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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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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철학자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길 위의 철학자』. 미국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가 사후 남긴 유일한 자서전으로, 떠돌이 노동자에서 웨이터 보조, 사금채취공, 그리고 40세 때 샌프란시스코의 부두노동자로 정주할 때까지의 삶의 여정을 회상하듯이 기록한 책이다. ‘나는 삶을 여행객처럼 살아왔다’라는 호퍼 자신의 말처럼, 방랑과 노동의 일상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건을 총 27개의 에피소드로 다루고 있다. 버클리의 카페에서 웨이터 보조로 일하면서 여대생 헬렌을 만나 깊은 사랑에 빠졌던 경험담을 비롯하여, 목화밭에서 일하면서 만난 유능한 일꾼 엔슬리의 죽음, 자신의 유산을 사회에 환원한 농장주 쿤제의 유언 등. 호퍼는 그가 만난 노동자와 하층민들에게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을 보내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음영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수많은 인물들을 생명력을 지닌 인간으로 되살려낸다.
저자
에릭 호퍼
출판
이다미디어
출판일
2014.02.28

 

옮긴이의 말 - 떠돌이 철학자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

인간이 스스로 어떤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지 못할 경우, 자유는 성가신 부담이 된다. ··· 우리는 개인적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젊은 나치의 말 그대로 ‘자유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대중운동에 가담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극악한 행위에 대해 나치의 말단 병사들이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주장한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명령에 따른 책임을 져야 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은 속았고 무죄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나치 운동에 가담하지 않았던가?

 

대중운동의 맹신자는 죄의식, 실패, 자기혐오에 사로잡힌 좌절한 자로, 미래의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 동기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묻어 버리게 된다. 자신의 무의미한 생에 의미를 부여해 줄 것으로 여겨지는 운동에 열광적으로 투신하는 것이다.

 

 

 

빈민가로 떨어지다

교육의 주요 역할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 주는데 있다. ‘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란 조부모도, 부모도, 아이도 모두 배우는 사회이다.

 

 

 

나 외에는 다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나 외에는 다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유대인과의 만남

욤 키푸르(Yom Kippur) :: 유대 달력으로 새해의 열 번째되는 날로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이다. 모든 유대인들은 이날 금식하며 하느님께 죄를 회개하는 등 용서와 화해를 실천한다. 또한 욤 키푸르는 1973년 욤 키푸르 기간 동안 발생한 아랍과 이스라엘 간 전쟁을 부르는 별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욤 키푸르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인간의 얼굴은 자신의 모든 비밀을 드러내는 한 권의 열린 책이다.

 

조제프 르낭 :: 브르타뉴의 고도(古都) 트레기에 출생. H.A.텐과 더불어 프랑스 실증주의(實證主義) 대표자의 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성직을 지망하여 상쉬르피스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헤브라이어 연구에서 성서원전(聖書原典)의 전통적 해석에 의혹을 품고, I.칸트, G.W.F.헤겔의 영향과 A.콩트의 실증주의에 감화를 받아 성직을 단념, 1845년에 학교를 떠났다. 그 후부터 셈어학(語學) ·성서학 ·종교사 연구에 주력하였으며, 특히 실증적인 역사비판의 입장에서 그리스도교의 기원사 저술을 기도하여, 1860∼1861년 시리아로 학술탐험을 감행하였고, 그 후 25년이나 걸려서 그 기원사를 완성시켰다.
청년시절에는 화학자 P.E.M.베르트로와의 교유로 과학에 대한 신념이 자극제가 되어 2월혁명 때 언어학을 중심으로 한 과학 발전에 따른 민주주의적 이상사회 실현에 낙관적인 희망을 피력한 《과학의 미래:Avenir de la Science》(1845)를 저술하였다. 《아베로에스와 아베로이스주의(主義):Averroès et l’averroïsme》(1852)로 학위를 받아, 1862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헤브라이어 교수가 되었으나, 정통 신앙에 위배되었다는 이유로 한때 파면되고 1871년에 복직, 1884년에는 학장이 되었다.
주요저서인 《그리스도교 기원사:Histoire des origines du christianisme》(7권, 1863∼1883) 중 제1권은 유명한 《예수전(傳) Vie de Jésus》(1863)으로 국내외에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리스도교 기원사》는 예수의 인간화, 그리스도교의 문화사적 연구, 성서세계의 심리적 ·문학적 재현에 의의가 있다. 이와 대조가 되는 연구에 《이스라엘 민족사:Histoire du peuple d’Israël》(5권, 1887∼1893)가 있으며,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및 파리 코뮌에 즈음하여 저작한 《프랑스의 지적 ·도덕적 개혁》(1871)과 많은 철학적 에세이 ·문화평론 ·성서연구 및 번역 외에도 유창한 산문으로 르낭의 이름을 떨치게 한 《청소년 시절의 추억:Souvenirs d’enfance et de jeunesse》(1883)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제프 르낭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성서 속에서 진실을 상상해 내다

인물들은 자신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생명을 얻는다.

