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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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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언어
『사물의 언어』는 런던 디자인 뮤지엄 관장인 데얀 수직이 거대해지는 소비 시장에서 우리가 소유하려는 물건과의 관계를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본 책이다. 모든 가정에서 TV를 가지고 있기에 이제는 더 큰 TV 등의 새로운 범주의 제품들이 쏟아지고, 6개월마다 휴대전화를 새 것으로 바꾸는 등 날로 커져가는 소비 시장의 배후에는 ‘디자인’이 있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하여 언어, 원형, 호사, 패션, 예술에서의 디자인의 효과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왜 아이폰을 사기 위해 매장 밖으로 줄을 서고, 계절마다 변화무쌍한 프라다 지갑의 화려한 광고에 열광하며, 폴크스바겐의 골프 GTI를 타고 싶어 안달하는지 등 사물이 가진 언어, 즉 디자인이 어떻게 인간의 욕망을 조작하는지 낱낱이 밝혀낸다.
저자
데얀 수직
출판
홍시
출판일
2012.02.15

 

 

0. 프롤로그

일찍이 세상 사람들이 지금만큼 많은 물건을 소유한 적이 없건만, 우리가 그 소유물들을 사용하는 빈도는 점점 더 줄고 있다. 우리에게 그 물건들은 장난감이다. 그것들을 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끊임없는 압박감에 대한 위안이자, 그것들을 손에 넣고자 하는 우리를 유아로 퇴행시키는 장난감. 돈을 쓰는 일은 우리에게 이타주의의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사치가 아니라 가족을 위한 투자라는 믿음이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여주는 것이다.

 

맥도날드는 세상에서 가장 큰 장난감 유통업체가 되었고, 그 장난감들 거의 대부분은 영화와 관련된 브랜드 상품들이다.

 

텔레비전을 구매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가정이 언제든 정말로 다 구매했다면, 그 시점에 텔레비전 제조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새로운 범주를 발명해냄으로써 텔레비전을 소유한 사람들이 예전 텔레비전을 새것으로 교체하도록 설득하는 것뿐이다. 간이 터질 듯 부풀어 푸아그라가 될 때까지 강제로 곡물을 주입받는 거위들. 우리는 그 거위들을 닮은, 소비하기 위해 태어난 세대다.

 

홍보는 이 ‘자본주의‘ 문화의 생명(홍보 없이는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에서)이며 동시에 자본주의의 꿈이다. 자본주의는 그 착취 대상인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관심사를 가능한 한 세밀하게 정의하도록 강요한다. 한때 이는 극도의 결핍에 의해 달성되었다. 오늘날 선진국들은 욕망할 만한 것과 욕망할 가치가 없는 것에 관한 잘못된 기준을 부과해서 그것을 달성하고 있다.

존 버거(John Berger), 『바라보기의 방식』(1972)

 

보티첼리 ::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의 화가. 자연연구에 대한 소박한 정열을 보였고, 미묘한 곡선과 감상적인 시정(詩情)에 일찍부터 독자적인 성격이 나타나 있다. 고전(古典) 부흥의 분위기와 신(新)플라톤주의의 정신에 접하고 엄격한 리얼리즘의 일시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점차 사실(寫實)을 무시하고, 양식화된 표현과 곡선의 묘미를 구사해 장식적 구도 속에 시적 세계를 표현하는 독자적인 화경(畵境)을 열고 그 후 차차 신비적인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산드로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두산백과)

 

- 대표작 :: 비너스의 탄생

 

알레고리 :: 우의(寓意), 풍유(諷諭)의 뜻. 다른 것을 말한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알레고리아(allegoria)’에서 유래된 말로 추상적, 금기적, 종교적인 개념이나 사상을 비유적이고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암시하는 표현 방식을 말한다. 7가지 선덕이나 악덕을 의인화하여 표현하거나 로맨틱한 사랑을 비너스로, 정의를 무장한 여신 미네르바로, 올리브 나뭇가지로 평화를 대신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구체적 대상을 이용하여 추상적 개념을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상징적 표현이라 하겠으나, 상징보다는 복잡하고 다양하며 시각적으로 실재하는 형태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알레고리 [allegory] (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장 보드리야르 ::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회 이론가로 이름을 떨쳤던 보드리야르는 1929년 프랑스 서부 랭스에서 태어나 한때 고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그후 파리 10대학에서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하면서 『사물의 체계』(1968)에서 『불가능한 교환』(1999)에 이르기까지 30년 동안 20여 권의 저서를 발표했다. 그의 독창적인 '시뮐라시옹' 이론은 대중생산과 대중매체, 인터넷과 사이버 문화의 시대를 해석하는 탁월한 이론 틀로 받아들여져 197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문화이론과 철학, 미디어, 예술이론 등에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 마르크시즘에서 출발했으나 생산보다 소비에 중점을 둠으로써 마르크시즘의 교조성을 극복하고 현대사회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그의 논의는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소비사회로의 진입 등 시대 상황과 맞물려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 보드리야르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데우스 엑스 마키나 :: 고대 그리스극에서 자주 사용하던 극작술(劇作術).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이를 결말로 이끌어가는 수법이다. 라틴어로 ‘기계에 의한 신(神)’ 또는 ‘기계장치의 신’을 의미하며, 무대 측면에 설치한 일종의 기중기(起重機) 또는 그 변형으로 보이는 시올로가이온(theologeion:theologium)을 움직여서 여기에 탄 신이 나타나도록 연출한다 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데우스엑스마키나 [deus ex machina] (두산백과)

 

 

 

1. 언어

프리츠커 상 :: 매년 인류와 환경에 중요한 공헌을 한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상.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건축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이다. 하얏트호텔 체인을 소유한 하얏트재단 전 회장인 제이 A. 프리츠커 부부가 1979년에 제정하였다. 오스카 니마이어, 루이스 바라간, 프랭크 O. 게리, 알바로 시자, 페터 줌토, 렘 쿨하스, 안도 다다오 등 세계 유명 건축가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2013년 현재까지 한국 수상자는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리츠커상 [Pritzker Architectural Prize]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명민한 이해력을 지닌 애플의 디자이너들은 처음 컴퓨터를 켜는 일을 전원 스위치를 찾기만 하면 되는 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이전 모델들을 시각적으로 진부하게 보이게 하는 일에도 유능한 기술을 터득했다.

 

애플은 빌 게이츠의 소프트웨어와 중국산 하드웨어가 장악한 세상에서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디자인을 미끼로 해 자신들의 제품을 경쟁사들이 판매하는 물건들에 대한 욕심나는 대안으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더 적은 수의 물건을 팔 거라고 예상되지만 대신 더 높은 값을 매기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속적인 유혹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이 2년에 한 번씩 쓰던 제품을 내던져버릴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갈망을 한껏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다.

 

“상품은 자동차나 안전면도날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상품과, 치약이나 소다 비스킷처럼 소비하는 상품의 두 부류로 나뉜다. 소비자 공학은 현재 우리가 단순히 사용만 하고 있는 종류의 상품들을 소비하는 상품으로 바꾸어야 한다.”

어니스트 엘모 컬킨스(광고업자) 『소비자 공학 : 번영을 위한 새로운 기술』(1932)

 

폴리카보네이트 :: 분자 주사슬 속에 탄산에스터 결합을 되풀이하여 가진 고분자의 총칭이다. 실용화된 것으로 비스페놀 A의 폴리탄산에스터가 유명한데, 미국 아폴로계획에서 비행사의 우주모(宇宙帽)에도 사용되었다.

폴리카보네이트라고도 한다. 실용화된 열가소성 수지는 비스페놀 A의 폴리탄산에스터이다. 투명하고 뛰어난 기계적 성질(특히 내충격성)·내열성·내한성·전기적 성질을 균형 있게 갖추고, 무독하고 자기소화성(自己消火性)도 있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다. 미국 아폴로계획에서 월면활동을 실시한 비행사의 우주모(宇宙帽)에도 사용되었다. 1956년 독일의 슈넬이 처음 합성한 것으로, 1958년 바이엘(Bayer AG)로부터 필름과 성형재료가 발매되었다. 이어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nereal Electric Company)을 비롯하여 각국에서 공업화되었다.

분자량은 2만 수천 이상이다. 각종 스위치·헤어드라이어·선풍기 부품 등의 전기부품, 각종 팬·헬멧·카메라보디·소화기 커버 등의 기계부품에 사용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폴리탄산에스터 [polycarbonate, -炭酸-] (두산백과)

 

그들(애플)은 화면에 미리 설치된 디지털카메라를 감춰두는 인상적인 일을 해냈다. 그것은 온라인에서 회원가입을 할 경우 갑자기 우리 자신의 모습을 화면에 띄움으로써 눈이 휘둥그레지는 마술 같은 묘기를 보여준다.

 

바우하우스 :: 1919년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가 미술학교와 공예학교를 병합하여 설립하였다. '바우하우스(Bauhaus)'라는 이름은 독일어로 '집을 짓는다'는 뜻의 하우스바우(Hausbau)를 도치시킨 것이다. 주된 이념은 건축을 주축으로 삼고 예술과 기술을 종합하려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공예학교 성격을 띠다가 1923년에 이르러서야 예술과 기술의 통일이라는 연구성과를 평가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로피우스와 이텐 사이에 대립이 생겨 이텐이 바우하우스를 떠난 뒤에는 모호이너지(Laszlo Moholy-Nagy)가 후임으로 참가하였다.

이 때부터 비로소 교육방침이 정착되어 바우하우스의 특색으로 자리잡았는데, 교육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예비과정에서 반년간 기초 조형훈련을 받고 토목·목석조각·금속·도자기·벽화·글라스그림·직물·인쇄의 각 공방으로 진급한다. 거기서 형태교사에게 조형 이념을 배우면서 공작교사에게 실제적인 기술을 배워 익히는 것이다.

그러나 바우하우스의 이념은 이후 독일보다는 오히려 미국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이는 설립자 그로피우스가 하버드대학교 건축부장으로, 마지막 교장이었던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일리노이공과대학 건축학부장으로 각각 부임하고, 모호이너지가 시카고에 뉴바우하우스를 개설한 데 힘입은 바 크다. 즉 이들로 인해 미국 동부에서는 하버드대학교를 중심으로, 중부에서는 일리노이공과대학을 중심으로 건축의 양대 산맥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바우하우스는 1933년에 완전히 폐쇄되기는 했지만, 이곳에서 제작한 제품들은 많은 곳에서 모방되었다. 또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물건들을 단순하고 편리하게 설계하는 방법 역시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교수법과 교육이념 역시 세계 곳곳에 널리 보급되어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예술 교육과정에 포함될 만큼 현대 조형예술 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우하우스 [Bauhaus] (두산백과)

 

나무에는 일관성이 있다. 전체적인 윤곽선과 잎의 모양과 나이테, 그리고 뿌리의 형태까지 모두 동일한 DNA가 만들어낸 것이고, 그 모두가 동일한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이 만든 물건들도 어느 수준에선가 그러한 통일성을 반영하거나 흉내 내기를 기대하고, 그런 것이 발견되지 않으면 실망한다.

 

발포수지 :: 발포수지란 발포성 폴리스틸렌(Expandable Polystyrene.EPS)수지의 줄임말. 발포수지 성형제품은 전기. 전자 제품 등의 포장재는 물론 건축 단열재 등으로 사용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발포수지 (매일경제, 매경닷컴)

 

수십 년 동안 우리 곁에 머문 소유물들은 지나온 시간에 얽힌 우리의 경험들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지금 우리가 새로운 소유물과 맺는 관계는 무척이나 공허하다. 제품들의 매력은 물리적 접촉 후에는 남아나지 못할 외양을 토대로 만들어지고 판매된다. 유혹의 꽃이 시드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에 대한 열정은 거의 구매가 완료됨과 동시에 사그라지고 만다. 욕망은 그 물건이 헌 것이 되기 훨씬 전에 희미하게 지워진다. 제품 디자인은 이제 일종의 성형수술 같은 것, 잠시 동안 미모의 환상을 만들기 위해 이마의 주름살을 감춰주는 보톡스 주사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스위스의 어느 시계 회사는 사람들의 정서를 조종하는 효과적인 광고를 냈다. 그 광고가 주장하는 바는 우리가 결코 그들의 제품을 실제로 소유하지는 못하며, 단지 다음 세대를 위해 그 시계를 맡아 돌볼 뿐이라는 것이다.

 

해가 가고 또 가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는 쓸모없는 물건일지언정 그것을 버리는 일은 어떤 면으로든 삶의 한 부분을 버리는 일이다. 그러나 쓰지도 않으면서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은 장롱 문을 열 때마다 소리 없는 질책을 당하는 일이다. 한 벽면 가득 꽂혀 있는 읽지 않은 책들도 그와 똑같은 비난을 쏟아낸다. 그리고 일단 읽고 나면 처음에는 나지막이, 그러나 점점 더 집요하게 물어온다. 과연 한 번이라도 다시 읽을 일이 있겠느냐고.

 

우리는 물건들을 수단으로 우리 삶의 경과를 측정한다. 물건들을 사용해 우리 자신을 규정하고,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또 어떤 존재가 아닌지 표현한다. 때로는 보석류가 이 역할을 맡고, 때로는 집 안에서 사용하는 가구나 지니고 다니는 개인 소지품, 또는 입은 옷이 이런 역할을 한다.

그리고 디자인은 그러한 물건들의 형태를 만들고, 그 물건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만드는 언어가 되었다. 오늘날 가장 세련된 디자이너 역할은 형식적이고 기능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스토리텔러가 되어서 디자인이 그러한 메시지들을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18세기 말엽의 산업 시스템 발전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디자인이 하나의 독립적인 활동으로 등장하였다.

 

모리스는 기계시대를 혐오했고 수공예의 전통을 되살리는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반면 로위는 언젠가 판매 곡선을 최적화하겠다고 공언했다.

