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s

아이디어는 엉덩이에서 나온다

728x90
 
아이디어는 엉덩이에서 나온다
'잘 마른 멸치'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MBC PD 권석의 『아이디어는 엉덩이에서 나온다』. MBC의 대표적 프로그램 '놀러와', '무한도전'을 처음 만든 저자가 PD로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생각해온 방송가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아이디어에 굶주린 PD의 세계뿐 아니라,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외로운 연예인의 삶 등 방송에 얽힌 사건사고를 엿보게 된다. 특히 TV라는 창을 통해 내 안의 세상과 밖의 세상이 소통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사사지 '주간조선'의 칼럼 《PD 이야기》를 모아 재구성한 것이다.
저자
권석
출판
새녘
출판일
2012.09.10

 

 

0. 프롤로그

선택을 할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원하는 것을 고르기, 다른 하나는 원하지 않는 것을 지워나가면서 마지막에 남는 것 선택하기.

 

아사리판 :: 몹시 어지러운 속세의 정치판을 '난장판'이라고 말한다. 개들이 진흙탕에서 물고 뜯으며 싸운다는 뜻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벌어지는 판이 '개판'이다. 그리고 몹시 난잡하고 무질서하게 엉망인 상태를 우리는 '아사리판'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나오는 '아사리판'의 어원은 무엇일까?

불교에서 나와서 세속에서 다른 뜻으로 쓰이는 말은 꽤 많다. 이판사판은 '막다른 데에 이르러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말하는데 이 말도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사리판 (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여행(아시아편), 2009.9.16., 박문사)

 

소돔과 고모라 :: 이 유명한 악의 두 도시는 창세기에 나오는 '평지의 다섯 성읍'에 속했다. 아브라함 족장의 조카인 롯은 소돔으로 이주했으나, 소돔과 고모라가 워낙 타락한 탓에 신은 아브라함에게 두 도시를 파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브라함이 신에게 만약 그곳에서 열 명의 의인을 찾을 수 있다면 어찌하겠느냐고 묻자 신은 파괴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의인은 열 명이 되지 않았다. 결국 신은 두 도시를 파괴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사람의 모습을 취한) 천사 둘을 미리 보내 롯과 그의 가족을 구하게 했다. 밤이 되자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을 에워싸고 두 손님을 내보내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두 손님과 섹스를 하려는 것이었는데, 동성애를 뜻하는 남색(sodomy)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손님들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롯과 가족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고 도시를 떠나라고 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기둥'으로 변한다. 신은 두 도시를 불과 유황으로 파괴했다(창세기 19).

[네이버 지식백과] 소돔과 고모라 [Sodom and Gommorrah] (『바이블 키워드』, 2007.12.24, 들녘)

 

 

‘아이디어는 엉덩이에서 나온다.’

방송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격언이다. 아이디어는 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엉덩이 붙이고 앉아 주야장천 노력해야 나온다는 말이다. 흔히 아이디어는 길을 걷다가, 여행하다가, 밤새 놀다가 어느 순간 우연히 떠오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노력, 좌절, 강박관념, 불면의 밤들이 차곡차곡 쌓여 일정한 임계점을 넘어서야만 얻을 수 있다. 99도까지 조용하던 물이지만 1도 더 올라가는 순간 끓기 시작하는 원리와 같다.

 

스마트폰과 SNS로 소통의 기술은 첨단을 달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처럼 불통의 시기도 없다. 소통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마음 나눌 사람을 그리워한다.

 

 

 

1. 연예인 천국에서 연예인으로 산다는 것

고슴도치의 사랑과 <무한도전>

고토 회복 :: 고향땅을 다시 찾는 것

 

불안하니까 연예인이다

불안하지 않은 현대인이야 한 사람도 없겠지만 연예인의 불안은 성격이 다르다. 연예인들의 불안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각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들은 밖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된다. 자신의 가치를 자기가 아닌 대중으로부터 인정 받아야 한다. 마치 남의 삶을 사는 것과 같다. 그리고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삶과 자신의 실제 삶과의 괴리는 새로운 불안을 낳는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연예인이 누리는 경제적 부와 특권은 이러한 불안감에 대한 보상일 수 있겠다.

 

“당신의 삶은 생각만큼 그리 엉망이지 않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구글 본사에서 부른 K팝

LED로 장식된 큰 미닫이문 세트 두 짝을 만들었다. 문이 열리면서 가수들이 무대로 등장한다. LED가 무겁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 쪽에 스태프 한 명씩 붙어 문을 연다. 그런데 덩치도 큰 미국인 스태프들은 한 쪽에 네 명씩 여덟명이 붙었다. 안전을 위해 그래야만 한다고 노동조합 대장이 우기니 따를 수밖에. 그게 다가 아니다. 공연 중 이 스태프들이 소변이 마려울 수 있으니 예비로 여덟 명을 더 스탠바이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두 명이 하는 일을 미국 스태프 열여섯 명이 하게 됐다. 물론 우리에게도 소변에 대한 대비책은 있다. 공연 날엔 물을 안 마시는 거다! 일하는 시스템의 차이에 서로 놀랐다.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국은 대단하다.

 

생계형 연예인이 사는 법

2009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연예인들의 월평균 수입은 200만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직장인 평균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MBC 코미디 프로그램 <웃고 또 웃고>에 출연하는 개그맨들 중 상당수는 오로지 출연료만으로 생활한다. 그들의 출연료는 주당 30만~40만원에 불과하다.

 

페이소스 :: 동정과 연민의 감정, 또는 애상감, 비애감을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특정한 시대, 지역, 집단을 지배하는 이념적 원칙과 도덕적 규범을 지칭하는 에토스(ethos)와 대립하는 말이다. 그러나 '정서적인 호소력'이라고 규정할 때 이 말이 지니는 예술적 · 문화적 현상과의 관련성이 가장 분명하게 밝혀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문학 작품이나 문학적 표현에 대해 독자가 '페이소스가 있다', '페이소스가 강렬하다'라고 반응하는 것은 그 문학 작품이나 문학적 표현이 정서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경우이다. 다만 파토스 혹은 페이소스를 유발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는 단정적으로 규정하기 힘들다.

