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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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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새로운 상상력과 실험정신으로 주목받아온 작가 박민규의 독특한 연애소설『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0대 성장소설의 형식을 빌려, 못생긴 여자와 그녀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가 스스로 '80년대 빈티지 신파'라고 말할 만큼, 자본주의가 시작된 80년대 중반의 서울을 무대로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풀어놓는다. 1999년의 겨울, 34세의 성공한 작가인 '나'는 언제나처럼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듣고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 레코드를 선물했던, 잊지 못할 단 한 명의 여인을 추억한다. 스무 살이었던 1986년, 온 나라가 빠른 경제성장을 타고 부를 향해 미친듯이 나아가던 그 시절. '나'는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정신적 스승이 되어주었던 요한과, 사람들이 쳐다보기 싫어할 정도로 못생긴 그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지니고 있는 '나'와 그녀는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그녀는 외모로 인한 상처를 안고 그를 떠난다. 세월이 흐르고 소설가로 성공한 '나'는 수소문 끝에 그녀가 독일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데…. ▶ 이 소설만을 위한 BGM CD를 함께 제공합니다. CD는 이 소설에 대한 헌정 음반으로, 머쉬룸 밴드의 음악이 소설읽기의 색다른 경험을 선사합니다.
저자
박민규
출판
예담
출판일
2009.07.20

 

라스 메니나스(Las Meninas)

팔이 부러진 허수아비 같은 표지판

 

 올드 랭 사인 :: 1788년에 작곡되었다. 곡명은 ‘그리운 옛날’이라는 뜻이며, 한국에서는 ‘석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이 노래는 전세계적으로 이별할 때 불리고 있으나 내용은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어릴 때 함께 자란 친구를 잊어서는 안 돼. 어린시절에는 함께 데이지를 꺾고 시냇물에서 놀았지. 그후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 다시 만났네. 자아, 한 잔 하세.” 하면서 다시 만 날 수 있게 되기를 빌며 헤어질 때 부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1900년을 전후하여 애국가를 이 곡조를 따서 부르기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올드랭사인 [Auld Lang Syn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미처 발을 내리기 전에 버스가 출발했으므로, 잠시 균형을 잡으며 땅이 움직인 듯한 기분에 휩싸였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지구는 돌고 있었고 올 거야, 있을 거야 ─ 보이지 않아도 자신의 궤도를 순항하던 그날의 달처럼,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볼 수 있었다.

 

그런 말을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소리를 서로가 속삭인 기분이었다.

 

조금씩, 그녀의 얼굴에서 입김이 피어올랐다. 주변의 어둠 때문에 그것은 선명했고, 주위의 고요 때문에 눈이 쌓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헐벗은 채 드문, 서 있던 나무들... 주변의 논과 불 꺼진 공장들, 무엇 하나 이름을 알 수 없던 개천과 언덕들... 겨울은 많은 것들의 이름을 뺏어간다고 눈을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손이 전해주던 체온과 기분,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감정... 이를테면 그런 것들이 얼음 속을 흐르는 물처럼 손을 타고 흘러드는 느낌이었다.

 

겨울이 흘리는 눈물처럼, 혹은 그녀가 흘린 눈물처럼 눈은 그녀의 뺨 위에서 말없이 녹고, 사라져갔다.

 

스무 살은... 그런 나이였다.

 

어쩌면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잎과 열매, 색색의 꽃과 같은 것을 모두 벗어버린 <그녀>를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외피를 벗으면 이름을 알기 힘든 나무처럼, 그 순간 그녀가 아득히 멀고 낯설게만 느껴졌다.

 

서로의 손을 잡지 못하는 나무들이 서로의 손을 포기한 채 불확실한 어둠 속에서 떨고 있었다. 서로의 손을 놓지 못하는 인간들은, 그래서 서로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수명을 다해가는 은하처럼 외롭고 쓸쓸한 빛이었다.

 

칠이 벗겨진 산토리니의 울타리에는 드문드문 전구가 나간 크리스마스 조명이 반딧불처럼 붙어 있었다. 죽어 빛을 잃은 반딧불도, 살아 반짝이는 반딧불도 그 모두가 우리에겐 축복이었다.

 

그녀의 가슴이 뛰던 소리, 그 진동을 잊을 수 없다. 내 품속에, 아니 내 몸속에 그녀의 심장이 들어와 박힌 듯했다.

 

침묵 속의 식사는 얼어붙은 눈처럼 딱딱한 느낌이었다.

 

스무 살의 남자는 AM 라디오와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아무리 채널을 돌리고 고정해도 여자라는 이름의 전파를 잡을 수 없다. 잡지, 못한다... 심야의 FM처럼 선명한 눈물 앞에서 나는 전원이 꺼진 라디오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젊음은 결국 단파 라디오와 같은 것임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모든 연애의 90%는 이해가 아닌 오해란 사실을... 무렵의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스무 살이었고, 좋든 싫든 연애의 대부분을 운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사랑을 이룬 이들은 어쨌든 서로를 좋은 쪽으로 이해한 사람들이라고, 스무 살의 나는 생각했었다. 결국 내게 주어진 행운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서로의 이해가, 오해였음을 깨닫지 않아도 좋았다는 것... 해서 고스란히 서로가 이해한 서로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었다는 것...

 

말라가는 그녀의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마르고 따뜻해질 때까지, 언제까지고 나는 그녀의 고통을 흡수해 주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고통의 전부를 가져오고도 싶었다. 갈수록 마음은 젖어갔지만, 어쩐지 그것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란 생각도 들었다. 내가 견디는 쪽이 어쨌거나 훨씬 이익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사랑해도 결국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일 뿐이니까. 그것이 자신의 고통이 되기 전까지는, 어떤 인간도 타인의 고통에 해를 입지 않는다.

 

작은 빙산처럼 남아 있던 식사를 그녀는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더디게, 한 척의 쇄빙선처럼 접시를 가르던 그녀의 스푼도... 조금씩 드러나던 접시의 흰 바닥도, 무거운 닻처럼 피클을 집던 그녀의 포크도... 모든 것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던 12월의 밤이었다.

 

단 둘이란 사실이, 이상할 정도의 평안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녀가 웃었다. 다보탑은 왜 없는 거지? 말은 하면서도 나는 지중해의 작은 섬에 그 모두를 옮겨다 준 주인에게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녀가 웃었으니까.

 

대답 대신 그녀는 창밖의 어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말없이 한참을 스며들듯 바라보았다.

 

눈은 모든 것을 지우고, 혹은 썩어 사라질 모든 것을 보존시키고... 잠시나마, 그래서 고스란히 흩어진 모두의 가슴속에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눈은 그쳤다. 파헤친다 한들 낙엽의 전부를 되찾지 못하듯이, 그 누구도 기억의 전부를 되찾지는 못한다. 지나간 시절 속에, 혹은 저 눈 속에 나 자신의 일부가 묻혀 있는 기분이었다. 다시는 찾지 못할 나 자신, 그러나 언젠가는 떠올리게 될 나 자신... 그리고 다시는 하나로 결합되지 못할 과거의 자신을 생각하며 나는 커피를 마셨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나는 <스무 살>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눈이 그쳤군,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아무도 나를 발견 못하고... 나 역시 남을 볼 수 없는 삶... 서로가 보이지도, 보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

 

언젠가 함께 저곳에 가보자구. 가능성이 전혀 없는 얘기를 잘도, 진지하게 그녀에게 건넸었다. 융프라우를요? 다보탑으로부터 그런 얘길 건네들은 석가탑처럼, 그녀는 표정 없이 커피 잔의 손잡이를 매만지기만 했다. 분명 우리보다는 탑들이 알프스에 오를 확률이 높을 정도로 우리는 가난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구도 그것을 농담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스무 살이었고, 이끼가 낀 탑보다는 확실히 푸른 인생의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아무렇지 않아, 힘을 준 얼굴이 마치 굳은 찰흙처럼 변해 있었지.

 

다친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누워 나는 끝없이 스스로의 어딘가를 핥고 또 핥았어.

 

뭔가 가시 같은 게 갑자기 발바닥을 찌르는 기분이었지. 눈에 보이진 않아도 분명 그런 가시가 발바닥을... 어떤 건지 알겠어?  

알아요.   

하고 그녀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답했다. 이상하게 그 순간 가느다란, 그러나 단단한 가시 하나가 내 몸속에 남아 있는 기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루돌프의 코>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놀려대고 웃어도 산타는 오지 않는다.

 

몹시 부끄러운 기억을 고백한 얼굴 앞에서 두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파반느 :: 바스당스(basse danse)에서 파생한 2박자와 4박자로 된 위엄있는 무곡으로 이와 대조적인 속도가 빠른 다른 무곡, 예를 들면 살타렐로나 가야르드로 이어져 나가는 경우가 많다. 실제 무도로서는 16세기 후반에 쇠퇴하기 시작했으나 영국의 버지널 음악이나 독일의 관현악모음곡에서 양식화되어 순음악적인 무곡으로 그후도 계속해서 연주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다시 부활하였으며 생상스, 라벨, 랠프 본윌리엄스 등이 명곡을 남겼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은 유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파반 [pavan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개봉된 나의 스무 살이 보이지 않는 운명의 턴테이블 위에서 막 회전을 시작하던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 한 폭의 그림을 간직한 채 나는 시간과... 어둠과...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좀더 많은 표현을 알았더라면... 모든 순간의 의미와, 다가올 일들을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나의 이십대는 전혀 다른 음(音)들을 쏟아내며 또 다른 인생의 테이블을 돌고 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순간과... 그런, 운명의 마디 수를 다 채운

 

 벨라스케스 :: 스페인의 화가, 세비야에서 출생, 마드리드에서 사망. 부친은 포르투갈계 귀족. 벨라스케스는 모친의 성임. 출생지에서 후의 장인 프란시스코 파체코에게 배우고, 카리밧지오의 명암법과 리얼리즘을 출발점으로 하였다. (『세비야의 물장수』 1620년경, 런던 웰링턴 미술관). 24세에 국왕 펠리페 4세 (Felipe IV, 재위 1621~1665)의 궁정화가가 되어, 생애를 궁정 내에서 보낸다. 루벤스와 친교가 있었고, 제1회 이탈리아 여행(1629~1630) 이후 화면은 더 밝아지며 [『브레다 개성(開城): 창(槍)』 (1634~1635), 『황태자 발타자르 카를로스 기마대』 (1635, 다 같이 프라도 미술관) 등], 제2회 이탈리아 여행(1649~1651)에서 인상파를 선구하는 색채분할묘법을 완성했다. (『교황 인노첸티우스 10세 상』 1650, 로마, 토리아 판피리 미술관. 『빌라 메디치의 뜰: 낮, 저녁』 1650 ? 프라도). 만년에는 그 필촉을 구사해서, 베네치아 파에서 시작되는 공기원근법을 완성했다. 대표작은 『라스 메니나스(시녀들)』 (1656, 프라도미술관), 『마르가리타 왕녀』 (1659, 빈 미술사미술관) 등. 17세기 스페인 회화의 최대의 거장이며 그 완성된 구도, 탁월한 데생, 지적인 색채로 그려진 화면은 스페인의 자연주의적 바로크 사이에서 우아함을 대표한다. 또한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이전의 스페인 회화 유일의 나체화 (『거울을 보는 비너스』 1650년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로 근대적인 나부를 선구(先驅)하고 있고, 궁정의 노리개감이었던 신체장애자들의 일련의 초상화 (『비리에카스의 소년』 1637년경, 『난쟁이 엘 프리모』 1644, 『어릿광대 세바스찬 데 모라』 1644년경, 이상 프라도 미술관)를 그리고 『개구제(個救濟)의 미학』을 완성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lazquez, Diego Rodriguez de Silva y Velázquez]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군데군데 물감이 잔뜩 묻은 느낌의 지친 목소리였다.

 

이상한 밤이었다. 또 모든 것이 불분명한 밤이었다. 서로의 본심을 묻지도... 정리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쏟아진 첫눈 역시 어딘가 모르게 서툰 느낌이었고, 올 때의 느낌에 비해 돌아가는 길은 터무니없이 짧은 것이었다. 눈길을 걸으며, 그러나 스스로는 많·은· 것·을· 고백했다 믿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전달한 기분이었다. 설령 그것이 오해라 할지라도, 그 오해를 믿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벌써부터 캐럴을 틀고 말이야... 올드 랭 사인조차 두 번이나 들었지 뭐야.

그만큼... 아쉬워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쉬우니까... 곧... 이렇게 가버리니까.

왜 미리 아쉬워하지? 그때 가서 해도 되잖아?

어쩌면 그 순간 아쉬움이 사라지기 때문이겠죠. 이제 더는 어쩔 수 없으니까. 아쉬워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는 거니까...

 

어쨌거나... 1986년이 가고 있어요. 그리고 다시는...

안 오겠지.

 

다만 어린아이와 같은 그녀... 어릴 때부터의... 그녀, 태어나기도 전의 그녀... 앞으로 늙어갈 그녀... 그런 그녀의 존재 하나하나가 갑자기 내린 눈처럼 그 자리에 쌓여 있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혹은 그녀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는 울지 않았고, 잠시 울음을 참았을 뿐이었다.

 

나를 향해... 혹은 내 어깨 너머의 말없는 어둠을 향해 힘없이 속삭였다.

안아줘요.

주변의 나무처럼 차가운 그녀의 몸을 나는 힘껏 껴안았다. 그녀를... 아니... 그 속의 그녀와, 그 속의 그녀... 또 그 속의 나이테처럼 굳어 있는 모든 그녀들을 나는 안아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 순간을 위해... 나는 평생을 살아온 기분이었다.

 

 협궤열차 :: 일반적으로 건설투자비·운행비·보수비 등이 적게 들지만, 열차의 운행속도가 낮고, 안전도에 있어서도 광궤철도(廣軌鐵道)만 못하다. 이 철도는 교통량이 적은 지방철도로 사용되었으나, 자동차 교통의 발달에 의해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 한국에는 수원과 인천의 송도역을 잇는 수인선(水仁線)과 수원 여주 간을 있는 수려선이 있었다. 수인선은 경제성이 낮아져 1995년 12월 31일 영업이 중단되었으며, 수려선은 1972년 3월 31일 폐선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협궤철도 [narrow gage railway, 狹軌鐵道]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기울어진 가등의 불빛 아래엔 그날의 가장 눈부신 눈〔雪〕이 새하얀 섬처럼 어둠 위에 떠 있었다.

 

땅 밑으로 연결된 소리굽쇠의 한 축처럼, 나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인데도, 영원히 그 순간이 이어지고 이어질 것만 같았다. 아니 이대로... 버스가 오지 않아도 좋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모르겠어...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뭐가요? 지금 이 순간이 아쉬운 것인지... 아니면 아까운 것인지... 결국 지나가버릴 이 시간에 대해 그녀도 나도 판단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결국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맞이하고, 모든 것을 떠나보낸다

 

지극히 먼 곳에서... 눈길을 헤치며 달려오는 버스의 진동이 느껴졌다. 진동은 서서히 희미한 불빛이 되었고, 밝아진 불빛은 곧 실체가 되어 커다란 소음과 함께 우리 앞에 멈춰 섰다.

 

한 번 더, 베이비... 한 번 더, 나는 그날 밤의 일과 그녀를 떠올린다. 그리고 더는... 어떤 기억의 편린(片鱗)도 찾지 못하는 스스로의 한계를 실감한다. 아마 더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즉 이것이... 내가 간직한 그날 밤과, 그녀에 대한 기억의 전부이다. 설령 그날 내린 눈의 전부를 파헤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나온 삶이 아까울수록 인간의 기억은 아쉬워진다. 터무니없이 짧았던 우리의 사랑도 그런 것이었다.

 

거세지는 빗소리 속에 나는 서 있다. 증발해 버린 청춘의 수증기들이, 문득 비가 되어 이곳을 적시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도 나는 그날의 눈 속에 서 있고, 지금도 나는 그날의 눈을 맞고 있다. 그런, 기분이다. 떨어지는 빗방울의 수만큼이나 나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눈을 감는다. 어렴풋하던 사물의 윤곽마저도 깨끗이 사라진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빛. 누구에게나 주어진 어둠. 그리고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 그녀는 아직 살아 있을까, 나는 생각한다. 살아 있다면 어디서... 그리고 어떤... 그런 허망한 생각들과... 그리움이 무수한 동심원의 파문을 일으키며 비처럼 나의 맨발을 적시운다.

 

그녀가 준 LP도, 그녀의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또다시 재생되는 그날의 음악처럼 나는 그 벌판과... 눈과... 나무들과... 그녀를 떠올린다. 실은 더없이 초라했을... 우리의 모습을 떠올린다. 가혹한 세상과... 들러리 선 시녀처럼 서 있던 그녀와 나를 떠올린다. 무엇 하나 정확하지 않은 기억 속에서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다. 지금의 나도, 스무 살의 나도 그녀를 사랑하고, 사랑했었다. 그것이 나의 전부다. 늦었지만 이제 그 전부를 이해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창밖의 비가 그친 지도 오래... 음악이 끝난 것은 그보다 더 오래... 이 자세로, 어둠 속에서 어둠과 하나가 된 것은 그보다 더... 오래.

 

그녀를 생각한다. 만날 수 없으므로 죽은, 나의 왕녀를 생각한다. 실은 죽은 지 오래였던 나를, 돌이켜본다. 내게 남은 건 과연 무엇일까. 과연 이 글을 나는 끝까지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너무나 오랜 시간이 사막의 바람처럼 우릴 휩쓸고 지나갔다. 헤어진 모래처럼 서로를 찾을 수 없다면, 다시 저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 외엔 다른 도리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람이 다시 데려다 주기만을, 나는 기다리고 기다릴 것이다.

 

바람은 다시 나를 어디론가 데려갈 것이다.

 

 

 

무비 스타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자신이 쉬려는 것도 아니었다.

행여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였다.

그리고 영혼이 곁에 왔다 싶으면

그제서야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는 사람만 가득했을 뿐 그 누구도 자신의 영혼을 기다려주지 않던 시절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의 삶을 살았던 인간이다. 영혼의 걸음은 생각보다 느리고, 세월은 내가 올라탄 말과도 같은 것임을 그때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언젠가는 말을 세우고 자신이 달려온 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인간에겐 결국 영혼이 필요하고, 영혼은 인디언만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나는 말을 세우고 땅 위에 발을 내려선 기분이다. 그리고 자신이 달려온 쪽을 바라보는 인디언처럼 한동안 그 시절을 돌아보려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두고 온 한줌의 <영혼>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인간에겐 늘 열광할 만큼의 아름다움이 필요했고 1985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간에겐 늘 멸시할 만큼의 추함이 필요했고, 역시나 그해에도 인류는 무수한 부수의 신문을 발행했다.  

그런 해였다.

 

큰 교회를 다니면 큰 구원을 얻으리라 착각한 사람들...

 

해가 시작되면서 알 수 있었다. 이제 영영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실은 엄마와 내가 버림받았다는 표현이 옳겠지만, 어차피 결과는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훤하게 불이 켜진 방인데도 어딘가 모르게 정전이 된 느낌이었다.

 

죽을 태운 냄새가 방안까지 스며든 느낌이었다. 또 그런 착각이 들 만큼이나... 마음이 타는 냄새는 그와 흡사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그렇듯 나 역시 아버지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내면(內面)은 코끼리보다 훨씬 큰 것이고, 인간은 결국 서로의 일부를 더듬는 소경일 뿐이다.

 

때로 별 우거진 밤이거나 꽃비라도 내렸다면, 그런대로 아름다운 가족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이상한 삶이었다. 어머니는 열심히 현실을 해결하고, 아버지는 열심히 비현실을 추구하는...

 

인간의 외면(外面)은 손바닥만큼 작은 것인데, 왜 모든 인간은 코끼리를 마주한 듯 그 부분을 더듬고 또 더듬는 걸까? 코끼리를 마주한 듯 그 앞에서 압도되고, 코끼리에 짓밟힌 듯 평생을 사는 걸까?

 

삶은 보다 복잡하고, 드러나지 않은 비밀로 가득한 것이겠지만...

 

때로 생각한다. 한 장의 얇은 슬라이스 같은 긍정과 부정, 긍정과... 부정으로 자신의 내면을 도배해 갔을 한 여자를 생각한다. 어머니는 그대로 무너졌고, 그래서 쉽게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렸다. 쇠약해진 몸을 어느 정도 추스를 순 있었지만, 증발해 버린 영혼의 부피는 어떤 약으로도 복구가 되지 않았다. 어둑한 6인용 병실의 귀퉁이에 앉아, 나는 누워 있는 거구 속의 꺼져가는 영혼을 볼 수 있었다. 아마 누구라도 그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가물가물하던 영혼의 빛... 희미한 전구 속의, 끊어져가는 필라멘트와 같은 무언가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눈으로 확인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인간의 안목(眼目)은 그런 것이다. 죽음이 닥치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다. 아, 그것이 사라졌구나. 사라져가는구나... 느낀 후에야 그 텅 빈 공백을 바라보며 비로소 중얼거릴 뿐이다.

 

립 서비스처럼 느껴지는 의례적인 위로의 말이... 그러나 인간에겐 없어선 안 될 소중한 것임을 안 것도 그때였다.

 

종착역에 이를 때까지 기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인간처럼, 인생의 어느 지점까지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일부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어둠과... 안개와... 물이... 서로를 구분하지 않은 채 서로를 섞고, 섞이던 밤이었다.

 

거리를 짐작할 수 없는 불빛이었고,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불빛이었다. 인간의 세상에 비해, 밤바다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었다.

 

그날 밤, 우리가 바라보던 어둠의 너머에는 또 어떤 앞날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인생은 늘 막연하면서도 확연한 안개와 같은 것이었다.

 

꽤나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저 그런 식으로, 진지한 느낌의 시간을 보냈을 뿐이란 생각이다.

 

일관된 주인의 잔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역시나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어쨌거나 내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와 나의> 상처는 어머니와도 다른 <나만의> 상처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간혹 내리지도 않은 낚싯줄에 딸려 올라온... 오징어처럼 멍청한 느낌의 분노와 물끄러미 대면하다가... 잠이 들고는 했다.

 

나로선 그래. 아버지 따위 사라지면 어때. 그러니까 내가 느낀 상실감은... 실은 아버지에 대한 게 아니었던 것 같아. 내가 알던 엄마... 예전의 엄마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겠구나, 실은 그게 괴로웠던 거야.

 

설령 어떻게 변한다 해도 달라진 엄마를 좋아하면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냥 이대로 있어주기만 하면 돼.

 

사람들이 신경을 써줄수록 똥은 불편해. 똥의 입장이란 그런 거야. 내버려두면 나는 알아서 거름이 될 거고

 

그는 자신만의 딴 세상 속으로 아버지가 아닌 딴 사람처럼 스며들곤 했었다.

 

나는 흔들리는 기차의 진동에 몸을 맡긴 채 아버지를 생각했었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아버지는 끝끝내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한 인간이었다.

 

어느새 봄의 대부분이 지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그 봄의 마지막이 그래서 외로웠다고도, 외롭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미래에 대한 생각... 이를테면 진로나 그런 것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곧 귀찮아지곤 했었다. 두려운 일도 진지하게 귀찮아, 해버리면 왠지 극복했다는 느낌을 받곤 하던 나이였다.

 

잘 지내?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렇게 물었으므로 잘 지내, 라고 나는 답해 주었다. 오직 한 녀석만이 전화를 안 받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냐? 라고 물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딜 좀 다녀왔어. 어딜? 그런데 어디라고 말하긴 애매한 그런 곳이야. 그리고 친구로부터, 싱거운 놈이란 얘길 들어야 했다. 생각해 보니 인생은 과연 싱거운 것이었다.

 

이런저런 고민들을 늘어놓고는 마치 해답처럼 여기 한 잔 더요! 를 외치던 술자리였다. 넌 뭐 힘든 일 없냐? 친구 하나가 물었다. 글쎄,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손을 들어 술을 추가시켰다. 한 잔 더 맥주를 마시고 나면 역시나 모든 문제를 극복한 느낌이 들던 무렵이었다.

 

늘상 비어 있던 우리 집은 친구들의 오랜, 추억의 영화관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강릉을 떠나온 날 아침 내가 한 말들이며... 그 속의 진실과... 거짓들을 하나하나 헤아리기 시작했다.

 

인간은 결코 진실만으론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나는 했었다. 갑자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충동이 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해의 봄은 그렇게 끝이 났다는 생각이다. 외로웠다고도, 외롭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봄이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외로웠던 봄이었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내가 처음 당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

흔들리는 전철에 앉아, 그리고 가끔 학교를 다니지도 학원을 다니지도 않던 무렵의 처지를 고민했었다. 물론 진지하게, 하여 뭔가 극복된 느낌이 들 때까지 마냥 창밖을 바라보곤 한 것이다. 그렇다고 열심히 제대로 된 소설을 쓴 것도 아니었다. 학원을 다니는 것만으로 뭔가 하고 있다 착각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원까지 그만두고 글을 쓴다는 착각으로 실은 멍하니 무의미한 생활을 되풀이했다는 생각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어떻게든, 열아홉 살의 시간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는 소설처럼 그해의 여름도 짧고 덧없는 것이었다.

 

마당에 작은 구덩이를 판 다음, 그래도 자차분히 남은 것들을 모아 태우기 시작했다. 태풍이 지나간 직후여서 불꽃이며 연기가 더 선명한 오후였다. 작은 거품이 일다 이내 녹아드는 사진들과... 양말이며 구두... 그런 사소한 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기억 속의 아버지를 완전히 떠나보내는 기분이었다. 이것이 화형(火刑)이 아닌 화장(火葬)이기를, 검은 한 줄의 연기를 바라보며 나는 말없이 빌고 또 빌었다.

 

새로 산 랑콤 세트를 경대 위에 올려놓은 여자라면 결코 자살 같은 걸 할 리 없겠지...

 

다만 누군가를 사랑해 온 인간의 마음은 오래 신은 운동화의 속처럼 닳고 해진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어떤 빨래로도 그것을 완전히 되돌리진 못한다... 변형되고, 흔적이 남은 채로... 그저 볕을 쬐거나 습기를 피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몇 번 신지 않은 운동화 같은 얼굴을 서랍 깊이 파묻은 채, 나는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닫을 때의 서랍은 이상할 정도로 삐걱이고, 무거운 것이었다.

