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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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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4
코미디와 사이언스 픽션을 합친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던 더글라스 애덤스의 작품.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제4권은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지구가 파괴되기 바로 직전에, 작은 카페에 앉아 어떻게 하면 착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깨달았던 여자를 기억하는지?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는 그녀의 이야기다. 지구가 다시 살아난 대신 사라진 돌고래들은 어디로 사라졌으며,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이야기. 다른 하나는「젊은 자포드 안전하게 처리하다」이다. 모종의 비밀을 싣고 블랙홀로 향하던 ‘완벽하게 안전한 배’가 침몰한다. 침몰의 원인은 다름 아닌 바다가재 요리…. 역사상 가장 위험한 생물, 시리우스 사이버네틱스 주식회사가 디자인한 주문용 합성 인격의 운명을 그린다. 줄거리에서 느끼듯 이 책은 지구와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자유분방한 우화를 담고 있다. 기발하고 유쾌한 상상력, 엉뚱하고 황당한 장치와 대화들, 과장된 캐릭터들, 상식과 형식을 파괴하는 자유로움, 진지한 주제들을 사소한 농담처럼 희화화하는 익살스런 유머들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온다. 그러면서도, 삶과 우주의 근원적 의미 등 철학적인 질문들을 독자에게 남겨놓는 독특한 작품이다.   저자가 BBC 라디오 프로듀서인 사이먼 브렛과 의기투합하여 쓰기 시작한 이 시리즈는 드라마, 책, 음반, 컴퓨터 게임, CD, 연극 등 온갖 버전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버전들이 생겨났다. 이번에 출간된 시리즈는 이렇게 생겨난 다양한 버전들을 한데 모은 최종 완결판이란 점에서 의의가 깊다. '코믹 SF'라는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물의 명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좋은 기회다.
저자
더글러스 애덤스
출판
책세상
출판일
2005.01.15

 

1.
대부분의 통계 조사가 그렇듯, 중앙 은하 인구 조사 보고서 역시 어마어마한 돈을 처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나온 얘기들은 이미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번개가 하늘을 찢는 바람에 그가 잠시 멈칫했다.

 

이제 빗줄기는 마치 땅에서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듯이 시간이 갈수록 집중호우로 변하고 있었고 그는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기 위해 몸을 한껏 움츠렸다.

 

 

 

2.

특히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반대하기를 좋아했는데, 결국 세어보면 모든 사람이 이에 해당했다.

 

잠깐 동안은 그걸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곧 그걸 보고 기분이 좋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빠졌다. 그리고 기분이 좋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고, 결국 그는 흡족한 마음이 되어 계속 차를 몰았다.

 

그가 차를 몰고 나아가자, 하늘의 먹구름들이 그를 따라 질질 끌려갔다. 사실 본인도 모르고 있었지만, 롭 매케너는 ‘비의 신[雨神]’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건 그저 일을 해야 하는 평일에는 늘 기분이 참담하고, 휴일은 연달아 망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구름들이 알고 있는 건 그저, 롭 매케너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나 가까이 있고 싶고, 소중하게 아껴주고 싶고, 늘 물을 뿌려주고 싶다는 사실뿐이었다.

 

 

 

3.

맥시 한 대가 반대 차선으로 지나가면서 꾸물꾸물 부지런히 걷고 있는 형체를 향해 전조등을 깜박거렸는데, 그게 “안녕”이라는 인사인지, “미안해, 우리는 반대쪽으로 가고 있어”라는 뜻인지, “어이, 저기 좀 봐, 이 빗속에 누가 있네. 병신 같은 놈”이라는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논쟁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나서 이십 분쯤 지난 후에 “그런데 한 가지 더……” 하고 뒷북을 치는 사람처럼 말이다.

 

 

 

4.

미사일 위기가 닥친 듯한, 험악한 침묵이 쫙 내리깔렸다.

 

포드의 명랑한 목소리가 술집 주인의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전쟁 레퀴엠의 음울한 소절에서 장난감 피리를 부는 것 같았다.

포드의 어깨뼈들이 삐걱거리며 갈리기 시작했다. 그 손은 몹시 숙련된 척추 지압사한테서 고통을 주는 원리를 배운 것만 같았다. 포드로서는 그 손이 어깨뼈들끼리 서로 가는 것도 모자라 어깨뼈를 다른 뼈에 대고 갈기 전에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운 좋게도, 손에 붙잡힌 어깨는 가방을 걸친 쪽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의 후미진 안쪽, 시커먼 어둠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빛의 경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맨 아래에는 오디오 세트 밑바닥에 새겨진 제품 번호와 비슷한 숫자가 쓰여 있었다. 등록을 하려고 베껴 쓰는 데 몹시 오래 걸리는 그 일련 번호들 말이다.

 

 

 

5.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강력한 기구였다. 그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걱정한 나머지 편집부 임원들은 엄격한 규칙을 제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현장 조사원들은 기사를 써준다는 핑계로 어떤 종류의 향응이나 할인, 혹은 특별 대접도 받아서는 안 되게 되어 있었다. 단, 다음의 조건이 충족되는 상황에서는 가능했다.

a. 정상적인 방식으로 서비스의 대가를 지불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b.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든가

c. 정말이지 너무나 그러고 싶었다든가

 

공기는 숨 막히게 답답했지만, 포드는 그래도 좋았다. 숨 막히게 답답해도 도시의 공기였으니까. 흥미진진하게 불쾌한 냄새와 위험한 음악으로 가득 차 있고, 경찰 부족들이 서로 전쟁을 하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으니까.

 

“어때요, 우리 재밌게 놀아볼래요?” 문간에서 어떤 목소리가 말했다.

“내가 보기엔 말이죠.” 포드가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어요. 고맙습니다.”

 

머리 위의 유리창에서 총소리가 울렸지만, 그건 그저 세 번이나 리프 연주를 틀린 베이스 주자가 총살당하는 소리였을 뿐이다. 한돌드 시티 행성에서 베이스 주자의 값어치는 두 사람 합쳐서 일 페니밖에 하지 않았다.

 

키가 훤칠한 데다, 수줍은 듯 당당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런 분위기를 풍기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잘만 하면 아주 효과가 훌륭한 법이다.

 

“두 단어를 써 줬지요.”

“젠장.” 여자가 말했다. “어느 단어를 쓰는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첫 단어요. 일단 첫 단어가 생각나니까 다음 단어는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나니 저절로 떠오르던걸요.”