 

오성 :: 넓은 의미로는 사고능력(思考能力)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감성(感性)과 대립되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협의(狹義)로는 보다 고차적인 인식능력, 혹은 능력 일반으로서의 이성(理性) ·정신(精神)과 구별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의미로 사용되건 오성(悟性)은 저차(低次) ·고차(高次)를 불문하고 직관적인 인식능력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추리적 사고(推理的思考)에 의한 인식에 골몰하는 것이고, 인간의 유한성(有限性)의 한 표현이라고 간주되는 면이 있다.
중세 철학에서 오성은 신의 직관적 지성(直觀的知性)에 의하여 만들어진 원형(原型)을 본뜬 것이라 하여 저차적(低次的)인 감성적 능력과의 중간에 안정된 위치가 주어졌었지만, 중세 철학의 해체(解體)와 더불어 보다 높은 기반을 잃어버리고, 새삼스럽게 그 확고한 기초를 요구하여 비로소 시대의 표면에 나타나게 되었다.
이 과제(課題)는 J.로크의 《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에서 그 전형적인 대답을 찾을 수 있게 되었지만, 여기서는 인간적 인식을 중세 이래의 신학적 형이상학(神學的形而上學) 혹은 존재론의 틀을 해체하고, 소위 오성과 감성만의 상호교섭으로부터, 바꾸어 말하면 참으로 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식론적인 문제 설정으로부터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자연히 오성의 권리선언, 근대적 인간의 마니페스트가 되었다. 오성이라는 능력의 확고한 새 기초로서의 근대 인식론적 문제 설정은 다시 칸트에게 계승되어, 오성은 거기에서 근대의 수학적 자연과학을 성립시키는 장소로서, 이제까지와는 달리 적극적인 위치를 부여받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제한(制限)을 덧붙여, 인식의 궁극적 통일은 보다 고차적인 능력으로서의 이성에 위임하였다.
그러나 그 후 이성은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동안 여러 측면에서 압박을 받고 파탄에 직면하여, 새삼스레 오성 혹은 건전한 오성으로서의 상식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긴급한 과제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성 [Verstand, 悟性]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함순(Kunt Hamsun, 1859~1952): 노르웨이 작가. 본명은 크누트 페데르손(Knut Pederson)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목동과 구둣방 견습공, 행상 등 갖가지 직업에 종사했다. 1890년 『굶주림』으로 주목을 받은 후, 『신비』(1892), 『목신』(1894), 『빅토리아』(1898), 『가을볕 아래서』(1906), 『흙의 혜택』(1917)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192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라게를뢰프(Selma Lagerlöf, 1858~1940): 스웨덴의 여류 작가.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문학을 애호하는 분위기에서 자라났으며, 집안이 어려워지자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교원 생활을 하면서 창작에 몰두했다. 주요 작품으로 『예스타 베를링 이야기』(1891), 『보이지 않는 굴레』(1894), 『지주 이야기』(1900), 『예루살렘』(1902), 『닐스의 모험』(1906~1907) 등이 있다. 1909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야훼 :: 헤브라이어로 쓰여진 구약성서에 4개의 자음이 연속된 'יהוה'가 나오는데, 이 낱말은 로마자로 YHWH·YHVH·JHWH·JHVH 등으로 표기된다. BC 3세기 이후 유대인들은 이 낱말을 발음하지 않았는데, 이는 거룩한 지존자의 칭호이므로 함부로 발언할 수 없도록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신(神)의 보편적 주권을 강조하는 속성 명사 '엘로힘(Elohim)'이 사용되었다. 구약성서의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역(Septua Ginta)은 이를 '퀴리오스(Kyrios:주)'로 옮겼다.
유대인들은 이 낱말을 예배용어인 '아도나이(Adonai;나의 주라는 뜻)'로 읽었는데 그 모음 'A-O-ai'를 'YHWH(YHVH와 같음)'라는 자음에 그대로 연결해 읽을 경우 Yehowah(여호와 또는 예호바) 등으로 엉뚱하게 발음될 수 있다. 현대의 성서학자들은 '여호와'라는 발음보다 야훼가 훨씬 더 원 발음에 가까울 것이라고 추론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이름을 그들의 신론(神論)의 기초로 삼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재케 하는 자'가 이 이름의 가장 정확한 의미라고 학자들은 믿고 있다.
신약성서 기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퀴리오스)'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이는 구약의 야훼 신앙에 기초한 것이었다. 《요한의 복음서》 기자는 예수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ego eimi)'로 그려냈다(요한 8:58). 모세에게 계시된 야훼, 그 '스스로 있는 자'(출애 3:14)가 역사의 한가운데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신약기자는 기술해 놓고 있다. 하느님의 초월과 거룩하심을 믿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교회의 이 같은 예수신앙을 받아들일 수 없었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육체를 입은 한 인간 예수가 어떻게 야훼 하느님일 수가 있겠는가 하는 의심과 반문이 결국 그들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만들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죄에 빠진 인류를 구속(救贖)하기 위해 기꺼이 영원과 초월을 떠나 역사와 세상 속으로 그 아들을 보내셨고, 그 아들은 아버지의 세상 사랑하심으로 인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여 구속(救贖)의 길을 열어 놓았다.
그래서 하느님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 하늘 보좌 위에 높이 올렸으며,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야훼:주)을 주어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다고 사도적 교회는 고백하였다(필립 2:5~11). 한마디로, 유대인들은 보이지 않는 초월적 실재를 야훼(주)로 고백하지만, 그리스도교인들은 역사 속에 계시된 한 실재 인간 예수가 바로 그 주(야훼)라고 고백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야훼 [Yahweh]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선은 악과 함께 받아들여진다.