모리스에게는 자신이 노동의 기쁨이라 여긴 것이 의미 있는 일상적 소유물들을 창조하는 일에서 핵심이었다. 그는 빅토리아시대 전성기의 ‘생기 없고’기계적으로 적용된 장식을 제거하고, 중세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미래를 위한 지표를 세우는 단순하고 솔직한 형태들로 대체하기를 원했다. 그는 수정궁으로 대표되는 세계관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라파엘 전파의 향수로의 낭만적인 후퇴를 제시했다.

모리스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직물과 벽지의 아름다운 무늬들을 디자인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레이먼드 로위가 원했던 것은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포장지의 색깔을 바꿈으로써 그 담배가 더 많이 팔리도록 돕는 일뿐이었다. 그는 보다 번드르르하고 유들유들한 디자인을 제시했다. 오늘날 로위의 전철을 밟고 있는 사람으로는 필리프 스타르크(Philippe Starck)를 꼽을 수 있다. 오늘날 디자이너들 중에서 자기 서명을 더하는 것만으로 이름 없는 가전제품을 전혀 다른 물건으로 탈바꿈시키는 능력을 지닌, 유명인사로서의 디자이너를 그보다 잘 대표하는 이는 없다.

 

윌리엄 모리스 :: 영국 출신의 화가이자 공예가(工藝家), 건축가, 시인, 정치가, 사회운동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진정한 노동의 즐거움을 예찬하였다. 처음으로 ‘장식예술’이라는 강연을 하고, 또 고대건축보존협회를 설립하는 등 사회 활동도 벌였다. 시(詩) 작품에는《제이슨의 생애와 죽음》,《지상의 낙원》등이 있다. 그의 일 자체가 새로운 공예의 길을 개척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1880년대에 들어 모리스의 영향으로 각종 공예디자인 조직이 형성되어, 근대 디자인 운동의 발단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이 움직임을 ‘아츠 앤드 크라프츠 운동’이라고 하며 그가 설립한 모리스 디자인회사는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윌리엄 모리스 [William Morris] (두산백과)

 

레이먼드 로위 :: 파리 출생. 파리대학 공학부를 졸업하고 1916년 미국으로 건너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하였다. 1919년 미국의 《보그》지(誌)의 의상삽화가로 일하였고, 1929년 산업 디자인 사무소인 '로위 디자인'를 열고 여러 분야의 디자인에 손을 대었다. ‘유선형’ 형태의 디자인을 도입하였으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코카콜라병의 디자인이다. 그 밖의 주요작품으로 펜실베이니아 철도의 유선형 기관차(1937), 담배 ‘럭키 스트라이크’의 포장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레이먼드 로위 [Raymond Loewy] (두산백과)

 

필립 스탁 :: 프랑스 태생의 산업 디자이너.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적 발상과 표현력으로 현대 문화를 선도해 나가는 디자이너 중 한사람이다. 품격을 잃지 않는 유머러스함과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예리함으로 디자인에 무한한 깊이를 만드는 것이 그의 디자인의 매력이다. 때로는 파격적이고 때로는 에로틱하며, 대중적이고 감성적인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디자인은 '스탁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새로운 단어까지 탄생시킬 정도로 디자인의 전 영역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우리의 삶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 종로타워 꼭대기의 '탑 클라우드(Top Claud)'에서 그의 디자인을 만나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필립 스탁 [Philippe Starck] (두산백과)

 

유틸리티 가구 ::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전후 영국에서 원자재 부족과 소비재 배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가구들을 말한다. 1942년에 도입된 유틸리티 가구 운영 계획은 전후의 내핍 생활로 이어져 1952년까지 지속되었다.

 

마호가니 :: 열대 아메리카 산의 상록수. 적색을 띤 목질로서 고급 가구재임. 남양 열대산의 단향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 전건비중은 0.81, 높이는 약 30m, 직경은 약 1m이고, 잎은 우상복엽이며, 꽃이 녹색이고 삭과를 맺음. 재질이 치밀하고 아름다운 무늬가 있으며 짙은 적색 혹은 적갈색이며 내수성이 강한 목재로 장식용ㆍ가구재ㆍ조선공업ㆍ베니어 등에 널리 쓰임. 학명은 swietenia mahogani

[네이버 지식백과] 마호가니 [mahogany] (인테리어 용어사전, 2006.10.10., 동방디자인)

 

아르데코 :: 유럽과 미국에서 1920~1930년대에 유행했던 미술 양식. 장식미술을 의미하는 명칭으로, 1925년 파리의 <현대장식 산업미술국제박람회Exposition des Arts Decoratifs>의 약칭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때문에 ‘1925년 양식’이라고도 불린다. 아르 데코는 191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서구 여러 나라에서 꽃피웠던, 후기 아르 누보에서 바우하우스적 디자인이 확립되기 전까지의 중간적인 장식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주로 비엔나 공방, 입체주의, 러시아 발레단, 미국 인디언의 미술 등에서 착상을 얻었으며, 유동적인 곡선을 애용했던 아르 누보와는 대조적으로 직선, 기본적인 형태의 반복, 동심원 등 기하학적인 문양을 선호하였다. 처음에는 상아나 옥 등과 같은 값비싼 재료들을 사용하면서 수공예 중심의 일품(一品) 제작 전통으로 복귀하려는 경향을 띠었으나, 부분적으로는 경제공황의 영향을 받아 대량생산이 가능한 경제적인 재료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르 데코 [Art Deco] (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스타르크에게는 확실히 말을 다루는 특유의 방식이 있다. “이언 슈레거나 내게 뉴욕에서 100달러로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호텔방을 디자인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 일에 흠뻑 빠졌다. 뉴욕에서 100달러로 하루를 보내려면 대개는 쥐들과 함께 잘 수밖에 없다.” 홍콩의 페닌술라 호텔 최상층 레스토랑의 화장실을 디자인하면서 카오룽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통유리 앞에서 소변기를 설치할 수 있는 사람이니, 재미난 일만 할 수 있다면 자신을 먹여 살리는 사람의 손도 기꺼이 깨물 준비가 되어 있을 터이다.

 

궁극적으로 따져보면 스타르크가 지닌 비결은 딱 하나인데, 그게 좀 괜찮다. 그 비결이란 바로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보는 시선이다. 그가 아프릴리아를 위해 디자인한, 그의 표현으로 “진짜 통물처럼 빨간 귀와 축 늘어진 코가 달린” 오토바이는 귀여워 보일지는 몰라도 잘 팔리지는 않는다.

 

칩보드 :: 재활용한 목재나 종이를 압축하여 만든 판지.

 

디자인을 바라보는 또 한 가지 관점은 스타르크가 대표하는 관점과는 상극을 이룬다. 그것은 디자인이 일종의 내적인 진실과 의미를 추구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최근에 이 관점을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바로 디터 람스(Dieter Rams)다. 월리엄 모리스가 그랬듯이 람스 역시 디자인의 도덕적 목적에 대한 의식에 따라 움직이지만, 모리스와는 달리 기계시대에 반감을 품지는 않는다.

람스는 시각적인 과잉을 피함으로써 유행을 무색하게 만들고 시간의 흐름을 극복할 수 있는 완벽한 물건을 디자인하는 일에 어마어마한 노력과 끈기를 쏟았다. 그가 꿈꾸는 물건은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 시간을 초월하고, 그럼으로써 까다로움보다는 지적인 엄격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디터 람스의 브라운 제품 디자인에서 드러나는 엄격함은 조너선 아이브가 디자인한 애플 제품들의 외양에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람스가 영원히 지속되는 물건을 디자인하기를 원했던 반면, 최초의 아이폰은 여섯 달만에 다음 버전에 밀려났다.

 

애플이 아이팟과 맥북을 만들 수 있게 해준 물리학자들과 프로그래머들과 공학자들도, 조너선 아이브가 없었다면 결코 그만큼 상업적 매력을 지닌 제품은 생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출성형 :: 플라스틱의 성형가공법으로 열가소성수지를 성형하는 방법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매우 작은 것부터 무게 10kg에 이르는 큰 것까지 성형할 수 있으며, 반복해서 사출하여 대량생산을 할 수 있으므로 작업능률이 높다.

스타이렌수지나 폴리염화비닐이면 약 170℃, 폴리프로필렌이면 약 200℃로 재료에 따라 알맞게 가열하여 플라스틱을 용융상태로 만든다. 이것을 피스톤으로 투입구를 통해서 금형(金型) 속으로 사출한다. 금형의 구석까지 흘러 들어가면 피스톤은 오른쪽으로 되돌아오고, 금형은 두 짝으로 갈라져서, 금형 속에서 굳은 플라스틱을 밖으로 꺼내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출성형 [injection molding, 射出成形] (두산백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상당히 여러 가지 물건들이 한 가지 물건으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예전에 전화기라는 물건은 독자적인 범주로서, 그와는 전혀 다른 카메라라는 범주와 별개로 병존했었다. 프린터도 복사기나 팩스기와는 다른 물건이었다. 이제는 전화기와 카메라에 MP3 플레이어, 라디오와 전자우편이 모두 하나의 물건 속에 녹아들었고, 프린터와 복사기와 팩스기도 하나의 기계가 되었다.

동시에 서구에서 저비용 생산업이 침체된 것도 디자인 과정의 성격을 바꿔놓았다. 한 산업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자전거나 시계를 ‘디자인하라’고 요청한다면, 그 과정에는 아마도 중국으로 가서 수많은 다양한 부품들 중에서 선택하는 과정이 포함될 것이다. 그런 다음 독특한 개성이 표현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부품들을 조립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디자인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지만, 그것은 공학 기술하고만 관련된 것도 아니고 원래 구성 부분들의 디자인에 관한 문제만도 아니다.

 

디자이너에게 맡겨지는 것은 표면과 외양과 미묘한 의미론적 뉘앙스이며, 우리는 바로 이런 것들을 통해서 그 물건이 자신에 관해 들려주려 하는 말을 해석하거나 이해하게 된다. 그 메시지들은 그 물건이 어떤 일을 하며,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부터 스위치를 켜는 방법까지 다양하다. 결코 사소한 것이라 볼 수 없는 이런 메시지들이 바로 디자이너를 스토리텔러로 만든다. 디자인이 언어라는 것은 분명히 맞는 말이지만, 들려줄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만이 그 언어를 유창하고 효과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관한 여러 겹의 정의들을 모두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의 서명이 실제 프로젝트에 직접적으로 유용한 요소들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한때 별 특색도 없고 보잘것없었지만 유용했던 디자인이 디자이너의 이름 하나로 주목받는 일은 너무나 흔해졌다.

 

물건들이 실용적인 것을 넘어선 무엇을 의미한다는 전제가 의심스러운가? 그렇다면 활자체(typeface)의 형태를 결정하고 개성을 부여하는 세세한 뉘앙스들로부터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가독성을 훨씬 넘어서는 정서적인 내용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그것이 ‘얼굴(face)’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활자체에는 사람의 얼굴처럼 성격과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

신문 표제에 고딕체가 아닌 헬베티카체를 사용했을 때 전달되는 메시지와, 전혀 반대되는 이 두 폰트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차이를 비교해 보자. 한 글자의 모양과 형태에는 강세를 나타내는 모든 특징이 담겨 있다.

 

할베티카 :: 스위스의 막스 미딩거(Max Miedinger)가 1957년 디자인한 산세리프 글자꼴로서, 원래 이름은 뉴 하스 그로테스크(New Hass Grotesque)이다. 산세리프체는 19세기부터 사용되기는 했으나 20세기에 들어서야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며, 특히 인기있었던 헬베티카는 대중의 수요에 힘입어 여러 활자 제조사들이 끊임없이 응용 글자꼴을 개발해 사진 식자회사에 제공했기 때문에 유니버스와 같은 통일된 활자 가족을 갖지 않고 명칭도 다양하다. 헬베티카는 상대적으로 굵은 획과 가는 획의 차이가 없고, 획의 굵기가 시각적으로 동일하게 조정된 산세리프체의 대표라고 할 수 있으며, 엑스하이트가 높아 시각적으로 안정되어있고, 완벽한 비례는 가독성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헬베티카 [Helvetica]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12.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타이포그래피 :: 활판술. 활자 서체의 배열을 말하는데 특히 문자 또는 활판적 기호를 중심으로 한 2차원적 표현을 칭한다. 뜻이 바뀌어 사진까지도 첨가하여 구성적인 그래픽 디자인 전체를 가리키고 일반의 디자인과 동의어 같이 쓰이는 일도 있다. 서양의 활판술 발명 이전의 양식을 지금도 계승하고 있으나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 타이포그래피는 구성주의적인 창작에 의하여 옛 형태를 타파하고, 점차 기능적인 표현을 행하여 디자인의 한 분야가 되었다. 한편 조본(造本)을 중심으로 하는 고전적인 기법과 유기적 ∙ 유동적인 아메리칸 타이포그래피 등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타이포그래피 [typography]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미국의 국내 고속도로 표지판에는 고속도로용 서체인 ‘인터스테이트(Interstate)’체로 대문자와 소문자를 섞어서 굵고 분명히 알아 볼 수 있게 지명을 표시하는데, 그렇게 하는 데는 실용적으로 분명한 목적이 있다. 비가 내릴 때 시속 70마일로 달리면서도,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어디로 꺾어야 하는지 분명히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스테이트체는 그 외의 다른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이를테면 그 폰트만 보면 단어 하나 읽지 않고서도 자신이 고속도로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영국이 아니라 미굮의 고속도로에 있다는 사실도.

