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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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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어김없이 오늘도 우리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어제 본 드라마부터 시작되는 대화는 늘 같은 패턴이지만, 오늘따라 왜인지 시시한 기분이 든다. 곧 색다른 주제의 대화를 이어가려 하지만 금방 지식에 한계가 오는 듯하다. 문득 자신의 부족한 지식수준을 채우기 위해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절감하지만, 금세 막막해져온다. 대체 어디서부터 얼마만큼 알아야 하는 걸까? 여기, 신자유주의가 뭔지, 보수와 진보가 무엇인지, 왜 사회문제가 일어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대화 자리가 두려운 당신을 위한 책이 출간되었다. 글쓰기와 강연 등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넓고 얕은 지식’을 알리고 있는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으로,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팟캐스트 방송 《지대넓얕》을 책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저자는 역사·경제·정치·사회·윤리 전 과정을 마치 하나의 천일야화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거칠고 거대한 흐름을 꿰다보면, 그 과정에서 두 번의 세계대전이나 경제 대공황, 갑론을박하는 정치적 이슈 등 개별적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찾으며 의미를 갖는다. 책을 덮는 순간, 현실에 대해 당당한 지적 목소리를 내는 진짜 지식인으로 거듭날 것이다.
저자
채사장
출판
한빛비즈
출판일
2017.01.17

 

0. 프롤로그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과 개인의 경험이 다르다면 우리는 같은 말을 한다 해도 서로를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공통분모다. 그리고 인류의 공통분모는 내가 잘 모르고 있었을 뿐 이미 마련되어 있다. 지금의 너와 나뿐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사람들까지 아울러서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공통분모. 그것을 교양, 인문학이라고 부른다.

 

 지적 대화를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이란 무엇인가? 답부터 말하면, 그것은 내가 발 딛고 사는 ‘세계’에 대한 이해다. 세계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그때서야 세계에 발 딛고 있던 ‘나’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깊어진 ‘나’에 대한 이해는 한층 더 깊게 ‘세계’를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 나에게 보이지 않고 숨겨졌던 세계에 대한 이해. 이것이 지적 대화의 본질이다.

 

 ‘현실’과 ‘현실 너머’의 영역은 독립적이지 않다.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넘어선 곳에서 현실을 살펴야 하고, 또한 현실을 넘어선 이야기는 언제나 그 자양분을 현실에서 얻어야만 한다. 이렇게 현실의 영역과 현실 너머의 영역을 통틀어 ‘세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 역사 

 직선적 시간관과 원형적 시간관 - 역사는 시간에서 출발한다 

 시간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고 상상의 산물이라고 말하기에는, 세상은 시간의 영향을 너무도 크게 받고 있다.

 

 시간에 대한 첫 번째 관점은, 시간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하나의 방향을 가지고 전진해간다는 관점이다. 시간은 앞으로만 나아가고 절대 뒤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러한 것을 ‘시간의 불가역적 성질’이라고 한다.

 직선적 시간관에 대비되는 시간에 대한 두 번째 관점은, 시간이 순환한다는 관점이다. 시간이 되돌아오길 반복할 것이라는 관점을 ‘원형적 시간관’이라고 한다.

 

 시간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은 실제로 서양과 동양의 시간관을 형성했다. 직선적 시간관은 서양의 문화와 종교의 밑바탕이 되었고, 원형적 시간관은 동양의 문화와 종교의 밑바탕이 되었다.

 예를 들어 서양의 그리스도교는 직선적 시간관을 토대로 한다. 그리스도교의 세계에서 인간은 탄생하고 성장하여 죽음에 이른 후 영원한 세계로 나아간다. 그곳이 지옥이든 천국이든 마찬가지다. 어떤 사후세계에서나 시간은 과거로의 후퇴 없이 영원히 계속된다. 반면 동양의 윤회사상은 원형적 시간관을 토대로 한다. 불교의 가르침에서 인간은 탄생하고 성장하여 죽음에 이른 후 중간 상태인 바르도를 지나 다시 탄생을 맞이한다.

 시간관의 차이는 역사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이어진다. 우선 직선적 시간관은 역사는 끝없이 발전해간다는 ‘진보적 역사관’을 낳는다. 진보적 역사관에서의 역사는 직선적 시간관처럼 과거로의 회귀를 인정하지 않는다. 역사는 과거를 지나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며, 그 나아감은 어제보다 변화된 오늘이고 오늘보다 변화된 내일이다. 인류의 점진적 발전과 진보에 대한 낙관이 진보적 역사관의 특징이며, 서구 사상의 근간을 형성한다.

 원형적 시간관은 역사가 큰 틀에서 반복된다는 ‘순환적 역사관’을 낳는다. 순환적 역사관에서의 역사는 발전과 진보를 지속하지 않는다. 대신 발전과 퇴보를 반복한다. 이것이 동양적 역사관의 특징이다. 동양에서의 혁명이 언제나 왕의 성씨가 바뀌는 역성혁명일 뿐, 백성들의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거나 발전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볼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생산수단 그리고 자본주의의 특성 - 역사를 설명하기 위한 핵심개념 두 가지 

 원시, 고대, 중세, 근대, 현대. 각각의 시대는 특성에 따라 일반적으로 불리는 이름이 있다.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제사회, 중세 봉건제사회, 근대 자본주의, 현대가 그것이다. 이렇게 역사를 다섯 가지 단계로 구분하는 방식은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 5단계 설’에서 기인한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다섯 단계로 구분하면서 역사가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제사회, 중세 봉건제사회, 근대 자본주의를 지나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붕괴로 귀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가 내적 모순으로 붕괴된 이후에는 경제적 평등이 달성되는 공산주의 사회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역사의 종말》에서 역사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역사의 종말이 의미하는 것은 공산주의의 붕괴를 경험한 현대인이 자본주의에 대해 갖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역사는 끝난 것 같다. 자본주의에서 말이다. 자본주의는 생각보다 유연해서 스스로의 문제점을 수정하고 변형하며 위기를 극복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경제체제는 불가능하다는 뜻)

 원시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는 ‘생산수단’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알아볼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역사는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지’에 따라 변화한다.

 

 생산수단과 생산물을 합해서 ‘부’라고 하지만, 같은 ‘부’라도 생산물은 소비되는 반면에 생산수단은 끝없이 생산물을 생산해낼 수 있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은 경제력을 가진 것이고, 경제력을 가진다는 것은 권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시 사회부터 근대 사회까지의 역사를 구분하는 데 ‘생산수단’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원시부터 근대까지를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지에 따라서 구분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원시부터 근대까지를 권력의 이동에 따라 구분하겠다는 의미다. 생산물은 생산수단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물품들이다. 이런 물품을 ‘재화’와 ‘서비스’라고도 부른다.

 

 원시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를 움직이는 핵심 개념이 ‘생산수단’이라면, 다음으로 근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움직이는 핵심 개념은 ‘자본주의의 특성’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갖는 모습으로서 ‘공급량이 언제나 수요량보다 많다’는 특성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공급량은 과다하지만 수요량은 공급량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것은 산업화를 통해 발전한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근대와 현대의 역사를 알기 위해 공급과 수요를 고려하는 것은 근대와 현대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원시 공산사회 - 어느 날 생산수단이 탄생했다 

 생산수단과 생산물을 구분해야 하는 것은, 부와 재산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 바로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으면 부는 계속해서 발생한다.

 생산수단을 소유하면 생산물을 소유하게 되고, 그 생산물을 이용해서 권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생산수단과 생산물은 단순한 물질이다. 그런데 그런 물질이 비물질적인 사회적 관계로서의 권력 관계를 발생시킨 것이다.

 

 보리는 초여름에 수확한다.

 

 사회 전체로 보면 생산량이 증가해서 풍요로워진 것이 아닌가?

 

 고대 노예제사회 - 생산수단은 왕과 노예를 만들었다 

 생산수단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생산수단은 영토와 토지 혹은 대농장이나 근대에 나타날 공장 같은 것들이다. 영토, 토지, 대농장, 공장이 돌 조각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혼자서 소유할 수는 있지만 혼자서 운영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거대한 땅의 주인은 혼자일 수 있지만, 혼자서는 그 땅을 경작할 수가 없다. 그래서 주인은 타인을 고용해야 한다. 즉 생산수단은 노동을 대신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특징을 갖는 것이다. 이는 대농장이나 공장도 마찬가지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는 자신의 생산수단에서 대신 일하는 자에게 어떻게 대가를 지불하는가? 소유한 생산물에서 지불한다. 그렇다면 소유한 생산물은 어디서 왔는가? 그것은 타인의 노동력에서 왔다. 생산수단은 소유자가 타인의 노동력을 이용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관계를 왜곡시킨다.

 노동은 오직 노동자 혼자서 했는데, 노동의 결과물인 생산물은 주인과 나눈다. 주인이 생산수단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신’은 요청된다. 지배자는 신을 부른다. 지배자 자신이 부를 수 있는 ‘신’이라는 언어만 있으면 된다. 왜냐하면 신은 지배자가 사회를 지배할 권리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독단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자일수록, 그의 신앙은 절실하다. 역사적, 정치적으로 신의 문제를 고려했을 때, 신의 이름이 정치를 위해 사용되었을 혐의가 짙다.

 고대 노예제사회는 종교를 통해 그 지배체계를 공고히 하며 막을 내린다. 고대 노예제사회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토지와 영토라는 생산수단을 지배자가 독점하고, 그 독점의 정당성을 종교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왕 스스로 신을 칭한다.) 고대 노예제사회는 구체적으로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ㆍ로마 등 정치와 종교가 일치했던 제정일치사회들을 말한다.

 

 중세 봉건제사회 - 계급은 더욱 세분화되었다 

 중세 봉건제사회는 4세기부터 14세기 무렵까지 약 천 년 정도의 시기다.

 역사가들은 기원전 4년에서 기원후 6년 사이에 예수가 탄생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고 한다.

 

 서구 사회의 문화와 역사를 관통하는 근원적인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그것이다.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ㆍ로마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역사적 사조이다. 헤브라이즘은 이스라엘 민족과 야훼나 여호와라고 불리는 유일신인 하나님과의 계약에 대한 역사적 흐름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교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말한다. 쉽게 정리하면 서구는 두 가지 문화를 뿌리로 한다. 그리스ㆍ로마 신화와 그리스도교.

 

 1세기가 되면 이스라엘의 나사렛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예수라는 인물이 성장한다. 이 시기의 이스라엘 민족은 거대 제국으로 성장한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는데, 이때의 로마는 지중해를 바탕으로 세계에 패권을 행사하는 제국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은 당시 유대교의 신학자들이었던 율법학자들의 율법 이해와 충돌했다. 그러던 중 예수는 반대자들의 고소와 제자 중 한 명이었던 유다의 변절로 잡혀갔고, 로마의 유대 지역 집정관인 본디오 빌라도 앞에 서게 되었다.

 

 예수는 풀려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유대 민족의 풍습 중에 과월절이 있는데, 이날에는 죄수 중 한 명을 풀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사실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예수의 이미지는 중세 회화의 영향이 큰데, 중세 회화에서 예수가 북부 유럽인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유럽 지역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예수와 강도 바라바를 두고 유대인들이 선택하게 했다. 유대인들이 원하는 한 명을 살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바라바의 석방을 선택했다. 바라바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치하는 로마에 저항해서 폭동을 주도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정체가 불분명한 예수보다는 현실적으로 민족을 대변하는 바라바가 더 필요해 보였을 것이다. 결국 잘 알려진 대로, 예수는 십자가 처형을 선고받고 골고다 언덕에서 생을 마감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여 흩어진 제자들을 모아 초기 그리스도교의 기반을 닦게 했다. 이후 그리스도교는 로마의 박해를 받으며, 지하 무덤이면서 동굴인 카타콤에서 비밀스럽게 예배를 이어갔다. 

 하지만 로마의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교의 역사에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박해의 대상이었던 그리스도교를 사실상 로마의 국교로 정립했다. 

 

 원시 공산사회를 지나 고대 노예제사회가 되면서 변화되었던 가장 큰 특징은 토지와 영토라는 생산수단이 왕에 의해서 독점되었고, 이로 인해 계급이 분화되고 정착되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지배자인 왕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신을 요청했다. 중세 봉건제사회가 되면 사회적 계급은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분화된다. 국왕과 노예 사이에 성직자, 영주, 귀족, 기사, 농노, 노예가 생긴다.

