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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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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5
코미디와 사이언스 픽션을 합친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던 더글라스 애덤스의 작품으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제5권 「대체로 무해함」편.   아서 덴트는 다시 지구로 돌아오려다 샌드위치 제조의 대가라는 명예로운 직위에 안주한다. 한편《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비밀스럽게 변신하는 것처럼 보이고, 포드 프리펙트는 도주하던 중 아서 덴트와 마주치는데, 아서의 딸은 막 포드의 우주선을 납치한 참이다. 이 책은 지구와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자유분방한 우화를 담고 있다. 기발하고 유쾌한 상상력, 엉뚱하고 황당한 장치와 대화들, 과장된 캐릭터들, 상식과 형식을 파괴하는 자유로움, 진지한 주제들을 사소한 농담처럼 희화화하는 익살스런 유머들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온다. 그러면서도, 삶과 우주의 근원적 의미 등 철학적인 질문들을 독자에게 남겨놓는 독특한 책이다.   저자가 BBC 라디오 프로듀서인 사이먼 브렛과 의기투합하여 쓰기 시작한 이 시리즈는 드라마, 책, 음반, 컴퓨터 게임, CD, 연극 등 온갖 버전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버전들이 생겨났다. 이번에 출간된 시리즈는 이렇게 생겨난 다양한 버전들을 한데 모은 최종 완결판이란 점에서 의의가 깊다. '코믹 SF'라는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물의 명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좋은 기회다.
저자
더글러스 애덤스
출판
책세상
출판일
2005.01.15

 

0.

일어나는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일어나면서 다른 일을 일어나게 만드는 일은, 그게 어떤 일이든지 간에 또 다른 어떤 일을 일어나게 만든다.

일어나면서 다시 반복되어 일어나는 일은,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또다시 반복되어 일어난다.

하지만 반드시 시간 순서대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1.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여행하는 것은 없다. 나쁜 소식 정도라면 예외가 될 수 있을까. 나쁜 소식은 자신만의 특별한 법칙을 따르는 법이다. 알킨투플 마이너 행성의 힌지프릴인들은 나쁜 소식을 동력으로 쓰는 우주선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그 우주선은 소기의 목적을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어찌나 냉대를 받았는지, 가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전쟁이나 사업상 우주선 함대들이 머나먼 곳으로 파견되었지만, 이런 여행으로 어딘가에 도착하는 데는 대개 수천 년이 걸렸다. 그래서 우주선들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할 때가 되었을 때는, 초공간을 이용해 빛의 속도를 앞지르는 다른 형태의 여행 방법이 이미 발견된 이후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빛보다 느린 속도로 여행하는 우주선 함대가 무슨 전쟁을 하러 파견되었건 간에, 그들이 실제로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그 전쟁은 몇 세기 전에 상황이 종료되어버린 판국이었다.

 

물론 자신이 먹통이 되었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했다. 완전히 먹통이 되어버렸으니까.

 

 

 

2.

생명의 놀라운 점 중 하나는 그것이 온갖 종류의 장소에서 삶을 견디며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약간의 통제력만 가질 수 있는 곳이라면 생명은 어느 곳에서나 어딘가에 들러붙어 살아갈 방법을 발견한다.

 

봄은 너무나 과장되게 부풀려졌다. 많은 뉴요커들은 봄의 기쁨 운운하며 엄청나게 떠들어댄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봄의 기쁨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뉴욕보다 더 즐겁게 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적어도 오천구백팔십세 개는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도 같은 위도상에 말이다.

 

 우디 앨런 :: 1935년 뉴욕 출생으로 유태계이다. 뉴욕과 유태인, 출생과 관련된 이 두 가지는 이후 그의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요소가 된다. 뉴욕대학교를 다녔으나 중퇴하고 "투나잇 쇼"의 개그작가로 일을 시작하였으며 각종 토크쇼의 각본가로 유명해졌다. 1961년에 스탠딩개그로 코미디를 하면서 더욱 유명해졌고, 희곡과 시나리오를 쓰면서 재능을 발휘하였다.1969년 자신의 각본인 《돈을 갖고 튀어라 Take the Money and Run》로 감독에 데뷔한 후 《바나나 Bananas》(1971), 《잠자는 사람 Sleeper》(1973), 《사랑과 죽음 Love and Death》(1975) 등의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다. 초기작은 정신없는 슬랩스틱코미디와 엄청난 양의 대사가 쏟아지는 스타일이었으나, 《애니홀》(1977) 이후부터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시킨 도시극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또한 영원한 뉴요커답게 뉴욕의 삶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드는 것도 그의 특색이 되었다.《실내 Interiors》(1978)와 《맨해튼 Manhattan》(1979)에서부터 현대 산업사회의 정체성 찾기를 탐구한 《젤리그 Zelig》(1983), 《카이로의 자줏빛 장미 The Purple Rose of Cairo》(1985), 놀라운 연출력과 지적 분위기로 아카데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한나와 그 자매들》(1986), 《브로드웨이를 쏴라 Bullets over Broadway》(1994), 《마이티 아프로디테 Mighty Aphrodite》(1995)까지 많은 작품에서 그는 자신의 관심에서 비롯된 비슷한 주제를 다양한 변주로 보여준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Everyone Says I Love You》(1996), 《해리 파괴하기 Deconstructing Harry》(1997), 《셀러브리티 Celebrity》(1998),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2011), 등이 있으며, 작가로서 코믹 에세이 모음집 《게팅 이븐》과 단편소설 모음집 《깃털 없이》도 출판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디 앨런 [Woody Allen]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모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큰 기회를 만난다. 만일 당신이 정말 갖고 싶었던 기회를 놓쳐버리면, 인생의 나머지 모든 것들은 기괴할 정도로 쉬워져버린다.

 

세상에 나도는 소문을 듣는 것과 직접 연락을 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실제로 그녀가 하러 온 일은 아침에 해치웠지만, 그녀가 좇고 있는 상상 속의 일은 손 닿지 않는 지평선 위에서 감질나게 어른거릴 뿐이었다.

 

그녀는 방의 에어컨은 최저 온도까지 내리고 선풍기 설정은 제일 강하게 올려놓았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소름이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다음에 찬물로 샤워를 하고, 타월을 감고 침대에 누워 에어컨 바람에 몸을 말리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메시지를 읽는 거다. 그럼 소름이 더 돋겠지. 아마 온갖 일들이 일어날지도 몰라.

 

이건 그녀가 기대하고 있던 이름이 아니었다. 이 이름은 기습과도 같이 그녀를 덮쳤다. 이름이 낯익긴 한데, 그 이유는 금방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의 옷은 값비싼 고급 취향의 영역에 있긴 했지만, 분명 그 영역의 가장자리 끝에 쑤셔 박혀 있었다.

 

공짜 점심이란 없는 법이다.

 

우주에서 빙빙 돌고 있는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하루에 대해 무엇인가 알고 있다는 의견은, 전에는 아무도 몰랐던 새로운 바위 덩어리가 갑자기 저 밖에 있다는 사실에서 약간의 타격을 받을 게 분명 틀림없다.

그러면 폐기해야 하는 주장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일주호(日) :: 지구의 자전에 의해 천체가 천구상에 그리는 호

 

 적경 :: 춘분점을 기준으로 천체까지의 각으로서, 춘분점을 지나는 시간권부터 천체를 지나는 시간권이 이루는 반시계방향의 각을 0°에서 360°, 또는 0시에서 24시의 범위로 측정한 값이다. 천체의 자오선 통과의 시각을 지방항성시로 나타내면 그것이 적경에 해당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적경 [right ascension, 赤經]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놀랍게도, 자기가 트리시아에게 날린 모든 공들은 곧바로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게다가 도저히 받아칠 수 없는 변화구까지 넣어서. 트리시아에게 있어 텔레비전의 예쁘장한 앵무새 역할은 인생에서 두 번째로 시도하는 역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무도 게일에게 경고해주지 않았다. 그녀의 샤넬 립글로스와 와일드한 헤어컷, 파란색 콘택트렌즈 뒤에는, 과거 자포자기했던 시절 최고 성적으로 수학 학위와 천체 물리학 박사 학위를 딴 비상한 두뇌가 있었던 것이다.

 

트리시아 맥밀런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쓸 때 사람들이 위를 쳐다보는 바로 그 자세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는 이런 갑작스러운 친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고, 친절에 홀려서 실수하지 말아야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다. 뉴욕 사람들이 친절하게 굴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녀는 말을 시작했지만, 다음 순간 자신의 말투야말로 딱 화나고 불행한 사람 말투여서 자기가 하려던 항의가 도리어 먹히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규칙들은 나름대로 납득이 가요.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규칙이죠. 하지만 그 규칙들을 실행하려고 하면, 온갖 종류의 절차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결국은 사람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죠. 점성술의 규칙들은 어쩌다 보니 별과 행성들에 관한 것이지만, 암컷과 수컷 오리가 더 좋다면 그것들에 관한 규칙이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문제의 형태는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만들어지죠. 규칙은 많을수록 더 작아지고, 더 임의적일수록 더 좋은 법이에요. 부드러운 흑연 가루 한 줌을 종이 위에 뿌려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자국을 찾는 것과 같죠. 그러면 이제는 지워버려서 보이지 않는, 그 위의 종이에 쓴 글자들이 나타나는 식으로 말이에요. 흑연 가루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건 그 자국들을 드러내는 수단일 뿐이죠. 그러니 점성술은 천문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다만 사람들의 사람들에 대한 생각과 상관있을 뿐이죠.

