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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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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고전 『위대한 개츠비』. 세계적인 거장들의 대표 작품부터 한국의 고전 문학까지 젊고 새로운 감각으로 고전을 새롭게 선보이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의 161번째 책이다. 1925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주인공 개츠비, 화자 닉, 개츠비의 라이벌 톰이라는 세 명의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시대적 불안을 묘사하였다. 1920년대 재즈 시대의 충실한 재현, 통속적 사랑 이야기에 닿아 있는 아메리칸드림,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라는 공간적 배경에 담긴 동부와 중서부의 관계 등을 통해 환희의 시대에 불안을 직시한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이 드러난다.
저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출판
열린책들
출판일
2011.02.20

 

0. 

 그때 황금 모자를 써라, 그녀를 감동시킬 수만 있다면.

 높이 뛸 수 있다면, 또한 그녀를 위해 뛰어보아라.

 그녀가 이렇게 외칠 때까지.

 「연인이여, 황금 모자를 쓰고 높이 뛰어오르는 연인이여,

 내 반드시 그대를 차지하고 말리라!」

 

 

 

1. 제1장

 혹여 남을 비난하고 싶어지면 말이다, 이 세상사람 전부가 너처럼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걸 기억해라.

 

 정상적인 사람에게 비정상적인 면이 보이면,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재빨리 알아채고 착 달라붙게 마련이다.

 

 판단을 유보한다는 것은 무한한 희망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나는 이 세상이 군인처럼 제복을 갖춰 입고, 영원히 도덕적인 <차렷> 자세를 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람들의 쓰라린 슬픔과 숨 가쁜 환희에 잠시나마 흥미를 잃어버린 이유는 바로 개츠비를 삼켜버린 것들, 그의 꿈이 지나간 자리를 떠도는 더러운 먼지 때문이었다.

 

고속 촬영된 영화에서 순식간에 식물이 자라듯, 무럭무럭 돋아나는 나뭇잎과 햇빛 소에서, 그 여름과 더불어 내 인생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의심 없이 믿었다.

 

 미국 전역에 어느 정도 알려진 인물이었지만, 스물한 살에 이미 인생의 정상에 도달해서 그 이후로는 모든 게 내리막길이라는 인상이 드는, 그런 인물이기도 했다.

 

 에이커 :: 기호는 ac 또는 acre. 1에이커는 4,840 yd2(제곱야드)이다. 이 값은 40.468 a(아르)에 해당한다. 에드워드 1세(1272~1307) 시대에 황소를 부려 하루에 갈 수 있는 땅의 면적을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다.
1ac=4,046.85642㎡
[네이버 지식백과] 에이커 [acre] (두산백과)

 

 내 손을 잠깐 잡더니 이 세상에 당신만큼 보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다시는 연주되지 못할 음표를 배열한 것처럼 한 마디 한 마디 귀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따라 들어야 하는 그런 목소리를 지녔다.

 

 「한 번도 못 들어 본 이름인데.」톰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이런 말투에 나는 화가 났다.

 「앞으로 듣게 되겠지.」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톰은 칵테일이 딱 한 방울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잔을 쭉 들이켰다.

 

 톰 뷰캐넌이 억센 팔로 내 팔을 붙잡고 마치 체스 판에서 말을 다른 자리로 옮기듯, 방에서 나를 억지로 끌고 나갔다.

 

 이제 곧 저녁 식사가 끝나고, 조금 뒷면 저녁 시간 또한 끝날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게 그저 지나가 버린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녀의 빛나는 얼굴에 잠깐 비친 마지막 석양이 낭만적이었다.

 

 해 질 녘 아쉽게도 즐거운 거리를 떠나야 하는 아이들처럼, 석양빛이 그녀의 얼굴을 잠시 비추다가 이윽고 사라졌다. 

 

 그저 즉흥적으로 꾸며 낸 말이었지만, 그녀에게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따듯함이 우러나왔다.

 

 벨벳 :: 비로드(veludo) 또는 우단(羽緞)이라고도 한다. 파일직물에는 날실로 파일을 나타내는 날파일 직물과 씨실로 파일을 나타내는 씨파일 직물이 있는데, 벨벳은 날파일 직물에 속한다. 벨벳은 날실로 바탕용 날실과 파일용 날실을 사용하고, 조직은 평조직이나 능조직으로 하며, 파일용 날실로서 직물 바탕 위에 부드러운 파일이나 루프를 나타낸 직물이다. 제직(製織)할 때 파일을 만들기 위하여 씨실 방향으로 철사를 삽입하고 바닥조직과 파일조직을 교대로 조직하여 제직 후에 절모(切毛)하여 컷 파일(cut pile)로 하든가, 절모를 하지 않고 고리 모양의 루프(loop)를 표면에 치밀하게 나타나게 한다.
벨벳은 벨루티가(Velluti 家)의 발명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여 이탈리아어로 벨루토(velluto)라 하였으며, 특히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서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복식재료(服飾材料)로 생산되어 유럽 각국에 보급되었다. 이 직물은 특이한 광택 ·촉감 및 외관 등으로 진귀하게 여겨졌는데, 종교적 의복에 많이 쓰였으며, 왕이나 귀족들의 의상이나 실내장식용으로 많이 쓰였다. 점차 생산이 증가되고, 종류도 다양화됨에 따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널리 보급되었다. 현재도 벨벳은 고급직물로 취급되고 있으며, 여성 및 아동의 옷감 ·모자 ·실내장식 ·의자덮개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벨벳 [velvet] (두산백과)

