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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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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도 괜찮아
『없어도 괜찮아』는 ‘없는 것이 없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없어도 불편함이 없는’ 삶을 깨달은 젊은 부부의 소박하고 간소한 명랑 생활기를 담은 책이다.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부부인 저자들은 현대에 가장 비싼 가치인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 남들과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자신들의 삶의 가치를 끊임없이 써내려가고 있다. 사지 않는 대신, 살 수 없는 ‘삶의 균형’을 얻기 위한 자유롭고 여유로운 심플 마인드, 그들의 미니멀 라이프를 소개한다. 소비만능주의 시대를 역행하는 일은 물론 힘들지만, 원하는 것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는 일이 저자에겐 더 힘들다고 한다.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시대에 비워내기를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웬만한 뚝심이 아니고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오히려 갖기 위해, 얻기 위해 내가 무엇을 포기하는지, 얼마나 많이 포기하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로 급금하게 사는 것보다 최소한 것들만으로 더 큰 가치를 알아가는 삶이 저자에겐 더 중요하다고 고백한다. 책에는 물질적으로는 간소하게, 시간적으로는 자유롭게, 정신적으로는 여유롭게 살기 위해 최소한만 갖겠다는 두 사람의 용기와 그것을 통해 배우는 삶의 큰 가치가 담겨 있다.
저자
김은덕, 백종민
출판
박하
출판일
2016.11.15

 

Prologue : 은덕

욕심은 포기란 것을 몰라 채워도 채워지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가져도 늘 부족함을 느꼈다. 살림살이가 늘어감에도 또 무언가를 갖고 싶어졌으며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좌절했다.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해보았지만 이내 나만 도태되는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선택해야 했다. 이런 세계에 속해 계속 욕심과 좌절을 반복하며 살아갈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세상의 틀에서 조금 벗어나 물질적으로는 심플하게, 시간적으로는 자유롭게, 정신적으로는 여유로운 삶을 살 것인지 말이다.

도시의 편리함과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에서 평생을 살아오던 이가 광야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과 공포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 앞에서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고, 홀로 남겨진 외로움이 두려움으로 변하며 목을 조른다. 삶의 방식을 바꾸려면 그 두려움을 넘어서야 한다. 

 

오히려 갖기 위해, 얻기 위해 내가 무엇을 포기하는지, 얼마나 많이 포기하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로 급급하게 사는 것보다 최소한 것들만으로 더 큰 가치를 알아가는 삶이 나에게는 더 소중하다.

물질뿐 아니라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애매하게 걸쳐놓는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줄이고, 남들 눈이 신경 쓰여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허례허식’을 삶에서 거두었다. 잘 포장된 허세가 아니라 ‘미니멀라이프’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 너머의 실제로 마주하는 현실의 어려움을 담아내고 싶었다.

 

 

 

첫 번째. 물질 없이 사는 삶에 대하여

집 안에 채워야 할 것들 : 종민

아주 기본적인 살림만을 가지고 산다. 공간이 비어 있는 것으로 빈곤을 평가한다면 우리는 정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가정으로 분류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정부는 우리에게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의 50% 이하’라 자격이 되니 심사 받으라는 안내장을 보내왔다. 가난을 인증 받아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밟는 동안 몇몇 기관의 조사관이 집에 드나들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런 남자가 몹시 더러운 방 한쪽 구석에서 작은 화로에 양손을 쪼이고 있는데, (중략)말하자면 쭈그리고 앉아 화로에 양손을 쪼이다가 그냥 그대로 죽어간 것 같은, 정말로 기분 나쁘고 불길한 냄새를 풍기는 사진이다.

 

다자이 오사무 :: 20세기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간 내면의 극단적 파멸을 다룬 자전적 소설 <인간실격(人間失格)>으로 논란과 열풍을 불러일으킨 채 자살함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로,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군 카나기무라에서 대지주 쓰시마 가문의 11남매 중 10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하지만 몸이 약한 어머니 대신 어려서부터 유모, 숙모, 보모의 손을 거치며 자란 탓에 정서불안을 얻게 되었다. 또한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해 귀족원 의원에 올랐던 지방 유지인 아버지로 인해 가문에 대한 경멸을 느끼면서도 유복한 환경을 누리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순적 태도에 내적 불화를 겪으며 성장하였다.
그는 학창시절 전교 1등을 차지하는 우등생이었으며, 17세부터는 습작을 모아 동인지를 발행하며 작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1930년 히로사키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프랑스문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도쿄제국대학 불어불문학과에 진학했으나 금세 학문에 흥미를 잃고 출석 미달로 제적당하였다. 대신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해 좌익 운동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鱒二, 1898~1993)의 제자가 되면서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처음 사용하였다. 그리고 1933년에 단편 <열차>를 발표한 뒤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이 문예지에 실리며 문단에 데뷔하였다. 중학교 때부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1892~1927)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던 다자이 오사무는 이 작품으로 그해 제1회 아쿠타가와상 최종심에 후보로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와의 문학적 견해 차이로 차석에 그쳐야 했다. 이에 반발하여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작품을 변호하며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비난하는 글을 보내 충돌하기도 하였다. 이후로도 1936년 첫 단편집 <만년(晩年)>이 제3회 아쿠타가와상 후보에서 낙선되며 수상에 실패하자 심사 과정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였다. 제4회 아쿠타가와상부터는 동일 작가의 중복 후보선정이 불허되며 결국 심사 기회조차 박탈되었다.
한편 다자이 오사무는 술과 마약에 빠져 여자들과의 문란한 사생활로 자주 구설에 올랐고, 내연 관계의 여성들과 함께 자살을 기도하는 정사(情死)를 반복해 왔다. 대학 시절에는 술집 종업원 출신 내연녀와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가 혼자 살아남게 되면서 자살방조 혐의를 받고 기소유예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또 작가 시절 동거녀의 외도에 충격을 받아 시도했던 동반자살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처럼 허위로 가득한 인간 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염세주의자를 자처했던 그는 약물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되기도 하였다. 그 후 1938년의 결혼으로 잠시 안정적인 시기를 보내는 동안에 쓴 <달려라 메로스(走れメロス)>(1940), <후지산백경(富嶽百景)>(1943)을 비롯해, 고향 쓰가루 지방을 배경으로 한 <쓰가루(津經)>(1944), 구전동화를 패러디한 <옛날 이야기(お伽草紙)>(1945) 등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일본 낭만파의 경향을 보이는 긍정적 작품들을 발표하며 문학적 성취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패전국이 된 일본에서 급작스럽게 민주주의 노선으로 변경한 많은 예술가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허무주의에 몰두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47년 발표작으로 전쟁 후의 몰락한 귀족 가문을 그려낸 <사양(斜陽)>을 통해 패전 이후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잃고 공황상태로 방황하던 일본 청년층의 정서적 공감과 지지를 받았다. 당시 작품의 인기로 '사양족(斜陽族)'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 1906~1955), 이시카와 준(石川淳, 1899~1987) 등과 함께 전위문학을 주도하는 무뢰파(無賴波) 작가이자 데카당스(퇴폐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특히 1948년에는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화한 문제작 <인간실격(人間失格)>을 완성, 부조리한 사회 현실 속에서 삶의 동기를 상실한 주인공이 물질적 타락과 정신적 황폐화로 파멸해 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다룬 내용으로 문단에 충격을 주었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지독한 자기혐오와 현실 비관적 인식을 문학적으로 승화하여,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끝내 자기 존재에 대한 증명은 거부한 채 4차례의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다자이 오사무는 1948년 6월 13일, 도쿄 미타카의 타마강 상수원지에서 내연녀와 함께 투신자살하며 3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자살로 인해 독자들은 <인간실격>의 내용과 작가의 현실을 동일시하게 되었고, 이 작품은 누적 판매부수 1000만 부 이상을 기록하며 다자이 오사무를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이후 <인간실격>은 TV드라마, 연극, 영화 등으로 수차례 제작되어 왔다. 일본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고향인 쓰가루 지역 등지에서 사망 60주기(2008년), 탄생 100주년(2009년) 등의 기념제 및 추모제를 진행하며 그의 작품 세계와 문학적 위상을 재조명하기도 하였다. 또한 아오모리현에 위치한 그의 생가는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 다자이 오사무 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다자이 오사무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그 공간을 말하는 것은 비싼 돈을 주고 산 가구, 희귀한 이국적인 물건이 아니다. 집 안을 채우고 있는 ‘마음가짐’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공간을 가득 채워야 마음의 안정을 찾는 사람인지, 빈 공간이 많아야 깔끔하다 생각하는 사람인지 말이다.

