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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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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김선영의 작품 『시간을 파는 상점』.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선정된 당선작으로, 흐르는 시간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소방대원으로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빠의 뜻을 이어받은 주인공 온조. 인터넷 카페에 ‘크로노스’라는 닉네임으로 ‘시간을 파는 상점’을 오픈해 손님들의 어려운 일을 대신 해주면서 자신의 시간을 판다. 범인으로 지목된 아이가 학교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PMP3 도난 사건에 대한 의뢰, 할아버지와 맛있게 식사를 해달라는 엉뚱한 의뢰, 천국의 우편 배달부가 되어 달라는 의뢰 등 여러 가지 의뢰가 이어진다. 그러던 중 PMP3 분실 사건으로 죽음에 이를 뻔한 친구가 밝혀지고 온조와 친구들에게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오는데….
저자
김선영
출판
자음과모음
출판일
2012.04.10

 

첫 번째 의뢰인, 그놈

우리 생활이 알다시피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의 연속이지 않습니까.

 

뜨거운 시멘트 바닥 위에 패대기쳐진 금붕어처럼 몇 번인가 몸통이 꿈틀하더니 그대로 잦아들었어요.

 

내일 보자는 그 말은 어떠한 협박보다 더한 폭력이 된 거죠. 그 밤이 얼마나 길었을까요?

 

전 친구에게 뭔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일을 저지르지 않으면 폭발할 수밖에 없는 발화 지점 말입니다. 저도 가끔 그럴 때가 있거든요.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때, 살아 있는 것이 오히려 견딜 수 없을 때, 그럴 때는 뭔가 자극적인 것이 필요하거든요.

 

아, 그 숨 막히는 정적,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 누구나 다 용의자이며 피해자였습니다.

 

PMP를 잃어버린 두 번째 아이는 잠깐 당황하는가 싶더니 오히려 얼굴이 편안해 보이더군요. 그 아이의 불편함이 온전히 저한테로 옮겨온 겁니다. 이제 크로노스 님한테 갔겠죠. 주인장과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또,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대체 이놈의 심장은 어떻게 된 건지 눈길만 주어도 오버 작동을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분수없이 펌프질해대는 심장 소리를 누군가 꼭 들을 것만 같았다.

 

일본어 책이 퉁퉁 불어 흐들흐들 풀어져 문제의 PMP만 백골처럼 드러날 것 같았다.

 

 

 

축 개업, 시간을 파는 상점

삶은 ‘지금’의 시간을 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아쉬운 건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죄스럽게 만드는 것이며 고통의 극한까지 몰고 간다는 것을 알았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게 삶과 죽음의 차이인가? 아빠는 저렇게 편안하게 누워 있는데 살아 있는 엄마와 온조는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해마다 봄은 왔다. 눈부셨다. 그래서 더욱 슬펐다.

 

일찌감치 이 사회가 얼마나 매몰차고 사나운 풍랑을 안고 있는 바다인지 알게 되었다.

 

편안하면 다른 어떤 것이 불편하고 지나치게 힘들면 다른 어떤 것이 위안이 되기도 하는 거야.

 

시간은 금이다, 라는 말이 좋은 말이기도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 말인지도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온조도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은 양쪽 눈 가장자리에 시야 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오로지 앞만 보고 질주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온조는 로봇 같은 경주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왜 뛰는지는 알아야 경주에서 이기든 지든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을 하기 때문에 누구나 대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것과 같습니다. 나쁜 짓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불편하다는 건 자기 살을 스스로 뜯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제 욕심만 채우고 남을 해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세상에는 남들과 나누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살아볼 만한 세상이 되는 겁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노력한다면 그것은 큰 파도가 되어 세상을 바꾸기도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신 크로노스의 모습을 올려놓았다. 오른손에는 모래시계를, 왼손에는 하르페(반월도)를 잡고 구름 위에 앉아 땅을 지그시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크로노스는 턱수염을 다보록하게 달고 있는 노인이다. 등에는 커다란 천사의 날개를 달고 있지만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하르페로 거세하고, 제 능력보다 뛰어난 아들이 태어난다는 말에 레아가 낳은 자신의 핏덩이를 심장부터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신이다. 시간이란 그렇게 가차 없다는 뜻일까?

 

크로노스 :: 천공신(天空神)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자식인 티탄신족(神族) 가운데 최연소의 신으로, 가이아는 그에게 명하여 자식인 키클로페스(외눈 거인)들을 타르타로스(지옥)에 가둔 우라노스를 습격케 하였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지배자가 된 크로노스의 시대는 인류의 황금시대로, 싸움이 없고 죄악도 모르며 대지는 절로 열매를 맺었다.크로노스는 누이 레아를 아내로 삼았는데,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 등 6명의 자식이 태어났다. 크로노스는 자기 자식에게 지배권을 빼앗긴다는 신탁 때문에 태어난 자식을 차례로 삼켜버렸는데, 마지막 제우스가 태어났을 때는 레아가 크로노스를 속여 돌을 삼키게 함으로써 살아 남아 마침내 아버지를 추방하게 되었다. 로마 신화에서는 농업신(農業神) 사투르누스와 동일시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크로노스 [Kronos / Cronus / Cronos]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세상에서

가장 길면서도 가장 짧은 것,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느린 것,

가장 작게 나눌 수 있으면서도 가장 길게 늘일 수 있는 것,

가장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가장 회한을 많이 남기는 것,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소한 것은 모두 집어삼키고,

위대한 것에게는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는 그것,

그것은 무엇일까요?

어 서 오 세 요.

여기는 ‘시간을 파는 상점’입니다.

당신의 특별한 부탁을 들어드립니다.

 

영국의 물리학자 M. 패러데이가 누군가에게 수수께끼처럼 물은 말인데, 상점의 메인 화면으로 쓰기에는 딱이었다.

