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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스토리

헬조선의 알파고 2023. 7. 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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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스토리
미국의 종합 경제지 《포춘》의 부편집장인 레이 갤러거가 수년에 걸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기업, 에어비앤비의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와 조 게비아, 네이선 블레차르지크를 직접 인터뷰하고 분석한 『에어비앤비 스토리』. 방세를 내기도 어려울 만큼 가난했던 세 청년이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사업을 시작해 10년 만에 거대 산업을 파괴하고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생생히 그려냈다. 처음 그들의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낯선 사람에게 개인적인 공간을 빌려준다는 것’도, ‘낯선 사람의 집에서 잠을 잔다는 것’도 너무 이상하기만 했다. 모두가 미쳤다고 말했던 아이디어를 포기하지 않고 비즈니스로 발전시킨 과정과 창업 초기 빚을 갚기 위해 시리얼박스를 조립해 팔았던 이야기, 경영 경험이 전혀 없던 세 사람이 25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경영자로 성장하기까지의 시행착오와 끝없이 이어지는 반대세력과의 싸움까지, 그간 언론에 소개되지 않았던 에어비앤비만의 내밀한 성공전략과 기업문화가 모두 들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가장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손꼽히는 ‘공유경제’ 카테고리에서 에어비앤비가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비결을 만나볼 수 있다. 이제는 기존의 유통 구조가 완전히 다른 구조에 의해 경쟁력을 잃는 시대이며 시장의 규모 또한 상상하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저자는 에어비앤비의 성공 사례를 통해 완전히 새로워진 산업의 지형과 파괴적 혁신 기술의 영향력에 대해 역설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안정적인 산업 기반이 어떻게 한순간에 파괴되는지, 또 어떤 기업이 새로운 강자로 자리매김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 책은 미래 시장을 준비하고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고 싶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선사해줄 것이다.
저자
레이 갤러거
출판
다산북스
출판일
201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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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상상하고 과감하게 도전하라. 불가능이라는 말은 잊어도 좋다.

- 브라이언 체스키

 

에어비앤비는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다. 단지 새로운 시스템을 바탕으로 생활 방식과 소통하는 법을 변화시킬 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앞에 쓰나미처럼 밀려올 4차 산업혁명의 본모습이다.

- 클라우스 슈밥, 다보스 포럼 회장

 

 

 

Check In. 가난한 세 청년은 어떻게 산업을 파괴시켰는가?

2007년에 미국 산업디자인협회가 컨퍼런스를 개최한 바로 그 장소였다. 이 컨퍼런스 덕분에 체스키와 공동 창업자 조 게비아Joe Gebbia는 자신들의 아파트 바닥에 에어 매트리스를 깔고 이를 대여하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컨퍼런스 참가자들이 한꺼번에 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드는 바람에 호텔의 객실이 매진됐기 때문이었다.

 

현재 체스키가 경영하는 에어비앤비는 기업가치가 300억 달러(34조 1400억 원 상당)를 돌파했고, 게스트 어라이벌Guest arrivals(새로운 여행을 위해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숙소를 검색한 사람의 수)은 1억 4000만 개에 이르렀으며, 300만 개의 숙소 리스트를 보유한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책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특정 시점의 회사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킨다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이 에어비앤비의 현재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2년 전에 벌어진 일입니다.”

 

괴짜 청년들과의 첫 만남

창업 1년 차에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소리치다가 다음 해가 되면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하는 기업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로 IT에 능하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사람들은 호텔 숙박비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으로 기존의 관광 산업이 미치지 못한 곳에 위치한 ‘누군가의 집’에 머물 수 있었고, 그곳에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었다.

 

관습을 뛰어넘어 숨어 있던 기회를 발견하다

현명하게도 이 회사는 불황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집으로 돈을 벌거나 좀 더 저렴하게 여행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가장 먼저 이 서비스를 받아들이고 이용한 사람들은 밀레니얼 세대였고, 대부분 아파트 거주자였다. 다만 흥미롭게도 미국의 경우, 호스트의 평균 연령이 43세로 나타났다. 최근 몇 년간 소득이 늘지 않고 도시의 주거비가 급등하면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자신의 집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에 관심이 쏠린 이유에서였다. 물론 여행객들도 저렴한 가격과 독특하고 매력적인 경험 때문에 에어비앤비의 서비스를 좋아했다.

 

이 회사는 기존의 호텔 업계와는 달리 특별하고 색다른 경험을 여행객들에게 제공했다. 즉, 오히려 약간은 허술하고 불완전한 여행 경험이 일반적인 호텔에서 묵을 때와는 다른, 조금 더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또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이 아닌 골목 이곳저곳을 소개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현지인’ 같은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바로 에어비앤비가 자체적으로 주장하는 자신들의 강점이자 차별점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거대 브랜드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모험적인 경험을 열망하던 밀레니얼 세대에게 특별히 강력하게 작용했는데, 이들은 디지털로 연결된 세계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온라인을 통해 숙소를 예약하는 일도 그리 어렵게 느끼지 않았다.

‘타인의 집에서 묵는다’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는 풍부한 인간관계를 맺고 싶다는 좀 더 커다란 니즈를 충족시키기도 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게스트와 호스트는 매우 친밀하게 교류한다. 호스트는 비록 그곳에 거주하지 않더라도 게스트가 색다르고 안락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이후에 집을 내어준다. 어느 도시 한 켠에 있는 누군가의 개인적인 공간에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발을 들여놓는다는 경험은 조금이나마 타인과 연결되고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만약 호스트가 그 집에 거주하고 있다면 이러한 친밀감은 더욱더 충만해진다.

에어비앤비의 회사나 웹사이트 곳곳에는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Belong Anywhere’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데, 이는 회사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핵심미션이다. 에어비앤비라는 플랫폼이 ‘어디에서나 우리 집에 있는 것 같은 혁신적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다. 혹자는 이 말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과장된 이상주의라고 간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회사가 제공하는 경험은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점차 잃어버리게 된 인간적인 정과 유대감을 되찾아준다.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가 정성껏 준비해놓은 독특하고도 진실된 공간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가치들을 떠올릴 수 있다.

 

온라인상에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오픈 마켓플레이스를 구축하면, 실제 사회의 모습이 플랫폼에 그대로 투영되기 마련이다. 에어비앤비는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친절하리라는 가정 하에 브랜드를 구축했고 또 그렇게 믿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에어비앤비라는 비즈니스의 기본 아이디어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체스키는 처음 에어비앤비라는 아이디어를 듣고 멍청한 생각이라고 말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그의 할아버지뿐이었다고 회상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하고 싶다는 사업이 무엇인지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아, 맞아! 그게 우리가 여행하던 방식이지.”

할아버지의 말은 사실이었다. 세입자, 하숙생, 입주 가정부 등 많은 사람이 에어비앤비나 인터넷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홈셰어링 형태로 숙박을 해결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람들 중 몇몇 역시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에어비앤비 사용자와 다를 바 없다. 포시즌스 호텔Fourseasons Hotel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이사도어 샤프Isadore Sharp는 어릴 적 토론토에서 자라는 동안 부모님이 여행객을 집으로 들였을 때 처음으로 숙박 사업의 묘미를 느꼈다고 말한 바 있다. 워런 버핏Warren Buffett 역시 어렸을 때 부모님이 여러 여행객을 손님으로 받았다고 말했다.

 

뉴욕 대학교 교수이자 『The Sharing Economy(공유경제)』의 저자 아룬 순다라라잔Arun Sundararajan은 “공유경제의 특징 중 하나는 아이디어 자체에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어비앤비는 ‘새로운 업적’을 이뤄냈다.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접근이 가능하도록 장벽을 걷어냈고 단순하게 플랫폼을 구축했다. 또 기존의 웹사이트들과 달리 에어비앤비의 숙소 리스트는 호스트의 개성을 드러내는 무대로 활용되도록 디자인됐다. 이를 위해 개별적이고 전문적인 사진 촬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임대 공간이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했고, 검색과 메시지 발송, 대금 지불이 모두 매끄럽게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설계됐다(많은 사람이 에어비앤비를 향해 기술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에어비앤비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정교한 ‘백엔드Back-end 엔지니어링’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회사는 숙박을 마치고 돈을 완납한 고객들과 호스트가 함께 작성할 수 있는 ‘쌍방 리뷰’라든지, ‘ID 검증 시스템’과 같이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일련의 도구들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에어비앤비가 확실히 차별화된 가장 큰 이유는 ‘도심’ 지역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 때문이다. 에어비앤비 이전에 존재한 대부분의 공간 임대 회사들은 별장이나 전통적인 지역만을 타깃으로 삼았다. 나무 위에 지은 오두막이나 선상 가옥이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에어비앤비의 숙소 대부분은 많은 사람이 매력을 느끼는 방 1~2개짜리 아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에어비앤비가 꿈꾸는 담대한 미래

이 회사의 성장에 있어 가장 주목할 점은 회사를 시작할 당시에 세 창업자들이 조직을 이끌어본 경험이 전무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회사를 경영하는 동시에 리더가 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너무도 빨리 막대한 기업가치를 지닌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고, 그에 따라 성장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토록 거대한 규모로 성장할 때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에어비앤비의 세 리더들은 여전히 회사와 함께하며 그들이 띄워 올린 로켓을 조종하고 있다.

 

백본Backbone(자신에게 연결돼 있는 소형 회선들로부터 데이터를 모아 빠르게 전송할 수 있는 대규모 전송 회선)

 

에어비앤비는 너무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이 책이 출판되는 동안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집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그날 페어몬트 호텔 로비에서 체스키가 꺼냈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는 에어비앤비가 새로운 비즈니스로 진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체스키에게 “숙박을 중개하는 소박한 사업은 이제 ‘구식’처럼 보이네요”라고 말했다. 그는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방금 내게 보여줬던 발표자료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것도 곧 ‘구닥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대담한 아이디어를 가졌지만 매번 무시당하고 조롱받았던 사람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책이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제1장. 좌충우돌의 시절 - 쓸데없고 멍청해 보이는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기적

2007년 10월, 실직 상태였던 두 명의 디자인스쿨 졸업생이 샌프란시스코의 아파트에서 생각해낸 장난스러운 아이디어로 인해 에어비앤비가 탄생했다.

 

나이키Nike의 공동 설립자 빌 보워먼Bill Bowerman이 실수로 아내가 사용하던 와플팬에 액체 우레탄을 부어 ‘와플 스니커즈’를 탄생시켰다거나, 빌 휴렛Bill Hewlett과 데이브 팩커드Dave Packard가 작은 차고에서 음향 발진기를 만들어 훗날 실리콘밸리 1호 벤처 기업인 HP를 설립했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사실 에어비앤비의 창업 스토리는 그로부터 몇 년 전인 2004년 여름, 샌프란시스코에서 약 4800킬로미터 떨어진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시작됐다. 브라이언 체스키와 조 게비아는 헤어드라이어와 같은 소형 가전으로 유명한 전자기기 업체 콘에어 코퍼레이션Conair Corporation의 인턴십 프로그램 일원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콘에어는 학생들에게 6주에 걸쳐 콘에어에 걸맞은 상품을 디자인하라는 과제를 부여했는데, 체스키와 게비아는 함께 팀이 되기로 의기투합했다.

 

발표할 시점에 이르러 다른 팀들은 각기 새로운 헤어드라이어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반면 체스키와 게비아는 ‘씻으면 없어져버리는 비누 셔츠’처럼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콘에어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그 당시를 회상하며 체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임원들의 어두운 얼굴이 모든 결과를 말해주더군요.”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던 마케팅 매니저는 체스키에게 혹시 작업을 하면서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게 아니냐고 물었다. 체스키는 “아뇨. 커피는 단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에게 있어 인턴십 프로그램은 헤어드라이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둘이 머리를 맞대면 어떤 아이디어가 생겨날지를 판단해보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계속 높이 쌓아갔습니다. 게비아와 함께하면 아이디어가 작아지기는커녕 늘 팽창했죠.”

 

“네가 비행기에 오르기 전 너에게 해줄 말이 있어. 우리는 언젠가 회사를 창업할 것이고 사람들은 그 회사에 대해 책을 쓸 거야.”

 

그는 애플Apple과 조본Jawbone에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한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와 이브스 베하르Yves Behar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꿈꿨다. 하지만 일상적인 업무는 시시했고 대부분 단순 반복적인 일이었다.

“하찮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가 약속한 디자이너로서의 이상도 분명 아니었습니다.”

디자인 명문학교로 손꼽히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은 학생들에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창의적 이상주의 정신’을 심어주었다. 그는 학교에 다니며 ‘무언가를 구상할 수 있다면 그것을 디자인할 수 있다’거나 ‘너는 디자이너로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줄곧 들었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에 오고 나서부터는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출근하는 데에만 1시간 반을 텅 빈 차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이러한 삶에 환멸을 느꼈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저는 제 삶이 차 안에 갇혀버린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아,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나버리겠구나!’ 눈앞에서 도로가 지평선으로 사라지고, 룸미러로 뒤를 봐도 도로가 사라져버린 것 같은 막막한 기분에 사로잡혔죠.”

 

학교에 다닐 당시, 게비아는 친구들과 함께 엉덩이 모양의 쿠션을 디자인했고 ‘크릿번스CritBuns(비평가의 엉덩짝)’라는 익살맞은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이것이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고, 학교는 제품 개발에 필요한 비용을 대고 졸업생 모두에게 쿠션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게비아는 어렸을 때부터 비즈니스와 예술을 융합하는 데에 두각을 나타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에는 ‘닌자 거북이’를 그려 친구들에게 장당 2달러에 팔기도 했다. 부모님이 알아채고 선생님께 이르기 전까지 말이다.

 

기회를 잡기 위해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해 9월, 게비아의 룸메이트 두 명이 갑자기 이사를 가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집주인이 월세를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두운 해안도로를 달리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사로잡혔지만, 앞으로의 미래만큼은 그렇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직장에 매여 그토록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답답함을 끊어내리라 다짐했고, 자신의 삶이 텅 빈 도로와는 같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길은 분명 그 길과는 달랐다.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길은 ‘가능성의 길’이었다.

 

일상 속 작은 문제를 기회로 인식하다

체스키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 게비아는 더 이상 그곳에서 살지 못할 처지가 되었다며 걱정을 늘어놓았다. 집주인이 집세를 1150달러로 더 올려버린 탓이었다. 체스키의 계좌에는 고작 1000달러뿐이었다. 둘은 어떻게 집세를 충당할 수 있을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 가지 아이디어는 10월 말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릴 유명 행사인 ‘미국 산업디자인협회 컨퍼런스’와 관련된 것이었다. 수천 명의 디자이너가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할 테니 호텔은 분명 만실이 되고 숙박료는 천정부지로 오를 게 뻔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아파트의 빈 공간과 침대를 컨퍼런스 참가자들에게 빌려주고 아침 식사를 제공하면 되는 거 아냐?’

게비아는 캠핑할 때 사용했던 에어 매트리스 세 개를 옷장에서 꺼냈다. 거실과 부엌, 방 세 개가 있는 게비아의 아파트는 여러 사람이 함께 지내기에 충분히 넓었다. 게다가 둘은 싼 가격에 숙박을 제공하고 손님들에게 아침 식사까지 만들어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많은 컨퍼런스 참가자가 접속할 만한 몇몇 디자인 블로그에 자신들의 아파트를 광고하자는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두 사람은 몇 주에 걸쳐 아이디어를 정리해나갔는데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아이디어는 점점 더 괴기해졌다. 과연 제대로 성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집세 납부일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은 아이디어의 뼈대와 대강의 이미지를 그리고, 기초적인 웹사이트를 HTML로 구축할 수 있는 프리랜서 한 명을 고용해 ‘에어베드앤블랙퍼스트’라고 이름 붙였다. 웹사이트에는 “두 명의 디자이너가 이번 컨퍼런스에 참가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다!”라는 문구와 함께, 에어 매트리스 하나를 빌리는 데 80달러면 충분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레이그리스트나 카우치서핑과 비슷하네요. 하지만 더 멋집니다”라는 추천글도 올라왔다.

더불어 두 사람은 여러 디자인 블로거들과 컨퍼런스 운영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들의 웹사이트를 홍보해달라고 요청했다. 컨퍼런스 운영자들은 재미있어 했지만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라며 무시했고, 디자인 블로거들은 흔쾌히 돕겠다고 나섰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들은 세 명으로부터 예약을 받았다.

 

“신청을 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더니 진짜 놀라더군요. 누군가가 숙박을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였어요.”

 

정말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그는 자신을 소개하고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그 역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브라이언, 그게 자네가 하고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니길 바라네.”

이 말은 현실을 직시하라는 수많은 충고 중 가장 강력한 첫 번째 한 방이었다.

 

한번은 룸메이트를 구하는 사람들을 위해 크레이그리스트와 페이스북을 결합시킨 ‘룸메이트-매칭’ 웹사이트를 구축하자는 아이디어를 논의한 적이 있었다. 4주에 걸쳐 그 아이디어를 디자인하고 정교화했지만, 검색창에 룸메이트닷컴roommates.com이라는 URL을 쳐보고는 이미 그런 비즈니스 모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좌절에 빠졌다. 그들에게는 다른 계획이 필요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친구들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사업가가 됐다고 대답했다.

“아니지, 넌 실직을 한 거야.”

어머니가 그의 말을 바로잡았다.

 

기초를 튼튼히 다지다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 정보기술(IT) 영화 음악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 창조산업 축제. 혁신을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는 콘텐츠·기술 분야의 최신 이슈를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 매년 3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리며 3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린다. 1987년 이 지역 소규모 음악 축제로 시작해 영화와 스타트업으로 분야를 확장했다. 트위터 포스퀘어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수의 스타트업이 이곳에서 처음 서비스를 선보여 인기를 얻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South by Southwest,] (한경 경제용어사전)

 

그들 셋은 에어베드앤블랙퍼스트가 일종의 ‘사회적 운동’이 되기를 바랐다. 다만 체스키는 모든 것이 무료로 자유롭게 공유돼야 한다는 이상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게비아와 블레차르지크는 달랐다. 그들은 이 서비스가 이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가 돼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체스키를 설득했고, 의견을 일치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크레이그리스트 :: 주택에서부터 잡동사니까지 모든 물건과 구인ㆍ구직, 즉석만남까지도 거래되는 미국 최대의 온라인 생활정보 사이트다. 본래 구인ㆍ구직이나 주택의 임대정보, 중고품 교환 등 생활정보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로, 1995년 온라인 사업자 크레이그 뉴마크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했다.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현재 100개국이 넘는 곳에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크레이그리스트는 각종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되면서 악명도 높다. 예컨대 각종 성매매 광고들이 게재되며 성매매를 알선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2010년에는 성범죄 사건이 빈발하면서 성인 게시물 항목을 삭제한 바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크레이그리스트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그들은 사우스바이 페스티벌을 통해 사업상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지만, 스스로 사이트를 이용해본 체스키는 대금 지불 프로세스에 몇 가지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세 창업자들은 훨씬 더 정교한 대금 지불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비스를 시작하기에 앞서 기초를 튼튼히 하지 못하면 결코 비즈니스를 확장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웬일인지 페스티벌이 끝나고 난 후 그 지역으로 여행을 계획한 몇 명의 고객들이 그들의 사이트 문을 두드렸다.