 

 여러 영주들이 한 명의 국왕 아래 있었지만, 영주가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이상 실질적인 권력은 영주에게 속했다. 그래서 영주들 간에는 끊임없이 권력 싸움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권력을 위해서는 서로의 영토가 필요했고, 게다가 이런 분쟁을 조율해줄 절대적 권력이 존재하지 못했다. 이렇게 영주들 간에 전쟁이 빈번해지자, 영주들은 자신의 장원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유럽이나 중국, 일본에 성이 있는 것은 그들이 중세를 거쳤기 때문이다. 반면 영주들에 의해 지방으로 권력이 분산되지 않고 국왕 중심의 집권적 체제를 유지했던 한반도에는 거대한 성이 없다.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는 사회에서는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국왕은 신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통치의 권한을 인정받은 존재였다. 그 권한은 성직자가 인정해주었고, 그 대가로 국왕은 성직자의 생활을 보장해주었다. 주인은 생산수단이라는 물질적 측면과 종교적 인정이라는 정신적 측면 모두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획득했다. 따라서 노동자는  지배에 불만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만큼 사회가 안정되고 견고했던 것이다. 이러한 안정적 사회가 가능했기에 중세는 천 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세 후기가 되면 견고했던 사회적 분위기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첫 번째 원인은 상업의 발달에서 찾을 수 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무역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부를 축적한 상인 계층이 등장했다. 이들은 고대와 중세의 유일한 생산수단인 토지와 영토 그리고 장원을 이용하지 않고서도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지배층의 권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으며, 또 스스로도 자유로워지려 노력했다.

 두 번째 원인은 공장의 발생에서 찾을 수 있다. 증기기관이 당시에 발전한 분업과 만난다.

 

 공장은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많은 양의 생산물을 만들어낸다. 즉 공장은 새로운 생산수단이다. 이렇게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을 ‘부르주아’라고 부른다. 부르주아의 뜻 자체가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부르주아는 다른 말로 자본가계급, 시민계급, 유산계급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국왕은 아직도 장원이라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고, 이를 통해 막강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공장이라는 새로운 생산 수단을 통해 권력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산업과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 계급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정치 참여에는 한계가 있었다. 구권력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인 동시에, 구권력의 지배를 정당화해주는 신과 같은 이론적 토대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신권력은 자신들의 정치ㆍ사회 참여를 정당화해줄 신을 대신할 이론적 토대가 필요해졌다.

 

 현실에서의 신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현실 세계를 설명해주는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사후 세계를 주관하는 역할이다.

 부르주아가 왕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왕의 권위를 정당화해주는 신부터 극복해야 했다. 다시 말해, 신의 역할을 대신해줄 만한 무엇인가를 찾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르주아는 인간의 ‘이성’으로 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대체했다. 이성은 신이 독점했던 두 가지 역할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었다. 이성은 신을 배제하고도 현실의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다음으로 이성은 인간의 사후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사후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식과 정신에 대해 말할 수는 있어도 영혼에 대해 말하는 것은 경험적 근거가 없는 비과학적인 태도이고, 종교의 환상에 젖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이 없으므로 사후도 없다. 죽음은 신체 기능의 정지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부르주아는 자신들의 정치 참여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으로 사회가 자신들의 계약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사회계약설’을 지지했다. 이것은 신의 냄새가 남아 있는 ‘왕권신수설’을 대체하는, 신 없이 사회를 설명하는 방법이었다. 이제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주체는 신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된 것이다.

 

 두 권력은 충돌하게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신권력이 승리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다.

 

 왕이 죽는 순간인 동시에 신이 죽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중세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근대 자본주의 - 새로운 권력이 탄생했다 

 근대 자본주의 시대는 대략 18세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까지, 200년 정도의 기간이다. 중세의 생산수단인 장원은 근대에 와서 공장과 자본이라는 생산수단으로 대체되었다. 생산수단이 변경되었으니 생산수단을 소유한 지배권력도 왕과 영주에서 부르주아로 이동했다. 사회의 계급 구조도 새롭게 재편되었다. 사회 계급은 둘로 나누어졌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들인 부르주아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인 ‘프롤레타리아’가 그것이다. 계급적 차원에서의 시민은 경제력이 있어서 세금을 내고 정치에 참여하는 계급을 말하며, 보통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부르주아 계급을 말한다.

 

 시대가 고대-중세-근대를 거치면서 생산수단은 토지-장원-공장으로 변화했고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은 왕-영주-부르주아로 변화했다. 역사는 생산수단에 의한 갈등이라는 단순한 구조에 따라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근대와 현대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왔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특성은 근대와 현대 사회에 반영되고, 그 모습을 변형시켰다.

 

 근대 자본주의의 전개 - 공급과잉이 시작되었다 

 자본주의는 공장을 기반으로 하기에, 공장의 대량생산이라는 특징이 공급과잉이라는 자본주의의 특성을 만든다. 

 

 공장이라는 생산수단이 있기 전인 중세에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제작자에게 필요한 물품을 미리 주문했다가 완성된 이후에 받을 수 있었다. 즉 수요가 있는 만큼 공급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근대가 되면 상황은 바뀐다. 공장은 주문이 있기 전에 미리 물품을 대량으로 생산해낸다. 물품을 구입하려는 욕구보다 이미 생산된 물품이 더 많은 상태가 자본주의의 특성이다.

 

 자본주의의 특성은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상태’다. 이는 다른 말로 공급과잉, 초과공급이라고도 부른다. 공급과잉의 상태는 무엇인가 비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가장 일반적이고 본질적인 상태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상태의 해결 방안은 논리적으로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공급을 줄이는 방법, 다른 하나는 수요를 늘리는 방법이다. 수요를 늘리는 방법은 수요를 확대할 수 있는 ‘시장 개척’과 ‘가격 인하’라는 두 가지 해결 방안이 있다. 

 

 인디언 추장이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워싱턴에 있는 위대한 지도자가 우리 땅을 사고 싶다고 요청을 해 왔습니다. 그 위대한 지도자는 또한 우정과 친선의 말들을 우리에게 보내 왔습니다. 이것은 매우 고마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답례로서 우리의 우정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 까닭은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백인들이 총을 가지고 와서 우리의 땅을 빼앗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당신은 하늘과 땅의 체온을 사고 팔 수가 있습니까? 그러한 생각은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신선한 공기나 반짝이는 물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들을 우리한테서 살 수 있겠습니까? 이 땅의 구석구석은 우리 백성들에게는 신성합니다. 저 빛나는 솔잎들이며 해변의 모래톱이며 어둠침침한 숲속의 안개며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은 우리 백성들의 추억과 경험 속에서 성스러운 것들입니다.

백인들이 우리들의 생활양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백인들에게는 어떤 한 부분의 땅은 나머지부분의 땅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밤중에 그 땅에 와서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져가는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땅은 그들의 형제가 아니라 적입니다. 그들이 어떤 땅을 정복하면 그들은 곧 그곳으로 옮겨 옵니다. 그들의 왕성한 식욕은 대지를 마구 먹어치운 다음에 그것을 황무지로 만들어 놓고 맙니다. 당신네 도시의 모습은 우리 인디언들의 눈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 우리가 당신들이 말하는 야만인이어서 이해하지 못하는 탓이겠지요.

내가 만일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면 나는 하나의 조건을 내놓겠습니다. 즉 백인들은 이 땅에 사는 짐승들을 그들의 형제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짐승들이 없다면 인간은 무엇입니까? 만일 모든 짐승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커다란 고독 때문에 죽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짐승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그대로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백인들이 언젠가는 발견하게 될 한 가지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즉, 당신네 신과 우리의 신은 같은 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우리의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신도 당신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들의 신입니다. 그리고 신의 연민은 백인들에게도 동등합니다. 이 대지는 신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지를 해치는 것은 조물주에 대한 모독입니다. 백인들도 역시 소멸할지 모릅니다. 아마 다른 종족들 보다 더 먼저 소멸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잠자리를 계속해서 오염시켜 나간다면 당신은 어느 날 밤 당신 자신의 오물 속에서 질식하게 될 것입니다. 들소들이 마구 살육 당하고 야생마들이 모두 길들여지며 성스러운 숲속이 인간의 냄새로 꽉 찰 때, 그리고 산열매가 무르익는 언덕들이 수다스러운 부인네들에 의해서 더럽혀질 때 잔목숲과 독수리는 어디서 찾겠습니까? 그리고 이동과 사냥이 끝장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삶의 종말이요, 죽음의 시작입니다. 백인들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라곤 없습니다. 아무데서도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며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마 내가 야만인이어서 이해를 못하기 때문이겠지만 소음은 내 귀를 이상하게 합니다. 만일 사람이 쏙독새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나 밤의 연못가에서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인생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북미의 인디언들은 한낮의 비로 씻겨지고, 소나무의 향기가 나 는 부드러운 바람소리를 더 좋아합니다. 공기는 인디언들에게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짐승과 나무와 인간들이 똑같이 숨쉬기 때문입니다. 백인들은 자기들이 들여 마시는 공기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죽을병에 걸려 신음하는 사람들처럼 냄새를 맡지 못합니다. 

우리가 백인들이 꾸고 있는 꿈과 그들이 긴 긴 겨울밤에 그들의 자 녀들에게 그려주는 희망과 그들의 마음속에 불태우고 있는 미래의 비전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이해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만인입니다. 백인들의 꿈은 우리들에게는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동의한다면 우리는 당신이 약속한 인디안 보류지 (reservation)를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대 로 짧은 생애를 마치게 될 것입니다. 지상에서 마지막 인디언들이 사라지고 오직 광야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구름의 그림자만이 남더라도 이 해변들과 숲들은 여전히 우리 백성들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갓난아기가 엄마의 심장에서 들려오는 고동소리를 사랑하듯이 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땅을 당신에게 팔기로 한다면 당신은 우리가 그 땅을 사랑하듯 사랑하고, 우리가 보살피듯 그 땅에 대한 기억을 지금의 모습대로 간직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모든 능력과 모든 정성을 기울여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서 그 땅을 보존하고 또 신이 우리를 사랑하듯 그 땅을 사랑하십시오. 당신의 신도 우리의 신과 같은 신이라는 한 가지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신에게 있어서 대지는 소중한 것입니다. 백인들일지라도 공동의 운명으로부터 제외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국주의 - 그들에게는 식민지가 필요했다 

 산업화를 통해 자본주의가 된 국가들은 자본주의의 특성인 공급과잉 문제에 필연적으로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수요를 늘리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만 한다. 시장을 개척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식민지를 만드는 것이다. 식민지를 만들어 원료를 공급받고 가공품을 판매하면 된다.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화한 후에 자국의 면직물을 인도에 판매하고 그 대가로 아편을 받았다. 그리고 받은 아편을 중국에 판매한 대가로 홍차와 막대한 부를 얻었다. 어쨌거나 인도는 영국의 면직물 산업에 종속되면서, 많은 자원과 부를 영국에 빼앗겼다. 면직물로 인해 국가 전체가 영국에 종속된 것이다. 그래서 간디는 영국산 면직물의 수입을 막기 위해 옷을 스스로 제작해서 입자는 운동을 펼쳤다. 우리가 간디 하면 물레를 감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레는 영국산 면직물에 대한 거부이며, 궁극적으로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상징했다.

 

 독일은 빠르게 산업화하는 유럽에 속해 있으면서도 산업화가 늦어지면서, 뒤늦게야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었다. 독일이 산업화가 늦어진 것은 중세 봉건체제가 오래 지속되면서 계속된 내전으로 산업화를 추진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뒤늦게 통일된 독일은 산업화에 박차를 가했다. 산업화에 따라 자본주의가 정착했고, 당연히 자본주의의 특성인 공급과잉의 문제가 발생했다. 다른 산업화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을 확보해야만 했다. 즉, 식민지 국가를 건설해야만 했다. 그래서 독일도 필연적으로 식민지를 찾아 떠났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더 이상 차지할 만한 식민지가 없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동맹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지역에 갔다가, 보스니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독립하기를 원하는 세르비아계 청년에게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빌미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서막이다.

 

 제1차 세계대전 - 공급과잉이 전쟁을 일으켰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약 4년 동안 지속되었다. 표면적인 원인은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세르비아계 청년에게 암살당한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러시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동맹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에 참전하고 후에 미국도 참전하면서 세계적인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근본적인 원인은 황태자의 암살이 아니다. 독일이 전쟁을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세계대전의 본질적인 이유다.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이탈리아가 3국 동맹을 형성하고,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가 3국 협상을 결성하여 전쟁을 벌였다.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에 협력한 이유는 단순했다. 급속히 성장하는 독일이 자신들의 식민지를 위협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다음 해인 1919년 6월 28일,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승전국들은 전쟁의 책임을 물어 전쟁범죄국인 독일에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게 했다. 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의 경제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침체하고 말았다.

