한 진단이 오락가락한다는 점이다. 과거 계획경제 패러다임에서는 한국 경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관치 경제, 불공정, 불균형, 불평등을 초래하는 갈등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즉 문제의 원인을 박정희식 발전 모델에서 찾았다. 하지만 외환 위기 이후 시장경제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시작하자 한국 경제를 신자유주의 모델로 규정하고 많은 문제를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물론 소득 불평등, 양극화 심화나 고용없는 성장 등의 현상들이나 문제점들이 나타난 것은 선진국들과 유사하다. 하지만 현상이 유사하다고 해서 반드시 원인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ο 좌우로 오락가락

 한국 시장경제의 모순 구조는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니며, 더욱이 외환 위기 이후 추진된 시장경제의 정착 과정에서 나타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개발 연대에 고착화된 성장 방식과 관행들이 외환 위기 이후에 교묘하게 시장 개혁 조치들과 맞물려서 더욱 증폭된 형태와 규모라 나타난 것들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일부 좌파의 ‘신자유주의’ 진단에 위험성이 있다. 만약 그들의 진단이 옳다면 현재의 모순 구조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지난 20년 가까이 추진해 온 시장 개혁을 다시 되돌려야 한다. 그렇다면 다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과 기능을 복구하는 것일 터인데, 그때, 일부 좌파 이론가들이 의미하는 것은 단지 선진국과 같은 복지 정책의 도입과 확대를 위한 정부의 역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더욱 방점이 찍힌 것은 과거 박정희 시대에 추진했던 정부의 시장 개입, 즉 산업 정책의 복원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의 경제성장도 재벌들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자본과 노동의 갈등 구조에서 찾는데 반하여, 일부 좌파는 민족적 관점에서 자본을 구분하고 국적을 문제 삼고 있다. 즉 재벌은 독점자본이기 이전에 미족자본이며, 재벌에게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먹튀’만을 일삼아 국부를 유출하는 외국 자본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ο 진보 좌파의 박정희 복원

 일부 좌파 학자들이 이런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박정희 모델이 성공했다고 보고 있으며, 그 성공의 핵심이 재벌 육성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소위 ‘선택과 집중’ 전략을 말하는 것이다. 또는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독재 체제 하에 있었으나 독재를 하고도 성공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절대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게 한 독재라면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지 않는냐는 주장이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결과론일 뿐이다. 재벌이 잘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재벌을 ‘성공하게 만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온 국민이 치러야 했던 비용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은 노동 탄압과 통제를 통한 무노조, 저임금 정책으로 달성된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배분은커녕 국민으로서 권리인 기초적인 복지마저도 부재한 상황에서 ‘산업 역군’으로서 마냥 일만 열심히 했던 것의 결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획경제 시대에 ‘산업 역군’으로 일했던 지금의 60대, 70대 이상의 세대들은 자신들이 일구어낸 지금의 경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절반이 빈곤층에 속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한국의 2011년 국민 전체 빈곤율은 15%이지만 65세 이상의 노인 빈곤율은 49%로 노인 세대의 거의 절반이 빈곤층에 해당한다. OECD 평균 노인 빈곤율은 13%이며, 한국은 OECD 평균의 거의네 배가 높고,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다.) ‘산업 역군’들은 자신들이 경제성장에 기여한 만큼의 몫을 배분받지 못한 결과로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평균의 세 배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을 뿐 아니라 노인 자살률도 가장 높다. 

 

 또한 한국의 경제적 성공이 재벌 때문이 아니라 근면하고 우수한 자질을 가진 국민 덕이라면 독재 체제와 경제성장의 상관관계는 애초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설혹 독재체제가 부족한 가용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 논리를 주장한다해도, 선진국의 성숙된 민주주의 정도는 아니더라도 민주 시민으로서 당연한 최소한의 권리까지 부정하는 극단의 독재란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정부와 재벌 간의 관계도 과거 계획경제 시대와는 전혀 다르다. 과거에는 재벌들이 특혜와 지원을 받기 위해서 정부와 정치권에 로비를 했지만, 지금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동시에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성격이 강하다. 

 

 과거와 같이 정부가 경제 전반에 걸쳐 무소불위의 통제력을 복원하고자 한다면 아마도 이를 가장 기피할 주체는 오히려 재벌들일 것이다.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시장경제 이후의 시장경제

 ο 시장경제 20년의 상반된 평가

 시장경제의 성패는 개인의 이기적 목적과 사회적 목적의 일치 여부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제도 여부에 달려 있다. 

 

 ο 한국은 ‘규제 왕국’?

 기득권 우파의 대표적인 이익 단체인 전경련은 정부 규제가 너무 많아서 한국이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경제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전경련의 이러한 주장은 선거 때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경련은 규제 완화를 위해서 개헌까지 필요하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했었고,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규제 개혁 종합 연구 보고서>를 정부에 전달했으며,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규제 개혁 보고서〉를 발행했다. 매번 정권 말기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규제 개혁을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대통령 선거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리고 정권을 잡은 대통령들은 임기 초에 ‘경제 살리기’를 위해서 재벌들에게 투자를 구걸하고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진보적인 좌파 성향이었던 노무현 대통령도 당선자 시절에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친기업적인 정부를 자처한 이명박 대통령 임기 초에 공단 진입에 방해가 되는 전봇대를 뽑아내도록 직접 지시한 일화는 규제 개혁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에서 규제가 30%가량 증가’했다는 것이다.

 

 ο 전경련의 진실 왜곡

 전경련은 WEF 보고서에서 한국의 국가 경쟁력 순위는 144개 조사 대상 국가 중에서 20위권이지만 정부 규제 부담 순위는 117위로 최하위권에 속한다는 것과, IMD 보고서에서도 60개 조사 대상 국가 중에서 한국의 국가 경쟁력 순위는 20위권이지만 기업 관련 법규 분야의 경쟁력은 40위권이라는 것을 들고 있다.

 

 전경련이 제시한 보고서는 어디에도 한국이 규제 때문에 국가 경쟁력이 낮아졌다거나 또는 경제가 어렵다는 내용을 분석한 것이 없으며, 단순하게 국가 경쟁력 순위와 규제 부담의 순위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단순하게 규제가 많다거나 규제의 부담이 큰 것이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WEF 보고서에는 기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항목 중에서 전경련이 제시한 세 가지 항목보다 순위가 낮은 것들이 여러 개 있다. 그중에서 공공 부문과 관련된 것에는 ‘정부의 정책과 규제가 투명한가’의 항목은 133위이고, ‘정부의 재정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는가’의 항목은 107위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신뢰’ 항목은 117위이며, ‘법조계가 정부·기업·시민들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인가’의 항목은 74위다.)

 

 ο WEF 세계 경쟁력 보고서

 전경련은 규제가 국가 경쟁력을 낮춘다는 근거로 WEF 보고서의 세 가지 항목의 순위를 들고 있다. 정부 규제 부담 항목이 117위, 규제 개선에서의 법체계의 효율성 항목이 97위, 그리고 분쟁 해결에서의 법체계의 효율성 항목이 84위라는 것이다.

 

 WEF 보고서에는 기업과 관련된 항목들 중에서 전경련이 제시한 세 가지 항목들보다 순위가 더 낮은 항목들이 여러 개가 있다. 기업의 이사회가 경영진을 감독하는 기능을 효과적으로 하고 있는가의 항목에서 한국은 121위이며, 소액주주들의 이익이 잘 보호되고 있는가의 항목은 109위다. 소수 기업들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가의 항목에서는 99위로, 한국은 소수 기업의 시장 지배가 매우 심한 나라다. 노사 관계가 협력적인가는 129위이며, 고용과 해고가 규제로 인해서 어려운가의 항목에서는 109위이고, 정리 해고의 비용에서는 117위다. 담보 없이 좋은 사업 제안만으로 은행의 신용 대출을 받을 수 있는가의 항목은 115위이며, 또한 여성의 노동 참여는 94위다.

 

 ο IMD 세계 경쟁력 연보

 전경련이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또 다른 근거로 IMD 세계 경쟁력 연보(World Competitiveness Yearbook)에서 기업 관련 법규 분야가 조사 대상 60개 국가 중에서 39위라는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같은 보고서가 경쟁력 요소로 분류하는 20개 분야 중에서 기업 경영 관행 분야에서 한국은 50위로 전경련이 내세운 기업 관련 법규 분야보다 더 낮은 최하위권에 속한다. IMD 보고서의 기업 경영 관행 분야에는 모두 9개 항목이 있다. 이들의 한국의 순위는 다음과 같다. 

 

 60개 조사 대상 국가 중에서 감사와 회계 관행이 잘 시행되는가의 항목에서 한국은 58위이고, 이사회가 경영진을 효과적으로 감독하는가의 항목은 57위, 그리고 사회가 경영자를 신뢰하는가의 항목은 52위다. 기업이 윤리적인 관행을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항목은 48위, 재계 지도자들의 사회적 책임이 높은가의 항목은 46위, 경영자들이 건강·안전·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은가의 항목에서는 46위, 기업계에 경영자의 기업가 정신이 널리 퍼져 있는가의 항목은 42위, 기업이 변화에 잘 적응하는가의 항목은 31위, 기업이 고객 만족을 중요시하는가의 항목은 8위다. 중간 정도인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상위권인 고객 만족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하위권 또는 최하위권에 속한다. 경영 관행 이외의 기업의 효율성 분야에는 우울한 항목들이 더 있다. 노동시간은 3위이고, 노사 관계는 56위이며, 주주 권리가 잘 보호되는가는 51위다.

 

 WEF나 IMD의 보고서가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측정 방법도 주관적이다. 하지만 전경련 스스로가 증거로 제시한 이 보고서들만 봐도 국가 경쟁력 저하가 전경련의 주장처럼 기업 관련 법규 때문만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ο 전경련 ‘규제 개혁 보고서’

 전경련은 한국의 규제가 1만 4796건에 이르고, 이 중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고쳐야 할 가장 중요한 핵심 과제로 207개를 선정해서 <규제 개혁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세금과 비용을 낮춰달라는 요구도 설득력이 약하다. 한국 기업의 이익에 대한 공식적인’ 세금 부담은 IMD 보고서에서는 60개 국가 중에서 26위로 중상위권에 속하고, WEF 보고서에서는 144개 국가 중에서 34위로 상위권에 속하고 있어서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한국 기업의 세금 부담이 높은 것은 아니다. (@IMD 2013년 세계 경쟁력 연보의 ‘이익에 대한 기업세율’ 항목에서 한국은 22.0%로 60개 조사 대상 국가 중에서 26위로 낮은 편에 속한다. WEF 2012~2013년 세계 경쟁력 보고서에서는 이익에 대한 세율, 노동자에 대한 세금과 기타 기여의 이익 대비 비율 그리고 이익 대비 기타 세금의 비율을 합한 준조세까지 포함한 이익 대비 세율이 29.7%로 141개 조사 대상 국가(3개국은 조사 자료가 없음) 중에서 34위로 낮은 편에 속한다.) 한국 기업에 부과되는 법인세율은 지난 20년 동안 계속해서 인하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기업들은 여러 가지 세금 감면 혜택 때문에 실제로 부담하는 세율은 법정 법인세율보다 훨씬 낮다. 예를 들어 2009년 삼성전자의 경우 실제 부담한 법인세율은 11.0%였고, 현대자동차 15.6%, LG전자 10.0%, 포스코(Posco) 16.2%, 현대중공업 14.2%였다. 전경련을 주도하는 대기업들이 실제로 부담한 세율은 중산층 개인들의 소득세율보다 낮았다.

 

 전경련의 규제 개혁안에는 한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인 노동문제와 노사 관계와 관련된 항목이 단 한 가지도 없다. 노사 관계는 WEF 보고서에서는 144개 국가 중에서 129위이며, IMD 보고서에서는 60개 국가 중에서 56위로 최하위권이다.

 

 전경련이 ‘한국은 규제 왕국’이라고 규정한 근거인 1만 4,796개에 이르는 규제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제시한 207개의 규제 개혁안에는 실제로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거나 정부의 행정 편의로 인해서 기업의 부담이 커지는 것들과 같은 개선이 필요한 중요한 사안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동물원 총포 소지, 골프장 세금 폐지, 경마장 설치 허용, 방향지시등 측정 방법 개선, 그리고 정기 점검 수검일 조정과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고, 노사 관계 규제는 단 한 건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나머지 1만 4,500건이 넘는 규제 내용이 과연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거나 또는 경제성장을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할 만한 것들인가를 의심케 한다.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신화

 ο 막연하게 뭔가 나쁜 것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언급조차 없이 신자유주의를 ‘모두가 당연히 알고 있는 내용’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신자유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공통된 이해가 아직 형송되어 있지 않았으니’ 일반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간명한 정의를 내리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신자유주의를 ‘뭔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어떤 경제정책이나 현상을 반대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적’이라고 단순화하고 대립화하는 무책임한 비판들을 함으로써 기여한 부분이 크다. 자본주의 비판에 관한 번역서의 경우에는 원 제목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를 번역서 제목에 넣은 경우들이 있으며, 심지어 책의 제몫만이 아니라 내용에도 ‘신자유주의’라는 단어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데도 제목에 ‘신자유주의’가 들어가는 경우들도 있다. 

 

 신자유주의가 나쁜 것인지 아니면 좋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의 가치관과 이념에 따른 주관적인 선택이다. 따라서 비판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회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필요한 다양성 차원에서라도 그러한 비판들은 존중되어야 한다. 어떤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인 증거에 근거해야 한다. 

 

 ο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신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신자유주의를 모든 사회적 관계를 시장경제적 관계로 재편하거나 시장경제적 관계에 최대한 종속시킴으로써 자본 운동의 자유를 극대화하려고 하는 정치적 이념이자 운동이라고 정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반독점 정책이나 공정거래 정책과 같이 시장경제에서 나타나는 독점으로 인한 폐해나 불공정거래를 바로잡기 위해서 국가가 개입하는 것조차도 신자유주의다. 또한 불평등한 소득분배로 인한 양극화와 같은 계급 대립적인 경향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한 복지 정책을 시행하는 것과 같은 국가 개입도 신자유주의다. 사회적 경제도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한 경제정책적 영역과 시장경제적 업적을 기초로 사회 구성원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정책적 영역이 결합된 것이기 때문에 신자유의적인 신조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재벌 개혁 정책도 자본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라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정책들이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구조적 축적 위기를 반동적인 방식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시장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시장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 본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자체를 부정하는 이념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모순을 교정하려는 어떠한 노력이나 시도도 모두 신자유주의이며, 시장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이념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며, 이를 달리 표현하면 자본주의 비판을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글에서 ‘신자유주의’라고 표현한 부분을 ‘자본주의’로 대체해도 글의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ο 신자유주의의 기원

 신자유주의는 ‘학문적 토론의 산물이 아니고, 1970년 후반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대처 정부와 레이건 정부가 시행한 일련의 정책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 이데올로기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엄격한 개념 설정이 사실상 쉽지 않다.’ 미국과 유럽에서 신자유주의적인 정책들이란 그 이전 단계의 미국과 유럽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경제정책들에 대비한 개념들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러한 정책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 신자유주의 개념을 한국 현실에 바로 적용할 경우에 혼란이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조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최소한의 개념으로 요약한다면,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고 정부의 경제 운용의 역할과 시장 개입을 축소’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요약한 개념은 많은 신자유주의 논쟁들에서 발견되는 ‘최소한의 공통점’을 정리한 것일 뿐이기 때문에 이를 일반화하거나 또는 정확한 개념으로 확정지을 수는 없다. 정부가 시장을 유지하는 역할을 인정하는 것을 신자유주의로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장의 불완전성과 결함을 고쳐가는 것도 시장 기능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도 정부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을 신자유주의로 정의하는 것까지 그 범위가 매우 넓다. 

 

 영국과 미국에서의 신자유주의 개념과 유럽 대륙 국가들의 신자유주의 개념에도 차이가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의 신자유주의란 1980년대 초부터 그 이전의 케인즈 주의 정책 패러다임으로부터의 결별을 의미한다. 즉 1929년 대공황 이후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 정책 등을 통해서 경제에 개입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제를 도입했던 케인즈 주의에 대한 반격으로서 시장 근본주의에 가까운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신자유주의라는 말보다는 보수적 자유주의(Libertarian)라는 말이 더 보편적이며 이것을 ‘적극적 자유주의(Liberal)’와 구분하고 있는데 이때의 적극적 자유주의는 많은 경우 전통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보다는 ‘새자유주의’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글에서는 신자유주의와 보수적 자유주의라는 말을 자유롭게 혼용할 것이다.”) 그러나 영미식 시장 근본주의도 경제사회적 모든 문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자유방임적 자유주의와는 다르다. 유럽에서의 신자유주의는 케인즈 주의적 정책에 대한 반격뿐만 아니라 강력한 노조와 광범위한 복지 정책에 대한 반격으로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 발흥 초기의 구자유주의와 다른 점은 그것이 서구의 강력한 노조와 복지 정책에 대한 자본의 반격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 기능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미형과 북유럽형의 자본주의는 둘 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지만 전자가 시장 효율성과 경쟁을 상대적으로 더 중시하는 입장이라면, 후자는 민주주의와 공정성, 연대 등을 더 중시하는 것’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기존 체제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신자유주의의 개념도 다를 수밖에 없다.

 

 ‘프라사드의 주장은,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말하는 정책 프로그램은 어떤 정연하게 체계화된 경제 이론이나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각 나라가 처한 정치경제적 현실에서 경쟁하는 정치 세력들이 선거 승리를 위해 유권자들에게 제시했던 임의적으로 만들어진 일련의 정책 대안들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관한 많은 연구들은 신자유주의를 경제 이념으로 논의하기보다는 1980년대 초부터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럽에서 나타난 규제 완화, 개방화, 민영화, 자유화, 세계화, 작은 정부 등으로 상징되는 일련의 시장 기능의 확대와 정부 역할의 축소를 특징으로 하고 있는 경제정책들로 정의한다. 1979년에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가 영국 수상이 되고, 1980년에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통한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의 역할을 확대하는 일련의 정책들을 시행하면서 신자유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여기에 추가로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의장인 폴 볼커(Paul Volcker)가 통화주의(Monetarism)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관리하기 시작한 시점도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시기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대공황 이후에 50여 년 동안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케인즈 주의적 경제정책이 한계에 이른 경제 상황과, 구소련과 동구권의 공산주의 붕괴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보수적 자유주의 또는 구자유주의의 20세기 형태라고 할 수도 있다.

 

 ο 신자유주의 남용과 범람

 미국과 유럽 또는 남미에서의 신자유주의 논쟁은 좌파와 우파의 정치적 대립 가운데 경제체제의 선택과 그에 따른 정책의 변화를 논하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한국 지식인들이 벌이고 있는 신자유주의 논쟁들은 미국과 유럽에서의 논쟁의 연장선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수입된 것이기에 그러한 경향은 당연한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미국과 유럽에서 전개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논쟁을 여과 없이 적용한 것들도 적지 않다. 

 

 한국이 계획경제체제를 포기하고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기 시작한 시기를 1990년대 중반이라고 본다면, 이는 미국과 유럽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이 시행되기 시작한 시기보다 15년이나 지난 후다. 또한 이러한 한국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 배경은 미국과 유럽에서처럼 케인즈 주의적 시장경제에서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로 전환한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과 유럽에서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규제를 통한 시장 개입, 강력한 노조 그리고 광범위한 복지 정책 등으로 대표되는 케인즈 주의 정책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신자유주의가 출현한 1980년대 초 이전에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30여년의 기간은 의료·교육·사회 서비스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하고 그 질을 개선하는 복지국가의 역할이 확대된 복지국가의 황금시대였으며, 조직된 노동의 조직적 힘과 영향력이 증대한 기간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이 출현한 배경인 광범위한 복지 제도나 강력한 노조 같은 현상들을 한국의 개발 경제 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미국과 유럽에서 신자유주의가 꽃을 피우던 199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에서는 목욕탕 요금과 자장면 값까지도 정부가 규제하는 계획경제를 하고 있었다. 계획경제 하에서의 정부의 시장 개입은 주로 재정 정책을 통한 케인즈 주의적 시장 개입 정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는 케인즈 주의적 시장경제체제 단계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논쟁들은 이러한 차이를 무시한 채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시장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정책들을 신자유주의로 규정하고 미국과 유럽에서의 논쟁을 바로 연장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1995년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한 시장경제로의 전환 시도 이후에 곧바로 1997년 외환 위기를 맞게 되어 민영화·자유화·개방화 등의 정책들이 가속화되었고, 이러한 일련의 정책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된 신자유주의적인 정책들과 맞물리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미국과 유럽에서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과 유사한 이러한 정책들 때문에 한국이 계획경제에서 케인즈 주의적 시장경제나 복지국가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신자유주의로 이전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은 케인즈 주의적 복지국가 단계가 없었기 때문에 훨씬 더 비인간적이고 잔인하고 사람이 살기 어려운 시장만능주의’또는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체제라고 규정한다.

 

 한국이 케인즈 주의적 복지국가 단계를 뛰어넘었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박정희 시대의 계획경제체제를 미국과 유럽에서의 케인즈 주의적 시장경제 이전의 구자유주의 단계와 같은 동일한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시장경제 전환 시도 중에서 복지 확충과 같은 케인즈 주의적인 제도 도입조차도 시장만능주의로 규정하는 형국이다. 한국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민영화·자유화·개방화 정책들이 시행되었고, 이러한 정책들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흐름의 한국적 반영’인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의 실제 내용들은 과도한 계획경제나 폐쇄경제의 일부분을 교정하고자 하는 시도이지 영미식 시장 근본주의 정책들과는 차이가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는 기본적인 생활 물가까지도 정부가 직접 통제 관리했다. 이런 배경에서 가격 자율화 정책이란 최소한의 범위에서 시장 기능의 복원이며 경제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지 신자유주의적인 처방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영미식 개방화 정책은 상대국에 대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조치로써 상품시장보다는 주로 자본시장에 집중된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여느 나라와 유사한 수준에서 수출입 자율성의 폭을 확대한 수세적인 개방화 정책의 성격이 강하다. 

 

 한편에서는 영미식 신자유주의 정책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은 불가피한 것도 아니었고 한국이 선택한 것이었으며, 방어적인 것이 아닌 적극적인 개방화 정책이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민영화 정책도 엇갈린 형태들이 보인다. 예를 들어 담배인삼공사를 KT&G(케이티앤지)fh 민영화한 것은 적절한 조치였다고 보인다. 담배와 인삼 사업은 공공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수입 담배와 국산 담배가 경쟁하는 시장 구조에서 국가가 독점적으로 직접 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재정수입의 확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담배인삼공사의 민영화는 신자유주의적인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철도·지하철·공항·의료 산업 등과 같이 공공성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복수의 경쟁적 사업 구조를 만들기도 어렵고, 효율성이 궁긍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부분을 민영화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인 것이다. 또한 경쟁력을 상실하거나 경영 부실에 이른 기업들이 구조 조정의 일환으로 어쩔 수 없이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은 시장의 경쟁 구조에서는 불가피한 조치로 볼 수 있지만, 경영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들을 불안정한 고용 상태인 비정규직으로 허용하는 것이나 정당한 노조 활동을 억압하기 위한 구조 조정은 신자유주의적인 것이다.

 

 한국에서 복지 제도의 최초 시도라고 볼 수 있는 실업 급여를 제도화한 고용보험법이 실시된 것은, 미국과 유럽에서 과잉 복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된 지 15년이 지난 후인 1995년이다. 또한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빈곤층을 지원하기 위한 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된 것은 이보다 훨씬 뒤인 2000년이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에서 케인즈 주의의 흔적을 지우고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이 정착한 시기에 오히려 복지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민연금이나 의료보험과 같은 기초적인 복지 정책들은 오히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에 확대 실시되었으며, 한국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1980년대 초 신자유주의를 태동하게 한 원인의 하나로 지목되는 강력한 노조가 일부 대기업에 국한된 예외적인 것이며 과다한 복지 부담은 아직까지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같이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에 실시된 민영화·자유화·개방화 정책들을 미국과 유럽에서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과 같은 것으로 비판하는 것은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며, 이는 한국의 ‘일부 진보파들이 구미의 진보파를 잘못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민영화·자유화·개방화 정책들이 적절한 전략과 절차를 통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추진되었는지는 검토 대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정책들 중에는 시장경제체제를 자리 잡기 위해서 시행된 정책들이 대부분이며, ‘한국의 경우, 노동 친화적인 케인즈 주의적 정책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계획경제체제에서) 시장과 경쟁, 개방의 폐해를 국가가 규제를 통해 억제했다기보다는 국가가 대자본을 위해서 시장·경쟁·개방을 억압했다고 하는 점에서 경제 위기 이후의 시장 친화적인 정책들을 모두 신자유주의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는 박정희 모델(계획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배 블록 내부의 자구 노력’, 즉 다시 말하면 이미 한계를 노정한 박정희식 계획경제로부터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기초적인 제도들을 구축하려는 정책들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실시된 이러한 정책들이 신자유주의적인 성격이 있다고 해도 ‘노사간의 사회적 타협을 파기함으로써 노동계급에 대한 (독점)자본의 지배를 재확립하고자 하는 영미식 신자유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노정하다 (露呈--) :: [동사] 겉으로 다 드러내어 보이다.

 

 ο 파란색 칠하기와 빨간색 칠하기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단계에서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 기능을 확대하는 정책을 무조건 싸잡아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경향’은 신자유주의 비판의 남용이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의 남용은 ‘부도난 기업에서 인력을 감축하는 구조 조정과 재벌 총수들의 불법행위를 견제하는 소액주주들의 권리 행사도 신자유주의로 비판’할 정도다. 하청기업을 착취하는 재벌 기업의 불공정한 거래 등 여러 문제들은 반시장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 자유화를 시행하면서 불공정거래를 금지하는 정책과 재벌들의 은행 소유를 금지하는 정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지 영미식 신자유주의 정책이 아니다. 기업 경영을 투명성과 책임성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 지배 구조의 개선과 소액주주의 권리 강화는 잘못된 기업 경영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지 신자유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시장경제를 인정하거나 또는 부정하지 않으면서 시장경제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정책들까지도 시장만능주의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시장 체제를 옹호하거나 또는 경쟁을 중요시하는 정책을 동의하지 않거나 반대한다면 굳이 신자유주의라는 규정을 동원할 필요도 없고 그저 자본주의나 시장경제 자체를 비판하면 된다. 그것은 각자의 이념의 자유와 신념의 영역이며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자신이 동의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대상을 정당한 근거 없이 신자유주의로 규정짓는 것은 신자유주의를 ‘뭔가 나쁜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대중들의 인식을 악용하는 대중 영합적인 ‘파란색 칠하기’다.

 

 경제 권력은 재벌로 넘어갔다 

 ο 아전인수 격 시장경제 해석

 기업은 시장 참여자의 하나일 뿐, 기업이 시장의 전부는 아니다. 따라서 시장경제를 주창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 정책이 다른 이해당사자들보다는 기업의 이익을 더 중요시하겠다는 것이라면, 이는 반드시 이해당사자들 간에 이해상충을 초래하게 된다. 이런 식의 아전인수격 ‘친시장’ 정책은 결국 반(反)노동자, 반소비자, 반투자자가 될 것이기에 궁극적으로 반시장적인 것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발언은, 그 내용을 살펴보면 재벌들이 개혁에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것을 한탄한 것이기 때문에 ‘권력은 재벌로 넘어갔다’고 해야할 말을 잘못한 것이다.

 

 ο 반시장적 재벌과 대기업

 미국과 같이 시장경제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에서도 100대 부자의 70%가 당대의 창업자인데 반하여, 한국에서는 거꾸로 75%가 물려받은 부자다. 또한 국가 경쟁력을 발표하는 WEF의 2013년 세계 경쟁력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19위이지만, ‘소수의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가’라는 조사 항목에서는 99위로 소수 재벌 기업의 시장 지배가 매우 심한 나라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시작한 나라로 지목받는 영국과 미국은 각각 6위와 9위이며, 북유럽의 독일과 스웨덴도 각각 2위와 21위로 소수의 재벌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IMD 보고서에 의하면 조사 대상 59개 국가 중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효율성 차이에서 한국은 꼴찌인 59위를 기록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이 가장 심한 나라다.

 

 ο 반시장적인 정치권과 관료들

 대표적인 공기업이었던 포스코는 2000년에, 그리고 케이티(KT)는 2002년에 민영화되었고, 이후에 정부는 단 한 주의 주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업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와 정치권의 부당한 압력 행사로 인해서 회장을 포함한 임원들이 교체되는 수난을 겪고 있다.

 

 2002년 이후 39개가 넘는 저축은행들이 부실로 영업이 정지되었지만 금융위(금융위원회)와 금감원(금융감독원)은 이들이 망할 때까지 제대로 된 감독조차 하지 않았다. (@신용금고가 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변경한 2002년 이후 지난 2011년까지 39개의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고, 신용금고 또는 종합금융이라는 이름이었던 1999년부터 2002년 사이에는 14개 회사가 영업정치처분을 받았다.) 은행과 금융기관들 임원의 17%가 감독 부처의 퇴직 관료일 정도로 금융회사들은 감독 당국 관료들의 퇴직 후 배출구로 전락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재경부, 국세청 퇴직 관료가 금융회사의 이사 임원을 차지하는 비중은 금융지주회사 15%, 은행 15.7%, 증권회사 20.6%, 보험회사 14.9%이며전체 평균은 17.0%이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이라고 비판을 받은 정책들은 ‘경제 운용의 중심축을 (미국과 유럽에서처럼) 국가에서 시장으로 이동시킨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독점자본으로 이동시킨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한 결과로 경제 권력이 정부에서 시장으로 이동된 것이 아니라 재벌로 이동되었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이후의 한국 경제는 ‘신자유주의 문제가 아니고 시장의 규칙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천민자본주의(Pariah Capitalism)의 문제’가 더 심각하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한국의 시장경제는 시장만능주의 또는 시장과 경쟁 중심의 신자유주의 과잉이 아니라 오히려 공정한 경쟁이 펼쳐지는 시장경제의 기본적인 질서조차도 바로 세워지지 않은 상황이다. 

 

 

 

제2부 한국 자본주의 따져 묻기 

3. 주주 자본은 자본주의 모순의 근원인가? 

 왜 주주 자본주의를 논의하는가?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는 회사가 주주의 이익을 위한 주주 중심 경영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상법은 주식회사(株式會社), 합명회사(合名會社), 합자회사(合資會社), 유한회사(有限會社) 그리고 유한책임회사(有限責任會社)의 다섯 가지 형태의 회사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은 전체 회사 중에서 주식회사가 95%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 말 기준 법인세를 신고한 44만 23개의 회사 중에서 기업형태별 비중은 주식회사 95.0%, 유한회사 4.0%, 합자회사 0.9%, 합명회사 0.2%이다. 주식회사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유한회사는 주식회사보다 회사 조직이 단순하고 설립 절차가 용이하지만 소수의 사원들로 구성되는 폐쇄적인 기업형태이기 때문에 큰 자본을 모집하는 주식회사와는 달리 소규모 회사에 적합하다. 2008년 상법이 개정되었을 때 유한회사에 대한 최소 자본금 1,000만 원 요건과 최고 한도 사원 수 50인의 요건이 폐지되었다. 상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유한회사를 설립하는 실질적인 주된 이유는 자본금과 발기인에 관한 요건이 주식회사보다 완화된 형태의 회사였기 때문이다.)

 

 합명회사 :: 사원은 회사의 채무를 회사채권자에 대하여 직접 연대하여 변제할 무한책임을 진다(상법 212조). 따라서 정관에 다른 규정이 없는 한, 사원은 회사의 업무를 집행하고 회사를 대표하는 권한을 가진다(200·207조).
합명회사는 각 사원이 회사의 채권자에 대하여 직접 책임을 지는 데에서 대외적으로 인적 신용이 중시(重視)되고, 사원의 책임강도는 내부적으로 사원 상호간의 신뢰관계를 필요로 한다. 동시에 사원의 기업경영에 대한 참가를 강화함으로써 회사는 마치 개인기업의 공동경영과 같은 인상을 주게 되며, 사단법인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조합적 성격을 띤다.
합명회사는 설립절차가 간단하며, 정관을 작성하여 설립등기를 하면 회사가 성립한다. 출자에 있어서는 재산출자에 한하지 아니하며, 노무출자·신용출자도 인정된다. 또 입사 및 사원의 지위의 양도(지분의 양도)는 다른 사원의 승낙을 필요로 하며(197조), 반면에 퇴사의 자유가 인정되고 제명(除名) 제도가 있다. 원칙으로 각 사원이 업무집행권 및 대표권한을 가지며, 각 사원이 경업피지의무(競業避止義務)를 진다(198조). 청산에 있어서는 법정청산 외에 임의청산도 할 수 있다.
또 합명회사는 자본적 결합의 색채보다도 가족적·인적(人的) 결합의 색채가 짙은 전형적인 인적회사이며 인적 신뢰관계가 있는 소수의 인원으로써 구성되는 공동기업에 적당한 회사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합명회사 [offene Handelsgesellschaft, 合名會社] (두산백과)

 

 합자회사 :: 사업의 경영은 무한책임사원이 하고, 유한책임사원은 자본을 제공하여 사업에서 생기는 이익의 분배에 참여한다.
무한책임사원이 있는 점은 합명회사와 같으나, 회사채권자에 대하여 출자액의 한도 내에서만 연대하여 책임을 지는 유한책임사원이 있는 점이 합명회사와 다르다. 유한책임사원은 유한의 책임을 지는 데 불과한 반면, 출자는 재산출자에만 한하고, 회사의 업무집행 ·대표로는 참여하지 않는다.
합자회사도 사단법인이지만 사원간의 개인적 신뢰를 기초로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조합적 성격을 띠며 인적(人的) 회사에 속한다. 합자회사는 유한책임사원의 책임의 유한성에서 생기는 결과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합명회사와 마찬가지로 취급할 수 있다. 따라서 상법도 별단의 규정이 있는 외에는 합명회사의 규정을 준용하여, 합명회사의 한 변형으로 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합자회사 [合資會社] (두산백과)

 

 유한회사 :: 상법에 규정된 회사의 하나로, 주식회사·합명회사·합자회사와 함께 물적 회사(物的會社)와 인적 회사(人的會社)의 요소를 가미한 중간형태의 회사이다. 사원 전원의 책임이 간접이며 유한인 점, 분화된 기관을 가지는 점 등 많은 점에서 주식회사와 유사하나, 복잡하고 엄격한 규정이 완화되고 지분의 양도가 자유롭지 못한 점이 주식회사와 다르다.

그러므로 유한회사는 합명회사와 닮은 폐쇄적(閉鎖的)·비공개적인 특색을 가진다. 독일의 유한책임회사법을 본받아 1938년 일본에서 유한회사법이 제정됨으로써 일본·한국 등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한국에서는 이를 상법전 제5장 유한회사편에서 규정하고 있다(상법 543∼613조).

유한회사 제도에는 독일의 제도 외에 프랑스의 유한책임회사, 영국의 사회사(私會社), 미국의 폐쇄적 회사 등이 있다. 한국 상법상 유한회사는 다수의 균등액 출자(1좌 금액100원 이상)로 구성되는 사원 전원이 자본에 대한 출자의무를 진다(546·553조).

설립절차는 간단하고 발기설립에 해당하는 방법만이 인정되며, 모집설립에 해당하는 것이 없다. 또한 검사제도도 없으나 대신 사원의 전보책임(塡補責任)이 인정되어 있다(551조). 1인 또는 다수의 이사를 두어야 하며(561조), 이사회나 대표이사라는 기관의 분화도 없으며, 또한 감사도 임의기관이다(568조).

사원총회의 소집절차도 간소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서면에 의한 결의방법이 인정되어 있다(577조). 사원에게 법정의 출자인수권을 인정하고(588조), 사원은 그 지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양도하거나 상속할 수 있다. 다만, 정관으로 지분의 양도를 제한할 수 있다.

주식회사와 유사점이 많아 주식회사에 관한 규정이 준용된다. 조직변경은 주식회사와 유한회사 상호간에만 인정된다.

 

 유한책임회사 :: 유한책임회사(Limited Liability Company)의 약자로 회사의 주주들이 채권자에 대하여 자기의 투자액의 한도 내에서 법적인 책임을 부담하는 회사를 말한다. 파트너십에 주식회사의 장점을 보완해서 만들어진 회사형태다.
[네이버 지식백과] 유한 책임 회사 [limited company, Limited Liability Company, 有限責任會社] (용어해설)

 

 편견과 오해와 일면적 사실에 근거한 비판은 결코 건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논쟁의 일방성은 독단을 낳게 되고, 독단은 엉뚱한 대안을 초래한다.

 

 주주 자본과 부채 자본의 선택

 ο 내 돈과 남의 돈

 기업의 경우에 내 돈은 주식을 발행해서 주주 자본으로 조달한 돈이고, 이를 자기자본(Equity Capital)이라고 부른다. 기업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또는 채권을 발행해서 조달하는 남의 돈을 부채 자본, 또는 타인자본(borrowed capital)이라고도 부른다.

 

 주식을 발행해서 조달한 주주 자본이 충분하다면 부채 자본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모든 기업들이 주식 발행으로 충분한 주주 자본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채권을 발행해서 부채 자본을 사용하며, 한국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주주 자본보다 부채 자본을 더 많이 사용한다. (@2012년 한국 전산업 평균 자기자본 대 부채 자본의 비율은 147.6%이다. 이는 주주 자본 100원에 부채 자본 147.6원을 사용한다는 의미다. 대기업의 평균은 140.1%이며, 중소기업의 평균은 174.3%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이 자기자본보다 부채 자본을 더 많이 사용한다.)

 

 ο 개인 입장에서의 자본 선택

 * 투자 안전성

 (@회사가 주식시장에서 주주 자본을 확보하는 것은 최초 주식을 발행한 때다. 따라서 기업이 주식을 발행할 때 개인이 주식에 투자했다면 주식 매입 자금은 기업에 직접 공급되는 자본이며, 주식시장에서 거래를 통해서 주식을 매입한 경우에 주식 매입 자금은 기업에 직접 공급되는 자본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 기업에 주주 자본을 공급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주식시장에서의 주식 매입은 기업이 최초 주식을 발행할 때 공급한 주주 자본을 이어받는 간접적인 자금 공급이다. 만약에 어떤 회사의 주식을 주식시장에서 누구도 매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회사가 새로운 주식을 발행해서 추가적인 주주 자본을 확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기존의 확보한 주주 자본도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회사가 주주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식시장에서의 원활한 주식의 거래가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며, 최초 주식 발행의 경우가 아니라 할지라도 주식시장에서의 주식거래는 과거에 회사에 공급된 주주 자본을 이어받을 뿐 아니라 회사가 미래에 확보할 수 있는 주주 자본의 기본이 된다. 개인이 은행에 예금하거나 주식에 투자하지 않고 금이나 부동산과 같은 대체적인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논의를 주주 자본과 부채 자본에 대한 투자로 국한하기로 한다.)

 

 (@1997년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한국의 대형 은행들이 모두 파산해서 은행이 예금을 돌려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기업의 부도 사태로 은행들은 기업들에 대출한 자금을 회수할 수 없어서 엄청난 부실 자산을 떠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은행이 보유한 자산이 예금자들의 원금보다 적었기 때문에 은행은 예금의 원금도 돌려줄 능력이 되지 못했다. 당시에 예금보험제도가 1995년 도입되었고 예금보험공사가 1996년 설립되었지만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충분한 보험금을 축적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대형 은행들이 파산을 했기 때문에 설령 예금보험금이 축적되었다고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까지만 해도 일반 사람들은 은행예금은 어떤 경우에서도 당연히 돌려받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가 대신해서 예금을 돌려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채나 기업 어음의 경우에는 원금 상황에 대한 아무런 보장이 없고, 기업이 파산을 해서 지급할 수 없게 되면 회사의 잔여재산을 처분해서 원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돌려받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권은 회사가 파산하지 않으면 이자와 원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주식보다는 위험이 적다. 은행 예금이 완전히 보장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회사채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더 안전하며, 원금 회수가 불확실한 주식 투자보다는 훨씬 더 안전하다. 

 

 한국은 상장회사들이 주식에 대한배당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적게 하기 때문에 배당으로 얻는 수익은 실질적으로 별 의미가 없고 주식 투자의 수익 대부분 주가 차익에 달려 있다. 

 

 * 주식과 채권의 투자 수익

 주식의 고위험-고수익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장기 투자하는 것이고, 둘째는 특정 주식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주식에 분산투자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여러 주식에 분산해서 투자한다면 주식 투자는 은행예금이나 채권 투자보다 ‘평균적’으로 높은 수익을 얻는다. (@주식이 채권보다 위험이 크기 때문에 더 높은 평균적 수익률을 갖는다. 주식 수익률과 채권수익률의 차이를 주식의 위험 보상 수익률(risk premium)이라고 한다. 한국의 1975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간 동안 연평균 주가 상승률은 13.5%이며, 같은 기간의 회사채 연평균 수익률은 12.5%, 정기예금 연평균 이자율은 9.3%였다. 주가 상승률은 종합주가지수, 회사채 수익률은 AA-등급 3년 만기 회사채, 그리고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이자율을 기준했다.)

 

 2002년 초 100만원을 정기예금과 같은 은행의 저축성 예금에 돈을 맡겼다면 2011년 말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이자율 4.15%로 150만 원 정도로 늘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기간 동안 주식에 투자했다면 종합주가지수를 기준한 연평균 수익률 7.12%로 199만 원 정도로 늘어나게 되었을 것이다. 주식 투자가 은행예금보다 연평균 3% 정도 높았고, 100만 원을 투자한 경우 10년이 지난 후 은행예금보다 50만 원 정도를 더 벌었다. 그렇다고 해서 항시 주식 투자의 수익률이 더 높은 것은 아니다. 한국이 외환 위기를 겪고 회복하던 기간인 1997년 초부터 2001년 말까지 5년 동안 은행의 저축성 예금의 연평균 이자율은 8.8%였는데, 주식의 평균 수익률은 고작 1.3%에 불과했다. (@IMF 경제 위기가 발생한 1997년 주가수익률은 무려 -42.2%로 주가가 거의 반 토막이 났다. 그러나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었던 1998년 주가는 49.4%가 올랐고, 외환 위기를 벗어나기 시작한 1999년에는 주가가 82.7%가 폭등하는 큰 변동성을 겪었다. 반면 은행예금 금리는 IMF 경제 위기가 발생한 이후인 1998년 13%를 넘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는 안정적으로 4~5% 수준으로 안정적이었다가 2008년 금융 위기때 5.7%까지 올랐으나 이후 3%대로 하락했다.) 그러나 1997년 초부터 2011년 말까지 15년 동안의 연평균 수익률을 비교하면 주식 투자는 7.1%, 은행예금은 5.7%로 외환 위기 당시의 주가 폭락에도 불구하고 주식 투자가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미국 시장의 경우에도 장기 투자에서는 주식 투자가 채권 투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1962년부터 2011년까지의 50년 동안 연평균 수익률이 주식은9.2%이고, 미국 정부가 발행한 10년 만기 연방 채권은 6.85%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 위기를 포함한 2002년부터 2011년까지의 10년 동안 연평균 수익률은 주식은 2.88%에 불과하고 연방 채권은 6.49%를 기록해서 오히려 채권이 주식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ο 기업 입장에서의 자본 선택

 * 영원한 주주 자본, 한시적인 부채 자본

 주주 자본은 회사의 내 돈인 자기자본이기 때문에 주주에게 원금을 돌려주지 않는다. 회사가 파산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회사의 잔여재산으로 부채를 먼저 상환하고 남은 돈이 없다면 주주 자본은 자동으로 소멸된다. 주주 자본은 한 번 주식을 발행해서 조달하면 어떤 경우에도 돌려줄 의무가 없기 때문에 회사가 존속하는 한 영원히 회사가 내 돈으로 소유하는 자본이다.

 

 부채 자본은 돈을 빌려준 채권자에게 반드시 원금을 돌려주어야 하는 한시적인 자본이다. 부채 자본에 대한 원금의 상환 의무는 회사가 이익을 내지 못했다고 해서 면제되지 않는다. 원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회사는 부도가 나고, 부도 상태가 지속되면 회사는 파산하게 된다. 회사가 망해도 채권자들은 회사의 남은 자산을 매각해서 자신들의 원금을 회수해간다. 이와 같은 두 자본의 속성의 차이를 고려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주주 자본이 부채 자본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본이다.

 

 * 배당은 안 줘도 그만, 이자는 안 주면 파산

 주식회사는 자본을 사용한 대가로 주주 자본에는 배당을, 그리고 부채 자본에는 이자를 지급한다. 배당과 이자는 모두 자본비용이지만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미리 정해진 금액을 약속한 이자는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의무이지만, 배당은 미리 약속된 금액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지급해야 할 의무도 아니다. 배당은 회사가 이익을 내면 지급하고 이익을 내지 못하면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배당을 하는 경우에도 얼마를 지급할 것인가는 경영진이 결정하기 때문에 항시 불확실하다. (@배당금의 결정은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회사는 배당금을 사전에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결정해서 주주총회 개최 2주전 공시하기 때문에 주주총회에서의 주주의 승인은 형식적인 절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경영진과 이사회가 결정한 배당금을 승인하지 않고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배당금 승인안건이 주주총회에서 부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1986년 나스닥(NASDAQ, 미국 장외 증권시장)에 상장한 이후 지속적으로 이익을 냈지만 16년 동안 단 한 번도 배당을 지급하지 않고 이익금을 배당하기보다는 신규 투자 자금으로 활용하다가 2003년 처음으로 배당을 지급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은 이익을 배당으로 지급하지 않고 대부분 회사가 보유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03년부터, 그리고 삼성전자는 2004년부터 경영 성과와 관계없이 주당 배당금이 5,000원으로 항시 같았지만, 주주들이 불평한다고 해서 회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적이 없다. 삼성전자가 2013년에 배당으로 지급한 금액은 순이익의 12%에 불과하고, 시가에 대한 배당수익률은 1%로 매우 낮았다. 현대자동차도 순이익 중에서 배당으로 지급한 금액의 비중이 10.3%이고, 배당수익률은 0.9%에 불과했다.

 

 부채 자본에 지급하는 이자는 회사가 이익을 냈던 손해를 보았던 관계없이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 이자 지급은 주주 자본에 대한 배당보다 항시 우선권을 갖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회사가 이자를 지급하지 않으면 원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회사는 부도가 나거나 궁극적으로 파산을 해서 회사의 생명이 중단된다. 부채에 대한 이자는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의무이기 때문에 고정비용으로 회사에 큰 부담이 된다. 회사 입장에서 부채 자본에 지급하는 이자가 배당보다 한 가지 유리한 점이 있다. 개인의 경우에는 은행 대출금에 대한 이자 지급을 소득세 측면에서 세금 감면의 혜택이 없지만, 회사의 경우에는 세법상 배당은 비용으로 인정되지 않는 반면 이자는 비용으로 인정되어 세금을 덜 내는 절세 효과가 있다. 이같이 기업의 자본비용 부담 측면에서는 배당에 대한 확정된 금액도 없고, 지급하지 않아도 파산과는 관련이 없는 주주 자본이 부채 자본보다 더 유리하다. 

 

 주주 자본의 대안으로 부채 자본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주주 자본에 집중된 비판은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주주 자본주의 비판과 왜곡

 주주 자본과 부채 자본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개인에게는 선택의 문제이고, 기업에게는 주주 자본이 더 좋은 자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주 자본에 대해서는 수많은 비판이 제기되는 반면, 부채 자본에 대한 비판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기업의 자본은 주주 자본과 부채 자본 두 가지 이외의 다른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주주 자본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이를 부정하면 그 대안은 부채 자본뿐이다. 만약에 주주 자본에 대한 비판이 부채 자본이 더 좋다는 주장이라면, 이는 두 가 지자본의 속성에 대한 이해 부족일 뿐이기 때문에 귀 기울여 들을 만한 것이 못된다. 만약 주주 자본에 대한 비판이 주주 자본의 대안으로부채 자본을 선택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을 에둘러서 주주 자본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주주 자본이 중심이 되는 구조를 비판하는 것이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체제에 대한 비판이다. 자본주의 또는 자본을 비판하거나 또는 더 나아가서 부정하는 수단으로 주주 자본을 비판하는 것이라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Socialism) 또는 제3의 경제 체제에 대한 논쟁의 범주다. 

 

 ο 주주 자본에 대한 의혹들

 주주 자본에 대한 비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주주들의 행태에서 발견되는 현상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이다. 주식 투자자들이 투기적이며, 빈번한 거래를 하는 단기 투자하는 것, 그리고 주주들이 단기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회사가 장기적인 성장보다는 단기 성과주의(Short-Termism)를 추구한다는 것이 가장 주된 내용이다. 두 번째는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는 주주 중심 경영을 하는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세 번째는 주주가 회사의 주인인 주식회사라는 제도에 대한 비판이다.

 

 ο 투기적이고 단기적인 주식 투자

 투기꾼들은 주식시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외환시장, 채권시장, 선물시장 그리고 부동산 시장 등과 같이 거래가 쉽게 이뤄지고 가격 변동이 심한 시장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주식거래의 투기성 때문에 주주 자본주의를 부정한다면 부동산 투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투기적 행태를 비판하는 것과 투기의 부작용이 있는 시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단기 투기꾼들의 행태에 근거해서 ‘주주’, ‘주주 자본’ 나아가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연장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한국 주식 투자자들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이 서너 달에 불과해서 단기 투자가 시장의 안정성을 해치는 문제가 심각하다. (@주식시장의 거래량을 기준한 주식 회전율이 2013년 318.5%였다. 이는 주식 1주가 1년에 3.2번 거래된 것을 나타내는데 12개월을 3.2로 나눈 3.8개월이 평균 보유 기간에 해당한다. 2012년에는 주식 회전율이 468.8%로 평균 보유 기간은 2.6개월에 해당하고, 2011년에는 주식 회전율이 390.3%로 평균 보유 기간은 약 3.1개월이다.) 그러나 주주들의 단기 투자가 회사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갑이 을에게 주식을 팔았다면 두 사람 사이에 주식과 현금을 주고받는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회사가 갑에게 투자 자금을 돌려주고, 다시 을한테서 투자 자금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의 자본에는 변화가 없다. 두 사람 사이에 이뤄진 거래에 영향을 받아서 주가가 변했다면 시가로 평가한 회사의 자본금이 변한다. 그러나 회사가 신주를 발행할 계획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주가의 변화가 당장 회사의 자본이나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

 

 갑과 을의 거래가 가져온 변화는 주주의 이름이 갑에서 을로 바뀐 것뿐이다. 그러나 주주가 갑에서 을로 바뀌었다고 해서 회사의 자본금이 변한 것도 아니며, 배당을 더 주어야 하거나 또는 덜 줄 이유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서너 달의 단기 투자하는 주주들의 거래로 인해서 주주의 이름이 바뀌지만, 그 자체만으로 주주 자본이 바뀌는 것은 아니며, 그런 주주들 때문에 경영진이 단기 성과주의 경영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주장이다.