 

안드레아 팔라디오 :: 1508~1580년. 베네치아 공화국의 건축가. ‘비첸차 시와 베네토 주의 팔라디오 빌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그래픽 디자인이 언어가 될 수 있다면, 모양을 만들거나 형태를 부여하는 다른 형식들도 언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트로엥 :: 시트로엥은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업체로, PSA 푸조 시트로엥의 자회사이다.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서 자동차를 대량 생산한 첫 번째 기업이다. 1919년 설립돼 8년이 지난 후 유럽에서 가장 큰 자동차업체로 성장하였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고급 자동차 브랜드이며, 파격적인 디자인과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였다. C3, C4 피카소, C5 등이 유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트로엥 [Citroen] (기업사전, 2011.8.5., 굿모닝미디어)

 

한때는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이전에 자동차를 디자인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상황에서 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 디자이너들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새로운 재규어나 새로운 미니 또는 골프를 만들면서도 휠아치부터 문손잡이까지 모든 혈통적 특징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20세기 역사를 돌아볼 때, 자동차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08년에 출시되어 20년 동안 생산된 포드의 ‘모델 T’가 나온 일이었다고 말해도 별다른 이견은 없을 것이다.

 

모델 T :: 포드가 만든 세계 최초의 대량생산 자동차. 1920년대 미국의 도로는 포드 모델T로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8년 발표 당시 가격은 850달러, 1925년에는 250달러까지 가격을 내렸다. 모델T의 저렴한 가격과 내구성, 정비가 쉬운 단순한 엔진 구조는 자동차를 부의 상징이 아니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이동 수단으로 만들었다. 모델T와 함께 자동차 시대가 열린 것이다. 첫 해에 6,870대, 다음 해에는 1만 대, 1927년 생산이 종료될 때까지 총 1천 5백만 대가 팔렸다.

가격이 저렴할 수 있었던 것은 포드가 도입한 새로운 생산 방식 때문이었다. 포드는 1910년부터 생산 라인에 컨베이어벨트를 도입해 생산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직렬 4기통 2,9 리터(ℓ) 엔진, 20마력, 최고 속도 68km/h의 성능을 가진 모델T는 시동을 걸기 어렵고 좌석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었고, 생산비 절감을 위해 1914~1915년 사이에는 검정색만 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에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포드 모델 T [Ford Model T] (두산백과)

 

무드 보드 (mood board) :: 디자인 콘셉트를 구상할 때 이미지와 색상, 텍스트, 재료 샘플 등 다양한 요소들을 배열해보고 서로 어울리는 적합한 요소를 찾아내는 데 사용하는 일종의 포스터.

 

느와르 :: 범죄와 폭력세계의 삶을 다룬 영화

 

누아르(noir)는 '검은'이라는 의미를 지닌 프랑스어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 소개된 할리우드 영화들 중에서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B급 영화이자 어두운 분위기의 범죄ㆍ스릴러물들을 필름 누아르라고 불렀다. 1940~50년대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 범죄와 폭력을 다룬 영화들에 대해 프랑스의 까이에 드 시네마의 비평가들이 붙인 이름에서 시작된 필름 누아르는 음산한 톤과 어둡고 우울한 느낌의 영상이 특징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전후의 환멸감,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의 등장,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영향, 독일 영화인들의 망명으로 인한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 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필름 누아르 [film noir]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디자인을 이렇게 바라보는 것이 정말로 흥미진진한 것은, 물건들에는 기능과 용도라는 빤한 주제 말고도 이해해볼 뭔가가 담겨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건들이 어떤 기능을 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는 것 못지않게, 그 물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색하면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디자인은 한 사회가 그 목적과 가치를 반영하는 물건들을 창조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다. 조작적이고 냉소적인 방식으로 쓰일 수도 있고 창조적이고 목적에 맞게 쓰일 수도 있다. 디자인은 가치를 결정하는, 혹은 가치를 표시하는 일을 돕는 언어다.

 

에토레 소트사스와 페리 킹은 타자기의 정체성을 진지한 사무용품에서 갖고 싶은 소비재로 탈바꿈시켰고, 조너선 아이브는 바로 이런 요령을 배워 애플에서 활용했다.

 

디자인의 언어는 물건의 성별을 암시하는 역할도 하는데, 이런 경우 주로 색채와 형태와 크기와 시각적 참조라는 가장 명백한 수단을 사용한다. 디자인에는 진품의 느낌도 반영되지만, 그와 정반대인 조작된 느낌, 즉 이익에 눈먼 판매술도 반영된다. 또한 디자인은 계급제도에서 계층을 구분하는 표지들을 나타내고 강화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한편 디자인은 집단적이든 개인적이든 시민의 정체성에 대한 자의식을 만드는 수단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국가의 상징과 기업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디자인이다. 디자인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정의들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대단히 중요하며 항상 흥미로운 점들을 드러내는 주제가 된다.

물론 디자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를테면 ‘왜’그런지도 중요하다. ‘어떻게’를 고민하는 것도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를 이해하는 데 똑같이 효과적인 방법이다.

 

디자인에는 또 다른 종류의 울림도 있다. 좋은 디자인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기쁨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최초의 노트북이나 최초의 일안반사식 카메라 또는 최초의 휴대전화를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먼저 노트북이, 카메라가, 또는 전화가 어떤 물건이어야 하는지부터 규정해야 했다. 그 뒤로 이어진 것들은 모두 그 주제에 대한 변주들이었다. 때로 그 의사소통은 보다 정서적인 성격을 띤다. 귀중한 재료로 만든 물건은 그 자체로, 가치가 덜한 재료로 만든 것보다 더 중요한 물건임을 암시한다.

디자인이라는 언어도 여느 다른 언어들만큼 급속하게 진화하고 변화한다. 그것은 미묘하고 지혜롭게도, 서투르고 진부하게도 다루어질 수 있다. 어쨌든 그것은 인간이 만든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다.

 

 

 

2. 원형

휴대전화는 6개월마다 새로운 모델에 밀려나고 캐논의 신제품 카메라 개발 주기는 2년이 채 안 된다. 새로운 자동차가 5년 이상 그 매력을 유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미 대대적인 외장 개조에 들어간다. 64년이라는 기록적인 세월 동안 꾸준히 생산되던 폴크스바겐의 비틀도 결국에는 단종됐는데, 이미 그 무렵에는 부품이 모조리 바뀐 전혀 다른 차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비틀이 처음 구상된 때보다 10여 년 앞서 나왔던 크롬 도금한 강관 의자는 아직도 대량생산되고 있을 뿐 아니라 변함없이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그리고 최초의 조정 가능한 작업용 조명 스탠드인 앵글포이즈(Anglepoise)는 7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산되는데, 최근 버전을 봐도 최초의 버전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디자인의 역사에서는 의자와 조명 스탠드가 불균등하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물건이란 진공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작용과 반작용을 주고받는 복잡한 안무의 한 부분이다.

 

앵글포이즈는 조지 카워다인(George Carwardine)이라는 자동차 공학자가 디자인했다. 물론 그가 시기적으로 더 빠르기는 했지만, 그는 최초의 미니와 몰턴 자전거가 만들어졌을 때와 유사한 접근법을 갖고 있었다. 앵글포이즈는 그것들과 꼭 마찬가지로 현대화에 대한 충동을 구현한다. 또한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원형이 된 제품의 한 예다. 앵글포이즈는 거의 구상되자마자 단지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하나의 범주가 되어버린 물건의 첫 사례로 자리 잡았다.

 

베이클라이트 :: 벨기에의 L.H.베이클랜드가 미국에서 1906년에 발명한 합성수지의 일종이다. 경화되기 전의 제1차 반응에서 생긴 것이 천연(天然)의 로진을 닮았기 때문에 합성수지라고 불리며, 베이클라이트의 상품명으로 공업화되어, 오늘의 인조재료(人造材料), 즉 플라스틱의 시초가 되었으며, 전기절연성 ·기계적 강도 ·내열성이 우수하다. 제1차의 반응 때 산성으로 하면 노볼락수지가 되고, 알칼리성으로 하면 레졸계가 된다. 목분(木粉)이나 안료(顔料)를 섞거나 종이에 침투시켜서 형틀에 넣고 가압 ·가열해서 성형(成型)시킨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이클라이트 [bakelite] (두산백과)

 

원형을 만들어내는 핵심은 단순히 어떤 외양이냐가 아니다. 원형으로서 설득력이 있으려면 그 물건의 기능이 무엇이며, 사용자가 그것을 작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는 형태여야 한다. 어떤 제품에 방대한 사용 설명서가 따라온다면 그 물건은 결코 원형이 될 수 없다고 확신해도 좋다.

원형들 중에는 주어진 포맷을 바탕으로 세대마다 자신들 특유의 해석을 만들어내면서 수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것도 있다. 이런 것들은 너무 보편적인 것이 되어버려서 딱히 눈에 띄지도 않게 된 원형들로, 각 버전들은 앞선 버전들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매개변수들을 지속적으로 새롭게 바꾸어나간다. 모서리마다 다리가 하나씩 달린 의자를 누가 맨 처음 디자인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텅스텐 :: 금속 원소의 일종으로 화학 기호는 W이다. 철망간중석(wolframite), 철중석(ferberite), 회중석(scheelite), 망간중석(hubnerite) 등에서 채취된다. 세계의 주요 산지는 중국의 운남, 사천 지방이다. 1783년 처음으로 발견된 금속으로 1904년 전구의 필라멘트로 실용화되었다. 백색으로 비중 18.6, 녹는점은 대단히 높아 약 3400℃, HB 290이다. 광석에서 직접 가단 금속을 만들어 내는 것은 곤란하고, WO3를 수소기류 중에 환원해서 얻어진 분말을 형에 넣어 압축해서 봉상(棒狀)으로 하여 다시 이것을 3000~3200℃에 가열 소결시켜 봉상의 금속으로 한다. 다음에 900~1300℃로 가열 단조해서 지름 1㎜ 정도의 가는 선으로 하면 연신성이 있는 것으로 할 수가 있다. 압연 봉재의 인장강도는 350㎏/㎟으로, 금속재료 중 강도가 최대의 것이다. 질산, 플루오르화수소, 황산에는 대개 침식되지 않으나 용융 알카리에는 작용되고, 또 탄화카리와 초석과의 용융 혼합액에는 급속히 용해된다. W의 가는 철사가 전구의 필라멘트로 해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외 W은 라디오의 진공관에 쓰이고 또 전기의 접점 금속으로 쓰인다. 그러나 최대의 용도는 강에 첨가하는 합금재료 사용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텅스텐 [tungsten] (금속용어사전, 1998.1.1., 성안당)

 

할로겐 :: 주기율표의 17족에 속하는 원소들로, 플루오르, 염소, 브롬, 요오드가 있다. 이 원소들은 알칼리 금속과 화합하여 물에 녹기 쉽고, 소금과 비슷한 모양을 가진 전형적인 염을 만들기 때문에 그리스 어 halos genes('소금을 만든다'는 뜻)에서 유래하여 할로겐이라고 불렸다. 할로겐 원소는 각 주기에서 비금속성이 가장 크고, 반응성이 크기 때문에 주로 다른 원소와 화합물의 상태로 존재한다. 원자 번호가 하나 큰 비활성 기체보다 전자 1개가 적으며, 전자 친화도가 크고 이온화 경향이 커 전자 1개를 받아서 -1가의 음이온을 형성하려는 경향이 크다.

[네이버 지식백과] 할로겐 [halogen] (Basic 고교생을 위한 화학 용어사전, 2002.9.30., ㈜신원문화사)

 

검은 본체와 빨간 점으로 표시된 접합부의 조합은 의심할 것도 없이 ‘발터 PPK(매우 중요한 이 이니셜은 Polizeipistole Kriminalmodell, 즉 경찰 권총 형사형을 뜻한다)’ 자동권총의 총신에서 안전장치를 강조하는 데 사용된 것과 동일한 색상 조합을 의도적으로 상기시키려고 한 것이다. 원래 1920년대에 독일 경찰용으로 디자인된 발터 권총은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가 높이 평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방아쇠울 바로 뒤에 5펜스짜리 동전 크기의 빨간 동그라미가 있다. 총신 쪽 안전장치 밑에 빨간 칠이 되어 있는데 이것은 안전장치가 풀리고 발사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보인다.

발터는 치명적인 무기면서도 동시에 은닉한 채 휴대할 수 있을 만큼 총신이 짧게 디자인되었다. 가장 중요한 요건은 작동방식이 믿음직하고 재장전이 수월하며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용자는 권총을 견대에 꽂기 전에 안전장치가 걸려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눈에 잘 띄는 빨간 동그라미를 표시한 것도 그럴 때 미심쩍음이나 불확실함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다.

 

이언 플레밍 :: 영국의 추리작가로《카지노 로열》(1953)에서 제임스본드를 등장시켰다. 비밀첩보부 007호를 주인공으로, 사디즘을 곁들인 현대인에 맞는 이야기 창조에 성공했다. 작품 《황금 손가락》,《나를 사랑한 스파이》 등 대부분 영화화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언 플레밍 [Ian Lancaster Fleming] (두산백과)

 

그러나 원형들을 기준으로 보면 앵글포이즈는 아직도 비교적 신참이다. 예컨대 전통적인 프랑스 와인병과 같은 보편적인 문화적 울림 같은 것은 아직 갖지 못했다. 와인병은 수 세기에 걸쳐 전 세계 사람들의 의식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척 보기만 해도 익숙한 모양일 뿐 아니라, 공적이고 개인적인 수많은 의식들을 거치며 발전해온 것이다.

매년 무수히 많은 병들이 만들어져 점점 증가하는 와인 생산 국가들에서 사용된다. 유리의 색깔과 병의 모양, 철사로 테를 두르거나 금속박을 입힌 코르크, 라벨에 담긴 그래픽적 표현, 이 모든 것이 그 안에 담긴 술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유발하는 데 쓰인다. 코카콜라 병에 담긴 와인이나 맥주병에 담긴 위스키를 마셔 우리의 미뢰를 혼란에 빠트려 본다면 디자인의 물리적 측면이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인식을 형성하는지 직접 경험하게 된다.