 

패러데이 :: 런던 근교의 뉴잉턴 버츠 출생. 12세 때부터 서점 겸 제본업자 밑에서 일하며 틈틈이 읽은 책에서 과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일반 강연을 들으면서 화학실험을 시도하였다. 19세 때 H.데이비의 강연을 듣고, 그의 도움으로 1813년 왕립연구소의 실험조수가 되었다.
여기서 데이비의 실험을 보조하면서 화학 연구를 시작, 염화질소 연구로부터 여러 가지 특수강(特殊鋼) 연구(1819∼1824), 염소의 액화 연구(1823), 벤젠 발견(1825) 등 실험화학상 뛰어난 연구를 하였고, 1824년 왕립학회 회원, 다음 해 왕립연구소 소원(所員), 연구소 주임이 되었다.
물리학 특히 전자기학(電磁氣學)에 흥미를 가져 H.C.외르스테드가 발견한 전류의 자기작용(磁氣作用)을 조사, 연쇄적 회전(전자기회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1821). 그 역현상인 자기의 작용에 의해 전류를 만들어내는 연구에 착수하여, 회로(回路)의 개폐에 의하여 제2의 회로에 발생하는 전류, 전자석, 이어 자석에 의한 똑같은 전류를 검토하여 전자기유도를 발견하였다(1831). 이것으로 맴돌이전류와 지구자기(地球磁氣)에 대한 응용에서도 성공하였으며, 자체유도(自體誘導)를 발견 ·해석하였다.
패러데이의 전자기학 연구는 다방면에 걸쳐 있으며 통일적이었다. 전기화학의 기초를 만든 전기분해법칙 발견(1833)과 방전현상 연구가 있는데, 이런 성과들에서 여러 가지 전기의 동일성을 간파, 보편성을 가진 통일 개념으로서의 전기를 제창하였다. 또한 그 때까지의 원격작용론(遠隔作用論)을 버리고 전자기적인 힘의 근원을 공간적인 상태로 되돌리려는 근접작용론을 제창하여(1827),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의 길을 열고, 빛의 전자기파론의 선구적 고찰도 하였다.
이 밖에 진공방전에 관한 ‘패러데이암흑부’(1838), 자기장(磁氣場)에 의한 편광면(偏光面)의 회전(패러데이효과), 반자성(反磁性) 발견 등 중요한 공헌이 많았다. 일반 강연도 훌륭하여 크리스마스 강연집인 <양초의 과학>은 오늘날에도 읽혀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이클 패러데이 [Michael Faraday]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잘린 도마뱀 꼬리

열세 시라는 시간은 분명 존재할 거 같아요.

 

시간은 그렇게 각져 있지 않다는 말과 통하는 것이 아닐까. 시간이란 흐르는 것이지만 흘러가버린 시간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시간은 현실 속에서 시계로만 재단할 수 있는 것 외에 그것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면 상상 같은 거 말이에요. 아니면 추억도 현실 속의 시계로 재단할 수 없지만 우린 분명 그때의 시간을 불러올 수 있잖아요.

 

“그때 그 시간과 장소에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면 시간은 당신을 뒤로 물러나게 한다.”

상상, 추억, 기억 이런 것들은 지금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아니지만 분명 지금의 나를 움직이는 것이 분명해요.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있기에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는 거거든요.

 

시간은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몸에 켜켜이 쌓이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스무 살이 된다면 난 반드시 무얼 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하며 행동하면 미래의 시간도 현재로 가져오는 것 아닐까요,

 

 

 

크로노스 대 카이로스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상황이었다. 피아노 곡은 부드러운 선율로 레스토랑을 적시고 있었다. 쿵쾅거리는 온조의 심장 박동에 비한다면 전혀 얼토당토 않는 박자였다. 가끔 두 가지 음악을 동시에 들을 때, 예를 들어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컬러링과 시디플레이어의 음악이 겹칠 때, 아무리 훌륭한 선율이라도 얼마나 웃기는 소음으로 변질되던가.

 

밥은 입과 손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귀와 눈과 마음으로 먹는 것이라면서

 

말이 없을 때의 어색함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 미처 몰랐다. 몸 둘 곳은 물론 눈 둘 곳도 없었다.

 

난감했다. 앞뒤 다 잘라내고 몸통만 그것도 몸통의 부속만 듬성듬성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

 

속도가 너무 빨라서 어지러울 지경이야. 따라잡느라 허둥대는 것보다 내 식대로 내 시간대로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

 

기계든 사람의 관계든 지나치게 빠르면 꼭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어.

 

칠십을 살아온 사람과 이제 열여덟 해를 살아온 사람의 언어는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갈 수도 없고 안 따라붙자니 자꾸만 소외되는 느낌이 들어. 그 소외를 부추기면서 자꾸만 새로운 걸로 소비하게 만드는 게 요즘 시대야. 그렇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서로 부채질해. 사람들은 그것에 발맞추기 위해 더 많이 일하고 더 빠른 속도로 소비하는 거지. 그런 걸 쓰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데도 말이야. 똑같은 성분의 약을 먹고 하나같이 취해 있는 거 같아.

 

“나도 거기의 중심에 있었지. 달리지 않으면 넘어진다고만 생각했지, 달리다 힘들면 멈출 수도 걸어갈 수도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 어느 순간, 뭔가에 둘러싸여 둥둥 떠밀려 간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네. 그것을 알아챈 순간 아주 기분 나빴어. 내가 가야 하는데 누군가한테 등 떠밀려 간다고 생각해보게. 죽을 때가 되니까 정신이 든 거지, 허허허.”

 

그런 것이 없으니 사람에 대한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 같아. 기계 대신에 사람이 들어오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미덕들이 살아나. 시간이 나를 위해 움직인다고 해야 하나? 시간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뒤로 물러나 있는 듯한 느낌 같은 거야. 한결 부드럽고 친절한 시간이 되는 거지.