 

 ο 단기 성과주의의 전도된 인과 관계

 경영진들이 단기 성과 중심의 경영을 하는 이유가, 펀드매니저나 주식 분석가들이 단기적인 주가 부양만을 노리고 경영진에게 단기 성과를 내도록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경영진 자신의 인센티브가 단기적인 주가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투기적이고 단기적인 거래를 하는 주주들의 행태 때문에 경영진이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경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단기 주식 투자와 단기 성과주의 경영을 잘못 이해하고 양자를 인과관계로 직결한 것이다. 단기 성과주의에서 의미하는 ‘단기’와 단기 주식 투자에서 의미하는 ‘단기’는 전혀 다르다. 단기 성과주의를 분석하는 연구에서 ‘단기’를 5년으로 상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증권거래소, 선물거래소, 코스닥위원회, 코스닥증권시장 등 4개 기관이 통합되어 2005년 1월 27일 설립된 한국거래소(KRX)가 발표하는 발행주식 수를 기준한 2011년 주식 회전율은 390.34%이고 이는 평균 보유 기간 3.1개월에 해당한다. 시장별로는 거래량 기준 회전율이 코스피는 254.09%이고, 코스닥은 598.93%이다. 이는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이 각각 4.7개월과 2.0개월에 해당하는데, 코스닥이 코스피보다 단기 투자가 더 심한 것이다.)

 

 (@세계증권거래소협회(WFE)의 2011년 통계에 따르면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주식 회전율은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138.5%(평균 주식 보유 기간 8.7개월), 독일증권거래소 132.8%(9.0개월), 일본의 동경증권거래소 123.7%(9.7개월), 영국의 런던증권거래소 69.2%(17.3개월)이다.) 

 

 회사가 장기적인 투자로 수익 가치를 낼 수 있는데도 주식시장이 이를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기 때문에 경영진이 장기적인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단기 성과주의 경영의 현상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그러나 경영진들이 증권 분석가들이나 투자자들로부터 단기적 이익 중심의 경영을 하도록 압력을 받는가에 대한 연구에서는 서로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단기 성과주의가 영국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금융회사만이 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나타나며 특히 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통신)같은 위험이 큰 산업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주식 투자 기간이 가장 짧은 나라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증권거래소협회의 2011년 통계에 따르면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주식 회전율에서 한국증권거래소는 53개 회원 거래소 중에서 네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한국증권거래소의 시가총액 기준 회전율은 194.2%이다.) 한국보다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미국이나 영국에서와 같은 단기 성과주의 경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한국 주식 투자자들의 보유 기간이 몇 달에 불과할 정도로 짧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회사의 장기적인 경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한국 기업들의 경영진들의 보수가 주가와 연동된 인센티브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는 일부 금융회사를 제외하고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장기 투자하는 기관투자자들의 경우에도 수익 관점보다는 수익 외적 관계에 더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증권회사와 투자회사들이 재벌 그룹의 계열사이거나 또는 대기업과 투자은행(investment bank) 업무와 연관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식 투자자의 이해관계보다는 회사의 영업적 이해관계에 더 얽매어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주주가 경영진에게 이익을 배당하도록 요구하는 경우들은 있지만 단기 성과를 내도록 압력을 행사한 사례를 극히 드물다. 미국과 유럽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단기 성과주의 논쟁거리로 한국에서 주주 자본을 비판하는 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한국에서 단기 성과주의에 대한 비판은 미국과 유럽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단기 성과주의 경영의 폐해가 한국에서도 ‘그럴 것’이라는 ‘감’에 의존한 것이지,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주가에 연동된 보상이 경영진의 관심이라면, 한국 경영진들의 보상은 주가와 별반 관계가 없으며, 대부분 ‘임기’에 더 관심이 많다. 더구나 경영진들의 임기는 ‘오너(owner)’또는 ‘총수’라는 사람들이 결정하고, 주주들이 경영진의 임기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단기 성과주의의 폐해는 주주들의 행태적인 현상이거나 잘못된 인센티브 제도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일정하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며, 앞서 논의한 속성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 성과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논의들은 장기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변화에 관한 것이지 주주 자본의 대안을 찾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ο 보완과 절충의 노력들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모순을 주주와 경영진 간의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라고 한다. 성과급이나 스톡옵션(stock option)은 경영진이 주주와 함께 회사 경영의 성과를 나누는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회사의 경영 성과를 높이고자 도입된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가 경영진으로 하여금 단기 성과주의를 추구하게 만드는 부작용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경영진은 자신의 임기 중에 인센티브를 좀 더 많이 받을 목적으로 단기 성과에만 치중하고 심지어는 이익 규모를 조작해서 주가를 오르게 하는 반면,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에 필요한 투자와 연구·개발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가 광범위하게 도입되어 있는 미국과 영국에서 심각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심지어는 회사가 망했는데도 경영진은 막대한 액수의 인센티브를 챙겨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원인이 된 주택 담보부 파생 상품을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해서 회사가 파산하게 된 미국의 투자은행이었던 베어 스턴스(Bear Stearns)와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사건 때문에 주주들은 투자 자금 전부를 손해 보았다. 그러나 경영진들은 회사가 망했는데도 파산 사건 전에 결정된 인센티브 권리를 행사해서 2조 7,000억 원이라는 상식을 초월한 이익을 챙겼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의 기간 동안 베어 스턴스(Bear Stearns)와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두 회사의 CEO(최고 경영자), CFO(재무 담당 최고 임원)와 3명의 최상위직 임원 등 5명의 최상위 경영진이 받은 보상은 각각 14억 달러(1조 6,000억 원)와 10억 달러(1조 1,500억 원)였다. 이러한 보상의 대부분은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을 매도해서 얻은 것으로 주식 매도로 얻은 보상이 베어 스턴스의 경우에는 11억 달러(1조 2,600억 원)이고 리먼 브라더스의 경우에는 8.5억 달러(9,780억 원)였다.)

 

 경영진의 단기 성과주의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는 경영진의 보상 체계를 회사의 장기적인 성과와 연동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경영진이 재임 중에는 인센티브 권리를 행사할 수 없도록 하고, 퇴임 후 이삼 년이 지나서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방안이 있다. 또한 주가는 회사의 경영 성과뿐만 아니라 경기변동과 같은 주식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 외적인 요인들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주가에만 연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임 중 회사 경영의 위험과 성과를 동시에 반영한 지표로 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경영진의 성과급도 매년 지급하지 않고 몇 년에 나눠 지급하는 ‘이연(deferred) 성과급제’를 도입하여, 장기적으로 회사의 성과가 악화되면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거나 이미 지급된 성과급을 환수하는 방안도 있다. 또한 성과급을 현금으로 지급하기보다는 주식이나 전환사채로 지급하고, 퇴임 후 일정 기간이 지나야만 매도할 수 있도록 하여 경영진이 재임 시 성과와 더불어 퇴임 이후까지의 장기적인 성과를 고려한 경영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경영진에 대한 왜곡된 보상 체계나 주주들의 압력으로 인해서 단기 성과주의가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 현재 한국에서는 임원 개개인의 보상을 공개하고 있지만, 스톡옵션이나 성과급이 주어진 경우는 소수의 대기업과 금융회사에 불과하다. 또한 회사의 장기적인 경영계획이나 투자 계획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경영진 스스로가 회사의 장기적인 경영계획이나 투자 계획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경영진 스스로가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조차 판단할 수 없으며, 경영 성과가 나쁜 경우에도 주주나 시장이 이를 견제하는 것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주주들이 경영진에게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포기하고 주가 상승만을 노려서 단기 성과를 내도록 압력을 행사할 만큼의 행동주의가 없다. 

 

 ο 한국에서의 단기 투자와 단기 성과주의의 유령

 시장에는 기업, 소비자, 노동자 그리고 투자자와 같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한다. 그리고 친시장이라면 재벌만이 아니라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이해당사자의 권익이 존중되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 기업은 시장 참여자의 하나일 뿐, 기업이 시장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므로 주식시장에서의 투기적 거래를 주주 자본을 비판하거나 부정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형태적인 현상과 본질을 구분하지 못하는 논리의 비약이다.

 

 단기 투자 행태 역시 마찬가지다. 단기 투자가 나타나는 것은 주주 자본의 속성이라기보다는 제도적인 문제로 인해서 주식시장에서 나타나는 행태적인 현상이다. 주식회사라 할지라도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은 비상장회사는 주식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회사를 청산하지 않으면 투자를 회수할 수 없기 때문에 장기 투자만이 가능하다. 

 

 한국 주식 투자자들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은 2013년에 3.8개월이다. 이는 영국의 1.5년과 미국의 9개월과 비교해서 지나치게 짧다.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나는 주식시장이 내일 문을 닫고, 5년 후에 다시 연다고 가정하고 주식을 산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투자 기간은 영원한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장기 투자로 성공한 투자자다.

 

 (@2010년 기관투자자들이 주주총회에서 회사 경영진이 상정한 안건에 대한 의사표시를 공시한 9,688건 중에서 반대한 경우는 전체 안건의 0.33%인 32건에 불과했다. 32건의 반대 의사표시도 대주주가 회사 돈을 횡령하는 비리를 저지른 특정 회사의 감사를 선임하는 안건이었다.)

 

 단기 투자와 단기 성과주의의 공통점은 ‘단기’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한 것일 뿐, 각각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한국보다 주식 보유 기간이 훨씬 더 긴 영국이나 미국에서 단기 성과주의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고, 단기 투자가 만연한 한국에서의 주주의 압력에 의한 단기 성과주의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 것이 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ο 주주 중심 경영은 원죄?

 주식회사에서는 회사에 자본금을 제공한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 된다. 회사에는 주주 이외에도 노동자, 공급자, 소비자, 채권자, 사회 등의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있는데, 이러한 이해당사자 중에서 누구라도 기업의 주인이 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러한 기업형태들이 존재한다. 협동조합 같이 주식회사가 아닌 기업형태에는 주주가 없으며, 조합원이 기업의 주인이 된다. 사회가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Communism)에서 볼 수 있는 기업형태다.

 

 주식회사는 주주에게 지급하는 배당만이 아니라 임금, 공급 대금, 이자와 같은 형태로 다른 이해당사자들에게 이익을 함께 배분하기 때문에 주주와 다른 이해당사자 간에 이해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때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을 주주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노동자, 공급자 그리고 채권자와 같은 이해당사자들은 계약으로 정한 만큼을 배분받는 반면에 주주는 다른 이해당사자들에게 배분하고 남은 이익을 배분받는다. 따라서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이해 갈등이나 충돌은 주식회사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회사 제도에서 필연적인 것이지 주주 자본주의에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경영자가 다른 이해당사자보다 주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주주 중심 경영’의 속성을 가르키고 있다. 또한 주주 자본주의하에서는 주식 투자자들의 투기적 거래와 단기 차익을 추구하는 투자 행태 때문에 주주 중심 경영이라는 속성을 가진 회사는 단기 성과주의 경영에 집착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투기적 거래, 단기 투자, 단기 성과주의 문제는 주주 자본의 ‘행태’에 관한 것들이며, ‘주주 중심’의 경영을 추구하는 주주 자본주의의 ‘본질적 속성’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또한 ‘주주 중심 경영’의 속성에 대한 비판에서 ‘주주 이익 우선’과 ‘주주만을 위한 경영’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주 이익을 우선하는 주주 중심 경영에 대한 비판은 주식회사의 본질적 속성과 관련된 것이다. 주식회사는 주주가 주인이 되는 회사 제도이며, 따라서 주주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영은 주식회사의 본질이다. 주주 중심 경영을 비판하는 것은 협동조합이 조합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영 행태를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 ‘주주만을 위한 경영’의 행태는 경영방식의 문제이기 때문에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주식 소유가 분산된 나라와는 달리 대부분 대주주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한국의 기업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주주 자본주의의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즉 ‘오너’의 이익만을 위하는 부작용이 문제다. 따라서 이러한 행태는 ‘주주’ 자본주의의 문제라기보다는 ‘대주주’ 자본주의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표현이다. 

 

 이에 대한 보완으로써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통하여 경영자는 회사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고, 결과적으로 주주를 포함한 모든 이해당사자다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과 같이 주식의 소유가 분산되어 회사 경영에 참여하는 대주주가 극히 드문 구조에서는 실질적으로 전문 경영자가 회사를 경영한다. 하지만 전문 경영자 제도도 ‘주주 이익 우선’이 경영의 목표인 것은 마찬가지다. 더구나 전문 경영자 제도 자체의 부작용도 있는데, 전문 경영자가 주주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경영을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바, 이것을 두고 주주 자본주의에 대칭되는 의미로 ‘경영자 자본주의(Managerial Capitalism)’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식회사는 ‘주주만을 위한 경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의 이익을 우선하는 ‘주주 중심의 경영’을 하는 것이다. 

 

 ο 주주가 주식회사의 주인인 이유

 기업이 만들어낸 수익 또는 이익은 노동자의 임금, 공급자의 공급 대금, 경영자의 보수, 채권자의 이자, 국가의 세금, 그리고 주주의 배당 순서로 배분된다. 노동자의 임금과 공급자의 공급 대금은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 중에서 가장 먼저 배분받는다. 회계상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과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의 공급 대금은 비용 항목으로 인식하고 매출액에서 이를 차감한 금액을 매출 총이익이라고 부른다. 매출 총이익에서 사무직 노동자의 임금, 경영진의 보수, 그리고 영업과 관련된 공급자들의 공급 대금이 지급되며, 이를 차감한 금액을 영업이익이라고 한다. 임금은 회계상으로는 비용으로 인식하지만 임금을 더 많이 지불하면 다른 이해당사자들에게 배분될 이익의 몫이 줄어들기 때문에 분배의 관점에서 임금은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 또는 이익을 배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영업이익에서 먼저 채권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며, 이자를 지급하고도 남는 이익이 있으면 정부에 세금을 납부한다. 세금을 내고 남는 이익을 순이익이라고 한다. 

 

 임금, 공급 대금, 경영자 보수, 이자는 정해진 계약에 의한 확정 금액을 지급해야 하고, 세금은 정해진 세율에 따라 반드시 지급하는 보장성을 갖는다. 배당을 제외한 모든 지급은 계약이나 법률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법으로 보호받는 강제적 약속이다. 세금은 이자를 지급한 이후에 배분할 수 있는 이익, 즉 법인세 차감 전 이익이 있는 경우에만 지급 의무가 있다. 그러나 임금, 공급 대금, 이자 등은 회사가 수익 또는 이익이 충분하지 않아도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 임금과 공급 대금, 그리고 이자와 원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회사가 파산하고 회사의 생명이 정지된다. 회사가 파산을 한 경우에도 임금과 공급 대금은 회사 자산을 청산해서 남는 자산이 있다면 반드시 우선적으로 지급해야 한다. 

 

 임금, 공급 대금, 경영자 보수, 이자, 세금 등을 모두 지급하고 남은 순이익 중에서 일부 또는 전부를 주주에게 배당으로 지급한다. 이같이 배당은 다른 이해당사자들에게 수익 또는 이익을 배분하고 남는 몫을 배분받아 우선순위가 가장 낮기 때문에 주주를 ‘잔여 청구권자(residual claimer)’ 라고 한다. 주식회사에서 주주를 회사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본을 제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 되는 이유는 다른 이해당사자보다 불리한 세 가지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첫째는 다른 이해당사자에게 배분하고 남은 이익이 있을 때만 이익을 배분받는 잔여 청구권자가 된다. 둘째는 배당금을 정하지 않으며, 배당의 지급도 보장받지 않는 위험을 감수한다. 셋째는 회사에 제공한 주주 자본을 돌려받지 않는다. 주식회사 제도에서는 자본을 제공한 주주가 이와 같은 책임을 지는 것을 전제로 주주를 회사의 주인으로 정한다. 채권자도 주주와 마찬가지로 자본을 제공하지만 배당보다 우선적으로 확정된 이자를 지급받고, 원금을 돌려받기 때문에 주인이 되지 못한다.

 

 2013년 12월 말에 결산한, 코스피에 상장된 691개 기업 중에서 현금 배당을 지급하지 않은 기업이 전체 의36%인 251개사다. 배당을 지급하는 기업들도 배당 지급에 매우 인색해서 2013년 평균 배당수익률이 1.82%로 6개월 미만의 단기 정기예금이자율 2.54%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2011년 MSCI(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 세계 지수(global index)에 포함된 45개 국가 중에서 한국은 배당수익률 45위인 꼴찌로 1.4%이다. 이는 2013년 6개월 미만 단기 정기예금의 평균 이자율인 2.54% 그리고 6개월에서 1년 사이의 단기 정기예금 평균 이자율 2.72%(한국은행 자료)보다 훨씬 낮은 것이다. MSCI에는 각 나라의 우량 기업들만을 포함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배당수익률이 가장 낮다. 미국은 2.0%, 유럽 평균은 4.3%이다. 그리고 일본 2.6%, 중국 3.4%, 홍콩 3.5%, 싱가포르 4.0%로 아시아 국가들도 한국보다 배당수익률이 훨씬 높다.)

 

 주식회사가 주주를 회사의 주인으로 정하는 이유는 단지 자본금을 제공해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다른 이해당사자들에게 배분되는 이익을 자신의 이익보다 우선적으로 보장하기 때문이다. 

 

 주주가 주식회사의 주인이라는 의미는 의결권을 갖는다는 것과 잔여 이익에 대한 청구권과 회사가 청산했을 때 잔여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주주가 갖는 의결권은 주주총회에서의 안건에 대한 의결권이지 회사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배당 승인도 주주총회의 안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영진이 배당을 결정하고 주주총회는 이를 추인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주주가 직접 배당을 결정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주주가 주인으로서 행사하는 권리가 이렇게 매우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주식회사에서 주주 중심 경영이 가능한 이유는 주주가 두 가지 중요한 결정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회사의 최고 경영자(CEO)를 선임하고 해임할 권한을 갖는 이사회의 이사를 선출하는 것이다. 둘째는 경영진의 임금과 보상을 주주총회에서 승인하는 것이다. 특히 경영진의 보상을 이익이나 주가에 연동시키는 경우에는, 경영진이 주가를 높이기 위한 경영에 집중함으로써 자신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주주중심경영을 하게 된다.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ο 이해당사자 이론의 근원

 주주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가장 많은 논의되는 것이 이해당사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다. 이해당사자 이론은 회사가 ‘단순하게 주주의 부를 극대화하는 것 이상으로 조직, 즉 회사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걸림돌이 되는 모든 사람들의 이해와 복지에 관심을 가지는’ 경영이라고 정의한다. 평범하게 말하면 ‘회사는 모든 이해당사자를 위한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해당사자 이론이다. 주주 중심의 경영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매우 단순한 목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당사자 경영은 이해가 상충되는 많은 이해당사자들 모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따라서 ‘목적’ 자체보다는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의 정의’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해당사자 이론은 기업이 이익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정의(正義)롭고 공평(公平)하면 이해당사자들도 그 결과를 정의롭고 공평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과정을 정의롭게 만드는 핵심적인 방안은 이해당사자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삼는다. 이해당사자들은 과정에서의 참여가 많을수록 과정이 공평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고, 설사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과정에서의 정의가 이해당사자들로 하여금 이를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다.

 

 이해당사자 이론이 주장하는 ‘동등성’은 모두가 동일한 권리나 지분을 갖는 공평주의(Equalitarianism)나 모두가 동일한 배분을 받는 평등주의(Egalitarianism)가 아니다. 이해당사자 이론에서 말하는 동등함이란 능력주의(Meritocracy)에 기초한 과정상에서 ‘이해의 균형(balancing of interests)’을 말한다. 따라서 이익의 배분도 조직에 대한 기여와 부담하는 비용과 위험에 상응하는 비례적인 배분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해당사자 이론은 평등한 배분이 아니라 평등한 참여를 핵심적인 개념으로 본다.

 

 이해당사자 이론이 주주 자본이나 주주의 권리를 부정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를 “자본의 제공자로서 경제적 혜택의 상당한 몫을 차지할권리가 있고, 회사가 의사 결정을 할 때 주주들의 이해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단지 주주들이 다른 이해당사자의 이해관계에 배타적이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투자에 대한 공정한 수익(fair return)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ο 경영 이론에서 체제 이론으로

 이해당사자 이론을 주식회사가 가지고 있는 주주 중심 경영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주식회사 이외의 다양한 대안적 형태의 회사로 확대하거나, 더 나아가 정치경제적인 개념으로까지 확대해서 적용한 것이 이해당사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이다. 이해당사자 이론이 정치적인 연관성을 갖는 의미로 사용된 계기는, 영국 전 수상인 토니 블레어(Tony Blair)가 1996년에 이해당사자 경제를 제안하는 연설을 한 것이다. 토니 블레어는 “회사 내에서 만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도 신뢰의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신뢰는 함께 일하고 함께 혜택 받는 상호 공통의 목적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해당사자 경제에서는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실력에 따라 발전하고, 어떤 그룹이나 계층도 분리되거나 배제되지 않는다.”는 개념을 주장했다. 

 

 ο 죄수의 딜레마와 레몬 시장

 하지만 이해당사자 주의자들의 주장은 사람들이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고 협력을 통하여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현실에서는 사람마다 주어진 환경과 정보가 다르기 때문에 상호 신뢰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와 ‘레몬 시장(lemon market)’과 같은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서로 협력하면 서로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서로를 신뢰하지 못할 때는 서로에게 가장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선택을 하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한편 시장에 나와 있는 많은 물건들은 서로 품질이 다르고, 물건의 가격은 품질에 따라서 다르게 결정되는 것이 시장의 원칙이다. 그러나 물건의 품질을 구분할 수 있는 객관적인방법이 없을 때, 소비자들은 어느 물건이 좋은 것이고 어느 물건이 나쁜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할 경우 평균적인 품질에 해당하는 가격을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경우 좋은 품질의 물건을 생산한 사람은 받아야 할 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받게 되고, 반대로 품질이 좋지 않은 물건을 생산한 사람은 받아야 할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좋은 품질을 생산하는 사람은 시장에 참여하지 않게 되어서 결과적으로 그러한 시장에는 품질이 좋지 않은 물건들만 거래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을 두고 ‘레몬 시장’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레몬 시장(Lemon Market)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레몬의 품질을 알기 위해서 레몬의 껍질을 벗겨 보아야 하는데 레몬 껍질을 벗겨 보고 살 수 없는 상황을 비유한 것이다.)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를 가장 성공적으로 실천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공동 결정 모델과 협동조합이다. 공동 결정 모델은 노동자와 주주가 각자 자신들의 대표를 감독이사회에 선임하고 회사의 주요한 의사 결정을 함께 내리는 ‘노동자와 주주 중심경영’ 구조다. 따라서 공동 결정 모델은 ‘주주 중심 경영’의 대안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모든 이해당사자를 위한 경영’은 아니다. 이에 주주 중심 경영을 벗어나서 특정한 이해당사자 중심 경영을 하는 대안으로 자리잡은 것이 협동조합이다.  

 

 노동자와 주주, 함께 갈 수 없나?

 ο 노동자와 주주의 공동 결정: 독일의 공동 결정 제도

 독일의 공동 결정(codetermination)은 상장회사만이 아니라 비상장회사, 개인기업, 파트너 기업 그리고 협동조합까지 모든 형태의 기업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제도다. 공동 결정은 회사가 두 개의 이사회를 갖는 ‘이중 이사회’ 구조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는 회사를 경영하는 주체인 ‘경영이사회(management board)’이고, 다른 하나는 경영진을 감독하고 회사의 전략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감독이사회(supervisory board)’이다. 경영이사회는 한국과 같이 단일 이사회를 두는 제도에서의 이사회와 동일한 성격이고, 감독이사회는 이름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경영이사회를 감독하고 감시하는 것이며, 회사의 일상적인 경영에 대한 의사 결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자와 주주의공동 결정은 ‘경영 공동 결정’이 아니라 ‘감독 공동 결정’이다.

 

 두 가지 이사회 중에서 감독이사회에 노동자와 주주가 이사로 함께 참여해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공동 결정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독일에서 이중이사회 구조가 도입된 것은1861년이었고, 감독이사회에 공동결정을 도입한 것은 1922년이기 때문에 두 제도는 상당한 시차를 두고 도입되었다. 사실 감독이사회가 도입되었을 때는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수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주가 경영진을 감독·감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공동 결정을 하는 감독이사회의 구성은 회사의 종류와 규모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데 크게 구분하면 다음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유형은 2,000명 이상의 종업원을 가진 모든 회사들에 적용되는데, 감독이사의 절반을 주주가 선임하고 나머지 절반을 종업원이 선임해서주주 대표이사와 노동자 대표이사를 동수로 한다. 그러나 이사회 의장은 주주가 주주총회에서 선임한다. 의장은 의결이 가부 동수일 경우에만 캐스팅보트(casting vote)를 갖는데, 이 때문에 감독이사회가 약간 주주 쪽에 치우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감독이사회 규정은 법으로 정해진 강제 사항이며 상장회사, 개인회사, 파트너 회사 그리고 협동조합까지도 적용된다.

 

 둘째 유형은 종업원이 500명에서 2,000명 사이인 상장회사와 사기업에 적용되는 제도로써, 감독이사회 이사의 3분의 2를 주주들이 선임하고 3분의 1은 노동자들이 선임한다. 이 경우에는 주주 대표이사들이 감독이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주주에 치우진 구조다.

 

 셋째 유형은 광산-철강 산업에 속하는 기업에만 적용되는 제도다. 이 경우에는 노동자와 주주가 동수의 감독이사를 선임하고 이사회 의장은 중립적인 사람으로 두 그룹이 공동으로 지명하고 주주총회에서 감독이사회의 추천으로 선임한다. 따라서 노동자와 주주가 완전한 균형을 이룬 감독이사회다. 그리고 종업원 대표이사의 최소한 한 명은 반드시 관리자(manager) 또는 임원 종업원(executive employees)으로 선출해야 한다. 종업원 500명 미만의 기업과 같이 법으로 종업원 참여가 의무화되지 않은 기업들은 감독이사회를 가지고 있어도 주주들이 모든 이사를 선임하기 때문에 공동 결정에 해당되지 않는다.

 

 * 감독이사회의 권한과 책임

 감독이사회의 역할은 경영이사회를 감독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감독이사회가 경영이사회를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경영이사회의 이사를 임명하고 해임하는 권한을 갖는 것이다. 경영이사회의 의장도 경영이사들이 선임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사회가 선임한다. 또한 감독이사회는 경영이사회 이사들의 보상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며, 경영이사들의 성과에 따라서 보상을 재조정하는 권한도 갖는다. 그러나 경영이사회가 결정한 사안의 시행을 보류하기 위해서는 감독이사회 전원 일치 찬성으로만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어서 경영진의 경영상 판단을 존중하는 구조다.

 

 감독이사회는 모든 경영과 관련된 정보를 받을 권리가 있고, 경영이사회는 투자·재무·직원 개발과 관련된 내용, 회사의 수익성 특히 자본의 수익률에 관한 내용을 정기적으로 보고해야한다. 그리고 회사의 경영 성과와 재무 상황, 회사의 유동성과 수익성과 관련한 중요한 거래에 대해서도 보고해야 하며, 연간 재무 보고서는 감사를 마치는 즉시 바로 감독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감독이사회는 회사의 재무제표에 대한 의견, 경영이사회를 감독·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한 범주와 성격, 감독이사회 개최 횟수, 감독이사회 내부의 위원회 존재 여부와 위원회 활동에 관한 내용들을 주주총회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 또한 경영이사회가 의무를 위반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에는 경영이사회의 책임을 추궁할 의무가 있으며, 감독이사가 회사 정보를 이용해서 이익을 취한 경우에는 경영이사와 마찬가지로 내부자 거래에 대한 형사책임이 있다.

 

 * 공동 결정에 대한 평가

 공동 결정에 대한 가장 일반적이고 강력한 비판은 감독이사회가 독립적이고 실질적인 감독을 효과적으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감독이사회의 주주 대표 이사들의 75%가 경영이사회가 추천한 사람들이며, 특히 전임 경영진이 감독이사회 이사가 되는 경우가 많고, 전임 경영이사회 의장이 감독이사회 의장이 되는 경우도 자주 있어서 감독이사회를 구성하는 데 경영진이 압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독일의 지배 구조 준칙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감독이사회의 이사 중에서 전임 경영진을 두 명 이하로 제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감독이사회가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 이유는 감독이사회의 의사를 다른 회사의 경영이사회 이사가 맡고 있는 경우가 많고, 감독이사회의 자리가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독일의 감독이사회가 명망가들의 모임으로 비유될 정도로 독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0년영국의 이동통신 회사인 보다폰(Vodafone)이 독일의 이동통신 회사인 만네스만(Mannesmann)을 인수했다. 인수 합병이 완료된 이후 감독이사회 소속 4명의 감독이사가 무려 1억 유로(약 1,450억원)의 엄청난 보너스를 합병 전만네스만 경영이사와 감독이사, 그리고 전임 고위 임원들에게 지급했다. 만네스만의 전임 최고 경영자(CEO) 한 사람에게 지급한 금액이 무려 3,000만 유로(약440억 원)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4명의 이사들이 전화로 회의를 했고, 한 명의 위원이 투표하지 않고 다른 위원들에게 위임해서 전원 합의로 결정을 했는데, 그 한 명이 가장 투쟁적이고 영향력 있는 금속노조의 전임 위원장이었던 것이다. 그가 당연히 그러한 결정에 반대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는 오히려 결정을 돕는 역할을 한 것이다. 2003년 이들은 권한 남용과 횡령으로 재판을 받았고, 1심 판결에서는 ‘실수’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형사대법원은 이를 번복하고 다른 1심 재판부에 재심하도록 했다. 2006년 기소된 이사들이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사건은 종결되었다.

또 다른 스캔들은 2005년 독일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Volkswagen)에서 발생했다. 경영이사회가 노조 대표(shop steward)들의 브라질 호화판 해외여행 비용으로 100만 유로(약 14.5억 원)를 지급하고, 전직 노조 대표였던 주(州)의회 의원들에게 계속해서 월급을 지급했다. 또한 폭스바겐의 체코 계열사인 체크 스코다(Czech Skoda)가 해외에 위장 회사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서 뇌물용 비자금을 마련한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독일은행(Deutsch Bank)은 2011년 말 현재 총종업원수가 10만 996명이며, 이 중에서 독일 국내 종업원은 46.9%인 4만 7,323명이고 외국 종업원은 53.1%인 5만 3,673명으로 외국 종업원이 더 많다.)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감독이사회를 통한 공동 결정은 이해당사자로서 노동자의 경영 참여의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를 잡았고,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주주 지분이 높은 회사에서는 노동자 대표 감독이사의 존재 자체가 회사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노동자 대표들이 대주주의 전횡을 막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소액주주들이 혜택을 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사업다각화를 많이 한 기업일수록 노동자 대표감독이사의 존재가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나서 노동자 대표들이 계열사를 통한 부당 거래를 막는 역할을 수행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ο 노동자와 주주의 결합: 종업원 주식소유제

 ‘종업원 주식 소유제(ESOP, employee stock ownership plan)’는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주식을 매입해서 주주가 됨으로써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회사의 주주가 되는 제도다. 종업원 주식소유제는 이해당사자인 노동자가 주주가 되어서 주주 중심경영이 갖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되었다. 종업원 주식 소유제는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여타 일반 주주보다는 좋은 조건으로 주식을 발행해주어 회사의 주식을 소유하도록 하는 제도다. 주주인 노동자들은 다른 주주들과 마찬가지로 1주 1표의 의결권을 갖지만, 일반 주주들보다 회사의 경영 상황을 더 자세히 알 수 있기 때문에 내부 감시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일반 주주들보다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이 자신의 이해와 보다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에 단기 성과주의적인 경영을 견제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종업원 주식 소유제가 한국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58년 유한양행이 종업원들에게 상여금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제도적으로 도입된 것은 ‘우리사주제’라는 이름으로 1968년 자본시장 육성법에서 상장회사가 유상증자를 할 경우 새로 발행하는 주식의 10%를 종업원에게 우선적으로 배정하도록 한 것이며, 1974년에는 비상장회사로 확대되었다. 우리사주제는 회사가 종업원들에게 주식 매입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해주고 일반 주주보다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발행해주는 등 노동자들에게 회사의 주주가 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사주제는 주식을 발행할 때 종업원들에게 발행주식의 20%까지를 우선적으로 배정하고, 주식 매입에 필요한 자금을 회사나 한국증권금융이 대출해주며, 이에 대해서는 15%까지 세액공제를 해주는 혜택을 주고 있다. (@회사가 우리사주조합에 자사주나 현금을 출연한 경우에 전액 비용으로 인정받으며, 우리사주조합을 통해서 종업원들에게 주식을 성과급으로 지급한 경우에도 비용으로 인정받으며, 액면가 1,800만 원 이하의 주식을 보유한 경우에는 배당에 대한 세금도 면제되는 혜택이 주어진다. 노동자가 우리사주제를 통해서 자신의 자금이나 우리사주조합의 차입금(Leverage)으로 매입한 주식은 최소한 1년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그리고 회사나 주주가 우리사주조합에 출연한 주식은 증여와 같은 것이지만 3년 이상 보유한 이후 인출하는 경우는 그 절반에 대해서 세금을 면제해줌으로써 장기 보유의 인센티브를 준다.)

 

 2013년 말 현재 3,043개 회사에서 우리사주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조합원 수는 127.6만 명이다. 상장회사의 경우에 1,720개 회사 중에서 87%인 1,498개 회사가 우리사주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48만여 개의 비상장회사 중에서 우리사주제를 도입하고 있는 회사는 1,545개에 불과하다. 비상장회사의 경우에는 상장회사와는 달리 종업원 우선 배정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고, 주식이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현금화하는 것이 어려워서 주식을 배정받아도 노동자들이 이를 매입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우리사주제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2013년 말 현재 코스피에서 우리사주제를 통해 노동자들이 소유하는 주식은 전체 주식의 0.89%로 매우 작은 비중이며, 코스닥에서도 0.2%로 마찬가지로 매우 작은 비중이다. (@코스피의 2013년 말 발행주식 수 341억 200만 주 중에서 우리사주조합의 주식 수는 3억 330만 주로 0.89%에 해당하고, 코스닥의 발행주식 수 208억 1,200만주 중에서 우리사조합의 주식은 4,450만 주로 0.2%에 해당한다.) 우리사주조합이 보유하는 주식의 비중이 낮아서 노동자들이 주주로서 경영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거나 경영 감시 역할도 현실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종업원 주주들의 우리사주조합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들도 적으며, 노동자들이 종업원 지주제를 경영 참여나 경영 감시의 수단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재산 형성의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높다.

 

 회사의 이익과 노동자의 이익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우리사주제로 취득한 주식을 장기간 보유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우리사주제를 재산 형성의 수단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매도해서 주가차익을 실현하는 행태가 자주 나타난다. 2007년에 코스피의 우리사주조합 주식 수는 2억 7,650만 주였으나 2008년에는 1억 8,340만 주로 1년 만에 34%가 감소하는 현상을 보일 정도로 우리사주조합을 통한 주식 보유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사주제에서 가장 민감한 규제가 의무 보유 기간이다. 우리사주제 도입 초기에는 퇴직 시까지 보유하도록 의무화했고, 이후에 이를 7년으로 단축했지만 노동자들이 우리사주제를 재산 형성의 수단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주식을 보유하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다. 따라서 현재는 종업원이 자신의 자금으로 우리사주제를 이용해서 취득한 주식은 의무 보유 기간이 1년이며, 회사나 주주가 출연한 주식을 취득한 경우에는 4년에서 8년 사이로 정하고 있다.)

 

 주주 없는 기업 1: 노동자가 주인인 회사

 주주 자본이 없고 자본은 부채 자본만 존재하는 기업인 경우 회사의 이해당사자는 주주를 제외한 노동자, 경영자, 공급자, 소비자, 채권자 그리고 국가다. 이 중에서 경영자는 주인(principal)을 대신해서 경영하는 대리인(agent)이기 때문에 주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나머지 이해당사자인 노동자, 공급자, 소비자, 채권자 그리고 국가 중에서 누가 회사의 주인, 즉 회사를 소유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회사 구조가 가능하다.

 

 국가소유 기업들도 주식회사로 설립되는 경우가 흔하며, 그런 경우에는 국가가 대주주로서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다. 한국전력공사는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이며, 정부가 51.1%를 가진 대주주이고, 나머지 48.9%는 일반 투자자들이 주주다. 따라서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공공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경영을 한다.

 

 주주가 없는 회사에서 자본을 제공하는 채권자가회사의 주인이 되는 형태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실적인 예로는 회사가 파산을 해서 워크아웃(workout), 즉 기업 구조 조정 체제에 들어가게 되면 주주의 권리는 정지되고 채권자가 회사의 주인으로서 경영을 책임지게 된다.

 

 기업의 주인은 주식회사 주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세 가지를 책임져야 한다. 첫째, 자본을 스스로 제공하거나 또는 제3자로부터 확보해야 한다. 둘째,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이해당사자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셋째, 회사가 이익을 내지 못한 때는 자신에게 배분될 이익을 포기해야 하며, 회사가 파산할 경우에는 자신이 제공한 출자 자본을 포기하는 유한책임을 져야 한다.

 

 ο 출자자인 노동자, 노동자인 출자자

 노동자가 주인인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설립 자본인 출자금을 내거나 또는 제3자로부터 자본을 확보해야 한다. 노동자가 주인인 회사의 대표적인 형태인 노동자협동조합의 경우에 조합원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의 하나가 출자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자본을 제공해서 설립한 회사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로서의 역할과 자본을 제공하는 출자자(자본 제공자)로서 주인의 역할 등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게 된다.

 

 *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우선한 경우

 회사의 주인은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이해당사자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가 주인인 회사의 형태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임금을 지급하기 이전에 먼저 공급자에 대한 공급 대금과 채권자에 대한 이자와 원금을 지급해야 한다. 또한 출자하지 않은 피고용자로서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경우에는 주인인 노동자들은 자신의 임금보다 피고용인 노동자의 임금을 먼저 지급해야 한다. 

 

 다른 이해당사자에 대한 채무를 우선적으로 지급하고 이익이 남은 경우에는 주인인 노동자는 계약으로 정한 임금보다 더 많은 배분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익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에는 주인인 노동자는 정해진 임금보다 적은 금액을 받게 된다. 또한 경영 성과가 지속적으로 좋지 않아서 이익이 공급 대금과 이자로 지급할 금액보다 적을 경우에는 주인인 노동자는 임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이같이 노동자가 회사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우선할 경우에는 경영 성과의 불확실성이 노동자 임금의 불확실성으로 이전되어서, 노동자는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게 된다. 이러한 ‘회사 주인’으로서의 불확실성은 개인이 소유하고 경영하면서 동시에 자신도 노동자로서 일하는 소규모 자영업자의 경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변호사들이 파트너 자격으로 설립한 법무 법인이나 회계사들끼리 만든 회계 법인도 이에 해당하고, 펀드매니저들만으로 구성된 펀드 회사도 이에 해당한다.

 

 노동자들은 임금뿐만 아니라 배당을 받게 되어, 노동자로서 뿐만 아니라 주인으로서 회사에 보다 충실하고 적극적으로 노동 참여를 할 인센티브를 갖게 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임금이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노동자에게 임금의 불확실성은 곧 생존의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 노동자로서의 역할을 우선한 경우

 이 경우 노동자들은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로 확정 임금을 우선적으로 지급받고, 공급자·채권자 등의 다른 이해당사자에 대한 약속된 지급을 한 이후에 남은 이익은 주인으로서 배당으로 받는다. 노동자들은 임금뿐만 아니라 회사의 출자자로서 경영성과를 배분받기 때문에 회사에 보다 충실하고 적극적으로 노동 참여를 할 인센티브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회사 구조는 노동자가 주인이면서도 자신의 임금을 다른 이해당사자보다 우선적으로 지급받기 때문에 주식회사에서의 주주 자본을 노동자의 출자 자본으로 대체한 형태다.

 

 이런 회사의 현실적인 형태로는 노동자협동조합과 종업원 주식 소유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한국에서 종업원 주식 소유제는 주주 없는 기업의 완전한 형식은 아니지만 노동자들이 일부 주식을 소유하는 우리사주(社主)제라는 이름으로 1968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노동자협동조합은 2000년대 초반부터 설립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ο 노동자협동조합

 협동조합은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필요와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공동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회사’로 정의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1700년대 초 영국에서 화재보험협동조합이 만들어진 것과 1750년경에 프랑스에서 치즈 생산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든 것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약 30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자본이 축적되기 시작한 산업혁명 이후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협동조합은 1844년 영국 북부의 로치데일(Rochdale)에서 28명의 무명(cotton) 섬유 직조공 예술가 28명이 협동조합 가게를 설립해서 밀가루, 오트밀, 설탕 그리고 버터 네 가지의 생필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노동자협동조합은 회사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 전액을 노동자들이 제공해서 설립한다. 출자를 한 노동자들은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어,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회사의 주인이 된다. 노동자협동조합도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만 자본의 결합이 아닌 인적 결합 또는 인적 공동체 형태의 회사다. 노동자협동조합은 주식회사와 다른 세 가지가 특징이 있다. 첫째, 1인 1표 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서 출자 지분과 관계없이 모든 조합원 노동자들이 동등한 의결권을 갖는다. 둘째, 노동자들은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조합원 총회(general assembly)에서 의결권 행사를 통해서 경영에 참여하고, 이사회의이사나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도 있다. 셋째, 이익인 잉여금의 처분에서 배당보다는 자본금을 충실하게 확충하는 것을 우선하며, 이익 배분 기준도 조합원의 출자보다도 조합 활동 참여, 즉 노동시간에 보다 더 큰 비중을 둔다. (@주식회사의 이익에 해당하는 것을 협동조합에서는 잉여금이라고 부른다. 협동조합은 잉여금의 10% 이상을 자기자본의 세 배가 될 때까지 법정적립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법정적립금 외에도 정관으로 정해서 임의 적립금에 적립할 수 있으며, 배당은 이와 같은 적립금에 충당한 이후에 실시한다. 주주들의 출자 비율에 따라서 배당하는 주식회사의 경우에도 배당금에 대한 제한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본금을 충실하게 만드는 것을 우선으로 하기 위한 것이며, 협동조합과 같은 배당금에 대한 제한은 없다(상법 제462조).)

 

 협동조합은 1인 1표 주의를 채택하여 모든 조합원이 출자금의 크기와 관계없이 동등한 의결권을 갖기 때문에 정치적 민주주의에서와 같은 평등한 의사 결정 구조를 갖게 된다. 조합원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권리는 평등하지만, 임금과 배당과 같은 경제적 배분은 반드시 평등하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주식회사의 순이익에 해당하는 잉여금의 배당은 노동 참여에 따른 배당과 출자금에 대한 배당 두 가지가 있다. 한국의 협동조합 기본법에 따르면 배당금의 지급은 총배당금의 50% 이상을 조합원의 사용 실적, 즉 노동 참여 실적에 따라서 배당하도록 하고, 출자에 대한 배당은 출자금의 10%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또한 잉여금은 회사의 자본 상태를 충실하게 하는 적립금에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그 이후에 남은 금액으로만 배당으로 지급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노동자협동조합은 이익의 배분에 있어서 출자금에 대한 배당보다는 노동 참여에 대한 배당을 우선하기 때문에 자본의 지배보다는 노동자들의 참여가 우선하는 공동체 성격의 회사다.

 

 * 노동자협동조합의 성공 사례: 스페인 몬드라곤

 몬드라곤은 1956년에 가톨릭 사제인 아리스멘디아리에타(Jose Maria Arizmendiarrieta) 신부와 다섯 명의 창업자들이 자신들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울고(ULGOR)를 설립한 것으로 시작했다. 2010년 현재 258개 기업으로 구성된 그룹으로 발전했다. 

 몬드라곤은 노동자들이 개인적으로 산별노조에 가입해서 활동할 수 있지만 회사 내에 노동조합이 없고, 다른 기업들에서 노동조합이 하는 역할을 조합원 총회에서 선출한 사회적 평의회(social council)가 수행한다. 

 

 몬드라곤의 노동자들은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 첫 1년은 임시직으로 일하고, 1년 후 정규직으로 채용되면서 자본금으로 출자되는 가입비를 내야 한다. 조합 가입 1년 후 영구 조합원이 될 심사를 통과하면 다음 3년 동안 가입비의 90%를 내야 한다. 조합원들이 제공한 출자금은 협동조합의 자본금으로 편입되지만, 노동자 개인별로 관리되어 퇴직할 경우 이를 돌려받는다. 조합원 개인의 투자 자금은 회사가 이익을 내서 잉여금을 배당으로 지급하면 그 가치가 증가하고, 반대로 회사에 손실이 났을 경우에는 손실을 자본금에서 차감하는 네거티브(negative) 배당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줄어들기도 한다.

 

 몬드라곤의 협동조합들은 1인 1표 주의를 채택하여 출자금의 크기와 관계없이 모든 조합원 노동자가 동등한 의결권을 갖는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임금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며, 잉여금의 배당도 노동 참여 수준과 출자금에 따라서 다르다. 임금 차이의 구조는 사회적 평의회를 통해서 조합의 노동자들이 결정하기 때문에 몬드라곤에 속하는 협동조합마다 서로 다르다. 몬드라곤 노동자들의 임금은 비슷한 지역 기업과 비교해서 저임금 노동자들은 13% 정도 높은 반면에 관리자나 중간 관리자들은 30% 정도 낮다.

 

 전체 종업원의 19%를 차지하는 해외 공장과 해외 계열사의 노동자들은 아직 조합원이 아니며, 그 이유는 해외 노동자들이 회사에 자본금을 투자하는 것에 소극적이라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몬드라곤에는 조합원이 되기 전 견습공으로 일하는 동안에는 해고될 수 있지만, 조합원이 되면 해고되지 않는다. 역량이 부족하거나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다른 일자리로 재배치해서 고용을 유지한다. 일자리를 옮겨서 임금이 낮아지면, 낮아진 만큼은 고용 기금에서 2년 동안 보전해 주는데, 모든 조합원은 월급의 2%를 몬드라곤 본부의 인적 자원 관리 서비스를 위한 고용 기금에 낸다. 몬드라곤이 해고하지 않고 고용 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몬드라곤 그룹 내에 100여 개가 넘는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있어서 일자리를 그룹 내에서 변경할 수 있으며, 고용 조정으로 인한 임금의 삭감을 고용 기금이 보조해주기 때문이다.

 

 몬드라곤은 자신들이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성공한 일곱 가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설립자인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의 리더십 효과

 · 자본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협동조합의 성격으로, 노동자의 자본과 경영 참여

 · 수익성, 기획, 엄격한 효율성을 기본 원칙으로 삼은 경영 방식

 · 만들어낸 모든 자원을 재투자

 · 환경 변화에 지속적으로 적응

 · 재무관리, 사회복지, 혁신과 연구·개발, 고용 관리 등에서 여러 소속 협동조합들의 상호 협력

 ·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교육과 훈련의 중요성 강조, 대학 교육과 평생 기술 훈련 실시

 

 * 한국의 노동자협동조합 사례

 한국에서 다른 형태의 협동조합들이 활성화된 반면에 노동자협동조합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것은 노동자협동조합 설립을 뒷받침하는 법적 제도가 없어서 다른 형태의 회사를 설립하고 협동조합의 운영 방식을 채택하는 임의의 조합 형태로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농협(농업협동조합)이나 수협(수산업협동조합)과 같은 생산자협동조합은 특별법에 의해서 설립되고 지원되었고, 소비자협동조합이나 금융협동조합 등 제한적인 업종에서만 협동조합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2011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되어서 2012년 12월부터 시행됐다. 이제는 모든 업종에서 출자금의 규모와 관계없이 5인 이상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노동자협동조합이 보다 많이 설립될 것으로 기대된다.

 

 노동자협동조합은 아니지만 농협, 수협 그리고 도드람, 서울우유와 같은 생산자협동 조합은 활성화되어 있고 규모도 크다. 

 

 노동자협동조합이 주식회사의 대안이 될까?

 ο 성공의 조건

 노동자협동조합이 다른 종류의 협동조합과 비교해서 활성화되지 않고 성공적이지 못한 것은 한국의 경우만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성공적인 협동조합들의 사례들도 대부분이 생산자협동조합이나 금융협동조합, 그리고 소비자협동조합이며 노동자협동조합의 성공적인 사례는 스페인의 몬드라곤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러한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볼 수 있다. 소비 행위는 대안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쉽지만 노동 행위는 대안적인 선택이 어려운 것이 노동자협동조합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되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다. 소비자협동조합이나 금융협동조합에 속한 조합원은 자신이 속한 협동조합에서 물건을 구매하거나 금융거래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곳에서도 구매나 거래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노동자협동조합에 속한 노동자는 다른 회사에서 일하려면 자신이 속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것이고, 따라서 자동으로 조합에서 탈퇴하게 된다. 즉 다른 협동조합과는 달리 조합 가입의 조건인 노동의 대안적인 선택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소비자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참여가 주로 구매 행위에 국한되기 때문에 각자의 역량 차이가 크게 문제되지 않으며, 구매 가격도 모든 조합원들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또한 특정한 조합원의 구매가 다른 조합원의 구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협동조합에서노동자들은 각자의역량, 맡은 역할, 그리고 기능의 차이가 크며, 그에 따른 임금과 보상이 다르다. 그리고 개개 노동자의 노동이 다른 노동자들의 노동과 연계되어있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유기적 관계를 갖는다. 따라서 노동자협동조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동기 이외의 조합원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조합원을 하나를 묶어내고 조합원들이 함께 공유하고 유지할 수 있는 공동체 가치와 동기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여타 협동조합과는 다른 점이다.

 

 * 노동자의 자본출자

 노동자협동조합이 주주 자본에 제기되는 비판들을 극복하는 주식회사의 대안이 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조건은 주주 자본을 노동자들의 출자 자본으로 대체해야 한다. 이 경우가 노동과 자본이 일치되어 노동과 자본의 갈등이 원천적으로 없는 회사 구조이며, 자본에 대한 배당보다는 노동에 대한 배당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몬드라곤이 성공적으로 성장한 것도 조합원의 출자를 돕기 위한 금융협동조합을 함께 운영했기 때문이며, 또한 회사의 잉여금을 노동 기여와 자본 기여에 대한 배당으로 지급하기 이전에 회사의 자본 충실화에 우선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몬드라곤의 스페인 국내 노동자들은 대부분이 조합원인 반면에 해외 노동자들은 조합원이 아닌 피고용 노동자인 가장 큰 이유가 해외 노동자들이 출자금 내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협동조합이 주식회사를 대체하는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조합원 노동자들의 자본 참여가 절대적인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노동자협동조합이 주식회사의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전제가 대규모 자본의 조달이다. 노동자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자본의 지배로부터 자유롭고 노동자가 지배하는 회사를 설립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협동조합은 자기자본을 노동자 조합원들의 출자만으로 조달하기 때문에 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자본의 규모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주식회사에서는 추가적인 자기자본이 필요한 경우 불특정 다수의 일반 투자잦들을 대상으로 주식을 새로 발행해서 신규 자본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대규모의 자기자본조달이 용이하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경우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성장의 기회가 있다고 해도 갑자기 출자금을 늘리기 어려운 한계를 가진다. 물론 이때 필요한 자본을 부채로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자본인 출자금의 규모가 작은 경우 부채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또한 대규모 부채 자본을 사용할 경우 이자에 대한 부담이 늘고, 부채 자본으로 인한 재무 위험이 커져서 안정적인 회사 운영이 위협받을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협동조합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주식회사의 순이익에 해당하는 잉여금을 배당으로 지급하기보다는 자본금으로 적립해서 자본금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 그러나 잉여금으로 자본금을 충실화하는 데는 상당한 기간이 걸리 것이고, 그러한 기간 동안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있어도 자본 조달의 제한으로 인해서 이를 추구하기 어렵고 보수적인 경영을 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지나치게 부채에 의존할 경우 협동조합 설립의 본래 취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 동질성 확보와 갈등의 해소 

 노동자협동조합은 1인 1표 주의에 따라서 모든 조합원이 의사 결정에 평등하게 참여한다. 그러나 노동자 개개인은 역량과 역할에 따라서 임금이 다르며, 노동 참여 실적과 출자금의 규모에 따라서 잉여금의 배당도 다르다. 의사 결정은 평등한 구조이지만 경제적 배분은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조직에서나 마찬가지로 조합원들 사이에 갈등의 소지가 있다.