 

그녀는 지금 막 십칠 년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꽁꽁 숨겨왔던 비밀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서 들은 참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게일을 바라봤다.

 

보안 카메라라는 것은 사람들이 눈치 챌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뉴욕에 있는 비싸고 우아한 호텔조차 자기 고객들이 넥타이를 매지 않거나 갑자기 총을 빼서 들이대지 않을 것을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하도록 디자인되지 않았다.

 

블루밍대일 :: 뉴욕에 있는 백화점

 

알아낸 게 아니에요. 전 그냥 당신이 하는 말을 들었을 뿐이죠.

 

“누구나 그런 짓을 하죠. 매일 매순간마다요. 우리가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 숨쉬는 호흡 하나하나가 어떤 문들은 열고 다른 많은 문들은 닫아버리죠. 대부분은 알아채지도 못해요. 어떤 것들은 알아차리고요. 당신은 하나를 알아챈 것 같군요.”

 

한 인생이 끝나고 다른 인생이 시작된 거죠. 하지만 이 삶의 매순간 전 다른 내가 어떻게 됐을지 못 견디게 궁금해요.

 

마치 그녀가 저 바깥 어딘가에 있고 전 그녀의 그림자 속을 걸어 다니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요. 진짜로 가서 알아본 적은 없어요. 정말로 그래보진 않았죠. 제 인생이 그래요. 정말로 진짜는 한 적이 없죠. 그래서 제가 텔레비전 일을 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진짜가 아니죠.”

 

“더 이상 말씀 안 하셔도 돼요. 전 괜찮아요. 그저 점성술일 뿐인걸요. 해될 것도 없고. 세상이 끝난 것도 아니잖아요.”

 

히스로 공항 :: 영국 런던에 있는 국제 공항

 

살아가면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가방을 가지러 되돌아가서는 안 되는 때가 있고 그래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하는 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3.

평행 우주라는 주제에 대해 《안내서》가 해주는 한 가지 고무적인 이야기는, 당신이 평행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없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보같이 보일까 봐 걱정하지 말고 맘대로 “뭐라고?”라든지 “에에?” 따위의 소리를 해도 되고 심지어 사팔뜨기 눈을 하거나 허튼소리를 해도 좋다.

평행 우주에 대해 알아야 할 첫 번째 사실은, 그것이 평행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안내서》는 말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우주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그걸 깨달으려고 애쓰지 말고 좀 기다려보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왜냐하면 그 순간까지 당신이 깨달은 모든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 될 테니까.

그것들이 우주가 아닌 이유는, 사실 주어진 모든 우주는 그 자체로 어떤 것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말해서 WSOGMM, 즉 온갖 종류의 총체적 혼란Whole Sort of General Mish Mash이라고 알려진 것을 바라보는 한 가지 방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온갖 종류의 총체적 혼란 또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방식들의 총합이 있을 뿐이다. 그런 게 존재한다면 말이다.

우주들이 평행이 아닌 이유는 바다가 평행이 아닌 이유가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온갖 종류의 총체적 혼란을 얇게 썰어보면 어떻게 썰든지 간에 대체로 누군가가 고향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온다.

이제 헛소리를 해도 좋다.

 

 

 

4.

그는 꼭두새벽에 뉴욕에서 온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동의하지도 않았다. 체질에 맞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거의 모두 다 믿었다.

 

오늘 하루를, 아니,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실제로 만든 계획에 따라 인생을 살려고 하는 것은 슈퍼마켓에서 요리 재료들을 사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다. 카트 하나를 구하면, 그게 미는 방향으로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바람에 결국에는 전혀 다른 재료를 사버리는 것이다. 그걸로 뭘 하겠는가? 조리법은 어떻게 하지? 그녀는 몰랐다.

 

 

 

5.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물체가 점점 더 가까이 오기 시작하자, 그녀의 호기심은 황망함으로 바뀌었다.

 

트리시아가 말했다. 물론 그녀는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예상하지 못하던 일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진행되리라고는 예상도 못했다.

 

얼굴에는 표정이라곤 전혀 없었지만, 그녀는 도대체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6.

바닥은 그가 기억하는 것보다 통풍구에서 삼 인치 더 떨어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기억하는 것과는 다른 행성 위에 있었다. 하지만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삼 인치였다.

 

그의 삶에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들은 그 정도가 크건 작건 간에 모두 기묘했다. 이번 것은 단지 그가 익숙해져 있는 기묘함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기묘했을 뿐이었다.

 

경계경보는 그가 잘 알고 있는 익숙한 방식으로 울려대고 있었다. 거기에는 일종의 리듬이 있어서 거의 따라 흥얼거릴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건 매우 익숙했다.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것들은 모두 적어도 자기만큼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에게 속아 넘어갈 수 있다. 완전히 논리적인 로봇을 속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똑같은 자극순차를 계속 줘서 환상 회로에 갇히게 만드는 것이다.

 

로봇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지루하거나 행복할 능력, 그리고 그런 상태를 가져오기 위해 만족시켜줄 필요가 있는 몇 안 되는 조건들뿐이었다. 그러고 나면 나머지는 스스로 알아서 할 것이었다.

 

“전 정말 너무 기분이 좋답니다.”

“어, 그럼 전에는 어땠는데?”

“몹시 즐거웠죠.”

 

“저는 새로 온 당신의 책임편집잡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계속 이 일을 하기로 결정하신다면 말이죠.”

 

너무나 어리둥절한 나머지 아직 진짜로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건 하나의 미래죠.” 할이 말했다. “당신이 그걸 받아들이면, 그건 당신의 미래에요. 당신은 다차원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이 순간으로부터 모든 방향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래들이 뻗어나가고 있다고요. 또 지금 이 순간에서부터, 그리고 또 지금 이 순간에서부터. 수십억 개의 미래들이, 매 순간마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겁니다! 가능한 모든 전자들의 가능한 모든 위치가 급속히 증대하면서 수십억 개의 가능성으로 변하는 거죠! 수십억 개, 그리고 또 수십억 개의 반짝거리며 빛나는 미래들!”

 

그는 분별 있는 경계 조치를 취하며 몸을 뒤로 던졌다가 머리를 방탄유리에 심하게 부딪히더니, 걱정스러우면서도 굉장히 개인적인 꿈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그는 꽤 편안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지갑의 무게가 가슴을 누르지 않는다면 숨쉬기가 더 편안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포드에게 들었다. 그래서 그는 할의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살짝 꺼내 슬쩍 속을 뒤져봤다.

 

현금 인출기를 한번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은 줄지어 서서 지문을 인식하고, 망막을 스캔하고, 목덜미에서 피부조각을 벗겨내서 즉석(혹은 거의 즉석——지루한 현실에서는 6〜7초 정도가 족히 걸리니까) 유전자 분석을 기다린다. 그러고는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가족이나 선호하는 식탁보 색깔에 대한 등록 정보에 관한 교묘한 질문들에 대답해야 한다. 그런 일을 그저 주말에 쓸 현금 좀 빼내자고 해야 하는 것이다. 제트카를 사려고 공채를 발행하려고 한다거나, 미사일 조약에 사인을 하거나, 레스토랑 청구서를 몽땅 계산하려고 한다면, 상황은 정말로 무진장 힘들어질 수 있다.

 

최근엔 사는 것이 좀 지루했었다. 하지만 이젠 모든 게 극도로 재미있어질 거란 신호가 사방에서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7.

“절망 속에서 여행하는 것이 여기 도착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늪 돼지의 언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은 전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생물들은 서로의 넓적다리를 세게 물어뜯어서 의사소통을 했기 때문이다.

 

이게 그가 올 수 있는 한 가장 고향에 가까이 온 상태라는 걸 그는 깨달았다. 즉, 그가 할 수 있는 한 고향에서 가장 멀리 왔다는 뜻이다.

 

그는 펜처치를 세상에서 가장 완전하면서도 절대적인 방법으로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은하계에 나와서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자신이 전혀 모르는 일들의 숫자가 사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 딴에는 친해보자고 그러는 겁니다. 이건 그 우정을 돌려주는 방식일 뿐이고요.” 그가 막대기를 거머쥐며 덧붙였다.

 

“예, 여기가 맞아요, 그럼요.” 그는 다시 말했다. “행성은 맞는데, 우주가 틀렸죠.”

 

 

 

8.

포드에게는 자신만의 윤리 규칙이 있었다. 뭐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그건 자신의 것이었고 대체로 그는 거기에 따라 행동했다. 그가 만든 규칙 중 하나는 절대로 자기 술은 자기가 사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게 윤리에 포함되는 건지는 포드도 잘 몰랐지만, 사람이란 자기한테 있는 걸 가지고 살아야 하는 법이다.

 

그것은 먹이를 주는 손을 무는 것과 같았다. 손을 세차게 빤다든가, 심지어 일종의 애정 어린 방법으로 잘근잘근 씹어대는 것도 괜찮았다.