 

최신(最新) 허리우드 영화음악 ─ 이란 표제와 달리 마치 200년 전의 판소리, 같은 느낌의 70년대 음악들이 앨범의 전부를 빼곡히 채운 판이었다.

 

누군가의 선물처럼 달과 별이 선명한 밤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은 쓸쓸한 밤이었다.

 

확실히 남다른 아버지였다기보다는, 아는 게 그것뿐인 아버지였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너무나 불공평한 시합이다. 첫눈에 누군가의 노예가 되고, 첫인상으로 대부분의 시합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외모에 관한 한, 그리고 누구도 자신을 방어하거나 지킬 수 없다. 선빵을 날리는 인간은 태어날 때 정해져 있고, 그 외의 인간에겐 기회가 없다. 어떤 비겁한 싸움보다도 이것은 불공평하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강릉으로 어머니의 짐을 옮기고 나자 그야말로 집에는 나와 고양이 둘뿐이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우리는 나란히 마루에 앉아 지구에 남은 마지막 생명체처럼 모든 것이 사라진 창밖을 바라보곤 했었다.

 

끊임없이 비가 내리던 여름이었다. 후덥지근하면서도 축축하고... 반팔을 입으면 서늘한데 긴팔을 입으면 땀이 차는... 그래서 여름도 가을도 아닌 이상한 계절을 맞이한 기분이었다. 모쪼록 내 마음도 그런 계절을 닮아 있었다. 화가 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화를 풀었다고도 말할 수 없고, 우울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코 기쁘다고도 말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이모는 분통을 터트렸지만 갑자기 그 모두가 시시하게만 느껴졌었다.

눈앞의 얼굴에 넘어간 인간도

눈앞의 실리를 쫓은 인간도  

그런 인간의 눈앞에서

화풀이를 해야 하는 인간도  

모두가 시시하고 시시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드라마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말이야, 강박을 가진 인간이 쓴 글은 읽는 사람을 불쾌하게 해.

 

돌이켜보면 세상의 시소도 이미 기울어진 지 오래였다. <좋은 것>이 <옳은 것>을 이기기 시작한 시대였고, 좋은 것이어야만 옳은 것이 되는 시절이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학력에서, 경제력에서... 또 외모에서... 한눈에, 또 첫눈에 대부분의 승부가 판가름 나는 세상이었다.

 

아, 내일은 냉면이나 먹을까... 하지만 남아 있던 선명한 밤과, 그래도 남아 있을 막연한 앞날... 무심코 이리저리 돌리던 채널이며, 읽지도 않은 채 술술 넘기고는 다시 앞으로 되돌리던 소설책의 페이지와... 어느새 식어 있는 커피... 

 

잡음의 소나기가 끝없이 고막에 고여드는 느낌이었고, 다음 방송은 새벽 6:00란 자막만이 그 순간 내게 허락된 이 세계의 유일한 언어였다.

 

뭐랄까, 꼭 재능이 있어서 포르노를 찍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 즉 벗겠다는 의지, 그런 게 실은 중요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베개를 적신 땀이거나... 어쩌면 눈물 같기도 한 작은 얼룩을 바라보며, 나는 안장에 앉아 말없이 자신의 영혼을 기다린... 그리고 비로소 합쳐진 한 사람의 인디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주소며 연락처며... 몇 칸 되지도 않는 빈 공간을 채우고 나니 문득 책상과, 적막한 사무실이 그렇게 넓고 공허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별로, 인사를 받고 싶어하지 않는 얼굴들 앞에서 별로 인사할 생각도 없는 마음으로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기억나지 않는 오후에 비해, 통화가 끝난 뒤의 늦은 밤은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피곤한 몸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오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머니를 생각한 것도, 나 자신의 앞날을 생각한 것도 아닌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었다. 거대하고 더러운 벌레의 배 밑에 깔린 듯 나는 어둠 속에서 몸을 뒤척였었다. 그것은 세상이란 이름의 벌레였다.

 

 

 

켄터키 치킨

요한이란 사람의 말에는 어딘가 모르게 뾰족한 것이 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늘, 할 말이 없게 만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 상태가 나빠 보이진 않았는데, 그렇다고 확실히 그 사람 괜찮던걸? 할 수는 없는 부류였다. 즉... 한마디로 까다로운 인간이었다.

 

여름정리 세일이 끝나면 곧 가을맞이 신상품 세일이 시작돼. 그리고 바로 한가위 고향 앞으로 세일... 아듀 가을 세일... 첫눈맞이 겨울 세일... 크리스마스 감동 세일... 연말 총정리 大바겐세일... 새해 큰절 큰 감동 바겐세일... 이런 식으로 이어지지. 그게 백화점의 공식이야.

얘길 들으며 앉아 있으니 뭐랄까, 해일이 밀려오는 해변에 앉아 수학의 정석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이 세계엔... 세일즈와 세일밖에 없어. 그게 바로 자본주의지.

 

그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물론 선후배나 형 동생이란 단어가 옳은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친구 쪽이 정확한 표현일 거라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 그런 느낌을 받아야 했다. 내버려둬야 한다는 느낌... 이 사람은 살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아간다는 느낌을, 나는 받았다.

 

장마철에 피워둔 모기향 같은 느낌의 노을이, 여름의 끝을 향해 서서히 타들어가던 저녁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특별한 대화도 없이 그저 웃기만 했는데 가게를 나올 무렵 우리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가게를 나와서 안 일이지만, 우리가 걸어온 방향의 반대편 ─ 즉 입간판의 또 다른 면엔 역시나 아크릴로 크게 <호프>가 적혀 있었고, 그 아래 적힌 작은 영문의 <HOPE>를 우리는 볼 수 있었다. 난데없는 희망이 그토록 우리의 가까이에 있던 시절이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또 다음날에는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네〜에. 대답은 하지만 <어머 왜 이러실까?>가 역력한 화장 속의 얼굴을 역시나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엘리베이터 걸들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두터운 화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어머, 얘 왜 이럴까? 를 보기가 싫어서였다.

 

익숙해져야 할 거라며, 요한은 말을 이었다. 서비스 시대의 시작이니까... 너나 나도 이제 저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몰라. 즉 서비스형(型)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거지. 돈을 가진 인간들이 늘어났어. 그들은 서비스를 원해. 회사든 개인이든 이제 서비스를 할 줄 알아야 밥을 먹을 수 있는 거야. 뭐, 내 말은... 같은 처지끼리 잘 지내라는 거지.

 

그럴 수밖에 없어. 왜? 실은 가질 수 없는 거거든. 가질 수 없으니까 열광하는 거야.

 

설사 시간이 지나고 꿈이 깨진다 해도 그 전까진 꿈을 꾸는 게 인간인 거야.

 

그래서 세상은 12시 종을 울리지 않아. 마법이 깨지는 순간 일곱 난장이와 신데렐라 모두를 잃게 되니까... 아니, 실은 울릴 필요도 없는 거겠지.

 

세상의 종은 실은 매일 울리고 있어. 아무도 듣지 않을 따름이지.

 

사람을 한없이 불편하게 만들어놓고는, 또 갑자기 숨쉬기운동 시〜작 하는 느낌으로 풀어주는 능력을 요한은 갖고 있었다.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그건 엔딩이 아니야. 삶은 말이야, 그보다 훨씬 긴 거라구. 잔혹할 정도로 지루한 거지.

 

그러고 보니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일 때가 제일 고양이 같군, 하고 요한은 중얼거렸다. 아마 인간도... 그냥 무엇도 아닌 인간일 때가 제일 인간답겠지?

 

라일락이 필 리 없는 계절인데도, 주변 어느 정원에 피어 있을 비슷한 꽃냄새를 맡으며 나는 라일락을 떠올렸었다. 아니, 라일락이 피고 지던 지나간 봄을 생각했었다. 지나가고 다가오는 세월과, 피고 또 지는 인생의 순간들을 떠올렸었다. 아직 잠이 들지도 않았는데...

 

익어가는 단풍처럼, 나도 무언가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임팔라 :: 몸길이 110∼150㎝, 어깨높이 88∼100㎝, 꼬리길이 25∼40㎝, 몸무게 수컷 약 60㎏, 암컷 약 45㎏이다. 뿔은 가젤과 달리 수컷에만 있고, 길이는 50∼75㎝이며, 가늘고 길어서 앞에서 볼 때에는 하프 모양이다.옆발굽은 없고, 뒷다리 밑에 검은 얼룩무늬가 있다. 등면은 붉은빛을 띤 갈색이고, 옆면의 아랫부분은 연한 황토색이어서 양쪽의 경계가 뚜렷하다. 엉덩이에는 양쪽에 검은 띠가 2줄 있다. 꼬리의 윗면은 검은색이고, 배면과 꼬리의 아랫면, 앞다리의 위 안쪽, 윗입술, 턱은 흰색이다.
아카시아가 무성한 사바나에서 서식한다. 건조기에는 암수가 대집단을 이루어 때로는 100마리가 될 때도 있는데, 1마리의 강력한 수컷과 15∼20마리의 암컷으로 된 작은 집단을 만들기도 한다. 놀랐을 때는 높이 2∼3m나 뛰어오를 수 있어 관목 같은 것은 가볍게 뛰어넘는다.먹이로는 풀이나 어린 싹, 나뭇잎 등을 먹고, 하루에 1번씩 물을 마신다. 임신기간은 약 171일이며, 한배에 1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드물게 2마리를 낳을 때도 있다. 케냐와 앙골라 남부, 남아프리카 북부에 걸쳐 분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임팔라 [Impala]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눈부신 가을볕이 투명한 커튼처럼 드리워진 지상이었고, 더없이 소소한 바람이 그 끝자락을 한들, 흔들던 한낮이었다. 차마 그녀를 쳐다보진 못했지만, 나란히 짐을 들고 선 두 사람의 그림자를 나는 볼 수 있었다.  

 

사, 오백 미터의 길 위엔 정사각형의 보도블록이 균일하게 깔려 있었다. 나른한 끝없이 이어진 바둑판의 흰 돌과 검은 돌처럼, 우리는 번갈아 서로의 발을 내딛고 있었다.

 

뺨 위를 문지르던 바람과, 나른하고 나른하게 우리를 쓰다듬던 그날의 햇볕도 생생하다.

 

잠이 들지도 않았는데... 벌써 꿈을 꾸고 난 듯한 그 기분을, 길을 걸으며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미안했거나, 혹은 앞으로 미안해야 할 사람처럼 갑자기 얼굴이 붉어져옴을 알 수 있었다.

 

지갑이 가벼울수록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인간이구나

 

그녀도 나도 열아홉 살이었다. 누구에게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시절이 있는 법이다.

 

 

 

루씨,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

저기... 하고 그녀가 얘기한 것은 갑자기 뚝, 하는 느낌으로 바람이 멎은 순간이었다.

 

한 대의 차도 지나가지 않던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단지 바람이 멎었을 뿐인데도, 지구가 정지한 느낌이었다. 흔들림 없이 허공에 정박해 있던 수많은 코스모스와, 오래된 박제(剝製)처럼 서 있던 나무들... 정지신호를 지키고 선 택시들이 순간 그런 느낌을 주었었다.

 

순간 붉어진 그녀의 얼굴과.... 치마 근처의 제자리로 돌아가던 손... 돌아가서도 머뭇,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부끄러워하던 그녀의 손을 잊을 수 없다. 그런 느낌에 대해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던 열아홉 살의 나와... 그녀를 잊을 수 없다. 세상이 멈춘 순간 왜 그런 것들은 보다 상세해지는지, 바람이 없는데도 무엇이 파르르 잠자리의 날개를 떨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구가 정지하기 전까지는,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더는 열아홉 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열아홉 살이 아니므로, 다시는 그런 상세한 감정의 파편들을 느끼고 추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야 했을까? 왜 꼭... 그래야 했던 걸까.

 

짧은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쳐다볼 수 없었고, 쳐다보지 않는 것만이 그 순간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는 생각이다.

 

나란히, 아무 일 없는 듯 그 길을 걸었지만... 그래서 그녀가 지극히 먼 곳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자 피곤이 몰려왔다. 아니 그보다는... 한없이 마음이 비참해진 기분이었다.

 

다녀왔니? 요한이 물었다. 그저 예, 라고 답하기엔 너무나 멀고 이상한 곳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이상하게도 술술 그런 얘기들을 털어놓았다. 밑도 끝도 없이 시작한 얘기들이... 점점 윤곽을 갖춰나갔고, 결국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나... 그런 부분에까지 길고 지루하게 이어지고 말았다.

 

혹시 그 친구를  

좋아하는 거 아니냐?  

그건 아니라고, 내가 답했다. 하지만 뭐랄까... 신경이 쓰여요, 알게 모르게 계속... 신경이 쓰인다고는 했지만, 그것이 정확한 표현인지도 알 수 없었다. 요한은 몇 모금 길게 연기를 뿜었고, 간단한 얘기는 아닌데... 하며 툭, 툭, 재를 털었다. 그리고 툭, 말을 뱉었다. 여자에게 말이야... 무정(無情) 보다 더 비참한 게 뭔지 아니? 동정이야. 동정하는 거라구. 확신하건대 <동정은 금물>이란 말은 분명 여자를 동정해 본 남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말이야. 모든 훌륭한 명언이 그렇듯이 경험담인 셈이지. 동정(同情)이라는 단어가 그 순간 검은 재(灰)처럼 마음을 뒤덮었다.

 

이 포크를 봐. 앞에 세 개의 창이 있어. 하나는 동정이고 하나는 호의, 나머지 하나는 연민이야. 지금 너의 마음은 포크의 손잡이를 쥔 손과 같은 거지. 봐, 이렇게 찔렀을 때 그래서 모호해지는 거야. 과연 어떤 창이 맨 먼저 대상을 파고 들었는지... 호의냐 물으면 그것만은 아닌 거 같고, 동정이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란 거지. 뭐, 맞는 말이긴 해. 손잡이를 쥔 손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상대도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어. 처음엔 어떤 창이 자신을 파고든 건지 모호해. 고통과 마찬가지로 감정이란 것 역시 통째로 전달되기 마련이지. 특히나 여자는 더 그래. 왜 그런지 모르면서도... 그래서 일단 전반적으로 좋거나 싫어지는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하나의 창을 더듬어보게 돼. 손잡이를 쥔 손은 여전히 그 무엇도 알 수가 없는 거지. 알아? 적어도 세 개의 창 중에서 하나는 사랑이어야 해.

여자는 말이야. 다른 모든 창들을 녹여 그것을 하나의 창으로 만들고 싶어해. 단순하고 강렬한 하나의 창으로... 즉 <사랑>이란 창이지. 만약 그것이 다른 이름의 창임을 알게 되면 그 상처를 견디지 못하는 게 여자야. 그리고 넌 여전히 그 순간에도 포크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손인 거지. 이유도 모른 채 어쩔 줄 몰라하는, 어쩌지도 못하는 손인 거야. 하지만, 하고 내가 말했다. 인간의 감정은 당연히 복잡한 거 아닌가여? 있는 그대로 전부를 전달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드는데... 옳거니 옳거니, 연기를 뱉으며 요한이 얘기했다. 그래서 넌 손잡이를 쥔 손이라는 거야. 포크는 원래 이런 거잖아, 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거지.

 

뿔이 여러 개일수록 여자는 불안한 거야. 복잡해지거든. 그걸 알아야 해. 바람둥이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여러 개의 창을 절대로 디밀지 않아. 오직 하나의 창, 사랑이란 이름의... 창이지.

 

걔들은 상처가 없으니까. 행여 상처가 생긴다 해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애들이란 말이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어떤 상처가 있다 해도 살아갈 인간이라고 봐, 하지만 그 친구는 달라. 그런 상처를 가진 여자는 말이야... 힘들어. 살아가는 일 자체가 힘든 거라구.

 

포크란 게 원래 이런 거잖아, 라는 식으로 발뺌을 해선 안 될 대상이 세상엔 있는 거야. 왜? 그건 정말 나쁜 짓이거든. 사랑이 아니라면, 또 사랑을 줄 수 없다면 말이야...

 

그·게· 인·간·이·야·.

늘 그랬다. 정리되지 않은 여러 개의 창을, 간단한 하나의 창으로 다듬는 능력을 요한은 갖고 있었다.

 

제법 취한 채 돌아 나오던 골목과, 세상은 무자비한 거야... 전봇대에 볼일을 보며 떠들던 요한과, 하나 둘 떨어지던 은행잎과, 말죽거리까지 운행하던 막차와... 깊은 어둠 속의 불 꺼진 집... 그런 기억들이 여러 개의 뿔처럼 솟아 있는 밤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나는 잠이 오지 않았고, 누워 한참, 잠든 고양이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다 겨우 잠이 들었다.

 

창을 넘어선 과분한 빛이 고작 이런 인간의 세계를 향해 스며들던 새벽이었다.

 

인생에 늘 있어온 그저 그런 아침이었다.

 

아무렴 그저 그런 아침이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너도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생애 전체에 걸쳐,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걸쳐서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들이, 곧 다가올 세월처럼 주변의 가로수에 매달려 몸을 떨고 있었다.

 

네? 하고 그녀는 묻지 않았지만 분명 네? 라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듯했다.

 

마멀레이드 :: 마르멜로(marmelo)라는 펙틴질이 많은 과일을 설탕조림한 것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현재는 감귤류의 껍질로 만든 잼을 말한다. 감귤류 껍질 속의 펙틴질이 점성도를 내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므로, 펙틴의 양이 적을 때는 펙틴 파우더 등을 첨가하기도 한다.
과육부를 많이 쓰면 신맛과 쓴맛이 강한 마멀레이드가 되고, 껍질을 많이 쓰면 신맛이나 쓴맛이 적고 단맛이 강한 것이 되며, 젤리부분의 투명도가 높을수록 좋은 제품이다. 가정에서 여름 밀감을 써서 만들 경우, 껍질 2개분에 과육 1개분의 즙, 껍질과 같은 양의 설탕, 물 2컵 비율의 재료로 만든다.
껍질을 얇게 저며서 하룻밤 물에 담그거나, 1%의 소금물에 30분 동안 삶은 후 물에 헹구어 쓴맛의 성분을 우려낸다. 껍질과 과즙을 물에 섞어서 약한 불로 약 1시간 반 동안 삶은 다음, 설탕을 몇 차례로 나누어 넣으면서 다시 약한 불에 약 1시간 반 끓인다. 당분이 65% 정도 될 때까지 조린다. 산이 들어 있고 당분이 많기 때문에 오래 보존할 수 있다. 토스트 등에 발라서 먹는 외에, 각종 과자류를 만들 때 부재료로서 많이 쓰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멀레이드 [marmalad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느리다고도, 빠르다고도 할 수 없는 묘한 속도로... 문은 돌고 있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무덤덤한 기분으로 업무를 시작했지만, 커다란 회전문 하나가 머릿속에서 돌고 있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 친구를... 좋아하고 싶은 거니, 아니면 좋아해주고 싶은 거니?

 

나는 멍하니 서 있다 타구를 빠트린 중견수처럼 망연자실한 기분이 되어야 했다.

 

막사이사이상(賞) :: 1957년 비행기 사고로 급서한 필리핀의 전(前)대통령 R.막사이사이의 품격과 공적을 추모·기념하기 위하여 설치된 국제적인 상.
1958년 3월 1일 록펠러 재단이 공여한 50만 달러를 기금으로 막사이사이 재단을 설립하여 해마다 정부 공무원, 공공사업, 국제협조 증진, 지역사회 지도, 언론문화 등 6개 부문에 걸쳐 각각 5만 달러의 상금과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1962년 장준하(張俊河), 1963년 김활란(金活蘭), 1966년 김용기(金容基), 1975년 이태영(李兌榮), 1979년 장기려(張起呂), 1980년 엄대섭(嚴大燮:장서가), 1986년 제정구·정일우, 1989년 김임순(金任順), 1996년 오웅진 신부, 2002년 법륜 스님, 2005년 시민운동가 윤혜란, 2006년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박원순, 2007년 공공봉사 부문의 김선태 목사 등이 수상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막사이사이상 [Magsaysay Award]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3루에서 홈에 이르는 정도의 복도를 걸어 그녀가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요한이 자리를 떴으므로 차분한 표정의 그녀와, 공을 빠트린 포수처럼 당황하는 나 사이에 하나의 야구장이 들어설 만큼의 공간이 생겨난 기분이었다. 맥주 드시겠어요? 내가 물었다. 네, 라는 그녀의 답변이 외야수가 던진 송구처럼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테이블을 넘어왔다.

 

그것 참... 난 주임이 디즈니만화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야. 보다 넓은 세계에서 큰 꿈을 펼쳐야 할 사람인데 말이야...

 

그녀가 말할 때마다 볼링장으로, 또 농구장으로 줄어드는 거리감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점점 탁구대만큼이나 줄어들었고, 결국 사실적인... 직육면체의 테이블이 되었다.

 

그것이 실존(實存)이야!  

똥을 누면서 느낀 고독감을 설명하다 얘기는 실존으로 이어졌다. 다시 얘기는 『이방인』으로 이어졌고, 알베르 까뮈와... 카프카로 이어졌다. 장담컨대 두 사람은 모두 똥을 누면서 그날의 원고를 구상했을 거야. 두 작가를 키운 것은 똥이었지.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어. 까뮈는 설사였고, 카프카는 변비였어.

 

얼떨결에, 그래서 세일이 끝났을 다음 주말 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우리는 약속했었다. 적절한 고민 끝에 동의를 했다기보다는, 이런 식이었다. 어우동, 뽕, 백 투 더 퓨처, 13일의 금요일... 어떤 게 좋을까? 누구라도 백 투 더 퓨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소릴 죽인 그녀의 미소와, 우리와 동행하던 바람... 날리고, 사각이며 자신의 배를 길바닥에 부비던 비닐봉지와... 라디오가 흘러나오던 어느 불 켜진 창(窓)이 생각난다.

 

갑자기 문득 세상의 전원이 꺼진 느낌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쟤는 진심(眞心)이야.  

 

사람의 웃음이... 창(槍)처럼 사람의 배를 찌를 수 있다는 걸 믿으세요? 믿어... 하고, 나는 뿔이 잘린 트리케라톱스처럼 고객를 끄덕였었다. 결국, 세상의 매듭을 푸는 것은 시간이다.

 

웅크린 고양이처럼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었다. 아니, 차라리 전화가 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요한의 목소리는 그, 토요일의 오후처럼 밝고 쾌활한 것이었다.

 

누... 구예요? 압도된 느낌의 질문에 비해 너무나 시큰둥한 대답이 돌아왔었다. 우리 엄마. 우물우물 라조기를 씹으며 마치 고양이를 발음하듯 우리 엄마를 발음하던 요한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아, 하고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듣는 이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나라면 절대 그런 식의 표현을 쓰진 못했을 것이다.

 

아무 일 없는 듯, 또 실제로 아무 일 없이 TV를 보며 웃고 떠들던 그날 저녁을 잊을 수 없다. 등 뒤의 검은 액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술을 마시면서도... 이렇듯 웃고 떠들어선 곤란한 게 아닌가, 기분이 들곤 했었다. 하하, 하.

 

주소(住所)라는 점선으로 이어진 불빛과 불빛... 밤의 도시는 더욱 넓어 보였고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때 본 편안한 미소를 잊을 수 없다. 너무나 편안해 보였으므로, 자신의 미소를 제외한 모든 세계를 불안하게 만드는 미소였다.

 

새가 날고... 말이 풀을 뜯듯 인간은 돈 돈 하는 동물인 거예요.

 

우리 듀엣을 결성해도 되겠는 걸? 전 노래 못해요. 괜찮아, 하고 요한이 중얼거렸다.  

어차피 인간은 립싱크밖에, 또 립서비스밖에 못하는 동물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하고 요한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내게 좋은 말만 해줘. 립서비스를 좀 해달란 말이야. 온몸이 간지럽도록... 간지러워 죽을 지경이 되도록 말이야.

 

아무 일 없는 듯... 또 실제로 아무 일 없이 등을 기댄 채 술을 마시던 밤이었다.

 

이상한 밤이었다. 그래서 곧 취할 줄 알았는데 마시면 마실수록 술이 깨는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자정 무렵엔 간단한 인수분해라도 무리 없이 풀 수 있을 만큼 머릿속이 또렷했었다. 요한 역시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이었다. 노래의 가사를 읊조리듯 목소리는 이어졌고, 기억을 더듬는 손길처럼 아르페지오는 계속되었다.

 

아르페지오 :: 화음의 각 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차례로 연주하는 주법.
층거리꾸밈음이라고도 한다. 이탈리아어의 arpeggiare(하프를 타다)에서 유래하며 한국에서는 펼침화음[分散和音]과 구별하지 않고 쓰는 때도 있다. 아르페지오는 하프에 가장 잘 어울리나, 피아노를 비롯하여 관현악기·성악에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고전파 이후의 음악에서는 대체로 화음을 아래서 위로 향해 펼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로코코·바로크시대의 옛 음악에서는 아르페지오의 여러 가지 기보법과 연주법이 시도되었다.
당시의 작곡가와 연주자에게 그것은 트릴(떤음)이나 모르덴트(잔결꾸밈음) 등을 포함해서, 음악작품의 장식에 창의와 개성을 살리려는 시도였다. 아르페지오의 속도는 일정한 규칙이 없고, 악곡의 해석, 악기의 성능에 따라 달라지는 수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르페지오 [arpeggio]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물이 흐르듯 이어지는 연주 때문이었을까, 어딘가 녹음해 둔 테잎을 틀어놓고 지극히 자연스레 립싱크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상해.  

뭐... 하지만 그게 인간이겠지. 이상하더라구

 

크게 달라진 생활도 아니었어. 냉장고는 그대로 있었으니까. 그때 알았지. 내겐 줄곧 냉장고가 엄마였다는 사실을 말이야... 집에 붙어 있질 못하는 성격이었거든, 생물(生物)로서의 엄마는 말이야... 오사카에서도 한국에서도 늘 잡(job)을 가지거나 모임을 가지거나 하는 생활이었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밥을 주는 것도... 간식과 우유를 주는 것도 냉장고였던 거야. 뭐, 크리스마스니 그럴 때 어김없이 선물을 받긴 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냉장고처럼 언제나 나를 맞아준 건 아니니까... 그래서 엄마를 땅에 묻는 것보다 말이야... 냉장고 속이 텅 비거나 정전이 되어 그 속의 불빛... 왜 문을 열면 따뜻하게 새나오는 그 불빛 말이야... 밤이든 새벽이든 변함없는... 그 빛이 보이지 않으면 더 슬퍼지는 인간이야, 즉... 나라는 인간은 말이야... 세상에 또... 그런 걸 슬퍼하는 인간이 있을까?

