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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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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
코미디와 사이언스 픽션을 합친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던 더글라스 애덤스의 작품으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 5권 중 그 두 번째 책 "우주 끝에 있는 레스토랑" 편이다.   우주가 끝나는 순간으로 쏘아올려져 부서진 행성의 잔해 위에 만들어진 레스토랑 밀리웨이스. 이곳에 오면 몇 번이고 원하는 만큼 우주의 모든 피조물들이 폭발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호화스러운 만찬을 즐길 수 있다는 설정에서 보듯, 이 시리즈물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자유분방한 한 편의 우화다. 기발하고 유쾌한 상상력, 엉뚱하고 황당한 장치와 대화들, 과장된 캐릭터들, 상식과 형식을 파괴하는 자유로움, 진지한 주제들을 사소한 농담처럼 희화화하는 익살스런 유머들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웃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자신 앞에 놓여져 있는 생존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발견케 하는 책이다.   저자가 BBC 라디오 프로듀서인 사이먼 브렛과 의기투합하여 쓰기 시작한 이 시리즈는 드라마, 책, 음반, 컴퓨터 게임, CD, 연극 등 온갖 버전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버전들이 생겨났다. <책세상>에서 이번에 출간하는 시리즈는 이렇게 생겨난 다양한 버전들을 한데 모은 최종 완결판이란 점에서 의의가 깊다. '코믹 SF'라는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물의 명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좋은 기회!
저자
더글러스 애덤스
출판
책세상
출판일
2004.12.20

 

0.

이 우주가 무엇을 위해 있고, 또 왜 이곳에 있는지를 누군가가 정확하게 알아낸다면, 그 순간 이 우주는 당장 사라져버리고 그 대신 더욱 기괴하고 더욱 설명 불가능한 우주로 대체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있다.  

그런 일은 이미 벌어졌다고 주장하는 이론도 있다.

 

 

 

1.

많은 종족들은 우주가 일종의 신 같은 것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빌트보들 제6행성의 자트라바티드인들은 전 우주가 ‘위대한 초록 아클시저’라는 존재가 재채기할 때 그 코에서 튀어나왔다고 믿는다.

 

가령, 초지성적이며 범차원적인 어떤 종족은 한때 ‘깊은 생각’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슈퍼컴퓨터를 만들어,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은 무엇인지 계산하는 작업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그 후로 칠백오십만 년 동안 깊은 생각은 계산과 추정을 거듭하더니, 마침내 그 해답이 ‘42’라고 공표했다. 그리고 그 해답의 질문 자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자신보다도 훨씬 더 큰 컴퓨터를 새로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 컴퓨터는 지구라고 이름 지어졌는데, 이것은 덩치가 너무 커서 종종 진짜 행성으로 오인되었다. 특히 그 표면을 어슬렁대는 이상한 원숭이 같은 존재들은 자신들이 초대형 컴퓨터 프로그램의 일부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그 오해를 전적으로 믿었다.

 

 

 

2.

보고 행성의 우주선들이 다 그렇지만, 그 우주선은 디자인된 우주선이라기보다는 그냥 굳어져버린 덩어리처럼 보였다.

 

사실, 보고인의 우주선보다 더 흉측한 것을 보고 싶다면, 그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서 보고인을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보통의 보고인이라면 두 번도 생각해 보기 전에 당신에게 달려들어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짓을 저지를 테니까. 그 무시무시함이란 당신이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바라게 될 정도로, 혹은 (당신이 좀더 생각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보고인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바라게 될 정도로 엄청나다.

 

바다가 구름 위에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보고인들은 작은 뇌물과 부패를 초월해서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옐츠의 경우 그 말은 더없이 꼭 들어맞는다. 정직이라든가 도덕적 청렴 같은 단어를 들으면 그는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사전을 찾아 손을 뻗는다. 그리고 두둑한 현금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그는 규정집에 손을 뻗어 집어던져 버린다.

 

“아, 아니에요. 알다시피 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친구를 사귀지 않죠.” 하프런트가 말했다.

“아아, 직업상 거리를 두는 거군.” 보고인이 툴툴댔다.

“아니, 그냥 그런 재주가 없는 거죠.” 하프런트가 경쾌하게 답했다.

 

그것은 한결같이 홍차와는 거의 전적으로 다른, 그러나 완전히 다르지는 않은 액체를 플라스틱 컵에 담아 내놓았다.

 

“이 음료를 즐겁게 드셨다면……친구분들과도 함께 나눠보세요.” 기계가 계속 말했다.

“난 친구 사이를 끝장내고 싶지는 않거든.” 아서가 신랄하게 말했다. “제발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려고 좀 해봐라. 그 음료는…….”

“그 음료는 영양분과 쾌감에 대한 당신의 요구에 맞게 특별히 만들어진 개인용 맞춤 음료입니다.” 기계가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럼 나는 다이어트 중인 마조히스트인가, 응?” 아서가 말했다.

“함께 나누고 즐기세요.”

“입이나 닥쳐.”

“더 필요한 거 있으십니까?”

아서는 그만 포기하기로 했다.

“없어.”

 

우주선의 주위에는 은하계 십억 개의 별들이 바늘처럼 빛을 내쏘고 있었다.

 

 

 

3.

“삼 분 사십 초.”

“카운트 좀 그만 할 수 없어!” 자포드가 으르렁댔다.

“그러지. 삼 분 삼십오 초 뒤에.” 포드 프리펙트가 말했다.