 

 데이지가 억지로 내 관심이나 신뢰를 얻으려 하지 않고 말을 그친 그 순간, 그녀가 한 말이 위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그녀에 관한 비난과 별로 유쾌하지 않은 소문도 들었던 것 같지만, 그게 뭔지는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시끄럽고 환한 밤 속에서 바람이 불어왔고, 나무들 사이에서 날개 부딪치는 소리와 계속 이어지는 풍금 소리가 들려왔다. 대지가 한껏 풀무질을 해서 개구리들에게 충만한 생명을 불어 넣어 준 것 같았다.

 

 

 

2. 제2장

 나를 데리고 가겠다는 그의 결심은 폭력에 가까웠다. 오만하게도 일요일 오후에 내게는 별로 할 일이 없을 거라 단정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름다운 구석이라곤 없었지만, 온몸의 신경으로 끊임없이 연기를 내뿜듯 주위로 발산하는 생기만은 즉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태피스트리 :: 이 조직은 날실을 팽팽하게 건 곳에 색 씨실을 무늬의 색에 따라 꿰매 가듯이 짜넣는 평직(平織)의 변화조직으로, 간단한 수예적 조작에 따라 이루어지므로 옛날부터 각지에서 생산되었다. 이집트의 콥트직물(Copt織), 페루의 프레잉카직 등은 유명하며, 프랑스의 고블랭직(Gobelins) 등은 전통적 직물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크게 본견과 양모의 태피스트리로서 서양과 동양으로 나뉘어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구성하는 실이 다소 다른데, 서양에서는 날실에 마사, 씨실에 양모를 쓰고, 동양에서는 날실 ·씨실 모두 본견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용도는 벽걸이 ·가리개 ·휘장 ·실내장식품 등이다. 그리고 운반하기 쉬운 점 때문에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같은 대형 회화의 복제에도 이용되고 있다. 현존하는 14세기의 대표적인 작품인 프랑스의 앙제성당 《묵시록》은 높이 약 5.51m, 길이 24m의 큰 천 7장을 합친 것에, 《요한의 묵시록》에서 취재한 90개 장면을 나타내어 전체 넓이가 720m2에 달하는 대규모의 것으로서, 태피스트리 사상 최대 최고를 자랑하는 명작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태피스트리 [tapestry] (두산백과)

 

 아파트에서 8시 이후까지 유쾌한 햇살이 가득했지만, 그날 일은 모두 희미하고 몽롱했다.

 

 그녀의 웃음과 제스처, 말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식적으로 변했다. 그녀의 존재가 커질수록, 그녀 주변 공간은 점점 더 좁아졌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의 모습이 자욱한 연기 속, 시끄럽게 삐걱거리는 회전축 위에서 빙빙 도는 것처럼 보였다.

 

 끝없이 다양한 인생에 이끌리는 동시에 혐오감을 느끼면서, 나는 집 안에 있는 동시에 집 밖에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고, 어디론가 갈 계획을 세우다가 서로 잃어버리고는, 다시 서로 찾아다니다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찾아냈다.

 

 

 

3. 제3장

 그 자리에서 사람을 소개받고도 금방 잊어버리는가 하면, 서로 이름도 모르는 여자들끼리 신나게 떠들어 댔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기울어지면 불빛은 점점 더 환해진다.

 

 가끔 그들은 개츠비를 만나지도 않고 그냥 왔다 가기도 했는데, 그런 단순한 마음이야말로 파티에 지참해야 할 초대권이었다.

 

 그곳이야말로 혼자 온 사람이 한 일 없어 보이거나 혼자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고도 머물 수 있는 정원의 유일한 장소였다.

 

 여자들 역시 무심히 걸어가는 바람에 조던의 말은 바구니에서 꺼내기 무섭게 사라지는 뷔페 요리처럼, 일찍 떠오른 달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좀처럼 수군대지 않는 사람들까지 그에 관해 수군거리는 것은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그만큼 낭만적인 추측을 불러일으킨다는 증거였다.

 

 행복하지만 공허한 웃음소리가 여름 하늘에 울려 퍼졌다.