 

문제의 진실은, 온갖 종류의 대단히 교묘한 일들이 《안내서》가 내세우는, 혹은 이 새로운 인피니딤 엔터프라이즈 무리들이 몰려 들어와 모든 일을 대단히 교묘하게 만들기 시작하기 전에 내세웠던 쾌활하고 행운이 가득한 행복한 표면 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그 번쩍이는 건물을 지탱하는 온갖 종류의 탈세와 사기, 횡령, 음험한 거래가 존재했으며, 그 모든 것들이 넘어가는 곳은 건물 저 아래에 안전히 자리 잡고 있는 연구와 정보 처리 층이었다.

 

《안내서》가 건물을 가지고 이사할 때는 야밤의 도둑 비슷하게 떠났다. 사실 정확하게 야밤의 도둑처럼 떠났다. 《안내서》는 이른 새벽에 주로 떠났고, 다음 날 보면 항상 없어진 물건들이 수두룩했다.

 

“쾌락과 고통을 합치면.” 그가 중얼거렸다. “항상 만사형통이지.” 

 

전선을 쾌락 전극에 바로 꽂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복감은 약간 불안한 종류의 행복이었다.

 

은하계 전역에서 현장 연구자들이 보내는 보고서들이 서브-에서-넷에 모아져서 곧바로 부편집자들의 사무실 네트워크로 입력되었고, 거기에서 괜찮은 부분은 몽땅 비서들에 의해 잘리게 된다. 왜냐하면 부편집자들은 점심식사를 하러 나가고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원고는 법무 팀이 있는 건물의 나머지 반쪽——에이치 모양 건물의 다른 한쪽 다리 말이다——으로 쏘아 보내진다. 법무 팀은 남은 원고 중에서 아직 조금이라도 괜찮은 부분을 잘라낸 뒤, 중역 편집자들의 사무실로 다시 날려 보내는데, 그들 역시 점심 먹으러 나가고 없다. 그래서 편집자들의 비서들이 그걸 읽어보고는 시시하다고 말한 뒤 대부분의 남은 원고를 잘라내 버린다.

 

이 매가리 없는 설사 같은 게 녀석이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원고

 

그래서 편집된 원고는 법무 팀을 돌며 마지막으로 난도질과 화형을 거치고 나서 다시 이곳으로 내려 보내지며, 여기서 원고는 은하계 어디에서건 즉시 검색할 수 있도록 서브-에서-넷을 통해 방송된다.

 

그는 이 우주의 지리를 잘 몰랐다. 심지어 이곳의 차원적 범위나 습성을 규정하는 물리 법칙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본능은 발견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을 찾아 그쪽으로 가라고 말했다.

 

제대로 안정된 자세를 잡았다는 것을 일단 확신하게 되자, 그는 그만 아래를 내려다보는 무시무시한 실수를 저질렀다.

그가 비척대고 있을 동안은 까마득한 저 아래의 거리가 필요 이상으로 그를 괴롭히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거기 들러붙어 있자니, 그 거리는 그의 심장을 말라붙게 하고 뇌수를 휘어지게 만들었다. 그의 손가락은 고통과 긴장으로 하얗게 변했다. 이빨은 통제 불능 지경으로 서로를 갈며 돌아갔다. 비비 틀리는 극심한 메스꺼움이 몰려온 나머지 눈동자가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그는 바위 턱을 단단히 붙들고 앉았다. 이게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짓인지 아니면 여기서 더 떠오르지 않으려고 하는 짓인지 스스로도 잘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 자신이 와 있는 세상을 살펴보기 위해선 뭔가 붙잡고 있을 게 필요했다.

 

레이저 불빛이 마치 그가 슈퍼마켓 계산대 위에 놓인 과자 봉지라도 되는 듯이 그의 온몸을 번쩍번쩍 비추어댔다. 고화력 레이저 총들은 잠시 유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가상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가상공간에서 가상 레이저 총에 맞아 가상으로 죽는 것은 실제로 죽는 것과 효과가 똑같다.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실제로 죽는 것이다.

 

모든 조직의 소유권을 자기 이름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발각되지 않을지는 좀 의심스러웠다. 하여간 그는 그런 건 원하지 않았다. 그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 사무실에서 늦도록 일하는 것 말이다.

 

서브루틴 :: 특정 또는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반복 사용할 수 있는 독립된 명령군

 

 서브루틴 :: 메인 루틴(main routine)에 대응되는 단어로, 프로그램 중의 하나 이상의 장소에서 필요할 때마다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부분적 프로그램으로, 그 자체가 독립해서 사용되는 일 없이 메인 루틴과 결부 시킴으로써 그 기능을 완수한다. 서브루틴을 실현하는 데는 다음의 두 종류가 있다.
① 서브루틴 본체를 프로그램 중의 한 장소에서만 실행시에 호출하는 방법을 폐쇄 서브루틴(closed subroutine)이라고 한다.
② 서브루틴의 본체를 프로그램 중의 필요한 개소에 직접 전개하는 방식을 개방 서브루틴(open subroutine)이라고 한다.
[참고] 순번이 매겨진 명령문의 집합으로, 하나 이상의 컴퓨터 프로그램의 안 또는 하나의 컴퓨터 프로그램 이상의 장소에서 사용되는 것.[주] 서브프로그램이라는 용어는 서브루틴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브루틴 [subroutine] (컴퓨터인터넷IT용어대사전, 2011. 1. 20., 전산용어사전편찬위원회)

 

이 시점에서 그냥 다 그만두고 그저 일이 다 잘되기를 바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일이 잘될 가능성이란 할이 자신의 아이덴트-아이-이즈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않아야지만 생긴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포드는 저런 인생은 도대체 어떤 걸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오랫동안은 아니었다. 당장 자기 인생이 도대체 뭔지 그게 더 염려됐기 때문이다. 

 

 

 

9.

아서는 약간의 상실감을 느꼈다. 은하계 전체가 그의 앞에 놓여 있는데도, 단지 두 가지가 없다는 이유로 불평을 한다면 자기가 너무 예의가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세상과 그가 사랑한 여자가 없는 것이다.

젠장,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안내와 충고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참조했다. ‘안내’라는 항목을 찾아봤더니 거기에는 “‘충고’ 항목을 보시오”라고 되어 있었다. 그는 ‘충고’ 항목을 찾아봤다. 거기에는 “‘안내’ 항목을 보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취주악단 :: 현재의 취주악형식은 군악대(軍樂隊)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에 각국이 공히 군악대와 더불어 발전해 온 셈이며 그간 관악기의 발명과 개발 등으로 인해서 편성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유럽 여러 나라는 악기의 발달과정에 따라 각국마다 각각의 전통을 지녔으며 그 전통을 토대로 편성되어 있다. 일찍부터 목관악기가 발달 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그 음색을 중시하여 목관악기를 중심으로 편성하고 있으며, 금관악기가 발달한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금관악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영국에서는 스코틀랜드의 민족악기인 백파이프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으나 뒤에 금관악기가 많이 제조됨에 따라 금관악기 중심의 편성으로 바뀌었다. 미국에서는 미국악장협회(ABA:American Bandmaster’s Association)에서 편성기준을 정하고 있어 거기에 따르고 있다. 취주악단은 그 연주 목적에 따라 편성되기도 하고 편성에 따라 연주 목적이 결정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행진연주나 퍼레이드를 주체로 하는 마칭밴드, 무대에서 연주를 중심으로 하는 콘서트밴드, 금관악기와 타악기만으로 편성되는 브라스밴드 등이 그것이다. 취주악단의 구성원은 대체로 아마추어가 많으며 전문가만으로 이루어진 연주회용 악단은 드물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저명한 취주악단으로는 프랑스의 가르드 레퓌블리켄취주악단(1920) ·파리경찰음악대(1885), 영국의 그레너디어 거즈(1656) ·골드스트림 거즈(1742) ·스코치 거즈(1685)의 각 군악대, 미국의 골드먼 취주악단(1911), 일리노이 ·미시간 ·남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각 대학의 취주악단을 들 수가 있다. 한국은 1896년(건양 1) 민영환(閔泳煥)이 유럽의 문물을 두루 살피고 돌아온 후 양식군악(洋式軍樂)의 설치를 주청(奏請)하여, 1900년(광무 4) 12월 19일 칙령(勅令) 제59호로 군악대를 설치하게 되어 1901년 2월 독일 사람 F.에케르트를 시위대(侍衛隊) 군악대 지도자로 초빙하였으며, 이것이 한국 취주악단이 생긴 처음의 일이다. 현재 한국에는 3군 군악대를 비롯하여 각급 학교에 크고 작은 악대가 조직되어 있으며 주로 행진이나 행사 때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취주악단 [band, 吹奏樂團]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예언자가 라디오를 퍽 쳐서 벤치에서 먼지투성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바닥에 떨어진 라디오는 조율이 엉망으로 된 닭처럼 꽥꽥거렸다.

 

“아니, 제 말은, 저 목소리가 제가 아는 사람 같았다고요.”

“훌리 공주가? 돌아다니면서 훌리 공주를 아는 사람들한테 다 인사를 해야 된다면, 허파를 새로 하나 더 달아야 될 거요.”