와인병은 그 와인의 산지를 정확히 나타내는 데도 사용된다. 프랑스의 와인병은 독일의 와인병과 다르고, 프랑스 안에서도 지역마다 각자 특유의 병 스타일이 있다. 용기의 형태와 라벨에 쓰인 그래픽적 언어, 병을 따는 방식에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도 두말할 필요도 없다. 비틀어 따는 병뚜껑은 코르크 마개와는 다른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한정된 종류의 활자체를 쓰고 성을 묘사한 그림이 그려진 라벨을 병의 허리 부분에 붙이는 전형적인 프랑스식 와인병은, 펜폴즈가 확립한 오스트레일리아 토착 스타일이나 라벨에 현대미술 작품을 싣는 보다 자의식적이고 현대적인 스타일의 와인병과는 다른 종류의 경험을 기대하게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달러 :: 종이가 아니라 아주 얇은 플라스틱 필름을 사용한다.

 

브리타니아 :: 현재의 영국 브리튼섬에 대한 고대 로마시대의 호칭. 일찍이 이 지역에 살던 켈트족(族)의 일파인 브리튼족에서 유래되었다. BC 55년, BC 54년 두 차례에 걸쳐 로마의 속주(屬州)인 갈리아의 총독 G.J.카이사르의 공략을 받으면서 문명세계와 접촉하였으나, 당시에는 일시적인 지배로 그쳤다. 그후 1세기 중엽 황제 클라우디우스 때 중남부지역이 로마의 영토가 되자 로마의 속주가 되고, 1세기 말 황제 도미티아누스 때 북부지역인 스코틀랜드와 서부지역이 로마에 정복되어 로마의 지배권이 확립되었다.

2세기 전반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북방 원주민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하드리아누스 성벽을 구축하였는데, 이후에도 북부 정복사업은 몇 차례 시도되었으나 로마의 지배는 대체로 성벽 이남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브리튼 지배는 주로 군사적인 지배였고, 문화적으로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3세기 말에는 대륙에서 색슨족이, 4세기 후반에는 북방에서 스코틀랜드인이 침공하여 410년 황제 호노리우스의 로마군단 철수를 계기로 로마제국의 브리튼 지배는 끝났다.

[네이버 지식백과] 브리타니아 [Britannia] (두산백과)

 

브리타니아 :: 영국을 상징하는 여전사상으로 투구를 쓰고 삼지창과 방패를 들고 있다.

 

신생국가들에게는 지폐 디자인이 국가 건설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국가들이 미처 국제적으로 독립 정부로 인정받기도 전부터 새 지폐 디자인을 서둘렀던 것을 생각해보라.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의 화폐들과 마찬가지로 한때 디나르화를 장식했던 영웅적인 철강 노동자와 사과처럼 발그레한 볼의 농민 여성들의 수확하는 모습은 사라졌다. 자신들이 현대적인 국가이며 유럽연합과 (또는)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정회원국으로 가는 길에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그들은 오랫동안 잊혀 있던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과 수학자들에게 눈을 돌리거나, 슬로베니아의 경우에는 건축가 요제 플레츠니크로 자신들의 화폐를 장식했다.

 

회전식 다이얼 전화기의 기본 요소들은 예전에도 사용되던 것들이었다. 최초의 전화기들에는 태엽 감는 손잡이가 달린 상자가 있고, 그 위에는 한 끝에 수화기, 반대 끝에 송화기가 달린 기구를 받치는 거치대가 있었다. 그러나 하이베르그의 디자인은 이 모든 요소들을 베이클라이트로 주형된 하나의 형태로 통합해서 과거와의 결별 지점을 표시했다. 그 전화기를 보면 누구나 직관적으로 작동법을 알 수 있었다. 송수화기의 형태는 어디를 붙잡아야 하고 어느쪽을 귀에 대야 하며 어느 쪽이 송화구인지 정확히 알려주었다. 그 전화기에는 소통이 암시되어 있었지만 오늘날의 휴대전화는 그렇지 못하다. 크롬 도금한 다이얼은 설명해주지 않아도 작동법을 알 수 있었다. 모호한 구석이 전혀 없다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전화기의 형태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상징이 된 것이다. 이제 아이폰이 전화 통신에서도 스크린 인터페이스를 적극 활용하면서 키패드조차 없는 작은 직사각형 기기에 자리를 빼앗긴 지금도, 전화기를 묘사하는 그림문자는 여전히 다이얼과 송수화기로 이루어진다.

 

노르웨이의 화가 장 하이베르그가 처음 그 형태로 만든 베이클라이트 회전식 다이얼 전화기는 이제 기술적으로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지만, 이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전화 통신의 아이콘으로 쓰이고 있다. (☎)

 

지금은 간단하게 ‘헬로우’라며 전화를 받는 영국인들도 한때는 공손하게 자신의 전화번호와 이름을 자진해서 읊어주고는 ‘전화 거신 분은 누구신가요?’라는 의례적인 말로 상대의 정체를 캐어묻던 시절이 있었다. 익명의 문자메시지에 대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합의된 대응법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또한 휴대전화가 어디에나 존재하게 됨에 따라 전화 예절도 달라졌다. 휴대전화 벨소리는 우리 모두에게 흡사 파블로프의 개와 같은 반응을 일으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예절의 의무를 제치고 전화를 받아야만 한다는 충동에 빠트린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고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조차도 전화를 받도록 프로그램되어버린 것이다.

 

로지아 :: 한쪽 또는 그 이상의 면이 트여 있는 방이나 복도. 특히 주택에서 거실 등의 한쪽 면이 정원으로 연결되도록 트여 있는 형태.

 

치펜데일 :: 영국의 조지 시대에 가구 제작자 토머스 치펜데일이 18세기 중엽부터 말에 걸쳐 만든 독특한 양식이다. 루이 15세 식의 귀족 취미에서 출발한 화려한 것을 평민적인 것으로 개혁하려고 한 것. 네델란드(퀸 앤), 프랑스(루이 15세), 중국의 영향을 받고 있다. 특징은 초기의 작품은 흰 다리, 후기가 되면 직선 다리이다. 의자의 등받이에 래더백도 처음으로 사용하고, 18세기 중반에는 중국풍의 살과 조각을 이용한 의자, 장식 선반 등에 대표되는 차이니즈 치펜데일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영국의 바로크ㆍ프랑스의 로코코ㆍ고딕 중국의 모티프양식을 절충한 형식임. 통일적 조화가 잡힌 양식으로 특히 의자에 탁월함.

[네이버 지식백과] 치펜데일 양식 [chippendale style] (인테리어 용어사전, 2006.10.10., 동방디자인)

 

이 모든 이야기는 원형들만이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원형들의 기능적 속성들은 여전히 유동적이므로, 앞으로도 원형이 만들어질 여지가 있는 여러 다른 물건들의 범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그렇게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형식인 이유는 바로 끊임없이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신하고 잡다할 정도로 갖가지 기능들을 추가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그보다 훨씬 단순한 원형인 책이 제공하는 것도 어찌 보면 기능들의 조합이라 볼 수 있다. 공책을 사용하는 데는 사용 안내서가 필요없다. 뾰족하게 깎은 연필만 있으면 기록장과 의사록과 데이터베이스와 일기장이 된다. 그러나 휴대전화(이 특정한 물건을 이렇게 부르는 게 옳다면)는 각자의 원형을 지닌 온갖 다양한 물건들을 제거해버린다.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기 이전의 카메라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진화해온 결과로 뚜렷이 정의된 강건한 카메라만의 공식적 언어를 만들어냈고, 라디오와 손목시계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에 이 기기들이 복잡한 기능적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제공했던 모든 시각적 실마리들은 현재 그것들이 녹아들어가 있는 휴대전화의 형식(부분적으로는 문자와 숫자로, 부분적으로는 네이게이션 방식으로 이루어진 인터페이스를 숙달하는 데 달린)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휴대전화를 단순히 구체적 기능들이 터무니없이 많이 더해진 전화기로만 사용하는 단계를 절대로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 적합한 다른 형태는 없을까 하는 질문이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그렇게 막강한 도구로 만드는 것은 어디에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엄청난 휴대성이다. 그러나 이 점은 작동하는 데뿐 아니라 찾아내는 데에도 핸디캡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약속을 기록하는 데 데스크톱 컴퓨터의 일정 프로그램이 아니라 휴대전화에 있는 개인 메모장을 정말로 사용할까? 그리고 전화기가 우리의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감정과 불안과 기쁨을 기록할 자연스러운 장소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제조업체들은 이러한 모순들을 해결하는 일보다는, 바닷가에서 쓸 휴대전화와 집에서 쓸 휴대전화가, 또는 친구들과 통화할 대 쓰는 것과 사업상 통화에 쓰는 휴대전화가 각각 따로 필요하다고 소비자들을 설득하는 일에 훨씬 더 혈안이 되어 있다. 이미 구체적으로 성별에 따른 모델들이 나와 있다. 그리고 진짜 돈벌이는 휴대전화 판매나 단순한 통화 요금이 아니라, 벨소리를 내려 받거나 주요 뉴스를 읽는 등 휴대전화가 수행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다른 온갖 것들을 판매함으로써 이뤄진다.

 

어른들의 물건에 장난감 같은 특징을 활용하는 것은 축소된 물건이 주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매력은 아마도 의인화된 형태들에서 기원했을 텐데, 이는 우리가 아기들에게 반응하도록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된 것과 같은 방식이다. 아기들은 어른들보다 크기만 작은 게 아니라 비율이 다르다. 어른과 비교하면 아기들의 얼굴과 눈은 몸에 비해 훨씬 더 큰 비율을 차지한다. 눈을 마주칠 때의 정서적인 교감을 극대화하는 것은 바로 그 비례관계이며, 자신을 훨씬 잘 돌볼 수 있다고 추정되는 어른들은 그 정도의 정서적 교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작은 손과 발은 정서적으로 가장 둔감한 어른의 마음조차 쉽게 녹인다. 생존 가능성을 극대화해야 하는 어린 생명들에게 아주 유용한 이 특징은 유전적 선택에 의해 더욱 권장되었을 것이다. 디즈니랜드의 메인스트리트에 있는 건물들의 규모를 줄이고 귀여움을 더욱 강조했던 월트 디즈니도 이러한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디자인은 가장 기본적인 시각언어로서 이해된다.

 

가장 성공적인 디자인이란 이 모든 특질들이 각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자각적으로 이해하면서 그 모두를 동시에 활용하는 디자인이다.

 

 

 

3. 호사(Luxury)

“호사는 ‘쇼핑’이 아니다.”

 

호사는 인류가 나날의 생존 투쟁에서 자신을 위해 찾아낸 한숨 돌릴 수 있는 유예의 시간이었다.

 

희소성은 가장 단순한 것마저 호사로 만들 수 있다. 풍요의 시대에는 제대로 된 호사를 누리기가 더 어렵다. 맹렬히 타오르는 태양 아래서 반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를 걸어가 손으로 끌어올리는 우물물을 길어 쓰던 시절, 전기펌프와 믿음직한 전력 공급과 긴 플라스틱 파이프는 전체 공동체에 그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지속적인 물 공급이라는 호사를 안겨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펌프가 매일 24시간 작동되고 마을에 있는 모든 수도꼭지에서 언제든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놀랍던 특권도 더 이상 호사로 여겨지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되고, 그것을 잃게 된다는 것은 야수 같은 상태로 내던져지는 일이 된다.

그러나 바위 위로 콸콸 흐르는 계곡에서 차갑고 깨끗한 샘물을 떠 한입 가득 들이킬 대의 느낌과, 수돗물로 텀블러를 채우는 일상적인 경험을 비교해보라. 피할 수 없는 필연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조건을 단다면, 계곡물 한 모금에 정서적인 면이 훨신 더 강렬하게 배어 있으며 둘 중 더욱 호사스러운 경험이라고 말할 것이다.

오늘날 호사의 창출에 바탕이 되는 것은, 수돗물의 세상에서 계곡물의 경험을 인위적으로 되살릴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분더캄머(Wunderkammer) :: ‘경이의 방’이라는 뜻으로 르네상스 유럽에서 유행하던 일종의 개인 박물관이다. 동식물 표본부터 골동품까지 온갖 진기한 물건들을 수집해두었던 방이다.

 

로니 빅스 :: 영국의 유명한 범죄자. 1963년 대열차 강도 사건으로 유명하고, 1965년에 탈옥해 36년 동안 도망자로 살았다.

 

백화점의 1층은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공간을 향수에 할애한다. 향수는 그 가격에 비해 이윤 폭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애초에 예술의 주요 동기였던 종교와 주술이 과거와 같은 위신을 누리지 못하는 세속의 시대에는 호사를 그 모조 대용품으로 이해해도 좋다.

 

호사가 서구 산업 국가들을 움직이는 추진력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서구 국가들은 기본적인 제조업을 중국에 내팽겨쳐버린 채 대신 세심하게 무두질한 가죽의 냄새를 풍기고 무거운 차문이 믿음직스럽게 살며시 닫히는 자동차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유럽은 고가의 의류와 여행 가방, 믿을 수 없을 만큼 정밀한 손목시계, 특이한 탄소섬유와 합금 소재의 음속으로 날 수 있는 군 항공기를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이런 각각의 것들은 일종의 과시적 호사다. 엄격히 말해서 우리에게는 그중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그런 것들을 만들지 않고 사지 않는다면 우리가 생존을 기대고 있는 경제가 타격을 입을 테고,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들은 우리에게 곡 필요한 것이다.

 

다른 물건들에 비해 훨씬 더 쓸모없어진 물건들이 있다. 손목시계는 여전히 그 위신을 유지하고 있지만, 만년필은 과거에 지녔던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한때 만년필은 실질적인 필기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소유물이었고 예부터 내려오는 성년식에서 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는 산업시대의 소품이었다.