“에어베드앤블랙퍼스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까요?”

세 명의 창업자들은 단호하게 “노!”라고 답했다.

 

만지기조차 꺼려지는 ‘방사능’ 같은 아이디어

더불어 조금 더 분명한 사업을 시작하려 한다면 ‘엔젤’ 몇 명을 소개해줄 수 있다고도 말했다. 당시에 체스키는 그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맙소사, 이 친구들은 천사를 믿는구나. 도대체 뭐지?’라고 생각했어요.”

 

“체스키와 게비아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길 원했지만, 저는 서비스를 더 좋게 만들고 더 높은 성과를 달성하는 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지 크게 망설였습니다.”

 

“세이벨은 우리를 계속 붙잡아주었습니다. 우리가 궤도를 이탈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말하더군요. ‘친구들, 지금 뭐하는 건가요? 원래대로 돌아와요’라고요.”

그래서 두 사람은 세이벨을 가리켜 ‘갓파운더Godfounder(대부라는 단어인 Godfather를 빗댄 말로, 창업과 관련해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라고 불렀다.

 

“CEO를 누구로 결정하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냥 우리 중 아무나 하면 됐죠. 저는 게비아나 블레차르지크만큼 많은 걸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항상 노력했고, 그런 노력이 회사를 설립하는 데까지 이어졌죠.”

 

여행업을 관심 분야로 설정해야 하는지 고심했고, 여행업이 최고의 전자상거래 분야 중 하나임을 인정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특별한 아이디어인지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두 사람은 회사의 가치를 150만 달러라 생각하고 회사 지분의 10퍼센트를 15만 달러에 인수할 투자자를 찾고 있었다. 만약 그때 15만 달러어치의 주식을 인수했다면 지금은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마치 만지기조차 꺼려지는 ‘방사능 물질’과 같은 아이디어로 취급받았다. 체스키는 “아무도 건드리려고 하지 않았어요”라는 말로 당시를 회상했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다

덴버에서 열릴 민주당 전당대회가 다가오자 대금 지불 시스템을 정교하게 수정했고, 새로이 리뷰 시스템을 추가했으며, “현지인의 집에 머물면서 여행을 즐기세요!”라는 새로운 마케팅 슬로건을 내걸었다. 점점 민주당 전당대회를 향한 열기가 고조됐고, 버락 오바마가 후보로 지명되면서 언론은 미친 듯이 뉴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전당대회 운영자들은 오바마의 후보 수락 연설 장소를 8만 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덴버의 풋볼 구장인 인베스코필드로 지정했다. 지역 신문들은 일제히 덴버 시에 호텔 객실 수가 2만 7000개밖에 되지 않아서 심각한 객실 부족 사태가 우려된다는 기사를 써냈다.

 

이 사건이 바로 에어베드앤블랙퍼스트의 전환점이 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체스키와 게비아, 블레차르지크는 전당대회가 열리기 몇 주 전인 2008년 8월 11일, 세 번째로 그들의 사이트를 론칭했다. 끈질긴 부탁을 통해 유명 기술 블로그인 ‘테크크런치TechCrunch’에 간신히 홍보글을 올릴 수 있었고, “에어베드앤블랙퍼스트는 숙박을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라는 광고를 내걸었다. 이 글로 그들은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 성공했고, 접속이 쇄도해 사이트가 다운될 지경이었다. 그날 체스키와 게비아는 공교롭게도 엔젤 투자자인 마이크 메이플스Mike Maples와 두 번째로 만났는데, 발표자료를 생략하고 직접 사이트를 보여줄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를 만나 사이트를 켜고 나서야 다운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결국 아무것도 논의할 수 없었다.

“당연히 발표자료는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사이트를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고, 우리는 서로 한 시간 동안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결국 메이플스는 그들에게 투자하지 않았다.

세 창업자들은 민주당 전당대회가 임박했을 무렵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접속자 수는 많았으나 그 누구도 자신의 집을 선뜻 리스트에 올리기를 원하지 않던 것이다. 올려놓은 집이 없는데 누가 그 사이트에 다시 오겠는가? 그들은 ‘많은 사람이 이용할수록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네트워크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는커녕, 땅에서 발을 떼기도 불가능했다. 시험적으로 사이트를 확장해보니,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빌려주는 것에 대해 꺼려하거나, 혹은 이상하게 보이는 사회적 실험에 참여하도록 강요받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다만 체스키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그는 스타트업의 CEO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역량은 부족했을지언정 언론을 이용하는 데에는 직감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정치 뉴스 매체가 항상 참신한 뉴스거리에 목말라 한다는 점을 간파했다. 그 점에 착안하여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해냈는데, 블로그가 작을수록 주목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가정 하에 지역의 작은 블로거들을 섭외하여 사업을 전파했다. 실제로 그들은 블로그에 소식을 올리도록 하여 도미노 효과를 야기시켰다. 큰 블로거가 작은 블로거의 글을 인용하여 게재하면 《덴버포스트Denver Post》와 같은 지역 신문들이 관심을 갖게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들은 결국 지역 방송국으로부터 취재 요청을 받아냈고, 점점 널리 알려져 《폴리티코Politico》, 《뉴욕데일리뉴스New York Daily News》,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등 전국적인 매체들에 의해 소개됐다.

체스키의 언론 홍보 전략은 정확히 들어맞았고 드디어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800여 명의 사람들이 리스트에 집을 올렸고, 80여 명의 게스트가 예약을 요청해왔다. 하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상황은 여전했다. 당시에 세 창업자들은 모든 대금 지불 시스템으로 페이팔Paypal 계정을 사용했는데, 갑작스럽게 거래가 증가하자 페이팔은 이들을 의심하고 계정을 중지시켜버렸다. 블레차르지크는 인도에 있는 페이팔 고객 서비스 담당자와 몇 시간이나 통화를 하며 사정을 설명해야 했다. 그동안 체스키와 게비아는 짜증이 난 고객들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미친 듯이 애원했다. 결국 주말이 끝날 무렵에서야 계정은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역시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버가 다운되고, 예약이 쇄도하며, 언론에 자주 노출됐지만 전당대회가 끝나자마자 사이트의 접속량은 다시 ‘0’으로 뚝 떨어져버렸다.

“우리는 정치적 이벤트가 매주 열려야만 성장하고 생존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환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출발점으로 되돌아왔다.

 

바퀴벌레보다 강인한 생존력으로

그들은 전당대회 전에 생각해둔 아이디어, 즉 호스트들에게 공짜 아침 식사거리를 보내주고 그들이 게스트들에게 무료로 아침 식사를 제공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다시 꺼내들었다. 무엇보다도 ‘아침 식사’는 서비스 이름의 절반이었고, 사업 콘셉트의 큰 부분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시리얼’에 꽂혔다. 그러고는 민주당 전당대회에 착안하여 ‘오바마 오즈’라는 가상의 브랜드를 만들어냈고, 시리얼박스를 디자인하여 ‘변화의 아침 식사!’, ‘모든 그릇에 희망을!’이라는 슬로건을 삽입했다. 또 공화당 버전인 ‘캡틴 맥케인즈’도 만들어 ‘씹을 때마다 이단아!’라는 문구를 넣기도 했다. 이때 광고 음악 작곡가이자 초기 호스트였던 조나단 만Jonathan Mann은 시리얼박스를 위한 광고 음악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1만 개의 시리얼박스를 생산해 개당 2달러에 판다면 추정컨대 회사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그들은 2만 달러의 빚을 돌려 막기 위해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바인더에 가득 꽂아놓아야 할 지경이었다. 블레차르지크는 처음 이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두 사람이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체스키와 게비아에게 정 하고 싶다면 해보라고 말하고는 자신은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일에는 일절 돈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체스키와 게비아는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것, 즉 ‘창의적이고 괴기한 아이디어’로 잠시 후퇴했다. 인쇄소를 운영하는 디자인스쿨 동문에게 박스 인쇄를 부탁했는데, 그는 박스 1만 개를 만들어주겠다는 말 대신 판매 배당액을 주면 두 가지 박스를 각각 500개씩 공짜로 인쇄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작은 생산량으로는 큰 수익을 도모하기 어려웠지만, 그들은 ‘한정판’이라는 개념을 덧씌우기로 마음먹었다. 박스에 번호를 붙여 ‘수집가용 에디션’이라는 이름을 내세우고는 박스 하나당 가격을 50달러로 책정했다.

이후 그들은 가장 싼 시리얼을 판매하는 곳을 알아내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슈퍼마켓을 모조리 뒤졌고, 인쇄된 1000개의 박스를 게비아의 빨간색 지프에 실어 집으로 날랐다. 그러고는 부엌에 앉아 납작한 박스를 일일이 손으로 접어 모양을 만든 다음 글루건으로 고정시켰다.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론칭하기 위해 시리얼박스를 접고 글루건에 손을 데이진 않았겠지……’라는 서글픈 생각도 들었지만 그럼에도 달리 방도가 없었다.

박스 조립에는 점차 속도가 붙었고 그들은 결국 1000개의 박스를 모두 만들어냈다. 그러고는 쓰러져가는 회사를 되살리기 위해 최후의 방편을 꺼내들었다. 바로 언론에 박스를 마구 뿌리기로 한 것이었다. 당시 정치 담당 기자들은 얼떨떨해하며 이 소식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기자들의 성격상 그들에게 시리얼박스를 보내달라고 요청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래도 몇몇 기자들이 시리얼박스를 받아 책상이나 책꽂이에 올려둔다면 다른 기자들이 관심을 갖게 될 터였다. 이러한 술책이 통했는지 언론은 순식간에 시리얼을 ‘먹어치웠고’, 많은 박스가 이곳저곳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오바마 오즈는 3일 만에 매진됐고, 사람들은 이베이나 크레이그리스트에 한 박스당 350달러를 받고 되팔기 시작했다(캡틴 맥케인즈는 결국 매진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시리얼박스로 빚을 갚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주력 비즈니스에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사이트로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당시 체스키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러니까 이젠 시리얼 회사를 차린 거니?”라고 물었다). 그들은 핵심 비즈니스로는 5000달러도 벌지 못했지만 시리얼 판매로는 2~3만 달러를 벌었다. 처음부터 시리얼 사업에 회의적이었던 블레차르지크는 이제 할 만큼 했으니 더 이상은 함께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보스턴으로 돌아간 그는 컨설팅 사업을 재개했고 여자친구와 약혼했다.

체스키와 게비아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돈 한 푼 없이 아파트에 둘만 덩그러니 남았다. 체스키는 그해에 몸무게가 약 10킬로그램이나 빠졌다. 돈도 없고 먹을 음식도 떨어진 나머지 두 사람은 몇 달 동안 남아 있던 캡틴 맥케인즈를 주식으로 먹었다. 우유조차 사치였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시기였음에도 체스키는 계속 사업 전략을 구상했다.

“걱정이 된 어머니는 적어도 우유는 사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셨어요. 그렇지만 저는 확신이 있었죠. ‘아니에요. 저희는 어려운 고비를 넘는 중이에요. 언젠가는 지금이 좋았다고 말할 때가 올 거예요!’라고 대답했으니까요.”

2008년 11월 어느 날 밤, 체스키와 게비아는 세이벨과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세이벨은 그들에게 와이 콤비네이터에 지원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당시 체스키는 그 제안을 매우 불쾌하게 받아들였다. 와이 콤비네이터는 아직 론칭도 하지 못한 신생 기업들을 대상으로 했다. 에어베드앤블랙퍼스트는 이미 론칭도 했고 적지만 고객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테크크런치에도 소개된 이력도 있었다. 하지만 세이벨은 그들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가슴속 깊이 숨겨둔 진실을 이야기했다.

“당신들을 좀 보라고요. 당신들은 죽어가고 있어요! 와이 콤비네이터에 지원하세요. 그리고 도움을 받으세요.”

이미 신청 마감일은 지났지만, 세이벨은 그레이엄에게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그레이엄은 그날 밤 안으로 지원서를 보낸다면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새벽 1시에 잠을 자고 있던 블레차르지크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이름을 자신들과 함께 지원서에 넣어도 될지 물었다. 잠결이라 어땠는지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는 동의했다. 그렇게 그들은 지원서를 접수했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한편으로는 블레차르지크에게 연락을 해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달라고 애원했다.

와이 콤비네이터의 지원 과정은 인정사정없기로 유명한데, 정확히 10분 동안 진행되는 인터뷰에서 그레이엄과 그의 파트너들은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낸다. 게다가 아무런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허용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인터뷰는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세 창업자들이 사업 아이디어를 설명한 후 그레이엄의 첫 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던가요? 왜 그렇죠? 그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요?”

시장과 고객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을 받았지만, 아이디어 자체를 일축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자리를 뜨려고 짐을 챙기는데, 갑자기 게비아가 가방에서 시리얼박스를 꺼내 들었다. 블레차르지크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몰래 가져 왔던 것이었다. 그는 그레이엄과 파트너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으로 다가가 박스 하나를 건넸다. 그레이엄은 퉁명스럽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특이한 기념품을 선물로 주려고 이들이 시리얼박스를 가지고 온 거라 생각했다. 그때 체스키가 이렇게 말했다.

“기념품은 아니고요. 저희가 이 시리얼박스를 만들어서 팔았습니다. 시리얼박스는 회사의 자금을 모으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세 창업자들은 그레이엄에게 오바마 오즈를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레이엄은 의자에 편히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와우! 당신들은 정말 바퀴벌레 같군요. 절대 죽지 않을 겁니다.”

그레이엄은 합격할 경우 가능한 한 빨리 전화로 알려줄 테니 기대해보라고 말했다. 그레이엄의 전화를 받으면 그 자리에서 즉시 와이 콤비네이터와 함께할지를 결정해야 했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넘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우울한 마음을 안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길에서 갑자기 체스키의 휴대폰이 울렸다. 거기에는 그레이엄의 전화번호가 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고 게비아와 블레차르지크는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런데 그레이엄이 “저는 당신들이……”라고 말하는 순간 전화가 뚝 끊어지고 말았다. 그들은 통화가 잘 터지지 않는 것으로 악명 높은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 사이 280번 도로 위에 있었다.

“저는 ‘안 돼!’라고 소리쳤어요. 그러고는 미친 듯이 흥분했죠. 게비아와 블레차르지크에게 ‘얼른 밟아! 달려!’라고 다그쳤어요.”

그들은 통화 신호를 잡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도로를 달렸고, 다행히 샌프란시스코에 진입했을 때 그레이엄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그레이엄은 단도직입적으로 합격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즉시 결정하라고 말했다. 체스키는 두 사람의 의견을 확인해보는 척하며 잠깐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체스키는 심호흡을 한 뒤 합격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그레이엄은 그들이 합격한 진짜 이유가 ‘시리얼박스’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들이 5달러짜리 시리얼을 40달러에 사도록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 에어베드 위에서도 잠을 자도록 설득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이로써 세 창업자들은 와이 콤비네이터에 들어가면서 초기 사업자금으로 2만 달러를 받았고, 대신 회사 지분의 6퍼센트를 내주었다. 총 3개월간의 지원이 시작됐고, 2009년 1월 6일 화요일 저녁에는 환영 만찬에 초대받았다. 오랜 설득 끝에 블레차르지크는 3개월 동안 샌프란시스코에 머물기로 최종 결정을 하고는 로쉬 가의 아파트로 이사를 마쳤다. 그들은 그렇게 다시 뭉쳤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거대한 기회 앞에 몸을 내던질 준비를 했다.

 

고객이 있는 곳에 해답이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자!’

 

체스키와 게비아, 블레차르지크는 3개월 동안 자신들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바치기로 ‘협정’을 맺었다. 아무도 다른 프로젝트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주말도 없이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 한밤중이 될 때까지 이 프로젝트에만 열중했다. 그러고 난 후 끝내 투자를 받지 못하면 각자의 길을 가기로 약속했다. 그레이엄과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뒤 세 사람은 그가 보여준 하키 스틱 모양의 매출 상승 곡선을 화장실 거울에 붙여뒀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보고, 잠자리에 들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매출 상승 곡선을 매주 업데이트했다.

 

그들에게 고객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는데, 있어봤자 겨우 100명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레이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서비스가 괜찮다’고 여기는 고객이 100만 명 있는 것보다 ‘서비스를 사랑하는’ 100명의 고객이 있는 게 훨씬 더 낫다는 뜻이었다. 이게 바로 그가 알려준 첫 번째 교훈이었고, 이는 규모와 성장을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전통적인 실리콘밸리의 지혜에 위배되는 일종의 ‘교리’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정확히 어디에 있나요?”

세 사람은 사용자들이 주로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잠시 침묵하던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신들은 마운틴뷰에 있고 사용자들은 뉴욕에 있는 거군요. 그럼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거죠?”

그레이엄이 소리쳤다.

“뉴욕으로 가요! 얼른 고객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요!”

 

3개월 동안 체스키와 게비아는 주말마다 뉴욕으로 날아갔다. 블레차르지크가 마운틴뷰에 남아 프로그래밍에 열중하는 동안 두 사람은 눈이 수북이 쌓인 길을 걸으며 모든 사용자를 가가호호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집에서 숙박을 해결했다. 두 사람은 고객과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직접 온라인으로 숙박을 예약하고 고객의 집을 찾아가면서 책상 앞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었던 가르침을 얻었다. 특히 그들은 가장 핵심이 되는 두 가지 고충을 발견했다. 먼저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을 얼마의 가격으로 임대해야 하는지를 어려워했다. 특히 사진 촬영은 아주 큰 골칫거리였다. 사용자들은 공간이 멋지게 나오도록 사진을 잘 찍지 못했고, 2009년 당시에는 사진을 어떻게 사이트에 업로드하는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사이트에 올라온 집들은 매력도 없고 거무죽죽한 모습이었다. 세 창업자들은 호스트의 집에 전문 사진사를 보내 사진을 찍어주는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돈이 없었기 때문에 체스키가 친구에게 카메라를 빌려 직접 사진사 노릇을 하기도 했다. 전날에는 CEO로서 방문했던 그가 똑같은 집에 사진사로 다시 찾아가는 일도 빈번했다.