[네이버 지식백과] 페이소스 [pathos] (Basic 고교생을 위한 문학 용어사전, 2006.11.5., ㈜신원문화사)

 

‘누구에게나 그의 차례는 있다.’

- 서양 속담

 

싸움의 기술

『손자병법』에는 ‘이겨놓고 싸우는’기술이 나온다. 싸움을 시작하고 이기는 게 아니라 싸우기 전에 이미 이겨놓는 방법이다. 그런데 고수의 기술이 하나 더 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꽃미남, 짐승남, 꽃짐승

그루밍족 :: 남성인데도 치장이나 옷차림에 금전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 사람 또는 그런 무리를 말한다. 그루밍은 여성의 ‘뷰티(beauty)’에 해당하는 남성의 미용용어로 피부, 두발, 치아관리는 물론 성형수술까지 포함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루밍족 [Grooming] (매일경제, 매경닷컴)

 

 

방송가의 진리, 운칠기삼(運三技七)

‘운(運)‘은 ’옮긴다, 움직인다‘라는 의미다. 뜻풀이대로 운은 움직인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닌다. 경기순환 곡선 같다. 불황기에 바닥에 있다가 서서히 회복되면서 호황기로 들어선다. 그리고 정점을 치고는 다시 하강하며 침체기를 맞는다. 운과 불운은 반복된다.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 행운도 홀로 오지 않는다.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은 운팔기이(運八技二)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지지리 운이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기(技)의 몫을 키우면 되지 않을까. 운(運)이 3밖에 없다면 대신 기(技)를 7로 만들면 된다. 실력을 연마하고 내공을 쌓는다면 운삼기칠(運三技七)로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똑같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지 않는가.

 

TV 속 여배우의 노출은 무죄? 유죄?

여배우의 노출 마케팅이 TV에서는 안 먹힌다. 시청자들은 야한 장면, 야한 대화를 TV를 통해 보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나마 남자배우가 벗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온가족이 환한 거실에 모여 있는데 여배우의 노출 장면이 나오면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지면서 하나 둘 자리를 뜨게 마련이다. 또한 벗는 프로그램에는 시청률과 상관없이 광고가 안 붙는다. 기업의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광고주가 기피하기 때문이다.

 

아무 맥락도 없이 벗기 위해 벗으면 넋을 빼놓고 보다가도 TV를 끄면서 여배우를 욕하는 이중성을 시청자는 갖고 있다. 즐거움을 위해 벗는 것에는 엄격하고 작품성을 위해 벗는 것에는 관대하다. ‘선데이서울’은 안 되지만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오케이라는 의미랄까.

 

연예인 출연료의 끝은 어디?

얼마 전 40여 년 철권통치의 막을 내린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은 종종 가족모임에 미국의 팝스타들을 초대해 노래를 부르게 했다. 세계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이른바 ‘카다피 리스트’에 오른 머라이어 캐리, 어셔, 비욘세는 카다피 앞에서 개인 공연을 벌이는 대가로 1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챙겼다.

 

“가격은 누가 뭐래도 그것의 값어치다. 합리성을 따지지 말라.”

- 에두아르도 포터, 『뉴욕타임스』논설위원

 

꼴찌였던 연예인, 일 등 했던 PD

박지성이 공부를 잘할 필요는 없다. 축구만 잘하면 된다. 박태환이 야자를 할 필요도 없다. 수영만 잘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예능인이 공부 잘할 필요는 없다. 웃기면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공부 못한다고 모두 웃기는 건 아니다. 그들의 인기는 학창시절 꼴찌였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Tv에서는 언제나 모자란 사람들이 사랑을 받았다. 배삼룡이 그랬고 심형래가 그랬다. 지금은 김준현, 박명수가 그렇다. 그들을 바라보며 시청자들은 우월감을 느끼고 삶의 고단함을 위로 받는다. 다만 요즘 바보들은 뻔뻔해졌다.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자기는 모자라다는 걸 인정하고 시작한다. 오히려 자신의 무식함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다. 그 안에는 너희도 잘난 척해봐야 잘난 것 없는, 다 똑같은 바보가 아니더냐 하는 믿음이 깔려 있다.

 

진짜 자존심을 지키는 길

자존심을 세울 때마다 벽을 하나씩 세우는 셈이다. 그리고 결국 몇 겹의 벽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게 정말 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일까.

 

중국 한나라 한신의 일화다. 한신은 비록 가난했으나 왕손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갔다. 어느 날 저잣거리에서 만난 건달이 한신을 보고 시비를 걸었다. 한신에게 칼로 자신을 찌르든지 아니면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라고 명령했다. 한신은 저항하지 않고 그의 말에 순순히 따라 가랑이 사이를 기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한신을 비웃으며 자존심도 없는 겁쟁이라고 놀렸다. 하지만 훗날 한나라의 개국공신이 되어 고향을 찾은 한신은 자신을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게 했던 사람을 찾아 벼슬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내가 인내하여 오늘날 성공할 수 있었다”고.

자존심(自尊心)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라고 나와 있다. 한신은 가랑이 사이를 기어 지나가면서 비웃음을 받았지만 나중에 가서는 결국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켜냈다.’ 당장의 자존심을 버림으로써 진정한 자존심을 지킨 셈이다.

 

자존심과 속 좁은 것은 분명 다르다.

 

백청강이 선물받은 옷 이백 벌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

 

강호동이 포복절도하는 이유

<무릎팍도사> MC 강호동을 보면 초대손님의 별로 웃기지 않은 말에도 바닥에 나뒹굴며 배꼽을 잡는다. 그 큰 얼굴이 벌게지고 목에 핏줄이 서도록 소리치며 웃어댄다. ‘참 오버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오버의 힘은 크다. 녹화 걱정에 밤잠을 설치고 나온 출연자의 긴장이 그 과장된 웃음으로 조금씩 풀어진다.

강호동의 오버 리액션은 ‘쫄지마, 당신 잘하고 있어’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출연자의 표정이 밝아지고 마음의 빗장이 벗겨진다. 고마운 마음에, 풀어진 마음에 그동안 어디서도 털어놓지 않았던 비밀이야기들이 술술 나온다. PD들의 강호동 사랑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작용(액션)에는 반작용(리액션)이 뒤따라야 하고 리액션은 액션의 크기만큼 중요하다.