 

  노동자협동조합에서는 노동자가 주인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별도로 존재할 수 없으며, 파업하는 것은 노동자가 자신을 상대로 파업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몬드라곤에서 1974년 임금 조정에 대한 조합원의 불만으로 인해서 파업이 발생했다. 경제적 배분에서는 평등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속성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프랑코 :: 갈리시아 엘페롤 출생. 알카사르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09년부터 에스파냐령 모로코의 리프족(族)의 민족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활약하였고 1921년 장군이 되었다. 1928년 사라고사에 신설된 사관학교 교장이 되었으나 1931년 공화제가 수립되자 공화정부에 반대한 이유로 1933년 사관학교는 폐쇄되고 발레아레스섬으로 좌천되었다. 1935년 10월 무어인 부대와 외인부대를 이끌고 아스투리아스의 노동자봉기를 진압, 참모총장이 되었다. 1936년 2월 ‘인민전선정부’가 수립되자 즉각 반(反)정부 쿠데타 준비에 착수하였으나, 정부에 의해서 카나리아제도(諸島)의 수비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 그해 7월 모로코로 가서 반정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얼마 후 반란군측의 주요인물이 사망 혹은 체포되었기 때문에 프랑코의 세력이 커져 10월 국민당 정부 수반 및 군총사령관이 되었다.
그 후 2년 반에 걸친 에스파냐내란에 승리, 팔랑헤당(黨)의 1당독재에 의한 파시즘국가를 수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명목상으로 중립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독일 ·이탈리아를 지원하였기 때문에 전후에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초기는 표면적으로는 자유화의 기운이 돌았고 1955년 미국의 반공정책에 따라 국제연합에 가입하였다. 1966년 종신주석의 지위를 확립하고 1969년 국회에서 그가 죽거나 집정이 불가능해지면 부르봉가(家)의 후안 왕자 카를로스가 왕위에 오를 것을 선언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란시스코 프랑코 (두산백과)

 

 * 고용 유지

 몬드라곤은 250여 개의 협동조합과 계열사로 구성되어 있어서, 경영이 어려운 협동조합을 경영 성과가 좋은 협동조합이 지원해줌으로써 협동조합들 사이에 경영 상태의 차이로 인한 일시적인 구조 조정을 피할 수 있는 상호 부조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업무 역량이 부족한 노동자들은 재교육과 일자리 재배치를 통해서 임금이 줄어들더라도 다른 협동조합에서 고용을 승계해줌으로써 해고 없이 구조 조정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비조합원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15% 이내로 제한하고, 임시직은 퇴직한 조합원을 고용하는 제도를 통해서 갈등의 소지를 줄이고 있다. 단독적인 협동조합으로 존립하기보다는 여러 협동조합들이 연대해서 몬드라곤과 같이 협력적인 그룹을 형성하는 것이 고용을 유지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ο 극복해야 할 문제들

 주식회사의 소액주주들은 대부분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다. 주식에 투자하는 노동자와 은행에 예금하는 노동자는 투자하는 방식의 선택이 다를 뿐이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투자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소액주주인 노동자에게 임금은 자신의 기본적인 소득이고, 주식투자로부터 얻은 수익은 추가적이고 보조적인 소득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액주주인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이해관계가 주식 투자자로서의 이해관계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대부분의 주식 투자자들은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이해관계와 투자자로서의 이해관계가 서로 분리되며,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는 경우에도 소액주주인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제한적이다.

 

 노동자협동조합은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는 회사에 노동과 자본을 함께 제공함으로써 노동자로서의 이해관계와 투자자로서의 이해관계를 완벽하게 일치시키는 회사의 형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협동조합은 단기적인 이익에 집중하기보다는 장기적인 회사 발전을 위한 경영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과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에 동의하는 노동자들의 공동체라는 점은 회사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주식회사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인 회사다. 그러나 노동자의 자본이 주주 자본을 대체하고, 노동자협동조합이 주식회사를 대체하는 일반적인 기업형태로 발전하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첫째, 협동조합의 공동체적인 목적과 가치에 동의하는 노동자들의 동질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특히 경영 환경이나 시장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사업 영역에서는 회사가 성장하면서 기존의 공동체적인 가치와 목적이 변화하고 조합원의 동질성이 훼손되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 둘째, 노동자들이 자본출자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출자 능력이 부족한 신규 조합원에게 금융 지원을 할 수 있는 금융협동조합과 같은 대책이 필요하고, 기존 조합원들은 잉여금을 배당받기보다는 회사의 자본을 충실화하기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적립하는 것에 동의하거나 적극적이어야 한다. 셋째, 협동조합이 기업으로서의 경영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동시에 고용을 유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여러 개의 협동조합들이 협력적인 연대를 형성해서 협동조합 사이에 고용 이전이 가능하게 하고, 고용 조정에 따른 임금을 보전할 수 있는 자체적인 고용 기금과 같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장에 필요한 대규모 자본을 조달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부족한 자금을 부채에 의존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재무적인 위험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자협동조합이 이러한 요건들을 모두 충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시도할 수 있지만 주식회사를 대체하는 일반적인 기업형태가 될 수는 없다.

 

 주주 없는 기업 2: 공급자나 채권자가 주인인 회사

 ο 공급자의 동질성이 전제

 석유, 금, 우라늄 등 광물자원이 풍부한 토지를 소유한 경우이거나 토지에서 나오는 원자재가 생산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산업의 경우 공급자가 주인이 되는 회사들이 있다. 산유국에서는 원유가 매장되어 있는 토지를 국가가 소유하고 원유 생산 기업을 국가가 소유하는 것이 그러한 예다. 원유 생산 회사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디 아람코(Saudi Aramco)와 멕시코의 페멕스(Pemex)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멕시코 정부가 각각 100% 지분을 소유한 국가 소유 회사다. (@1933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미국의 스탠더드 오일사(Standard Oil Company)에 원유 채굴권을 양도하는 협정을 맺고 캘리포니아 아라비아 스탠더드 오일사(Casoc, California Arabian Standard Oil Company)가 설립되었고, 1944년 아라비아 아메리칸 오일사(Aramco, Arabian American Oil Company)가 설립되었다. 1973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아람코(Aramco)의 지분 25%를 인수하고, 다음 해인 1974년 지분을 60%로 늘리고, 1980년 100% 지분을 갖게 되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완전한 소유주가 되었다.)

 

 원자재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공급자가 회사의 주인이 되면 공급자는 회사에 현물을 포함한 자본금을 제공하고 회사 경영을 책임지며, 수익 변동에 따른 불확실성과 위험을 부담한다. 개인 소유 회사처럼 공급자가 회사의 주인으로서의 역할과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분리하지 않는다면 노동자에 대한 임금과 채권자에 대한 이자와 같은 다른 이해당사자들에 대한 채무를 먼저 지급한 후에 남는 이익으로 자신의 공급 대금을 지급받는다. 따라서 경영 성과에 따라서 공급 대금의 불확실성까지 부담하고 공급자가 회사의 주인이 되기는 쉽지 않다. 공급자가 회사의 주인이 되는 회사를 설립하는 경우에도 공급자로서의 역할과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분리하고, 자신의 공급 대금을 다른 이해당사자와 마찬가지로 확정적으로 지급받는 형태의 회사가 될 것이다. 한국의 서울우유나 미국의 썬키스트(Sunkist)는 이런 형태의 회사들인데, 공급자는 모든 이해당사자에 대한 채무와 이익 배분을 먼저 한 후에 남는 잔여 이익을 공급 대금과 수익을 포함한 액수를 배당 형식으로 지급받으며, 손실이 난 경우에는 출자금이 감소하게 되어 주인으로서의 책임을 진다.

 

 서울우유는 우유의 원재료인 원유를 생산하는 축산업자들이출자금을 내고 설립한 공급자가 주인인 회사다.

 오렌지 제품으로 잘 알려진 썬키스트도 오렌지와 레몬 재배 농가들이 설립한 회사다. 이렇게 공급자들이 자본을 제공하고 설립한 회사들은 대부분 협동조합 형식의 회사들이다. 이런 기업들이 공급자가 주인인 회사로서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제품의 특성상 원재료인 원유와 오렌지가 제품 생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공급자들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서울우유의 경우 원유를 공급하는 2000여 조합원들은 사육 젖소의 수와 생산 원유의 품질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고, 서로 근접한 지역에 위치하는 축산 농가로서의 동질성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제조업의 경우에는 원재료나 중간재들이 다양해서 공급자들 사이에 동질성이 없고 지역적으로도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공급자들이 주체가 되어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공급자가 주인이 되는 회사는 공급자들이 동질성이 전제되는 제품을 생산하는 사업에 국한해서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이 된다. 

 

 ο 채권자가 주인이 되면?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자금인 출자금은 회사가 청산하지 않는 한 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일정한 기간 내에 원금을 반드시 돌려주어야 하는 부채 자금으로 출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채권자들이 회사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회사에 돈을 빌려주는 부채 자본만이 아니라 돌려받지 않는 자본금도 함께 출자를 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채권자는 출자자이면서 동시에 채권자가 됨으로써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개인회사의 경우에 오너가 출자를 해서회사를 설립하고, 자신의 돈을 회사에 부채로 빌려주는 것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채권자가 출자자가 되어 회사의 주인이 되면, 자신의 이익보다는 다른 이해당사자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따라서 채권자는 노동자와 공급자에게 임금과 공급 대금을 먼저 지급하고 남은 이익으로 자신의 이자와 원금을 지급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받을 이자와 원금을 확정적으로 정할 수 없다. 이익이 충분하면 약속된 이자를 받고, 이자를 지급하고도 남는 이익이 있다면 이는 주인인 채권자의 몫이다. 그러나 이익이 충분하지 않거나 손해가 난 경우에는 약속된 것보다 적은 이자를 받거나 또는 아예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자 지급이 회사의 경영 성과에 따라서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하는 채권은 확정적인 이자를 갖는 ‘원래의 채권’과는 전혀 다른 ‘변형된 채권’이 된다. 회사의 경영 성과에 따라서 이자 지급액이 달라지는 ‘변형된 채권’은 경영 성과에 따라서 배당액이 달라지는 주식회사의 주식과 동일한 성격의 자본이 된다. ‘변형된 채권’과 주식의 차이는 원금 상환이다. ‘변형된 채권’도 채권이기 때문에 회사가 원금을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회사가 충분한 자금이 없어서 원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해도 채권자가 자신이 주인인 회사를 파산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채권자는 주식회사의 주주와 같은 입장이 된다. 채권 중에서 원금을 돌려주지 않는 형태의 채권을 ‘영구 채권(perpetual bond)’이라고 한다. 영구 채권은 만기가 없고 영원히 이자만 지급하는 채권이다. (@최초의 영구 채권(Perpetual Bond)은 영국 정부가 1751년에 발행한 콘솔(Consol)이다.) 그러나 만기가 있는 일반 채권과 마찬가지로 이자를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 

 

 주주가 있는 주식회사에서도 채권자가 회사의 주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회사가 이자와 원금을 갚을 수 없는 부도가 발생할 경우 채권자가 회사의 주인이 된다. 회사가 지급 불능 상태에 빠졌지만 장기적으로 회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채권자들은 자신들이 받을 이자와 원금의 지급을 유예하고 기업 회생을 위한 기업 개선 작업(workout) 절차를 실행한다. 회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되면 주주의 모든 권리가 중지되고 기존의 주주 자본을 감자하거나 완전히 소각하고 채권자들이 회사의 주인으로서 경영을 책임진다. 워크아웃 과정에서 채권자들이 자신의 채권 일부 또는 전부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출자전환을 해서 주주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채권자는 처음부터 수익이 불확실한 주식보다는 확실한 이자와 원금을 지급하는 채권을 선택한 투자자이기 때문에 원금과 이자를 회수하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하며 주주가 되는 것은 최후의 선택일 뿐이다.

 

 주주 자본을 배제하고 채권자가 회사의 주인이 되면 채권은 이자와 원금의 지급이 확정되지 않은 ‘변형된 채권’이 되며, ‘변형된 채권’은 주식과 같은 불확실한 수익 구조를 가질 뿐만 아니라 채권자가 회사의 잔여재산에 대한 청구권을 갖게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채권 자본이 주주 자본과 같은 형태의 자본이 된다. 따라서 주주 자본을 허용하지 않고 채권자가 회사의 주인이 되는 형태의 회사는 결국 주식회사와 같아지고 결과적으로 주주 자본을 허용하는 것과 같아지는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주주 자본을 배제하고 부채 자본만 있는 체제에서는 기업이 추가 자본이 필요한 경우 또 다른 채권자로부터 빌려서 조달해야 한다. 만약에 추가 자본을 은행의 대출로 조달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 주주 자본이 배제된 체제에서는 은행도 주주 자본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은행 설립에 필요한 자본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은 국가뿐이다. 정부가 국가자본으로 은행을 설립하고, 은행이 국가자본을 기업에 다시 공급하는 형태의 기업만 존재하는 것은 공산주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국가가 은행을 소유하고, 은행들이 기업을 소유하게 되어 궁극적으로 국가가 많은 기업들을 소유하는 체제가 국가자본주의다.

 

 주주 없는 기업 3: 국가가 주인인 회사

 ο 국가가 지배하는 기업

 노동자, 공급자 그리고 채권자 이외에도 기업의 주요한 이해당사자의 하나가 사회, 즉 국가다. 국가 소유 기업은 국가가 기업을 소유하는 동기에 따라서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공공성이 높아서 시장에 맡길 수 없는 사업을 국가가 직접 수행하기 위해서 설립하는 경우다. 두 번째는 국가 경제에 필요하거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기업이지만 수익성이 없어서 사기업(私企業)이 하지 않거나 또는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기업이 하기 어려운 사업을 국가가 직접 하는 경우다. 세 번째는 국가가 기업들을 소유하고 직접 수익성 있는 사업을 시장에서 경쟁적으로 하는 국가자본주의다. 국가자본주의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수용하고 사기업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국가 소유 기업들을 정치적인 목적이나 국가재정의 확보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모든 기업을 국가가 소유하는 공산주의와는 다르다. 마지막 넷 번째는 국가가 모든 기업을 소유하고 운영하며, 자본주의와 시장을 허용하지 않는 공산주의 체제에서의 기업이다.

 

 한국의 경우, 공공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장에 맡기지 않고 국가가 직접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첫 번째 형태의 국가 소유 기업은 한국전력공사(KEPCO)과 한국철도공사(KORAIL)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이지만 정부가 51.1%의 지분을 소유한 공기업이다. 전기는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공급이 안정적이어야 하고 또한 모든 국민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공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발전과 송전 설비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경영이 필요하며, 대규모 투자 자금을 전적으로 정부가 제공하는 것은 재정 부담이 크다. 따라서 주식시장에 상장을 해서 일반 투자자 자금을 함께 투입해서 시장의 견제로 경영의 효율성을 유지하고, 동시에 정부가 5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해서 절대적인 경영권을 확보함으로써 공공성을 유지하는 경영을 하도록 하는 구조다.

 

 국가 경제에 필요하거나 사회적으로 필요해서 국가가 설립하거나 소유하는 두 번째 형태의 국가 소유 기업으로는 포항제철, 국민은행 그리고 우리은행 등을 들 수 있다. 포항제철은 1968년 설립 때 국가 소유 기업이었다. 당시에 산업 기반 구축을 위해서 제철소가 필요했지만 대규모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가 직접투자(直接投資)해서 독점적인 국영기업으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2000년 국가 소유 지분을일반 투자자들에게 매각하고 민영화를 해서 더 이상 국가 소유 기업이 아니다. 국민은행도 최초 설립 시 국가 소유 은행이었다. 서민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이 지극히 어려웠던 1960년대 서민들에게 소액 대출을 제공하는 목적으로 국가가 1963년 국민은행을 설립했다. 또한 1967년 서민들의 주택대출을 제공하는 목적으로 국가가 한국주택금고를 설립했고, 나중에 주택은행이 되었다. 이후 서민들의 대출이 시장 기능으로 가능해지게 되어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을 민영화하고 합병하는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국민은행이 되었다.

 

 우리은행의 경우는, 외환 위기 때 당시의 사기업이었던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되었으나 은행의 공공성 때문에 이를 파산하도록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국가가 공적자금을 투입한 후 두 은행을 합병해서 1999년에 한빛은행을 설립했고,2002년에 우리은행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우리은행의 지분을 100% 소유한 우리금융지주회사는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이지만 정부가 57%를 소유한 국가 소유 기업이다. 그러나 우리은행의 업무와 사업이 다른 일반 상업은행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계속해서 우리은행을 소유할 특별한 경제적인 이유가 없다. 따라서 우리은행은 궁극적으로 정부 지분을 매각하고 민영화를 해야 한다.

 

 사기업들이 할 수 있는 수익성이 있는 사업이지만 국가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부가 사업하는 세 번째 유형의 국영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드문 경우다. 한국의 경우에 과거 계획경제를 하던 시대에는 재정 확보의 목적으로 정부가 담배와 인삼 사업을 했다. 1950년대부터 정부 부처인 전매청이 담배와 인삼 사업을 독점적으로 해오다가 담배 시장이 개방되고 시장 환경이 경쟁적으로 변화하자, 1989년 공기업인 담배인삼공사를 설립했다. 1997년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1999년 주식시장에 상장을 한 이후 2002년 정부 보유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민영화를 하면서 KT&G로 이름을 변경했다. 한국은 시장경제로 전환한 이후에는 정부가 재정 확보의 목적으로 독점적인 사업을 하거나 사기업과 경쟁적으로 수익 사업을 하지 않는다.

 

 ο 국가자본주의

 국가 소유 기업의 세 번째 유형으로 국가가 기업을 소유하고 국유 기업들이 시장에 참여해서 수익성이 있는 사업을 통하여 국가재정을 확보하는 체제를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라고 한다. 국가자본주의가, 모든 기업을 국가가 소유하는 공산주의 체제와 다른 점은 주주 자본을 활용하고 경쟁적인 시장경제 체제를 수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하는 나라들에서도 공공성이 높은 사업을 국가가 독점적으로 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하는 나라와 국가자본주의를 하는 나라를 완벽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가자본주의를 시행하는 나라들은 ‘시장을 개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엔진으로 보기보다는 국가의 이익이나 또는 지배 엘리트들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본다’는 점이 시장경제를 하는 나라와 다른 점이다.

 

 국가자본주의를 시행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중국, 러시아 그리고 산유국들이다. 국가가 직접 소유한 독점기업들로 정부 재정을 확보한다. (@멕시코는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를 하는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멕시코는 헌법으로 에너지 자원 사업을 국가만이 하도록 정하고 있고, 국가 소유 기업(SOE, State Owned Enterprise)인 페멕스(Pemex)는 멕시코 최대 기업으로서 세계 34대 기업이다. 페멕스는 국가 수입의 40%를 기여할 정도로 멕시코 경제에서 중요한 기업이지만, 국회가 예산을 승인하고 정치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투자와 경영을 하지 못하고 매년 생산이 줄고 수입이 줄고 있다.)

 

 천연자원과 관련된 사업 이외에도 은행을 국가가 소유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은행들은 정책을 집행하기 위한 특수한 목적을 가진 은행이 아니라 일반 상업은행들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산업은행과 우리은행이 국가 소유 은행이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산업정책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은행이기 때문에 국가자본주의를 실시하는 나라에서 국가가 재정수입을 목적으로 일반 상업은행을 국가가 소유하는 경우와는 다르다. 또한 우리은행은 외환 위기 때 파산한 상업은행들에 국가가 공적 자금으로 자본을 출연해서 국가 소유 은행이 된 경우다.

 

 ο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주도로 개혁과 개방을 시작한 이후 지난 30년간 연평균 1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세계경제의 새로운 축으로 등장했다. <포춘(Fortune)>이 매출액 기준으로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에서도 미국 다음으로 많은 73개 기업을 가질 정도로 중국 기업들은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했다.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의 첫 번째 특징은,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하는 혼합 제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부가 많은 대기업들을 소유하고 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중국의 50대 기업 중에서 정부가 5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국가 소유 기업은 45개이며, 50% 미만의 지분을 소유하지만 국가가 대주주인 기업이 3개이다. 50대 기업중에서 국가가 지분을 소유하지 않은 사기업은 2개뿐이다. (@2012년 중국 50대 기업 중 정부 지분이 없는 사기업은 43위인 쟝수샤강국제무역[Jiangsu Shagang Group, 沙鋼集團]과 45위인 화웨이[Huawei Investmen t & Holding]이다.)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국가 소유 기업들이 공공성이 높은 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에 진출하고 있고, 둘째는 특정한 국가소유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지 않고 여러 개의 국가 소유 기업들이 시장에서 경쟁 체제를 이루고 있고, 셋째는 국가 소유 기업들의 상당수가 중국과 해외의 주식시장에 상장을 해서 주주 자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주주 중심 경영체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국유 기업들이 거의 모든 산업에 진출하고 있는 현상은 통상적으로 국영기업이 자연 독점적인 자원 사업이나 은행과 같은 공공성이 높은 제한된 규제 산업에만 진출하고 있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중국의 국가 소유 기업들은 자원 개발·은행·전력·철도·무기 생산과 같은 공공성이 높은 산업은 물론이고, 석유 에너지·자동차·조선·철강·기계 장비· 전자·항공기와 같은 제조업과 통신, 건설과 엔지니어링, 운송·판매·창고와 같은 유통업, 그리고 은행·보험·투자 등 금융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국가자본주의를 하는 대표적인 나라의 하나인 러시아의 경우에는 자동차, 통신, 소비자 산업, 유통, 건설 등의 산업에서는 정부 소유 기업이 진출하지 않고 사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 국가자본주의의 두 번째 특징은, 국가 소유 기업들이 석유, 전력과 통신 등의 규제 산업에서 독점적인 사업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는 40여 개가 넘는 중국의 자동차 기업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국가 소유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경쟁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가자본주의를 하는 나라에서의 국영기업들이 일반적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반면에 중국의 국영기업들은 치열한 경쟁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중국의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대부분의 자동차 기업은 직접 또는 간접으로 정부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 설립 과정에 로비와 특혜가 주어지며, 이로 인한 불공정과 부패가 발생한다. 따라서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의 경쟁은 자유 시장경제에서의 사기업들 경쟁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의 세 번째 특징은, 국가가 절대 지분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소유 기업들의 상당수가 중국 내 증권시장과 해외 증권시장에 상장하고 있어서 외부 자본을 유치하고 있다. 이는 자본 충당의 목적도 있지만, 주주 자본을 적극 활용하고, 주주 중심 경영 체제를 도입하여 지배 구조의 균형과 긴장을 유지하는 부수적 효과도 노린 것이다. 중국의 10대 기업은 모두 국가 소유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이 중에서 8개의 기업이 상장회사다. (@사이노펙(Sinopec, 중국석유화공집단)는 2000년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하고, 2001년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을 한 주식회사이며, 이후 뉴욕증권거래소와 런던증권거래소에도 상장을 했다. 2011년 말 지분 구조는 중국 정부 소유인 사이노펙 그룹이 75.84%, 국내 소액주주들이 4.81%, 그리고 해외 주주들이 19.35%를 소유하고 있다.)

 

 ο 국가자본주의의 문제

 국가 소유 기업들은 국내시장의 경쟁에서는 이길 수 있지만 세계시장에서 다국적기업으로 경쟁력을 가지고 성장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세계500대기업에 속하는 중국의73개 기업 중에서 중국 국내시장에서의 수요를 제외하면 중국 밖의 세계적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진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또한 러시아와 같이 국가자본주의를 실시하는 나라 중 원유와 가스 등의 자원 개발 기업을 제외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기업을 가진 나라는 없다.

 

 국가자본주의의 또 다른 문제는 국가 소유 기업과 민간 기업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국가 소유 기업의 이익이 우선될 수밖에 없어서 사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IMD(국제경영개발원) 세계 경쟁력 연보에 포함된 공정 경쟁의 평가에서 중국은 전체 59개 조사 대상 국가 중에서 51위, 러시아는 56위로 최하위권에 속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은행들이 국가 소유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이자율은 1.6%인 반면에 사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이자율이 4.7%로 사기업이 높은 금융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또한 이런 이자율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기업에 대한 대출이 까다로워서 2009년 중국 은행들의 총 대출 잔액 중에서 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했다. 또한 2009년 중국 은행들의 신규 대출 중에서 국가 소유 기업이 85%를 차지했고, 사기업 대출은 15%에 불과할 정도로 사기업은 자본조달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

 

 국가자본주의 나라에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업 경영이 투명하지 않고 부패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조사한 2011년 국가별 부패 인식 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에서 국가자본주의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의 부패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패를 국가 차원의 문제로 다루고 있는 중국은 75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정부 관료들이 국가 소유 기업의 임원을 겸하고 있는 러시아는 143위로 나타나, 부패의 정도를 짐작케 한다. 자원개발 산업에 국한해서 국가자본주의를 시행하는 나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브라질은 73위, 멕시코는 100위, 그리고 베네수엘라는 172위로 부패가 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IMD가 발행하는 세계 경쟁력 연보에 포함된 정부의 뇌물과 부패(bribing and corruption)항목에서 전체 59개 조사 대상 국가 중에서 중국은 48위, 러시아는 57위, 브라질은53위, 베네수엘라는 최하위인 59위를 기록했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도 매우 낮은 편이다. IMD 세계 경쟁력 연보에 포함된 59개 국가들의 기업의 회계와 감사의 적정성에서 중국은 56위, 러시아는 54위로서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2년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세계 105대 상장회사들의 기업 보고서의 투명성에 대한 조사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국가 소유 기업들이 최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6개 기업이 포함되어 있는데, 중국은행(中國銀行, Bank of China)이 105위로 꼴찌를 차지했고, 교통은행(交通銀行, Bank of Communications)이 104위, 중국건설은행(CCB)이 102위로 중국의 은행들이 최하위를 기록했다. 러시아의 최대 기업이며 국가 소유 기업인 가스프롬도 98위로 최하위권을 차지했다.

 

 국가자본주의를 시행하는 나라들 대부분이 사회문화적으로 부패가 만연한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에 기업 경영이 투명하지 못하고 부패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이 결합된 국가자본주의의 특성 때문에 사회와 기업이 부패한 것인지의 인과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에서는 정치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사회적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권력을 가진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이 경제 권력까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부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

 

 한국의 포스코(Posco)와 케이티는 본디 국가자본으로 설립한 국가 소유 기업이었다. 그러나 포스코는 2000년에, 케이티는 2002년에 민영화되어 이제는 정부가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ο 국가자본주의도 주주 자본을 활용한다

 금융 위기가 발생한 이후인 2008년부터 2012년까지의 기간 동안 세계경제의 침체 국면이 지속되어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미국은 0.8%, 영국은 -0.6%, EU 국가들이 -0.2%을 기록했다. 반면 중국은 9.3%, 러시아는 1.9%, 브라질은 3.2%로 세계경제의 침체 국면에서도 이들 국가자본주의를 시행하는 나라들은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국가자본주의를 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국가 소유 기업들이 국가자본뿐 아니라 주주 자본을 함께 활용한다. 중국은 주식시장에 상장한 국가 소유 기업들이 MSCI(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 중국 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차지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MSCI은 국제적인 투자자들이 벤치마킹하는 주가지수를 구성하고 운영한다. 전 세계 주가지수, 선진국 주가지수, 신흥 시장 주가지수, 그리고 각 나라별로 주가지수를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의 경우에도 국가 소유 기업의 비중이 62%에 이르며, 브라질은 38%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 신문인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가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선정한 세계 500대 상장회사 중에서 중국의 기업은 2002년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2012년에는 22개의 중국 기업들이 포함되었고, 이들의 500대 기업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5%로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높아졌다. (@〈파이낸셜 타임즈〉가 2012년 상장회사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한 세계 500대 기업에서 미국이 173개 기업이 포함되고 시가총액 비중은 41.1%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미국이 2002년에는 238개 기업에 57.3%를 차지한 것과 비교하면 크게 감소한 것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중국의 기업들이 크게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다.) 러시아도 FT 500대 기업에 2002년 네 개 기업이 포함되었고 시가총액의 비중은 0.4%에 불과했으나, 2012년에는 열 개 기업이 포함되었고 시가총액의 비중도 2.1%로 크게 증가했다. 한국은 2002년 여섯 개 기업에 0.7%의 비중을 차지했고, 2012년에는 여덟 개 기업에 1.5%의 비중을 차지한 것과 비교해보면 국가자본주의를 시행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지난 10년 동안 주주 자본과 주식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처럼 국가자본주의는 시장경제를 유지하면서 주주 자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으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이념이 아니며, 공산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거나 중앙정부 계획경제의 새로운 형태가 아니다.’ 따라서 국가자본주의는 국가가 모든 기업을 소유하고 주주 자본을 배제하는 공산주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주주 자본 아니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ο 현실적인 대안들과 더욱 현실적인 제약들

 이렇게 공동 결정모델이나 협동조합 모델, 국가자본 모델들도 주주 자본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 자본과 혼용되거나 결합하거나 변형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에 주주 자본을 완전히 배제한 모델은 공산주의뿐이다. 공산주의는 사유나 사기업을 허용하지 않고 모든 기업을 국가가 설립하고 소유하기 때문에 주주 자본뿐만 아니라 자본 자체가 완전히 배제된 체제다.

 

 ο 비판을 위한 비판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양한 대안 모델들조차 주주 자본과의 협력 구조를 모색하는 것이 성공의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며, 더욱이 주주 자본주의 비판자들이 제기한 주주 자본이나 주식회사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보편적인 대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분적으로는 자본과 노동의 상이한 이해관계를 일치시킬 수는 있지만, 다른 이해당사자와의 갈등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어느 특정 형태만이 자본의 속성이나 모순의 근원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객관성을 상실한 논리다.

 

 주주 자본주의 비판자들은 그 근거로 투기적 단기 투자나 단기 성과주의, 주주 중심경영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것들은 주주 자본주의의 속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주주들의 행태적인 현상과 주주 자본의 근본적인 속성은 구별되어야 한다. 행태적인 문제들은 제도적인 변화를 통해서 개선하고 교정해 나갈 수 있다. 또한 주주 자본이 갖는 본질적인 속성의 문제, 즉 주주 중심주의는 주주 자본을 대체하는 대안적인 자본을 창출함으로써 일부 극복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특정 경영 방식의 특정 회사 제도를 채택하는 어느 특정 형태의 자본이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특정 당사자의 이해가 중심이 되는 자본 일반의 속성을 피하기는 어렵다. 자본 또는 자본주의의 본질은 소유이며, 어떤 주체의 소유라고 할지라고 소유가 가지고 있는 소유자 중심이라는 속성은 모두 동질하다.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한 이후 일부에서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견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금융 위기를 계기로 노출된 문제들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자본주의로 진화해 나갈 방향과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 찾기의 노력은 너무도 많은 문제들을 드러낸 기존의 자본주의가 이대로 계속될 수 없다는 점에서 필연적이고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이상론 외에는 현실적으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체제 자체를 대체할 대안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진화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과거의 소비에트연방(Soviet聯邦)이 해체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 러시아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가슴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국가자본이 기업을 소유하는 러시아의 국가자본주의조차도 과거의 공산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수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4. 한국 경제는 정말 먹튀에 휘둘렸나? 

 외국인의 주식 자금과 부채 자금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 자금도 주식 자금과 부채 자금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주식 자금은 세 가지 경로를 통해서 들어온다. 첫째는 외국인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상장 주식을 매입해서 들어오는 자금이고, 둘째는 한국 기업이 해외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발행해서 조달하는 자금이며, 셋째는 외국인이 한국 기업에 직접투자를 해서 들어오는 자금이다. 부채 자금은 다섯 가지 경로를 통해서 들어온다. 첫째는 한국 금융회사들이 해외 금융회사로부터 차입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한국 기업들이 해외 금융회사로부터 차입하는 경우이며, 셋째는 한국 기업이 해외 증권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해서 조달하는 자금이며, 넷째는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증권시장에서 채권을 매입해서 들어오는 자금이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한국 정부가 해외에서 국채를 발행해서 조달하는 자금이다.

 

 주식 자금의 세 가지 유형 중에서 가장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금은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주식을 발행해서 조달한 자금이다. 주식은 발행한 회사가 원금을 상환해주지 않기 때문에 해외에서 주식 발행으로 조달되어 한국으로 유입된 자금은 그 주식이 상장폐지 되지 않는 한 영원히 한국에 머무는 자금이다. 외국 투자자가 한국 기업에 직접투자해서 들어온 자금이 주식 자금 중에서 두 번째로 장기적인 자금이다. 직접투자는 GM이 대우자동차를, 그리고 마힌드라(Mahindra)가 쌍용차를 인수한 것과 같은 경우다. 이 자금은 한국 기업을 소유하고 경영할 목적으로 들어오는 자금이기에 기업을 매각하거나 청산하지 않는 한 한국에 머무는 자금이다. 주식 자금 중에서 가장 단기적인 자금은 외국인이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해서 유입되는 자금이다. 이 자금은 언제든지 주식을 되팔아서 투자 자금을 회수하고 한국을 떠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가 단기적이고 투기적이라고 비난받는 부분이 바로 주식시장을 통해서 유입되는 자금이다.

 

 다섯 가지 경로를 통해서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부채 자금 중에서 가장 장기적인 자금은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해서 들어오는 자금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는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기 때문에 만기가 길며, 기업이 만기에 원금을 상환할 때까지는 한국에 머무는 자금이다. 외국인들이 국내 채권시장에서 채권에 투자해서 유입된 자금은 만기 이전에 채권을 매도하고 떠날 수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 직접 채권을 발행해서 조달한 자금보다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한국 기업이 해외 은행으로부터 차입하는 경우는 대체로 해외 채권 발행의 경우보다 만기가 짧으며, 금융기관 간의 차입은 일반적으로 단기성 자금이기 때문에 한국 금융회사들이 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해서 유입되는 자금은 만기가 더 짧다. 정부가 해외에서 국채를 발행해서 차입하는 자금은 외환 보유고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외국 화폐나 외국 증권으로 보유하기 때문에 국내시장에 직접 자금이 공급되는 경우는 제한적이다. 1997년 외환 위기 상황에서 외국인 자금이 급속하게 한국을 빠져나가서 외환 보유고가 급격하게 감소하자,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은 12월 외환보유고는 1993년 12월 이후 최저치로 하락한 상황이었다. 당시 금 보유량과 IMF 특별인출권 등을 제외한 순수한 외환 보유고는 1996년 6월에 최고치인 357억 달러였다. 한보철강 부도가 발생한 이후인 1997년 2월 약간 줄어들었다가 다시 증가해서 1997년 7월에는 329억 달러였다. 그러나 9월 기아자동차의 부도 이후 경제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외환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2월 24일에는 87억 달러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89억 달러에는 세계은행이 지원한 30억 달러와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지원한 20억 달러를 제외하면 한국 자력에 의한 외환 보유고는 37억 달러로 줄어든 급박한 상황이었다.) 한국 정부가 외국에서 국채를 발행해서 외화 자금을 확보한 것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또한 외환 위기 당시 정부가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서 외환 보유고를 확보한 것도 정부가 외국 부채 자금을 조달한 것이며, 2008년 금융 위기 때 한국은행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RS)와 한국의 원화와 미국의 달러를 맞교환하는 통화 스왑(currency swaps)을 통해서 외환 보유고를 확보한 것도 실질적으로 정부의 해외 차입이다.

 

 주식 자금과 부채 자금의 여덟 가지를 통틀어서 비교하자면 한국의 입장에서 가장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외국 자금은 역시 해외 주식 발행으로 조달하거나 직접투자를 통해서 들어온 주식 자금이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해서 조달한 부채 자금도 앞의 두 가지 주식 자금보다는 덜 장기적이지만 다른 자금과 비교해서는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자금이다. 나머지 국내 주식시장으로 유입된 외국인 주식 자금과 한국 기업이나 금융회사가 해외에서 차입한 부채 자금 중에서 어느 자금이 더 장기적이거나 또는 덜 안정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게 결론짓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주식시장을 통해서 들어오는 외국인 주식 자금이 가장 단기적이고 투기적인 자금이며, 금융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외국인 부채 자금이 주식시장을 통해서 들어오는 외국인 주식 자금보다 안정적인 자금으로 인식되고 있다.

 

 1997년 외환 위기 때 외국인 주식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고 한국을 빠져나가서 외환 위기가 더 심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외국인 주식 자금은 단기성 투기 자금이라는 인식을 더욱 강화시켰다. 주식 자금은 언제든지 시장에서 주식을 팔아서 투자 자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 투자를 한 경우에도 단기적인 자금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부채 자금은 반드시 만기가 되어야 원금을 상환하기 때문에 주식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부채 자금은 회사 경영에 문제가 없고 한국 경제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만기가 도래한 후에도 다시 만기를 연장해서 계속해서 사용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더욱 안정적이고 장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국인 부채 자금이 외국인 주식 자금보다 반드시 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금이라는 것은 아니다. 특히 기업의 경영 상황이 악화되거나 경제가 불황에 접어들어서 미래에 원금 상환이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위험이 커지면 부채 자금은 만기를 연장하지 않고 원금을 회수한다. 따라서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외국인 부채 자금이 외국인 주식 자금보다 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자금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1997년 외환 위기 상황에서의 외국 자본

 상식적인 판단과는 반대로 외환 위기 상황에서 실제로는 주식 자금이 부채 자금보다 상대적으로 적게 떠났다. 그리고 외환 위기가 진정된 상황으로 전환되면서 외국인 주식 자금은 오히려 한국으로 다시 들어와서 외환 위기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크게 증가했지만, 외국인 부채 자금은 한국이 외환 위기를 완전히 벗어난 것을 확인할 때까지 돌아오지도 않았고 계속해서 한국을 ᄈᆞ져나갔었다.

 

 ο 외국인 부채 자금

 외환 위기가 발생하기 전인 1996년 한국의 해외 부채 중에서 95%가 민간 부문이었고, 정부와 한국은행의 외화 차입인 공공부문은 5%에 불과했다. 그러나 외환 위기가 발생한 이후에는 민간 부채가 급격하고 줄고 공공 부문은 상당히 늘어났다. 외환 보유고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국가 부도 사태 직전까지 몰리자 정부와 한국은행이 긴급하게 IMF, 세계은행(IBRD) 등의 국제기구로부터 대규모 차입을 하고, 정부가 직접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해서 외화를 조달했다. 민간 부채는 빠져나가고 공공 부문의 해외부채는 급격하게 증가해서 위기가 발생한 지 몇 달만인 1998년에는 공공 부문이 전체 해외 부채의 30% 이상을 차지했다. 한편 이와 같은 긴급 구제금융 성격의 공공 부문의 해외 부채는 주로 외환보유고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유하기 때문에 시중에 유통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외환위기 상황에서 외국인 부채 자금의 행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공공 부문을 제외하고 민간부문만으로 판단한다.

 

 민간 부문의 해외 차입은 외환 위기가 발생하기 시작한 1997년 9월 당시까지 역사상 최고치인 1,639.3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러나 외환 위기가 발생하자 12월까지 3개월 동안 11.8%인 193.5억 달러가 줄어들었다. 12월 초 IMF가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 상황은 진정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었다. 12월 24일 G7 국가들이 80억 달러를 직접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IMF가 구제금융을 조기에 집행하기로 결정하자 외환 위기는 12월 말부터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서 안정세로 돌아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부채 자금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한국을 빠져나갔다. 1998년 첫 3개월 동안 추가로 116억 달러가 감소하고, 1998년 연말까지는 270억 달러가 빠져나가서 외환 위기 발생한 때부터 28.3%가 한국을 빠져나갔다. 이후 한국이 2001년 8월 IMF 구제금융을 모두 상환하고 실질적으로 외환 위기 상황이 종결될 때까지도 외국인 부채 자금은 계속 감소해서 2001년 말까지 1997년 9월 외환 위기가 시작된 때와 비교해서 40.1%에 해당하는 657억 달러가 한국을 떠났다. (@한국이 IMF의 구제금융을 전액 상환하고 공식적으로 IMF 관리 체제를 졸업한 것은 2001년 8월이다. IMF 관리 체제 졸업 직후인 2001년 3/4분기, 즉 9월까지 위기가 발생한 1997년 9월 말과 비교해서 해외 부채는 39.0%인 640억 달러가 줄어들었다.)

 

 채권은 계약상 약속된 만기 시점 이전에는 채무자가 원금을 상환할 의무가 없고, 채권자도 임의 상환 요구 계약 조건이 없다면 만기 이전에 원금을 회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 위기가 발생한 직후 외국인 부채 자금이 대규모로 빠져나간 것은 외환 위기 발생 당시의 한국 외화 부채의 절반이 만기가 1년 미만인 단기 부채였던 까닭이다. 외국인 단기 부채 자금은 외환 위기가 절정에 이른 12월 말까지 3개월 동안 20.8%가 한국을 떠났고, 1년 후인 1998년 12월 말까지 절반인 50.8%가 한국을 떠났다. 1998년 12월 말까지 단기 부채는 408.9억 달러가 줄어들었고, 민간 부분 총 해외 부채는 463.6억 달러가 줄어들어서 대부분 단기 부채 자금들이 한국을 떠났다. 외환 위기가 종결된 2001년 말까지 단기 부채는 401.8억 원이 줄어든 반면에 민간 부문의 해외 부채는 이보다 훨씬 많은 657.5억 달러가 줄어들었다. 따라서 이는 단기 부채만이 아니라 장기 부채들도 상당 부분 한국을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외환 위기가 지속된 기간 동안 전체 외국인 부채 자금은 40%가 한국을 떠났으며, 외환 위기가 발생한 직후에는 주로 단기 부채 자금이 한국을 빠져나갔고, 위기 상황이 진정된 이후에는 단 기부채자금은 오히려 안정세를 유지한 반면에 장기 부채자금들은 지속적으로 한국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즉 시차는 있지만 해외에서 유입된 부채 자금은 장·단기 할 것 없이 상당 부분 한국을 떠났다. 

 

 ο 외국인 주식 자금

 한국이 1992년 주식시장을 외국인 투자자에게 개방한 이후 외국인 주식 자금은 꾸준하게 유입되었다.

 

 외국인 주식 자금 규모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자료가 없어 자금의 변동 규모를 추정하는 방법으로 외국인 투자자가 외환 위기 이후에도 한국 주식시장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머물렀다고 가정할 경우 주가 변동을 반영한 외국인 주식 보유 시가총액을 구했다. 그러한 가정하에서의 추정치와 위기 이후의 외국인 보유 주식의 실제 시가 총액 차이를 외국인 주식 자금이 주식시장에 들어오고 나간 규모로 추정했다. (@코스닥은 1996년 설립되어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한 시점에 코스피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규모도 작았고 외국인 투자자의 보유 비중도 낮았다. 1997년 말 기준으로 코스피 시장의 시가총액은 71조 원인 반면 코스닥의 시가총액은 70.7억 원으로 코스피 시장의 0.01%에 불과했다.)

 

 이 방법으로 추정한 외국인 주식 자금은 외환 위기가 발생한 9월 이후 10월 한 달 동안 7.0%가 한국 주식시장을 떠났다. 11월에는 큰 변동이 없다가 12월부터는 외국인 주식 자금이 다시 주식시장으로 유입되기 시작해서 12월 말에는 9월말보다 오히려 7.9%가 늘어났다. 외환 위기가 진정 국면으로 전환되었음에도 주식시장에서의 주가는 계속해서 하락해서 1998년 6월 중에는 외환 위기가 시작된 때와 비교해서 절반 이하로 폭락했다. (@1997년 9월 30일 종합주가지수는 647.11이었다. 이후에 1998년 6월 16일 280.00으로 56.7%가 하락해서 외환 위기 발생 이후 최대 하락치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종합주가지수는 300대에 머물다가 8월과 9월에도 다시 300선이 무너졌다. 종합주가지수는 11월에 들어서서 400선으로 회복했고 12월 말에는 562.46을 기록해서 외환 위기가 시작된 1997년 9월 말의 87% 수준으로 회복했다.) 이러한 주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주식 자금은 1998년 중에 지속적으로 한국으로 유입되어 연말까지는 외환 위기가 시작된 시점보다 78%가 증가했다.

 

 주가가 가장 많이 하락한 1998년 6월 외국인 보유 주식의 비중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19.5%를 차지했다. 이는 1997년 9월 말 13.7%보다 크게 증가한 것이며, 한국 투자자들이 매도한 주식을 외국인 투자자들이 사들인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외환 위기가 진행된 중에 주식시장을 떠난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 투자자들이었다. 1998년 이후에도 외국인 주식 자금은 지속적으로 주식시장에 유입되어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전액 상황하고 외환 위기를 종결한 2001년 말까지는 외환 위기 시작 시점과 비교해서 다섯 배가 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같이 외국인 주식 자금은 외환 위기 초기에 일부가 주식시장을 빠져나갔지만 실제 그 규모가 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외환 위기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 진정 국면으로 접어든 이후부터 외환 위기가 종결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한국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은 금액으로는 외환위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1997년 6월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보유 비율로는 8월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환 위기 이후 주식시장을 빠져나간 외국인 주식 자금의 최대 규모는 10%를 넘지 않으며, 외환 위기가 종결된 2001년 말까지 다섯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환 위기 상황에서 외국인 주식 자금이 얼마나 한국을 떠났는가를 판단해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한국은행이 작성하는 국제 수지 통계를 근거로 금감원이 외환 위기 이후 발표한 외국인 투자동향 분석 중에서 외화 자금 순유입 통계를 이용하는 것이다. (@달러 대비 환율이 1992년 초 758.20원 이었고 1997년 초 843.40원, 1997년 9월 말 914.40원 그리고 1997년 12월 말 1695.0원이었다. 종합주가지수는 1992년 초 624.23이고, 1997년 1월 초 653.79, 1997년 9월 말 647.11이고, 12월말 376.31이었다.) 주식시장을 개방한 이후 외국인 주식 자금 순유입액의 누적 총액은 계속 증가해서 외환 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인 1997년 7월 말에 시장 개방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외환 위기가 발생한 이후 감소하다가, 외환 위기 상황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든 1998년 초부터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후에도 외국인 주식자금은 지속적으로 순유입을 기록해서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전액 상환하고 외환 위기를 공식적으로 벗어난 2001년 말에는 외환 위기 이전보다 두 배 반 규모로 증가했다. (@1992년 1월 주식시장을 개방한 이후 외국인 주식 자금의 순유입액의 누적 금액은 외환 위기가 시작된 1997년 9월 186.6억 달러였고, 외환 위기가 완전히 종결된 2001년 12월 467.1억 달러로 외환 위기 상황이 지속된 기간 동안 외국인 주식 자금은 280.5달러가 늘어났다.)

 

 외환 위기가 급박하게 진행되고 국가 경제가 파산 위기에 직면한 순간의 몇 달 동안에도 외국인 보유 주식의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추정한 경우에는 외국인 주식 자금의 유출 규모는 7~9%이며, 외국인 주식 자금 순유입액을 기준으로 추정한 경우에는 8~10% 수준이다. 결론적으로 외환 위기 상황에서 한국 주식시장을 빠져나간 외국인 주식 자금은 최대 10% 정도인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위기 최고점이 지나자 바로 다시 들어왔고, 그 이전보다 훨씬 대규모로 들어왔다.

 

 ο 떠난 부채 자금, 들어온 주식 자금

 외환 위기 초기에는 외국인 주식 자금과 부채 자금은 모두 한국을 떠났지만 주식 자금의 유출 비율이 부채 자금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리고 외환 위기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난 이후에는 외국인 주식 자금은 한국으로 다시 유입되기 시작해서 외환 위기 발생 때보다 외국인 주식 자금이 더 많아졌지만 외국인 부채 자금은 계속해서 한국을 떠났다.

 

 외국인 부채 자금이 외환 위기 초기에 대규모로 빠져나가지 않고 이후에 더 많이 빠져나갔던 것은 만기가 도래할 때만 상환 받을 수 있는 부채 자금의 계약상 특성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외환 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1997년 12월에 만기가 도래한 외국인 부채 자금은 80~90%가 상환되어 한국을 빠져나갔고, 만기를 연장해서다시 빌려준 자금은 10~20%에 불과했다. 그러나 12월 중에 만기가 도래한 채권의 비중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위기 초기에는 외국인 부채 자금이 대규모로 빠져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1998년 들어서서 외환 위기가 안정된 상황에서도 만기가 도래한 외국인 부채 자금들은 상당 부분이 만기를 연장하지 않고 원금을 상환 받았으며, 유출 규모가 계속 늘어나 한국이 IMF의 구제금융을 완전히 상환하고 외환 위기가 종결된 2001년 말까지는 40.1%가 한국을 떠났다.

 

 주식 투자자들은 외환 위기가 발생하자 주가 폭락으로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더구나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가 하락만이 아니라 원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으로 인해서 달러화로 환산한 투자 손실까지 겹쳐서, 전체 손실 규모가 국내 주식 투자자들보다 훨씬 더 컸다. 주가는 외환 위기가 발생한 이후 같은 해 연말까지 거의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고, 같은 기간 동안 환율은 두 배가 올랐기 때문에 달러화로 환산한 외국인 주식 투자자의 투자가치는 3분의 1 수준 이하로 줄어들었다. (@종합주가지수는 1997년 9월 30일 647.11이었고 1997년 중 최저치를 기록한 12월 24일 351.45, 12월 말 376.31이었다. 달러 대비 환율은 9월 30일 914.4원이었고, 12월 24일 1836.0원이었으며, 12월 말 1695.0원이었다. 9월 말을 기준으로 위기 상황이 최고조에 달한 12월 24일 주가는 45.7%가 하락했고, 같은 기간 달러 대비 환율은 100.8%가 상승해서 달러화로 환산한 외국인 주식 투자자의 투자가치 손실은 외환 위기가 시작된 이후에 73%나 되었다.) 외국인 주식 투자자들이 투자 자금을 회수하고 한국을 떠나려고 했어도 이미 주가 폭락으로 투자가치가 3분의 1이하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투자 손실을 모두 감수하고 쉽게 한국을 떠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또한 환율이 급등했기 때문에 추가로 투자 자금을 한국에 가져올 경우 외환 위기 발생 전보다 유리한 환율로 투자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신규 외국인 주식 자금이 유입되기도 했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외환 위기가 시작된 시점과 비교해서 외환 위기가 종결된 2001년 연말까지의 장기적인 추세에서도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된 외국인 주식 자금은 다섯 배가 넘는 규모로 증가했고, 반면에 외국인 부채 자금은 40%가 한국을 떠났다. 결론적으로 외환 위기 발생 직후의 급박한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이후에 외환 위기가 진행된 상황에서도 주식 자금은 부채 자금보다 더 안정적으로 한국에 머물렀으며, 오히려 증가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는 일반적으로 외국인 주식 자금이 외국인 부채 자금보다 단기적이고 투기적일 것이라는 짐작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2008년 금융 위기 상황에서의 외국 자본

 1997년 외환 위기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신흥 시장 국가에서 시작되었고, 위기가 경제에 미친 영향도 동아시아 국가들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 위기는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전 세계적인 위기로 확산되어 거의 모든 나라의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외환 위기 때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997년 4.7%, 1998년 –6.3%이었으나 세계경제의 성장률은 1997년 3.8%, 1998년 2.4%였다. 그러나 금융 위기 때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08년 2.3%, 2009년 0.3%인 반면에 세계경제의 성장률은 2008년 1.4%, 2009년 –2.3%를 기록했다.) 1997년에는 한국을 포함한 신흥 시장 국가에 투자하거나 자금을 대출해준 미국과 유럽의 투자 기관들과 은행들은 한국의 위기 상황으로 인해서 투자가치가 하락하고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해서 자금을 빼갔다. 그러나 2008년에는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과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유동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한국의 투자 수익과 무관하게 대출과 투자를 회수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ο 외국인 부채 자금

 한국의 민간 부문 외국인 부채 자금은 미국의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인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가 파산해서 금융 위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2008년 9월 말에 3,116.5억 달러로 사상 최고 수준이었다. 그러나 금융 위기가 시작되자 12월 말까지 15.0%에 해당하는 467.5억 달러가 줄어들었고, 이듬해인 2009년 3월 말까지 17.3%에 해당하는 540억 달러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2009년4월 이후부터는 외국인 부채 자금이 다시 유입되기 시작해서 이후에는 더 이상의 유출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금융 위기 발생 이후 외국인 부채 자금은 최대 17.3%가 한국을 떠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발생 초기의 외국인 부채 자금의 유출 행태는 1997년 외환 위기 때와 매우 유사했다. 총 외국인 부채 자금의 17% 정도가 한국을 떠났고, 그 중에서 단기 부채 자금은 이보다 높은 비중인 26%가 한국을 떠났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한 이후 6개월이 지난 다음부터는 더 이상 빠져나가지 않고 다시 유입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외환 위기 때 수년간 지속적으로 빠져나갔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 주었다.