또 체스키는 ‘1인 결제 시스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종종 가방에서 수표책 원장을 꺼내 호스트들에게 개인 수표를 발행해줬다. 게비아는 고객으로부터 서비스 요청 전화가 오면 자신의 휴대폰에 연결시켜 일일이 응대를 했다. 그들은 모든 집을 찾아가 호스트와 미팅을 했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언제든 사람들에게 다가가 이 새롭고 놀라운 서비스를 이용하면 아파트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설명하고는 회원으로 가입을 시켰다. 또 매주 고객의 피드백을 정리해 블레차르지크에게 전달한 뒤 사이트를 변경하고 개선해나갔다.

동시에 그들은 소수의 사용자들이 모여 있는 워싱턴으로 가서 또 하나의 빅 이벤트인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과 관련한 서비스의 론칭을 서둘렀다. 웹사이트의 이름을 ‘크래쉬더인오규레이션crash the inauguration’이라 짓고, 덴버에서 열렸던 민주당 전당대회 때 유용하게 써먹었던 언론 홍보 전략을 구사했다. 또한 호스트들을 방문하여 숙소 리스트를 올리도록 설득했고 그들에게 공동체적 삶에 대한 기본적인 동경을 일깨워주기 위해 새로운 ‘마이크로 타깃’ 방식의 마케팅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워싱턴에서 약 700개의 숙소를 확보했고 150여 건의 예약을 접수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경험은 자신들의 사업을 면밀히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본래 에어베드앤블랙퍼스트의 호스트 자격을 얻으려면 일반 침대가 있다고 해도 반드시 ‘에어 매트리스’만 빌려줘야 한다는 규칙을 지켜야 했다(체스키는 에어 매트리스가 터져서 일반 침대를 빌려줘도 되냐는 호스트의 말을 기억했는데, 그는 일반 침대 위에 터진 에어 매트리스를 깔고 나서야 호스트의 자격을 얻었다). 또 공연 여행을 떠나기로 예정돼 있던 어느 음악가는 자신의 아파트 전체를 빌려줘도 되는지를 문의했지만 그들은 수락하지 않았다. 만약 그 사람이 집에 없다면 어떻게 아침 식사를 차려줄 수 있겠냐는 것이 거절의 이유였다. 하지만 이러한 문의가 에어베드앤블랙퍼스트의 사업을 완전히 뒤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그의 요청 덕분에 세 창업자들은 자신들의 사업이 훨씬 더 큰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과감하게 아침 식사 제공 요건을 삭제했고, 집 전체를 빌려줘도 괜찮다는 옵션을 추가했다. 그레이엄 역시 초기 비즈니스 모델의 한계를 지적하며 시장 잠재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에어베드’라는 단어를 이름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로써 그들은 ‘에어반비Airbanb’라는 이름의 도메인을 구입했다. 그런데 언뜻 보면 ‘에어밴드Airband’ 같아 보여서, 대신 ‘에어비앤비Airbnb’라는 이름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와이 콤비네이터의 모범적인 학생이었던 체스키와 게비아는 매주 마운틴뷰로 돌아와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비행기에서 내려 곧장 트렁크 가방을 끌고 올 만큼 와이 콤비네이터가 주최하는 모든 행사에 1등으로 도착했다.

“우리는 그레이엄과 매주 공식적인 미팅을 가졌어요. 설령 그가 미팅할 시간이 없다고 해도 말이죠.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도착했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떠난 후에도 남아 있었습니다.”

그레이엄 역시 체스키의 말에 동의했다.

“저는 지독하게도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레이엄은 흥미롭게도 육성 프로그램을 거쳐간 수많은 스타트업이 한 가지 공통된 패턴을 보인다고 언급했다. 크게 성공한 기업을 보면 언제나 열정적으로 참여한 창업자가 있었다고 말이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적인 아이디어 덕분에 성장한 기업은 많지 않습니다. 성공한 기업들을 보면 과거에는 늘 형편없었으니까요.”

데모데이Demoday(3~4개월간의 지원 프로그램이 끝난 뒤 투자자를 상대로 사업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행사)가 다가오면서 세 창업자들은 그레이엄이 ‘희망의 꿈틀거림’이라고 부르는, 이른바 성과가 견인되는 신호를 얻기 시작했다. 예약 건수가 증가하기 시작해 매일 20건에 근접했다. 그들은 뉴욕에서 사용자들과 가졌던 게릴라 마케팅과 회의가 효과를 발휘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예약 건수의 증가와 함께 수수료가 입금되기 시작했다. 몇 주 후부터는 수익을 차츰 달성하기 시작했고, 화장실 거울에 붙여놓고 3개월간 매일 꿈꿨던 ‘일주일에 매출 1000달러’라는 목표를 이뤄냈다. 그들은 로쉬 가 아파트의 지붕 위에서 샴페인 잔을 부딪히며 자축했다.

 

마침내 ‘에어비앤비’라는 로켓을 발사하다

2009년 4월의 어느 날, 구글과 애플, 오라클Oracle 등에 투자했던 벤처 캐피탈 회사 세콰이아Sequoia의 파트너인 그렉 맥아두Greg McAdoo가 와이 콤비네이터를 방문했다.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일수록 투자의 적기라고 생각했던 맥아두는 그레이엄에게 “이런 불황기에는 어떤 창업자들이 사업을 ‘발사’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레이엄은 ‘지적인 강인함을 지닌 창업자들’이라고 대답했다. 다시 맥아두는 현재 입주 중인 창업자들 중에 누가 그런 기질을 보이는지 물었다. 그레이엄은 집을 임대하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진 세 명의 재미난 창업팀이 있다며 한번 만나볼 것을 제안했다.

 

맥아두는 호스트와 게스트 간의 신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셜 메커니즘을 설계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호스트와 게스트가 함께 커뮤니티를 구성한다는 그들의 철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런 콘셉트는 전통적인 숙박 산업에서는 지금껏 무시당해온 프로세스였습니다. 그들이라면 호스트와 게스트를 연결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몇 주 후 세 창업자들은 세콰이아로부터 58만 5000달러 상당의 투자를 받아냈다. 여기에 다른 기업으로부터 받은 3만 달러를 합쳐 투자액은 총 61만 5000달러에 달했다. 투자자들은 에어비앤비의 가치를 240만 달러로 평가했다. 이는 에어비앤비라는 로켓이 발사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신호탄이었다.

“세콰이아가 우리에게 투자하던 순간 로켓은 발사됐죠.”

체스키는 뒤이어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공식적인 인정’이었다고 말했다. 에어비앤비를 그토록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거부했던 실리콘밸리의 투자 회사들에게 세 창업자가 날리는 커다란 ‘한 방’이었다. 이러한 ‘인정’은 세 사람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있어 가장 절실한 것은 ‘자신감’과 ‘의지’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았죠. 하지만 그제야 열정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세콰이아 역시 에어비앤비라는 큰 기회를 잡은 셈이다.

 

“당신이 어떤 일에 성공했다면, 그 일은 지금껏 겪은 일 중 가장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언제였느냐고 물었다.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에어비앤비를 창업했을 때’라고 대답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재미있고 그립고 낭만이 가득했던 시절이지만, 그때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두렵고 암울했던 시절이었죠.”

 

“우리는 공상가가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놈들이죠. 우리는 ‘작은 공간으로 조금의 돈이라도 벌고 싶어 하는, 우리 같은 사람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사업을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해내는 사람들의 수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해냈죠.”

 

“그들은 아이디어 기획에 많은 시간을 쏟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론칭’을 했죠. 실행하는 힘이 대단한 팀이었습니다.”

몇 년 후 그들의 아이디어를 무시했던 유니온 스퀘어 벤처스의 공동 창업자 윌슨은 자신이 에어비앤비를 알아보지 못한 실수를 저질렀다며 블로그에 ‘자책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우리는 모든 투자자가 저지르는 고전적인 실수를 범했다. 우리는 당시에 그들이 하던 일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췄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들, 할 것들, 해낸 것들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못했다.”

윌슨의 회사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매일 상기시키기 위해 오바마 오즈 박스 하나를 회의실에 전시해두고 있다.

 

 

 

제2장. 위대한 기업의 탄생 - 창업 10년 만에 세계 최고의 기업들을 넘어서다

그들은 마침내 이뤄냈다. 죽을 뻔했지만 죽지 않았고, 헤어질 뻔했지만 각자 다른 길을 가지도 않았다. 에어비앤비는 자신들의 사업을 열렬히 지지해주는 팬을 발견하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누구보다도 높게 날아올랐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용어로 설명하자면, 체스키와 게비아, 블레차르지크는 ‘제품-시장 궁합Product-Market Fit(이하 PMF)’이라는 이정표에 도달했다. PMF란 스타트업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이자 생존의 증거로, 풍부한 고객이 존재하는 시장을 발견하고 동시에 그 시장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생산해낸다는 의미다. 이 용어는 실리콘밸리에서 최고의 구루로 손꼽히는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이 자주 언급하면서 유명해졌다.

 

2009년 8월, 일주일에 1000달러이던 매출은 1만 달러가 됐고, 1주일 평균 예약 규모는 총 10만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힘든 시기도 함께 찾아왔다.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세 창업자들은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 전략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동시에 직원도 뽑고 조직 문화도 정립해야 했다. 이미 제품은 있었지만 이제 그 제품을 함께 만들어가고 성장시킬 ‘회사’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 명의 창업자들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일주일 내내 매일 18시간씩 에어비앤비에만 매진해주길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회사는 미친 듯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치 추락하는 와중에 낙하복을 입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죠.”

 

체스키는 CEO가 되고난 후부터 조직 문화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댔는데, 이를 통해 채용이야말로 경영자가 가장 신중히 접근해야 하는 분야이며, 처음부터 꼭 맞는 사람을 뽑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무척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세 창업자들은 단지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기능 몇 개를 추가해줄 만한 인력을 뽑으려 하지 않았다. 좋은 인재를 뽑으면 그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수백 명의 직원을 불러들일 것이라 확신했다.

 

“첫 엔지니어를 뽑는 일은 여러분의 기업에 DNA를 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더불어 세 사람은 그들이 닮고 싶은 조직 문화를 가진 기업들을 리스트업했다. 세콰이아에서 쌓은 인맥을 통해 나이키, 스타벅스Starbucks, 애플과 같은 거대 기업뿐만 아니라, 친근함과 엉뚱한 문화로 그들이 특히 부러워했던 온라인 쇼핑몰 업체 재포스Zappos에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들은 세콰이아의 파트너인 맥아두와 매주 아침 식사를 하며 경영에 관한 조언을 듣곤 했는데, 식사 도중 재포스의 CEO인 토니 셰이Tony Hsieh를 소개해줄 수 있느냐고 요청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다음 날 세 사람은 재포스의 본사가 있는 라스베이거스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세 사람은 리스트업한 기업들을 견학하면서 그들이 존경하는 기업들 모두가 ‘강력한 미션’을 갖고 있으며, ‘핵심 가치’로 단단히 무장돼 있음을 깨달았다. 그 기업들은 미션과 핵심 가치를 조금은 과하다 싶을 만큼 고객과 이해관계자, 주주들에게 주입시켰고, 조직 내부의 행동 방향을 가이드하는 데에 일반적인 원칙으로 사용했다. 핵심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종종 간과되곤 한다. 그러나 조직 행동 전문가들은 원하는 인재를 정의하는 데에는 핵심 가치가 필수적으로 필요하고, 특히 회사의 형성기에 핵심 가치가 단단하게 규정돼야 규모를 성장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체스키와 게비아, 블레차르지크는 직원을 채용하기에 앞서 에어비앤비의 핵심 가치부터 정의하기로 했다. 우선 ‘부지런히 일하는 올림픽 선수’, ‘가족 같은 분위기 구축’, ‘에어비앤비를 향한 열정’ 등 총 열 가지의 기질로 간추렸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수개월 동안 엄청난 양의 이력서를 검토하고 지원자들을 면접했다. 그러한 끝에 검색 기반 스타트업을 창업해 와이 콤비네이터의 일원이 되었지만 결국 날아오르지 못한 닉 그랜디Nick Grandy를 낙점했다. 그는 에어비앤비의 성장 가능성을 믿었고, 이 서비스가 사용자들에게 좋은 가치를 전해줄 수 있을 거라 내다봤으며, 에어비앤비의 성장에 일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무척 기뻐했다. 그는 2009년 여름부터 엔지니어로서 일을 시작했고, 세 창업자들이 사는 로쉬 가 아파트 거실에 자신의 일터를 꾸렸다. 직원 수는 그때부터 서서히 늘어났는데, 그 후 몇 개월 동안 엔지니어 몇 명과 첫 번째 고객 서비스 담당 직원을 채용했다. 그랜디는 아파트 안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꽤 조용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들이 PMF를 찾으려고 정말 열심히 일하던 바로 그때, 또 롤러코스터처럼 놀랍고도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려내고 있을 때 제가 합류한 거죠.”

 

그는 로쉬 가의 아파트에 발을 들였을 때 느꼈던 에너지와 열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문을 열자마자 열기가 느껴질 만큼 그들은 완전히 미쳐 있었습니다.”

 

2010년 여름이 되자 로쉬 가의 아파트를 드나들며 일하는 직원이 25명으로 불어났다. 자연스럽게 침실은 회의실이 됐고, 세 창업자들은 계단이나 화장실 혹은 지붕 위에서 지원자들과 면접을 진행했다. 이때부터 체스키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또 자신들의 제품(에어비앤비 사이트에 올라오는 숙소들)을 조사하기 위해 아파트를 떠나 1년 동안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성장으로 가는 ‘공짜 고속도로’를 발견하다

블레차르지크는 급속한 성장을 이루기 위한 최고의 ‘비밀 병기’로서 역할을 다했다. 그는 성장의 돌파구를 찾는 데에 필요한 새로운 도구와 기술을 기발하게 다룰 줄 아는 인재였다. 예를 들어 ‘애드워즈AdWords’라고 불리는 구글 광고 서비스와의 인터페이스 기술을 개발해 에어비앤비가 특정 도시의 잠재적 사용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노출될 수 있도록 했다. 또 크레이그리스트로 통하는 백도어Backdoor(사용자 인증 등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프로그램 또는 시스템에 접근하게 해주는 프로그램)를 구축하는 등 홍보에 유용한 도구들을 앉은 자리에서 즉석으로 만들어냈다. 2009년 당시 크레이그리스트는 몇 안 되는 대규모 사이트 중 하나였으나, 그것을 활용하고자 하는 마케터와 똑똑한 엔지니어들에 의해 쉽게 뚫리곤 했다. 블레차르지크는 에어비앤비가 보낸 이메일 속 버튼을 한 번만 클릭하면 동시에 크레이그리스트 상에도 숙소 리스트가 나타나게 하여 양 사이트의 사용자들 모두에게 숙소가 노출되도록 했다. 그러고는 예약은 에어비앤비에서 진행하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많은 엔지니어는 이런 블레차르지크의 기발한 기술적 솜씨를 ‘놀랄 만한 통합’이라고 부르며 에어비앤비에 경의를 표했다. 더불어 그들은 계약직 몇 명을 고용해 임대를 위해 자신의 집을 올려놓은 크레이그리스트 사용자들에게 자동으로 타겟팅된 이메일을 보내도록 했고, 그들을 에어비앤비로 옮겨 오도록 유도했다.

이러한 성장의 돌파구는 시간이 흐르고 성장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면서 점차 위력을 잃어갔다. 그러나 블레차르지크가 만든 이른바 ‘성장으로 가는 공짜 고속도로’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능력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창업자들이 이러한 돌파구를 실행에 옮기지 않았더라면 회사는 그토록 급격하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효과가 만드는 거대한 성장의 힘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온라인 쇼핑몰 회사인 이베이eBay와 매우 유사하다. 에어비앤비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을 연결시키고 ‘서비스료’라고 하는 수수료를 취하는데, 웹사이트에는 ‘에어비앤비가 24시간 내내 원활하게 운영되고 고객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예약에 부과하는 금액’이라고 공손하게 표현돼 있다. 이 수수료가 바로 에어비앤비의 매출이다. 게스트에게는 6~12퍼센트의 수수료를 부과하는데, 소계(에어비앤비 측이 받을 수수료를 제외한 숙박비의 합)가 높을수록 수수료가 낮게 책정되는 방식을 취한다. 또 대금 이체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에 호스트에게는 3퍼센트의 예약 수수료를 부과한다.

 

에어비앤비는 게스트를 1억 명 이상 모았지만, 2016년을 기준으로 숙소 리스트는 300만 개에 불과했다. 에어비앤비가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려면 양쪽 모두를 성장시켜야 하지만, 호스트 측은 필연적으로 수를 늘리기가 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수수료가 게스트에게 부과되는 이유다. 에어비앤비는 호스트를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데, 값싼 수수료뿐만 아니라 전문 사진 촬영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 누구나 손쉽게 숙소를 등록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또 몇몇 호스트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머그컵을 공짜로 발송한다든지, 호스트들에게 론칭 행사와 연례 대회 등에 참가할 수 있도록 비행기 티켓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당근’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에어비앤비의 사업은 기본적으로 ‘네트워크 효과’를 얼마나 끌어올리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에어비앤비에 숙소를 올릴수록 선택지가 늘어나므로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인 플랫폼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에어비앤비를 통해 여행할수록 더 많은 게스트가 존재한다는 뜻이기에 숙소를 올리려는 사람들에게도 더 매력적인 사이트가 된다. 에어비앤비의 제품인 ‘여행‘은 A에서 B로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빠르고 저렴한 ‘교류‘를 통해 세계적인 네트워크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프랑스 출신의 한 여행객이 뉴욕의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면, 그는 프랑스로 돌아가 ‘나도 호스트가 돼볼까?’라고 고려하거나 친구들에게 이 서비스에 대해 이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인지도 상승이 촉발되고 결과적으로 그 시장 내에서 더 많은 호스트를 확보할 수 있는 길로 이어진다. 이 두 가지 측면(호스트와 게스트)은 대부분 다른 대륙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직원들이 각 대륙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도 새로운 시장에 신속하게, 적은 비용으로, 또 유기적으로 뿌리내리도록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신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새로운 마케팅 방법을 구사하거나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 기업들, 이를테면 우버Uber와 같은 기업들과 차별화된다. 즉, 에어비앤비를 성장시킨 일등 공신은 사용자들의 여행 패턴과 세계적인 네트워크 효과라 할 수 있다.