 

반드시 필요한 것과 있으면 편한 것들을 구별하지 못해 정리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어수선한 집에 살고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어느 하나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하는 삶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무엇 하나 쉽게 정리하지 못하거나 버릴 수 없다면, 자신의 삶에 쥐고 싶은 것들은 많지만 확실한 내 것은 없다는 뜻이 아닌지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집을 공개하기 부담스러운 이유는 내가 숨겨둔 민낯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의 소유 여부가 아니라 집 안에서의 나의 작은 습관 하나, 그동안 포장해왔던 삶의 태도가 사람들 앞에 가감없이 드러날 테니까.

 

집에 관한 다른 생각 : 은덕

집을 누군가와 공유하며 집에 대한 시각이 소유의 개념에서 공유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심플 라이프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집 안의 물품을 최소화하면 그만큼 가볍게 살 수 있다는 걸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모든 걸 다 갖추고 산다는 건 불편함을 감수해낼 시간이 부족한 자신의 삶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집이 가벼워지니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도 단순해졌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서울에 마련된 또 하나의 숙소라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사는 집이 나를 결정한다는 그릇된 생각에서였다. 집의 외향이 아니라 집 안에서의 생활습관 혹은 행동양식이 결국 나의 본질임을 알기까지 꽤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예컨대 회사에서 일만 하며 실제로 능력도 인정받고 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듯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는 일 외에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활동은커녕 연애조차 못하고 있다. 혼자 사는 그의 집 냉장고에는 보름째 먹지 않은 채소가 썩어가는 불쾌한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운다. 일 외에 일상에서의 삶이 조화롭지 못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집이 나의 어지러운 삶과 함께 무너지고 있다고 하면 심각한 비약인 걸까?  

 

집을 위해 무리하는 대신 출퇴근 시간을 줄여 삶의 질을 높일 수도 있다. 출퇴근길 오가며 버리는 내 시간의 소중함이 허름하고 좁은 집에 살고 있다는 자괴감을 이겨낼지도 모를 일 아닌가.

 

빛이 들지 않는 창문 : 종민

가난은 어두운 집에서 시작되고 그렇게 어두운 미래로 이어지는 것일까? 임대주택 대부분은 창을 열면 담벼락이든, 옆 집 창문이든 무언가가 꽉 들어차 있었다. 태양의 기운을 쉬이 받지 못한 음울하고 차가운 공기가 흐르는 집에서 창밖의 풍경 따위는 사치스럽다. 그 안에 사는 사람 역시 침울하고 활기를 잃을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가난은 사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갖지 못하는 것이었으므로 내 마음만 잘 다스리면 큰 어려움을 느낄 수 없던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눈으로 확인한 가난은 햇볕이 들지 않는 집에서 사는 것이었다.

 

냉장고, 욕망의 잉여산물 : 종민

보통 음식을 해서 밥을 먹는데 한 시간이 넘지 않는다. 간단히 먹음으로써 삶의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빠지는 기분을 느낀다.

 

쓰레기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냈지만 감당할 수 없어 버려지는 잉여산물이 아닐까.

 

냉장고 과잉 시대 : 은덕

시간을 빼앗기고 먹고 싶은 것을 사먹을 것인가,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사는 대신 가난하게 살 것인가를 두고 선택의 고민에 빠지는 순간은 늘 찾아온다.

 

원하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 것도 생긴다는 뜻이고 사고 싶은 걸 모두 살 수도 없다는 의미다.

 

음식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다. 그리고 쉽게 다다를 수 있는 욕망 중의 하나기도 하다. 냉장고의 크기는 나의 구매 욕구를 자극시키고 욕심을 키운다. 그 안의 먹지 않고 쌓아둔 채 썩어가는 식재료는 우리의 욕구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심의 결과물임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요즘 요리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도 ‘집밥’을 향한 강렬한 욕망이 대두되고 있는 건 실제로는 밥을 해먹지 못하고 식재료만 쌓아놓는 현대인들의 자화상과 이런 모습을 변화시키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 그들의 욕망을 재빠르게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텔레비전 버리기 : 종민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구 반대편까지 여행할 수 있고, 미식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데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가 있나 싶었다. 완벽한 취미활동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선택한 방법이었다.

 

고백하건대, 평생을 취미생활란에 ‘독서’, ‘영화감상’이라고 적어놓았지만 사실은 텔레비전 시청이 유일한 휴식이며 낙이었다.

 

리듬에 맞춰 스탬프를 찍는다든가, 똑딱거리는 메트로놈 소리를 듣는 것처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들이 안겨주는 평안이 있다.

 

지금 내 일상의 속도를 잰다면 66bpm 정도겠다. 심장 박동과 비슷해서 편안하지만 초침보다 미세하게 앞서서 살짝 긴장을 건네는, 그런 속도 말이다.  

메트로놈의 박자처럼 정해진 시간, 같은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프로그램들을 생각 없이 보는 일이 그렇지 않을까? 단순하게 반복되는, 그런 것들에 쉬이 마음을 맡기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텔레비전과 그 안의 모든 것이 노리는 것이 세상 모두의 생각을 그 네모난 세상에 완벽히 잡아두고 시계처럼 반복되는 그 틀 안에 가둬버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스마트폰에 데이터 빼고 살기 : 종민

호들갑스럽게 우리의 데이터 없음을 우려하는 사람이 많아, 남들은 스마트폰을 어떻게 사용하나 유심히 쳐다보고 다닌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고 스트리밍으로 동영상을 보는 사람이 그 뒤를 잇는다. 그도 아니면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을 하고 있고 간혹 주식 거래를 하는 분들도 보인다. 나로서는 안 해도 그만인 것들인데 이것 때문에 호들갑이었나?

우리도 갑자기 외부에서 메일 확인을 해야 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으려면 데이터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공용 와이파이를 찾으면 될 일이고, 그도 아니면 집에 도착해서 확인하면 된다. 좀 천천히 혹은 돌아간다 해도 세상이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이거면 충분하다.