그러나 지금 만년필은 휴대용 타자기를 덮친 것과 똑같은 운명 앞에 놓여 있다. 그 기본 개념부터가 의미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키보드 때문에 우아한 필체를 뽐낼 기회는 급격히 감소했다. 만년필 캡에는 항상 그 자리에 있던 것이라는 이유로 아직 클립이 달려 있지만, 만년필을 재킷 주머니에 꽂는 위험을 감수하려는 사람을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잉크 저장고와 전통적인 펜촉은 손과 옷에 잉크가 쏟아지기 쉽기로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 볼펜은 그런 면에서 덜 위험한 대안이다. 그러나 같은 브랜드의 만년필만큼 화려한 몸통과 똑같은 캡을 장착해도 봃펜은 만년필 같은 카리스마를 발산하지 못하고, 아무리 순도 높은 금으로 치장해도 만년필만큼 높은 가격을 부를 수는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손목시계는 카르테에가 처음으로 남성용 손목시계를 만들기 시작했고, 얼마 후 롤렉스도 따라나섰던 20세기 초와 거의 동일한 형태를 유지한 채로도 소유욕을 일으키는 물건으로서의 입지를 그대로 유지해올 수 있었다. 전통적인 손목시계는 아날로그 문자반이 아닌 디지털 문자반이 도입되면서 다소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도약적인 쿼츠 기술과 대량생산되는 정확한 시계들과 스와치 현상으로 대표되는 패션시계들의 영향 앞에서도 당당히 버텨낼 수 있었다.

 

테크놀로지에 끌려가는 시대. 사물의 유용성을 초강력 엔진으로 급속하게 제거해버리는 시대에 호사가 어떤 성질의 것인지 말하기란 몹시 복잡한 일이다. 노트북 컴퓨터에 다이아몬드를 박는 일은 그 컴퓨터의 주인을 매혹하기에는 기묘하게도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그러나 손목시계 제조업체들은 수 세대에 걸쳐 신기루를 발휘하는 시계의 능력을 아직도 영민하게 유지하고 있다.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호사스러운 휴대전화를 만들겠다고 작정한다면 그 과제는 손목시계에 비해 훨씬 어려워진다. 이제까지 흔히 쓰인 전략은 귀금속과 보석을 가장 눈에 잘 띄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6개월만 지나면 기술적으로 뒤처지는 물건에 금을 입힌 케이스를 쓴다는 것은 과잉의 문화 한가운데서조차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낭비적인 일로 보인다. 금이 휴대전화를 더 빛나게 하는 게 아니라 소재의 하나로서 금이 지닌 위신을 휴대전화가 깎아내리는 셈이 된다.

호사스러운 노트북 컴퓨터를 만들려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헛된 시도다. 나무로 만든 키보드와 가죽 케이스나 탄소섬유 외피는 그저 어설퍼 보일 뿐이다. 어떤 컴퓨터가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하드 드라이브의 바른 속도와 운영체제의 효율성 때문이지 개성을 살리겠답시고 함부로 끌어다 쓴 시대착오적인 소재 때문이 아닌 것이다.

 

베블런은 호사품들이 본질적으로 공작의 꼬리 깃털과 다를 바 없는 제 용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 자체로 아름다워야 할 뿐 아니라 아름다워 보이는 물건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비싸게 보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치와 야심을 나타내는 신호가 되려면 그 신호를 제대로 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베블런 효과 :: 허영심으로 수요가 발생하는 현상. 가격이 오르는 데도 일부 계층의 과시욕이나 허영심 등으로 인해 수요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을 뜻한다. 예를 들면 다이아몬드, 명품 의류, 고급 자동차 등은 가격이 비쌀수록 더 잘 팔리고, 가격이 내려가면 누구든지 구입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구매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은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런(T. B. Veblen)이 그의 저서인 <유한계급론>(1899)에서 '상층류의 눈에 띄는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소비가 자각 없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데서 유래되었다. 베블런은 이 책에서 상류층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과 재력을 과시하고,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치를 일삼는다며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블런효과 [Veblen effect]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아름다움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물건의 유용성은 그 물건이 얼마나 비싼가에 중요하게 좌우된다. 10~20달러 정도의 금전적 가치를 지닌 수공품 은수저가 같은 은제지만 기계로 만든 수저보다 더 쓰기 좋은 경우는 별로 없다. 심지어 알루미늄처럼 값이 10센트도 안 되는 더 질 낮은 금속을 가지고 기계로 만든 수저보다도 더 쓰기 좋다고 할 수 없다. 수공품이라고 알려진 수저를 면밀히 살펴보았을 때 실제로는 수공품이라는 말만 그럴싸하게 갖다 붙였을 뿐 선과 사용감이 잘 훈련된 눈으로 세밀하게 관찰해야만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잘 만들어진 모조품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사용자가 아름다운 대상으로서 그 수저를 관찰할 때 얻을 수 있는 만족감까지 포함해 수저의 유용성은 즉각 80~90퍼센트 정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감소할 것이다. 값비싸고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제품을 사용하고 바라보면서 얻는 우월한 만족감은 대개, 상당 부분이 값이 비싸다는 의식에서 오는 만족감이 아름다움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과시적 낭비성이라는 요건은 의식적인 수준에서는 보통 우리 취향의 표준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강제력 있는 기준으로서 분명히 존재하며, 아름다운 것에 관한 우리의 감각을 선별적으로 형성하고 유지하며,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타당하게 인정될 수 있는 것과 인정될 수 없는 것에 관한 우리의 분별력에도 지침이 되어준다.

- 소스타인 베블런

 

내셔널 트러스트 :: 스코틀랜드에서 의미 있는 역사적 유물과 자연미가 뛰어난 곳을 소유, 관리하며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일을 하는 민간단체. 1931년에 설립됨.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책상 위는 그가 평생 동안 추구해온 고전 조각 작품 수집에 대한 열정의 흔적들로 어수선하다. 프로이트는 나치가 빈을 장악하자 그 컬렉션을 가지고 영국으로 탈출했는데, 떠나기 전에 원래 있던 자리에 놓인 그대로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사진은 고전적 완벽함의 산산이 부서진 흔적들을 손상된 인격(그는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에 대한 탐구의 은유로 사용했던 그의 정신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노가하이드 :: 실내장식이나 여행 가방 등에 쓰이는 모조 가죽의 상표

 

아메리카스컵 (America’s Cup) :: 1851년에 처음 시작된 세계적인 요트 경기 대회. 아메리카스 컵이라는 이름은 첫 대회 챔피언이 미국팀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메리카스 컵’이라는 이름의 이 대회 트로피는 현재 스포츠 경기에 주어지는 트로피 중 역사가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치펜데일은 『신사와 가구제작자를 위한 지침서』(The Gentleman and Cabinet maker’s Director)라는 제목으로 멋지게 인쇄하여 만든 상품 카탈로그를 자비 출판했는데, 이로써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놓은 셈이다. 그 안에 여러 가지 스타일과 정교함의 정도에 따른 다양한 물건들을 실어두어 고객들이 그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원한다면 자기 취향에 맞게 수정할 수도 있게 했다. 이전에는 재력이 막강한 건축가들만이 고려해볼 수 있었던 마케팅 전략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치펜데일은 물건을 만드는 일들 중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한 측면으로서 디자인을 등장시킨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신사와 가구제작자를 위한 지침서』가 닦기 시작한 새로운 길은 마침내 해비타트(Habitat)의 카탈로그와 이케아(IKEA)까지 이어졌다.

치펜데일은 브랜드 창조의 선구자로도 볼 수 있다. 그의 명성의 빛은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룬 여러 공방에서 일하던 다른 많은 장인들의 작품들까지 포괄할 정도로 널리 비추었다. 거기에는 결국 그의 사업을 물려받은 그의 아들까지 포함되었을 뿐 아니라, 『신사와 가구제작자를 위한 지침서』에 실린 디자인 견본을 통해 멀리 미국에까지 공방의 본보기를 제공했다.

치펜데일은 당대 가장 창의적인 디자이너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였던 것만은 분명했다.

 

듀리 :: 동남 아시안산 묵직한 면직 바닥 깔개.

 

취향에 대한 이케아의 접근법은 훨씬 더 근엄하다. 콘란은 적어도 결정은 우리 몫으로 남겨두었다. 이케아는 진출해 있는 모든 나라에서 자신들이 시험을 통해 확립한 틀에서 1밀리미터도 물러서지 않는 전략을 취한다. 이케아 제품들은 모조리 스칸디나비아식 이름을 갖고 있고, 이케아 카페에서는 스웨덴식 미트볼을 제공한다. 고객의 취향이 아니라 이케아의 취향이다. 영국에서 이케아는 영국식 취향에 자신들의 생산 라인을 맞춘 것이 아니라 꽃무늬 원단을 좋아한다고 알려진 영국인들의 기호를 바꿔놓기 위해 공격적인 광고를 실시했다. 그리고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는다’라는 공격적인 저가 항공사들의 고객 관리 기법을 소매업에 적용했다.

 

우리가 정말로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책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다면 그런 책들은 가장 좋은 종이에 인쇄되고 멋진 가죽으로 장정된 것으로 소유해야 하지 않겠는가? 혹시 우리는 한 권의 책을 인쇄하고 장식하고 장정하는 데 들어가는 사랑이 그 책과 우리의 관계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과의 그러한 교류가 우리 자신도 아름답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스토클레 :: 요제프 호프만이 벨기에의 공학자 아돌프 스토클레를 위해 지어준 스토클레 저택은 20세기의 가장 세련되고 호사스러운 개인 주택으로 손꼽힌다.

 

스토클레 저택 :: 은행가이자 예술품 수집가인 아돌프 스토클레(Adolphe Stoclet:1871~1949)가 제체시온(Sezession:分離) 운동의 창시자인 오스트리아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에게 의뢰하여 지은 개인 저택이다. 2009년 6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905년 건설을 시작하여 1911년 완공하였으며, 근대건축의 기능주의적 발전을 시사한 건축물로 꼽힌다. 간결한 기하학적 구조는 건축에서 아르데코 양식과 모던 무브먼트의 도래를 예시하면서 아르누보 양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건축 내부의 가구·식기·공예품은 대부분 1903년 호프만 등이 오스트리아 빈에 설립한 공예공방인 빈 공방(Wiener Werkstette)에서 제작했으며 벽화는 유명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가 담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밖에 독일 조각가 프란츠 메츠너(Franz Metzner), 벨기에 화가 페르난트 크노프(Fernand Khnopff)가 작업에 참여했다.

과거양식으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하는 제체시온 운동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며, 여러 예술 장르들이 모여 하나의 예술작품을 이루는 총체예술 사조의 대표 건축물로 꼽힌다. 20세기에 지어진 개인 건축물 중에서 가장 품위 있고 호화로운 작품으로도 꼽힌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토클레저택 [Stoclet House] (두산백과)

 

언제나 복잡했던 호사와 수공예의 관계는 베블런 시대 이후로 달라졌다. 장인의 솜씨가 ‘정성을 들이는 것’을 연상시키게 된 반면, 산업은 규격화를 암시하게 되엇다. 전통적으로 호사를 보여주는 것은 과시적이거나 정교한 솜시, 그리고 비싼 재료였다. 어려운 일은 희소성을, 시간과 노력의 투자를 암시했다.

그러나 산업적 생산은 수공으로는 만들 수 없는 물건들을 만들어냈다. 어렵던 것들이 쉬워진 것이다. 호사가 희소성이나 어려움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때, 노력이 사라지면 호사도 사라지는 셈이다. 또한 객관적인 기준으로 보면 기계들은 대부분의 것을 사람들보다 더 잘 만들고, 우리의 눈과 손은 기계가 제공할 수 있는 마감 상태의 기준에 길들어버렸다. 공예가들이 호사로운 물건들을 만들 때 지향하던 완벽함은 또 다른 호사의 이미지에게 길을 내어주고 만 것이다. 오늘날의 호사는 하기 어려운 새로운 일을 찾아내는 데 달려 있다.

 

이 대량생산의 시대에, 호사스러운 제품을 소수만 제작해 상당한 고가로 판매한다는 데 내재한 본질적인 기술적 딜레마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은 만만치 않은 성취다.

최고급 승용차 제조업체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비용 방정식이다. 저가 자동차의 판매는 대량생산의 경제학을 바탕으로 한다. 모든 부품의 형태를 만드는 기계적 도구들과 주형틀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므로, 그 투자분을 회수하려면 엄청난 수의 자동차를 팔아야 한다. 호사스러운 고가 자동차는 수백만 대가 아닌 수천 대, 심지어 수백 대 단위로 자동차를 만들기 때문에 그와는 정반대의 경제적 고려를 따른다. 페라리의 캘리포니아 스파이더는 총 104대가 생산되었다. 그 말은 도구에 들어가는 투자가 훨씬 적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 투자분으로 충당할 수 있는 도구들로는 대량생산된 자동차가 누릴 수 있는 수준의 정교함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도구들로도, 특히 노련한 장인들의 솜씨가 발휘될 때면 대단히 멋진 실루엣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직관에는 어긋나지만, 사실은 단순한 것이 더 비싸다. 정교하거나 지나치게 복잡한 것보다도 단순함을 만들어낸 것이 거의 언제나 더 비용이 많이 들거나 더 어려운 일이었다.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들은 오차 범위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제작자에게는 훨씬 가혹하다. 절제를 표현하는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그 정반대를 의미할 수도 있다. 구현하는 데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고 일종의 바로크식 미니멀리즘에 맞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붉은 여단(Brigate Rosse) :: 1967년에 결성해 70년대와 80년대 초까지 활동한 이탈리아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지하운동 조직이다. 무장투쟁을 통한 혁명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고 암살, 절도, 유괴, 사보타주 등 폭력적인 행위를 일삼았다.