 

 달은 두둥실 떠올라 삼각형의 은빛 비늘 조각이 되어 해협 위에 떠 있었는데, 잔디밭에서 작게 울리는 서툰 밴조 리듬에 맞춰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다 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긴 미소였다. 그 미소는 영원히 변치 않을, 평생 네다섯 번이나 볼까 싶은 아주 보기 드문 미소였다. 영원한 세계를 잠시 보았거나 보는 듯한 미소, 당신을 위해, 당신에게 온 정신을 다해 집중하겠다는 미소였다. 당신이 이해받고 싶어 하는 만큼 당신을 이해하며, 당신이 믿고 싶어 하는 만큼 당신 자신을 믿어 주며, 당신이 전하고 싶어 하는 최고의 인상을 정확히 받았다고 확인해 주는 그런 미소였다. 정확히 바로 그때 그 미소가 사라졌다.

 

 희미한 배경이 그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더니, 그녀의 다음 말에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난 그 말 안 믿어요.」

 

 유쾌한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그는 점점 더 빈틈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녀는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흐느꼈다. 노래를 쉴 때마다 숨을 헐떡이며 울음을 삼키고는, 다시 떨리는 소프라노를 이어 나갔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주르륵 흐르지는 않았다. 짙게 칠한 속눈썹에 닿아 화장이 번지면서 마치 검은 실개천처럼 서서히 흘러내렸던 것이다. 얼굴에 그려진 악보대로 노래하는 모양이라고 누군가 농담을 했다. 

 

 <친구>라는 친근한 말투보다 안심시키려는 듯 내 어깨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더욱 다정하게 느껴졌다.

 

 웨이퍼 과자 같은 달빛이 개츠비의 저택을 비추며 전처럼 멋진 밤을 만들었고, 아직까지 빛나는 정원의 말소리나 웃음소리보다 더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갑자기 창문과 큰 문에서 공허감이 밀려드는 듯했고, 현관에 서서 정중히 작별 인사를 하려 손을 흔드는 집주인의 모습이 아주 고독해 보였다.

 

 매력적인 대도시의 황혼 속에서 나는 가끔 고독했고,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서도 고독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해도 흔히 말하는 듯한 가식에는 결국 뭔가 숨어 있는 법이다.

 

 그녀는 구제불능일 만큼 정직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견디지 못했고, 원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면 세상을 향해 그 차갑고 오만한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단단하고 멋진 신체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줄곧 속임수를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 마음이 달라진 건 아니었다. 여자들의 부정직이란 그리 심하게 비난할 일이 못 된다. 나는 그저 유감스러웠고, 그러고 나서는 곧 잊어버렸다.

 

 「조심하고 있어요.」

 「아니, 당신은 조심하지 않아요.」

 「그럼, 다른 사람들이 조심하겠죠.」

 

 뜨거운 햇빛에 지친 회색 시선은 정확히 정면을 향했지만, 그녀는 의도적으로 우리 관계를 변화시킨 것이다.

 

 

 

4. 제4장

 막연히 그가 중요한 인물일거라 생각했던 첫인상은 점차 지워졌고, 그는 그저 화려한 이웃집 여관 주인 같은 인물이 되어 버렸다.

 

 <이 문제>가 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흥미롭다기보다는 귀찮게 느껴졌다.

 

 퀸스버러 다리에서 바라보는 뉴욕은, 세상의 모든 신비와 미를 다 보여 주겠다는 열렬한 초기의 약속 때문인지 언제나 처음 보는 도시 같았다.

 

 울프심 씨는 뭔가 말하려다 말고 몽유병 환자처럼 멍한 상태가 되었다.

 

 죽은 사람과 떠나 버린 사람 얼굴로 가득하지. 이젠 영원히 떠난 친구들 얼굴 말이야. 

 

 그는 다시 미소를 지었지만 이번에는 나도 그 미소에 넘어가지 않았다.

 

 「내 커프스단추를 보고 있군 그래.」

 그 단추를 보던 게 아니었지만, 그 단추를 보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일을 벌였을까요?」 잠시 후에 내가 물었다.

 「그저 기회를 잡았던 거죠.」

 

 바닥이 고무로 된 영국제 신발이 부드러운 당을 기분 좋게 파고들었죠.

 

 술꾼들 사이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건 대단한 장점이죠. 입을 다물 수 있고 게다가 사소한 실수를 한다 해도 수습할 시간이 있으니까요. 술에 잔뜩 취할 때까지 실수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상관하지 않게 될 테니 말이에요. 

 

 그 6월 밤에 그가 올려다본 것이 별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순간 그는 의미 없는 화려한 자궁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존재로서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5년을 기다려 대저택을 산 뒤 우연히 날아드는 나방들에게 별빛을 나눠 주었던 것이다. 어느 날 오후 잘 모르는 이웃의 정원에 <초대받기>위해서 말이다.

 

 다만 쫓기는 자와 쫓는 자, 바쁜 자와 피곤한 자가 있을 따름이다.

 

 

 

5. 제5장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마치 집이 어둠을 향해 윙크하듯, 바람결에 전선이 흔들리며 불빛이 깜빡였다.