 

“그래. 내가 자포드 비블브락스야. 아버지는 자포드 비블브락스 2세였고, 할아버지는 자포드 비블브락스 3세였고…….”

“뭐라고?”

“피임 기구와 타임머신이 관련된 사고가 있었다고. 자, 집중이나 해!”

 

자포드의 이마에는 처음에는 집중하느라, 다음에는 좌절감 때문에, 마침내는 당황해서 땀방울이 맺혔다.

 

그들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려고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들의 머리 가죽은 원래 자리에 그대로 있고 싶어하는 게 분명했다.

 

“일 분 십 초.” 포드가 힘없이 말했다.

자포드 비블브락스 4세는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저 사람은 왜 계속 숫자를 불러대고 있는 거냐?” 그가 말했다.

“저 숫자는 우리한테 남은 시간이에요.” 자포드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아아.” 증조부가 말했다. 그러더니 혼자 투덜댔다. “물론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군.”

 

‘생명은 산 자들에게 쓸데없이 낭비되고 있다’.”

 

“다시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그러니까, 네가 무슨 곤경에 처하거나 궁지에 몰려서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게 되면…….”

“예…….”

“제발 주저 말고 냉큼 꺼져버려라!”

 

 

 

4.

순수한 마음 호의 마지막 에너지 방패막 조각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고 우주선 자체가 한 주먹 연기로 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5.

그 행성은 괴로우리만치 부유한 곳이고, 끔찍하게 햇살이 좋은 곳이며, 굉장히 흥미로운 사람들이 석류 열매 안의 씨앗보다도 더 우글우글한 곳이다. 하지만 《플레이빙Playbeing》 최신호가 어떤 기사에 ‘어사 마이너 베타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인생 자체에 신물이 난 겁니다’라는 제목을 붙이자 하룻밤 새에 자살률이 네 배로 증가했다는 것은 무시할 만한 사실이 아니다.

 

그는 꼼짝 않고 앉아 분노에 차서 그 생각을 무시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를 괴롭혔다. 그는 무시했다.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무시했다.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항복했다.

젠장,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 그는 생각했다.

 

 

 

6.

비록 이 책이 모든 문제에 대해 쓸모가 있고 정보를 줄 수 있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책은 이런 든든한 주장은 한다. 즉, 이 책에 틀린 곳이 있을 때는, 적어도 ‘결정적으로’ 틀렸다는 것이다. 중요한 오류가 있을 경우, 잘못된 쪽은 항상 현실이다.

이것이 바로 그 공고의 요점이었다. 공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안내서》가 결정판입니다. 현실이 종종 부정확합니다.’

 

“저, 선생님, 조금만 진정하시고…….” 그 연약하고 작은 생물이 말을 가로챘다.

“이봐, 나는 지금 머리끝까지 차갑다고, 알겠어? 너무너무 차가워서 고깃덩어리를 한 달 동안이나 내 속에 보관할 수 있을 정도야.

 

“이봐, 세눈박이, 나보다 기괴하려고 해봤자 소용없어. 난 너보다 더 괴상한 것들을 아침 시리얼이랑 같이 공짜로 얻거든.”

 

“그 자포드 비블브락스라고요?”

“아니, 그냥 자포드 비블브락스……내가 여섯 개짜리 팩으로 나온다는 얘기 못 들었나?”

곤충은 흥분해서 촉수들을 마구 휘저어댔다. “

하지만 선생님, 지금 방금 서브-에서 라디오 뉴스에서 들었는데, 돌아가셨다고 하던데요…….” 곤충이 깩깩 우는 소리를 냈다.

“그래, 맞아. 아직 움직이는 걸 멈추지 않았을 뿐이지.

 

“왜 자니우프 씨를 만나려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음.” 자포드가 말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이유를 분명히 알지 못했다. “그래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말했기 때문이지.”

 

“비블브락스 선생님, 선생님은 너무 괴상하셔서 영화에 출연하셔도 될 것 같아요.” 곤충이 경외심에 차서 말했다.

“그래. 그리고 그대는 현실 세계에 있어야 할 것 같군.”

 

“알았어. 말하는 거 말고 또 뭘 할 수 있지?” 자포드가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저는 올라가거나 내려갑니다.” 엘리베이터가 말했다. “

좋아. 우린 올라간다.” 자포드가 말했다.

“또는 내려가시고요.” 엘리베이터가 그에게 상기시켜주었다.

“그래, 알았어, 올라가줘.”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려가시는 것도 아주 좋은데요.”

엘리베이터가 희망에 찬 어조로 제안했다.

“아, 그래?”

“굉장해요.”

“좋아. 그럼 이제 위로 올라갈까?” 자포드가 말했다.

“내려갔을 때 얻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다 고려해보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엘리베이터가 극도로 상냥하고 합리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올라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 겁이 나는 모양인데요.” 마빈이 간결하게 대꾸했다.

“겁이 나? 뭐가? 높은 곳이? 고소공포증 엘리베이터라고?” 자포드가 소리쳤다.

“아니요, 미래가요…….” 엘리베이터가 가련하게 말했다.

“미래라고? 이 거지 같은 게 뭘 원하는 거야? 연금이라도 원하나?” 자포드가 고함을 질렀다.

 

우린 자니우프한테 가야 해.” 그가 말했다.

“왜요?” 마빈이 우울하게 말했다.

“나도 몰라. 하지만 그 사람을 만나면, 내가 그를 만나고자 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그가 설명해줄 거야.”