 

“사실은 사정이 좀 달라요. 나는 글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썼단 말입니다. 그런데 편집부에서 다 잘라버렸어요.”

그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가방에서 꺼냈다.

“그런데 그 행성이 파괴되어버렸어요.” 그가 소리를 질렀다. “정말 보람찬 일이죠? 하지만 그래도 나한테 봉급은 지불해야 한다고요.”

 

항의의 말이 포드의 입 밖으로 반쯤 나오다 말았지만, 그녀는 들은 척도 않고 떠나버렸다. 포드는 혼자 남아 쓰레기통에 쭈그리고 앉은 채로 우울하게 자신의 직업적 성취가 전자 분해되는 현장을 목격할 각오를 다지는 수밖에 없었다.

 

뉴욕을 여행하는 외계인을 위한 유용한 정보 :

아무 데나 착륙하라. 센트럴 파크든 어디든 아무 데나 착륙해도 된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알아채지도 못할 것이다.

생존 : 당장 택시 운전사로 취직하라. 택시 운전사라는 직업은 사람들이 택시라고 부르는 커다랗고 노란 기계에 사람들을 태우고 가고 싶은 곳까지 데려다주는 일이다.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거나 언어를 모른다거나 지리를 전혀 모른다거나 그 동네가 기본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도 전혀 걱정하지 마라. 심지어 머리에서 커다란 초록색 촉수가 삐죽 튀어나와 있어도 괜찮다. 장담하건대, 이 방법이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는 가장 좋은 길이다.

몸이 정말 괴상망측하게 생겼다면 길거리에서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돈을 벌어보도록 하라.

스월링, 녹시오스, 아니면 나우살리아계 출신의 수륙양생 생물체들은 특히 이스트 리버가 마음에 들 것이다. 이제까지 만들어진 것 중 최상급의 끈적거리는 유독성 실험실 폐기물보다도 훨씬 더 근사한, 생명력 넘치는 영양소들이 이 강물 속에 가득하다.

어디서 즐기나 : 이 항목은 엄청나게 방대하다. 당신의 쾌락 중추에 전류를 흘려 넣어 다 태워버리지 않는 한, 이보다 더 신나게 즐긴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는 문제의 해답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현재 뭔가 굉장히 엽기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굉장히 엽기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자신을 빼놓고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각다귀 :: 
1.동물 각다귓과의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 모양은 모기와 비슷하나 크기는 더 크다. 몸의 길이는 2cm 정도, 날개는 2cm 정도이고 회색이며, 다리가 길다.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2.남의 것을 뜯어먹고 사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네이버 국어사전] 각다귀

 

“아.” 아서가 말했다. “에.” 그는 잠시 생각한 후 다시 덧붙여 말했다.

 

“뭐가 잘못된 거죠? 어디가 아픈가요?”

“아니요.” 러셀이 말했다. “그냥 해까닥 돌았을 뿐이에요.”

“뭐라고요?” 공포에 질린 아서가 말했다.

“황당한, 완전히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해요. 다시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해보려는 참이오. 자기가 고슴도치라고 생각하는 애를 퇴원시키다니.”

 

화가 나니까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하키를 하다가 넘어져서 다른 사람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뼈를 부러뜨렸지요.”

 

그녀의 이름이 페니라는 사실을 알고 그는 약간 실망했다. 약간 바보 같고 김빠지는 이름이었다. 하나도 예쁘지 않은 노처녀 숙모가 페넬라라는 이름을 차마 더 쓸 수 없을 때 쓰는 애칭 같았다.

 

그는 속도를 줄였다.

“여기서 내리시는 거 맞죠, 안 그래요?”

“아, 아니에요.” 아서가 말했다. “오 마일 더 가야 해요. 괜찮으시다면요.”

“괜찮아요.”

러셀은 아주 잠시, 괜찮지 않다는 뜻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마침내 대답을 하고 다시 속력을 냈다.

 

이런 감정은, 오로지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들만 환기할 수 있는 법이다. 미처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는데, 별안간 아주 낯선 각도로 일상을 바라볼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인 것이다.

 

팔 년 전, 점심시간에, 이 행성은 파괴되었다. 괴멸되었다. 중력의 법칙은 지방법 같은 것이고, 따라서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건 주차 딱지를 떼는 거나 마찬가지로 별것 아닌 양, 점심시간에 하늘에 둥둥 떠 있던 노란 보고 행성의 우주선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는 오늘 밤, 영원히 망각 속으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고향으로 돌아온 바로 오늘, 자신의 머릿속에서 자리를 잡겠다고 서로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감정들 중에서 그를 사로잡은 것이 하필이면, ‘이거요’라는 말을 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한 여자에 대한 강박적 애착이라는 사실에 황당할 뿐이었다.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꽂혔고, 누군가가 대서양 같은 걸 통째로 체로 쳐서 갖다 붓는 것만 같았다.

러셀은 욕설을 퍼부으며 마치 하늘 전체가 앞 유리창에 와서 퍽퍽 부딪혀대는 듯한 몇 초간, 앞을 노려보며 열심히 운전을 했다. 그는 무모하게 액셀을 밟아 ‘매케너의 전천후 화물 운송’이라고 쓰여 있는 트럭을 추월하는 걸로 분을 풀었다.

 

사람들은 다 CIA가 전쟁에 마약을 사용하려고 실험을 했다든가 뭐 그랬다고 합디다. 다른 나라를 진짜로 침략하는 대신, 사람들이 침략당했다고 믿게 만드는 게 훨씬 비용이 저렴하다든가 뭐 그런 미친 이론이었지요.”

 

입이 약간 벌어졌다 닫혔다 하며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달싹거렸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CIA를 상대로 소송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변호사 친구가 하는 말이 그건 바나나 한 개로 정신병자 수용소를 공격하는 짓이나 다름없다고 하더군요,

 

 

 

6.

아서는 떠나는 자동차 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꼬락서니는 마치 오 년 동안 자신이 장님이 된 줄 알고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너무 큰 모자를 쓰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열심히 활기차게 걷다 보면, 그리고 쓰리고 아픈 물집이 몇 개 더 생기면, 제정신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최소한 자신이 아직 존재한다는 사실 정도는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개는 너무 멍청해서 주인이 만드는 광고에서도 쫓겨나고 말았다. 어떤 개 먹이를 좋아해야 되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다른 그릇에 든 고기에는 엔진 오일을 퍼부어 놓았는데도 말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세계에서조차 외계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7.