 

 그는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그의 표정으로 보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리는 비 속 잔물결처럼 명랑한 그녀의 목소리는 톡 쏘는 토닉 같았다.

 

 이제는 내 얼굴이 잔뜩 상기되었다. 머리에 맴도는 몇 천 마디 말 중에서 평범한 말은 한 마디도 생각나지 않았다.

 

 독일 철학자인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생각할 때면 첨탑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 그들 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고, 빗소리가 그들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가끔 감정이 격양되면 빗소리도 커지고 높아졌다. 그러나 다시 침묵이 흘렀고, 침묵은 집 안으로도 흘러든 듯했다.

 

 그는 말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한 마디 말도, 기쁜 몸짓도 없었지만, 그에게서 새로운 행복이 빛나며 넘쳐흘러 작은 방을 그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내 말을 듣고서야 반짝이는 방울 같은 햇빛이 거실을 비추고 잇다는 걸 깨달았고, 돌아온 햇빛을 열광적으로 환영하는 기상 캐스터처럼 미소를 지었다.

 

 아름답지만 고통스러운 슬픔에 가득 잠긴 그녀의 목소리는 예기치 않은 기쁨만을 전하고 있었다.

 

 1919~1933년 사이에 금주법이 시행되어 술의 판매가 금지되었다. 그러나 약국에서는 처방전에 따라 위스키 판매가 허용되었고, 몇몇 약국은 밀주업자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인으로 들어가 마리 앙투아네트풍 음악실, 왕정복고풍 살롱을 돌아다니면서도 우리가 지나갈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으라고 지시받은 손님들이 소파나 테이블 뒤에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처음에는 당황해 어쩔 줄 모르고 기뻐하다가, 지금은 그녀가 자기 곁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그녀 생각에 골몰해 왔고, 끝까지 그것만을 꿈꾸어 왔으며, 이를 악물고, 말하자면 상상할 수 없는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기다려 왔던 것이다. 이제 그 반작용으로 너무 세게 감긴 시계의 태엽이 풀리듯 긴장이 풀리고 있었다.

 

 아마 그 불빛이 가진 놀라운 의미가 이제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이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그와 데이지를 떼어 놓았던 엄청난 거리에 비하면, 그 불빛은 거의 그녀에게 닿을 만큼 무척 가까워 보였다. 달 주위에서 빛나는 별처럼 가까워 보였던 것이다.

 

 스위치를 올렸다. 집 안 불빛이 가득 들어오자 어두운 창들이 사라졌다.

 

 사람을 실어 나르는 전철이 빗속에 뉴욕을 떠나 집으로 달리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에 깊은 변화가 일어나고, 대기에 흥분이 번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작별 인사를 하러 그들 쪽으로 갔을 때, 나는 개츠비의 얼굴에 되돌아온 어리둥절한 표정을 목격했다. 지금 누리는 행복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희미하게 의심하는 듯한 그 표정. 5년이라! 바로 그날 오후에도 데이지가 개츠비의 꿈에 못 미치는 순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데이지의 잘못이라기보다 개츠비가 품은 엄청난 환상 때문이다,. 그의 환상은 그녀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능가했다. 그는 창조적인 열정으로 그 환상에 직접 뛰어들어, 언제나 그 환상을 끊임없이 키워 가며, 자기 앞에 떠도는 빛나는 낱낱의 깃털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어떤 강한 열정이나 순수함도 인간의 유령 같은 제 마음속 깊이 간직한 것에는 맞설 수가 없다.

 

 무엇보다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떨림과 열정이 그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 그 목소리는 인간이 아무리 꿈꾸어도 지나치지 않은, 불멸의 노래와도 같았으니까.

 

 

 

6. 제6장

 몰려드는 졸음이 생생한 장면을 망각으로 에워쌀 때까지, 그는 매일 밤 상상에 무늬를 늘려 나갔다. 얼마 동안은 그런 환상이 상상력에 돌파구를 제공했다. 환상은 현실이란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일 수 있는지 만족스럽게 보여 주는 증거였고, 세상이라는 반석이 요정의 날개 위에 안전하게 잘 놓여 있다고 보증해 주었다.

 

 「고맙습니다.」전혀 감사하지 않으면서 슬로운 씨는 그렇게 말했다.

 

 똑같은 사람들이거나, 적어도 똑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똑같은 샴페인을 흥청망청 마셔 댔고 똑같이 색다른 소동이 다양하게 벌어졌지만, 전에는 느껴 보지 못한 불쾌감과 불편함이 감돌았다. 아니면 아마도 그 세계에 익숙해져서 웨스트에그를 그 자체로 완벽한 세계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완벽함에 대한 의식이 없기에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름의 기준과 나름의 위대한 인물을 갖춘 세계로, 이제 나는 데이지의 눈을 통해 그 세계를 다시 바라보고 있었다. 나름의 힘으로 적응해 오던 것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바라본다는 것은 언제나 서글프다. 