 

에어비앤비의 투자자들이 그들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꼽는다면 바로 ‘효율성’과 ‘성장 가능성’이다. 저비용 방식으로 확장이 가능하다는 이점 때문에 에어비앤비는 지난 8년 동안 고작 3억 달러 미만의 투자만을 진행했을 뿐이다(이에 반해 공유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버는 2016년 상반기에만 12억 달러를 썼다).

 

스티브 잡스의 ‘클릭 세 번의 법칙’

에어비앤비의 성공을 논할 때 가장 많이 제기되는 의문이 하나 있다. 홈어웨이, VRBO, 카우치서핑, 베드앤블랙퍼스트, 심지어 크레이그리스트까지 이미 비슷한 공간 임대 사이트가 그토록 많은데 왜 유독 에어비앤비만 ‘떴냐’는 것이다. 어떻게 에어비앤비는 단기 임대를 대중화하는 데 성공했을까? 반면 왜 다른 회사들은 성공하지 못했을까?

가장 큰 차이는 ‘제품’ 그 자체에 있다. 기술 산업계에서 ‘제품’이라는 말은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과 같이 실제 눈에 보이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활동들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기술력, 또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과 상호 작용(사용자경험)하는 방식 등 아이디어 단계 이후에 형성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꽤 모호한 용어다. 에어비앤비의 첫 번째 제품은 단순히 말해 ‘괴짜스러운 아이디어’였고, 워드프레스로 뚝딱 만든 웹사이트였다. 하지만 덴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를 위해 세 번째로 론칭을 준비하던 시기에는 숙소를 공급하는 단순한 플랫폼을 넘어 호텔을 예약하는 것처럼 누구나 손쉽게 공간을 예약할 수 있는 웹사이트로 확장을 시도했다. 여기까지는 다른 업체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체스키와 게비아는 사업 초창기부터 다른 업체들과는 달리, 웹사이트와 사용자경험에 관해서는 자신들만의 철저한 원칙을 지켰다. 우선 24시간 내내 문제없이 잘 돌아가야 했고,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하기 쉬워야 했으며, 숙소 리스트는 무조건 멋지게 보여야 했다. 여기에 창업자들은 자신들의 디자인 영웅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아이팟으로 노래를 들으려면 세 번 이상 클릭해서는 안 된다’는 ‘클릭 세 번의 법칙’에 입각하여 사용자들이 예약을 할 때 가능한 한 세 번의 클릭만으로 완료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사실 투자를 결정하는 미팅에서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기술적 배경이 전혀 없는 디자인스쿨 출신의 청년들이 창업가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약점이라고 여겨졌던 그들의 디자인적 소양은 시간이 흐른 뒤 가장 큰 자산으로써 작용했다. 체스키와 게비아에게 있어 디자인이란 그저 물건이나 웹사이트를 번드르르하게 만드는 작업이 아니었다. 제품에서 인터페이스로, 인터페이스에서 사용자경험으로 ‘행동을 설계하는 방법’이었다. 후에 이러한 접근 방식은 조직 문화를 구축하고 사무 공간을 설계할 때, 그리고 회사의 구조를 짜고 이사회를 운영할 때 등 에어비앤비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웹사이트의 외관이나 전반적인 사용자경험 측면에서만 그런 접근 방식이 적용됐다. 기술 용어로 말하자면, 그것이 바로 그들만의 ‘최적화 방식’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술 기업으로

가장 까다로운 부분은 ‘대금 지불’이었다. 호텔을 예약하는 것만큼 손쉽게 숙소를 예약하려면 무엇보다도 매끄럽고 정교한 온라인 대금 지불 메커니즘이 필요했다. 또한 호텔과 달리, 대금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대금의 97퍼센트를 개별 호스트들에게 송금하는 작업까지 처리해야 했다. 민주당 전당대회를 위해 서비스 론칭을 준비하던 중 블레차르지크는 대금 지불 메커니즘을 구축하기 위해 ‘아마존’을 활용했다. 아마존이 제공하는 새로운 ‘클라우드 대금 지불 서비스’ 덕분에 에어비앤비는 은행 노릇을 하지 않고도 게스트로부터 돈을 받아 호스트에게 송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체스키와 게비아에게 이러한 송금 방식을 소개했을 때 두 사람은 전혀 기뻐하거나 감동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사용자경험이 나빠질 것을 우려했다. 너무 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고, 아마존이라는 브랜드가 과도하게 관여돼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마존 방식을 폐기하고 스스로가 ‘중개인’이 되기로 결정했다. 대금을 받으면 그것을 자신들의 계좌에 넣어뒀다가 고객(호스트)에게 송금하는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발생할 복잡한 문제들은 오롯이 세 사람의 몫이었다. 만약 사기에 연루되거나 출혈 경쟁에 휘말리면 대금 상환과 충당금 적립을 그들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그럼에도 오직 사용자경험을 간단하게 만들기 위해 이러한 접근 방식을 확고하게 추진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시절에는 임시방편으로 페이팔을 이용했지만, 이후 서비스가 성장하면서 결국에는 국제 시장과 환율의 복잡함을 해결하면서도 하루에 수십만 명의 개인들에게 대금을 송금할 수 있는 ‘사용자 간Peer to peer(P2P)대금 지불 시스템’을 구축해냈다. 이후로도 에어비앤비의 대금 지불 시스템은 진화를 거듭했다.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감지하지 못하겠지만, 이 시스템의 혁신적 가치는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대단한 업적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들이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도전 과제는 수많은 숙소 가운데 게스트가 원하는 장소를 선별해서 보여주는, 이른바 ‘매칭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게스트가 원하는 날짜와 장소에 맞춰 숙소를 보여주는 일은 언뜻 보기에 간단하고 쉬운 작업 같다. 하지만 여기에 개개인의 취향과 여행 스타일까지 고려할 대상으로 포함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호스트와 게스트 양쪽을 고도로 개인화하여 매칭해야 하는 무척 복잡한 작업이었지만, 세 창업자들은 에어비앤비가 성공하려면 웹사이트를 그저 좋은 수준이 아닌, ‘다시 이용하고 친구들에게 소문을 낼 만큼 좋은 단계’까지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업 초창기 시절, 에어비앤비의 검색 기능은 아주 단순했다. 특정 지역, 여행객 수, 날짜, 숙소 내 시설 등 몇 가지 기본 조건을 체크하면 그에 해당하는 숙소를 만족도 순으로 보여주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의 알고리즘은 점차 진보했고, 숙소의 품질부터 호스트의 행동 패턴, 예약 선호 사항 등과 같은 고도의 요소까지 모두 감안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에어비앤비는 호스트의 과거 행동 패턴을 통해 그가 미리 예약받기를 선호하는지, 혹은 마감이 임박해도 기꺼이 예약을 받아주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에어비앤비는 게스트와 호스트를 적절히 매칭해주면서 서로 간에 발생할 불만을 억제함은 물론, 게스트가 호스트로부터 거절당할 가능성을 줄여나갔다.

 

에어비앤비는 2010년부터 2011년 사이에 계속해서 서비스를 확장해나갔다. 핀터레스트Pinterest(이미지를 공유, 검색, 스크랩하는 이미지 중심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스타일로 구성된 위시리스트 기능을 추가했고, 유명 인사들이 만들어놓은 위시리스트를 공개적으로 볼 수 있게 했으며, 사용자의 에어비앤비 계정을 페이스북 계정과 연동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거기에 전문 사진 촬영 서비스가 시장 평균보다 2~3배 더 많은 예약을 발생시킨다는 점에 착안해 2011년 말에는 사진 촬영 서비스를 1개월에 1000장에서 5000장으로 확장했다. 그 효과는 즉각 예약 쇄도로 나타났다.

이처럼 에어비앤비가 모든 분야에서 신속하게 규모를 확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회사가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시대에 탄생한 덕분이다. 비싸고 자원이 많이 소요되는 서버, 데이터, 웨어하우스, 데이터센터를 보유하고 구축하는 대신, 에어비앤비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마존 웹 서비스’에 이 모든 온라인 인프라를 구축했다. 복잡한 인프라를 운영하는 데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았기 때문에 에어비앤비의 기술팀은 빈틈없이 사이트를 구축하는 일과 핵심 사업에 연관된 문제 해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만약 에어비앤비가 클라우드 컴퓨팅이 상용화되기 전에 설립됐다면, 급속도로 성장을 거두진 못했을 것이다.

 

처음 세콰이아로부터 58만 5000달러의 투자를 받은 이래로 세 창업자들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성장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에 ‘보조’를 맞춰가는 일이었다.

 

대담함과 당돌함으로 ‘빅 리그’에 진입하다

“에어비앤비에 대해 처음으로 내게 말했던 사람은 그 사업을 매우 형편없는 아이디어라고 설명하더군요. 알고 보니 그는 이런 종류의 사업에 관해서는 얼간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호프만이 세 창업자들에게 매혹됐던 가장 큰 이유는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여준 ‘대담함’과 ‘당돌함’ 때문이었다. 호프만은 이것이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창업가들에게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소양이라고 말한다.

“전통적인 사업은 창업자들에게 다른 강점을 요구합니다. 또 네트워크 회사나 게임 회사라면 담대한 마음가짐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켓플레이스 창업자가 가져야 할 강점들 중 최우선은 독창적으로 사고하고, 기꺼이 논쟁에 발을 담그려는 당돌함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에어비앤비의 창업 스토리에 모두 녹아 있습니다. 에어베드를 임대하기 위해 애쓰고, 결코 죽지 않겠다며 시리얼박스를 만들었던 도전들, 그것이 바로 제가 ‘즉시 투자하겠습니다’라고 말했던 이유입니다.”

 

2011년 6월에 에어비앤비는 투자 회사 안드리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의 주도로 1억 1200만 달러의 추가 투자를 받게 됐음을 공표했다. 몇 달 동안 기술 업계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소식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이 투자 회사는 과거에 에어비앤비를 철저히 무시했지만, 입장을 180도 선회했다. 이 투자에는 DTS 글로벌DTS Global과 제너럴 캐털리스트 파트너스General Catalyst Partners와 같은 주요 투자 회사도 함께 참여했다. 투자자들은 에어비앤비의 가치를 12억 달러로 평가했는데, 이는 최소 10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기업을 지칭하는 단어인 ‘유니콘Unicon’을 에어비앤비에 공식적으로 붙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기술 웹사이트 올씽스디AllThingsD는 이 투자액이 에어비앤비의 초기 투자액 780만 달러에 비하면 ‘믿기 힘들 만큼’ 엄청난 규모라고 언급했다.

 

‘슬리퍼 히트Sleeper Hit(모두의 예상을 깨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

 

모방자의 습격

첫 번째 인터넷 붐이 일어나던 시기에 독일의 세 형제 마크 잠베르Mark Samwer와 알렉산더Alexander, 올리버Oliver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술 스타트업들의 아이디어를 복제해 사업을 시작했다. 베를린에 근거지를 둔 벤처 캐피탈 회사는 이베이, 재포스, 아마존의 아이디어를 한데 뒤섞은 이 복제 회사에 투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2007년에 그들은 또 다른 회사인 ‘로켓 인터넷Rocket Internet’을 설립했는데, 인터넷 스타트업들의 성과를 복제하는 동일한 전략을 구사했다.

그들의 각본은 항상 똑같았다. 먼저 원조 회사가 미국 시장에 집중하면서 해외 확장을 위한 시간과 자금을 확보하는 사이, 유럽에 복제판 웹사이트를 재빨리 론칭하는 식이었다. 그런 다음,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거의 밤을 새면서까지 성장을 시키는 데에만 비용을 물 쓰듯이 투자했고, 이후 그 복제 회사를 원조 회사에 매각했다. 이때 원조 회사는 자기 브랜드의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막대한 프리미엄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에 세 형제는 ‘그루폰Groupon’을 공략해 성공을 거뒀다. 그루폰은 복제 회사를 1억 7000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주고 사들였다. 그들은 2011년이 되자 에어비앤비로 눈을 돌렸다. 에어비앤비를 복제해 ‘빔두Wimdu’라는 회사와 중국 계열사인 ‘아이리쭈Airizu’를 창업했고 9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해냈다. 그들은 몇 개월 안에 400명의 직원을 채용했으며, 12개 이상의 지사를 개설했고, 1만 개가량의 숙소 리스트를 확보했다. 그 무렵 에어비앤비는 유럽에 있는 회원들로부터 빔두의 공격적인 전술에 관한 정보를 듣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전면적인 지상전이었고, 그런 야비한 행동을 알게 된 후에는 회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기꾼’의 행각에 속지 말기를 충고했다.

하지만 당시의 에어비앤비는 빔두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400명의 직원을 거느린 빔두에 비해 그들의 직원은 고작 40명뿐이었다. 즉시 유럽 시장에서의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에어비앤비는 세계 모든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말할 것도 없이 세 형제는 곧장 에어비앤비에게 빔두를 매입하라는 제안을 해왔다.

지금껏 실리콘밸리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지성들을 만나온 체스키는 그루폰의 대표인 앤드류 메이슨Andrew Mason과 페이스북의 CEO인 주커버그, 투자 파트너인 그레이엄과 호프만 등으로 구성된 모임에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세 형제의 공격을 막 경험한 메이슨은 체스키에게 빔두가 에어비앤비를 죽일 만한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주커버그는 최고의 서비스를 가진 자가 승리할 테니 빔두를 매입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그레이엄은 에어비앤비의 세 창업자들이 ‘선교사’인 반면, 빔두의 창업자들은 돈이 목적인 ‘장사꾼’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두 회사의 차이를 깨닫게 했다. 뒤이어 그는 선교사가 승리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로 세 창업자들을 위로했다.

 

세 창업자들은 결과적으로 빔두를 매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그레이엄이 언급했던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무엇보다도 세 사람은 400명이나 되는 빔두의 직원들을 받아들일 용의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장사꾼일뿐더러 에어비앤비가 내세우는 핵심 가치에도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세 형제가 자신들의 회사를 오랫동안 운영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그들 스스로가 설립한 거대 기업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경영하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확신했다(당시에 체스키는 호프만에게 “아기가 생기면 키울 수밖에 없죠. 그 아이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겠지만요”라고 이야기했다).

 

에어비앤비는 즉시 또 다른 독일 기업인 ‘아콜레오Accoleo’를 인수했다. 아콜레오는 에어비앤비를 모방한 회사였지만 빔두와 같은 착취 기업은 아니었다. 이러한 인수과정을 통해 에어비앤비는 국가별 담당자를 채용하고 훈련시켜 그들로 하여금 해당 지역 시장을 개척하고 성장시키도록 하는 국제적 확장을 시도했다. 그 후 3개월 동안 10개의 지사를 새로이 개설하고 수백 명의 현지 직원을 채용했다. 그 사이에 빔두는 끈질기게 운영을 계속하며 총 1000만 일의 예약일을 달성했다.

 

회사를 뒤흔든 최악의 사태

2011년 5월에 영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체스키는 게스트들의 안전과 관련해 아직 한 건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감금 및 살인, 강간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총 숙박일은 160만 일에 이르지만, 아직 아무도 다치지 않았음은 물론 중대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보도도 없습니다.”

사회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지만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다.

“저는 몇 달 동안 운전을 하면서 세 번이나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에어비앤비가 매일 타고 다니는 자동차보다 더 안전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로부터 약 한 달 후인 2011년 6월 29일, ‘EJ’라는 아이디의 여성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심경을 블로그에 올렸다.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로 집을 임대하던 그녀는 6월 초 게스트들이 그녀의 집을 엉망으로 망가뜨렸다며 하소연했다. 단순히 물건을 어지르는 정도가 아니었다. ‘폭력’이라고 할 만큼 집 안을 완전히 박살내버린 상태였다.

 

그녀는 에어비앤비를 향해 자신이 지불한 수수료의 대가로 정확히 무엇을 보장받았는지를 물었다. 크레이그리스트의 경우, 수수료가 없는 대신 사이트를 이용하면서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사용자 본인에게 주어진다고 여러 차례 경고하는 동시에 게스트가 될 사람과 활발히 의사소통하라고 권장한다. 반면 에어비앤비는 게스트가 숙박료를 완전히 지불할 때까지 개인적인 연락처 교환을 철저히 통제했다. 즉, 그녀는 호스트가 낸 3퍼센트의 수수료는 에어비앤비가 그들을 위해 게스트에 관한 조사를 끝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며 추궁했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EJ는 에어비앤비의 긴급 이메일urgent@airbnb로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피드백이 없었고, 에어비앤비의 일을 몇 번 도맡아 했던 친구에게 연락을 한 끝에 다음 날이 돼서야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에어비앤비는 그녀의 상황을 파악한 후 즉각 위로의 뜻을 전하고 적극적으로 사건을 수습해나갔다. 그녀는 블로그를 통해 이런 글을 남겼다.

에어비앤비의 고객 서비스팀은 이번 범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습니다. 그들은 자주 전화를 걸어와 현재 상태를 체크했고, 진정으로 걱정하고 위로했으며, 여러 모로 지원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내가 감정적·금전적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으며, 범죄자들을 추적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의 경찰 당국과 긴밀히 협조했습니다.

그렇게 사건이 잘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한 달 뒤, EJ가 쓴 글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사건이 점차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일로 에어비앤비는 커다란 내상을 입었다. 구성원 가운데 그 누구도 이러한 위기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그 후 몇 주 동안 체스키와 게비아, 블레차르지크를 포함한 모든 임직원은 매일 24시간씩 사건을 수습하는 데에만 매달렸고, 어드바이저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다. 무엇보다도 당시는 대규모 투자가 막 발표됐던 때라 언론의 보도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위기를 타개하는 방법에 있어 관계자들은 모두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어떤 사람은 회사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일이 더 많은 불만을 불러일으키도록 문을 활짝 열어주는 꼴이라 주장했고, 어떤 사람은 회사가 저지른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어떤 사람은 상황이 잠잠해질 때까지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사건이 일어난 지 약 한 달 뒤인 7월 27일, 체스키는 회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공지문을 게시했다.

에어비앤비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EJ를 비롯한 관련 기관들과 긴밀히 만났고, 누군가는 현재 구속된 상태입니다.

더불어 회사가 향후에 도입하려는 몇 가지 안전 개선 대책을 개략적으로 알렸다.

하지만 이 발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말았다. EJ는 체스키의 주장을 모조리 반박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녀는 자신에게 도움을 줬다고 주장하는 고객 서비스팀이 어느 순간부터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글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고(확인된 결과 그는 블레차르지크였다), 회사가 안전을 보장할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에어비앤비의 사용자들을 향해 앞으로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대신 호텔을 예약하는 편이 자신을 돕는 길이라고 말하며 긴 글을 마쳤다.