 

그게 나야, 나라는 인간... 그리고 그게 우리 엄마였지...

 

어쩌면... 하고 내가 말했다. 어머니께선 너무 많은 말을 쓰고 싶었기 때문에 단 한 줄도 쓰지 못하셨을 거예요. 그건... 제가 소설을 써봐서 알아요.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을 땐 단 한 줄도 쓸 수 없는 게 인간이거든요. 하청업체 따윈 아무런 애정이 없으니까... 쉽게,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거예요. 분명 그랬을 거라고... 장담해요.

 

참으로 이상한 침묵과... 남아 있던 맥주와... 검은 새의 발자국처럼 거실을 거닐던 시계의 초침(秒針)소리가 생각난다. 글쎄 이렇다니까, 하고 요한은 물집이 맺힌 손가락 끝을 보여주었다. 한 번도 눈여겨본 적 없던 요한의 손과, 그 아래 손목의 희미한 흉터를 잊을 수 없다. 일자로 그어진 몇 개의 선이... 녹슨 기타 줄처럼 요한의 손목을 가로질러 있었다.

 

달의 어두운 면(Dark Side of the Moon)

 

이유 없이 느껴지던 동질감의 정체가, 그래서 어렴풋이 짐작되던 새벽이었다.

 

막연한 생각이 드는 새벽이었다. 인간은 실패작이야, 맥주를 따르며 요한이 말했다.  

실패작이라구. 첫차가 다니는 시간까지, 그리고 우두커니 앉아 있던 새벽의 풍경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핑크 플로이드는 성공작이야... 안 그래? 를 끝으로 요한은 잠이 들었고, 나는 홀로... 데생을 위해 포즈를 취한 모델처럼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음악이 끝난 지도 오래였고, 생각을 멈춘 지도 오래였다.

 

요한의 웅크린 몸 위에 담요를 덮어주었다. 다만 아무 일 없이, 아무 일 없는 듯 그가 아침을 맞이하기 바라는 마음이었다.

 

짧은 메모였지만, 청소를 한 번 더해도 좋을 만큼의 시간을 소비한 메모였다. 형도 성공작이에요. 볼펜을 내려놓자 다만 그런 전문(全文)이 

사각형의 종이 위에 사선으로 적혀 있었다.

 

술에 취한 것도, 술을 깬 것도 아닌 묘한 기분이었다.

 

여전히 달이, 자신의 이면(異面)을 감춘 채 하늘의 서편에 머물러 있는 새벽이었다. 인간은 끝끝내... 자신의 내면을 감춘 채 사라지는 저 달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인간은 과연 달의 이면을 볼 수 있을까? 인간은 과연... 스스로의 이면을 볼 수 있을까. 인간은 어떻게 달까지 갈 수 있었을까? 달 위를 걸어다닌 인간조차도, 그러나 스스로의 내면에는 발을 내리지 못한 채 삶을 마치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아무 일 없이, 아무 일 없는 듯 돌아오던 새벽의 골목길에서

그리고 인간은 실패작과 성공작을 떠나, 다만 <작품>으로서도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형은 작품이에요... 그리고 나도 작품이에요. 인간은... 작품이에요. 못 다 쓴 메모를 적듯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겨울, 나무에 걸린 오렌지 해

결국 이 세상은 눈가림이야. 눈만 가려주면... 또 눈만 만족시켜 주면 지옥 끝까지라도 달려갈 바보들이지. 세상을 망치는 게 독재자들인 줄 알아? 아냐, 바로 저 넘쳐나는 바보들이야. 독재를 하건 누굴 죽였건... 여당이 돼야 이곳이 삽니다, 제가 나서야 집값이 오릅니다 하면 찍어주는 바보들 때문이지. 세상은 잘 살겠다고, 더 잘 살겠다고 하는 놈들 때문에 망하는 거야.

 

이상하네요? 아니, 당연한 거야. 인간은 대부분 자기(自己)와, 자신(自身)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익과 건강이 최고인 거야. 하지만 좀처럼 자아(自我)는 가지려 들지 않아. 그렇게 견고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끝없이 가지려 드는 거야. 끝없이 오래 살려 하고... 그래서 끝끝내 행복할 수 없는 거지.

 

그해 가을을 살았던 사람들 중 누구보다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랑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이었고, 세상의 가장... 큰 이익이었다. 천·문·학·적· 이·익·이란 아마도 이런 걸 뜻하는 게 아닐까, 무렵의 나는 생각했었다.

그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작은 씨앗과 같은 것이었고, 납득할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내면에 스며든 것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던 느낌... 자라던 줄기와 피어나던 색색의 꽃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여전했지만 여전하지 않았고, 예전과 달리 누가 누구와 헤어졌대, 누가 누구를 버렸대... 주변의 속삭임에도 마음을 아파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났다는 말은, 누군가의 몸 전체에 ─ 즉 손끝 발끝의 모세혈관에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통째로 흔들어 뽑아버렸다는 말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뿌리에 붙은 흙처럼 딸려, 떨어져나가는 마음 같은 것... 무엇보다 나무가 서 있던 그 자리의 뻥 뚫린 구멍과... 텅 빈 화분처럼 껍데기만 남아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아프고, 참담한 것이었다. 그런 나무를 키워본 인간만이, 인생의 천문학적 손실과 이익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믿음엔 변함이 없다.

 

결정적으로 바쁜 시기가 오면 결정적으로 며칠씩 결근을 하는 요한의 생활패턴 때문이기도 했다.

 

그날 밤의 이야기가 마치 작년의 일처럼 멀고 아스라하게 느껴졌다. 일상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런 식으로 평생을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왜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갖기 힘든지를... 알 수 있었다.

 

그녀와 나의 만남 역시 그날 밤의 그, 어두운 골목의 끝에서... 정지된 한 장의 사진처럼 멈춰 서버린 기분이었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조금 슬펐다.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정말 아무 일 없는 듯 돌아가야 하던 일상과 일터가 떠오른다. 그날 밤의 만남에 대해 마치 서로가 두 눈을 감아버린 기분이었지만, 그런 식으로 가끔... 우리는 서로를 향해 알게 모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은 듯, 하지만 조금 움직인 듯... 움찔하는 모습으로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거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를 읊조리고 돌아봤을 때의 풍경과도 같은 것이었다. 움직였지만, 그러나 움직이지 않은 듯 아니, 아니에요.   

우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장 그르니에 :: 리세 알제의 교수를 거쳐 파리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미학을 담당하였다(1962∼1968). 1926년 이후에는 《N.R.F.》지(誌)를 비롯하여 많은 문예잡지에 기고하였다. 1930년에는 소설가 A.카뮈도 그의 제자로서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존재에 대한 기쁨과 절망을 보다 간결하고 깨끗한 문체로 쓴 그의 작품은 시사성(示唆性)이 풍부하여 독자에게 사색을 요구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사력(砂礫)의 물가 Les Gréves》(1955) 외에 수필집 《섬 LesÏles》(1933), 평론 《인간에 대하여 A Propos de l’humain》(1955) 《존재의 불행 L’Existence malheureuse》(1957) 《현대회화론 Essais sur la peinture contemporaine》(1959)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 그르니에 [Jean Grenier]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가을과 겨울 사이에 친 커튼 같은 비가 종일토록 드리워진 날이었다. 비를 맞으며 외로운 섬처럼 서 있던 나무들과... 가을과 겨울, 어느 쪽으로도 떠내려가지 못한 채... 배수구 속으로 사라지던 은행잎들이 생각난다.

 

드리워진 빗줄기처럼 왠지 매우 기분이 무거운 날이었다.

 

술래를 서다 돌아본 느낌의 그녀와, 왠지 작게만 느껴지던 그날의 우산이 생각난다. 나는 가능한 우산을 그녀 쪽으로 밀었고, 그녀는 가능한 나와 거리를 두려 애쓰는 느낌이었다. 한 우산을 뒤집어 쓴 배려와 부끄러움이 발걸음을 조금씩 왼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었다. 미세한 기울기의 사선을 그으며... 또 가끔 서로의 자세를 수정해 가며, 우리는 그렇게 광장을 가로질렀다. 우산을 벗어난 어깨가 젖은 것은 알았지만, 겨드랑이에 낀 책이 젖은 사실은 느끼지 못하던 밤이었다.

 

하지만 맞을 만한 비는 아니라고 보는데...

비를 상대하는 게... 사람을 상대하는 거보단 쉬워요.

 

가난한 인간은 피곤하기 마련이고, 피곤한 인간에겐 언제나 한계가 주어지는 법이라고 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버스에서도 집에서도 연이어 잠을 잤지만, 또 눈을 뜨면  

김치찌개라도 끓여야 하는 느낌의 일과가 시작되는 날들이었다.

 

그러므로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다 나에게는 보로메 섬이라고 여겨진다.

 

모처럼의 휴일은 갑자기 우리가 젊다는 사실과, 이 세상이 지하주차장처럼 칙칙한 곳이 아니란 사실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었다.

 

세계라는 건 말이야, 결국 개인의 경험치야. 평생을 지하에서 근무한 인간에겐 지하가 곧 세계의 전부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산다는 게 이런 거라는 둥, 다들 이렇게 살잖아... 그 따위 소릴 해선 안 되는 거라구. 너의 세계는 고작 너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이야. 아무도 너처럼 살지 않고, 누구도 똑같이 살 순 없어. 그딴 소릴 지껄이는 순간부터 인생은 맛이 가는 거라구.

 

태양과 바다와 꽃들은 실은 언제나 이 세계에 머물러 있고, 우리에겐 그 사실을 망각하지 않을 테크닉이 필요할 뿐이었다.

 

 포름알데히드 :: 메탄올의 산화로 얻는 자극성 냄새를 갖는 가연성 무색기체로, '메탄알(methanal)'이라고도 한다. 특히 물에 잘 녹아 흔히 포름알데히드 37% 전후 농도의 수용액을 만들어 사용하는데, 이를 포르말린(formalin)이라 한다. 포르말린은 살균, 방부제로 주로 사용된다.
포름알데히드는 보통 공기 중에 포함된 메탄에 햇빛과 산소가 화학 반응하여 생성되며, 탄소가 포함된 물질이 불완전 연소할 때나 산불이나 담배 연기, 자동차 매연 혹은 음식을 만들 때에도 발생한다. 예컨대 포르말린 제조, 합판 제조, 합성수지 및 화학제품 제조, 소각로, 석유정제, 유류 및 천연가스 연소시설 등에서 발생한다. 특히 최근에는 실내 공기오염의 주요 원인물질로 건축자재(단열재, 실내가구의 접착제 등)에 쓰이는 포름알데히드가 문제가 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포름알데히드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전 지구인이 열광한 해피엔딩이란 포스터의 문구 앞에서, 그래서 문득 지구인에서 제외된 느낌을 나는 받아야 했다. 45억 명의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지구엔 분명 45억 개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즐겁다는 영화를 봤으니 말이야, 그래도 즐거운 영화를 봤다는 표정을 짓자구... 그때 그, 요한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길고 긴 연기를 내뿜는 밝은 얼굴과, 그 속에 감춰진 그만큼의 어둠을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눈부신 쾌활함은 언제나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즐겁다는 영화를 봤으니 그래도 즐거운 영화를 봤다는 표정... 즐겁다는 삶이 주어졌으니 그래도 즐거운 삶을 산다는 눈빛... 누군가 남기고 간 빈자리의 팝콘처럼, 부풀긴 해도 식어 있는 그의 이면을 그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었다. 단지 그런 예감을 나는 할 수 있었다. 즉 우리 모두가  

상처를 지닌 인간이란 것, 해서 세 사람의 삶에는 해피엔딩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게 아닌가... 길을 걸으며 생각했었다.

 

정말이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가올 모든 불행들을 나는 막을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다가올 그 모든 불행들을...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해 겨울 그곳은 우리에게 정말이지 옛집과 같은 존재였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분명 켄터키 치킨의 그 창가에서 한 잔의 맥주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그저 눈을 감았다 고개를 돌린 느낌인데... 갑자기 그녀가 눈앞까지 다가와 서 있는 기분이었다. 자연스레 우리도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늦은 밤 그녀를 바래다주는 일 역시... 보로메 섬에 왔으니 해안을 거닐어야겠지, 하는 것마냥 자연스런 일과가 되었다.

 

 모리스 라벨 :: 바스크 지방의 시부르 출생. 생후 3개월 때 파리로 이주, 14세 때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 ·대위법(對位法) ·작곡 등을 공부하였다. 고전적인 형식의 틀을 활용하는 것과 새로운 피아니즘의 개척이라는 두 가지 요인(要因)은 그가 일생 동안 지녀온 경향으로, 이 경향은 최초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재학 중의 작품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1899)과 《물의 장난》(1901)에 잘 나타난다.
작곡계의 등용문인 로마대상에 1901년에 응모하여 2위로 입상하였으나, 그 후로는 그의 작풍(作風)에 반감을 품은 심사위원회로부터 응모조차 거부당했으며, 이것이 스캔들로 발전, 파리음악원장 사직으로까지 확대되어, 결국 1위는 하지 못했다.그러나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와 《거울》(1905) 등에서 대담한 화성과 음색의 표현법을 확립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 이국을 동경하고 환상을 좋아하는 그의 취미는 《셰라자드》(1898), 《박물지(博物誌)》(1906), 《마다가스카르섬의 노래》(1925∼1926) 등의 가곡과, 오페라 《스페인의 한때》(1909), 《어린이와 주문(呪文)》(1920∼1925), 그리고 《스페인광시곡》(1907)과 《볼레로》(1928) 등의 관현악곡과 결부되었다.
그는 흔히 드뷔시와 함께 인상주의 작곡가로 분류된다. 사실 새로운 화성어법(和聲語法)과 음역의 확대 등, 새로운 음색법에서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으나, 윤곽이 명료한 선율선(旋律線), 규칙적인 프레이즈 구조, 고전적인 형식의 활용이라는 점에서 드뷔시와는 다르다. 주요 작품으로 앞에 열거한 것 외에 발레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1912), 《마 메르 루아》(1913)와 현악사중주곡 ·피아노곡 《밤의 가스파르》(1918), 《쿠프랭의 무덤》(1917)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리스 라벨 [Maurice Joseph Ravel]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밥 딜런 ::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Robert Allen Zimmerman)이다. 미네소타주(州)에서 출생하였다. 유대계이다. 고교시절부터 로큰롤을 부르고 기타를 쳤으며, 그 후 대학을 중퇴하고 뉴욕으로 나가 당시 유행했던 포크송운동에 뛰어들어 1962년 《바람에 날려서 Blowin’in the Wind》를 발표, 인기가 높아지면서 당대의 총아가 되었다. 이 노래는 딜런 자신의 본의와는 달리 공민권운동에서 널리 불리면서 그는 이 운동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는데, 딜런은 이렇게 되는 것을 싫어한 듯 1965년부터는 로큰롤의 요소를 대폭 도입한 《미스터 탬버린 맨 Mr.Tambourine Man》 등으로 음악적인 방향전환을 명시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 후 젊은층의 많은 팬을 확보하고, 레코드도 히트하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의 정력적인 음악활동은 1970년대에 들어서자 주춤해지고, 1980년대가 되면서는 작품에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져, 데뷔 당시에 가졌던 반체제적인 이미지는 크게 사라졌다.
미국 노래의 전통에서 시적인 표현을 새롭게 만들어낸 공로로,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밥 딜런 [Bob Dylan]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언젠가 꼭 저곳을 가보겠다 생각을 하면서도 졸업을 할 때까지, 또 직장을 다니면서도 시간을 낼 수가 없었어요. 아니, 시간보다는... 제가 이곳을 오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잊고 있었단 느낌이에요.

 

어떤 묘사를 하지 않아도 세상의 가혹함은 빛을 발하는 법이었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 하지만 그 순간은 서로를 뒤덮은 젊음의 빛만을 보았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이렇게 왔잖아요. 오히려 한 번도 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봄이나... 가을의 고궁을 보았다면 지금의 이 풍경에 실망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좋아요. 지금도 좋고... 앞으로는 계속 더 아름다운 고궁을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감상하는 일이 그래서 좋았어요.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너무나 다른 세계니까...

 

말없이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보기에 따라 끄덕인 것도 같고, 그저 말없이 거부를 표하는 동작으로도 볼 수 있었다.

 

실은 그래서 언제고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생각을 했어요. 그래야만 최대한 상처를 줄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로선 그런 풍경의 고궁조차도 더없이 아름다웠던 거예요. 언제나 마지막일 수 있으니까. 언제나 늘 그런 식일 거라 믿었으니까. 그런, 그녀에게

그래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실은 알 수 없었다.

 

이를테면 그녀를 만나기 전의 세계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아는 여자애들의 전부였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쉽고, 간편한 세계였다. 이뻐와 착해, 그리고 돈 있어로 모든 것이 해결되던 세계였으니까. 쉽고 쉬운 초급 영어의 페이지를 넘겨버린 중학생처럼, 그래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죽은 황후가 살았던, 이제는 죽은 잔디와... 죽은 나뭇잎들이 뒹구는 그 뜰은, 그래서 내가 접한 새로운 세계의 첫 페이지였다. 이뻐와 착해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 페이지를, 그러나 실은 누구나 건너야 한다는 사실을 안 것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것이 인생이다. 어떤 인간도 돈 있어, 만으로는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으며 어떤 여자도 오빠, 나 오늘 이뻐? 로 평생을 버틸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내가 아는 어떤 여자와도 달랐고... 나는 그런, 그녀를 만난 지극히 평범한 또래의 남자일 뿐이었다.

 

인간은 말이야... 근본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동물이야. 비슷해 보이는 여섯 조각이지만 모양이든 크기든, 어쨌거나 이중에서도 제일 맘에 드는 걸 고르지. 그렇게 다 먹을 것처럼 덤비다가도, 또 조금이라도 배가 부르면 치즈 자체를 망각하는 게 인간이야.

 

어쨌거나 너가 좋았다면 그걸로 된 거라구. 지금은 그걸로 오케이야. 문제는 앞으로의 삶이지. 이 세상은 뭐든 가질 수 있다, 뭐든 선택할 수 있다는 환상을 끊임없이 심어줘. 그래야만 끝없이 부러워하고, 끝없이 일하는 99%의 인간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결국 그게 평범한 여자들의 삶인 거야. 남자도 마찬가지야.  

그게 인간이야.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多數結)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 너나, 나나... 인간은 다 그래.

 

그런 생각도... 해본 적 없어요. 그런데 형, 저는 한 가지는 알아요. 그 어떤 인간도 실은 나에 대해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거... 이러쿵저러쿵 말들은 해도 실은 누구도 자기 자신만을 생각할 뿐이란 거. 그건 정답이야, 하고 요한은 얘기했다. 하지만 명심해, 앞으로의 길에는 정답이 없어. 뭐, 이러쿵저러쿵 말은 하지만 나 역시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인간이니까...

 

어딜 간다 하더라도... 부럽지도, 부끄럽지도 않을 나이였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쟈코메티 :: 보르고노보 출생. 스위스의 인상파 화가인 G.자코메티의 아들이다. 1919년에 제네바의 미술 공예학교에서 조각을 배우고, 이어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고대 미술품에 감명받았다. 1922년에 파리로 나와 평생 그곳에서 제작 생활을 하였다. 파리에서의 최초의 4년간은 그랑드 쇼미에르 미술연구소의 E.A.부르델 교수 밑에서 조각과 데생을 시험하여 보았으나 눈에 보이는 것을 조형하는 어려움에 절망하여, 1925년경부터는 사생(寫生)을 중지하고 상상력에 의한 관념적 공간조형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된 것이 추상적·환상적·상징적·전율적인 일련의 오브제(objet)였으며, 이것들은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서 높이 평가되어 1929∼1934년 초현실주의 그룹의 한 중요 구성원으로서 권위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5년 이후는 사생(寫生)에 의한 조각에 몰두하여, 고독과 침묵 속에서의 오랜 탐구 끝에 1948년에 공허 속에서 응결된 것과 같은 가느다란 조상(彫像), 즉 그 자신은 철사와 같이 가느다랗게 깎이면서 그 주위에 강렬한 동적 공간을 내포한 날카로운 조상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들이 주목을 끌어, 이후 조각계의 제1인자로서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동시에 입체적인 공간을 유화로 추구하는 일을 계속하였으며, 또한 예리한 묘선(描線)에 의한 데생과 판화에 있어서 우수한 작품을 남겼다. 이들의 제작은 모두가 눈에 보이는 현실―공허 속에 나타나는 허상(虛像)―그대로를 보이려는 시도였으며, 서유럽 조형미술의 전통에서 가장 현대적·전위적인 표현이었다.
그는 1951년의 상파울루 국제전람회에서 조각상을 받았다. 작품에 철사를 사용하여 새장과 같은 공간구성을 주제로 한 《옆으로 눕는 여자》(1929) 《쉬르리얼리스트 케이지》(1930), 《오전 4시의 궁전》(1932∼1933,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등과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작품인 《가리키는 남자》(1947. 테이트 갤러리 소장) 《디에고의 초상》(1960, 파리국립근대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알베르토 자코메티 [Alberto Giacometti]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귀는  누군가의 입김이 빚어놓은 조각처럼, 어지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기관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누구나 삶이라는 버스에 무료로 올라탄 승객이었다.

 

나... 때문에. 자신의 가슴속에 어쩌면 내내 그 말을 담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는 미처 하지 못했다.

 

아파하던 그 순간의 바람마저도 내게는 한 마리의 슬픈, 짐승처럼 느껴졌었다. 그녀의 들썩이던 어깨가 어느새 굳어져 있었다. 그녀의 눈물도 조금씩 말라만 갔고, 이윽고 그녀는 초점이 사라진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막에서 마주친 작은 아이와 여우처럼, 이 가혹한 세계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녀의 작은 손은 누군가의 손을 얹기 위한 조각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기관이었다. 갓 지은 양옥이 늘어선 그 골목에서 역시나 누군가가 김치찌개를 끓이는 밤이었다. 변함없고 저렴한 삶이 끝없이 이어진다 해도, 역시나 갈 길을 알 수 없다 해도... 나는 이 평범한, 작은 손 하나를 언제까지라도 놓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누추한 외등 하나가 불을 밝히고 선 밤이었다. 아마도 그 외등의 근처에서, 우리는 잘 가라는 인사를 했을 것이다. 오직 그뿐인 짧은 기억에 비해 터무니없이 길고도, 긴 밤이었다.

 

가야 할 길, 갈 수 있는 길이 무궁무진하게 느껴지던 밤이었다.

 

그는 수많은 다른 여우들과 똑같은 여우일 뿐이었어. 하지만 내가 그를 친구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이제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우야.  