 

 ο 외국인 주식 자금

 종합주가지수는 10월 중 연초 대비 50.5%가 하락해서 주가가 반 토막이 났는데, 이러한 주가 폭락은 1997년 외환 위기 때와 비슷한 양상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1997년 외환 위기 때는 주가 폭락 현상이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에 국한되었지만, 2008년 금융 위기 때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2008년 9월 이후 12월 말까지 주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주식시장 이탈은 3%에 불과했고, 이후 2009년에 들어서서 4월까지 누적으로 5.4%가 한국 주식시장을 떠났다. 하지만 이후에는 증가세로 돌아서서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주식 자금이 한국을 크게 빠져나가지 않았다. 외국인 부채 자금이 2009년 3월 말까지 17.3%가 빠져나간 것과 비교하면 외국인 주식 자금의 5.4%의 이탈은 놀라울 정도로 작은 규모다.

 

 미국의 투자 업계는 금융 위기가 현실화되기 이전인 2007년 6월 미국의 헤지 펀드(hedge fund)인 베어 스턴스(Bear Stearns)의 손실이 알려진 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프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로 인한 금융 위기는 미국의 헷지 펀드인 베어 스턴스가 2007년 6월에 자신들이 관리하던 펀드인 ‘Bear Stearns High-Grade Structured Credit Fund’에 32억 달러를 담보 제공으로 구제금융을 받음으로써 실질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치달을 것으로 판단하지 않았고, 금융 위기는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 신청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따라서 아직 위기 상황으로 치달을 것으로 판단되지 않았던 2008년 초를 기준하여 외국인 주식자금의 변동 상황을 추정해보면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한 9월 말까지 이미 시가총액 기준으로 13.4%가 줄어들었고, 12월까지는 16.0%, 그리고 이듬해 4월까지는 최고치인 18.1%가 한국 주식시장을 떠났다. 이후에는 다시 외국인 주식 자금이 유입되어서 2009년 12월 말에는 원래의 수준을 회복했다. 따라서 외국인 주식 자금은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해서 금융 위기가 현실화된 2008년 9월을 기준으로 할 때는 5.4%가, 그리고 아직 위기가 구체화되지 않은 시점인 2008년 1월 초를 기준으로 할 때는 18.1%가 한국을 빠져나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1997년 외환 위기 때와 비교해보면 외국인 주식 자금은 금융 위기 때가 더 많이 빠져나갔고, 외국인 부채 자금은 훨씬 더 작은 규모가 한국을 빠져나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 상황에서도 외국인 주식 자금이 외국인 부채 자금보다 더 많이 한국을 빠져나갔다고 추정할 만한 근거는 없다.

 

 두 번의 위기 경험에서 얻은 교훈

 ο 부채 자금보다 안정적이었던 주식 자금

 (@1997년 외환 위기 때는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은 홍콩 -6.0%, 인도네시아 -13.1%, 일본 –2.0%, 말레이시아 –7.4%, 싱가포르 –2.1%, 태국 –10.5%, 필리핀 –0.6%이었다. 그러나 미국 4.5%, 영국 3.8%, 그리고 EU(유럽연합) 평균 3.0%로 선진국들은 경기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1997년 외환 위기 때는 한국 외환보유고가 거의 바닥나서 국가 부도 사태(Moratorium)로 치닫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 위기때는 외환보유고가 2600억 달러에 이르렀고, 이후에 2000억 달러 수준까지 줄어들기는 했지만 위기에까지 이른 상황은 아니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외환 위기가 시작된 다음 해인 1998년 –6.9%로 경제가 크게 축소되는 상황이었으나 금융 위기가 발생한 다음 해인 2009년 0.3%로 경기불황 상황이었다.  외환 위기 이후에는 기업 어음의 부도율이 1996년 0.14%에서 1997년 0.4%, 1998년 0.38%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러나 금융 위기때는 2007년 0.02%에서 2008년 0.03%, 2009년 0.03%로 기업 부도가 안정적이었다. 외환 위기가 시작된 1997년 실업률은 2.6%, 실업자는 56.8만 명이었으나, 이듬해인 1998년 실업률은 7.0%, 실업자는 149만 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해서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금융 위기때 실업률은 2008년 3.0%에서 2009년 3.4%로 약간 증가했고, 실업자도 2008년 72.5만 명에서 2009년 82.9만 명으로 약간 증가한 정도였다.) (@2008년과 2009년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은 다음과 같다: 중국 9.6%, 9.2%; 홍콩 2.3%, -2.7%; 인도네시아 6.0%, 4.6%; 말레이시아 4.8%, -1.6%; 필리핀 4.2%, 1.1%; 싱가포르 1.5%, -0.8%; 태국 2.5%, -2.3%) (@선진국들의 경제성장률은 미국이 2008년 –0.3%, 2009년 –3.5%를 기록했고, 영국은 2008년 –1.1%, 2009년 –4.4%를 기록했다. EU도 2008년 0.3%, 2009년 –4.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금융 위기에 이어서 재정 위기를 겪은 그리스, 스페인 등은 2010년에도 각각 이후에도 –3.5%와 –0.1%의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했다.)

 

 외환 위기 때인 1997년 한국 주가는 12월 중에 연초 대비 46.2%가 하락했고, 이듬해인 1998년 6월에는 57.2%까지 하락해서 주가가 반 토막 이하로 폭락했다. 그러나 외환 위기가 미국 등의 선진국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 등의 선진국 주식시장은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주가지수인 다우존스 산업 평균 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는 1997년 한 해 동안 22.3% 상승했고, 영국의 FTSE(Financial Times Stock Exchange) 100지수는 14.5%가 상승했다.) 2008년 금융 위기 때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대부분 국가들의 주가가 다 함께 대폭락을 했다. 한국은 2008년 10월에 주가가 연초 대비 50.5% 하락해서 외환 위기 때와 비슷하게 반 토막이 났었고, 미국과 영국 등의 유럽 국가들도 대부분 2008년 연초 대비주가가 절반 또는 그 이하로 대폭락을 했다. (@2008년 연초 대비 한국은 10월 24일 50.5%, 홍콩은 10월27일 69.1%, 중국은 11월 4일 67.6%가 하락했고, 싱가포르는 2009년 3월 9일 58.0%까지 하락했다. 미국은 2009년 3월 9일 53.9%, 영국은 2009년 3월 3일 45.6%가 하락했다. 20120년 들어서서 재정 위기로 치달은 그리스는 2009년 3월 9일 71.6%, 그리고 이탈리아는 2009년 3월 9일 64.9%가 하락했다.) 

 

 한국의 외환보유교 변화는 외환 위기와 금융 위기때 서로 다른 양상을 보였다. 1997년 중 외환 보유고는 7월에 337억 달러로 당시까지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환 위기가 발생한 이후 11월 말에는 244억 달러로 줄어들었고, 12월 말에는 IMF와 세계은행의 구제금융 일부를 지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4억 달러로 연초 대비 39.4%가줄어들었다. 그러나 외환 보유고 중에서 실제 사용 가능한 규모는 60억 달러에 불과해서 국가 부도 사태의 위험으로 치닫는 극한적인 상황이었다. 금융 위기가 있었던 2008년 중에 외환 보유고는 3월 2,642억 달러로 당시까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금융 위기가 발생한 이후인 11월 2005억 달러로 24.1%가 감소했다. 2008년의 무역 규모가 1997년보다 세 배 정도 증가한 반면에 외환 보유고는 1997년 외환 위기 때와 비교해서 여덟 배 가까이 증가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1997년 한국의 수출과 수입을 합한 무역 규모는 2803억 달러(수출 1382억 달러, 수입 1421억 달러)이며, 2008년 무역 규모는 8641억 달러(수출 4347억 달러, 수입 4294억 달러)로 1997년보다 세 배 정도 증가했다.) 무역 규모가 성장한 것보다 외환 보유고가 훨씬 많이 증가했기 때문에 외국인 자금이 한국을 빠져나가도 외환 위기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외환 보유고가 충분하기는 했지만 원화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한 상황에서 금융 위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사상 최고 수준의 외환 보유고도 안전장치가 되지 못했다. 외환 보유고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하자, 한국 정부는 미국과 2008년 10월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왑 (@통화 스왑이란 두 나라가 서로 자국의 통화를 맞교환하는 것이다. 달러는 국제결제 수단으로 세계적으로 유통이 되는 화폐이고, 한국의 원화는 국제결제 수단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화폐이기 때문에 국제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한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통화 스왑을 체결한 것은 원화를 담보로 미국으로부터 달러를 빌린 것과 같은 효과를 같는다.) 협정을 맺어서 외환 보유고 감소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완화시켰고, 12월에는 한-중, 한-일 간에 각각 300억 달러의 통화 스왑에 합의해서 외환 보유고 감소에 대한 우려를 해소했다.

 

 (@2011년 말 외국인 투자자의 보유 주식 시가총액 기준 국가별 비중은 미국이 41.4%로 가장 많고, 영국이 10.7% 그 다음으로 많다. 북미의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유럽 국가들을 제외한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의 아시아와 기타 지역의 국가들의 비중은 20% 정도다. 북미와 유럽 국가 이외에 가장 많은 투자 비중을 가진 나라는 싱가포르 5.2%, 사우디아라비아 3.8%, 아랍에미리트(UAE) 2.0%, 일본 1.7%, 그리고 중국 1.1%이다.)

 

 ο ‘풍랑 효과’와 ‘욕조 효과’의 함정

 한국이 외국 자금 유출입을 자유화한 1990년 이후의 외국 자금 이동 행태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주식 자금이 부채 자금보다 자본 유입의 변동성이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한 결과는 경기가 확장되는 국면에서나 수축되는 국면에서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외국인 자금 유출입의 지속성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주식 자금이 부채 자금보다 보다 오랫동안 한국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외국인 주식 자금의 순유입은 경기 상황에 따라서 차이가 없지만, 부채 자금은 경기 확장기와 경기 수축기에 따라서 순유입 차이가 큰 것을 보여주고 있다. 78개 국가를 대상으로 자본 이동성과 경제성장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에 의하면, ‘대상 국가나 시기에 관계없이 주식에 의한 자본 이동성 증대는 총요소생산성을 증대시키고 나아가 국민소득을 증대시키지만, 채무에 의한 자본 이동성 증대는 총요소생산성을 떨어뜨려 국민소득을 하락시킨다’는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1997년 외환 위기 때 채권시장이 금융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에 34% 정도 원인으로 작용한 반면에 주식시장은 18% 정도 원인으로 작용해서, 채권시장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2008년 금융 위기 때는 채권시장이 17%, 그리고 주식시장이 27% 정도 금융 상황 악화에 기여해서 주식시장이 채권시장보다 더 큰 원인이 되었다.

 

 주식거래는 상황의 변화에 신속하게 반응하여 실시간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매우 급박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발 빠른 반응은 전체 주식 자금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주식 자금이 부채 자금보다 단기적이라는 인식은 위기와 같은 태풍이 불면 표면에서는 거센 풍랑이 일어나서 바다가 요동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바다 깊은 곳에서 해류의 기저에 따라 서서히 그리고 고요하게 흐르는 심층수가 요동치는 것은 아닌 ‘풍랑 효과’와 같은 이치다. 

 

 부채 자금은 주식 자금과 달리 그 움직임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부채 자금이 빠져나가는 경우에도 이를 뒤늦게 알게 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다. 외국인 부채 자금이 주식 자금보다 안정적이라는 전도된 인식은 부채 자금이 움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 욕조 밑에서 배수구로 물이 빠지고 있어도 수면은 잠잠하기 때문에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곧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한참 지난 이후에나 알게 되는 ‘욕조 효과’와 같은 것이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먹튀’ 논쟁

 ο 먹튀 정확히 이해하기

 투자자는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또한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할 때는 언젠가 떠날 것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정해진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가 돈을 벌고 한 국을 떠난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튀’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의미의 반 외국인 정서가 담겨 있다.

 

 먹튀 논쟁에서 외국인 투자자는 투기꾼이고, 그들이 돈을 벌어서 떠나면 국부가 유출된다는 주장이 항시 따라다닌다.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논쟁은 ‘외국인들은 투기를 해서 돈을 벌고, 또 그 돈을 챙겨서 떠나면 한국의 부가 외국으로 빠져나가서 우리가 큰 손해를 본다’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부를 유출시키는 투기꾼이라면 처음부터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지 않고,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더라도 이익을 보면 떠나지 못하게 하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자가 돈을 벌면 투기꾼이고 국부가 유출된다는 주장이 일반 국민들에게 잘 먹혀 들어가는 이유는 투기로 돈을 번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정의감과 국부 유출을 걱정하는 애국적인 정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먹튀로 알려진 외국인 투자자들이 모두 투기로 돈을 번 것이 아니고, 또 그들이 돈을 벌었다고 해서 한국이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다.

 

 먹튀 논란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핵심적인 쟁점에 대해서 객관적인 답을 구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먹튀로 불리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투기를 해서 돈을 벌었는가이다. 둘째는 외국인이 이익을 얻고 떠나면 국부가 유출되는 것인가 또는 반대로 외국인이 손해를 보고 떠나면 국부가 늘어나는 것인가이다. 

 

 ο 실패한 코메르츠방크, 성공한 론스타

 론스타(Lone Star Funds)는 2003년에 외환은행을 인수해서 2012년에 하나금융지주에게 매각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2.2조 원에 인수해서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한 대금과 배당금을 합쳐서 6.9조 원을 회수했다. 4.7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이익을 보았으니 ‘먹었고’, 결국 떠났으니 ‘튀어버린’ 먹튀가 맞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데 투자한 총액은 2조 1549억 원이다. 론스타는 2003년 8월 53.16%의 지분을 인수하는 데 1조 3834억 원을 투자했고, 이후 2006년 5월 코메르츠방크와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지분에 대한 콜 옵션(Call Option)을 행사해서 추가 지분을 매수하는 데 7715억 원을 투자해서 총 63.62%의 지분을 확보했다. 론스타는 그동안 배당으로 1조 7098억 원을 회수했고, 2007년 6월 일부 지분을 매각해서 1조 1928억 원을 회수했다. 그리고 2011년 12월 하나금융지주에 잔여 지분을 3조 9156억 원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론스타의 투자 회수 총액은 6조 8799억 원이며, 순수익은 4조 7238억 원이다.) 론스타가 국제 외환시장이나 상품 시장에서 투기적인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한국에서 그런 투자를 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론스타가 부실 은행이었던 외환은행에 투자한 목적은 대주주로서 부실해진 경영을 반전시켜서 수익을 내는 것이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8년 넘게 소유하고 경영해서 수익을 얻은 것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투기와는 다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일부는 돈을 빌려서 투자하는 차입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투자 자금의 일부가 차입금이라 할지라도 이는 고위험-고수익 투자이지 투기는 아니다. 그리고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해서 외환시장에서 투기적인 거래를 한 사실이 확인된 바도 없고, 외환은행 주식을 공매도(空賣渡)하지도 않았다.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단기간의 시세 차익을 노리고 거래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투기라고 이해한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에 투자한 기간 동안 외환은행 주식을 사고파는 단기거래를 한 적이 없다. 그러기에 8년 동안 론스타의 외환은행 투자를 투기로 매도할 근거는 없다.

 

 외환 위기 때 부실해진 외환은행을 처음 인수한 투자자는 론스타가 아니라 독일의 2대 은행인 코메르츠방크(Commerzbank)였다. 코메르츠방크는 1998년 외환은행을 인수해서 최대 주주로서 5년 동안 경영을 했었으나, 경영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외환은행이 다시 부실 위험에 빠지자 2003년 론스타에게 재매각했다. 부실해진 외환은행에 정부도 더 이상의 공적 자금 투입을 거부하고 대주주였던 한국은행도 증자를 거부하면서, 결국사모 펀드인 론스타가 증자를 위한 신규 자금을 투입하고 외환은행을 인수했던 것이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투자는 처음부터 경영 참여가 목적이었고, 결과적으로 외환은행이 경영 반전에 성공해서 큰돈을 벌었다. 론스타와 같은 목적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했지만 경영에 실패해서 돈을 벌지 못하고 떠난 코메르츠방크를 투기꾼이라 부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영반전에 성공해서 돈을 번 론스타를 투기꾼이라고 할 수 없다.

 

 론스타의 경영으로 외환은행은 경영 반전에 성공했고,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을 단기 투기적인 거래를 한 사실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스타는 끊임없는 먹튀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한국의 은행법상 금융자본만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데, 론스타는 일본에 골프장을 소유하는 등산업자본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할때 정부가 외환은행의 경영 상태에 대한 정밀 실사도 없이 경영 부실을 이유로 서둘러 헐값에 매각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외환은행과 외환카드의 합병 과정에서 론스타 임원이 외환카드의 주가를 낮추는 주가 조작이라는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ο 헐값 매각 논란

 헐값 매각 논란은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매각되었던 과정을 감사원이 감사하고 검찰이 수사하면서 시작되었다. 감사원은 외환은행 경영진이 부실을 과장함으로써 협상 가격이 낮게 책정되었고, 이 때문에 헐값에 매각되었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감사원은 당시 금융감독위원회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과장되고 왜곡된 국제결제은행(BI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 기준 자기자본 비율에 근거해서 론스타의 인수를 위법하고 부당하게 승인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인수 과정에서 론스타의 불법행위가 밝혀진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2003년 당시 매각을 주도했던 재경부 정책 담당 고위 관료를 기소했고,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 취소 여부는 당시 진행 중이었던 재경부 관료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 따라서 결론이 나게 되었다. 매각 결정을 주도했던 재경부 정책 담당자에 대한 재판은 1심에서부터 대법원까지 일관되게 무죄로 판결이 나와서 헐값 매각에 대한 법적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결국 감사원의 조사 결과는 한국 정부의 오류나 부당 행위를 지적한 것이지 론스타 측의 잘못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었으며, 정부의 잘못도 법원은 모두 무죄로 판결했다. 또한 실제로 헐값에 매각되었다고 해도 론스타가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싼값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외환은행의 경영이 좋아졌기 때문이어서, 헐값 매각이 론스타를 먹튀라고 비난하는 것과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ο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

 2003년 외환은행이 자회사인 외환카드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론스타 임원이 외환카드 인수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 외환카드의 주가를 조작한 것이 론스타가 먹튀로 비난받은 또 다른 이유다. 주가 조작 사건은 2008년 1심 판결에서는 론스타 임원에 대한 유죄가 선고되었지만, 고등법원에서는 판결이 뒤집혀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다시 반전이 일어나서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 되었고, 고등법원은 외환카드가 감자를 실시할 계획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자설을 유포한 것이 외환카드 주가를 하락시켜서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취지로 유죄판결을 했다.

 

 주가 조작 사건으로 론스타 임원의 유죄가 확정되자 론스타는 은행법에 따라서 외환은행 대주주로서 자격을 상실했고, 금융위(금융위원회)는 주가 조작에 대한 처벌로 2011년 론스타에 외환은행 주식의 강제 매각 명령을 내렸다.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이후 유죄와 무죄 그리고 다시 유죄로 판결이 번복되는 과정이 무려 8년이나 걸리는 바람에 금융위와 금감원이 책임 있는 결정을 계속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어서 먹튀 논란이 더욱 확대되었다. 

 

 한국에는 징벌적 처벌에 대한 법 규정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국 주식시장에서 있었던 수많은 주가 조작 사건들에 대해서 법원이나 금감위가 징벌적인 처벌을 한 적이 없다. 더구나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도 대부분 집행유예 정도의 가장 가벼운 처벌에 그쳤기 때문에 론스타에게만 괘씸죄를 적용해서 징벌적인 조치를 취할 근거가 없었다.

 

 ο 은행 인수 자격 논란

 참여연대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승인된 2003년 9월 시점에 론스타가 서울 강남의 스타타워와 미국의 레스토랑 체인 등을 소유하고 있었고, 론스타의 비금융자산 총계가 2조 원을 넘어선 산업자본이기 때문에 외환은행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반면에 정부는 론스타가 제출한 승인 신청서를 바탕으로 론스타를 금융자본으로 판단해서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부의 설명도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주가 조작 유죄가 확정되어 강제 매각 명령을 내렸던 2011년 시점에서도 론스타의 관계회사가 일본에서골프장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 회사는 투자회사가 아닌 일반 지주회사이기 때문에 결국 론스타의 은행 대주주 자격은 부적격한 것이었다. 금융위는 2012년 하나금융의외환은행인수를 승인하면서 ‘은행법상 론스타는 산업자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2013년 12월 이와 관련된 정보가 공개되면서 참여연대는 ‘론스타가 2008년 금융위에 제출한 서류에서 스스로가 비금융 주력자라는 사실을 보고했는데도’, 금융위가 의도적으로 론스타의 부적격성을 숨겼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의 주장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고, 산업자본으로 판명될 경우에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원천 무효가 되어야 한다.

 

 론스타는 이미 주가 조작 유죄 확정으로 외환은행 주식을 매도하도록 강제 매각 명령이 내려졌고,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하고 떠났다. 따라서 참여연대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원천 무효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자본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론스타가 은행인수 자격이 없는 산업자본인 것을 고의적으로 승인 서류에서 누락했다면 단순한 강제 매각이 아니라 ‘징벌적’ 강제 매각을 명령해야 한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주장처럼 론스타가 스스로 산업자본이라는 것을 금융위에 보고했는데도 금융위가 이를 의도적으로 숨겼다면, 론스타가 고의적으로 정부를 속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론스타가 얻은 이익의 일부 또는 전부를 회수하는 조치를 취할 수가 없게 된다.

 

 ο 투기꾼의 투자

 론스타는 외환은행 경영을 목적으로 투자했고, 외환은행을 경영하는 8년 동안 단기 투기적 거래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투기꾼으로 규정할 근거가 없다. 론스타에게 확실하게 큰 책임을 물었어야 할 문제는 오히려 주가 조작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유죄를 확정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주가 조작에 따른 징벌적 처벌 규정이 없어서 실질적으로 처벌의 효과를 거둘 수가 없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외환은행을 포함한 한국 대형 은행들이 부실해진 과정과, 정부가 외환은행을 포함한 부실 은행들을 정리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론스타 먹튀 논란은 오히려 외환은행을 매각한 한국 정부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조흥은행은 신한은행으로, 그리고 서울은행은 하나은행에 인수·합병되었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부실 정리 이후 두 은행을 합병해서 한빛은행으로 출범시켰다가 2002년 다시 우리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했고 아직도 정부가 대주주로 남아 있는 소위 ‘국가 소유 은행’이다. 그러나 당시 부실해진 대형 은행 중에서 제일은행과 외환은행은 공적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외국 자본의 투자로 회생에 성공한 경우다. 제일은행은 외환 위기가 진행 중이었던 1998년 사모 펀드인 뉴브리지(Newbridge)에 매각되었다. 이후 뉴브리지가 다시 스탠다드차타드은행(Standard Chartered Bank)에 매각해서 SC제일은행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제는 제일은행의 이름을 지우고 SC은행이 되었다.

 

 제일은행과 달리 외환은행은 독일 은행인 코메르츠방크가 투자를 해서 대주주가 되었다. 그러나 코메르츠방크는 외환은행의 경영을 반전시키는 데 실패했고 외환은행이 다시 부실해져서 2003년 신규 자본 투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경영권을 가진 코메르츠방크는 물론이고 대주주인 한국은행이나 정부도 증자에 참여할 의사가 전혀 없었기에 때문에 공개 입찰을 통해서 론스타에게 매각되었다. 당시의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도 투자하지 않겠다는 외환은행에 위험을 감수하고 자본을 투입한 론스타를 투기 자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당한 평가가 아니다.

 

 ο 먹튀 논쟁에 대한 두 가지 답

 론스타가 큰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정부의 금융정책과 금융 감독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론스타가 큰돈을 벌었다는 것을 배 아파하기보다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금융 감독 정책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배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매각 당시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코메르츠방크가 추가 자금을 투입할 의사가 없어쏙, 2대 주주였던 수출입은행과 3대 주주였던 한국은행도 증자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론스타에 매각되었던 것이다. 

 

 론스타는 큰 이익을 얻고 한국을 떠났기 떄문에 먹고 떠났다는 의미에서 먹튀가 맞다. 앞서 제기한 먹튀에 대한 두 가지 질문에서 론스타에 대한 답을 구해보자. 첫 번째 질문은, 먹튀들은 투기하거나 나쁜 짓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인가이다. 그 답은,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경영해서 돈을 번 것이지 투기를 해서 돈을 번 것이 아니다. 론스타가 사모 펀드이기 때문에 투기적 거래를 하는 성격의 펀드인 것은 맞다. 그러나 론스타는 외환은행 주식을 단기 투기적 거래를 한 적이 전혀 없고, 8년 동안 배당과 주가 상승으로 돈을 벌었기 떄문에 투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론스타는 2.2조 원을 투자해서 투자 자금의 두 배가 넘는 4.7조 원의 이익을 얻었다. 이중에서 3조 원은 주가 상승으로 번 것이고, 1.7조 원은 배당으로 번 것이다. 론스타는 8년이라는 긴 기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이러한 수익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은 아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투자한 기간 동안 한국 종합주가지수는 2.4배가 올랐다. 주가 상승으로 인한 이익만을 계산한다면 론스타가 종합주가지수에 투자했다면 외환은행 주가 상승으로 번 것보다 더 많은 3.3조 원 정도를 벌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은행업인 신한금융 주식에 투자했다면 외환은행과 같은 3조 원 정도를 벌었을 것이다. 만약에 현대자동차 주식에 투자했다면 외환은행 주가 상승으로 얻은 이익의 무려 세 배에 가까운 8.5조 원의 엄청난 이익을 얻었을 것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경영이 호전되자 1.7조 원의 과도한 배당을 받은 것은 비난받을 여지가 있지만, 론스타가 주가 상승으로 얻은 이익은 한국 주식시장의 평균 정도였으며, 투기꾼으로 비난받을 이유는 없었다.

 

 두 번째 질문은, 외국인이 투자를 해서 이익을 보고 떠나면 한국의 국부가 유출되는 것인가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론스타는 배당과 주가 차익으로 돈을 벌었다. 부실했던 외환은행이 배당할 수 있게 되었고 주가도 올랐다는 것은 경영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외환은행의 경영이 좋아져서 배당을 지급하고 시가총액이 늘어난 것은 한국의 국부가 증가한 것이다. 배당은 론스타뿐만 아니라 모든 주주들에게 똑같이 지급되고, 주가 상승도 론스타를 포함한 모든 주주에게 똑같은 시세 차익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론스타가 돈을 벌어서 떠났어도 한국의 국부는 증가했고, 론스타는 증가된 국부 중에서 자기의 몫을 가져간 것이다. 외환은행이 경영이 더욱 악화되어서 배당도 못하고 주가도 하락했다면 론스타는 손해를 보고 떠나서 먹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한국의 국부도 함께 줄어들게 된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에 투자해서 손해를 보는 것은 투자한 회사가 경영이 나빠서 배당도 못하고 주가도 하락하는 것이기에 한국인도 함께 손해를 보고 한국의 국부도 줄어드는 것이다.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회사가 망가져서 투자자가 손해를 보는데 국부가 늘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외국인은 처음부터 언젠가는 떠나게 되어있기 때문에 떠나는 것을 비난할 수 없다.

 

 소버린의 ‘SK 경영권 분쟁’ 논쟁

 소버린(Sovereign Asset Management)이 SK 주식을 사들인 시기는 2003년 3월 11일 검찰이 SK그룹에 대규모 분식 회계, 허위 공시, 그리고 계열사 간 거래를 이용한 배임 등의 범죄 혐의가 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SK 주가가 곧바로 연일 하한가를 기록하는 폭락으로 이어졌던 때다. (@검찰이 발표한 범죄 혐의는 SK글로벌이 1조 5000억 원 분식 회계를 하고 허위 공시를 했다는 것, 제이피 모건(JP Morgan)과 옵션 계약을 이용한 이면 거래와, SK와 워커힐호텔의 주식을 스왑 거래를 이용하여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소버린은 첫날 300만 주를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4월 11일까지 매일 주식을 사들여 단숨에 SK의 14.99% 지분을 보유한 최대 주주로 부상했다.

 

 소버린은 SK 주식에 1,768억 원을 투자했고, 2005년 7월 9,811억 원을 회수하고 한국을 떠났다. 총 8,043억 원을 벌었고 수익률은 무려 455%이다. (@시세 차익으로 7558억 원을 벌었고 배당금으로 485억 원을 받아서 총수익액이 8043억 원이다. 소버린은 증권거래세와 배당 관련 세금을 149억 원 냈기 때문에, 세금을 차감한 순수익액은 7894억 원이었고, 세후 수익률은 447%이다.) 그리고 한 달 후인 8월 말경 SK 이외의 한국에서의 모든 투자를 회수하고 한국을 떠났다.

 

 ο 최대 주주가 된 투기꾼

 소버린은 국내에서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의식해서 투자 초기에 SK 투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첫째는 투자 자금은 차입금 없이 전액 자신들의 자금이며, 둘째는 환율 변동 위험에도 불구하고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환햇지(換hedge)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셋째는 SK의 기업 지배 구조의 개선을 요구하는 입장을 밝혔다. 

 

 투자와 투기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에서도 쉽지 않으며, 일반적으로는 단기 매매를 이용해서 단기 차익을 얻는 경우를 투기라고 이해되고 있다. 단기 매매를 이용한 단기 차익을 노리는 거래를 투기로 정의한다면 소버린은 투기꾼이 아니다. 그 이유는 소버린이 2003년 3월 SK 주식을 매입해서 2005년 7월 모두 팔고 한국을 떠난 2년 4개월 동안 단 한 차례도 SK 주식을 사거나 파는 거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버린이 SK 주식을 보유했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의 기간 동안 한국 투자자들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이 2개월도 안 되는 것과 비교하면 단 한 번의 거래도 없이 2년 4개월 동안 주식을 보유한 것을 단기 투자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 투자자의 경우에는 평균 보유 기간이 한두 달에 불과했고, 은행·투자 신탁 등의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경우에도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이 6개월 정도인 한국의 현실에 비춰볼 때 소버린을 투기꾼으로 매도한다면 개인이건 기관투자이건 한국 투자자들의 대부분도 역시 투기꾼일 뿐이고, 특별히 외국인 투자자만을 몰매질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주가 조작, 헐값 매각 등의 논란이 있었던 론스타와는 달리 소버린은 주식 보유 기간 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이슈가 공시 지연 외에는 없었다. 소버린은 오히려 SK 경영진의 분식 회계, 회사 자금 유용 등의 범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 최태원 회장의 퇴진과 기업 지배 구조의 개선을 요구하면서 SK 경영권에 도전한 것이 일반 국민들에게 더 큰 관심이 되었다.

 

 소버린이 2주 만에 SK의 최대 주주로 부상할 정도로 많은 주식을 매입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주주들이 SK 주식을 팔았기 때문이다. SK의 불법행위가 밝혀진 이후 개인 투자자, 기관투자자 할 것 없이 한국 투자자들이 무차별적으로 SK 주식을 팔았을 때 소버린은 이를 시장에서 사들인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힐 일은 소버린의 주식 매입으로 SK 주가가 반등하고 오르자, SK 채권단에 속한 국내 은행들마저도 SK 주식을 처리할 기회라고 보고 팔아버렸다. 소버린보다 SK의 경영 상태에 대해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채권단 은행들마저도 주식을 팔았을 때 소버린은 주식을 샀던 것이다. 소버린은 SK라는 기업의 본질은 우수하며, 지배 구조를 개선하면 회사 가치가 다시 정상으로 회복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한국 사람들도 믿지 않았던 SK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소버린은 빋었던 것이다. 소버린이 SK 주식을 강제로 가져간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한국 투자자들이 판 주식을 사들였다는 것은 오히려 부끄러워 할 일이다. 

 

 소버린은 SK 이외에도 국민은행, LG 그리고 LG전자 주식에도 투자했다. 국민은행 주식은 SK에 투자하기 이전인 2002년 3% 정도를 보유했는데 구체적인 성과와 투자 기간이 알려지지 않았고 1년 미만의 단기 투자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단기 투자한 LG, LG전자의 경우에도 소버린은 단기 매매를 하지 않았다. 때문에 단순히 투자 기간이 짧았다는 이유로 소버린을 투기꾼으로 매도하려면 2년 4개월이라는 장기간을 보유한 SK 경우보다는 오히려 1년 미만 보유했던 국민은행이나 6개월을 보유했던 LG, LG전자의 경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소버린은 6개월 동안 보유한 LG, LG전자 두 회사에 9,750억 원을 투자해서 500억 원 정도를 손해 보고 한국에서 모든 투자를 회수한 시점인 8월 말에 전량 매도를 했다. 어쩌면 6개월 단기 투자를 한 LG 계열사 투자의 경우에는 500억 원의 손실을 보았기 때문에 투기꾼 논란이 없었고, 오히려 2년 4개월 장기 투자를 한 SK에서 7,600억 원의 이익을 보았기 때문에 투기꾼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속 좁은 배 아픔이 아닐까 싶다.

 

 ο 먹튀는 맞다, 국부 유출은 아니다

 소버린이 큰돈을 벌게 된 것은 SK 주가가 올랐기 때문이라는 매우 단순한 이유다. 주가는 모든 주주에게 똑같이 오르기 때문에 소버린이 돈을 벌었을 때 한국 주주들을 포함해서 모든 주주들이 함께 돈을 벌었다. 15% 지분을 가진 소버린이 8043억 원을 벌었으니, 나머지 85% 지분을 보유한 다른 주주들은 4조 5000억 원 이상을 함께 번 것이다. 뿐만 아니라 SK의 시가총액이 증가했다는 것은 SK라는 기업의 가치가 증가한 것이고, 결국 이는 한국의 국부가 증가한 것이다. 이렇게 엄청나게 주가가 올랐는데도 이익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소버린에게 SK주식을 팔아넘긴 투자자들일 것이다.

 

 소버린이 투자를 시작한 때 SK의 시가총액은 1조 4,000억 원에 불과했지만 소버린이 주식을 팔고 떠난 시점에는 무려 6조 4,000억 원이 되어 5조 원이 증가했다. SK 시가총액이 5조 원 증가했다는 것은 한국 국부가 5조 원 늘어난 것이다. 소버린이 SK 주식을 보유했던 2년 4개월 동안 종합주가지수가 85% 상승했기 때문에 만약에 소버린이 투자하지 않았고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SK 시가총액이 그렇게 많이 늘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증가된 시가총액 5조 원 중에서 종합주가지수의 상승분을 제외한 3조 5000억 원 정도는 경영권 분쟁을 벌인 소버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소버린이 먹고 튄 이익을 빼더라도 소버린의 투자와 경영권 분쟁으로 한국 국부는 소버린이 먹고 떠난 8000억 원을 제외해도 2조 7000억 원 이상 늘어난 것이지 줄어든 것이 아니다. 소버린이 8000억 원을 가져갔으니 국부 유출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내 곳간에 재물이 늘어나도 남의 곳간이 함께 채워지면 내 재산이 줄어든 것이라는 괴이한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만약에 소버린의 투자로 SK 주가가 폭락했다면 이를 보고 외국인이 손해 보고 떠났으니 국부 유출이 없어서 잘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ο 일찍 떠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만약에 소버린이 2005년에 떠나지 않고 2007년 6월까지 계속해서 주식을 보유했다면 8000억 원이 아니라 무려 2조 6000억 원의 차익을 얻었을 것이다. 소버린은 SK 주식을 매도한 한 달 후인 2005년 8월 말에 LG와 LG전자 주식도 전량 매도하고 완전히 한국 투자에서 철수를 했는데, 만약에 LG와 LG전자 주식들도 2007년 6월까지 보유했다면 500 억 원의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4000억 원의 이익을 보았을 것이다. 소버린이 떠나지 않고 계속 투자를 유지했다면 SK와 LG 주식 투자로 3조 원을 벌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소버린은 SK 경영진과 경영권 다툼을 하면서 최태원 회장의 퇴진과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 그리고 계열사와의 부당 거래 통제 등을 포함한 다양한 기업 지배 구조 개선안을 요구했다. 1조 5,000억 원이라는 대규모 분식 회계를 한 SK에 대해서 지배 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가 앞장서서 정당하고 당연한 요구를 할 때 한국 주주들이나 기관투자자들은 재벌들의 눈치를 보면서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SK 경영진은 소버린의 요구에 맞서서 최태원 회장의 퇴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는 소버린이 요구한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기업 지배 개선의 노력을 기울였고, 궁극적으로는 2007년에는 지주회사 체제로 대전환하는 지배 구조 개혁을 단행했다. SK의 대변신에는 소버린의 경영권 도전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경영권 분쟁을 가속화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랬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SK그룹의 회장인 최태원은 2003년 분식 회계와 배임 등의 불법행위로 유죄판결을 받은 지 10년 만에 다시 회사 돈 횡령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갇히는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상하이차의 ‘쌍용차 기술 먹튀’ 논쟁

 중국 최대의 자동차 기업인 상하이차는 매출액 기준으로 2012년 중국에서 15번째로 큰 기업이며 <포춘(Fortune)>지가 선정한 2012년 세계 500대 기업 중에서 130위를 차지한 대기업이다. 상하이차는 2004년 10월 쌍용차를 5,900억 원에 인수했다가 5,300억 원 이상의 손해를 보고 2010년 한국을 떠났다. 상하이차가 큰 손해를 보고 떠났는데도 먹튀 논쟁이 일어난 것은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기술을 빼돌렸다는 주장 때문이다. 쌍용차 노조는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기술을 빼돌렸다고 주장했고, 상하이차는 이를 부정했다. 상하이차의 기술 빼돌리기에 대해서는 검찰이 수사를 했으나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2009년 쌍용차 기술연구소의 임직원들을 기술 유출 혐의로 기소했다. 유출된 것으로 알려진 기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디젤 하이브리드 엔진 기술이라고 하며,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차량 개발과 관련된 기술들이라고 보도된 바 있다. 쌍용차 노조는 상하이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고, 쌍용차의 소액주주들도 상하이차 경영진을 상대로 주주 대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기술 유출 혐의로 기소된 쌍용차 연구소 임직원 전원이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후에 쌍용차 노조와 소액주주들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진 바가 없으며, 상하이차 기술 먹튀 논쟁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기술 유출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은 상태다. 기술 빼돌리기를 했는지를 확정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기업을 인수할 때는 기업이 보유한 기술까지도 포함해서 인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술이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더구나 상하이차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가 아니라 자동차 기업으로서 쌍용차를 경영하기 위해서 인수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나 채권단도 처음부터 기술 유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매각을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ο 기술 도둑인가, 돈 잃은 먹튀인가?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은 회사 무형자산의 일부다. 그리고 무형자산은 전체 자산의 일부다. 따라서 기술의 가치는 이를 보유한 회사 전체의 가치보다는 작은 것이 당연하다.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2004년의 쌍용차 사업보고서에 의하면 회사의 자산 중에서 개발비, 산업 재산권, 기술도입료 등의 무형자산의 총액이 870억 원으로 계상되어 있다. 따라서 유출된 기술이 회사의 무형자산으로 계상되었다면 그 가치는 상하이차의 투자 손실액 5,300억 원보다는 크게 적은 금액이다. 그러나 회계장부상의 가치는 기회비용 등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유출된 기술의 가치는 장부상의 무형자산 가치보다 훨씬 더 클 가능성이 있다. 쌍용차 노조는 새로운 자동차를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이 3,000억 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만약에 유출된 기술이 신차 개발에 관한 모든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이 역시 투자 손실액 5,300억 원보다는 적은 금액이기 때문에 상하이차는 2,300억 원 이상의 손해를 본 것이다.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2004년 10월 당시의 쌍용차 시가총액은 8,400억 원이었고 상하이차의 투자 자금액은 시가총액의 약 70%에 이르는 큰 비중이었다. 회사 가치 중에는 부동산, 설비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유출된 기술이 시가총액의 70%를 넘을 정도로 가치가 큰 것은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은 추정에 근거해보면 기술이 유출되었다고 단정해도 유출된 기술의 가치가 상하이차의 투자 손실액인 5300억 원보다 크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기술 개발을 위한 기회비용을 감안하고, 기술 유출로 인하여 상하이차와 쌍용차의 기술 격차가 줄어든 것으로 인한 쌍용차의 미래 잠재 손실까지 고려한다면 이러한 추정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 손실액이 상하이차가 쌍용차 인수에 투자한 5,900억 원에 해당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추정에 비춰볼 때 유출되었다고 의심 받는 기술의 가치를 감안한다고 해도 상하이차는 큰 손해를 보고 떠난 것이기 때문에 먹튀라고 규정하는 것은 맞지 않은 말이다.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할 때는 다른 어떤 투자자들과 마찬가지로 경영을 잘해 좋은 기업으로 회생시켜서 이익을 낼 계획이었을 것이다. 쌍용차로부터 빼돌린 기술이 쌍용차 투자 손실액인 5,300억 원보다는 훨씬 적은 것으로 추정한다면 경영 실패는 결과이지 처음부터 기술만 빼돌리고 경영을 적극적으로 잘할 의도가 없이 인수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상하이차가 자신이 쌍용차를 경영하다가 다시 부실해졌는데도 경영권을 행사한 대주주로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단순한 재무 투자자처럼 경영권 포기를 선언하고 떠나버린 것은 무책임한 행동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ο 이해당사자 모두가 행복하려면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5900억 원에 인수해서 600억 원만 회수하고 떠났기 때문에 상하이차가 손해를 본 5300억 원은 한국에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상하이차가 손해를 본 5300억 원이 한국에 남았으니 국부가 늘어난 것일까? 상하이차가 떠난 뒤 쌍용차는 2010년 11월 인도의 마힌드라에 5,225억 원에 다시 매각되었다. 마힌드라도 상하이차처럼 투자 자금액을 모두 손해보고 떠나게 된다면 한국은 쌍용차를 외국인 투자자에게 두 번씩이나 팔아서 1조 600억 원 이상의 국부가 늘어났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투자자가 회사를 인수하는 투자를 했다가 경영에 실패하면 투자자만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포함한 회사의 모든 이해당사자(stakeholder)가 큰 고통과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쌍용차의 노동자들과 하청 중소기업들이 겪은 엄청난 고통과 경제적 손실은 상하이차가 손해 본 5300억 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크다. (@상하이차가 쌍용차 인수 계약을 체결한 2004년 10월 평균 주가를 적용하면 인수 당시 쌍용차 주식의 시가총액은 9000억 원을 넘고 경영 포기를 선언한 2009년 1월 시가총액은 1600억 원 정도다. 따라서 상하이차의 경영 실패로 인한 기업 가치의 손실만도 7400억 원이 넘는다. 이는 단순하게 상하이차 손실액인 5300억 원이 한국에 남았다고 해도 2100억 원의 국부가 손실된 것이다.)

 

 먹튀 논쟁, 그 너머를 보라 

 ο 먹튀가 투자할 때, 왜 팔았나?

 외국인이 투자할 때 한국인은 왜 투자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주식을 팔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소버린, 론스타 그리고 상하이차는 한국 기업들의 주식을 강탈해간 것이 아니라 한국 주주들, 그리고 정부와 은행들이 판 주식을 산 것이다. 한국이 그들에게 주식을 팔아서, 한국이 그들에게 먹튀가 될 기회를 준 것이다. 외환은행이 새로운 자본이 필요했던 어려운 때 한국 정부는 공적 자금을 투입할 생각이 없었고, 당시 외환은행의 대주주였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과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마저도 증자에 참여할 의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을 포함한 한국의 어떤 연기금이나 기관투자자도 투자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론스타가 투자를 해서 먹튀가 된 것이다.

 

 채권단이 쌍용차를 매각할 때 한국 재벌들이나 투자자들은 누구도 인수에 관심이 없었다. 매각 입찰에 참여했던 투자자들은 미국의 GM, 프랑스의 르노(Renault), 그리고 중국의 란싱그룹[藍星, China National Bluestar Group]과 상하이차 등 모두 외국 회사들뿐이었다. 결과적으로 경영에 실패해서 많은 문제를 만들기는 했지만 상하이차가 쌍용차에 투자를 했기에 쌍용차는 계속 존속했던 것이다. 

 

 투기꾼 먹튀 비난과 국부 유출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SK가 분식 회계로 문제가 되었을 때 SK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SK 채권 은행들을 포함해서 한국 투자자들이 SK 주식을 무차별적으로 팔아버렸기 때문에 소버린이 최대 주주가 될 정도로 주식을 살 수 있었다는 점이다. 외국인인 소버린이 SK의 잘못된 기업 지배 구조의 개선을 요구하고 이를 이용해서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을 때 한국의 기관투자자들은 침묵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기회를 이용해서 주식을 팔았던 것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행태인지를 반성해야 한다. 소버린을 먹튀라고 비난하기보다는 한국의 은행들과 기관투자자들에게 왜 그들은 SK 주식을 팔아치웠는지, 그리고 기업 지배 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았는지를 먼저 물어봐야 할 것이다. 

 

 ο 국경 넘은 투자의 역지사지

 외국인 투자자가 돈을 버는 것이 싫다면 처음부터 외국인의 투자를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ο 불편한 진실들

 금융시장을 개방한 이상 먹튀를 막을 수는 없다. 기업의 주식에 투자해서 정당하게 돈을 버는 방법은 배당을 받고 주가가 오르는 것뿐이다. 이것은 한국인이나 외국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외국인 투자자를 먹튀라고 비난하고 제재하기보다는 한국인이 한국 회사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먹튀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투자 기간 동안 단 한 번의 단기 매매 거래도 하지 않은 론스타와 소버린이 큰돈을 번 것은 고위험-고수익 투자의 대표적인 사례다.

 

 저평가된 주식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고위험-고수익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에도 장기 투자자가 더 많아져야 한고 투자 목적이 다양한 투자 펀드들이 생겨나야 한다. 가장 안정적이고 장기 투자하는 국민 연금은 운용 자산 중에서 주식 투자의 비중이 2003년에는 7.8%에 불과했다. 이후 주식 투자 비중이 꾸준히 늘어 2013년에는 30%로 증가했으며, (@국민연금의 2013년 시가 기준 운용 자산 규모는 426.9조 원이고, 주식 투자 규모는 128.3조 원이다. 2003년에는 운용 자산 규모가 116.7조 원이었고, 주식 투자 규모는 9.1조 원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의 1대 주주 또는 2대 주주로서 장기 투자를 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삼성전자 소유 지분은 7.7%로 삼성생명의 7.56%보다 많은 1대 주주다. 현대자동차의 소유 지분은 7.57%로 1대 주주인 현대모비스에 이어서 2대 주주다. LG전자의 소유 지분은 8.8%로 LG그룹의 지주회사인 (주)LG에 이어서 2대 주주다.)

 

 장기 투자자 중에서도 특히 부실기업을 인수하거나 구조 조정하는 목적의 적극적인 고위험-고수익 투자를 하는 펀드가 다양하게 육성되어야 한다. 2003년 한국에는 기업 인수에 참여하는 투자은행의 역할을 하는 금융회사가 활성화되지 않았고, 사모 펀드가 시작된 것은 2005년부터이기 때문에 당시에 사모 펀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현재도 사모 펀드가 많지 않고 그 규모도 작아서 자본시장에서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 또한 비교적 규모가 큰 사모 퍼늗와 투자은행은 대부분 은행 중심의 금융지주회사 자회사다. 그러나 은행의 실질적 계열사인 한국의 투자은행들은 진정한 의미의 고위험-고수익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개발에서 담보를 제공받고 투자하는 부동산 대출 성격의 투자가 많으며, 글허지 않은 경우에도 최소 수익률을 보장받는 옵션을 요구하거나 제3자의 지급 보장을 요구하는 변형된 형태의 채권 투자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한국의 투자은행들은 고위험-고수익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변형된 대출업을 하는 은행이라고 할 수 있다. 론스타나 소버린과 같이 지급 보장이나 담보 없이 스스로 모든 위험 부담을 떠안는 본래 의미의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토종 사모 펀드와 토종 투자은행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고위험-고수익 투자로 큰돈을 버는 외국인 먹튀들을 이길 수가 없다. 

 

 외국 자본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말할 때 흔히 ‘윔블던 효과(wimbledon effect)’라는 논리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테니스 대회인 영국의 윔블던 대회에서 영국 선수는 우승을 못하고 외국 선수들의 잔치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윔블던(Wimbledon) 테니스 대회의 남자 단식경기에서 영국인이 우승한 것은 1936년 프레드 페리(Fred Perry) 이후 77년 만인 2013년 앤디 머레이(Andy Murray)였다. 여자 단식경기에서는 1977년 영국인인 버지니아 웨이드(Virginia Wade)가 우승한 이후로 우승하지 못했다.) 영국 선수들을 응원하는 영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대회 무용론을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섭섭하겠지만, 윔블던 대회는 영국에 막대한 수입을 벌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외국 챔피언들이 가져가는 몇 십억 원의 우승 상금은 국부 유출이겠지만, 윔블던 대회는 세계 각국에 방송중계권료나 관광객 수입으로 무려 연간 80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돈을 영국에 안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자국 선수가 우승하지 못한다고 대회를 폐쇄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까.

 

 외국인 투자자를 ‘투기꾼 먹튀’로 비난하고 국부가 유출된다는 주장은 언뜻 보기에는 애국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먹튀 논쟁은 기업들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일부 언론들과 포퓰리즘(populism)으로 인기를 얻으려는 일부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왜곡된 인식을 확대 재생산하고 선동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5. 삼성은 왜 스스로 적대적 M&A 논쟁을 일으켰나? 

