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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신혼여행

헬조선의 알파고 2023. 7. 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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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신혼여행
소설가 장강명의 뒤늦은 신혼여행기를 담은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이 출간되었다. 2014년 11월. 아내 HJ와 3박 5일로 보라카이 신혼여행을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소설가 장강명의 첫 에세이로 한국에서 자라, 자신이 희망하던 것들 앞에서 좌절하고 번번이 부모와 부딪치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번갈아 하던, 그리고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게 대학에서 HJ를 만나 사랑의 여러 빛깔을 경험하고 있는 한 남자 장강명의 이야기다. 저자 장강명은 신혼여행을 하며 자신의 청춘 이야기, 연애 이야기, 결혼, 그리고 결혼 후의 이야기가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별 희망이 안 보이던 자신에게서 어떻게 희미하게나마 무언가를 건져냈는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HJ와 어떻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는지, 그리고 끝내 한국을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이 책은 연애와 결혼, 가족, 인생에 대한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굴복하지 않은 채 살아온 장강명의 인생 분투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장강명
출판
한겨레출판사
출판일
2016.08.18

 

2001년 ~ D-2개월: 결혼을 해야 하는 데드라인과 사랑의 메신저

늘 찌질했던 내 연애 인생에서 유일하게 잠시 화려했던 기간이었다.

 

나는 좀 철이 없기도 했고, 은근히 연애관이 구식이었던 터라 ‘운명의 상대’에 대한 환상과 갈증이 늘 있었다. 나는 그 ‘운명의 상대’를 반드시 찾아 충분한 기간 연애를 한 뒤 결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이 시기 이성에 대한 나의 기준은 극히 높았다. 만나서 즐겁고 호감이 가는 정도로는 불충분했다. ‘운명적 끌림’ 내지는 ‘영혼의 교감’ 같은 게 있어야 했다. 연애를 책이나 영화로 배우면 이렇게 된다.

 

인격자, 리더, 세계사의 위인들, 일일드라마의 주인공들이라면, 그런 갈등 상황에서 주위를 보듬고 다듬으며 양측을 설득해 화합을 끌어내고야 말 테지. 하지만 나는 그런 훌륭한 인간이 못 되었으므로 그냥 간단하게 부모님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그 얼마 뒤부터 결혼 여부를 묻는 질문에 유부남이라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강명 씨가 결혼식을 언제 올렸지? 난 초대 못 받은 것 같은데”라고 되묻는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었다.

 

 

 

1998년 ~ D-6개월: 양립할 수 없는 가치와 세계사의 위인들

대체로 무언가를 때려치우거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면서 정체성을 쌓아오지 않았나 싶다. 고등학생 때에도 대학생 때에도 학교를 때려치워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는데, 실제로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더라면 어떤 삶을 살게 됐을지 궁금하다.

 

공업수학 강의를 들으면서 그때까지 평생 어떤 공부를 하면서도 얻지 못한 교훈을 배웠다. 바로 ‘아, 내 머리는 여기까지구나’라는 깨달음이었다.

 

친구나 가족보다 더 끈끈한 사이로 지내는 선배, 동료, 후배도 많았다. 하루에 열두 시간보다 적게 일한 날은 기자 생활을 통틀어 정말 며칠 되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청춘을 다 바쳤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기간이었다.

 

하루만 지나면 잊힐 기사에 내 삶을 바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HJ에게는 딱 1년 반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 뒤로 만 1년 동안 장편소설을 다섯 편 썼지만, 단 한 권도 출간되지 않았다. 돈은 30만 원쯤 벌었다. 단편소설 하나가 책 읽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낭독되었고, 과학기술인이 보는 잡지에 서평을 하나 실었다. 그 외에는 빈 맥주병을 마트에 가져다주고 돈을 받았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을 팔았다.

인격자, 리더, 세계사의 위인들, 일일드라마의 주인공들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난 할 수 있다’며 결의를 다지겠지. 나는 그런 훌륭한 인간이 못 되었으므로 끊임없이 번민했다.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마흔이 되어서까지 그런 걸 고민한다는 게 이상했다.

 

 

 

D-약 60일: 보라! 울트라 괴기 시리즈와 모험을 벌여야 할 때

우선 내 감정이 중요하다. 나는 즐겁게 살고 싶다. 내 인생 3년을 그런 쓸모없는 일에, LPG 가스통과 화기를 서로 친하게 만드는 작업에 낭비하고 싶지 않다.