 

모든 것이 변한 듯 보이지만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알람 없는 기상 : 은덕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울렸던 알람 소리를 기억한다. 최대한 부드러운 음악으로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 존재는 환영받을 수 없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다음 날 아침이면 나의 단잠을 깨울 알람 소리에 긴장하게 되어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아이러니하게 일어나려고 만든 도구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불편한 상황의 연속이었고 몸이 허락하지 않은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 나는 늘 스트레스, 과민함 그리고 소화제를 달고 살아야 했다.

 

시계는 산업화시대부터 공장에서 사람들의 작업 시간을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됐다. 시대가 바뀌었고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하지만 결국 우리는 알람에 갇힌 세계에 살고 있다. 출근 시간을 지키기 위해 알람이라는 통제 수단을 머리맡에 두는 것부터 그 틀 안으로 스스로를 집어넣은 것은 아닐까?

 

‘지금의 삶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우냐?’라는 질문에 ‘당신은 알람 없이 사는 삶을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라고 되묻곤 한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만족감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요물 같은 신용카드 : 은덕

때때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얇은 카드 한 장의 힘에 놀라곤 한다.

 

신용카드는 편리함의 대표적인 도구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외상 구매인데다 결제가 다음 달로 미뤄지는 시스템으로 인해 본인 수준보다 과도하게 소비를 한다는 데 문제가 발생된다. 그걸 이야기해주는 카드 회사는 없다.

 

이 상품이 평상시 당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아니면 지금 눈앞에 보이니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인지. 카드가 없었더라면, 오롯이 내 수중에 있는 현금으로 결재해야 한다면 나에게 필요한 제품인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해볼 고민의 시간을 가져다주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렇게 카드사에 돈을 빚지고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건 월급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산 편리함 : 은덕

지하철이나 광역버스를 탔다면 몸은 좀 힘들었겠지만 좀 더 일찍 도착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냉정히 생각해보니 그 선택은 마음만 바빴을 뿐, 어리석은 짓이었다.

 

차가 있다가 없어지니 있을 때 좋았던 것들, 편하게 짐을 싣는 모습이나 근교로 놀러갔던 기억 같은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주차할 공간을 찾아 주차장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근교에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버려야 했는지 같은 나쁜 것들은 기억에 없었다.

 

남미를 여행하며 30시간 넘게 버스에서 보내야 했고 네팔과 태국에서는 덜덜거리는 고물 버스가 길에서 퍼져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누군가가 이끄는 운송 수단에 실리며 그것도 가장 느리고 저렴하고 낙후된 교통수단에 익숙한 몸이 됐다. 불편함을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은 몸이 됐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고 나니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쉽게 편리함을 돈으로 사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적은 돈을 내는 대신에 시간이 걸리고 몸은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몸이 편하려면 돈을 더 지불하면 되었는데 그런 경험이 늘어 갈수록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쉬운 게 ‘편리함’이 아닐까 싶어진다. 차가 없는 불편함이 어느 순간 쓰나미처럼 몰려오지만 잠깐 견뎌내면 또 살아갈 만하다. 사실 이 찰나의 불편함을 넘어서지 못해 차를 사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외형 소비로서의 자동차 : 종민

한때 수원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광역버스는 입에 마시멜로 많이 넣기로 기네스북에 오르려는 이의 마지막 한 조각처럼 늘 폭발할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런 간절함은 없지만 출근은 꼭 해야 하니 버스 입구에 매달렸다.

 

차가 주는 특별함보다 한적한 길이 주는 평온함이 우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 자동차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문제다. 보통 사람의 소비품목 중 가격 순서로 꼽자면 자동차는 여지없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자신의 신용도를 탈탈 털어 산 그 물건은 소유자로부터 감정이입을 받으며 의인화 된다.

 

주변에 외제차를 뽑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평생에 한 번은 가져보고 싶었다고 했다. 해외 브랜드의 차가 안겨주는 단단함과 경쾌한 주행, 성능 그리고 안정감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싶었다며 운을 띄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금전적으로 조금 무리했고 어차피 차를 살 거라면 어깨에 힘주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할부고, 리스고 잘 되어 있어서 천천히 갚으면 된다며 뒷말을 흐렸다.

그들이 흐트려버린 말 뒤에는 자동차로 자신을 드러내고픈 욕망이 숨겨져 있었다. 남들보다 많은 돈을 소비할 수 있는 듯한 능력을 드러낼 수 있고, 그에 대한 반응이 가장 즉각적인 외제차를 골랐음이 빤히 보였다. 그들에게는 급여 명세표나 종합 소득 신고서를 감추고 원하는 이미지를 살 수 있는 수단이 자동차였던 것이다.

필요를 넘어 외형 소비를 위해 차를 사고 있었다. 무언가를 가지려 하는 데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간혹 그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인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소비도 용인되는 사회이니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차 없는 이가 차를 사용하는 방법 : 은덕

하지만 익숙해지는 것이 문제였지 그 이후에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손 안에 작은 기계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스마트한 시대에 감탄하고 있었지만 그 똑똑한 기계가 데이터 연결이 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스마트 하지 않다는 것을 간과한 채 말이다.

 

불편하고 어색한 건 그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고 다만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기실 버텨낸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술로 맺을 수 있는 관계 : 종민

사회 전반에 술 문화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 그러니까 알코올 분해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 사람이 술자리를 피하는 걸 참으로 이상하게 여긴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맥박이 빨라지며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등 눈에 보이는 신체의 이상 신호를 지닌 사람만이 그 면책권을 겨우 가질 수 있는데, 나처럼 고작 잠이나 자려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 그래서인지 술을 마시면 끝장 보려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빈말이라도 ‘한 잔 해야지?’라며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술 마신 기억이 부끄러워 다시 술을 마신다.’

 

사람들에게 빨리 친해지려고 술을 마시고 애정공세를 퍼부었던 순간들이 부끄러움의 으뜸이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 중 지금까지 만나는 이가 없다. 도리어 억지로 만난 관계가 아닌 자연스럽게 이어진 만남만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 술의 힘을 빌어서라도 풀어야 하는 관계란 정녕 존재하는지 묻고 싶어진다.

고단한 노동이 끝난 후에 동료들 혹은 친구들과 모여 술을 마셨다. 술자리에서 터져 나온 은밀한 이야기가 그 사람의 깊은 속내를 의미하는 줄 알았고, 함께 술을 진탕 먹어야지만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과음으로 이성이 흐트러진 사람의 혀에서 나온 말들에 어떤 진심이 담겨 있겠는가? 때때로 술자리에서 뱉어낸 말들을 주워 담느라 얼마나 애를 썼던가!

관계의 윤활유라 생각했지만 결국 파국으로 치닿게 하는 것 또한 술 때문이었다. 어쩌면 술자리에 찾아갔던 것도 필요 없는 의무감 때문이고, 그 자리에 속하지 않은 나에 대해 주고받는 이야기가 겁이 났던 것은 아닐까?

학창시절에는 또래집단에 속하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 같았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술독에 빠져 산다는 표현처럼 나도 동기, 선배들과 술을 마셨다. 딱히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서는 술자리에 빠지면 사회에서, 인간관계에서 도태되는 것만 같았다. 두려웠고 한편으론 외로웠다. 이들이 내 옆에 없다면 혼자 밥을 먹어야 할 테고 혼자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일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우리가 술자리를 피해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놨기 때문일 것이다.

