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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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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인지언어학을 창시한 세계적인 석학 조지 레이코프가 언어학을 현실 정치에 적용한 화제의 베스트셀러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10주년 전면개정판. 이 책은 “왜 평범한 시민들이 자기 이익에 반하는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가?”라는 진보의 해묵은 의문에 답하며,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는 계몽주의적 신념이 왜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지 명쾌하게 분석하여 여의도 정치권과 의식 있는 시민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원서 초판 발행 10주년을 맞이하여 총 10장으로 구성된 초판에서 두 장을 삭제하고 여덟 장을 새로 추가하여 절반 이상의 내용이 새로 추가된 전면개정판을 펴냄으로써 인지언어학의 최신 성과와 현재의 뜨거운 쟁점들을 대폭 수록했다. 레이코프는 우월한 프레임 구성으로 오바마가 당선된 후 왜 곧바로 민주당이 다시 프레임 전쟁에서 패배했는지, 그래서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밝히기 위해 이 개정판을 출간한다고 머리말에서 밝혔다.
저자
조지 레이코프
출판
와이즈베리
출판일
2018.05.20

 

0. 머리글

 서문

 미디어 ‘프레임’을 구성하는 방법 – 매 순간 우리가 의사소통하는 방법, 우리가 선택하는 단어, 우리가 불러일으키는 프레임에 대해 어떻게 인지해야 할지 

 

 무브온(MoveOn.Org) :: 미국 정치 참여 시민단체, 소개, 후원 안내, 뉴스, 출판물 정보 등.

 

 최소한 우리 모두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 경쟁자의 프레임을 공격하는 것은 그들의 메시지를 더욱 강화해 줄 뿐이라는 – 교훈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한 발짝 전진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의 가치관, 소망, 사명을 담은 프레임을 구성하되, 상대방의 프레임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순간, 그들의 생각이 바로 공론의 중심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진보 세력은 사람들이 ‘사실’을 알고 이해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다. 사실만으로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 체계와, 그 가치를 떠올리게 하는 언어와 ‘프레임’에 근거하여 정치와 후보자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머리글 –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변화이다

 프레임(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 행동의 좋고 나쁜 결과를 결정한다.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수행하고자 수립하는 제도를 형성한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이 모두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변화이다.

 

 프레임은 인지과학자들이 ‘인지적 무의식(cognitive unconscious)’이라고 부르는 것의 일부이다. ‘인지적 무의식’이란 우리 두뇌 안에 있는 구조물인데, 의식적인 형태로 접근할 수 없지만 그 결과물 – 우리가 사고를 풀어 나가는 방식이나, 상식이라고 여기는 것 – 을 통해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또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도 프레임을 추론할 수 있다. 모든 단어는 개념적 프레임에 맞추어 정의된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 두뇌에서는 그 단어와 결부된 프레임(또는 프레임의 집합)이 작동한다.

 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바꾸는 것이다.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되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

 

 

 

1. 그것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입문_어떻게 공론을 되찾아 올 것인가

 제가 버클리에서 ‘인지과학 입문’이라는 수업을 진행하며 프레임 연구를 강의할 때, 처음으로 하는 일은 학생들에게 한 가지 과제를 내주는 것입니다. 그 과제는 바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인데요, 말 그대로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저는 이 과제에 성공한 학생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코끼리’와 같은 단어는 그에 상응하는 프레임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어떤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종류의 지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코끼리는 크고, 펄럭이는 귀와 긴 코가 있고, 서커스와 연관되어 있고... 등이지요. 이 단어는 그러한 프레임에 의거하여 정의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합니다.

 일찍이 리처드 닉슨은 그 진리를 뼈아픈 방식으로 깨달았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그가 한창 사임 압력을 받던 당시의 일입니다. 이때 그는 TV에 나와 연설을 했는데 여기서 닉슨은 전국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 순간 모두가 그를 사기꾼으로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이 일화는 상대편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려면 상대편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프레임의 기본 원칙을 가르쳐 줍니다. 상대편의 언어는 그들의 프레임을 끌고 오지, 결코 내가 원하는 프레임으로 기능하지 않습니다.

 

 조지 W. 부시가 백악관에 입성한 바로 그날부터 백악관에서는 ‘세금 구제(tax relief)’라는 용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렇습니다. 이 말은 그해 국정 연설에서 여러 번 등장했고, 4년 뒤 선거 유세에서는 더욱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구제(relief)’라는 단어의 프레임을 생각해봅시다. 구제가 있는 곳에는 고통이 있고, 고통받는 자가 있고, 그 고통을 없애 주는 구제자가, 다시 말해 영웅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그 영웅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들은 구제를 방해하는 악당이 됩니다.

 ‘세금’이라는 말이 ‘구제’ 앞에 붙게 되면, 그 결과로 다음과 같은 은유가 탄생합니다. 세금은 고통이다. 그리고 그것을 없애 주는 사람은 영웅이고, 그를 방해하는 자는 나쁜 놈이다. 이것이 바로 프레임입니다. 그리고 곧 민주당원들까지 ‘세금 구제’란 말을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는 격입니다.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가 아닙니다. 본질은 바로 그 안에 있는 생각입니다. 언어는 그러한 생각을 실어 나르고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부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방어하고자 하는데 부모 동의서를 받아 올 필요는 없습니다.” ‘부모 동의서(permission slip)’가 어쨌다는 말인가요? 그는 그냥 “우리는 동의(permission)를 구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 동의서’는 다릅니다. 여러분이 몇 살 때 마지막으로 부모 동의서를 받아 와야 했는지 한번 더듬어 보세요. 그리고 부모 동의서를 요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요구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둘 사이가 어떤 관계인지 생각해 보세요. 

 

 저는 왜 보수주의자들이 가족의 가치에 대해 그토록 자주 이야기하는지 자문해 보았습니다. 왜 대통령 선거나 의원 선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세계의 미래가 핵 확산과 지구 온난화로 위협받고 있는 이때에, 끊임없이 가족의 가치에 대해서만 떠드는 걸까요?

 이 시점에서 저는 몇 년 전 한 학생이 제출한 보고서를 떠올렸습니다. 그 보고서는, 우리에게 국가를 한 커다란 가족으로 보는 은유가 존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요. 예를 들어 우리에게는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1787년 미국 헌법안에 서명한 제헌 의회 의원 55명을 일컫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 혁명의 딸들[Daughters of the American Revolution: 미국 독립전쟁 유공자의 자손들이 결성한 단체의 이름]’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들들’을 전쟁터에 내보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국가와 같은 큰 사회 집단을 가족이나 공동체 같은 작은 집단의 기준에서 이해하기 때문에 자연스런 은유입니다.

 

 누가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때, 나는 “당신에게 빚을 졌군요” (“I owe you one”, “I’m in your debt”)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은유적으로 그에게 돈을 주는 것과 비슷하게 간주된다. 나는 그에게 무언가를 ‘빚’졌기 때문에 “어떻게 이 은혜를 ‘갚지요?’”라고 말한다.

 

 국제 관계에 대한 대학원 수업에서 배우는 통상적인 은유가 있습니다. 이것을 ‘합리적인 행위자(rational actor)’ 은유라고 합니다. 이는 국제관계 이론 대부분의 기본으로서, 그 속에 한 가지 은유를 더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를 마치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깡패 국가(rogue state)’나 ‘우방 국가(friendly nations)’가 있고, ‘국가 이익(national interest)’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국가가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가장 기초적으로, 자기 이익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건강하고 강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국가가 사람이라는 은유에 따르면 나라가 (경제적으로) 건강하고(그래서 GDP가 높아지고), (군사적으로) 강해지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때 나라 안의 개개인이 건강해질 필요는 없지만 기업은 그래야 하며, 국가 전체적으로는 많은 돈을 보유해야 합니다.

 

 국가가 사람이라는(‘우방 국가’, ‘깡패 국가’ 등의) 은유에 따르면 ‘어른 국가’와 ‘어린 국가’도 있습니다. 국가가 어른이 되기 위한 조건은 바로 산업화를 거치는 것입니다. 어린 국가는 ‘개발 도상국가’또는 ‘저개발국가’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뒤처진 국가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엄격한 아버지라면, 자녀들에게 어떻게 발전할지 가르치고, 따라야 할 규칙을 지시하며, 자녀들이 잘못할 때는 벌을 줄 것입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국제통화기금(IMF)의 정책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유엔(UN)은 무엇일까요? 유엔을 구성하는 국가는 대부분이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입니다. 이는 그들이 은유적으로 어린아이임을 의미합니다. 그럼 이제 저 앞에서 언급한 국정 연설로 돌아가 봅시다. 미국이 유엔에게 자문하여 이라크를 침공할지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어른은 ‘부모 동의서’를 받아 올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 동의서’라는 구절은 화장실에 가려고 해도 부모 동의서가 필요했던 초등학교나 고등학교 시절로 우리를 되돌려 놓습니다. 우리가 선생, 교장, 권력을 가진 사람, 도덕적 권위자라면 부모 동의서는 필요치 않습니다. 반대로 다른 이들이 나한테 부모 동의서를 받아야 되겠지요.

 ‘부모 동의서’라는 두 단어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부시가 한 일은 다른 국가들에 대해 어른-아이의 은유를 환기한 것입니다. 그는 “우리는 어른입니다”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진보주의적 가치관

 ①사회경제적 진보주의(socioeconomic progressives)는 모든 것이 화폐와 계급의 문제이며, 모든 문제를 궁극적으로 경제적ㆍ사회계급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②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진보주의는 억압받는 집단이 빼앗긴 몫을 되찾을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③환경주의(environmentalists progressives)는 지구의 지속 가능성과 신성함, 원주민 보호라는 견지에서 사고한다.