 

카이로스 :: 카이로스(kairos)는 고대 그리스어로 '시간'을 뜻하는데, 특히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의미로 적용되는 '주관적 의미의 시간'을 가리킨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카이로스는 제우스의 막내 아들로, '기회의 신'으로 불렸다. 카이로스의 앞머리는 길고 숱이 풍성한 데 반해, 뒷머리는 민머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한 등과 두 발목에는 날개가 달려 있으며, 한 손에는 저울, 다른 한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었다.
그의 앞머리가 무성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를 발견했을 때는 머리가 길어 쉽게 붙잡을 수 있지만, 뒷머리가 민머리이고 발에도 날개가 달려 있기 때문에 그를 지나치게 되면 다시는 그를 붙잡을 수는 없었다. 그가 저울을 들고 있는 이유는 기회가 앞에 있을 때 저울을 꺼내 정확히 판단하라는 의미이며,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는 이유는 단호하게 결단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카이로스는 '결정적 순간' 혹은 '기회'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한편, 고대 그리스에서 시간을 의미하는 또 다른 표현으로 크로노스(chronos)가 있다. 이는 과거에서 미래로 일정한 속도와 방향으로 흘러가는 연속된 시간으로, 누구에게나 객관적이고 동일하게 적용되는 시간을 가리킨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이로스 [Kairos]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것은 타인이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그 당사자 외에는 누구도 그와 같은 심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온전히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할 슬픔이고 시간인 것이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대단한 힘이 있는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같은 공기 속에서 같은 음악을 들으며 마주 보고 밥을 먹는다는 것은 묘한 힘이 작용하는 것 같았다.

 

인간의 본능 중 행복한 행위를 함께 하고 싶은 욕구, 그게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그 시간이 하나의 의미로 남는 것.

 

어떤 사람에게는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상처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부른 말 걸기는 삼가야 한다.

 

열어놓은 창문 틈새로 봄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지구의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

다시는 이 세계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서러움이 밀려왔다. 세상은, 온조가 이 교실을 나가기 전과 다시 돌아왔을 때로 나누어져 확연히 달라져 있을 것 같았다.

 

담임의 책상 위에는 교재와 교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한 옆에 23.5도로 기울어진 지구본이 놓여 있어서 더없이 산만해 보였다. 그 어떤 것도 각을 맞추어 똑바로 놓여 있는 것이 없었다. 제각각 각을 내세우며 놓여 있거나 쌓여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은 개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담임은 물건들을 손으로 쓱 밀친 후 책상 위에 한쪽 팔을 걸쳤다. 그 바람에 책상 가장자리에 있던 지구본이 밀려 모서리에 간당간당 걸려 있는 꼴이 되었다.

 

뭔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공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어지러웠다.

 

남의 일이라면 열일 제쳐두고 참견하는 스타일이 정작 제 일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 끙끙대는, 실속이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는 아이가 홍난주이다.

 

최대한 시니컬하게 드라이하게 하드보일드하게 말해야 한다.

 

온조는 말려들지 않도록 감각을 예민하게 벼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촘촘하게 짜인 이 그물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서쪽 복도 창으로 붉은 노을이 비쳐 들었다. 운동장 가의 자작나무 가지 사이로 저녁노을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 막 새 잎을 틔우기 시작한 자작나무 이파리는 여름이 되면 바람을 타고 스사악스사악 소리를 낼 것이다. 차가운 풀냄새가 훅 끼쳐오는 여름 어스름 녘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용서를 하고 덮어두는 것이 과연 최선일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하게 분별하는 것이 없다면 올바름이나 정의는 과연 어느 자리에 서야 할까요?”

 

이 세상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을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아.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난 소녀에게 눈물의 판결을 내려준 예가 있어. 절도죄로 얼마의 형량과 얼마의 벌금이 내려질지 자못 긴장된 분위기의 법정이었는데 판사가 들어오더니 그 소녀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따라 외치라고 했단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게 생겼다, 라고 판사가 외치자 영문을 모르는 소녀는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따라했겠지? 그것도 끝까지 다 맺지 못하고 주저하면서 말이야. 그러자 판사가 더 큰 소리로 외치라고 했단다. 나는 그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나는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다. 판사의 말을 따라 외치던 소녀는 나는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다, 라는 말을 다 맺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어.”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담임도 목이 메는 듯 몇 차례 말을 끊고 침을 삼키며 이어갔다.

“판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쳤다. 나는 그 누구보다 소중하다, 라고. 소녀가 마지막으로 외쳤을 때 이미 법정은 울음바다였어. 판사는 그 소녀가 그동안 11건의 절도와 폭행으로 여러 차례 소년 법정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소녀가 법정에서 일어나 외치는 걸로 판결을 내린 데는 그 소녀의 과정을 알았기 때문이야.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모범생이었던 그녀는 귀갓길에 성폭행을 당했고 그 이후 자기 자신을 버리듯 겉돌기 시작한 거야. 치료를 받았지만 그것으로 회복되지 않았고 더욱 심한 탈선으로 이어졌어. 판사는 마지막으로 방청석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모두 이 소녀의 가해자라고.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소녀의 자존심을 다시 세워주는 것뿐이라고. 소녀가 다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뿐이라고.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하면서 눈물의 판결을 내렸다는 이야기야.”

 

진실은 저 멀리 우주까지 움직일 수 있다

 

우린 아직 미성년자이고 단순한 호기심이나 유혹에 약할 나이라고 하면서 그 나이 때는 물건을 되돌려주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용서가 가능하다

 

오늘도 역시 긴 하루였다.

 

 

 

어머니를 냉동실에 넣어주세요

유스타키오관 :: 중이(中耳:고실)와 인두(咽頭)를 연결하는 관으로 주로 귀 내부와 외부의 압력을 같도록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관(耳管)·구씨관(歐氏管)이라고도 한다. 이탈리아의 해부학자인 B.유스타키오가 발견하였다. 구강과 식도 사이의 소화관인 인두(pharynx, 咽頭)의 위쪽부분과 중이를 연결하고 있는 막으로 싸인 관이다.
일반적으로 중이와 인두 사이에 기압차가 생기게 되면 귀가 멍해지는데, 이때 인두 위쪽에 막혀 있던 유스타키오관을 의식적으로 열면 중이 안쪽의 기압과 외부의 기압과 같아져서 귀가 멍해지는 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 유스타키오관을 열기 위해서는 침을 삼키거나 하품을 해야 하며, 비행기의 이착륙 시와 같이 기압의 차이가 갑자기 일어날 때 이러한 행동을 하면 귀가 멍해지는 현상을 줄일 수 있다. 이외에도 유스타키오관은 목과 구개(口蓋, palate) 뒤의 몇몇 근육의 작용에 의한 분비물이나 감염에 의한 부산물들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유스타키오관 [eustachian tub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꿀벌은 자연이다. 거대 자연 말이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부 같지만 실은 그것이 자연 질서의 전부인 것이다. 왜냐? 그것으로 인해 전부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아주 견고하기 때문에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것이 오히려 어이없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봄이 슬프다. 하염없이 슬프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슬프고 그 결과로 흐르던 물이 거꾸로 치솟는 것처럼 말 그대로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두렵다.