 

 변증법적 유물론 :: K.마르크스와 F.엥겔스의 사상 영향을 받은 레닌은 당의 세계관적 교조를 만듦에 있어 주로 엥겔스의 자연변증법 사상과 러시아의 G.V.플레하노프의 유물론을 도식화하고 통속화함으로써 이 교조의 모형을 형성하였다. 마르크스는 역사적 유물론을 주장하면서도 ‘변증법적 유물론’과 같은 존재론의 형성을 조심스레 기피했고, 변증법의 논리를 사회와 역사 영역에만 적용하였다. 철학과 과학의 혼효물(混淆物)인 자연변증법을 구성한 엥겔스의 유물론적 진화론은 플레하노프와 K.J.카우츠키를 거쳐 레닌과 N.I.부하린에 의해 변증법과 유물론의 억지결합인 이 교조로서 발전되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술어를 마르크스는 전혀 사용한 바 없고, 1891년 플레하노프의 저서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이 교조의 체계화 과정에서 볼셰비키당의 세계관적 도그마로 공식화되고 이 공식화된 국정철학(國定哲學)이 곧 1936년 스탈린의 저작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이었다. 이 공식화로 스탈린에 의한 철학의 1인 독점이 이루어지고, 그 이후 소련학계에서는 이 철학교조 이외의 모든 철학적 논의가 전면적으로 금지되고 대용종교(代用宗敎)의 도그마로서 스탈린철학의 독점적 지배가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변증법적 유물론’은 결국 스탈린의 국정철학이요, 그 밖의 모든 철학사상의 연구와 토론을 불모화시킨 철학의 1인 독점체제가 된 것이다. 이 철학교조는 소련 공산당의 공식적 철학 이데올로기로서 반복적인 학습을 위한 사상 강제주입의 교정이었고, ‘DIAMAT’라는 약칭으로 통용되는 ‘공산경전(共産經典)’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1956년 6월 6일 소련의 모든 고등교육기관에 내려진 ‘DIAMAT의 교정에 관한 당중앙위원회의 결의’에 의해 이 스탈린 교정은 폐지되고, 1958년 콘스탄티노프 편(編)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기초》와 1960년 쿠시넨 편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초》를 거쳐 그 후로도 수정이 거듭되어 오늘에 이른다.
우선 이 교조는 마르크스와 특히 엥겔스의 유물론을 계승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마르크스의 철학을 부당하게도 자연계에까지 확대적용하여 진화론적인 유물론 형이상학으로 만든 것은 엥겔스였다. 엥겔스는 물질을 제1차 실재(實在)로 보고 물질의 물질적 ·화학적 변화마저도 변증법적 변화와 발전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모든 철학문제를 아주 단순하게 유물론과 관념론의 2분법으로 이해했고 철학자들도 이에 대응되는 2대 진영으로 대립되어 있다고 전제하였다. 즉, “자연에 대해서 정신이 근원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따라서 결국에 가서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세계는 정신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관념론 진영에 속한다. 자연을 근원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유물론의 갖가지 학파에 속한다”(엥겔스의 포이어바흐論)라고 하였다. 엥겔스의 유물론이 18세기의 기계적 유물론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물질을 상정한 진화론적 특성이 가미된 점이다.
레닌은 의식에서 독립된 물질의 선차성(先次性)을 제시하고 사유는 물질인 뇌수의 분비물인 듯이 표현하였다. 레닌의 유물론은 E.마하나 R.아베나리우스의 감각주의적 실증철학으로 인해 그 지위가 위태로워진 물질의 카테고리를 수호하기 위해 감각이나 경험에서 독립된 객관적 실재로서 물질을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인식론으로는 반영론적(反映論的) 실재론을 마련하였다. 그의 반영론에 의하면 의식은 물질의 반영이거나 불완전한 모사(模寫)에 불과한 것이 된다. 레닌은 “유물론은 대개 의식 ·감각 ·경험 등과 인간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실재를 인정한다.… 의식은 다만 존재의 반영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하였다. 이 명제(의식은 물질의 불완전한 반영이다)는 그 명제 자체의 진리성(眞理性)조차도 인정할 수 없게 하는 패러독스에 빠져 있다. 즉, 수학적 지식이나 그 밖의 온갖 과학이론들이 물질의 반영이라고 주장한다면, 예를 들어 0의 개념은 물질의 어떤 반영이며 만유인력은 어떤 반영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적 전제가 아주 소박한 반영론 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 가장 심각한 약점을 내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스탈린도 유물론 면에서는 레닌의 통속적 유물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즉, 스탈린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에서 “물질 ·자연 ·존재는 의식 밖에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이다. 물질이 1차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은 감각 ·관념 ·의식의 근원이며 따라서 의식은 2차적 ·파생적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의식은 물질의 반영이고 존재의 반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은 유물론은 G.W.F.헤겔의 변증법과 결합됨으로써 L.A.포이어바흐의 기계적 유물론을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엥겔스의 변증법적 자연철학은 의식의 자각과정에 적용되어 온 변증법을 물리적 자연이나 무생물의 영역에까지 잘못 적용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K.뒤링은 마르크스사상 속의 헤겔 변증법 부분을 비판하면서, 모순은 논리적 관계이므로 자연계에는 모순이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엥겔스는 그의 저서 《반(反)뒤링론(論)》(1878)에서 정곡을 찌른 비판을 가한 뒤링의 논점을 반박하기 위해 자연 속에도 모순이 있다는 실례를 제시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물질의 운동 그 자체가 모순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수학의 +와 -, 물리학에서의 작용과 반작용 등을 들어 자연 속에 모순이 내재함을 인정하려 했고, 특히 직선과 곡선이 동일한 것일 수 있는 고등수학에도 진정한 모순이 있다고 강변하였다. 그러나 그는 보리알이 썩어서 다시 새싹이 나오는 예를 들어 ‘부정(否定)의 부정(否定)’의 법칙을 설명했고, 달걀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그 껍데기와 그 속의 병아리 사이의 모순이 격화되어 달걀이 병아리로 질적(質的) 비약을 한다는 예를 들어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 이행(移行)하는 법칙’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런 모든 설명에서 생명 있는 물질을 전제하게 됨으로써 엥겔스의 자연변증법 사상은 유물론에서 변질되어 보리 ·달걀 등 생명체를 기체로 한 진화론적 생명론이 되었다. 레닌도 ‘운동은 물질의 존재방식이다’라고 규정하면서 엥겔스의 자연철학을 계승하여 운동의 범주를 무생명적 물질에서 생명 ·의식 ·사유까지 포괄하여 설명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인 범주로 사용하였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변증법 부분을 전개한 것도 엥겔스였다.
엥겔스는 첫째, ‘양에서 질로의 전화(轉化)와 그 역(逆)’의 법칙에 대해서 양적 규정(量的規定)이 일정한 한계점에 도달하면 그 존재의 질은 새로운 질로 전화한다고 하였다. 물은 0 ℃에서 온도가 증가하여 100 ℃에 이르면 비등점에서 수증기로 전환된다는 것, 그리고 빙점과 비등점 사이에서만 물이 물로서 존재하는데 이것이 도량(度量)이다. 이처럼 양과 질의 변증법적인 통일로서 도량관계가 성립된다고 했고 새로운 질이 생기는 질적 비약을 일으키는 한계점을 결절점(結節點)이라 했다. 둘째, ‘제대립(諸對立)의 침투’의 법칙에 대해서도 생명은 스스로의 부정(否定)인 죽음을 본질적으로 내포하면서 삶과 죽음의 모순으로서 자기를 지양한다는 것이다. 셋째, ‘부정의 부정’의 법칙에 대해서도 유기적 생명체의 형태변환(形態變換)을 들어, 씨앗으로부터 그 부정으로서 성장체가 생기고 다시 그 성장체로부터 자기부정에 의해 씨앗이 생기는 과정을 그 예로 들었다.
스탈린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에서 변증법의 법칙을 4가지로 공식화하여① 제현상의 보편적 관련과 상호의존성,② 자연과 사회에서의 운동 ·변화 ·발전,③ 양적 변화의 질적 변화로의 이행(移行)으로서의 발전,④ 대립물의 투쟁으로서의 발전 등 네 가지를 들고 ‘부정의 부정’법칙을 삭제하였다.
공산당의 정치적 신조로서 주로 엥겔스, 레닌, 스탈린 등에 의해 교조화된 변증법적 유물론은 헤겔의 변증법과 유물론의 강제적인 결합, 자연과 사회의 구별 없이 적용된 실증주의적 방법과 존재론화(存在論化), 당적 실천을 위한 이념도구화 등으로 철학적인 반성과 비판 없는 통속화의 표본이 되었다.
비(非)스탈린화(化) 이후 이 ‘DIAMAT’의 교조는 소련과 그 밖의 공산권 내에서마저도 수많은 철학논쟁을 통해 그 이론적 허점과 허위 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적 기만성이 드러났고, 이 교조의 당적 권위를 장악하고 있던 소련 관학계(官學界)에서도 수차에 걸친 자기 수정에 의해 많은 부분에 걸쳐 대폭 수정되어 변증법적 유물론의 중핵이 크게 변조되었다. 이 교조의 철학적 기초를 동요케 한 가장 치명적인 요인은 현대물리학의 발전으로 유물론의 실재개념이던 ‘물질개념의 소멸’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공산주의 운동과 당의 정치적 실천과정에서 이 교조가 현실과 괴리되어 대내적으로 많은 이념분쟁을 야기시켰고, 특히 G.루카치는 스탈린주의와 제2인터내셔널의 객관주의에 대해 반기를 들고 계급의식 등 의식의 적극적 의의를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의식은 물질에 의해 규정된다는 물질결정론적인 유물론은 ‘의식’의 능동적 역할을 강조해 온 레닌주의 이래로 주의주의적(主意主義的)인 혁명적 실천과 갈등을 일으켰고, 먼저 볼셰비키당과 그 이데올로기가 정치권력의 장악을 통해 사회주의적 경제토대로 만든 볼셰비키혁명도 유물론적인 토대결정론으로는 이론적 합리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1950년대의 토대 ·상부구조논쟁을 통해 소련철학은 토대결정론을 바꾸어 오히려 상부구조인 사회이념이나 이데올로기가 토대에 ‘반작용’할 수도 있다는 내용의 ‘상부구조의 상대적 독립성’ 체제를 들고 나와 변증법적 유물론의 유물론적 기초를 흔들어 버렸다. 이로 인해 소련의 철학교정에서는 물질에 대한 의식의 능동적 역할을 역설하는 새 경향이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이 교조를 결정적으로 혼란에 몰아넣은 것은 1955∼1958년의 ‘사회주의하의 모순논쟁’이었다. 이른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주된 모순인 계급적 모순이 해소되었다고 전제할 때 모순이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유물변증법의 법칙에 따라 소련은 이제 더 이상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잃고 침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역설적 상황이 야기되었다. 한편으로는 ‘소련과 공산권 내에도 모순대립이 상존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기왕의 변증법교조를 고수해 보려는 보수파와 ‘모순은 오히려 발전의 장애물이다’라고 해서 모순의 지향이나 통일이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하여 ‘통일 ·단결 ·일치’가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는 관학파가 대립한 것이다. N.S.흐루쇼프의 평화공존론도 공산권과 자본주의 제국과의 관계를 서로 용인할 수 없는 모순대립(따라서 전쟁불가피론)으로 파악하지 않고 경쟁적 공존관계로 인정한 점에서 ‘현대판 수정주의’로 낙인 찍히게 된 것이다.
스탈린시대에는 자연과학자도 그의 과학연구에 ‘DIAMAT’의 인용이 의무화되었으나 흐루쇼프는 물리학 연구 등 자연과학 연구에 그 강제적용을 면제케 하였다. 맥심 미클루크는 소련 과학문헌의 조사연구를 통해서 소련 과학자들이 그들의 전문적 저작 속에서 변증법적 사고의 법칙을 이용한 단 1건의 예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해서 I.V.미추린, 리솅코 등의 경우와 같이 과학연구에 ‘DIAMAT’의 철학이 도움이 된 예가 없음을 입증하였다. 따라서 스탈린주의의 철학교조였던 ‘DIAMAT’는 공산권 내부에서도, 그리고 서유럽 마르크스주의자들 속에서도 이제 퇴조 ·사멸되고 말았다고 하겠다.
[네이버 지식백과] 변증법적유물론 [dialectical materialism, 辨證法的唯物論]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보들레르 :: 182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62세의 원로원(元老院) 사무국 고관이었고, 어머니는 후처로 28세였는데, 이러한 부모의 연령 불균형이 이상신경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6세 때 아버지가 죽고, 이듬해에 어머니는 육군 소령 자크 오피크와 재혼하였다. 의붓아버지가 대령으로 승진하여 리옹에 부임하자, 11세 된 그는 리옹의 사립학교에 들어갔고, 이어 리옹 왕립중학교의 기숙생이 되었다.
의붓아버지가 파리로 전근하자 루이르그랑중학교로 전학한 뒤 최고학년이 된 18세 때 품행 문제로 퇴학처분을 당하였으나 바칼로레아(대학입학 자격시험)에는 단번에 합격하였다. 그뒤 문학지망을 표명하여 양친을 실망시키고, 카르테 라탱을 방랑하며 방종한 생활을 하였다. 보다 못해 내려진 친족회의의 결의로 인도 콜카타행 기선을 탔으나, 인도양의 모리스섬(모리셔스 本島)과 부르봉섬(프랑스령 레위니옹섬)에서만 머물다가 9개월 뒤에 파리로 되돌아갔다.
성년이 되어 의붓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을 상속한 뒤에는 센강의 생루이섬에 거처를 두고 댄디즘의 이상을 추구하며 호화로운 탐미적 생활에 빠졌다. 흑백혼혈의 무명 여배우 잔 뒤발를 알게 된 뒤 관능적 시흥(詩興)의 원천으로 삼았고, 이후 20여 년간 애증의 악연(惡緣)이 시작되었다. 2년 동안에 유산을 거의 다 낭비해 버리자 법정후견인이 딸린 준금치산자(準禁治産者)가 되었다.
24세 때 《1845년의 살롱》을 출판하여 미술평론가로서 데뷔하였으며, 문예비평·시·단편소설 등을 잇달아 발표하여 문단에서 활약하는 한편, 1848년 의붓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2월혁명의 폭동에도 가담하였다. 또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번역·소개하였고, 이후 만년에 이르기까지 17년간 5권의 뛰어난 번역을 완성하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배우 마리 도브륀과 연애관계를 가졌으며, 또 사바티에 부인의 살롱 단골이 되어 그녀를 성모처럼 받들면서 많은 연애시를 썼다. 1857년, 청년시절부터 심혈을 기울여 다듬어 온 시를 정리하여 시집 《악의 꽃 Les Fleurs du Mal》을 출판하였으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벌금과 수록된 시 6편을 삭제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해 의붓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는 센강 어귀의 옹푸루르 별장으로 옮겨 살았다. 1860년에 《인공낙원(人工樂園)》을 출판하고, 1861년에 《악의 꽃》의 재판을 간행하였다. 이 무렵부터 문학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1864년 벨기에의 브뤼셀에 가서 궁색한 생활을 면하기 위하여 강연여행을 하였으나 이미 건강이 악화된 뒤였다. 1866년 나뮈르시(市)의 생루 교회를 구경하던 중 졸도하여 뇌연화증(腦軟化症)의 징후로 브뤼셀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뒤 어머니를 따라 파리로 돌아와서 입원하였다. 그러나 성병으로 피폐해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듬해 여름에 4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 있는 오피크가(家)의 무덤에 매장되었다.
사후 1868~1869년에 간행된 전집 속에는 고티에가 서문을 쓴 《악의 꽃》(제3판) 《소산문시 Petits poèmes en prose》, 만년의 작품인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Le spleen de Paris》이 수록되었으며, 들라크루아·바그너·고티에 등에 관한 평론은 《심미섭렵(審美涉獵) Curiosités esthétiques》(1869), 《낭만파 예술 L'art romantique》(1868)이라는 제하에 수록되었다. 이밖에 만년의 수기인 《화전(火箭)》《벌거벗은 마음》은 《내심(內心)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보들레르의 서정시는 다음 세대인 베를렌·랭보·말라르메 등 상징파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죽은 지 10여 년이 지나서야 그의 문학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었다. 프랑스의 비평가 폴 발레리는 “그보다 위대하고 재능이 풍부한 시인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중요한 시인은 없다”라고 절찬하였다. 에드거 앨런 포의 지적 세계에 감동하여 낭만파·고답파의 구폐(舊弊)에서 벗어났으며 명석한 분석력과 논리와 상상력을 동원하여 인간심리의 심층을 탐구하고, 고도의 비평정신을 추상적인 관능과 음악성이 넘치는 시에 결부한 점에 그의 위대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Charles-Pierre Baudelair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일요일의 요한은 경영난이 심한 동물원의 낙타 같은 느낌으로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함께, 참 시시껄렁한 영화 한 편을 끝까지 보았다. 저런 걸 왜 만들까요? 왜 어때서. 한 마디로 시시하잖아요. 그래도 시간은 때웠잖아. 산다는 게 특별한 게 아니야, 그저 누구나 시간을 때우고 있을 뿐이지.

 

빛이 사라졌거든. 영감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걸 직감으로 눈치 챈 거야. 이해가 가? 전구가 꺼지듯 어느 날 갑자기 빛이 사라져버린 거야. 유리처럼 굳은 외형은 그대로지만 도리어 무서운 얼굴이란 생각이 들 때가 더 많았어. 그때 알았지, 인간의 영혼은 저 필라멘트와 같다는 사실을. 어떤 미인도 말이야... 그게 꺼지면 끝장이야. 누구에게라도 사랑을 받는 인간과 못 받는 인간의 차이는 빛과 어둠의 차이만큼이나 커.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에 묻혀버리지. 실은 대부분의 여자들... 그러니까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거나... 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 아니,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가수니, 배우니 하는 여자들이 아름다운 건 실은 외모 때문이 아니야.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기 때문이지. 너무 많은 전기가 들어오고, 때문에 터무니없이 밝은 빛을 발하게 되는 거야.  

그건 단순한 불빛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의 무수한 사랑이 여름날의 반딧불처럼 모이고 모여든 거야. 그래서 결국엔 필라멘트가 끊어지는 경우도 많지. 교만해지는 거야. 그것이 스스로의 빛인 줄 알고 착각에 빠지는 거지. 대부분의 빛이 그런 식으로 변질되는 건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어. 하지만 어쨌거나 그들도 결국은 개인일 뿐이야. 자신의 삶에서 사랑받지 못한다면 그 어떤 미인도 불 꺼진 전구와 같은 거지. 불을 밝힌 평범한 여자보다도 추한 존재로 전락해 버리는 거야.  

인간은 참 우매해. 그 빛이 실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걸 모르니까. 하나의 전구를 터질 듯 밝히면 세상이 밝아진다고 생각하지. 실은 골고루 무수한 전구를 밝혀야만 세상이 밝아진다는 걸 몰라. 자신의 에너지를 몽땅 던져주고 자신은 줄곧 어둠 속에 묻혀 있지. 어둠 속에서 그들을 부러워하고... 또 자신의 주변은 어두우니까...

 

자신의 빛을... 그리고 서로의 빛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 기대하지 않고... 서로를 발견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야. 세상의 어둠은 결국 그런 서로서로의 어둠에서 시작돼. 바로 나 같은 인간 때문이지. 스스로의 필라멘트를 아예 빼버린 인간...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 않는 인간... 그래서 난 불합격이야. 나에게 세상은 불 꺼진 전구들이 끝없이 박혀 있는 고장 난 전광판과 같은 거야. 너랑은 다른 거지...

 

넌 너도 모르게 그런 말을 했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야. 그 친구는 이제 막 불을 밝힌 전구와 같으니까...

 

두 권의 잡지를 들고 돌아오던 그 길을... 마냥 타야 할 버스를 흘려보내던 정류장의 기다림을... 하여 다른 노선의 버스에 몸을 싣던 그 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밤 열 시의 버스는 몽유병을 앓는 사람처럼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노선을 배회하고 배회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순간의 나 자신이 그런 느낌으로 세계를 배회하는 기분이었다.

 

알 수 없는 침묵이 그녀와 나 사이에 은빛으로 빛나는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 숨소리와 섞인 그 바다의 잡음... 밀려가고 밀려오는 파도의 작은 포말이... 고요한 고막의 모래밭을 적시는 소리를 나는 분명 들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사랑은 분명 바보들만의 전유물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의 나는 분명 바보가 될 기회를 박탈당한 인간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샤를 페로 :: 1628년 1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 큰형 니콜라는 신학자, 작은형 크로도는 해부학자이자 건축가였다.<빨간 모자(Le Petit Chaperon Rouge)>, <장화신은 고양이(Le Maistre Chat ou Le Chat Botté)>, <신데렐라(Cendrillon)>등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동화집 ≪옛날 이야기(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é)≫의 작가이자, 17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비평가이기도 하다. 1670년 아카데미프랑세즈 회원이 되어, 아카데미의 집회에서 낭독한 시 <루이 대왕의 세기>를 계기로 하여 일어난 이른바 ‘신구논쟁(新舊論爭)’ 때는 진보파를 대표하여 보수파의 니콜라 부알로와 당당하게 싸웠다. 결국 양파는 화해하여 결론이 났는데, 페로의 논지는 ≪고대인과 근대인의 비교론≫에 정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샤를 페로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오보에 :: 오보에란 이름은 프랑스어의 ‘음이 높은 나무피리’라는 뜻의 오브와(hautbois)에서 나왔다. 오케스트라용의 콘서트 오보에는 길이 69 cm 가량의 원추관(圓錐管)으로 되었는데 원래는 목관이지만 합성수지나 금속제도 시도되고 있다. 이 악기는 클라리넷이나 플루트보다 먼저 나온 악기로 16세기에는 이미 주요한 관악기에 포함되었고 바흐, 헨델시대에는 파고토(바순)와 함께 목관악기로서 중요시되었다. 그 후 반음계용의 키가 차차 정비되어 음역은 b'에서 f까지의 2옥타브 반에 이르고 악보도 실음(實音)을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동양적인 애수를 띤 음색이 바로크시대의 작곡가들을 매료하여 비발디, 바흐, 헨델의 협주곡·실내악곡 등 작품이 많다. 오보에족(族)의 악기에 오보에 다모레·잉글리시 호른·바리톤 오보에·소프라노 오보에·콘트라베이스 오보에·뮈제트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보에 [obo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깊이 잠든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한 줌의 부스러기도 보이지 않는 깊고, 깨끗한 어둠이다.

 

한 줌의 부스러기도 남아 있지 않은 그해의 겨울을 다시 생각해 본다. 덧없이 짧은 겨울이었지만 아마도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겨울이었을 것이다.

 

인생에 주어진 사랑의 시간은 왜 그토록 짧기만 한 것인가. 왜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왜 인간은, 자신이 기르는 개나 고양이만큼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왜 인간은 지금 자신의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망각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인생의 해는 이미 저물었지만, 그래서 내 마음은 여전히 그해의 겨울에 머물러 있는 기분이다.

 

설사 눈부시지 않았다 해도, 그것이 내 삶에 주어진 사랑의 전부였다는 생각이다.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적어도 변기에 앉아서 보낸 시간보다는, 사랑한 시간이 더 많은 인생이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변기에 앉은 자신의 엉덩이가 낸 소리보다는, 더 크게... 더 많이 <사랑해>를 외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딸기밭이여, 영원하리

다음주부터 나와, 알았어... 요? 라고 했다. 매우 이상한 이유이긴 하지만, 그 '요' 때문에 나는 대학을 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누구나 그럴 듯한 학교를 나오고, 그럴 듯한 직장을 얻고, 그럴 듯한 차를 굴리고, 그럴 듯한 여자를 얻고, 그럴 듯한 집에서 사는... 그럴 듯한 인간이 되고 싶은 시절이었다. 그럴 듯한 인간은 많아도 그런, 인간이 드문 이유도... 그럴 듯한 여자는 많지만 그런, 그녀가 드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럴 듯한 것은 결코 그런, 것이 될 수 없지만 열아홉 살의 나는 미처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럴 듯한 소설이라 생각했는데 결과가 발표된 지면에는 이름조차 한 줄 나와 있지 않았다. 대신 더 그럴 듯한, 당선작을 읽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었다. 세상이 원한 것은 더, 그럴 듯한 드라마였다.

 

찬물로 설거지를 마친 고무장갑도 이보다 차진 않아.

 

그녀는 그런 여자였다.

 

요한은 그런, 인간이었다.

 

갑자기 그럴 듯한 인생을 살고 있다 기분이 드는 겨울이었다.

 

어차피 똑같은 하루잖아, 생각은 했었지만 똑같은 날이라곤 할 수 없는 토요일이었다.

 

 베들레헴 ::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팔레스타인의 중앙산맥, 사해(死海)까지 계속되는 ‘유다의 광야’의 끝,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의 연변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이며, 예수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동굴 뒤에는 성탄교회(聖誕敎會)가 있다.
역사상으로는 이미 BC 14세기에 등장하며, 그 후 부근의 마을과 광야의 유목민의 교역소로서 발전하였고, 16세기경부터는 올리브재(材)와 진주조개의 가공업도 발달하였다. 그리스도교도의 순례지이며, 1967년 이스라엘이 점령하였다가 1995년 12월 팔레스타인으로 반환하고 철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들레헴 [Bethlehem]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그런 걸 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이건 꼭 타고 가야지, 그런 심리가 되는 거지. 두 시간 줄서서 5분 열차, 두 시간 줄서서 5분 회전바쿼, 두 시간 줄서서 5분 바이킹...

 

그럴 듯한 인생이 되려 애쓰는 것도 결국 이와 비슷한 풍경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이왕 태어났는데 저건 한번 타봐야겠지, 여기까지 살았는데... 저 정도는 해봐야겠지, 그리고 긴긴 줄을 늘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버리는 것이다. 삶이 고된 이유는... 어쩌면 유원지의 하루가 고된 이유와 비슷한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더없이 짧은 순간이었겠지만 나는 영원히 그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저마다의 불을 밝힌 전구들과, 서로의 불을 밝힌 그녀와 나... 정해진 궤도를 따라 어둠 속을 비행하던 두 마리의 목마를 잊을 수 없다. 오르락내리락 번갈아 허공을 박차는 목마 위에서 그녀를 향해 뻗었던 손을 잊을 수 없다. 잡을 듯, 그러나 닿지 않던 그녀의 손도 잊지 못한다. 하여 바라보던 서로와, 그래도 하나 안타깝지 않던 마음을 잊을 수 없다. 라운드 앤 라운드   기억의 어둠 속에서 여전히 불을 밝힌 그 풍경은, 수십 마리의 목마와 더불어 언제나 그곳에서 돌고, 돌고... 돌고 있다. 그 짧은 기억의 삽화를 떠올릴 때마다, 하여 반짝이는 한 장의 크리스마스카드가 영혼의 우체통 속으로 배달되는 기분이다.

신의 선물이란 아마도 그런 것일 거라,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서서히 회전을 멈추던 두 마리 목마와, 땅으로 돌아와 서로의 손을 잡던 두 사람을 잊을 수 없다. 돌아서 한참을 걸을 때까지 서로의 등에 묻어 있던 색색의 불빛도 잊지 못한다. 어두운 세계를 달려갈 버스를 기다리던 순간까지도... 그때의 불빛들이 숨 쉬듯 깜박이며 우리의 몸에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 버스는 텅텅 비어 있었다. 띄엄띄엄 고작 대여섯 정도의 승객들이 외로운 섬처럼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있었다. 버스 뒷자리의 어둠 속에 우리는 몸을 묻었다.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와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어둠이었다.

 

그러니까

라고 속삭인 후, 그녀는 한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왠지 달리는 버스의 속도를 10km 정도 떨어트리던 '그러니까', 와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그녀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실감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머뭇거릴 일도 없죠.

 

음악을 끄고 나는 그녀의 곁에서, 그녀와 함께 그녀의 어둠 속에 파묻혀 있었다. 오늘... 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한 마리의 심해어처럼 고요히, 그러나 작은 빛을 발하며 어둠의 수면 위로 떠올랐었다. 물 밖의 압력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위태위태한 느낌의 오늘, 이었다. 그저 말없이 나는 그녀의 손을 더 꼭, 쥐어주었다. 어둠의 바닥에서 기나긴 해초(海草)처럼 흔들리는 그녀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연약한 물거품과도 같았던 그 말들을, 나는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애썼다.

 

이상하리만치 불편하던 좌석과, 이상하리만치 편안하던 어둠 속에 우리는 둘 다 스스로를 기대고 있었다. 기댈 수 있었으므로, 그녀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었으리란 생각이다. 그런 어둠과... 적당한 불편함과... 느닷없는 편안함과... 서행하는 낡은 버스의 뒷자리에서만 할 수 있는 얘기도 분명 세상에는 존재할 거라 나는 생각했었다.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 사람처럼 그녀는 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혼잣말이면서도 질문인, 혹은 넋두리와 같았던 그녀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멈춰 선 채 돌아가던 엔진의 진동도 잊지 못한다. 말하자면 그 어둠의, 멈춰 선 세계 전체가 공회전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여자에겐 여자로서의 자신을 납득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얼른 서로를 칭찬해 주는 거죠. 납득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도대체 왜 그랬을까 싶긴 해도, 또 그만큼 그 납득의 순간이 행복했던 거예요.

 

자신도 모르게 로맨스를 만들고 허물고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이별이 있다 해도 또 언젠가 다른 사랑이... 더 멋진 사랑이 찾아올 거란 납득이죠. 그런, 납득할 만한 희망이 있기 때문에 어떤 비극이라도 견딜 수 있는 거예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남긴 명대사)와 같은.