 ④시민 자유 진보주의(civil liberties progressives)는 자유에 대한 위협에 대항하여 자유를 사수하고자 한다.

 ⑤영적 진보주의(spritual progressives)는 종교나 영성의 형태를 취한다. 그들에게 영적 경험은 타인과 세계와 맺는 관계이고, 영적 실천은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연관된다. 영적 진보주의는 가톨릭에서부터 프로테스탄트,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여신 숭배, 이교적 마술 숭배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걸쳐있다.

 ⑥반권위주의(antiauthoritarians)는 기업을 비롯하여 모든 종류의정당치 못한 권위를 추방하고 여기에 대항하여 싸울 것을 주장한다.

 

 파월 메모 :: 미국에서 보수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대표하는 헤리티지 재단의 출범은 기업들과 보수세력에 대한 좌파 진영의 공격에서 비롯됐다. 1971년 미국의 좌파 진영은 엄청난 기세로 반기업·반자본주의 캠페인을 벌였다. 국민들이 베트남 전쟁 장기화에 염증을 내고 있는 틈을 교묘히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자유주의자들과 사회 지도층에 대한 적대감이 대학가를 휩쓸었고 기업들은 경영권을 공격받고 있는 와중에도 젊은층의 환심을 사기에 바빴다. 지금의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
반전의 모멘텀은 미국 버지니아주의 루이스 파월이라는 검사가 만들어냈다. 그는 미국 전역의 우익 인사들에게 ‘보수의 총궐기’를 촉구하는 ‘파월 메모(Powell Memorandum)’를 보냈다. 이때 개인 자격으로 25만달러를 쾌척한 사람이 쿠어스맥주의 사주였던 조지프 쿠어스였다. 이를 신호탄으로 많은 독지가들이 성금을 내기 시작했고 오늘날 헤리티지 재단의 설립자금으로 꾸려졌다. 미국의 보수세력들은 이 재단을 기반으로 인적·물질적·지적 네트워크를 전국적으로 총동원해 좌파 세력에 맞섰고 사회의 흐름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한국경제신문] 美보수 '파월 메모'로 총궐기…좌파 '反시장 캠페인' 뒤엎다 (2012.03.08)

 

 1970년에 루이스 파월(Lewis Powell)은, 닉슨에 의해 대법원 판사로 임명되기 불과 두 달 전에(당시 그는 미 상공회의소 회장이었습니다) ‘파월메모’라고 알려진 메모를 남겼습니다. 그것은 훗날 보수주의의 운명을 결정한 문서가 되었습니다. 그는 나라의 가장 우수하고 똑똑한 청년들이 반기업적으로 기울지 않도록 보수주의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썼습니다. 파월은 대학 안팎에 연구소를 세울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연구하고 책을 써서 이들을 올바른 방식으로 사고하도록 가르치는 교수직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자기네 두뇌 집단을 통해 프레임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모든 쟁점을 프레임으로 구성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러한 프레임을 만들 것이며 어떻게 자기편 사람들을 항상 미디어에 노출시킬 수 있는지를 터득했습니다. 그들은 자기편을 하나로 묶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존중하면서 차이점을 조율하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서로 거래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번 주에 이 문제에서는 그에게 양보하지만, 다음 주에 다른 문제에서는 내가 이긴다’는 식이지요. 이렇게 해서 모두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하지는 못하더라도, 오랜 논쟁 끝에 각자가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됩니다.

 진보 진영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현명하지 못할뿐더러 스스로 실패를 불러오는 길입니다.

 

 계몽주의와 함께 탄생한 리버럴과 진보주의자들이 믿고 있는 신화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존재이므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기만 하면 그들은 옳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라는 가정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인지과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부모’의 프레임은 각각 특정한 논리를 작동합니다. 진실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그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프레임에 부합해야 합니다. 만약 진실이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프레임은 남고 진실은 버려집니다.

 

 그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프레임을 지니고 있고 그 프레임에 맞는 사실만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계몽주의로부터 유래한 신화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이익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이익에 기초하여 사고한다”는 것입니다. 현대 경제학 이론과 외교 정책은 이러한 가정에 기초하여 세워졌습니다.

 

 합리주의적인 관점은 민주당의 정치에 매우 중요한 방식으로 침투했습니다. 그것은 유권자들이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한다는 가정입니다. 민주당원들은 유권자들이 자기 이익에 반하여 투표하는 데 충격을 받거나 당혹스러워합니다. 그들은 저에게,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그렇게 큰 해를 끼치는 부시에게 투표 할 수 있는 거지요?” 하고 묻습니다. 이런 일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민주당에 투표하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전달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통계를 가지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벽에 부딪혔습니다. 2000년 대선에서 고어는 부시의 감세안이 상위 1퍼센트에게만 혜택을 준다는 사실을 되풀이해 강조했습니다. 그는 나머지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따라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보수주의자들은 여전히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왜냐하면 보수주의자로서 그들은 부자들 - ‘선한’ 사람들 – 이 잘 훈육되었기 때문에 그 대가로 많은 돈을 소유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위 99퍼센트의 보수주의자들은 자기 이익에 반하여, 자신의 보수주의적 가치관에 따라 투표한 것입니다.

 인구의 35퍼센트는 자기가 상위 1퍼센트에 속하거나 장차 속하게 되리라고 믿으며, 따라서 그들은 미래에 희망하는 자기 이익에 근거하여 행동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감세 혜택을 기대할 수 없음에도 공화당을 지지하는 나머지 65퍼센트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들은 분명히 자기 이익 – 또는 미래에 기대되는 이익 – 에 반하여 투표합니다.

 비슷한 현상이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노조에서는 당시 주지사였던 그레이 데이비스(Gray Davis)가 아널드 슈워제네거보다 서민들, 특히 노동자들에게 훨씬 더 유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돈을 들여 홍보했습니다. 그리고 조합원들에게 “데이비스와 슈워제네거 중 누구의 입장이 당신에게 더 유리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거의 대부분이 데이비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투표할 예정입니까”라고 묻자 그들은 슈워제네거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에게 투표합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언제나 단순히 자기 이익에 따라서 투표한다는 가정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세 번째 오해는 선거 운동을 상업적 마케팅과 동일시하는 은유입니다. 이 은유에 따르면 후보자들은 상품이고, 쟁점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은 상품의 질이나 특성이 됩니다. 이러한 가정은 선거에서 어떤 쟁점을 전면에 내세울지를 여론 조사를 통해 결정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자, 여기에 여러 쟁점들의 목록이 있습니다. 이 중 우리 후보의 편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쟁점이 무엇인가 찾습니다. 만약 노인과 소외 계층을 위해 값싼 처방약을 수입하자는 공약이 78퍼센트로 가장 높은 지지도를 기록했다면, 처방약에 관한 정강을 전면에 내세워야 할 것입니다. 사회보장제도 사수가 높은 지지도를 보인다면 사회보장 공약을 내세워야 할 것입니다. 또한 쟁점에 해당하는 시장을 분할해서도 공략해야 합니다. 지역별로 가장 중요한 쟁점을 발굴하고, 해당 지역을 방문했을 때는 그 쟁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언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생각만큼 잘 통하지 않습니다. 물론 가끔은 쓸모 있기도 하고, 사실 공화당은 그들의 전략에 이 방법을 가미해서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진짜 전략과 성공 요인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신념을 말합니다. 그들은 자기 지지다들의 프레임을 이용하여 자기 지지자들을 향해 발언합니다. 리버럴과 진보 진영의 후보들은 여론 조사를 따라, 좀더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더 ‘중도적’으로 되어야 한다고 결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전혀 왼쪽으로 이동하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그들은 선거에서 이깁니다!

 

 누구나 두 가지 세계관을 다 가지고 있으며 어느 한 세계관에만 전적으로 기대어 살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중간층’에 속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모델을 작동하는 것입니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두 가지 모델을 모두 다 지니고 살면서 두 가지를 서로 다른 경우에 사용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우리의 모델을 택하도록 – 즉 정치적 의사 결정에 우리의 세계관과 도덕 체계를 사용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세계관에 근거한 프레임을 사용하여 말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러는 과정에서 상대편의 세계관을 선택하게 된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 또한 삶의 어떤 부분에선 두 가지 모델을 다 사용하기 때문에, 여전히 상대편 모델을 작동하도록 설득할 여지가 있습니다.

 클린턴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터득한 사람입니다. 그는 상대편의 언어를 훔쳐 왔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복지 개혁’에 대해 말하고, “큰 정부의 시대는 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상대편의 언어를 사용해 자기가 원하는 바를 말함으로써 그것을 실현했습니다.

 

 암거위에게 좋은 것은 수거위에게도 마찬가지로 좋은 법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라는 것이 출현했습니다. ‘깨끗한 하늘 계획(The Clear Skies Initiative)’, ‘건강한 숲(Healthy Forests)’, ‘낙오자 없는 교육(No Child Left Behind)’ 같은 슬로건은, 이들 정책이 실질적으로 ‘엄격한 아버지’에 기반하는 것과 상관없이 ‘다정한 부모’라는 가치를 믿는 사람들을 누그러뜨리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안스러워하는 중간층 사람들은 누그러뜨리고 심지어 그들의 호감을 얻기도 합니다. 이렇게 조지 오웰의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언어 – 그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와 반대되는 선전용 언어 – 를 사용함으로써 중간층 사람들을 달래는 동시에 지지층을 넓히는 효과를 내는 것은 보수주의자들의 전략 일부입니다.