 

그녀는 정착해서 하나의 시대에 살고 싶어하오. 저 처자는 그렇소. 하지만 그 결과는 눈물 밖에 없을 거요. 아마 벌써 그럴지도 모르지.” 그는 망치를 휘둘렀고 자기 엄지손가락을 꽤나 호되게 찍었다. 그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미친 듯이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훌륭한 사제를 찾는다면 다른 사제들이 찾아가는 사제를 찾는 게 최고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하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입구에는 이런 공지가 붙어 있었다. “전 더 이상 모릅니다. 옆집으로 가보세요 → 하지만 이건 공식적인 신탁의 충고가 아니라 그냥 제안일 뿐입니다.”

 

노파의 작업은 절망적이었다. 왜냐하면 그 파리들은 모두 날개 달린 병뚜껑만 했고, 노파가 가진 거라곤 탁구채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노파는 눈이 반쯤은 먼 것 같았다. 아주 가끔, 노파가 제멋대로 휘두른 팔이 어쩌다가 파리 한 마리와 맞아떨어져 진하게 만족스런 철썩 소리를 내곤 했다. 그러면 파리는 대기를 맹렬하게 가로질러 날아가서 동굴 입구에서 몇 야드 떨어진 바위 표면에 철썩 하고 부딪히곤 했다.

이 순간이야말로 노파의 인생 최고의 낙이라는 게 그녀의 태도에서 여실히 보였다. 

아서는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로 멀찍이 떨어져서 이 색다른 공연을 잠시 지켜봤다. 그러고는 마침내 노파의 주의를 끌기 위해 가볍게 기침을 하려고 했다. 예의상 하려고 했던 가벼운 기침은, 불행하게도 우선 이제까지 그가 마시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현지 대기를 들이마시는 것으로 시작됐고, 그 결과 그는 발작적으로 컥컥거리며 가래 기침을 해대다 숨이 막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바위 표면에 쓰러져 버렸다. 숨을 쉬려고 애썼지만, 한 번씩 숨을 새로 쉴 때마다 사태는 더 엉망이 되었다. 그는 토했고, 다시 반쯤 숨이 막혔고, 토사물 위를 굴렀고, 몇 야드 정도 계속 더 굴러가다가 결국에는 겨우 겨우 손과 무릎을 지탱하고 일어나 헉헉거리며 공기가 좀더 신선한 곳으로 기어갔다. 

“실례합니다.” 그가 말했다.

 

노파가 움직일 때 공기의 흐름이 움직이는 방식으로 보아 그 냄새의 주 진원지는 노파인 게 끔찍하게 명백했다. 햇볕 아래 마르고 있는 오줌보들, 썩어 들어가는 시체들, 독한 스프들 모두가 그 대기를 만드는 데 용감한 공헌을 했겠지만, 냄새의 주된 실재는 바로 그 여자였다.

 

걱정되는 것은, 만약 그가 용기를 내서 토사물 가까이 다가간다면 그걸 치우기보다는 오히려 거기다 더 보태놓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항진증 :: 
1.명사 의학 신체 기관의 작용이나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증상.
[네이버 국어사전] 항진증(亢進症)

 

“준비됐나?” 노파가 말했다.

“네…….” 아서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무엇에 대한 준비라는 건지 몰랐다.

 

“이게, 어, 이게 그러니까 당신의 충고입니까?” 아서가 자신 없이 복사물들을 뒤적이며 말했다. 

“아냐.” 노파가 말했다. “이건 내가 살아온 이야기야. 알겠지만, 어떤 사람이 충고를 하던 간에, 그 충고의 질은 그 사람이 실제로 살아온 삶의 질에 견주어 판단해야 하는 거야.

 

내가 제안할 수 있는 건 다만, 내가 내린 결정과 정반대의 결정을 내린다면, 아마도 인생의 말년을…….”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허파 가득 숨을 들이켜고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이런 냄새 나는 낡은 동굴에서 보내진 않을 거야!” 

 

너무나 갑작스레 돌아보다가 그는 샌드위치를 떨어뜨렸다. 샌드위치는 공중을 낙하해 내려갔고 땅에 닿았을 무렵에는 꽤나 작았다.

 

그 남자가 마침내 주위를 둘러보다 그를 봤다. 그는 아서를 보고 놀란 듯했다. 아서는 그가 자신을 봐서 놀라고도 기쁜 건지, 아니면 그냥 놀라기만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거기 간 거죠?” 아서가 어리둥절해하며 외쳤다.

“내가 마흔 번의 봄, 여름, 가을을 장대 위에 앉아서 알아낸 것을 그런 식으로 말해줄 거라고 생각하나?”

“겨울에는요?”

“겨울?”

“겨울에는 장대 위에 앉아 있지 않나요?”

“내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장대에 앉아 보낸다고 해서 내가 바보인 건 아니지. 난 겨울에는 남쪽으로 간다네. 바닷가에 별장을 가지고 있거든. 굴뚝에 앉아 있지.”

“여행자들에게 해줄 충고라도 있나요?”

“응, 바닷가 별장을 가지게.”

 

아무래도 열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공간이 저 사람에게는 모양이 다른가 보다 하고 아서는 생각했다.

 

“땅과 물이 만나는 곳. 흙과 공기가 만나는 곳. 육체와 정신이 만나는 곳. 공간과 시간이 만나는 곳. 우린 한 쪽에서 다른 한쪽을 보는 걸 좋아하지.”

 

“자넨 나한테 조언을 얻으러 왔지. 하지만 자넨 자기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대처하지 못해. 흠. 그래서 우린 자네가 이미 알고 있는 걸 말하면서 그걸 새로운 것처럼 들리게 만들어야만 하지. 안 그래? 음, 흔한 일이지.”

 

“자넨 자네가 보는 걸 보기 때문에 내가 보는 것을 볼 수 없어. 자넨 자네가 아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것을 알 수 없어. 내가 보고 내가 아는 것은 자네가 보고 자네가 아는 것에 보태질 수가 없어. 왜냐하면 같은 게 아니니까. 그건 자네가 보고 자네가 아는 것을 대신할 수도 없어. 왜냐하면 그건 자네 자신을 대신하는 게 될 테니까.”

“잠깐만요. 이 말을 받아 적어도 될까요?”  아서가 흥분해서 호주머니에서 연필을 찾으려 뒤적거리며 말했다.

“우주 공항에서 복사본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런 건 널려 있으니까.” 노인이 말했다.

“아.” 아서가 실망해서 말했다. “저, 어쩌면 저랑 좀더 구체적으로 상관있는 건 없을까요?”

“자네가 어떤 식으로든 보거나 듣거나 경험하는 것은 모두 자네하고 상관있어. 자넨 우주를 인식함으로써 우주를 창조하는 거야. 그래서 자네가 인식하는 우주의 모든 것들은 자네와 상관있지.”

 

‘제가 알 필요가 없는 것들로부터 저를 보호하소서. 제가 알아야 할 모르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도록 저를 보호하소서. 제가 알지 않기로 결심한 것들에 대해 알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모르도록 저를 보호하소서.

 

 

 

10.

 괄태충 :: 괄태충(括胎蟲)이라고도 하며, 복족류에 속하는 껍데기가 없는 달팽이이다. 몸길이 4∼5cm, 몸 너비 약 1cm이다. 껍데기는 퇴화해 없어지고 연한 갈색의 외투막이 등을 감싸고 있다. 호흡공은 앞쪽의 오른쪽에 열려 있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3줄의 검은색 가로선이 있다. 검은색 점이 몸 전체에 불규칙하게 나 있으며 아래의 발부분은 회백색이다. 머리에 2쌍의 촉각(더듬이)이 뿔처럼 나 있어 자유로이 내밀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는데 뒤의 것이 앞의 것보다 길며 거기에 눈이 있다. 또 앞의 1쌍에는 후각기관이 있다.인가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장독대, 담 등의 습한 곳과 온실 등에 서식한다. 낮에는 돌 밑이나 흙속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나온다. 발의 앞끝에 점액선(粘液腺)이 나오는 구멍이 열려 있어 몸이 건조할 때 점액을 분비하여 몸이 잘 미끄러지도록 한다. 식물의 잎에 올라가 먹을 부분을 침으로 축인 후 단단한 위턱으로 물어서 갉아먹는다. 자웅동체이며 초여름에 흰색의 둥근 알을 약 40개 낳는데 약 1년 동안에 완전히 성숙하고 이듬해 알을 낳고 죽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민달팽이 [slug]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이 괄태충 같은 생물체들이 뭔가 낯이 익다는 불편한 느낌 또한 들었다. 익숙하지만, 익숙치 않은 변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젠장, 어차피 젊은 건 한때뿐이지, 포드는 생각했다. 그리고 창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면 적어도 놀랄 일은 제 몫이 될 테니까. 

 

 

 

11.

그는 내놓을 게 거의 없었고, 그러니 그 세상들도 그에게 제공할 게 거의 없었다.

 

아르마냑 :: 프랑스 아르마냑 지방에서 생산되는 브랜디 이름

 

아서는 낙담했다. 그는 이 사실에 놀랐는데,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이미 낙담할 수 있는 데까지 낙담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삶을 얻었다. 이제 삶의 목적을 찾아야 했다.