 

여자는 누구나 자신의 내부에 그런 방을 가지고 있어요. 아름답고, 아름다울 수 있고... 해서 진심으로 사랑 받고... 설사 어떤 비극이 닥친다 해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라고 중얼거릴 수 있는... 그런 방, 말이에요. 아무리 들어갈 수 없는 방이라 해도 결국엔 문득 그 방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전 그게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찾아올 리 없지만, 그래도 그 방문에 몸을 기대면... 기대어 울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죠. 방문을 활짝 연 채 세상을 살아가는 여자도 있을 거예요. 언제든 손이 닿는 곳에, 혹은 현관과 마루 정도를 지나면 곧 방문을 열 수 있는 여자도 있을 테고... 하지만 길고 깜깜한 동굴을 지나,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야 겨우 자신의 방 앞에 다다를 수 있는 여자도 있는 거예요. 설사 열리지 않는 문이라 해도, 또 누구에게 그곳에 와주세요, 같이 가지 않을래요 라고 차마 말할 수 없는 방이라 해도 말이죠. 손에 든 촛불이 꺼져간다 해도, 결국 꺼지기 전에 다시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더라도 말이죠. 그 길이 너무 멀어... 그리고 점점 발걸음이 뜸해지는 여자도 있는 거예요. 그리고 결국 자신에게 그런 방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여자가 있는 거예요. 줄곧 나 자신이 그런 여자라고 생각해 왔어요.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는 몰라볼 정도로 살이 빠져 있었어요. 반갑게 인사를 하긴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낯선 느낌이었죠. 예전 같으면 참 쉽게 날씬해졌다, 너무 예뻐졌다 말할 수 있을 텐데... 쉽지가 않았어요. 이제 그런 말들이 필요하지 않겠구나,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너 너무 예뻐졌다, 하는 친구의 얼굴도 그렇게 밝은 것은 아니었어요. 나는 여전히 그런 인사가 절실히 필요한 인간이었으니까요.

 

분명 누군가 함께 했던 그 방에... 덩그러니 나만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죠. 이제 다시는 누구도 오지 않을... 그리고 다시는 누구와 함께일 수 없는 외딴... 그 어둠 속의 방에서 말이죠. 외롭기가 힘들 정도로 무더운 날이었는데 외로웠어요.

 

홀로 남겨진 방의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건 완벽한 어둠뿐이었죠. 이제 친구는 두 번 다시 이곳을 찾지 않겠구나, 생각했어요. 대신 올라오라고, 자꾸만 올라오라는 손짓을 저는 느낄 수 있었어요. 방학인데... 내가 남자애들 소개시켜 줄까? 하지만 올라갈 수 없는 인간이 세상엔 있다는 걸 친구는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어요.

 

돋보기를 통과한 듯 쏟아지던 볕과, 이제 다시는 납득할 수 없을 여자로서의 나 자신과... 너무나 선명했던 그 그림자를 잊을 수 없어요. 돌아오던 먼 길과, 돌연 이 세상에서 사라진 듯한 나 자신을 잊지 못해요. 자신보다 자신의 그림자가 더 아름다운 여자는... 그림자로서 세상을 살아야 해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나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여자예요.

 

나는 그저 나 자신을 납득하기가 힘든 거예요. 문제가 많은 여자죠. 그리고 두려워요. 굳게 잠긴 그 방에 누군가 찾아온다는 것이... 들어올 것 같다는 것이... 언젠가 문을 열게 된다면 이제 다시는 그 문을 닫을 수도, 잠글 수도 없다는 걸 느끼고 있는 거예요. 문이 활짝 열린 채로 버려진 방을 가져야 한다면   그래서 다시 그곳에 혼자 남게 된다면... 세상의 빛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모든 걸 잠근 채 자신을 파묻은 삶을 살아갈 자신은 있어요. 하지만 모든 걸 열어둔 채... 기다리고... 잊지 못하는 삶을 살아갈 자신은 없는 거예요. 그 이후의 <납득>이란 것이 제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응시하던 창밖의 어둠을... 너무나 작고 흐린 목소리여서 마치 손을 통해 전달되는 듯하던 그녀의 속삭임을... 잊지 못한다. 어둠 속에서 나는 눈을 감았고, 어둠 속의 어두운 길고 끝없는 계단의 어딘 가에서 꺼져가는 촛불을 든 채 서 있는 기분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말없이 숨을 골랐고, 꺼져가는 불꽃을 보살피듯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 또 고르려 애를 썼다. 고기떼가 사라진 바다처럼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는 공허한 어둠이었다. 아마도, 하고 역시나 손을 통해 목소리를 전달하는 기분으로 나는 속삭였었다. 자기 자신을 납득할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거야. 나도 마찬가지야.

 

그 대답은 아주 먼 훗날에 들려줄게. 천천히, 아주 조금씩 그 대답을 만들어가고 싶어. 그 외의 다른 방법을 나로선 찾지 못하겠어. 이건 설득의 문제가 아니라 납득의 문제니까... 그러니까 행동으로밖에는 대답할 수 없는 거라고 나는 생각해.

 

영원한 장소도 영원한 인간도 없겠지만, 영원한 기억은 있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느린 마차처럼 서울로 돌아오던 버스와... 그 속의 지친 공기, 누군가 벗어둔 신발의 말똥 냄새마저도 그저 인간이 발할 수 있는 인간의 체온으로 느껴지는 밤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서로를 간호하는 느낌으로 걸어가던 길고 긴 골목도 잊을 수 없다. 인간의 골목... 그저 인생이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불과한 인간들의 골목... 모든 인간은 투병(鬪病) 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보이지 않았다 해도 분명 말할 수 있는 사실은, 그때 서로의 마음을 수놓던 색색의 불빛... 적어도 흐린 가등의 빛보다는 부시고 반짝였던 빛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빛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리고 그 빛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잘 다녀와. 전화를 끊고 나자 왠지 모르게 할 말을 다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그랬다.

 

갑자기 미처 다하지 못한 말 같은 것, 그런 생각들이 해류를 따라 돌아온 고기떼처럼 마음속에 들끓는 기분이었다.

 

번갈아 서로의 등을 민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왠지 손해를 보는 느낌이었다. 빡빡 부탁해. 빡빡 기나긴 등을 밀면서 어쩌면 비틀즈가 해체된 이유는 존 레논의 기다란 상체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했었다.

이상하게 그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라고 나는 얘기했다. 그럼 오늘 하면 되겠네, 맥주를 마시며 요한이 말했다.

 

우리는 다 함께 요한을 의지했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자신을 의지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의 후회를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결국 <그때>의 인간처럼 무능한 인간은 없다.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 ─ 갈림길의 어느 쪽을 선택해도 그녀에게 <현실적으로> 상처가 될 거란 예감을 한 것이죠. 모르겠어요. 적어도 그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그녀가 모든 열쇠를 쥐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이상하죠? 실은 내가 어떻게 생각했느냐 라는 문제가 아니었던 거예요. 어떤 대답을 해도 그녀 스스로가 행복해질 수 없는 거니까... 진실을 말해도 상처가 되고 거짓말을 해도 상처가 되는 문제라면, 도대체 어떤 말로 그 상처를 대해야 할까... 그리고 답이 없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혼란스러워요. 결국 같이 아파하면 되는 게 아닌가 싶어도, 정말이지 나 자신은 그렇게 아프지가 않거든요.

 

요한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글쎄 꼭 이렇다니까 하며 크리넥스를 뽑아 손가락을 닦기 시작했다. 거품이 나올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꼭 캔을 흔들어요, 제기랄... 사랑은 분명 이 맥주 캔과 같은 거라고 나는 생각해. 뭔가가 터져 나올 거란 걸 알면서도 자신을, 또 서로를 흔들게 되는 거지. 뭐, 어떤 면에선 좋아진 거야. 그런 말을 했다는 건 그 친구에게 <흔들림>이 있었다는 얘기니까. 그래서 묻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던 거야, 비로소... 그리고 바라는 거야. 끝까지 마셔주기를... 입만 대고 내려놓거나, 그런 게 두려운 거고... 속에 담겨 있는 자신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거야. 캔을 말끔히 비움으로써 우리가 맥주의 가치를 인정하듯이 말이야. 거품이 아닌 여자로서의 가치, 거품을 걷어낸 여자로서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었던 거지. 게다가 그 거품을... 뿜고, 누군가의 손을 적시게 한 것도 아마 처음일 거야. 그게 중요해. 거품은 외부의 압력에 맞선 내부의 압력이 일으키는 것이니까... 즉 이제 비로소 세상과 맞설 만한 작은 힘이 그녀에게 생겼다는 얘기야. 열쇠를 쥔 것은 너나 그녀가 아니야. 바로 세상이지.

찢어지게 가난한 인간의 방에 엠파이어스테이트나 록펠러의 사진이 붙어 있다면 다들 피식하기 마련이야. 하지만 비키니니 금발이니 미녀의 사진이 붙어 있다면 다들 그러려니 하지 않겠어? 즉 외모는 돈보다 더 절대적이야. 인간에게, 또 인간이 만든 이 보잘것없는 세계에서 말이야. 아름다움과 추함의 차이는 그만큼 커, 왠지 알아?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보잘것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그 사실을 알아야 해. 이 세상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들로 끓어넘치는 곳인지를 말이야.

 

헬렌 켈러나 버지니아 울프를 보고 뭐 이따위로 생겼어 하는 인간들도 끓어넘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아인슈타인을 보고도 뭐야 개똥 같이 생겼잖아, 팔짱을 낄 인간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세상은 그런 곳이야.

너는 부끄럽지 않았다는 말은 네가 부끄럽지 않다는 말, 너만 부끄럽지 않다는 말일 수도 있어. 수긍이 가. 하지만 그것이 극복이라고는 생각지 않아. 단지 열등감이 없다는 얘기니까. 이를테면 모두가 열망하는 파티에 집에서 입던 카디건을 걸치고 불쑥 갈 수 있는 인간은 진짜 부자거나, 모두가 존경하는 인간이거나 둘 중 하나야.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은 아예 가지 않아. 자신을 받쳐줄 만한 옷이 없다면 말이야. 파티가 끝나고 누구는 옷이 좀 그랬다는 둥, 그 화장을 보고 토가 쏠렸다는 둥 서로를 까는 것도 결국 비슷한 무리들의 몫이지. 결국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의 몫이야.

 

 헬렌 켈러 :: 앨라배마주(州)의 터스컴비아 출생. ‘삼중고(三重苦)의 성녀’라고 불린다. 19개월 되던 때 열병을 앓은 후, 소경·귀머거리·벙어리가 되었다. 7세 때부터 가정교사 A.M.설리번에게 교육을 받고, 1900년에 하버드대학교 래드클리프 칼리지에 입학하여, 세계최초의 대학교육을 받은 맹농아자로서 1904년 우등생으로 졸업하였다. 이 당시 마크 트웨인은 그녀에게 “삼중고를 안고 마음의 힘, 정신의 힘으로 오늘의 영예를 차지하고도 아직 여유가 있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녀의 노력과 정신력은 전세계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다양한 활동으로 ‘빛의 천사’로도 불렸다.
1906년 매사추세츠주 맹인구제과 위원에 임명되었고, 1924년부터는 미국맹인협회에도 관계하였다. 한편, 미국 전역 및 해외로 돌아다니며 신의 사랑·섭리와 노력을 역설하여 맹농아자의 교육, 사회복지시설의 개선을 위한 기금을 모아 맹농아자복지사업에 크게 공헌하였다. 1937년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저서에 《나의 생애 The Story of My Life》(1902), 《암흑 속에서 벗어나 Out of the Dark》(1913), 《나의 종교 My Religion》(1927), 《신앙의 권유 Let Us Have Faith》(1940)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켈러 [Helen Adams Keller]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버지니아 울프 :: 1882년 영국 런던 사우스켄싱턴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옥스포드 인명사전을 제작한 레슬리 스티븐으로, 그녀에게 상당한 지적 자산을 물려주었고 필요한 도서를 풍부히 제공해 주었다. 어릴 때부터 영국 고전과 빅토리아 문학을 홈스쿨링하였고, 1897년부터 1901년까지 런던 킹스 칼리지의 여성부에서 고전과 역사를 공부하였다. 또한 대학에서 여성 고등교육과 여성 인권 운동의 초기 개혁가들과 접촉하였다.
아버지의 격려를 받아 1900년대 초부터 전문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04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녀의 가족은 켄싱턴에서 보헤미안 블룸즈베리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그녀는 친언니인 모더니스트 화가 바네사 벨 등을 포함한 형제자매, 지적인 동료들과 함께 예술과 문학 클럽인 '블룸즈베리 그룹'을 결성하였다. 1912년 레너드 울프와 결혼했고 1917년 부부는 그녀의 작품 대부분을 출판한 호가스 출판사를 설립하였다. 블룸즈베리 그룹과 호가스 출판사는 당시 가장 흥미로운 문화예술 활동의 중심지였다.
1905년부터 여러 잡지에 문예비평을 기고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무렵 울프는 런던 문예계의 중요한 인물이었다. 1915년 첫 소설 《출항 The Voyage Out》을 출간한 후, 그녀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인 《댈러웨이 부인 Mrs. Dalloway》(1925), 《등대로 To the Lighthouse》(1927), 《올랜도 Orlando》(1928)를 연달아 출판하였다. 그녀의 소설들은 서술에 대한 비선형적인 접근으로 장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의식의 흐름'에 따른 서술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묘사하고 몽타주 같은 기억의 각인을 묘사하였다. 또한 마르셀 프루스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후기 인상파 화가 등 그 시대 예술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울프의 작품은 잠재의식, 시간, 인식, 도시와 전쟁의 영향을 포함한 모더니즘의 핵심 모티브를 탐구하였다. 
한편 울프는 소설 이외에도 다양한 에세이와 일기, 편지 그리고 전기를 쓴 작가이기도 했다. 문체와 주제 모두에서 그녀의 작품은 성별과 성 역할, 계급과 권력의 변화에서부터 자동차, 비행기, 영화와 같은 기술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선구적으로 포착하였다. 《자기만의 방 A Room of One's Own》(1929), 《3기니 Three Guine》(1938)을 포함해 여성의 지위에 대한 논쟁적인 작품을 썼으며, 한 편의 그림 같은 단편소설을 집필하였다. 전기의 몇 가지 글쓰기 방식을 실험하였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평생 빛나는 편지를 보냈다.
평생 동안 정신건강의 악화로 괴로워했고, 1941년 루이스의 우즈 강에서 자살하였다. 20세기 가장 혁신적인 작가 중 한 명으로서, 그녀의 작품들은 이후로도 많은 관심과 광범위한 논평을 얻었다. 1970년대 페미니스트 비평 운동의 중심 주제 중 하나였으며, 주요 작품이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버지니아 울프 [Adeline Virginia Woolf]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보잘것없는 인간들의 세계는 그런 거야.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없는 거라구.

 

보잘것없는 인간들에겐 그래서 <자구책>이 없어. 결국 그렇게 서로를 괴롭히면서 결국 그렇게 평생을 사는 거야. 평생을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면서 말이야. 이 세계의 비극은 그거야. 그렇게 서로를 부끄러워하면서도 결국 보잘것없는 인간들은 보잘것없는 인간들과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지.

 

보잘것없는 인간들에게 내면이 중요하니, 인간에겐 고귀한 영혼이 있다느니 말을 늘어놓는 건 선생님 자위를 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요, 하는 아이에게 그럼 공부에 집중해 보지 않겠니? 자위가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지나친 자위는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단다. 정 참지 못할 경우엔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기 바래 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어. 그렇군요, 그래서 청결이 중요한 것이군요 하고는 모두가, 어제보다 한 번 더 자위를 해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돼. 너도, 그 친구도 그런 세상을 살고 있는 거고... 그 친구를 사랑한다면 이제 너와, 그 친구가 함께 그런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얘기야.

 

평소와 달리 대견할 정도로 낮춰진 볼륨이어서 어디선가 작은 곤충들이 번갈아, 혹은 떼 지어 울어대는 느낌이었다.

 

잠을 삶의 일부라 생각하는 건 커다란 착각이야. 잠은 분명히 죽음의 영역이라구. 즉 죽어 있는 인간들이 잠깐 잠깐 죽음이란 잠에서 깨어나곤 하는 거야. 그게 삶이지. 그럴 리가 없잖아요 라고 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삶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건 실은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꿈>이기 때문이야. 좋은 꿈을 꾸기 위해 이렇듯 맥주도 마시고... 오줌은 뭐 그렇다 치고 어쨌거나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거지, 안 그래?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꿈같은 일이란 실은 별다른 일이 아니야. 그냥 이렇게 사는 거야, 꿈같은 사랑이란 것도 별다른 게 아니지. 그냥 살아가듯이 그냥 사랑하는 거야. 기적 같은 사랑이란 그런 거라구. 보잘것없는 인간이 보잘것없는 인간과 더불어... 누구에게 보이지도, 보여줄 일도 없는 사랑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거야. 이쁘지도 않은 서로를, 잘난 것도 없는 서로를... 평생을 가도 신문에 기사 한 줄 실릴 일 없는 사랑을...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거지. 왜,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느냐 이 얘기야. 기적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냥 서로를 사랑하는... 신문과 방송이 외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야. 어때, 예수가 걸친 옷만큼이나 초라하지?  

기적이란 그런 거야.  

기적이 그런 거라면, 하고 내가 말했다. 왜 이렇듯 다들 불행한 거죠? 그게 인간이야, 하며 요한은 새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팡이로 바다를 갈라 보여준다 한들 내일 아침이면 또 다른 기적을 원하는 게 인간이지.

 

전혀 달라진 인간이라 본인은 믿고 있지만, 실은 똑같은 관념을 가진 나이 든 인간일 뿐이지. 그게 보편적인 인간의 이른바 성장이야.  

뭐야 바보잖아 싶겠지만 그게 인간이야. 현실적으로 살고 있다 다들 생각하지만, 실은 관념 속에서 평생을 살 뿐이지. 현실은 절대 그렇지가 않아, 라는 말은 나는 그 외의 것을 상상할 수 없어 ─ 라는 말과 같은 것이야. 현실은 늘 당대의 상상력이었어. 지구를 중심으로 해가 돈다 거품을 물던 인간도, 아내의 사타구니에 무쇠 팬티를 채우고 십자군 원정을 떠나던 인간도, 결국 아들을 낳지 못했다며 스스로 나무에 목을 맨 인간도... 모두가 당대의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아>를 벗어나지 못했던 거야. 옛날 사람들은 대체 왜 그랬을까 다들 낄낄거리지만, 그리고 돌아서서 대학을 못갈 바엔 죽는 게 나아! 다들 괴로워하는 거지. 돈이 최고야 무쇠 같은 신앙으로 무장하고, 예쁘면 그만이지 더 이상 뭐가 있어 ─ 당대의 상상력에 매몰되기 마련인 거야. 맞아,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아. 지금의 인간은 그 외의 것을 상상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그 <현실>은 언젠가 결국 아무도 입지 않는 시시한 청바지와 같은 것으로 변하게 될 거야. 늘 그랬듯   또 인간은 보편적인 성장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하자면 죠다쉬를 입은 고등학생의 <멋있어>와, 십자군 원정을 떠나는 인간의 <정당해>와, 가진 건 돈뿐이야 하는 인간의 <에헴>과, 어때 나 이쁘지 하는 인간의 <흥>은 시간만 다를 뿐 같은 성질의 관념이야. 그러니까 미리, 그 외의 것을 상상하지 않고선 인간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어. 이를테면 그래도 지구는 돈다, 와 같은 상상이지. 모두가 현실을 직시해, 태양이 돌잖아? 해도 와와 하지 않고, 미리 자신만의 상상력을 가져야 하는 거야.

 

그래서 신은 단 하나의 유일무이한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신 거야.

 

바로, 사랑이지. 사랑은 상상력이야. 사랑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해? 천만의 말씀이지.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그게 현실이라면 이곳은 천국이야.

 

 고린도 전서 :: 헬라 최고의 상업 도시요 항구 도시였던 고린도는 물질적으로 번성하였지만 우상 숭배와 도덕적 타락이 만연하여 그 여파가 교회에까지 미쳤다. 그래서 당시 교회들 가운데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교회가 고린도 교회였다. 본서신은 고린도 교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제반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록한 서신이다. 즉, 그리스도인의 소송 문제, 독신과 결혼 문제,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 성만찬의 본질적 의미와 임하는 자세, 성도의 죽음과 부활 등 오늘날 모든 성도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문제와 답변이 본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서는 교회 문제 해결을 위한 답변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목
헬라어 성경에서 본서는 ‘프로스 코린디우스 알파’로 불린다. 이는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란 뜻이다. ‘고린도전서’는 이 제목에서 유래되었다.
저자
본서신 만큼 바울 저작설에 이견이 없는 것도 드물다. 본서신을 바울 작품으로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 본서신의 내용이 바울 저작임을 증거한다(1:1; 16:21). ② 사도행전에 언급된 바울의 고린도 사역과 본서신에 나타나는 고린도 교회의 정황이 일치한다. ③ 본서신에 사용된 언어나 문체, 중심 사상 등이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일치한다. ④ 초대 교부들이 본 서신을 바울의 저작으로 인정한다(Polycarp, Irenaeus, Ignatius, Clement of Rome).
기록 장소
본서신에는 바울이 현재 자신이 에베소에 머물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16:8). 또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안부를 전하고 있는데(16:19) 당시 이들 부부는 바울과 더불어 에베소에 머물고 있었다(행 18:18-21). 이로 볼 때 본서신은 에베소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기록 시기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머문 경우는 2차 선교여행 때, 3차 선교여행 때 두 번이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2차 선교여행 때 설립되었기 때문에(행 18:1-11) 2차 선교 여행 당시 에베소 체류 기간 중에 고린도 교회에 문제(1:11; 16:17)가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본서신은 바울의 3차 선교여행시 에베소 체류 때 기록된 것으로 보는 편이 맞다. 한편 바울은 16:8에서 오순절 절기를 지낸 후 에베소를 떠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로 볼 때 본서신은 에베소 체류 후반부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본서신의 기록 시기는 대략 A.D. 55년말-56년 초순경일 것이다.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온갖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일 먼저 제시한 것은 십자가의 도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18). 바울은 우리 위해 고초를 겪고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 정신을 생각한다면 교회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주님이 몸소 보여 주신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유명한 ‘사랑장’(13장)을 통해 교훈하였다. 그리고 결론부에서 다시 한번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16:13), ‘사랑으로 행하라’(16:14)는 말씀으로 당부하였다. 교회 문제, 성도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두 가지 근본 원리는 믿음과 사랑이다.
고린도전서의 배경과 무대
본서신의 중심 무대는 고린도다.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 해협에 위치한 무역과 상업 중심 도시다. 고린도 교회는 이 도시에 설립되었는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와 에게 해를 사이에 두고 500여km 떨어진 소아시아 서편 에베소에 체류하면서 선편(船便)을 통해 고린도 교회 소식을 접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한 답변으로 본서신을 기록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린도전서 [1CORINTHIANS]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가스펠서브)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불 켜진 창과 불 꺼진 창... 인간의 존재감과 상실감이 골고루 섞인 그런 풍경과... 미리, 울리는 전화벨처럼 가슴을 뒤흔들던 겨울바람의 주파수를 잊을 수 없다.

 

여보세요.

그, 지극히 단순한 한 마디 말 앞에서 기뻐하던 스스로를 잊을 수 없다. 어쩌면 요한의 말처럼 나는 빛을 밝히는 스스로를, 혹은 빛으로 환할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를 <상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따라 품속의 고양이와... 벽에 걸린 괘종시계... 또 어둠에 묻혀 있던 지상의 작은 방이 차례차례 불을 밝히듯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나는 그런 식으로 세상을 상상할 수 없었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 보았지만... 그런 식으로 세상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는 생각이다.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 순간>이 지난 후의 사랑은... 사랑이란 이름의 경제활동으로 변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세상임을, 그것이 보편적인 인생의 길임을 그 순간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신의 힌트는, 늘 숲 속에 떨구어진 작은 빵부스러기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그녀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나에게 주었다. 갑자기 사게 된 거예요, 라고 말했지만 갑자기 사게 된 것이 아님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다만 갑자기, 그런 서로를 상상할 수밖에 없던 겨울이었고... 갑자기 다가올 모든 일과 갑자기 변해갈 모든 것들에 대해 어떤 대비도 할 수 없던 겨울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몰랐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상상할 수 있었고... 몰랐으므로... 어떤 이득도 없는 한 마디 말... 작은 동작에도 그토록 쉽게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겨울이다.

 

한밤중에 스며든 나그네처럼, 그리고 2월이 시작되었다.

 

쳐다보던 주변의 시선과 그 모두를 잊을 순 있다 해도, 텅 빈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며 흘린 그날의 눈물만큼은 도무지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때의 아픈 마음과 저미던 가슴, 그리고 결국 폭력으로밖에는 해결할 도리가 없었던 나 자신의 시시함... 그런 세상의 시시함, 그런 인간의... 시시함이 서러워 흘린 눈물이었다. 정말 왜 그런 거야? 세수를 하고 돌아오자 심각한 얼굴로 요한이 다시 물었다. 그냥... 마음에 안 들었어요, 라고밖에는 다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냥 와서 막 때렸다는 인식의 배후에는, 똑같은 수준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무렵의 나는 생각했었다. 왜 인간은 그냥 살아갈 수 없는 걸까. 그냥... 스스로의 삶을 살지 않고, 자신보다 못한 타인의 약점을 에워싸고 공격하는 것인가... 알 수 없었다.

 

몇 번을 지우고 고쳐 눌러 쓴 사연처럼, 그 주의 토요일 역시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어 보내신다구요, 소중한 친구에게 슈베르트의 <숭어>를 꼭 들려주고 싶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방송을 통해서도 몇 차례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요. 네, 숭어가 아니라 <송어>죠. 아직도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있어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줍니다. 슈베르트의 <송어>!