 리버럴과 진보주의자들은 이러한 전략에 대해 전형적이면서도 자멸적인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그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이렇습니다. “저 보수주의자들은 나쁜 사람들이다. 저들은 오웰 식의 언어, 실제 의미와 반대되는 말을 사용해서 비열한 속임수를 쓰고 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정확히 그럴 수밖에 없을 때 – 그들이 약할 때, 자기들이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밝힐 수가 없을 때 – 에 한해서 그러한 언어를 쓴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이 ‘더러운 대기 법안’, ‘숲 파괴 법안’, ‘공교육 파괴 법안’ 따위를 들고 나왔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들은 자기들이 정말로 하고자 하는 것을 사람들이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오웰 식의 언어는 약점 – 오웰적인 약점 –을 가리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오웰 식의 언어를 듣게 되면 그 말이 어디에 쓰였는지 주목하세요. 그것은 그들이 상처를 입기 쉬운 약한 부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언어를 아무데서나 쓰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약점을 우리의 이점으로 활용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환경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건강한(healthy)’, ‘깨끗한(clean)’, ‘안전한(safe)’과 같은 특정 단어를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들은 환경이 그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는 프레임에 부합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룬츠는, 화력발전소나 핵발전소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가능한 한 ‘건강한’, ‘깨끗한’, ‘안전한’ 같은 단어를 사용할 것을 권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오염을 가중하는 법안을 ‘깨끗한 하늘 법안’이라고 부르도록 만드는, 일종의 오웰적인 약점입니다.

 비슷하게, 룬츠는 여성들에게 말을 거는 방식에 대한 글도 썼습니다. 룬츠에 따르면, 여성들은 ‘사랑(love)’, ‘진심으로(from the heart)’, ‘우리 아이들을 위해(for the children)’ 같은 어구를 선호하므로 여성 청중에게 말할 때는 이러한 어구를 가능한 한 자주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시의 연설문을 읽어 보면 ‘사랑’, ‘진심으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라는 말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념은 프레임이라는 형태로 떠오릅니다. 프레임이 있으면, 언어는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저(低)인지(hypocognition) :: 필요한 생각, 즉 한두 단어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교적 단순하고 고정된 프레임이 결여된 상태.

 

 ‘저인지’라는 개념은 1950년대 타히티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연구를 수행한 인류학자 밥 레비(Bob Levy)는 심리치료사로서 뒤늦게 인류학 연구에 뛰어든 사람입니다. 그는 왜 타히티에는 그렇게 자살률이 높은지 의문을 풀고자 연구를 시작했고, 타히티어에 ‘슬픔’이라는 개념을 지닌 단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슬픔을 느끼고 경험하지만, 그것을 이름 붙일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정상적인 감정으로 여길 수가 없었습니다. 슬픔을 치유하는 의식도, 슬픔을 위로하는 관습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절실히 필요한 개념을 결여했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높은 자살률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저인지의 빈틈을 메우는 확립된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부모들은 세금을 통해 우리와 그분들의 미래에 투자했습니다. 그분들은 장거리 고속도로에, 인터넷에, 과학연구 및 의료 체계에, 우리의 통신 체계에, 항공 체계에, 우주 개발 계획에 그분들의 세금을 투자했습니다. 그분들은 미래에 투자했고, 우리는 그분들이 투자한 세금에서 얻어지는 혜택을 거두어들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분들의 현명한 투자로 얻어진 자산 – 고속도로, 학교와 대학, 인터넷, 항공 등 – 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광고가 몇 년에 걸쳐 수없이 반복하여 게재되고 방송된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세금은 미래를 위한 현명한 투자다’라는 프레임이 확립될 것입니다.

 

 순수한 의미에서 자수성가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기업가들은 납세자들이 지불하여 만들어 준 미국의 광대한 인프라를 사용하여 돈을 번다. 자수성가하는 사람은 없다! 부는 과거의 납세자들이 지불한 것을 바탕으로 이룩된 것이다.

 

 ‘전략적 주도(strategic initiatives)’ :: 주의 깊게 선택된 어느 한 가지 쟁점에서 변화가 일어나면 그것이 많은 다른 영역의 쟁점에까지 자동으로 영향을 끼치도록 하는 계획 ex) 감세.

 대체 에너지 투자 방안

 ㆍ일자리 창출 : 이를 통해 200만~400만 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ㆍ국민 건강 : 대기 오염이 줄어들면 어린이 천식 발병률도 줄어듭니다.

 ㆍ깨끗한 물, 깨끗한 공기

 ㆍ종 보호 : 이는 환경과 동식물의 서식지를 정화해 줍니다.

 ㆍ지구 온난화 : 별다른 지구 온난화 방지 프로그램을 입안하지 않고도 온실 가스를 감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ㆍ대외 정책 : 더 이상 서아시아의 석유에 의존할 필요가 없습니다.

 ㆍ제3세계 개발 : 모든 나라는 ‘저개발국’이라도 적절한 대체 기술만 있으면 에너지를 자족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가 석유를 사오기 위해 빚을 지거나 환경을 오염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한 채무에 대해 이자를 지불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아가, 제3세계의 에너지에 투자한 모든 돈은 여섯 배 증식 효과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대체 에너지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통해 많은 쟁점 영역에서 막대한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에너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일자리, 국민 건강, 깨끗한 물과 공기와 생태계, 지구 온난화, 대외 정책, 제3세계 개발에 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는 또한 새로운 연대를 창출하고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지지자를 조직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미끄러운 비탈(slippery slope)형 주도 :: 한 발만 앞으로 내딛으면 벼랑에서 떨어진다.

 ‘학교 평가(school testing) 법안’을 봅시다. ‘평가(시험)’라는 프레임이 학생뿐만 아니라 ‘학교’에까지 적용되면, 학교는 은유적으로 시험에 떨어질 – 그래서 시험에 떨어진 벌로 용돈을 깎일 – 수 있습니다. 자금 지원이 줄어들면 학교는 발전하기가 전보다 더 어려워집니다. 이는 악순환을 불러와서 궁극적으로는 많은 공립학교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공립학교가 사라진 자리에는 사립학교를 지원하는 바우처 시스템[voucher system: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이 학비를 냈을 때 개인 소득에서 이 학비를 공제해 주는 제도. 정부에서 사립학교에 간접적인 재정 지원을 해줌으로써 공립학교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6년 1월 플로리다 주 대법원은 이 제도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이 들어서게 됩니다. 부자들은 과거에 공립학교를 지원하는 데 쓰였던 세금의 보조를 받아 가면서 좋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됩니다. 한편 빈민들은 좋은 학교에 다닐 돈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격을 갖춘 부자’의 좋은 학교와 ‘자격이 없는 빈자’들의 열악한 학교로 양극화된 교육 체제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메디케어 법안[Medicare Bill: 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한 미국의 공공의료보험인 ‘메디케어’의 가입자들에게 정부 보조로 2006년까지 처방약 비용을 지원하고, 그 대신 2010년부터 민간 보험사들과 정부가 운영하는 메디케어 사이의 직접적인 가격 경쟁을 도입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으로서 2003년 말에 통과되었다. 이는 제약 회사의 매출을 올리고 가입자들을 민간 보험으로 유인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진보주의자들이 실천해야할 11가지

 ①보수주의자들이 올바른 방향을 택했고 진보주의자들은 배를 놓쳤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 이는 단순히 미디어를 통제하는 데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하는 문제를 넘어서는 것입니다(물론 이것도 결코 사소한 문제는 아닙니다만). 그들이 올바른 방향을 택했다는 것은 쟁점들을 그들의 시각에서 프레임으로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성공과 우리의 실패를 인정합시다.

 ②“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경구를 기억하십시오. :: 우리가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프레임을 사용하여 그들의 주장에 대항한다면, 그들의 프레임만 더욱 굳게 다져 주고 패배할 것입니다.

 ③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 단순히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진실을 우리의 관점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프레임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④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도덕적 관점에 입각하여 말해야 합니다. :: 진보적 정책은 진보적 가치에서 유래합니다. 우리의 가치를 명확히 하고 그 가치에 속한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전문가인 척하는 관료주의적 언어를 버리십시오.

 ⑤보수주의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십시오. :: 그들의 ‘엄격한 아버지’ 도덕과 그 결과를 확실히 파악하십시오. 우리가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를 파악하십시오. 왜 그들이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⑥개별 쟁점을 넘어 전략적으로 사고하십시오. :: 개별적인 정책의 관점에서만 보지 말고 더 큰 도덕적 목표를 염두에 두십시오.

 ⑦정책안의 결과에 대해 숙고하십시오. :: 우리도 진보적인 ‘미끄러운 비탈’형 주도를 만들어 봅시다.

 ⑧유권자들은 자기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투표하며, 이는 꼭 그들의 이익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⑨단결합시다! 협력합시다! :: 진보주의적 사고의 여섯 가지 유형, 즉 (1)사회 경제적, (2)정체성 정치, (3)환경주의, (4)시민 자유, (5)영적, (6)반권위주의적 진보주의를 상기해 봅시다. 이 중 내가 가장 많이 의존하는 유형이 무엇인지 –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이 이 스펙트럼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 – 인지하십시오. 그리고 각자 지니고 있는 특정한 유형의 사고방식에서 시야를 넓혀, 공통된 진보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배웁시다.

 ⑩수동적이 되지 말고 능동적이 되십시오. 방어하지 말고 공격하십시오. :: 항상, 모든 쟁점에 대하여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단순히 우리의 신념을 말하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그들의 프레임을 사용하지 말고 우리의 프레임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프레임만이 우리가 믿는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⑪부동층 유권자들에게 우리의 모델을 작동하려면 진보주의적 지지자들을 향해 발언해야 합니다. 오른편으로 이동하지 마십시오. :: 오른편으로 이동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상처를 줍니다. 이는 우선 진보주의 지지자들을 소외시키고, 부동층 사이에 보수주의 모델을 작동시킴으로써 도리어 보수주의자들에게 보탬이 됩니다.