 

네트볼 :: 일곱 명이 한 팀이 되어 하는 농구 비슷한 영국의 경기

 

 네트볼 :: 6인제 배구에서, 경기 도중 양쪽 안테나 안쪽 네트에 닿은 볼은 항상 유효하다. 그러나 서비스의 경우는 실패가 된다. 9인제 배구에서의 네트 인이다.
[구기] 농구에서 파생한 것으로 1팀 7명의 2조가 상대팀의 링에 볼을 넣어 득점하는 것을 겨루는 경기로 여자만이 하는 경기이다.
<발생> 바스켓볼은 1891년 미국에서 탄생했다. 이것을 1895년 미국인이 런던의 한 체육 대학에 실내 바스켓볼로서 소개한 것이 네트볼의 시초라고 한다. 당시의 바스켓볼은 일정한 경기 규칙이 없었고, 라인도 서클도 없이 그저 홀의 양측 벽에 휴지 바구니를 골(goal)로서 걸었던 것이다. 1890년 영국에 '링 협회'가 창립되고 1901년 정식 경기 규칙이 채용되었다. 이때 '네트 볼'이라 불리게 되었다. 1905년 이후부터 이 경기는 미국, 캐나다, 프랑스, 남아프리카, 스웨덴. 덴마크, 버마, 자메이카,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네트볼은 당초부터 여자를 대상으로 한 경기였으나 링 협회도 네트볼이 자발성, 협조성, 진취의 정신을 기르는 데 유익하다는 것을 인정하여 특히 여자 학교에의 보급에 힘썼다. 또 학교를 졸업한 여성들도 네트볼 전문의 클럽을 만들기 시작, 1923년에는 이들 클럽이 모여서 '런던 앤드 홈카운티 네트볼 협회'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1926년에는 전영(全英) 네트볼 협회가 창립되었다. 이에 앞서 1924년에는 뉴질랜드에서 바스켓볼 협회가 설립되었고 또 1926년에는 전 호주 농구 협회도 설립되었다. 이 두 나라에서는 1970년경까지 네트볼을 바스켓볼이라고 불렀고,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이 경기가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잘 조직화되어 있다. 영국에서는 협회가 창립된 1926년에는 각 주에 네트볼 협회가 설립되었고 1935년에는 네트볼의 전문지 《네트볼 매거진》이 창간되어 1949년에는 협회의 공식 기관지 《네트볼》이 창간되었다.
<보급> 네트볼의 국제 조직은 '여자 네트볼 협회 연맹'이며,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의 협회의 진력으로 1967년부터 4년간에 조직으로서의 역량을 키워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활발한 보급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아직 보급되어 있지 않고, 일반에게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경기이다.
<네트볼 경기> 게임 시간은 1쿼터 15분간의 4쿼터제. 제1•2쿼터와 제3•4쿼터 사이에 3분간의 휴식 시간이 있고 또 제2•3쿼터 사이에는 10분간의 하프 타임이 있다. 게임 개시는 센터 서클로부터의 센터 패스에 의하여 시작된다. 득점은 골 어택, 골 슈터, 혹은 수비측의 실책으로 볼이 링에 들어갔을 때에 인정된다. 플레이어의 교대는 병, 부상, 피로 이외는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심판은 2명의 주심이 각각 코트의 절반씩 담당하여 판정한다.
<주요 규칙> 바스켓볼과 가장 다른 점은 플레이어의 행동범위가 일정 구역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그 구역을 벗어났을 경우는 업사이드의 반칙이 된다. 공격은 손으로 패스를 하며 패스를 받아 볼을 가진 다음에는 어느 한 발이든지 움직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다음 사항 등이 금지되어 있다. ①볼을 3초 이상 갖고 있는 것, ②볼을 갖고 달리는 것, ③볼을 던져 올렸다 다시 갖는 것, ④볼을 튀기거나 굴리거나 고의로 차는 것. 또 플레이어는 볼을 갖고 있건 아니건 간에 상대의 몸에 닿는 것은 반칙이다. 상대의 손에서 볼을 쳐서 떨어뜨리거나 볼을 갖고 있는 상대의 3ft(약 91cm) 이내로 접근하는 것도 방해로서 반칙이 된다. 반칙에 대하여 페널티 패스(penalty pass) 또는 페널티 샷(penalty Shot)이 주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네트 볼 [Net ball] (체육학대사전, 2000. 2. 25., 이태신)

 

딱 맞는 사건이 일어나게 하려는 노력의 문제점은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사건’이 의미하는 바가 아니다. 마침내 일어난 사건은 그가 계획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추락하는 내내 우주선의 시스템들은 모든 것이 완전히 정상이며 통제 하에 있다고 항의했다. 하지만 우주선이 마지막으로 미친 듯이 회전하며 숲을 초토화 지경으로 반 마일이나 찢어발기고 들어가 마침내 펄펄 끓는 불덩어리가 되어 폭발하자,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12.

그는 정말로 철저한 계산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냥 시간을 버느라 임기응변을 했을 뿐이다. 큰 위기에 처할 때면 자신의 인생이 눈앞에 좍 펼쳐지는 것이 종종 꽤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초당 삼십 피트의 속도로 땅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지만, 그는 그 문제는 닥치면 처리하자고 생각했다. 순서대로 하자고.

 

아이고, 맙소사. 이건 마치 본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틀어주는 끔찍한 관광 영화 같군.

 

그들은 페널라 행성의 브웨널리 애톨에 있는 오두막에서 일했다. 리크태너컬인들과 돈퀘드인들이 그 오두막을 부셔버리기 전에는. 여섯 명의 사내들, 타월 몇 개, 매우 정교한 디지털 장치들 조금,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꿈들이었다. 아니. 가장 중요한 것은 다량의 패널라산 럼주였다. 전적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 올드 쟁크스 스피릿이 전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 다음으로 패널라산 럼주, 그리고 또 그 동네 소녀들이 모여 노는 애톨의 해변들이지만, 꿈들도 마찬가지로 중요했었다. 그것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는 사실 그 꿈들이 뭐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당시에는 엄청나게 중요한 것 같았다. 분명 거기에는 지금 그가 떨어져 내려오고 있는, 하늘을 찌를 듯이 거대한 사무실 덩어리 같은 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창립 멤버 중 몇 명이 정착을 하고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그러는 동안 그와 다른 사람들은 계속 현장에 있으면서 조사를 하고 히치하이크를 하면서 악몽의 법인으로 냉혹하게 변해버린 《안내서》와 그것이 차지하게 된 괴물 같은 건축물에게서 점점 더 소외돼 갔다. 그 안 어디에 꿈들이 있었나? 그는 건물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 변호사들, 지하 층을 차지하고 있는 ‘직공들’, 모든 부편집자들과 그들의 비서들, 그 비서들의 변호사들과 그 비서들의 비서들, 변호사들의 비서들, 그 중 최악으로, 회계사들과 마케팅 부서들을 생각했다.

 

그들 중 누군가가 그 순간 창 밖을 바라본다면 포드 프리펙트가 확실한 죽음을 향해 자기들을 지나쳐 떨어지면서 자신들을 향해 엿이나 먹으라는 손짓을 하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다.

부편집자들. 개자식들. 녀석들이 잘라내 버린 자기의 그 모든 원고들은 또 어떤가? 한 행성에서만 십오 년씩이나 조사를 해서 기사를 보냈는데, 녀석들은 단 두 마디로 줄여버렸지. “대체로 무해함.” 그 녀석들도 엿이나 먹으라지.

 

포드는 호기심이 점점 더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다음으로는 공포심이 점점 더 솟구쳐 올랐다. 그것이 점점 커져가는 그의 느낌들의 총 목록이었다.

 

스톤워시 :: 돌과 함께 빨아서 탈색시키는 가공법으로 청바지등 데님 제품에 가해진다. 돌의 크기나 종류, 시간 등으로 그 탈색의 정도는 크게 변화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톤 워시 가공[stone wash finish] (패션전문자료사전)

 

생각할 수 있는 대책이 바닥나기 시작했고 그는 심각하게 위기를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안내서》는 더 이상 친구나 아군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제는 그 자체가 위험의 근원이었다.

 

수건을 꽉 쥐고 있는 손가락은 고통으로 불이 났다. 게다가 발목도 여전히 아팠다.

오, 고맙군, 발목. 그는 씁쓸하게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순간에 자네 문제까지 들고 오다니 고마워. 자네는 뜨뜻하고 멋진 족탕이나 하면서 기분을 풀고 싶겠지, 안 그런가? 아니면 적어도 이렇게 해줬으면 싶겠지…….

 

그 신발은 뉴욕의 로우어 이스트사이드의 한 가게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주고 산 것이었다. 그 결과로, 그는 훌륭한 신발의 기쁨에 대해 장장 에세이 하나를 썼는데, 그 모든 것은 ‘대체로 무해함’이라는 대재앙을 맞아 필요 없는 짐짝처럼 다 버려졌다. 모두 모두 젠장.

게다가 이제 신발 한 짝은 사라져버렸다. 그는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바라봤다.

문제의 행성이 완전히 파괴되어버리지만 않았더라면 이 일은 그렇게까지 무시무시한 비극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건 그 신발을 한 켤레 더 살 수도 없다는 의미가 된다.