 

“방금 그게 뭐였지?” 자포드가 소리 죽여 말했다.

“프로그스타 스카우트 로봇 클래스 A가 자넬 찾고 있는 거지.” 남자가 말했다.

“어, 그래?”

“머리 숙여!”

반대쪽에서 더 커다란 검은 거미 모양의 물체가 나타났다. 그것이 그들을 홱 지나갔다.

“저건 또……?”

“프로그스타 스카우트 로봇 클래스 B가 자넬 찾고 있는 거야.”

“그럼 저건?” 자포드가 공중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세 번째 물건을 보고 말했다.

“프로그스타 스카우트 로봇 클래스 C가 자넬 찾고 있는 거야.”

“여어, 꽤 멍청한 로봇들이구먼, 응?” 자포드가 혼자 키득거리며 말했다.

다리 건너에서 우르르 하는 묵직한 소음이 들렸다. 거대한 검은 물체가 반대쪽 빌딩으로부터 건너오고 있었다. 탱크 정도의 크기와 모양을 한 물건이었다.

“맙소사, 저건 또 뭐야?” 자포드가 숨을 몰아 쉬었다.

“탱크. 프로그스타 스카우트 로봇 클래스 D가 자넬 잡으러 온 거야.” 남자가 말했다.

 

 

 

7.

그는 이 모든 일의 요점이 제대로 파악되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이해한 것조차 자기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내 소개를 하지. 내 이름은 루스타. 그리고 이게 내 타월이야.” 남자가 말했다.

“안녕, 루스타.” 자포드가 말했다.

“안녕, 타월?” 루스타가 낡고 더러운 꽃무늬 타월을 내밀자 그가 덧붙였다. 타월과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몰라서 그는 한쪽 끝을 잡고 악수를 했다.

 

 

 

8.

“아, 그래? 그러면 먼저 와서 날 잡기부터 해야 할걸.” 자포드가 말했다.

“벌써 와서 잡았어. 창밖을 보라고.” 루스타가 말했다.

자포드는 창밖을 내다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

땅이 멀어지고 있어! 저 사람들, 땅을 어디로 가져가는 거야?” 그가 숨을 헐떡였다.

“저 사람들이 가져가는 것은 이 빌딩이야. 우리가 공중에 떠 있는 거지.” 루스타가 말했다.

사무실 창밖으로 구름들이 줄지어 흘러갔다.

창밖 공중에는 뿌리 뽑힌 빌딩을 에워싸고 날아가는 프로그스타 청록색 전투기들이 보였다. 그 우주선들에서 에너지빔들이 그물처럼 뻗어 나와 빌딩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자포드는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이러는 거야? 난 그저 빌딩 안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빌딩을 가져가버리다니.” 그가 말했다.

“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자네가 한 짓이 아니야. 자네가 앞으로 할 짓이지.” 루스타가 말했다.

 

“이봐, 이 빌딩이 어디로 날아가고 있다고 했지?” 자포드가 물었다.

“프로그스타. 우주에서 가장 사악한 장소지.” 루스타가 말했다.

“거기도 먹을 게 있을까?” 자포드가 말했다.

“먹을 거라고? 프로그스타로 끌려가는 이 마당에 먹을 걸 걱정한단 말이야?”

“음식이 없으면 난 프로그스타까지도 못 갈 것 같아.”

 

“비블브락스. 프로그스타에 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고 있나?” 그는 양손을 머리 뒤에서 깍지끼며 말했다.

“밥을 주나?” 자포드가 희망찬 목소리로 허둥지둥 말했다.

“자네를 밥으로 줄 거야.“

 

“그게 자네를 영원히 파괴시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믿는 거지. 자네가 뒤쫓고 있는 게 뭔지 아니까.”

“저들이 내게 쪽지라도 보내서 나도 좀 알게 해줄 수는 없었을까?”

 

 

 

9.

“행운을 비네.” 이 말을 덧붙인 루스타는 문을 열고 나가, 자포드의 삶에 들어왔을 때처럼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그의 삶에서 사라졌다.

 

마빈은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결국 그는 이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 로봇은 단지 자포드 자신의 기분과 비교했을 때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일 뿐이었다.

 

“몸이라는 게 어떤 물건인지 아시잖아요.”

자포드는 잘 몰랐다.

“안다고 생각했었죠.” 그가 말했다.

 

 

 

10.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우주는 불안할 정도로 큰 곳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화로운 삶을 위해 이 사실을 무시하고 싶어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안해낸 좀더 작은 장소로 기꺼이 이주하려 할 것이고, 실제로 대부분이 그렇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은하계 동쪽 날개의 한구석에는 오글라룬이라는, 숲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행성이 있는데, 거기서는 ‘지성을 가진’ 주민들이 모두 조그만 호두나무 한 그루에 바글바글 모여서 영원히 살아간다. 그들은 그 나무 위에서 태어나고, 살고, 사랑에 빠지고, 인생의 의미와 죽음의 허무함, 인구 억제의 중요성 따위들에 관한 짧은 논문들을 나무껍질에 새기고, 극도로 하찮은 전쟁을 몇 번 치르고, 마침내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바깥쪽 나뭇가지 아래에 매달려 죽는다.

사실, 오글라룬 사람들 중에서 그 나무를 떠나는 이는 가증스러운 범죄를 저질러서 내동댕이쳐진 사람들뿐이다. 그 범죄란, 다른 나무에서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혹은 다른 나무들은 진짜로 오글라 호두를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긴 환영에 불과할까 하고 궁금해하는 것이다.