 

 폭스트롯 :: 1914∼1917년경 미국에서 유행한 이래 가장 보편적인 댄스뮤직으로 알려져 한때는 댄스뮤직의 대명사처럼 불리기도 하였다. 본디 동물들의 걷는 속도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1907년경에는 bunny hug, 1912년경에는 turkey trot, 1913년경에는 camel walk 등의 이름에 의한 스텝들도 유행하였다. 템포가 빠른 것을 quick fox-trot, 느린 것을 slow fox, slow trot 등으로 불렀는데 오늘날은 연주용어로는 쓰지 않고 사교댄스 용어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도 광복 후 한때 널리 유행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폭스트롯 [fox-trot] (두산백과)

 

 그 당시엔 즐거웠던 것이 지금은 역겹게 느껴졌다.

 

 그들은 아직도 흰 자두나무 아래 있었는데, 창백하고 희미한 달빛만 빼면 얼굴이 거의 맞닿을 지경이었다. 그는 저녁 내내 그녀에게 아주 조금씩 얼굴을 숙여 마침내 이 가까운 거리에 이르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켜보는 동안에도 그는 마지막 남은 1도를 숙여 그녀의 뺨에 키스했다.

 

 낡은 완곡 어법을 경멸하는 거친 활기, 지름길을 따라 무에서 무로 나아가는 그곳 주민들의 몹시도 강압적인 운명에 겁을 먹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단순함 속에서 뭔가 두려운 것을 보았던 것이다.

 

 데이지는 음악에 맞춰 허스키하고 리드미컬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어 하나하나마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어떤 의미를 실어 보냈다. 음이 높아지면 그녀의 목소리도 알토 가수처럼 부드럽게 멈췄다가 다시 이어지곤 했다. 그런 순간마다 그녀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마력을 공기 중에 조금씩 풀어 놓았다.

 

 그녀의 시선이 나를 떠나 불 켜진 계단의 꼭대기를 더듬었다.

 

 그의 삶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졌지만, 다시 한 번 원점으로 돌아가 그 모든 일을 천천히 되풀이할 수 있다면, 그는 그게 뭔지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소리굽쇠가 별에 부딪히며 내는 아름다운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잠시 기다렸다.

 

 파악하기 어려운 리듬, 아니, 오래전 어디선가 들었지만 이제는 잃어버린 단어의 파편 같은 것이랄까. 한순간 어떤 구절이 입가에 막 떠오르려 하면서 입술이 벙어리처럼 벌어졌다. 놀란 숨을 뱉을 때보다 더 안간힘을 써서 어떤 문장을 만들려는 듯이,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고, 내가 기억할 뻔한 구절은 영원히 전달될 수 없는 무언가로 남게 되었다.

 

 

 

7. 제7장

 그녀 한 사람의 불만으로 그 커다란 저택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카드로 만든 집처럼.

 

 기차를 타고 터널을 지나 햇빛 속으로 나오니, 내셔널 비스킷 회사에서 나는 뜨거운 호각 소리만이 지글지글 끓는 정오의 침묵을 깨뜨리고 있었다.

 

 이런 무더위 속에서는 불필요한 몸짓 하나하나가 평범한 일상을 모독하는 셈이었다.

 

 하얀 돛이 시원하고 푸른 수평선을 배경으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부채꼴 모양의 바다와 수많은 축복받은 섬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불안하지만 유쾌한 척하면서 차가운 맥주를 마셨다.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을 방금 알아본 것처럼 다시 데이지를 쳐다보았다.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데이지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서 무한히 오르내리는 매력, 그것이 짤랑대는 소리, 그 심벌즈의 음악……. 드높은 하얀 궁전의 공주, 황금의 아가씨……. 

 

 사람 사이에서 지능이나 인종의 차이란 병자와 건강한 자의 차이에 비하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누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했고, 사진에 피사체가 서서히 현상되듯 여러 가지 복잡한 삼정이 얼굴에 하나하나 떠올랐다.

 

 단순한 마음이 혼란스러워질 때보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없다.

 

 데이지를 따라잡기 위해, 동시에 윌슨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그는 본능적으로 가속기를 밟아 댔다.

 

 톰은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그들이 탄 차를 돌아봤다. 차가 막히면 그들이 시야에 들어올 때까지 속도를 늦췄다. 그들이 옆길로 빠져 영원히 그의 삶에서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톰은 수화기를 들었고 압축된 열기가 소리로 폭발했다.

 

 다시 침묵. 웨이터가 노크를 하더니 으깬 민트와 얼음을 들고 들어왔다. 하지만 <감사합니다>라는 웨이터의 말과 살그머니 문 닫는 소리에도 침묵은 깨지지ㅐ 않았다. 중대한 진실이 드디어 밝혀지려는 순간이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화가 났지만, 톰이 한마디씩 할 때마다 웃음이 터지려 했다. 톰은 바람둥이에서 도덕군자로 너무나 완벽하게 변신했던 것이다.