 

적어도 그 신발은 그의 목숨을 구했다. 당분간은.

그는 건물 십삼 층의 넓이 일 피트 정도의 창문턱에 앉아 있었고, 그게 좋은 신발 한 짝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전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저 안에는 분명히 날개를 퍼덕거리고 있는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새라기보다는 우주에 있는 새 모양의 구멍인 것 같았다.

 

그 소문난 방탄유리라는 것은 실제 로켓과 만나자 그걸 막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건물 안에서 매우 짧은 사정거리에서 발사된 로켓이었다. 그건 그 유리를 디자인한 기술자들이 염두에 두지 않았던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여기서 주먹을 타월로 감고 쳐서 창문을 깨뜨릴 수 있으리라는 말은 아니다. 제기랄, 하여간 그는 그 방법을 시도했고 손을 다쳤다. 그가 앉은 자리에서 팔을 크게 휘두를 수 없었다는 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꽤나 심하게 손을 다쳤을 것이다.

 

실패라곤 있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는 바보천치가 가진 꾀를 과소평가하는 것이었다.

 

 

 

13.

단순한 일이지만 보람을 느낄 기회는 무수히 많으며 또한 그 보람의 깊이 또한 심오하다.

 

전부 합쳐서 세 개의 칼이 필요했다. 첫 번째로 빵을 써는 칼이 필요한데, 이는 단단하고 권위적인 칼날로 빵에 확고하고도 결정적인 의지를 행사할 수 있어야 했다. 다음으로는 버터를 바르는 칼이 필요했는데, 이런 칼에는 낭창낭창하고 작으면서도 든든한 심지가 필수적이었다. 초창기에 만들었던 칼들은 좀 지나치게 낭창낭창했지만, 이제는 유연성과 강인한 핵심이 결합되어 버터를 극도로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하게 바르는데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이었다.

물론, 칼들 중에서도 지존은 고기를 써는 칼이었다. 이는 빵 써는 칼처럼 칼질을 하는 대상을 뚫고 지나가면서 의지를 행사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대상과 협력해야만 했다. 힘을 합쳐 고기의 결을 따라가며, 고깃덩어리에서 얄팍하게 접히며 썰려나가는, 최고로 훌륭한 질감과 투명감을 지닌 고기 조각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샌드위치의 명인은 살짝 손목을 꺾는 동작으로 얇은 고기 조각을 아름답게 균형 잡힌 아래쪽 빵 조각 위에 올린 후, 네 번의 숙련된 동작으로 빵 껍질을 다듬은 후, 마침내 마을 아이들이 주위에 둘러 앉아 황홀함에 넋을 잃고 경탄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그 마법을 행한다. 딱 네 번 칼을 앞뒤로 뒤집으면서, 가장자리를 다듬어 만든 작은 빵 조각들을 처음의 빵 조각 위에 조각 그림 맞추기처럼 완벽하게 맞춰 올리곤 했다. 샌드위치 하나하나를 만들 때마다 다듬어 쳐낸 빵 조각들의 크기와 모양은 달랐지만, 샌드위치의 명인은 항상 너무나 수월하게, 망설이는 기미도 없이, 그 조각들을 완벽하게 맞추어 무늬를 만들어내곤 했던 것이다. 고기를 두 겹 얹고 두 번째 빵 조각들을 얹으면, 주요한 창조의 과업은 완성된 셈이다.

 

“완벽하게 정상적인 짐승 고기. 암소 같기도 하고, 아니 황소라고 해야 하나. 뭐랄까, 사실 물소 비슷하기도 해. 커다랗고 뿔로 들이받는 종류의 동물이야.”

“그런데 어디가 그렇게 이상해?”

“아무것도. 완벽하게 정상적이야.”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어찌나 할 말을 찾기가 힘든지 놀라울 뿐이었다.

 

 

 

14.

고약하고 음흉하게 도사린 보고인들을 상대하고 있는 거라는 포드의 고약하고 음흉하게 도사린 의혹은 옳았다. 그렇다면 단순하고 명료할수록 좋았다.

 

보고인들의 무서운 점은 무슨 일이든 하기로 작정한 일은 아무리 철저히 생각 없는 일이라도 철저히 생각 없이 해내고야 마는 결단력이었다. 보고인의 이성에 호소하려는 짓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보고인들에게는 이성이라는 게 없었으니까. 그러나 배짱만 두둑하게 갖고 있다면, 죽어도 편협하고 위협적이고야 말겠다는 그들의 편협하고 위협적인 고집을 가끔씩 이용할 수도 있다.

 

하루 종일 무모하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했는데 모든 일이 기묘할 정도로 깔끔하게 잘 돌아갔다.

 

 

 

15.

트릴리언이 떠난 후 약 십 초가 아서 덴트의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 우리도 다 알다시피 시간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아서가 자기 자신과 인생에 대한 관념을 재정비해, 그 날 아침 일어났을 때만 해도 존재한다는 일말의 의혹조차 품지 못했던, 전적으로 새로운 딸을 갑자기 받아들이기에는, 십 초간의 침묵으로는 턱도 없었다. 깊고 끈끈한 가족간의 유대는 십 초 만에 형성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또한 이상한 장소에 살고 있다. 각각 자기만의 우주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각자의 우주에 거주하게 하는 사람들은 우리 우주와 교차하는 전혀 다른 우주들의 그림자들이다.

 

시계는 지난 몇 년간 상당히 많은 사건들을 겪었는데, 대부분이 무상수리 규정에 들어 있지 않을 터였다. 물론 시계의 무상수리 규정에 이 시계의 정확성은 지구라는 특수한 중력과 자력장 속에서만 보장된다든가, 하루가 꼭 이십사 시간이어야 하며 행성이 폭발해서는 안 된다 등의 이야기가 명시되어 있을 리는 없다. 이런 것들은 너무나 기본적인 전제들이라서, 제아무리 변호사들이라 해도 미처 다 넣지 못했으리라.

 

자기도 이렇게 까다롭게 굴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그저, 달리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를 뿐이었다.

 

과거는 과거대로 내버려두고 현재는 미래로 나아가도록 하면 되었다.

 

아서는 몇 주일 동안 가슴 속에 꾹 맺혀 있던 작은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나갈 듯한 기분이 되었다.

 

아버지 노릇이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은 몰랐다고 할 수는 없고, 그저 아버지 노릇을 하게 될 줄을 아예 몰랐을 뿐이다. 특히 이렇게 느닷없이, 뜻밖에 외계의 행성에서 아버지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랬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고요!”

“하지만…….” 아서가 말했다. “그랬으면 죽었을 텐데! 지구가 파괴될 때 죽었을 거란 말이야!”

“그게 다른 삶 아닌가요, 안 그래요?”

 

스래시바그는 몹시 싸늘하고 조용해지더니 그녀에게 외계의 암흑 속으로 던져질 거라고 말했다. 랜덤은 “잘 됐네요, 어차피 거기서 태어났으니까”라고 말했다.

 

“몰라.“ 아서가 말했다. “하지만 뭔가 나쁘고 걱정스러운 게 분명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랜덤이 항의했다.

“왜냐하면 포드 프리펙트와 관련된 건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무조건 더 나쁘고 더 걱정스러우니까.” 아서가 말했다. “믿어도 돼.”

 

 

 

16.

살면서 배우는 법이다. 아무튼 살긴 살 테니까.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찌무룩하고 불안한 납빛 하늘은 묵시록에 나오는 4인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 나와도 정신 나간 멍청이들처럼 보이지 않을 만한, 그런 하늘이었다.

 

그녀는 ‘귀신 들렸다’는 말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터였다.

 

오늘 밤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고, 앞으로 영영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예감도 들었다.

 

그녀의 빛이 나무들 사이로 깡충거리는 사이, 그림자들이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17.

오랜 시간에 걸쳐 소위 우주에서 ‘빠진 물질’이 어디로 갔는가에 대해 수많은 추정과 논쟁이 난무해왔다. 전 은하계 주요 대학들의 이학부는 머나먼 은하계들의 핵심들과, 전 우주의 핵심과 가장자리까지 샅샅이 탐색하는 정교한 기계들을 점점 더 많이 사들였는데, 결국 추적을 끝마치고 난 결과 그 정교한 기계들에 꽉꽉 채워 넣은 모든 부품들이 모두 빠진 물질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랜덤은 빠진 물질들을 뭉친 작고 부드럽게 둥근 하얀 알맹이들을 휙 버렸는데, 이는 현 세대의 물리학자들의 발견들이 다 잊혀지고 난 후 후세의 물리학자들이 처음부터 다시 추적해서 발견해야 할 과제였다.

 

사실 저는 뒤로 가고 있었어요. 시간 속에서 후진하고 있었으니까요.

 

”기분이 나쁘시다면 ‘뒈지게’ 같은 말을 쓰지 않는 건 간단합니다만.”

“아무 말이나 하고 싶은 말은 뒈지게 하셔도 돼요.”

“그러지요.”

 

새롭게 나타난 건 하나도 없어요. 다 원래 있던 거라고요.

 

“당신 눈에 보인다고 해서 그게 거기 있다는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자리에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감각들이 주의를 환기하는 것일 뿐이에요.”