 

 터미네이터 등장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캘리포니아 주지사 당선 뒤에는 어떤 프레임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ㆍ유권자의 반란 :: 그레이 데이비스는 너무나 안 좋은 주지사였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그를 정당하게 내쫓고 상대편 정당의 대표를 뽑았다.

 ㆍ의사소통의 실패 :: 그레이 데이비스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유권자들과 의사소통하는 데 너무나 서툴렀다. 그는 자신이 거둔 성과를 전달하는 데에도, 캘리포니아 주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공화당도 책임이 있음을 알리는 데에도 실패했다. 여론은 데이비스를 실제보다 더 무능하게 여겼고 의사소통에 능한 사람을 원했기 때문에 그를 소환하고 영화배우를 선출한 것이다.

 ㆍ캘리포니아 괴짜들 ::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본래가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바로 작년에 자기들 손으로 뽑은 주지사를 내쫓고 정치 경험이 없는 보디빌더 겸 영화배우를 주 정부 수반으로 들어앉힌 것이다.

 ㆍ민중이 정치가들에게 본때를 보였다 :: 민중이 이기면 정치는 주로 지게 되어 있다.(슈워제네거의 당선 수락 연설 중에서)

 ㆍ그냥 유명 인사니까 :: 사람들은 정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유명 인사니까 표를 던진 것뿐이다.

 ㆍ자수성가의 모범 :: 아널드는 이민자로 미국 땅에 와서 열심히 노력하여 보디빌딩 챔피언이 되었고, 백만 불짜리 배우가 되었고, 마침내 주지사로서 그의 꿈을 이루었다.

 

 프레임은 추측을 수반하기 때문에 모든 프레임은 각기 다른 뜻을 품고 있다.

 ‘유권자의 반란’ 프레임은 주민 소환을 정당화한다. 이 프레임에 따르면 데이비스는 무능했거나 부패했으며, 유권자들은 이를 정확히 파악했다. 그래서 거기에 분노했고 자발적으로 정당하게 노도처럼 일어나 그를 내쫓아서는, 그 자리에 좀더 능력 있는 사람을 앉혔다. 민주주의는 올바르게 작동했다. 우리는 이 결과에 만족하며 앞으로 모든 것이 전보다 나아질 것이다.

 ‘의사소통의 실패’ 프레임은 유일한 문제점으로 그레이 데이비스가 의사소통에 실패한 것을 내세운다. 그는 능력 있는 주지사이자 책임감 있는 행정가인데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대중은 의사소통을 절실히 원했는데, 그레이 데이비스는 자신의 치적을 전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그를 소환했다는 것이다. 이 프레임은 슈워제네거의 당선이 캘리포니아 외부의, 더 보편적인 요인과는 관계가 없으며, 문제는 단순히 데이비스 개인에게 있었다고 암시한다.

 ‘캘리포니아 괴짜들’ 프레임은 이번 소환이 비이성적이었다고 본다.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영화를 현실과 구분하지 못했다.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이 거대한 주를 다스리며 실타래처럼 엉킨 문제를 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널드는 정치적으로 무능하며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민중이 정치가들에게 본때를 보였다’는 프레임은 슈워제네거 자신이 제시하고자 한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이 나온 맥락에는 그가 민주당이 다수를 점한 주 의회를 다루어야 한다는 문제가 놓여 있다. 이 프레임은 그와 공화당 정치가들을 ‘민중’으로, 민주당을 ‘비열한 정치가들’로 규정하고, ‘민중’이 ‘정치가들’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고 주장한다.

 ‘그냥 유명 인사니까’ 프레임은 이번 선거에서는 정당 정치가 부제했고, 어떤 유명 인사가 나왔어도 당선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내포한다.

 ‘자수성가의 모범’ 프레임은 슈워제네거의 당선을, 주로 아널드 자신의 꾸준한 노력과 야망이 낳은 결실로 본다. 아널드는 주지사가 될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주지사가 된 것이다. 보디빌딩이든, 연기든, 선거 운동이든 그는 언제나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성공할 자격이 있다.

 뉴스거리가 될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거기에는 언제나 프레임이 있으며, 각각의 프레임은 서로 다른 시각을 취한다.

 

 ο 사실과 프레임

 만일 강력하게 확립된 프레임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으면, 사실은 무시되고 프레임은 유지된다.

 ‘유권자의 반란’ 프레임은, 공화당이 지난 수년간 캘리포니아 경제에 타격을 줌으로써 데이비스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려고 노력해 왔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또한 에너지 규제 완화를 시행한 사람은 공화당 주지사인 피트 윌슨이라는 사실을 은폐한다.[캘리포니아 주 당국이 1998년 전력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발전소를 민영화한 후, 2000년 말 천연가스와 전력 가격이 폭등하는 ‘에너지 위기’가 초래되었다. 이는 데이비스 주지사가 소환된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실제로 에너지 위기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이것은 사실, 엔론 등 부시를 지원하는 거대 기업들의 부정한 조작으로 초래된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의 비호를 받았으며 그 임원들을 지명한 사람은 부시다. 부시 행정부는 캘리포니아 주가 기업들의 부정 조작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모른 척했고, 연방 정부로서 해줄 수 있는 어떤 형태의 재정적 지원도 철저히 무시했다. 슈워제네거는 2001년 봄 켄 레이를 비롯한 에너지 회사 대표들과 만났고, 여기서 레이는 규제 철폐를 역설했지만 조작에 가담했다는 의혹은 부인했다. 지금 슈워제네거는 다시금 에너지 규제 철폐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레임은 또한 캘리포니아 주의회의 공화당 의원들이 데이비스에 대한 인상을 흐리려고, 예산 문제와 관련한 합리적 조치에 대해 고의로 협조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또한 소환장을 제출하는 데 드는 비용 –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사람들의 인건비 등 – 의 상당 부분을 부유한 공화당 의원들이 댔으며, 그 서명들 중 일부는 캘리포니아 주 바깥에서 불법으로 받았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그리고 슈워제네거의 선거 운동 진영에 공화당이 막대한 돈과 조직을 댔다는 사실도 무시한다. 이것은 단순한 대중 반란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유권자의 반란’ 프레임은 왜 슈워제네거가 후보로 지명되어야 했는지 설명해 주지 못한다.

 ‘의사소통의 실패’ 프레임에는 상당한 진실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는 또한 공화당 측의 지속적인 노력을 은폐하며, 효과적인 의사소통에 서툰 것은 그레이 데이비스 개인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의 보편적인 문제라는 사실 또한 은폐한다.

 ‘캘리포니아 괴짜들’ 프레임은 여태껏 나온 사실들 중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공화당 진영에서 장기적이고 구조적이고 주의 깊게 반(反)데이비스 운동을 진행한 사실은 이 프레임에서 은폐되어 있다.

 ‘민중이 정치가들에게 본때를 보였다’ 는 프레임은 공화당이 지난 수년 동안 데이비스에게 본대를 보이기 위해 주 재정을 가지고 정치를 희롱해 온 사실을 은폐한다. 또 전 주지사인 피트 윌슨이 이끄는 슈워제네거 선거 운동 진영 또한 ‘비열한 정치가들’이 모인 것은 마찬가지며, 머릿수로 보면 주 의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공화당보다 더 많은 ‘민중’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그냥 유명 인사니까’ 프레임은 여태껏 제시된 정치적 사실들을 모두 무시한다. 또한 왜 ‘그 특정한 유명 인사’가 당선되었는가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토크 쇼 진행자인 제이 리노는 슈워제네거를 지지했다. 리노 또한 유명 인사지만, 그였다면 결코 주지사로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다.

 ‘자수성가의 모범’ 프레임 또한 이에 관련된 모든 정치적 사실을 무시하며, 왜 자수성가한 다른 영화배우들은 선거에 출마하지도 않았고 당선되지도 못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프레임들은 다른 중요한 사실들 또한 은폐한다.

 

 ο ‘도덕의 정치’ 분석

 나는 유권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투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기가 누구이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누구 또는 무엇을 존경하는지를 근거로 투표한다. 물론 일부 유권자들은 자기 이익을 중시하고 그에 따라서 투표하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법칙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이다.

 우리 정치의 핵심에 이상화된 가족 구조의 모델이 –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은유적으로 –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했다.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라는 개념 자체가 국가를 가족으로 보는 은유를 사용한다. 이 은유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무언가(가족)를 근거로 해서 개념화하기 힘든 거대한 사회 집단(국가)에 대한 이해를 구축한 결과이다. 이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자상한 부모’의 가족은, 세상이 비록 위험하고 살기 힘들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좋은 곳이고 더 나아질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가정한다.

 보수주의 세계관은 이와는 사뭇 다른 가족 가치관에 의해 형성된다. ‘엄격한 아버지’ 모델은, 세상은 앞으로도 영원히 위험하고 살기 힘들 것이며, 아이들은 원래 나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선하게 다듬어져야 한다고 가정한다.

 

 ο 우리는 어떻게 투표하는가

 그러나 두 가지 모델 모두를 능동적인 형태로 지니고 있으면서 삶의 특정한 맥락에서 특정한 모델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보수주의자들은 선거에서 이기려면 유권자의 절반 이상에게 – 두려움 등의 수단을 통해 - ‘엄격한 아버지’ 모델이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9ㆍ11 테러는 부시 행정부가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완벽한 메커니즘을 제공해 주었다. 그들은 테러에 대해 끝나지 않는 전쟁을 선포했다. ‘테러에 대한 전쟁’의 프레임은, 사람들이 공포에 질리고, 오렌지 경보 등 행정부의 조치와 각종 수사를 통해 ‘테러’의 프레임이 지속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두려움과 불확실성은 대다수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엄격한 아버지’ 프레임을 작동하고, 따라서 유권자들은 정치를 보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ο 터미네이터 등장

 터미네이터는 극단적인 엄격성을 보여 주는 엄청난 터프 가이이다. 그리고 보디빌딩 세계 챔피언이라는 것은 규율과 훈련으로 추구할 수 있는 극한의 경지이다. 이보다 더 적절한 ‘엄격한 아버지’ 도덕의 전형이 또 있을까? 이것이 제이 리노나 로브 로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아니라 슈워제네거인 이유이다. 그는 엄격한 아버지의 전형을 상기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보수적인 공화당의 가치를 작동할 수 있다. 