 

 둘 다 감출 게 없다는 듯, 자신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게 커다란 특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톰은 아버지처럼 위엄 있게 말하려 했지만 잘 안 되었다.

 

 「지겨워요.」데이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쪽으로 돌아섰고, 한 옥타브 낮아진 그녀의 목소리에 방 안이 소름끼치는 경멸로 가득 찼다.

 

 목소리는 냉정했지만, 이제 적의는 없었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알아볼 수 있는 표정이 개츠비의 얼굴에 다시 떠올랐다.

 

 다시 개츠비를 보고는, 그의 표정에 깜짝 놀랐다. 그는 정말 – 이건 그의 정원에서 사람들이 쑥덕거리던 부질없는 중상모략을 다 무시하고 하는 말이다 - <사람을 죽인> 사람처럼 보였다. 그 순간 그의 굳은 표정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던 그런 기이한 방식이 아니라면 묘사할 수가 없었다.

 

 오후는 흘러가는데 스러진 꿈만이 싸움을 계속했다. 방 안 건너 저 잃어버린 목소리를 향해, 더는 만질 수 없는 것을 어루만지려 애쓰면서, 불행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겁에 질린 그녀의 눈은 그녀의 의도가 무엇이든, 그녀의 용기가 얼마나 크든, 그 모든 게 확실히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우연히 찾아온 유령처럼 우리의 연민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나는 서른 살이 되었다. 내 앞에는 새로운 10년이라는 불길하고도 위협적인 길이 펼쳐져 있었다.

 

 톰은 신나게 웃으면서 끊임없이 떠들었지만, 조던과 나에게는 그 목소리가 보도의 낯선 소음이나 머리 위 고가도로의 소음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공감에는 한계가 있어, 우리는 도시의 불빛을 뒤로 한 채 그들의 비극적인 싸움이 멀어지는 것에 안도했다.

 

 그녀는 너무나 똑똑해서 까맣게 잊어버린 꿈을 해를 넘겨 가며 간직하지 않는다.

 

 그녀는 나른한 듯 창백한 얼굴을 내 코트 어깨에 기댔다. 서른 살이라는 나이가 주는 충격은 살며시 감싸는 그녀의 손길 아래서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서늘해진 황혼을 지나 죽음을 향해 계속 질주했다. 

 

 누가 말이라도 걸면 늘 사람 좋게 웃었지만 생기라곤 없었다.

 

 <죽음의 차>라고 부른 그 차는 멈추지 않았다. 점점 더 깊어 가는 어둠 속에서 한동안 비극적으로 비틀거리다가, 다음 모퉁이로 사라져 버렸다.

 

 심장 소리는 들어볼 필요도 없었다. 입이 크게 벌어졌고 입가가 조금 찢어져 있었다. 그토록 오래 저장해 두었던 막대한 활력을 포기하느라 다소 숨이 찬 것처럼.

 

 머틀 윌슨의 시신은 더운 밤에 마치 추위라도 타는 것처럼 담요에 두 번이나 싸여 벽 가의 작업대에 놓여 있었고, 톰은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 미동도 없이 시신 위로 몸을 숙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다면, 끔찍할 것이다. 하루 사이에 그들 모두가 지겨워졌고, 그 순간엔 조던마저도 지겨웠으니까.

 

 그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치킨이나 맥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행해 보이지도 않았다.

 

 

 

8. 제8장

 새벽녘에 새츠비의 집에 택시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걸치기 시작했다. 그에게 뭔가 해줄 말이, 뭔가 해줘야 할 경고가 있어서 아침이면 너무 늦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제이 개츠비>가 톰의 단단한 적대감에 부딪혀 유리처럼 부서져 버렸고, 기나긴 비밀 광상곡이 끝나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대단한 집이었다. 전에는 그렇게 아름다운 집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 집에 숨 막히게 강렬한 분위기를 부여한 것은 다름 아닌 데이지가 거기 산다는 사실이었다. 부대의 야영 텐트가 그에게 예사롭듯, 그녀에게는 그 집이 예사로웠지만 말이다. 그 집에는 무르익은 신비감이 감돌았다. 2층의 침실은 다른 침실들보다 아름답고 시원할 것 같았고, 복도에서는 즐겁게 기쁜 일들이 일어날 것 같았다. 라벤더 사이에 버려진 케케묵은 로맨스가 아니라 올해 출시된 번쩍이는 신형 차 같은 신선하게 살아 숨 쉬는 향기로운 로맨스가 있을 것이며, 시들지 않는 꽃들이 춤을 출 것만 같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떨리는 감정의 그림자와 메아리로 대기를 가득 채웠던 것이다.