 

호사는 부분적으로는 호사라고 하면 연상되는 재료들을 사용함으로써 만들어진다. 귀중한 것과 희귀한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손에 넣으려 애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스틱은 고상한 재료로 받아들여지는 데 문제가 있었다. 티타늄도 그랬다. 티타늄 채굴 업계가 바랐던 것처럼 현대판 황금은 결코 될 수 없었다.

 

티타늄 :: 원자 번호 22, 비중 4.5, 융점 1800℃, 상자성체(常磁性體)이며 매우 경도(硬度)가 높고 여리다. 강도는 거의 탄소강과 같고, 비강도(比强度)는 비중이 철보다 작으므로 철의 약 2배가 되고 열전도도와 열팽창률도 작은 편이다. 티탄의 결점은 고온에서 쉽게 산화(酸化)하는 것과 값이 고가(高價)인 것이다. 티탄재(材)는 항공기, 우주 개발 등에 사용되는 이외에 고도의 내식(耐触)재료로서 중용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티타늄 [titanium] (기계공학용어사전, 1995.3.1., 한국사전연구사)

 

타이타늄은 티탄 또는 티타늄이라고도 불리는데, 원소 이름은 1795년에 클라프로트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대하고 강력한 신의 종족인 타이탄(titans)에서 따서 지었다. 타이탄은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와 땅의 여신 가이아(Gaea)의 후예이므로, 타이타늄은 하늘과 땅의 원소로 볼 수 있는데, 클라프로트가 타이타늄의 성질을 잘 알고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는 믿기 어려우나, 아주 적절한 작명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타이타늄은 지각에 많이 분포되어 있고, 가벼우면서도 아주 단단하고 부식이 잘 되지 않는 금속으로 특히 항공기 제작에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밖에 타이타늄은 금속 자체로 또는 여러 금속들과 합금을 만들어 아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그리고 이산화 타이타늄은 아주 안정한 흰색 안료로 치약에서 페인트까지 아주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또한 태양 빛을 이용하여 물이나 오염 물질을 분해시키는 광 촉매와 햇빛차단제로 사용된다.

타이타늄(titanium)은 원자번호 22번의 원소로, 원소기호는 Ti이다. 주기율표에서는 4족(4B족)에 속하는 은색 전이금속이다. 분말은 진한 갈색이다. 아주 단단하며, 가볍고, 녹는점이 높으며, 내부식성이 아주 큰 금속이다. 같은 강도로 강철보다 43%나 가볍고, 합금은 알루미늄 합금에 비해 2배나 강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타이타늄 [Ti] (네이버 캐스트)

 

포장은 한 물건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서 피할 수 없는 전주곡이다. 손목시계는 양철통에 담기고 그것은 다시 상자 안에, 그 상자는 다섯 가지 색으로 인쇄하고 코팅된 종이로 만든 끈손잡이가 달린 봉투에 담겨온다. 이 겹겹의 포장은 곧바로 버려지는데도 아랑곳없이. 고가의 양말 한 켤레를 사면 둘 중 한 짝 안에는 띠 모양의 박엽지가 들어 있는데, 그것은 오로지 처음 그 양말을 집어들 때 3초 동안 단 한 번 들리고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버진 애틀랜틱 에어버스 A330의 비즈니스 클래스 객실 평면도를 보면 18세기 노예선의 짐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헤리본 패턴이 보인다. 사실 그것은 줄ㄹ지어선 좌석들인데, 앞으로 이 우주의 금융 큰손을 꿈꾸는 이들이 스스로 호사스러운 여행을 하고 있다고 확고히 믿으며 잠들 (그들의 머리에서 몇 인치 떨어진 지점에는 코를 골아대고 뱃속에서는 꾸르륵하는 소리가 나는 낯선 사람이 있다) 준비를 하고 있는 곳이다. 물론 동체 뒤쪽으로 갈수록 상태는 더욱 지저분해지는데, 이런 점은 앞쪽에 탄 사람들이 훨씬 비싼 요금을 참아내도록 도와준다.

 

모슬린 :: 씨실과 날실을 모두 가는 소모사(梳毛絲)의 단사(單絲)로 짠 너비가 넓은 모직물. 메린스라고도 한다.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 강변의 도시 모술(Mosul)에서 직조한 데서 이 이름이 붙여졌다. 주로 여성의 의료(衣料)로 쓰이며, 늦은 봄에서 초여름 ·초가을에 걸쳐 블라우스나 드레스 등에 많이 쓰이고, 이불감으로도 쓰인다.

가볍고 보온성이 좋으며 탄력이 있어 잘 구겨지지 않으므로 한때 서지(serge) 등과 함께 많이 사용하였으나 좀이 잘 먹는 결함이 있어 요즈음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슬린 [muslin] (두산백과)

 

 

 

4. 패션

패션이라는 괴물은 미술과 건축에 그 발톱을 꽂은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디자인 전체를 한 모금 깊이 들이켜 꿀꺽 삼켜버렸다.

 

패션쇼는 오페라와 달리 20분 이상 지속될 필요가 없고 2막도 없다. 패션쇼는 그 짧은 길이 덕에 인쇄물 이후 세대의 심각하게 제한적인 주의집중 시간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문화적 형식이 되었다. 구경거리로서의 패션쇼라는 현상은 침체되었던 오트 쿠튀르가 되살아난 1980년대 이후로 가속도가 붙었다. 19세기에 파리의 뤼드 라 페에 있는 ‘하우스 오브 워스(House of Worth)’가 엄선된 소수의 고객들을 살롱에 초대해 차와 아기자기하게 썰어둔 샌드위치를 놓고 하던 의례적인 행사였다.

 

오트 쿠튀르 :: 고급 의상점. 본래는 고급 재봉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여성복 제작을 말한다. 시초는 나폴레옹 3세 비(妃)의 전속 드레스 메이커인 워르트(Worth)였다. 1868년에 시작되었으며 전임 디자이너가 계절에 앞서 고객을 위한 새로운 창작 의상을 발표하면, 이것이 전세계 유행의 방향을 결정하였다. 이 신작 모드 발표회를 파리 컬렉션이라 하며, 1년에 2회가 열린다. 이러한 오트 쿠튀르가 60여 개소나 있으며 파리 의상점조합 사무국(La 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 Parisienne)에 속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트쿠튀르 [haute couture] (두산백과)

 

원래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던 패션쇼가 이제는 목적 그 자체가 되었다. 이제는 구매자들에게 새 시즌의 옷들을 보여주고 주문을 받는 실제적인 일과는 거의 무관해졌다. 브랜드를 빛나 보이게 하는 것이 가장 주요한 목적인 행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컬렉션을 자랑스레 소개하는 일보다는, 세상의 카메라들 앞에서 유명인들이 관객으로 찾아와 자신들이 컬렉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가장 야심찬 패션 브랜드들은 그런 일을 하기 위한 상설무대까지 짓고 있다.

 

안도 다다오 ::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제대로 해내기 가장 어려운 일은 새롭게 수정하는 것에서 아예 새로 시작하는 것으로 옮겨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판단하는 일이다.

 

옛날에는 당대의 패션이 영화로부터 많은 것을 참고했다. 반면 랠프 로렌이 스타일을 만드는 데 일조한 <애니 홀>부터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리처드 기어의 의상을 디자인했던 <아메리칸 지골로>까지 보다 가까운 과거에는 영화가 디자이너들에게 자신의 가시성을 높일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해왔다.

 

프란체스코 클레멘테 :: 이탈리아의 전위적인 화가.

로버트 라우센버그 ::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를 이끈 미국의 화가.

레오 카스텔리 :: 세계적인 미술상.

 

패션의 원재료인 아이디어와 이미지들에 대한 도무지 채울 수 없는 갈망의 정도는 이탈리아판 『보그』 한 권을 들고 넘겨 보면 단박에 분명해진다. 이 월간 잡지는 매 패션 시즌에서 증류된 에너지를 담아내기 이해 정기적으로 8백 페이지까지 부피가 늘어난다. 그 시즌의 컬렉션들이 공개되는 때와 같은 시기에 발행되는 『보그』는 광고들로 꽉꽉 들어차는데, 그 광고들의 유일한 목적은 페이지를 넘기는 데 걸리는 몇 분의 1초 안에 다른 브랜드와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말이 끼어들 시간은 없고, 많은 경우 옷들을 보여줄 시간조차 없다. 패션은 시큰둥해진 독자의 경정맥을 아주 잠깐 동안이라도 움켜쥐기 위한 어질어질한 이미지들의 가차없고 끝없는 행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때 가장 명시적으로 반복되는 단 하나의 주제를 꼽으라면 바로 섹스다.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브랜드들은 언제든 광고에 1970년대의 포르노그래피를 연상시키는, 공들여 뽑아낸 디테일들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 프랑스와 미국의 많은 브랜드들도 그랬다. 어떤 이들은 모델들을 1940년대의 창녀들처럼 보이도록 세심하게 꾸미기도 했다. 심지어 샤넬은 어두운 야외 거리에서 지나가는 자동차의 전조등 불빛에 의지해 옷을 촬영한 적도 있었는데, 그 스타일은 차를 몰고 여자들을 유혹하러 나선 남자들을 찾아 불로뉴 숲을 드나드는 창녀들을 연상시켰다.

패션은 서너 개의 복합 기업들이 장악한 거대한 산업으로 바뀌기는 했어도, 예술과 사진과 영화를 그 시각적 참고의 원천으로 삼는다.

 

아트 바젤 :: 세계 최대의 미술품 아트페어.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품 견본시장이다. 여러 개의 화랑이 한곳에 모여 미술작품을 판매하는 행사로 화상(畵商) 에른스트 바이엘러의 주도하에 창설되었다.

1970년 10개국 90개 갤러리로 출발해 2009년으로 40회째를 맞았다. 매년 6월 초에 열리는데 화랑의 전시 경력과 전속 작가의 수준 등을 따져서 참가 여부를 심사한다. 모든 장르의 미술작품(회화ㆍ조각 드로잉ㆍ사진ㆍ퍼포먼스 등) 중에서 가장 고가, 고급 작품을 소개해 온 탓에 미술 명품 백화점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트바젤 [Art Basel]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아트 마이애미 :: 아트 바젤의 자매 행사로 열리는 미술 전시회로 매년 12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다.

 

패션은 고급문화와 대중 예술이 만나는 지점을 상징하며, 패션에게 진짜 힘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그것은 진지한 문제들도 다룰 수 있지만, 협소한 의미의 디자인이 충분히 부러워할 만한 방식으로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아왔다.

 

캐시미어 :: 능직(綾織)으로 만들고, 그 위에 수를 놓아 치밀한 전통적인 무늬를 나타낸 것. 인도의 카슈미르 지방의 캐시미어 염소나 티베트산 염소의 연한 털을 사용하여 가늘게 자은 능직으로 만든것이다.캐시미어숄이라고도 한다. 16~18세기에 많이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높았으나 기계생산의 발달에 따라 전통적인 수공예적 기술은 급속히 쇠퇴하였다.

오늘날 캐시미어라고 하는 것은 이것과는 다른데, 캐시미어털을 사용해서 평직 또는 능직으로 만들고, 제직한 후 축융, 기모(起毛)하여 털의 결을 한쪽으로 가지런히 눕혀서 광택을 낸 것이다. 촉감이 매우 부드럽고, 보온성이 크며 가볍기 때문에 오버 ·머플러지 등으로 사용되는 고급 방모직물이다. 그러나 강도가 비교적 약한 결점이 있어 취급할 때 주의해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캐시미어 [cashmere] (두산백과)

 

리놀륨 :: 시트(sheet) 모양으로 된 실내 바닥에 까는 재료. 줄여서 리노(lino)라고도 한다. 1863년 영국의 F.월턴에 의해서 발명되었다. 리놀륨이라는 이름은 발명자가 붙인 상품명이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일반재료명으로 불리고 있다.

제조방법은 아마인유(亞麻仁油) ·동유(桐油) 등을 산화중합시켜서 생기는 리녹신(linoxyn)에 로진(rosin) 등 천연수지류(類)를 섞고, 코르크 ·톱밥 ·돌가루와 착색제 등을 첨가해서 마직포(麻織布)에 롤러에 의해 시트 모양으로 가열압착하고, 장시간 건조시켜서 만든다. 보통 두께 2~3mm, 폭 2m, 길이 25~30m인 하나의 두루마리 제품을 만든다.

탄력 있는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탄력성이 좋고, 걸어다닐 때 미끄러지지 않고 소리가 잘 안나며, 피로하지 않는 등 보행감촉이 뛰어나고, 내마모성 ·내화(耐火) ·내열(耐熱) ·전기절연성 ·내유성(耐油性)이 우수하다. 특히 살균작용에 의해 바닥의 박테리아는 2일 정도면 사멸되는데, 그 작용이 10년 가까이 지속되는 등의 장점이 있다. 반면에 책상 ·가구 등의 집중하중을 장기간 받으면 자국이 생기고 알칼리성에 약하며, 내수성 ·내습성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이다.

바닥은 충분히 건조시켜 평탄하게 하고 균열을 없애며, 알칼리성 이외의 접착제를 사용하여, 무거운 롤러로 내부에 공기가 남아 있지 않도록 압착시켜야 한다.

1955년경부터 염화비닐수지로 만든 각종 바닥재료가 보급되어, 내마모성 ·내노화성(耐老化性) ·착색도(着色度)에 있어서 뛰어나기 때문에 수요는 점차 감소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리놀륨 [linoleum] (두산백과)

 

식각 유리 :: 산으로 표면을 부식시켜 무늬를 새긴 유리.