 

진실을 상상해 내고 미지의 세상을 눈앞에 보여 주는 능력은 미지의 것을 탐험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절대 권력은 선의의 목적으로 행사될 때에도 부패한다. 백성들의 목자를 자처하는 자비로운 군주는 그럼에도 백성들에게 양과 같은 복종을 요구한다.

 

 

 

자살을 결행하리라

마치 그 소년은 생명이 없는 덩어리에 매순간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부부 싸움을 하는 날을 골라 잘못 찾아온 친구와 같았다.

 

지금부터 한 달 뒤에 오건 일주일, 아니 하루 뒤에 오건 죽음은 공포를 수반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의 공포에는 ‘내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거리가 끝이 없다면 좋겠다. 영원히 걸을 것이다. 발은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초조해하거나 불평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자살을 감행하지 않았지만, 그 일요일에 노동자는 죽고 방랑자가 태어났다.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의 용기

인간에게는 희망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좌절감을 독약으로 발효시키고 사악한 세상에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자기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지만, 용기는 이성적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희망은 소멸할 수 있지만 용기는 호흡이 길다. 희망이 분출할 때는 어려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만, 그것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전쟁을 이기고, 대륙을 제압하고, 나라를 세우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희망 없는 상황에서 용기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줄 때 인간은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샌디에이고로 가는 길

커프스 :: 다른 천을 댔건 같은 천으로 만들었건, 또 젖힌 부분이 있건 없건 소맷부리나 소매커버, 장갑의 손목 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때로는 바지단이나 부츠의 단을 말할 때도 있다. 원래 북방계 의복에 특유한 것으로, 발생은 소매가 타이트하게 된 15세기에 시작된다. 그 이후로는 손목을 보호하거나 순전한 장식으로서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보온이 목적이었으므로 특히 여성복에서는 털가죽이 사용되었으나 남성복이나 상류층 복장에서는 장식으로서 더 많이 사용되었으며, 근세 이후에는 더한층 뚜렷해졌다. 전형의 하나는 깔때기 모양의 레이스 커프스에서 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바로크 시대에 걸친 두껍고 어두운 색의 겉옷에서는 그것이 각별한 장식효과를 나타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셔츠의 커프스에도 러플(ruffle:주름장식)이나 레이스가 사용되었고, 17세기에 이르러 무릎길이의 코트형(型)이 남자복의 기본형으로 정착되자 겉옷의 젖혀진 커프스는 장식으로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근대까지 커프스는 테일러드복(服)에 있어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한편, 같은 시대의 셔츠에는 러플 커프스가 장식으로 붙여졌으며, 반소매화한 여성복에서는 특히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18세기에는 이것을 몇 장이고 겹쳐서 달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해서 근세의 커프스는 노동을 하지 않는 귀족층을 표시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을 경계로 겉옷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주로 셔츠나 블라우스에 특유한 장식으로서 남게 되었다. 물론 단순화되기는 했으나 군복에는 그 후에도 오래도록 그것이 계승되었으며, 프록 코트나 모닝 코트, 신사복에서도 장식단추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여성복에서는 주로 테일러드복이나 블라우스의 장식으로서 오늘날에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 커프스의 소재는 소매와 같은 천인 경우가 많은데, 레이스·오건디·리넨·모피 등이 쓰이며, 뗄 수 있는 것과 디자인상 칼라와 세트로 한 것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커프스 [cuffs]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두 사람의 얼굴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새겨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부랑자 거리의 포장도로에서 퍼낸 한 삽의 진흙에 불과했지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언덕 옆에 아메리카를 건설할 수 있었다.