 외국인 적대적 M&A 논란

 ο 외국인 투자자를 바라보는 시선

 2004년 삼성전자의 외국인 주식 보유 비중이 60%를 넘어서자, 삼성그룹은 스스로 외국인 투자자에 의해서 삼성전자가 적대적 인수·합병 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2004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삼성전자는 이미 현실적으로 적대적 M&A에 노출된 상태로 공정위(가 제안한 법)안대로 금융·보험사 의결권을 15% 이내로 축소한다면 외국인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한 논란이 시작된 지 10여 년이 지났고 그동안 삼성전자의 외국인 주주들의 지분에 많은 변동이 있었지만 삼성전자를 적대적 인수·합병 하려는 시도도 없었고, 그럴 기미조차 보인 적이 없다. 

 

 ο 외국인 지분 50%

 삼성전자의 외국인 주주는 한 사람이 아니다. 외국인 주주들은 수천 명에 이르며, 이들은 국적과 투자 목적 그리고 투자 방법이 서로 다른 기관투자자들과 개인들이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이 60%를 넘어서 최고 수준에 이르렀을 때 삼성전자의 주식을 소유한 외국인 주주는 2,800여 명이었다. 외국인 주주들의 지분 합계가 50% 넘었다고 해서 국적과 투자 목적이 전혀 다른 수천 명의 외국인 주주들이 하나로 일사분란하게 뭉쳐서 삼성전자의 경영권에 도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성이 전혀 없는 상상에 불과하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외국인 투자자에 의해서 적대적 인수·합병 될 가능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소유를 억제하는 규제를 도입하거나 불필요한 경영권 보호 장치를 도입한다면 이는 개방적인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기업의 인수·합병은 우호적인 경우와 적대적인 경우의 두 가지로 구분한다. 우호적 인수·합병은 기존의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와 새로 경영에 참여하거나 경영권을 인수하려는 주주가 우호적인 협의를 통해서 경영권을 이양하거나 또한 함께 경영권을 갖는 경우다. 우호적인 인수·합병은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나 또는 경영진이 회사의 경영 전략상 필요에 의해서 이뤄진다. 따라서 경영권을 넘기는 대주주가 자신이 소유한 주식을 인수자에게 팔거나 또는 회사가 새로운 주식을 인수자에게 발행해주거나, 합병하는 두 회사가 서로의 주식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적대적인 인수·합병은 기존의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나 경영진이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제3자가 경영권을 빼앗거나 회사를 인수하는 대립적인 경우다. 이 경우에는 인수를 시도하는 주주나 회사가 인수 대상인 회사의 주식을 주식시장에서 매입하는 방식으로만 이뤄진다. 이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인수 대상 회사의 대주주나 경영진은 인수를 시도하는 주주와 경쟁적으로 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해서 지분을 늘리거나 또는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세력에게 새로운 주식을 발행해줘 경영권 방어에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대부분의 인수·합병은 우호적인 경우이며, 적대적인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적대적 인수·합병의 경우는 주식시장에서 공개적으로 주식을 매수하는 방법이 사용되는데, 한국의 경우 1994년부터 2013년까지 총 108건의 공개 매수가 있었으며, 이 중 16건(15.74%)만이 경영권 경쟁 수단을 목적으로 한 공개 매수였다. 특히 2010년 이후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한 공개 매수는 2건에 불과했다.) 

 

 ο 삼성전자의 외국인 주주들

 삼성전자는 주식시장에 상장한 지 40년 가까이 되었고 그동안 여러 차례 주식을 발행해서 유상증자를 했기 때문에 이건희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지분은 5%도 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1969년 1월 설립되었고, 1975년 6월 11일 주식시장에 상장을 했다. 2013년 12월 현재 보통주를 기준으로 이건희 회장이 3.38%, 부인인 홍라희가 0.74%, 아들인 이재용이 0.57%를 소유하고 있어서 가족 지분의 합계는 4.69%이다. 이건희 가족 이외에 계열사와 임원들이 12.96%를 소유하고 있어서 내부 지분의 총계는 17.65%이다.) 삼성생명을 포함한 계열사와 삼성복지재단과 같은 비영리 재단 등 이건희 회장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내부 지분들을 모두 합해도 18% 정도다. 반면에 외국인 주주들이 소유한 지분은 51%에 이른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소유 지분은 2004년 4월 중 사상 최고치인 60.1%를 기록했지만 2014년 6월 말 현재 50.7%이다.

 

 기업을 인수하는 실질적인 방법은 기업의 최고 의결 기구인 주주총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이사로 선임하고 이사회를 장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확고하게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에서 다수의 의결권을 확보해야 한다. 주식 소유가 분산된 회사의 경우에 50%는 아니더라도 대략 30% 내외의 지분을 가지면 여타 소액주주들을 규합해서 경영권에 도전해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삼성전자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외국인 주주는 단 한 명도 없다. 삼성전자 계열사를 제외하고 5% 이상을 소유한 주주는 한국의 국민연금 하나뿐이다. (@삼성전자 2013년 사업보고서에 의하면 2013년 12월 말 기준 단일 주주(보통주)를 기준으로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으로 7.71%를 보유하고 있으며, 두 번째 대주주는 삼성생명으로 7.56%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시티은행 본사(Citibank N.A)는 발행주식 총수를 기준으로 6.31%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시티은행 본사는 주식 예탁 기관으로서 수많은 외국인 주주들의 주식을 보관하는 예탁 기관(Custodian)이며, 투자자는 아니다.) 삼성전자의 영업보고서에 의하면 2011년 말 1%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 주주는 셋이었다. 외국인 중에서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한 주주는 2.7%를 보유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였다. 두 번째로 많은 지분을 가진 외국인 주주는 1.68%를 보유한 싱가포르 정부이며, 세 번째로 많은 지분을 가진 외국인 주주는 1.39%를 보유한 미국계 펀드인 EPGF(EuroPacific Growth Fund)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싱가포르 정부의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주체는 국부 펀드이며, 국부 펀드가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할 목적으로 투자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순수한 재무적 투자로 봐야 한다.

 

 EPGF는 전형적으로 분산투자하는 펀드이며, 이런 성격의 펀드가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한 사례가 없을 뿐 아니라, 2%도 안 되는 지분으로 시도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지난 10년 동안 삼성전자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있었지만 이들 중에도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할 만한 외국인 주주는 없었다.  미국계 펀드인 퍼트남(Putnam), CGI(Capital Group International), CRMC(Capital Research and Management Company). 이 세 개의 펀드들이 한때 삼성전자 지분을 5% 이상 보유했던 적이 있지만 현재에는 모두 5% 이하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 세 개의 펀드들은 미국에서 잘 알려진 펀드들이며, 설립 목적과 투자 원칙이 광범위한 분산투자를 하는 재무적인 투자자이기 때문에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할 수도 없다는 것은 투자 업계에서는 상식에 해당한다. 실제로 이 세 개의 펀드들이 미국이나 또는 다른 나라에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한 적이 없다.

 

 만에 하나 외국인 주주 중 하나가 인수를 시도한다 해도 수천 명에 달하는 여타 외국인 투자자들을 규합해야 하는데, 나머지 투자자들이 이에 응할 이유도 없다. 한국 입장에서는 모두 ‘외국인’이라는 동일한 정체성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각 외국인 입장에서는 한국인이나 다른 외국인이나 마찬가지로 ‘외국인’이기에 특별히 차별을 두어야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현재 삼성전자의 소유 구조에서 외국인 전체의 소유 지분이 50%가 넘었다는 사실만으로 외국인 주주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의 문제를 우려할 근거는 없다. 

 

 적대적 M&A 시나리오의 비현실성

 ο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하다

 만약에 앞으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할 주주가 나타난ㄷ면 삼성전자 주식을 주식시장에서 매입해야 한다. 경영권을 완전하게 장악하기 위해서는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고,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려면 최소한 30% 정도의 지분을 시장에서 사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 주식 30% 매입을 시도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에서 현실성이 없다.

 

 첫 번째 이유는, 적대적 인수·합병을 위해서 필요한 자금이 워낙 막대하게 크기 때문에 실제로 그러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투자자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현재의 주가가 변하지 않는다고 극단적으로 가정해도 30% 지분을 사들이려면 약 58조 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적대적 인수·합병의 시도가 알려지게 되면 주가가 폭등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필요한 자금은 이보다 훨씬 더 커지게 될 것이다. 경영권 탈취를 시도한다면 적게 잡아도 지금의 주가보다 30% 이상의 경영권 프리미엄(premium)이 추가된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할 것이며, 이 경우 30%의 지분을 매입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75조원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이건희 가족 측도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지분을 사들일 것이기 때문에 주가는 경영권 프리미엄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오르게 되어 인수 자금의 규모는 정확한 추정이 어렵지만 약 100조 원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실제적으로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가 있고, 그로 인해서 주가가 폭등할 경우에 10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인수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투자자가 현실적으로 없다. 기관투자자 중에서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것들은 뮤추얼 펀드(mutual fund)와 연기금이다. 뮤추얼 펀드 중 미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펀드는 핌코 펀드(Pimco Fund)로 순자산 규모가 약 188조 원이다. 두 번째로 큰 펀드는 SPDR S&P 500 ETF로 순자산 규모가 약 163조 원이며, 세 번째로 큰 펀드는 피델리티 캐시 리저브(Fidelity Cash Reserve)로 순자산 규모가 약 136조 원이다. 뮤추얼 펀드는 설립 목적이 수많은 종류의 주식과 채권에 광범위하게 분산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도를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펀드들이 자산의 절반 이상을 삼성전자 한 회사의 주식에 투자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뮤추얼 펀드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가장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투자자가 헤지 펀드(hedge fund)이기 때문에 헤지 펀드가 삼성전자를 적대적 인수·합병할 가능성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헤지 펀드의 자산 규모가 약 84조 원이며, 두 번째로 큰 헤지 펀드의 자산 규모는 약 59조 원이다. 헤지 펀드가 모든 자금을 삼성전자 한 회사에만 투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헤지 펀드도 자본의 규모가 삼성전자를 적대적으로 인수하기에는 부족하다. 

 

 자금의 규모로만 본다면 삼성전자를 적대적 인수·합병 할 수 있는 자금을 가진 기관투자자들은 세계 여러 나라들의 연금(pension fund)이나 국부 펀드들이다. 전 세계 연금 중에서 규모가 100조 원이 넘는 연금이 20여 개가 있다. 가장 큰 규모의 연금은 일본의 정부 연금으로 1,500조 원이 넘으며, 두 번째로 큰 연금은 노르웨이의 정부 연금으로 640조 원이고, 한국의 국민연금 규모는 426조 원으로 세계 4위다. 그러나 정부 연금이 특정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서 국민의 연금을 걸고 막대한 자금을 한 회사에 투자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한국 국민연금은 전체 자산 중 60%를 채권에 투자하고 30%인 약 128조 원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는 약 83.9조 원이다. (@2013년 말 국민연금 운용 총액은 426.9조 원이며, 이 중에서 60%인 256.6조 원은 채권에 그리고 30%인 128.3조 원은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는 83.9조 원으로 총운용액의 19.7%이다.) 만약에 국민연금이 삼성전자를 인수하려고 시도한다면 국내 주식 투자 자금 모두를 삼성전자 한 회사 주식에만 투자해도 부족할 것이다. 국민연금이 삼성전자 또는 미국이나 중국의 어느 특정한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서 연금의 30%를 사용한다면 이는 국가적인 위험을 각오하고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는 현실성이 없다. 다른 나라의 연금도 마찬가지로 그런 투자를 할 수 없으며, 그런 사례도 없다.

 

 연금 이외에도 국가의 재산을 투자하는 국부 펀드(sovereign wealth fund)들 중에서 자산 규모가 100조 원이 넘는 펀드가 10여 개가 있다. 하지만 외국의 국부 펀드가 삼성전자 한 회사의 주식에 거대한 자금을 투자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따라서 자금 동원 능력이 있는 연금이나 국부 펀드가 삼성전자를 적대적 인수·합병 할 가능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주식시장과 투자 업계의 현실에 비춰볼 때 현재 삼성전자의 외국인 주주들 중에서 삼성전자를 적대적으로 인수할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투자자가 실질적으로 없다. 극단적으로 삼성전자를 인수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외국인 투자자가 새로운 펀드를 만든다고 해도 최소한 100조 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특정 회사를 표적으로 적대적 인수·합병을 하기 위해서 모집한 대규모의 펀드는 어느 나라에도 아직까지 없었다.

 

 ο 주식 매수 과정이 복잡하다

 두 번째 이유는, 삼성전자 주식 30%를 시장에서 사들이려면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의 삼성전자 하루 평균 거래량은 36.2만 주이며, 이는 삼성전자 전체 발행주식 수의 0.25%에 불과하다. 2013년 중 하루 평균 거래량은 25.8만 주로 이는 발행주식의 0.17%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거래되는 삼성전자 주식을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투자자가 혼자서 모두 사들인다는 극단적인 가정을 해도 30%의 지분을 확보하려면 6개월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특정한 투자자가 혼자서 거래되는 삼성전자 주식을 모두 사들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경영권을 방어하려는 이건희 가족 측에서도 주식을 경쟁적으로 사들일 것이고, 양자 간의 지분 싸움에서 덕을 보려는 사람들도 몰려들 것이다. 따라서 인수를 시도하는 투자자가 시장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해서 30%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6개월보다 훨씬 더 긴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경쟁적인 대규모 주식 매입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세계 주식시장의 역사에 없었던 일이다. 만약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주가가 얼마나 폭등하게 될 것인지를 추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세 번째 이유는,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주주가 은밀하게 주식을 사들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상장회사의 경우 5%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대량 보유에 대한 내용을 공시해야 하며, 단순한 재무적인 투자인지 아니면 경영 참여를 위한 투자인지를 구분해서 투자 목적도 함께 공시해야 한다. 또한 5%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1%의 지분이 변동할 때마다 추가로 계속해서 공시를 해야 하며, 그 보고 기간도 5일 이내이므로 30%에 해당하는 지분을 은밀하게 사들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일단 5%를 보유하게 되면 인수를 시도하는 주주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고, 이후 1% 지분을 추가로 취득할 때마다?그 내용을 시장에 공시해야 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주가 상승은 불을 보듯 자명할 것이다. 또한 5% 신고 이외에 지분의 10% 이상을 보유하게 되는 경우 주식 소유가 단 한 주라도 변동되면 ‘임원·주요주주의 주식 등의 소유 상황 보고’를 5일 이내에 공시해야 한다. 따라서 특정 주주가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한다면 주가는 폭등하게 될 것이고, 인수에 필요한 자금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게 될 것이다.

 

 네 번째 이유는, 적대적 인수·합병 하는 데 공정거래법상 또 다른 장애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상장회사 주식을 15% 이상 보유하는 주주는 공정거래법에 따라서 기업결합 신고를 해야 하며, 자산 총액 또는 매출액이 2조 원 이상인 경우 주식을 취득하기 전 공정거래위원회에 사전 신고하고, 사전에 기업결합 심사를 받아야 한다. 기업결합 신고하는 경우 인수하는 회사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관계회사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야 하며, 기업결합이 승인된 경우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감독을 받게 된다. 따라서 삼성전자를 인수하기 위한 펀드에 참여한 투자자들의 실체를 공개해야 하며, 자본시장 통합법에 따라서 지분이 1% 증가할 때마다 보유 지분의 변동을 신고해야 하기 때문에 시장의 지속적인 감시와 정부의 규제를 받게 된다.

 

 ο 역사상 전례가 없다

 세계 기업 인수·합병 역사에서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의 인수·합병이 펀드에 의해서 주도된 사례는 없으며, 적대적으로 성사된 경우도 없다. 대규모 인수·합병은 유사한 업종의 회사들 사이에 우호적으로 이뤄졌다. 1990년부터 지난 20여 년 동안 전 세계에서 이뤄진 상위 20개 대기업의 인수·합병들은 모두 같은 업종 또는 유사한 업종의 회사들 사이에 이뤄진 것이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인 보다폰-만네스만(Vodafone-Mannesmann)은 통신 회사 간 합병이었다. 두 번째 에이오엘-타임워너(AOL-Time Warner) 합병은 인터넷 회사와 출판·영화사 간 합병으로 서로 인터넷 사업자와 콘텐츠 공급자의 상호 보완적인 합병이었다. 세 번째 규모인 화이자-워너-램버트(pfize-Warner-Lambert)는 제약회사 간 합병이었고, 네 번째인 엑슨-모빌(Exxon-Mobil)은 석유 회사 간 합병이었고, 다섯 번째인 글락소 웰컴-스미스클라인 비첨(Claxo Wellcome-SmithKline Beecham)은 제약회사 간 합병이었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외국인 주주들이 일본의 소니(Sony)나 미국의 애플(Apple)과 같이 삼성전자와 경쟁 관계 또는 동일 산업에 속한 기업이 아니고 재무적 투자 목적의 펀드라면 삼성전자의 외국인 주식 지분이 50%를 넘는다고 해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할 것을 우려할 이유가 없다.

 

 역사상 최대의 인수·합병은 1999년 영국의 통신 회사인 보다폰(Vodafone)과 독일의 통신 회사인 만네스만(Mannesmann)의 합병으로 규모가 1,830억 달러(약 210조 원)이었다. 두 번째 규모의 인수·합병은 2000년에 이뤄진 AOL(America on Line)과 타임워너(Time Warner)의 합병으로, 금액은 1,647억 달러(약 166조 원)이었다. 세 번째 규모의 인수·합병은 1999년에 이뤄진 화이자(Pfeizer)와 워너-램버트(Warner-Lambert)의 합병으로, 금액은 900억 달러(약 103조 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수·합병은 모두 인수하는 회사와 인수 당하는 회사가 서로 협력적으로 합의한 우호적인 합병이었다. 만약에 삼성전자를 적대적 인수·합병 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지금까지의 가장 큰 규모의 인수·합병이었던 보다폰-만네스만의 경우보다도 훨씬 더 큰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이다.

 

 대규모 인수·합병은 주식시장에서 현금으로 주식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인수하는 회사와 인수 당하는 회사가 서로 주식 교환(stock swap)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대기업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대규모 자본을 동원하기 어렵고, 또한 시장에서의 매수는 주가를 상승시켜서 인수 가격이 높아지는 역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1990년부터 지난 20여 년 동안 전 세계에서 이뤄진 상위 20개의 인수·합병들은 한 건을 제외하고 모두 합병하는 회사들이 서로 주식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최대 규모의 합병이었던 보다폰과 만네스만의 합병도 주식 교환으로 이뤄진 우호적인 합병이었다. 현금으로 주식을 매집해서 이뤄진 인수·합병은 한 건 있었는데, 이 경우에도 합병하는 두 회사들이 합의한 가격에 매수가 이뤄진 우호적인 합병이었기 때문에 인수하는 회사와 인수 대상 회사의 주주나 경영진이 시장에서 경쟁적으로 주식을 매입한 것이 아니었다. (@역사상 규모로 상위 20대 인수·합병은 모두 동종 업종 또는 유사 업종 기업들 간의 우호적 인수·합병(friendly M&A)이었다. 최대 규모는 1999년 영국의 통신 회사인 보다폰과 독일의 통신 회사인 만네스만의 합병으로 1830억 달러(약 210조 원)이었다. 두 번째 규모의 인수·합병은 2000년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으로 금액은 1647억 달러(약 166조 원)이다. 세 번째 규모는 1999년 화이자와 워너-램버트의 합병으로 금액은 900억 달러(약 103조 원)이다. 네 번째 규모는 1998년 엑슨-모빌의 합병으로 772억 달러(약 89조 원)이다. 다섯 번째 규모는 2000년 글락소 웰컴-스미스클라인 비첨의 760억 달러(약 87조 원)이다. 이들의 인수·합병은 모두 인수하는 회사 또는 합병해서 새로 설립되는 회사의 주식과 인수 대상인 회사의 주식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합병이 이뤄졌다. 20대 인수·합병 중에서 현금으로 이뤄진 경우는 역사상 18번째로 큰 규모의 520억 달러(약 59.8조 원) 인수·합병인 벨기에와 브라질의 맥주 제조 회사인 인베브(InBev)가 미국의 맥주 제조 회사인 앤호이저-부시(Anheuser-Busch)를 인수한 경우다. 인베브는 앤호이저-부시의 주식을 주당 70달러에 현금으로 매수해서 두 회사가 합병을 했다. 인수자금 중에서 450억 달러는 인베브가 부채로 조달했고, 98억 달러는 주식을 담보로 한 자금 조달로 마련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를 적대적 인수·합병 하려고 시도한다면, 인수하려는 투자자와 이건희측이 서로 경쟁적으로 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할 것이기에 주가가 폭등해서 인수에 필요한 현금 자금이 자본주의 역사상 최대의 거래 규모가 될 것이다. 

 

 설령 삼성전자 외국인 주주 중에 적대적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하는 펀드나 투자자가 있다고 할지라도 지수 펀드나 액티비스트 펀드들이 그러한 시도에 가담한 사례를 적대적 인수·합병이 활발한 미국이나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삼성전자도 인수·합병될 수 있다?

 ο 예외는 없다

 노동자, 투자자, 소비자 그리고 국가 등 기업의 이해당사자(stakeholder)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회사의 경영이 잘되는 것이지 누가 경영권을 갖느냐가 아니다. 

 

 한국 재벌 그룹들의 주요 계열사들은 창업자나 그 후손들이 창업한 회사보다는 인수·합병을 통해서 경영권을 갖게 된 경우가 많다. SK그룹은 인수한 회사들을 통해서 성장한 대표적인 재벌 그룹이다. SK그룹의 가장 큰 계열사인 SK텔레콤은, 공기업이었던 한국이동통신을 1994년 인수한 것이다. 두 번째로 큰 계열사인 SK에너지도, 공기업이었던 대한석유공사를 1980년 인수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큰 계열사인 SK하이닉스는, 현대그룹의 계열사였던 현대전자가 1999년 LG반도체를 인수해서 2001년 하이닉스로 회사 이름을 변경했다가 이후에 경영이 부실해지고 채권단이 법정 관리하고 있었던 회사를 SK그룹이 2012년 인수한 것이다. SK그룹의 상위 3개 계열사들인 이들의 매출액 합계는 그룹 전체 매출액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현대차그룹의 경우에도, 두 번째로 큰 계열사인 기아자동차를 외환 위기 때 파산해서 법정 관리를 받고 있던 1998년에 현대자동차가 인수한 것이다. 또한 세 번째로 큰 계열사인 현대제철도 인천제철로 시작해서 외환 위기 때 파산한 한보철강의 당진 공장을 2004년 인수해서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신흥 재벌로 부상했다가 다시 경영 악화에 빠진 STX그룹도 대주주가 창업을 한 것이 아니라 외환 위기 때 경영 부실로 파산한 쌍용중공업을 당시의 전문 경영인이 인수해서 시작되었고, 이후에도 STX그룹은 인수·합병으로 계열사를 늘려가서 창업보다는 인수·합병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재벌 그룹이다.

 

 한국의 부실기업이 외국 기업이나 외국인 투자자에 의해서 인수되는 경우도 수없이 많았다. 르노-삼성자동차는 프랑스의 자동차 회사인 르노가 부실기업의 법정 관리에 있던 삼성자동차를 2000년 인수해서 설립한 회사다. 현재 르노-삼성자동차는 르노자동차가 80.1%의 지분을 소유하고 삼성카드가 19.9%를 소유하고 있다. 아직도 르노-삼성자동차의 회사 이름에 삼성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삼성 계열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삼성그룹의 계열사가 아니며 경영권은 전적으로 르노에서 행사하고 삼성그룹은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르노-삼성자동차의 인수·합병은 회사 경영 실패로 인해서 기존의 경영진이 경영권을 스스로 인수자에게 넘겨준 우호적인 인수·합병의 사례다.

 

 GM-대우자동차(GM Daewoo Auto &Technology)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우자동차는 1937년 신진공업사로 설립된 회사로 한국에서는 드물게 오랜 역사를 가진 회사였다.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당시에 두 번째로 큰 재벌 그룹이었던 대우가 1978년 인수해서 대우자동차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후에 현대자동차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로 부상했다. 그러나 1999년 경영 악화로 파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미국의 GM이 2001년 인수해서 GM-대우자동차로 이름을 변경했고, 지금은 회사 이름에서도 대우가 빠지고 한국GM(GM Korea)이 되었다.

 

 이같이 인수·합병은 경영이 악화된 기업을 회생시키는 중요한 수단이며, 인수하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기업 성장의 중요한 전략적 선택이다. 인수·합병은 한국 재벌 그룹에서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기업들에서는 매우 보편적인 성장 전략이다. 한국 재벌 그룹의 인수·합병 중에서 규모가 큰 인수·합병은 상당수가 경영이 악화되었거나 파산한 부실기업을 인수한 경우다. 반면에 선진국에서 이뤄진 대규모 인수·합병은 인수하는 회사와 인수되는 회사 또는 서로 합병하는 회사들이 경영전략적인 필요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ο 최선의 방어는 경영을 잘하는 것

 기업이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이유는 한국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임금을 지급하며, 세금을 내는 등 기업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가 한국에 귀속되는 것이지, 누가 경영권을 갖느냐는 아닐 것이다. 먹튀 논란이 있었던 쌍용자동차는 국내의 경쟁 업체인 현대자동차는 물론이고 다른 재벌 그룹도 인수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의 상하이기차가 인수했으며, 경영이 회복되지 않아서 다시 인도의 마힌드라(Mahindra)가 인수해서 경영 정상화를 하는 과정에 있다. 대우자동차의 경우에도 국내에서는 인수를 원하는 투자자나 회사가 없어서 미국의 GM이 인수해서 안정적인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 외환은행의 경우에도 외환 위기로 경영이 부실해져서 독일 은행인 코메르츠방크(Commerzbank)가 경영권을 인수했다. 그러나 코메르츠방크가 경영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다시 자본 부족 상태에 이르자 코메르츠방크는 한국 정부에 증자를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당시에 외환은행의 주요주주였던 한국은행마저도 이를 거절했고, 이로 인해서 론스타가 경영권을 다시 인수했고, 이후에 외환은행의 경영이 호전된 다음에야 하나은행이 인수하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 경영이 악화되어 인수·합병 시도가 있더라도 적대적인 경우보다는 우호적인 경우일 가능성이 더 크다. 우호적인 인수·합병은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이었던 영국의 통신 회사인 보다폰과 독일의 통신 회사인 만네스만의 경우처럼 삼성전자가 경영 전략상 필요 때문에 자진해서 추진하는 경우와, 반대로 삼성자동차의 경우처럼 부실에 빠져 어쩔 수 없이 다른 기업에 의해서 인수·합병되는 경우를 가정해볼 수 있다. 

 

 한국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에 의한 인수·합병 사례들은 대부분 회사가 파산에 이를 정도로 악화된 상황 이후에야 이뤄진 경우들이다. 보다 바람직한 경우는 회사가 최악의 파산 상태에 이르기 전에 인수·합병이 이뤄져서 경영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그러한 인수·합병의 경우에는 노동자들도 파산한 경우보다는 고통을 적게 겪을 것이고, 주주들도 투자 자금을 모두 손해 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며, 또 국가도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금융을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파산 이후에 인수·합병되는 경우보다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는 회사 경영이 최악으로 악화된 상황에서도 자신의 경영권을 지키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경영권을 포기하고 우호적인 합병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 상황에서는 경영을 반전시키고 회사를 회생시킬 역량이 있는 새로운 대주주가 경영권에 도전하는 적대적 인수·합병의 시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대적 인수·합병은 자본시장의 필요한 기능 중 하나다. 외국인 투자자나 외국 회사가 경영권을 인수해서 기업이 회생한다면 그것이 해당 회사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삼성전자도 어떠한 경우이건 이건희가 경영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ο 당신은 삼성전자 주식을 갖고 있나요?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강제로 빼앗아간 것이 아니라 주식시장에서 정당한 가격을 치르고 산 것이다. 삼성전자가 상장할 때부터 외국인 지분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한국인들보다 삼성전자 주식을 더 많이 보유하게 된 것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주식을 외국인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상장회사의 주식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 한도를 폐지한 것은 1998년이다. 투자 한도가 폐지된 그해 말에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급격하게 증가해서 47.2%에 이르렀다. 2004년 4월에는 사상 최고치인 60.1%에 이르렀고, 이후에 감소세를 지속하다가 금융 위기 이후인 2008년 11월에는 42.2%까지 축소되었다. 지난 15년 동안 삼성전자의 주가는 7만 7,282원에서 136만 8,000원으로 무려 17.4배가 올라서 수익률이 무려 1,640%이고 연간 수익률이 20%에 이르는 엄청난 것이다. 한국인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팔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큰돈을 벌었을 터인데, 외국인들에게 팔았기 때문에 그 차익을 외국인이 가져가게 된 것이다. 외국인 지분이 높다고 염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인이 삼성전자 주식을 팔았을 때 외국인은 왜 샀을까를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2002년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삼성전자 외국인 보유 지분이 가장 낮은 때는 세계 금융 위기가 발생한 후인 2008년 11월 19일에 기록한 42.18%이다.)

 

 한국에서 최대 자금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도 삼성전자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한국 최대의 투자 기관인 국민연금이 삼성전자 지분을 5% 이상 소유하게 된 것은 지난 2009년부터 이며, 2011년 말 기준으로 6.0%를 보유하고 있다.)

 

 ο 외국인 투자 한도로 지킨다?

 외국인의 소유를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그 방법은 개별 외국인 주주의 소유 상한을 정하는 방법과 외국인 전체의 소유 상한을 정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두 가지 방법 중에서 전자는 공공성이 높은 사업을 하는 기업의 경우 내외국인을 구분하지 않고 이미 도입하고 있다. 은행의 경우에는 특정 개별 주주가 4% 이상을 소유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2013년 개정된 은행법은 비금융주력자에 대한 주식 보유 한도를 기존 9%에서 4%로 하향 조정하였다.) 또한 지상파 방송사의 경우 외국인이 지분을 보유할 수 없으며, 기간 통신사업자의 경우에도 외국인이 49%를 초과하여 지분을 보유할 수 없도록 일부 산업에 대해서는 현재 외국인 규제가 존재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 한도가 설정되면 가장 먼저 주식시장이 반응할 것이다. 외국인 주주들이 주식을 팔아야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주가 폭락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2014년 6월 현재 삼성전자의 외국인 소유 지분은 47.8%이다. 외국인 지분 한도를 30%로 설정한다면 외국인들은 17.8%인 약 2600만 주를 팔아야 하는데, 이는 약 5개월의 거래량에 해당한다. 또한 매도해야 할 금액은 2013년 6월 시가로 약 35조 원에 해당한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가족과 계열사들이 보유한 지분을 모두 합해도 20%에 못 미친다.

 

 2013년 6월 말 현재 시가총액 상위 20위 상장회사 중에서 외국인 소유지분이 30%를 넘는 회사는 14개사다. 30%의 소유 한도를 도입한다면 외국인 주주들이 처분해야 할 14개 회사의 처분 금액은 77조 원에 이른다. 20%의 소유 한도를 도입한다면 외국인 주주들이 처분해야 할 16개 회사의 처분 금액이 124조 원에 이른다. 시가총액 상위 20위의 대기업만을 대상으로 해도 외국인이 처분해야 할 주식은 전체 시가총액의 10%를 넘기 때문에 주식시장 전체에 주가 폭락은 불가피한 상황이 될 것이다.

 

 만약에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만으로도 약 100조 원의 가치가 주식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외국인 소유 한도를 도입하는 것은 주가의 대폭락 사태로 끝나지 않고 외환시장에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외국인 주주들이 주식을 처분한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여야 하는데 그 결과로 환율이 급등하고 외환 보유고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외환 보유고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30%의 소유 한도를 도입한다면 외국인 주주들이 처분해야 할 시가인 77조 원은 약 674억 달러이며, 20%의 소유 한도를 도입할 경우 외국인이 처분해야할 시가인 124조원은 약 1088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한국 외환 보유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러한 추정은 2013년 6월 주가를 적용한 것이며, 실제 규모는 주가 폭락과 달러 수요의 급격한 증가로 인한 환율 급등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추정을 할 수는 없다. 

 

 외국인 투자 한도를 설정하는 것으로 인해서 대규모 달러 매입 수요가 단기간에 발생하고 한국을 빠져나간다면 환율 폭등은 말할 것도 없고, 외환 보유고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국가 신용도가 하락해서 국가 경제 전체가 대혼란 상황으로 빠질 것이다. 

 

 ο 상장폐지해서 지킨다?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가 대물림하면서 경영권을 지키려면 처음부터 상장하지 않고 개인회사로 남아야 한다. 따라서 삼성전자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을 원천적으로 막고 이건희 가족들이 영원히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삼성전자를 주식시장에서 상장폐지 해서 가족회사로 전환하는 것이다. (@상장(上場, Listing)이란 증권거래소에서 주식이 거래되는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다. 상장 주식은 증권거래소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매매계약을 별도로 체결하지 않고 거래를 한다. 상장 주식의 거래는 증권거래소의 공신력을 기초로 이뤄지기 때문에 거래 상대방을 확인할 필요도 없고, 매도대금으 결제와 매입 주식의 인도 등의 결제 위험도 없다. 또 모든 거래자들이 증권거래소를 통해서 거래하기 때문에 개개인이 거래 상대방을 물색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증권거래소는 거래에 따른 위험을 줄이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상장을 허용하는 조건, 즉 상장요건을 엄격하게 정하고 있다. 그러나 비상장주식, 즉 증권거래소에 상장하지 않은 주식을 거래하기 위해서는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서로를 물색해야 하고, 두 사람 사이에 매매계약을 체결해야 하며 거래의 결제와 주식의 인도 등에 비용과 위험이 따른다. 따라서 비상장회사의 주식을 거래하는 것은 거래자 개개인에게 많은 노력과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아서 일반 투자자들은 투자를 꺼린다. 반면에 상장회사의 주식은 언제든지 증권거래소를 통해서 쉽게 사고 팔 수 있기 때문에 활발하게 거래가 이뤄지고 일반 투자자들이 어렵지 않게 투자할 수 있다. 또한 상장회사는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주식을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용이하다.) 상장회사가 증권거래소에서 상장폐지 되면 주식시장에서 주식이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경영권을 가진 주주가 주식을 팔지 않는 한 기업 인수를 시도하는 측이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며, 따라서 적대적 인수·합병은 불가능해진다.

 

 주식시장에 대한 비판 중 하나가 주식시장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투기꾼들만 판치는 시장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즉 주식시장은 기업들이 주식을 발행해서 새로운 자본을 조달하는 것이 원래 목표한 기능인데도 불구하고, 최근에 대기업들이 신주를 발행해서 자본을 조달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 기능은 하지 못하고 그냥 기존 주식의 거래만 이뤄지고 있는 시장으로 변질되었으며, 특히 투기꾼들에게 합법적인 투기판을 마련해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런 비판은 틀린 것이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주식시장에서 상당 기간 동안 자본조달하지 않는 기업을 상장폐지 한다면 적대적 인수·합병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투기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5년 동안 주식 발행으로 자본을 조달한 적이 없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21번이나 신주를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통해서 자기자본을 조달했지만, 마지막 유상증자는 1999년 6월이었으며, 그 이후에는 단 한 차례도 신주 발행으로 자본을 조달한 적이 없다. 

 

 삼성전자를 상장폐지 하고 개인회사로 전환하려면 이건희는 삼성 계열사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을 제외한 일반 주주들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모두 사들여야 한다.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이건희 가족이 보유한 지분은 4.7%이며, 계열사들이 보유한 지분은 12.9%로 이건희 가족과 계열사가 보유한 지분의 합계는 17.6%이다. 또한 삼성전자는 자사주로 11.1%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상장폐지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일반 주주들이 가지고 있는 71.3%의 지분을 사들여야 한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2014년 6월 말 기준으로 약 191.6조 원이며, 일반 주주가 보유한 71.3%의 지분의 가치는 약 136.6조 원에 해당한다. 상장폐지하려면 주식시장에서 공개 매수를 통해서 주식을 사들여야 하는데, 공개 매수를 할 경우 매수 가격은 시가보다 높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급하게 된다. 만약에 매우 보수적으로 20%의 프리미엄을 지급한다고 가정해도 일반 주주들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이는 데 필요한 자본은 약 163.9조 원이다. 2014년 6월 말 환율을 적용하면 약 1658억 달러이며, 이는 2000년대에 세계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 중 하나였던 미국의 AOL이 타임워너를 인수할 때 지불한 1647억 달러와 유사한 금액이 된다. 

 

 이건희 개인 재산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이 삼성전자의 주식이며, 약 6.7조 원이다. 따라서 이건희 개인 재산의 총액을 <포브스>가 추정한 14.4조 원으로 볼 경우에도 삼성전자의 주식을 제외한 나머지 재산이 약 7.7조 원이다. 따라서 이건희와 가족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제외한 나머지 재산을 모두 처분한다고 해도 삼성전자의 상장폐지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건희만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부자라 할지라도 삼성전자를 상장폐지 할 수 있는 재산을 가진 사람은 없다. 이건희 가족들이 삼성전자 주식 이외의 모든 재산을 처분한다 해도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 자본은 약 156조 원이다.

 

 156조 원은 한국의 모든 일반은행 총대출금의 17%를 넘는 엄청난 규모다. (@2013년 12월 말 기준으로 농협, 수협, 중소기업은행, 산업은행 등의 특수은행을 제외한 일반은행의 총대출금 합계는 900.7조 원이다.) 만약에 한국의 은행들이 156조 원을 이건희에게 삼성전자 주식 매입 자금으로 대출한다면, 중소기업과 일반 국민들은 은행에서 대출받는 것은 지극히 어려워질 것이고 한국 금융시장은 대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이 정도의 대규모 자금을 한 개인에게 대출해 줄 수 있는 은행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선진국에도 없다. 삼성전자가 채권을 발행하고 세계 여러 나라들로부터 차입을 한다고 해도 상장폐지를 위해서 이러한 대규모 차입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결론적으로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서 상장폐지를 한다는 것은 주식 매입 자금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

 

 삼성전자가 차입하지 않고도 오랜 기간에 걸쳐서 상장폐지를 시도할 수도 있다. 배당 지급이나 내부유보를 하지 않고 순이익 전액을 자기 회사 주식을 사들이는 데 사용하는 방법이다. 삼성전자의?2013년 순이익인 17.9조 원으로 자기 주식을 사들이는 데 사용할 경우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전체 발생주식의 약 9.3%인 1,368만 주를 사들일 수 있었다. 만약에 매년 9.3%를 사들인다면 일반 주주들이 가지고 있는 71.3%를 모두 사들이는 데 소요되는 기간은 약 8년 정도다. 2013년은 삼성전자가 역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기록한 해이고, 삼성전자가 상장폐지를 목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한다면 주가가 폭등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일반 주주가 가지고 있는 모든 주식을 순이익만으로 사들이려면 8년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순이익으로 자사주를 매입해서 상장폐지하려면 10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삼성전자가 지속적으로 자기 회사 주식을 매입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삼성전자의 유통 주식 수가 계속해서 줄어들어서 자사주를 매입하는 만큼씩 주가가 오르게 된다. 그리고 회사가 자사주로 보유하는 주식들은 이건희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자사주 매입에 응하지 않고 남아 있는 잔여 주주들의 소유다. 따라서 자사주 매입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건희 회장이나 삼성전자가 잔여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그동안 순이익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지불한 금액과 맞먹는 규모가 되어 결국 상장폐지하는 경우와 마찬가지의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순이익으로 일반 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주식을 사들이는 방안은 유통 주식 수를 줄여서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의 의결권 비율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와 경영권 방어의 보완적 수단은 되지만 차입으로 상장폐지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현실성이 없다. 

 

 * 신주 발행과 자본조달

 시가총액 2위인 현대자동차와 3위인 포스코도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1998년 5월 유상증자 이후 지난 16년 동안 신주를 발행해서 신규 자본을 조달한 적이 없다. 상장회사 중에서 경영 성과가 좋아서 이익이 많이 나는 대기업들 상당수가 수년 동안 신주 발행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주식시장이 자금 조달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상장회사가 신주를 발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주식시장이 자본조달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상장회사의 자본조달 방법과 주식시장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한 틀린 것이다.

 

 삼성전자가 새로 주식을 발행해서 자본을 조달하지 않은 이유는 새로운 자본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이익을 주주들에게 배당하지 않고 내부에 유보해서 투자 재원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2013년 순이익은 17.9조 원이었다. 이 중에서 배당금으로 지급한 금액은 2.2조 원이며, 나머지 15.7조 원을 회사 내부에 유보했다. 내부유보(內部留保)는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지급될 순이익을 배당으로 지급하지 않고 회사가 보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부에 유보한 15.8조 원은 주주들의 돈이다. 만약에 순이익을 모두 배당금으로 지급했다면 15.7조 원의 자금을 새로 주식 발행하거나 차입을 통해서 조달했어야 한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신주를 발행하거나 차입하지 않고 바로 기존의 주주들로부터 15.7조 원을 조달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 동안의 총순이익은 104.1조 원이었으나, 이 중에서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지급한 총액은 약 11.6%인?12.1조 원이었다. 나머지 92조 원은 내부에 유보해서 자금으로 사용했다. 지난 10년 동안 삼성전자가 신주를 발행하지 않았지만 내부유보한 92조 원은 주식시장을 통해서 조달한 자금인 것이다.

 

 현대자동차와 포스코의 경우에도 신주 발행으로 자본을 조달하지 않은 것은 재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주주들에게 배당하지 않고 내부에 유보한 순이익에서 조달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의 2013년 순이익은 5.2조 원이었고, 이 중에서 배당으로 지급한 5,340억 원을 제외한 4.6조 원을 내부에 유보했다. 현대자동차가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 동안 순이익을 배당으로 지급하지 않고 내부에 유보해서 주주들로부터 조달한 자금은 총 26.7조 원이다. 포스코도 같은 10년 동안 순이익을 내부에 유보해서 주주들로부터 조달한 자금이 27.0조 원이었다. 결과적으로 상장회사가 신주를 발행해서 신규 자본을 조달하지 않으니 주식시장이 자본조달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주장은 내부유보나 주식시장의 기능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10년 이상 신주 발행하지 않았으니 일반 주주들의 주식을 매입하고 상장 폐지를 한다면 앞서 추정한 바와 같이 약 164조 원을 조달해야 한다. 만약에 164조 원을 연이자율 5%로 차입해서 주주 자본을 대체한다면 연간 이자 지급액이 8.2조 원에 이른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2013년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한 금액은 1.2조 원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주식시장에 상장을 해서 주주 자본을 사용함으로써 차입금(leverage)을 사용하는 경우와 비교해서 7조 원의 직접금융 비용을 덜 부담하는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상장폐지를 위해서 164조 원 규모의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는 가정을 한다면, 현재 일반 주주들로부터 164조 원을 조달해서 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차입한 경우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쓰고 있는 것과 같다. 이같이 주식시장이 주식 발행을 통하여 신규 자금 조달 기능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주식시장이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그런 기업들을 상장폐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순이익을 내부유보해서 주주들로부터 자본을 조달하는 주식회사의 기본적인 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틀린 주장이다.

 

 ο 50%+1주 확보해서 지킨다?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가 50%+1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면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경영권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영권을 자식에게까지 대물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한국은 30억 원 이상의 상속재산에 대한 상속세율이 50%이기 때문에 50%+1주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상속세를 내고 나면 지분이 25%로 줄어들어 과반수 의결권을 유지하지 못한다. (@상속세율은 상속재산의 크기에 따라 누진적으로 증가한다. 현재의 상속세율은 1억 원 이하 10%, 5억 원 이하 20%, 10억 원 이하 30%, 30억 원 이하 40%, 그리고 3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50%이다.) 물론 상속세를 다른 재산으로 내고 회사 주식을 매도하지 않는다면, 지분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경영권을 대물림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경우에 이건희의 아들인 이재용의 재산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을 삼성전자 주식의 가치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물려받은 재산으로 상속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서 이건희 가족이 50%+1주의 지분을 확보한다고 해도 대물림하면서 적대적 인수·합병을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상장회사는 대주주가 99.9%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자식에게 주식을 상속하면 상속세 때문에 지분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고 상속이 3대, 4대로 이어지면 지분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권을 대물림해서 지키겠다면 처음부터 주식을 상장하지 않고 가족회사로 남아야 한다. 상장을 통하여 일반 주주들로부터 자본을 조달하고 난 후에는, 대주주가 상장회사를 개인 소유 회사인 것처럼 경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장을 한 후에 경영권을 대물림해서 지키겠다면 주식을 상장폐지 하고 개인회사로 전환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삼성그룹 소유 지배 구조

 ο 현대차는 적대적 M&A 걱정이 없는가?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 중에서 외국인 지분이 이미 50%를 넘는 기업이 6개나 되고, 삼성전자와 같이 40%를 넘는 회사도 4개나 된다. (@2013년 9월 기준 시가총액 상위 20위 기업 중에서 외국인 소유 지분이 50%를 넘는 기업은 신한지주 63.9%, KB금융지주 63.9%, 하나금융지주 60.0%, 네이버 55.3%, 삼성화재 54.3%, 포스코 54.2%이다. 외국인 소유 지분이 40%를 넘는 기업은 현대 모비스 49.6%, 삼성전자 48.7%, SK텔레콤 46.7%, 현대자동차 45.9%이다.) 시가총액 상위 기업에는 현대자동차, 포스코, 신한금융지주(신한은행의 지주회사)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기업들도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한국 경제에 대단히 중요한 회사들이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소유 지분이 60%를 넘어서서 적대적 인수·합병 논란이 시작되었던 2004년에 현대자동차의 외국인 지분은 57%를 넘었고, 포스코와 신한지주의 외국인 지분은 삼성전자보다 훨씬 높은 71%와 66%였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소유 지분이 가장 높았던 때는 2004년 4월 13일로 60.13%였다. 현대자동차의 외국인 소유 지분이 가장 높았던 때는 2004년 10월 21일로 57.11%였다. 포스코의 외국인 소유 지분이 가장 높았던 때는 2004년 9월 13일로 70.52%였다. 신한지주의 외국인 소유 지분이 가장 높았던 때는 2004년 5월 6일로 66.28%였다.) 이 중에서도 포스코는 외국인 소유 지분이 70%를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과 같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주주도 없다. 또한 포스코의 시가총액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14% 정도이기 때문에 적대적 인수·합병 하는 데 동원해야 할 자금의 규모도 훨씬 적다. 

 

 한국 3대 민간은행인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민은행을 100% 소유하고 있는 KB금융지주의 지분을 5% 이상 가진 주주는 9.96%를 보유한 국민연금 하나뿐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재무적 투자자이기 때문에 국민은행에는 대주주의 ‘경영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KB금융지주는 외국인 주주들의 지분이 삼성전자의 49.7%보다 훨씬 높은 63.5%이고, 한 번도 외국인 지분이 50%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을 외국인 주주가 인수·합병한다거나 경영권을 장악하려 한다는 우려가 없다. 신한금융지주도 외국인 지분이 66%까지 올라갔고 짧은 몇 달을 제외하고는 항시 50% 이상을 유지했다. 하나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은 무려 81%에 까지 이르렀고 지속적으로 60% 이상을 유지했다. 3대 민간은행의 지주회사들은 삼성전자와 비교해서 외국인 지분이 훨씬 높을 뿐만 아니라 포스코와 마찬가지로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도 없고 시가총액도 삼성전자의 5~10% 수준에 불과하다. 3대 민간은행에는 5% 이상을 소유한 외국인 주주들이 있지만 삼성전자는 없다. 은행의 경우에는 대주주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지만, 은행의 대주주가 되는 자격 요건을 갖춘 외국인 주주라면 정부가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따라서 단순히 외국인 지분이 높다는 사실 때문에 외국인 주주들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험이 있다면 삼성전자보다 3대 민간은행들의 위험이 훨씬 더 크다. 

 

 삼성전자보다 외국인 지분이 높을 뿐 아니라 대주주도 없고 시가총액도 작은 포스코나 3대 민간은행들, 그리고 현대자동차에 대해서는 외국인 주주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 논란이 있었던 것일까?

 

 삼성전자에 대해서만 적대적 인수·합병의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삼성그룹이 ‘자초한’ 일이었다. 삼성그룹은 2004년 적대적 인수·합병 가능성과 위험성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공정거래위원회를 방문해서 그러한 우려를 직접 전달하고 설명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삼성전자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한 주주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알려지거나 보도된 바가 없고, 당시의 외국인 소유 지분 구조로 봐서 그런 시도를 할 만한 역량이 있는 주주도 없었다. 

 

 ο 물고 물리는 돌려 막기

 이건희는 자신과 가족이 소유한 지분이 아니라 계열사가 소유한 지분으로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 논란이 제기된 2004년에 계열사들이 소유한 지분은 12.72%이었고 이건희 가족과 임원 등의 특수 관계자들이 소유한 지분을 다 합하면 16.05%였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한 삼성전자의 1대 주주는 이건희가 아니라 7.23%를 보유한 삼성생명이었다.

 

 그런데 2004년 당시에 삼성생명의 소유 구조를 보면 1대 주주는 비상장회사인 삼성에버랜드로 19.34%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건희의 소유 지분은 4.54%에 불과했다. 그리고 삼성생명의 1대 주주인 삼성에버랜드의 소유 구조를 보면 이건희가 3.7%, 아들인 이재용이 25.1%, 세 명의 딸들이 25.1%를 소유해서 가족들의 지분합계가 53.9%인 소유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계열사들의 출자 구조에서 최종 고리에 있는 삼성에버랜드의 가족 지분이 50%를 넘어서는 방법으로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1대 주주로서만이 아니라 삼성그룹의 다른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어서 삼성 계열사들의 순환 출자 구조의 핵심적 연결고리다.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돌려 막기 ‘순환 출자 구조’가 이건희 가족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핵심적 연계 고리다. 계열사 간의 이러한 돌려 막기식 순환 출자가 삼성그룹의 자체 보고에서는 76개 있는 것으로 밝혔지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분석에 의하면 무려 2555개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이 여러 개의 복합적인 순환 출자구조에서 삼성생명은 가장 핵심적인 연결 고리의 역할을 하는 아킬레스건(achilles腱)과 같은 존재다. 그런데 사건이 생겼다. 2004년 당시에 삼성생명이 지분을 소유한 계열사들에 대해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에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당시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 그룹 내에서 자신의 금융 계열사가 소유한 다른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30%에서 15%로 낮추는 법 개정을 추진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한 법 개정의 취지는 재벌 그룹들이 고객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금융 계열사를 이용해서 총수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었다. 즉 금융회사는 자기자본이 아니라 고객의 돈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이 맡긴 돈을 투자한다는 명분으로 자기 계열사들의 주식을 사고 그 주식에 해당하는 만큼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이는 고객 돈으로 경영권을 확보해주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생명과 이건희 등의 특수 관계인이 당시에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 합계가 16.05%이었으니 법이 개정되면 이 중에서 일부의 지분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금융·보험회사의 경우, 공정거래법 11조에 의해 국내 상장회사의 주주총회에서 주요안건의 경우 특수 관계인과 합하여 발행주식 총수의 15%까지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주요 한건은 임원 선임 및 해임, 정관 변경, 합병 및 영업양도를 의미한다. 이 경우에 발행 주식 총수는 상법 제371조 1항에서 정하고 있는 주식 즉 우선주와 자사주 등 의결권 없는 주식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삼성생명 등의 삼성 그룹 계얄사들이 소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16.05%가 삼성전자가 발행한 주식 중에서 우선주와 자사주를 제외한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7%이었으며, 이 중에서 15%를 초과하는 2.7%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삼성전자만이 아니라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등의 삼성그룹의 금융 계열사들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다른 계열사들에 대한 의결권도 제한을 받게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삼성생명이나 삼성화재와 같은 금융 계열사를 통해서 삼성전자의 지분을 늘려간다고 해도 의결권을 추가로 확보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삼성그룹은 이러한 공정거래법의 개정을 반대하기 위해서 스스로 삼성전자가 외국인 주주들에 의해서 적대적 인수·합병 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삼성그룹은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물산 3개 회사를 원고로 2005년 6월 공정거래법 11조의 의결권 제한이 위헌이라는 취지로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냈다가 나중에 취소하는 소동까지 벌였다. (@삼성그룹이 헌법 소원을 낸 이유는 ‘사적재산권을 제약함으로써 외국 자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 방어 수단을 무력화시키는 위헌적 조치’라는 것이다. 이후 삼성생명 등은 2006년 2월 입법기관의 정책 판단 사항에 대해 대립하고 있다는 사회 일각의 비판적 시각을 겸허하게 수용해 이사회의 위임을 받은 경영위원회를 거쳐 위헌 소송을 취하‘하였다. 삼성의 소 취하는 당시 삼성에버랜드 전화사채(CB) 등의 증여 문제와 ’X-파일‘ 등으로 삼성그룹에 대한 사회 전반의 문제 제기가 심화되자 8000억 원의 사회 기금 조성 등의 조치르 발표할 때 포함된 것이다.)