 

절대 불변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의 반란이 시작된 거다.

 

처음이 아니라는 것은 그만큼 심적 안정을 준다.

 

할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감정이 강토 안에 넘쳐흐르는 것 같은데 그것을 가까스로 막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고이고 고여 목까지 차오르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아플 것이다.

 

무슨 부탁일지 겁나기도 했지만, 할아버지의 목소리에는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은 간절함이 들어 있었다.

 

익명성은 사람을 모든 경계로부터 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마치 뒤죽박죽된 퍼즐 조각을 쌓아놓고 하얗게 비어 있는 퍼즐판을 보는 기분이었다.

 

불땀 :: 화력이 세고 약한 정도.
불땀이 좋다.
[네이버 국어사전] 불땀

 

두 번째라는 것은 그만큼 상대에게 마음을 많이 보일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같은 사람을 여러 번 만난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만남은 없다. 무엇이든 바뀌어 있다. 오늘의 나는 분명 어제의 나와 다른데 타인과의 만남이란, 얼마나 많은 변수를 갖고 있는 것일까.

 

사랑코트 :: ‘사란코트(Sarankot)’라고도 부른다. 간다키 구역(Gandaki Zone)의 해발고도 1600m의 산악지대에 위치한다. 지대가 높아서 히말라야의 전경이 시원하게 바라보인다. 특히 해가 뜨거나 질 때 황금빛으로 물드는 경관이 유명하다.
네팔의 제2도시이자 최고의 휴양도시 포카라와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 형성되었다는 도시 북서쪽의 포와호(湖)가 잘 보인다. 현지 주민들이 신성시하여 등산이 금지된 마차푸차레(6,993m)와 히말라야 중부에 있는 연봉(連峰) 안나푸르나도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랑코트 [Sarangkot]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마차푸츠레 :: 네팔 북중부의 안나푸르나히말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6993m이다. 히말라야산맥의 일부인 안나푸르나히말의 주요 능선에서 남쪽으로 뻗어나온 길쭉한 지맥 능선 끝에 있으며, 이 능선은 안나푸르나생추어리(Annapurna Sanctuary)의 동쪽 경계를 이룬다. 안나푸르나생추어리는 트레킹 장소로 인기가 있으며, 안나푸르나 남쪽 면과 수많은 작은 봉우리들을 등반하기 위한 베이스캠프 장소로 이용된다. 주요 타운인 포카라(Pokhara)에서 북쪽으로 약 25㎞ 지점에 있으며, 현지 주민들이 신성시하여 등산은 금지된다.
안나푸르나히말의 남쪽 능선에서 특히 낮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짧은 수평거리 안에서 엄청난 수직기복을 이룬다. 게다가 능선이 가파르고 뾰족하기 때문에 주변의 일부 봉우리보다 낮지만 특별히 이목을 끈다. 이중의 봉우리가 물고기 꼬리처럼 생긴 데서 '피시테일(Fish's Tail)'이라는 별칭이 생겼고, 알프스산맥의 마터호른산과 비교하여 '네팔의 마터호른(Matterhorn)'이라고도 불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차푸차레 [Machapuchar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가족이 떠나버린 텅 빈 집, 외로움이 할머니의 몸을 속속들이 파고들어 하나씩 무너뜨렸다.

 

다 닳아버려 더 이상 쓸모없어진 건전지 취급을 받는 느낌이었다. 에너지를 다 쓴 건전지는 쓰레기통밖에 갈 곳이 없다.

 

먹장구름 :: 먹빛같이 시꺼먼 구름.
먹장구름이 가시다.
[네이버 국어사전] 먹장구름

 

소나기는 산을 넘어 호수 위로 걸어왔다. 소나기의 걸음걸이가 보였다.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의 배반

 

늘 우리 곁에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것들의 반란. 그것들은 등을 돌리는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비수를 꽂는 부메랑이 되는 것은 아닐까.

 

 

 

천국의 우편배달부

‘시간을 좀 더 잡아두고 싶은 간절함’

 

미농지 :: 닥나무 껍질로 만든 썩 질기고 얇은 종이의 하나. 묵지(墨紙)를 받치고 글씨를 쓰거나 장지문 따위에 바르는 데에 쓰는 종이로, 일본 기후현(岐阜縣) 미노(美濃) 지방의 특산물인 데서 생긴 이름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미농지 [美濃紙]

 

달에 두 번, 온조는 이때만큼은 천국의 속삭임을 듣는 것만 같았다.

 

습자지 :: 글씨 쓰기를 연습할 때 쓰는 얇은 종이.
습자지에 붓글씨를 쓰다.
[네이버 국어사전] 습자지 [習字紙]

 

그것들은 ‘시간을 좀 더 잡아두고 싶은 간절함’들이었다. 아니 ‘절박함’이었다.

 

시간은 그렇게 안타깝기도 잔인하기도 슬프기도 한 것인가. 삶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 사이의 전쟁 같기도 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는 그렇게 애달파 하고, 싫은 사람과는 일 초도 마주 보고 싶지 않은 그 치열함의 무늬가 결국 삶이 아닐까?

 

시간을 뛰어넘어 죽음도 저만치 미뤄놓는 힘이 있었다.

 

 

 

자작나무에 부는 바람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몰라주는 건 가슴 한복판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픈 거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강팔지다 :: 성질이 까다롭고 괴팍하다.
강팔진 성격.
[네이버 국어사전] 강팔지다

 

느긋함과 짓궂음, 때로는 진지한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난주가 아니었다.

 

말은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아, 불확실한 걸 확실하게 만드는.

 

그냥 가슴으로 쑥 들어와서 다짜고짜 눌러앉아 파내지도 못하게 만드는 거 있지.

 

신선한 청량감 있지? 갈증날 때, 사이다 캔 뚜껑을 막 따서 들이켰을 때 첫 모금의 그 짜릿함 같은 거.