 

내가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감정 상태로 있어야 아내도 사랑하고 부모님도 사랑할 수 있다. 남을 사랑하는 일에도 에너지가 든다.

 

해마다 명절이 지나면 이혼 상담이 급증하고 형제간 폭행으로 누군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꼭 나오는데, 다들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친지들을 만나는 걸까.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뭔지 정확히 모를 것이다. 그냥 막연히 명절에는 가족이 다 모여야 한다고 하니까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뭔지 알지만, 관습의 압력에 맞설 용기가 없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인 동기가 영향을 미친다. 부모님에게 사업 자금을 빌리기 위해서라든가 그들을 저렴한 베이비시터로 활용하기 위해 평소에 다소간의 투자를 해야 한다.

 

부모님과 HJ와 내 동생 부부와 조카가 나란히 서서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마지막 장면 같은 분위기로 화기애애하게 웃는 모습 같은 건 그 그림에 애초에 없다.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에 대해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다. 내 가족관은 기타노 다케시보다 훨씬 건강하다. 나는 내 가족을 아무도 내다 버리고 싶지 않다. 다만 그들을 서로 만나게 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이 서로를 대형 폐기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해.  

 

내가 부모님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이러했다. 내가 내 딴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추진한다. 부모님이 보시기에 그 일은 완전히 비상식적인 일이다. 부모님이 반대한다. 언쟁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서로 상대를 모욕한다. 폭언을 퍼붓는다. 양쪽이 다 상처를 입는다. 결국 나는 내 마음대로 한다.

양쪽이 똑같이 잘못했나? 그렇지 않다. 언쟁을 벌이는 과정에서부터 부모님의 잘못이다. 자식이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살지 않을 때, 거기에 부모가 반대할 권리는 없다. 반대는 할 수 있어도, 모욕할 권리는 없다. 왜냐하면 그건 부모 인생이 아니라 자식 인생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이 특별히 나쁜 분들은 아니다. 사실 이건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이 공통으로 갖는 문제다. 자식들의 인생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 자식이 타인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자식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신적인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것. 그리고 나는 그 부모들을 이해한다.

그런 폭력의 원인은 대부분 사랑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자식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이 위험에 빠지는 광경을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들은 안락한 감옥을 만들어 자식을 그 안에 가두고 싶어 한다. 과보호.

그리고 그 감옥 안에 갇혀 있는 한 자식은 영원히 성인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순간부터 어른이 된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애완동물이다.

 

스펙은 좋지만 속은 비어 있다.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하는 인간들이다. 신자유주의가 어쩌고 시민 불복종이 어쩌고 코스프레를 하지만 시누이에게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겁쟁이들. 추상적인 적을 상대할 때에만 저항 정신을 열변할 수 있는 비겁자들. 그래서 자꾸 거대한 상상의 적을 만들어내는 음모론자들. 교수, 판검사, 의사, 약사, 회계사, MBA, 대기업 직원 중에 그런 애완 인간들 많을 거다. 요즘 한국에서는 애완 인간으로 살아야 그런 직업을 가질 확률이 높아진다. 자기 돈으로 미국 유학을 가거나 로스쿨 학비를 댈 수 있는 20대가 몇이나 되나.

 

하지만 부모님이 원하던 대로 살았어도 시시한 삶이었을 건 분명하다.

 

인생은 위험하다. ‘안전한 삶’에 대한 기대는 망상이다. 안전띠는 매야 한다. 그러나 운전이 무섭다고 어디든 걸어 다니겠다는 것은 바보짓이다. 걸어 다니다가도 차에 치여 죽을 수 있다.

자식이 위험에 빠지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그런데 모험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모험을 권하는 부모도 없다(선량한 부모들이 자식에게 모험을 허락하는 순간은, 자식에게 닥칠 최악의 위험도 자신들이 수습할 수 있을 때이다. 그래서 부자 부모 아래서 자란 젊은이가 더 많은 모험을 누리게 되고, 더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인생에는, 부잣집에서 태어났건 아니건 간에, 그리고 부모가 뭐라 하건 간에,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벌여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인생이 아니다. 그건 사는 게 아니다.