 

체스키는 훌륭한 어드바이저들에게 조언을 구해봤지만, 여전히 그들의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모두가 회사에 가해질 충격에만 초점을 맞췄고, 상황을 악화시킬 행동이나 발언을 자제하라고 권유했다. 이때 체스키는 어드바이저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객을 배려하지 말아야 한다니 정말로 암울한 기분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저의 우선순위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당장의 매출을 신경 쓰기보다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우선적으로 따라야 함을 깨달았다. 그는 분명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주 큰 목소리로.

8월 2일, 체스키는 다시 한 번 강한 어조로 글을 올렸다.

우리는 이번 일을 크게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이번 주 초에 상황을 설명하기 위하여 공지문을 올렸지만, 저의 진정한 마음과 생각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회사가 이번 사태에 대해 잘못된 방식으로 대처했고, 어떤 순간에도 회사의 가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고 말했다. 또 에어비앤비가 EJ를 실망시켰고, 더욱 세심하고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빠르게 대응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로부터 호스트들을 보호하기 위해 5만 달러를 보상하겠다고 발표했다(몇 달 후 에어비앤비는 보상 금액을 100만 달러로 인상했다). 그는 EJ의 충고에 따라 ‘24시간 고객 핫라인’을 운영하고, 고객지원 인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사실 이 모든 조치는 체스키가 받은 조언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어드바이저들은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최대한 몸을 숨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안드리센만은 달랐다. 그는 한밤중에 체스키에게 이메일을 보내 본래 계획했던 보상 금액인 5000달러에서 ‘0’을 하나 더 붙여 5만 달러로 인상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전했다. 이 경험을 통해 체스키는 ‘여러 사람의 합의로 의사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위기의 순간에 합의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일은 중용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나, 자칫 최악의 의사 결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0’을 하나 더 붙인다는 안드리센의 조언을 통해 사고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 체스키는 이때의 경험을 회사의 ‘부활’이라고 칭했다.

 

EJ 사건은 세 창업자들에게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생존을 넘어 진화의 단계로

사업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애쓰던 초창기 시절, 그들의 유일한 목표는 그저 ‘생존’하는 것이었다.

“‘PMF’는 고사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는 일이 가당치도 않았습니다. 죽어가고 있는데 ‘이 다음에 커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저 ‘어떻게 하면 죽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뿐이죠.”

 

사람들은 체스키에게 자주 창업 시절을 묻곤 하는데, 정작 그는 회사가 창업 단계를 벗어나 2단계에서 5단계까지 나아가는 과정에 더 힘든 역경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진화’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이 과정(2단계에서 5단계로 나아가는)은 ‘인적이 없는 으슥한 길’과 같다. 창업의 시작 단계를 다루는 책은 많지만, 궤도에 막 올랐을 시점부터 세계적인 규모로 키우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소개한 책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현재 에어비앤비는 명실상부한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엔지니어 400여 명, 그보다 더 많은 인력을 보유한 고객 서비스 부문을 포함하면 2500명 이상의 직원들이 에어비앤비와 함께하고 있다. 에어비앤비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들은 회사 ‘안’에 존재한다. 그리고 에어비앤비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이용자’들은 본사를 둘러싼 벽 ‘바깥’에 존재한다. 그들은 수많은 호스트와 게스트로써, 에어비앤비를 일개 기업에서 하나의 거대한 ‘문화’로 승격시킨 장본인들이다.

 

 

 

제3장. 문화를 창조하는 법 - 300만 개의 베개가 꽃피운 ‘에어비앤비’라는 이름의 국가

회사의 네모난 벽 안에서 일어난 일들만 들여다본다면 에어비앤비 스토리의 거의 전부를 놓치고 마는 격이다. 에어비앤비라는 ‘기업’은 2500명 이상의 직원으로 구성돼 있고, 그들 대부분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라는 ‘문화’는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수백만 명의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사실 불미스러운 일도 많이 발생했다. ‘EJ 사건’이 대표적이었고, 앞으로도 그런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에어비앤비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앞으로 펼쳐질 무한한 비즈니스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어비앤비가 찾아낸 ‘니즈의 빈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와이 콤비네이터의 그레이엄이 말했듯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지 못하면 수많은 고객을 창출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의 진화 과정은 총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카우치서핑Couch-surfing(소파를 찾아다닌다는 뜻으로 현지인이 여행자에게 소파를 제공하는 일종의 인터넷 여행자 커뮤니티) 단계’로 업계에서 다소 모호하게 분류되는 서비스였다. 두 번째는 ‘이글루와 성 단계’라고 불리는데, 회사가 이상하고 별난 방식으로 사이트를 알리며 성장이 본격화된 시기다. 세 번째는 ‘기네스 펠트로 단계’로 사용자와 숙소 리스트가 크게 확장된 시기를 뜻한다.

 

세 번째 단계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에어비앤비가 매우 까다롭고 세련된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선택지가 됐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할 만큼 거대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여러 기업들은 자신들의 브랜드로 특이하게 콘셉트를 설정한 숙소를 등록해놓음으로써 에어비앤비를 마케팅 플랫폼으로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2016년 여름에 영화 「도리를 찾아서」를 제작한 픽사Pixar는 주인공 도리와 니모의 자연 서식지와 가장 비슷하도록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호주 북동부 해안에 있는 산호초 지역)에 멋진 뗏목을 만들어놓고 이를 숙소로 등록했다. 이벤트 우승자들이 하룻밤을 묵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상품이 아닌 인간화 그 자체”

에어비앤비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알고 보면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가 숨어 있다. 바로 상업화된 대규모 호텔 체인들에 대한 고객들의 불만을 해소시켰다는 점이다.

 

“20년 전 여행객들은 깨끗하게 정돈된 방과 일관된 서비스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우리 브랜드의 핵심 전략이었죠. 모든 것을 비슷하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제가 카이로에서 눈을 뜬다면 지금 카이로에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습니다. 클리블랜드에 있는 방과 똑같이 생긴 공간에서 눈을 뜨고 싶지는 않거든요.”

 

에어비앤비의 숙소는 제각각 다르고 독특하며, 그럼에도 현실에 엄연히 존재한다. 또 기존의 호텔들이 인간적인 정을 잃어버렸을 때 등장하여 여행을 매우 ‘인간적인 경험’으로 바꿔놓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호프만은 에어비앤비가 주는 경험을 일컬어 “상품이 아닌 인간화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공간 자체뿐만 아니라 에어비앤비가 여행객들에게 선사하는 선택지 역시 무척 파격적이다. 이 회사는 일반적인 호텔과 관광지가 아닌, 보통은 찾아가지 않을 법한 도시의 변두리와 틈새 지역에 묵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이것이야말로 에어비앤비가 내세우는 가장 강력하고 똑똑한 마케팅 ‘미끼’다. 대도시의 호텔들은 주로 상업 지역에 몰려 있다. 반면 가로수가 늘어선 브룩클린의 벽돌집이나, 실제 프라하 사람들이 사는 거주 지역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은 참신한 콘셉트이고 매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과거 크레이그리스트나 지역 게시판을 통해서도 종종 소개가 됐지만, 에어비앤비는 본격적으로 시장을 활짝 열어젖혔다. 언제나 접근이 가능하고, 빠르며, 사용자 편의적인 플랫폼을 만들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 느끼는 여행의 시작

2013년에 에어비앤비는 자신들의 플랫폼을 독특하게 만든 요소들을 분명히 정리하기 위해 미션과 사업의 무게 중심을 재설정하기로 결심했다. 그해 초 커뮤니티 총책임자로 합류한 더글라스 애트킨Douglas Atkin의 주도 하에 세 창업자들은 ‘우리 집처럼Belong’이라는 하나의 개념을 중심으로 회사의 미션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소비자와 브랜드 간의 관계를 연구한 전문가이자 『왜 그들은 할리와 애플에 열광하는가?(원제: The Culting of Brands)』의 저자인 애트킨은 몇 개월 동안 전 세계의 에어비앤비 사용자 500명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끝에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에어비앤비는 “전 세계 사람들을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 느끼도록 한다”는 새로운 미션을 설정했다. 그리고 다홍색을 회사의 새로운 상징적 컬러로 설정하고, ‘벨로Bélo’라는 로고를 만들었다. 벨로는 사람을 나타내는 모양과 위치를 표시하는 핀, 심장 모양과 에어비앤비의 앞 글자 ‘A’에서 착안해 세심하게 구상된 로고다. 즉, 벨로는 사람, 장소, 사랑, 에어비앤비라는 네 가지 가치를 상징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단순하게 디자인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따라 그려볼 수 있도록 했다. ‘벨로’라는 이름은 코카콜라Coca-cola에서 이직한 최고마케팅책임자 조나단 밀덴한Jonathan Mildenhall이 붙였다. 밀덴한은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이라는 개념을 내부적인 미션 선언문에서 회사의 공식적인 구호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먼 옛날, 지금의 여러 도시들은 작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대량생산과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그러한 인간적인 느낌은 ‘대량생산되고 인간미 없는 여행’으로 대체됐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는 여행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를 상징할 것이다. ‘커뮤니티’와 ‘관계’를 상징할 것이고, 기술을 통해 사람들을 ‘연대’시킬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사람들이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 느끼고자 하는 보편적인 갈망을 만족시키는 공간이 될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다른 브랜드와는 다르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개개인이 공통된 가치를 중심으로 모인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다. 우리 커뮤니티에 속한 모든 이들은 ‘소속감’이라는 가치를 추구함과 동시에 각자 다른 방법으로 이 가치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경험한다. 이 때문에 동일한 가치 안에 다양한 스토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웹사이트 회원들에게 “우리가 할 이야기가 있는데 다 같이 와서 들어주면 좋겠어”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체스키와 게비아, 블레차르지크는 37분 동안 고객들과 화상채팅을 하며 그들의 리브랜딩 계획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집처럼’이라는 일종의 소속감을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리브랜딩 과정에 진짜로 소속시킴으로써 일체감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고객들은 에어비앤비의 새로운 콘셉트를 열렬히 환영했다. 반면, 언론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테크크런치는 그들의 새로운 미션을 일컬어 ‘히피적인 콘셉트’라 불렀고, 다른 언론들은 ‘우리 집처럼’이라는 콘셉트가 따뜻한 말이지만 동시에 모호하기도 해서 과연 사람들을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벨로’ 역시 선보이자마자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언론들은 로고의 모양이 가슴이나 엉덩이, 심지어는 생식기로 보인다며 풍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의 리브랜딩 맥락에서 볼 때 ‘우리 집처럼’이라는 콘셉트는 호스트와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들이 구상한 이 말의 의미는 훨씬 더 큰 개념이었다. 호스트와 관계없이 에어비앤비가 없었다면 가보지 못했을 지역으로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 여행자로서 보통은 머물지 않을 법한 지역과 장소에 가본다는 것, 누군가의 공간에서 뒹굴며 잠든다는 것, 오직 나를 위해 준비한 경험을 즐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뉴욕 대학교 교수 아룬 순다라라잔은 에어비앤비의 새로운 미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에어비앤비에서 묵는다면 설령 그곳에서 호스트를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인간다운 정을 느낄 수 있다. 그곳은 친밀한 장소다. 호스트가 모아놓은 예술 작품, 그가 준비한 수건과 시트, 그의 결혼사진을 통해 우리는 호스트와 연결된다. 그리고 그것은 대량생산화된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게스트의 평균 연령은 35세이고, 3분의 1이 40세 이상이다. 호스트의 평균 연령은 43세이지만, 현재는 60세 이상 사람들이 호스트 연령 분포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힙스터 유목민의 탄생

지난 4년간 우리는 휴가를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의 집에서 매일 ‘생활‘했을 뿐입니다.

 

300만 개의 숙소를 통제하는 법

인간 동기 욕구의 5단계 :: 인간의 욕구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생존 욕구부터 시작해 자아실현 욕구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욕구는 얼마나 다양하고 또 욕구 간에는 어떤 순차적인 단계가 있는 것일까? 이런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1943년 인간 욕구에 관한 학설을 제안했다. 이른바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Maslow’s hierarchy of needs)’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다섯 가지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들 다섯 가지 욕구에는 우선순위가 있어서 단계가 구분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가장 기초적인 욕구인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를 맨 먼저 채우려 하며, 이 욕구가 어느 정도 만족되면 안전해지려는 욕구(safety needs)를, 안전 욕구가 어느 정도 만족되면 사랑과 소속 욕구(love&belonging)를, 그리고 더 나아가 존경 욕구(esteem)와 마지막 욕구인 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를 차례대로 만족하려 한다는 것이다. 즉, 사람은 5가지 욕구를 만족하려 하되 우선순위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욕구부터 차례로 만족하려 한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보자. 첫 번째 단계는 생리적 욕구이다. 숨쉬고, 먹고, 자고, 입는 등 우리 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 포함된 단계이다. 사람이 하루 세 끼 밥을 먹는 것, 때마다 화장실에 가는 것, 그리고 종족 번식 본능 등이 이 단계에 해당한다.
두 번째 단계는 안전 욕구이다. 우리는 흔히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탈 때 ‘혹시 이 기구가 고장이 나서 내가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한다. 신체적, 감정적, 경제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욕구이다.
세 번째 단계는 소속과 애정의 욕구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욕구, 어느 한곳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 친구들과 교제하고 싶은 욕구, 가족을 이루고 싶은 욕구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네 번째 단계는 존경 욕구이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명예욕, 권력욕 등이 이 단계에 해당한다. 누군가로부터 높임을 받고 싶고, 주목과 인정을 받으려 하는 욕구이다. 그런데 존경 욕구 중에서 더 높은 욕구는 역량, 통달, 자신감, 독립심, 자유 같은 자존감이다.
다섯 번째 단계는 자아실현 욕구다. 매슬로우는 최고 수준의 욕구로 이것을 강조했다. 모든 단계들이 기본적으로 충족돼야만 이뤄질 수 있는 마지막 단계로 자기 발전을 이루고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극대화할 수 있는 단계라 주장했다.
이러한 인간 욕구 5단계는 경영학에서 두 가지 의미로 널리 사용된다. 하나는 인사 분야에서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의미로 쓰인다. 그 예로는, 승진이나 보너스, 주택 전세금 대출 등 사원들에게 동기부여를 위한 다양한 보상의 방법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사원들이 회사 생활을 좀 더 잘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할 때 주로 사용한다 하여 ‘매슬로우의 동기부여론’이라고도 부른다.
다른 하나는 마케팅 분야에서 소비자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각 단계별로 다른 마케팅 전략을 적용하는 데 사용한다. 예를 들면, 채소를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안전의 욕구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자. 마케팅 전략을 짜는 사람이라면 ‘건강’에 기초한 마케팅 전략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마케팅 담당자가 고객의 욕구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가치를 제공한다면, 고객 만족을 실현할 수 있는 지름길이자 기회인 것이다.
물론 이 이론은 예외가 많아서 그의 제안 모두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비판의 핵심은 각각의 단계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 과학적 검증이 어렵고 실증적인 뒷받침이 없다는 점이다. 알더퍼(Alderfer)는 ERG 이론을 통해 매슬로우의 5단계 이론을 존재 욕구(Existence needs), 관계 욕구(Relatedness needs), 성장 욕구(Growth needs) 이렇게 세 가지로 단순화했다. 더구나 그는 욕구의 우선순위를 부정하면서, 한 시점에 동시에 두 가지 욕구가 일어나기도 한다며 매슬로우의 이론을 반박했다.
예컨대, 존경 욕구나 자아실현 욕구를 만족하기 위해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 욕구를 차례대로 만족하는 대신 이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경우도 있다. 승용차를 구입하는 경우에는 신체적 편의라는 생리적 욕구에서부터 자아실현 욕구에 이르는 거의 모든 욕구가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매슬로우의 이론을 비판 없이 무조건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동기이론의 기초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아직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매슬로우는 죽기 전에 5단계 욕구 피라미드의 한계를 지적하며 그 피라미드가 뒤집어져야 옳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아실현 욕구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경제가 풍족해지고 창의성이 요구되는 현 세상에서는 뒤집힌 피라미드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우리 삶에 있어서도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은 큰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답을 주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자문하게 만든다. 이 이론은 한계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리학, 마케팅, 조직론 등 많은 분야에서 널리 활용하고 있다.
요컨대 마케팅 관리자는 미처 만족되지 않은 고객의 욕구를 끊임없이 추적해서 이를 만족시켜줄 상품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는 무엇일까? -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 (시장의 흐름이 보이는 경제 법칙 101, 2011. 2. 28., 김민주)

 

‘인간 동기 욕구의 5단계’란 인간이 최대의 잠재력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만족시켜야 할 신체적·심리적 욕구 피라미드를 말한다.

 

세 창업자들은 특정 호스트의 숙소를 상단에 노출시켜주는 기능이 매우 가치 있는 장치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호스트에게 강력한 보상 메커니즘으로 작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스트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호스트들은 검색 결과에서 상단에 노출되고, 더 많이 노출됨으로써 예약 건수를 늘릴 수 있다. 반대로 예약 요청을 자주 거절한다든지 너무 늦게 응답하는 호스트들에게는 강력한 벌칙이 적용된다. 검색 결과에서 후순위로 밀려남은 물론 계정이 비활성화되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세 창업자들은 ‘슈퍼 호스트’라는 당근을 적절히 활용했다. 게스트를 10회 이상 유치하고, 90퍼센트 이상의 응답률을 유지하며, 별 다섯 개 만점을 80퍼센트 이상 받고, 예약 취소가 거의 없는 호스트들에게는 ‘슈퍼 호스트’라는 지위를 부여한다. 이 지위를 얻으면 숙소 리스트에 특별한 로고가 달리고, 높은 순위로 뛰어오르며, 전용 고객지원 부서의 도움을 받고, 새로운 제품을 미리 경험하고 각종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현재 슈퍼 호스트는 20만여 명에 달하고, 이러한 에어비앤비의 보상 기반 생태계는 매우 잘 운영되고 있다. 에어비앤비는 슈퍼 호스트라는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을 직접적으로 통제하지 않아도 서비스의 질을 끌어올리는 효과까지 톡톡히 누리고 있다.

 

공유경제 시대, 호랑이 등에 올라탄 신흥 강자들

호스트 커뮤니티의 급속한 성장은 시트 교체, 베개 정돈, 객실 정리, 열쇠 교환, 자산 관리, 미니바 제공, 세무 및 데이터 분석 등 그들에게 부가적인 서비스를 지원하는 관련 산업의 스타트업들을 성장시키는 데에도 활력으로 작용했다.