술 없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로서는 술에 취해 비틀비틀 갈지자로 걷고 흔들흔들 눈빛이 초점을 잃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함께 취하는 거 말고는 관계를 증폭시킬 방법이 없다는 게 오히려 슬픈 일은 아닐까?

이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술병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지는 사람에게 귀 기울이고 싶다.

 

노후를 준비하는 우리만의 방법 : 종민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 노후 준비는커녕 일상을 채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돈이 있어도 건강을 잃으면 누구나 실의에 빠지는 건 매한가지인데 당장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 노후 걱정이나 해야 하는 걸까? 차라리 돈을 모으는 대신 적당히 운동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은 삶을 살고 술 담배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방법은 아닐까?

 

경험하지도 않고 걱정만 하고 있는 그들에게 젊어서 자신을 학대하고 나이 들어서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건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

우리라고 왜 걱정이 없겠는가. ‘하우스푸어’가 되더라도 대출 받아 집을 사거나, 남들 부럽지 않은 차를 사기 위해 48개월 할부를 거는 대신 노후를 잘 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그 끝에 남들과 다른 노후를 설계하고 있을 뿐이다.

 

고정 수입 없이 위태롭게 살아가지만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하면서 사는 데 뭐가 문제겠는가? 이런 조건이니까 조금 부족하게 살더라도, 사실 부족하다 느끼는 것은 거의 없지만 지금은 어렵지 않게 견딜 수 있다.

하고 싶은 것들을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 노후 준비의 핵심이고 지금은 일종의 실험을 하고 있다.

 

내가 선택한 가난이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은 없는 것처럼 오늘을 즐기면서 살면 된다. 이렇게 산다면 30년 뒤에 나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을 테니 이미 성공한 실험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 꽤 많은 은퇴세대를 만나고 물었지만 돈이 있든없든 자신이 ‘할 일 없는 노인네’라고 생각되면 여지없이 노후가 비참하다고 말했다.

죽음까지 가는 시간은 길어지고 있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의 고민처럼 우리에게는 돈이 아닌 쓸모 있는 노후 준비가 필요하다.

 

충분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 : 은덕

부침개를 뒤집는 것마냥 우리네 삶도 간단했으면 좋겠다. 뒤집어지거나, 망쳐버리거나 동전의 양면처럼 한순간 결과가 나오듯 우리 삶도 그렇게 명확했으면 싶다.

우리는 너무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고 여러 가정과 결과를 고려하여 행동하게 된다. 쭈뼛쭈뼛 하다가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언가의 확실성을 갖고 행동하기에는 너무 많은 두려움이 시야를 막고 있다.

 

‘내가 선택한 삶이니까 감사해하며 사는 것’

 

살면서 ‘가진 게 충분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을 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돈이 최고라며 물질로 사람을 평가하고 하대하며 서열을 나누었다. 조직과 시스템을 벗어난 삶을 사는 이들은 특별하고 잘난 사람인 줄 알았다. 1년에 몇천만 원씩 세금을 내는 작가만 책을 내는 줄 알았고 돈이 많은 사람들만 뉴욕에서 공부를 하는 줄 알았다. 내가 알던 세상은 그게 다였다.

학습된 길이 아닌 샛길로 비켜나도 생기를 불어넣는 바람이 불어오고 활짝 핀 꽃들이 향기를 품어낸다는 사실을 그 길을 걸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백날, ‘이런 삶도 있어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고 주체적으로 삶을 사는 기쁨은 어디에도 없어요.’라고 떠들어봤자 저 너머의 세계에서나 일어나는 가상계고, 현실에서는 공감할 수도 없고, 겪기도 싫은 가시밭길과 진배없다.

대부분의 세계여행자들은 한국에 돌아와서 이전의 생업 전선으로 돌아간다.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왔다고 인생의 궤도가 크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내 삶의 방식을 선택해서 여행을 다녀왔다는 자신감이, 풍족하지 않은 삶일지라도 자신을 꽤 괜찮은 사람처럼 여기게 만든다. 한 번이라도 인생을 주체적으로 결정해 봤던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충분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이 있다는 걸 이들은 적어도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을 주저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부침개를 뒤집는 것마냥 단번에 원하는 모양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자신 있게 뒤집으면 한 번에 궤도를 갈아탈 수 있지만 ‘과연 뒤집을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며 손목의 스냅을 소심하게 돌리면 여지없이 부침개는 반으로 포개지고 한쪽으로 눌어붙게 된다.

갈림길에 서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다른 사람 눈치도 보지 말고, 내 의지대로 행동하면 될 일이다. 나라를 구원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일확천금을 손에 넣겠다는 원대한 야망을 품은 것도 아닌데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는가!

단 한 번만이라도 부침개가 완벽히 뒤집힐 수 있도록 나의 결단을 믿어볼 순 없을까?

 

 

 

두 번째. 가치 없이 사는 삶에 대하여

작은 결혼식, 저희가 해봤습니다 : 은덕

한껏 치장을 하고 평소 나와 다른 모습으로 낯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나에게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거리에 나섰을 때나 느껴질 법한 수치스러움에 비견될 정도였다. ‘이보게, 예쁜 드레스와 결혼식은 여자들의 로망이 아닌가. 그날만큼은 다들 화려하기를 바라지 않나.’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그런데 왜 결혼식만 특별해야 하는 걸까? 월화수목금토일, 하루하루를 특별하게 살면 되지 왜 그날만 화려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건 나뿐일까?  

 

고급지로 만드는 청첩장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모습은 지구에게도, 나무에게도 미안한 일이라 생각했다. 누구나 책은 쉽게 버리지 못하니까 평생 소장할 수 있도록 작은 책자 형식의 ‘청첩북’을 만들어 나누기로 했다. 두 사람의 연애사, 지인들과 부모님의 축하 인사, 이런 작은 결혼식을 생각하고 있는 분들을 위한 소소한 정보들까지 꼼꼼하게 기록했는데 어쩌면 우리 두 사람이 하고 있는 ‘기록’의 시작이 이 청첩북이 아니었나 싶다.

 

결혼이란 생애 한 번뿐이기에 가장 화려한 방식으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이란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며 같은 꿈을 꾸는 첫 시작이기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해볼 만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결혼은 그런 의미였다.

 

결혼 선언문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선택한 배우자와 평등한 관계를 이루고 우리만의 가정을 이끌어 나갈 뜻을 밝히고자 <결혼선언문>을 발표합니다.

하나. 우리는 남편과 아내이기 이전에 독립된 개체로서 평등한 관계로 살아갈 것입니다.

둘. 의견이 달라 다툼이 일어날 때는 잠적하거나 회피하지 않겠습니다. 부모님들께서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셋. 집으로 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를 평수를 넓히는 데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넷.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세계여행의 꿈을 실현해 아르헨티나로 떠나 1인분에 1kg이라는 소고기를 맘껏 먹을 것입니다.

다섯. 현재 자리에 참석 중인 모태솔로(태어난 후 연애경험이 전무한 신인류)와 독거노인(30대 이상 미혼으로 독립생활 중인 남녀)들과 더불어서 살아갈 것입니다.