 

 

 

D-약 30일: 미친 짓거리의 뼈대와 사람 뇌로 만든 도시락

나는 선글라스를 쓰면 영락없이 〈아기공룡 둘리〉의 마이콜이 됐다. 가뜩이나 머리도 파마했는데. 왜 이렇게 알이 큰 선글라스만 파는 거지? 어쩌다 이런 물건이 유행하게 됐지? 왜 다른 사람들은 이런 선글라스를 써도 괜찮은데, 나만 개그 캐릭터가 되는 거지?

 

미고랭 :: 미고렝(mi goreng)은 인도네시아의 전통 요리로서 여러 가지 채소와 고기, 해산물, 달걀 등을 면과 함께 볶은 음식이다. '미(mee)'는 '국수', '고렝(goreng)'은 '볶음'이란 의미이다. 미고렝은 노란색이 나는 달걀 국수인 미를 사용하는데, 면이 약간 두툼한 것이 특징이다. 미고렝과 다르게 가는 쌀국수에 여러 가지 채소, 닭가슴살, 계란 등을 넣어 만든 볶음국수를 비훈고렝(bihun goreng)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말레이시아 반도 국가들은 기름에 튀긴 국수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사용한다.
미고렝을 만드는 방법은 고기와 해산물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볶는다. 양배추나 숙주 등의 여러 가지 채소도 함께 손질하여 볶아 놓는다. 국수는 끓는 물에 데쳐 찬물에 헹군다.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걀을 풀어서 스크램블처럼 익힌다. 미리 준비한 채소와 고기를 넣고 볶는다. 여기에 국수를 넣고 강한 불에서 재빨리 볶는다. 간장·다진 마늘·청주·소금·후춧가루를 섞어 소스를 만든다. 국수가 어느 정도 익으면 소스를 붓고, 간이 배도록 버무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고렝 [mi goreng]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사실 그 리조트가 보라카이가든 리조트보다 더 싼 이유가 그리 궁금하지는 않다. 쌀만 하니까 싸겠지, 뭐. 하지만 HJ가 이야기를 할 때는 적절한 호응이 중요하다. ‘어, 괜찮네, 자기가 알아서 해’ 따위의 대꾸는 안 된다.

 

HJ가 설명했다. 무슨 인터넷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다.

 

내 생각에는 전형적인 한국식 결혼식은 빼빼로데이와 매우 비슷하다. 언젠가부터 점점 호사스러워지고 있고, 장식이 본질을 압도하고 있으며, 이제는 거대 산업이 되어버렸다. 업체들이 호사스러움을 부추기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모두 그게 허세이고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상술에 넘어가고야 만다.

여자들은 싫다고 하면서도 그 호사스러움에 은근히 끌리고, 남자들은 “그래도 평생에 한 번인데……”라는 권유 겸 협박을 이기지 못한다. 남들의 시선이 자식의 행복보다 중요한 부모들은 “요즘 이거 안 하는 분은 정말 안 계세요”라는 말에 넘어간다. 그리하여 그 괴상망측한 예식을 치르고 난 다음에는 합심해서 다른 희생자들을 찾아 나선다. “너희는 몇 평이니? 혼수는 어떻게 했니? 꾸밈비는 얼마나 받았니?” 따위를 물어보면서. “그래도 호텔에서 하는 게 보기에 낫긴 하더라”라거나 “장남이고 개혼인데 최소한은 받아야지”라거나 “남들 시선도 있는데”라고 핀잔을 주고, 때로는 위협하면서.

왜 이런 미친 짓거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내 생각에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이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세대가 미친 짓거리의 뼈대를 세우고, 신세대가 거기에 살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지 않는 자들을 “걔 원래 좀 특이하잖아”라며 이단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를 성대하게, 무의미하게 치러낼수록 찬탄을 사고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미친 짓거리는 온 사회 구성원이 거기에 협조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점점 더 강화될 뿐이다. 사교육이나 학벌 같은 문제가 그렇다.

 

두 세대쯤 더 지나면 빼빼로데이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이 될지도 모르겠다. 정월 대보름에 팔리는 나물이나 동짓날 판매되는 팥죽의 매출액이 11월 11일에 팔리는 빼빼로 관련 상품 매출의 10퍼센트라도 될까?