세상이 돌다가 조금 진정했을 무렵, 아서는 침대 옆 협탁의 조명에 손을 뻗었다. 불이 들어오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놀랍게도 불이 들어왔다. 이 사실은 아서의 논리적 사고를 자극했다. 전기료를 꼬박꼬박 제대로 낼 때는 어김없이 전기를 끊곤 했으니, 돈을 전혀 안 낼 때 불이 들어온다는 것도 상당히 그럴싸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괜히 돈을 보내서 불필요한 주목을 끌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한때는 반쯤 먹다 만 샌드위치였던 물건들은 이제 아서가 별로 정체를 파악하고 싶지 않은 물건으로 반쯤 변해 있었다. 여기다 벼락을 쳐서 전류를 흘려 넣으면, 생명체의 진화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겠군, 아서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밀러의 실험 ::
생명의 기원- 할데인과 오파린의 가설
20세기 초 스코틀랜드의 과학자인 할데인(John B. S. Haldane; 1892~1964)과 러시아의 오파린(Aleksandr I. Oparin; 1894~1980)은 지구상에 생명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가설을 제시하였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지구가 막 생성되었을 때의 원시 대기는 암모니아(NH3), 메탄(CH4), 수증기(H2O)와 같은 수소가 풍부한 분자가 주요한 성분이었으며, 이러한 분자들은 번개, 자외선, 열과 같은 에너지를 통해 간단한 형태의 유기물로 합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원시 대기는 산소(O2)가 거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새롭게 합성된 유기물들은 산화반응을 통한 분해가 어려웠으며 그대로 원시 바다에 축적되었을 것이다. 결국 간단한 형태의 유기물은 중합반응을 통해 더 큰 분자로 바뀌었고,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와 같은 막 형태의 구조물이 유기물을 받아들여 원시적인 세포가 생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한 이 가설은 당시에는 지적 호기심 정도로 받아들여졌으며, 1950년대에 들어서야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밀러와 유리의 실험
1952년 미국 시카고 대학에 있던 유리(Harold C. Urey; 1893~1981)와 대학원생이었던 밀러(Stanley L. Miller; 1930~2007)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할데인-오파린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계획하였다. 실험은 원시 대기에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는 무기물로부터 간단한 형태의 유기물이 화학반응에 의해 합성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밀러는 산소를 제거한 플라스크에 메테인(CH4), 암모니아(NH3), 수소(H2)를 넣고, 물을 끓여서 수증기(H2O)가 들어가도록 장치를 고안하였다. 여기에 전기 방전을 시키면서 아래쪽 플라스크에 생성된 물을 관찰하였다. 실험이 시작된 첫째 날부터 플라스크 안의 물은 분홍색으로 변하기 시작했으며, 일주일이 지나자 붉은색의 탁한 용액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밀러는 이 용액을 크로마토그래피를 이용하여 분석함으로써, 글리신(glycine)·알라닌(alanine) 등의 아미노산과 몇몇 유기물이 생성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밀러의 실험은 원시 대기의 상태로 여겨지는 가상의 조건으로부터 생명체의 구성 성분인 간단한 형태의 유기물이 합성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비록 무기물로부터 간단한 유기물을 합성한 것이 실제 생명 현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이 실험을 발판으로 삼아 생명의 기원에 대한 후속 연구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밀러의 실험 [Miller-Urey experiment]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그것은 방송통신대학 강의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낡아빠진 텔레비전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방송통신대학 강의보다 조금만 더 흥미진진한 걸 보려고 하면 텔레비전은 당장 고장이 나곤 했다.

 

엄지손톱으로 톡톡 두들겨보았더니, 깊고 화려한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도저히 불가능하게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지속되었고, 마침내 잦아들 때는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마치 다른 세계로, 깊고 깊은 바다의 꿈속으로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 났다.

 

달은 물기를 촉촉히 머금은 채 하늘에 떠 있었다. 방금 세탁기에서 꺼낸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나온 종이 한 뭉치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다림질을 해야, 간신히 그것이 쇼핑 목록인지 오 파운드 지폐인지를 분간할 수 있는 그런 꼬깃한 종이들 말이다.

 

이제 그 자리에는 코듀로이 바지와 풍성한 스웨터의 매끈한 캐주얼 차림을 한 아서 덴트가 있었다. 머리도 짧게 자르고 깨끗하게 감았으며, 턱의 수염도 깔끔하게 면도한 모습으로. 오로지 두 눈동자만이 여전히 우주가 자기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제발 이제는 그만해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부서진 마음을 그만 휙 지나치고 나서, 그제야 다시 돌아가서 찾아보려 했지만, 그 마음은 암기 훈련 과정에서 사과가 그려진 카드의 짝을 찾는 것처럼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자기가 사실이기를 바라는 바가 뭔지 일단 알게 되면, 그 다음에는 그 바람이 사실임을 깨닫는 데 본능이란 놈이 상당히 유용한 도구가 되어주는 법이다.

 

 

 

9.

아서는 입을 다물고 더 이상 해명을 하지 않아야 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오히려 창의력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연금술이 살 빼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청중을 구성하는 부품 한 개가 물었다.

 

그는 청중 가운데 의심에 빠진 부품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사실 전부 다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한 바퀴 돌아보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0.

포드 프리펙트는 만족감에 찬 사악한 웃음을 애써 참다가, 굳이 참을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닫고 큰 소리로 웃어댔다. 사악하기 짝이 없는 웃음이었다.

 

우주선은 현재 연필처럼 가느다란 광선 단 한 줄만 지속적으로 발산하면서, 이 신호를 처음에 발생시킨 행성으로 다시 발송하고 있었다. 광속으로 여행하는 신호는 앞으로 사백 년 동안 목적지에 닿지 못하겠지만, 막상 닿게 되면 엄청난 소동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

 

그는 자신이 킬킬거리거나 낄낄거리며 웃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벌써 삼십 분도 넘게 킬킬거리지 않으면 낄낄거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1.

아서가 아무리 무관심하게 투덜거리는 신음 소리를 내고 있어도, 남자는 죽어도 말을 걸고야 말겠다고 작정한 사람처럼 굴었다.

 

이제 지구의 공기가 머리 위를 영원토록 에워싸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지구에 존재하는 만물이 범상찮은 기쁨의 원천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는, 뭔가 굉장한 정부 기밀이라도 말해줄 것처럼 얼굴을 구겼다.