 

조종사는 잠시 멈춰서 당신을 태워주기로 한 이유를 백만 가지쯤 찾아낼 수 있겠죠. 하지만 진짜 이유는 제가 그렇게 하도록 결정했다는 겁니다.”

 

송 에 뤼미에르 :: 빛과 음향의 쇼

 

일이 초쯤 흐른 후에는 그것이 진짜 우주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또 일이 초쯤 더 흐른 후에는 그 우주선이 딸아이가 있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 자리로 똑바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이 순간이, 비고, 다리 부상이고, 어둠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갑자기 아서가 정말로 달리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는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미끄러졌고, 무릎을 바위에 상당히 심하게 부딪혀 다치고 말았다. 휘청거리며 일어서서 다시 달리려 했다. 랜덤을 영원히 잃고 말 거라는 무시무시하고 오싹한 예감이 들었다. 절뚝거리고 욕설을 퍼부으며, 그는 뛰었다. 상자에 뭐가 들었는지는 몰랐지만, 상자 위에 쓰여 있는 이름은 포드 프리펙트였다. 그리고 아서는 달려가면서 그 이름을 저주했다.  

 

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우연의 일치이거나 몹시 이상하고 근심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든가 둘 중의 하나였다.

 

아서가 그 사실을 깨닫지 않는다는 게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끝까지 나아가 그 사실을 알아내고 말았다.

 

 

 

18.

아서는 마지막으로 응급처치를 해본지 너무 오래 되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뭔지 기억났지만, 그건 응급 처치 상자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망할.

 

“너한테 딸이 있는지는…….” 포드가 말했다. “전혀 몰랐는데.”

“글쎄, 네가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아마 아주 많을걸.” 아서가 말했다. “그 말을 하고 보니, 아마 나도 너에 대해 모르는 게 엄청나게 많을 것 같다.”

 

”사연이 기러. 여기 너를 보호자로 두고 있는 나 자신한테 보낸 소포를 찾으러 오던 길이었는데…….”

“그러게, 그게 대체 다 뭐냐고?”

“내 생각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물건인 것 같아.”

“그런데 그걸 나한테 보냈단 말이야?” 아서가 항의했다.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라서. 너는 워낙 지루하고 재미없는 인간이니까 절대 열어보지 않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

 

“이 지점에서 나는 몹시 걱정이 되었어. 그리고 반쯤은 뇌진탕 상태였고. 무릎을 꿇고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유일하게 머리에 떠오르는 단 하나의 조치를 취했지. 싹싹 비는 거였어.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우주선을 빼앗지 말아요 하고 빌었지. 그리고 의료진도 없는 이런 원시적인 숲속에 머리 부상을 입은 나를 버려두고 가지는 말아달라고 했지. 나는 중대한 문제에 봉착할 테고, 그쪽도 그럴 거라고.”

“그러니까 뭐라고 하던?”

“내 머리를 다시 돌멩이로 쳤어.”

“내 딸이 맞다고 확실히 말해줄 수 있겠다.”

“거 참 귀여운 애를 뒀네.”

 

서쪽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태양이 뜨는 쪽이었다. 아서는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렇게 지옥 같은 밤을 보낸 지금, 세상에서 가장 반갑지 않은 건 바로 지긋지긋한 대낮이 또 다시 제멋대로 밝아오는 풍경이었다.

 

“오, 그래? 그런데 이놈의 지랄 맞은 버려진 벼룩구덩이를 최근에 지나친 우주선이 몇 대나 되는데?”

“글쎄, 몇 년 전에 실수로 추락한 내 우주선이 있었고. 그리고 어, 트릴리언이 왔었고, 소포 배달도 왔었고, 그리고 이제 너도 왔고, 그리고…….”

“그래, 하지만 상습혐의자들을 다 빼고 나면?”

“글쎄, 어, 내가 아는 한에는 아마 하나도 없을걸. 이 동네는 아주 조용한 곳이라.”

 

“좀 앉아서 쉬어.” 포드가 말했다. “생각을 좀 하게.”

“네가 무슨 생각을 할 필요가 있냐? 좀 앉아서 입술이 제 맘대로 부둠부둠부둠하게 내버려두면 안 될 게 뭐야? 부드럽게 침이나 줄줄 흘리면서 몇 분 동안 옆으로 누워 뒹굴면 안 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포드! 생각하고 만사를 제대로 돌아가게 하려고 죽도록 노력하는 일 따위 이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너는 내가 여기 서서 컹컹 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생각은 못했어.”

“하지만 진심이란 말이야! 대체 무슨 소용니야고? 우리는 뭔가 행동을 할 때마다 결과가 의도했던 대로 나올 거라 가정하지. 항상 그렇지만은 않은 정도가 아니잖아. 황당하게, 말도 안 되게, 바보처럼, 눈이 사팔뜨기가 되도록 허튼 소리하는 버러지처럼 틀려먹었다고!”

 

“처음으로 내가 기발하고 민활한 사고, 민첩함, 화려한 발놀림, 그리고 자기희생을 통한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정말 겸손하게 말하는 거지만——현란한 묘기로 나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데 성공했을 때는…….”

“자기희생은 뭔데?”

“몹시 사랑해 마지않으며 또한 대체 불가능하다고 간주되는 신발 한 짝을 투하해야 했거든.”

“그게 왜 자기희생이야?”

“내 거였으니까 그렇지!”

 

나는 그 물건을 포장해서 거기서 빼내기로 작정했어. 그래서 안전을 생각해서 너한테 보냈어.”

“오, 그래? 누구 안전?”

 

필터가 없는 인식이란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말이야. 알겠어? 나는 모든 걸 인식할 수 없어. 우리에겐 필터가 있단 말이야. 새로운 《안내서》는 감각의 필터가 전혀 없어. 모든 걸 인식한단 말이야.

 

 

 

19.

평원 한쪽 끝의 희박한 공기 속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다른 쪽 끝에 도달하면 처음과 마찬가지로 느닷없이 사라지곤 했다.

 

 

 

20.

그는 미처 대비하지 못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건 심지어 어려운 부분까지 가는 과정마저 엄청나게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수월한 부분이어야 하는 부분마저도 알고 보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좀더 휙휙 흔들었어야지.” 포드가 불평했다. “그 빌어먹을 짐승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려면, 손목을 더 끝까지 꺾어줄 필요가 있단 말이야.”

 

포드는 사태를 파악하지 못할 때나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할 때 즐겨 하는 구부정한 경계 태세를 취했다.

 

“당신이 없는 삶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 아주 아주 훨씬 덜 괴상할 것이요!”

아서는 깜짝 놀라버리고 말았다.

“혹시 아십니까.” 그가 말했다. “그 말씀이 제가 평생 들어본 말 중에서 가장 좋은 얘기라는 걸요.”

 

그는 뭔가 정교하고 장식적이고 의례적인 악수를 했지만 아서는 확실히 따라할 수 없었다. 스래시바그 영감은 그 순간의 기분에 휩쓸려 그 몸짓을 즉석에서 만들어낸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서는 전속력으로 돌진하고 있는 동물들의 바다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려고 몸을 쭉 폈지만, 열기로 인한 아지랑이 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21.

문에는 ‘방해하지 마시오’라는 공지로 덕지덕지 도배하고 전화 교환대를 조작해 걸려오는 전화를 모두 막아두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경이로운 특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였지만, 이제는 창피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잡지에 항상 나오는 스트레스 순위 표가 있다. 직업을 잃는 일은 스트레스 지수 오십 점. 이혼을 하거나 머리 모양을 바꾸거나 하는 일 등이 칠십오 점. 하지만 그 중 어느 것에도 자기 잔디밭에 착륙한 외계인을 따라 루퍼트 행성까지 갔다오는 일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적어도 몇 십 점은 충분히 되리라고, 그녀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지역은 그들의 태양인 솔Sol이 뿜어내는 빛과 열에서 너무나 끔찍하게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마치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의 정신세계에 남은 심리학적 흉터들을 그려놓은 지도처럼 보였다.

 

햄버거로 판명 났을 뿐 아니라, 햄버거로 판명 난 햄버거는 누가 봐도 분명히, 확연하게 전자레인지에서 다시 데운 맥도날드 햄버거였다. 그저 모양만 그런 게 아니었다. 냄새만 그런 게 아니었다. 폴리스티렌 포장에 온통 ‘맥도날드’라는 글씨가 찍혀 있었다.

“듭시다! 맛있게 듭시다!” 지도자가 말했다. “우리의 영예로운 손님을 위해서는 아무리 귀한 진미도 아깝지 않지요!”

 

“어떻게, 어, 어떻게 이 훌륭한 물건들의 값을 치르시는지요?”

지도자가 다시 킬킬거리고 웃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를 씁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트리시아는 다시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그 회사는 특히 ‘아무나’한테 카드를 발급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이것들은요?” 그녀는 그가 제공한 햄버거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주 쉽습니다.” 지도자가 말했다. “줄을 서서 사지요.”

이번에도, 트리시아는 척수를 따라 차갑고 오싹한 불안감이 훑고 지나가는 느낌과 함께, 그 말로 너무나 많은 사실이 해명된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에는 쓸만한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전부 악몽 같은 광기뿐이었다.

 

드높았던 소망만큼 쓰디쓴 낙담.