 

남녀차별이나 성희롱, 음주운전, 공공장소 흡연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맹렬히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결과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왜 학벌이나 결혼 문제는, 그 부조리에 대해 “X이나 까세요”라고 말하지 못하는 걸까.

그 이유는 아마 정체성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인들이 정신적으로 허약해서라고 생각한다. 자기 삶의 가치에 대해 뚜렷한 믿음이 없기에 정체성을 사회적 지위에서 찾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는 대학 간판이나 자식 결혼식장에 모인 하객 수로 구체화된다. 그래서 다들 거기에 집착한다.

 

HJ는 웹 브라우저에 탭을 다섯 개나 열어놓고 보라카이 여행 후기들을 살펴보았다. 나는 그 화면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여기 주인장은 뭐 하는 사람인가’ 싶은 블로그들이 많았다. 얼굴이 똑같이 생긴 여자들이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요리를 먹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걸로 일상을 채우고 있었다.

 

“아주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는구만. 우리 여행을 위해서 알아보는 게 아니지? 알아보는 거 자체가 즐거워서 알아보는 거지?”

 

당분이 많이 들어간 식사의 경우 숟가락을 내려놓기도 전에 하품이 나올 때도 있다.

 

우리 어렸을 때 생일 파티에 누가 초대하면 되게 좋았잖아. 선물이랍시고 공책 같은 거 한 권 들고 가면서, 막 설렜잖아. 애들이랑 놀 생각에. 난 결혼식도 그런 파티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이젠 깨달았거든. 아, 나는 공주가 될 수 없구나. 아무리 비싼 드레스를 입어도 난 여배우 같은 모습이 나오지 않는구나. 포토샵으로 어떻게 흉내를 내볼 수야 있겠지.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잖아. 이걸 마흔이 다 되어서야 깨달은 거야. 이제 내가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야. 그렇게도 인정하기 싫었던 사실이었는데, 받아들이고 나니까 좀 편해졌어. 외모 경쟁도 덜 하게 됐고.

 

 

 

D-1일: 더블린에 있는 것과 사장님들이 정하는 것

여행을 갈 때 들고 가는 책은, 가벼우면서도 진도 안 나가는 물건이 최고다. 글이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이면 여행의 감흥이 반감된다. 내가 강력히 추천하는 여행용 서적은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다. 얇은데 정말 더럽게 지루하다. 여행 중에 이 소설을 읽으면 여행의 재미가 틀림없이 배가된다. ‘내가 어디에 있건 더블린에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이 절로 드니까. 난 이 책을 언젠가 출장 갈 때 들고 갔는데 한 번에 읽지도 못해서, 다음, 그다음 출장 때까지도 들고 다녔다.

 

 

 

첫째 날 오전: EU의 블랙리스트와 독일군 포로수용소

비행기를 타지도 않았는데 몸은 장시간 비행을 마친 것과 비슷한 상태였다.

 

 

 

첫째 날 오후: 귀신의 집과 쾌락의 총합 이론

무의식이 두려움을 그런 식으로 극복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만약 HJ가 여든 살 즈음에 죽는다면, 그때 나의 기대 수명이 10년가량 남았다면, 그때쯤 되면 돈도 별로 없고 어울릴 사람도 많지 않을 테고, 나는 별 미련 없이 그냥 HJ를 따라 자살할 것 같다. HJ 없이 살아야 할 10년이 그다지 흥겹고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런 인생은 살아서 뭐하나?

이런 답은 인생의 의미를 쾌락 또는 행복의 총합으로 보는 인생관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 인생관은 굉장히 허무주의적이다. 쾌락 또는 행복을 빼면 살아갈 이유가 달리 없다는 것이다. ‘그녀 없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어요’라는 답은 얼핏 듣기에 낭만적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신성모독적이고, 탈역사적이고, 반민중적이고, 아무튼 세상의 다른 모든 가치를 죄다 우습게 보는 말이다.

더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다지 낭만적이지도 않다. 사실 위의 사례에서 낭만성은, 내가 살 날이 창창한데도 HJ를 따라 죽을 수 있어야 커지는 것이다. 그런데 HJ가 내일 당장 죽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따라 죽을 것인가?