 

그는 커피를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그냥 마셔버리기엔 너무 뜨겁고, 차게 마시기엔 너무 맛이 없었다.

 

진짜 자동차로 그녀를 칠 뻔한 걸 간신히 피한 아서는, 자동차 문을 훌렁 열다가 그만 차문으로 그녀를 치고 말았다.

 

우산은 서글프게 땅바닥에서 목숨이 다해가는 짜부라진 구정거미처럼 널부러져 있었다. 미약한 돌풍에 우산은 살짝 경련했다.

 

혼자서 꼼짝도 않고 서 있는 그녀는, 격식을 갖춘 정원에 서 있는, 아주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는 미덕을 상징하는 여신상 같았다. 그녀는 눈에 보이는 걸 바라보지 않는 듯한 눈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미소를 지을 때면,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가 느닷없이 이 자리에 나타난 것만 같았다. 온기와 생명이 한꺼번에 그녀의 얼굴로 밀려들었으며,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우아함이 온몸에 흘러넘쳤다. 그 효과는 굉장히 사람 정신을 산란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아서는 정신이 산란해서 죽을 것 같았다.

 

“우산 걱정은 마세요.” 그녀는 올라타면서 아서를 보고 말했다. “우리 오빠 건데요, 자기가 좋아하는 거였으면 나한테 주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녀는 “좋았어요”라고 말했지만, 목소리는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육신이, 차 안에, 자기 차 안에 이렇게 앉아 있다는 사실이 아서로서는 엄청나게 특별한 일처럼 느껴졌다. 생각은커녕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가 되어버린 아서는, 천천히 차를 발진시키면서 이 두 가지 기능이 운전에 필수적인 게 아니기를 바랐다. 안 그러면 큰 일이니까.

 

“그래서…….” 그는 흥미진진하게 대화의 포문을 열 수 있기를 바라며 말문을 열었다.

 

아주 가깝거나 아주 멀거나, 둘 중의 하나이기를 바랐다. 가깝다는 건 아서 집 근처에 산다는 뜻일 테고, 멀리 간다는 건 거기까지 차로 함께 갈 수 있다는 뜻이니까.

 

“톤튼에 살아요?” 아서는 기쁨을 주체 못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그냥 호기심 정도로 들리기를 바라며 이렇게 말했다. 톤튼은 그의 집에서 기가 막히게 가까운 곳이었다. 그러면…….

“아니, 런던이요.” 그녀가 말했다. “한 시간 안에 기차가 출발한대요.”

이건 최악의 상황이었다. 톤튼은 일단 고속도로만 타면 몇 분 내에 갈 수 있었다. 아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고, 고민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버리고는 경악했다. “오, 런던에 데려다 줄 수 있어요. 런던까지 데려다주게 해주세요…….”

덜떨어진 바보 같으니. 대체 뭐 하러 ‘해주세요’ 같은 멍청한 소리를 했담? 그는 마치 열두 살짜리처럼 굴고 있었다.

그녀는 냉정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런던에 가시는 길이세요?”

“네.” 설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시작한 지 딱 이십 초 만에 모조리 다 망쳐버리다니.

 

“그냥 혹시라도 말이죠.” 그가 말했다. “그냥 한번 해보는 생각인데요…….” 그는 다음에 자기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어디 무슨 말이 나오나 한번 들어보자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아주 굉장히 특별한 이유로 당신이 내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당신은 모르지만, 나도 그쪽한테 아주 중요한 사람이고 말이죠. 하지만 갈 길이 겨우 오 마일밖에 남지 않은 데다, 내가 멍청한 바보 천치라서 화물 트럭에 치이지 않고는 방금 처음 만난 사람한테 아주 중요한 말을 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서 그 모든 게 다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어요……그러면 내가…….”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멈추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앞을 봐요!”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이런 망할!”

그는 수백 대의 이탈리아 세탁기들을 싣고 있는 독일 화물 트럭 측면에 충돌하는 사태를 간신히 면했다.

“내 생각에는…….” 그녀는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쉰 후 이렇게 말했다. “제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저한테 뭐 마실 거라도 한 잔 사셔야 할 거 같네요.”

 

 

 

12.

영국에는 끈질기게 사라지지 않는 특유의 정서가 있다. 바로 샌드위치를 어떤 식으로든 흥미진진하고 매혹적이고 먹을 때 기분 좋게 만드는 짓은 죄악이며, 그건 오로지 외국인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생각이다.

‘되도록 말라빠지게 만들라’는 게 집단적인 국민 의식에 깊이 박혀 있는 요리 수칙이었다. “되도록 고무처럼 만들어라. 햄버거를 굳이 신선하게 보관해야 한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물로 씻도록 하라.”

영국인들은 나라가 저지른 죄악들을 무조건 토요일 점심 때 주점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일로 보상하곤 한다. 나라가 대체 어떤 죄악들을 저질렀는지는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별로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죄악이라는 건 잘 알고 싶어할 만한 게 못 되니까. 하지만 나라에서 지은 죄가 뭔지 몰라도, 국민들한테 억지로 먹이는 샌드위치들로 충분히 속죄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샌드위치보다 더 나쁜 게 있다면, 그건 샌드위치 옆에 나오는 소시지들이었다. 물렁뼈투성이에다 기쁨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튜브들은 뜨겁고 한심한 모양의 바닷물 같은 데 둥둥 떠 있었는데, 주방장 모자를 고정하는 실핀 같은 걸 꽂은 채였다. 세상을 혐오하다가 스텝니 한구석의 의자에 앉아 고양이들 사이에서 홀로 죽어간 주방장을 기념하는 제스처라도 되는 것처럼.

소시지들은 자기 죄를 자기가 알고 구체적인 죄악을 씻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요리였다.

 

“하나에 겨우 십 펜스밖에 안 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 두 장을 사실 수도 있답니다. 은행을 털지 않고도 말이지요!” 그녀는 쇳소리가 섞인 웃음을 깔깔 웃더니, 희한할 정도로 오랫동안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예의 미소를 더욱 심하게 잡아당겨 끌어올렸다. 이제 그만두고 힘을 빼지 않으면, 곧 피부가 찢어질 게 틀림없었다.