요한은 눈물까지 흘리며 배를 잡고 웃어댔다. 왜, 차라리 상어라고 쓰지 그랬어? 상어도 아니고 숭어도 아니야, 그건 바로 송어였어! 슈베르트 그 양반도 참, 문어도 있고 연어도 있는데 하필이면... 풉풉, 풉, 풉 연기를 뱉으며 굳이 사람을 놀려대던 요한이 생각난다. 고개를 숙인 채 데친 문어처럼 앉아 있던 나 자신과, 저도 여태 <숭어>로 알고 있었어요... 라며 테이블 아래로 내 손을 잡아주던 그녀가 생각난다. 그리고 여전히 깜박이며 불을 밝히고 있던 <희망>이 생각난다. 그, 희망을 흔들며 지나가던 바람처럼 실은 그런 식으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도 인간은 머물 수 없음을, 하여 인생은 흐르는 강과 같다는 사실을 무렵의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문을 나서자 어두운 강처럼 흐르던 골목과, 한 무리의 송어 떼처럼 그 강을 통과하던 바람을 잊을 수 없다. 발목, 정도를 어둠에 담근 기분으로 그녀와 나는 나란히 그 길을 걸어갔다.

 

좋든 싫든 이런 밤길을 남몰래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 삶이, 설사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것이라 할지라도... 저도 여태 <숭어>로 알고 있었어요, 라고 말해 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행복할 거라 나는 생각했었다.

 

음악 정말 잘 들었어요. 그때 어둠에 잠긴 내 발목을 툭툭 건드리고 지나가던 숭어... 같기도 하고, 또 송어여도 좋은 바람의 감촉을 잊을 수 없다. 아득히 이제는 흘러가버린 그 순간과, 그곳에 잠시 함께 머물렀던 <우리>를 잊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그곳이 나의 딸기밭이었고, 스무 살의 우리는 단지 그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나와 함께 가지 않을래요? 난 딸기밭에 가는 중이에요. 실감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머뭇거릴 일도 없죠. 딸기밭이여, 영원하리. 손을 흔들며 사라지던 그녀와, 역시나 손을 흔들고 사라지던 요한의 뒷모습이 그래서 지금도 영원하다는 사실을 그 순간의 나는 알지 못했다.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일들이긴 해도, 인생의 대부분은 그런 일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인간은 변한다. 그리고 그것은 세월이 가져다주는 전염병이다.

 

넌 여전하구나. 친구들은 말했지만 나 역시 변했다고 스스로는 믿고 있었다. 불과 1년 사이에, 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 누군가를 떠올리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결코 자신도 행복하지 않다는 아버지의 말이 사실일 거라 생각했었다. 인생은 매우 이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숙제처럼 밀려 있던 앞날과, 아무런 검사도 받지 못한 지난날들이 엎드린 시신처럼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누워 있던 밤이었다.

 

인생이 힘든 것은 예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나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결국 길고 긴 이 이야기도 복습에 불과할 뿐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지금의 나도 중얼거린다. 있는 힘을 다해 복습을 하는 이 순간에도 인생은 흐른다. 흘러, 간다.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질문과 답을 통해 인간은 거짓을 쌓아나가고, 결국 그것을 진실이라 믿을 뿐이라고, 무렵의 나는 생각했었다.

 

여전히 2월이었고, 여전한 2월이었다.

 

우리는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한다. 다만 거짓을 쌓아갈 뿐이다. 그리고 믿을 뿐이다.

 

세상은 거대한 고아원이다  

 

내가 알던 그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나는... 누구였을까? 그 시절의 웃음과 우리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막연히 어떤, 딸기밭과 같은 곳으로 이어져 있을 것 같던 우리의 청춘은 무엇이었을까? 알 수 없다. 딸기밭(Strawberry Fields)이 실은 존 레논의 추억이 서린 고아원의 이름이란 사실을 안 것은 한참의 세월이 지나서였다.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존 레논은 <딸기밭>은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장소가 아니다, 라는 말을 인터뷰에서 남겼다고 한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거짓이다.

 

그게 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당신도 알 듯이, 난 내가 꿈꾸는 중이라는 걸 알아요.

나와 함께 가지 않을래요? 난 딸기밭에 가는 중이에요.

실감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머뭇거릴 일도 없죠.

딸기밭이여, 영원하리

 

 

 

달의 편지

더없이 바보 같다 ─ 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어떤 <역할>을 나는 해야만 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잡다한 일들로 또 며칠을 보내야 했다.

 

인생의 대부분은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로 채워진 것이었다.

 

하나의 영혼에 스민 빛과 어둠엔 어떤 차이가 있으며, 동일한 육체가 경험하는 삶과 죽음엔 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각했다.

 

역시나 요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한 것이 아닌가, 나는 생각했었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분명 누군가의 비서나 기사를 할 것 같은 얼굴로, 신문을 펼쳐 든 사내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내가 알던 요한은 누구이며 지금 눈앞에 누워 있는 요한은 또 누구일까... 자살을 시도한 것과 자살에 실패한 것엔 어떤 차이가 있으며... 살기 싫은 것과 죽지 못하는 것엔 또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오랜만의 반가운 만남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 방법을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매번 세 사람이 앉아 있던 창가의 그 자리에, 이제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마치 매일 들러 시합을 가져온 경기장에서 레프리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선수가 된 기분이었다. 어떤 경기를 한다 해도, 이제 룰을 책임져 줄 사람이 없다는 기분으로 나는 막연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늘 그 자리에 서 있던 <희망>처럼, 돌이켜보면 언제나 어김없이 우리 곁엔 요한이 존재하고 있었다. 경기장을 만든 것도, 하나하나의 룰을 일러주고 판정해 준 것도 어쩌면 나나 그녀가 아니라 요한이었다는 생각이다.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며 인간은 이상한 것이라고, 인간의 관계도 더없이 이상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말하자면 그 순간의 우리는 갑자기 한 변이 사라진 삼각형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어떤 도형이라 불러야 할까, 그리고 그것을... 어떤 <관계>로 봐야 할 것인가를 나는 고민했었다. 그것은 서로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문제가 아닌, 또 다른 성격의 문제였다. 즉 각 변의 점들을 연결한 선 같은 것이... 그 장력과 인력이, 한순간에 붕괴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한 변이 붕괴된 삼각향처럼 슬프게 떠 있던 밤이었다. 저 달에 갔다는 사람들 말이야... 그들에게도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이나 연인이 있었겠지?

그랬겠죠.

그건 어떤 기분일까, 말하자면 저런 곳으로 가버린 인간을 기다리는 기분... 말이야. 오믈렛을 굽고 우유를 따르며... 여전히 그런 일들을 하면서 저 위를 걷고 있는 인간을 기다려야 하는 마음... 그런 마음에도 어떤 현실감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결국 돌아왔잖아요.

돌아왔지, 하지만 문득 궁금해. 우주를 지나 구름을 건너서 돌아오는 인간의 기분은 어떤 것일지... 그리고 바로 곁에... 같은 땅 위에 있으면서도 돌아오지 않는 인간... 또 그런 누군가를 기다리는 인간의 마음에도 현실감이란 게 있는 건지... 그러니까 문득 <현실>이란 뭘까, 그런 기분도 드는 거야.

 

우리는 누구나 마·찬·가·지·야·.

누구나 마찬가지인 인간에게, 누구도 마찬가지일 수 없는 삶이 주어진 이유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갑자기 나는 울기 시작했다. 마치 울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온 사람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낸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에릭 사티 :: 노르망디의 옹프루르 출생. 옹프루르의 교회 오르가니스트인 비노에게 피아노와 그레고리오성가를 배우고, 12세 때 파리로 나와 콩세르바트와르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아카데미즘에 반감을 느껴 이듬해 퇴학하고 독학으로 작곡을 시작하였다. 1887년 처음으로 피아노곡집을 출판하여 그 특이한 악풍으로 파리악단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생계를 위하여 몽마르트르의 카페에서 피아노를 치는 동안 드뷔시를 사귀게 되었다. 1905년 39세의 나이로 스콜라 칸토룸에 입학하여 대위법을 배우고 1909년 졸업하였는데, 이 무렵에 콕토, 피카소, 댜길레프 등과도 사귀었다. 1916년 콕토의 시나리오에 곡을 붙인 발레곡 《파라드 parade》를 발표하고, 또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큐비즘 ·다다이즘 등의 예술운동에도 참가하였다.
미요 등 ‘프랑스 6인조’는 사티를 높이 평가하여 그들의 정신적인 아버지로 삼았으며, 1923년에는 6인조의 다음 세대인 데조르미에르가 사티를 중심으로 한 그룹을 만들어 ‘아르쾨유악파’가 출범하였다. 이와 같은 칭찬 속에서도 사티 자신은 불안과 회의, 정신적인 고독에 싸인 채 죽었다. 작풍의 특징은 본질적으로 어린이와 같은 순수성에 있으며 작품에는 교향적 극작품 《소크라테스》, 발레음악 《파라드》, 피아노곡 《배[梨] 모양의 3개의 곡 Trois Morceaux en forme de poire》(1903) 《개를 위한 엉성한 진짜 전주곡 Vértable prélude flasques(pour un chien)》 《바싹 마른 태아 Embryons dessénchés》 《관료적인 소나티네 Sonatine bureaucratique》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릭 사티 [Erik Alfred Leslie Sati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그야말로 여느 해와 다름없는 여전한 느낌의 봄이었다. 활짝 무더기로 피어 있는 개나리를 나는 보았고, 교정의 언덕을 뒤덮는 벚꽃의 비를 맞기도 했다.

 

더없이 따뜻한 봄이었지만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인 봄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어떤 조짐이나 징후도 없이, 실은 세 개의 짐노페디 중 1번처럼 느리고 비통하게(Lent et douleureux) 그해의 봄은 흐르고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는 생각이다.

 

환한 오전이었는데 불 꺼진 밤의, 회전목마에 홀로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의 골목길은 어찌 그리 눈부신 것이었던가.

 

자그마한 담 위로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몇 송이의 목련이 더없이 현실적으로 피어, 흔들리고 있었다. 봄이었다.

 

굳게 닫히던 문과 철컹, 뭔가를 자르기라도 하듯 채워지던 자물쇠의 소음을 잊을 수 없다.

그 소리보다 더 크고 무거웠던 골목의 고요도 잊을 수 없다. 버려진 아기처럼 나는 그 문 앞에 서 있었고, 문득 이제 다시는 예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었다. 툭, 목련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그냥... 그냥 그녀를 알던 사람으로 그 자리에 남겨진 사실을 나는 견디기 힘들었다.

 

하루, 이틀, 사흘... 정지해 버린 느낌의 세상 속에서 나는 말없이 그녀의 전화를 기다렸다.

 

이상한 봄이었다.

그리고 실은, 아무렇지 않은 봄이었다.

 

너무나 빨리 이뤄진 결정이었으므로 심지어 나 자신과도 상의를 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응고된 우유처럼 몇 점의 구름이 방울방울 떠 있던 봄날이었다.

 

하품을 하진 않았지만 하품을 참고 있는 얼굴로 사내가 중얼거렸다.

 

실은, 그만큼이나 아무렇지 않은 봄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또 좀처럼 집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도, 봄의 끝까지... 혹은 세계의 끝까지 느리고 비통하게 걸어간 느낌의 봄이었다.

 

두툼한 편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쓴 느낌이었고, 한 자 한 자 검은 자갈이 줄지어 박혀 있듯 단단하고 정갈한 필체였다. 뜨거운 자갈 위를 맨발로 걸어가듯, 그리고 나는 그녀의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있어온 일과 갑자기 닥쳐온 일들... 급하게 흘러가는 현실 앞에서 뭔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백컨대 당신을 볼 때마다 저는 흔들리고 흔들렸습니다. 늘 그랬으며, 추억이 있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생각입니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니 생각보다 훨씬 더 당신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당신에게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당신을 보고 싶어하는 나라는 여자에게서 도망을 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결국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마음속 깊이 어둠을 지닌 인간은... 결국 그 어둠을 이기지 못하는 거구나, 그런 두려움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느낀 것입니다.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고, 잠시 당신으로 인해... 제게서 잊혀졌을 뿐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많은 고민 끝에 저는 제가 살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결심을 굳힌 것입니다. 이해하기 힘드시겠지만 이 세상엔 분명 그런 인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집인 인간.

 

여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얘기였고, 말할 수 없는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말하지 못할 이야기일 것입니다.

 

세상엔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염치없고 이기적인 생각임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들의 장애를 인정은 해주니까요. 세상엔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단다, 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저의 어둠을 장애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수히... 저를 장애인으로 만들어왔습니다. 인정받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저는 분명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입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그 격리의 공간이 영원할 거란 사실을... 그리고 제가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돌아보면 저는 스스로도 스스로를 학대해 온 것입니다. 그 여자 아이의 얼굴 앞에서, 그래서 늘 저도 공범이었다는 죄책감을 지우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의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꿈이야 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면서, 이것이 꿈이길 바라는 어린 소녀를 괴로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꿈입니다. 저만이 꿀 수 있는 세상의 악몽입니다.

 

문득 이 편지도 결국엔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게 아닌가, 생각이 치밀어 오릅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란 생각에, 또 당신이라면 이런 투정을 두말없이 받아주지 않겠나 하는 이기심으로 계속 글을 이어갈 작정입니다.

 

학대는 사라진 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커가는 소녀의 육체처럼 좀더 은밀하고, 부드럽고... 풍만해진 것이었죠. 고통도, 고통을 참는 법도 저와 함께 성장해 있었습니다. 저를 둘러싼 세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5, 6미터쯤 떨어진 인간의 목소리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들리지 않겠지, 속삭이는 목소리지만 그래서 더없이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를 말입니다. 좀더 떨어진 곳에서 난 지금 네가 못 듣게 이만큼 떨어진 곳에서 말하고 있는 거야, 하면서도 듣기를 바라는 계산된 목소리를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난 아무 말 안 했어, 얘가 말하길래 웃은 것뿐이야 라는 느낌의 폭소를 아실런지 모르겠습니다. 더러 니가 알면 어쩔래, 하는 느낌의 비웃음을 보신 적은 있는지요. 또 난 아니야, 난 저렇게 노골적인 친구가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줘... 가 서린 동조의 표정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아무 말 없이... 불쌍해,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잖아... 동정의 시선을 받아보신 적은 있나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 모두를 느꼈어 ─ 말하면 열등감 덩어리란 소릴 듣고... 잠자코 있으면 바보가 되는... 그런 인간을 보신 적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저라는 인간이었습니다.

고통을 견딘다... 진통이란 것에도 여러 종류의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상처를 보호하고 아물 때까지 기다리거나... 혹은 마취를 시키거나... 최악의 경우엔 그 부위를 잘라내고 봉합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사람들은... 또 세상은 저의 상처를 아물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번갈아 끊임없이 할퀴고 찍고 짓누른 것입니다. 저 같은 여자들은 결국 스스로를 마취해야 합니다. 인형이라도 붙잡고 상상의 세계에서만 살아간다거나, 대인관계를 거부하거나... 혹은 여자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자신을 설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처럼 행동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아예 망가진 모습으로 코미디를 자청하는 친구도 보았습니다. 특이한 여자, 웃기는 여자... 설령 여자의 일부를 포기한다 해도 못생긴 여자보다는 낫다,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야근을 마치고 미쓰 리 이렇게 늦었는데 괜찮겠어? 건성으로 묻는 말에 그럼요, 전 얼굴이 무기잖아요! 대답이라도 해야 환영받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대와 나의 영원한 사랑... 이런 노래를 불러봐야 웃음거리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고, 결국 앗싸를 외치거나 웃기는 춤이라도 춰야 박수를 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여자야... 끊임없이 스스로를 마취한 채 말입니다. 얼굴이 무기인 그녀들에게도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막춤을 추는 그녀들에게도 영원한 사랑의 발라드가 있다는 사실을 세상은 결코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여자가 있습니다. 아무리 마취를 해도 고통을 이길 수 없는... 결국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는 여자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마음속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도려낸 여자입니다. 이젠 어쩔 수가 없구나... 마음의 단두대에 올라 스스로를 절단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피... 흥건히 세상을 적시던 마음의 출혈을 잊을 수 없습니다. 발밑을 뒹구는 저 얼굴을 이제 누가 찌르고 찬다 해도 아프지 않을 거야... 그렇게 봉합을 끝내고 몸통만 남은 마음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택한 진통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런 여자를... 도대체 누가 사랑해 줄 수 있겠어요.

그렇습니다. 진정한 고통은 그것이었어요.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 누구도 날 사랑해 주지 않을 거란 절망감... 가난이나 그런 것은 이미 제게는 아무런 고통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쓰러지고 생활이 더욱 궁핍해졌지만...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고생을 하고, 조금씩 불편을 덜어가고... 그래도 어쨌거나 기회란 것이 있는 고통이니까, 또 어쨌든 노력에 따라 소소한 회복이 가능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 ‘사랑’의 문제에 관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세월이 가면, 하고 엄마는 중얼거리셨습니다. 다 괜찮아진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말입니다. 어느새 저도 그런 엄마를 이해하는 소녀가 되어 있었습니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말없이 허공을 쳐다보면서 말입니다.

 

기쁘거나 놀랍거나 불쾌하거나... 그리고 그런 여타의 감정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나만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회의’였습니다. 도대체 내게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일까 라는 회의... 도대체 내게... 이런 게 왜 필요할까 라는 회의였던 것입니다.

 

미소 짓던 다수의 시선 앞에 저는 늘 굴복해야 했습니다. 어떤 개인도 세상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어느새 저는 성적이나 자격증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잉여인력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직원은 사무실의 꽃이야! 확실히, 맞는 말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아름다운 여직원들은 누구에게라도 기분 좋은 대상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사무실의 꽃은 아니라 해도, 반드시 필요한 사무실의 ‘인간’일 거라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는 밀려나고, 또 밀려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름다움에는... 대접을 받아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인간이 누구나 같을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억울한 점이 있다면... 그런 것입니다. 왜 균등한 조건이 주어진 듯, 가르치고 노력을 요구했냐는 것입니다. 더불어 누군가에게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것은 분명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한 부분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인간은, 특히 여자는 저 달과 비슷한 존재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언제나 보여주고 싶은 면과, 끝끝내 감추고 싶은 면이 있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화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고... 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저 달처럼, 오로지 한 면만을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말이죠. 그래, 이 정도면 나... 추하다고는 생각지 않아. 아무리 형편없는 얼굴이라해도 화장을 마치고 집을 나서는 여자의 마음은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끝끝내... 자신의 ‘어쩔 수 없는’ 모든 부분을 달의 뒷면 같은 곳에 묻어두는 것입니다. 늦은 밤 화장을 지우는 여자의 마음은... 그래서 달처럼 먼 곳에 머무르다 지상으로 돌아온 우주인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비웃음을 사는 일이 무언지 아세요? 아름다워지겠다고 발버둥치는 못생긴 여자의 ‘노력’입니다. 다 쓰러져가는 철거민의 단칸방을 허물고 불태우듯... 세상은 못생긴 여자의 발버둥을 결코 용서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세상 모든 여자들과 달리 자신의 어두운 면만을 내보이며 돌고 있는 ‘달’입니다. 스스로를 돌려 밝은 면을 내보이고 싶어도... 돌지 마, 돌면 더 이상해...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달인 것입니다. 감춰진 스스로의 뒷면에 어떤 교양과 노력을 쌓아둔다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달인 것입니다. 우주의 어둠에 묻힌 채 누구도 와주거나 발견하지 못할... 붙잡아주는 인력이 없는데도 그저 갈 곳이 없어 궤도를 돌고 있던 달이었습니다. 그곳은 춥고, 어두웠습니다.  

갑자기 또... 눈물이 치밀어 오릅니다. 아시는지요? 돌이켜, 그곳이 춥고 어두웠노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이제는 스스로에게 그만한 어둠을 감당할 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당신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제 눈앞에 서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몹시도 지쳤을 눈을 언젠가 감아야 하는 순간이 닥쳐온다면, 저는 분명 당신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꿈에서 도망치는 소녀처럼 저는 수없이 뒷걸음질을 쳐야 했고, 그러면서도 점점 당신의 손을 잡기 원하는... 성숙한 여자가 되어갔습니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제게는 끝없는... 꿈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불을 밝힌 한 마리의 목마처럼 영원히 제 주위를 돌고 또 돌 것입니다. 그 순간순간마다 제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마 모르실 거예요. 그리고 돌아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도 모르실 겁니다.

 

저는... 눈물이 뜨거운 것이란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한 번도 뜨거운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습니다. 눈물은 더없이 차가운 것이었고, 그때의 제 마음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알 수 있었습니다. 냉대를 받은 인간의 마음은 차가운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관심과... 사랑을 받은 인간의 마음만이 더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말하자면 당신은 한 여자의 체온을 바꿔주었고, 한 여자를 둘러싼 세상의 기후를 바꾸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의 뒷면처럼 어둡고 어두웠던 저라는 여자를 바꾸어놓았습니다. 어느새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날의 모든 상처가 사라졌음을... 그리고 이제는 튼튼하게 아물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는 언제나 ‘진행형’의 상처를 안고 사는 여자였습니다. 끝없이 덧나고 영원히 이어질... 그런 상처를 안고 사는 여자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더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저는 그런, 흉터를 가진 여자일 뿐이에요.

 

더 이상 같은 공간이 아닌, 또 다른 미래가 열려 있는 공간으로 당신은 나아갔습니다. 당신이라면 변하지 않을 거야, 그런 생각보다는... 당신에게도 변화가 생길 것이고 또 마땅히 변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바라는 모든 걸 얻는 것이 인생의 가치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겨우, 가까스로 얻은 것을 지키고 보살피는 것이 인생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포기하고 포기하면서 세상을 살아온 저 같은 여자에게... 인생의 ‘가치’는 그런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많은 이웃들을 보아왔고, 외면하고 싶은 그들의 현실을 볼 수밖에 없는 삶이었어요. 지지고 볶는다는 ─ 한 줄의 표현처럼 그러기 마련인 것이 삶이라 믿고 있습니다. 또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어요. 피곤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후회하는... 그런 삶 속에 당신이 함께한다는 것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일입니다. 걱정 마라, 세월이 흐르면 다 짝이 나타나는 거란다.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엄마의 위로처럼, 그런 삶을 함께할 남자라면 정말 누구라도 괜찮은 게 아닐런지요. 아니, 끝끝내 외로운 여자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 해도 저는 당신을... 그런, 당신의 기억을 지켜내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를 판가름하는 것도 결국은 시간일 거라 믿습니다. 하고 싶은 말도, 보고 싶은 마음도 길고 긴 시간의 흐름을 따라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갈 것입니다.

 

믿지 않겠지만 말이야... 인간은 매우 이상한 거야.

 

앞으로도 계속 저는 당신을 보고 싶어할 것이고, 또 그런 할머니가 되어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이런 얼굴로 태어난 여자지만 저의 마지막 얼굴은 당신으로 인해 행복한 얼굴일 거예요.

 

차곡차곡 이 말을 눌러쓰면서 알았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만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도 있는 거라고... 저 역시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

사각의 창을 통해 쏟아지던 햇살과... 그 속의 먼지들을 바라보며 나는 말없이 몇 장의 셔츠를 더 다렸다.

 

여지없이 봄이었다.

 

어린아이처럼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있던 봄볕과... 그 포근한 등을 살짝 살짝 떠밀던 소심한 바람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걸었다. 곧 잊어버릴 게 뻔한 마주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고, 그들의 대화를 나는 엿들었다. 그리고 계속 걸었다. 그대로 세상의 끝까지, 봄의 마지막까지 걷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마도 그날이 그해의 봄의 절정(絶頂)이었다는 생각이다.

 

얼마나 먼 길을 걸어가야만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먼 바다를 건너가야만 갈매기는 쉴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포탄이 날아다녀야 우리에겐 평화가 올까

오 친구여 묻지를 마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가야 할 곳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봄날이었다. 아무 일 없는 세상을, 나는 음악을 들으며 아무 일 없이 쏘다녔었다.

 

그런 풍경과... 그런 풍경이 또 한없이 이어질 듯한 느낌의 가로수 밑을 나는 걸었다. 녹색과 고요가 서려 있던 그 아래의 그늘도, 끝없이 펼쳐진 잔디처럼 길 위에 돋아 있던 봄볕의 흔들림도 더없이 따뜻하고 평화로운 것이었다.

 

여지없는 봄이었다. 그리고 문득, 1945년 8월 6일 원폭이 투하되기 직전의 히로시마도 이런 풍경이 아니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었다. 말하자면 그 순간 몇 마리의 새가 날아올랐고, 딱 그 새들의 무게만큼만 흔들리던 전선의 미동을 제외하고는 아무 일 없는 세상이었다. 여전히 앞으로도 아무 일 없는 세상을 살아가겠지만... 다시는 예전과 같은 세상을 살 수 없을 거라고, 나는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해의 봄을 어떻게 보냈는지 그리고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장광설 :: 깊고 넓은 혀.
① 대단한 雄辯(웅변). 또는 쓸데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
② 부처님이나 전륜성왕의 모습 가운데 하나. 본래 부처님의 진실하고 거짓 없는 말을 의미함.
[네이버 지식백과] 장광설[長廣舌], (한자성어•고사명언구사전)


모든 게 귀찮은 봄이었다.

 

 자목련 :: 중국에서 들어온 귀화식물이다. 관목상인 것이 많으며 관상용으로 심는다. 높이 15m에 달하고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듯한 모양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양면에 털이 있으나 점차 없어지고 잎자루는 길이 7∼15mm이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검은 자주색이다. 꽃받침조각은 녹색이며 3개이다. 꽃잎은 6개이고 길이 10cm 내외이며 햇빛을 충분히 받았을 때 활짝 핀다. 꽃잎의 겉은 짙은 자주색이며 안쪽은 연한 자주색이다. 수술과 암술은 많다.
열매는 달걀 모양 타원형으로 많은 골돌과로 되고 10월에 갈색으로 익으며 빨간 종자가 실에 매달린다. 꽃잎의 겉면이 연한 홍색빛을 띤 자주색이고 안쪽이 흰색인 것을 자주목련(M. denudata var. purpurascens)이라고 한다. 정원수로 가꾼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목련 [紫木蓮]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틈틈이 나는 그녀의 편지를 꺼내 읽었다.

그 전까지 세계와 나를 연결해 온 긴장감 같은 것이, 그때마다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묘한 기분이었고, 더없이 외로운 느낌이었다. 줄다리기를 하다 갑자기 상대가 줄을 놓았을 때처럼, 나는 이제 무엇을 붙잡고 잡아당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요한의 말처럼 인간은 이상한 것이었고,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각자 자신의 어둠을 안고 사는 존재들이었다. 인간은 이상한 것이다. 인생은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더없이 이상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낙서를 하듯, 그런 생각들을 끼적이고 끼적였었다.