‘쾌락 또는 행복의 총합 이론’에서 HJ의 부재는 내가 죽어야 할 이유가 될까? 나는 HJ를 만나기 전에도 잘 살아왔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쾌락과 행복의 정도를 수직선에 표시한다 치자. 그렇다면 나는 늘 그 표식을 수직선에서 0보다 오른쪽에, 양수 쪽에 표시해왔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자살하지 않고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HJ를 만나 그 표식이 굉장히 오른쪽으로 뛰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낭만적으로 평가해, 살고 싶은 정도가 10점대에서 90점대로 뛴 것이다. HJ가 사라지면 그 점수는 다시 10점대로 돌아온다. 그러나 여전히 0보다는 위이며, 이 점수에 따르면 나는 HJ 없이도 사는 게 합리적이다.

어쩌면 이건 너무 단순한 수식일지도 모른다. 인간에게는 상실의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실이라는 사건의 과정, 그 기울기의 폭력성과 낙폭의 크기가 중요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순간의 비통함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 만약 누가 내게 항우울증약을 강제로 몇 년간 먹여서 그 비통함을 견디게 한다면,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HJ의 죽음이 이성적으로 상실이라고는 여기면서도 감정적으로 슬프지는 않은 상태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도 HJ는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인가?

아무래도 이 사고실험은 어딘가 잘못된 것 같다. 반대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내가 더할 나위 없이 불행한 상황에 처했다 치자. 어떤 진통제도 듣지 않고, 매 순간이 지독하게 고통스러우며, 병상에서 일어나 걸어 다닐 수도 없고, 배설조차 남의 손을 빌려야 하며, 나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불치병에 걸렸다고 치자. 그런데 이 병은 사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아니다. 그냥 사람을 죽을 때까지 수십 년 동안 괴롭게만 할 뿐이다. 살 의지가 있다면 연명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때 HJ는 내게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가? 별로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나는 HJ를 위해서라도 자살을 감행할 것이다. 나를 간호하다 그녀까지 함께 불행해지는 상황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쾌락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내가 겪는 불쾌함이 HJ와 함께 있는 쾌감을 압도하고, 그래서 주관적으로 느끼는 쾌락의 총합이 ‘0’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내가 수년에 걸쳐 집필해온 대하소설의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고 치자. 나는 이 소설이 제대로 완결하기만 한다면 엄청난 걸작이 될 것을 알고 있다. 내 인생 최고의 역작임이 분명하다. 그때 이 소설은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가? 그럴 것 같다. 나는 아마 소설을 다 쓸 때까지 자살을 미룰 것이다. HJ는 살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지만, 소설은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상황이다.

이 경우는 내 선택에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쾌락의 총합 이론으로는 그 판단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 소설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즐거운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죽은 다음에 그 소설이 아무리 높은 평가를 받은들 이미 자살해버린 나에게는 아무런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이 소설이 걸작이 되겠지’라는 기대감이 얼마간 즐거움을 주기야 하겠지만, 병마와 싸워 이길 정도는 아니다.

이 예시는 쾌락과 행복 외에도 삶에는 분명히 다른 의미가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굉장히 불행한 상황에 빠져서도, 내게 남은 미래는 오로지 고통과 죽음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인간은 삶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순교자들은 내세를 믿었기 때문에 예외라 쳐도, 스스로 불행과 죽음을 택한 많은 혁명가와 예술가 들이 있다.

 

이 얼마나 모순인가? 마치 세상의 모든 작은 즐거움들이 상황에 따라 논리를 바꿔가며 나를 살리려 애쓰는 것 같다. HJ의 힘이 부칠 때는 글쓰기가, 글쓰기의 힘이 모자랄 때는 HJ가, 그리고 치킨이라든가 맥주라든가 자전거라든가 재미있는 책이라든가 초여름의 산들바람이라든가 잘생긴 개 같은 것들이.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그런 이유로 죽지 않고 사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도 못하면서.

 

 

 

첫째 날 밤: 섭식장애가 있는 듯한 커플과 바보 같은 눈물

나는 성격에 기복이 좀 있는 편이다. 별것 아닌 일에 흐뭇해져서 혼자 히죽히죽 웃다가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고 우울해졌다가는 몇 분 뒤 과도한 자신감에 도취된다. 하지만 그런 오르락내리락이 어느 쪽으로든 선을 넘어가는 일은 잘 없다. 잔물결이 자주 이는 연못, 쉴 새 없이 불꽃이 일렁이지만 꺼지거나 번지지 않는 모닥불,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나 잡종견 같은 감정 상태로 세상을 산다.