 

이를 설립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어비앤비의 운영 프로세스 어딘가에서 니즈와 빈틈 혹은 고충을 발견한 실제 에어비앤비 사용자들이었다. 호스트들을 위한 전문 관리 서비스 업체인 ‘게스티Guesty’는 이스라엘의 쌍둥이 형제가 창업한 가장 큰 스타트업 중 하나다. 호스트가 게스티에게 에어비앤비 계정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면, 게스티는 예약 관리, 게스트와의 소통, 예약 캘린더 업데이트, 청소 도우미와 기타 서비스 제공자들과의 일정 조율을 대신해주고 3퍼센트의 수수료를 받는다. 샌프란시스코에 본거지를 둔 ‘필로우Pillow’라는 회사는 숙소를 등록하고, 청소 도우미를 고용하고, 열쇠를 관리하며, 최적의 가격 결정을 위한 알고리즘을 제공한다. ‘아너탭HonorTab’이라는 회사는 에어비앤비 숙소에 미니바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며, ‘에버북트Everbooked’는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 자칭 수익 관리의 괴짜가 설립한 회사다.

 

2013년에 그와 파트너는 동네 카페, 술집, 체육관을 해당 지역의 열쇠 교환소로 지정하는 회사 ‘키카페Keycafe’를 창업했다. 호스트는 한 달에 12.95달러의 금액을 내고 키카페가 갖추어놓은 무인 단말기를 이용할 수 있다(여기에 한 번 픽업할 때마다 1.95달러의 수수료가 더해진다). 여행자들은 키카페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고유 접근 코드를 원격으로 받아 그 코드로 무인 단말기를 열어 열쇠를 받을 수 있다. 호스트는 언제 게스트가 열쇠를 받아가고 반납하는지를 통보받을 수 있어서 좋고, 무인 단말기가 설치된 카페나 술집 등은 유동 인구를 유발시킬 수 있어서 좋았다.

키카페는 에어비앤비가 미처 해내지 못한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할 뿐이지만, 현재는 가장 강력한 ‘결합 나사’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에어비앤비의 기업가치와 규모는 이미 놀라울 만큼 성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벤처라는 세계에서 에어비앤비는 우리 같은 신출내기 창업자들에게 연극 무대인 셈입니다”

 

에어비앤비를 특별하게 만드는 힘, 인간적 유대감

에어비앤비가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이라는 미션을 발표하고 4개월이 지났을 무렵인 2014년 11월, 체스키는 애트킨을 다시 찾았다. 그는 이 미션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앞으로의 100년을 위한 회사의 슬로건이 될 것이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몇 가지 의문이 남아 있었다. 이 미션이 진짜로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 어떻게 그것을 측정할 것이며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이루어질까? 그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규명하기 위해 또 한 번 애트킨을 전 세계로 보내 호스트들을 만나보게 했다. 애트킨은 300여 명의 사용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이라는 말은 그저 한 순간의 느낌이 아니다. 이는 에어비앤비로 여행을 할 때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종의 ‘변화’였다. 회사는 이것을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 느낄 수 있는 변화의 여정’이라는 말로 성문화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으로 풀이할 수 있다.

‘여행객이 자신의 집을 떠나면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를 통해 여행하면 호스트로부터 환대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자신의 집에 있을 때와 같은 안전함을 경험한다. 이로써 그는 더 자유롭고, 더 나아지며, 더 완벽해진 자아가 된 듯한 인상을 받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여행이 완벽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체스키와 애트킨은 이것이 에어비앤비가 본래 존재했던 비즈니스 모델을 한 단계 도약시킨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굳게 믿는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몇 통의 메시지, 잘 개어놓은 수건, 따뜻한 환영 엽서까지 우리가 일상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인간적인 정은 바로 에어비앤비가 ‘공유경제’라는 틀에 속한 여타의 기업들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강점이다. 에어비앤비의 핵심 사업은 호스트의 집을 방문하여 그의 침대에서 잠을 자고 그의 화장실을 이용하는 등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친밀함과 상호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물론 이런 친밀감이 에어비앤비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적인 공유’는 전기 누전을 고치려고 태스크래빗Taskrabbit(단기 아르바이트 중개 서비스)에서 엔지니어를 찾거나, 에어컨이 달린 누군가의 자동차를 스마트폰으로 호출할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다. 즉, ‘친밀감’은 에어비앤비를 우버나 리프트Lyft(미국의 자동차 승차 공유 애플리케이션)와 같은 기타 공유경제 기업들과 구별시키는 핵심 요소다.

 

“우버는 거래 지향적인 기업입니다. 반면, 에어비앤비는 인간 지향적인 기업입니다.”

 

 

 

제4장. 예상치 못한 최악의 위기 - 한 걸음 내딛기 위해 치러야 했던 값비싼 대가와 시련들

이 사건은 회사가 설립된 지 7년이나 지난 2015년이 될 때까지 ‘왜 위급 상황에 대한 정책이 수립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내가 이에 관해 질문을 던졌을 때 체스키는 이렇게 대답했다.

“명백한 우리의 실수입니다. 정책을 마련할 때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회사가 개입하지 않은 채 피해자가 직접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더 낫고, 그래야 사건을 악화시키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럼에도 그동안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 응급 정책을 마련하지 않았으며, 직원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반성했다.

 

“실재적인 삶, 그것이 우리의 제품입니다.”

 

“온라인 마켓플레이스도 결국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커뮤니티는 없습니다”

 

2015년에 4000만 명의 게스트가 에어비앤비를 이용했지만, 1000달러 이상의 피해액을 발생시킨 사건은 그해에 0.002퍼센트에 불과했다. 또 2016년 초까지 총 1억 2300만 개의 예약일이 집계됐을 때에도 회사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전체의 1퍼센트도 안 됐다고 발표했다. 위기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인 닉 샤피로Nick Shapiro는 “소수점 세 자리까지 ‘0’이 되도록 만드는 게 우리의 소망이지만, 0.002퍼센트라는 숫자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통계치입니다”라고 말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디자인하다

EJ 사건을 계기로 핵심 직원들은 며칠 밤낮을 사무실에서 지내며 집중적으로 위기 관리 방안을 수립했다. 그 결과 ‘호스트 개런티’, ‘24시간 핫라인’과 같은 새로운 도구가 개발됐다. 뿐만 아니라 고객 서비스팀과 협력하여 보안과 안전, 응급 상황에 대응을 전담하는 ‘신뢰 및 안전 부서’가 신설됐다.

현재 250여 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이 부서는 포틀랜드, 더블린, 싱가포르에 각각 운영 센터를 두고 있다. 이러한 큰 틀 안에서 ‘커뮤니티 방어팀’은 사전에 의심스러운 행동을 포착하고 잡아내기 위한 예방 작업을 수행한다. ‘커뮤니티 대응팀’은 이미 발생한 문제를 놓고 경찰 당국과 직접 접촉하여 사건을 수습하는 임무를 맡는다. 마지막으로 ‘제품팀’에는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예약 건이 무엇인지를 감지하기 위해 ‘행동 모델’을 구축하는 데이터 과학자들과, 머신러닝을 활용해 리스크가 발생할 예약 건을 미리 분석하는 엔지니어들이 포진돼 있다. 이 외에도 사건 전문 변호사와 피해 보상액을 심사하는 보험 전문가, 대금 결제 사기를 잡아내는 사이버 보안 분야 베테랑 등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2013년에는 사용자의 온라인 ID와 오프라인 신분 간의 일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강화된 인증 프로세스인 ‘인증 ID’ 제도를 도입했다. 호스트이든 게스트이든 원한다면 오직 인증 ID를 소지한 사용자들과 예약을 진행하는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더불어 호스트와 게스트가 예약과 관련해 의사를 교환하는 과정 중에는 전화번호나 주소와 같은 개인 정보가 일절 노출되지 않는다. 호스트가 게스트의 요청을 수락하고 예약이 완료되고 나서야 개인 정보를 볼 수 있는데, 그래야만 양측이 에어비앤비를 통하지 않고 오프라인으로 ‘직거래’할 가능성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선의의 사람들과 불행한 사고들

“저는 두 사고를 개인적으로 가슴 아프게 받아들입니다. 저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생각과, 사람들이 그 속에서 더 나은 삶을 영위하도록 하겠다는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망 사고는 저의 지향점과 완전히 상반된 결과죠.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실행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의 일환으로 2014년에 에어비앤비는 모든 호스트를 대상으로 2차 법적 책임의 발생에 대해 100만 달러를 보상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호스트의 주거래 보험 회사가 보험금 청구를 거절하면, 에어비앤비가 대신 보상을 하겠다는 정책이었다. 1년 후 에어비앤비는 1차 보험 상품을 추가로 만들었다. 20여 개 국가의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은 그들이 가입한 주택 소유자 종합 보험이 상업적 행위를 보장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애초에 그런 보험 자체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신체적 장애나 재산상의 손실에 대한 제3자 배상 청구 시 100만 달러까지 보장되는 보험에 자동적으로 가입된다.

 

만약 쉐라톤 호텔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최소한 게스트들은 누구를 비난할지, 누구에게 불만을 쏟아낼지, 혹은 누구에게 소송을 걸어야 하는지 알지만 에어비앤비의 게스트들은 널리 확산된 홈셰어링이라는 ‘신세계’에서 모든 사후 처리를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그래서 위기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샤피로는 “우리는 사람들을 타인의 집 안으로 들이는 일을 합니다. 누구도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순 없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수행할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집처럼’의 반대말, 인종 차별과 싸우다

2011년에 하버드 경영 대학원의 조교수 마이클 루카Michael Luca는 온라인 마켓플레이스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베이, 아마존, 프라이스라인Priceline과 같은 온라인 마켓플레이스들이 처음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가는 모습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특히 이러한 사이트들이 거래를 벌이는 사람들의 개인 프로필과 사진을 공개함으로써 신뢰를 구축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방법은 신뢰를 형성하고 책임을 명확히 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차별’이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일으킬 수도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루카 연구팀은 그들의 의심을 규명하기 위해 가장 큰 플랫폼이자 가장 많은 사용자에게 사진을 요구하는 에어비앤비에서 현장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숙소의 위치와 특징이 동일함에도 비흑인 호스트들이 흑인 호스트들에 비해 약 12퍼센트나 높은 숙박료를 책정하고 있었으며, 흑인 호스트들이 비흑인 호스트들에 비해 ‘위치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숙박료 책정 시 더 큰 불이익을 받고 있었다.

논문이 발표되자마자 에어비앤비는 루카의 연구가 2년 전에 실시된 것이고, 회사가 사업을 벌이는 3만 5000여 개 도시 중 하나의 도시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며,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주관적이고 부정확하게 해석했다고 일축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루카 연구팀은 2년 후 두 번째 연구 결과를 내놓았는데, 백인 게스트와 흑인 게스트의 예약 수락율이 어느 정도로 차이가 있는지를 측정한 내용이었다. 루카는 20개의 프로필을 만들어 10개는 누가 들어도 흑인이라 느껴지는 이름을 붙이고, 나머지 10개는 백인다운 이름을 붙였다(그 외 프로필의 나머지 요소는 모두 동일하게 구성했다). 루카는 6400개의 메시지를 다섯 개 도시에 거주하는 호스트들에게 발송하여 특정한 날에 숙박이 가능한지를 문의했다. 그 결과 루카의 의심이 옳은 것으로 판명됐다. 흑인 이름의 게스트들은 백인 이름의 게스트들에 비해 예약 수락율이 16퍼센트나 낮았다. 호스트의 인종이나 성별, 숙박료와 대여 공간의 기준에 관계없이 이러한 양상이 동일하게 발견됐다. 루카는 이 논문을 통해 “흑인 이름을 가진 게스트가 얼마만큼 차별을 받고 있는지 생생하게 확인됐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논문이 발표되고 몇 개월 후 NPR(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에서 이 연구와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면서 이러한 사실은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2016년 4월, 시카고의 흑인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쿼티나 크리텐던Quirtina Crittenden은 같은 방송에 출연해 본명을 사용했을 땐 에어비앤비로 예약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이름을 ‘티나’로 바꾸고 프로필 사진을 풍경 사진으로 대체했더니 곧바로 방을 잡을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몇 주 후 워싱턴에 사는 25세의 흑인 청년 그레고리 셀던Gregory Selden은 에어비앤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필라델피아에 사는 호스트가 자신의 숙박 요청을 거부하더니, 백인처럼 보이는 가짜 프로필을 써서 요청한 후에는 예약을 곧장 수락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공민권법(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을 없애기 위해 1950~1960년대에 제정한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 주장하며 에어비앤비가 자신의 불만을 응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시 몇 주가 지난 후, 어느 흑인 여성은 노스캐롤라이나 샤롯데 지역의 방을 예약하고자 했다. 그녀의 요청은 수락됐지만, 호스트는 즉시 취소를 하고 여러 장의 메시지를 보내 그녀에게 경멸적인 말을 쏟아냈다(호스트는 직접적으로 흑인을 혐오하고 비하하는 욕설을 보냈다).

이러한 사건들이 쏟아져 나오자 에어비앤비는 ‘충격을 받았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커뮤니티 멤버들에게 인종 차별적인 언어와 행동은 자신들의 정책과 ‘우리 커뮤니티가 믿는 모든 것’을 위반하는 행위라며 신속하게 대응했다.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회사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전직 법무 장관 에릭 홀더Eric Holder와 시민 자유 연합의 전직 이사인 로라 머피Laura Murphy 등 외부 전문가들을 적극 영입해 90일간 전면적인 진단을 실시했다. 몇 개월 후 회사는 32페이지짜리 보고서를 공개하여 전문가들의 제언을 바탕으로 한 대대적인 변화 방침을 발표했다. 플랫폼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새로운 차별 금지 정책에 따르기로 약속한다는 ‘커뮤니티 준수 사항’에 서명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에어비앤비는 예약 당시 차별받았던 게스트들을 찾기 위해 ‘오픈 도어즈Open Doors’라는 이름의 정책을 실시하기도 했다. 또 차별 철폐를 전담하는 새로운 제품팀을 발족하고, 앞으로는 사진 대신 리뷰를 더 많이 참조해 게스트를 판단할 수 있도록 조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불행히도 우리는 인종 차별이라는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고, 너무 늦게 대응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우리 커뮤니티 멤버들에게 일어난 모든 고통과 불만에 책임을 통감합니다.”

 

호텔은 공민권법을 따라야 하지만, 에어비앤비는 숙소 제공자가 아니라 그저 플랫폼의 운영자이기 때문에 사용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다. 에어비앤비는 개인들에게 각 주의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우고 있지만, 1964년에 제정된 공민권법은 5개 미만의 방을 임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호스트는 연방법 하에서 혐오스러운 개인적 믿음 때문이든 그 어떤 이유이든 간에 합법적으로 누군가를 거부할 수 있다.

 

부수적인 요소가 아닌, 그들이 판매해야 하는 제품 그 자체다. 무엇보다도 이 회사는 ‘우리 집처럼’이라는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브랜드와 미션을 정립해왔다. 그런데 ‘우리 집처럼’이라는 말의 반대 개념이 무엇인가? 바로 ‘차별’이다.

 

“우리의 미션은 사람들을 한데 묶는 것입니다. 차별은 우리 미션의 최대 장애물이죠. 만약 우리가 그 문제를 단순하게 대응하려 한다면, 결코 미션을 달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반대의 물결

지방 정치의 여당과 야당, 그들 배후에 있는 권력을 모두 파악하기까지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그리고 이 기간은 에어비앤비의 역사상 가장 큰 ‘과속 방지 턱’으로 작용했다.

 

대세가 된 아이디어는 결코 죽일 수 없다

뉴욕을 비롯한 샌프란시스코, 베를린, 바르셀로나 등과 같은 대표적인 도시들의 규제 기관과 입법 기관이 에어비앤비의 비즈니스를 완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에어비앤비 쪽에 승산이 있고 궁극적으로 에어비앤비가 운영의 재량을 갖게 될 거라고 입을 모은다. ‘소비자들이 에어비앤비를 원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규제 기관들을 궁극적으로 흔들어댈 수 있는 존재는 에어비앤비도, 호스트들도 아닌 1억 4000여 명의 게스트들이다.

“대중은 이미 그곳에 가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대중이 움직이는 쪽을 따르기 마련이죠.”

 

에어비앤비를 그저 모든 규칙을 깨고 나오려는 ‘철모르는 녀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이 회사는 그보다 더 강력한 네 가지 힘들이 결집된 한복판에 서 있다. 먼저 첫 번째 힘은 경기 불황으로 인해 저렴하게 여행하거나 집을 돈이 되는 무언가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다. 두 번째 힘은 너무 비싸고 상업화된 숙박 업계에 대한 사람들의 피로감이다. 세 번째 힘은 삶의 방식으로 더 특이하고, 더 다양하고, 더 본질적이며, 더 진정한 여행 방식을 만들고자 한 의지의 파도다. 네 번째 힘은 특히 중산층을 중심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개별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경제 수단을 찾으려는 현상이다.

 

“시의 리더들에게 말해주세요. 나는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며, 결국에는 우리가 이길 거라고요. 그리고 내가 그들보다 훨씬 더 젊다고 전해주세요.”

 

“성공하면 거의 항상 합법성 문제가 떠오릅니다”라고 말했다(물론 인기를 누리는 기술이라고 해서 모두 합법성 문제를 이겨내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 간 음악 공유 서비스였던 냅스터Napster는 저작권 위반 논란으로 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후 음악 스트리밍은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업계는 음악 스트리밍에 과금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말을 종종 재해석해 표현하곤 한다.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환경에 적응시킨다. 비이성적인 사람은 환경을 자신에게 적응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진보는 비이성적인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정말 멋져. 어서 빨리 나도 이용하고 싶어’이거나 ‘절대로 우리 동네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이거나 둘 중 하나였죠. 사람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으면 극명하게 상반된 반응을 보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는 적어도 체스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해 좀 더 다른 계획을 세우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적’을 발견한 그는 회사를 다음 단계로 도약시키기 위해 단순한 숙박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체험’을 강화하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펼쳐 보였다. 그는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과 모든 여행객들의 불만을 염두에 두면서 그 ‘체험’을 설계하기 위해 애썼다.

 

“거대 산업의 룰을 파괴하고 그 속에서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면 언제나 다양한 이익 단체들이 압력을 가해올 겁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일은 투표권을 가진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데, 보통은 소비자들이 이깁니다”

 

체스키가 즐겨 인용하는 문구 중 또 하나는 빅터 휴고Victor Hugo의 말이다.