 

“이렇게 스라소니처럼 그쪽을 쳐다보고 있는 이유는, 하도 많이 들어서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가 된 그 질문을 또 듣게 될까 싶어서 그래요. 그쪽이 그 질문을 하게 되면 아마 저는 토라지고 실망할 거예요. 또 비명도 지를 거예요. 어디 두고 보세요.”

 

 

 

15.

여덟 시간 서쪽에서 한 남자가 홀로 주저앉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그는 한 번에 작은 꾸러미로 싼 슬픔 하나씩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전체는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길고 느릿느릿한 태평양의 파도가 백사장을 따라 밀려드는 광경을 바라보며,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때였던 관계로 마땅히 그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고, 그날 오후는 그렇게 저물어갔고 태양은 길게 한 줄로 뻗은 바다 너머로 져버렸으며 그날 하루는 그렇게 가버렸다.

 

그는 아끼고 사랑하던 모든 것을 잃고, 이제 그저 세상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의 종말이 이미 왔다 갔다는 사실을 모른 채.

 

 

 

16.

아서는 커피 잔 테두리 너머로 음산한 바깥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 장소가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논리가 아니라 미신에 등을 떠밀려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연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끼로 그를 낚으려는 건지, 운명은 지난번에 마주쳤던 그 화물 트럭 운전사와 재회하게 해주는 쪽을 선택했다.

무시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그 남자와의 분통 터지는 대화 속으로 소용돌이처럼 더 깊이 말려들 뿐이었다.

“내 생각에는…….” 아서는 괜히 이런 말을 하는 자기 자신을 마음속으로 저주하면서 막연하게 말했다. “이제 한풀 꺾이는 거 같은데요.”

 

“비는……항상……언제나 내린단……말요…….”

 

 

 

17.

기억을 짜내 대충 그린 그림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그게 얼마나 오래전 일이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포드 프리펙트가 대충 때려 맞힌 ‘몇백만 년 전’이라는 말밖에는, 계산을 할 만한 숫자도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최소한 결과를 생산해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런 식으로 온갖 서투른 법칙들의 도가니, 황당한 근사치, 그리고 고대의 추리력 등을 발휘해서는 동굴은커녕 은하계나 제대로 찾아가면 다행이라는 사실은 전혀 개의치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그냥 밀고 나가서 결과만 얻으면 되었다. 그리고 그걸 맞는 답이라고 이름 붙이면 되는 것이었다. 대체 누가 알기나 하겠는가?

 

 

 

18.

섭정공 전하 :: 조지 3세가 정신 분열증을 일으켰을 때 섭정을 맡았던 황태자, 즉 훗날의 조지 4세를 말한다.

 

스테레오 세트도 있었는데 거기 장착된 스피커들은 스톤헨지를 세운 친구들을 놀라 자빠지게 만들 만큼 거대했다.

 

옥상의 여유 공간에는 갤러리 구조물 같은 게 있어서 속에 침대도 있고 목욕탕도 있었다. 펜처치는, 거기 욕조에다 실제로 고양이를 던져 넣을 수도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상당히 참을성이 있어서 두개골에 좀 심각하게 금이 가도 개의치 않는 고양이라야 해요.

 

그들은 한순간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한순간은 더 긴 순간이 되었고, 느닷없이 아주 긴 순간이 되었다. 그러다 그 많은 시간이 다 어디서 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길어져버렸다.

 

별안간 아서는, 동물원에서 태어나 자라는 바람에 쉽게 근육 뭉침에 시달리는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아서는 샴페인 병을 냉장고 문으로 밀어 넣다가, 거기 이미 자기가 들고 온 샴페인 병의 일란성 쌍둥이가 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둘이 냉장고 안에 나란히 누워 있으면 될 터였다.

 

“나쁜 건 아니에요. 그냥 흔치 않을 뿐이지. 아주아주 흔치 않은 일이거든요.”

 

 

 

20.

여름의 태양이 공원의 나무 사이로 저무는 건 마치……괜히 말을 빙빙 돌리지 말자. 하이드 파크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월요일 아침의 쓰레기 더미만 빼면 하이드 파크의 모든 것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심지어 오리들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여름날 저녁 하이드 파크를 지나치면서 그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지 않는 건, 십중팔구 얼굴 위에 시트를 뒤집어쓰고 구급차에 누운 채로 지나가는 사람밖에 없을 거다.

 

“한 이십 분쯤 일찍 온 거예요. 기차 시간을 잘못 안 거죠. 아니면 또 한 가지 그럴싸한 가능성이 있는데…….” 그는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영국 철도 공사가 기차 시간을 잘못 알았을 수도 있어요. 거 참, 그 생각은 미처 못해봤네요.”

 

“글쎄요, 그런 상황에서 혈기 왕성한 영국 사람이 할 만한 행동을 했어요. 어쩔 수 없이…….” 아서가 말했다. “못 본 척했죠.”

 

“글쎄, 비스킷이 겨우 여덟 개밖에 안 들어 있더라고요. 하지만 그때는 꼭 일평생 먹을 비스킷을 한 번에 다 먹는 기분이었어요.

 

아서는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주위를 에워싼 공기가 꼼짝도 않고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순간. 아서는 공기가 어디론가 꺼져버리고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는 듯한 그런 깨달음이었어요. 거의 눈치 채지 못하고 걱정한 수년 세월이 순식간에 씻겨 나가는 거죠.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어요.” 뒤쫓아 가던 이집트 사람들 중 한 명이, 모세가 지팡이를 휘둘렀을 때 일어난 홍해의 변화는 좀 이상한 편이었다고 말하는 듯한 말투였다.

 

“여기에 세계가 있어. 여기에,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이 세상이 있어. 사라지지 않고 머물러 있다고. 그리고 나도 그 속에 살고 있단 말이야.”

 

사람들은 ‘환각’이라고 말만 하면, 그게 뭐든 해명하고 싶은 모든 문제들을 해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끝내 이해 못할 문제가 있으면, 결국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건 그저 단어에 불과해요. 아무것도 해명하지 못한다고요.

 

그녀가 그의 무릎에 손을 댔는데, 바로 그 덕분에 아서는 척추 위아래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있는 이 짜릿한 느낌이 등을 보드랍게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길이 아니라, 사람들의 설명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고약하게 소름끼치는 불안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1.