 

어찌 보면 과장된 리액션은 거짓일 수 있다. 그냥 안 웃기면 안 웃기는 대로 재미없으면 재미없는 대로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는 게 오히려 진실한 리액션일 수 있다. 재미없을 땐 ‘재미없거든’하고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말하는 게 옳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방송에서는 상황이 다르다는 데 있다. 아니, 사실은 실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냉철한 분석이 아니라 마음을 같이해주는 공감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주기를 바란다. 그러기에 리액션은 상대에 대한 배려이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상대방을 포용하는 힘이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이다.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과도한 리액션은 눈총을 받아 오히려 분위기를 망칠 뿐이다.

 

인맥을 만드는 최고의 노하우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고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다.”

- 톨스토이 단편집, 『세 가지 질문』

 

연예인 천국에서 연예인은 살기 힘들다

배고픈건 참아도 배 아픈 건 참지 못한다.

 

 

 

2. 예능 프로를 보면 세상이 보인다

싸이스타일이 통했다

프로슈머 :: ‘생산자’를 뜻하는 영어 ‘producer’와 ‘소비자’를 뜻하는 영어 ‘consumer’의 합성어로, 생산에 참여하는 소비자를 의미한다. 이 말은 1980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21세기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라 예견하면서 처음 사용하였다. 프로슈머 소비자는, 소비는 물론 제품 생산과 판매에도 직접 관여하여 해당 제품의 생산 단계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로슈머 [prosumer] (대중문화사전, 2009)

 

 

<놀러와> 400회의 비밀

<놀러와> 400회의 역사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장수 프로그램이 되기 위한 몇 가지 비결을 뽑아봤다. 우선 프로그램의 주인이 확실해야 한다. 시청자들은 제목보다는 누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인가로 기억한다. 그래서 한때는 <신동엽의 러브하우스>처럼 MC의 이름을 타이틀에 넣어 프로그램의 아이덴티티를 강조하는 게 유행이었다. <전국노래자랑>애는 송해 씨가 있고 <무릎팍도사>에는 강호동이 있다. 최고의 MC들은 모아놔도 대장이 분명치 않으면 프로그램은 산으로 간다. 집단 MC체제지만 <남자의 자격>은 이경규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확실한 주인이 있어야 그를 구심점으로 하여 프로그램이 정리된다. <놀러와>의 롱런 뒤에는 유재석, 김원희라는 환상 콤비가 있었다. 찰떡궁합 두 MC는 주거니 받거니 북 치고 장구 치고 식의 만담개그를 펼치며 프로그램의 주인 역할을 확실히 수행했다.

장수 프로그램의 두 번째 비결은 스타를 만들어내는 길이다. 대중은 항상 새로운 스타에 목말라 있다. 처음에는 다소 어설프더라도 일단 될성부른 떡잎을 발견하고 방송에서 밀어주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입소문이 돌면서 프로그램에 대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놀러와>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떡잎을 찾는 일에 몰두했는데 우연히 케이블TV에서 리포터로 활동하던 노홍철을 소개받았다.

그를 처음 본 순간 ‘already but not yet!(이미 하지만 아직!)’의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미 스타의 내공을 갖췄으나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가능성은 충분했다. 바로 녹화에 투입했다. 녹화 전 정수경 메인 작가가 긴장하고 있는 노홍철에게 한마디 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해봐.” 하지만 첫 녹화는 비참했다. 던지는 말마다 생뚱맞기만 했고 특유의 오버액션은 거부감만 들었다. ‘산만함’의 캐릭터는 그냥 산만할 뿐이었다. 같은 패널이었던 박명수의 견제 또한 엄청났다. 박명수는 새로운 스타 탄생을 언제나 못마땅해 한다. 자기 크기도 바쁜데 또 누굴 키우냐며 처음부터 노홍철 투입을 반대했다. 노홍철이 무슨 말이라도 할라치면 지레 면박을 주면서 상대를 무안하게 만들어서 웃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략마저 웃기지도 않았다. 부조정실에 있던 내 등에 식은땀이 쭉 흘렀다.

녹화 후 노홍철을 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작가들과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결론은 한 달만 더 기회를 줘보자는 것. 그리고 거짓말처럼 딱 한 달이 되던 날, 녹화장에서 김원희가 외쳤다. ‘오늘 노홍철 입 터졌네!’ 스타 탄생의 순간이었다. 일단 노홍철의 입이 터지자 그 폭발력은 대단했다.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서 그의 정신없음과 절대 긍정의 캐릭터가 큰 인기를 끌었다. 녹화장에서 느껴지는 노홍철의 인기는 유재석, 김원희를 능가할 정도였다. <놀러와>를 통해 노홍철이 컸고 노홍철을 통해 <놀러와>가 장수했다.

스타를 만들 때 아예 생자배기 신인을 발굴하는 방법 외에도 옛날 스타를 재발견하는 길도 있다. ‘세시봉’은 후자에 속한다. 2010년 추석 특집으로 현재 <놀러와>연출을 맡고 있는 신정수 PD가 케케묵은 세시봉 가수들을 끄집어냈다. 송창식, 윤형주, 조영남, 김세환의 세시봉 친구들이 들려주는 감미로운 통기타 선율은 기성세대에게는 옛날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젊은 세대에게는 ‘엄마 아빠 때의 음악도 이렇게 좋을 수 있구나’란 충격을 주었다. 음악의 힘에 더해 이들에겐 한때 한국 대중문화를 풍미했던 세시봉의 이야기가 있었다. 사랑과 우정의 에피소드들이 화수분과 같이 끝없이 솟아나오면서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렸다. 방송 이후 낙원상가 악기점에는 통기타가 동났고 동네 음악학원마다 기타를 배우려는 어른들과 학생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세시봉 가수들은 제2의 전성기를 맞았고 <놀러와>도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놀러와> 장수의 세 번째 비결은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뚜렷한 대박 코너가 없었다는 점이다. 일단 코너가 화제가 되면 자가발전이 되면서 시청률이 오르고 A급 게스트들이 제 발로 걸어온다. 코너가 뜨면서 선순환이 시작된 거다. 주간 시청률 1, 2위를 다투면서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대박 행진에도 끝은 있다. 그리고 일단 내리막이 시작되면 과거의 영화 대문에 상대적으로 더 초라해 보인다. 산이 높을수록 골도 깊은 법이니까. <놀러와>는 뚜렷한 기복 없이 지금껏 버텨왔다. 중간중가 반짝 빛을 발할 때도 있었지만 올라갈 듯하다가 떨어지고 떨어지는 듯하다가 올라가면서 약한 체력으로 근근이 지내왔다. 그래도 방송국에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유재석, 김원희 이름 덕분에 그리고 제작진의 열심 덕분에 광고는 완판됐고 시청률도 기본 이상은 해왔으니까.