 

비논리에는 가속도가 쉽게 붙는 모양이다. 걷잡을 수 없이 속도를 올리고 있는 차를 난주가 잡아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주는 또 온조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 얼마나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그럼, 내 하나뿐인 절친이 이렇게 공부도 못하겠고 밥도 못 먹겠다고 하는데 지옥불에 들어가 모란꽃이라도 꺾어야 한다면 해야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말이야.” 

 

초여름 밤공기가 시원했다.

 

요즘 엄마는 생기가 넘쳤다. 아침저녁 잠깐 보지만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24시간 중 고작 30분의 공존이지만 그 정도면 상대의 변화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시간이다.

 

택시 타고 가기에는 가깝고 걸어가기에는 조금 먼, 애매한 거리다. 그 거리는 애매한 온조의 입장 같기도 했다.

 

궁굴리다 :: 
1. 이리저리 돌려서 너그럽게 생각하다.
남자, 여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의 종잡을 수 없음과 부질없음에 대해 생각을 궁굴리고 또 궁굴렸다. 출처 <<박완서, 미망>>
2. 좋은 말로 구슬리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무작정 소리 지르지 말고 잘 궁굴려라.
[네이버 국어사전] 궁글리다

 

머리와 꼬리는 모르겠지만 네 몸통만은 알고 있다는 듯이 들렸다.

 

엄마는 비꼬는 건지, 떠보는 건지 모를 말투로 말했다.

 

“안다면, 난주가 보내는 신호에 최소한 답이라도, 아니 거절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난 너와 생각이 달라. 상대를 좋아하는데 꼭 상대의 동의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봐. 그것을 상대에게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 나의 마음이 이러니까, 너도 그래야 한다 뭐 그런 거는?”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인데,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비난받을 일도 그렇다고 무시당할 일도 아니라는 거야.” 

“그렇다고 다 존중받을 일도 아니지.”

 

본인은 기억하고 있지만 상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느냐며.

 

사랑은 장벽이 많을수록 더욱 애틋하며 절절한 거라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장벽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난주의 내부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어느 한순간의 시간에 멈춰버리는 것은 아닐까? 정이현이 작년 수돗가의 햇살 속에서 그대로 멈춰 있고 난주가 정이현을 처음 봤을 때 심장이 벅차올랐던 그 순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듯이. 그리고 엄마가 아빠와의 추억에 늘 머물러 있듯이.

 

 

 

가네샤의 제의

가네샤 :: '군중의 지배자'란 뜻이다. 시바와 파르바티 사이에 태어난 아들인데 지혜를 성취시키는 신으로 숭배된다. 가네샤는 시바를 섬기는 가나(Gana)들의 우두머리로서 가나 즉, 군중을 지배하는 신이다. 학문적인 서적의 첫머리에 이 신에 대한 귀의(歸依)의 뜻을 표하는 시구가 실리는 일이 많다.
그 모습은 코끼리얼굴에 긴 코가 있고, 이빨은 하나이며, 팔은 넷이요, 툭 내민 배에 뱀으로 띠를 두르고, 쥐를 타고 있다. 이 신을 믿는 신앙이 인도에서 생긴 것은 대략 6∼7세기 전후로 생각된다. 힌두교 가나파탸파(Gānapatya 派)의 주신(主神)이다. 오늘날에도 그 신앙은 왕성하다. 불교, 특히 밀교(密敎) 속에 수용되어 대환희자재천(大歡喜自在天)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네샤 [Ganesha]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말은 먹은 맘과 다르게 나왔다.

 

“범생이인 것 같으면서도 뒤로는 호박씨가 수북한 애. 규범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은데 그 속에서도 아주 자유로운 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그게 궁금하다는 얘기지.”

 

너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알고 싶어해?

 

옴팡지다 ::
1. 보기에 가운데가 좀 오목하게 쏙 들어가 있다.
우리를 안내해 준 안내원은 광대뼈가 튀어나온 데다 눈이 옴팡져서 더 매섭게 보였다.
2. 아주 심하거나 지독한 데가 있다.
옴팡지게 술값을 뒤집어쓰다.
[네이버 국어사전] 옴팡지다

 

발밑의 자갈들이 자기들만의 비밀을 공유하듯 째그락째그락 속삭였다.

 

혜지는 늘 아무 일도 없는 아이처럼 보였다. 속엔 거센 파도가 치는데도 겉으로는 얼어 있는 호수를 연출하니 그 경지도 참 기네스북에 오를 감이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홍난주의 머리를 저토록 복잡하게 만들어 놓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실로 위대한 것이다.

 

혼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더 완벽한 그리움이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있기를 바라며.

 

관계를 규정하기엔 우리 나이는 아직 어리다.

 

중증이다. 난주는 여전히 꿈에 젖은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난 이제껏 외톨이였어. 외로운 섬이었다고. 아무에게도 다리를 놓을 줄 모르는 외떨어진 섬 말이야. 처음으로 다리를 놓고 싶은 맘이 생겼어. 낯간지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가 난 건 처음이야.

 

네가 본 건 나의 자유분방함도 자신감도 아닌, 내가 나를 그냥 인정하는 것을 본 건 아닐까? 잘은 모르겠지만.

 

나를 솔직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상대방과의 거리도 줄어들지 않아.

 

그래서 마음이 놓였는지도 모르지. 말로 선명하게 할 수 없지만 어떤 느낌 같은 걸로 말이야.  

 

가네샤: 지혜의 신이라는 뜻. 힌두교에서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는 신 이름이야. 문학과 학문의 보호자.

 

혜지의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혜지의 유일한 언어였다.

 

네곁에는 너무나 조용했다. 한 통의 쪽지도 메일도 없이 잠잠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거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제껏 아무런 연락이 없다면 불씨는 저절로 사그라진 것은 아닐까?

 

이젠 마음을 놓아도 되지 않을까? 고요한 이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불곰과 살구꽃

그러니까 엄마 아빠는 여름철 장맛비가 맺어준 인연이었다.  

 

“나중에 말할게. 지금은 아니야. 온조 너도 그렇고 엄마도 아직 마음이…….”

엄마는 식탁 위에 떨어진 물방울을 검지로 찍어 이리저리 그림을 그리며 말했다.

 

남자라는 말을 할 때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가 한쪽 구석으로 확 밀려난 느낌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이 순식간에 옮겨갈 수 있다는 거.”