 

 당시에 외국인 지분이 높았던 현대자동차나 포스코 등의 다른 회사들은 삼성전자와는 달리 금융 계열사를 통해서 소유한 지분이 전혀 없었다. 따라서 공정거래법이 개정된다고 해도 이 회사의 의결권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다른 재벌 그룹들의 경우에도 금융 계열사를 통해서 총수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의 개정이 전혀 영향이 없거나 있는 경우에도 그 영향이 미미했다.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으면 외국인 주주에 의해서 적대적 인수·합병 될 수 있다는 삼성그룹의 주장은 다른 재벌들이나 기업들과는 별 관계가 없는 삼성그룹만의 문제였던 것이다. 일부 언론은 삼성전자 외국인 주주 중에서 시티은행(Citibank)이 11.8%를 소유하고 있어서 그럴 위험이 더 크다는 엉터리 기사를 내기도 했다. 시티은행은 한국의 증권예탁원과 마찬가지로 여러 외국인 주주들의 주식을 보관하는 ‘예탁 기관’인데도 마치 실질적으로 주식을 소유한 주주인 것처럼 보도했던 것이다. 

 

 삼성그룹의 자작극에 가까운 적대적 인수·합병 주장과 이에 동조하는 친재벌 언론과 정치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은 개정되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삼성이 주장했던 외국인 주주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은 시도된 기미조차 보인 적이 없었다. 외국인 주주들의 지분이 50%를 훨씬 넘어서는 많은 기업들이 있었지만 하나의 기업을 제외하고는 외국인 주주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이 시도된 적도 없었다. 예외적인 하나의 기업은 SK였다. SK가 적대적 인수·합병의 대상이 된 것도 최태원 회장과 한국 투자자들이 자초한 일이었다. 2003년 초에 검찰이 SK그룹의 1.5조 원에 이르는 거대한 분식 회계를 밝혀내자 주가가 폭락하고 SK 주식의 투매 현상이 발생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진 당시에 소버린(Sovereign Asset Management)은 불과 2, 3개월 만에 SK 주식을 15%나 시장에서 사들여서 SK의 1대 주주가 되었다. 그리고 2004년 주주총회와 2005년 주주총회에서 자신들이 추천한 이사를 선임하는 방법으로 경영권에 도전했다. 그러나 1대 주주임에도 불구하고 두 번 모두 실패했다. 특히 소버린의 경영권 도전이 최고조에 다다랐던 2004년 중에는 SK의 외국인 지분이 62%까지 늘어났고, 2005년 주주총회에서의 외국인 지분도 삼성전자와 같은 54%였다. SK의 경영권에 도전한 소버린은 자신이 15%를 소유한 1대 주주였기 때문에 5%를 넘는 외국인 주주가 없었던 삼성전자와는 전혀 상황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버린이 경영권 도전에 실패한 이유는 외국인 주주들이 소버린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SK-소버린의 사례는 단순하게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으면 외국인들이 똘똘 뭉쳐서 한국 기업을 적대적으로 인수·합병할 것이라는 생각이 ‘괴담’류의 황당한 망상이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누구를 위한 경영권 보호인가? 

 ο 경영을 잘해야 한다

 현재의 경영진이 경영을 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주주가 자신이 더 나은 경영을 할 역량이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역량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다른 주주들이 인수를 시도하는 주주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인수·합병 시도는 실패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을 잘하는 것이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최선의 방어책이다.

 

 현재의 경영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영권에 도전하는 주주가 자신이 현재의 경영진보다 경영을 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해서 적대적 인수·합병에 실패한 사례가 바로 소버린과 SK의 경영권 분쟁이었다. SK-소버린 경영권 분쟁을 촉발한 것은 2003년 3월에 SK와 최태원 회장의 불법행위가 밝혀진 것이었다. SK의 분식 회계 규모는 미국에서 20세기 최대의 분식 회계 사건이라고 알려진 엔론(Enron)의 분식 회계 규모와 맞먹는 엄청난 규모였고, 분식 회계만이 아니라 최태원은 자신이 소유한 계열사 주식을 실제 가치보다 부풀려서 다른 계열사에 매각함으로써 부당이득을 취하는 등의 불법행위로 구속이 되었다.

 

 최태원의 불법행위로 회사 경영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소버린은 15%를 소유한 1대 주주였으며, 외국인이 소유한 지분도 54%였을 뿐만 아니라 소버린 이외에도 5% 이상을 소유한 외국인 주주들이 있었다. 따라서 소버린은 표면적으로 보면 경영권 도전에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더구나 소버린은 전직 총리와 현직 저명 교수까지 포함한 소위 국내 유명 인사들을 이사 후보로 내세우면서 최태원의 불법행위를 견제하고 투명한 경영을 하는 제도적 개선안들도 함께 제안했다. 그러나 주주총회에서 소버린이 추천한 이사 후보를 지지한 지분은 35%에 불과했다.

 

 국내외 주주들이 소버린을 지지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소버린이 SK의 경영을 잘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버린은 펀드를 운용하는 투자회사로 SK 같은 대규모 제조업 회사를 경영한 경험도 없었고, 또 소버린이 추천한 이사 후보들이 명망가이기는 하지만 경영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또한 SK의 생존은 SK그룹의 여러 계열사와 얽혀 있었기 때문에 국내 상황을 전혀 모르는 소버린이 경영권을 장악한다면 계열사들과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SK의 경영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도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주주는 물론이고 상당수의 외국인 주주들도 SK와 최태원 회장의 불법행위에도 불구하고 소버린을 지지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최태원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것은 주주들이 최태원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소버린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ο 경영권은 없다

 주식회사가 주식시장에 주식을 상장하는 목적은 광범위하고 불특정한 다수의 일반 사람들에게 주식을 발행해서 자기자본을 조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식회사가 상장되면 소수의 주주들이 소유했던 주식들을 수많은 새로운 주주들에게 매각하고 소유가 분산되는 것이 정상적이다. 따라서 상장 역사가 오래되고 신주 발행으로 조달한 자본을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들은 불특정 다수의 주주들이 주식을 소유하게 되어 분산된 소유 구조를 갖는다. 

 

 선진국에서도 창업으로 성공한 대기업은 창업자가 대주주로서 경영을 책임지는 기업들이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Bill Gates)는 1975년에 동업자인 폴 알렌(Paul Allen)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고 1986년에 주식을 상장한 이후 49%의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로서 2000년까지 최고 경영자(CEO)의 직위를 가졌고, 이후에는 2008년까지 회장직을 맡았다. 빌 게이츠는 당대 창업자이지만 현재는 4.8%의 소수 지분만을 소유하고 있고, 지금은 이사로서 이사회 의장직만을 맡아서 회사에 상근하지 않으며 이사회를 통해서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그의 자식이나 친인척이 경영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빌 게이츠나 그의 가족 또는 재단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지도 않다. 빌 게이츠는 1994년에 자신이 설립한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Foundation)에 자신이 소유한 주식을 기부할 때 주식을 매각한 대금을 기부했기 때문에 게이츠 재단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이는 자신들이 직접 소유한 지분이 극히 적은데도 불구하고 창업자의 후손들이 3대, 4대에 이르기까지 경영권을 ‘세습’하는 한국 재벌 기업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한국에서 ‘경영권’이라는 용어는 창업자와 그의 가족이 회사를 ‘경영할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반면에 주식시장의 역사가 오래된 선진국들의 경우, 역사가 오래된 상장회사에는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경영은 지분을 소유하지 않은 전문 경영인들이 맡는다. 따라서 선진국에서는 한국 재벌 그룹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경영권’이라는 개념이 없다. 학문적으로도 ‘경영권’이라는 용어가 없다.

 

 유사한 학술 용어를 굳이 찾는다면 ‘통제권(control right)’이 있지만, 그 의미는 한국에서와 같은 ‘경영할 권리’가 아니라 ‘의결권을 행사하는 지분’이라는 의미다. 특정한 주주가 직접 소유한 지분을 ‘현금 흐름권(cash flow right)’이라고 하고, 자신이 직접 소유하지 않지만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을 ‘통제권’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은 자신이 소유한 지분인 3.4%와 가족들이 소유한 1.3%를 합한 4.7%는 직접 소유를 통해서 의결권을 행사하며, 계열사들이 소유한 지분인 13.0%는 영향력을 미쳐서 의결권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사한다. 따라서 이건희 가족의 현금 흐름권은 4.7%이고, 통제권은 17.7%이다. 이같이 통제권은 주주 자신이 직접 소유하지 않았지만 계열사 등의 지분으로 의결권을 확보하고 있는 지분을 포함하는 의미하는 것이지 한국에서 사용되는 것처럼 ‘경영할 권리’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주식회사에서는 주주총회를 통해 1주 1표의 원칙으로 이사를 선임하고, 이사회를 통해 최고 경영자를 포함한 경영진을 선임한다. 따라서 50%+1주 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주주가 아니라면 누구도 독자적으로 최고 경영자를 선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소유가 분산된 상장회사에서는 어떤 주주나 경영진도 ‘경영할 권리’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의미에서의 ‘경영권’이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상장회사가 아닌 개인회사의 경우에는 창업자의 후손들이 회사를 상속받으면 ‘경영권’도 당연히 함께 상속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의 주주들이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상장된 주식회사의 경우에는 누구도 회사 자체를 상속할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창업자의 자식들이 주식을 상속받는다고 해서 ‘경영할 권리’가 상속될 수는 없는 것이다.

 

 ο 황제 경영을 깨뜨려라

 재벌 총수와 최고 경영자는 크게 다르다. 전문 경영인 출신이든 창업자 가족 출신이든 최고 경영자는 임기가 정해져 있고, 경영 성과에 따라서 교체되기도 하며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경쟁을 거친다. 그러나 재벌 기업의 총수는 실질적으로 종신으로 재임하며 3대, 4대에 걸쳐서 대물림을 한다. 재벌 총수들은 경영이 악화되어도 책임지고 물러나는 일이 없고, 횡령·배임 등의 불법을 저질러서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교도소에 가는 등의 형사처분을 받아도 경영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전문 경영인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재벌 총수나 그 가족들이 경영에서 물러나는 경우는 회사가 법정 관리에 넘어가서 강제로 퇴출되거나 심지어는 그룹 전체가 파산하고 해체되는 끝장을 보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룹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총수 가족들이 최고 경영자의 자리를 마치 상속재산인 것처럼 자신들의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며, 기업 내부에 총수의 경영을 견제하거나 경영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통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 위기 때, 30대 재벌 그룹 중에서 무려 18개의 그룹이 파산해서 해체되었다. 이 중에는 창업자가 총수인 경우도 있고 2세가 총수인 경우도 있었다. 대우그룹은 창업자인 김우중이 회장을 맡고 있는 중에 파산을 했고, 다른 그룹들은 창업자의 2세들이 회장을 맡은 상황에서 파산했다. 최근에 파산한 웅진그룹의 경우에는 창업자인 윤석금이 회장을 맡은 상황에서 파산했고, 동양그룹은 2세인 현재현이 회장을 맡은 상황에서 파산을 했다.

 

 삼성자동차는 1995년 설립했으나 1999년 경영 악화로 파산하여 법정 관리를 받다가 2000년 프랑스의 르노자동차에 매각되었다. 삼성자동차의 파산으로 2조 원 이상의 투자 손실을 감수했으며, 삼성전자 등의 계열사들은 삼성자동차에 지급보증을 해준 것으로 인해서 3000여 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 삼성전자가 1995년 나스닥에 상장되어 있는 세계6위의 컴퓨터 제조업체인 AST를 인수한 후 나스닥에서 상장폐지하고 삼성그룹의 계열사로 편입했다. 그러나 경영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1999년 2월 미국의 투자자 그룹에게 지분을 매각하고 7000여 억 원 이상의 투자 손실을 보는 실패로 마감되었다.

 

 

 

제3부 한국 자본주의 고쳐 쓰기 

6. 자본주의에서의 경쟁, 공정, 정의 

 자본주의 버릴 것인가, 고쳐 쓸 것인가?

 ο 드러나는 모순들

 2009년에는 세계경제가 성장률을 공식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50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성장을 하는 심각한 상황에 빠졌다. (@세계경제성장률은 세계은행이 1960년부터 통계를 작성하고 있다. 1009년 세계경제 성장률은 –0.8%였으며, 세계경제가 마이너스성장을 한 것은 196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세계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진 것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많은 선진국들에서 경제가 성장한다 해도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못하는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라는 패턴이 굳어지기 시작한 점이다. 그나마 일자리가 생긴다 해도 저임금 노동자들이 양산되면서 경제성장이 국민 생활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임금 없는 성장’이 구조화되었다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고, 실질 임금도 늘어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과 ‘임금 없는 성장’의 문제와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구조화되고 있는 것은 다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은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과 같이 복지 정책이나 소득재분배 정책이 제대로 제도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 문제가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재벌 그룹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두 가지로 판단할 수 있다. 첫째, 국가 총자산(통계청 국부 조사) 중에서 재벌 그룹의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30대 재벌 그룹의 자산 비중은 2000년 31.7%였고, 2004년 28.0%로 낮아졌지만 2008년 32.8% 급격하게 증가했고 이후에 계속 증가해서 2012년 37.4%에 이른다. 둘째, 한국은행 기업 경영 분석 대상 기업 총매출액 중에서 재벌 그룹의 매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30대 재벌 그룹의 매출액 비중은 2001년 35.7%에서 2003년 28.4%로 낮아졌다가 이후에 계속 증가해서 2011년 38.9%에 이른다.)

 

 ο 자본주의 대안 찾기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왜 이렇게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그리고 정의롭지도 않은 천박한 모습이 되었는가에 대해서 두 가지 의견이 있다. 첫째는 자본주의 체제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결함으로 인한 것으로 보는 견해다. 특히 경쟁을 통해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을 작동 원리로 삼는 시장경제가 내포하고 있는 근본적인 결함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둘째는 미국과 영국에서 시장 근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경제정책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작동상의 문제로 보는 견해다. 시장 근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 요약한다면, 정부의 시장 개입과 규제를 줄이고 시장이 스스로 알아서 작동하도록 두는 일련의 자유방임주의 경제정책들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확대하는 식으로 경제를 운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문제는 신자유주의 운용 방식에 극단적으로 경사된 정부가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두었기 때문에 생겼다고 본다.

 

 첫 번째 견해는 자본주의 ‘체제의 결함’에 방점을 두고 있고, 두 번째 견해는 자본주의 ‘운영의 방식’에 방점을 두고 있다.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지금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처방은 큰 차이가 있다. 첫 번째 견해에 따른 근본적인 처방은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적인 경제 체제’를 찾는 것이다. 두 번째 견해에 따른 처방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또는 ‘시장경제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다. 첫 번째 견해에 따른 처방이 초국적이고 역사적인 대안 체제를 찾는 것이라면, 두 번째 견해에 따른 처방은 각 나라별 역사적 발전 경로나 상황과 그로 인해 형성된 경제사회적 구조의 차이에 따라 자본주의를 고치는 방안 또한 달라질 것이다.

 

 * 자본주의의 태동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결함에 대한 비판과 대안 찾기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을 출간한 1776년 이후 지난 250여 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봉건적 잔재가 남아 있는 초기 자본주의인 19세기 초반의 독일 상황은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거의 90시간을 뼈 빠지게 일했다. 시외에 있는 공장에서는 대개 새벽 5시에 일을 시작했고, 저녁 8시가 지나서야 겨우 퇴근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일했지만 일당은 고작 1마르크(mark) 정도에 불과했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공황으로 공장은 멈춰서고 길거리는 실업자로 넘쳐났다. 10대 초반의 아동이 탄광 막장에서 하루 16시간을 일하고도 생존 수준의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 일상화되었다. 열악한 영양 상태와 위생 조건으로 인해 19세기 말까지도 서구의 평균 수명은 40세에 한참 못 미쳤다.’ 사회주의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초기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으로 등장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간된 지 90년이 지난 1867년에 사회주의 경제의 가장 중요한 이론서가 된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의 《자본론(Das Kapital)》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 모순을 이론적으로 규명하면서, 자본주의는 결국 스스로 자멸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정작 사회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별로 없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이 정립되기 이전에도 사회주의적 또는 공산주의적 공동체를 만들려는 이상적 사회주의의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작은 공동체가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 또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정치적인 시도는 1847년 ‘공산주의자 연맹(communist league)’이 만들어지고, 이듬해인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공산당 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1864년 전 세계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 대표들이 영국 런던에 모여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ocialist international)’을 결성했고, 1869년 독일에 ‘사회민주노동당(SDAP)’이 설립되고, 이후 1891년 사회민주당(SPD)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보다는 일반적으로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로 불린다. 사회닌주주의는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이 ‘사회민주당’의 명칭을 사용하기 때문에 더 일반화되어 있다. 사회주의 분파로서 공산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Marxism-Leninism主義]라고 불린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불리는 10월 혁명을 성공한 이후 레닌(Vladimir Lenin)이 이끌던 러시아의 볼셰비키들은 민주사회주의자들과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1918년 공산당(Communist Party)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는 모두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주의다. 그러나 민주적인 절차로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려는 사회민주주의와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국가를 실현하려는 공산주의는 서로 다른 길을 갔다.

 

 ο 자본주의의 대안 1: 공산주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실현된 것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간된 지 146년 후, 그리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출간된 지 50년 후인 1917년이었다. ‘10월 혁명(The October Revolution)’으로 불리는?‘볼셰비키(Bolshevik)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옛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은 공산당(communist party)을 만들고 무자산 계층[프롤레타리아(proletariat)]인 노동자·농민이 주인 되는 ‘평등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다. 지금의 러시아 전신인 구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사회주의 이념의 한 형태인 공산주의 이념을 토대로 세워진 최초의 국가였다.

 

 사회주의는 야만적인 모습을 한 초기 자본주의의 대안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 지금의 일그러지고 천박한 모습의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사회주의는 여전히 유요한 것인가?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구소련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고 모두가 함께 잘사는 사회주의 이상향을 실현해내지 못한 채 결국 1991년 붕괴되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하고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사회주의 이념을 정립한 때부터 공산주의 국가 등장하기까지 반세기가 걸렸지만,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출간된 것은 1876년이었고, 구소련은 1922년 세워졌다.) 공산주의 체제는 70년 만에 역사적 실험을 끝냈다. 

 

 세계경제에 영향력을 미치는 사회주의 국가로 이제 중국이 유일하다. 쿠바, 북한 그리고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이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들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더 우월한 체제인 것을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을 증명하고 있다. 중국의 사회주의는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대전환을 했다. 중국적 사회주의는 사유재산을 허용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함으로써 사회주의 이념의 핵심인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민간 기업들이 생겨나고, 주식시장이 만들어졌으며, 외국인 자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경제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시장경제의 작동 원리인 경쟁 체제를 도입했다. 중국적 사회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당 국가 체제를,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시행하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결합한 것이다. 이를 사회주의 체제로 보는 시각에서는 ‘시장사회주의’라고 부르고, 자본주의 체제로 보는 시각에서는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라고 부른다. (@시장사회주의란 ‘생산수단은 공적 또는 집단적으로 소유되고 자원의 배분은 시장의 규칙에 따라 이뤄지는 경제체제를 의미한다. 즉 자원의 배분 장치로 시장을 활용하되(시장),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는 허용하지 않는(사회주의) 경제체제다.’ 그러나 중국은 사적 소유가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민간 소유 기업들이 경제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시장사회주의라 규정하기 어렵다.) 중국식 사회주의를 어떻게 보느냐의 견해 차이와 관계없이 중국 경제의 현실은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보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가깝다. 공산당이 일당 독재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아직도 계획경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국가 소유 기업(SOE, state owned enterprise)이 경제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 그나마 남아 있는 사회주의의 잔영이다.

 

 ο 자본주의의 대안 2: 사회민주주의

 혁명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한 공산주의와는 달리 민주적 절차로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하려는 사회민주주의는 서유럽과 북유럽에서 시도되었다. 독일 사회민주당과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은 집권에 성공했고, 핀란드와 덴마크 등의 다른 북유럽 나라에서는 집권하지 못했지만 소수 정당으로서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들은 복지국가를 건설했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임금과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했다. 나아가 완전고용을 지향했고, 노동자의 경영 참여와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자의 권리를 신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보다 훨씬 평등한 사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했던 서유럽과 북유럽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도입한 것이었기에 소련과 동유럽 국가의 공산주의 체제에서의 사회주의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할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를 현실 체제로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스웨덴은 복지국가를 만들었고, 독일은 노동자의 경영 참여 등 유럽식 자본주의의 모델이 되었다. 스웨덴의 사회민주당은 1932년에서 1976년까지 44년을 집권하면서 ‘스웨덴 모델’이라고 불릴 정도로 선진국 중에서 가장 평등한 사회를 만들었다. 스웨덴은 사회주의 이념의 근간인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채택하기보다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시장에 의한 자원 배분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 원리를 수용하되 조세정책과 사회복지 정책을 통해 국가가 평등주의(Egalitarianism)적인 재분배 정책을 실시’하는 우회적인 방법을 채택했다. 이로써 ‘생산의 사회화 대신에 분배와 소비의 사회화’라고 할 수 있는 정책들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여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내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스웨덴은 생산수단의 사회화에 가까운 기업 소유의 사회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기업에 이윤 분배세를 부과하는 한편, 기업에게 현금이 아닌 새로 발행한 주식을 세금으로 납부하게 함으로써 정부는 이 주식으로 임금노동자 기금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기금을 만들기 위해서 기업이 현금을 납부하지 않고 주식만을 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에게 새로운 금전적 부담이 되지 않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임금노동자 기금은 노동자 개인들에게 주식 소유와 배당 지급을 허용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주식을 소유하도록 제도화했다. 따라서 세월이 지나면 그 기업이 존속하는 한 계속 쌓여가는 기금이 기업의 주요주주가 되어서 결과적으로 집단으로서 노동자들이 기업을 소유하게 되는 구조였다. 임금노동자 기금은 주식회사라는 자본주의 기업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노동자 집단이 대주주로서 기업의 주인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회사 모델을 통해서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이루는 매우 독창적인 것이었다.

 

 성공적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실행해 왔던 스웨덴에도 큰 변화가 발생했다. 한 번 도입된 복지 정책들은 관성적으로 유지되었고, 거기에다가 새로운 복지 제도들도 지속적으로 도입되었다. 따라서 날로 늘어가는 복지 지출 때문에 재정 적자와 대외 채무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함께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겪었으며, 이로 인하여 산업의 국제 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러한 경제 침체를 타결하려는 수단으로 1980년대 초 스웨덴의 사회민주당은 ‘제3의 길(The Third Way)’이라는 경제정책을 시행했다. 스웨덴의 ‘제3의 길’은 ‘당시 미국과 영국에서 시행한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채택한 전통적인 케인즈 주의적 수요 부양 정책으로부터 구별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제3의 길 정책의 핵심은 완전고용 달성과 복지국가 유지라는 전통적인 사민주의적 정책 목표를 유지하되, 경제 회생의 실마리를 수요가 아니라 공급 측에서 찾겠다는 것이었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1982년 채택한 ‘제3의 길’ 정책은 영국 노동당이 1998년에 내세운 ‘제3의 길’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것이며 그 내용도 다른 것이다. 스웨덴의 ‘제3의 길’은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근접시킨 것이며, (@스웨덴 ‘제3의 길’의 주요 정책은 화폐의 평가절하로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 인플레이션(Inflation) 억제 정책, 대출 상한 규제를 폐지하는 등의 금융자유화 정책, 소득세 인하와 간접세 비중의 증가와 같은 조세정책 등이 포함되어 있다.) 16년 후 영국의 ‘제3의 길’은 ‘구식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뛰어넘고자 하는 시도’로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부터 적극적인 복지와 같은 사회주의적 정책으로 이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영국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근원지라 할 수 있다. 1979년 영국 보수당 대처(Margaret Thatcher) 정부가 시작한 규제 완화, 민영화, 복지 축소, 노동조합의 약화 등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대처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11년을 집권했고, 이어서 같은 보수당의 메이저(John Major) 정부가 1990년부터 1997년까지 7년을 집권했다. 따라서 영국은 18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지속했고, 1998년 집권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Tony Blair) 정부가 표방한 ‘제3의 길’은 18년간 지속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부터 벗어나서 복지 강화 등의 정책으로 선회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한 것은 아니다.)

 

 스웨덴의 제3의 길은 ‘경기 호황과 실업률 하락 등 일정한 성과를 냈지만 1980년대 말 인플레이션(inflation)과 경기과열, 거품경제가 발생’하는 등의 문제들이 중첩되어 1991년에 막을 내렸다. 이후에 제3의 길 정책들이 하나의 원인이 된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스웨덴 경제는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3년 동안 경제가 마이너스성장을 하고, 1980년대 말 1%대에 머물던 실업률이 1993년 9%, 1996년 10%까지 증가했다. (@스웨덴의 실업률은 1991년 1.7%였다. 그러나 1992년 3.1%, 1992년 5.6%, 1993년 9.1%로 급격하게 증가했고, 1997년 9.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에 5~7%대를 유지했으나, 금융 위기 이후에는 다시 증가해서 2010년 8.6%였고, 2013년 8.0%였다.) 기업 소유의 사회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임금노동자 기금은 수익성 기준으로 투자가 이뤄져서 원래의 설립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결국 해체되었다. 제3의 길이 실패로 끝나자 스웨덴은 시장 근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받아들이는 ‘체제 전환’을 했다. 고소득 계층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고, 스웨덴 사회복지 제도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인 연금제도를 ‘보편적인 권리로서의 연금’에서 ‘소득에 따라 결정되는 자본주의적 연금’으로 전환하고, 임금노동자 기금이 해체되는 등 사회민주주의적인 요소가 약화되고 있다.

 

 ο 사회주의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중국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많은 어두운 문제들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다. 소득 불평등, 빈부 격차, 노동자들의 임금격차의 문제들은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오히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공산당 일당 체제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경제 발전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식 사회주의가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요인인 공산단 일당 체제가 동시에 중국식 사회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의심케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민주적 정치과정이 존재하지 않고 견제 역할을 하는 시민사회마저도 없는 구조는 중국 사회 전반에 부패를 구조적으로 만연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식 사회주의를 시장사회주의로 규정하든,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든 간에 관계없이 민주적 정치과정에 없기 때문에 성공한 중국식 사회주의를 한국과 같이 민주주의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삼을 수 없다.

 

 사회주의의 다른 한 축이었던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 사회주의의 핵심 내용인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실현하지는 못했고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시장에서의 경쟁을 기본적인 경제 운용 시스템으로 채택하는 자본주의의 틀 안에 있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에서 시작했으나 자본주의의 한 형태로 결말이 났다. 자본주의를 편의상 크게 ‘영미식 자본주의’와 ‘유럽식 자본주의’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런 분류에서 ‘영미식 자본주의’는 시장을 중시하고 복지 제도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미국과 영국의 자본주의를 지칭하며, ‘유럽식 자본주의’는 복지 제도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을 시행하며 노동자의 경영 참여와 같이 사회민주주의 요소들을 가진 서유럽과 북유럽의 자본주의를 칭한다. 공산주의와는 다른 길을 간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한 형태인 ‘유럽식 자본주의’가 된 것이다. 결국은 사회주의 체제가 아닌 사회주의 요소를 수용한 자본주의 체제라고 볼 수 있다.

 

 공산주의는 실패로 끝났고, 일정한 성공을 거둔 중국식 사회주의는 공산당 일당 체제에서 가능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에게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는 복지국가를 이루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고 시장 근본주의적인 영미식 자본주의와는 다른 유럽식 자본주의를 만드는데 기여했지만 지금은 다른 자본주의 체제와 마찬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주의 경제체제들의 역사적 실험 결과에 비춰보면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지향했던 함께 잘사는 평등의 가치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시도했던 여러 제도들 중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배워오고 채택한 것들이 적지 않다. 사회보장제도, 연금제도, 복지 제도 등과 같이 정부가 적극적인 평등 정책을 시행한 점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부터 배워서 발전한 것이다. 

 

 스웨덴은 제3의 길을 택한 이후에 사회민주주의적인 정책들이 후퇴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하기 전 2007년까지는 여전히 세계에서 소득 불평등도가 가장 낮은 나라였다. 지금의 자본주의가 위기에 봉착하고 회의론이 제기된 가장 큰 이유가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를 위해서 사회민주주의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아직도 많은 것이다.   

 

 자본주의 고쳐 쓰기

 ο 제3의 체제는 없다

 자본주의 250년의 역사에서 사회주의 이외에는 어떤 사상과 이념이나 체제도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이 되지 못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출간한 지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떤 철학자나 경제학자도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체제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상가나 경제학자도 현재는 없어 보인다. 그러기에 사회주의는 여전히 자본주의를 대체할 유일한 이념적 대안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험들이 실패로 끝난 경험에 비춰볼 때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대체할 경제체제로서의 현실적인 대안인가 또는 지금의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대체적 대안인가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체제’는 없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시도했던 제3의 길은 사회주의에 자본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영국 노동당이 내세웠던 제3의 길은 ‘구식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다 같이 초월하려는 것’이라고 스스로 규정했다. 하지만 노동당이 집권했을 때 펼쳤던 정책들이란 실제로는 보수당의 편협하거나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 근본주의를 일부분 교정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마저도 제대로 추진하거나 작동했는지 의문이다. 돌이켜 보건데 두 경우 모두 관전자들의 과대한 기대와는 달리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극복하는 ‘제3의 체제’가 아니라 기존의 사회민주주의 또는 자본주의에 상대방의 정책을 조금씩 가미하는 수준의 ‘제3의 길’일 뿐이었다. 체제적 대안은 아니지만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과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결함과 모순을 극복하는 대안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고 실제로 유럽 국가들에서는 매우 성공적인 사례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들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안에서 성립되며, 소규모 공동체에 적용할 수 있는 모델들이거나 자본주의의 결함을 부분적으로 바로잡는 보완적 대안이지 국가 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대안의 수준은 되지 못한다.

 

 자본주의의 종말이 오지 않은 것은 지금의 자본주의가 최선의 선택이거나 또는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대안 없이 지금의 체제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체제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선택하는 것이다. 대안적 선택이 없으면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고, 지금의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면 고쳐서라도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ο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 

 지난 30년간 선진국 자본주의가 드러낸 모순의 핵심은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 현상이며, 한국도 똑같은 모순에 빠져 있다. 이와 같은 불평등을 해소함으로써 지향할 사회를 먼저 ‘함께 잘사는’ 사회로 규정해 본다. 한편 선진국이 불평등의 모순에 빠진 과정이나 배경은 한국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선진국에서의 불평등은 시장 근본주의에 경사된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라도 적어도 반칙과 불법으로 얼룩진 왜곡된 시장 체제에서 연유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자본주의 고쳐 쓰기’의 또 하나의 지향점을 ‘정의로운’ 사회로 규정해본다. 따라서 필자는 ‘한국인이 바라는 자본주의’를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로 설정하고자 한다.

 

 첫 번째 규정인 ‘함께 잘사는 것’은 본질적으로 분배의 문제다. 분배와 성장이 이율배반(trade-off)적인 상충 관계라는 주장은 이미 경제학에서 기각된 지 오래다. 분배가 성장에 상호 보완적인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적어도 분배가 성장을 해친다는 명백한 실증은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유의할 점은 성장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지속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적 물질적 성장 자체는 결국 풍요와 행복을 위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분배 시스템에 결함이 있어 성장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 대다수가 풍요롭지도 못하고 행복하지도 않다면 그런 자본주의 체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체제 자체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 성장도 없는 것이다.

 

 두 번째 규정인 ‘정의로운 사회’는 일단 일차적인 정의인 반칙과 불법을 교정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당연한 것이다. 때문에 가장 먼저 반칙과 불법을 교정하고 차단하는 것이 일차적인 정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가면 자본주의에서 정의는 ‘함께 잘사는 것’, 즉 분배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물질적 풍요와 행복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유’이며,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선택한 하나의 체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최고의 가치인 자유를 지키는 것이 최고의 정의이며, 이때 자유와 정의는 분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정의와 분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이다.

 

 ο ‘정의로운 자본주의’의 철학적 배경

 존 롤즈(John Rawls)는 그의 저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서 ‘인간 생활의 제1 덕목은 진리와 정의’이며, ‘진리를 사상 체계의 제1 덕목이라고 한다면, 정의는 사회제도의 제1 덕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의가 사회제도의 최고 덕목이라는 것은 사회제도의 두 가지 근간인 정치제도와 경제제도가 정의에 기초해서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전제하고 있는 사유재산과 경쟁 시장은 가치 개념이 아니라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시스템, 즉 제도일 따름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체제라고 한다면, 그 행복은 ‘정의’라는 덕목의 실현 여부에 의해 좌우될 것이며,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는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경제체제로 받아들인다면 ‘정의로운’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추구해야 할 최상의 가치이자 최적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정의는 소수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빼앗아서 다른 사람들이 보다 많이 얻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고, 다수가 보다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서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에 의해 보장된 권리들은 어떠한 정치적 거래나 사회적 이득의 계산에도 좌우되지 않는다.’ (@존 롤스는 “모든 사람은 전체 사회의 복지라는 명분으로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정의는 타인들이 갖게 될 보다 큰 선을 위하여 소수의 자유를 뺏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다수가 누릴 보다 큰 이득을 위해서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해도 좋다는 것을 정의는 용납할 수 없다.”고 정의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정의는 하나의 체제인 자본주의보다 상위개념이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무리 효율적인 체제라 할지라도 그것이 정의롭지 않거나 정의로운 가치에 위배된다면 개선되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다면 폐지되어야 한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진리가 아닌 사상을 수정하거나 배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의롭지 않은 사회제도도 개선되거나 폐지되어야 한다.’ “이론이 아무리 정치하고(정교하고) 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배척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듯이,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면 개선되거나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현재의 한국 자본주의가 교정될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고 본다면, 그래서 자본주의를 폐기하기보다는 지금의 불평등하고 양극화된 한국 자본주의를 고쳐 쓴다면 지향해야 할 것은 ‘정의로운 자본주의’이다.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에서의 정의란 첫째,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절차와 과정에서의 공정함이 보장되는 절차적인 정의와, 둘째,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함께 잘살 수 있도록 하는 분배의 정의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는 재산의 사적 소유와 시장에서의 경쟁, 그리고 분배와 관련하여 다음의 세 가지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어떤 사적 소유가 정의로운 것이냐의 문제다. 두 번째는 시장에서 경쟁의 시작과 과정이 정의로운 것이냐의 문제다. 세 번째는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서 만들어낸 결과가 정의롭게 배분되었는가의 문제가. 세 가지 문제는 서로 독립적인 것은 아니며,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 되는 인과관계로 연관되어 있다. 

 

 자본주의에서의 소유와 정의

 ο 정의로운 소유

 자유 지상주의의 대표적 철학자인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개인의 자유를 절대 불가침의 가치로 상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유재산권이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사유재산권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사유재산이 정의로운 것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했다. 첫째, 재산의 취득이 정의로워야 하고, 둘째, 재산의 이전이나 양도의 과정이 정의로워야 하고, 셋째, 취득과 이전의 과정에서 불의가 있었다면 이를 시정한 경우에만 사유재산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노직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사유재산권의 절대 불가침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재산의 취득·이전·양도의 과정이 정의로워야하며, 이미 취득한 사유재산이라 하더라도 불의에 의한 것이라면 불가침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노직은 정의로운 소유라고 한다면 그 소유권에 대해서 어떠한 인위적인 재분배의 시도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 반대하고 있고, 여기에는 정부의 정책도 포함된다. 따라서 정부가 소득재분배나 복지 제도 등의 정책으로 분배에 개입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고, 개인의 삶을 부당하게 간섭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논리로 분배적 정의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노직은 개인의 자유를 절대 불가침의 가치로 상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사유재산권이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논거에서 정의로운 소유를 규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려는 인위적인 시도를 반대하는 것이다.

 

 경쟁과 분배를 통해서 취득된 어떠한 사유재산도, 개인의 자유를 완전하게 보장하는 ‘완전한 정의’가 충족되기 위해서는 그 원천적인 취득 과정이 ‘완전경쟁(perfect competition)’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완전경쟁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가능하며, 따라서 어떠한 현실적인 사적 소유도 완전한 정의가 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노직 자신의 정의로운 사유재산은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바로 그 논거 때문에 노직이 분배에 대한 어떠한 개입도 반대한다는 논리는 자본주의의 현실 상황에서는 서로 모순된다. 따라서 경쟁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정의로운 소유를 위해서라도 분배의 정의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완전경쟁이란 경쟁에 참여하는 누구도 자신의 결정과 행동이 경쟁의 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태임을 의미한다. (@경제학 이론에서 완전한 시장(Complete Market)은 완전경쟁(Perfect Competion)을 가정한다. 완전경쟁의 가정은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조건은 ‘충분하게 많은 수의 경쟁자들이 경쟁에 참여함으로써, 어떤 경쟁자도 자신의 결정과 행동이 경쟁의 과정과 결과, 즉 가격 결정에 영향에 미치지 않는 원자적(Atomic) 존재로서 가격 순응자(Price Taker)인 상태’이다. 즉 완전경쟁은 어떤 경쟁자도 다른 경쟁자보다 우위의 위치에서 경쟁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이 경쟁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매우 가성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의 경쟁은 불가능하며, 경쟁 참여자는 모두 경쟁의 과정이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현실의 시장에서는 ‘불완전경쟁’이 펼쳐지며, 완전경쟁은 이론의 구성을 위해서 가정한 가상의 상황일 뿐이다. 따라서 불완전경쟁으로 획득한 재산은 노직이 규정한 ‘완전하게 정의로운’ 사유재산의 조건을 충족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경제학에서 가정한 완전경쟁은 경쟁이 반복적으로 지속되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상황이 발생하며 궁극적으로는 경쟁이 스스로 소멸되는 모순을 갖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의 경쟁과 정의

 ο 경쟁의 자기 소멸 모순

 최초의 경쟁이 시작될 때 모든 경쟁자들이 모두 동일한 노동능력과 자본을 가진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에 참여하고, 어느 누구도 경쟁의 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공정하고 완전한 경쟁이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시장을 가정해보자. 경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경제적 가치 중에서 승자가 가장 많은 몫을 가져가는 것은 경쟁의 원리다. 따라서 최초의 경쟁에서 이긴 승자는 경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부가가치 중에서 가장 많은 몫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최초의 승자는 다음 단계의 경쟁에서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자본을 가진 우위의 위치에서 경쟁에 참여하게 된다. 경쟁의 속성상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자본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큰 경쟁력을 갖는다. 따라서 더 많은 자본을 가진 첫 번째 경쟁의 승자는 다음 단계의 경쟁에서 승자가 될 가능성이 다른 경쟁자들보다 높을 것이다. 

 

 이같이 경쟁의 속성은 경쟁이 반복될수록 승자는 더욱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며, 다시 승자가 될 가능성이 매번 높아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건이 평등하고 경쟁 과정이 공정한 완전경쟁이었다 할지라도 경쟁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최초의 승자가 이후의 경쟁 과정을 지배하게 되고, 그의 행동에 따라서 경쟁의 과정이나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결국 최초 경쟁에서 보장되었던 완전한 경쟁의 조건은 무너지게 된다.

 

 경쟁의 근본적인 목적은 승자가 더 많이 가져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승자가 더 많이 배분받는 것은 경쟁을 유지하기 위한 유인책일 따름이다. 하지만 그 유인책 때문에 경쟁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소멸된다면 그 유인책을 교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시장이 경쟁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쟁 결과로 얻어진 가치를 승자만이 아니라 경쟁에 참여한 패자들에게도 적절하게 분배되어 다음 단계 경쟁에서의 불공정성을 최소화하는 교정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분배의 조건을 교정하여 불공정성을 최소화함으로써 다음 단계의 경쟁에서 가능한 한 공정한 조건을 만드는 것은 단지 효율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바로 노직이 말한 절대적 가치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시장의 경쟁에서 결정된 승패에 따른 분배를 그대로 둔다면 경쟁이 반복적으로 지속될수록 자본을 더 많이 축적한 승자가 누릴 수 있는 자유는 확대된다. 하지만 패자의 자유는 갈수록 축소되고 승자의 기득권으로 인해서 자유가 구속된다. 승자의 기득권이 강화되는 불완전경쟁 구조는 모두에게 ‘자유로운’ 상태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기득권을 누리는 승자가 경쟁에서 획득한 재산은 노직이 규정한 정의로운 사유재산의 첫 번째 조건인 재산의 획득 과정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제한하지 않는 정의로운 것이 될 수 없게 된다. 개인의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상정하고,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불가침성을 전제한 사유재산의 정의는 경쟁이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현실 속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스스로 자유와 정의의 전제 조건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은 돈이 돈을 버는 자기 복제성이 있다. 때문에 설령 승자가 승리로 획득한 자신의 기득권을 이용해서 경쟁 과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지 않는 선량한 사람일지라도 자본을 더 많이 가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승자가 더 큰 경쟁력을 갖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노직이 반대하는 정부의 분배 정책은 오히려 사유재산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자유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정의로운 것이지, 노직의 주장처럼 단순히 정부가 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에 자유를 침해한 것은 아니다.

 

 ο 정의로운 경쟁

 모든 경쟁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경쟁의 시작, 즉 경쟁에 참여하는 단계다. 두 번째는 경쟁이 진행되는 단계다. 마지막은 경쟁의 결과가 도출되고 그 결과를 참여자들이 나누는 분배 단계다. 세 가지 단계가 모두 공정(fair)하게 치러지는 경쟁이 정의로운 경쟁이다.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공정한 경쟁과 분배가 왜 필요한 것인지를 두 가지 차원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는 시장경제가 성립되고 지속되기 위해서 공정한 경쟁과 분배가 필요한 이유를 논의할 것이고, 둘째는 사람들이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단순하게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가치인 자유와 평등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서 민주주의 체제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논의할 것이다. 

 

 협동조합과 같은 공동체 경제의 핵심적인 원리가 협력과 연대라면, 시장경제를 작동시키는 핵심적인 원리는 경쟁이다. 자본주의가 경쟁을 시장의 작동 원리로 삼는 이유는 경쟁을 통해서 더 많은 결과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협력하는 협동 체제가 각자가 경쟁하는 시장경제보다 더 효율적이고 더 많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 경쟁은 개개인이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충실한 이기심에 근거하기 때문에 시장경제에서 개인들은 파편화된다. 반면에 협동 체제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서 서로 협력하며 모두가 노력하고 결과도 함께 나누기 때문에 시장경제보다 인간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그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간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공동체읨 ᅩᆨ적과 개인의 목적을 일치시키는 연대와 동질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국가 경제와 같이 개개인의 가치관, 필요, 욕구가 서로 다르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수많은 국민들로 구성된 대규모 경제단위에서는 모든 국민들이 동의하는 경제적 공동선을 정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국가가 특정한 공동선을 규정하고, 국민들에게 이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며, 그러한 공동선으로부터의 이탈을 억제하고 규제한다면 이는 개인을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는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전제해야만 성립 가능하다.

 

 ο 공정한 시작

 경쟁의 시작 단계에서 공정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담보되어야 한다. 첫째는 경쟁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주어지는 것이며, 둘째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주는 것만으로는 경쟁의 시작 단계에서의 공정성이 성립되지는 않는다. 경쟁에 참여할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절차적인 공정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출발선에서의 불평등을 강화할 소지가 있다. 개인들은 타고난 환경이나 또는 그가 처한 사회구조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경쟁에 참여하기 이전에 역량 또는 경쟁력의 차이가 존재한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신생 기업은 대기업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경쟁에 뛰어든다. 경쟁에 참여하기 이전에 이미 사람이나 기업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고려하지 않고 산술적으로 경쟁에 참여할 기회를 누구에게나 똑같이 준다면, 기회균등이라는 명목 아래 경쟁 이전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오히려 용인하고 강화시켜주게 되는 것이다.

 

 출발선에서의 불평등은 이미 주어진 환경 때문에 발생한 것도 있고,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관계없이 사회구조적 요인으로도 만들어지기도 한다. 또한 차별, 부정, 부패 등으로 인해서 발생한 불평등도 사회구조적 요인으로 생겨난 것이다.

 

 ο 공정한 과정

 경쟁의 진정한 묘미는 순위가 뒤바뀌는 것이다. 앞서가는 경쟁자는 쫓아오는 경쟁자에 추월당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쫓아가는 경쟁자는 앞지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이 높아지고 전체의 몫이 더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의 대전제는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의 존재다. 

 

 경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공정성이란 지극히 간단한 개념이다. 출발선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경쟁자가 경쟁의 과정을 지배해서는 안 되며, 누구도 반칙으로 다른 경쟁자를 방해해서도 안 된다는 원칙이 지켜지면 된다. 

 

 자본주의에서의 분배와 정의 

 ο 분배의 공정성과 정의 

 정의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서 정의를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슈는 ‘분배’이다. 따라서 공정한 분배는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승자가 패자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가는 것은 경쟁의 본질적 속성이다. 하지만 승자가 모두 다 차지하는 것은 아니며 그 결과를 어떻게 나누는가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다. 철학에서 ‘정의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이 분배의 정의라고 했다. 승자 독식 방식은 그 이후의 경쟁에서 승자의 기득권 자체를 성립하지 못하게 만든다. 반면에 모두가 똑같이 나누는 단순 평등적 분배는 내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하는 이기심을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에 경쟁 자체의 의미가 없어진다. 따라서 승자 독식이나 단순 평등의 분배는 경쟁을 지속 시키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없다.

 

 ‘각자에게 각자의 몫만큼을 주는 것’이 정의로운 분배라면 이때 각자의 몫이 의미하는 바는 각자가 경쟁에 기여한 것에 상응하는 몫일 것이다. 따라서 각자가 받을 ‘응분의 몫’은 각자의 기여도에 비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여도에 따른 ‘응분의 몫’으로 분배하는 것은 일단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다. 그러나 기여도는 정의로운 분배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으며, 현실에 적용하기도 어렵다. 첫 번째 이유는 기여도의 측정 문제인데, 기여도 자체가 상당히 주관적인 관점이어서 이를 객관적으로 계량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객관적 계량화가 가능하다 해도 그 적용 방식에서 산술적 기여도를 작용할지, 아니면 기하급수적 기여도를 적용할지 일정한 기준을 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현실적으로 각자의 기여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해도 ‘천부적인 재능으로 인한 기여와 노력에 의한 기여를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여도가 분배 정의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얼마나 기여했는가는 각자의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러한 능력 자체가 유전적, 천부적으로 타고난 특질이거나 가족적, 지역적, 사회적 환경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능력에 의한 기여도라 할지라도 그 능력의 상당 부분이 특질과 환경에 따라 우연적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응당 받아야 할 몫’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로 보기에는 부족하다. 

 

 ο 기여도에 따른 분배는 정의가 아니다

 개인의 기여도는 각자의 능력과 노력으로 결정된다. 그리고 각자의 능력과 노력은 천부적인 재능과 같은 우연적인 요인뿐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요인으로 결정된다. 현실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적인 요인이 개인이나 기업들의 능력과 노력을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분배적 정의가 ‘부당한 격차를 축소하는 것으로서의 평등’이라면,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기여도에 근거해서 분배를 한다면 그것은 부당한 격차를 줄이는 평등이 될 수도 없고 정의로운 분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2013년 은행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7,560만 원이고, 통계청이 조사한 도시 근로자 평균 연봉은 3,600만 원이다. 은행 직원들은 도시 근로자들보다 두 배가 넘는 연봉을 받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의 임금격차도 마찬가지다. 2013년 자동차 대기업에 17년 근무한 생산직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6,852만 원인 반면에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에 동일하게 17년을 근무한 생산직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4,056만 원이다. 

 

 경쟁에서의 기여도에 따른 분배의 공정성을 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몬드라곤’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자본의 폐해를 제거하고 노동자가 주인인 회사로 설립한 것이 노동자협동조합이다. 이러한 몬드라곤에서 파업이 발생한 적이 있다, 노동자가 주인인 회사에서 파업 사건이란 노동자가 노동자를 상대로 파업을 한 기이한 형국이다. 파업의 이유는 노동자들의 노동참여에 대한 분배를 차등화 하는 것 때문이었다. 몬드라곤이 급격한 성장을 하던 1974년 생산 조립 공정에 신규 채용된 노동자들에 대해서 직무 분류와 업무 평가에 따라서 차별적인 임금수준을 적용하기로 결정하자 일부 조합원들이 동등한 임금을 요구하며 파업을 일으켰다. 그러나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해고 등의 징계조치를 받았고, 이후에 몬드라곤에서 임금 차등화는 당연한 제도로 정착되었다. 몬드라곤은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 회사에 출자금을 출연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조합원 노동자들은 회사에 노동 참여와 자본 참여를 함께하고 있다. 몬드라곤은 1인 1표 주의를 채택하여 출자금의 크기와 관계없이 모든 조합원 노동자가 동등한 의결권을 갖는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이익에 대한 분배는 평등하지 않다. 조합원들의 임금과 노동 참여에 대한 이익의 배당은 각자의 업무와 역량에 따른 노동 참여 수준에 따라서 차별적으로 지급하며, 몬드라곤 설립 초기에는 최고 임금이 최저 임금의 세 배 정도였으나 최근에는 여덟 배까지 확대되었다. 자본의 지배를 받지 않고 모든 노동자가 평등한 의결권을 갖는 노동자가 주인인 회사의 경우에도 기여에 따른 경제적 배분을 합리적으로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ο 정의로운 분배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을 분배적 정의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는 시장에서 ‘경쟁을 함께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눌 수 있는 것들의 분배에서 사람들이 동등하지 않은 몫을 가질 수도 있고 동등한 몫을 가질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똑같이 나누는 산술적인 평등 분배가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분배적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을 같이한 사람들이 가져가야 하는 각자의 몫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정의에 더 부합한다’는 의미다. 존 롤즈는 정의의 원칙에서 ‘재산 및 소득의 분배가 반드시 균등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즉 경제적 불평등 그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불평등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이뤄져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직위와 직책이 평등하게 개방되어 누구나 접근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고 불평등이 ‘용인’되는 조건을 규정했다. 이를 시장경제에 적용하면 현존하는 모든 불평등을 인위적으로 제거한다고 해도 경쟁이 지속되면 다시 불평등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평등은 시장경제에 내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산술적인 평등으로 동등하게 나누는 것보다 각자의 몫을 차별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더 정의로운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두에게 공정하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민주주의적 평등이 지켜지면 균등한 분배가 아니어도 정의로운 것이라는 의미다.