 

아이디어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에서 나온다

마케팅 분야의 최고의 스테디셀러인 『마케팅 불변의 법칙』이 제시하는 첫 번째 법칙은 ‘더 좋기보다는 최초가 되는 편이 낫다’이다. 시장에서 일 등을 못하고 있을 때 경쟁사보다 더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여 승부를 벌이려는 것은 승산이 없다. 그보다는 새로운 영역을 개발해서 그 부문에 최초로 진입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해 아래 새것은 없다.

- 솔로몬

 

새 프로그램을 만들 때 내가 자주 사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퓨전(fusion)이다. 말 그대로 이것저것 섞는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잘 섞이지 않을 것 같은 것일수록 그 효과는 더 크다. 예능과 교양을 섞는다. 버라이어티와 다큐멘터리를 섞는다. 그래서 새롭게 탄생한 것이 <비타민>같은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이고 <1박2일)유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두 번째 방법은 역발상이다. 기존의 관념과 상식을 눈 딱 감고 반대로 해보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프로그램 흥행공식을 예로 들어보자. 우선 특A급 MC가 필요하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연예인이 게스트로 나와야 한다. 편집은 세련되고 스피디해야 한다. 이게 상식이다. 하지만 역발상 방법에 따르면 청개구리처럼 모든 것을 거꾸로 한다. 특A급 MC를 과감히 버린다. 당대 최고의 연예인 대신 전성기가 한참 지난 연예인들을 모은다. 섹시돌, 짐승돌 자리는 아줌마, 아저씨 연예인들로 채운다. 편집도 촌스럽고 느릿느릿하게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예능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에 빛나는 <세바퀴>다.

그런데 얼마 전 섬씽 뉴를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을 새삼 깨달았다. <놀러와>의 지난주 게스트는 가수 이선희였다. 사실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다. 이선희의 저력이야 의심할 바 없지만 잊힌 왕년의 스타가 아닌가. 또한 예능적으로 볼 때 참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캐릭터의 소유자다. 하지만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 녹화는 대박이 났다. 왕년의 히트곡들을 다시 듣는 즐거움도 컸지만 무엇보다 가수생활 20년에 녹아 있는 그녀의 삶에 대한 사랑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시청률이 15.9퍼센트로 훌쩍 뛰어올랐다. 시청자 게시판도 칭찬글로 넘쳐났고 방송도 하루 녹화한 것을 아예 두 주로 나눠 특집으로 내게 됐다.

섬씽 뉴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 그것은 옛날 것을 다시 들춰내는 것이다. 옛날 것은 현재의 것이 아니기에 새롭다. ‘세시봉 열풍’이 잘 보여주었다. 세시봉을 즐긴 것은 향수에 젖은 기성세대만이 아니었다. 젊은 세대도 동참했다. 그들에겐 낯선 통기타 노래와 음악 감상실 문화가 새롭게 다가왔고, 그래서 열광한 것이다. 낡은 것이 새로운 것이 되었다. 물론 아무거나 옛날 것을 꺼낸다고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낡은 것이지만 자신만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 불변의 흥행 코드인 이야기(스토리텔링)가 나올 수 있다. 또한 단순한 구닥다리 복고에 그치지 않도록 오늘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포장술도 필요하다.

 

레이디 가가 콘서트에서 본 것

음악을 즐기는 데 언어장벽과 생각의 차이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마음을 움직이는 힘. 음악의 힘이다. 음악은 힘이 세다.

 

버스커버스커와 <건축학개론>

“이제는 끝낼래.”

“네가 언제 시작은 했니?”

- 영화 <건축학개론>

 

그러니까 가족이다

살기 힘들수록 ‘가족’코드가 통한다. 앞날이 불투명하니 심리적으로 불안해지고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내 편이 되어주는 가족이다. 1인 가족, 기러기아빠, 싱글맘 등 가족 해체의 시대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절실해진다. 가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휴식과 위로를 받게 된다.

그러고 보면 강력한 흥행 코드로 가족이 다시 부각되는 건 그리 반길 일도 아닐 듯싶다. 그만큼 우리 삶이 팍팍하다는 반증이니까.

 

여자가 원하는 걸 알면 세상은 당신 것

캔디렐라 :: 캔디와 신데렐라의 합성어

 

“여자가 원하는 것을 알면 세상은 당신 것이다.”

- 영화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

 

명품 조연의 조건

‘신스틸러(scene stealer)’란 말이 있다. ‘화면을 훔치는 사람’이란 뜻 그대로 뛰어난 연기력과 개성으로 주연보다 더 주목받는 조연을 의미한다.

 

어차피 인생은 마라톤이다. 승자가 오래 살아남는 게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게 승자다.

 

변하는 짝짓기 풍속도

<짝>의 애시청자로서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부분은 다른데 있다. 출연자들의 나이를 보면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게 대부분이다. 지난달에는 아예 노총각, 노처녀 편을 특집으로 꾸미기도 했다. 짝짓기는 자연스러운 본능이고 또한 평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이다. 그럼에도 짝짓기에 적당할 때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싱그러울 때 스펙을 쌓느라, 취업준비 하느라, 사회에서 자리 잡느라 사랑이 자꾸만 뒤로만 밀려나는 게 요즘 세태다. 그렇기에 화려한 미모와 스펙을 가진 늙은 젊은이들의 짝짓기를 보노라면 마음 한켠에 안쓰러움과 미안한 마음이 생겨난다.