사용할 일이 전혀 없는 지식을 왜 배우는 걸까. 이를테면 f(x+y) = f(x) + f(y)를 가르치면서도 왜, 정작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 것인가. 왕조의 쇠퇴와 몰락을 줄줄이 외게 하면서도 왜, 이별을 겪거나 극복한 개인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는가. 지층의 구조를 놓고 수십 조항의 문제를 제출하면서도 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교육은 시키지 않는 것인가. 아메바와 플랑크톤의 세포 구조를 떠들면서도 왜, 고통의 구조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이 없는가. 남을 이기라고 말하기 전에 왜, 자신을 이기라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 영어나 불어의 문법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왜, 정작 모두가 듣고 살아야 할 말의 예절에는 소홀한 것인가. 왜 협력을 가르치지 않고 경쟁을 가르치는가.

 

부러워할수록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누구이며, 보이지 않는 선두에서 하멜른의 피리를 부는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있는가... 낙서를 끼적이다 긴 잠에 빠져들던 봄이었다. 이상하게 빨리 자라던 수염과, 이상하게 식욕이 없던 아침...

 

아무 일 없이 맞이하는 아침과

아무 일 없이 맞이하던 밤

그런 낮과 밤이 모이고 모여... 긴 세월이 흐른 후에는 하나의 섬처럼 자리하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두가 함께였던 그 자리에 앉아, 말없이 봄이 끝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던 밤이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그 아·무· 일· 없·던· 봄으로부터 길고 긴 세월이 지나버렸다. 그랬었군, 하고 지금의 나는 고개를 끄덕여보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이름의 섬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의 생각과는 달리, 아무 일 없었다 믿었던 그 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인생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비슷한 섬 하나를 나는 찾을 수 있었다. 단 하나의 푯말이 꽂혀 있는 그 봄은, 말하자면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던 봄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도 요한도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그 시절이 내게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많은 눈물은 아니었지만, 따뜻했던 그해의 봄이 응축된 듯 뜨겁고 뜨거운 눈물이었다.

예전처럼 피곤하지도, 짜증이 나지도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시간을 때운다는 느낌으로 출근을 하고 퇴근을 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느새 그것이 전부인 삶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숨을 쉬고, 일을 하고... 귀찮아도 밥을 먹고, 견디고... 잠을 잔다. 그리고 열심히 산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삶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무료, 해도...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인간들은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고 나는 믿었다.

 

잘 살아보자고 모두가 노래하던 시절이었지만, 그 역시 삶이 아니라 생활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잠깐의 삶을 살다가 이제 생활을 하는 인간이 되어 나는 그 속에 섞여 있었다.

 

여름이었을 것이다. 샤워를 하다 문득, 이별이 인간을 힘들게 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고통보다도, 잠시나마 느껴본 삶의 느낌... 생활이 아닌 그 느낌... 비로소 살아 있다는 그 느낌과 헤어진 사실이 실은 괴로운 게 아닐까... 생각이 든 것이었다.

생활

생활

생활

쏟아지는 물줄기처럼 영영 이어질 생활과... 어느 순간 배수구 속으로 맴돌며 사라질 허무한 삶... 아니, 삶이 아닌... 생활... 잘 말린 옷을 입고 앉아, 선풍기 앞에서 시원한 참외를 깎아 먹던 그날 저녁을 잊을 수 없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분이었고, 그저 무료한 마음으로 무료한 드라마를 지켜보던 여름밤이었다. 아무 일 없고, 아무 문제도 없는 생활이지만... 이것이 <삶>은 아니라고 참외를 씹으며 나는 생각했었다.  

 

함께한 시간 동안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닮아가고 흡수하고 있었음을... 좋든 싫든, 해서 서로에게 서로가 남아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우리가 있다는, 그리고 우리에게 내가 있을 거란 그 사실이 조금은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가까스로, 그래서 외롭지 않은 여름이었고... 커다란 고아원처럼 느껴지던 텅 빈 마루에 누워... 나는 비로소 내 속의 그녀를 향해 중얼거릴 수 있었다.

나도 잘 지내고 있어. 

 

난 아직도 우리가 함께하거나

나눌 대화가 있었으면 해요.

 

그러니까

요한도 잘 지내고 있어,

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산길을 걸어 내려오던 우산 속이었는지, 한없이 흔들리던 버스의 뒷자리에서였는지, 아니면 돌아와 얼굴을 묻던 어둑한 책상에서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거나 문득, 내 속에 남아 있는 그녀를 향해 나는 중얼거렸다. 장마의 마지막 눈물 같은 장대비가 늦도록 새벽까지 이어지던 밤이었다. 그해의 여름은 그렇게 끝이 났다.  

 

곧 가을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한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정도의 그룹에서는 확실히 눈에 띄는 미모였다. 다들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쾌활한 성격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매우 익숙한 아이라는 느낌을 나는 지울 수 없었다.

결코 나쁜 성격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미녀들이 그렇듯 ─ 자신의 미모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 너무나 쉽고, 빠르게 파악하는 아이였다.

 

미녀를 바라보는 세상의 남자들은 마치 킹콩과 같은 존재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시키지 않아도 엠파이어스테이트를 오르고, 가질 수 없어도 자신의 전부를 바친다. 자신의 동공에 새겨진 한 사람의 미녀를 찾아 쿵쾅대며 온 도시를 뛰어다닌다. 어떤 악의(惡意)도 없지만 그 발길에 무수한, 평범한 여자들이 상처를 입거나 밟혀 죽는다. 실제의 삶도 다를 바 없다. 빌딩을 오르고 떨어져 죽는다 한들, 미녀가 어깨를 기대는 남자는 따로 정해져 있다. 그것이 인간이 만든 세상이다.

 

<빛>이었다. 주변의 부러움이 모이고 모인, 실은 주변 각자의, 조금씩의 빛.

결코 낯설지 않은 구도라고 나는 생각했다. 남자들의 세계와 비슷하구나, 힘이 센 놈을 중심으로 질서가 편성되는 남자아이들의 세계를 나는 떠올렸었다. 우열을 가리고 굴복하는... 또 곁에 붙어 다니면 자신의 힘도 강해지는 듯한 그 착각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몇몇이 모이면 더 대담해지는 효과도 닮아 있었다.

 

마침 <중산층>이란 단어가 한창 사회의 이슈가 되던 무렵이었고... 이 정도는 몰아야... 이 정도는 벌어야... 결국 이 정도는 살아야 ─ 사는 구나, 소리를 듣는 세상이었다. 평균을 올리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을 부추기는 것은 누구이며, 그로 인해 힘들어지는 것은 누구인가... 또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나는 생각했었다.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이었다. 닮으려 애를 쓰고 갖추려 기를 쓰는 여자애들을 보며 게다가 이것은 자가발전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있는 한 인간은 결코 자본주의의 굴레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세일이 끝나고 한가해진 어느 평범한 날의 오후였다. 평범했던 일상이 갑자기 특별해진 것은 당시의 톱스타였던 여배우 하나가 백화점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엔 만두 하나만을 메인으로 팔던 만두집들이 꽤나 있었다는 생각을 나는 했었다. 드높이 쌓여 있는 찜통과 그곳에서 피어오르던 연기... 그 자체로도 서비스가 아니라 하나의 요리였던 군만두를 나는 떠올렸었다.  

평균을 올리는 것은 누구인가, 그로 인해 힘들어지는 것은 누구이며,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다시 한 번 나는 생각해야 했다.

 

퇴근을 하고 나는 다시 그 여배우의 얼굴을 봐야만 했다. 대형빌딩을 이용한 옥외광고가 처음으로 붐을 일으킨 무렵이었다. 둘러보니 그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TV와 신문, 잡지와 스크린... 어쩔 수 없이 봐야만 하는 거대한 얼굴 앞에서 오늘 저 언니의 사인을 받았지 뭐야, 기뻐할 군만두의 얼굴도 겹쳐 떠올랐다. 분명 저 언니가 구입한 옷과, 저 언니의 색조화장과, 저 언니가 신은 구두까지도 눈여겨보았을 표정이었다. 또다시 그 옷을 입은 군만두와, 엇비슷한 화장과, 구두를 눈여겨볼 주위의 아이들을 나는 떠올렸어야 했다. 세상의 평균은 그렇게 또 한 치 높아진다. 세상은 과연 발전한 것인가, 나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고대의 노예들에겐 노동이 전부였다.

하지만 현대의 노예들은 쇼핑까지 해야 한다.

대학을 나와야 하고, 예뻐지기까지 해야 한다. 차를 사야 하고, 집을 사야 한다. 이런 내가, 대학을 가는 순간 세상의 평균은 또 한 치 높아진다. 이런 내가 차를 사는 순간에도... 하물며 집을 사게 된다면 세상의 평균은 또 그만큼 올라갈 것이다. 왜 몰랐을까,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이 순간 세상의 평균은 올라간다. 누군가를 뒤쫓는 순간에도 세상의 평균은 그만큼 올라간다

 

사는 게 별건가 하는 순간 삶은 사라지는 것이고, 다들 이렇게 살잖아 하는 순간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할 세상이 펼쳐진다. 노예란 누구인가? 무언가에 붙들려 평생을 일하고 일해야 하는 인간이다.

 

차고 기우는 저 달처럼... 그리움도 그렇게 차고 기우는 것이었다.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나도 잘 지내고 있어...

마음의 협곡을 돌고 돌아, 또 어김없이 돌아오던 내면의 메아리를 잊을 수 없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또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가는 건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군만두에 관한 얘기를 차례차례 써나가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건 마치 단 한 곡의 골든 히트가 담긴 20년 전의 LP를 떠올리며, 그런데 B면의 곡들이 뭐였더라? 1, 2, 3, 4, 5 숫자를 적어 놓고 기억을 쥐어짜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멜로디나 언뜻 떠오른 제목의 일부... 말하자면 그런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그해의 가을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시작과 끝을 제외하고는 모든 순서가 뒤죽박죽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다. 누구도, 인생의 전부를 기억할 수는 없다. 물리적인 시간의 조건은 같다 해도, 결국 기억이란 이름의 앨범 역시 단 한 곡의 골든 히트를 남길 뿐이다. 그런, 이유다.

 

번쩍 박스를 들고 일어나 또각또각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가던 군만두의 뒷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인간의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두고 보자>의 목소리를 나는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맘대로 해, 중얼거리자 이내 바싹 군만두가 등 뒤로 따라붙었다. 그리워라 켄터키 옛집까지...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박스 하나를 무겁게 들고 가는 기분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그래도 되는 세상을 이 아이는 살아왔겠지, 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미녀가 싫다기보다는 미녀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에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랄까, 그것은 부자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과도 일맥상통한 것이란 기분이 들어서였다. 관대함을 베푸는 것은 누구인가, 또 그로 인해 가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 나는 생각했었다. 나 역시 무작정 그들에게 관대했던 인간이었고, 그로 인해 가혹한 삶의 조건을 갖추어야 할 인간이었다. 불쾌했다기보다는 이상할 정도로 쓸쓸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주로 그 아이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말하자면 애초부터 나는 쓸쓸한 벽 하나를 세워둔 채 그 아이를 만났다는 생각이다. 분명 나쁜 아이는 아니었고, 오히려 장점이 많다고도 말할 수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벽, 너머의 아이였다.

 

돌이켜보면 그 창가에서, 나는 줄곧 누군가를 기다렸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그런 시기였으므로, 자리를 피하지도 술집을 옮기지도 않았다는 생각이다. 외로움은 때로 인간을 관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군만두를 먼저 만났더라면, 나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그 아이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의 향방 역시 몹시도 다른 포물선을 그리고 또 그렸을 것이다.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그녀의 편지를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송어와 숭어의 차이를 알지 못한 채, 들어달라는 짐을 들어주며... 또 점점 부피가 커지는 짐의 무게를 견뎌가며 끝끝내 흔한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관대하게 생각해 보아도 인생은 어쩔 수 없이 이상한 것이다.

 

그 아이의 화법에는 언제나 그런 묘한 구석이 자리잡고 있었다. 말하자면 너무나 직설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도리어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모두가 엄연한 사실이다.

 

생각도 대화도, 그리고 꿈도 지극히 현실적인 아이였다.

 

언니들과 함께 화장실을 가야만 배울 수 있는 놀라운 지식 앞에서 나는 때로 멍한 기분이 되기 일쑤였다.

 

대개가 스스로의 도덕성을 확보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래도 그렇게는 살지 않는 사람들... 그래도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얘기 속에서... 나는 문득 그녀를 떠올렸었다. 세상엔 분명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었고, 나도 그녀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는 생각이다. 편지 속의... 잘 지내고 있다는 그녀의 말에 대한 믿음이, 그래서 점점 옅어져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마음속의 누군가를 향해 나는 그렇게 물었고

실은 나도...

하고 답장을 쓰는 기분으로 속삭였었다.  

잘 지내지 못해. 

물끄러미 바라보던... <희망>이 사라진 창밖의 어둠과, 깜박이지도 철자가 틀리지도 않은 번듯한 입간판과... 그녀가 사라진 그 자리에서...

 

아무튼 남자들은 다 똑같다는 얘기들을 늘어놓고는 휴, 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골똘히 무슨 생각을 하는 듯했지만, 형들과 함께 화장실을 다니지 않은 나로선 도무지 알 길이 없는 표정이었다.

 

모르겠어, 라고 대답을 하긴 했지만 실은 모르겠다고도, 이유를 안다고도 말할 수 없다 나는 생각했었다. 막상 누군가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고 나자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도,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에도 실은 정확한 이유가 없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였다.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모르던 나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알고 있다 여기던 시절이었다. 완벽한 사랑은 없는 거야,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말이야... 아마도 그래서라고 생각해, 말은 했지만 또 그 순간 그런데 과연 나는 그녀와 헤어진 것일까, 생각도 드는 밤이었다.

 

그날의 달을 말없이 바라보면서 나는 그녀를 생각했었다. 반달이라고도 초승달이라고도 할 수 없는... 부러진 손톱처럼 보이기도 하던, 그냥 그대로의 달이었다.

 

다시 한 번 그녀를 만날 수 있다면 평범한 색일지언정 작은 매니큐어 하나를 선물해 주고 싶었다. 별다른 말이 아니라 해도... 그리고 그저, 좋은데? 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조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죽기 전에 드는 인간의 후회란 것도 어쩌면 그저 좋은데? 와 같은 말 한마디를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했었다.

 

인간은 과연 이상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끝없이 비교하고 확인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다. 다함께 피리소리를 쫓아가면서도 난 저렇게는 살지 않아, 스스로를 믿고 있다.

 

문득 말이야,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니까 스타는 따로 있는 거야. 헬기를 타고 오고 그저 단상에 앉아만 있어도 다들 사열한 채 스타는 좋겠다... 부러워하는 거지. 그러니까 화가 나더라고. 스타에 오를 리도 없는데 일병 7호봉이 되었다는 둥, 상병을 달았다는 둥... 군대에서 2개월 차이면 하늘과 땅이라는 둥 서로를 비교하고 위치를 확인하는 이 생활이 말이야. 어차피 자갈이나 닦으면서 내가 더 잘 닦는다는 둥, 누가 더 빨리 끝냈다는 둥... 그래서 이제 곧 병장을 다니 어쩌니... 사단장이 볼 땐 그런 게 진급으로 보이기나 할까? 말하자면 그런 거지. 물론 연설이야 그렇게 하겠지. 수고가 많다는 둥, 장병 여러분이 자랑스럽다는 둥...  

그래서 문득 세상도 이런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던 거야. 좋은 대학을 갔다는 둥, 너는 대린데 나는 과장이라는 둥... 뭘 해서 몇 억을 벌었다는 둥, 이번에 마흔다섯 평으로 이사 갔는데 집들이 올래? 라는 둥, 쟤보다는 내가 확실히 더 예쁘다는 둥, 어머 너도 나이 드니 주름살이 보인다는 둥, 지난번 동창회 때 누구는 무슨 백을 들고 나왔다는 둥, 이게 무려 몇 캐럿인 줄 아냐는 둥, 나도 이제 땅부자라는 둥... 그러니까 <스타>를 단 인간들이 내려볼 때는 그런 게 재산으로 보이기나 할까? 또 그런 게 미모로 보이기나 할까 이 얘기지. 군 생활이 그렇더라고... 사병을 괴롭히는 건 같은 사병들이야. 그리고 사병에 가까운 장교들이지. 비교하고 우위를 정하고 무시하고 과시하는... 어쨌거나 전역을 하고 나면 아무 상관없는 일이잖아. 누가 진급이 빠르고 누가 선임이었건... 길에서 마주친 영감탱이가 사단장이건 누구건... 마치 전역을 하듯 그리고 어떤 삶도 결국엔 죽음에 이르는 거잖아.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일까?

라고 말이야. 세상은 과연 그런 것이란 생각을 나도 지울 수 없었다. 밟고 밀치고 앞서고 따돌리고... 쥐를 죽이는 건 함께 뛰는 쥐들이고, 피리를 부는 자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살찐 쥐도 앞선 쥐도 재빠른 쥐도... 피리를 부는 자에겐 언제나 다 같은 쥐들일 뿐이니까. 결국 아무리 서로를 비교한다 해도, 다 이 뛰는 쥐들은 다 같은 쥐들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다들 이렇게 살잖아... 그리고 이 삶을 <다수결>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 삶은...  

뭐하는 짓일까?

말하자면 늘 그런 기분이었다. 따라 뛰는 느낌... 끝없이 따라, 뛰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달리는 인간의 눈에 비친 서 있거나 걷는 인간의 시선 역시 이상하고 이상했을 거란 생각이다. 난 말이야... 매우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 뭐가? 내가 볼 땐 그래, 그래서 경제력이 좋은 남자를 만난다거나 그런 일들... 그러니까 일단은 그래서 눈에 들어온다는 얘기지. 직업을 본다거나 집안을 따진다거나... 말하자면 그런 배경이 있어야 오우, 케이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에 맞는 결혼을 한다거나 그에 따른 윤택한 출발을 하는 일은 사랑이 아니라 영리활동(營利活動)이란 얘기지. 그것이 좋고 나쁘고의 얘기가 아니라... 뭐랄까, 그런 활동을 통해 어쨌거나 그만큼의 이익을 얻은 거잖아. 그럼 된 거 아닌가? 사랑해 주지 않는다거나, 생일인데도 그냥 넘어갔다거나... 말했듯이 그 언니가 몸이 아픈데도 바쁘다며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거나... 그런 일들 말이야. 그런 건 그야말로 욕심인 셈이지. 즉 이윤을 추구해 놓고 자기최면이라도 하듯 이건 연애야, 그래서 우린 결혼한 거야 라고 다들 믿는 게 아닐까 싶어. 그러고는 사랑이 식었다는 둥, 환상이 깨졌다는 둥... 애당초 동기가 된 영리활동에 대해선 끝까지 부정하면서 말이야. 즉 세월이 흐를수록 남자 입장에선 돈만 벌어다주면 되는 거잖아, 난 돈 버는 기계인가... 의 자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잖아. 그런 당연한 일을 왜 서운하게 생각하냐는 거지. 즉 매우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그런 착각이나 포장을 버리지 않는 습성이 인간에겐 있다는 생각이야. 즉 투명하게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결혼생활에 사랑이 없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어. 그러니까 정말 서로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도 실은 지극히 희귀하다는 얘기지. 재벌의 수만큼이나... 혹은 권력을 쥔 인간들, 또 스크린을 장악한 스타의 수만큼이나 희귀하다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착각하고 포장을 일삼는 이유도 마찬가지지. 실은 인간은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거야. 사랑 받지 못하면 살 수 없는 거라구.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영리활동을 하면서도 사랑을 하는 기분, 사랑을 받는 기분... 같은 걸 느끼고도 싶은 거야. 인간의 딜레마지. 그러니까 언니들한테 얘길 해. 언니들은 그냥 그렇게 살면 되는 거라고. 남자들이 다 똑같은 게 아니라   함께, 똑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라고

 

돌이켜보면 좀더 그 아이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어도 좋았을 가을이고, 좀더 밝게 세상을 보았어도 좋았을 가을이었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지치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고, 어떤 면으로든 나 역시 외로웠거나 지쳐 있었으며 그런 내 모습에서 잠시나마 군만두는 호기심을 느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어쨌거나 감사한 일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살아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서로를 스치거나 만나야만 했던 것이다. 왜 모두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그런 이유로 우리는 겨우 이곳에서의 외로움을 견디고 모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기대를 걸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포기를 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존재이다. 신의 기대대로 살 순 없다 해도, 그래서 인간은 끝까지 스스로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동물이다.  

사랑이 있는 한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는 한은, 말이다.

 

나는 스무 살이었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사랑할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그 무렵 내가 포기했던 많은 것들, 그리고 끝끝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단 하나의 사랑에 관한 것이다. 길고 긴 인생의 터널을 생각하면 더없이 짧은 기였지만 그 순간의 빛을 기억하면서, 나는 기나 긴 터널의 어둠을 지나왔다는 생각이다.

 

아름다워지는 여자들... 아름다워 <져야만> 하는 여자들과... 학력을, 차를, 또 집을... 말하자면 힘을 <가져야만> 하는 남자들... 서로에 의해, 서로에 비해, 올라선 서로를 위해 구축하던 프리미엄과... 올라서지 못한 서로에게 요구되던 또 그만큼의 스펙에 대해... 그러나 전혀 달라지지 않는 삶의 성질에 대해... 오로지 스펙과... 프리미엄만 늘어날 뿐인 이 삶에 대해... 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없었다. 30년만 지나면 허물어야 할 한 채의 집을 위해, 실은 조건과 조건... 이윤과 프리미엄에 의해 만난 서로에 의해... 하여, 실은 있지도 않았던 사랑에 내내 절망할 이 삶에 대해... 그 <생활>에 대해... 하여 자신의 자녀밖에는 사랑할 수 없는 이 삶에 대해... 다시 사랑이란 명목으로 가두고 사육하는 이 삶에 대해... 갖추고 올라섰다 한들, 이를테면 일병 7호봉 정도나 될 그 대단한 프리미엄에 대해... 실은 허망한, 하여 과시밖에는 할 게 없는 이 삶에 대해... 그러나 결국 죽음을 맞이할 이 삶에 대해... 고생하셨어요, 말은 하지만 실은 유산을 셈하고 있을 자녀들에 대해... 그래서 실은 그 무엇도 남지 않을 이 삶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얘기도 어떤 서술도... 더러 밥 로스의 그림처럼 척척척 전개되는 지식의 길과... 그렇게 완성되는 한 폭의 철학... 눈앞의 성취와 눈앞의 아름다움... 어때요 참 쉽죠? 하는 느낌의 책들이 있다 해도... 스무 살의 삶이란 그리 쉽게 참 쉽네요, 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싸늘해진 11월의 바람과... 그 속을 떠도는 건조한 먼지들...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던 그 바람 속에서, 하여 나는 외롭고 외로웠었다.

 

특별한 변화가 있을 리 없는 요한이었지만, 변하지 않는 이 삶에서도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일방적인 독백에 불과했지만 더는 마음이 슬프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살아 있으므로... 결국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다 같은, 평범한 인간일 뿐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마치 노래를 부르듯... 생각했었다. 예전에 우린 함께 있었고, 지금은 단지 떨어져 있을 뿐이지. 예전엔 그저 맥주를 마셨던 거고, 지금은 단지 종이도 먹을 뿐이지. 단지 좋은 시절이 지나갔을 뿐, 더 좋은 시절이 언젠가는 다시 오겠지...

 

바람처럼 나를 흔들고 지나가던 요한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오랜만에... 나는 하늘이거나, 혹은 창밖의 어딘가를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았다는 생각이다.

 

무형(無形)의 대답처럼 불어오던 바람의 속삭임을 느끼며 나는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아니, 어디로든 돌아갈 수 있는 길이었을 것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잠을... 포기해도 좋은 밤이었다. 머뭇, 나는 조심해서 무거운 서랍을 열었고 조금은 빛이 바랜 그녀의 편지를 또다시 꺼내 읽었다. 이전과 다름없는 문장이었지만   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모든 걸 포기해 온 길고 긴 문장과... 모든 걸 포기하는 기나긴 문장... 설사 그것이 그날 밤의 착각이었다 해도, 그러나 그 속에 숨어 있는 희미한 기대감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걸 포기한 인간에게 남겨진 한 가닥의 기대... 그것이 바로 희망임을 나는 알 수 있었고, 사랑이 바로 신이 인간에게 남겨준 마지막 <희망>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미 그녀를 찾아낸 기분이었고 그녀를 찾아낸 <나>를, 새롭게 발견한 기분이었다. 먼동이 틀 때까지 나는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졸리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새벽이었고, 다만 몹시 그녀가 보고 싶은 새벽이었다.

 

증기기관차 시대의 인부들이나 먹었을 듯한... 그러나 그들이 먹어도 좋을 만큼의, 많은 양의 식사였다.  

 

흐린 하늘에 비례해 또 그만큼 어두운 느낌의 집이었지만, 그래도 내게는 <그녀의 집>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나는 생각했었다. 스무 살이었다. 무작정 어떤 일을 벌이지 않고서는 아무런 일도 생각할 수 없는 나이였다.

 

벽돌로 쌓아올린 낡은 정류장 옆으로 팔이 부러진 허수아비 같은 느낌의 표지판이 길고 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서 있었다. 대체로, 아무것도 없다는 표현을 역시나 쓸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내게는 <그녀가 머물러 있을 풍경>이었다.

 

실망이라기보다는, 다시 와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가등 하나 켜져 있지 않던 밤이었지만 많은 것을 확인한 느낌의 밤이었었다.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만나고 온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밤의 어둠 속에서 나는 곰곰이 하루를 되새겨보았고...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결국 언제라도... 이젠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안도감이 한 잔의 커피보다 더 훈훈하게 온몸을 감싸는 기분이었다. 내일은 만나겠지 라며... 지도를 손에 쥔 탐험가처럼 나는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한 장의 지도가 눈앞에 펼쳐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의 지도일 거라 그때는 생각했었다. 어떤 해답을 간구하듯 바람이 자꾸만 창을 흔들던 밤이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나를 흔드는 바람이 아니라, 정해진 하나의 방향으로 떠밀고 떠미는 바람이었다.