 

“무한한 크기의 우주 전체, 무한한 태양들, 그사이의 무한한 공간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점 위의 보이지 않는 점, 무한하게 작은 당신 자신.”

 

 

 

11.

자포드는 분명 다양한 자질을 지닌 사람이었다. 비록 그 대부분이 나쁜 것들이긴 했지만.

 

 

 

12.

“그렇습니다. 이륙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승객들의 안위와 편리를 위해서 생명 활동이 잠시 유보되고 있습니다. 매년 커피와 비스킷이 제공되고 있으며, 그 후에 승객들은 다시 안위와 편리의 지속을 위해 생명 활동 유보 상태로 돌아갑니다. 보급이 끝나는 대로 이륙을 하게 될 겁니다. 지연에 대해서는 사과를 드립니다.” 그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자포드는 기대고 있던 문에서 떨어져 조종 계기판 쪽으로 다가갔다. 문을 두드리던 소리는 이제 멈췄다.

“지연이라고? 이 우주선 바깥이 어떤 상태인지 봤어? 여기는 황무지라고. 사막이야. 문명은 사라지고 없다고, 이 양반아. 레몬수 적신 냅킨 같은 건 어디서도 오고 있지 않다고!” 그가 외쳤다.

“통계학적으로 볼 때, 다른 문명이 생겨날 겁니다. 언젠가는 레몬수 적신 냅킨도 생기겠죠. 그때까지는 잠시 지연이 있을 겁니다. 좌석으로 돌아가주십시오.” 자동 파일럿이 새침하게 말했다.

 

 

 

13.

“자네와 나? 당신과 내가 서로 아는 사이라는 거야?” 자포드가 화를 내며 말했다.

“그래. 아주 잘 아는 사이였지.” 자니우프가 대답했다.

“내 취향이 형편없었군.” 자포드가 이렇게 말하고 다시 뚱하게 침묵했다.

 

그는 자포드로 하여금 한 대 치고 싶게 했던 그 미소를 다시 지었다. 자포드는 이번에는 그 얼굴을 한 대 갈겼다.

 

 

 

13.

“알겠습니다. 친구들, 어디로 가고 싶은가요?”

“어디든 상관없어.” 자포드가 소리쳤다. “아냐, 상관있어!” 그가 다시 말했다. “가장 가까운 식당에 가서 뭘 좀 먹고 싶어!”

 

 

 

14.

“예약이요?” 그가 힘없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초록색 그림자가 말했다.

“저승에도 예약이 필요합니까?”

 

“……그리고 우주는, 이따가 여러분의 여흥을 위해 폭발할 겁니다.”

 

 

 

15.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은 요식업계 역사상 가장 특이한 모험 중 하나다. 이 레스토랑은 산산조각난 우주의 폐허 위에 세워져 있다……아니, 세워질 것이다……그러니까 우주가 산산조각날 때까지는 세워져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세워져 있다.

 

다만 ‘미래 완료’라는 용어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폐기되었다는 언급만 잠깐 하고 있을 뿐이다.

 

이 레스토랑은 거대한 시간의 거품 속에 봉해져(봉해지올 할) 정확하게 우주가 끝나는 순간으로 시간을 가로질러 쏘아 보내져서 결국은 부서져버린 행성의 산산조각난 잔해 위에 만들어졌다.

이건 말도 안 된다고 많은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곳에서 손님들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잡다에 할) 우주의 모든 피조물들이 폭발하는 광경을 지켜보며(지켜보달 할) 호화스러운 만찬을 든다(든다에 할다).

이것 역시 말도 안 된다고 많은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당신은 사전에(다음 전-언제) 예약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와서(언제에 와단 일수)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왜냐하면 원래 당신의 시간대로 돌아가서 소급 예약이라는 걸 할 수 있기 때문이다(당신은 거슬러 집에 돌아갈었을 곧전에 언제전 예약할 수 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이건 절대로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레스토랑에서 당신은 시공간을 막론한 모든 인구의 흥미진진한 축도를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언제에 이랑할 저녁한 만나 있게 된다).

참을성을 가지고 설명하자면, 이 역시 불가능하다.

당신은 몇 번이고 원하는 만큼 이 레스토랑을 방문할 수 있고(방문에 재방문할 있게 될……기타 등등——시제 교정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스트리트멘셔너 박사의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 안에서 자기 자신과 마주칠 일은 전혀 없다고 확신해도 좋다. 그런 일은 대개 난감하기 마련이니까.

나머지 이야기들이 다 사실이라 하더라도——물론 아니지만——이거야말로 명백하게 말이 안 된다고 회의론자들은 말한다.

당신은 그저 자기 시대에 예금 통장에 일 페니만 저금하면 된다. 시간이 끝나는 날에 당신이 도착하면, 복리(複利) 작용에 의해 엄청난 식사 비용은 이미 지불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건 단순히 말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명백히 미친 짓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강변한다. 바로 그 때문에 바스타블론 성단의 광고 중역들이 이런 슬로건을 내걸게 된 것이다. ‘오늘 아침 여섯 가지의 불가능한 일을 하셨다면,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 밀리웨이스에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 마무리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16.

그 사람들은 내가 우주의 지배자를 찾아냈으면 하는데, 나는 그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내 생각에 그 사람은 요리를 못할 것 같거든.”

 

“술이나 한 잔 더 해. 즐기자고.” 트릴리언이 말했다.