 

갑자기 한기가 오스스 들었다. 거친 풍랑 속을 조각배 하나로 엄마랑 단둘이 가다가 달랑 혼자 남겨진 기분이랄까.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 짐작했지만 생각보다 담담하지 않았다.

 

억지 쓴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생떼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다. 아빠가 생각난 것은 아니었다. 아빠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엄마 마음에 온조가 전부가 아닌 게 서운한 거였다.

 

“엄마는 늘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그런데 그 시간은 어떤 예고도 없이 사라져버렸어. 늘 바쁘다고 하면서 필요 없는 시간들을 너무 많이 소비하면서 시간 없다고 한 거라는 것을 알았어. 엄마는 다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 엄마는 소중한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그게 결국 엄마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믿어.”

 

“엄마 옆에 새로운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아빠와의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얘기야. 조금 흐릿해진 빛깔만큼 누군가 대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지금의 감정을 부정하고 싶지도 피하고 싶지도 않아. 그게 엄마의 솔직한 심정이야. 그치만 엄마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우리 온조니까, 네가 상처받고 싫어한다면 당연히 엄마는 접을 거야. 너희들 말대로 아주 쿨하게. 왜냐, 엄마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온조, 너니까.” 

 

 

 

일 년 전에 멈춘 시계

장마 끝에 말갛게 벗겨진 하늘엔 어느새 가을빛이 묻어났다. 서쪽 하늘엔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구름이 몽글몽글 피었다. 맑은 바람이 불었다. 자목련나무의 꽃 진 자리마다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난주에게 말할까 하다 오늘은 혼자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입 끝에 뱅뱅 도는 걸 꾹꾹 누르는 중이다.

 

그랬던가. 하여간 홍난주 기억력은 알아줘야 한다. 정작 말한 사람은 까맣게 잊고 있는데 문득문득 토씨 하나 안 빠뜨리고 그대로 재현해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난주가 되새김질시켜 준 말들은 처음 듣는 것처럼 생경스러웠다.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단단하게 뭉쳐 있다.

 

사랑에는 여러 빛깔이 있는 법이다.

 

난주의 매력은 가끔 이렇게 어른스러운 말을 할 때 더 빛을 발한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했다.

그 조각배에서 엄마가 내린 것이 아니라 든든한 키잡이 하나 더 탔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거센 파도가 덮쳐온다 해도 엄마의 봇물 같은 웃음과 불곰의 진중함이 조각배의 균형을 잡아줄 것이다.

 

하여간 말하는 본새라고는 꼭 그렇게 해야 지가 멋있는 줄로 무한 착각하는 거지.

 

“착각하지 마. 누가 그래? 너 폼 잡는 게 멋있다고. 그건 그 사람을 잘 몰랐을 때 잠깐 드는 거지, 정작 상대를 사로잡는 건, 그 사람의 솔직함을 봤을 때 아니야? 방금 전 너의 모습처럼 말이야.” 

 

혜지는 아무래도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이 더 편한 듯했다. 이제 막 장막 뒤에 숨어 있다가 자신을 드러내려고 할 때의 두려움과 낯가림이 혜지를 가로막고 있는 듯했다.

 

“얼마 전에 내한공연도 했는데 앨범 들을 때와는 확실히 달라. 폭풍처럼 몰아치는 강렬함이 원시 그대로 살아 있는 느낌이었어. 야생의 짐승처럼 말이야. 헤비메탈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아무것도 덧붙이거나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원시 상태 말이야. 그 속에서 비로소 내 심장이 더운 김을 내며 힘차게 풀무질하는 것 같아.” 

 

그때의 비 냄새가 코끝에 묻어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을비가 오려는 모양이다. 날이 잔뜩 흐렸다.

 

“제 생각이 변하기 전에 붙잡아두고 싶었어요.”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걱정부터 앞세워 미리 차단하는 어른들의 섣부름이 싫었다.

 

모리배 ::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사람. 또는 그런 무리.
그 친구는 간악한 모리배에 걸려 장사 밑천까지 날렸다.
[네이버 국어사전] 모리배 [謀利輩]

 

불곰에게 시간을 파는 상점을 변호하다 그간 가물가물하게 잡히지 않던 것이 확연해졌다. 시간을 파는 상점은 온조가 만든 작은 울타리를 넘어 훨씬 많은 것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온조 개인의 상점이 아닌 우리의 상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상점의 운영 방법은 수정되어야 한다.

 

 

 

망탑봉 꼭대기에서 뿌려주세요

명치끝에 강토가 얹혀 있다. 법원까지 간 두 어른 사이에서 오랜 시간 견디고 있을 강토의 쓸쓸함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어떤 사람과의 시간을 자꾸 피한다면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정말 소중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이 시간에 그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하는데,

미루거나 회피한 것은 아닌지,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같이 있어줘야 하는 건 아닌지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한 만큼만 꼭 그만큼만 저도 아버지께 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깊고 긴 한숨으로 답을 하더군요.

할아버지와 내가 아버지께 원하는 건 함께할 수 있는 약간의 시간뿐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을 못하더군요. ㅠㅠ;

가장 소중한 것들을 제쳐두고 갖고 있는 게 무엇이냐고, 남아 있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역시 대답을 못하더군요

 

엄마가 그랬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사람들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해결 못할 일은 없다고 했다. 그들로 인해 생긴 문제는 그들과 또 다른 그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돈이 개입되지 않으면 훨씬 더 좋은 경우가 있다고 했다. 시민단체의 자원봉사자들을 움직이는 힘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신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돈이 개입되면 사람들은 시간 대비 자신의 수고를 계산하기 때문에 신명은 그만큼 줄어들어 단박에 시들해진다고 했다.

 

 

 

시간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창밖을 보았을 때 맑고 청량한 햇살이 한가득 펼쳐졌다. 높푸른 쪽빛 보자기 위에 뭉게구름이 꿈결처럼 피어올랐다.

 

급한 불은 껐지만 불씨가 남아 있는 것처럼 찜찜하다는 말이 되살아나 거센 불길로 번졌다.

 

뛰어온 터라 온몸이 후끈거리는데도 서늘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내렸다.