“대세가 된 아이디어는 결코 죽일 수 없다!”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은 ‘사람들이 에어비앤비를 좋아하는가? 수백만 그리고 다시 수천만의 사람들이 에어비앤비를 원하는가?’입니다. 그리고 답은 ‘그렇다’입니다. 그러므로 그 밖의 모든 것은 해결이 가능한 문제입니다. 똑똑한 사람들, 시간, 그리고 돈을 투자하여 충분히 해결할 수 있죠.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냈다면 어떤 어려움도 분명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제5장. 파괴와 혁신의 역사 - 어떻게 새로운 아이디어는 한순간에 시장을 파괴하는가?

1951년, 미국 멤피스에 사는 사업가 케몬스 윌슨Kemmons Wilson은 휴가를 가야 한다고 조르는 아내 때문에 하던 일에서 잠시 손을 뗐다. 그는 다섯 명의 아이들과 아내를 차에 태우고 전국의 명소를 구경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장거리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에 그들은 길가에 있는 수준 이하의 모텔에서 숙박을 해결했는데, 방이 비좁고 침대도 불편한 데다가 아이 한 명당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윌슨은 모텔보다 더 나은 대안을 찾고 싶었다. 워싱턴에 도착했을 무렵, 그는 전국에 걸쳐 400개의 모텔을 짓겠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깨끗하고 숙박료를 저렴하게 책정하되 모든 모텔을 고속도로 출구 쪽에 짓고, 각 모텔 간의 거리는 자동차로 하루면 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심산이었다. 이 아이디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숙박 서비스를 ‘예측 가능’하도록 만든다는 것이었다.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표준화함으로써 게스트들이 어디에서 묵든 똑같은 특징과 만족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윌슨의 포부였다. 그는 여행 중에 묵었던 모든 모텔 방의 수치를 꼼꼼히 측정한 결과 이상적인 방의 크기를 알아냈고, 멤피스로 돌아온 후 설계사를 고용해 도면을 의뢰했다. 그 당시에 그는 우연히 「홀리데이 인」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재미 삼아 도면 상단에 영화 제목을 써넣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52년, 윌슨은 멤피스 외곽에 위치한 고속도로 옆에 첫 번째 ‘홀리데이 인’을 지었고, 다음 해에는 지점을 세 군데나 더 늘렸다.

‘홀리데이 인’은 누구나 예측이 가능했고, 가족 친화적이었으며(아이들에 대한 추가 요금이 없었다), 자동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당시로서 이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였다. 윌슨의 아이디어는 여러 곳으로 확산됐고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1972년에 홀리데이 인은 전 세계에 1400여 개의 지점을 열었고, 그는 ‘세계의 여관 주인’이라는 타이틀로 《타임Time》의 표지를 장식했다.

물론 이러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은 윌슨뿐만이 아니었다. 콘래드 힐튼Conrad Hilton이라는 이름의 텍사스 출신 젊은이는 ‘오일 붐’이 일었던 1920년대에 호텔을 마구 사들이기 시작했다. 1957년에 메리어트는 버지니아 주 알링턴에 ‘트윈 브릿지 모터 호텔Twin Bridges Motor Hotel’을 열었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거대한 시장으로 자리 잡은 ‘고속도로 옆 호텔 체인’의 시대를 열었다. 숙박 서비스 산업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파괴적인 아이디어’였다. 이전의 숙박 시설은 대개 여관이나 작고 개별적인 모텔, 혹은 도시의 비싼 호텔과 화려한 별장으로 제한돼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혁신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수백만 명의 군인이 제대해 가정을 꾸렸고, 전쟁 후의 경제적 활황은 빠르게 증가하던 신흥 중산층에게 풍요로움을 선사했으며, 수백만의 가구가 자가용을 보유하게 됨으로써 이동의 자유를 만끽했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Dwight Eisenhower의 ‘연방 고속도로 법’ 제정으로 인해 고속도로의 건설이 활발히 진행됐다. 여행은 부자들의 전유물이었으나, 점차 모든 이들의 여가 문화로 자리 잡았다.

윌슨과 메리어트, 힐튼과 같은 사람들은 숙박 서비스 산업의 첫 번째 ‘룰Rule 파괴자’들이었다. 그들은 ‘여행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선명한 비전을 가지고 산업을 흔들어댐으로써 거대한 부를 축적했고, 오늘날의 현대적 호텔 기업이 탄생하는 초석을 다졌다.

 

“우리가 이긴다고 하여 호텔이 패배할 필요는 없습니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게스트들의 숙박일은 기존 호텔의 이용자들보다도 훨씬 더 긴 편이다. 숙소의 약 4분의 3은 거대 호텔들이 밀집한 곳의 바깥쪽에 위치하고, 도리어 숙박 시장으로 많은 여행객을 끌어들였다. 기술 산업계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에어비앤비는 ‘다른 사용 사례’다. 여기에 덧붙여 체스키는 어번 랜드 인스티튜트의 추계회의에서 “에어비앤비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호텔 산업은 2015년에 기록적인 객실 이용률을 달성했습니다”라고 말했다(2015년에 호텔 산업은 업계의 핵심 지표인 ‘가용 객실당 매출액’의 최고치를 달성하는 호황을 누렸다). 블레차르지크 역시 《글로브 앤드 메일Globe and Mail》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호텔도 에어비앤비 때문에 사업이 망할 일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초이스 호텔스Choice Hotels의 CEO 스티브 조이스Steve Joyce는 “저는 에어비앤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지나쳐버린 기회를 발견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16년을 기점으로 호텔 업계의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했고, 객실 이용률은 정체되거나 하락했다. 2017년에는 수요와 객실 이용률, 평균 일일 숙박료, 가용 객실당 매출액 모두 성장을 멈출 것이라고 전망된다. 신용 평가 기관 무디스Moody’s는 2016년 9월에 내놓은 보고서에서 “에어비앤비가 시장의 수요를 빨아들이는 것이 호텔 산업의 성장이 정체되는 요인 중 하나다”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2016년에 세계적인 부동산 회사 CBRE는 ‘공유경제에 관한 조사’라는 이름의 보고서에서 “에어비앤비는 전통적인 숙박 서비스 산업을 침해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결론 지었다.

 

‘룰 파괴자’가 시장을 먹어치우는 법

고점일 때 숙박료를 높게 책정할 수 있는 능력, 즉 ‘압박 가격 결정Compression pricing’이다. 그러한 날은 1년 중 10~15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이는 매출의 주요한 원천이 된다. 그렇다면 에어비앤비는 어떨까? 호텔과 달리 에어비앤비는 대형 이벤트가 개최돼도 숙소의 공급이 즉각적으로 늘어나 수요를 맞출 수 있다. 과거에 여행객들은 비싸진 호텔 숙박료를 울며 겨자 먹기로 내거나 적정한 가격의 방을 찾기 위해 교외 지역까지 멀리 나가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에어비앤비로 발길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에어비앤비의 특수성 때문에 많은 호텔 경영자는 ‘겁’을 먹고 있다.

 

에어비앤비는 2015년에 ‘비즈니스 트레블 레디Business Travel Ready’라는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집 전체를 대여하는 숙소 중에 리뷰와 응답 비율을 만족하고, 24시간 체크인이 가능하며, 와이파이 및 노트북 사용이 편리한 작업 공간, 옷걸이, 다리미, 헤어드라이어, 샴푸를 제대로 갖춘 숙소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프로그램이다. 호스트들을 이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특별한 로고를 부여하고, 고액 연봉자와 출장을 자주 가는 비즈니스맨에게 로고가 부착된 숙소를 잘 보이게끔 했다. 출장 여행객들은 주로 비성수기에 방문하기 때문에 호스트의 입장에서도 매력적인 옵션이었다. 현재 에어비앤비의 출장 프로그램 사이트에는 “장기 출장, 워크숍, 단체 출장 등 모든 종류의 출장에 적합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2016년 봄, 에어비앤비는 1만 5000여 개의 기업이 에어비앤비의 숙소를 이용했다고 발표했다. 이용 기업들 대부분은 직원들이 비정기적으로 출장을 가는 중소 업체들이었지만,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구글과 같은 거물급 기업들도 여럿 있었다. 몇 개월 후에 에어비앤비는 규모가 큰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여행사 몇 군데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는 곧 ‘출장 여행 업계’가 에어비앤비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트너십을 맺은 회사 중 한 곳인 ‘칼슨 웨건리트 트레블Carlson Wagonlit Travel’은 10명의 출장자 중 1명이 에어비앤비를 이용했고, 밀레니얼 세대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 비율이 21퍼센트까지 올라갔다고 밝혔다. 파트너십 성사가 발표되던 날, 웹사이트 ‘쿼츠Quartz’는 “호텔들이 진정으로 에어비앤비를 우려해야 할 때다”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올렸다.

 

호텔 산업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 에어비앤비 사용자들이 에어비앤비를 좋아하는가?’이다.

 

건방진 놈들의 도전

1950년대에 생겨난 ‘거대 호텔 체인’이라는 아이디어는 충분히 파괴적이었다. 그러나 그때 이후로도 호텔 산업은 수많은 ‘건방진 놈’의 도전을 겪어야 했다. 1960년대에 유럽의 몇몇 사업가들은 레저 여행과 부동산 소유에 대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등장했다. 자산의 일부를 사용할 권리를 소유함으로써, 대여하지 말고 자기 소유의 부동산에서 휴가를 즐기라는 개념이었다(회원권을 가진 사람들이 일정 한도 내에서 콘도를 이용하는 산업을 의미). 이 새로운 숙박 서비스 형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곧바로 미국으로 확산됐으며, 현재의 ‘공동 소유 산업’이 탄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84년에는 ‘스튜디오 54Studio 54(뉴욕의 나이트클럽)’의 대표 이언 쉬라거Ian Schrager가 뉴욕 메디슨 가의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모건스 호텔Morgans Hotel’을 선보임으로써 새로운 호텔 콘셉트를 제시했다. 디자인과 사교 공간에 집중한 이 호텔은 멋을 아는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전통적인 호텔 체인들은 이러한 부티크 호텔의 등장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신세대 여행객들은 그들의 멋진 디자인과 사교적인 매력에 푹 빠졌고, 결국에는 부티크 호텔의 매출이 호텔 체인들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호텔 산업에는 또 하나의 커다란 위협이 불어 닥쳤다. 트래블로시티Travelocity, 익스피디아Expedia, 프라이스라인Priceline, 오비츠Orbitz와 같은 온라인 여행사들의 등장이었다. 이는 여행객이 한 사이트에만 접속하면 여러 호텔들을 비교 검색하여 최저가 호텔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였다. 몇 년 동안 온라인 여행사들은 호텔 체인의 사업에서 매우 작은 비중을 차지할 뿐이었다. 호텔 업계가 이들을 통한 예약에 비싼 수수료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9·11 테러의 발발로 여행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온라인 여행 사이트가 빈 객실을 채울 수 있는 용이한 수단으로 떠올랐고, 호텔들은 이들에게 좀 더 많은 예약 가능분을 용인해주었다. 한번 이렇게 형성된 관계를 되돌리기란 어려웠고, 시간이 흐르면서 온라인 여행사들은 더 좋은 조건을 요구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게 됐다. 현재 프라이스라인은 시장 가치 측면에서 볼 때 메리어트와 힐튼, 하얏트Hyatt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크다.

그러나 온라인 여행사들이 아무리 파괴적이었다고 한들 경쟁력 있는 새로운 숙소를 제공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수많은 호텔 체인 업체는 온라인 여행사로부터의 위협을 가까스로 견뎌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는 달랐다. 아마존이 월마트Wal-mart를 파괴한 것처럼, 에어비앤비로 대표되는 ‘사용자 간 숙소 공유’는 사실상 호텔 업계가 최초로 직면한 ‘대안적 숙박 모델’이었다.

 

역공에 나서다

호텔 업체들은 이미 새롭고 거대한 고객 기반이 된 밀레니얼 세대를 포섭하기 위해 자신들의 사업을 재조정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의 습관과 취향이 이전 세대와는 현저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 몇 년 동안 거의 모든 호텔 체인들은 젊은 세대에게 초점을 맞춘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내느라 애썼다.

 

호텔 업체들은 에어비앤비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바로 그 ‘소비자 이동’에 편승하고 있으며, 표준화된 서비스가 아닌 자신들만의 독특한 콘셉트를 내세워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빈틈을 노린 라스트무버의 등장

모두 거대한 성장을 이뤄가고 있는 ‘대안 숙박’ 산업 내에서 발 빠르게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숙박 서비스 산업 내의 상당수 기업들은 그 주류에 합류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을 따로따로 구분하는 방법은 아주 많지만, 흥미롭게도 많은 웹사이트의 디자인과 문구, 그리고 리뷰 시스템 모두가 에어비앤비와 묘하게 닮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럼에도 이들 모두는 우리네 아버지 세대가 즐겨 이용한 호텔 방에는 없는 색다른 느낌을 선사함에는 틀림이 없다.

 

밀레니얼 세대, 산업의 지형을 바꾸다

모 호텔 업체의 고위 임원이었던 사람은 처음에 에어비앤비와 같은 기업들의 위협을 무시했는데,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저는 40대로서 저만의 개인적인 취향에 젖어 있었습니다. ‘침대 시트는 어쩌지? 매트리스는? 어떻게 열쇠를 받지?’ 이렇게 저는 나이 든 사람처럼 모든 걸 두려워했습니다.”

반면 젊은 세대는 그가 가졌던 두려움과 편견 없이 자랐고, 에어비앤비가 있는 세상에 더 익숙하다. 그들은 ‘디지털 원주민(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한 세대)’이면서 동시에 ‘에어비앤비 원주민’이다.

 

적과의 동침인가, 파트너십의 시작인가?

“성공은 절대 실수 없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해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라는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인용했다.

 

체스키는 2013년에 나눈 한 대담에서 사람들이 호텔에 묵는 세 가지 이유를 펼쳐 보였다. 마찰 없이 원활하게 예약이 가능한 점, 예측이 가능한 시설 상태, 훌륭한 서비스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세 가지 이유에 에어비앤비가 하나씩 대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에어비앤비는 점점 더 원활한 예약 경험을 고객에게 선사할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일관된 ‘숙박 제품’을 제공할 것이며, 모든 서비스를 누구나 제공할 수 있도록 진화할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당신을 무시하다가 당신을 비웃고 그다음에는 당신에게 싸움을 걸어온다. 그러면 당신은 승리할 것이다.”

 

 

 

제6장. 리더로 성장하는 길 - 실리콘밸리의 정석을 깨고 ‘새로운 경영의 교과서’를 쓰다

“저는 짧게나마 브라이언 체스키를 소개하고 싶군요.”

2016년 3월, 오바마는 쿠바의 아바나에 마련된 연단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자리는 미국과 쿠바 사이의 통상 관계 재개를 축하하는 행사였다. 그는 쿠바와의 외교 관계가 회복된 이후에 쿠바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는 미국의 기업가 몇몇을 대표단으로 데리고 갔다. 그중에는 체스키와 함께 실리콘밸리의 떠오르는 스타트업 ‘스트라이프’와 ‘키바Kiva’의 CEO들이 포함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체스키는 오바마가 ‘자랑’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스타트업의 성장 단계에 있어 이른바 ‘폭발적’이라고 할 만한 성장은 대개 1~2년 혹은 길어야 3년 정도 지속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는 2009년부터 줄곧 급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사업 초기에는 무언가를 배우고 쌓아간다는 느낌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과제를 풀어나가는 기분이었으니까요.

 

“포드자동차Ford Motor Company의 사장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가 말했듯이, 전장 한복판에 선 병사나 스타트업을 경영하고 있는 기업가에게 학습할 시간 따위는 없습니다.”

 

에어비앤비의 시스템은 일반적인 주문형On-demand 애플리케이션이나 소셜 네트워크보다도 훨씬 더 복잡한 기술적 구조를 필요로 했다. 에어비앤비의 사업은 상당히 단순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구축돼 있지만, 사용자 친화적인 웹사이트의 이면에는 엄청나게 복잡한 운영 체제가 감춰져 있다.

 

진짜 답은 오직 최고만이 알고 있다

단순히 조언만 구하고 마는 일반적인 초짜 CEO들과는 달리, 체스키의 질문은 강박적이고 체계적이었으며 지겹도록 계속됐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문제 해결 방법을 일컬어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정 주제에 대해 열 명의 사람에게 의견을 묻고 그것을 평균하거나 종합하는 대신, 누가 가장 최적의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지부터 찾은 뒤 오직 그 사람에게만 다가가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세계적인 거부와의 만남을 통해 체스키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세상의 이런저런 말과 소문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의 방에는 주식 시세 표시기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었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독서를 합니다. 또 하루에 한 번은 미팅을 하고 종종 묵상을 즐깁니다. 그의 일과를 보며 누군가의 조언이나 비난에 휘둘리고 끌려다니기보다는 자기만의 주관과 생각을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꿈꾸는 리더

체스키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앞을 내다보는 능력’의 소유자라고 입을 모은다. 

“브라이언의 머릿속을 카메라로 찍어보면 이미 2030년, 아니 2040년에 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체스키에게 있어 에어비앤비는 일이라기보다 하나의 ‘소명’에 가깝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호스트가 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친절하고 배려 넘치는 곳이 될 거라고 굳게 믿는다. 나는 체스키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실질적인 사업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2020년을 위한 목표를 말하자면 ‘많은 사람이 완전히 탈바꿈된 방식으로,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 느끼며 여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그는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이라는 미션을 현실화하는 일보다 우선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단언했다. 미션은 주주보다 먼저고, 기업가치보다도 우선한다. 이익보다도, 상품보다도, 그 모든 것보다도 우위에 있다. 그는 언젠가 자신이 사망한 이후에 에어비앤비의 가치가 정점에 이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아마도 내가 어린 시절에 낯선 사람이라고 꼬리표를 붙였던 사람들은 발견해주기를 기다렸던 진짜 친구였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대화를 나누던 도중 체스키에게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너무 이상적이네요”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톰 프리드먼Tom Friedman의 말이 떠오르네요”라고 대답하며 그의 말을 인용했다. 

“비관론자들은 대개 옳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자는 낙관론자들이다.”

 

“오늘 제가 들어야 할 나쁜 소식이 있나요?”

‘제품이 덜 완벽하더라도 회사 문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배웠다. 그리고 빠른 의사 결정은 때때로 완전하게 파악한 후에 내리는 늦은 결정보다 낫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직원들은 그를 위해 새로운 주문까지 만들어냈다. 

“80퍼센트면 족하다!” 