 

삶과 역사를 모두 빼앗긴 외계의 종족들이 우리의 태양계 맨 끝에 기지를 치고 그들의 문화적 진공상태를 우리의 문화적 쓰레기로 채우고 있다니. 하! 이건 자연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어서 빨리 아주 값비싼 의료기관에 찾아가 진료를 받으라고 그녀에게 말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는 두 손을 지휘자처럼 흔들어대면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계속 늘어놓았다.

 

트리시아는 자기 자신의 능력에도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그녀가 작업한 컴퓨터의 능력에도 역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오래 전 그녀가 천문학 연구를 그만둔 건, 어떤 의혹의 여지도 없이 외계에서 온 존재를 직접 만나보았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파티에서. 그리고 그 어떤 의혹의 여지도 없이, 그런 말을 입 밖에 냈다가는 웃음거리가 될 거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우주론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그 분야에 대해 알고 있는 가장 중요한 지식을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녀는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을 했다. 학계를 떠났던 것이다.

 

그녀는 기사거리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실제로 그 곳에 다녀왔다.

그녀는 그것을 보았다.

그녀에게는, 젠장, 비디오테이프가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에 그 테이프를 보여주면, 그날로 그녀는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22.

대단한 하루군, 그는 폐 속에 들어간 먼지를 빼내느라 미친 듯이 기침을 하며 생각했다. 지구가 폭발한 이후 이렇게 끔찍한 하루는 처음이었다.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었다가 두 발을 딛고 일어서서,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무엇에서 도망치는 건지, 어디로 달려가는 건지 전혀 몰랐지만, 무조건 줄행랑을 놓는 게 신중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서의 온몸은 그나마 어젯밤의 축제에서 멍이 들지 않은 마지막 한 군데까지 그야말로 성한 데 없이 멍이 들고 말았다.

 

잠시나마 아서는 감히 그들이 의외로 애리조나나 뉴멕시코, 혹은 사우스다코타 같은 곳에 도착한 게 아닐까 하는 희망을 품어보았으나, 그런 게 아니라는 증거들은 사방에 차고도 넘쳤다.

 

우주선은 깊은 사색에 빠진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곤충처럼 쭈그리고 앉아 있었으며, 당장이라도 펄쩍 뛰어올라 일 마일쯤 떨어져 있는 무언가를 덮칠 것처럼 보였다.

 

“저 우주선을 사야겠어.” 포드가 조용히 말했다.

“저걸 사?” 아서가 말했다. “너답지 않은데. 너는 보통 우주선을 훔쳐 타는 줄 알았는데.”

“가끔씩은 존경심을 보여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

“아마 귀여운 현금도 좀 보여줘야 할걸.”

 

그는 사태가 어찌 돌아가는 건지 모르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는 편이 마음 편했다.

 

“가끔 이럴 때는, 사실 공간-시간의 결이라든가 다차원적 개연성의 도상의 심상한 완전성이라든가 온갖 종류의 총체적 혼란에 발발한 파동 형태의 잠재적인 붕괴 가능성이라든가 내 머릿속을 괴롭히던 온갖 문제들이 그렇게 걱정할 가치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아마 저 덩치 큰 남자가 한 말이 옳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가봐. 그냥 될 대로 되라 마음을 놓으라고 하더군.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느냐고? 될 대로 되라 하는 거지.”

 

“여기서 뭔가 내가 잘 모르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거야?” 아서가 포드에게 물었다.

“보통 다 그렇지 않냐?” 포드가 말했다.

 

아서는 지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포드가 대체 무슨 소리를 떠들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바로 지금처럼 차라리 알려고 하지 않는 쪽이 더 안전할 거라는 느낌이 들 때도 아주 많았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잖아.” 아서가 약간 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는 필요해.” 포드가 말했다.

 

 

 

23.

뉴스 방송국들은 이런 종류의 것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걸 전파 낭비라고 생각했다. 부정할 수 없는 우주선 한 대가 뜬금없이 나타나 런던 한가운데 착륙하면 그건 어디에도 비할 데 없는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뉴스거리였다. 완전히 다르게 생긴 또 다른 우주선이 세 시간 반 후에 도착하면, 그건 왠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었다.

‘또 다른 우주선!’ 신문의 헤드라인들과 신문가판대 광고판은 이렇게 외쳤다. ‘이번에는 분홍색 출현.’ 한두 달이 지나서 도착했더라면, 훨씬 대단하게 취급해줄 수도 있었을 터이다. 그로부터 삼십 분 후 도착한 세 번째 우주선은 사선실 소형 우주선이었는데, 간신히 지역 신문의 한 면을 차지했을 뿐이다.

 

 마가리타 :: 1949년에 개최된 전미 칵테일 콘테스트 입선작으로 존 듀레서씨가 고안한 칵테일이다. 불행하게 죽은 그의 연인 '마르가리타'의 이름을 붙여 출품하였다고 한다. 코앙도르를 블루 큐라소로 변화시키면 블루 마르가리타라는 이름의 칵테일이 된다. 칵테일 글라스에 레몬이나 라임으로 가장자리를 적신 후 소금을 묻혀 스노우 스타일로 장식해 둔다. 얼음과 함께 테킬라 2/4, 코앙트로(트리플 섹) 1/4, 라임 주스 1/4를 셰이커에 넣고 흔든 다음 준비해 둔 글라스에 따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르가리타 [Margarita]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자이르 :: 아프리카 중부에 있는 나라.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Congo)의 전 이름. 수도는 킨샤사(Kinshasa). 면적은 수단, 알제리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크다. 국토의 대부분은 콩고 분지를 중심으로 자이르 강 유역에 위치하고 있다. 콩고 강을 이곳에서는 자이르 강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 국명이 나왔다. 자이르는 '힘차게 흐르는 하천'이라는 뜻이다.19세기 이후 유럽 인들에 의해 아프리카 내륙 탐험이 시작되었는데 자이르 강 유역에 대해서는 프랑스와 벨기에가 적극적으로 탐험을 시작하였다.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아프리카 수장과 조약을 맺어 1884~1885년 베를린 회의에서 콩고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하였다. 1908년 벨기에 정부가 직접 지배하는 벨기에령 콩고가 성립되었으나 주민의 자치나 교육에 무관심하여 20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인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1960년 콩고 공화국으로 독립하였으나 독립 직후 콩고 동란을 거쳐 1964년 콩고 민주 공화국으로, 다시 1971년 자이르 공화국으로 개칭하였다가 1997년 콩고 민주 공화국으로 변경하였다.수도인 킨샤사는 자이르 강을 사이에 두고 콩고의 수도 브라자빌과 마주하고 있는데 킨샤사는 교통의 중심지로 마타디와는 철도로 연결된다. 샤바주에서는 구리, 코발트를, 카사이 강 유역에서는 다이아몬드가 산출되는 등 광물 자원과 삼림 자원이 풍부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이르 [Zaire] (세계지명 유래 사전, 2006. 2. 1., 송호열)

 

바핀 :: 북극 가까이에 있는 섬으로, 이누이트족이 살고 있다

 

 

 

24.

이상하고 일시적인 복수 구역 거주자들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의미 없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 복수 구역의 초점에는 지구라 불리는 행성의 무한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능성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25.

회원들은 어디 있는지 다 알고 있었고, 회원이 아니라면 어디 있는지 알아봤자 아무 소용도 없었다.

 

“방금 먹은 마약이 뭔지 기억해내려고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었는데, 아마 틀림없이,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런 약을 먹었나 봅니다.”

 

“너에게는 집이 없어. 우리 중에 집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제 집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야. 내가 방금 얘기한 실종된 우주선 있지. 그 우주선의 사람들도 집이 없어. 그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어디서 왔는지 몰라. 심지어 자기네가 누군지, 왜 살아가는지조차 몰라. 아주 황망하고, 아주 혼란스럽고, 아주 겁에 질려 있단다. 그 사람들은 여기 태양계에 있고, 그 사람들은 길을 잃고 너무나 혼란스러운 나머지 지금 아주……아주 잘못된 짓을 저지르려고 해. 우리는……반드시……지금……떠나야 해. 갈 만한 데가 있다고 엄마는 너한테 말해줄 수가 없구나. 아마 이제 갈 만한 데도 없을지 몰라. 하지만 여기는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니야. 제발, 딱 한 번만 더 하자. 우리 갈 수 있을까?”

 

선택의 여지들이 붕괴했고, 가능성들이 서로 차곡차곡 접혔으며, 마침내 전체가 용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옮기고 나서

우주는 넓고 존재는 시시껄렁하다

 

(1)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나 대단할 거라 기대하는 모든 것들의 엄청난 하찮음, (2) 천지 만물을 추동하는 근본 원리로서의 부조리, (3) 여기에 더해 등장인물들의 반응 역시 거대한 분노도 없고 쓰라린 원한도 없이 결국은 ‘그런들 어떠하리’라는 체념 내지는 ‘거 참 재미있군’이라는 냉소적인 달관뿐이다.

 

‘우물에 독 풀기’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것뿐’

 

이 모든 전 우주적 소동들이 우리에게 환기하는 것은, 우리만의 홍차가 있고 사랑하는 펜처치가 있고 수선화가 피어나는 우리의 지지부진한 일상의 아름다움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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