 

 ‘결혼’이란 말이 의미하는 것

 보수주의자들은 동성 결혼에 반대하면서, 결혼의 ‘정의(定義, definition)’와 결혼의 ‘신성(神聖, sanctity)함’이라는 두 가지 강력한 개념을 이용했다.

 

 언어는 고정관념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극우들은 ‘게이 결혼(gay marriag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여론 조사를 보면 미국인 대부분은 게이에 대한 차별에 압도적으로 반대하지만, 마찬가지 비율로 ‘게이 결혼’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 이유는 ‘결혼’이란 단어가 ‘섹스’라는 관념을 불러일으키고, 미국인들 대다수는 게이 섹스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결혼에는 이성애적 고정관념이 따른다는 것이다. 우익에게 ‘게이’라는 개념은 거칠고 정상이 아니며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익들이 ‘동성 결혼(same-sex marriage)’ 대신에 ‘게이 결혼’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하는 까닭은 이것이다.

 그러나 ‘게이 결혼’이라는 말은 양날의 칼과 같다. 부시 대통령은 국정 연설에서 ‘게이 결혼’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나는 그가 이 단어를 일부러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시의 입장에 따르면 ‘결혼’이란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 정의될 수 있는 것이기에 ‘게이 결혼’이라는 말은 모순이며, ‘게이 사과’나 ‘게이 전화’라는 말만큼이나 무의미하다. ‘게이 결혼’이란 말이 많이 사용될수록 동성 간의 결혼이라는 개념은 더욱 정상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며, ‘결혼’에 대한 정의는 동성 간 결혼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일부 게이 활동가들은 ‘동성 결혼’은 물론 ‘게이 결혼’이란 말을 서슴지 않고 사용한다.

 

 ‘엄격한 아버지’의 가정에서 결혼이란 이성 결혼이 되어야 한다. 남성적이고 강하고 단호하며 지배적인 아버지는 아들의 역할 모델이며, 딸에게는 장래 남편감의 모델이 된다.

 ‘자상한 부모’ 모델에는 동등한 부모 두 명이 존재하며, 이들은 자녀들을 보살피고 자녀들이 타인을 보살필 수 있도록 가르칠 의무가 있다. 이 모델의 고정관념도 이성애적 가정에 바탕을 두기는 하지만, ‘자상한 부모’ 모델에는 동성 간의 결혼을 배제하는 요소가 없다. 

 

 ‘동성 결혼’ 쟁점은 결혼의 물질적인 혜택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과 핵심적인 가치가 걸린 문제이다. 이것은 단순히 동성 커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어떤 가치가 지배하느냐의 문제이다.

 

 사실 동성 결혼 때문에 진짜로 결혼을 위협받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단지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허락 받을 수 있게 된 것뿐이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엄격한 아버지’의 가족과 더불어 그들의 정치적 가치가 공격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 결합[civil union: 결혼이 허용되지 않는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당국에 신고하면 건강보험이나 연금 등 결혼한 커플이 누리는 혜택을 보장받을 수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실용주의적 리버럴들은 이 쟁점을 – 상속, 건강보험, 입양 등에 대한 – 혜택 문제로 본다. 이러한 혜택만 충족된다면 ‘시민 결합’만으로도 충분하며, 이는 확실히 전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시민 결합’으로 인해 동등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버몬트 주처럼, ‘시민 결합’은 주 정부에서 주관하고, 결혼은 교회에서 주관하면 되지 않는가? 

 이상주의적 진보주의자들은 물질적 혜택도 혜택이지만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한다. 특히 게이 운동가들 대부분은 ‘시민 결합’ 이상의 것을 원한다. 그들은 문화적 의미 – 사랑에 기반한 공적 헌신, 그 모든 은유와 의례, 기쁨과 슬픔, 가족적 경험 – 는 물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정상적인 의미를 모두 갖춘 온전한 결혼을 원한다.

 

 보수적 프레임을 불러일으키는 구절을 계속해서 반복하여 들려주고, 그런 식으로 쟁점을 정의하는 것은 우익이 오랫동안 써먹어 온 전략이다. 이러한 반복을 거치면서 그들의 언어는 정상적인 일상용어가 되며, 그들의 프레임은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사고방식이 된다.

 

 테러의 은유 

 ο 9ㆍ11이후 우리의 두뇌는 물리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날 아침 무역센터를 강타한 참화는 나 또한 강타했다. 빌딩은 은유적으로 사람이다. 우리는 건물의 창문을 눈, 코, 입 같은 얼굴의 요소로 구분해 낸다. 나는 남쪽 빌딩에 내리꽂힌 비행기의 영상이 내 눈에는 마치 사람의 머리를 뚫고 지나가는 탄환처럼 비쳤음을 깨닫는다. 비행기가 뚫고 나올 때 건물의 뒤쪽에서 터진 화염은 사람의 뒤통수에서 뿜어 나오는 피였다. 그것은 살인이었다. 빌딩이 무너지는 것은 사람이 쓰러지는 것과 같았다. 쓰러진 사람들은 나, 내 친척, 친구들이었다. 길거리를 지나치면서 내게 웃음 짓던 낯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다. 그 다음에 덮친 영상은 지옥이었다. 재와 연기와 증기가 올라왔고, 건물은 해골만 남았고, 어둠과 고통과 죽음이 뒤덮었다.

 빌딩을 공격한 사람들은 3000마일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내 머릿속 또한 침투했다. 이 모든 상징들은 내가 깨달을 수 있었던 것보다도 나의 정체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두뇌 자체는 변화를 겪어야 했다. 그 상징들은 내 두뇌의 감정적 핵심부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그 의미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는 고통을 느꼈다.

 나뿐만 아니다. 이 나라의 모든 이들과 다른 나라의 많은 이들이 비슷한 고통을 겪었다. 이 살인은 수천 명을 죽였을 뿐 아니라, 모든 미국인의 두뇌에 침투하여 그 내면을 바꿔 놓았다. 

 이 나라의 2억 국민이 나와 마찬가지로 괴로움을 느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ο 심상의 힘

 빌딩에 대해서는 많은 은유가 있다. 가장 흔한 시각적 은유는 빌딩을 사람의 머리로, 창문을 눈으로 보는 것이다. 이 은유는 우리 머릿속에서 깨어나길 기다리며 잠들어 있다.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의 남쪽 건물을 뚫고 들어간 모습은 이 은유를 작동케 했다. 빌딩은 머리이고 창문은 눈이며, 빌딩 모서리는 관자놀이다. 빌딩을 관통한 비행기는 사람의 머리를 관통하는 총알이고, 빌딩 뒤편에서 쏟아진 화염은 뿜어 나오는 피가 되었다.

 은유적으로, 높은 빌딩은 서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높은 빌딩이 쓰러지는 것은 사람이 쓰러지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러한 은유적인 심상을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 경험한 전율과 공포의 일부를 이루었다.

 우리 모두는 두뇌의 전운동 피질(premotor cortex)에 ‘거울 뉴런(mirror neurons)’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이 뉴런들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점화하는데, 다른 사람이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도 똑같이 점화한다. 두뇌의 이 부분은 감정을 느끼는 핵심부와 연결되어 있는데, 학자들은 이 뉴런 회로를 통해 우리가 타인과 공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 과정을 말 그대로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비행기가 빌딩으로 돌진하는 것을 보면서 그 빌딩 안에 있는 사람들을 상상할 때, 비행기가 마치 나를 향해 돌진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또 빌딩이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그 빌딩이 나를 향해 쓰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과정은 또한 은유적으로도 작동한다. 비행기가 빌딩을 관통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빌딩이 사람의 머리이고, 비행기가 그 정수리를 관통하는 은유를 떠올린다. 그리고 마치 내가 정수리를 맞은 듯한 – 무의식적이지만 강렬한 – 느낌을 받는다. 우리의 은유적 사고 체계는 우리의 ‘거울 뉴런’체계와 상호작용하며 외부 세계의 공포를 은유적 공포감으로 전환한다.

 테러를 보는 또 다른 은유들은 다음과 같다.

 ㆍ통제의 붕괴 :: 탑[타워(tower): 고층 빌딩을 의미하기도 한다.]은 상황을 통제한다. 탑은 모든 것의 꼭대기에 있다. 이것은 언제나 탑을 권력의 상징으로 보는 중요한 근거였다. 이 경우 탑이 붕괴되는 것은 통제와 권력의 붕괴를 의미한다.

 ㆍ남근의 상징 :: 탑은 남근의 힘을 상징하기도 하며, 따라서 ‘무너짐’은 권력이 붕괴하는 것이라는 관념을 강화한다. 또 다른 남근 심상은 더욱 핵심적이다. 화염을 뿜으며 탑을 꿰뚫는 비행기와, 공중에서 보면 여성 성기와 비슷하게 생긴 펜타곤에 미사일처럼 내리꽂히는 비행기가 그렇다. 이러한 남근적 해석은, 이번 공격은 물론이거니와 TV에서 보여 준 영상에 의해 폭행당한 느낌을 받은 여성들이 증언한 내용이다.