 

 결국 자신이 온 마음으로 성배를 쫓았음을 깨달았다. 데이지가 특별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얼마나 대단하게 <멋진> 아가씨인지는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개츠비를 떠나 부유한 자기 집으로, 부유하고 충만한 제 인생 속으로 사라졌다. 그로서는 그녀와 결혼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개츠비는 부유함이 가두어 지켜 주는 젊음과 신비, 수많은 산뜻한 새 옷들, 가난한 사람들의 치열한 싸움에서 벗어나 빛나는 은처럼 안전하고 당당한 데이지의 존재를 고통스럽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 당장 자기 인생이 제 모습을 갖추길 바랐다. 그리고 그 결단은 어떤 힘에 의해 내려져야 했다. 사랑이나 돈, 명백한 현실성 같은, 뭐든 가까이 있는 힘에 의해서.

 

 물론 갈등도 있었지만, 분명 안도감 같은 게 있었다.

 

 이제 롱아일랜드에 새벽이 밝았고, 우리는 아래층을 돌아다니며 나머지 창문을 열어 잿빛과 금빛으로 변하는 햇살로 집 안을 채웠다. 이슬 위로 갑자기 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푸른 나뭇잎 사이로 유령처럼 잘 보이지 않는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명랑하고 유유한 공기의 움직임이 바람이 거의 없는 서늘하고 아름다운 하루를 약속해 주었다.

 

 톰과 데이지가 아직 신혼여행을 하는 중에 개츠비는 프랑스에서 돌아왔고, 군대에서 받은 마지막 봉급을 들고 루이빌로 향했다. 비참한, 그러나 하지 않을 수 없는 여행이었다. 거기서 일주일 간 머물면서 11월 밤에 데이지와 함께 거닐던 거리를 거닐었고, 데이지의 하얀 차를 타고 달리던 호젓한 장소에도 가보았다. 데이지의 집이 늘 다른 집보다 신비하고 즐거워 보였던 만큼, 그 도시 또한 떠올릴 때마다 우수 어린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비록 그녀가 떠났다 해도.

 

 선로가 구부러져 이제 태양에서 점점 멀어졌다. 태양은 낮게 기울면서 그녀가 숨 쉬던, 저 멀리 사라지는 도시를 축복하듯 햇빛을 뿌려 대는 것 같았다. 그는 한 줄기 바람을 잡으려는 듯, 그녀 덕분에 아름다웠던 도시를 한 조각이라도 구하려는 듯,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눈물로 뿌예진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지나쳐 버렸고, 그는 그곳에서 가장 싱그럽고 가장 근사한 것을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걸 때달았다.

 

 보통 전화선으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초록색 골프장의 잔디 조각이 사무실 창문으로 날아온 것처럼 신선하고 시원했지만, 그날 아침의 목소리는 거칠고 메마른 느낌이었다.

 

 우리는 잠시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누가 먼저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해도, 그날은 그녀와 티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개츠비 자신도 전화가 걸려 올 거라 생각지 않았고, 아마 더는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분명 예전의 따뜻한 세상을 잃었을 것이고, 단 하나의 꿈을 너무 오랫동안 품고 살아온 대가라기엔 너무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장미꽃이 얼마나 그로테스크한지, 갓 돋은 잔디에 햇살이 얼마나 가혹하게 내리쬐는지 깨닫고, 무시무시한 나뭇잎 사이로 낯선 하늘을 올려다보며 틀림없이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 실체 없이 물질적이며, 가엾은 유령들이 공기처럼 꿈을 마시며 정처 없이 떠도는 세계가 다가왔다……. 형체도 없는 나무들 사이로 그에게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저 잿빛 환영처럼.

 

 한쪽 끝에서 흘러나오는 새 물이 반대쪽 배수구로 밀려가며 물결이 보일 듯 말 듯 찰랑이고 있었다. 거의 물결이라 할 수 없는 잔물결이 개츠비를 태운 매트리스를 수영장 아래로 불규칙하게 이끌었다. 수면에 잔물결 하나 만들지 못할 만큼 잔잔한 한 줄기 바람도, 예상치 못한 짐을 싣고 정처 없이 흐르는 매트리스의 흐름 정도는 충분히 방해할 수 있었다. 매트리스는 한 뭉치 낙엽에 닿아 천천히 돌면서 컴퍼스의 다리처럼 수면에 가늘고 붉은 원을 그렸다.

 

 

 

9. 제9장 

 그녀는 자기 맹세에 설득되어 그런 암시만으로도 견딜 수 없다는 듯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처음엔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개츠비가 자기 집에 누워 움직이지도, 숨 쉬지도, 말하지도 않게 되자 점점 더 책임을 느꼈다. 아무도 그 일에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연하지만 누구든 최후의 순간 가질 권리가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 말이다.

 

 그는 죽음의 공포에 더는 놀라지 않을 나이였다. 처음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높고 화려한 홀, 여러 방으로 연결된 커다란 방들을 보고 나자, 그의 슬픔에는 경외심에 가까운 자부심이 섞이기 시작했다.