 

패션은 스스로 정체를 규정한 집단들이나 개인들의 본성과 그들이 공유하는 도덕성과 신념을 반영한다. 그러면서 산업화를 뒷받침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패션은 놀라운 속도로 공예에서 산업으로 바뀌었다.

 

모리셔스 ::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 남서부에 있는 섬나라이다. 1598년 원주민 없이 네덜란드 식민지로 있다가 1715년부터 프랑스 식민지가 되며 인도 이민자가 생겨났고, 1810년 영국이 점령하여 1814년부터 영국 식민지로 지내다 1968년 3월 독립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리셔스 [Mauritius] (두산백과)

 

데님 :: 비교적 두꺼운 면직물의 일종. 현재는 나일론과의 혼방제품도 많다. 보통 날실에 감색사(紺色絲)를 사용하고 씨실에 백색사를 사용하여 능직으로 짠다. 천은 강하고 내구력이 있기 때문에 가구 ·침대 등의 커버나 작업복 등에 주로 쓰인다. 최근에는 비교적 유연한 천을 만들어 실용적인 여성의류나 아동복에도 사용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데님 [denim] (두산백과)

 

패션의 가격 인상은 미술이 미술상이나 영악한 수집가에게 제공하는 가치 상승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패션은 상상도 못할 만큼 훨씬 더 큰 규모로 작동한다. 프랑스의 오트 쿠튀르 아틀리에들과 이탈리아의 장인들, 유럽의 최첨단 시설의 공장들뿐 아니라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노동력 착취 현장까지 돌리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습관적으로 군복을 착용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있는 불안몽을 꾸듯이 공공장소에서 사복을 입고 있는 불안몽을 꾼다고 말했다.

 

카무플라주(camouflage, 위장)는 표면적으로 모든 국가의 군대가 은닉을 목적으로 채택한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은 사실상 구별하기 위한 무늬로 바뀌었다. 모든 나라의 군대가 각자의 카무플라주 패턴을 갖고 있고, 그것을 통해 적군과 아군을 구별한다. 카무플라주는 그것을 그린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게 하려는 것이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편에서 그들의 신분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상당히 가시적인 표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벨크로 :: 벨크로는 옷과 가방에 지퍼 대신 널리 사용되는 물질의 상표명이다. 가볍고 내구성이 있으며 세탁이 가능한 이 물질은 두 조각의 나일론 섬유로 이루어지는데, 한 조각에는 강력한 갈고리가 빽빽하게 위치해 있으며 다른 조각에는 작은 원형 고리들을 포함하고 있다. 함께 붙이면 두 조각의 나일론 섬유가 서로 강력하게 접착되며 다시 뗄 수도 있다.

스위스 엔지니어 게오르그 데 메스트랄(1907~1990)은 1941년 알프스에서 하이킹을 마친 후 강아지와 자신의 옷에 산우엉 가시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현미경으로 옷에 붙어 있는 산우엉 가시를 관찰하던 중 벨크로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산우엉 가시는 지나가는 동물 및 사람에게 들러붙을 수 있는 수많은 미세 갈고리를 가지고 있어 털어낼 때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데 메스트랄은 한쪽 면에는 강력한 갈고리를 사용하고 다른 쪽 면에는 갈고리가 걸리는 원형 고리를 위치시켜 두 면을 붙일 수 있는 잠금 물질의 시장 잠재력을 알아차렸다. 벨크로(velcro)라는 이름은 프랑스 단어인 벨루어(velour)와 크로켓(crochet)을 따서 만들었다.

데 메스트랄은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굴하지 않고 1952년 스위스에 벨크로 인더스트리스를 설립하였으며, 프랑스 섬유 회사에서 온 직조공과 함께 자신의 디자인을 완성하여 1955년 특허권을 취득하였다. 1960년대 초반, 벨크로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된 제품이 되었으며 상표명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직물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벨크로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상을 바꾼 발명품 1001, 2010.1.20, 마로니에북스)

 

카라비니에리(carabinieri) :: 이탈리아의 국가군경찰

 

예술은 세상을 바라보는 한 방식이다. 패션도 그렇다.

 

모닝드레스(예복용 남성 정장)를 입은 케말 아타튀르크의 모습은 터키 어디서나 볼 수 있다. 1920년대에 그의 윙칼라 셔츠는 현대성에 대한 그의 야심을 보여주는 상징이었고, 지금은 세속주의 공화국의 탄생을 상기시키는 유령같은 이미지다. 세기 전환기의 일본 황실이 그랬듯, 아타튀르크도 서양식 의복을 핵심적인 단계로 보았다.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것만큼 아트 디렉터였다고도 할 수 있는 아타튀르크는 페즈(이슬람 국가 남자들이 쓰는 빨간 빵모자) 착용을 폐지하고, 로마자를 도입하고, 새 수도를 건설했다.

 

과거 유럽에서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들은 이구걱인 것에 관심이 꽤 많았다. 중국풍은 18세기에 막강한 영향을 미쳤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떠났을 때는 한때 파라오풍 장식 스타일에 대한 취향도 생겨났다. 그리고 반세기 뒤 19세기 중반에 일본이 외부 세계에 문을 열자 일본식 장식무늬가 일시적으로 유행했다. 그것은 패션보다는 예술에 더 강한 영향을 미쳤다.

 

로퍼 :: 굽이 납작한 구두의 일종.

 

패션이 공예에서 산업으로 변신하면서 생겨난 결과들은 지금도 가속도를 붙여가고 있다. 패션은 다른 형식의 시각 문화들을 흡수하고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술과 디자인을 이해하는 방식까지 변모시키고 있다. 패션은 유명인들에 이끌려가는 우리 사회를 더욱 몰아가며 전통적인 의미의 문화가 고갈되어간다는 거듭되는 신호들을 드러내고 있고, 그러면서도 자체의 매력을 잃어가는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현재 패션 산업은 거의 대부분의 다른 산업들의 본이 되고 있다. 자동차나 가전제품이나 컴퓨터를 만드는 일에서도 패션과 동일한 여러 특성들이 눈에 띈다. 이런 과정들에 속도가 줄고 있다는 신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패션은 노후화 기제를 자체에 내장하고 있는 가장 발달된 형식이며, 문화적 변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이다.

 

 

 

5. 예술

예술이 언어를 창조하면 디자인은 그 언어에 반응한다.

 

우리 중 가장 물질주의적인 사람들조차 쓸모 있는 것보다 쓸모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괴이한 역설이다. 용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유용하지 않다는, 아니면 적어도 썩 많이 유용하지는 않다는 의미에서 쓸모없는 것 말이다. 마놀로 블라닉은 구애를 위한 전시용으로는 꽤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가벼운 운동화에 비해 신고 걷기가 힘들고 훨씬 더 비싼 구두를 만든다. 페라리는 폴크스바겐보다 훨씬 많은 주목을 받지만 도시의 교통수단으로는 실용적이지 않다. 그리고 훨씬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예술은 쓸모없고 디자인은 쓸모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 문화에서 피카소가 르코르뷔지에보다 훨씬 더 중심적인 인물인 것이며, 게르니카가 만약 팔리게 된다면 그 값은 르코르뷔지에의 유니테 다비타숑(집합주택)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다.

 

마놀로 블라닉 :: 영국의 고급 슈즈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이름

3대 구두 브랜드 :: 크리스찬 루부탱, 지미츄, 마놀로블라닉

 

르 코르뷔지에 :: 본명 Charles Edouard Jeanneret-Gris.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건축가, 화가, 디자이너. 스위스 라쇼드퐁에서 출생. 남프랑스의 로크브륀 카프 마르탱에서 사망. 고향인 공업학교에서 기계제조를 배움. 건축은 페레 베런스에게서 단기간 사사받은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 독학하여 도미노(1914~1915), 시트로앵 하우스(1921) 등의 설계안에서 근대주택의 기본형을 추구하여 그것을 고층화한 도시계획을 구상함. 1917년부터 파리에 정주.

[네이버 지식백과]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유니테 다비타숑 :: '주택단위’라는 뜻으로 르코르뷔지에가 마르세유(1947~52), 낭트(1953~55), 베를린(1956~58)에 세운 집합주택의 명칭. 하나의 건물이 하나의 인근주택구를 형성하기에 이렇게 이름 지어졌다. 마르세유를 예로 들면 필로티(pilotis)로 받쳐진 길이 136m, 폭 20m, 높이 60m의 건물 중에 340호, 1600명을 수용하고 각호는 2층이며 벽없는 거실은 모두 베란다에 면하고 있다. 별도로 2층에는 상점가, 옥상에는 유치원∙유원지∙체육관 등이 있다. 르코르뷔지에의 초기로부터의 주택∙도시에 관한 구상을 집대성한 것으로서 치수는 모두 모뒬로르에 따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유니테 다비타숑 [Unite d’Habitation]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유용성은 지위와 반비례한다. 어떤 물건이 쓸모없을수록 그 가치는 더 높아진다.

 

영국에서는 디자인을 진짜 예술과 구별하기 위해 상업 예술이라 칭하던 때가 있었다. 디자이너들이 처음으로 하나의 직업군으로 결사체를 만들기 시작한 1930년에 그들은 스스로 ‘산업 예술가 협회’라고 칭했다. 그때가 바로 디자인이 공예와 쓰디쓴 결별을 치른 후, 현대적인 의미의 디자인으로서 인정받게 된 때다. 주류의 상업 디자인은 이제 브랜드 산업의 멍청한 자식 정도로 취급된다. 그리고 디자인된 물건들의 범주는 예술로 간주될 수 있는 물건들의 범주에 비해, 바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이유로 열등한 것으로 여겨진다.

 

모마(MoMA) :: 뉴욕 현대미술관

 

피닌파리나 :: 자동차 디자인 및 몸체(바디)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이탈리아 기업. 피닌파리나는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인 기업이다. 창업자인 바티스타 파리나(Battista Farina)가 1930년 세운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Carrozzeria Pininfarina)가 피닌파리나의 전신이다. 1893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바티스타 파리나는 형이 경영하던 자동차 공장에서 일을 하다 수제 자동차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를 세웠다. 피닌파리나라는 사명은 창업자 파리나의 이름에 그의 애칭인 피닌(Pinin?’작다’라는 뜻)을 붙여 만들어졌다. 1940년대 이후 피닌파리나는 회사의 주력 사업을 자동차 몸체(바디)를 만드는 것으로 전환했다. 피닌파리나는 1946년 회사의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된 치시탈리아202를 출시했다. 곡선형의 유려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치시탈리아202는 ‘움직이는 예술’이라고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1952년에는 미국 내시자동차(Nash)의 앰버서더(Ambassador)를 디자인하면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같은 해 피닌파리나는 페라리와 제휴를 맺고 212 모델을 선보였다. 페라리와의 제휴는 피닌파리나와 페라리 모두에게 사세 확장의 계기가 됐다. 두 회사는 이후 테스타로사, 미토스, 356T/4 등 명차로 평가 받는 모델을 잇따라 생산했다. 이후 피닌파리나는 피아트, 란치아, 제너럴모터스 등과 제휴를 통해 130쿠페, 베타 몬테카를로(Beta Montecarlo), 크로노스(Chronos) 등을 디자인했다. 2000년에는 대우자동차가 생산한 소형 미니벤 레조의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1982년 피닌파리나 스터디 에 리체르케(Pininfarina Studi E Richerche)를, 1987년 설계 전담회사 프로툴스(Pro-Tools)를, 1991년에는 독일 현지법인을 각각 세웠다. 본사는 토리노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닌파리나 [Pininfarina S.p.A] (기업사전, 2011.8.5, 굿모닝미디어)

 

게르니카 :: 에스파냐 내란을 주제로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피카소의 대표작. 크기는 349×775cm이며, 에스파냐의 소피아왕비 미술센터에 소장되어 있다. 게르니카는 에스파냐 바스크지방의 작은 도시로, 1937년 에스파냐내란 중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의 무차별 폭격에 의하여 폐허가 되었다. 마침 그 해에 열리기로 예정된 파리만국박람회의 에스파냐관(館) 벽화제작을 의뢰받고 있던 피카소는 이 조국의 비보에 접하자, 한 달 반 만에 대벽화를 완성, ‘게르니카’라고 이름붙였다.

이 작품은 파리만국박람회를 비롯하여 구미 여러 나라에서 순회전을 가졌다. 그러나 에스파냐가 프랑코 체제가 되자, 공화파 지지자였던 피카소는 그림반입을 거부하고, 1939년 에스파냐의 민주주의와 자유의 회복 후 반드시 프라도에 전시할 것 등의 조건으로 이 작품을 뉴욕 근대미술관에 무기한 대여형식으로 빌려주었다. 프랑코의 독재가 계속되는 한 조국과 화해할 수 없다고 한 피카소의 신념으로 인해 1981년에야 에스파냐에 반환되어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되었다가, 일부 정치인과 예술가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보관상의 문제로 1992년 소피아왕비 미술센터로 옮겼다.