 ㆍ사회는 한 건물이다 :: 한 사회는 견고하든 그렇지 않든 ‘기초(foundation)’를 지나며, ‘쓰러지’거나 ‘무너질’수도 있다. 세계무역센터는 우리 사회의 상징이었다. 그것이 쓰러지고 무너졌을 때 느꼈던 위협은 단순히 한 건물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ㆍ서 있다/유지되다 :: 영어에서는 어떤 것이 오랜 시간 유지될 때 은유적으로 ‘서 있다(standing)’고 표현한다. 걸프전 기간 조지 H.W. 부시는 반복해서 “이 전쟁은 ‘서 있지’ 않을 것입니다(This will not stand)”라고 말했는데, 이는 이 상황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세계무역센터는 1만년을 버틸 수 있도록 지어졌다. 그것이 무너졌을 때, 그것은 은유적으로 미국의 힘과 미국 사회가 ‘서 있을[유지될]’ 것인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ㆍ성전(聖殿)으로서의 건물 :: 이 테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심장부에 있는 자본주의 무역의 성전이 파괴되었다.

 ㆍ마음의 착각 :: 맨해튼 하늘가에 대한 심상은 이제 그 균형이 깨졌다. 우리는 무역센터가 있는 스카이라인에 익숙했다. 우리의 마음은 무역센터의 옛 모습을 떠올리는데, 그것이 사라진 풍경을 보면 마치 맨해튼이 가라앉고 있는 것 같은, 불안정한 착각이 일어난다. 맨해튼은 약속의 땅인 미국의 상징이기 때문에, 은유적으로 그 약속이 가라앉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ㆍ지옥 :: 그리고 이제 매일같이 대면해야 하는, 시커멓게 타서 연기를 내뿜는 잔해 – 곧 지옥 – 의 영상이 있다.

 물리적인 폭력은 뉴욕과 워싱턴에만 가해진 것이 아니다. 물리적 변화는 – 폭력적인 방식으로 – 모든 미국인의 머릿속에서도 이루어졌다.

 

 ο 정부는 이 사건을 어떤 프레임으로 해석하는가

 정부가 프레임을 짜고 그것을 고치고 은유를 찾아 헤매는 과정은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그 주된 프레임은 희생자에 대한 범죄로서, 그 범죄자들은 “재판에 회부(brought to justice)”되고 “처벌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범죄’프레임은 법, 법정, 변호사, 재판, 선고, 항소 등의 개념을 수반한다. 그 ‘범죄(crime)’가 ‘전쟁(war)’으로 바뀌고, 여기에 ‘사상자(casualties)’, ‘적(enemies)’, ‘군사행동(military action)’, ‘전력(war powers)’ 같은 개념들이 따라오는 데는 불과 수 시간이면 충분했다.

 물론 적과 사상자는 존재하지만, 적군, 부대, 탱크, 전함, 전투기, 전쟁터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전략적 목표나 명확한 승전도 없다. ‘전쟁’프레임은 들어맞지 않는다. 이 ‘전쟁’에서 이 중 아무것도 제시된 것이 없다. 전쟁의 개념이 들어맞지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필사적으로 은유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ο 보수주의의 우세 

 리버럴과 진보주의자들의 반응은 매우 다르다. 그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복이 아니라 정의’라고 주장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와 신중함이다. 우리가 따라야 할 행동 모델은 폭파범이 아니라 구조 요원과 의사 – 즉 치유자 – 에게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범죄자들에게 정의를 보여 준다고 무고한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지른 –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 대규모 폭격은 우리가 그들보다 우월할 것이 없음을 보여 주었다.

 

 ο 사회ㆍ정치적 조건 : 절망의 문화

 ‘탈레반’이 ‘학생’이라는 뜻임을 기억하자. 이슬람 지도자들의 도움을 확보하려면 그들을 절망으로 밀어 넣는 사회ㆍ정치적 조건을 해결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시작함으로써 그들에게 우리의 선의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적을 악으로 규정하는 보수주의 정부는 테러의 근본적인 원인을 진지하게 숙고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즉자적인 원인만을 쫓아다닌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원인에 손대지 않는 한 테러리스트들은 계속하여 새끼를 칠 것이다. 

 

 ο 대외 정책

 국가 차원의 해답은, 전 지구적 상호 의존을 깨닫고 대외 정책의 초점을 외교, 제휴, 국제기구, 강력한 방어ㆍ평화 유지력에 맞추며 전쟁은 최후 수단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러한 쟁점들은 개별 국가단체의 몫으로 남아 있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자기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지만, 이러한 쟁점들을 대외 정책에서 진지하게 다룰 수 있도록 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걸프전이 끝나고 채 1년이 지나기 전에 CIA는 이라크에서 전쟁과 무역 제재의 영향으로 민간인 약 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보고했다. 이들 중 다수는 식량과 의료 시설을 갖추지 못한데다가 미국이 급수 공장, 병원, 발전소 등을 파괴했기 때문에 이로 야기된 질병과 영양실조로 죽었다. 그리고 그 후 전쟁의 영향으로 선량한 민간인들이 더 많이 죽었다.

 

 변화를 원한다면 스스로 변화가 되어라!

 

 ο 국내 정책

 전쟁 충당금 400억 달러가 어디서 나오는가? 세금을 올려서 만들지 않는다. 부자들이 희생해서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 어디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은, 이제는 활짝 열려 버린 사회보장 ‘금고’이다. 일주일 전에 사회보장 ‘잉여분’에서 400억 달러를 갖다 쓰자는 안이 제기되었다. 이 제안은 변호할 여지가 없어싿. 그런데 이 안이 민주당 상원의원 전부와,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민주당 하원의원 전부가 찬성하는 가운데 통과된 것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의 은퇴 자금이 부시의 ‘전쟁’ 자금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누구도 감히 이런 식으로 말을 꺼내지 못한다. 마치 400억 달러가 그냥 허공에서 떨어진 것처럼, 누구도 이 400억 달러가 내 은퇴 자금에서 나왔다가 말하지 않는다. 누구도 늘어나는 세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최소한 이 돈이 어디서 나는지는 물어 보아야 한다.

- 우리나라에서 복지도

 

 은유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대외 정책의 핵심적 은유는 국가를 사람처럼 보는 것이다. 이 은유는 이라크 국가를 사담 후세인이라는 한 인간으로 개념화하는 말을 통해 하루에도 수백 번씩 사용된다. 우리가 듣는 바에 따르면 이 전쟁은 이라크 민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 한사람을 대상으로 시작된다. 일반 미국 시민들은 “사담은 독재자야. 그를 막아야 해” 같은 말을 하면서 이 은유를 사용한다. 이 은유는 물론 첫 이틀 동안 투하되는 폭탄 3000발이 그 한 사람에게만 쏟아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은폐한다. 그것들은 이 은유 뒤에 은폐되어 있는 수천 명을 죽일 테고, 그 사람들은 (이 은유에 따르면) 우리가 전쟁하는 대상이 아니다.

 

 국제 관계 이론에서는 국가를 사람으로 보는 은유에 ‘합리적인 행위자’ 모델이 더해진다. 이 생각에 따르면 자기 이익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국가는 합리적인 행위자 – 즉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개인 – 처럼 행동한다. 걸프전에 이 은유가 적용되었을 때, 언론에서는 미국이 걸프전에서 ‘자산’ 손실을 거의 입지 않았기 때문에 『뉴욕타임스』경제면에서 표현한 것처럼 우리가 “헐값에 이익을 얻었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국가 ‘자산’에 포함된 것은 군인과 물자와 돈이었다. 이라크 민간인들은 우리 자산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손실’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전쟁이나 경제 제재로 인해 사망한 민간인, 장애를 입은 사람들, 굶주리고 질병에 걸린 어린이의 수에 대해서는 공식 집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가를 사람으로 보는 은유가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경우는 전쟁을 은유적으로 ‘정의로운 전쟁’으로 정당화하려 할 때이다. 이런 시도는 거의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정의로운 전쟁’의 기본 개념은 국가를 사람으로 보는 은유에다, ‘자기 방어’ 이야기와 ‘구출’ 이야기라는 옛날이야기의 두 가지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한다.

 이 각각의 이야기에는 ‘영웅’, ‘범죄’, ‘희생자’, ‘악당’이 등장한다. ‘자기 방어’ 이야기에서는 영웅과 희생자가 동일하다. 두 이야기에서 모두 악당은 타고날 때부터 악당이며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영웅은 악당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악당과 싸워 그를 쳐부순다. 두 이야기에서 모두 희생자는 선량하며 비난받지 않는다. 또 두 경우 모두 악당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며, 영웅은 악당을 쳐부숨으로써 도덕을 바로 세운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을 국가 – 사람으로 대치하면, 자기 방어와 구출 이야기는 ‘영웅 국가’의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형태를 띠게 된다.

 걸프전에서 조지 H.W. 부시는 사담이 “우리의 석유 생명줄을 위협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기 방어’ 이야기를 작동하고자 했지만, 미국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쿠웨이트가 ‘강간’당했다고 역설함으로써 승리의 이야기, 즉 구출 이야기를 시도했다. 이 이야기는 잘 먹혔고, 아직까지 걸프전을 설명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조지 W. 부시는 똑같은 두 이야기를 다른 버전으로 밀어붙였다. 사담 후세인이 알카에다와 한통속임을 믿게 하는데 성공한다면, ‘자기 방어’의 시나리오 또한 먹힐 수 있으며 나아가 ‘정의로운 전쟁’도 통할 수 있다. 만약 배치 준비가 완료된 대량 살상 무기가 발견된다면, ‘자기 방어’ 시나리오는 다른 방식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실제로 명확한 증거가 없음은 물론 세속적인 사담과 근본주의적인 빈 라덴이 서로를 싫어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단순한 주장만으로 미국인의 40퍼센트로 하여금 그 둘의 관계를 믿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정부는 군인들에게 똑같은 믿음을 주입하여 자신들이 나라를 방어하려고 이라크에 갔다고 믿도록 만들었다. ‘구출’ 시나리오에서 희생자는 (1) 이라크 민중과 (2) 사담에게 위협받는 이웃 나라들이다. 실제로 이 전쟁은 이라크 민중의 안전과 복지를 위협하고 있는데 말이다.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것은 진보주의자들이 믿는 흔한 속설이다. 만약 바깥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실들 모두를 대중의 눈앞에 보여준다면, 합리적인 사람들은 모두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헛된 희망이다. 인간의 두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프레임이다. 한번 자리 잡은 프레임은 웬만해서는 내쫓기 힘들다.