 

우리는 주로 자신이 우위에 설 희망이 없는 문제에서 평등을 주장한다. 절실히 원하지만 가질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절대적 평등을 내세우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 그런 시험에서 공산주의자란 좌절한 자본주의자라는 것이 드러난다.

 

 

 

떠돌이 노동자에서 사상가로

멕시코 국경 위쪽의 샌디에이고는 도로가 끝나는 곳일 뿐 아니라 세계가 끝나는 곳 같았다.

 

씨를 뺀 건포도같이 거친 얼굴도 보였다.

 

우리는 질서 잡힌 사회의 하수구 속에 놓여 있었다. 정상적이고 안정된 것의 반열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어, 현재의 생존 방식과 같은 수렁으로 빠져든 것이었다

 

약자 속에 내재하는 자기혐오는 일상적인 생존 경쟁에서 유발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에너지를 드러낸다.

 

 

 

오브라이언이라는 이름은 대단해

홀로 있을 때가 창조의 정점에 있는 것이라고 믿으며 나는 일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실제로 나의 중요한 구상의 대부분은 내가 군중 속에 휩쓸려 있을 때 태어났다.

 

보드빌 쇼 :: 189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 유행했던 버라이어티쇼의 일종. 무용수와 가수를 비롯해 배우와 곡예사, 마술사 등이 출연해 각각 별개의 공연들을 펼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드빌 [세계무용사전]

 

수용소를 떠날 때 나는 내적으로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여전히 캘리포니아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일거리를 쫓아다니는 떠돌이 군단의 일원이었다.

 

절망과 고통은 정태적인 요소이다. 상승의 동력은 희망과 긍지에서 나온다. 인간들로 하여금 반항하게 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 보다 나은 것들에 대한 희구이다.

 

 

 

인간과 개의 상호작용

생각하고 저술하는 생활이 금을 찾는 일보다 내게 놀라운 일들을 더 많이 가져다주었다.

 

 

 

스틸턴 박사와의 만남

나는 쉽게 그 독일어라는 통나무를 난로에 집어넣을 수 있는 장작으로 쪼개 주었다.

 

언어는 질문을 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대답은 투덜대거나 제스처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첫 질문을 던졌던 때부터였다. 사회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

 

 

 

나는 헬렌을 깊이 사랑했다

운명이 나를 휩쓸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운명은 나에게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선물을 안겨 주었다. 내가 그 선물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을까?

 

그녀들의 기대를 정당화하는 데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을 소비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앤슬리의 죽음

모든 것을 잃고 포기한 사람은 자신이 오고 간 궤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들에게는 역사가 없다. 나는 그 시절의 희미한 기억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자신의 이미지로 자신을 만든다. 그런 만남에는 쓸쓸함이 있고 다른 별에서 온 것 같은 어떤 것이 있다.

 

종교는 신이나 교회, 성스러운 동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적 몰입의 근원은 자아에,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자아의 거부에 있다. 헌신은 자아 거부의 앞면이다. 종교적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왜냐 하면 몽테뉴도 지적했듯이 ‘자기를 증오하고 경멸하는 것은 다른 피조물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에 국한된 병’이기 때문이다.

 

 

 

난 네가 천사가 아니란 걸 알지

그의 튼튼한 몸에는 청년의 늘씬함이 남아 있었지만 세파에 시달린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면 누구나 희망 없는 헛걸음에 몇 년을 허비한 사람을 생각할 것이다.

 

 

 

술고래 양치기 애브너

증오가 정당한 불평보다는 자기 경멸에서 솟아난다는 것은 증오와 죄의식의 밀접한 관계에서 드러난다.