 

 다수의 민간인은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전쟁은 일부 부르주아 혹은 일부 국가들에 막대한 부를 창출해준다. 자본주의는 전쟁과 가까울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유지해주는 핵심 요소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유행이다. 전쟁이 공급과잉의 문제를 단번에 해소하듯, 유행은 필요를 뛰어넘는 막대한 소비를 창출해서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한다.

 

 세계 경제대공황 - 가격경쟁은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경쟁 업체보다 질 좋고 싸게 만들어야 시장을 지킬 수 있다. 재료비와 공장유지비는 자본가의 마음대로 줄일 수 있는 비용이 아니다. 자본가가 선택해서 줄일 수 있는 비용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과 자신의 이익이다. 여기서 자신의 이익을 줄이는 건 의미가 없다. 공장을 운영하는 목적은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장주인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서다. 줄일 수 있는 비용은 노동자의 임금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공급과잉의 문제는 발생하고 있었고, 모든 산업에서 가격을 낮추기 위한 노동자 해고 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문제는 노동자는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라는 것이다. 해고당한 노동자는 소비 능력을 상실한 소비자와 동일하다. 다시 말해서, 사회 전체적으로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사회 전반의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때 소비가 줄어든다는 말은 상대적으로 공급량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고, 공급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시 모든 산업에서 가격 인하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또 가격을 인하하기 위해서 노동자를 해고해야 하고, 해고된 노동자가 다시 소비 능력을 상실한 소비자가 되어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실업자는 늘어갔고 문을 닫는 공장과 기업들이 속출했다. 이 문제가 폭발한 것이 뉴욕 증시가 대폭락하면서 세계경제 전체를 무너뜨린 1929년의 세계 경제대공황이다. 

 

 우리는 대표적인 세 국가의 대공황 극복 방안을 살펴보려 한다. 세 국가는 미국, 러시아, 독일이다. 우선 미국은 뉴딜정책을 시행한다. 뉴딜정책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가 시행한 경제정책으로,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자유 시장의 문제점을 해소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즉 공급과잉이라는 자본주의의 내적 문제점을 정부가 인위적인 개입으로 조절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 방식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수정한다는 의미에서 ‘수정 자본주의’ 혹은 앞선 초기 자본주의와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후기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대공황 당시 미국의 산업구조는 제조업 중심이었다. 다시 말해, 육체노동 중심의 산업구조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산업구조는 서비스업 중심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정부가 개입한 대규모의 공공사업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개별 노동자의 이익으로 돌아가기보다는 기계화된 특정 기업들의 이익만을 대변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는 자본주의를 수정한 미국과는 달리 본질적으로 공급과잉이라는 문제점을 내포한 자본주의를 폐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래서 러시아는 자본주의 대신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선택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는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비롯되었다. 그 후 1922년에 소비에트 연방이 성립되었다. 그러니까 러시아는 대공황 이전에 자본주의를 폐기했다. 그래서 소련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대공황으로 경기침체를 경험하던 시기에, 반대로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안정적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고 있는 중에, 설상가상으로 대공황까지 겹치자 국가적 파산에 직면했다. 히틀러는 독일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전쟁배상금 때문임을 밝히고, 자신이 전쟁배상금을 물지 않게 하겠다며 독일인들을 선동했다. 그리고 위대한 독일 민족이 이렇게 초라해진 원인에 대해 철학적 견해도 제시했는데, 그것은 독일 민족이 살고 있는 땅이 너무도 좁다는 것이었다. 히틀러에 따르면, 각 민족은 자신의 민족성에 어울리는 영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토는 곧 민족의 영혼과 직결된다. 그런데 지금의 독일 영토는 세계대전 이후 다른 국가들에 의해서 더 좁아졌다. 게다가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독일 민족의 영토가 심각하게 오염되었다는 것이다. 독일의 영토가 오염되면서 위대한 독일 민족의 영혼이 고통 받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오염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 독일의 영토에 살고 있는 저열한 유대인들이었다.

 

 예수를 죽인 직접적인 피의자는 누구인가? 바로 유대 민족이다. 문제는 이후 서구 유럽 사회가 그리스도교의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그리스도를 죽인 유대인의 정치ㆍ사회적 지위는 어떠했겠는가? 유대인은 예수 살해라는 전 우주적 범죄를 저지른 민족으로 취급받았다. 자신의 국가를 갖지도 못했으며, 여러 국가에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다른 민족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나라가 없으니 농사를 지을 땅도 없었다. 그래서 유대인은 어쩔 수 없이 중세 기간 동안 가장 천시되던 상업과 대부업에 종사했다. 그런데 근대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상업과 대부업은 무역과 금융업이 되었고, 유대인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다.

 독일인들은 전 우주적 범죄를 저질렀던 유대 민족을 처단하고 성스러운 독일을 재건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따라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인종 청소를 감행했다.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에 반대하며, 전쟁배상금을 물지 않게 하겠다고 민중을 선동했다. 그 결과 독일민족사회주의 정당인 ‘나치’당이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로 집권당이 되었다. 다시 전쟁을 해서 이기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전쟁에서 패해서 배상금을 물고 있는 것이니, 승리하면 배상금을 물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전쟁을 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경제공황과 배상금 때문에 독일의 재정이 충분하지 못했다. 그들은 세계적 금융과 사업으로 부유하다. 그들의 재산을 몰수해서 전쟁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철학적 정당화의 과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민족성과 영토를 연결한 히틀러의 생각이 탄생했다.

 

 땅과 민족을 하나로 연결하는 세계관은 민족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물질화하게 만들고, 국경과 토지에 대한 집착으로 발전한다. 국가 간의 영토 분쟁은 신성불가침의 민족적 정신에 대한 침략이 된다. 혹시나 합리적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하는 사람이 등장하면, 그는 변절자와 배신자, 매국노가 된다. 영토 소유에 대한 배타적이고 감정적인 외침이 간증이 되고 찬양의 대상이 되는 사회. 그런 사회는 결과적으로는 경제적 이익을 얻을지도 모르지만, 세계대전 당시 독일 민족의 광기와 부도덕성보다 나을 것이 없다.

 

 히틀러라는 악마가 독일을 전쟁으로 이끈 것이 아니라, 독일의 민중이 히틀러라는 영웅을 요구한 것이다. 히틀러가 없었다 하더라도 독일인들은 전쟁배상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내었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역사를 영웅사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영웅사관이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능력을 초월하는 천재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특정 인물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와 반대되는 역사관이 민중사관이다. 민중사관은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를 민중으로 본다. 우리가 세계대전을 영웅사관의 시각으로 본다면,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람은 히틀러가 된다. 반면 세계대전을 민중사관의 시각으로 본다면,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인은 경기침체의 고통을 극복하고자 했던 독일 민족의 의지가 된다.

 

 미국은 뉴딜정책을 통해 자본주의를 수정한다.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지만 수정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 수정 방법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다. 반면 러시아는 공산주의를 선택하며 자본주의를 폐기한다. 자본주의에 태생적인 문제가 있는데, 문제 있는 경제체제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독일은 군국화의 길을 선택한다.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전쟁배상금을 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 간 무역에서 독점적 위치를 점유할 수 있다. 혹시 패배한다 하더라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전쟁은 막대한 양의 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공급과잉 문제를 일시적으로나마 해소한다. 독일에게는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패배하거나 어쨌든 현재의 최악의 상황보다는 단기적으로 이익이 되므로 전쟁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독일은 자본주의를 유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 누가 우위를 차지할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치러진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추축국이 되어 전쟁을 일으켰고 이에 대항해서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중국 등 여러 나라가 연합국을 형성했다.

 

 중세의 일본에는 천황이 존재했으나, 실질적인 힘은 지방의 영주라고 할 수 있는 막부에 있었다. 막부는 군부정권으로서, 통치권자인 쇼군이 통치했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일본의 막부 체제가 종식되고, 천황에 의한 중앙집권적 통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열강들의 기술, 문화, 제도를 받아들이며 산업화가 본격화되었다.

 산업화는 자본주의를 낳는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바로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는 특성이다.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인 식민지가 필요하다.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청일, 러일 전쟁을 일으켜 타이완, 조선, 사할린을 식민지로 얻었다. 그러나 발전을 계속하던 일본도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영향으로 경제적 위기에 봉착했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대륙 진출을 꾀했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열강이 모두 꿈꾸는 광활한 시장이었고, 이에 따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독일과 일본이 추축국으로 동맹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국가의 궁극적인 목적이 같았기 때문이다. 과도한 공급량을 해소하기 위한 식민지의 확보, 그리고 무역협정에서의 국가적 우위. 그렇다면 연합국은 어떤 목적으로 전쟁을 대응했는가? 자국의 시장인 식민지를 지키고 독일, 일본과의 무역협정에서 계속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대응한 것이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식민지를 얻으려는 국가와 식민지를 지키려는 국가 간의 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1945년 5월에 독일이 먼저 항복하고, 같은 해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의 핵폭탄이 투하되고 나서야 일본은 천황제를 유지하는 대신 무조건 항복하기에 이르렀다.

 

 냉전시대 - 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대립하는가 

 실제로 현재 미국과 러시아는 대략적으로 각각 7,700기와 8,500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냉전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1945년부터 소련이 개혁ㆍ개방을 외치며 해체된 1991년까지의 기간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독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공산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국가와 무역 거래를 하지 않고 적대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공산주의 체제가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특성은 앞에서 논한 대로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는 것이다. 수요를 늘리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식민지다. 식민지는 공급과잉을 해소할 시장으로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장 확보가 필수적인 자본주의의 입장에서는, 자본주의와 무역 거래를 하지 않는 공산주의 국가가 늘어난다는 것은 시장의 축소를 의미한다. 시장의 축소는 수요량의 감소를 의미하고, 수요량의 감소는 자본주의의 생산 중단, 즉 공황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공산주의 국가의 존재 자체가 자본주의에 위협이 되는 것이다.

 

 ‘국가’는 요청된다. 국가라는 개념은 신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특히 ‘애국’에 대한 강요는 지배자들을 편리하게 한다. 그래서 애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되고 교육된다.

 ‘국가’에 대한 요청은 자본주의만의 특성은 아니다. ‘신’을 요청할 수 없는 모든 지배 권력은 애국을 장려한다. ‘신’과 ‘국가’의 객관적 의미를 초월해서 사회ㆍ정치적으로 과장되고 포장된 의미가 나에게 강요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신중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시장이 필요한데, 공산주의의 확장은 시장의 축소를 의미하므로 자본주의에 위협적이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 시장 확보를 위한 전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냉전의 위기도 시장 확보가 문제 된 것이다. 공산주의의 이념적 특성이 자본주의를 내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까닭에 자본주의가 이를 경계할 수밖에 없음을 보았다. 그리고 냉전의 당사국들이 지배와 통제를 위한 필요로써 ‘국가’와 ‘애국’의 개념을 민중에게 강요한다.

 소련은 다시 러시아로 해체되고, 미국과의 화해와 긴장 완화의 시기가 찾아온다. 이를 ‘데탕트(détente)’라고 한다.

 

 신자유주의의 탄생 - 새롭고 독특한 경제체제의 세계 

 냉전 이전의 자본주의는 대공황 이후 정부의 시장 개입을 강조하는 수정 자본주의 체제였다. 반면 냉전 이후의 자본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자유 시장을 주장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신자유주의’라고 한다.

 

 최종정리

 원시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는 생산수단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변화한다. 생산수단은 생산물을 발생시키고, 생산수단과 생산물을 소유한 사람은 부를 가진 것이며, 이는 곧 권력의 획득을 의미했다. 즉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이 권력을 가진 것이다. 원시 시대에는 생산수단이 없었고, 따라서 원시 사회는 평등했다. 고대의 생산수단은 토지와 영토였고 왕이 이를 소유했다. 중세에는 장원이 생산수단이었고 왕과 영주가 소유했다. 근대에는 공장과 자본이 생산수단이었으며 부르주아가 이를 독점했다.

 마르크스는 다가올 다음 시대에는 누가 어떤 생산수단을 소유할지 예측하려 했고, 이것이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음 시대에 생산수단을 소유할 계급은 노동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자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공산주의 사회가 역사 발전의 마지막 단계라고 여긴 것이다.