여섯.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이해하며 살겠습니다.
일곱. 성공보다는 개인의 행복에 가치를 두겠습니다. 일할 때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일이 삶의 전부가 되는 것을 경계할 것입니다. 아울러 일 때문에 서로에게 소홀해지지 않겠습니다.

여덟. 무엇보다 우리는 상대방의 덕을 보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예단, 예물 등의 절차는 생략하며 살면서도 남들 눈을 의식하기보다는 우리만의 가치를 지키며 합리적인 생활을 지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이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우리의 결혼 방식입니다.  

아홉. 상대방을 향한 비난과 힐난을 경계할 것입니다. 비난과 힐난이야말로 서로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고 대화와 배려로 대할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한없이 아름다운 순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칼끝을 세워 치열하게 싸우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순간이 바로 서로에 대한 애정 혹은 애증의 순간임을 기억할 것입니다. 매 순간 서로에게 무관심으로 등 돌리지 않도록 노력하고 이해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열. 물질적인 효도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효심으로 부모님을 섬기며 살아가겠습니다.

 

부모의 자격 : 종민

내가 부모가 되면 더하면 더했지 보고 배운 학습의 과정을 내 자식에게 건너뛸 리 만무하다. 사랑의 방법 또한 내 부모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은덕 하나로도 벅찬 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이런 나에게 자식이 생기고 그 아이가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릴 텐데 그럼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 자신을 헌신하면서까지 어떤 존재를 사랑할 마음이 내게 있는 것일까? 사랑을 아낌없이 주며 헌신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면 나는 분명 그런 부모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이성은 그런 부모가 될 바에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기적인 부모 아래에서도 ‘아이’는 스스로 어른이 되어갈 테지만 나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는 이가 부모가 될 자격이 있을까?

 

깊은 고민 없이, 의지를 지켜 나갈 용기도 없이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부모의 자격이란 어쩌면 이런 작은 고민부터가 시작일지 모른다.

 

어느 날 아침,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골목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옆에는 아이의 엄마도 함께였다.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마주한 그녀는 엄마들 사이에서 꼭 메어야 한다는 영국 브랜드의 가방과 며칠 전 미용사의 손길이 닿은 듯한 세련된 단발머리를 한, 겉보기에는 평범한 아이 엄마였다. 그러나 아이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만큼은 내 눈과 귀를 붙잡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네가 사람들 많은 곳에서 울면 누가 도와줄 거라 생각하지? 머리 굴리지 마! 닥쳐. 닥치라고!”

엄마는 성인들이 주고받아도 한쪽에서 깊은 상처를 입을 만한 말을 자신의 아이에게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골목길을 나와 큰 길로 접어들 때까지도 그 상황은 계속되었는데,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훈육이나 설명도 없이 자신의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고 그녀의 분노 어디에도 아이가 그런 모진 말을 들었어야 할 만한 타당한 이유는 없어 보였다. 절대 대들 수 없는 약자를 앞에 두고 감정 끝에 다다른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절대 권력자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싶었다.

여전히 화를 삭이지 못한 엄마는 아이가 쫓아가기 버거운 속도로 씩씩거리며 걷고 있었고, 아이는 그런 엄마를 놓칠까 깡총깡총 쫓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낳았을까? 세상에 제일 악한 부모라 하더라도 아이에게는 끝까지 부모겠구나 싶어, 씁쓸해지는 풍경이었다.

 

아이를 선택하지 않을 자유 : 은덕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모성’이라는 그 일말의 가능성을 두고 아이를 낳는 베팅을 해야 할까? 어디나 갖다 붙이는 애꿎은 모성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정과 친밀도 그리고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이야 말로 두 사람을 연결하는 사랑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세상에는 그저 아이를 좋아하지도, 사랑을 주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여행 따위는 떠나고 싶지도 떠날 수도 없는 이유와 상황 속에 놓여 있다. 마찬가지로 아이를 낳지 않기로 마음먹은 이들에게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활력을 위한 잠 : 종민

인간의 기본 욕구지만 식욕, 성욕에 비하면 인색한 취급을 받는 수면욕은 참으로 불쌍하다. 숙면이 보이지 않는 성과이기에 무시당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질 높은 숙면을 취해야 하고, 그래야 깨어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은 여전히 산업화 시대에 맞춘 자기계발서 논리대로 잠자는 시간을 줄여야 더 성공할 기회가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에 닳아버린 우리 : 은덕

더욱이 지금처럼 예상치 못한 일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다리에 힘주고 서 있기 조차 어렵다. 살긴 살아야겠는데 돈 들어올 구멍은 다 막히고 뭘 해도 일이 풀리지 않은 순간은 세상 밖으로 밀어내려 해도 결국 찾아오고야 만다.

 

만취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크고 작은 실수를 불러온다. 술에 취한 후 작게는 말다툼을, 크게는 몸싸움을 해보거나 목격한 기억이 있지 않은가? 혹은 작게는 무릎에 멍이, 크게는 성한 이가 나간 기억은 또 없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고단한 하루의 마침표를 찍고자 술로 오늘의 스트레스를 씻으려 한다. 우리가 일을 하는 건 어쩌면 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자금 마련 때문은 아닐까?

 

스트레스를 받는 근본적인 요인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변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불안감이 내 영혼을 잠식하지 않도록 평상심을 유지시키는 게 지금 나의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방법이다.

 

자신의 노력과 행동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상황에 휘둘리지 말자는 뜻이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평상시대로 행동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불안감 속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이에 휘둘리지 않고 삶의 균형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함의 늪에 빠지지 않고 살 수 있는 비결일지도 모르겠다.

밤새 고민하지 않고 다음 날 개운하게 일어나서 종민에게 건넨 첫 번째 한 마디는 ‘오늘은 어제보다 나을 거야.’였다. 스트레스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지 말고 반복되는 요인들을 제거해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불필요한 스트레스 때문에 우리의 감정은 얼마나 닳아 빠져버리는가?

 

기다림은 최고의 적 : 은덕

설렘 대신 고통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소식 때문에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그 결과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미뤄야 하는 상황에 이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교우 관계, 학업, 연예인에 몰두에 있을 때 나는 매일 책을 읽고 영화를 찾아서 봤다. 또래 집단에 어울리지 못해도, 좀 괴짜라고 취급받아도 나는 그런 내 자신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나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을 거라는,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 혹은 사랑이 꽤나 깊었지 싶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내가 필요한 상황 이외에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 보았어도 그것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현재의 상황에 만족할 수 없으면 만족을 이룰 때까지 노력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다른 이들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 게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일지도 모른다.

 

넉넉하게 가진 것은 없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자족의 길이 먼 것만은 아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 누가 뭐래도 그 길을 가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만족하며 할 수 있는 배짱, 어쩌면 이것이 타인의 시선에 붙잡혀 살지 않는, 삶의 만족을 위한 작은 시작일지도.

 

갑질하는 우리네 이웃들 : 종민

나는 종종 그들의 ‘극도의 친절함’ 때문에 이야기를 나눌수록 미안해지고 마음 가득 불편함이 채워진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총 인구의 22.2%, 약 1,622만 명이라고 하니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다섯 명 중 한 명은 그런 불이익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는 뜻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들의 역할은 소비자가 상품을 잘 찾을 수 있도록 진열하고 그 물건 값을 제대로 계산해주는 업무가 본질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존중하기보단 서비스 종사자에게 왜 이토록 극진히 대접받고 싶어진 것일까?