 

 존 롤스는 정의의 제2 원칙으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의 최소 수혜자 성원에게 최대의 기대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약자에 대한 ‘최소 극대화 형평 기준’을 제시한다. ‘차등의 원칙’이라고 불리는 이 원칙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한다면 사회 구성원 가운데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유리한 불평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롤스는 불평등이 용인되는 민주주의적 평등은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의 결합에 의해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경쟁의 결과를 차등적으로 배분하는 경우에는 먼저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경쟁의 결과를 나눌 때 불평등 구조에서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의 것을 나눠주는 것이 분배의 정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롤스가 말한 ‘최대’가 산술적으로 ‘가장 많이’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배려할 수 있는 최대치’를 의미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시장의 작동 방식 때문에 불가피하게 초래된 불평등한 결과가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반한다면 이를 제어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해야 할 역할이다. 더구나 경쟁은 불공평을 만드는 원천적 속성을 가지고 있고, 경쟁이 만들어낸 불평등을 해소하는 의도적인 분배가 없을 경우에 경쟁은 스스로 소멸한다. 따라서 분배 정의를 실현하는 그러한 정책들은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7. 정의롭지 못한 한국 자본주의 

 한마을 이야기

 (@하이에크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포기하는 사회주의(Socialism) 체제를 그의 저서 《노예의 길》에서 ‘자유로 가는 길(Road To Freedom)로 약속된 것이 실제에서는 예속으로 가는 빠른 길(High Road To Servitude)’이라고 했다.)

 

 롤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큰 이득을 준다는 형식으로 효율성이 증가한다고 해서 소수의 자유가 상실되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이렇게 믿고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있어서 시민의 기본적 자유가 정치적 흥정의 결과로서 이해되고 있지는 않으며, 그것이 사회적 이익의 계산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의해 나타난다. 도리어 그러한 자유는 정치적 거래에 한계를 부여하는 고정점이요, 사회적 이득의 계산에 범위를 정해주는 고정점이다.”라고 말했다. 롤스의 논리는 민주주의 체제의 근본인 개인의 자유가 경제적 이익으로도 침해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경제적 이익은 자유가 보호되는 범위 내에서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버트 달(Robert Dahl)은 “자유의 필요조건은 권력 행사에 대한 강력한 견제 장치의 존재다. 권력이 집중되면 자유는 고사하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극단적 시장 근본주의자 경제학자인 밀튼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은 “평등을 자유보다 중요시하는 사회는 둘 다를 갖지 못한다. 자유를 평등보다 중요시하는 사회는 둘 다를 더 많이 갖게 된다(A society that puts equality before freedom will get neither. A society that puts freedom before equality will get a high degree of both).”)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 본명은 브론슈타인(Leib Davidovich Bron-stein). 러시아혁명 당시에 기회주의자, 반혁명분자 등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가 최근에 다시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 시절에는 나로드니키에 참가하였으나, 후에 마르크스주의로 경도되었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제2차 대회에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로 분열했을 때는 후자에 속하였다. 1905년 제1차 혁명 당시에는 레닌의 혁명 방침, 즉 노동자 계급의 지도에 의한 노농동맹에 입각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전화라는 방침에 대립하여 '영구혁명론'을 주장, 1912년에는 8월 블록을 조직하여 볼셰비키에 대항하였다.
1917년의 10월 혁명 직전에 볼셰비키에 가입. 일국(一國)사회주의 혁명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혁명의 성공 후에 외무 인민위원으로서 독일과의 강화에 반대하여 소비에트 정권의 위기를 가져왔다. 그 후에도 끊임없이 '세계혁명론'을 주장하며 스탈린과 대립하였다.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 즉 러시아만 가지고도 세계혁명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고 트로츠키는 러시아는 후진국이기에 소비에트 독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럽의 혁명을 지원하여 세계 혁명을 해야한다고 주장, 그후 1927년당으로부터 제명되었다. 1927년에 국외로 추방되어, 국외에서 제4인터내셔널을 결성하여 반소ㆍ반혁명 음모 활동을 하다가 1940년에 멕시코에서 암살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트로츠키 [Trotskij, Leon]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트로츠키는 “유일한 고용주가 정부인 나라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것은 서서히 굶어죽는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 말라’는 과거의 원칙은 새로운 원칙으로 대체되었다: 복종하지 않는 자 먹지 말라.”라고 말했다. 마르크스주의자 혁명가였던 레온트로츠키는 레닌(Vladimir  Ilich Lenin)과 함께 10월 혁명을 이끌어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공산주의(Communism)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을 세운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이 세운 소비에트를 국가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전체주의 체제라고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정의롭지 못한 소유

 ο 한국 자본주의의 색다른 발전 경로

 1971년에도 1인당 국민소득은 300달러에 불과했고, 1,000달러를 넘어선 것은 1977년이었다. (@한국은행 2005년 기준 국민소득 계정에 의하면 1인당 국민소득은 1970년 255달러, 1975년 607달러였다. 1977년 1043달러로 처음 1000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이 실질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논할 만한 경제 수준이 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를 넘어선 것이 1983년이었고, 5,000달러를 넘어선 것이 1989년이었다. 한국의 경제체제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계획경제를 폐기하고 시장경제로 전환을 시도한 1990년대 중반까지 계획경제체제였다고 규정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계획경제체제라고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 관료들이 시장을 직접 운용하다시피 한 관치 계획경제에서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정부의 ‘보이는 손’이 거의 모든 것을 결정했기 때문에 시장의 기능과 역할은 자본주의 본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Socialism)와 달리 정의되는 두 가지 핵심 요건은 사유재산제도와 경쟁적인 시장의 존재 여부다. ‘사적 소유권 없는 자본주의’가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계획경제체제에서의 ‘경쟁 시장 없는 자본주의’도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소득 불평등과 계층 간 양극화 심화 현상이 잉태되기 시작한 것은 시장 근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들이 전면적으로 추진된 1980년대 초이다.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의 복지국가 체제가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에서 시장 친화적인 제3의 길로 선회한 것도 이 시기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한국은 여전히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계획경제를 하고 있었으며, 경쟁적인 시장이 작동하지도 않았고, 복지 제도는 도입되지도 않았던 때이다. (@국민의료보험제도의 보편화는 1989년, 그리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장제도가 도입된 것은 1994년이었다. 국민연금제도는 1988년, 고용보험은 1995년 도입되었다.) 한국이 시장경제체제로 전환을 시도하던 1990년 중반에는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신자유주의 문제들의 부작용이 표면화되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기 시작한 때였고, 영국은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에서 제3의 길로 선회를 시도한 때였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에서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시작되던 때 한국은 이제 막 시장경제를 시작하는 단계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곧바로 국가파산 상태 직전까지 가는 1997년의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도 전에 다시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외환 위기로 인해서 국가 통제의 전체주의(Totalitarianism)적 계획경제에서 구자유주의적, 즉 경쟁적인 시장의 틀을 갖추기도 전에 다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조정하는 상황으로 후퇴한 것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자본주의는 250년 이상의 긴 기간 동안 내부에서는 계급투쟁과 외부로부터는 사회주의와의 경쟁적 대립의 과정을 거치면서 진화해 왔다. 하지만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일반적으로 경험한 계층 간, 그리고 자본과 노동 간 갈등과 투쟁의 과정이 생략된 채 시작되었다. 자본과 노동의 대립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서야 표면화되었고, 노동자들이 정치 세력화한 것은 그보다 10년 뒤인 1997년이었다. (@노동자들의 정당이 설립된 것은 1997년 ‘국민승리21’이었고, 1997년 대선에 권영길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이후 2000년 ‘국민승리21’이 근간이 되어 민주노동당이 설립되었다.) 경제가 압축 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자본주의도 짧은 기간에 압축 진화를 한 형국이다. 한국과 선진국 간 자본주의의 진화 과정이 판이하게 다르다면, 비록 나타나는 모순적 현상이 유사할지라도 그것들의 구조와 원인은 다를 수밖에 없다.

 

 ο 얼룩진 축재

 (@IT(정보통신) 산업의 기업들을 제외하고 지금의 재벌 그룹 구조가 고착화된 1980년대 중반 이후 창업으로 시작해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성공 신화로는 팬택의 박병엽과 웅진그룹의 윤석금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팬택과 웅진그룹은 최근 경영 약화로 성공 신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IT 산업에서의 성공 신화를 만든 기업들인 ‘넥슨’은 1994년, ‘다음’은 1995년, ‘안랩(안철수연구소)’는 1995년, ‘엔씨소프트’는 1997년, ‘네이버’는 1999년 설립되었다.) 미국과 같이 오랜 기간 동안 자본주의를 해 온 나라에서도 100대 부자 중에서 71명이 당대의 창업자인데, 한국에서는 거꾸로 76명이 상속받은 부자다. 그리고 한국 상장 주식 100대 부자 중에서 재벌 가문이 아닌 사람은 15명에 불과하다.

 

 정경 유착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1997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벌들이 대통령 후보들에게 준 정치 비자금이 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삼성 300억 원, LG 150억 원, 현대차 100억 원, 한화 50억 원, 대한항공 10억 원, 대우건설 15억 원 등 당시 한나라당이 재벌들에게서 거둔 정치자금이 705억 원에 달했다.

 

 이건희가 1987년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으면서 납부한 세금은 상속세 176억 원과 증여세 5억 원을 합쳐서 181억 원이었다. 당시 삼성그룹의 총자산이 11조 6,000억 원이었고 부채를 제외한 순자산이 1조 4,000억 원이었으나, 이건희는 181억 원의 세금만 내고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받았다. 이건희의 형인 이창희가 납부한 상속세가 254억 원이었는데, 이건희는 이보다 적은 상속세를 내고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장악한 것이다.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이 실시되었을 때, 이건희가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 486명의 명의로 1,199개의 차명 계좌를 이용해서 상속받은 유산을 숨겨온 것이 밝혀졌다. 그 금액이 4조 5,000억 원에 달했다. 이후 재판 진행 중 차명 재산에 대해서 상속세가 아닌 양도소득세로 1조 8,000억 원의 세금을 납부했다. 한국 최고 부자인 이건희는 차명으로 상속재산을 숨기고 탈세를 해서 취득한 것이다.

 

 창업자에서 2세대로 상속되면서 가장 많은 상속세를 납부한 경우는 2004년 대한전선 설원량 회장의 유족들이 낸 1,355억 원이고, 두 번째는 교보생명 신용호 회장의 유족들이 낸 1,338억 원이었다. 당시에 재벌 순위 40위권에 있던 대한전선과 50위권에도 들지 않은 교보생명이 낸 상속세가 지금까지 역사적 최고액이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은 1995년 61억 원을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아서 16억 원을 증여세로 냈다. 그리고 나머지 45억 원으로 상장이 예정된 에스원, 삼성엔지니어링, 제일기획 등 비상장 계열사의 주식을 사들였고, 2년 후 이 회사들이 상장한 다음 600억 원의 차익을 얻었다. 1996년에는 삼성에버랜드(現 제일모직)가 발생한 전환사채를, 1997년에는 삼성전자가 발행한 전환사채를 부당하게 인수한 이후 이를 주식으로 전환해 지분을 확보하고 시세 차익을 얻었다. 1999년에는 삼성 SDS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값에 인수해서 1540억 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는데, 이러한 사실이 ‘삼성 특검’으로 확인되었고, 이건희 회장 등은 2009년 법원에서 배임과 조세 포탈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삼성 SDS가 2014년에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상장할 경우 이재용이 얻게 될 차익은 1조2000억 원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이재용은 불법으로 취득한 주식으로 15년 만에 20배가 넘는 이익을 얻는 것이다.

 

 이재용은 2000년에 자신이 주도해서 인터넷 사업을 하는 e-삼성, e-삼성인터내셔널, 가치네트 등의 기업을 설립하고 5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가 되었다. 그러나 이 회사들의 경영이 어려움에 빠져 손실이 예상되자, 이 회사들의 주식을 계열사에 고가로 넘겼다. 자신은 손해 보는 것을 피했지만, 이후에 지분을 인수한 계열사들은 380억 원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1995년 45억 원을 증여받은 이재용의 2014년 현재 재산은 3조 9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그의 재산은 19년 만에 880배가 늘어난 것이다. 이재용은 자신이 성공시킨 사업 사례가 없고, 아직까지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보여주는 계기도 없었다. 

 

 (@삼성에버랜드는 매출액 성장의 43%가 계열사들과의 내부 거래로 이뤄진 것이었다. 현대글로비스는 매출액 성장의 86%가 계열사들과의 내부 거래로 이뤄진 것이었다.) 

 

 한국 경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재벌 총수와 가족들이 불법과 편법으로 재산을 증식하고 부당한 상속으로 부를 대물린 것은 자유 지상주의자 노직(Robert Nozick)이 규정한 정의로운 소유의 첫 번째 조건인 ‘정의로운 취득’과 두 번째 조건인 ‘정의로운 이전과 양도’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또한 노직이 규정한 세 번째 조건인 ‘불의로 취득한 재산에 대한 시정’의 과정도 없었고, 법적 처벌도 솜방망이였다.  

 

 불공정한 경쟁

 ο 사업 낚아채기

 삼성전자에 반도체 장비를 납품하던 주성엔지니어링은, 2001년 삼성전자가 ‘납품 비리’를 이유로 회사의 모든 서류를 다 가져가면서까지 감사하고, 국세청까지 나서서 조사를 했지만 결국 결백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거래를 끊어버렸고, 납품받던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계열사를 차렸다.

 

 주성엔지니어링 창업자이자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카드 회사 계열사의 카드를 쓰라고 해서 그 카드만 썼다.”, “거래처인 현대전자가 그랜저 등 현대차 10대를 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정가대로 산 뒤 직원들에게 반값에 팔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또 ‘삼성(전자)이 휴대전화 사업을 접은 뒤 1990년대 말 테헤란밸리(IT 기업들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 일대)의 수많은 벤처기업인이 휴대전화 기술을 세계 수준으로 발전시켰고, 삼성은 이들을 흡수해 애니콜을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오늘날의 삼성(전자)을 만든 ‘애니콜 신화’도 삼성(전자)의 힘으로 이룬 게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ο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에게 일감 몰아주기로 다른 경쟁 기업의 기회를 박탈하는 불공정 경쟁 사례는 수없이 많다. 2013년 기준으로 재벌 그룹들 총매출의 12.5%가 내부 거래인데, 계열사 중에서 상장회사 매출의 내부 거래 비중은 8.1%인 반면에 비상장회사의 내부 거래 비중은 23.0%이다. 2013년 기준으로 재벌 그룹들 총매출의 12.5%가 내부 거래인데, 계열사 중에서 상장회사 매출의 내부 거래 비중은 8.1%인 반면에 비상장회사의 내부 거래 비중은 23.0%이다. 재벌 그룹 계열사 중에서 비상장 계열사들의 내부 거래 비중이 높은 것은 총수 가족들이 소유한 개인회사들에게 일감을 몰아줘서 부당이득으로 회사를 키우고, 나중에 회사를 상장함으로써 총수 가족들이 대규모 상장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이건희와 가족들이 45.6%를 보유한 비상장회사인 삼성에버랜드는 2012년 매출액 중에서 계열사들과의 내부 거래 비중이 44.5%이며, 1997년 이후 계속해서 계열사들의 내부 거래의 비중이 40%를 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삼성에버랜드의 성장이란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삼성에버랜드는 1996년 전환사채를 발행했는데, 당시 삼성에버랜드의 주주들이었던 삼성 계열사들이 의도적으로 이를 인수하지 않고 스스로 실권했다. 계열사들이 포기한 전환사채 인수 기회가 이재용에게 돌아갔으며, 이재용은 당시 48억 원으로 전환사채를 인수하고, 이를 나중에 주식으로 전환해서 에버랜드의 대주주가 되었다. 계열사들이 엄청난 차익이 예상되는 전환사채를 실권한 이유에 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불가능하다. 계열사가 실권한 전환사채를 결국 이건희의 아들 이재용이 인수하도록 부당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삼성SDS의 매출액 중에서 계열사와의 내부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72.5%나 된다.

 

 내부 거래 비중이 SK그룹 22.5%, 현대자동차그룹 21.3%, STX그룹 27.5%이다. 수출을 제외한 국내 매출만의 내부 거래 비중은 더욱 높아서 현대자동차그룹 39.1%, 현대중공업그룹 35.2%이며 STX그룹은 무려 63.6%나 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의 3세인 정의선이 최대 주주인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매출액 성장의 86%가 내부 거래로 이뤄진 것이었으며, 광고업 계열사인 이노션은 내부 거래 비중이 48.8%, 컨설팅업을 하는 현대오토에버는 78.2%나 된다. 롯데그룹의 롯데정보통신과 광고 회사인 대홍기획의 내부 거래 비중은 각각 80%와 73.9%이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최대 주주인 SK C&C는 매출액 성장의 68%가 계열사들과의 일감 몰아주기식 내부 거래로 이뤄진 것이었다.

 

 ο 부당 내부 거래

 SK그룹의 7개 계열사들은 다른 경쟁 업체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SK C&C와 계약을 맺은 사건이 있는데, 이는 총수 일가에게 부당이득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회사에 손실을 입힌 경우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4년 동안 이러한 부당 거래로 이뤄진 SK C&C의 매출이 무려 1조 8000억 원이나 되었다. 그리고 이를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하자 임직원들이 증거자료를 폐기하고 허위 진술하는 등 조직적으로 자사를 방해하고 거부하는 불법행위까지 저질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에 대해 346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임직원들의 조사 방해에 대해서 2억 9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러나 불법 거래로 SK C&C는 대기업이 되었고, 다른 경쟁 업체들은 이미 경쟁의 기회를 잃어버렸으며, SK계열사의 노동자들과 주주들이 가져가야 할 이익은 결국 최태원의 것이 되어버렸다. 공정거래 위원회가 벌금을 부과했지만 이들의 손해가 회복되는 것도 아니고 왜곡되어버린 시장의 구조가 원상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롯데그룹의 현금 인출 네트워크 사업을 하는 계열사인 롯데피에스넷은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를 제조 회사로부터 직접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피에스넷은 경영상 어려움에 처해 있던 롯데알미늄을 거래 과정에서 구입 창구로 끼워 넣어서 중간 마진을 챙기게 해주었다. 롯데알미늄은 아무런 역할도 없이 부당하게 이익만 챙긴 것이고, 그 부담은 궁극적으로 소비자가 지게 된 것이다. 롯데시네마는 이익이 많이 나는 극장 내 매점 사업을 회사가 직영하지 않고 신격호 회장의 부인과 딸들이 소유한 개인회사들에게 운영을 넘겨줘서 총수 가족들이 팝콘 장사까지 챙겼다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롯데시네마가 얻어야 할 이익을 총수 가족들이 소유한 개인회사에 넘겨준 것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자동차 할부판매 계열사인 현대캐피탈에 대해서는 낮은 금리를 적용하고, 현대카드의 신용카드로 결제할 경우에는 다른 신용카드로 결제할 경우보다 결제 한도 금액을 높게 책정해서 경쟁 카드 회사에게 불리한 거래를 하게 했다.

 

 ο 독과점 기업들의 담합

 한국의 4대 라면 회사인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여 년 동안 서로 담합해서 라면 가격을 함께 올리는 공동행위로 부당이득을 취했다. 이에 대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1,35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개별 소비자들의 피해나 경쟁 라면 업체에 대한 피해는 구제될 수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국책 사업인 ‘4대강 사업’은 사업권, 가격, 낙찰 등 전 과정이 사전, 사후 담합행위로 얼룩졌다. 삼성, 현대차, SK, GS, 롯데 등 재벌 그룹 계열 19개 건설 회사들이 입찰 사전에 담합을 해서 공사를 자체적으로 배분했다. 각 사업마다 입찰에서는 사전에 담합으로 정한 건설 회사가 미리 담합한 입찰 가격으로 낙찰을 받도록 사전에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움직였다. 이런 방법으로 담합에 참여한 건설 회사들이 돌아가면서 낙찰을 받는 부당 행위가 결국 발각되어 1,115억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등 정유 회사들은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해 타 회사가 각 주유소와 이미 맺은 계약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주유소 확보 경쟁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만약 주유소가 거래 정유 회사 변경을 요청하더라도 원적 회사의 포기 각서를 요구하거나 일방적으로 거래를 거절하는 부당 행위로 공동 대응을 했다. 또한 한 주유소가 두 개 이상의 정유 회사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주유소 유치 경쟁이 촉발될 가능성이 생기자, 주유소가 복수 상표를 신청할 경우 아예 브랜드를 취소해서 복수 상표 표시제의 정착을 공동으로 방해하기도 하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1년 시정 명령과 4,326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3대 설탕 제조 회사는 1991년부터 2005년까지 14년에 걸쳐 설탕 출고량과 가격을 담합해서 원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유지해 오다가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되어 511억 원의 과징금 부과를 받았다.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분, 동아제분(現 동아원) 등 8개 밀가루 제조 회사들도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밀가루 공급 물량과 가격을 담합으로 조정해서 부당이득을 취한 것을 공정거래위원회가 2006년 적발해서 43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삼성화재해상보험, 현대해상화재보험, 동부화재해상보험, 한화손해보험 등 10개 손해보험회사들이 2002년부터 2006년까지 4년 동안 보험료 담합을 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50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ο 원청기업의 ‘갑(甲)질’

 납품 대금의 지불을 지연시키거나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결제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갑과을 사이의 불공정 거래이다. 자주 발생하는 또 다른 유형은 서면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거래하는 경우다. 서면계약서 없이 구두만으로 먼저 발주하고 하청기업이 생산에 들어간 이후 계약금을 낮춰 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면 하청기업은 이미 생산을 시작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보면서도 납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청기업이 생산 전에 계약서를 요구하는 것은 원청기업을 ‘믿지 않는’ 불손한 행위로 간주된다. 서면계약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품을 납품받고, 제품의 인기가 없자 이미 생산된 부품에 대한 주문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거나 납품 인수를 거부해서 하청기업에게 손해를 전가하는 사례들도 있다. 또한 물품이 납품되었는데도 수령증을 발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반품하고 대금 지불을 지연하기도 한다.

 

 거래 중간에 발주한 원청기업이 납품가를 계약가격보다 일방적으로 낮춰서 하청기업에게 손해를 전가하는 것도 갑과 을의 거래에서 자주 발생하는 유형이다. 여러 하청기업에 부품을 발주한 원청기업이 납품가를 전년 대비 일률적으로 계약가격 이하로 인하하고, 이에 응하지 않은 업체에게 나중에 불이익을 주거나 거래를 중단하는 사례들도 있다. 원재료 가격 상승과 임금 인상 등으로 인한 원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납품가를 인상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경쟁입찰로 발주하는 경우에는 최저가 입찰로 납품 업체를 선정한 이후, 선정된 업체에게 낙찰가보다 더 가격을 낮추도록 추가 협상을 하는 경우도 있고, 가격 인하 압박 수단으로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입찰에서 탈락한 회사를 추가로 선정해서 물량을 나눠주기도 한다. 하청기업에서는 실제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공정 개선, 생산성 향상, 물량 증가로 비용이 절감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일방적으로 납품 단가를 낮추는 횡포를 부리기도 한다.

 

 원청기업이 잘 팔리지 않은 자사 제품을 하청기업에게 강제로 판매하거나 하청기업에게 원청기업의 계열사와의 거래를 강요하는 사례들도 있다. 거의 대부분의 재벌 그룹들은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다. 재벌 건설사들의 골프장 건설에 참여한 하청기업들은 물론이고 거래 기업들은 저마다 회원권을 구입한다. 건설업의 경우에는 설계가 변경되어 추가로 발생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사례도 허다하게 있다. 유통업의 경우에는 납품 기업 직원을 무상으로 매장에 파견 받아서 활용하기도 한다. 제조업의 경우에는 원청기업에 직원의 사고나 휴직으로 인해서 한시적으로 인력 충원이 필요할 때 하청기업 직원을 불법으로 파견 받아서 임시로 빈자리를 메우는 횡포도 있다. 원청기업의 노사분규로 하청기업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며, 원청기업이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납품가 조정 등의 방법으로 하청기업에게 전가하는 경우도 있다. 발주 회사가 납품 업체의 장부를 회계감사 해서 원가 정보를 직접 확인하고 납품가를 정하는 횡포를 부리는 사례도 있다. 심지어는 하청기업의 기술 자료를 요구해서 영업 비밀을 가로채는 사례도 있다.

 

 정의를 가로막는 걸림돌

 ο 정의와 의리 사이

 ‘의리 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배신자’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렇게 보면 한국 사회에서는 정의(正義)의 반대말이 불의(不義)가 아니라 의리(義理)인 셈이다.

 

 ο 현실과 정의 사이

 유신 시대에 박정희의 계획경제를 찬양하고 독재에 동조했던 사람들이 민주화된 지금에 와서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내세우는 보수 원조를 자처하면서도 다시 ‘박정희 향수’를 갖는 이중, 삼중의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재벌과 한국 경제의 모순

 ο 재벌 편중과 재벌 양극화

 한국 경제에서 재벌의 의미는 세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는 재벌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둘째는 재벌들이 하지 않는 사업이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사업에 진출해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재벌 그룹에 투명성과 책임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재벌에 의존하는 비중은 여하한 기준에서 보더라도 지나치게 높을 뿐만 아니라 그 비중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2011년 기준으로 30대 재벌 그룹은 한국 기업들 총매출액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가 총자산의 약 37%를 가지고 있고, 그들의 자산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95%이다. 이러한 비중들은 1990년대와 비교해서 크게 증가한 것이며, 특히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국내총생산 대비 30대 재벌 그룹의 자산 비중은 1990년 60%였으며, 외환 위기 이후 구조 조정으로 인해 급격히 하락해서 2002년 52%까지 떨어졌다. 30대 재벌 그룹의 매출액 비중은 2003년 28.4%였고, 국가 총자산의 비중은 2003년 23.0%였다.)

 

 여하하다 :: (흔히 ‘여하한’ 꼴로 쓰여) [같은 말] 어떠하다(‘어떻다’의 본말)
  여하한 어려움도 견딜 수 있다.
  이번에는 여하한 일이 있어도 해내고야 말겠다.

 

 한국 경제가 30대 재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뿐 아니라, 재벌 그룹들 중에서도 상위 4대 재벌과 기타 재벌들 간 양극화가 존재하며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다. (@외환 위기 이전의 4대 재벌 그룹인 삼성, 현대차, LG, SK의 국내총생산 대비 자산 비중은 1990년 27%였던 것이 1998년 47%로 증가했다. 외환 위기 이후 구조 조정으로 인해서 2002년 35%까지 줄었다. 외환 위기 이후 삼성, 현대, LG그룹은 분할했다. 이들은 분할 이던의 4대 그룹으로 분류한 범삼성, 범현대, 범LG, SK그룹의 비중은 이후 다시 급격하게 증가해서 2011년 65%이다.) 범(汎)삼성, 범현대, 범LG, SK의 범4대 재벌 그룹이 (@외환 위기 이후 삼성, 현대, LG그룹은 여러 개의 재벌로 분할했다. 삼성그룹은 신세계, CJ, 한솔, 중앙일보로 분할했고, 현대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산업개발, 현대백화점, 현대로 분할했다. LG는 LG, GS, LS로 분할했다. SK는 그룹 분할이 없었다.) 소유한 자산은 국가 총자산의 26%이며, 범4대 재벌 그룹의 매출액은 한국 총매출액의 20%를 차지한다. 이는 30대 재벌 전체 자산의 68%, 그리고 매출액의 52%를 차지하는 것이다. 30대 재벌의 절반 이상을 범4대 재벌 그룹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200대 대기업의 자산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85.3%였으나 2012년 122.2%로 증가했다. 그리고 200대 기업의 총자산 중에서 상위 50대 기업의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68%였으나, 2012년 70%를 넘어섰다.)

 

 2014년 5월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 중에서 삼성, 현대, LG, SK 4대 그룹 상장 계열사의 비중은 거의 절반에 가까운 46%이다. 이는 2008년 25%인 것과 비교해서 크게 늘어난 것이다. 2014년 5월 삼성그룹 혼자서의 비중은 25%이고, 현대차그룹은 11%로 상위 2대 그룹의 비중만으로도 시장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 36%이다. 2008년 삼성그룹의 비중은 19%였고, 현대차그룹의 비중은 4%인 것과 비교하면 상위 2대 그룹의 비중이 최근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다. 

 

 ο 구성의 모순: 효율성 이론과 경쟁의 효율성

 경제학에는 효율성과 관련된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와 ‘범위의 경제(economies of scope)’라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규모의 경제란 하나의 제품을 생산할 때 생산 규모가 커질수록 단위당 비용이 줄어들어서 효율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는 규모가 일정한 수준에 다다를 때까지 성립한다. 범위의 경제는 하나의 제품만 생산하기보다는 생산 설비나 생산기술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개의 제품을 생산하면 비용이 낮아져서 생산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또한 경영학에서는 기업이 한 가지 사업만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사업을 함께하는 것이 위험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인다는 ‘사업 다각화(business diversification)’ 이론이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 부품 사업을 함께하는 것과 같이 서로 연관된 사업을 하는 것이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수직적 다각화다. 다른 말로 하면 ‘전방 효과’나 ‘후방 효과’가 큰 사업을 같이 하면 시너지(synergy)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아이스크림 장사와 우산 장사와 같이 서로 연관성이 없는 사업을 함께하면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장사할 수 있다는 수평적 다각화다.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 사업 다각화의 두 가지 효율성 이론을 함께 시장에 적용하면 시장에는 원재료, 중간재, 완제품을 모두 함께 생산하면서 거의 모든 사업을 다하는 대기업 그룹, 즉 재벌들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살아남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효율성 이론들을 결합한 결론은 소수의 다각화된 대기업들이 시장을 독과점으로 장악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시장경제에서 어느 한 기업도 시장을 지배하지 않는 수많은 기업들이 경쟁하는 완전경쟁(perfect competition)이 효율성을 만들어낸다는 경쟁 원리와 모순된다.

 

 이론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다. 이론을 잘못 적용한 것이다. 효율성에 대한 각각의 이론은 맞다. 그러나 이를 국가 경제나 시장 전체에 적용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미시적인 개별 기업의 효율성 이론은 거시적인 시장의 경쟁을 통한 효율성과 상충된다. 개별 기업들 각자가 효율성을 높이는 경영전략을 구사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시장 전체와 국가 경제에도 가장 효율적인 것은 아닌 것이다. 개개인의 최선의 선택이 사회 전체의 최선의 선택이 되지 않는 이러한 현상을 ‘구성의 모순(fallacy of composition)’이라고 한다. 바로 한국의 경제구조가 그러하다.

 

 개별 기업의 효율성에 관한 이론들이 제한 없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규모의 경제는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지고, 범위의 경제나 사업 다각화의 경우에도 일정한 범위 이상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소수 대기업들이 거의 모든 사업 영역에서 독과점을 형성하고 있고 불공한 경쟁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시장구조에서 실제로 어떤 대기업이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서 시장 전체의 효율성이 떨어졌다고 해도 독과점 시장의 비효율성을 검증할 방법이 없다. 비교할 경쟁 대상조차 없기 때문이다. 소수 재벌들이 ‘수직적 다각화’로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생산하고, ‘수평적 다각화’와 ‘범위의 경제’ 논리로 서로 연관성이 없는 사업들까지 참여하며, ‘규모의 경제’ 논리로 시장을 독과점으로 장악하고 있는 것이 한국 경제의 구조다.

 

 ο 모든 것을 다 한다!

 재벌들은 광업과 농어업을 제외한 제조업에서부터 서비스업에까지 해당하는 거의 모든 사업을 하고 있다. 재벌 그룹에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들도 있지만, 이들의 상당수가 재벌 기업의 하청 또는 납품 기업들이다. 이런 구조에서 중소기업이나 새로운 창업 기업이 재벌 그룹이 하고 있는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은 갈수록 불공정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고, 한국에는 지난 20여 년 동안 새로운 창업 신화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ο 모든 것을 다 잘한다?

 (@삼성그룹의 대표적인 해외투자 실패 사례는 AST를 들 수 있다. 삼성전자는 1995년 당시 세계6위의 컴퓨터 제조 기업인 미국 AST의 지분 40.3%을 인수하고 경영에 참여했다가, 1997년 100% 지분을 모두 인수하고 삼성그룹의 계열사로 편입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인수한 이후에도 경영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1999년 2월 미국의 투자자 그룹에게 지분을 매각하고 7000여억 원 이상의 투자 손실을 보는 실패로 마감되었다.)

 

 이건희가 자동차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네 가지로 판단된다. 첫째는 ‘자동차 산업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공부했고’, ‘10년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고 연구’해왔으며 스스로 자신감에 차 있었다. 둘째로 그는 ‘자동차는 전자 제품’이라고 했다. 앞으로 자동차 부품의 50% 이상은 전자 제품이 될 것으로 전망한 그는 삼성전자의 기술을 자동차에 결합하겠다고 한 것이다. ‘수직적 다각화’의 논리였다. 셋째는 자동차는 수출 시장으로 성공해야 하는데 삼성그룹이 가지고 있는 전 세계 수출망과 인력을 활용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범위의 경제’와 ‘수평적 다각화’ 논리였다. 넷째는 ‘삼성이 의료 사업에 참여해서 병원의 개념을 바꾸고 병원 전체의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렸듯이, 삼성이 새 차를 출시함에 따라 기존 업체의 품질과 서비스 수준이 향상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경쟁을 통한 효율성 논리’였다.

 

 이건희는 삼성그룹 내부의 힘을 빌려 삼성 자동차를 성공시키겠다면서 동시에 다른 자동차 회사와의 경쟁을 통해 자동차의 품질과 서비스를 높이는 것이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내부의 힘을 빌리는 것이 삼성자동차에게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그것은 불공정 경쟁이며 한국 자동차 산업과 국가 경제에는 비효율적인 것이다. 이건희는 개별 기업의 효율성이 시장과 국가 경제에 효율성과 일치하지 않는 ‘구성의 모순’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특히 개별 기업의 효율성이 불공정한 경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ο 죽 쒀서 절대 남 안 준다!

 재벌 그룹들이 너도나도 하는 사업들이 있다. SI 사업, 건설업, 물류-운송업, 광고업, 골프장 사업은 재벌 그룹의 계열사가 아니면 생존하기 어려울 정도로 ‘춘추전국 업종’이다. SI 사업(system integration, 시스템 통합 서비스)은 10대 재벌 그룹 중에서 9개 그룹이 계열사를 가지고 있고, 20대 중에서는 16개, 30대 중에서는 22개 그룹이 계열사를 가지고 직접 사업하고 있다. 건설업은 10대 재벌 그룹 중에서 7개 그룹이, 20대 중에서는 16개, 30대 중에서는 23개 그룹이 직접 사업을 한다. 물류-운송 사업은 10대 재벌 그룹 중에서 9개, 20대 중에서는 16개, 30대 중에서는 20개 그룹이 사업을 한다. 광고업도 10대 재벌 그룹 중에서 7개 그룹이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 10대 재벌 그룹은 10개 모두, 20대 중에서는 16개, 30대 중에서는 22개 그룹이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다. 호텔 사업은 10대 재벌 중에서 8개, 20대 중에서는 12개 그룹이 하고 있다.

 

 SI 사업, 건설업, 물류-운송업, 광고업과 같은 사업들은 그룹 내부의 수요만으로도 최소한의 규모의 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계열사는 외부 업체에 외주를 주는 그룹 전체의 창구 역할만을 하고도 일종의 ‘통행세’를 중간 마진으로 챙겨도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사업들은 계열사를 만들어서 일감 몰아주기로 회사를 운영한다. 최근에 물류 사업이 핵심 주력 사업의 하나인 CJ그룹의 CJ GLS가 물류-운송 전문 기업인 대한통운을 인수했다. 그런데 인수한 지 6개월 만에 매출이 1조 원 줄어들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삼성그룹이 CJ와의 거래를 갑자기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에서 SI 사업을 하는 계열사인 삼성SDS가 앞으로 물류 사업에 진출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대한통운 인수전(戰)에서 CJ와 삼성이 경쟁을 했는데 CJ가 이겼고, 이즈음 상속재산을 두고 이맹희, 이건희 형제간의 소송 다툼이 있었다. 그리고 삼성SDS는 이재용이 최대 주주로 있고, 앞으로 주식시장에 상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비상장회사다. 삼성이 CJ와의 거래를 갑자기 끊어버린 이유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랫동안 유지해 온 거래를 끊어서 물류와 관계없는 사업을 하는 계열사에게 넘겨주는 것은 일감 몰아주기로 사업을 확장하는 재벌 그룹들의 전형적인 행태다.

 

 모든 재벌들이 다 하는 이런 사업에는 절대 강자가 없으며, 경영 능력이나 효율성이 아니라 그룹 내부의 수요가 얼마나 큰가로 회사의 경쟁력이 결정된다. 이런 와중에서 재벌 그룹에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회사들은 경쟁하기 힘들고, 다만 재벌 계열사들의 재하청기업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재벌 그룹에 속하는 회사들 중에서도 이러한 사업을 핵심 사업으로 하는 회사들이 있지만, 그 회사들도 다른 재벌들이 물량을 주지 않으니 성장에 한계가 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물류비 비중이 11% 수준으로 미국이나 일본의 7~8% 수준보다 높다. 그 만큼 물류비를 줄일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재벌 그룹들마다 내부 물량으로 물류-운송 회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 시장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물류비의 낭비를 줄이기 어렵다. 재벌들마다 물류-운송 사업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세계적인 물류 업체인 DHL이나 UPS같은 초일류 기업의 출현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물류 사업처럼 재벌들이 계열사들의 내부 수요만으로도 운영할 수 있어서, 굳이 다른 외부 회사에 외주를 줄 이유가 없는 사업은 수없이 많다. 개별 기업의 효율성과, 시장과 국가 경제의 효율성 사이에 존재하는 구성의 모순이 한국 경제구조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현실이다.

 

 ο 끝도 시작도 없는 소유의 미로

 재벌 구조의 여러 가지 문제들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소유 구조다. 재벌 총수와 가족들이 소유한 계열사들의 지분은 극히 적거나 아예 지분을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대를 이어서 경영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 많은 문제들의 근원이 되고 있다. 총수와 그 일가들이 소유한 지분이 SK그룹 0.5%, 현대중공업그룹 1.2%, 삼성그룹 1.3%에 불과하다. 이건희가 소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3.4%이다. 이재용의 지분은 0.6%이고, 부인인 홍라희의 지분은 0.7%이다. 이건희 가족의 지분은 모두 합해도 4.7%에 불과하다.

 

 재벌은 한국 경제의 미래인가? 

 ο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미래다

 ‘재벌은 한국 경제의 미래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또 다른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에 달려 있다. 첫째는 지금과 같이 재벌들이 모든 사업을 다 하는 구조가 계속될 것인가이다. 둘째는 재벌 그룹의 후대들이 창업자와 같은 사업적 재능을 유전적으로 계속 물려받을 것인가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한국 경제의 미래다. 그리고 LG전자와 SK에너지도 한국 경제의 미래다. 그러나 삼성SDS와 제일기획, 그리고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이 한국 경제의 미래라고 볼 수 없다. 현대글로비스와 삼성 SDS가 한국의 미래가 되는 길이 있지만 지금과 같이 재벌들마다 ‘죽 쒀서 반드시 내가 먹는’한 그 길은 열리지 않는다.

 

 이런 회사들이 한국의 미래가 될 수 있는 길은 하나 더 있다. 국내시장이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이다. 경쟁력을 키우는 가장 빠른 길은 치열한 경쟁을 치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룹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로 성장했고, 아직도 그렇게 생존하고 있는 마당에 이들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휴대폰 중 90% 이상이 해외에서 생산되고 있고, 삼성전자 직원의 60% 이상이 한국이 아닌 외국 공장의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삼성전자의 2014년 휴대폰 판매 목표는 5억 5000만 대인데,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은 3300만 대로 국내 생산 비중이 6~7%에 불과하다. 또한 삼성전자의 2013년 투자 계획 24조 원 중에서 국내 투자는 2조 원으로 10%도 되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2013년 직원 수는 23만 6000명이고, 이 중에서 해외 인력은 14만 5000명으로 62.6%이다.) 2013년에는 삼성전자 총투자의 90% 이상이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스마트폰을 포함해서 휴대폰은 점차로 첨단 기술에서 범용 기술로 변화하고 있다. 기술이 범용화 될수록 기술 경쟁력보다 가격경쟁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현대자동차도 해외 생산량이 50%에 육박하고 있고, 총투자 중 해외에서 이뤄지는 투자가 30%를 넘는다. (@현대자동차 사업보고서에 의하면 총투자 중에서 해외투자의 비중은 2011년 34.6%, 2012년 29.4%, 2013년 30.9%이다.)

 

 한국은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두 번째로 높고,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세 번째로 낮다. (@2011년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에너지 산업 포함)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 33.8%로 노르웨이 36.4%에 이어서 OECD 회원국 중에서 두 번째로 높다. 2009년과 2010년에도 두 번째로 높았다. 2011년 OECD 회원국 중에서 국내총생산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낮은 나라는 노르웨이(56.3%), 두 번째로 낮은 나라는 칠레(57.5%)이다.) 미국, 독일, 일본 등 많은 다른 선진국들은 한국보다 서비스업의 비중은 매우 높고 제조업 비중은 매우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고용 효과가 낮은 제조업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에너지와 같은 제조업 기업의 성장은 한국에 일자리를 만들거나 부가가치를 더 높이는 것에 큰 도움이 안 된다. 한국의 미래가 아니라고 했던 삼성SDS와 제일기획, 그리고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이 하고 있는 서비스산업의 성장이 고용을 더 많이 창출하고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한국의 미래다. 이러한 서비스산업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와 같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대기업들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한국의 미래인 것이다.

 

 어느 선진국에도 한국의 재벌 그룹들처럼 소수의 대기업이 모든 사업을 다 하는 경우는 없다. 각 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대기업들도 모든 사업을 다 하지 않는다. 애플(Apple)은 급식 사업이나 패션 사업을 하지 않는다. GM은 광고 회사와 증권회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소니(Sony)는 백화점 사업이나 건설업을 하지 않는다. BMW는 호텔이나 골프장을 운영하지 않는다. 재벌은 한국 경제의 미래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첫 번째로 ‘지금과 같이 재벌들이 모든 사업을 다 하는 구조가 계속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했다.

 

 지금과 같이 재벌 그룹들이 ‘모든 것을 다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잘하지는 않는다’가 계속된다면 재벌은 한국 경제의 미래가 아니다. 그러나 재벌들이 계열사에 몰아주고 있는 일감을 독립적인 전문 기업에 준다면 고용이 창출되고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산업에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에너지와 같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새로운 전문 기업들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재벌은 한국 경제의 미래가 된다.

 

 ο 재벌 2세, 3세에 매달린 한국 경제

 20세기 최고의 천재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두 아들이 있었다. 첫째 아들인 한스(Hans)는 미국의 명문 대학인 UC버클리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y)에서 수공학(水工學) 교수로 많은 연구 업적을 남겼다. 둘째 아들인 에듀아르드(Eduard)는 음악과 예술에 관심을 가졌고 시를 쓰기도 했지만 정신병을 앓았고 특별한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로부터 재능을 물려받았지만 아버지와 같은 세기적인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산업을 일으킨 대기업가인 ‘철강왕’ 카네기(Andrew Carnegie), ‘석유왕’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는 한국의 정주영, 이병철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헨리 포드와는 달리 자신이 창업해서 성공한 대기업들의 경영을 자식들에게 맡기지 않았고, 거의 모든 재산을 기부를 통해 사회에 환원했다. 그리고 ‘철도왕’ 벤더빌트(William Henry Vanderbilt)는 아들까지 경영에 참여했으나, 아들이 모든 재산을 기부하고 더 이상 후손들의 경영 참여는 이어지지 않았다. 포드 가문 사람들이 3대에 걸쳐서 회사 경영을 이어간 것은 미국의 대기업에서는 오히려 드문 사례다. 포드자동차보다 늦게 설립된 GM(General Motors)은 창업자인 듀런트(William C. Durant)의 가족들이 경영을 이어가지 않았고, 전문 경영인 체제로 경영해 왔지만 포드자동차와 견주는 회사로 성장했다.

 

 한국 재벌 그룹들은 전부가 2세대가 경영을 이어갔고, 3세대들도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2세대 재벌 총수들 중에는 상당수가 창업자인 아버지를 도와서 그룹의 초기 성장 과정을 직접 경험했다. 그러기에 그들은 절반의 창업 경험을 가지고 있다. 외환 위기 때 30대 재벌 중에서 18개 재벌이 망해서 해체되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한 이후에 1999년까지 지급 불능이 되어 구조 조정이 된 재벌 그룹은 대우, 쌍용, 한라, 한보, 해태, 고합, 뉴코아, 동아, 벽산, 삼미, 진로, 한일, 극동건설, 아남, 새한, 강원산업, 신호, 거평으로 모두 18개 그룹이다. 재벌 그룹은 아니었던 기아를 포함하면 19개다.) 3세대들은 이미 그룹이 성장해서 자리를 잡은 이후에나 경영에 참여했다. 외국의 명문 대학에서 MBA(전문 경영학 석사) 학위도 받고, 그룹 내부에서 경영 수업도 받았다. 그러나 3세대가 사업적 재능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지 못했다 해도 3세대는 2세대보다 엄청나게 더 큰 재산과 기득권을 물려받기 때문에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생존할 수는 있을 것이다.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부자들이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2020년 올림픽 팀의 대표 선수를 2000년 올림픽의 금메달을 받은 선수의 큰 아들로 선발한 것과 같다.”라고 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끔직한 실수(terrible mistake)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들은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서 총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총수의 자리에 올라서 경영 능력을 입증하려고 한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도박에 베팅(betting)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8.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ο 사회적 합의, 정책 그리고 실천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원론적인 이상론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함께 잘사는 것이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새로운 가치라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둘째는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실현해낼 구체적인 정책들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는 그러한 정책들을 실제로 시행할 정치 지도자들의 의지와 실천이 있어야 한다.

 

 (@주민 투표는 투표율이 33.3% 미만인 경우에 주민 투표 자체가 무효가 된다. 투표 결과 투표율이 25.7%에 불과해서 오 시장이 사퇴하고 전면적으로 무상 급식이 도입되었다.)

 

 한국이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소득 불평등을 줄이고 중산츠잉 두터운 구조를 만들 수 있는 분배 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첫째는 기업의 이익 중에서 가계로 분배되는 몫이 커져야 하고, 둘째는 임금격차를 줄여야 하며, 셋째는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강화되어야 한다.

 

 ο 초과 내부유보세: 돈 부지런하게 만들기

 기업의 이익은 임금이나 배당으로 분배하거나 또는 기업 내부에 유보하는 세 가지 방법으로 처분된다. 이 중에서 임금과 배당으로 분배되는 몫은 가계소득으로 바로 이어져서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를 완화하는 직접적인 수단이 된다. 한국은 이익이 늘어나는데도 노동분배율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고, 배당도 늘어나지 않으며, 기업의 내부유보만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업의 이익이 임금과 배당으로 지급되면 가계소득이 늘어나고 소득세가 부과된다. 따라서 임금이나 배당으로 분배하지 않고 내부유보를 하면 가계소득과 정부의 세금 수입이 함께 줄어들게 된다. 반대로 기업이 이익을 임금으로 지급하는 경우 법인세를 적게 낸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더 많은 소득세를 내기 때문에 정부의 세금 수입이 줄어들지 않는다. 특정 주주에게 소유가 집중된 기업의 경우 대주주는 배당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만약 배당으로 소득이 높아지면 대주주의 소득세율이 법인세율보다 높아질 뿐만 아니라 최고 누진세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대주주가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배당하지 않을 유인(誘因)이 있다. 대주주만이 아니라 재벌 그룹 차원에서도 세금을 회피하는 수단이 된다. 계열사 간 서로 물고 물리는 복잡한 소유 구조를 가진 재벌 계열사들은 이익을 서로 배당으로 주고받는 것보다 내부유보금으로 보유하면 배당 소득세를 내지 않고 자금을 보유하게 된다.

 

 기업의 내부유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기업이 적정한 수준 이상으로 유보한 이익에 대해서 ‘초과 내부유보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한국은 2001년까지 적정 유보 소득을 초과한 이익 유보에 대해서 과세하는 제도를 가진 적이 있었고,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내부유보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과거 초과 유보에 대한 과세 이외에도 모든 내부유보금에 대한 과세 제도들을 가지고 있었다. 배당하지 않았어도 배당된 것으로 간주해서 주주에게 개인소득세를 과세하는 제도와, 비상장 주식을 양도할 때 발생하는 양도 차익에 대해서도 자본 이득세를 부과하는 세제를 시행했었다. (@적정 수준을 초과하는 내부유보에 대해서 법인세를 과세하는 제도는 1991~2001년 동안 시행되었다. 이익을 주주에게 배당된 것으로 간주해서 주주에게 개인소득세를 부과하는 지상 배당 소득세는 1968~1985년 동안 시행되었고, 비상장 주식의 양도 차익에 대한 자본 이득세를 부과하는 의제 배당 소득세는 1986~1990년 동안에 시행되었다.) 적정 유보를 넘어선 초과 유보에 대한 과세 제도는 2002년 폐지되었다. 한국 기업들의 내부유보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한 시기는 바로 이 제도가 폐지된 직후였다. 제조업 기업의 총자산 대비 이익잉여금의 비율이 이 제도가 폐지되기 직전인 2001년에는 2.8%였다. 이 제도가 폐지된 2002년에는 11.1%로 급격하게 증가했고, 이후 2003년에는 14.6%, 2004년에는 22.2%로 증가해서 3년 만에 이익잉여금의 비율이 열 배나 증가했다. 이익잉여금이란 내부유보금을 축적한 것이다. 따라서 이익잉여금이 지속적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것은 내부유보를 지속적으로 늘렸다는 의미다. 이 비율은 1990년대에는 3~7% 수준에서 변동했으나 2002년 내부유보에 대한 과세 제도를 폐지한 이후 급격하게 증가해서 2012년에는 자료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로 역사상 최고 수준인 34%에 이르고 있다.