 

 자본주의의 특성은 공급과잉이었다. 공급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요를 늘려야 했다. 수요를 늘리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품의 가격을 내리는 것이다. 우선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세계는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시기를 제국주의 시대라고 한다. 제국주의 시대는 독일이 뒤늦게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면서 제1차 세계대전으로 발전했다. 세계대전의 표면적 원인은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암살이었고, 근원적 원인은 식민지 경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시장이 안정되는 듯했지만 공급과잉의 문제가 다시 발생했다. 이 문제가 폭발한 것이 경제대공황이었다.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들의 노력이 있었다. 미국은 뉴딜정책으로 자본주의를 수정했다. 러시아는 공산주의 혁명으로 자본주의를 폐기했다. 독일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자 전쟁을 준비했고, 이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 경쟁에 들어갔는데, 이 기간을 냉전시대라 한다. 냉전시대는 경제적 침체로 소련이 해체되면서 종식된다. 냉전 이후는 자본주의가 독주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생산수단과 공급과잉. 두 개념 모두 경제적 개념이다. ‘역사’를 움직여온 핵심이 ‘경제’인 것이다.

 

 

 

2. 경제 

 네 개의 경제체제 - 경제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마르크스는 경제를 하부 구조로 두고, 역사, 정치, 사회, 문화, 의식 등 경제를 제외한 나머지를 상부 구조로 규정한 다음,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는 ‘하부 구조 결정론’을 제시했다. 쉽게 말해서 경제의 모습이 바뀌면 역사도, 사회도, 문화도 모든 것이 바뀐다는 것이다.

 

 시장의 자유 vs 정부의 개입 - 당신은 어떤 사회를 선택하겠는가 

 시장 안에는 두 가지 경제 주체가 있는데, 그것은 개인과 기업이다. 두 주체가 시장을 구성한다. 그런데 이들에게 간섭하려는 세 번째 사회 주체가 있으니, 그것이 정부다.

 

 정부의 개입 방법은 크게 ‘세금’과 규제’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초점을 맞추려는 개입 방법은 세금이다. 

 경제 정책은 두 가지가 가능하다.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고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있고, 반대로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고 정부의 개입을 강화하는 방법이 있다. 

 

 단적으로 사회 문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은 세금과 복지다.

 

 어떤 사회 체제를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는 완벽한 사회를 찾는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이익이 감소하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문제인 것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는 것은 정부가 세금을 어떻게 부과하는 지의 문제이다. 정부는 세금을 늘리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시장과 관계한다. 그리고 세금은 그 사회의 복지 수준을 결정한다. 이와 같이 세금과 복지의 확대와 축소는 시장의 침체와 활성화를 가져온다. 또 사회의 내부적 갈등과 사회적 안정에 영향을 미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 너에게 생산수단을 허하노라 

 ‘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생산수단과 잉여생산물이다. 생산수단은 나에게 부를 가져다주는 수단이 되지만, 잉여생산물은 내가 소비하면 사라진다.

 

 그래서 생산수단이 문제가 된다. 누군가가 생산수단을 독점하면 그 사람은 막대한 부를 획득하지만,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다만 자신의 몸뚱이를 노동력으로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빈부격차가 커지는 원인은 잉여생산물이 아니라 생산수단에 있는 것이다. 생산수단이 발생시키는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하게 했다. 대신 자본가의 생산수단을 빼앗아서 노동자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공동 소유하고 국가가 이를 관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국가가 생산수단을 관리하는 것을 ‘국유화’라고 한다. 반대로 개인이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민영화’라고 한다.

 

 공산주의는 개인이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모두 국가가 관리하는 체제를 말한다. 반면 자본주의는 개인이 사적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 체제를 말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는 ‘생산수단의 개인적 소유를 인정하는지의 여부’가 된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 잉여생산물 모두를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체제다.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지만, 잉여생산물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체제다.

 

 초기 자본주의, 후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 자본주의는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초기 자본주의는 시장의 자유만이 존재하는 경제체제다.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며 등장하는데,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고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제체제다. 다음으로 신자유주의는 후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등장하는데, 정부의 개입을 축소하고 시장의 자유를 확대하려는 경제체제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는 시장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고, 정부의 강력한 개입과 통제만이 존재하는 경제체제다. 

 

 초기 자본주의는 정부의 개입이 없으므로, 세금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복지도 없다. 반면 극단적인 공산주의는 세금이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복지도 100퍼센트에 가까워질 것이다. 중간에 있는 후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극단적인 체제 사이에 있다. 다만 후기 자본주의는 시장의 자유보다는 정부의 개입을 강조하므로 세금이 높고 복지가 강화된다. 반면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의 자유가 강조되므로 세금이 낮고 복지가 축소된다. 

 

 초기 자본주의 - 시장은 자유다 

 시기적으로는 자본주의가 태동한 산업혁명기, 즉 근대에 시작되었다. 초기 자본주의 이론을 정립한 대표적인 사람은 애덤 스미스로, 그는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이 사회 전체의 부를 증진시킨다고 보았다. 국가가 시장에 간섭하지 않아도 시장은 스스로 가격을 조절하며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미 자본력을 가진 사람들은 초기 자본주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가 있다. 능력 있고 노력하는 사람일지라도 부를 소유하지 못했다면, 초기 자본주의에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초기 자본주의의 또 다른 문제는 이로 인해서 노동 환경이 열악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가격 결정의 모든 희생은 노동자들이 감수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자들만의 희생으로 끝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사실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소비자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극히 적어지면 소비자의 소비력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소비가 줄어들면 아메리카노의 수요는 더 줄어들 것이다. 아메리카노의 수요가 더 줄어들면 공급과잉의 문제가 생길 것이다. 공급과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본가는 가격경쟁력을 빌미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더 삭감할 것이다. 그러면 소비자의 소비력은 더 열악해질 것이다. 근현대의 역사 중 세계대공황이 발생하게 된 모습이다. 

 

 매우 자연스럽고 상식적으로 보이는 초기 자본주의는 과열 경쟁에 의한 소비위축과 공급과잉의 문제로 인해 필연적으로 경제대공황이라는 시장실패 상황을 몰고 온다.

 

 후기 자본주의 - 정부가 개입한다 

 수정 자본주의는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가 제시했다. 정부가 세금을 통해 부를 재분배함으로써, 자본에 의한 독점을 막고 소비가 활성화되도록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한다. 우선 공공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해서, 고용된 노동자들이 소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다음으로 세금을 적극적으로 징수해서 정부의 재정을 늘린다. 그리고 이 자금을 공공사업의 자금으로 재사용하여 경제의 선순환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부가 재분배되고, 사회적 빈부격차가 줄어들며, 정부의 재정이 늘어난다.

 

 이러한 인간적인 자본주의는 대공황부터 시작되어 냉전시대를 거쳐 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 이어졌다. 공산주의는 부르주아인 자본가를 인정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 즉 노동자에 의한 정치를 추구한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미국의 자본가들은 노동자와 사회적 소외계층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불만을 갖지 않게 하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배부르고 편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소외계층의 권리와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수정 자본주의의 모습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수정 자본주의도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 번째가 경기침체와 장기불황이고, 두 번째가 불황과 함께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수요는 없는데 물가는 오르는 상황. 다시 말해, 경기는 침체하는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이 상황을 어려운 말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수요가 줄어들면 가격을 낮춰야 한다. 그래야 수요가 다시 늘어나서 시장이 정상화된다. 하지만 후기 자본주의에서는 정부가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너무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하다 보면 수요가 줄었지만 가격을 인상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자본가는 급변하는 시장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데 정부의 규제로 인해 그렇게 할 수 없었고, 시장의 상황이 비정상적으로 왜곡되어 그 결과 사회 전체의 침체가 발생한 것이다. 

 

 수정 자본주의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경직된 노동 시장을 형성했고, 이로 인해 불황과 경기침체를 가져왔다. 공산주의는 국가에 의한 계획경제라는 정부의 강력한 개입을 주장하는 체제다. 이러한 체제의 붕괴를 목도하고, 동시에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는 수정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차라리 정부의 개입이 없었던 초기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신자유주의 - 다시 시장에 자유를 주어라 

 신자유주의는 시카고학파가 주도했는데, 이들은 1970년대 이후부터의 장기 불황의 원인을 수정 자본주의가 추구한 과도한 정부 개입으로 보았다. 

 

 신자유주의는 정부 개입이 없다는 점에서 초기 자본주의와 동일한 문제점을 갖는다. 자본에 의한 독점 현상이 일어난다. 다음으로는 빈부격차가 심화된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누군가는 계속 승리하고 누군가는 계속 희생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경기가 흔들릴 때마다 희생되는 사람들은 노동자인 것이다. 

 

 공산주의 - 공산주의는 왜 실패했는가 

 빈부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가진 반면, 노동자는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은 생산수단을 이용해서 다른 이들을 고용하고 이를 통해 이득을 얻지만, 자신은 직접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다. 

 생산수단을 소유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소유자가 부를 축적할 수 있게 한다. 이에 따라 노동자와의 소득격차는 계속 벌어진다. 다음으로 소유자가 노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게 한다. 생산수단의 소유자는 직접적인 노동이 요구되지 않는다.

 

 자본가는 어떻게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었는가? 단순히 자본가가 이미 자본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노동자들도 임금을 아끼고 저축해서 자본을 축적한 다음 그것으로 생산수단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닐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한다면 소득도 두 배가 될 것이므로 부를 축적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자본가의 소득도 그만큼 높여줄 것이다. 노동자는 경쟁을 통해 다른 노동자를 이길 수는 있지만, 노동자가 열심히 노동할수록 자본가는 그만큼 더 부유해진다. 노동자가 실제로 모을 수 있는 돈은 극히 적다. 그런 속도로는 자본가를 따라잡을 수 없고, 결국 생산수단은 절대 소유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막대한 자본을 빠르게 축적하는 자본가가 대부분의 생산수단을 선점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열심히 일하지만, 가장 많은 부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주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혁명이 필요하다. 자본가에게서 생산수단을 빼앗아, 노동자들이 그 생산수단을 직접 소유하는 것이다. 자본가에게서 생산수단을 빼앗아 노동자가 그 생산수단을 직접 소유하는 사회. 이것이 공산당혁명의 목표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공산주의는 대략 마르크스주의를 칭한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계급 간의 갈등으로 설명하고, 그 갈등의 끝은 모든 사람이 평등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독일 철학자인 헤겔의 변증법에서 기인한다. 살면서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변증법은 우주와 세계의 운행 원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헤겔의 대답이다. 헤겔은 인간의 정신과 물질을 비롯한 세계 전체가 변증법이라는 원리를 통해 발전해나간다고 보았다. 변증법은 정, 반, 합의 3단계를 거쳐서 전개되는데, 쉽게 말해 세상에 정상적인 것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모순되는 반대되는 것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상적인 것과 반대되는 것은 서로 모순되므로 공존하지 못하고 투쟁하게 된다. 그리고 이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 두 가치를 모두 극복한 합쳐진 것이 새롭게 등장한다. 하지만 이 합쳐진 것도 결국 정상적인 것이 되고, 필연적으로 모순 관계의 반대되는 것을 만들어내게 된다. 끊임없이 정, 반, 합의 관계를 반복하면서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변증법을 역사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고대 사회에서 가장 정상적인 존재는 왕이었다. 이와 모순되고 대비되는 존재는 노예였다. 왕과 노예는 너무나 다른 대립적 존재이므로 서로 투쟁하는데, 결국 이러한 투쟁으로 왕도 아니고 노예도 아닌 애매한 영주라는 존재가 탄생한다. 영주는 왕이 따로 존재하므로 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노예라고 할 수도 없다. 이후 중세에는 영주가 세계의 가장 정상적인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존재는 농노가 된다. 이 둘은 갈등과 투쟁을 겪고, 새로운 합으로서 부르주아를 탄생시킨다. 실제로 헤겔은 부르주아가 인류 역사의 완성이고 끝이라고 생각했다.

 

 헤겔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마르크스는 변증법에 뒷이야기를 더 첨부해 넣는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부르주아는 역사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었다. 그는 부르주아 역시 근대의 정상적인 존재이므로 필연적으로 그에 모순되는 프롤레타리아와 대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둘이 투쟁해서 결국 미래에는 프롤레타리아가 모든 계급 갈등을 청산할 마지막 계급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과정은 우리가 역사에서 살펴본 생산수단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각 시대의 생산수단을 소유한 존재는 토지를 소유한 왕에서 장원을 소유한 영주로, 그리고 공장을 소유한 부르주아로 이동했다. 왕이나 영주와 같은 지배계급이 노예와 농노를 착취했던 것처럼, 부르주아도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프롤레타리아들이 자유로워질 차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의 생산수단을 빼앗아 그것을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 생산수단을 특정 계급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공동으로 소유하면, 더 이상의 권력관계는 형성되지 않고 지배관계도 사라진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가 탄생할 것이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이었다.