 

온조는 도저히 정이현의 발에 맞출 수가 없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두 다리는 쇳덩이라도 매단 것처럼 계단 아래로 축축 처졌다.

 

옥상문은 비스듬히 열려 있었다. 옥상 문을 밀었다. 바람이 훅 불어왔다. 일렬로 늘어선 환풍기가 돌 때마다 어느 한 귀퉁이에 햇살이 부딪혀 눈이 부셨다. 눈에 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나 조용했다.

 

“이 아파트에 살아. 전에 이 옥상에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 옥상에서 바라보면 세상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고, 사는 게 장난 같다고 했어. 저 아래 까맣게 옴닥거리는 사람들은 개미 같고 자신은 걸리버 같다고 말이야. 그리고 저 아래에는 소실점 같은 게 있는데 사람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고 했어.” 

 

따가운 가을볕이 정이현의 목덜미에 내리꽂혔다. 단두대에 목을 내려뜨린 사형수 같았다. 그 목덜미는 처분만 바란다고 말하는 듯했다.

 

놀림당한 것 같은 불쾌함과 함께 모든 것을 노출당한 것 같은 수치심이 들었다.

 

이렇게 사는 건 죽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죽음만이라도 존엄성을 갖고 스스로 선택하고 싶다는 거야.

 

삶은 예상치 않은 그림과 맞닥뜨릴 때가 많은 것 같다.

 

“죽는다고 해서 다 죽냐? 그럼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 우리 외할머니는 코가 땅에 닿도록 허리가 고부라졌는데 매일 아침마다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는데, 난 그렇게 안 들리더라.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더 살고 싶다 뭐 그렇게 들리더라. 그 아이도 분명 살고 싶다고 말한 걸 거야. 바닥을 친 거지. 참는 데까지 숨을 참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물 위로 올라와 살고 싶다고 말한 걸 거야.”

 

 

 

바람의 언덕

미안하다는 말을 아무리 땅속 깊이 묻어도 그것은 기어이 살아나와 사람들을 기함시켰다.

 

정상에 오를수록 나무는 낮아졌고 꽃 빛깔은 붉었다.

 

나는 다시 천왕봉 1915M라고 쓰여 있는 정상 표지석으로 올라갔다.

사람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했다. 나도 거기에 손을 올렸다.

내게도 평범한 행복이 전이되길 바랐다.

 

— 앞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 날은 3만 일도 채 되지 않는다.

— 삶 전체를 24시간으로 본다면 우린 지금 몇 시쯤 됐을까? 아마도 새벽 다섯 시,

— 혼자가 아니다.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고개 들어 하늘을 봐라, 거기 하늘만은 너와 함께 있다.

— 희망은 도처에 널려 있다. 발길에 차이는 희망, 그것은 기꺼이 허리 숙여 줍는 자의 것이다.

— 네 절정은 지금이 아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 너의 절정이다.

쪽지를 태웠다. 너의 우정에 가슴이 뻐근했다. 네 우정에 보답을 못하는 내가 못나서 울었다. 그런데 까맣게 타서 재가 된 그 글자들은 오히려 각인되듯 오롯이 살아나 내 가슴에 박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머리 위에서 나를 지켜보는 별이 있었다. 네가 언젠가 얘기해준 샛별이었다. 그 별빛은 너무나 맑고 환했다. 네가 적어준 그 말들처럼 그 별도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까맣던 어둠은 어느새 하얗게 벗겨졌고 동쪽 것대봉 뒤에서 해가 솟기 시작하는지 빛살이 퍼지기 시작했다. 찬란했다. 내 생애 저렇게 빛나던 순간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어쩐지 이렇게 죽기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말한 것처럼 우린 어둠이 벗겨지지 않은 새벽 다섯 시라고 했는데 난 아직 아침도 맞이하지 않았고 맛있는 점심도 먹어보지 못했다. 발길에 차이는 그 희망을 나도 한번 주워보고 싶었다. 그건 어쩌면 아주 쉬운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그동안 내가 용기라는 것을 한 번도 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부모의 강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 내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 나에게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용기를 주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 길로 무작정 걸었다. 목적지도 없이 버스를 타고 걷고 그러다 다시 버스를 만나면 타고 걷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몸이 힘드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귓전에 그곳의 바람 소리가 들린다.

 

온조는 그들과 나눈 시간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그것을 기꺼이 나눌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아빠가 말한 다른 사람과 행복을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걷고 있는데도 버스를 타고 있는 듯 여러 번 허방다리를 짚었다.

 

벙싯하다 :: 
1. 입을 조금 크게 벌리며 소리 없이 거볍고 부드럽게 슬쩍 한 번 웃다.
2. 닫혀 있던 입이나 문 따위가 소리 없이 슬쩍 열리다.
대문이 벙싯하게 열려 있는 것으로 보아 허 상사는 몸을 피한 상대가 분명히 이 집으로 잠적했으리라 단정했다. 출처 <<홍성원, 육이오>>

 

바다와 바다 사이를 치고 나간 이 언덕은 다름 아닌 바다에 난 바람의 길이었다.

 

마법에 걸린 것처럼 바람의 언덕에 서 있는 네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 쳐다보며 웃어 젖혔다. 배가 아파서 허리를 부여잡고 웃다 보니 저절로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게 뒤섞여 뒹굴다가 그 아이가 이끄는 데로 걸었다.

 

언덕 아래에는 푸른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연신 하얀 포말로 버글거렸다. 바람을 탄 거센 파도는 초록의 작은 등대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파도가 아무리 바람과 힘을 합해도 등대를 어찌하지는 못했다. 초록의 작은 등대는 그 바람을 맞으며 야무지게 당당히 서 있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시원하기도 하지만 아프기도 했다. 파도에 쉴 새 없이 제 살을 내주고 있는 이 언덕의 일부라도 된 양 아픔이 얼얼하게 전해져 왔다.

 

그 아이는 바람의 힘은 휩쓸리게도 하지만 지탱해주기도 한다고 했다.