“어느 거 말이야? 그 두 가지는 상호 모순적이라고.” 아서가 말했다.

“불쌍한 아서, 넌 정말 이런 생활에는 안 맞는구나. 그렇지?”

“이걸 생활이라고 할 수 있어?”

 

 마호가니 :: 높이 약 30m, 지름 약 1.8m이다. 나무껍질은 붉은 갈색으로 잘 벗겨진다. 잎은 어긋나고 짝수 깃꼴겹잎이다. 작은잎은 3∼5쌍이고 찌그러진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흰빛이고 작으며 8월에 원추꽃차례로 달리는데, 지름 1cm 정도이다. 꽃받침과 꽃잎은 각각 5개이다. 수술은 10개이고 수술대는 서로 붙어서 통처럼 되며 암술은 1개이다. 씨방은 상위(上位)이다.
열매는 삭과로서 달걀 모양이고 10∼11월에 익으며 길이 10cm 정도이다. 성숙하면 5개로 갈라져서 날개가 있는 종자가 나온다. 목재는 붉은 갈색에서 검은 갈색으로 되고 단단하며 윤기가 있으므로 가구재나 장식재로 이용한다. 북아메리카 남부와 인도 서부, 브라질, 중남미 등지에 분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호가니 [mahogany]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꺼져.” 그자가 말했다.

“어, 그래?” 포드는 자신이 지금 현명하게 처신하고 있는 것인지 자문하며 말했다. “근데 넌 누구지?”

그자는 잠시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는 이런 질문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잠시 후 답을 내놓았다.

“난 너한테 꺼지라고 말하는 사람이야.” 그가 말했다. “맞고 정신 차릴래?”

 

 

 

17.

그는 손을 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는 귀에 걸린 정도가 아니라 얼굴의 영역을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난 자기를 먹어달라고 청하는 짐승을 먹고 싶진 않다고. 냉혹한 짓이야.” 아서가 말했다.

“먹히고 싶어하지 않는 짐승을 먹는 것보단 낫지.” 자포드가 말했다.

 

“너 지금……내가 야채 샐러드를 먹으면 안 된다는 거야?” 아서가 말했다.

“글쎄요. 그 점에 대해 매우 분명한 견해를 가진 야채들을 많이 알고 있거든요. 그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결국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해서, 정말로 먹히길 원하고 그 사실을 분명하고 똑똑하게 말할 수 있는 짐승을 키우게 된 거예요. 여기 있는 저처럼요.” 짐승이 답했다.

 

밴드가 그의 말에 짧게 간주를 넣었다. 맥스는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음악이 필요 없었다. 자신과 같은 대단한 예술가는 그런 게 필요 없었다. 그는 청중을 자신의 악기처럼 연주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의 농담에 마음을 놓으며 웃었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게다가 이번만은…….” 그가 쾌활하게 외쳤다. “내일 아침의 숙취 문제를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침이란 건 이제 더 이상 없을 테니까요!”

 

여기 와서 모든 것이 최종적으로 끝나는 것을 지켜본 다음, 여러분 자신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서……가정을 가꾸고, 새롭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끔찍한 전쟁을 치르고 하는 것 말입니다. 그건 정말 모든 생명체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게 만듭니다. 물론…….” 그는 자기 위와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요…….”

 

 흑단 ::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 원산이다. 잎은 두껍고 감나무잎같이 생겼으며 긴 타원형이고 옆가지에서는 2줄로 배열한다. 꽃은 단성이고 1가화이며 백색으로 통같이 생겼고 4개로 갈라진다. 수꽃은 10여 개의 수술과 퇴화한 1개의 암술이 있다. 암꽃은 퇴화한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으며, 암술머리는 4개로 갈라진다. 씨방은 8실이며 각 실에 종자가 1개씩 들어 있다. 열매는 감같이 생겼으나 지름이 2cm 정도이다.
재목의 변재는 회색이고 검은 줄이 있으며, 심재는 진한 흑색으로 치밀하고 잘 다듬으면 윤기가 나기 때문에 옛날부터 자단(紫檀)과 더불어 귀중한 가구재의 용재로 사용하여 왔다. 그러나 흑단이란 이름 밑에 사용되는 것은 이 속 중의 다른 종도 같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스리랑카의 흑단과 더불어 태국산 몰리스(D. mollis)는 흑색재를 생산하고, 클로로키실론(D. chloroxylon)은 흑록색재를 생산한다. 또, 필리핀의 디스콜로르(D. discolor)와 필로산테라(D. pilosanthera)는 검은 줄이 있고, 갈색과 검은 무늬가 있는 안다만섬의 쿠르지(D. kurzii)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흑단 [黑檀]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이제는 하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뒤를 쫓고 있어서, 그는 그 수를 세기를 포기했다. 그렇게 눈에 띄게 들어서지 말았어야 했다. 젠장, 하지만 안 될 건 또 뭐야, 그는 생각했다.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자기가 재미가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당신 정신과 의사에게 위험 수당을 줘야겠는데.”

 

우린 시간 여행을 했지만, 공간적으로는 움직이지 않았단 말이군.”

 

“여러분은 미래로 점프하신 겁니다……오조 칠천육백억 년을 말이죠. 공간상으로는 완전히 똑같은 곳에 있었지만 말입니다.” 웨이터가 설명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이 마침내 무적의 난관처럼 보이던 일을 이겨냈다는 멋진 기분이 들었다.