 

김구라식 독설 대응법

무엇보다 독설에는 ‘사랑’이 바닥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남을 해치는 말’이 아닌 ‘남을 위하는 쓴 소리’가 될 수 있다.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입을 다무는 게 낫다. 독설을 위한 독설은 욕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간단한 팁 하나. 우리 주변에는 입만 열었다 하면 항상 비아냥거리고 남의 약점을 들쑤시는 독설가가 꼭 있다. 그런 친구에게 갑자기 공격당할 때가 있다. 웬 만큼 임기응변에 능하지 않으면 맞받아치기 힘들다. 이런 때를 위한 전천후 독설 대응비법이 있다. 그것은 ‘인정과 삐딱한 칭찬’이다. 예를 들어 “요즘 왜 이리 얼굴이 썩었어?”라고 기습공격이 들어온다면 그땐 이렇게 대응한다. “그렇지?(인정). 너는 참 안 썩어서 좋겠다(삐딱한 칭찬).” 이런 방식이다. 뉘앙스를 눈치 채고 “그게 무슨 뜻이니?” 되물어오면 “뭐가?” 하면서 말한 그대로라는 표정을 지으면 된다. 이 방법은 생각보다 유용하다.

 

얼굴 없는 가수들이 얼굴을 찾았다

노래는 눈으로 듣는 것도, 귀로 듣는 것도 아니다. 노래는 마음으로 듣는다. 가수와 관객이 이심전심으로 부르고 듣는다. 잘 부르는 것보다 진심으로 부르는 게 그래서 더 중요하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의 경쟁력은 바로 ‘사연(스토리)과 눈물(감동)’에 있다는 것을. 그 동안 방송선수들은 겉으로 드러난 틀만 보았지 정작 중요한 알맹이는 놓치고 있었다.

<수퍼스타K 2>의 허각은 중졸 학력에 환풍기 수리공 출신이다. 가난 때문에 어려서 어머니와도 헤어졌다. 학력, 인맥, 백그라운드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루저로 살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그가 꿈같은 우승을 따냈다. 단지 실력과 노력만으로.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져도 손색이 없는 감동 스토리다. 요즘 엄청난 인기몰이 중인 <위대한 탄생>의 백청강도 마찬가지다. 옌볜 출신인 그는 중국 오디션이 열리는 칭다오까지 36시간 기차를 타고 달려왔다. 그 역시 가난 때문에 아홉 살 때부터 혼자 살았고 밤무대를 전전했다. 이런 모든 역경과 싸우며 꿈을 향해 꿋꿋이 노래하는 그에게 시청자들은 전폭적 응원을 보낸다. 사생활 침해라는 비판이 있지만 사실은 이러한 굴곡 많은 사연들이 최고의 흥행요소가 된 셈이다.

 

새로운 것은 세상에 전혀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들을 이전과는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고 낯설게 다시 조합함으로써 혁신이 탄생한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이미 꺼진 것 같지만 적당히 바람만 잘 불어넣어 불씨를 살려낸다면 세상을 태울 만한 기세로 다시 타오를 것이다.

 

단숨함이 복잡함을 이긴다

쉽게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것이든 온전히 이해했을 때에만 쉽게 이야기해줄 수 있다. 단순함 밑에 정교함이 숨어 있는 셈이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 버튼 하나에 수십 가지 기능이 숨어 있듯이.

 

단순함이 복잡함을 이긴다. 솔로몬의 영광도 들에 핀 백합의 아름다움에 못 미친다.

 

권위 버린 <무한도전>의 권위

‘탈권위’로 젊은 세대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는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이다. 개그맨 유재석을 비롯한 출연자들은 처음부터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라고 스스로를 낮추고 들어간다. 그러기에 무식이 탄로 나도 저질 몸이 드러나도 신경 쓸 일이 없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솔직히 드러내면 된다. 다만 여기서 끝이 아니라 부족함을 아이디어와 노력의 과정으로 메꾼다. 이런 탈권위의 결과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변하지 않은 진정성으로 까탈스러운 젊은 세대의 인정을 받아냈다.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란 ‘참권위’를 얻게 됐다. 권위가 해체되고 무너질수록 ‘참권위’가 필요한 요즘이다.

 

<나가수> 만든 김영희 PD가 부럽다

후생가외 :: 뒤에 난 사람은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으로, 후배는 나이가 젊고 의기가 장하므로 학문을 계속 쌓고 덕을 닦으면 그 진보는 선배를 능가하는 경지에 이를 것이라는 말.

[네이버 지식백과] 후생가외 [後生可畏] (두산백과)

 

 

한예슬 사태와 피드백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를 모두 채우지 말 것. 항상 머리의 20퍼센트는 비워둬야 한다. 이 빈 공간은 피드백을 위한 공간이다. 좋은 소리든 싫은 소리든 내 생각과는 다른 피드백을 그 여유공간에 넣었다 뺐다 입출력하면 된다. 머릿속이 한결 가벼워진다.

 

스리랑카 판자촌이 가르쳐준 것

요즘 한창 베스트셀러인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열일곱 살이지만 조로병에 걸려 80세의 신체 나이를 가진 소설 속의 주인공이 방송 출연을 하게 된다. 치료비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불우이웃돕기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 것이다. 담당PD와 작가가 사전 취재를 하러 왔다. 찢어지게 가난한 데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애늙은이 주인공을 인터뷰를 한 후 작가가 PD에게 속삭인다. “이번 회, 대박날 것 같아요.”

스리랑카로 사전 헌팅을 가서 많은 환아(患兒)들을 만났다. 본 촬영 때 불쌍하고 응급한 아이를 한국으로 보내 치료해주고 다시 부모 품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다. 하지만 연출진이 열심히 찾는 환아는 우리의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아이가 아니라 방송용으로 가장 적합한 아이다. 치료 전후 대비가 확실하게 보이는 병이어야 하고 예뻐야 하며 이왕이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가족사를 가진 아이여야 한다. 시청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명분이 있지만 마음 한켠이 줄곧 불편하다.

 

봉사하는 데 이것저것 따질 것 있을까. ‘저스트 두 잇(Just do it)’ 그냥 하면 된다. 먼저 행동하고 고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우리의 진심을 꿰뚫어보는 눈을 이미 갖고 있다.