비극성과 상징성에 찬 복잡한 구성 가운데 전쟁의 무서움,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상처입은 말, 버티고 선 소는 피카소가 즐겨 다루는 투우의 테마를 연상케 하며, 흰색·검정색·황토색으로 압축한 단색화에 가까운 배색이 처절한 비극성을 높이고 있다. 극적인 구도와 흑백의 교묘하고 치밀한 대비효과에 의해 죽음의 테마를 응결시켜 20세기의 기념비적 회화로 평가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게르니카 [Guernica] (두산백과)

 

 

디자인에서는 맥락과 과정이 핵심적이다. 우리가 어떤 타자기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그 타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생산되었으며 값이 얼마였는지를 알아야 한다. 특허에 사용된 도안과 광고, 제작 도구, 그리고 포장까지 보아야만 그 물건의 의의를 파악할 수 있다. 잭슨 폴록이 드립 페인팅 작품을 만든 방법을 아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감동하기 위한 본질적인 전제 조건은 아니다.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 :: ‘사모트라케의 니케’라고도 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승리의 여신인 니케를 표현한 조각상으로 사모트라케 섬에 있던 것을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1945년에 아서 영이 디자인했을 때 47D1은 미국에서 최초로 상업용 면허를 얻은 헬리콥터였다. 당시 47D1은 세상에서 가장 좋고 가장 흥미로우며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헬리콥터라고 묘사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아무도 그런 말들로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항공기술은 어떤 기술보다 빨리 변화했기 때문이다. 드렉슬러가 그것을 모마에 들여왔던 1983년에도 벨 항공사의 47D1 생산 라인은 이미 10년 전에 해체되고 없었다. 오늘날 47D1이 다른 모든 헬리콥터들과 비교해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현대미술관에 걸린 최초의 헬리콥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47D1이 거기 걸려있는 이유다. 그것은 헬리콥터에 관해 말할 만한 헬리콥터 본연의 것 이상으로 모마와 그 역사를 상징한다. 그것은 아름다운 동시에 쓸모없는 것이다.

 

이제 모마(MoMA)의 핵심적인 영구 전시물 중 하나가 된 벨 헬리콥터가 그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것은 이미 기술적으로 쓸모없어진 물건이었다. 그것은 당대 헬리콥터 디자인의 첨단 아이디어들을 표현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술관에 걸린 최초의 헬리콥터였기 때문에 거기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모마의 큐레이터 테리 레일리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이 되었다.

 

2천 파운드짜리 좋은 의자를 디자인하는 것은 20파운드짜리 의자를 디자인하는 것보다 쉽다. 무엇보다도 디자인은 실제로 유용성을 위한 것이다.

 

흑장관 :: 영국 상원의 직위 가운데 하나로 정식 명칭은 Gentleman Usher of the Black Rod이다. 1350년 생긴 이 직책은 왕의 특허장으로 임명되며, 블랙 로드라는 명칭은 그 직위를 상징하는 황금사자 장식의 흑단 지팡이에서 유래했다. 상원에서 왕의 개인 수행원과 호위관 역할을 했다.

 

파빌리온 :: 야유회나 운동회 등에서 사용되는 큰 천막. 경기장 등의 관람석 ·선수석, 병원이나 요양소 등의 병동(病棟), 박람회의 분관(分館) ·전시관 등을 말한다. 라틴어의 파필리온(papilion:원뜻은 나비라는 뜻으로 텐트를 의미한다)을 어원으로 한다. 건축용어로는 ‘파빌리온 시스템(分館式)’ 등의 용어가 있으며, 이는 대개 이동이 가능한 가설의 작은 건축을 가리킨다.

[네이버 지식백과] 파빌리온 [pavilion] (두산백과)

 

칸딘스키 :: 러시아 태생의 화가. 추상미술의 아버지이자 청기사파의 창시자로 사실적인 형체를 버리고 순수 추상화의 탄생이라는 미술사의 혁명을 이루어냈다. 미술의 정신적인 가치와 색채에 대한 탐구로 20세기 가장 중요한 예술이론가 중 한 사람으로 불리며, 바우하우스의 교수로도 재직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두산백과)

 

 

은못 :: 나무로 만든 접합용 못.

 

몬드리안 :: 1872년 네덜란드의 아머르즈포트에서 출생했다. 화가를 지망했으나 가족의 반대로 우선 교육학을 전공하고 1892년 교사 자격을 취득했다. 이어 암스테르담의 국립 아카데미에 진학했고 1893년에 첫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에는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양식을 따라, 선명한 빛과 차분한 색조로 자연 경관을 묘사하였다. 1903년에는 윌링크 반 콜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 그의 그림은 구성과 구조에 보다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후기 인상파 화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아 색채주의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실험하기 시작하였으며, 새로운 표현 양식에 따라 원색만을 사용한 작품을 발표했다. <햇빛 속의 풍차>, <빨간 나무>등이 이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다. 1909년에는 신지학 협회에 가입하여 그 철학을 작품에 반영하기도 했다.

1911년에는 파리의 앵데팡당 전에 작품을 출품하고, <생강단지가 있는 정물> 등을 그렸다. 점차 추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 색채를 제한한 타원형 작품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추상성이 점차 강화되면서 작품에는 수평선과 수직선만 남았다. 몬드리안은 두스뷔르흐, 레크, 휘사르 등과 함께 데 스테일 운동을 시작하며, 수평선과 수직선 및 3원색과 3무채색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신조형주의로 명명되었으며, 시각에서 해방되어 외적 형태 대신 기본적인 색채만으로 양식을 완성했다. 한편 나치 독일의 발흥에 불안을 느끼고 런던으로 망명하였는데, 런던도 폭격당하자 1940년 미국으로 떠나 정착하였다. 미국의 역동적이고 활기찬 분위기에 영감을 받은 그는 색띠와 연속무늬를 사용하여 <뉴욕 시> 등의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의 신조형주의 작품은 빨강, 파랑, 노랑의 3원색과 희고 검은 면, 선에서 모티브를 차용하여 완성되었다. 이와 같은 추상성으로, 근대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로 평가받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디자인은 예술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가정에 대한 별로 설들력 없는 반론은, 예술은 국가의 권력과 종교적 신념을 반영하던 영광스러운 전성기를 지난 이후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주장을 근거로 삼는다. 예술이 비우고 떠난 중심부를 이제는 산업 문화가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해온 논객들도 잇달았다. 미켈란젤로가 아직 살아있다면 대리석 묘를 조각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포드 사의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과거 역사에서 예술 작품이 점유했던 자리는 이제 전쟁의 엔진 역할을 한 기관차나 증기선이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셰익스피어나 단테의 자리에 과학자나 발명가가 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미국 건축가. 위스콘신주 리치랜드센터 출생. 아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사망. 위스콘신 대학에서 공학을 배운 후 설리번 사무실에 취업, 1893년에 독립함. 1901년까지 일리노이주 오크파크에 여러 채의 주택을 짓는 등 50여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완성하였다. 리버사이드 소재 쿤레이 저택(1908), 시카고의 로비 저택(1909)등 ‘프레리하우스(초원의 집)’ 스타일로 설계된 일련의 주택을 지었는데, 이를 당시의 가장 근대적인 주택으로 보고있다. 한편 버팔로의 라킨회사빌딩(1904)과 오크파크의 유니티 교회(1906)를 만들어, 그 개성적 창조력은 유럽 건축계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위스콘신주 스프링그린으로 이주한 1910~1920년대에는 시카고의 미드웨이 가든(1913), 파사데나의 미라드 저택(1923) 등의 주요작을 완성했다. 이 시기에는 초기 프뢰벨의 (Friecrich Frobel, 1782~1852) 적목적(積木的)장식에 남미의 토착적 장식 모티브를 가하여 건물 외부장식에 특색을 띠었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전기에는 벌써 고루한 건축가라고 생각되어 버렸으나, 『낙수장』(1936), 『 존슨 왁스 빌딩』(1936~1938), 아리조나 부스코빌의 『탤리어신 웨스트』 (1938)에서 참신하고 로맨틱한 조형력을 나타내어, 다시 거장의 명성을 회복하였다. 제2차 대전 후의 대표작에는 오클라호마주의 『프라이스 타워』(1956),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1956~1959), 캘리포니아 주 산 라파엘의 『마린카운티 주민센터』(1957~1959 설계, 1966완성)가 있음. 『자서전』 외 많은 저서가 있다. 장남 로이드 라이트도 건축가임.

[네이버 지식백과]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트라팔가 광장 :: "1805년 스페인 남쪽 트라팔가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나폴레옹이 지위하던 프랑스·에스파냐 연합군을 격파하고 영국을 지킨 넬슨 제독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광장이다. 넬슨은 이 해전에서 전사하게 되지만 영국인들은 그가 트라팔가 광장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네 마리 사자상이 수호하고 있는 광장 가운데 있는 높이 50m 기둥 위에는 넬슨 제독 동상이 서 있다. 매년 12월에는 노르웨이 정부에서 직접 보내온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이 광장에 설치된다. 이는 노르웨이가 나치의 지배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준 영국에 감사하는 뜻으로 보내는 것이다. 트리가 설치된 광장은 더없이 낭만적인 빛을 발한다. 연말에 런던을 찾는다면 놓쳐서는 안 되는 풍경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트라팔가 광장 [Trafalgar Square] (저스트 고(Just go))

 

알렉산더 칼더 :: 미국의 조각가. 모빌의 발명자. 필라델피아에서 출생, 뉴욕에서 사망. 기술자로 교육을 받았으나, 여러 직업을 전전한 후 파리에서 회화를 배웠다. 1926년 철사와 나무로 동물을 제작하기 시작하여 그것이 『서커스』의 연작으로 발전. 1928년 뉴욕에서 철사 조각가로 데뷔. 1930년 몬드리안의 작품을 보고 추상 조각으로 전환, 1932년 파리에서 처음으로 발표했다. 『아우라 마그나』(카라카스 대학)는 거대한 모빌로 유명하다. 움직이지 않는 작품은 스태빌이라 함. 키네틱아트(Kinetic Art) 선구자의 한 사람.

[네이버 지식백과] 알렉산더 칼더 [Alexander Calder]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1973년에 만든 작품은 선반에 놓인 물 한 잔으로 보였다. 그러나 크레이그 마틴은 그것이 사실은 상수리나무라고 주장한다. 이는 예술의 뿌리가 미술과 종교임을 상기시키는,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아닐까.

 

우리 모두가 워홀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늘 알고 있던 것을 그가 유쾌한 태도로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현대 예술은 신용 사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착한 병사 슈베이크 :: 체코의 풍자작가 야로슬라프 하세크의 풍자소설 『제2차 세계대전 중 착한 병사 슈베이크가 겪은 운명적 모험』의 주인공

 

그림들은 우리 문화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 근현대미술을 다루는 미술관이라면 반드시 수집해야 할 핵심적인 기둥들인 것이다. 회화는 어느 정도의 가격 수준을 성취했다. 그리고 의자는 회화와 전혀 다른 물건과 가격의 범주에 속하는데,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여전히 회화와 같은 지위는 누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디자인 작품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물건들은 실제로 유용성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있고, 따라서 문화의 위계에서는 본질적으로 쓸모없는 예술의 범주보다 낮은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 피할 수 없는 결론이다. 이는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의 결론과 과시적 소비라는 그의 개념을 통해 입증된 견해다. 일을 안 해도 되는 유한계급은 자기들이 보기에 비천한 일들을 하는 사람들과 자신들을 구별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그래서 자신들이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반영해줄 수 있는 생활 방식과 옷 입는 방식을 선택한다.

코르셋을 입은 채로는 육체노동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므로, 처음 그것이 멋진 드레스 아이템으로 도입되었을 때는 일하지 않는 부유한 여자들만 코르셋을 입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코르셋도 누구나 하는 평범한 것이 되었다. 중하층 계급은 나들이옷의 점잖음을 표현하는 획일적인 요소로 그것을 채택했다. 그러자 순응성의 외적인 표현을 무시해버릴 만큼 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관습적인 가치의 표현이 되어버린 코르셋을 단박에 내던져버렸다.

 

디자인에 적용된 모더니즘의 근본적인 발상 중 하나는 대량생산된 물건들 각각은 나머지 것들과 똑같다는 것이다. 그 물건들에는 발터 벤야민이 예술 작품의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말한 아우라가 없고, 사실상 그것을 가지려는 의도조차 없었다. 대신 그것들은 다른 위안을 준다. 기계로 만든 물건의 마력적인 광택과 완벽함이라는 환상이다. 그러나 처음에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성격을 띨 의도였든 간에 대량생산품들도 빠른 시간 안에 수공예품과 유사한 특징들을 갖게 된다. 디자이너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대량생산된 물건들도 낡으면서 서로 달라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일종의 아우라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들은 새로운 생산 라인에 투자하지 않으면서도 기업 이미지를 신장시키려 할 때 생산은 않을 테지만 많은 관심을 끌 수 있는 콘셉트 자동차를 의뢰한다.

 

체첸 :: 체치냐라고도 한다. 수도는 그로즈니이다. 북(北)캅카스산맥의 남동부에 있다. 남부 국경을 따라 보코보이산맥과 그 북쪽으로 서너 개의 평행으로 산맥이 뻗어 있고, 그 사이에 체첸평야가 펼쳐져 있다. 체첸평야 북쪽에는 순자·테레크의 두 산맥이 있고, 그 북쪽으로 테레크마저지(低地)가 펼쳐진다. 석유·가스를 비롯하여 석회암·이회암(泥灰岩)·석고(石膏) 등이 풍부하다. 주민은 체첸(Chechen)족과 인구시(Ingush)족이 이 60%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러시아인과 기타 캅카스족이다. 언어는 대부분 체첸어를 사용하며, 주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체첸 [Chechen] (두산백과)

 

새로운 로버 체어가 당면한 도전은 (새로운 미니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텐데) 원본의 엉뚱한 매력의 정수를 유지하되, 패러디나 모방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속한 시대의 현대적인 방식으로 그 일을 해내는 것이었다.

 

 

 

+. 에필로그

동행 중 한 여성이 신중하게 절제된 스타일의 1천 5백 달러짜리 에르메스 백을 자기 자리 밑에 놓아두었던 모습이 기억난다. 당시에는 이런 것들이 여전히 개인의 자기존중감에 중요한 것처럼 보이던 물건이었다. 비닐쇼핑 백 하나로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는 물건에 그렇게 무시무시한 액수의 돈을 쓴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고의적인 자해 행위처럼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나도 하나 사고 싶었다.

 

아르누보가 15년 동안 세상을 지배하다가 20세기 초에 느닷없이 사라진 것처럼, 이제 우리도 근본적인 변화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과잉 뒤에는 절제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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