 

 클라우제비츠 :: 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중부 독일의 관리 집안에서 태어나 12세 때 군대에 들어갔고, 1801∼1803년 사관학교에서 샤른호르스트에게서 병학(兵學)을 배웠다. 프랑스 혁명에의 간섭전쟁(干涉戰爭) 때는 프로이센군의 사관으로서 활약하였다. 예나의 패전 후에 슈타인의 프로이센 개혁이 시작되자 샤른호르스트를 중심으로 하는 군제개혁자 서클에 가입하였다. 1812년에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프로이센에서 도망쳐서 동지와 함께 러시아군에 투항하여 나폴레옹으로부터의 해방전쟁(解放戰爭)에 진력하였다. 1815년 프로이센왕으로부터 귀국을 허락받고 사관학교 교관과 군사행정관으로 활동하였다. 1818∼1830년 육군대학교장, 1830년 포병감(砲兵監)을 지낸 후 그나이제나우 장군 휘하의 참모장을 역임하고, 콜레라에 걸려 급사(急死)하였다.
그의 사후에 간행된 저서 《전쟁론 Vom Kriege》은 이 시대의 전쟁경험에 기초를 둔 고전적인 전쟁철학으로 불후(不朽)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쟁은 정치적 수단과는 다른 수단으로 계속되는 정치에 불과하다’고 한 유명한 말은 군사지도부에 대한 정치지도부의 우월성을 설파한 것이며, N.레닌 등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Carl von Clausewitz] (두산백과)   

 

 ‘거짓말’이냐, ‘신뢰에 대한 배신’이냐 

 미국은 사담 후세인이 우리를 위협하는 대량 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라크로 갔다. 사담이 알카에다의 미국 공격과 관련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으며, 사담과 알카에다 사이에 어떠한 협력 관계가 존재한다는 증거도 없다. 그럼에도 최근의 『워싱턴포스트』여론 조사에 따르면 70퍼센트에 이르는 미국인 – 그리고 다수 군인들 – 은 이를 믿고 있다.

 2003년 9월 7일 부시 대통령의 연설에서도 같은 뜻을 시사하는 언어를 사용했다. “(우리는) 먼저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 훈련 캠프를 파괴하고, 알카에다를 은신케 한 정권을 제거했습니다. ...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이라크에서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의 과거 정권은 테러를 지원했으며, 대량 살상 무기를 소유하고 사용했습니다. ... 2년 전에 저는 테러에 대한 전쟁은 긴 전쟁,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전쟁이 될 것이며, 여러 곳에서 여러 전선을 맞대고 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라크는 그 핵심 전선입니다.”

 수많은 미국인, 특히 군인과 그 가족들은 이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첫째로 미국을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지키고, 둘째로 이라크를 해방하려고 그곳에 갔다. 이는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타적이고 고귀한 희생이다.’ 이는 물론 틀린 인상이지만, 대통령은 계속해서 이를 만들어 내고 강화하고 있다.

 

 부시는 다른 국가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이라크의 군사적ㆍ정치적ㆍ경제적 미래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기를 거부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미국의 공격과 점령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것은 상당 부분 이 통제 문제 때문이었다. 유럽 등지에서 미국에 분노하는 이유는 이라크 침공 배후에 미국의 이익이 놓여 있다는 광범한 인식에 기인한다. 이라크 경제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통제, 미국의 경제적ㆍ전략적 이익에 부응하는 이라크 정치 재편성, 서아시아에서 미국의 힘을 강화하는 군사적 기반, 세계 제2산유국의 미래에 대한 통제, 미국과 영국 석유 회사의 원유 정제 이윤과 마케팅 이윤 등이 그것이다. 이라크인들은 정제하지 않은 원유만을 팔아서 수익을 낼 수 있으며, 그 수익은 결국 재건 사업을 수주한 핼리버튼 등 미국 기업들에게 다시 흘러들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전쟁은 서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장기적 통제와 미국 기업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해방을 위한 이타적인 전쟁이 아니다. 우리는 미국이 수많은 군인들의 피를 흘리고 수십억 달러를 썼기 때문에 이를 전쟁의 전리품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행정부의 주장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이타심에서 나오는 주장이 아니며, 투자의 관점에 입각한 주장이다. 즉 이 전쟁은 값비싼 투자였으며 미국은 생명과 재산의 투자에 대한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전쟁은 단순한 자기 방어나 이타적 해방 전쟁이라기보다는 이기적인 사업에 가까워진다. 

 

 

 

2.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우익이 원하는 것

 자연적 엘리트(natural elite) :: 미국식 평등관의 기저를 이루는 공화주의 사상에 따르면, 인간은 자질과 능력 면에서 애초에 평등하지 않다. 그래서 사회는 능력에 다라 공익을 위해 일할 천부적 자질을 가진 현명한 소수와 그렇지 않은 다수로 ‘자연 분화(natural differentiation)’된다. 여기서 발생한 엘리트는 지위 세습에 따른 전통적인 ‘인공 귀족’과 구별되는 ‘자연 귀족(natural aristocrat)’이라고 불린다. ‘기회의 평등’은 필연적으로 ‘결과의 불평등’을 낳으며 이는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미국식 평등관의 특징이다.

 

 여피 :: 도시나 그 주변을 기반으로 지적인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이. 젊은 (young), 도시형(urban), 전문직(professional)의 머리글자를 딴 YUP에서 나온 말로서 가난을 모르고 자란 세대 가운데 고등교육을 받은 도시 근교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고수입을 올리는 도시의 젊은 인텔리를 말한다. 처음에는 현대 도시 청년의 풍조를 빈정대는 말로 쓰였지만, 1984년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선풍을 일으킨 하트 상원의원의 지지기반이 청년층이었기 때문에 진보적이고 정치의 개혁을 바라는 새로운 층을 가리키는 말을 뜻하기도 한다. YUP + 히피
[네이버 지식백과] 여피 [YUPPIE] (매일경제, 매경닷컴)

 

 부바[bubba: ‘큰형’이라는 뜻으로 친구 사이에 이름 대신 친근하게 부르는 말인데, 주로 남부의 교육 수준이 낮은 하류층 남성들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 부시는 남부 저소득층 지지자들에게 친근한 인상을 주고자 의도적으로 이러한 심상을 활용했다.]

 

 진보 세력을 결집하는 것

 이해관계자[stakeholder: 주주 외에도 기업 활동의 영향을 받는 소비자, 종업원, 지역사회와 환경까지 포괄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개념]

 

 자주 묻는 질문들(FAQ)

 FAQ :: frequently asked questions

 

 Q. 프레임을 재구성하자는 말은 개념을 조작하자는 말처럼 들린다.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은 여론 조작이나 프로파간다와 어떻게 다른가?

 여론 조작(spin)은 프레임을 조작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뭔가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거나 폭로되었을 때, 거기에 결백한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려는 시도다. 즉 부끄러운 사건을 정상적이거나 좋은 일로 포장하는 것을 말한다. 

 프로파간다는 프레임을 조작적으로 사용하는 또 한 가지 예이다. 프로파간다는 정치적 통제권을 획득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대중으로 하여금 진실이 아닌 프레임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Q. ‘전략적 주도’란 무엇이며, 그것이 일반적인 정책 결정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전략적 주도(strategic initiative)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중 첫 번째에 나는 ‘미끄러운 비탈형’ 주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끄러운 비탈형’ 주도라는 개념은 겉보기에 아주 간단해 보이는 한 걸음을 내 딛음으로써, 그것만으로 내가 의도하는 프레임 전체를 대중의 눈에 들게 하는 것이다. 즉 일단 첫발을 떼면, 두 번째 걸음을 딛는 것은 훨씬 쉬우며, 심지어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분 출산 낙태(partial-birth abortion)’를 생각해 보자. 실제로 이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부분 출산 낙태를 금지한다 해도 사실상 적용할 곳이 없다. 보수주의자들이 이 말을 들고 나온 이유는 낙태가 나쁜 짓이라는 생각을 이끌어 내고 낙태에 대한 최소한의 금지라도 명문화하려는 뜻에서이다. 이렇게 가장 생생하게 와 닿는 쉬운 경우부터 시작해서 낙태 전면 금지에 이르기까지 한 발짝씩 내딛을 초석을 놓는 것이다.

 다른 종류의 전략적 주도도 있다. 동성 결혼의 예를 들어 보자. 동성 결혼은 많은 부분에서 ‘엄격한 아버지’ 모델과 모순된다. 레즈비언 결혼에는 아버지가 없고, 게이 결혼에는 아버지가 둘이지만 둘 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엄격한 아버지’하고는 들어맞지 않는다. 따라서 동성 결혼에 대한 반대는, 보수주의 도덕 체계의 가장 높은 소명인 ‘엄격한 아버지’의 도덕 자체를 강화하고 확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동성 결혼은 ‘엄격한 아버지’라는 도덕의 대체물로서, 그 자체보다 더 큰 쟁점을 불러일으킨다. 그 쟁점이란 주로 이 나라를 지배하는 도덕 체계에 관한 것이다. 