작은 소비에도 대접받아야 인정받는 것 같은 정신적 착시는 어디에서부터 기인했는지 생각해본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우리는 자신의 시간을 팔아 돈을 번다. 회사는 월급쟁이를 조금이라도 더 사무실에, 공장에 오래 잡아두려고 애쓰고 야근이나 잔업에 대한 수당을 주지 않는 방법을 찾아다니며 본전 생각을 떨치려 한다. 그들이 착취를 반복하는 사이 월급쟁이들은 회사 밖에서 시간과 돈을 들여 회사가 주지 않는 대접을 찾아 헤맨다. 마트에서 쓰는 비용이 아무리 적어도 이는 내가 힘들게 시간과 몸을 바쳐 얻은 귀한 돈이고 서비스를 받는 순간만큼은 직장에서 상처받은 감정을 보상받아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이나 그들의 노력을 제공받는 고객이나 모두 같은 사람이니 그들은 자기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면 될 뿐이다. 그러나 나의 고귀한 노동만 생각하고 다른 이의 수고는 잊어버리는 실수를 범한다.

 

자신을 그들과 별개로 생각하는 오류에 빠져 주변의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고픈 유혹에 빠진다. 그것이 정당한 요구인 듯 착각하면서 말이다.

상점에서 물건 하나 산다고 서로의 계급이 나눠지며 고객을 왕처럼 모셔야 하는 일이 아닌데 나 역시 한국식의 고객 대접이 당연하다는 듯 길들여져 있었다.  

 

상대방의 지위에 따라서 잘못한 것이 올바른 것이 된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은가?

 

봉건제도에서 자본주의로 사회 구조가 변하며 신분제는 사라졌다. 하지만 영국의 비교법학자인 헨리 메인이 주장한 것처럼 ‘신분에서 계약으로’라는 형태만 변하였을 뿐 그동안 몸을 사리고 있던 신분제가 고개를 바짝 들고 일어났음을 그 드라마 속에서 보았다.

 

주차 요원의 무릎을 꿇리고 폭언을 퍼부은 고객 모녀, 제자에게 고문을 가하고 인분을 먹인 교수, 자기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승무원을 항공기를 되돌려서까지 하선시킨 항공사 임원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분노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권력을 부러워하지 않았는지 마트에서 내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않았는지 혹은 갑의 위치를 열망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노릇이다. 감정 노동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화’가 많은 이웃과 함께 산다는 것 : 은덕

이틀에 한 번 꼴로 수화기 너머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돌진하는 이웃의 ‘화’를 들어야 할 때면, 공사장 옆에서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반복적인 기계음은 마음만 먹으면 음악이나 라디오로 봉쇄를 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향해 불같이 화를 쏟아내고 있는 상황을 대면하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감정이입이 되고 온 정신이 그쪽으로 향하게 된다.

 

‘술을 마셔서 아내가 떠난 건지, 아내가 떠나서 술을 마시게 된 건지’ 모르겠다던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의 주인공 벤이 했던 대사처럼 ‘화가 많아서 가족이 떠난 건지, 가족이 떠나서 화가 생긴 건지‘ 궁금해졌다.

 

인간관계 제거하기 : 은덕

우리 모두가 굳이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지만 이왕이면 만나서 자극이 되고 또 보고 싶은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고 싶다.

 

결국 다른 인격체임을 서로가 인정하고 다른 시대와 시간을 살아가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낳아주신 부모이기 때문에 내 불행을 자초하면서까지 그들 뜻대로 살아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충성심을 힘으로 얻으려는 자 : 종민

그 누구도 ‘이 브랜드를 착용하고 오세요.’라고 강요하지 않을 뿐더러 그런 것은 상관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지만 구성원들 틈에만 들어가면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내가 입고 간 옷들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발적 충성의 시작이다.  

 

충성심이라는 것이 사전적 의미대로 이행되어야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거대 조직이 개개인과 주고받는 일종의 거래의 형태가 되어버렸다. 조직이 바라는 충성을 다하지 않는다면 개인은 불이익을 받는다. 아이와 어른의 몸싸움처럼 뻔한 결과를 두고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어갈 송곳 같은 이는 세상에 많지 않다.  

 

그 회사가 그렇게 분위기를 끌고 가는 것보다는 참가자들이 스스로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회사가 물품을 구매하지 않는다고 해서 보복할 수 없으니까. 러닝클럽에서 자신의 옷을 둘러보고 해당 브랜드의 상품을 선택하는 고객의 결제가 어쩌면 더 순수한 충성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쉬이 지갑을 열지 못하지만 열심히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 새 제품을 구매해야 할 시점이 올 테고 그때는 타 브랜드보다 조금 높은 가격이지만 이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공짜로 전문적인 프로그램에 맞춰 운동시켜주고 간식도 주며 멋진 사진까지 받아왔는데 다른 브랜드로 한눈을 파는 건 어쩐지 의리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렇듯 은연중에 내게도 충성심이 쌓였고 브랜드에 대한 충성은 구매로 이어진다. 그 회사도 열성 고객을 원했기 때문에 은근히 녹아들 수 있도록 이런 무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일 테다.

충성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 때만 그 진정성이 살아난다. 그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정성스러운 마음’이 변한다 하더라도 보복을 할 수 없는 일이다. 자발적인 마음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힘과 권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만큼 천박한 게 또 있을까?

 

조직에 속하지 않아도 괜찮아: 은덕

졸업한 뒤 제대로 된 정규직을 찾아 이력서를 보내고 어렵사리 면접을 통과했어도 나를 누군가에게 증명해야 하는 고단함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 직장을 옮겨 다니는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게 내 문제였고 나라는 인간은 조직 생활에 맞지 않음을 자각하는 데 십여 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걸 인정하기까지 나는 참으로 여러 핑계를 댔다.

 

그동안 내가 아는 길이 전부인 줄 알았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던져버리니 삶이 무척이나 가벼워졌다. 한편으로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방법이 꼭 조직 안에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소속감 대신 자유 : 종민

글 쓰는 일이라는 게 언제나 원할 때 하면 되니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만, 어머님 등 뒤에 서 있자니 자신이 한심스러워진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자식이 되려면 나를 이름 지어줄 거대한 소속이란 것이 필요할 테고, 그 소속이란 것은 월요일 아침이면 졸린 눈을 비비고 나갈 곳이 있다는 뜻일 테다.

 

군대도, 직장도 버틸 수 있었던 건 고민하지 않아도 조직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면 따라오는 안온함때문이었다.

평생을 어딘가에 속해서 살았다. 어린 시절에는 학생이란 신분이었고 머리를 바짝 자르고 난 뒤에는 꼬박 2년 동안 군인이었으며 그 뒤에는 취직해서 직장인이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무슨 무슨 모임에, 취미가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동호회란 것도 만들었다. 이제껏 살아오며 단 한 번도 어딘가에 속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이제 나는 소속이 없다. 자유라 생각하고 탈출했더니 매사 스스로 선택해야 하고 ‘소속 없음’을 견뎌내야 한다. 조직에서 벗어나 무소속이 되는 것도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바라봐주면 좋을 텐데 하물며 나 자신도 쉬이 적응되지 않는다.