 

 자본가들은 국가가 자신들의 재산과 권리를 지켜주길 기대했다. 이에 따라 일부 국가에서는 국민들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갈등을 선과 악의 문제로 받아들이도록 분위기를 형성해갔다. 자본주의가 자유를 수호하는 선이고, 반대로 공산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부정하는 악이라고 국민들을 교육하고 설득했다. 이것은 지배자가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신을 요청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는 쉽게 말해서, 생산수단을 노동자들이 공동 소유하자는 이념이다. 생산수단을 공동 소유하려는 것은 생산수단을 개인이 독점하면 그 사람이 권력을 갖고, 타인을 지배하고 착취하기 때문이다.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없애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을 누군가 독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생산수단이 국가에 의해 관리된다.

 

 실패 원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우선 인간 본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를 근본적 원인으로 지적하는 견해가 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추구할 것 같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그러한 평등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본능적으로 계급과 서열을 중시한다. 다수가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라도 소수가 불평등을 추구할 때, 그 사회는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 공산주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고자 한다는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적이고 불가능한 전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두 번째 해석은 조금 더 근본적이다. 그것은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일으키는 문제점에서 찾을 수 있다. 생산수단을 개인이 소유하지 않고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설명은 가능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다. 그 이유는 ‘국가’라는 것이 실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관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국가라는 구체적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국가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머릿속에 관념으로 존재한다. 그렇게 관념으로서 존재하는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한다고 해도, 실제로 그 소유를 유지하고 분배하는 존재는 지극히 구체적인 사람이다. 즉 국유화된 생산수단을 관리하는 소수가 권력에 근접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가 추구하는 노동자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실현되지 않는다. 국가의 이름으로 국가 전체의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절대적 권한을 갖는 인물이 필연적으로 탄생한다.

 

 세 번째 원인은 정부 주도 계획경제의 실패에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 논하면서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다양한 문제가 발생함을 보았다. 공산주의는 정부가 전적으로 주도해서 경제 전체를 이끌어가는 체제다. 복잡하고 예민한 시장의 상황을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정부가 주도적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은 많은 위험을 초래한다. 판단의 실수, 예측 불가능한 변수의 발생 등 계획에서 벗어난 문제에 대처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시장의 왜곡이나 비효율성 등 정부 실패를 발생시킨다.

 

 마지막 원인으로는 자본주의의 방해를 들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공급량을 해소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소비를 창출하기 위해 시장의 확대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공산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이 될 수 없다. 공산주의 사회는 정부에 의해 매우 폐쇄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자본가들을 적대시한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를 제거해야 하는 대상으로 상정했다.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자본주의 사회의 지속적인 방해와 공격이 공산주의를 무너지게 만든 주요 원인이 된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구분 - 무엇이 공산주의이고, 무엇이 사회주의인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정확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가장 적절한 구분 방법을 추려보면 세 가지 정도가 된다.

 첫째, 혁명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른 구분이다. 이에 의하면 사회,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 중심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주체를 노동자 스스로로 보는 입장을 공산주의라 한다. 반면 노동자는 실제로 스스로를 극복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엘리트계급 또는 부르주아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내려놓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사회주의라 한다. 이는 누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입장 차이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하는 것이다.

 둘째, 수단과 목적의 관계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이에 따르면 궁극적인 목표인 공산주의 사회는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며 독재를 하는 사회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갑자기 노동자 중심의 사회로 급격히 변화될 수는 없다. 따라서 과도기적 단계로서 노동자가 아닌, 국가와 정부를 대리하는 소수의 정치엘리트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가 필요한데, 이를 사회주의라 부르는 것이다. 이 구분 방법은 공산주의를 궁극의 목표로, 과도기 단계를 사회주의로 설정함으로써 두 체제를 구분한다.

 셋째, 내포의 관계로 보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경제라는 넓은 개념으로 파악하고, 공산주의는 그 중에서도 특히 노동자에 의한 계획경제라는 측면에서, 공산주의가 사회주의에 포함된다는 개념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역사와의 연계 - 경제체제는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 

 시대와 연계될 때 무엇이 드러나는가? 경제체제가 각 시대의 상황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간정리

 사민주의는 사회주의에 뿌리를 두지만, 어느 정도 시장의 자유를 용인하는 체제다. 시장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정부의 개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후기 자본주의와 유사하고, 실제로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후기 자본주의와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후기 자본주의의 뿌리가 자본주의라면,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뿌리는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절충적이고 온건하다는 측면에서 서로 닮았다. 

 

 성장중심정책, 분배중심정책 – 결국은 성장과 분배의 문제다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거부하고 시장의 자율을 신뢰하는 체제다. 여기서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말은 세금의 축소를 의미한다. 여기서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말은 세금의 축소를 의미한다. 세금을 줄이면 국가의 재정이 나빠지고 당연히 복지의 수준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복지 수준이 낮아지면 복지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혜택도 그만큼 줄어든다. 하지만 세금이 줄어들면 부유한 개인이나 기업은 그만큼 기술 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가 있다. 그리고 기술에 대한 투자는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이다. 이러한 경쟁력은 외국의 공격적인 다국적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이렇게 국가가 시장에 대한 간섭을 줄이기 위해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이 ‘성장중심정책’이다.

 

 후기 자본주의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추구한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부유한 개인과 기업의 세금이 늘어난다. 높은 세금은 부유한 개인이나 기업으로 하여금 기술 투자 비용을 줄이게 하고, 이로 인해 기업과 국가가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외국의 다국적 기업들과 경쟁할 수 없어지고, 장기적으로는 다국적 기업에 시장을 잠식당하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세금이 증가하면 이를 통해 국가의 재정 상태가 좋아지고, 국가는 충분한 재정을 사용하여 사회적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다. 즉 복지 수준을 높이고 빈부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이를 ‘분배중심정책’이라고 한다.

 

 최종정리

 경제가 중요한 이유는 경제가 역사를 움직이는 토대가 되고, 정치와 사회를 이해하는 근간이 되어서다.

 

 

 

3. 정치 

 보수와 진보 그리고 민주주의 - 경제체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정치란 단순히 ‘경제체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다.

 

 보수와 진보의 이론적 구분 - 당신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서로 다른 시각은 존재하지만, 틀린 시각이란 없다.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타자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하진 않을지라도 매우 소모적이다.

 경제위기와 경기침체는 수요를 감소시킨다. 수요가 감소하면 기업과 공장이 문을 닫으며, 이로 인해 실업자가 발생한다. 실업자는 다른 측면에서의 소비자이므로 실업자의 증가는 소비의 감소로 연결되어 다시 사회 전체의 수요를 감소시킨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경기는 더욱더 침체된다.

 

 미국은 1929년 경제대공황 당시 대규모 공공사업으로 실업자 발생을 막음으로써 악순환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구제금융의 조건 자체가 정부의 긴축재정과 기업의 강력한 구조조정이었으므로, 국가 차원의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했다.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침체된 소비를 진작하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국민들에게 소비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는 데 있다. 실업자와 노숙자가 대폭 증가하는 상황에서 소비 활성화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정부는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신용카드 발급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소비가 촉진되어야 시장도 살아나서 침체를 벗어날 수 있는데, 사람들은 불황으로 돈이 없으니 우선은 신용카드로라도 수요를 창출하도록 유인한 것이다. 신용카드는 결국엔 빚이지만, 수중에 돈이 없는 상황에서 우선 국민들의 소비를 유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러한 규제 완화로, 실제로 신용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었다. 정부의 개입은 실제로 소비의 회복으로 이어졌고, 시장을 되살리는 데 어느 정도의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빚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의 능력보다 과도하게 소비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이들이 빚을 갚지 못하고 파산하는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다.

 

 보수와 진보의 현실적 구분 - 현실에서 보수와 진보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ο 정당

 역사적 측면을 고려할 때, 세계적으로 자유주의는 파란색을, 사회주의는 빨간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해왔다. 그 기원은 프랑스 대혁명에 있다.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가 파랑, 흰색, 빨강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이와 연결된다. 이 삼색기는 절대왕정에 저항한 시민혁명 정신을 표상하고 있다. 각각의 색깔은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한다. 즉 파랑은 자유, 흰색은 평등, 빨강은 박애인 것이다. 우선 공산주의가 빨강을 상징색으로 선택하면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는 자유를 상징하는 파랑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징색이 정확하게 지켜지는 지역은 유럽이다. 영국의회는 보수당이 파란색을, 진보당이 빨간색을 당의 상징색으로 사용한다. 

 

 한국, 미국, 일본 등의 국가에서는 정당의 상징색이 전통적인 맥락과는 무관하게 사용된다. 미국의 공화당은 빨간색, 민주당은 파란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하며, 일본의 대표적인 보수 정당인 자유민주당도 녹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한다. 녹색은 전통적으로 환경과 생태를 강조하는 녹색당의 당색임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이 녹색을 사용하는 것은 어떤 맥락도 없다.

 

 ο 언론과 방송

 미디어가 객관적 보도를 하지 못한다는 말의 의미는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객관적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객관적 사실에 의도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초기에 자유와 평등을 강조했던 자유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 보통선거권을 두려워해서 자본가는 4표, 노동자는 1표의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에 의해 사회가 필연적으로 공산화되리라 우려했던 것이다. 그는 미디어의 영향력을 상상하지 못했다. 

 

 호르크하이머 :: 독일의 철학자로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사회철학 교수가 되고(1930) '사회 연구소'의 소장이 되었으나 나치의 박해를 받아 망명하였다.(1933). 미국에서 연구 활동을 계속하다가 전후 프랑크푸르트 대학으로 다시 돌아와 여기에서 활약하였다. 이론 내부의 정합성(整合性)과 기술적인 유효성에만 관심을 갖는 '전통적인 이론'을 비판하고 '비판적인 이론'(Kritische Theorie)을 주장하였다.
이것을 이론적인 작업을 사회적인 과정으로서 파악하고 개인적인 의식 속에도 사회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하여 사회의 총체적인 과정의 구조 분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사회의 경제적인 구조와, 심리적인 발달 그리고 문화 영역에서의 갖가지 변화와의 연관성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지도자로서 유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르크하이머 [Horkheimer, Max]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비판 이론에 따르면 미디어의 오락적 기능은 대중들에게 사회 체제의 압박을 숨기고 도피하게 기능한다. 미디어의 말초적인 가십거리들이 사회 변화를 가로막는 강력한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커뮤니케이션의 내용’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형태’가 문화를 결정함을 밝혔다. 즉 미디어의 편성 전반이 비정치적이라면 미디어의 내용이 아니라 형태로 보아 그건 정치적 제스처로 의심해볼 만하다.

 

 ο 사회집단

 종교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종교는 그것이 어떤 종교이건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그 사회를 안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교, 이슬람, 불교 할 것 없이 기본적으로 종교는 사회의 체제를 인정한다. 현재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종교적 교리는 없다. 종교의 공통된 관심사는 자아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인이 어떤 문제적 상황에 처했을 때, 종교에서 “너에게 문제가 발생한 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니 사회를 바꿔야 한다”라고 가르치는 경우는 없다. 반대로 종교는 개인이 처한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자기 내면의 성찰과 반성을 요구한다.

 

 이처럼 문제의 원인을 사회가 아닌 개인에게 돌리는 사고방식은 그 사회의 문제를 은폐함으로써 대중의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 마르크스가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고 말한 의미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아편이 개인이 처한 삶의 고통을 허구적 환상으로 회피하게 하듯이, 종교 역시 심리적 안정을 통해 민중이 느끼는 사회적 불만을 해소함으로써 부조리에 대한 저항과 불만을 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종교는 치열한 실천적 저항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행위의 가치를 폄하하고, 사후 세계나 내면 세계라는 개인적인 관심사를 부각함으로써, 사회로 향해야 마땅한 정당한 분노를 안으로 삭히도록 한다.