 

 죽은 뒤가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우정을 보여 주는 법을 배우자고.

 

 「여길 봐!」그러고는 내 눈에서 감탄의 기색을 찾으려 했다. 사진을 너무나 자주 보여 줘서 이제는 사진이 실제 집보다 더 진짜 같은 모양이었다.

 

 기차가 겨울밤 속으로 들어서면 진짜 눈다운 눈, 우리 눈 풍경이 우리 옆으로 펼쳐지면서 창문에 반사되어 반짝이기 시작했고, 위스콘신의 작은 역들의 희미한 불빛이 스쳐 지나가면 갑자기 날카롭고 거친 기운이 대기 중에 감돌았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싸늘한 통로를 지나 돌아오다가 그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다시 그 공기 속에 하나로 녹아들기 전의 그 낯선 한 시간 동안, 이 지방과 우리가 하나임을 말없이 느끼는 것이었다.

 그곳이 바로 나의 중서부다. 그곳은 밀밭이나 초원, 사라져 버린 스웨덴 사람들의 마을이 아니라, 내 젊은 시절 가슴 떨리던 귀향 기차, 서리 내린 밤의 가로등과 썰매 종소리, 불 켜진 창이 눈밭 위에 던지는 크리스마스 화환의 그림자다. 나는 그곳의 일부였다.

 

 떠나기 전에 처리할 일이 하나 있었다. 어쩌면 내버려 두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를. 좀체 하고 싶지 않은 거북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을 정리하고 싶었다. 저 친절하고 무심한 바다가 내 쓰레기를 쓸어가 버릴 거라고 믿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분노, 어렴풋이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과 엄청난 후회로 범벅이 된 채 나는 그녀에게서 돌아섰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사실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를 용서하거나 좋아할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는 그 행동이 전적으로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무심한 사람들이었다. 물건이든 생물이든 다 부수고 나서 돈이든, 엄청난 무관심이든, 그들을 함께 지켜 줄 만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그 안으로 몸을 피해, 그들이 버린 쓰레기를 다른 사람들이 치우게 했던 것이다…….

 

 나는 톰과 악수했다. 악수하지 않는 게 어리석어 보였다. 갑자기 어린아이와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해변의 큰 집들은 대부분 문이 닫혔고, 해협을 건너가는 연락선의 희미하게 움직이는 불빛을 제외하면 불빛이라곤 없었다. 그리고 달이 더 높이 떠오르자, 별 의미 없는 집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한때는 네덜란드 선원들 눈에 꽃처럼 만개했던 여기 이 오래된 섬은 갈수록 유명해졌다. 이 섬은 신세계의 싱그럽고 푸른 젖가슴이었던 것이다. 이 섬에서 사라진 나무들, 개츠비의 저택에 길을 만들어 주었던 그 나무들이 어느 때인가 모든 인간의 꿈 중에서 가장 궁극적이며 위대한 꿈을 속삭이며 부추겼던 것이다. 마음을 빼앗긴 덧없는 순간, 인간은 틀림없이 이 대륙을 바라보며 숨죽였을 것이다. 역사상 마지막으로 경이로움에 대한 자신의 능력에 필적하는 그 무엇을 직면하고 이해할 수도 바랄 수도 없는 심미적 명상에 빠져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앉아 그 오래된 미지의 세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개츠비가 데이지의 선착장 끝에서 빛나는 초록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 느꼈을 경이로움을 떠올려 보았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까지 먼 길을 왔고, 그의 꿈은 너무나 가까이, 틀림없이 손에 잡힐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는 알지 못했다. 그 꿈이 그가 지나온 곳, 도시 너머의 광막한 어둠 속 어딘가, 밤하늘 아래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들이 펼쳐진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개츠비는 초록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물러나는 환희의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일이면 우리는 더 빨리 달리 것이며,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러면 어느 맑은 날 아침에는…….

 그래서 우리는 조류를 거슬러 가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역자 해설 - <개츠비>처럼 살고 <닉>처럼 쓰다

 <재즈 시대>란 1차 세계 대전의 종전부터 1929년 경제 대공황 이전까지, 미국의 1920년대를 가리키는 용어다.

 

 화려하게 성공한 자기 모습을 거듭 상상하다가 그것을 현실로 믿어 버리는 <자신에 대한 플라톤적 환상 Platonic conception of himself>에 있어서 위대하며, 환상적이지만 이 낭만적 꿈이나 환상을 성취하기 위해 온갖 희생을 무릅쓴다는 점에서 <위대>하다고 하겠다. 끊임없이 좌절하면서도 삶의 낭만적 가능성을 믿고 <환희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끈질긴 희망과 용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것이다. 변덕스럽고 신중하지 못하며 사랑할 가치가 없는 여자를 끝까지 온몸을 바쳐 사랑하고 더 나아가 그 여자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점에서도,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맹목적으로 돈과 출세를 추구하던 시대에 바보처럼 순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개츠비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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