 

불변의 흥행 키워드 스토리텔링

건국대학교 후문 앞에는 ‘코끼리 들어온 집 미가’란 식당이 있다. 원래 이름은 ‘미가’였는데 몇 년 전 근처 어린이 대공원에서 도망친 코끼리 세 마리의 습격을 받았다. 방송에도 크게 보도된 사건으로 아수라장이 된 식당은 문 닫을 일만 남았다. 이때 주인이 아이디어를 냈다. 식당을 고치면서 이름도 ‘코끼리 들어온 집 미가’로 개명했다. 간판에는 코끼리 세 마리를 그리고 식당 안에 피습 당시 사진도 큼지막이 걸었다. 메뉴에도 ‘코끼리정식’을 만들었다. 그러고 나자 입소문이 돌면서 손님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요즘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는 명소가 됐다.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실론티 :: 실론 = 스리랑카의 옛 이름. 한 마디로 스리랑카 홍차.

 

봉사를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의 뻔한 장면

#1. 마지막 날 헤어지면서 꼭 운다

#2. 뻔한 멘트 “주려고 왔는데 오히려 더 많이 받아가요.”

#3. 가족을 이용한 감동 만들기

 

싱할라어 :: 스리랑카에서 사용하는 공용어. 유일?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해야 하지만 남들이 다 하는 것은 나도 해야 한다.

 

정답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해

산상수훈 :: 산상설교 또는 산상보훈(寶訓)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예수의 선교활동 초기에 갈릴레아(갈릴리)의 작은 산 위에서 제자들과 군중에게 행한 설교로서, '성서 중 성서'로 일컬어지며,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인 '주기도'도 이 산상수훈에서 연유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산상수훈 [Sermon on the Mount, 山上垂訓] (두산백과)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부딪침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왔다. 젊은 세대들은 경험을 통해 안다. 자기들 차례가 오려면 기성세대가 권력을 누릴 만큼 누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살아남으려면 기성 권력 위주로 만들어진 내부질서에 싫어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반대로 기성세대도 안다. 후배를 이길 선배는 없다는 것을. 이제 후배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양보하고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젊음의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며 조직과 관리가 갖는 힘이 경시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과거의 나도 선배가 불만스런 젊은 PD였다. 현재의 젊은 PD도 미래에는 후배에게 예의와 참을성을 요구하는 기성세대가 될 것이다. 모든 게 돌고 돈다.

 

 

 

3. 인생은 예능이 아니라 다큐다

초심자의 행운을 이어가는 법

초심자가 행운을 잡는 이유는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이 많을수록 어쩔 수 없이 선입견을 갖게 된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며 미리 재단해버리고 시도조차 안 한다. 초심자는 경험이 없으니 뭐가 먹히는지 안 먹히는 지 알 수가 없다. 먼저 몸으로 부딪혀본다. 그리고 경험 많은 선수가 안 된다던 게 제대로 터진다. 시청자들의 입맛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초심자의 만듦새가 새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성공의 진짜 비밀은 자신의 경험 없음을 보충하기 위해 기울인 몇 곱절의 노력에 있다.

그런데 이런 초심자의 행운이 나중에는 불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 타이밍은 행운을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하는 순간이다. 순수 열정의 강력한 에너지에 끌려왔던 행운이 이번엔 자만의 에너지에 밀려 떠나간다.

 

라디오를 듣다가 Dj 배철수의 말에 공감했던 적이 있다. 그는 모든 가수의 첫 번째 앨범이 제일 좋다고 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집, 3집을 내면서 가수들은 점점 그 순수성을 잃어가며 ‘쿠세’를 부린다고 한다(‘쿠세’는 방송가에서 자주 쓰이는 일본말로 버릇이나 습관을 뜻한다). 자기만의 독창성 있는 색깔이라 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 색깔만 갖는 색종이가 될 위험이 있다. 백지에는 무한의 색깔을 낼 수 있지만 색종이가 보여 줄 수 있는 색깔은 원래의 자기 색깔밖에 없다.

 

경험이 쌓이면서 마찬가지로 쌓이는 고정관념과 버릇을 피할 수는 없지만 해법은 있다. ‘야구의 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은 “쿠세를 모르면 야구는 끝이다”고 말했다. 상대 선수의 ‘버릇’을 간파하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얘기가 맞는다면 내 버릇을 내가 간파하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어디가 문제인지 안다면 고칠 수 있다. 초심자의 행운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지혜다.

 

연예인 섭외전쟁, 궁즉변 변즉통

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주역』

-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홋카이도의 한류 바람

오늘의 한류는 어느 날 갑자기 아이돌 열풍과 함께 생겨난 게 아니다. 오래전 누군가 처음으로 일본 땅에서 한국 노래의 씨를 뿌렸고 많은 가수들의 땀과 눈물이 뒤따랐다. 그러한 도전과 실패가 쌓여 지금의 열매가 맺힌 것이다. 그리고 그 한류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PD가 양복을 입을 때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냐고 따지며 못 부르게 했고, 배호의 ‘0시의 이별’은 0시부터 통금인데 그 시각에 이별하면 어떻게 하냐며 금지곡이 됐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로 시작되는 신중현의 ‘미인’은 퇴폐적이라고 금지. 심수봉의 ‘순자의 가을’은 대통령의 부인 이름을 썼다고 금지. 송창식의 ‘왜 불러’는 경찰의 장발 단속에 저항한다고 금지시켰다.

 

창작과 심의는 튀어나오려는 용수철과 이를 누르는 힘의 관계와도 같다. 한쪽은 자꾸 울타리를 벗어나 낯설고 위험한 것을 시도하려 하고, 다른 쪽은 한사코 안정과 질서를 위해 기존의 틀 안에 가두려 한다. 한쪽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면 한쪽은 ‘표현의 책임’으로 맞선다. ‘강제적 심의’보다는 ‘자율적 규제’가 답이겠지만 이는 말장난일 뿐이다. 사람마다 허용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탁월한 PD, 김영희 김태호

스핀오프 :: 스핀오프는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째,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각화된 기업이 한 사업을 독립적인 주체로 만드는, 회사 분할을 말한다. 회사 분할은 경영 효율성을 높이며, 군살을 빼려는 의도로 실시한다. 둘째, 이전에 발표되었던 드라마, 영화, 책 등의 등장인물이나 상황에 기초하여 새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CSI시리즈가 대표적인 스핀오프 작품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정부출연기관의 연구원이 자신이 참여한 연구에서 얻은 결과를 가지고 창업할 경우, 정부 보유 기술을 사용하는 로열티를 면제해 주고 후에 신기술연구기금 출연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핀오프 (시사경제용어사전, 2010.11, 대한민국정부)

 

연예인 좀 안 봤으면 좋겠다

염화미소 :: 부처님과 제자 사이에 진리를 주고받는 모습. 즉 진리가 부처님 마음에서 제자의 마음으로 전해짐

[네이버 지식백과] 염화미소 [拈華微笑] - (집을 념, 꽃 화, 작을 미, 웃을 소) (고사성어랑 일촌 맺기, 2010.9.15., 서해문집)

 

 

사랑한다면 <해품달>처럼

진정한 먹보는 빵을 울면서 먹는다고 한다. 한 입 먹으니 너무 맛있지만 한 입 만큼 줄어든 빵을 보고 슬퍼서 울고 또 한 입 먹고 작아진 빵을 보고 또 울고.