 

 해방신학 ::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정의롭지 못한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실천을 강조했던 기독교 신학 운동이다. 1960년대 라틴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시작되어, 가톨릭 신학자들이 주도하고 진보적 개신교 신학자들이 참여함으로써 초교파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빈곤한 사람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교리를 해석함으로써 교회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과 부조리로부터 이들을 해방시키는 사회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특히 빈곤을 신의 뜻에 어긋나는 사회적 죄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의 사회참여를 강조한 해방신학적 관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와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열린 제2차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1968년)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빈곤한 국가가 부유한 국가에 종속되는 세계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교회가 인류·역사와의 유대에 따라 그런 문제에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천명하였으며, 메데인 주교회의에서는 이에 대한 공식적이고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후 해방신학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전하였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는 방콕대회(1972)와 나이로비 대회(1975)에서 해방신학을 “WCC의 신학”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에서 1984년과 1986년 두 차례에 걸쳐 해방신학과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 사이의 연관성을 우려하는 경고 문건을 발표한 이후,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해방신학이 라틴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발달한 데는 지역적인 특수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라틴 아메리카는 15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에 의한 식민통치를 받았고, 독립 후에도 군사독재가 지속되면서 고질적인 빈부격차와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에 시달렸고 부패와 부조리가 만연했다. 말하자면 해방신학은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경제,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한 교회의 도덕적인 반응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 인구의 대다수가 가톨릭교도라는 점도 이 지역에서 해방신학이 태동하여 발전하는 데에 밑거름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해방신학 [Liberation theology, 解放神學] (두산백과)

 

 20세기 남미의 가톨릭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해방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정의롭지 못한 경제, 정치, 사회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했다. 또한 이들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입장에서 신학을 해석하고, 교회가 사회에 참여할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정의의 관점에서의 신념은 로마 교황청이 마르크스주의와의 연관성을 우려하는 경고 문건을 발표하면서 현재는 위축된 상태다.

 

 전통적으로 학생운동은 NL과 PD로 구분된다. NL은 ‘National Liberation’의 약자로, 번역하면 ‘민족 해방’ 정도가 된다. 이들은 반미와 통일을 추구한다. PD는 ‘People’s Democratic’의 약자로, ‘민중 민주’ 정도로 해석된다. 이들은 자본주의 반대, 노동해방을 지향한다. 이 둘의 근본적인 뿌리는 마르크스에 가서 닿는다. 어쨌거나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 착취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으로써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결할지에 대한 입장에서 차이가 있다. NL은 북한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통일을 방해하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PD는 그것보다는 노동자의 권리나 인권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 민주주의는 어떻게 독재를 탄생시키는가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답부터 말하면, 독재주의와 엘리트주의다. 공산주의의 반대말은? 그것은 앞서 논의한 대로, 자본주의다. 민주주의와 엘리트주의는 정치체제에서 대립되는 개념이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경제체제에서 대립되는 개념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제의 형태를 띠고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시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전문가 집단이 시민의 의견을 대리해서 결정한다. 그러면 대의제는 민주주의인가, 변형된 엘리트주의인가? 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쟁 중이지만 우리는 우선 대의제도 민주주의에 포함하려 한다. 엘리트주의 혹은 독재주의는 권력의 근거를 자기 스스로에게서 찾지만, 대의제는 권력의 근거가 시민, 대중에게 있기 때문이다. 대의원들의 의사가 시민들의 입장을 반영하지 못하고 괴리될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권한을 부여해준 것은 시민들이다.

 

 민주주의의도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독재자’나 다수에 의해 소수의 반대 견해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다수의 독재’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독재를 만들어낸다는 문제점을 갖는다. 다만 그 독재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독재, 엘리트주의 - 독재와 엘리트주의는 나쁜 것인가 

 민주주의의 문제점은 사실 하나의 원인에서 기인한다. 의사결정의 주체인 다수가 정치적 결정을 할 수 있는 역량과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를 ‘중우정치’라 부르며 경계했다. 중우정치는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에 의해 사회의 방향이 결정되는 정치적 실패를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의 어리석음과 그로 인한 위험성을 강력히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그들이 추구하는 민주제가 중우정치로 인해 몰락할 것임을 경고했다.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은 이상적인 정치 형태로 스파르타의 엘리트주의를 제시했다.

 

 엘리트주의는 사회의 중심이 엘리트라고 보는 견해의 총칭이다. 역사적으로 등장했던 독재, 귀족제, 과두정치, 전제정치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그 이름이 어찌 되었건 간에 소수에 의해서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엘리트주의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를 전제한다. 첫 번째는 사회가 권력을 가진 자인 엘리트와 권력을 가지지 못한 일반 대중으로 구분되는 것이 사실이며, 이들 사이에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렇게 엘리트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대중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와 차이가 있다. 그것은 정치적 권력의 정당성을 누구로부터 얻는지에 대한 차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에 엘리트가 있거나 없거나, 어쨌든 정치인의 권력의 정당성이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시민에게 그를 대리자로 뽑거나 뽑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반면 엘리트주의는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통치자의 정당성이 시민으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엘리트의 정치적 정당성은 엘리트 스스로에게서 나온다.

 

 엘리트주의를 이상적인 정치제도로 생각한 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이나 정치에서 절대적 진리를 찾고자 했던 사람이다. 현대인들은 다양한 목소리와 관점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다양한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하나의 진리를 찾으려 했다. 진리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철학에서는 절대주의로, 정치에서는 엘리트주의로 나타난다. 철학에서의 절대주의나 정치에서의 엘리트주의는 유사해서, 오류의 가능성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불확실성을 완벽하게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쨌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철학의 완벽한 진리가 있듯, 정치에도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탁월한 엘리트가 존재해야 한다고, 소크라테스는 생각했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기는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를 물리친 이후였다. 대략 그리스는 서양, 페르시아는 동양이라 할 수 있다. 이후 그리스는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그리스의 주도권을 두고 두 도시국가인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을 벌였다. 아테네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였고, 스파르타의 정치체제는 엘리트주의였는데, 아테네는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계속 패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5세기 무렵에 이런 아테네에 살았다. 그는 특별한 직업 없이 아테네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못생겼지만 워낙 말을 잘하고 지적이어서 젊은이들이 그를 따르고 좋아했다. 그의 친구가 델포이 신전에 가서 무녀에게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고, 무녀가 그런 사람은 없다고 말하면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며 아테네에서 지혜롭기로 소문난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했다. 자기가 잘 모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과정에서 소크라테스가 대화하는 방식을 산파법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대답하는 사람 스스로가 진리를 도출하게 하는 방식이다.

 

 에우티프론 :: 《에우튀프론》(그리스어: Ευθύφρων)은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으로, 저술 시기는 기원전 399년 이후이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앞두고, 자신이 경건함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에우튀프론과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나눈다는 내용이다. 이 책의 주제는 '경건함'에 대한 것이다.
 [위키백과]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가 질문하고 답변자가 대답하기를 반복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신탁의 의미를 깨닫는다. 자신은 자신이 잘 모른다는 것을 ‘아는’데, 사람들은 자신이 잘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한 가지를 더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을 ‘무지의 지’라고 한다.

 

 계속된 말장난에 화가 난 아테네 사람들은 이 말 많은 70세 노인을 법정에 서게 했다. 죄목은 풍기문란에 국가보안법 위반. 청년들에게 불온한 사상을 퍼뜨리고 신성을 모욕했다는 것이 죄목이었는데, 실제로는 소크라테스와 그 제자들이 스파르타의 정치체제인 엘리트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시민들이 모인 법정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다가 배심원들의 화를 돋우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자신을 쇠파리로 비유하며, 잠든 거대한 말인 아테네를 깨우는 일을 한 것뿐이라고 변명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받고도 충분히 도망칠 기회가 있었으나,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사형을 받아들였다.

 플라톤은 분노에 휩싸였다. 아테네 사람들에게도 물론 화가 났겠지만, 그가 분노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민주주의 체제였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민주주의가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서 얼마나 파행적이 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살아 있는 근거가 되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모여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인물인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이후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중우정치, ‘폭민정치’라 불러 그 한계를 명확히 했다.

 플라톤이 제시한 정치체제는 ‘철인정치’였다. 철인정치는 지혜와 덕을 갖춘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정치 형태다. 여기서의 철인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철학자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철학자는 오늘날의 의미처럼 철학과 박사 과정을 나온 사람이라는 협소한 의미가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넓은 의미를 갖는다. 플라톤은 사회를 농민계급인 생산자, 군인계급인 수호자, 통치자인 철인 왕으로 구분해서 지혜를 사랑하는 덕이 있는 자에 의한 절대적 통치를 꿈꿨다.

 

 독재와 민주주의 비교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체제는 무엇인가 

 사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폴리스는 현대의 한국처럼 복잡하고 거대한 근대적 의미의 국가는 아니었다. 차라리 윤리적인 전통적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아테네의 인구는 대략 30만 명 정도로, 이 중 시민은 일부에 불과했다. 즉 건너 건너 다 아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정치적인 삶과 윤리적인 삶이 엄밀히 분리되긴 어려웠다. 따라서 당시 그리스인들이 개인적으로 윤리적인 사람이 공동체도 윤리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모두를 만족시킬 이상적인 정치는 없다. 따라서 이상적인 독재자, 엘리트는 불필요하다. 정치에서 요구되는 것은 뛰어난 인물이 정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에서 충돌하는 이해당사자들이 대화와 협의를 통해 이견을 조율할 절차가 마련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익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정치에 직접 참여할 여건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의 비현실성을 압도한다.

 독재와 엘리트주의가 현실화되었을 때, 사회 전반에 심각한 문제점을 일으킨다. 첫째,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함으로써 그것이 자본가이건 노동자이건 이익 분배에서 배제된 다른 집단의 불만을 고조시킨다. 둘째, 엘리트주의는 스스로의 완전무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 불만을 가진 집단을 필연적으로 억압한다. 셋째, 이런 억압을 정당화하거나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권력자는 정보를 은폐하거나 왜곡한다. 넷째, 정보의 은폐와 왜곡을 숨기기 위해 국민들에게 왜곡된 정보가 사실인 양 과장해서 교육한다. 다섯째는 이러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편협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 스스로가 사회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한다. 결국 사회는 병든다. 

 

 자유민주주의,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 - 경제와 정치는 어떻게 결합되는가 

 공산주의는 실제로 민주적 절차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상적인 공산주의 이론에 따르면, 정치적인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집단은 오직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노동자 집단뿐이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라고도 한다. 이러한 사회 형태는 과도기적 단계로,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단계다. 노동자가 독재하는 사회가 공산주의라는 측면에서, 오늘날의 북한은 공산주의라 부르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사회민주주의 체제에도 문제점이 있다. 핵심적인 비판은 두 가지다. 첫 번째 문제점은 국가의 채무가 높아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복지가 확대되는 대신 세금의 부담이 높을 것이다. 복지 확대는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고, 세금 인상은 노동 의욕과 투자 의욕을 감속시켜 경기를 침체시킬 것이다. 이처럼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사민주의 국가들은 과도한 세금으로 경제 성장이 더디고, 재정 적자로 인한 부채가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스웨덴은 GDP 대비 28.9퍼센트의 복지예산을 사용하지만 1인당 GDP는 5만 7천 달러인 반면, 한국은 GDP 대비 8퍼센트의 복지예산을 사용하지만 1인당 GDP는 2만 4천 달러 정도다. 이 자료가 말해주는 것은 복지 지출이 더 많아도 더 부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민주의의 두 번째 문제점은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이 보여주는 평균적인 부유함은 사민주의 때문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환경과 역사적 요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럽은 근현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들이었고,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의 광대한 지역을 식민지화했었다. 이러한 역사적 측면에서의 부와 기술의 축적은 유럽 전역에 해택을 미쳤고 현재 사민주의 국가들이 부를 축적하는 배경이 되었다. 또한 풍부한 자원과 유럽이라는 거대한 소비시장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북유럽 국가들은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과감한 복지정책이 가능했다. 

 

 민주주의의 형식적 급진성과 현실적 보수성 - 우리는 왜 보수화되어 가는가 

 사회가 신자유주의를 선택했다고 해서 이를 비난할 수 없으며, 사회주의가 선택되었다고 해서 마찬가지로 이를 비난할 수 없다.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은 ‘체제’ 자체가 아니라 ‘체제 선택의 합리성’이다.