문제는, 아니 수많은 문제 중 하나는——왜냐하면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인데

 

은하계가 매일 매시간 매분 던져대는 이 수없이 변화하는 상황과 조건들이 그것을 이 어마어마하게 상세하고 복잡한 전자책에 반영하기 위해 성실하게 고군분투하는 신중하고 양심적인 편집자에게는 굉장한 악몽이겠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한참 잘못된 생각이다. 독자 여러분의 실수는, 이 편집자는 전임 편집자들이 하나같이 그러했듯이 ‘신중하다’든가 ‘양심적’이라든가 ‘성실하게’ 같은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악몽을 빨대로 빨아먹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데 있다.

 

불을 뿜는 용들이 본질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동물이 아니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실 그들은 평화를 사랑했다. 그들은 평화를 속속들이 뼛속까지 사랑해 마지않았는데, 이렇게 무차별하게 속속들이 사랑해 마지않다보면 종종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수도 있다. 사랑하는 대상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2.

 앤초비 :: 에스파냐의 바스크어로 건어물을 뜻하는 안초바(anchova)에서 온 말이다. 생선을 묽은 소금물로 씻어서 포화식염수에 7∼8시간 담근 후,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을 뿌려서 무거운 것으로 누르고 뚜껑을 덮어 수개월 동안 냉암소에 저장한다. 이때 월계수나 후추ㆍ정향 등의 향신료를 넣기도 한다. 다 익은 후에 꺼내어 배를 갈라 뼈를 제거하고 둘둘 말아서 병 같은 그릇에 꼭꼭 채우고 올리브유를 부어 꼭 싸매둔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초비 [Anchovy, Acciughe] (정통 이태리 요리, 2011. 1. 10., 한춘섭, 염진철)

 

“솔직히 인정해야겠는걸요.” 아서가 말했다. “내가 뭘 찾고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걸.”

“찾으면 알게 될걸요.” 그녀가 말했다.

 

 

 

23.

 그레이프프루트 :: 18세기에 서인도제도 바베이도스에서 발견된 왕귤나무의 자연잡종이다. 1823년 미국 플로리다주에 도입하였으며 1880년대에 상업 재배를 시작하였다. 그레이프프루트라는 이름은 향기가 포도 같다는 뜻도 있으나 포도송이 모양으로 열매를 맺는다는 데서 유래한다. 최대 생산지는 미국 플로리다주이며 전세계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나무가 자라는 모습이나 열매는 왕귤나무와 비슷하다. 5월 상·중순에 흰색 꽃이 총상으로 피는데 왕귤나무의 꽃보다 작다. 열매를 자몽이라고 하며 작은 원뿔 또는 공 모양이다. 열매 껍질은 매끄럽고 엷은 노란색이다. 씨방 껍질은 얇고 부드럽다. 과육은 주로 흰색인데, 연하고 즙이 많으며 단맛과 신맛이 알맞고 약간 쓴맛이 있으나 시원한 느낌이 있다.
추위에 잘 견디지 못하므로 당귤나무보다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온대지방에서는 겨울에 낙과가 많고 품질이 떨어지며, 온도가 높고 비가 많이 내리는 지대에서는 궤양병이 많이 발생한다.대부분 냉동농축한 주스로 가공하는데, 생으로는 열매를 두 도막 내어 열매껍질과 속껍질을 버리고 설탕을 넣은 다음 브랜디를 몇 방울 떨어뜨려 차게 해서 먹는다. 기후로 보아 한국에는 재배에 적합한 곳이 거의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레이프프루트 [grapefruit]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25.

물론, 진실이고, 진실만을 포함하고 있기는 해도, 사실 진실의 영예로운 전모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26.

현기증 나는 추락에 속이 메슥거렸고,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질렀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유일하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이제 죽는 건 기정사실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정사실이 일어나는 걸 바라지 않는다면, 그도 기정사실이 아닌 뭔가 엉뚱한 짓을 해야 했다.

 

피루엣 :: 발끝으로 도는 발레의 동작

 

 

 

27.

나한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알아야겠어요. 이게 우리 두 사람의 차이에요. 당신은 뭔가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지만, 나는 뭔가를 찾았다가 잃어버렸단 말이에요. 그걸 다시 찾아야 되겠어요.

 

그나저나 핼리 혜성을 타고 날아본 기분이 어때?”

“핼리 혜성…….” 아서는 한숨이 나오는 걸 참으면서 말했다. “못 타봤어.”

“좋았어. 핼리 혜성 못 타본 기분이 어때?” “

상당히 마음이 편하지, 머레이.”

 

 

 

28.

“그랬더니 이 여자가 말하길, 지금 전화에서 3.2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걸어달래요.”

“아.”

“그래서 다시 걸었어요. 그러니까 상황이 아까보다는 좀 좋아졌대요. 이제는 전화에서 겨우 2.6광년밖에 안 떨어져 있지만, 아직 고함을 치기에는 좀 먼 거리라나요.”

 

 

 

29.

“대단히 중요한 안내 방송입니다. 이 비행기는 로스앤젤레스행 백이십일 번 비행기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여행 계획에 로스앤젤레스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시다면, 지금이 이 비행기에서 내리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사료됩니다.”

 

 

 

30.

그들은 갑자기 경이롭고도 비합리적인 행복에 사로잡혀 심지어 끔찍하게 낡은 자동차 라디오에서 겨우 두 채널만 잡히고, 그것도 두 채널이 동시에 나온다는 사실마저 개의치 않게 되었다.

 

 

 

31.

데이비드 보위를 한두 사람쯤 데리고 데이비드 보위 하나를 또 다른 데이비드 보위 위에다 붙이고, 또 다른 데이비드 보위를 처음 두 사람의 데이비드 보위의 팔뚝에다 붙인 다음에 그걸 전부 합쳐서 더러운 비치 가운으로 둘둘 감으면, 존 왓슨과 똑같이 생긴 건 아니라도 존 왓슨을 아는 사람이 보면 굉장히 낯익다고 생각할 만한 형상이 나올 것이다.

 

해변용 접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어디까지가 접의자고 어디서부터 존 왓슨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건드리기도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그 얼굴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사태들만 모아놓은 것 같았지만, 그가 짧은 순간 특정한 순서로 얼굴을 재조립하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갑자기 ‘아, 그렇구나. 이제 다 괜찮은 거야’라는 느낌이 들게 하곤 했던 것이다.

 

“여기 말이오.” 정신 멀쩡한 웡코가 말했다. “우리는 지금 정신병원 바깥에 있는 거라오.”