 

TV 안 보는 PD, 안 웃는 개그맨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웃음』은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이 분장실에서 돌연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수사는 미궁에 빠지고 단서는 죽기 전에 혼자 크게 웃었다는 증언뿐이다. 그런데 소설의 주인공인 잡지사 여기자는 타살을 의심한다. 그녀는 이렇게 추리한다. “제조업자들은 자기들이 만든 상품을 소비하지 않는다. 상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는 다른 소설가들의 작품을 읽지 않는 이유로 ‘젖소는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미디언들 역시 개그가 얼마나 작위적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코미디언들은 혼자 있을 때 크게 웃지 않는다.”

 

미장센 :: 연극과 영화 등에서 연출가가 무대 위의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배열하는 작업. 미장센(mise en scene)은 본래 연극무대에서 쓰이던 프랑스어로 ‘연출’을 의미한다. 영어로 표기하면 'Putting on Stage'로 직역하면 '무대에 배치한다'란 뜻이다. 연극을 공연할 때 희곡에는 등장인물의 동작이나 무대장치, 조명 등에 관한 지시를 세부적으로 명시하지 않으므로 연출자가 연극의 서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무대위에 있는 모든 시각대상을 배열하고 조직하는 연출기법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장센 (두산백과)

 

 

재핑 :: 광고를 피하기 위해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꾸는 행위.

[네이버 지식백과] 재핑 [zapping] (매스컴대사전, 1993.12., 한국언론연구원(현 한국언론진흥재단))

 

PD들의 설 특집 대전

명절 최고의 프라임 타임은 휴일의 길이에 따라 바뀐다. 보통 명절 전날은 시청률이 안 나온다. 시청자들은 귀향길 막히는 고속도로 위에 있다. 명절 당일에도 시청률은 고전하게 마련. 아침에는 차례 지내고 세배하느라 바쁘고 오후부터 귀경길에 오르기 때문에 TV 볼 새가 없다. 결국 연휴 마지막 날 저녁이 시청률 최고의 시간대가 된다. 고향에서 돌아온 후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리모컨을 들고 내일 출근 걱정을 잊으려 TV에 매달린다.

 

<해품달>을 피하는 법

인터미션 :: 영화 중간에 공식적인 쉬는 시간

 

정면 대결 편성 (Power programming) :: 새 프로그램은 새 프로그램으로 맞대응

블록버스터 편성 (Blockbuster programming) :: 대형 프로그램 만들어 경쟁사보다 일직 시작

대응 편성 (Counter programming) :: 전혀 다른 장르를 심어 차별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 유한준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

 

여배우 캐스팅은 연애하듯이

『손자병법』에 보면 전쟁을 잘하는 장수는 인재를 선택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나머지는 기세에 맡긴다고 한다. 기세라는 것은 사람을 마치 돌을 굴리는 것처럼 다룬다는 의미다. 돌은 평지에 두면 정지해 있지만 경사지에 두면 움직이기 시작한다. 또한 둥근 돌은 잘 구르지만 모난 돌은 쉽게 구르지 않는다.

 

인생은 예능이 아니라 다큐다

‘허들링(huddling)’이란 혹한의 남극에서 알을 품은 황제펭귄들의 독특한 생존법이다. 펭귄들은 무리 지어 서로 밀착한 상태로 계속 돌면서 영하 60도의 추위를 이겨내는데 바깥쪽 펭귄들이 힘들어질 때면 상대적으로 따뜻한 안쪽에 있는 펭귄들이 나와 자리를 바꿔주는 방식이다.

 

세상에 지치고 위로받고 싶을 때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본다. 마치 엄마의 약속처럼 지친 마음을 쓰다듬어주고 병든 마음을 치료해 준다. 결국 인생은 핑크빛 드라마나 포복절도하는 예능은 아닌가보다. 때로는 시시하고 권태롭고 때로는 깔딱깔딱 숨넘어갈 듯 힘겨운, 그런 한 장면 한 장면이 죄다 모인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인생은 다큐다.

 

시즌 1보다 나은 시즌 2 만들기

‘소포모어(sophomore)‘는 대학 2학년생을 의미하는데 소포모어 징크스란 데뷔 첫해에는 집중 조명을 받으며 이름을 날리다가도 2년차가 되면 첫해의 화려했던 기록과 주변의 기대가 부담감으로 작용하면서 슬럼프를 겪는 경우를 일컫는다.

 

PD를 울게 하는 프로그램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에 들어갈 미니 다큐를 찍으면서 여러 번 울었다. 특히 열세 살 황수정의 사연의 감동이었다. 급성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수정 양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댄스가수를 꿈꾸는 건강한 아이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인 <수퍼스타K>에 출연하여 춤 솜씨로 심사위원들의 인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갑자기 백혈병이 찾아왔고 그녀가 그토록 아끼던 긴 머리카락은 항암치료로 모두 빠져버렸다.

이젠 춤은 고사하고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절망에 빠진 수정이를 위해 걸 그룹 포미닛이 시간을 냈다. 포미닛의 현아는 수정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포미닛은 해외공연을 끝내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대구로 내려와 수정이만을 위한 깜짝 공연을 준비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병원 강당에 들어선 수정이는 포미닛이 등장해 자기를 위해 노래 부르자 단박에 울음을 터뜨렸다. 포미닛의 ‘핫이슈’라는 댄스곡이 이토록 감동적일 수 있다니. 수정이도 울었지만 포미닛은 더 울었다. 새로운 희망을 수정이뿐만 아니라 포미닛도 얻어갔다.