“바로 그거야! 이제 알겠다. 내가 컴퓨터에게 가장 가까운 식당에 보내달라고 했더니, 그놈이 바로 그렇게 한 거야. 오조 칠천육백억 년이든 뭐든 간에 우린 거기서 꼼짝도 안 한 거야. 명쾌하군.”

 

 

 

18.

그것들을 지나가는 자포드의 눈은 탐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무엇인가로 번득였다. 사실 이 시점에서 분명히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것은 분명 탐욕이었다.

 

전혀 생기 없는 강철 얼굴도 원망의 표정을 짓는 게 가능하다면, 마빈이 지은 것이 바로 그런 표정이었다.

 

자포드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더 정확하게 말하면, 뭔가에 홀리기를 원하는 사람처럼 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데요.” 그가 말했다.

“아니, 재미있을 거야. 네 앞에 완전히 새로운 인생이 펼쳐져 있다고.” 자포드가 열중해서 말했다.

“아, 더 이상은 싫어요.” 마빈이 신음 소리를 냈다.

“입 닥치고 좀 들어봐! 이번에는 진짜로 전율과 모험과 굉장한 일들이 생긴다니까.” 자포드가 씩씩댔다.

“끔찍한 소리군요.” 마빈이 말했다.

 

“고마울 거 없어요. 참, 그런 말은 하지도 않았지?”

 

 

 

19.

그것이 그렇게 간결한 문체를 가지게 된 이유의 일부는, 편집자들이 출판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 어떤 아침 식사용 시리얼 상자에서 정보를 베껴놓고는 포용력이라고는 없이 비비 꼬인 은하계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서 각주 몇 개를 달아 허둥지둥 윤색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후대의 교활한 편집자 하나가 그 책을 타임워프로 과거로 보낸 다음 그 아침 식사용 시리얼 회사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해 이기는 데 성공해냈다는 것이다.

 

 

 

20.

은하계의 모든 주요 문명은 다음과 같이 뚜렷하고 확연한 세 단계를 거친다. 즉 생존, 의문, 그리고 세련의 단계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왜, 그리고 어디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단계를 특징짓는 질문은 ‘어떻게 먹을까’이고, 두 번째 단계는 ‘우리는 왜 먹는가’이고, 마지막 단계는 ‘어디서 점심을 먹을까’이다.  

 

“마빈, 그걸 내내 알고 있었다면 왜 그때 우리에게 얘기해주지 않았니?” 트릴리언이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덜된 녀석에게 이야기하면서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마빈이 머리를 빙그르르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 물어보셨잖아요.” 그가 간결하게 답했다.

 

“이 우주선의 주인이 도대체 누군지 궁금하군.” 아서가 말했다.

“그야 나지.” 자포드가 말했다.

“아니, 진짜 주인 말이야.”

“정말 나야.” 자포드가 우겼다. “이봐, 소유는 도둑질이야, 알겠어? 그러니까 도둑질은 소유이기도 하지. 그러므로 이 우주선은 내 거야, 맞지?”

 

 

 

21.

“내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자포드가 말했다.

“알 것 같아.” 포드가 말했다.

“그럼 내가 무슨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말해봐.”

“우리가 이 우주선에서 나가야 한다고 네가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해.”

“네가 맞다고 생각해.” 자포드가 말했다.

“너도 맞다고 생각해.” 포드가 말했다.

“어떻게?” 아서가 말했다.

“조용히 해. 우린 생각 중이야.” 포드와 자포드가 말했다.

“그래서 이걸로 끝이군. 우린 죽는 거야.” 아서가 말했다.

 

벨세레본인들은 은하계에서 가장 계몽되고, 교양 있고, 무엇보다도 조용한 문명의 종족이라는 이유로 주변 종족들을 분개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들곤 했다.

기분 나쁘게 독선적이고 도발적이라고 해석된 이들의 행동에 대한 벌로 은하 재판소는 가장 가혹한 사회적 질병인 텔레파시를 선고했다. 그 결과, 이들의 마음속에 드는 생각들은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그 하나하나가 반경 오 마일 내의 사람들에게 모두 방송되어버렸다. 이를 막기 위해, 그들은 이제 아주 커다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그들은 날씨나 아주 사소한 아픔, 고통에 대해, 그날 오후의 경기에 대해, 카크라푼이 갑자기 얼마나 시끄러운 장소가 되어버렸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어댔다.

 

”우리 모두가 갈 순 없다고. 누군가 남아서 기계를 작동시켜야 해.” 포드가 말했다.

숙연한 시간이 지나갔다. 태양은 점점 더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봐, 마빈 친구, 기분이 어때?” 자포드가 쾌활하게 말했다.

“아주 나빠요, 제 생각엔.” 마빈이 투덜거렸다.  

 

 

 

22.

처음으로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관(棺)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그들의 눈에 들어온 사천구백구십구 개의 물건들 역시 관들이었다.

 

 

 

23.

“어째서……우리를 만나 반가운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걸까?” 아서 덴트가 말했다.

 

 

 

24.

젊은 구조언어학자들은 자신들이 뭔가 심오하게 중요한 것에 거의 접근해가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엄청나게 흥분해 밤을 꼴딱 새우며 이 문제를 연구한다. 그러다가 결국은 제대로 뭔가를 해보지도 못하고 늙은 구조언어학자가 되어서는 젊은 학자들에게 노발대발해대는 것이다. 구조언어학은 사방으로 패가 갈린 불행한 학문이다.

 

마치 총애해 마지않던 일 개월 묵은 고깃덩어리에서 잠깐 한눈을 팔았다가 돌아가는 파리 한 쌍 같았다.