 

내가 견뎌내지 못한다면 이 시린 추위는 한여름에도 이어지겠지.

 

그토록 원해왔던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 자유로운 삶을 소속이 없다는 불안함을 핑계로 내던질 수 있을까? 평생 학교, 군대, 직장 등의 소속이 나를 말해줬지만 이제는 내 이름 그 자체만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지금을 어찌 포기하겠는가? 할 수 없다. 그래, 할 수 없다.

 

 

 

세 번째. 그럼에도 있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 동네, 망원동 : 종민

은덕의 작은 움직임은 내게 잔소리와 구박으로 변해 쓰나미처럼 밀려올 테니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대, 내 좋은 친구 : 은덕

함께 공부하며 데이트도 즐기고 있으니 ‘캠퍼스 커플’이 된 것 같은 낭만도 슬그머니 가방에 넣었다.

 

멈추거나 안주하지 않고 함께 오늘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관계가 몇이나 될까. 그로 인해 함께 만들 내일이 궁금해지는 관계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그는 신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존재며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파트너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 : 종민

처음부터 우리가 ‘하나로 연결된 두 개의 뇌’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모서리가 울퉁불퉁한 돌 같은 사람이었다. 상대방의 모서리만 거슬리고 자신의 것은 보이지 않았으며 혹여라도 상대방이 그 모서리를 다듬으려 손을 들면 여지없이 불꽃을 튀겼다. 그런 두 사람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행하며 서로의 모난 구석을 다듬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하늘에 떠 있는 별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인생의 궤도를 바꿔버린 시간 동안 생각의 결이 닮아버린 것이다.

혼자였으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지독한 괴짜이며 사회 부적응자인 한 여자 사람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평생 주저하기만 했던 한 남자 사람, 그런 존재일 뿐이다.

 

솔직해지자. 나는 혼자였으면 여행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을 못 갔으니 이런 삶은 엄두도 못 냈을 사람이다. 그러나 이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은덕을 만나기 전 나라면 다른 사람이 다녀온 루트를 따라 길을 헤매었을 것이고, 앞선 누군가가 올린 보기 좋은 이벤트를 따라 하기 급급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결과가 자명한데 그 시간에 나를 던져넣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어느 문학 평론가의 말을 빌자면 문장은 ‘대체 불가능해야 한다’라고 했다. 대체 불가능한 한 문장, 한 문장이 글 전체를 빛나게 할 것이다. 당신이 그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면 자신의 기둥을 붙잡아줄 대체 불가능한 존재를 먼저 찾는 게 좋겠다. 내게 은덕은 ‘대체불가’하다.

 

좌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 종민

인생이 뒤집힐 만한 정신적 충격도, 경제적 압박도 아니었다. 고작 한 달 동안 내 의지가 아닌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일들이 풀리지 않았을 뿐인데 ‘이번 생은 틀렸어’라고 자조 섞인 말을 내뱉고 있었다.

이번 생이라니, 내가 70세까지 산다면 한 달이란 시간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할까 계산해봤다. 0.1%, 24시간 중 고작 1분 30초 정도의 고통이다. 이를 악물고 견뎌내면 지나쳐버릴 수 있는 시간임에도 나의 일생을 후회하고 반성했으며 지난 선택을 의심했던 것이다.  

 

겨우 위로랍시고 ‘좌절을 겪어봐야 인생의 쓴맛도 알고 겸손해진다’라고 건네는 말이 쉬이 와닿지 않은 건 좌절을 겪으면 잃는 것이 더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한 번도 성취해보지 못했다는 경험이 내 안의 어떤 상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배가 되지만 지나치게 ‘기대’한 일이 망가졌을 때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걷잡을 수 없다.

 

많은 날 중 지나치게 집중했던 한 시절이 마치 인생의 전부인 것 마냥 여겨지고 그 좌절이 스스로를 무너트리고 있었다. 그 한 달 동안 연속해서 몰아닥친 일들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져버렸다.

지금 이렇게 힘든 시기에 내성이라도 생기길 간절히 바라본다. 딱딱하게 굳어서 비슷한 강도의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버틸 수 있도록 부디 끝 모를 좌절이 ‘내성’을 선물로 주고 떠나기를.

지금보다 처절하게 가난했던 적이 없음에도 나는 이것을 불행이라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지금의 삶에 감사함을 느낀다.

내게도 과거의 절망이라는 비교군이 있고 그로 인한 내성이 생겼고 지금에 와서 무엇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지 배우게 된 인고의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우기와 채우기 : 은덕

사실 물건을 정리하는 것보다 이렇게 마음을 비우는 게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최선’과 ‘차선’의 사이 : 종민

그 시절, 내 또래 남학생 사이에서는 ‘핑클의 누구’를 좋아하느냐가 시시껄렁한 화제 중 하나였다. 핑클의 멤버가 자기 여자 친구라도 된 양, 서로 자신의 여자 친구가 제일이라고 자랑하며 낄낄거리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내 취향이 고상해서가 아니라 ‘그들은 절대 나와 만날 수 없는 세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을 선택해야 했는데 또래 집단을 벗어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낮은 멤버를 선택했다. 공부를 잘하던 친구도, 주먹이 센 친구도 효리 누나를 선택하니 결정을 해야 한다면 바닷가 모래사장에 반짝이는 유리알만큼이라도 내 여자 친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쪽을 향하고 싶었다. 아! 내 여자 친구가 될 가능성이라니. 부끄럽게도 나는 참 멀리까지 생각하며 사는구나. 그런 진지한 고민을 한 것도 부끄럽고, 그 결정의 기저에 현실의 벽을 따라 차선을 찾는 내가 우스웠다.

 

내 삶 가운데 선택이란 진정으로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아닌 시간, 돈 같은 현실의 벽을 넘지 않는 적당한 선이었다.

 

내 인생은 선택 앞에서 임계점에 도달하기보단 편한 방법을 택하는 데 익숙해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결혼식이 ‘최선’의 처음이었다. 그마저도 ‘차선’이란 녀석에게 빼앗기면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갈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변해 있었다.’라고 말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싶지만 선택지 앞에서 도망 다니는 내게 그런 일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손에 뭐라도 쥐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을 놓지 못했다면 여행 중에만 누릴 수 있던 많은 것을 놓쳤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때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며 늘 돌아보며 살았을 것이다.

차선을 선택하면서 살면 덜 위험하고, 적당히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할 수 없는 그저 그런 삶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선’이란 녀석은 붙잡으려 끊임없이 노력해야 ‘차선’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인데 그 적당한 선만 바라보던 나는 완벽히 틀렸다.

 

기다림보다는 선택 : 종민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 삶이란 것이 늘 순탄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지만 모래사장에 적어둔 글자가 밀려온 파도에 쓸려나간 듯 빈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학력도 좋고, 아는 것도 많은 사람이 우리의 삶을 부러워한다. 임대주택을 알아볼 필요도 없고, 정기적인 수입으로 생계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행복해 보인다고 말한다. 우리가 늘 웃고, 밝을 수 있는 것은 시간마저 스스로 선택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위태로워지니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라며 내게 손짓한다. 다들 견디며 살고 있는데 우리는 뭐가 잘나서 세상을 달리 사는 것일까? 그 순간 나의 하루를 잃어도 돈을 벌 수 있는 삶이 최고의 안위처럼 느껴졌고, 고작 주택 신청 하나 때문에 내가 믿는 세상이 무너져버린 것 같았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적당히 맞춰 살면 될 텐데 무엇을 위해 이런 고생을 하는 걸까? 세속적인 삶을 초월하지도, 세상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살고 싶은 삶이 무언지 알게 되었고 모두가 가고 있는 길이 아닌 다른 방향을 선택한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보다는 시간을 구해야 했다.