 

“내가 믿는 신은 그렇게 쫀쫀한 분이 아니야. 내가 퍼주면 그만큼을 기막히게 채워주시더라고. 그러니 내 것을 챙기며 사나 마구 퍼주며 사나 똑같아. 어차피 똑같을 거 베풀며 살면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더 행복할 수 있잖아.”

 

연말 시상식 무대 뒤의 전쟁

공동 수상과 나눠주기 시상의 비난 속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이런 시상식의 대풍년 속에서도 대부분의 연기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죽음 직전 먹고 싶은 소울푸드

<트루맛 쇼>는 TV에 맛집으로 소개되려면 돈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증언한다. 우선 전문 브로커에게 견적을 받고 소개할 음식의 콘셉트를 잡는다. 비용은 1000만원 정도. 요점은 음식 맛은 아무 상관없고 비주얼이 특이하면 된다. 한 예로 ‘캐비어삼겹살’이란 게 있다. 삼겹살에 철갑상어 알을 박아 구워 먹는 스태미나식이다. 대박 아이디어가 아닌가. 삼겹살 값으로 그 귀한 철갑상어알을 같이 먹을 수 있다니. 손님들이 먹고 나가면서 90도로 절했다고 주인은 자랑했다.

하지만 그 대박상품은 방송용으로 급조된 메뉴였다. 프랑스 요리사에 따르면 캐비어는 차갑게 보관해서 먹는 음식이기에 열을 가하면 맛도 영양소고 모두 잃게 된다고 한다. 더 황당한 건 애당초 캐비어삼겹살에 캐비어는 없었다. 캐비어와 색깔만 같은 한 통에 3000원짜리 생선알이었다. 여기에 브로커에게 돈을 더 쥐어주면 연예인까지 섭외하여 단골집으로 소개될 수도 있다. 촬영 날에는 동원된 가짜 손님들로 식당을 채우고 작가가 써준 대사대로 음식 맛을 읊어준다.

 

음식은 역시 ‘마음’인가 보다. 먹는 이를 생각하며 정성껏 준비하는 마음, 만든 이를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먹는 마음. 맛있는 척, 대단한 척 호들갑을 떨어도 ‘마음’이 빠져 있는 음식은 영혼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런 음식을 갖고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예능 PD로 산다는 것

시청자들의 꾸짖음에 상처받고 모처럼 착한 프로그램을 만든다 치자. 예상대로 칭찬이 폭포수같이 쏟아진다. 가족이 보면서 다 같이 울었단다.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고도 한다. 이런 프로그램이 왜 이제야 나왔느냐고 개탄하는 시청자도 있다. 하지만 다음날 시청률을 받아보면 그래프가 X축을 따라 바닥에 납작 붙어 기어간다. 칭찬만 하고 아무도 보지 않은 것이다. 겉다르고 속 다른 시청자들의 배신에 또 한 번 깊은 상처를 받는다.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전통적으로 좋아하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스토리텔링이고 또 하나는 감동이다. 우리나라만큼 드라마를 많이 방송하는 나라도 없는 것 같다. 각 방송사마다 아침, 일일, 월화, 수목, 주말, 특별기획, 단막극 등 드라마 홍수라 할 만큼 넘쳐난다. 그러나 여전히 방송국의 효자노릇을 하는 게 드라마다. 그 만큼 스토리텔링을 좋아한다. 또 한 가지 우리 시청자들은 감동에 약하다. 오락 프로그램에서조차 재미보다는 감동을 좋아한다. 딴따라를 업신여기는 마음이 여전한 반면 <러브하우스>나 <느낌표>유의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뚝배기 한 그릇 먹은 듯한 뿌듯한 포만감이 남는 것이다.

그런데 1,2년 전부터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강력한 흥행 키워드가 생겨났다. 바로 ‘진심’이란 단어다. 이젠 하도 많이 들어서 노이로제까지 걸릴 지경이지만 여전히 프로그램에 진심이 담겨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그간의 흥행공식이 바뀌었다. 대박을 보장하는 특A급 배우가 나와도 적당히 영화 홍보나 하다가 돌아가면 시청률은커녕 시청자들의 욕만 먹는다. 불록버스터급 제작비나 현란한 영상으로는 더 이상 시청자의 시선을 끌 수 없다. 인터넷 세계 최강국의 시청자들이 아닌가? 그들은 이미 익숙해진 미드와 할리우드 SF에 눈높이가 하늘까지 올라가 있다. PD와 작가의 머리를 뛰어넘은 지 이미 오래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성공 키워드인 진심이 나타났고, 진심 없이는 대한민국 시청자들을 붙잡을 수 없게 됐다.

혹한과 폭염 속에서도 <1박2일> 팀은 야외 취침을 한다. 예전처럼 카메라 앞에서만 그냥 그러는 ‘척’라는 게 아니다. 카메라는 24시간 돌고 연기자들은 기꺼이 얼음물에 뛰어들고 야외에서 짐승처럼 잠을 청한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신나서 뛰노는 장면 속에서 그들의 진심이 보인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나는 가수다>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들이 일주일 동안 고생 끝에 최고의 무대를 준비하여 아마추어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그들의 진심을 세계 최고의 선구안을 가진 우리 시청자들이 못 볼리 없다.

 

지금 당장은 몰라봐도 언젠간 통할 것이다. 진심은 통한다. 언제나.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사는 대로 사니? 가는 대로 사니? 그냥 되는 대로 사니?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 나이를 처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그 나이를 처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이거 아니면 죽음, 정말. 이거 아니면 끝장, 진짜.

네 전부를 걸어보고 싶은 그런,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 신해철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현실을 따를 때는 이상이 끈질기게 괴롭히더니 막상 이상을 따랐더니 이제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 에필로그

(카르페 디엠 :: 오늘을 즐겨라)은 어제와 내일은 잊고 오늘을 막 살라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제를 토대로 삼고, 내일을 예비하며 오늘을 온전히 누리라는 뜻이다.

728x90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욕망해도 괜찮아  (3) 2023.05.12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0) 2023.05.11
콰이어트  (1) 2023.05.09
사물의 언어  (5) 2023.05.08
피로사회  (0) 2023.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