 

그는 바깥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별들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글쎄, 내 기억엔, 우린 그곳에 추락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던 것 같아요.” 선장이 단어를 조심스레 고르며 말했다.

“추락?” 포드와 아서가 소리쳤다.

“예, 그래요. 아마 모두 계획의 일환일 겁니다. 지금 당장은 생각이 잘 안 나지만, 뭔가 대단히 중요한 이유가 있었어요. 그건 아마……아…….” 선장이 말했다.

포드가 폭발했다.

“너희는 천하에 쓸모없는 바보 천치 짐짝들이야!” 그가 소리쳤다.

“아, 그래요, 바로 그겁니다. 그게 바로 그 이유였어요.” 선장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25.

게걸스러운 공주들로부터 아름다운 괴물들을 구출해낸다.

 

 

 

26.

이 우주선이 새로운 고향까지 수하물을 편안하지는 않더라도 안전하게 운반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또한 우주선은 운항 도중 절대로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철저하게 고장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새벽이 오기 직전의 잿빛 여명 속에서 우주선은 망측스럽게 커다란 꿀럭 소리를 토해내더니 썩은 심연 속으로 영영 가라앉아버렸다.

 

“정말 더럽고 치사한 사기극이야.” 아서가 중얼거렸다.

포드가 작대기로 땅을 후벼 파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나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말했다.

 

아서는 그가 미쳐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서 포드를 바라보았고, 이를 거스르는 증거를 찾을 수 없자, 사실 그가 미쳐버렸다고 추정해도 완벽하게 말이 되지 않나 생각했다.

 

“무한한 우주 안에서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지. 심지어 생존조차. 이상한 일이지만 사실이라고.” 포드가 말했다.

 

정재파(진행파와 반사파가 합성되어 외형상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전파)

 

 정재파 :: 평행으로 서로 마주보는 벽 사이에서 음이 반사를 되풀이할 때 벽과 벽 사이의 거리가 음의 파장과 일정한 관계를 이루면, 음파의 산과 골이 서로 강해져 소리가 울리는 현상이 생긴다. 이에 따라 특정한 파장의 음(여러 소리)은 음파끼리 서로를 지워 소멸해버린다. 공명 현상의 하나로, 여기에서 생긴 공명하는 음의 파를 정재파(定在波)라고 한다. 특히 정재파의 주파수는 음속을 평행면 사이의 거리를 두 배로 나눈 것(주파수)의 정배수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재파 [standing wave, 定在波] (파퓰러음악용어사전 & 클래식음악용어사전, 2002. 1. 28., 삼호뮤직 편집부)

 

 

 

29.

“내가 어찌 알겠어요? 과거란 현재의 나의 육체적 감각과 마음 상태 사이의 괴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르는데.”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대단히 확신하는군요.”

 

사람들은 우리가 듣는 말 속에서만 존재하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당신이 안다고 말한다면 그건 잘못이에요. 그 사람들만이 알죠. 그 사람들이 정말 존재한다면 말이에요. 그 사람들도 눈과 귀라는 자신들만의 우주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내 고양이죠.” 그 사람이 인자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고양이를 안아 올려 쓰다듬었다. “난 이 녀석을 주님이라 부르죠. 난 이 녀석에게 정말 잘해준답니다.”

“좋아요, 그게 존재한다는 건 어떻게 알죠? 당신이 잘해준다는 걸 그 녀석이 아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당신이 친절이라 생각하는 그걸 저 녀석이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자니우프가 자기의 주장을 밀어붙이며 말했다.

“물론 모르죠.” 그 사람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전혀 몰라요. 고양이처럼 보이는 대상에게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했을 때 내 기분이 좋을 뿐이죠. 당신은 다르게 행동하나요? 하여간, 이제 난 피곤한 것 같아요.”

 

 

 

30.

그들의 전반적인 태도로 볼 때, 조금 전의 인사말을 전혀 환영하지 않는 게 확실했다. 그렇다고 그 인사말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환영하지 않을 뿐이었다.

 

“이렇게 생각해봐. 낯선 행성의 과일과 딸기들은 너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어. 그러므로 그것들에 손을 대기 시작하는 시점은, 그러지 않으면 꼼짝없이 죽게 될 바로 그 순간뿐이지.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어. 건강한 히치하이크의 비결은 인스턴트 음식이라고.” 포드가 말했다.

 

“너희의 신이 정원 한가운데다 사과나무를 하나 심고는 이렇게 말하지. 하고 싶은 대로 뭐든지 마음대로 해라. 얘들아, 하지만 그 사과는 먹으면 안 돼. 자, 기대하시라. 다음 순간, 그 사람들은 그걸 먹고, 신은 덤불 뒤에서 펄쩍 뛰어나와 ‘걸렸지’ 하고 외치는 거야. 그 사람들이 그걸 안 먹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었을 거야.”

“어째서?”

“왜냐하면 너희가 상대하는 사람이 도로 위에다 모자를 놓고 그 속에 벽돌을 감춰놓기를 좋아하는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그런 사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 결국은 상대방을 잡고야 말지.”

 

 

 

32.

잎이 우거진 숲 속 빈터에 있다면 좋을 테고, 근처에 비누 광산이라도 있다면 완벽하다. 비누가 광산에서 나는 게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선장은 그것은 아마도 열심히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주장을 감히 폈다. 사람들은 마지못해 이 가능성을 인정했다.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만둡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불태워지지 않았으니까.”