 

“이쑤시개의 중간 부분을 손으로 잡는다. 뾰족한 부분을 입 속에서 촉촉하게 적시도록 한다. 이빨 사이의 공간에 삽입하고, 뭉툭한 부분을 잇몸에 대도록 한다. 부드럽게 넣었다 뺐다 하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러니까.” 정신 멀쩡한 웡코가 말했다. “이쑤시개 한 상자에다가 사용 설명서를 붙일 만큼 제정신을 잃어버린 문명이라면, 그런 문명 속에서 더 이상 우리가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과학자는 뭐가 눈에 보이면 그 물체가 보려고 했던 것이든 아니든 보인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먼저 보고, 생각은 나중에 하고, 그 다음에 시험을 하는 거지요. 하지만 늘 일단은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게 될 거라 예상하는 것만 보게 되니까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리죠.

 

카랑카랑하게 그리고 목소리에 헉 하고 놀라는 신음소리를 넣어서 “대체 그거 어디서 난 겁니까?”라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말이 나오려는 순간이 왔지만, 그는 천분의 일 초 차이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경이로움에 차서, 아니 거의 최면에 걸리다시피 회색 어항 속에서 섬광처럼 빛나는 번개 같은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는 우리 어항에다가 맥아를 보관한다오.” 웡코가 다시 말했다. 말투에 처음 듣는 어감이 배어 있었다. “어젯밤까지는 그랬지요…….”

“어젯밤에.” 아서가 천천히, 그리고 숨을 죽이고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맥아가 다 떨어졌소.” 웡코가 차분하게 말했다. “아내는 지금 맥아를 사러 간 참이지.” 그는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32.

대양의 깊은 포효.

생각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머나먼 해변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

심해의 소리 없는 천둥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부터, 이름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들, 아니, 목소리들이 아니라 웅웅거리는 듯, 떨리는 듯, 말이 되다 만 듯한 소리들 그리고 반쯤 알아들을 듯 말 듯한 생각의 노래들.

인사들, 물결처럼 밀려오는 인사말들,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가 함께 부서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지구의 해변에 부딪치는 슬픔의 충격.

기쁨의 파도가……어디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찾아낸,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방법으로 도달한,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이 젖은 세계, 물의 노래.

이제 목소리들이 연주하는 푸가, 와글와글한 해명, 돌이킬 수 없는 대재앙에 관한, 파괴를 앞둔 세계에 관한, 해일처럼 밀려드는 무기력함, 발작 같은 절망, 끝으로 치달려 작아지는 노랫소리, 또 다시 터져 나오는 단어들.

그리고는 한 줄기 희망, 겹겹이 접힌 세월의 함의들로부터, 침잠된 차원으로부터 유령 같은 지구를 재발견하고, 평행선들의 팽팽한 당김, 깊디깊은 노력, 의지의 회전, 팽팽한 의지력의 긴장된 싸움, 싸움. 새로운 지구가 끌어올려져 대체되고, 돌고래들은 사라졌다.

 

 

 

33.

과학자들은 이해가 안 되는 걸 찾아내면, 일반인들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만한, 심지어 발음도 안 되는 이름을 붙이곤 하지요.

 

 

 

35.

그는 앞으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짓을 실제로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칫하면 드디어 작동을 시켰다는 성취감에 도취한 나머지, 그 제품들이 본질적으로 전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기가 아주 쉽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그리고 이것이 이 기업 제품의 전 은하적 대성공의 배후에 숨겨진 탄탄한 기본 원칙인데——제품의 피상적 설계 결함에 근본적 설계 결함이 완전히 가려져서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 치의 임무는 오 년간 신세계를 발견하고 탐사한 후에 ‘첨단 음악 대체 시스템’을 레스토랑이며, 엘리베이터며, 술집 같은 데 파는 거였어! 레스토랑이나 엘리베이터나 술집이 없는 세계면, 인공적으로 문명의 성장을 촉진해서 결국 그런 빌어먹을 것들을 끝내 다 갖게 만들고야 만다는 거야!

 

성공적으로 포드와 함께 지내려면, 평온한 얼굴을 아주아주 많이 준비해두었다가 항상 그 얼굴을 하고 있는 수밖에 없다는 걸 이미 오래 전에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네.” 아서는 끌어올 수 있는 평온함이란 평온함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끌어 모아서 이렇게 말했다.

 

 

 

36.

“최소한 걔 머리 두 개 중 한 개는 이제 황산을 밟고 선 타조보다 정신이 맑아졌어.”

 

 

 

37.

나이츠브리지 :: 런던의 고급 쇼핑가

 

 

 

38.

근접 구역은 울타리를 쳐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고 날아다니는 작은 서비스 로봇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 주위에 육군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그들은 근접 구역에 결코 진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만일 다른 사람이 침입하면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그리고 육군을 둘러싸고 있는 건 경찰들이 둘러친 밧줄이었다. 군중을 군대에게서 보호하려는 건지, 군대를 군중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건지, 아니면 거대한 우주선의 치외법권을 보장하려는 건지, 우주선이 주차 딱지를 떼는 일을 막기 위한 건지, 목적을 전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 밧줄은 수많은 열띤 논쟁의 화두로 등장했다.

 

우주선 깊은 곳에서부터 끽끽거리고 갈아대고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백만에 달하는 흉측한 오작동이 만들어내는 음악이었다.

 

“얼마나 믿을 만한 사람이죠?” 펜처치가 무너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믿을 만한’ 사람이냐고요?” 아서가 말했다. 그는 허허로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차라리 망망대해가 얼마나 얕으냐고 물어보죠?” 그가 물었다. “태양이 얼마나 차가운가요?”

 

진입로를 에워싸고 경비를 하던 군인들은 의미심장하게 바스락거렸고, 지령이 앞뒤로 오갔으며, 황급한 회의가 여러 번 열렸지만, 물론,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수준기(水準器) :: 기포관수준기와 원형수준기 두 종류가 있다. 전자는 봉형(棒形)수준기라고도 하며, 단독으로 마룻바닥이나 책상 위의 수평을 알아보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지만, 보통 수준의(水準儀)나 트랜싯 등의 기계의 일부로서 사용된다. 정밀한 것은 모두 기포관수준기로 한 눈금은 2mm이다. 기포의 중심을 눈금의 중심에 맞추면, 눈금 중심에 있어서의 관내면(管內面)의 접선(수준기 축이라고 한다)이 수평이 된다.
기포를 한 눈금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관의 기울기 각도의 초수(秒數)를 감도(感度)라고 하며, 이 초수가 작을수록 감도가 높다. 원형(園形水準器)수준기의 경우는 기포를 작은 원의 중심에 오게 하면 수평면을 얻을 수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준기 [level, 水準器]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40.