 

“여기 와서 놀란 점이 있어. 하나는 저 아래 바다와 바다 사이에 부는 바람의 길 때문이고, 두 번째는 혼자서는 도저히 바닷가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언덕 위에 있던 사람들 모습이었어. 혼자 바람을 맞는 사람들은 웃지 않아. 반드시 함께 있는 사람들이 웃어. 같이 온 사람의 몸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거나 머리칼이 몹시 헝클어져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우스꽝스러운 모습 때문에 배를 잡고 웃는 거야. 나도 누군가 곁에 있다면 웃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미래의 시간에 맡겨두고 싶은 일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은 자기가 뭘 잘하고 뭘 하고 싶은지 찾는 시간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고.

나무 데크 위로 천천히 걸었다. 저기 호수 위로 시간의 무늬가 반짝거린다. 강토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온조가 거기 있었고 그 아이의 PMP를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긴장했던 시간들이 거기 있었다. 지금은 배달하지 못한 들꽃자유의 편지가 온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다. 강토에게 회신할 수 있는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손에 쥐고 한 번쯤 보고 싶은 강토가 저기 있음에도 가지 않는 온조가 여기 있다.

온조는 지금 맞이할 이 순간을 먼 미래의 어느 시간에 맡겨두려 한다. 시간이라는 것이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 변모시킬지 궁금하다.

시간은 ‘지금’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이 순간을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해준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그 시간을 놓지 않는다면.

 

이깔나무와 벚나무 숲길을 천천히 걸었다. 아주 천 천 히. 먼 데서 숨 가쁘게 달려온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든 후 온조의 두 볼을 쓰다듬고 머리칼을 올올이 날렸다. 이 바람은 또 어딘가로 내달릴 것이고 그 자리에는 난생처음 맛보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시간이 늘 처음인 것처럼.

 

 

 

부록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심사평

아동문학이나 청소년문학은 판매구조가 권장도서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움직인다. 이런 기형적인 판매구조 때문에 제대로 된 문학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없었고, 어설프게 옷을 입은 청소년 소설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인간들이 ‘시간’이라는 말을 만들기 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니까 시간은 태초부터 흐르는 바람 같은 것이며, 햇살 같은 것이며, 달빛 같은 것이며, 땅 같은 것이며, 나무 같고, 풀 같고, 그냥 살아가는 모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순전히 인간이 설정해놓은 그들만의 약속일 뿐이다.

 

문학 하는 사람들일수록 틀에 매여서는 안 된다. 자꾸 거부하고 이탈하려고 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부터 자신에게 의문을 던지고, 거부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려는 몸부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그래야 남하고 다른 작품이 잉태되지 않겠는가.

 

소설은 이야기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말로 하는 이야기와 글로 쓰는 소설이 다른 점은, 첫째로 소설은 말이 아니라 글로 쓰는 이야기여서 무엇보다 문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고, 둘째로 소설은 중간 중간 반응을 파악할 길 없는 얼굴 없는 독자를 상대로 해야 하기에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로 소설은 일정한 분량 안에 끝내야 하기에 전체라는 구성, 유기적인 짜임새를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문학 장르 중에서 가장 늦게 태어났으면서도 소설은 그 특유의 잡식성으로 인해 주변 모든 학문 분야를 제 안으로 끌어와 ‘소설화’시켰다. 그래서 소설 안으로 끌어 들여오지 못할 내용이 없고 새롭게 시도 못할 형식이 없다. 하지만 그런 새로운 내용과 형식일수록 작품이라는 독립된 세계 내에서 더욱 견고한 자신만의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그 논리로 독자를 감동시키든지 놀라게 하든지 반성하게 해야 한다.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제 글쓰기의 원천은 가난과 아버지의 부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고, 그로 인한 가난한 삶은 저에게 많은 독백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많은 말들의 웅성거림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흘렀고, 어느 날 그것을 뿜어내지 않으면 제가 지레 죽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 말들을 뿜어내기 위한 출구로 선택한 것이 글쓰기였습니다.

 

생각만 굴뚝 같았지 그것도 쉽게 시작되지 않더군요. 무언가를 시작할 때 왜 이리 도움닫기를 오래 하는지…….

 

치열하게 쓰지 않으면 어디에도 참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제도 속에서 그들 나름의 숨통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숨통을 더 넓혀줄 수 있는 청소년 소설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재란 결국 과거가 되어버리는 점(點)과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을 그러한 점을 죽 늘어놓은 직선처럼 상상한다. 어떠한 현재도 과거와 함께 있으며 과거와 동시에 있기에, 사실 현재는 단순히 현재로서 생동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란 이미 언제나 현재와 과거의 복합체이고 결정체이다. (……) 기억을 단순히 지나간 약해진 지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과는 결정적으로(본성적으로) 다른 것으로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억이란 단순히 과거 지각의 각인과 잔상(殘像)이 아니라 무한한 과거의 연쇄와 상호 침투로 이루어져 있다. 지속으로서 생동하는 시간에서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현재가 아니며, 현재는 결코 과거와 단절되어 있지 않다. 현재와 과거는 절대로 동시적이며, 현재란 상호 침투하고 상호 연쇄하는 잠재적 과거의 집적의 선단(先端)임에 불과하다.”

 

과거와 현재의 상호 침투와 상호 연쇄, 우리가 보낸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존재한다는 거죠.

 

결국 앞에 놓인 또는 더 멀리 놓일 시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꽃다운 아이들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렇게 허망하게 목숨을 버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연대하여 절망을 희망으로 바꿨으니까요.

 

이야기의 힘은 긴장감이 가미될 때 배가된다

 

우리 세대에서 쓰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서는 기대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제 게으름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문장 하나하나 보석을 깎듯 다듬어놓은 것 같은데, 그 보석들은 제각각 튀는 것이 아니라 이웃된 문장들과 어우러져 훌륭한 작품으로 빚어지거든요.

 

평범이라는 말로 묶어 뭉뚱그려 놓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들 나름의 고유한 빛깔을 지닌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크로노스라는 물리적 시간을 팔아 결국 카이로스라는 의미의 시간을 발견해가는 것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각자 다 다르거든요. 똑같은 시간이라고 해도 어떤 이는 느리다고 하고 어떤 이는 빠르다고 하니까요.

 

열심히 달려서 결승 테이프를 끊고 이제 좀 숨을 가라앉히며 쉬고 싶은 달리기 선수 같은 심정이었거든요.

 

작가가 글을 쓸 때 걸렸던 부분은 반드시 드러난다는 글쓰기의 원칙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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