 

그녀를 만난다면 맨 먼저 어떤 말을 할까... 그녀는 또 무어라 대답을 할까... 그녀는 어떤... 기분일까... 즉 그제서야 그런 뒤늦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너무나 일방적인 방문이었고, 실은 아무런 준비도 갖춰지지 않은 방문이었다. 사실은 알 수 없는 그녀의 생각과... 우르르 몰려나오던 그녀의 동료들... 이를테면 자칫 그녀의 입장을 곤란하게 할 수 있는 여러 변수들과...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말할 수 있는 황량한 벌판... 즉 그런 것들에 생각이 미치자 도리어 오늘의 엇갈림이 다행이란 생각마저 불현듯 드는 것이었다. 나는 좀더 근사하게, 그녀를 만나고 싶었고 무엇보다 확실하게, 그녀를 다시 맞이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그녀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보다 그녀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예의와 절차가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말로는 표현 못할 자신의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그녀에게 미리 전달해 주고 싶었다.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였고, 그것을 결정할 권리 역시 그녀의 몫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매우 이상한 경험이었다. 꼬박 매달려 한 통의 편지를 썼을 뿐인데,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읽고 고치고 읽고 다시 시작하고... 읽고 포기하고 읽고 갈등하던... 하여 마침내 완성한 편지의 전문(全文)은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문장으로 채워진 것이었다. 게다가 지극히 간결한 내용이었다.

 

정성껏 봉한 편지를 품고 걸어가던 그 길을... 그 길의 끝에 서 있던 빨간 우체통의 작은 틈새를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까스로, 마치 신체의 일부를 떼어낸 느낌으로 나는 편지를 밀어 넣었고... 툭, 그 느낌에 비해 결코 가볍다고도 무겁다고도 말할 수 없는 통 속의 울림을 들을 수 있었다. 종이의 무게가 아니라 마음의 무게가 내는 소리였고... 나는 비로소 스스로의 모든 걸 운명에 맡긴 기분이었다. 기억하는 편지의 마지막 문장 역시 다음과 같이 짧고, 간결한 두 줄의 문장이었다. 오로지 진실인 이유로 평범할 수밖에 없는 문장들이었다.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어떤 해후(邂逅)

그런 느낌이었다. 작은 연둣빛의 애벌레처럼, 어쩔 수 없이 그런 시간의 줄기 위에 나도 꼼짝 않고 매달려 있었다는 생각이다. 생각할수록... 생각지 못한 변수의 가능성도 무성한 잎처럼 피어 있던 시간이었다.

 

시간의 결과가 어떤 성충(成蟲)이 되어 날아오른다 해도, 혹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굳어 버린다 해도 나는 좋다고 생각했었다. 정확히 스무 살이 된 그날 아침의 마음도 변함없이 그런 것이었다.

 

쏟아지던 눈과 은(銀)빛의 눈부신 세계만큼은 평화롭고 거룩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이 세계 위로 눈은 내렸고... 한순간 이 세계를 연작으로 이어지는 한 편의 시(詩), 같은 것으로 만들어놓았다.

 

노을이, 그저 희미하던 노을이 스몄다 사라진 순간에도... 해서 등 뒤를 따라 붙던 어둠과... 조금씩 거리가 좁혀지던 우리의 세계를 느끼며 나는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

 

추억이란 이런 것이다. 결국 인간의 추억은 열어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내용물이 담겨 있는 녹슨 상자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울고 있다. 다시는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한 인간의 눈물이다. 내가 간직한 추억이란 이름의 상자는 언제나 어김없이 그날 밤의 헤어짐을 끝으로 굳게 뚜껑이 닫힌다. 더는 열 수 없는 상자가 되는 것이고, 열어봤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텅 빈 상자가 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뭘까?

지금도 자주 그런 질문을 던진다. 이렇듯 빛이 스미는 아침이거나, 저무는 저녁... 흡사 의식이 사라지고 스밀 때의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나는 인생에 대해 생각을 한다. 이렇듯 스며든 빛과, 그래서 밝아진 작은 방...

 

태어나 최초로 잠을 경험하고 눈을 뜬 아기에게 잠이란 무엇이었을까... 지친 눈꺼풀을 끝끝내 감아버린 노인에게 이 삶은 무엇이었을까. 성충이 된 애벌레에게 지나간 기억은 무엇이며, 고치를 짓기 전의 애벌레에게 다가올 미래는 무엇일까?

 

어쨌거나 지금의 내 삶은 이런 것이다. 이것도 삶이란 사실을, 이것이 삶이란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정할 수 있는 인간의 삶은 극히 드물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나비인지 나방인지를 알 수 없는 애벌레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80년대의 인간들이 지구가 멸망할 거라 떠들던 그해를, 나는 살고 있다. 지구가 멸망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언젠가 서른넷이 될 거라고도 나는 믿지 않았다. 막연히... 스무 살과 같은 것이 내내 이어져 인생의 전부를 채울 거라 생각했었다.

 

그 겨울의 그날 밤으로부터 이제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어디로 모실까요? 그런, 물음도 없이 시간은 또 물처럼 흘러갈 것이다.

 

시간의 검은 강바닥에는 늘 커다란 돌처럼 그녀에 대한 죄책감이 가라앉아 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것은 다듬어질 뿐이지 녹거나 떠내려가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장소를 실은 한 번도 떠날 수 없었던 삶이다. 다시, 아무리 긴 시간이 흐른다 해도 나는 크고... 무겁고, 우울한 돌처럼 그 장소에 박혀 있을 것이다. 다만 둥글어진 돌처럼... 나의 노년도 그러하리라 믿고 있다.  

 

연기처럼 모든 게 사라졌다 해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세월이었다.

 

그런 얘기들을 늘어놓는다. 질세라 기사도 맞장구를 친다. 한참을 우리는 토로하고 성토한다. 다른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그런 일상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이 기억의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없다.

 

돌이켜보면 그 감사한 분들의 얼굴과 이름마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런, 인생의 빚을 통해 살아가는 나 자신이야말로 이 세상의 평범한 기적이다.

 

물론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다. 책이 알려지고 이런저런 잡지며 방송에 소개될 때 했던 말들... 그런 말들이 쌓이다 보면 절로 한 시간가량의 <할 말>을 이래저래 얻게 되는 법이다. 삶과 죽음, 인간의 노력... 존재의 가치... 이를테면 모두가 아는 말들이지만, 또 세상엔 이런 말들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함께 울었고... 함께 박수를 쳤다. 더러 손을 들 수도, 박수를 칠 수 없는 이들도 앉아 있었다. 박수의 다른 수단인 그들의 눈물을 보면서 나는 다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천사들은 대개 누군가를 떠나보내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상처를 지닌 이들이었다. 말하자면 하늘이라도 날 것 같은 미모와 권력을 쥔 자들이 아니라 상처, 투성이의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누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거죠? 그리고 왜,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겁니까.

 

정신없이 부풀었던 머릿속의 풍선 같은 것이 조금씩, 바람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방안의 사물이며 풍경... 깜박이는 시간의 흐름... 그 모든 것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이런 설렘에도... 어김없이 따라 붙는 실망에도 이제 익숙해진 지 오래라고 나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위로, 하면서도 문득 또 다른 희망의 끈을 당겨보듯 전화를 걸어본다.

 

지저분한 잡음처럼 창을 넘어오는 빗소리 때문에... 마치 TV를 켜둔 채 잠이 드는 기분이다. 나는 잠이 든다.

 

희망의 끈 하나를 나는 또 그렇게 놓쳐야만 했다.

 

잠을 자고 난 머릿속이 멸망해 버린 세계처럼 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곧, 또 한 해가 갈 것이다. 그러나 곧, 그녀를 잊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곧 이제 나의 왕녀를 기억의 땅 속 깊이 묻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내내 그녀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내내... 슬퍼할 것이다. 어쩌면 내 인생은 애당초 그렇게 정해진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둠 속에서 결국 나는 살아 있는 왕녀를 위한 왈츠가 아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서의 내 삶을 직시한다.

 

실은 어떤 삶도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느리고 장엄해도 누군가를 사랑한 삶은 기적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삶도 기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서른넷이란 나이가 차고 서늘한 현실처럼 머릿속에 스미는 느낌이다. 이제 편하게 이 평범한 기적을 받아들이자고... 나는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낯선 조명과 귓가를 울리는 독일어가 이곳이 프랑크푸르트라는 현실에 더욱 확실한 못 하나를 박아준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지만, 또 시간은 그 모두를 현실로 못 박아줄 것이다.

 

말을 돌리거나 늘이던 여느 때의 어조와는 달리 지극히 간결하고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찾았습니다. 그 한마디의 말 외에 또 어떤 말을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직원의 방문을 받기 전까지도 그 말은 내내 비현실적인 <현실>로 머릿속에 머물러 있었다.

 

딱 한 번 그녀의 전화가 통화 중인 때가 있었다. 마음 편히 그 신호를 들으며 지금 저곳에 그녀가 있다는 사실을... 살아, 숨 쉬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이 현실임을 그제서야 인정하던 마음과... 수화기를 든 손을 타고, 흐르던 눈물을 잊을 수 없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녀의 주소로 책을 보내는 것이었다. 사라진 세월과... 사라져야 했던 이유가 고스란히 담긴 책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 권의 편지였다.

 

너무나 긴 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무리 정확한 현실의 문이 있다 해도, 지나버린 시간은 도저히 그 문을 빠져나갈 수 없는 비현실적인 부피의 바위와도 같은 것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 그저 말없이 한참을 나도 창밖을 바라볼 따름이다. 눈이라도 내릴 듯한 흐린 어둠과 그래서 더 흐려보이는 독일의 달을 바라본다. 이제 내일이면 그녀를 만나게 된다. 단지 시간이 남았을 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로비를 몇 발짝 걸으면 되는 거리에 그녀가 있다. 현실의 문은 더 정확해졌지만... 왠지 모르게 더 커진 듯한 삶의 모호함을 나는 깨닫는다.

 

물론 각오한 일이었지만 어쩐지 낯선 느낌이었다. 그것을 정확히 실망이라 부를 순 없겠지만... 결코 희망이라 부를 수도 없는 성질의 느낌이라 나는 생각했었다.

 

사소한 말들... 아무것도 아닌 말들을 이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나 역시 수평의 땅위에 내려앉은 눈처럼 편안한 마음이었다. 그 순간 아득한 창공을 하강해 온 삶이... 그런, 서로의 삶이 비로소 나란히 땅위에 누워 우리가 지나온 밤하늘을 뒤돌아보는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제목을 알 수 없는 음악이 연기와 섞인 채 우리의 주변을 흐르고 있었다. 그 누구의 삶에도 제목을 붙일 수 없는 거라고, 또 제목을 알 수 없는 거라고 나는 막연히 생각했었다.

 

여전히 제목을 알 수 없는... 낮고, 매우 느슨한 재즈를 들으며 아마도 이 시점이 저녁과 밤을 구분 짓는 경계겠구나, 나는 생각했었다.

 

장소는 달랐어도... 분명 저 역시 같은 분량의 시간을 지나와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나란히,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인간에겐 큰 축복이라고...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거라고 말입니다.

 

말하자면 이것이... 제 삶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했던 삶이 아니라 해도... 결국 이것도 다른 누구의 삶이 아닌 나 자신의 삶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결국 주어진 삶을 살 수밖에 없고, 또 그런 이유로 서로에게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제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이죠.

 

지금도 정확히 그 이유를 알 순 없지만... 말하자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헝클어진 모든 것을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헝클어진 삶임에도 불구하고... 무사한 당신을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뒤돌아 헝클어진 삶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픈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아프지 않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나와 당신이 무사하다는... 우리가 무사하다는 기억을 저는 꼭 가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게 제가 이곳을 찾은 이유의 전부란 생각입니다. 당신이 무사해서... 당신이 무사하니까 이제 저도 무사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느릿한 몇 곡의 재즈와 함께 나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었고, 그 순간이 지나고 나자 다시 사소한 말들, 아무것도 아닌 말들이 필요한 시간이 우리에게 돌아왔다. 헝클어진 그 모두를 그대로 둔 채, 스무 살이었던 여자의 잔에 서른다섯이 된 남자는 와인을 따라주었다. 그리고 서른다섯이 된 여자의 와인을 받은 것은, 아주 오래전 스무 살이었던 한 남자였다.

 

이제 저 문을 나서고, 주어진 각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치 남아 있는 삶의 한 모금을 미리 시음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입 안 가득 머금고 있는 지금의 와인처럼 깊고, 복잡한 맛이었다.

 

어떤 약속이라도 한 듯,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란히, 그리고 아마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마치 오래전의 그날 밤... 과 같은 밤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알 순 없었지만 순간 나는 어두운 하늘과, 눈 덮인 은빛의 세계를 둘러보며 가슴이 뭉클해져옴을 느낄 수 있었다. 떠나갈 이와 배웅하는 이의 입장이 바뀌었을 뿐 다시금 그날 밤, 그 자리에 돌아와 선 기분이었다.

 

우리는 악수를 나누었다. 오래전 스무 살이었던 여자의 손은 서른다섯이 된 남자의 손보다는 작고, 따뜻한 것이었다.

 

그녀를 부둥켜안은 것은 분명 나였지만, 오히려 더 큰 품으로 나를 감싸준 것은 그녀의 입김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뜨거운 눈물이었다.

 

기나긴 시간을 지나 다시 돌아온... 어둡고 눈 내린 순은(純銀)의 세계에서 무사했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전부였다.

 

 

 

해피엔딩

 라우터브룬넨 :: 해발 806m에 위치한 라우터브루넨은 ‘울려 퍼지는 샘’이란 뜻을 가진 시골 마을이다. 인터라켄에서 열차로 약 20분 정도 걸리며 작은 마을이라 도보로 둘러볼 수 있다. 거대한 융프라우의 절경과 작은 집들이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쉴트호른에 가기 위한 등산 열차를 타는 지점이기 때문에 교통편을 이용하기 편리하다. 융프라우 철도망의 서쪽 노선의 교통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마을이 자리하고 있는 U자형의 계곡 주변에는 70여 개의 폭포가 있는데, 특히 '슈타우프바흐 폭포(Staubbach Fälle)'와 '트뤼멜바흐 폭포(Trümmelbach Fälle)'가 이곳의 명소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슈타우프바흐 폭포는 마을의 뒤편 절벽에서 직선으로 떨어지는 낙차 305m의 힘찬 폭포로 그 아름다움에 감동한 예술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했다. 문호 괴테나 시인 워즈워드, 바이런을 비롯해 음악가 멘델스존 등이 이 폭포를 사랑했다고 한다. 마을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데 철도역의 플랫폼에서도 볼 수 있다.
반면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트뤼멜바흐 폭포는 역에서 약 3km 떨어져 있다. 폭포로 일단 들어서면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에서 얼음이 녹아 내려온 물이 매초 2만 톤의 무게로 떨어지는 압도적인 광경을 볼 수 있다. 암벽을 따라 떨어지는 폭포가 자연적인 암굴을 만들어 냈으며 이 암굴로 떨어지는 폭포의 독특한 절경은 이곳의 자랑거리다. 폭포는 높이에 따라 10층으로 나뉘며 리프트를 이용해 올라가서 내려오는 방법으로 둘러볼 수 있다. 폭포가 만들어 낸 암굴 속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엄청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의 박력을 느낄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라우터브루넨 [Lauterbrunnen]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그녀의 오른손이 또다시 나의 왼손을 부드럽게 마주 쥐었다.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의 신체라 해도... 문득 서로를 사랑하는 인간의 몸만큼은 슈크림과 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녹아들 듯 우리는 잠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 순간 보다 더 이 세계를 사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끄러미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또 몹시 나는 굳어진 표정이었지만 그 속의 부드럽고, 부드러운 삶의 이유를 눈치 챈 듯 그녀가 웃으며 속삭였다.

 

 

 

Writer's cut - 그와 그녀, 그리고 요한의 또 다른 이야기

요한의 이야기

일상이 아닌 시간, 다시 이틀 전의 문제로 돌아간 두 사람의 시간이 ─ 말끔한 식탁 위에 부담스런 식사처럼 차려져 있는 느낌이다.

 

불을 붙인다. 잠시, 환하게 타오른 불꽃과 더불어 가늘고 긴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창문을 넘어온 서늘한 바람이... 혹은 한 촉의 화살처럼 날아온 지난 세월이, 문득 두 사람의 가슴에 날아와 꽂히는 느낌이다.

 

살을 파낸 털게의 껍질처럼, 단단하고 공허한 어둠이 그곳에 머물러 있다.

 

많은 술을 마셨지만 누구도 취하지 않은 밤이었다. 아니, 취할 수 없는 밤이라고... 요한은 생각한다.

 

미안해, 라고 말하며 요한은 담배를 꺼내 문다. 덤덤한 얼굴로 말을 잇는 그의 입에서, 평소보다 무거운 느낌의 흰 연기가 새어나온다.

갑자기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거야. 이 삶을... 이 구멍투성이의 삶을 조금은 메우고 싶다는 기분...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정말 힘들게, 한번은 꼭 그런 시도를 하고 싶었던 거야.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거야. 어쨌거나 살아 있는 건 우리니까...  

 

찾아갈 수 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증명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한다,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우리의 몫이란 거야.  

 

호프집의 입간판에도... 담배의 케이스에도 <희망>이란 글자를 새기는 게 인간이야. 문득... 그래서 그런 생각도 드는 거야. 살아 있는 인간들은 모든 죽은 자들의 희망이 아닐까 하는... 그래서 정말이지 꼭 한 번은 그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야.

반짝이는 당신을... 그리고 반짝이며 살고 있는... 우리를 말이야.

 

그녀의 이야기

잘 지내시나요?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무의미한 물음과 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꼭 한 번 당신을 향해 그렇게 묻고 싶었습니다.

 

사는 게 이렇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 당신을 향해 잘 지내시나요? 라고 묻고 있습니다.

 

실은 당신의 영전에서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을 더 가깝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이 눈 아래 보이는 구름 때문인지... 아니면 그 아래의... 작고 하찮아진 세상과의 거리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지금 이 순간, 저는 당신을 느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것입니다. 잘, 지내시나요... 라고 말입니다.

 

가슴 뛰며, 끝없이 달콤한 꿈을 꾸며 누워 있던 그 밤 내내... 어디선가 피를 흘렸을 당신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 이후의 삶은... 차마 삶이라곤 말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삶도 죽음도... 생활도 아닌 그 어떤 형태로, 저도 그후의 일들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실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력한 인간이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 저라는 ‘인간’을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매우 이상했던 우리의 삶은 그렇게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왔습니다.

 

당신을 결코 잊은 것은 아니었지만... 요한이 쓴 글을 읽으며 저는 다시금 당신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처럼... 그리고 곧 전화를 걸거나, 말을 걸어줄 사람처럼... 과거의 당신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그때의 그 빛... 당신으로부터 받았던 그 빛이 있었기 때문이라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까지라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그 아이는 매우 ‘평범한’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평범함을... 평범하게 사랑하며 우리 부부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는 울지 않을 거라 얘기했던 제 자신의 고백도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약속이란 이토록 하찮고, 나약한 것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또 이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 함께 늙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그래서 서로가 비슷해져 간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 세월이 흐르고... 노인이 된다면 세상의 모든 얼굴은 비슷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네, 이렇게 저도 서서히 늙어가고 있습니다. 늙어가는 만큼... 또 그만큼, 당신과 저의 거리도 점점 좁혀져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살아갈수록, 그래서 이 삶이 제게는 하나의 길처럼 느껴질 따름입니다.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는 점점 비슷해지고, 또 결국엔 같아질 거란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

송어와 숭어의 차이만큼이나 분명한 걸, 하고 나는 미소를 짓는다.

 

한 잔의 밀크 티라도 엎질러진 듯 순간 온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작가의 말 -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기

우리는 신혼이었고 아내는 잘 다려진 셔츠의 깃보다도 훨씬 더 눈부셨으며, 저는 매일... 커피믹스 속의 커피 알갱이 수만큼이나 사랑한다는 말을 쏟아 붓는 남자였습니다

 

인간에겐 너무나 먼 <가야 할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만이 사랑받을 수 있다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간은 너무너무, 실은 우매할 정도로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하고 사랑해 왔습니다. 권력과 부가 남성에게 부과된 힘이었다면, 미모는 소수의 여성만이 얻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부와 아름다움은 우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습니다.

부와 아름다움에 강력한 힘을 부여해 준 것은 바로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끝없이 욕망하고 부러워해왔습니다. 이유는 그것이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래도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으며, 누가 뭐래도 그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불변의 진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시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치 지금 70년대의 냉전을 돌아보듯, 마치 지금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은 돈다 믿었던 중세의 인간들을 돌아보듯 말입니다. 물론 그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만으론 <시시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니 그야말로 시시한 걸. 이 시시한 세계를 시시하게 볼 수 있는 네오 아담과 네오 이브를 저는 만들고 싶었습니다.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가능성의 열쇠도 실은 우리가 쥐고 있습니다. 왜?

바로 우리가 절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재능은 자기 자신, 즉 자기의 힘을 믿는 것이라 고리끼는 말했습니다.

 

 막심 고리키 :: 1868년 3월 16일 러시아 볼가강 연안의 도시인 니즈니 노브고로드(Nizhni Novgorod)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Aleksei Maksimovich Peshkov)이다. 아버지(막심 사바치예비치 페쉬코프)는 목수였고 어머니(바르바라 바실리예브)는 작은 염색공장을 운영하는 집안의 딸이었다. 고리키가 3세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서 자랐지만 어머니가 재혼하여 모스크바로 떠나자 외할머니에게 의탁하여 성장하였다. 초급학교를 3년 다니다가 가난으로 중퇴하였으며 돈벌이를 위해 구두수선공, 제도사, 짐꾼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고리키가 11세 때 사망하였다.
1880년 그가 12세가 되었을 때 집을 나와 살면서 각지를 방랑하며 떠돌이로 지냈다. 우연히 볼가강을 운항하는 화물선의 식당에 취업하여 주방일을 하게되었다. 그곳에서 같이 식당에서 일하는 퇴직한 사관출신의 요리사를 만나는데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후일 고리끼는 그 퇴직사관이 자신의 첫번째 스승이라고 고백했다. 그와 생활하면서 학문과 문학에 눈뜨게 되고 독서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타타르스탄의 수도인 카잔(Kazan)으로 가서 지하조직에서 활동하였다. 대학에 진학하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이곳에서 활동하며 진보적인 혁명가들과 교류하였으며 지식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더욱더 독서에 매진하였다. 특히 그는 빵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며 열학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는 집회에 가담하였다. 고리키는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문학에 뜻을 두었으나 진보적인 지식을 가진 청년들과 만남에서 자신의 부족함에 절망하여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였다(1887). 20세가 되어 친구이자 혁명가인 로마스를 따라 볼가강 연안을 끌라스노비도보로 이주하여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문에 고리키는 짜르 경찰과 보수파의 수배대상이 되어 쫗기다가 고향이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 체포되어 수감되기도 하였다.
이때 그는 그동안 간간히 집필하였던 것을 그만두고 이후 5년 동안 러시아제국 전역을 도보로 여행하였다. 러시아제국이 처한 현실을 직접 목격하며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이때 자신의 처녀작 단편소설인 《마까르 추드라 Makar Chudra (Макар Чудра)》를 집필하였다. 늙은 두명의 집시를 주제로 한 소설이며 인간의 자유를 갈망하는 내용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고리키는 이것으로 문단에 등단하게 되며 이때부터 필명인 막심 고리키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1895년 단편소설 《첼카슈 Chelkash (Челкаш)》를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이소설에서 떠돌이 부랑자인 첼카슈가 물건을 훔치면서도 작은 물건에도 소유욕이 많은 가브릴라에 대비하여 금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은 인간상을 보여준다. 문학가인 코롤렌코(Vladimir Galaktionovich Korolenko), 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와 친분을 가지게 되었으며, 제정 러시아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의 생활을 묘사하여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선구적인 문학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1899년 자본주의가 인간을 변모시키는 과정을 묘사한 장편소설 《포마 고르제예프》를 발표하며 그의 문학적인 입지는 더욱 견고해진다. 1901년에는 짜르 타도를 외치며 지하인쇄소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으며 1905년에 러시아혁명의 기폭제가 된 '피의 일요일' 사건을 주도했던 '가퐁신부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이후 이탈리아와 미국을 여행하며 짜르 정부의 타도와 러시아 민중혁명지원을 호소했다.
그의 생활은 자전적(自傳的) 3부작 《유년시대 Detstvo》(1914), 《사람들 속에서 V lyudyakh》(1916), 《나의 대학 Moi universitety》(1923)에 나타나 있다. 1892년 처녀작 《마카르 추드라 Makar Chudra》로 인정을 받았고 이어 《첼카슈》(1895)로 주목을 끌어 희곡 《밤 주막 Na dne》(1902)이 특히 유명하며, 한때 볼셰비키당에 들어가 소설 《어머니 Mat’》(1907)에서 혁명가의 전형을 창조하기도 하였다.
1905년 혁명으로 투옥된 뒤 외국으로 망명, 그곳에서 《레토피시》지(誌)를 발간하여 좌익작가를 모았다. 1913년, 대사령(大赦令)을 이용하여 귀국, 《신생활》지(紙)를 발행하여 레닌파(派)와 대립하였으나 11월혁명(구력으로는 10월혁명) 후에는 신정권을 지지하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제창하여 소비에트 문학의 기수(旗手)가 되었고, 미완성의 서사시인 《클림 사므긴의 생애 Zhizn’ Klima Samgina》(1936)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36년 6월 18일 폐렴으로 죽었다. 일설에는 1930년대 후반의 대숙청 때 정적에게 독살되었다고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막심 고리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이 진화의 계단을 밟고 올라서며 저는 아름다움에 대해, 눈에만 보이는 이 아름다움의 시시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인간의 얼굴에 대해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에 들려진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 어떤 독재자보다도, 권력을 쥔 그 누구보다도...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한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로 대책 없이 강한 존재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가 부끄러워하길 부러워하길 바라왔고, 또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인간이 되기를 강요할 것입니다.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절대다수야말로 이, 미친 스펙의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지금 곁에 있는 당신의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손길이 닿을 수 있고... 그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빛을 밝혀가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 세계는 당신과 나의 <상상력>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의 상상에 따라 우리를 불편하게 해온 모든 진리는 언젠가 곧 시시한 것으로 전락할 거라 저는 믿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이, 스스로의 이야기에서 성공한 작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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