 

 부분출산 낙태 :: 태아의 머리 전체나 몸통 일부분이 산모의 몸 밖으로 나온 상태에서 아기를 지우는 낙태를 뜻하는 것으로 그동안 인간 존엄성 저해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져 왔다. 

 

 Q. 우리의 쟁점을 다시 프레임으로 구성하려면 좀 더 언론에 적합한 용어를 고안해 내서 그것을 보수주의자들이 쓰는 말 대신에 사용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다! 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과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개념(idea)’에 관한 문제이다. 방송 연설 등 언론에서 써먹기 좋게 고안해 낸 용어가 실제로 무슨 역할을 하기 이전에, 먼저 개념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공유 자산(the commons)’이라는 개념을 들어 보자. 이것은 대기나 전자기 스펙트럼(대역폭)과 똑같은 우리 공동의 유산이다. 이것을 우리 인류 모두의 유산이라는 측면에서 논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공유 자산’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공동의 유산이라는 개념과 그것을 공ㅅ공선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직 대부분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프레임 구조의 일부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공유 자산’이라는 개념은 적합한 말로 표현되지 못했고, 대부분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하고 동의하지 못한 것이다.

 

 Q. ‘세금 구제’라는 말은 세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말 아닌가? 나도 진보주의자지만, 세금이 때로는 부담스러운 짐으로 느껴진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프라를 잘 마련해 두면 미래에 우리 모두에게 두고두고 그 혜택이 돌아온다. 도덕적인 이유도 있다. 교육과 건강은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변수이고, 국민의 행복한 삶은 국가의 존재 이유이다. 독립선언문에서 행복 추구권에 대해 언급하고 이를 자유와 연결 지은 데는 이유가 있다. 자유가 없으면 삶의 충족도 없다. 따라서 세금을 투자라고 이해하는 것은 실용적인 이유에서 이치에 맞고, 행복을 추구할 자유가 있는 이 나라에서 세금은 마땅히 치러야 할 회비라고 이해하는 것 역시 도덕적인 이유에서 이치에 맞다.

 

 보수주의자들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상대방의 주장을 부정하는 흔한 실수를 저지르지 마라. 대신에 프레임을 재구성하라. 프레임으로 구성되지 않은 사실은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 단순히 사실을 진술하고 그것이 상대편의 주장과 모순됨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프레임은 사실을 이긴다. 프레임은 유지되고 사실은 튕겨 나간다. 언제나 프레임을 재구성하라.

 

 언제나 가치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라. 되도록 모든 미국인이 공감하는 안보, 번영, 기회, 자유 등의 가치 중에서 내가 이동하고자 하는 프레임에 부합하는 것을 고른다. 가치의 차원에서 논쟁에 이기고자 노력해라. 내 견해가 누구나 지지하는 가치 – 예를 들어 공정성 같은 – 를 구현할 수 있도록 그에게 적합한 프레임을 골라라.

 예] 누가 의료보장 확대에 대해 반대한다고 가정하자.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것은 그 사람들의 잘못이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았거나 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취적이지 못하거나 돈 관리 못한 것을 우리가 대신 부담해 줄 필요는 없다.

 프레임 전환] 의료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는 4000만 명 중 대부분은 사회에 꼭 필요한 직업에 전업으로 종사하고 있지만 그들의 급여로는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노동자들은 우리 인구 중 상위 4분의 3의 생활 방식을 지탱하고 있다. 그 4000만 명이 힘든 일을 대신 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생활 방식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힘든 노동에 대한 대가로서 살만한 생활수준을 약속해 주는 나라이다. 그들은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직업에 종사하는 것으로써 이미 자기 의료비만큼의 구실을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경제는 그 정도를 감당할 여력이 있다. 세액 공제는 그 가장 쉬운 방법이다. 상위 2퍼센트가 이전에 내던 수준으로 세금을 내기만 하면 그들의 의료비는 충분히 부담할 수 있다. 이것은 부자들이 그들이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자 지불하는 요금이며, 부자들의 생활 방식을 지탱해 주는 사람들이 받는 공정한 대가에 불과하다.

 

 상대편이 자기가 말하는 바와 반대의 뜻을 가진 언어 – 오웰식 언어 –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쟁점이 바로 상대방의 약점임을 간파해라. 그가 말하는 바를 정확히 기술하는 언어를 사용하여 우리 방식대로 프레임을 재구성하라. 

 예] 상대편이 ‘건강한 숲 계획(Healthy Forest Initiative)’을 환경에 대한 균형 잡힌 접근법이라고 들고 나왔다고 치자. 이 법안은 사실은 ‘모두 베기[claer-cutting: 일정 지역의 나무를 모조리 베는 것]’를 허용하고 장려하기 때문에 숲과 숲 서식지에 사는 생물에게는 파괴적이며, 따라서 ‘건강한 숲’이 아니라 ‘나무 싹쓸이’라고 고쳐 불러야 한다고 지적하라. 대중은 숲을 사랑하며 모두 베기를 원치 않고, 그런 엉터리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쟁점에 대한 상대편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임을 지적하라. 대부분 사람들은 미국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보존되길 원하지, 파괴되길 원하지 않는다.

 

 상대를 존중하라. 프레임을 재구성함으로써 대응하라. 가치의 차원에서 사고하고 발언하라. 자신이 믿는 바를 말하라.

 

 

 

+. 옮긴이 후기 – 철저히 당파적인, 그러나 재미있고 유용한

 『중앙일보』1면에 “‘양극화 해소’인가, ‘중산층 되살리기’인가“라는 제목으로 청와대와 이 신문의 토론회 기사가 실린 것을 보았다.

 ‘양극화’라는 말은 IMF 시기를 거치면서 정책 담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는데, 최근 1~2년 사이에는 거의 한국 경제가 풀어야 할 숙제이자 화두처럼 통용되고 있다. 이 용어는 대통령의 신년 연설이나 청와대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었고, 한동안 보수/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모든 언론에서 이 말을 그대로 받아 써 왔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보수 진영에서는, ‘양극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의 빈부 격차가 시급한 문제라고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 레이코프의 말을 빌리자면 ‘상대방의 프레임을 작동하기 때문에’ - 자신들의 이해와 배치된다는 사실을 (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깨달은 것 같다. 뒤이어 다른 보수 신문들에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비판적인 칼럼을 실었다. 하지만 이들이 ‘양극화’라는 프레임 자체를 공격하는 데 그쳤다면, 『중앙일보』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중산층 되살리기’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상대편의 프레임을 공격하지 말고 프레임을 재구성하라는 레이코프의 조언을 떠올린다면, 그들은 확실히 올바른 길을 택한 것이다.

 

 촘스키는 인간의 감각 경험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보편적인 통사 법칙이 모든 언어의 기저에 존재하며, 이를 발견하는 것이 언어학의 목적이라는 입장이었던데 반해, 레이코프는 언어가 본질적으로 마음의 작용이며 신체와 감각 기관의 산물이라 주장했다. 

 

 전통적으로 은유는 시 같은 문학 작품에만 쓰이는 특수한 수사법의 하나라고만 여겨져 왔는데, 그는 우리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개념 체계가 본질적으로 은유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말하려면 언제나 무의식적으로 은유의 층을 빌려야 하며, 비은유적인 사고는 순수하게 물질적인 것에 대해 말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를 비롯한 일부 언어에서는 시간에 대해 말할 때 ‘시간을 낭비하다’, ‘시간을 절약하다’, ‘시간을 투자하다’ 등의 표현을 쓰는데 그 근저에는 ‘시간의 돈’이라는 은유적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돈’이라는 구체적인 개념을 빌린 것이다.

 

 그는 사람(유권자)들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이는 온갖 비합리적인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데 특히 유용한 가정인 듯하다.) 그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인데, 하나는 유권자들이 자기의 경제적(계급적) 이익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이 믿음(프레임)과 배치될 때 사람들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음을 고수한다.

 

 ‘양극화’ 프레임과 『중앙일보』의 기사로 돌아가 보자. 이 토론회 기사에서 『중앙일보』측의 주장은 “국민 편 가르지 말고 중산층을 되살려라”라는 소제목으로 압축되어 있다. 여기서 즉각적인 호소력을 갖는 부분은 사실 ‘중산층을 되살려라’가 아니라 ‘국민 편 가르지 말고’라는 구절이다. ‘편 가른다’는 것은 곧 ‘갈등’, ‘분열’, ‘싸움’을 연상케 하며 이는 한국인들에게 자동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갈등과 분열은 나쁜 것’이고, 반대로 ‘화목하고 화합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인 한국인들이 가진 상식이라고 가정하고, 여기에 우리가 국가를 한 가족에 빗대어 이해한다는 레이코프의 가정을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 ‘화목한 가족’이라는 – 한국 국민들은 모두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이며 따라서 서로 화합하고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는 – 잠재적 가치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은유적 가치는, 이를테면 평범한 일부 한국인들이 왜 ‘노사 분규’를 무조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설명해 줄 수 있다.

 

 농경 사회에 기반을 둔 한국인의 전통적인 정세에 따르면, 주변 사람들이 가난한데 혼자서만 많은 부를 소유하는 것은 – 그 축적 과정이 어떠했든 간에 – 나쁜 것이다. 국가가 가족이라는 은유를 다시 끌어들이면, ‘서로 돕는 가족’ - 한국 국민은 모두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이며 따라서 어느 누가 힘들 대 서로 도와야 한다는 – 이라는 가치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이 가치는 이를테면 평균적인 일부 한국인들이 왜 외제차에 대해 비합리적으로까지 보이는 반감을 가지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다. 얼마 전에 삼성 그룹에서 일정한 돈을 ‘무조건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도 사실 매우 한국적인 현상인데, 이를 이러한 은유적 가치에 근거하여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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