 

 

 

4. 사회 

 개인과 사회 - 역사, 경제, 정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역사는 누가 어떤 생산수단을 소유했느냐에 따라 전개되었다. 생산수단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소유했다. 고대에는 왕이 토지를 소유했고 중세에는 왕과 영주가 장원을 소유했다. 그리고 근대가 되어 부르주아가 공장과 자본을 소유했다. 자본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근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는 자본주의가 유지되며 발전한 역사다. 공급이 수요보다 크다는 자본주의의 특성은 공급량을 해소하기 위한 국가 간의 경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경쟁은 식민지 정책과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공급과잉의 문제는 결국 과열 경쟁으로 인한 시장 실패를 가져왔고, 대공황을 일으켰다. 경제적인 위기 상황에서 독일은 전쟁을 일으켰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종전 후에는 전쟁의 최대 수혜국인 미국과 소련에 의해 세계가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양분되어 체제 경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90년대 초 소련 붕괴와 함께 공산주의는 실패한 체제로 판결이 났고, 오늘날 세계는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되었다.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실은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기본적으로 경제라는 것이었다. 생산수단과 공급량 해소를 위한 움직임이 역사 전개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축으로서의 경제를 이해해야만 한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 개인과 사회의 이익이 충돌할 때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개인의 권리와 사회의 이익이 대립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의 권리와 사회의 이익이 대립한다면 어쨌든 개인의 권리가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견해를 개인주의라고 하는데,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회라는 개념이 실제로는 허구라고 생각한다. 사회라는 건 실제로는 없다. 사실 사회는 단순히 개인들의 총합일 뿐이다. 사회라는 어휘는 범위를 규정할 수 없으며 실체도 없는 허구라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사회’라고 언어로 쓸 수 있으니 실제로 사회가 존재한다고 착각할 뿐이다. 

 

 반면 개인의 권리와 사회의 이익이 대립한다면 당연히 사회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견해를 집단주의라 한다. 이들은 사회가 허구가 아닌 실체라고 생각한다. 사회는 개인들의 합 이상이다. 사회는 실제로 개인에게 혹은 다른 사회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개인의 의미는 사회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주의와 전체주의 - 전체주의는 개인이 비윤리적 행위에 눈감게 한다 

 개인주의가 극단화되면 이기주의가 되고, 집단주의가 극단화되면 전체주의가 된다.  

 

 전체주의가 탄생한 배경은 근대 자본주의 시기의 경제대공황부터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근현대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공급과잉이라는 문제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식민지를 차지하려는 제국주의가 발생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전쟁으로 인해 수요가 폭발하면서 세계는 안정화되었는데, 이후 공급과잉의 문제가 또다시 발생하면서 1929년에 세계 경제대공황이 발생했다. 우리는 앞서 역사 파트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세 국가의 노력을 알아보았는데, 미국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수정 자본주의로, 러시아는 시장을 폐지하고 정부가 강력히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공산주의로 이를 해결하려 했다. 세계적인 경제대공황의 상황에서 특별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어려웠던 국가들은 전체주의적인 모습으로 변모해갔다.

 전체주의가 발생하는 필수적 요인은 경제적 침체다. 이탈리아에서도 세계적 공황으로 인해 경제가 극심하게 어려워지자, 강력하고 배타적인 국가 중심의 체제를 강조하는 무솔리니가 등장해서 파시스트당을 만들었다. 이 파시스트들의 이념을 파시즘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이탈리아어 파쇼(fascio)에서 유래한다. 결속, 단결, 묶음 등의 뜻이다. 무솔리니는 파시즘에 대해서 ‘파시즘은 고정된 신념 체계라기보다는 권력을 장악하기 이한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켄크로이츠 :: 하켄크로이츠는 독일어로 ‘갈고리(Hooks)’를 뜻하는 ‘하켄(Haken)’과 ‘십자가(Cross)’를 뜻하는 ‘크로이츠(kreuz)’가 합쳐진 말로서 ‘갈고리 십자가’라는 뜻이다. 불교나 절[寺]의 상징으로 널리 쓰이는 ‘만(卍)’자 모양을 뒤집어 기울여 놓은 모양인데, 독일 나치즘(Nazism)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하켄크로이츠는 1920년대 나치스(Nazis)의 상징으로 쓰이기 이전에 이미 고대 게르만(German) 문화에서도 쓰였으며, ‘만(卍)’자 문양도 전 세계에 걸쳐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의 고대 문명에서 이 문양의 사용이 발견되고 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와 비잔틴 문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북부 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방에서도 널리 나타나며, 중국 한(漢)에서는 혜성을 나타내는 기호로 이 문양이 쓰이기도 했다. 이러한 문양을 그리스어로는 그리스 문자의 셋째 글자인 감마(gamma)의 대문자(Γ) 4개를 조합한 것과 같다고 해서 감마디온(gammadion)이라고 하며, 이러한 모양의 십자가를 라틴어로 크룩스 감마타(crux gammata)라고 부른다. 인도에서는 특히 ‘만(卍)’자 문양을 행운과 윤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며 널리 사용해 왔다. 이러한 문양을 산스크리트어(Sanskrit)로 스와스티카(swastika)라고도 하는데, 이는 행운을 가져온다는 뜻이다. 오늘날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는 불교의 전래 이후 이 문양이 불교를 상징하는 것으로 쓰이고 있다. 
하켄크로이츠가 독일 나치즘을 상징하게 된 것은 나치스가 이 문양을 1920년 창당 과정부터 정당의 상징으로 써 왔기 때문이다.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는 1920년 하켄크로이츠를 당의 상징적 문양으로서 당기(黨旗)와 완장 등에 넣어 사용해 왔으며, 그 뒤 이 문양은 오른팔을 높이 뻗는 경례법과 함께 나치스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 Mein Kampf》에서 그 목적과 과정에 대해서 매우 자세히 밝히고 있다. “효과가 큰 깃발과 휘장은 매우 많은 경우에 어떤 운동에 대한 관심에 최초의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 동안에 나 자신이 여러모로 시도하며 마지막 모양을 그렸던 하켄크로이츠는 본래 게르만인이 청동기 시대부터 썼던 행운의 상징이다. 붉은 바탕에 횐 원을 남기고 그 한가운데에 검은 하켄크로이츠를 그린 깃발이었다. 오랫동안 시도한 뒤에 나는 깃발의 크기와 횐 원의 크기, 마찬가지로 하켄크로이츠의 모양과 굵기의 일정한 비율을 정했다. … 우리는 우리의 깃발 속에서 우리의 강령을 본다. 우리는 붉은 색 속에서 운동의 사회적 사상을, 흰색 속에서 국가주의적 사상을, 하켄크로이츠 속에서 아리아 인종의 승리를 위한 투쟁의 사명을, 그리고 동시에 그 자체가 영원히 반유태주의였고 또 반유태주의적일 창조적인 활동의 사상의 승리를 본다.” 
이처럼 하켄크로이츠는 독일 나치즘에서 아리안(Aryan) 인종주의와 우월주의를 나타내기 위한 상징으로 쓰였으며, 1933년 나치스가 권력을 장악한 뒤 제3제국(Drittes Reich)의 국기에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한 뒤 나치스는 해체되었고, 오늘날까지도 독일에서는 하켄크로이츠의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 내의 네오나치즘(neo-nazism) 정당과 세력들은 여전히 하켄크로이츠를 부분 변형하여 자신들의 상징으로 나타내고 있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하켄크로이츠는 백인인종주의나 극우 성향의 네오나치즘(neo-nazism), 네오파시즘(neo-fascism) 세력들의 정치 이념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하켄크로이츠 [Hakenkreuz] (두산백과)

 

 대공황이 유럽을 강타할 당시, 독일은 엄청난 전쟁배상금과 경기침체로 만성적인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이때 히틀러는 자신이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등장했다. 그의 주장은 요약하면 세 가지 정도 된다. ①경제를 살리겠습니다. ②실업자에게 일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③베르사유 조약을 깨고 전쟁배상금을 더 이상 물지 않겠습니다.

 

 전체주의는 독립적으로 자생하는 하나의 이념이라기보다는, 사실 경제적 위기가 발생시키는 하나의 병리 현상으로 보인다. 아무리 평범하고 선한 개인이라고 하더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기인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경제를 살리겠다는 인물이 있으면, 그가 전권을 맡는 것에 대해 침묵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한다. 국가의 이름으로 독재를 하건, 외국과 전쟁을 벌이건 대중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라 독재자가 한 것이고, 경제 회복을 위해서 전체가 함께 동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없다. 전체주의는 개인의 존재 가치를 절하하고, 집단과 전체의 가치를 앞세운다.

 전체가 위기에 처해있고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개인은 언제라도 자신에게 책임이 따르지 않는 것을 반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절하되어 있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위안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지메의 원리와 동일하다. 전체가 비윤리적으로 행동할 때 내가 거기에 가담할 수 있는 것은, 그 비윤리적 행위의 직접적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있기 때문이다.

 전체는 나의 이익을 위해 강력하게 행동하지만, 나에게는 책임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가 전체주의다. 전체주의는 개인이 전체의 비윤리적 행위에 눈감게 한다.

 

 자연권 - 전체주의에서 개인을 구하는 법 

 “전체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개인을 보호할 것인가?”

 실질적 방법이 전무한 상황에서 그나마 인류가 찾아낸 것이 ‘자연권’이다. 자연권은 천부적 권리, 즉 하늘이 부여해준 권리로서 국가라 하더라도 침해할 수 없는 절대적이며 배타적인 권리다.

 

 자연권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인권선언에서 시작되는데, 현대에 와서는 대부분의 국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우선 프랑스 인권선언 제2조에는 “모든 정치 조직의 목적은 인권의 옹호에 있으며, 인권은 자유ㆍ재산ㆍ안전 및 압제에 대한 반항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다”라고 제시한다. 한국 헌법 제10조에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자연권에 대한 해석은 국가마다 미세하게 다를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받을 수 없는 절대적 권리로 서너 가지의 권리를 제시한다. 생명, 재산, 자유가 대표적이다. 즉 국가는 어떠한 특수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나의 생명을 침해할 수 없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나의 재산을 침해할 수 없으며, 나의 자유를 절대로 침해할 수 없는 것이다.

 

 특정 국가가 이러한 자연권과 인권을 극단적이고 전폭적으로 침해할 때에는 국제기구나 타국이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적 개입 역시 한계를 갖는다. 그 한계란 첫 번째, 외부 세계의 압력이 가해지기까지는 외압의 충분한 명분이 충족될 때까지 극단적이고 가시적인 자연권과 인권에 대한 탄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시적이고 일상적이며 소규모로 진행되는, 국가에 의한 빈번한 폭력은 막을 수 없다.

 두 번째, 국제기구의 외압이 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엔은 190여 개 국가의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에 의해서 행동하는 기구가 아니라, 핵무기를 대량 소유한 상임이사국 5개의 만장일치제로 행동 방향이 결정되는 기구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의 5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라도 반대 의사를 개진하면 국제적 행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엔은 이념적 문제를 다루는 데는 극도로 무능력하다. 또한 5개의 상임이사국, 다시 말해 5개 선진국의 이익이 될 때만 세계 전체의 이름으로 구체적인 행동이 일어나므로 국제기구는 정의와 윤리가 아닌 힘의 논리를 기준으로 움직인다. 즉 정의와 도덕성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연권을 보호해줄 권력 집단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주의와 세금 - 부유층의 세금을 높이는 것은 전체주의적 폭력인가 

 “부유한 소수에게 누진세를 부과하는 것은 가난한 다수에 의한 전체주의적 폭력은 아닌가?”

 

 · 사회의 일원이니까 사회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세금은 모든 사회의 구성원이 동의한 합의다!

 사회적 의무를 모두가 지는 건 맞지만 왜 부유한 소수가 더 많은 의무를 져야 하는가. 누구나 동일한 혜택을 받으니 부자들만 누진세를 내는 건 공평하지 않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동의했다고 하는데, 소수의 부유층은 합의한 적이 없다. 다수의 다수결을 앞세워 강행한 것뿐이다.

 · 만장일치는 불가능하고, 어쩔 수 없이 다수의 의견이 반영된다. 부자가 혼자의 노력으로 부를 축적한 것은 아니다. 사회가 도왔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부자를 위해 일하거나 소비한 적은 없다. 계약에 의해 정당한 급여를 지불했고, 소비의 대가로 정당하게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했다. 서로 이익을 위해 스스로 선택했던 일이지, 강요한 것도 희생한 것도 아니다.

 · 윤리적 차원에서 부유층이 세금을 더 내는 것이 타당하다. 

 자발적이 아닌 강제적으로 돕는다고 재산을 강탈하는 것은 그 목적이 아무리 윤리적이라 하더라도 절차가 윤리적이지 않으므로, 결론적으로 윤리적 행위라 할 수 없다.