 

 대기업의 대주주가 늘어난 배당을 받으면 최고 세율 38%를 적용받아 높은 소득세를 내야 한다. 그러나 대주주가 배당을 늘리는 대신 임금 배분이나 사원 복지의 몫을 늘리면 법인세를 적게 내고, 보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ο 비정규직 해소: ‘사람’에서 ‘일’로

 * 비정규직 양산하는 기간제 노동자 보호법

 비정규직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간제 노동자를 보호하는 현재의 법은 ‘2년을 초과해서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 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고 정하고 있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방안 같지만, 오히려 이 법이 비정규직들의 고용 지위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다. 회사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계약을 2년 미만으로 하고, 2년이 되기 전에 다른 노동자를 다시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식으로 법 적용을 피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이 시행된 지 6년이 지난 2013년까지 임금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의 비율은 55.8%에서 46.1%로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비정규직 중에서 기간제 노동자는 법 시행 첫해에만 크게 감소하고, 이후에는 더 이상 감소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시간제(part-time) 근로자들은 오히려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기간제 근로자가 임금노동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18.2%였으나, 기간제 보호법을 시행한 이후인 2008년에는 14.3%로 감소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14%대에 고착화되어 있어서, 실제로 기간제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높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시간제 근로자는 법 시행 직후인 2008년 8.1%였고, 이후에 지속적으로 증가해서 2014년 9.9%이다.) 기간제 보호법 시행 첫해에만 기간제 노동자가 줄어들고,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줄어들지 않고 있는 현상은 법 시행 이후 비정규직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보다는 2년 이전에 계약을 종료하고 다른 노동자를 다시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 시행 이전에도 비정규직으로 4년을 근무해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9% 정도였는데, 법 시행으로 인하여 오히려 기간제 노동자들의 계약 기간이 과거보다 단축되는 역효과가 발생하고, 실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율은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 ‘사람 2년’에서 ‘일 2년’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현재 정규직 전환 기준 기간 2년을 ‘동일 노동자의 근무 기간’으로 정하고 있는데, 이를 ‘동일 업무의 존속기간’으로 바꾼다면 법 취지의 실효성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회사에 어떤 업무가 계속 존속한다면 그 업무에는 노동자가 계속 필요하다는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그 일에는 정규직을 채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간제 근로자가 맡고 있는 일이 상시적인 업무인 경우에 첫 2년은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어떤 노동자를 고용하든지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 것이다.

 

 기간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기준을 업무의 존속기간’으로 개선한다면, 그 적용 기간을 반드시 지금의 ‘노동자 근무 기간 2년’과 같이 정할 이유는 없다. 업무의 존속기간을 3년 또는 4년으로 길게 정한다고 해도 그 기간이 지난 이후에는 반드시 정규직을 채용해야 하기 때문에 단지 상시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시점이 늦춰질 뿐이다. 

 

 기간제 노동자는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40%를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ο 증세가 필요하다

 * 부담 능력 있고 부담해야 한다

 만약에 지하경제 양성화로 부족한 재정을 채울 수 있는 정도라면 이것은 더욱 큰 문제다. 이는 단지 세수 확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구조 자체가 엉망이거나 정부의 공권력 집행이 심각하게 훼손되었음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25.9%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국가 중에서 31위로 가장 낮은 편이며, OECD 평균인 33.8%와 비교해서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2011년 국내총생산 대비 총세금은 25.9%이며, OECD 국가들의 평균은 33.8%이다.) 또한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같은 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역누진성(逆累進性)을 갖는 간접세의 비중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며, OECD 국가들의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다.

 

 ‘부자 증세’는 ‘지하경제 양성화’와 같이 세수 확보에 일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현재의 모순 구조를 극복하자면 국민 모두가 부담을 나눠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세제 자체를 고쳐야 한다. 

 

 한국의 개인소득세와 법인세는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누진구조로 되어 있다. 개인소득세는 5단계로 되어 있으며, 가장 낮은 세율은 과세표준 1,200만 원 이하의 소득에 대해서 적용하는 6%이고, 가장 높은 세율은 1억 5,000만 원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 적용하는 38%이다. (@2014년부터 개정된 소득세 누진 구조는 과세표준을 기준으로 1200만 원이하는 6%, 1200~4600만 원은 15%, 4600~8800만 원은 24%, 8800~1억 5000만 원은 35%, 1억 5000만 원 이상은 38%이다. 그러나 소득세는 총소득에서 근로소득공제, 부양가족 수에 따른 인적 공제, 연금과 건강보험 등에 대한 소득공제를 차감한 금액을 과세표준으로 정하기 때문에 실제 세율은 명목적인 세율보다 크게 낮다.) 법인세는 3단계로 되어있으며, 2억 원 이하의 이익에 대해서는 10%의 세율을, 2억~200억 원 사이의 이익에 대해서는 20%, 그리고 200억 원을 넘는 이익에 대해서는 22%의 세율을 적용한다. 하지만 실제로 납부하는 세금은 각종 세금 감면 제도와 소득공제 제도 때문에 이보다 훨씬 낮게 내고 있다

 

 * 소득세 누진 강화

 소득세는 총소득 중에서 여러 가지 소득공제를 뺀 금액으로 구한 과세표준을 기준하기 때문에 소득세의 실질적인 세율은 명목적인 세율보다 크게 낮으며, 소득수준에 따른 실질적 누진세율의 차이도 매우 미미해서 누진세가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다. 연간 소득이 3,000만 원인 경우에 실효세율은 1.7%이며, 6,000만 원인 경우에 실효세율은 4.3%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3000만 원 소득이 두 배로 늘어난 것에 대한 실제 소득세율의 증가는 2.6%포인트에 불과하다. 실효세율은 총소득 중에서 실제로 세금으로 낸 금액의 비율이기 때문에 3,000만 원 소득자가 실제로 낸 소득세는 51만 원이며, 6,000만 원 소득자가 실제로 낸 소득세는 258만 원이다. 소득 계층 상위 12%에 속하는 6,000만 원 소득에 대한 4.3%의 실효세율은 매우 낮은 수준이며, 이는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세율이 적용되어 역누진성을 갖는 부가가치세의 세율인 10%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소득 계층 상위 5%인 9,000만 원 소득의 실효세율도 약 8.0%로 부가가치세율보다 낮다. 모든 납세자의 평균 실효세율은 5.9%이고, 모든 납세자의 평균 소득에 해당하는 연소득 2,900만 원의 실효세율은 약 1.6%이다. OECD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개인소득의 증가에 비례하는 실질적인 누진 증가 정도가 매우 적으며, OECD 34개 국가 중에서 누진 증가 정도가 다섯 번째로 낮다.

 

 소득 계층 최상위 1% 소득자의 실효세율은 23.5%이며, 그 다음의 상위 1~2% 구간 소득자의 실효세율은 12.6%이고, 상위 2~3% 구간 소득자의 실효세율은 9.8%이다. 이는 소득 계층 상위 3% 내에서는 누진세율의 차이가 13.7%포인트 차이가 난다는 것이며 어느 정도 누진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소득 계층 상위 4~5% 구간 소득자의 실효세율이 7.4%이고, 상위 9~10% 구간 소득자의 실효세율은 4.8%이며, 상위 29~30% 구간 소득자의 실효세율은 1.7%이다. 이에 의하면 실질적인 누진세율의 차이가 소득 계층 상위 5~10% 구간에서는 2.6%포인트이고, 10~30% 구간에서는 3.1%포인트에 불과한 것을 의미한다. 이는 누진세의 실질적인 효과가 상위 5%의 소득자들에게 국한되고 나머지 소득자 대부분에게는 누진세의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소득 계층 상위 3%인 고소득 계층까지도 실효세율이 역누진적인 부가가치세율보다 크게 낮은 것은 소득세의 누진 구조가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기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저소득 계층에게는 역누진적인 부가가치세가 초래하는 소득 불평등 악화 효과가 누진적인 소득세가 만들어내는 소득 불평등 완화 효과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2년 ‘통합 소득’을 기준으로 모든 납세자의 평균 소득은 2900만 원, 실효세율은 1.7%보다 낮다. 소득 계층 상위 3~4% 구간의 평균 소득은 1억 650만 원, 실효세율은 8.3%이고, 소득 계층 상위 9~10% 구간의 평균 소득은 6450만 원, 실효세율은 4.8%이다. 소득 계층 상위 19~20% 구간의 평균 소득은 4430만 원, 실효세율은 2.8%이며, 소득 계층 상위 29%~30% 구간의 평균 소득은 3220만 원, 실효세율은 1.7%이다.)

 

 현재 소득세의 누진 구조가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기능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것은, 첫째는 여러 가지 소득공제 제도의 역누진성 때문이며, 둘째는 고소득 계층에 대한 과세가 누진성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소득공제가 역누진적인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소득공제가 없는 경우를 가정한 실효세율을 구해보자. 이 경우에 3,000만 원 소득의 실효세율은 현재의 1.7%에서 6.0%로 높아지고, 6,000만 원 소득의 실효세율은 현재의 4.3%에서 13.2%로 높아진다. 그리고 두 소득 간 실효세율의 차이가 현재의 2.6%포인트에서 7.2%포인트로 세 배 높아져서 실질적인 누진 효과가 나타난다. 소득공제 제도가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2012년 소득 구조를 분석한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 소득공제 제도가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소득이 높을수록 소득공제의 효과가 줄어들도록 소득공제 효과를 역누진적으로 만드는 것이며, 그 방안의 하나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소득세의 누진 구조가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기능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고소득 계층, 특히 초고소득 계층에 대한 누진 구조가 누진 효과를 내지 못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득세의 실질적인 누진 효과는 소득 계층 상위 5%에 그치고 있다. 또한 상위 10% 소득 계층과 최하위 소득 계층과 사이의 실효세율의 차이가 5%포인트에 불과해서 전체 납세자의 90%에는 실질적인 누진 효과가 없다. “소득 신고자 대부분의 실효세율이 1% 내지 2%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는, 소수의 상위 소득 계층에만 초점을 맞춘 직접 증세 방식, 이른바 ‘부자 증세’만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소득 계층 최상위 1%에 속하는 연소득 3억 2,000만 원에 적용되는 최고 세율은 38%이지만 실효세율은 이보다 크게 낮은 23.5%이다. 또한 소득 10억 원과 이보다 100배가 큰 1,000억 원 소득의 경우에도 동일한 최고 세율 38%를 적용받으며, 소득공제를 고려한 실효세율의 차이도 매우 미미해서 초고소득 계층에서는 실질적인 누진 효과가 없다.

 

 * 법인세 개혁

 현행 법인세 제도는 2억 원 이하의 이익에는 10%의 세율을, 2억 원에서 200억 원 사이의 이익에는 20%의 세율을, 그리고 200억 원 이상의 이익에는 22%의 세율을 적용하는 3단계 누진 구조다. 한국 기업의 평균 실효세율은 2011년 16.6%인데 이는 최고 세율인 22%와의 차이가 5%포인트 정도다. 기업 수익 기준 최상위 1% 기업들의 실효세율도 17.6%로 전체 평균 16.6%와의 차이가 1%포인트에 불과해서, 최상위 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누진 효과는 더욱 미미하다. 한편 최상위 9~10% 구간 기업들의 실효세율은 12.7%인데, 이는 최상위 10% 기업들 간에 약 5%포인트 정도의 누진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개인소득세의 경우보다 최상위 기업들 간 누진율 차이가 더 적은 것이다. 그리고 최상위 10%를 제외한 나머지 90% 기업들 사이의 누진율 차이는 약 3%포인트로 실질적인 누진 효과가 거의 없다. 기업들에 대한 법인세의 누진 효과는 개인소득에 대한 소득세의 누진 효과보다 훨씬 더 미미하다. 

 

 법인세의 누진 효과가 없는 것은 현행 법인세 누진 구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연간 과세표준이 10억 원인 회사의 누진세율은 20%인데, 과세표준 1조 원에 대한 누진세율이 22%이어서, 이익이 1000배 늘어났는데도 세율은 2%포인트 증가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법인세 법정 최고 세율 22%는 200억 원 이상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수익 규모가 매우 큰 상위 1% 기업들이 감면을 받더라도 실효세율은 22%보다 크게 낮지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실효세율이 4.4%포인트나 낮은 17.6%인 것은 최상위 기업들이 오히려 투자세액공제와 같은 각종 세액공제 혜택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세액공제로 감면한 세금 중에서 상위 1% 기업들이 전체의 72.8%를 차지하고 나머지 99% 기업들이 18.2%를 차지하고 있다. 상장회사만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 2013년 순이익이 1,000억 원을 넘는 기업이 80개이지만 이들의 순이익 합은 전체 상장회사 총순이익의 80%를 넘는다. 순이익이 200억 원보다 적은 기업이 1,000개에 이르지만 이들의 순이익 합은 전체 총순이익의 4.1%에 불과하다.

 

 한국의 명목적인 법인세는 22%와 지방세를 합해서 24.2%이며, 이는 OECD 34개 국가 중에서 21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법정법인세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 중간이하 정도이며, 평균 실효세율이 16.6%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더욱 낮은 것이다.

 

 ο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배상제

 사후적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규제당국이 아닌 피해 당사자가 직접, 그리고 쉽게 자신의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한 제도로서 집단소송제, 징벌적 배상제, 다중 주주 대표소송제 등을 들 수 있다. ‘집단소송제’는 증권 관련 불법행위를 대상으로 2005년에 이미 도입되어 있지만, 소송 대상 범죄가 매우 제한적이고 절차가 까다로워서 지난 10년 동안 단 네 건의 소송 밖에 제기되지 않았다. 

 

 부당이득만 환수하는 것은 오히려 벌금을 내고 불법적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용인하고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모순이 있다. 불법행위로 만들어진 구조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경쟁 기업이나 불특정 다수 소비자들의 피해는 방치된다. 따라서 불법행위에 대한 경제적 처벌을 불법행위로 얻은 이익을 환수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범죄자로부터 시장구조와 질서에 끼친 폐해와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까지도 환수하는 ‘징벌적 배상제’의 도입이 필요하다.

 

 미국의 20세기 금융 천재 중 하나로 명성을 날렸던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이 1990년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불법 거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밀켄이 불법적인 내부자 거래로 얻은 이익이 470만 달러(약 48억 원)로 추정하고 기소를 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10년 징역형과 함께 2억 달러(약 2,040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벌금이 불법행위로 얻은 이익보다 40배가 넘은 것이다. 상급법원에서 밀켄은 유죄를 인정하고 추가 배상하는 것에 동의했는데, 상급심의 판결은 2년 징역형과 함께, 벌금과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으로 무려 13억 달러(약 1조 3,300억 원)를 부과했다. 벌금이 부당이득보다 270배가 더 큰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밀켄은 평생 증권업과 관련된 어떠한 일에 종사하는 것도 금지 당했다.

 

 한국의 SK C&C는 4년 동안 부당 거래로 매출액이1조 8,000억 원으로 늘어났고, 공정거래위원회는 346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과징금은 매출액의 2%에 불과해서 원천적으로 부당 내부 거래를 차단할 만한 효과를 갖지 못했고, 다른 기업들에서도 계속해서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다. 

   

 재벌 정책, 무엇을 고칠 것인가?

 한국 경제에서의 재벌 문제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거시 경제적으로는 재벌 그룹들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게 높다는 점이다. 특히 재벌 중에서도 상위 소수 재벌 그룹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둘째는 ‘모든 것을 다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로 요약되는 사업 구조의 문제다. 셋째는 계열사 간의 출자를 통하여 낮은 주식 소유 비율로도 총수 가족들이 경영권을 확보하는 소유 구조의 문제다. 넷째는 투명성과 책임성이 없는 경영 행태의 문제다.

 

 ο 소유 구조 개선

 * 비업무용, 무수익 자산의 순환 출자 문제

 순환 출자, 즉 계열사 간 서로 주식을 보유하는 출자 구조의 근본적인 문제는 회사들이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는 투자가 사업 목적이 아니라 총수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계열사 주식 보유는 본질적으로 비업무용, 비수익성 자산이다. 회사가 어려워져도 계열사 주식을 매각해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재벌 기업들은 배당 지급이 지극히 적기 때문에 수익성도 은행예금보다 낮다. 계열사 주식 보유를 위한 투자는 기업들의 자본 효율성을 낮출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재벌 그룹들의 계열사가 주식 보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 전체 차원에서의 자본 효율성도 낮아진다.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호텔신라 주식은 비업무용이다. 삼성전자는 호텔신라의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와 호텔의 업무 연관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삼성전자가 이 주식으로 호텔신라에서 받은 배당은 2013년 삼성전자 순이익 17.9조 원의 0.002%인 겨우 3억 원뿐이기 때문에 수익성을 위해서 호텔신라 주식에 투자했다고 말할 근거가 없다.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광고 회사인 제일기획의 주식 2.6%도 마찬가지다. 제일기획은 최근 2년 동안 순이익이 났지만 배당하지 않았다. 제일기획이 순이익 전액을 배당으로 지급했다고 가정해도 삼성전자 순이익의0.008%에 불과하다. 비록 계열사 주식 보유이지만 업무용 목적이거나 투자 목적도 있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자판매, 삼성전자로지텍, 삼성전자서비스, 세메스, 삼성메디슨의 주식은 명백하게 업무용이다. 이들 회사들은 삼성전자가 필요한 부품이나 관련 제품을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회사들이다. 그러나 재벌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여타 비업무용 계열사 주식들은 총수 가족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 이외에는 어떤 경제적 이유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 지주회사 제도

 비업무용 계열사 주식 보유를 금지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을 보유하도록 하는 제도에는 ‘지주회사 제도’, ‘내부 회사 제도’, 그리고 ‘계열사 주식 의무 매수 제도’ 세 가지를 제안한다. 이 중에서 업무용 계열사 주식만을 보유하는 제도로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지주회사 제도다. 지주회사 구조는 지주회사가 자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다시 자회사가 손자회사 주식을 보유하며,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의 연결 구조는 모두 업무 연관성 주식 보유로만 이뤄진다. LG그룹은 2003년 지금의 LS그룹 계열 분리를 시작으로 2005년 GS그룹 계열 분리를 완료함으로써 지주회사 체제를 완성했다. LG그룹의 과거 소유 구조는 지금의 삼성그룹의 소유 구조와 마찬가지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러나 지주회사로 전환한 결과 전혀 다른 구조로 변모했다.

 

 * 내부 회사 제도

 두 번째 대안인 ‘내부 회사 제도’는 계열사 주식을 100% 소유함으로써 계열사를 완전히 내부화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로지텍과 삼성전자판매는 삼성전자가 100% 소유한 삼성전자의 내부 회사들이다.

 

 * 계열사 주식 의무 매수 제도

 세 번째 대안은 ‘계열사 주식 의무 매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는 계열사에 대한 경영권 확보의 목적으로 주식을 소유하는 경우에 반드시 50%+1주의 주식을 보유하게 하는 제도다. 의무 공개 매수 제도’는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인데, 기업을 인수·합병할 경우에 50%+1주 소유를 의무화함으로써 실질적인 소유 지배 관계를 명확하게 만드는 제도다. 한국도 1997년 증권거래법에 의무 공개 매수 제도를 도입했으나 인수·합병 시장을 위축시킨다는 이유로 1년 만에 폐지된 바 있다. 당시의 한국 제도는 ‘2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게 되는 경우 50%+1주의 지분을 보유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호텔신라와 광고 회사인 제일기획을 내부화하지 않는 경우에는 차선의 방안으로 50%+1주를 소유하게 해서 실질적인 소유-지배 관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현행 지주회사 제도는 비상장 자회사 40% 이상, 상장 자회사 2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지주회사를 설립하지 않는 그룹의 경우 계열사가 다른 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소유하려면 50% 이상을 소유하도록 해서 지주회사와 유사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리고 100% 내부화로 소유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한 회사와 같은 구조이기 때문에 동일 회사의 사업부로 간주되어 추가적인 규제가 필요 없을 것이다. 

 

 ο 경영 행태 개선

 * 투명성과 책임성의 문제

 IMD(국제경영개발원)의 세계 경쟁력 연보 중 ‘이사회가 경영진을 효과적으로 감독하는가’라는 평가 항목에서 한국은 60개 조사 대상국가 중 58위다. 그리고 WEF(세계경제포럼)의 세계 경쟁력 보고서의 같은 항목 평가에서 한국은 148개 조사 대상 국가 중 130위다.

 

 * 실효성 없는 이사회

 

 * 손쉽게 도입할 수 있는 집중 투표제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인 사외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 하나는 주주들이 사외 이사 후보를 지명하고 선택할 수 있는 ‘집중 투표제’를 의무화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노동자의 이사회 참여다.

 

 집중 투표제는 여러명의 사외 이사를 선임할 경우에 소수 주주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후보에 복수의 표를 집중적으로 몰아줘서 대주주만이 아니라 소수 주주들도 한 명 정도의 이사를 선임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집중 투표제는 다수의 이사를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는 경우 주주 1인이 특정 후보에게 의결권을 누적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대주주가 일방적으로 모든 이사를 선임하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3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주주는 3명의 후보 각각에 대해서 1표씩 세 번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집중 투표제에서는 3표를 한꺼번에 특정 후보 1명에게 집중적으로 투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3명의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현행 제도에서는 대주주가 51%를 가지고 있으면 3명 모두를 대주주가 원하는 사람으로만 선임하지만, 집중 투표제가 도입되고 49%의 소수 주주들이 합심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1명의 후보에게 집중적으로 3표를 행사하면 그 후보는 147%의 득표를 해서 반드시 선임이 되는 것이다.) 많은 나라들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고 한국에도 도입되어 있다. 하지만 상법에서 회사가 집중 투표제를 자의적으로 배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고, 실제로 대부분의 회사들이 이를 채택하고 있지 않아서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화 되었다. (@한국은 1999년부터 집중 투표제가 상법에 도입되어 있으나 상법 제382조 2항에서 회사가 이를 정관으로 배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실제로 95%의 회사들이 집중 투표제를 배제하고 있어서 이 제도는 법에는 있지만 현실에는 없는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었다.) 

 

 * 노동자의 이사회 참여 

 노동자 경영 참여는 스웨덴, 독일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에서 오랫동안 실시해 온 제도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이나 제도는 나라마다 기업 환경과 사회적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제도가 노동자의 이사회 참여다. 독일과 스웨덴이 실시하고 있는 노동자의 이사회 참여제도는 ‘공동 결정(codetermination)’이라고 한다. 그러나 두 나라는 서로 다른 제도를 가지고 있다. 독일은 이사회가 경영이사회(management board)와 감독이사회(supervisory board)로 분리된 2중 구조로 되어 있고, 노동자의 대표는 감독이사회에만 참여한다. 스웨덴은 한국과 마찬가지인 단일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참여한다. 그리고 스웨덴은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참여율은 68%로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독일은 18%로 OECD 평균수준이며, 두 나라 모두 지난 20년 동안 노조 참여율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스웨덴은 1993년에 노조 참여율이 84%였고, 독일은 1983년에 35%였으나 이후에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한국의 노조 참여율은 10%에 미치지 못하며, OECD 국가 중에서 30위로최하위권이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에 해당하기 때문에 노동자 전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노조의 대표성이 약하다. 또한 전국 단위 노동조합이나 산별노조가 대기업 사업장 노동조합에 대한 통솔력도 매우 약하다. 우리사주조합이 3,000개 이상의 회사에 결성되어 있고, 코스피(KOSPI, 한국 유가증권시장) 상장회사 중에서는 87%, 코스닥(KOSDAQ, 한국 장외 증권시장) 상장회사 중에서는 82%가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하고 있다. 비상장회사도 1,500개가 넘는 회사들이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사주조합이 실제로 주식을 보유한 경우는 전체의 34%로 낮아서 활성화되고 있지 않다. 

 

 자본세 도입 논쟁: 피케티 자본세와 한국의 현실

 ο 선진국과 한국의 차이 

 피케티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두 가지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첫째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소득세의 누진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산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자본세를 도입하는 것이다.

 

 피케티의 제안 중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자본세(capital tax)’ 또는 ‘재산세(wealth tax)’이다. 그는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으면 자본이 실물경제의 성장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경제성장의 성과를 지속적으로 더 많은 가져가서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된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이를 ‘자본 수익률⒭>경제성장률⒢’로 표현하고 있다.

 

 그가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과는 달리 한국을 포함한 모든 신흥 시장 국가들에서 ‘자본 수익률⒭>성장률⒢’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들은 이미 19세기부터 상당한 자본을 축적하고 있었지만, 신흥 시장 국가들이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지난 30, 40년에 불과하다. 피케티는 1820년부터 1913년까지의 기간 동안 세계의 자본 수익률은 5.0%였고, 경제성장률은 1.5%였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이 기간은 조선(朝鮮)이 쇄락의 길로 가고 있던 순조(純祖), 헌종(憲宗), 철종(哲宗), 고종(高宗)의 시기다. 자본 수익률은 논의조차 할 수도 없는 시기다. 피케티가 가장 중심적으로 분석한자신의 나라인 프랑스에서는 1872년에 파리 시민들이 축적한 자본으로 주택을 사고, 자산의 56%를 주식과 채권 등의 금융자산에 투자했다. 한국에서1872년은 미국이 개항을 요구하며 무력으로 강화도를 점령한 신미양요(辛未洋擾)가 발생한 다음 해이고,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척화비(斥和碑)를 세우고 쇄국정책(鎖國政策)을 쓰고 있었다. 피케티가 세계 자본 수익률을 5%로 계산한 기간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지금의 신흥 시장 국가들인 식민지를 수탈해서 자본을 축적하고 금융 투자로 고수익을 누리던 시기다.

 

 한국의 2012년 가계가 보유한 전체 자산 중에서 주택 자산의 비중이 78%이고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2%에 불과하다. 프랑스 파리 시민들은 142년 전인 1872년에 이미 금융자산 투자 비율이 56%였던 것과도 비교되지 않는 낮은 수준이다. 2012년 전체 자산 중에서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 65%, 네덜란드 59%, 일본 54%, 그리고 캐나다 46%로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 또한 금융자산 중에서 고수익-고위험성격의 주식과 채권의 비중은 미국 71%이지만 한국 27%에 불과하다. 200년이 넘는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거대한 자본을 축적했고, 금융자산의 비중이 높은 선진국 대상의 분석 결과로 유추한 정책 대안으로서 피케티의 자본세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이는 한국의 불평등을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큰 오류를 범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ο 피케티 ‘자본세’의 이론적 배경

 피케티가 구한 자본 수익률은 임대 수입, 이익, 배당, 이자 등 자본으로부터의 모든 수입을 총국민순자본으로 나눈 값이다. 한국은 피케티와 같은 방법을 적용할 수 있는 자료가 최근에서야 공개되었기 때문에 2011년과 2012년의 자본 수익률만 구할 수 있는데, 피케티의 방법을 적용할 경우에 한국의 자본 수익률은 2011년 -0.4%이고, 2012년 1.2%였고, 경제성장률은 2011년 3.7%이고, 2012년 2.3%였다. 두 해 모두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크게 낮았다. 지난 35여 년의 주식·채권·예금과 같은 금융 자산의 수익률과 부동산의 가격 상승률을 구하면 한국의 경우에는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1977~2013년 기간 동안 금융자산의 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을 비교해보자. 경제성장률이 실질성장률이기 때문에 모든 금융자산의 수익률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실질 수익률로 구한다. 금융자산 중에서 수익률과 위험이 가장 높은 주식의 실질 수익률을 경제성장률보다 연평균 0.5%포인트 높았다. 회사채의 실질 수익률은 경제성장률보다 오히려 연평균 0.3%포인트 낮았으며, 은행예금 실질이자율은 경제성장률보다 연평균 3.4%포인트 낮았다. 피케티는 자본을 관리하는 노력과 비용의 추정치로 수익률에서 1~2%포인트를 차감하고 이를 순수수익률이라고 하고, 이를 경제성장률과 비교한다. 이를 한국에도 성립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한국의 주식 수익률에 적용하게 되면 1977~2013년 기간에 주식의 실질 수익률은 경제성장률보다 0.5%~1.5% 낮아진다. 회사채와 정기예금의 경우에는 관리 비용을 적용하지 않아도 이미 실질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낮다. 한국의 과거 배당수익률 자료를 구하기 어렵고, 임대 수익도 자료가 없기 때문에 추정이 어렵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 배당수익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1~2% 수준이며, 2012년 한국 재산소득 중에서 임대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임대소득의 비중이 더 작았을 것이기 때문에 임대 수익률을 거의 무시해도 무방할 것이다.

2012년 한국의 가계 순자산 중에서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2%이고, 이 중에서 주식과 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1%와 6%이며 나머지는 예금이다. 이러한 자산 비중이 과거에도 같았을 것으로 가정하고(실제로는 과거에 수익률이 가장 높은 주식의 비율이 더 낮았을 것이기 때문에 과소 추정의 여지는 없다), 배당수익률을 2%로 가정하고 금융자산의 가중 평균 실질 수익률을 구하면 이는 경제성장률보다 2.1~3.1% 낮은 것으로 계산된다.

금융자산과 별도로 주택 보유로부터의 자본 수익률을 구하면 주택 가격 자료가 제공되고 있는 1987~2012년 동안 주택 가격 상승률은 연평균 3.8%이다. 같은 기간에 연평균 물가 상승률이 4.3%였기 때문에 실질 주택 가격 상승률은 –0.6%이며, 같은 기간에 경제성장률은 5.9%이다. 따라서 주택 보유로부터의 수익률도 경제성장률보다 6% 이상 낮았다.

금융자산 수익률과 주택 자산 수익률 둘 다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에 전체 자산의 수익률은 당연히 경제성장률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필자가 추산한 자본 수익률은 재산세·소득세와 같은 세금을 차감하지 않았다. 피케티와 같이 세금을 반영하면 한국의 자본 수익률은 경제성장률보다 더욱 낮아진다. 또한 자산 중에서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갖는 주식 투자가 한국에서 활성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추정을 한다고 해도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더 낮은 차이는 오히려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피케티가 선진국들을 분석한 결과인 ‘자본 수익률(r)>경제성장률(g)’에 근거해서 주장하고 있는 자본세 또는 재산세를 한국과 같은 신흥 시장 국가에 일반화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따라서 피케티가 자본 수익률이 성장률보다 높다는 근거로 주장하는 자본세에 대한 논의를 한국에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말은 한국에서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낮기 때문에 자본세 도입이 의미가 없거나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말은 아니다. 즉 ‘자본 수익률⒭>경제성장률⒢’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자본세 도입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때 ‘자본 수익률⒭>경제성장률⒢’이라는 것은 경제성장률, 즉 생산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자본수익이 증가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자본 수익의 일정 부분을 세금으로 환수하여 재분배하더라도 성장이 지속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 속도에 비해 자본 수익률이 낮을 경우에 자본세를 부과하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먼저 상정할 수 있는 것은 투자율이 낮아지는 것으로 일종의 ‘자본 파업’이다. 선진국의 경우 이미 경제성장률보다 자본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자본이 파업을 해도’ 그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다. 한국과 같은 신흥국에서의 ‘자본 파업’은 투자 저하를 의미하여 성장률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선진국보다 클 것이다. 그 파급효과의 정도와 범위를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다.

 

 ο 자본세보다 더 급한 것들

 소득 불평등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자본세로 정부 수입을 늘려서 재분배하는 정책보다는 적극적인 노동정책이나 임금정책이 더 시급하다. 한국의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 이유는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기업들이 임금으로 분배하는 몫을 줄여온 기업 행태의 문제와, 임금도 낮고 고용도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자영업 노동자의 비중이 높은 노동 구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따라서 한국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초과 내부유보세’와 ‘업무 존속기간을 기준한 정규직 전환제’와 같은 정책이 우선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피케티가 제안한 자본세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전 세계 모든 나라, 또는 최소한 OECD 회원국에 준하는 경제 수준을 가진 나라들이 자본세를 동시에 함께 도입해야 한다. 피케티는 자본세 논의를 시작하는 부분에서 “A global tax on capital is a utopian idea(글로벌 자본세는 유토피아적인 아이디어다).”라며 스스로 비현실적인 것임을 먼저 밝히고, “It is hard to imagine the nations of the world agreeing on any such thing anytime soon(가까운 미래에 자본세와 유사한 제도 도입에 동의할 나라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라고 말하고 있다.

 

 토빈세(tobin’s tax)는 외환거래에 대해서 0.1~1%의 세금을 부과해서국경을넘어선 단기 투기 자본의 이동을 제한하자는 것이며,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토빈(James Tobin)이 1971년 처음 제안했다. 토빈세는 피케티가 제안하는 1~2%의 자본세보다 세율이 훨씬 낮다. 토빈세는 증권거래세처럼 시장에서거래될 때 부과하기 때문에 절차가 매우 간단하고, 자본세처럼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금융자산 정보를 구축하고 교환하는 복잡한 정보시스템을 구축할 필요도 없다. 토빈세는 자본세보다 절차도 훨씬 간단하고, 목적도 훨씬 더 간명하게 분명하고, 세율도 훨씬 더 낮은 합리적인 제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빈세가 처음 제안된 지 40년 이상이 지났지만 실현되지 않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잠시 동안 토빈세가 다시 관심을 끌었지만 가까운 미래에 도입될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이룰 것인가?

 지금의 일그러진 모습을 한 자본주의를 고쳐 쓰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고쳐서 만들려고 하는 더 나은 자본주의가 추구할 가치와 목표가 무엇인가를 농의해야 한다. 둘째, 더 나은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에 대해서 국민들의 동의나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셋째, 새로운 자본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정책, 즉 수단과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ο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은 없다

 수입된 논쟁이 벌어졌던 사례로 재벌 기업과 사회적 대타협에 관한 이슈가 있다. 스웨덴의 ‘노사 대타협’ 경험을 한국에 적용하는 것으로, 한국식 대타협의 대가로 재벌 기업의 현실을 인정해주자는 주장이다. 그 내용은 재벌 총수들의 재벌 그룹에 대한 실질적인지배력과 경영권을 인정해주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인수·합병 위협으로부터 방어해주는 대신에, 재벌들은 고용을 늘리고 복지확대에 적극 협력한다는 재벌-정부-노동조합 간에 계급 타협 또는 국민적 대타협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웨덴은 한국과 비슷하게 자본시장 개방이 이뤄져서, 이미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굴지의 스웨덴 기업들이 속속 외국인 소유로 넘어가는 한편 스웨덴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 규모도 매우 큰 상황이며, 스웨덴의 노사 대타협은 지금과는 경제환경이 전혀 다른 1930년대와 1950년대에 이뤄진 것으로써 스웨덴에서도 1980년대 이후에 해체되어 왔다.’ 발전 과정이 판이하게 다르고, 자본시장을 둘러싼 환경도 다르며, 재벌문제의 기원이나 이슈도 다른 한국에서 50년이 훨씬 지난 스웨덴 방식의 대타협 경험을 적용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스웨덴에서의 대타협은 먼저 대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강력한 교섭력을 가진 전국적 노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에 대타협 논쟁이 진행되었던 2000년대 초 한국의 노조 가입률은 11%에 불과했고 OECD 회원국 중에서 두 번째로 낮았다. 같은 시기에 스웨덴의 노조 가입률은 79%로 두 번째로 높았으나 대타협은 이미 해체되고 있었다. (@스웨덴의 노조 가입률은 이후에 급속하게 줄어들어서 2012년 67.5%이다. 그러나 스웨덴의 노조 가입률은 OECD 국가에서 아직도 높은 편에 속한다. 한국의 노조 가입률은 약간 낮아진 9.9%로 OECD 국가 중에서 낮은 편에 속한다.) 또한 한국에서 노동조합의 교섭력은 대부분 단위 사업장 노조가 갖고 있다. 반면에 대타협의 주체가 되어야 할 전국적 노동조합은 극히 일부의 노동자들만이 참여하고 있어서 실질적인 교섭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단위 사업장 노조에 대한 통솔력도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 물론 노사정위원회에 전국적 노동조합이 참여하고 있지만, 노동문제 해결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노사정위원회의 결정이 구속력도 없으며, 노동자·사용자·정부 어느 한편도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기업 차원에서도 보자면 삼성그룹은 ‘무노조(無勞組) 주의’를 경영 원칙으로 할 만큼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권리 주장에 적대적이다. 현대차그룹을 제외하고 다른 대부분의 재벌 기업의 경우에는 노동조합이 명목적으로만 존재하고 있어서 실질적인 교섭력을 가진 노조를 찾기 어렵다. 

 

 노사 관계는 그렇다 치고 대타협이 현실성 없는 더욱 어려운 이유는 노·노 관계 때문이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임금노동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동일 사업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존재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ο 미국은 어떻게 했을까?

 * 평등과 불평등의 역사

 선진국의 역사적 경험에서 배울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는 오히려‘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다. 

 

 지금과 같은 극명한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의 모순을 드러낸 자본주의의 교정 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하여 먼저 자본주의의 선도자격인 미국이 어떻게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미국의 경험을 살펴보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한국과 미국 간의 자본주의 발전 과정과 소득 불평등 발생 과정의 차이를 비교함으로써 한국의 현실에 적합한 자본주의 고쳐쓰기를 모색하는 것이다. 둘째는 오늘날과 같은 불평등 구조가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결함 때문인지 아니면 자본주의를 운영하는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이지만, (@OECD 회원국 중에서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의 순서는 칠레, 멕시코, 터키, 그리고 미국이다. 앞의 세 나라는 모두 신흥 시장 국가이며, 선진국 중에서는 미국이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다. 2009년 가처분 소득의 지니계수는 칠레 0.508, 멕시코0.475, 터키 0.411, 미국 0.378이다. OECD 통계이며, 멕시코는 2008년 수치다.) 과거에는 이 정도로 불평등이 심한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에서 불평등이 확대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1983년이나 1984년까지도(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조금씩 악화되기 시작했지만) 과연 당시 통계가 이전의 추세로부터 어느 정도로 이탈한 조짐을 보이는지를 둘러싸고 학문적인 논쟁이 있었다.’ 즉 이 말은 당시만 해도 소득 불평등 악화 추세가 장기적으로 이어져서 오늘날 같이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질 것으로 학자들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불평등 현상이 구조적인 것이 아니라 단기에 그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미국의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적이 있었으며, 예를 들어20세기 초와 1940년대 초에도 지금과 비슷하게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매우 심했다. 소득 계층 상위 10%가 전체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47.6%, 2010년48%였는데,1930년에는 43.8%이고, 1940년에는 45.3%였다. 그리고 소득 계층 상위 1%가 전체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21.5%,2010년19.8%였는데, 1930년에는 17.2%이고, 1940년에는 16.5%였다. 미국의 소득 불평등이 눈에 띠게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1940년대 초였다. 이때 불과 3~4년 사이에 소득 불평등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소득 계층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40년 45.3%에서 1944년 32.5%로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소득 계층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40년 16.5%에서 1944년 11.3%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미국의 소득 계층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40년 45.3%였으나 1941년 41.9%, 1942년 36.1%, 1943년 33.7%, 1944년 32.5%로 급격하게 하락했다. 소득 계층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40년 16.5%, 1941년 15.8%, 1942년 13.4%, 1943년 12.3%, 1944년 11.3%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미국은 이후에 1970년대 말까지 35년 이상 기간 동안 지금보다 훨씬 더 평등한 소득분배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했고 그 결과 두꺼운 중산층이 형성되었다. 소득 불평등이 다시 악화되기 직전인 1970년대까지 소득 계층 상위 10%가 전체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2~35%의 범위에서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고, 특히 소득 계층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1975년에는 20세기 100년의 기간 중에 가장 낮은 8.9%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지극히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던 소득분배가 1980년대 들어서서 불과 몇 년 사이에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1979년 34.2%였던 소득 계층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6년 40.6%로 급격하게 증가했고, 소득 계층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79년 10.0%에서 1986년 15.9%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1980년대 초는 미국 정부의 정책에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다. 1981년에 들어선 공화당의 레이건 정부는 1940년대 이래 시장의 조정자(調停者) 역할을 해 오던 정부의 역할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축소하는 반면에 시장의 역할을 최대한 확대하여 시장 스스로 알아서 작동하도록 하는 시장 근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이 시작된 것이다. 레이건 정부 이후 12년을 집권한 공화당 정부가 줄기차게 추진한 규제 완화, 고소득 계층에 대한 감세, 정부 서비스의 민영화, 노조 무력화, 금융 자유화 등의 정책들이 미국의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킨 직간접적인 원인이었다.

 

 * 정책적 노력의 결과

 미국은 1940년대 초반에 어ᄄᇂ게 불평등 구조를 교정하고 이를 35년 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역시 미국 정부의 정책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미국의 ‘중산층 사회는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행정부 정책의 일환인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전시 임금통제를 통해 몇 년이 채 안 되는 기간 안에 만들어졌다. 전쟁 기간 중에 정부의 임금통제권을 활용하여 고소득 계층의 임금 인상을 승인하지 않는 한편 저소득 계층의 최저 임금 인상 정책을 폈다. 또한 전시 물자 생산에 필요한 저숙련 노동자의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소득 격차 축소에 한몫을 했다. 이와 같은 정책덕분에 1940년 초부터 극단적 저임금과 극단적 고임금 모두가 줄어 소득분포가 완만해진 것과 더불어 일자리도 늘게 됨으로써 미국의 소득분배가 평등해진 것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국가전시노동위원회(National War Labor Board)를 1942년 설치했고 전쟁이 종료된 1945년 해체했다, 국가전시노동위원회의 주요 기능은 물가통제법(Price Control Arc)에 근거해서 모든 임금의 변동을 승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임금통제와 최저 임금 이상은 고소득 계층의 임금 인상에 제동을 걸었을 뿐 아니라 저임금의 수준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시장의 힘은 불평등을 만들어낸 요인 중 하나일 뿐 유일한 요인이 아니며,’ 오히려 시장을 조정하고 실패를 보완하는 역할을 포기한 정부가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데 기여한 것이다. 시장이 만들어낸 결과를 공평하고 평등하게 배분하는 기능은 경쟁의 불평등한 속성을 교정하기 위해서 만든 인위적인 제도에 의해서 가능하며, 이는 시장이 아니라 정부가 해내야 할 역할인 것이다.

 

 * 제 발등 찍은 유권자들

 미국의 공화당은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한 1981년부터 금융 위기가 발생한 2008년까지 28년이란 기간 중 20년을 집권했다. (@1981년 이후 미국의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공화당, 1981~1989년), 조지 부시(George H. W. Bush, 공화당, 1989~1993년), 빌 클린턴(Bill Clinton, 민주당 1993~2001년), 조지 부시 2세(George Walker Bush, 공화당, 2001~2009년)이다. 민주당인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한 것은 공화당이 세 번 연속 12년 동안 집권한 이후였다. 미국의 대통령 임기는 4년이며 한 번만 연임이 허용된다.) 특히 1981~1993년의 12년 동안 세 번 연속 집권한 시기에 소득 불평등이 크게 악화되었다. 공화당 집권 기간 동안 불평등이 더 심해졌는데도 불구하고 공화당이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미국의 백인 노동자들이 보수화되었다는 견해, 유권자들이 경제적 이슈보다는 ‘도덕적 가치’를 정당 선택에서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견해, 낙태와 같은 종교적인 이슈가 경제적 이슈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견해 등이 있다.

 

 (@‘근시안적’ 투표를 했다는 것은 집권 기간 전체 동안의 경제 상황과 소득 변화가 아니라 선거가 치러지는 해의 경제 여건에만 초점을 두는 비합리적인 유권자의 행태를 말한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11월 첫 화요일에 치러지기 때문에 선거가 있는 해의 경제 성과가 투표에 반영된다.)

 

 ο 한국의 정책 역량은 충분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37년 만에 여야의 정권 교체가 이뤄진 것이었다.

 

 당시 한국에 달러를 대출해준 IMF와 세계은행(IBRD)은 긴급 구제 금융의 대가로 신정부에게 개혁 정책을 주문했으며, 소위 유명한 양해각서(MOU)를 작성했다. 하지만 IMF나 세계은행의 정책 전문가들도 원론적인 수준 외에는 한국의 현실에 정통하지 못하였으며, 때로는 정책 오류를 남발하기도 했다. 이 팀은 인수위의 소개로 IMF와 세계은행의 정책 전문가들을 만났고, 그들은 한국 정부에 요구할 양해각서에 담을 내용을 오히려 필자가 총괄하던 팀의 전문가들에게 자주 자문을 구할 정도였다. 정책 팀은 어차피 한국의 개혁에 필요한 정책 내용들을 국제기구의 양해각서에 담아 우회적으로 추진력을 갖고자 했다.

 

 필자는 이 경험에서 한국의 문제는 한국 사람이 가장 잘 알고, 그 해결책도 한국 사람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로 가는 길 

 ο 평등과 불평등의 하모니

 미국에서 20세기 초의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재앙이었던 대공황을 해결한 것도 정부가 정책으로 시장에 개입한 결과였다. 미국의 극심하게 불평등했던 구조를 1940년대 초에 보다 평등한 구조로 바꾸고 두터운 중산층을 만들어낸 것도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들이 성공을 거둔 결과였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서서 20세기 초반처럼 다시 극심하게 불평등한 구조로 바뀐 것도 시장 근본주의적 정책들이 초래한 결과였다. 유럽이 지난 3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불평등이 심해진 것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실패한 시장 근본주의 정책들을 추진한 결과다. 스웨덴이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복지국가를 이뤄낸 것도 정책들의 결과였다. 반면에 복지 제도가 일반화되면서 복지 수혜가 저소득 계층과 빈곤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누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2세대 문제’ (@복지 제도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상대적으로 저소득 계층과 빈곤층을 돕기 위한 목적이었고,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 여건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 아니면 이를 이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단 복지 제도가 일반화되면, 다음 세대들은 복지 수혜를 경제적 필요에 의해서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경향이 발생하는 것을 ‘2세대 문제(Second Generation Problem)’라고 한다.) 때문에 발생한 과도한 재정부담을 해결하지 못한 것도 정책의 실패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시장 실패와 자본주의 실패는 정책의 실패이며 정부의 실패다. 더 넓게는 시장과 자본주의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정치의 실패이며 민주주의의 실패다. 시장이 잘못되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고, 정책이 잘못되면 정책을 다시 고치면 되는 것이다.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평등 원리로 작동하지만, 자본주의와 시장은 승자가 더 많은 몫을 가져가는 불평등 원리로 작동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은 ‘평등 원리’와 ‘불평등 원리’의 결합과 같은 것이다.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의 원리가 결합된 것이다. ‘평등’과 ‘평등’의 결합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역사적인 실험인 공산주의(Communism)는 민주주의와 결합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유럽의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에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었다. ‘평등’ 이외에도 중요한 또 다른 가치인 ‘자유’를 ‘평등’과 함께 추구한 것이 사회민주주의였다. 한국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길게 봐서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고, 공식적으로는 1995년에 사회주의 방식인 계획경제를 끝내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전환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지 30년이 채 되지 않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시행한 것은 길게는 40년, 짧게는 20년이 지났다. 따라서 한국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결합한 것은 지난 30년에 불과하다.

 

 ο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한국의 불평등 구조가 악화되고 있는 것은 불평등을 완화할 정책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를 실천할 정치가 실종되었기 때문이고, 심지어는 오히려 그 반대의 정책들에 의해 심각하게 경사되었기 때문이다.

 

 ο 새누리민주당과 새정치도로민주당

 1987년 민주화 이후 두 당은 선거 때마다 당명을 바꾸었는데 새누리당은 당명을 다섯 번 바꾸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이합집산이 매우 복잡해서 정확하게 셀 수가 없지만 대충 여덟 번 바꾸었다. (@양당의 당명 변경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새누리당은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 자민련→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변해 왔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신민당→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민주당→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으로 변해왔다.) 민주화 이후 지난 27년 동안 새누리당은 약 5년에 한 번,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약 3년 반 만에 한 번씩 당의 간판을 바꿔 달았다.  

 

 ο 강북 우파와 기억상실 투표

 정치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발견된다. 첫째는 한국에서 아직은 경제적 계층에 따른 투표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고, 둘째는 정권을 가진 기존 여당에 대한 평가가 선거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몇 번의 총선과 대선에서 저소득 계층의 보수적인 새누리당과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투표율이 높았고, 오히려 고소득 계층의 새누리당과 한나라당에 대한 투표율이 더 낮은 현상을 보였다. (@2012년 대선에서 저소득 계층은 박근혜 후보에 56.3%, 문재인 후보에 34.6%를 투표한 반면에 고소득 계층은 박근혜 후보에 49.5%, 문재인 후보에 41.9%를 투표했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에 대한 투표율의 차이가 저소득 계층에서 훨씬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재산과 주택 소유와 같은 자산으로 구분한 계층이 경제적 이슈에 대한 유권자의 진보-보수의 성향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러한 성향이 선거에서 정당 지지와 후보 선택에는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약간 다른 결과도 있다. 소득이나 직업과 같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분류한 유권자의 계층은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유권자 자신의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계층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혹은 전망을 하는 유권자들과 전월세와 같은 불안정한 거주 여건을 가진 유권자일수록 선거에서 기권하는 경향도 있다.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에서 발견된 두 번째 문제는 집권당의 국정 운영 실적에 대한 평가가 선거에 항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집권당이 국정운영을 잘했으면 다시 집권당의 후보를 지지하고, 반대로 잘못했으면 야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것을 두고 정치학자들은 ‘회고적 투표’라고 한다. 

 

 18대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자신의 이념이나 정당에 대한 지지보다는 대선 후보자들의 개인에 대한 (호감에 의한) 평가가 더 큰 영향’을 미쳤고, ‘후보자 개인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호감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 유권자들은 자신이 속한 계층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닌 ‘계급 배반 투표’를 하고, 자신의 계층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 ‘묻지 마’ 투표를 하거나 아니면 기권을 했다. 또한 집권 정당의 국정 운영 성과나 정당의 이념에 대해서는 ‘기억상실 투표’를 했고, 구체적인 정책과 후보자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주관적인 인식에 근거한 정책 판단과 호감도로 투표를 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ο 민주주의가 희망이다

 미국과 유럽의 자본주의 정치사에서 분배·복지와 관련된 제도들을 도입한 것은 ‘과격한 좌파들이 아니라 비스마르크(Bismarck), 처칠(Churchill), 루스벨트(Roosevelt)와 같은 계몽된 귀족 계층의 보수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서 중산층을 보호하는 사회복지 정책을 채택했던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얼마만큼을 분배할 것이냐, 임금격차를 얼마로 할 것이냐, 비정규직을 어떻게 정규직으로 바꿀 것이냐는 민주주의가 결정할 문제이지 시장에 맡길 문제가 아니다.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만들어내는 것은 시장이아니라 시장을 운영하는 정부와 정치, 그리고 민주주의가 해내야 할 몫인 것이다.

 

 자본이란 돈이 돈을 버는 세포분열적인 자기 복제성이 있다. 하지만 노동은 복제가 불가능하며 유일한 확장 수단이 생산성, 즉 역량을 늘리는 것이다. 자본은 이동성이 높지만 노동은 그렇지 못하다. 자본은 언제든지 더 나은 투자를 찾아서 국경을 넘어서 순간적으로 이동하지만, 노동은 일단 한 번 자리를 잡으면 대안적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이러한 노동과 자본의 본질적인 속성의 차이로 인해서 노동과 자본의 이해가 충돌될 때는 노동이 자본보다 항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이론 정치학자인 로버트 달(Robert Dahl)은 ‘어떤 법체계도 재산권을 자연권으로 주장하는 것을 완전히 인정한 적이 없다.’ 그리고 ‘재산권은 단일한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권리와 특권, 의무와 책임의 묶음’이라고 했다.

 

 

 

+. 후기 - 결국, 사람과 돈의 문제다 

 세상일에서 사람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다. 이는 제아무리 돈이 많아도 해결할 수 없으며, 진정한 사람은 돈으로 얻을 수도 없다. 반면 세상일에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쉬운 문제다. 이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고, 고민과 갈등도 필요도 없다.

 

 경제에서 사람은 노동이고 돈은 자본이다. 경제는 노동과 자본이 결합해서 생산을 하고 성장을 한다. 그러나 노동과 자본이 함께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를 어ᄄᇂ게 나눌 것인가로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노동과 자본이 분재의 문제로 대립하고, 자본이 노동을 지배하고 억압해 온 것이 자본주의의 역사다.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본이 정의로워야 한다. 자본이 만들어내는 문제는 자본을 가진 사람이 만드는 것이지 자본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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