 

 

 

유사성과 차이에 관한 단상

유사성은 자연적인 것이지만 차이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역사는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보기에 의해 만들어진다.

 

현재가 과거를 해명해 준다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상투어를 만들어 낸 사람은 악의 본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인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다.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다

친숙한 것을 새로운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창조적인 예술가의 힘이다.

 

친숙성은 생의 날카로운 날을 무디게 한다. 아마 예술가의 본모습은 이 세상에서의 영원한 이방인이거나 다른 별에서 온 방문객일 것이다.

 

 

 

떠돌이 노동자에서 부두노동자로

보통 사람들이 교육받은 사람보다 나눔에 더 여유가 있다는 생각은 감상적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은 귀족이 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용서한다는 것

카뷰레터 :: 내연기관의 개발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며 작동 가능한 엔진이 출현하는 과정에서 수백 가지의 문제점이 해결되어야 했다.
이러한 문제점 중 하나는 엔진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연소를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연료, 산소, 열이 필요했지만 엔진 내에서 이들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초기 엔진의 가스 펌프는 가스를 기화시켜 공기와 혼합시켰지만 가스와 공기의 비율이 제어되지 않았기에 연소가 불규칙적으로 발생하여 엔진이 매우 불안정하였다.
헝가리의 엔진 제조업자인 도나트 반키(1859~1922)와 야노스 촌카(1852~1939)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반키는 수많은 자동차의 기능 개선에 기여하였으며 촌카와 함께 가스와 공기를 혼합하는 문제점을 해결하였다. 두 사람은 엉뚱한 장소에서 문제 해결에 필요한 영감을 얻었으며, 소녀가 유리 취관을 통해 물을 뿌려 꽃의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같은 원리를 엔진에 적용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1893년 카뷰레터가 탄생하였다. 엔진에 필수적인 부품인 카뷰레터는 연료를 조금씩 분사하여 공기에 뿌려지는 연료의 양을 제어하였으며 이를 통해 연료는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 연소되었다. 공기와 연료의 혼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장치인 카뷰레터 덕분에 연소에 필요한 적절한 혼합비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엔진을 탑재한 거의 모든 운송 수단(자동차, 비행기, 보트)은 현재 카뷰레터를 사용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뷰레터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상을 바꾼 발명품 1001, 2010. 1. 20., 잭 챌리너)

 

 

 

부록 - 에릭 호퍼에 대하여

“의미 있는 생활은 배우는 생활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 데 몰두해야 해요. 나는 기술 요법이 신앙 치료나 정신 의학보다 중요하다고 믿고 있어요. 기술을 습득하게 되면 그 기술 자체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당신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섯 살 난 아이를 지켜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술을 익히려는 아이들의 열망을 목격했을 겁니다. 나는 어른스러움이란 다섯 살 난 아이가 놀이를 할 때 보여 주는 진지함을 재획득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보들레르가 천재를 ‘다시 찾은 유년’이라고 정의한 것을 읽기 전까지 나는 내가 한 이 말을 독창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늙으면 돈이 필요합니다. 젊은이를 타락시키는 바로 그것이 노인들이 젊어질 수 있게 해 주는 거지요.

 

LSD :: 1943년 알버트 호프만이 맥각균에서 합성한 물질로서 무색·무미·무취한 백색 분말이다. 강하고 기묘한 정신적 이상을 일으키고 시각과 촉각 및 청각 등 감각을 왜곡시키는 강력한 물질이다. 특히 액체 상태로는 체중의 7억 분의 1의 양으로도 효과를 나타난다. 정제나 캡슐·액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유통되며, 주로 각설탕이나 껌·과자·압지·우표의 뒷면 등에 묻혀서 사용되고 주사로도 사용된다.
환각은 사용한 뒤 30분 후부터 나타나며 10시간까지 지속된다. 환각상태에 빠지면 즐거운 상상으로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으나 대개는 몸이 조각나는 공포감, 두려움, 불안 등을 느끼게 된다. 남용하면 뇌와 염색체에 손상을 일으키며 눈동자가 풀리고 창백해지며 심박동과 혈압이 빨라지고 수전증이나 오한 등을 일으킨다.내성이나 심리적 의존현상은 있지만 신체적 금단현상은 일으키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남용자의 경우에는 사용하지 않아도 환각을 반복해서 경험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을 플래시백(flash back)이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LSD [lysergic acid diethylamid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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