 ·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부유층은 이미 경쟁의 우위에 서 있다. 

 

 미디어의 말 - 미디어는 어떻게 거짓을 말하는가 

 화용론 :: 언어의 사회적 사용과 기능에 관한 규칙이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관계, 시간과 장소의 적절성, 효과적인 주제의 선택 등과 관련한 용법과 규칙이 포함된다. 실제 상황적 맥락에서 화자와 상대방에 의해서 쓰이는 말의 기능(사용)과 관계되는 영역으로써, 의사소통 시의 발화에 대한 언어론이다. 화자와 청자의 관계에 따라 언어 사용이 어떻게 바뀌는지, 화자의 의도와 발화의 의미는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연구도 다룬다. 정신지체와 자폐 범주성 장애 학생 등의 의사소통 지도에서 상대방에게 적절하게 반응하기, 대화에 적절히 끼어들기 등은 화용론에 입각한 의사소통 지도 방법이다. 아동의 화용론에 대한 평가는 종종 비형식적으로 실시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화용론 [話用論, pragmatics] (특수교육학 용어사전, 2009., 국립특수교육원)

 

 화용론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 말의 주변 상황을 생각해보는 방법을 말한다. 언어나 말에 대한 탐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의미론이고, 다른 하나가 화용론이다. 의미론은 내가 내뱉은 말 자체의 내용과 의미를 탐구한다. 반면 화용론은 내가 내뱉은 말이 왜 하필 그 시간, 그 공간, 그 주체와 대상 가운데서 말해졌는가를 파악하려 한다.

 

 2014년에 발표한 방송광고진흥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방송 광고는 2조 원 대, 신문 광고는 1조 6천억 원 대가 된다. 이러한 기업의 광고비는 미디어가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해 준다. 

 

 

 

5. 윤리

 윤리의 정의 - 윤리적 판단은 실제의 세계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모든 언어는 표현 방식은 달라도 이상하게 그 구조는 동일하다. 모든 문장은 주어+술어로 되어 있는 것이다. 주어와 술어의 합, 다시 말해 존재자와 그 존재자의 상태를 언어로 묘사한 것을 ‘명제’라고 부른다.

 명제는 두 종류로 구분된다. 어떤 명제들은 술어가 “~이다”라고 끝난다. 반면 다른 명제들은 술어가 “~이어야 한다”라고 끝난다. 술어의 상태에 따라 명제가 둘로 나뉘는 것이다. 앞의 문장을 ‘사실명제’라고 하고 뒤의 문장을 ‘당위명제’라고 한다. 예를 들어 “사과는 맛있다”는 사실명제다. 다음으로 “사과는 맛있어야 한다”는 당위명제다.

 

 사실명제를 탐구하는 학문은 과학이고, 당위명제를 탐구하는 학문은 윤리다. 사실명제는 항상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반면, 당위명제는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다. 당위명제는 참과 거짓의 판단을 넘어서 있고, 이에 따라 윤리 역시 참과 거짓을 말할 수 없다. 사실명제에서 당위명제가 도출되거나, 반대로 당위명제에서 사실명제가 도출되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런데 가끔 사실명제와 당위명제를 섞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경우 쉽게 오류에 빠진다. 

 “자유주의가 세계적 대세이므로 우리도 자유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이 문장은 두 가지 명제로 구성되어 있다. 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대세다. ②자유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②는 주장, ①은 근거가 된다. 타당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②는 ①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모든 국가가 자유주의를 ‘선택했다’고 해서 우리도 자유주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므로 나도 거짓말을 해야 한다.”

 이 문장은 사실명제에서 당위명제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앞의 문장과 형식이 동일하다. 당위명제는 사실명제를 통해 증명될 수 없다. 당위명제는 사실명제와 무관하게 그 문장 자체의 내용만을 토대로 판단하고 평가해야 한다. 즉 윤리적 판단은 실제의 세계가 어떠한지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윤리란 사람이 따라야 할 도리로, 당위명제에 대한 탐구를 대상으로 한다. 

 

 의무론과 목적론 - 주어진 의무를 고려할 것인가, 미래의 결과를 고려할 것인가 

 의무론은 우리한테는 이미 주어져 있는 도덕 법칙과 의무를 준수하는 것이 윤리라고 생각한다.

 목적론은 세상에 보편적인 도덕 법칙 같은 건 존재하지 않고 상황과 사람에 따라서 모든 것이 바뀐다는 생각이다. 윤리라는 건 행동의 결과가 우리에게 이익을 창출하는 것,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행위는 그 행위가 어떤 행위이건 상관없이 윤리적으로 좋은 행위가 된다는 입장이다.

 의무론은 의무나 도덕 법칙을 준수하는 행위를 윤리로 보고, 목적론은 이익을 창출하는 행위를 윤리로 본다.

 

 시간의 과거, 현재, 미래의 직선을 생각해보자. 현재의 행위를 할 때, 과거부터 주어져 있는 의무를 고려해서 행동한다면 의무론자가 되는 것이고, 미래에 발생할 결과를 고려해서 행동한다면 목적론자가 되는 것이다. 결과를 고려한다는 점에서 목적론을 ‘결과주의’라고도 부르고,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무론을 ‘비결과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의무론과 칸트의 정언명법 - 절대적인 윤리법칙을 찾아라 

 칸트의 3대 비판 ::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이 비판 시리즈에서의 ‘비판’은 무엇인가를 비난한다는 뜻이 아니라, 한계를 밝힌다는 뜻이다. 비판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한계를 규정해주는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은 인간의 감각, 지각, 지성적 능력이 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천이성비판》은 윤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판단력비판》은 아름다움, 미에 대한 것으로, 미학을 제시한다. 

 

 칸트는 절대적 도덕 법칙들이 무너져가는 시대상을 보며, 상대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철학적 담론 속에서 윤리의 절대 법칙을 찾아 세우려 노력했다.

 

 절대적 도덕 법칙이 무너져가는 상황 속에서 칸트가 제시한 것은 ‘정언명법’이다. 누구나 반드시 따라야 하는 도덕 법칙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방법으로서, 칸트가 제안한 법칙이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쉽게 이야기하면 “네가 개인적으로 하려는 일이 동시에 모든 사람이 해도 괜찮은 일인지 생각하고 행동하라”정도가 되겠다.

 정언명법이란 절대적이고 보편적이어서 누구나 따라야만 하는 도덕 법칙을 찾아내는 계산 기계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다. 내가 하려는 특정 행위X를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시에 한다고 가정해보는 것이다. 만약 그래도 사회가 붕괴하지 않는다면, 그 행위X는 도덕적 행위가 되는 것이다.

 정언명법을 토대로 칸트는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 법칙과 의무를 찾아내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의무론적 윤리설의 토대를 단단히 했다. 정언명법으로 절대적 도덕 법칙을 찾고, 그 도덕 법칙을 준수하며 살아가라는 게 칸트의 생각이다.

 

 목적론과 공리주의 -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구하라 

 목적론적 윤리설을 대표하는 입장은 공리주의다. 공리주의는 19세기 무렵에 영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윤리적 견해로, 벤담과 밀이 대표적이다. 공리주의는 단적으로 말해, 윤리의 궁극적 목표로 개인과 사회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 사상이다. 여기서의 이익은 쾌락이나 행복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공리주의의 모토는 너무나 유명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한마디로 윤리적인 것이란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행복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벤담은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에서 도덕과 법이 따라야 하는 원리로 공리의 원칙을 내세웠다. 벤담은 “모든 행위의 시비는 그것이 사람의 행복을 증진하는지의 여부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벤담의 공리주의를 양적 공리주의라고 해서, 밀의 질적 공리주의와 구분하기도 한다. 벤담과 밀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로서의 행복에 대한 관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벤담은 행복을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밀은 행복의 질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순하게 쾌락의 합산으로 이익이 되는 일을 윤리적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사회 파트에서 논의했던 전체주의도 윤리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체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권리를 희생시키는 것이 전체주의이므로, 전체주의는 전체의 행복과 이익을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런 논리라면, 사회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만 있다면 노예 제도나 여성 차별 역시 윤리적이라고 말해야 한다. 이처럼 벤담식의 공리주의는 단순하고 명쾌한 반면, 윤리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이익에 대한 설명인 듯해서 윤리라고 하기에 민망하다.

 

 밀은 질적 공리주의를 통해 쾌락과 행복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밝혔다.

 밀은 쾌락과 행복의 질적인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나 평등 등의 인간의 최소한의 권리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중간정리

 의무론과 목적론은 절대적인 도덕 법칙에 대한 견해 차이를 기준으로 각각 윤리 절대주의, 윤리 상대주의라고도 불린다. 윤리 절대주의란 절대적인 진리로서의 도덕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반면 윤리 상대주의는 절대적 진리로서의 도덕 법칙은 존재하지 않고, 상대적인 측면에서의 도덕 규칙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이에크와 롤즈 - 어떤 사회가 윤리적인 사회인가

 행정자치부의 2005년 자료에 의하면 집을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 1위가 1,083채, 2위가 819채라고 한다. 2위부터 10위까지는 개인당 평균 400여 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금융감독원 자료에 의하면 기업 오너의 연봉은 1위의 경우 300억, 2위의 경우 200억 정도다. 단, 여기에는 주식 소유에 따른 배당금이 빠져 있는데, 배당금 수령액을 기준으로 하면 1위는 1,786억, 2위는 495억 정도다.

 

 하이에크는 20세기에 활동했으며,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아버지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는 시장에서의 경쟁을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했다. 지식이나 기술이 각기 다른 게임의 참가자들이 정당한 규칙 아래서 경쟁하고 그럼으로써 승자와 패자가 생겼다면, 그 결과는 정당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의 기본 전제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게임이 공정했는지, 혹시나 게임 참가자 중 누군가를 속인 사람은 없었는지를 감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게임의 결과가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공정한 기회와 절차가 보장되어 있다면 결과가 아무리 큰 격차를 발생시켰다 해도 그 성과를 보장해주는 사회가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사회인 것이다.

 이 생각은 결과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절차나 과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의무론적 윤리설에 가깝다. 이러한 견해에 따른다면 사회에서 발생한 빈부격차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게임에 대한 정당한 대가다. 그리고 윤리적인 사회를 만들겠다며 세금을 늘리는 행위는 어불성설이 된다. 진정으로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를 희망한다면,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지, 절차가 준수되고 있는지, 위법 행위는 없는지를 국가가 감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롤즈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하이에크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인물로, 대표적인 책으로는《정의론》이 있다. 롤즈는 세금을 높일 것인지 낮출 것인지, 재분배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합리적 대답을 제시하기 위해 특수한 상황을 가정했다. 그리고 이를 ‘원초적 입장’이라고 이름 붙였다. 원초적 입장에 대한 가정은 단순하다.

 X, Y, Z씨는 지금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말도 할 수 있고 합리적으로 판단도 할 수 있는 상태지만, 다만 자기가 누구였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 다행인 것은, 이 기억은 정확히 1시간 후에 완벽하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명 중에 한 명은 빌 게이츠이고, 다른 한 명은 평범한 중산층이며, 마지막 한 명은 노숙자다. X, Y, Z는 지금 자기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셋 중에 한 명일 것임을 알고 있다. 기억이 돌아오기 전에 롤즈가 이들에게 묻는다.“이제 두 가지 중에 하나의 분배 방식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분배 방식은 세금을 낮추고 복지도 낮춰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세금을 높이고 복지도 높여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최소수혜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입니다. 어떤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당신이 X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롤즈에 따르면 세 명 모두 두 번째 분배 방식인 세금 인상과 복지 확대에 동의할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노숙자일 것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빌 게이츠여서 얻는 이익보다 자신이 노숙자일 때 처할 어려움에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롤즈의 원초적 입장에 대한 사유 실험은 우리가 개인의 특수한 상황을 벗어났을 때, 사회 전체가 합리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분배 방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최소수혜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사회가 사실은 구성원 전체가 동의할 수 있는 사회인 것이다.

 롤즈의 생각은 개인의 절대적 권리에 대한 고려보다는 결과적으로 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상황과 개개인들의 이익 고려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목적론적 윤리설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의롭고 윤리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개개인들이 납득하고 합의할 수 있는 결과를 고려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재분배를 추진해야 한다.

 

 최종정리

 현실적 측면에서의 윤리는 사회 정의에 대해 묻는다. 사회 정의의 문제는 단적으로 빈부격차의 문제, 즉 복지와 세금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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