“스쿠터들은 독실한 신자들을 위한 게 아닙니다.” 아이스크림 매대를 지키고 있던, 키 작은 여자가 말했다.

“오, 그럼 잘됐네요.” 펜처치가 말했다. “우리는 별로 독실한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그냥 관심이 있을 뿐이에요.”

“그렇다면 지금 발길을 돌려야 해요.”

 

그들은 자신들이 이 여정을 처음으로 떠난 사람들이 아니며, 현재 이 여정을 밟고 있는 유일한 사람들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 시간이 너무 많아. 그리고 고통도. 고통이 너무 많아. 또 고통을 겪을 시간도 너무 많아.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을 텐데. 둘이 함께 덤벼드니, 정말 힘들어서 죽을 거 같아.

 

그곳에는 글씨들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작은 유료 망원경들이 있었지만, 그걸 쓰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글씨들은 천국의 신성한 빛으로 눈부시게 불타오르고 있었으며, 망원경으로 보면, 망막과 시신경을 심각하게 손상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문제는 그 사람이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될 문제에, 적어도, 사람들이 늘 얘기하듯 ‘지금은 안 돼’라고 하는 순간에, 너무나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이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기는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잠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젊은 자포드 안전하게 처리하다

섬사람들은 경험의 종류가 달랐고, 그래서 그들은 그게 캐비닛을 닮았다는 것보다도 그게 바다가재와 너무나 안 닮았다는 데 놀랐다.

 

“저거야.” 머리 중 하나의 주인이 마침내 말했다.

“확신할 수 있을까?” 다른 머리의 주인이 말했다.

“백 퍼센트 장담해.” 첫 번째 머리의 주인이 대답했다.

“이 바다 밑바닥에 침몰한 배가 당신이 백 퍼센트 침몰 안 한다고 백 퍼센트 장담한다고 말했던 그 배가 맞다고 백 퍼센트 장담한단 말이죠?” 나머지 머리 두 개의 주인이 말했다. “아.” 그는 손들 중 두 개를 들어보였다. “그냥 물어보는 겁니다.”

 

그는 다시 조종석에 털썩 앉더니 맥주를 두 개 땄다. 하나는 자기 몫이었고 다른 하나도 역시 자기 몫이었다.

 

“우선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는 게 어떨까요. 이 배에 정말 뭐가 있는지 그냥 말해주는 게 어때요?”

“말씀드렸습니다.” 공무원이 말했다. “부산물이라고.”

자포드의 머리들이 지겹다는 듯한 눈짓을 서로 교환했다.

“부산물.” 그가 말했다. “뭐의 부산물이죠?”

“절차요.” 공무원이 말했다.

“무슨 절차요?”

“전적으로 안전한 절차입니다.”

 

“저건 난파선일 리가 없습니다, 비블브락스 씨.” 공무원이 고집을 부렸다. “저 배는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보증이 되었어요. 저게 부서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 왜 당신은 그렇게 가서 보고 싶어 안달이죠?”

“우린 완벽하게 안전한 걸 보는 걸 좋아하죠.”

 

쿼크 :: 소립자의 복합 모델에서의 기본 구성 입자의 한 종류이다. 대부분의 물질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은 다시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 쿼크는 6가지 종류가 있으며 물리학자들은 이들을 up/down, charm/strange, top/bottom 등 3개의 쌍으로 분류하고 있다. 쿼크는 특이하게 분수 전하를 갖고 있다. 쿼크는 또한 색소 전하라는 또 다른 종류의 전하도 갖고 있다. 가장 발견하기 어려웠던 쿼크인 top 쿼크는 이론적으로 예측된 지 20년만인 1995년에 발견되었다. 양성자는 전하가 +2/3e인 up 쿼크 2개와 전하가 
-1/3e인 1개의 down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중성자는 2개의 down 쿼크와 1개의 up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쿼크 [quark] (Basic 고교생을 위한 물리 용어사전, 2002. 4. 15., 신근섭)

 

자포드는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무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짧은 시간 미친 듯이 내부 논쟁을 벌인 끝에 기절해버리는 게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탐사가 특히 광적인 지경에 도달했던 한때, 어느 똑똑한 젊은이가 사용 가능한 에너지를 완전 소진해버리지 않았던 유일한 장소를 갑자기 발견해냈다. 과거였다. 그런 통찰에 걸맞게 그의 머리에는 갑자기 피가 확 몰렸고, 바로 그날 밤 당장 그는 그 자원을 채굴할 방법을 발명해냈다. 그리고 일 년도 지나지 않아 과거의 거대한 영역들에서 에너지들이 모두 유출되어 마구 탕진되었다. 과거는 훼손하지 말고 내버려둬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극도로 값비싼 감상주의에 탐닉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과거는 값싸고 풍부하며 깨끗한 에너지원을 제공해줬으며, 천연 과거 보존 구역은 유지비를 대고 싶어하는 사람만 있다면 언제든지 몇 개쯤 만들어질 수 있었다. 과거를 고갈시키는 것이 현재를 궁핍하게 만든다는 주장에 대해서라면, 글쎄, 뭐 아주 약간은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측정할 수 없었고, 그러니 정말로 균형 감각을 가져야만 했다.

현재가 정말로 궁핍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그리고 그 이유가 저 이기적인 미래의 약탈꾼 녀석들이 똑같은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고 나서야, 모든 사람들은 모든 아오리스트 막대 하나하나와 그걸 만드는 끔찍한 비법이 완전히, 영구히 폐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는 자신들의 할아버지와 손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물론 자신의 할아버지의 손자들, 자기 손자들의 할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

 

“이 배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느냐 하면, 그걸 사용하려고 할 정도로 정말 미친 인간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죠. 아무도. 적어도 그 정도로 미친 사람이 그 근처에 갈 수는 없을 겁니다. 미치거나 위험한 사람들은 모두 굉장히 강한 경계 경보를 울리는 법이거든요. 사람들이 어리석을지는 몰라도 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아요.”

 

녀석들은 역사상 가장 위험한 생물들이었어요. 가능하다면 못할 짓이 없었고, 가능하지 않은 일 자체가 하나도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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