 

“전쟁이라고요?” 그가 말했다.

“그래요!” 넘버 투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포드 프리펙트를 쏘아보았다.

“옆 대륙을 상대로?”

“그래요! 전면전이요! 모든 전쟁을 종식시킬 그런 전쟁!”

“하지만 거기엔 아직 사람이 살지도 않는데!”

아아, 재미있군, 군중은 생각했다. 좋은 지적이야.

넘버 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시선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이런 점에서, 그의 눈초리는 손바닥이나 파리채, 둘둘 만 신문지 따위에 굴하지 않고 보란 듯이 코 바로 삼 인치 앞에서 날아다니는 모기와도 같았다. “나도 알아요. 하지만 언젠가는 사람이 살 겁니다! 그래서 우린 시간을 명시하지 않은 최후 통첩을 놔두고 왔죠!” 그가 말했다.

 

“그래요. 영화 프로듀서 하나가 벌써 이 지역 토착 동굴인들에 대한 매혹적인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동굴인이 아니에요.”

“동굴인처럼 생겼어요.”

“그 사람들이 동굴 안에 살던가요?”

“글쎄요…….”

“그 사람들은 오두막집에 살아요.”

“아마 자기네 동굴들을 개조하는 중인가 보죠.” 군중 속에서 까불거리는 사람 하나가 외쳤다.

 

“죽어가고 있다고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포드가 다시 말했다.

“어……그 사람들한테 생명 보험을 팔면 안 될까요?”

 

“고맙습니다. 몇 주 전 우리가 나뭇잎을 화폐로 사용하기로 의결한 이후로 우리 모두는, 당연하게도, 대단히 부자가 되었습니다.”

포드는, 뭔가 기분 좋게 중얼대며 운동복이 터져라 채워 넣은 잎사귀들을 탐욕스레 만지작거리는 군중들을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경영 고문이 말을 이었다. “나뭇잎의 입수 가능성이 지나치게 높은 나머지 다소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시가로는 선박 한 대분의 땅콩을 사는 데 세 개의 활엽수 숲 정도가 든다고 알고 있습니다.”

놀라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군중에게서 들려왔다. 경영 고문은 손을 흔들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소하고 나뭇잎 화폐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재조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대규모의 고엽 작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리고……아, 숲을 모두 태워버리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는 그게 현명한 행동이라는 데 모두 동의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군중은 약 일이 초간 이 문제에 대해 주저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이것이 그들 주머니 안에 있는 나뭇잎들의 가치를 얼마나 많이 상승시킬 것인지를 지적하고 나서자, 사람들은 즉시 즐거운 환호성을 지르며 경영 고문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회계사들은 자신들이 매우 수익성 있는 가을을 맞이하게 되리라고 전망했다.

 

 

 

33.

그가 아는 거라곤 자기가 어린아이였을 때는 이 놀이가 정말 꿈처럼 환상적이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상황이 지금과는 달랐다. 아니,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다.

 

 스크래블 게임 :: 철자를 이어 붙여 단어를 만드는 게임
20세기 이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현대식 보드게임은 무엇일까? 첫번째는 <모노폴리>, 두 번째는 <스크래블>이다.<스크래블>은 십자말풀이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어진 단어 만들기 게임이다. 이 게임이 유명해진 이후로도 단어를 사용한 보드게임은 수없이 만들어졌지만, 현대에 이르기까지 <스크래블>의 아성에 다가간 게임은 없다.
이 게임은 ‘문자 게임’이라는 영역을 넘어 보드게임 전반의 영역에서 무시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놀이뿐 아니라 치료나 교육을 위한 도구로도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런 독보적인 권위 덕에 <스크래블>은, 완구업계를 양분하며 서로를 최악의 라이벌로 여기고 있는 마텔과 하스브로가 지역에 따라 판권을 나눠 가지는 독특한 상황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크래블 [Scrabble] - 영어 단어 게임의 대명사 (보드게임 백과)

 

그는 여기, 지구에 있다. 끔찍할 정도로 제멋대로 일어난 참사로 인해 미래를 잃어버린 지구, 그리고 과거까지 잃어버리게 생긴 지구에.

 

“역사는 절대로 변하지 않아. 그저 직소 퍼즐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거지. 참 웃기지, 인생이란. 안 그래?”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일을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는 법이다.

인생에 있어 정말로 중요한 다른 많은 일들과 마찬가지로, 이 일련의 사건들은 포드 프리펙트와 아서 덴트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두뇌가 천천히 일 단 기어를 넣었다.

 

“완전히 미친 짓이야. 철저하게 허튼 짓이지. 하지만 훌륭한 허튼 짓이니까 해보자고. 어서, 어서.”

 

 

 

34.

“정말로 별거 아니에요. 과거의 꿈 같은 거죠. 아니면 미래든지.”

 

“아, 난 그거보다 더 심한 얘기도 들었어요. 제7차원에 있는 한 행성에 대해 읽은 적 있는데, 그 행성은 은하계 간 당구 시합에서 공으로 사용되어서 직통으로 블랙홀 안으로 들어갔다는군요. 백억의 인구가 죽었대요.” 포드가 말했다.

“미친 짓이군요.” 멜라가 말했다.

“그래요, 점수도 삼십 점밖에 안 됐죠.”

 

“아뇨, 난 정말 평범해요. 하지만 아주 이상한 일들이 내게 벌어졌죠. 제가 다르다기보다는 강제로 달라졌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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