게비아는 “당시에는 그 말이 저를 너무나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자신이 습득한 이론 한 가지를 소개했다. 소위 ‘코끼리, 죽은 물고기, 배설’이라고 불리는 그 이론은 상사와 부하 직원 간에 어려운 대화를 꺼낼 수 있도록 설계된 커뮤니케이션 도구였다. 먼저 ‘코끼리’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쉽게 말하지 못하는 커다란 진실이다. 그다음으로 ‘죽은 물고기’는 보통 사과의 말로 풀어줘야 할 개인적인 불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만일 해소시켜주지 못한다면 그로 인한 위험이 점점 더 심각해진다. 마지막으로 ‘배설’은 사람들이 아무런 간섭이나 편견 없이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마련된 시간을 뜻한다. 그는 피드백에서 알게 된 자신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직원들 앞에서 세세하게 밝혔다. 마지막 문장을 말한 후 그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아주 두려운 시간이었습니다.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었죠.” 

게비아의 솔직한 고백은 회사 전체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각 부문의 관리자들은 ‘코끼리’와 ‘죽은 물고기’에 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별도의 시간을 마련했고, 이 용어는 아직까지도 회사 내부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마르지 않는 아이디어 샘, 사마라의 탄생

에어비앤비는 자신들이 숙박에만 관여하고 있어서 여행의 모든 장면 중 단지 ‘일부’에만 지나지 않는다는 커다란 사실을 깨달았다. 숙박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채우기 위해 세 사람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꼈다.

 

가장 완벽한 창업가팀의 조건

“저는 아주 분석적인 사람입니다. 만약 제가 가진 스킬 중 한 가지만 꼽으라면, 복잡한 문제를 가져와 하나의 아이디어로 압축시키는 일입니다.”

 

2014년 여름, 블레차르지크는 회사가 여러 가지 전략과 목표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다는 점을 깨닫고는 ‘활동 지도Activity map’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그러고는 회사 전체에서 실시되고 있는 모든 프로젝트를 활동 지도에 표시하도록 했다. 그는 모두 110개의 프로젝트를 찾아냈는데, 극도로 지엽적인 동시에 서로 다른 임원들이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즉시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심도 있게 분석했고, 에어비앤비의 제한적인 공급(호스트)과 급성장하는 수요(게스트) 간의 지독한 불균형을 발견해냈다. 

그는 공급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110개의 이질적인 프로젝트들 상당수는 호스트와 관련돼 있었다. 그래서 2015년 초부터는 ‘숙소 및 호스팅 전략과 운영’을 관장하는 훨씬 더 넓은 역할을 맡게 됐다. 그러면서 회사 전체에 분산돼 있던 이질적인 호스팅 관련 프로젝트 팀들을 한데 묶고, 좀 더 광범위하게 전략을 구상하기에 나섰다.

 

MBTI 검사와 주변 사람들의 증언으로 비춰볼 때 세 사람의 성향은 정말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게비아는 “회사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세요. 그러면 우리 셋이 엄청나게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겁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커티스 역시 “그들 셋을 스펙트럼 위에 그려본다면 서로 다른 위치에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그들이 서로 논쟁을 벌이나요?”라고 묻자 커티스는 “당연하죠!”라고 대답했다). 몇 년 전 세 사람은 또 다른 유형의 성격 검사를 받았다. 하나의 원 안에 각자에게 해당되는 점을 표시하는 방식이었다. 검사 진행자가 각자의 결과를 원 안에 표시하자 완벽하리만큼 서로 균형을 이루는 모습이 나타났다. 

“검사 진행자들은 ‘이런 결과를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완벽한 이등변 삼각형을 이루었으니까요” 

게비아는 이러한 세 사람의 차이가 에어비앤비를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우리 중 두 사람만 있었으면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겠죠. 그러나 브라이언과 네이트, 그리고 저의 조합이 있었기 때문에 지난 몇 년 간 우리에게 다가온 모든 도전을 인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세 사람은 비틀즈Beatles와 비슷합니다. 네 명의 비틀즈 멤버들은 각자 자기 앨범을 만들 수 있지만, 만일 그랬다고 하더라도 네 명이 함께한 것만큼은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구글보다 더 일하고 싶은 회사

많은 회사가 일정 규모에 다다르면 창업 당시에 계획했던 문화를 망쳐버리고 만다며 각별히 신경 쓸 것을 당부했다.

 

“문화를 망치는 것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계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회사를 죽이는 것은 규제 기관이나 경쟁자가 아니라 ‘무언가에 미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콤부차(홍차버섯을 배양해 찻물에 넣고 발효시켜 만드는 음료)

 

콤부차 :: 녹차나 홍차를 우린 물에 설탕을 넣고 '스코비(SCOBY·symbiotic colony of bacteria & yeast)' 유익균을 첨가한 뒤 발효해 만드는 음료다. 발효할 때 생기는 효모균종과 미생물로 이뤄진 배양체의 모습이 버섯과 닮아 '홍차 버섯'으로도 불린다.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식초 맛과 향이 나며, 발효 과정에서 탄산이 생성돼 마실 때 청량감이 든다. 정확한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고대 만주 일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불로장생을 좇던 진시황이 매일 마셨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음료이기도 하다. 
콤부차는 발효 과정에서 프로바이오틱스를 생성해 면역력 증강과 위장 건강에 도움이 된다. 유기산, 초산, 유산균 등이 들어 있어 소화 증진에도 효과가 있다. 또 콤부차에 들어 있는 글루쿠론산이 체내 독소를 해독하고 배출하는 효과가 있으며, 간 독소를 감소시켜 간 건강을 증진시켜 준다. 아울러 폴리페놀, 비타민 등 항산화 성분들이 들어 있어 활성산소를 배출해 주는 효과가 있다. 콤부차는 1일 권장량이 정해져 있지는 않으나 산성이 강해 하루 3잔 이내로 마시는 것이 좋으며, 발효 과정에서 소량의 알코올이 생성되기 때문에 어린이나 임신부는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콤부차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에어비앤비의 직원들은 그들 스스로를 ‘에어패밀리Airfamily’ 혹은 ‘에어팸Airfam’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단단한 결속력을 자랑한다.

 

재무팀에서부터 프로젝트 관리팀까지 모든 부서의 직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회사의 미션인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이라는 말을 떠들고 다닌다.

 

2016년에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정보 사이트 글래스도어Glassdoor는 직원들의 평판을 근거로 한 ‘최고의 직장Employee’s Choice Awards’을 선정했는데 이때 에어비앤비는 구글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물리치고 1위에 랭크됐다.

 

조직이 커질 때 발생하는 문제들

회사의 규모가 작을 땐 모두가 핵심 가치를 잘 익히고 지켰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핵심 가치들이 너무 많고 어떤 것들은 서로 충돌했으며 장난스럽고 아리송하게 느껴졌다. 설상가상으로 몇몇 직원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이 원칙을 악용하기도 했다.

 

몇 개월간의 작업을 거쳐 세 창업자들은 핵심 가치를 세 가지로 줄이는 데에 합의했다. 이 책을 쓰는 지금까지 정리 작업이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지만, 대략 ‘호스트처럼 행동하자’, ‘그 사람만의 색다른 여정을 만들어주자’, ‘모든 것보다도 미션을 우선하자’ 등으로 요약되고 있다.

 

혁신을 멈추는 순간, 기업의 진화도 멈춘다

“저는 기업이 오래 지속되려면 반드시 규모와 함께 다루는 제품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현재 기술 기업에 몸담고 있다면, 기존의 혁신만으로 수년간 먹고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에어비앤비가 이제 막 판매를 시작한 새로운 제품은 ‘여행’ 그 자체다.

 

 

 

제7장. 에어비앤비가 꿈꾸는 미래 - 숙박을 넘어 여행 플랫폼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 비즈니스 모델의 진화

체스키는 홈셰어링이 기존의 숙박 서비스를 창조적으로 파괴했듯이, 그들의 새로운 제품이 기존의 관광 산업을 완전히 뒤집어놓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구상한 프로젝트가 독창적인 발견이라고 생각되면 ‘~다음의 것The thing after’이라는 문구를 사용한다. 새로운 가이드북을 ‘여러 가이드북 다음의 것The thing after guidebooks’, 공유경제를 ‘대량생산 다음의 것The thing after mass production’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이제 그는 에어비앤비를 ‘여행 다음의 것The thing after travel’이라고 굳게 믿는다.

“저는 새로운 제품을 론칭함으로써 우리가 여행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개념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여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겠지만, 이제부터의 여행은 아주 다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여행은 여행지를 잘 모르는 외부인들에게 관광명소를 소개해주는 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여행은 실제 그곳에 사는 사람처럼 ‘내부인이 되어’ 커뮤니티에 푹 빠져보는 체험이 될 것입니다.” 

체스키는 이 프로젝트가 곧 ‘트립스Trips’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플랫폼상에서 제공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가 간단하게 ‘에어비앤비’라는 말로 통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가까운 미래에 ‘숙박’ 영역은 회사 매출의 절반 이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체스키는 구글, 애플, 아마존과 같이 시장을 지배하는 거대 기술 기업들을 연구한 끝에 두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먼저 기술 기업의 생존은 ‘기꺼이 새로운 카테고리로 들어가려는 자발성에 달려 있다’는 점과, ‘CEO가 기존 사업보다 새로운 모험을 우선시하고 그 프로젝트를 직접 챙기려는 의지가 강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체스키는 2년 동안 자신의 업무 시간 중 절반 가까이를 새로운 프로젝트에만 열중했다.

 

체스키는 테슬라Tesla의 CEO인 엘론 머스크Elon Musk로부터도 핵심적인 몇 가지 조언을 들었다. 머스크는 회사가 일정 규모로 성장했을 때 필연적으로 찾아올 ‘관리의 시대’를 주의하라고 충고했다. ‘관리의 시대’란 ‘창조의 시대’와 ‘구축의 시대’가 끝난 후 사업 성장률이 10~20퍼센트로 안정 궤도에 돌입했을 때를 일컫는 말로, 평소에 머스크가 즐겨 쓰는 표현이다. 그의 조언에 따라 체스키는 “에어비앤비는 절대 관리의 시대로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에어비앤비를 향한 화살, 기업공개

“결국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의 비전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로부터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회사를 세우는 일은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우리는 아주 투명하며, 오래도록 끄떡없는 회사를 세울 것입니다.”

 

그는 웹사이트를 최적화하는 대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재설계하는 데에만 2016년을 모조리 투자했다.

 

벤처 캐피탈리스트들과 주식시장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 ‘동물’이다. 주식시장은 높은 성장률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들의 10년 후 비전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또 벤처 캐피탈리스트들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규제 리스크나 경쟁자들과의 관계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직 에어비앤비에게 ‘포화’라는 말은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회사는 일주일마다 140만 명의 게스트와 4만 5000개의 숙소를 추가로 확보하고 있다. 2016년 말에 1억 4000만 개를 기록한 게스트 어라이벌 수치는 2017년 2월에 1억 6000만 개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이 수치도 곧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에어비앤비가 재무제표를 공개하지 않아 확실하진 않지만, 투자자들은 회사의 2016년 매출이 16억 달러에 달하고, EBITDA(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는 1억 5600만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2017년에는 매출이 28억 달러, EBITDA는 4억 5000만 달러로 상승하고, 2020년에 이르면 매출이 85억 달러, EBITDA가 35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덩치가 커져도 ‘핵심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저는 지금 에어비앤비 게스트들의 인적 구성이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의 에어비앤비는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고, 화장실 거울에 얼룩이 있어도 느긋하고 관대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진정한 ‘사회적 실험’의 장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호텔급 수준의 서비스를 원하는 평범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초기에도 그랬지만 저는 그런 여행객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트립스로 사업을 확장하는 전략은 에어비앤비의 ‘독특함’을 지키겠다는 하나의 조치이기도 하다. 다만 회사는 지나치게 거대 기업처럼 보이거나 너무 평범해 보이지 않도록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해야 한다.

 

“진실은 밝혀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현재보다 더 현명하고 진실된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지금은 안개로 자욱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뿐이죠.” 

그리고 체스키는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커다란 교훈 하나를 얻었다. 그들이 어떤 시도를 하든 ‘적’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꿈꾸면 미래가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에어비앤비는 절대로 생겨날 수 없는 회사였다. 대박을 꿈꾸던 세 명의 가난한 청년들이 우연히 사업 아이디어 하나를 찾아낸 끝에 에어비앤비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사업 경험이 전혀 없었던 그들은 철저하게 독학으로 사업을 배워나갔고, 전통적인 비즈니스의 기준으로 볼 때 직관에 어긋나는 일들을 행동으로 옮겼다. 초창기에 최대한 성장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기존의 가르침과 달리, 그들은 약 4800킬로미터 떨어진 뉴욕으로 날아가 몇 안 되는 사용자들에게 모든 자원을 쏟아부었다. 또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개별적이고 전문적인 사진 촬영 서비스를 제공했다. 세 창업자들은 이상하고 낯설게 보이며 온갖 리스크로 가득한 아이디어를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입소문을 타며 널리 퍼지는 비즈니스로 만들었다. 이것이야말로 다시는 등장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가난뱅이들의 출세 스토리 아닐까?

실제로 그들은 이 모든 것을 해냈다. 세 사람은 각자의 역량을 조합하여 엄청난 장애물들을 극복했고, 글로벌 대금 지불 플랫폼을 구축했으며, 검색 및 매칭 방법론을 개발했고, 안전한 숙박 대여 시스템을 구상해냈다. 이 모든 혁신은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의 별난 아이디어는 매끄럽고 빠르며 사용자 친화적인 사이트를 통해 구현됐고, 무언가에 ‘굶주린’ 고객들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무엇보다도 세 창업자는 ‘끈질긴 바퀴벌레 정신을 가진 놈이 살아남는다’는 업계의 교훈을 몸소 보여주었다. 세 번의 론칭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세이벨과 그레이엄 등 스타트업계의 구루들에게 달려들어 조언과 피드백을 구했을 만큼 저돌적이었다. ‘깡’이라 부를 만한 대담함으로 2007년에 열린 디자인 컨퍼런스에서는 자신들을 ‘블로거’라고 소개하며 행사장 입구를 통과했고, 자신들의 사업을 불법이라고 규정한 시장에 진입했으며, 잠베르 형제의 합병 요구를 거절함으로써 ‘위협’이라 여겨지는 거대한 힘에 저항했다. 또 소환장을 발급했던 뉴욕 주의 법무 장관과 맞서기도 했다.

그들은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실수도 저질렀다. 그리하여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생의 모든 교훈을 다 얻었다. 실수가 잦을수록 교훈은 더 큰 법인데, 그들은 아직까지도 각종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러한 길을 걸었던 선지자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불미스러운 일이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경쟁은 심화될 것이다. 홈어웨이는 에어비앤비의 핵심 시장으로 손을 뻗고 있고, 여러 신규 기업들이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하이브리드 아이디어’를 갖고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말로 많은 일이 이 산업 안에서 벌어질 거라 예상된다.

 

세바스찬 융거Sebastian Junger가 자신의 책 『종족(원제: Tribe)』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지금 사람들이 아파트에 홀로 살고 아이들은 각자의 침실을 가지고 있는, 인류 역사상 첫 번째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선지자가 아닙니다. 평범한 놈들이죠.” 

인터뷰를 하는 내내 체스키는 자신들을 향해 이런 식으로 말하곤 했다. 그러나 세 명의 보통 젊은이들이 모인다고 하여 그들이 성취한 것을 똑같이 이루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정말 평범하고 가난한 세 명의 학생들이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직감과 그것을 만들어낼 만한 무모한 용기가 있었습니다.”

 

 

 

Check Out. 우리 눈에 보이는 ‘에어비앤비’는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 우리가 앞으로 하게 될 모든 것은 여러분에 의해 움직일 것입니다.”

 

그저 웃음거리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러한 과거는 지금의 에어비앤비를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자 회사가 성장하고 난 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그들만의 ‘문화’다. ‘낯선 사람을 낯선 사람의 집에서 재운다’는 이상하고도 기이한 아이디어 정신은 여전히 회사의 DNA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게비아는 청중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얼리어답터가 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기괴하다’고 평가받아도 흔들리지 말고 계속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는 자동차가 처음 발명됐을 때 규제 기관들이 속도를 시속 6.4킬로미터로 제한했고, 사람들도 ‘악마의 기계’라고 불렀다면서, 새로운 것에는 언제나 저항과 반대가 뒤따른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에어비앤비는 ‘산업의 파괴자’로써 대단히 흥미로운 연구 주제다. 방세를 낼 돈도 없었던 가난한 청년들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술 기업을 만들어내 거대 기업들을 물리쳤으며, 이제는 다시 새로운 사업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있기 때문이다. 대담한 아이디어와 거대한 기회에는 항상 도전이 수반되기 마련이며, 그들의 도전이 커질수록 에어비앤비라는 산업의 파괴자가 얻는 이익도 더 커질 것이다.

 

 

 

옮긴이의 글

몇몇 사람들은 해당 지역의 삶과 문화를 경험해보라는 에어비앤비의 권유가 마치 듣기 좋은 선전 문구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에어비앤비의 숙소에서 호스트의 얼굴을 마주하거나, 호스트와 같은 공간에서 머무는 경우가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나 역시 지금껏 수차례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동안 호스트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사이트에 나온 사진을 보며 문자 메시지를 통해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다. 하지만 에어비앤비의 숙소가 위치한 지역으로 시각을 넓혀보면 생각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에어비앤비의 매력은 바로 ‘동네’에 있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는 이제 단순한 숙박 서비스에서 벗어나 호스트를 중심으로 한 ‘체험 서비스’로 무게 중심을 점점 옮겨가고 있다.

 

‘경험’과 ‘체험’의 차이가 무엇인지 잠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영어로는 두 단어 모두 ‘Experience’라서 견해에 따라 정의가 다르겠지만, 우리는 나름 열띤 토론을 했다. 이를 통해 ‘제3자적이고 안전한 입장에 머무는 것’이 경험인 반면, ‘상황에 뛰어들어 몸소 체득하고 느끼는 것’이 체험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이 책에서 ‘경험’과 ‘체험’이라는 말을 구분하여 사용했고, 에어비앤비가 새로이 추구하는 전략의 방향을 ‘체험’이라고 번역했다. 

‘체험’이야말로 에어비앤비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독특한 가치다. 에어비앤비의 숙소에서 현지인처럼 머물다가 골목 구석에 위치한 중고 LP 가게와 ‘카라반’ 식당 같은 곳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금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으로 독자들은 에어비앤비 스토리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경험이 끝났으면 이제 ‘체험’할 차례가 아닐까? 에어비앤비를 통해 나처럼 모두가 각자의 보물장소를 발견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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