 

누군가의 손끝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오롯이 내 의지에 따른 선택은 결과가 어떻든 감당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전력을 다해 기다리기만 한다면 내 안의 에너지를 모두 빼앗기고 평생 낙오자로 살아가게 될 것 같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의 집착이, 기다림이 마치 가져야 했던 것을 빼앗은 것처럼 마음속에 폭풍을 몰고 왔다.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지 말고 매 순간 스스로 길을 정하거나 의지를 굳게 다져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시점까지도 어쩔 수 없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을 기다리고 있다. 혼자 늘 무소의 뿔처럼 걸어갈 수 있는 인생은 아니지 않은가? 다만 이번에는 내 마음과 정신이 견뎌낼 수 있는 정도의 기다림이 되어주기를,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는 정도로만 덮쳐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 정도면 됐다.

 

삶의 균형 찾기 : 은덕

조직의 정해진 틀 안에서 살다 갑자기 자유가 주어질 때, 우리의 자유의지는 갈 곳을 잃고 만다.

 

그럴 때마다 종민은 정말 배가 고픈 게 맞느냐며, 그저 뇌에서 먹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니까 배가 고픈 환영에 빠진 건 아닌지 생각해보라며 통장에 남아 있는 생활비를 보여준다.

 

달리기를 함으로써 나는 세속적인 욕망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달리는 기쁨에서 더 소중한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실 기쁨보다는 달릴 수 있다는 고마움이 더 크게 자리 잡는다. 힘든 순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내는 기쁨이 무엇인지 달리면서 알게 되었다. 너무 늦게 찾아오지 않은 이 기쁨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좋은 옷, 가방, 집, 음식보다 돈은 없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달리는 기쁨이 더 크게 자리잡았다.

 

일상을 지켜내고 있습니까 : 종민

어두컴컴한 과학실 한 켠에 앉아 가지고 놀던 양팔저울을 기억하는가? 손으로 느끼기도 힘든 미세한 무게 차이에도 한쪽이 가라앉는다. 저울팔이 엄격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균형이 무너지는 아찔한 모습은 지금까지 마음속 깊이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아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사업이든, 직장생활이든 누구에게나 버거운 시간들은 있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일상을 지켜내야만 살아간다 말할 수 있을 텐데, 그는 생활과 사업의 경계가 허물어져버린 지 오래였다. 겨우 숨만 쉬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그런 상대와 대화를 나누고픈 이들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졌다.

내가 살아가야 할 일생과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의 무게의 총량은 모두 나에게서 비롯된다. 학업이든, 업무든, 명예든 그 어떤 것이 되었든 내가 지킬 수 있는 일상의 무게만큼만 반대쪽 저울팔에 올려야 하지만, 일상이 망가진 사람들을 보면 한쪽으로 크게 무너져 있었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교한다. 달리는 행위를 즐기려면 한 번 참가하는 이벤트식 마라톤 대회로 끝내지 말고 꾸준히 뛰어야 한다. 일상은 한 번의 마라톤 경기이고 일생은 수차례 연습하며 달리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대회를 잘 치르고자 한다면 단 한 번을 마지막처럼 달릴 것이 아니라 평상시 연습한대로 내 페이스에 맞춰 꾸준히 달려야 한다. 이번 대회에서 부상이 염려되면 평소보다 속도를 늦춰야 할 것이고 혹 부상을 당한다 하더라도 다음을 대비해 긴 시간을 두고 회복해야 계속해서 잘 뛸 수 있다. 마라톤처럼 하루하루의 습관으로 ‘일상’을 지켜내야 ‘일생’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일생’이 주는 무게가 ‘일상’보다 큰 범주인 것 같지만 결국 지금 한순간에 집중하느냐 한평생을 돌아보느냐의 차이일 뿐, 결국 같은 무게다. 그렇다면 일생을 잘 살려면 일상을 잘 지켜야 할 텐데 우리는 그러고 있는가?

 

연대, 선 하나를 잇고 싶은 마음 : 종민

물론 매일 아침, 달릴지 말지를 고민한다. 턱밑까지 숨이 차오르고, 물에 빠진 듯 땀에 젖으며, 온몸은 두들겨 맞은 듯 아픈데 종종 스스로 생각해도 왜 뛰나 싶다. 그런 고민과 고통 속에서 우물쭈물하다가도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뛸 수 있으니 요상한 노릇이다.

 

거북이처럼 뛰더라도 하루, 이틀 반복하다 보면 매일 운동화 끈을 묶을 수 있는 의지가 생긴다. 그렇게 매일 꾸준히 뛰다 보면 거리가 늘어나고 10km, 20km, 어느새 생각지도 못했던 거리까지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연대도 달리기와 같아서 그토록 힘든가 보다. 내가 가진 연대감의 끈이 길고 짧으냐보다 겨우 나 하나라도 더하면 리본의 길이는 조금씩 길어진다. 힘을 보태다 보면 언젠가는 긴 거리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처럼, 변화의 끝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왜 달리는가? : 은덕

기린을 강가에 데려다 놓을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는 건 기린의 몫이다.

 

아직도 달릴 때마다 유혹에 빠진다. ‘오늘은 힘이 드는데 걸어서 갈까? 저기는 언덕인데 속도를 늦춰볼까.’ 하고 말이다. 뇌가 시키는 대로 의지를 꺾는 경우가 어디 어제오늘만의 일이던가. 다만 이런 갈등 속에서 끝까지 해낸다는 게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 그 기쁨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계획한 목표치를 항해 나는 오늘도 달린다.

 

그저 달린다는 것에 대하여 : 종민

어느새 달리기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어떤 장비를 사야 할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고 달리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인 ‘뛰기 싫은 나’를 인정하지 못했다.

 

여행, 머리에서 마음으로 이르는 길 : 은덕

나는 늘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하며 살아왔지만 어려움을 이겨내고 인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어쩌면 그 결과가 그대로 드러난 것인지도 모른다.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정면을 바라보고 이겨내는 삶을 살아보지 못했으며 문제를 피하기만 했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이런 성향의 사람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한 건 여행 중에 종민이 끊임없이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여행이 있었기에 본래의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여행은 ‘머리에서 마음으로 이르는 길’이라고 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마주할 수 있도록 온전히 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부끄러운 과거와 마주하는 경험이 불쾌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흥미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무엇보다도 한참이나 모자란 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기에 떠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Epilogue : 종민

그 사람의 생각을 묶은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그의 마음을 알 수 없다

 

우리 부부는 보편적인 세상의 가치와 다르지만 원하는 삶의 가치를 향해 한 장 한 장, 인생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걷고 있는 이 길을 의심하고, 낯선 풍경에 두려워하면서도 한 걸음씩 옮길 수 있는 동력은, 우리는 그 끝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좀 다른 삶의 방식이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적게 가질수록 넉넉하게 누리는 삶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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