 

나는 HJ가 ‘다 때려치워’ 다음 단계인 ‘난 왜 태어났지’ 단계로 돌입하는 것을 막으려 안간힘을 썼다. 나 자신도 말 한마디 하기 싫을 정도로 지친 상태에서 다른 지친 사람의 기분을 북돋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조용하고 쓸쓸한 광경이었다.

 

에드워드 호퍼 ::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20세기 미국인의 삶의 단면을 무심하고 무표정한 방식으로 포착함으로써 인간 내면에 깃들여 있는 고독과 상실감, 단절을 표현했다. 그의 작품에서 공간과 빛, 인물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경은 현실이라는 표피에 감싸인 내부로의 응시이며, 이로 인한 감각을 일깨워준다.
에드워드 호퍼는 1882년 미국 뉴욕주(州)의 나이액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의 종용으로 1889년부터 1900년까지 뉴욕 상업미술아카데미에서 삽화를 공부했다. 이어 뉴욕 미술학교에 입학해 삽화와 회화를 배웠다. 윌리엄 메리트 체이스(William Merritt Chase)와 로버트 헨리(Robert Henri)에게 사사했으며, 1906년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뉴욕에 있는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영국과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등을 여행하고, 파리에서 장기간 머물렀다. 1908년 뉴욕에 정착한 그는 일생동안 단 세 차례에 걸친 유럽여행을 제외하면 줄곧 이곳에서 살았다. 그는 광고미술과 삽화가로 활동하며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한편 회화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 틈틈이 작품을 제작했다.
호퍼는 1913년 작품 《항해》를 뉴욕 ‘아모리 쇼’에 출품하고 처음으로 작품을 팔았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무명 화가의 신세로 1923년까지 단 한 작품도 팔지 못했다. 1924년 호퍼는 미술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조세핀 니비슨(Josephine Nivison)과 결혼했다. 조세핀은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의 모델이 되어줌은 물론 그의 예술에 있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은 인생의 동반자였다. 이 시기부터 호퍼는 수채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평단과 대중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이 무렵 뉴욕에서 열린 그의 두 번째 개인전에서 전시 작품들이 모두 판매되는 행운을 안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호퍼는 1925년에 그의 첫 번째 출세작이 되는 《철길 옆의 집》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현대산업의 상징인 철길이 빅토리아 풍의 저택 앞을 가로지르고 있는 풍경으로, 미학적 변혁의 시기에 자신의 화법을 고집했던 호퍼의 의지를 엿보게 한다. 뿐만 아니라 텅 빈 공간에 홀로 서 있는 집 한 채가 황량함과 깊은 적막감을 느끼게 해 앞으로 전개될 그의 작품의 정조를 예고해주고 있다. 호퍼는 이때부터 미국적인 장면을 그리는, 새로운 사실주의의 주요 화가로서 빠르게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현대사회의 고질적인 외로움과 고독의 정서를 호퍼만큼 감동적으로 표현한 화가도 드물다. 그의 회화는 일상생활의 한 단면을 자연스럽게 펼쳐 보여주지만, 그 안에는 미국 도시민들의 삶을 특징지었던 상실감과 소외감, 절망감을 환기시킨다.
추상표현주의가 출현하면서 호퍼는 뉴욕 미술계에서 인기를 잃었지만, 그가 사망한 1960년대 중반까지 수십 년 동안 일관되게 사실주의 양식을 고수했다. 그 후 1960년대 추상표현주의가 쇠퇴하고 팝아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자, 그는 팝아트와 슈퍼리얼리즘에 영향을 미친 선구자로 여겨졌다. 비록 호퍼 자신은 그런 주장을 무시했지만, 20세기 미국인의 삶의 단면을 무심하고 무표정한 방식으로 포착한 그의 작품은 196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 에릭 피슬(Eric Fischl), 알렉스 카츠(Alex Katz) 등 많은 화가들은 물론이고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같은 영화감독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주요 작품으로 《철길 옆의 집 House by the Railroad》(1925), 《자동판매기 식당 Automat》(1927), 《일요일 이른 아침 Early Sunday Morning》(1930), 《호텔 방 Hotel Room》(1931), 《뉴욕극장 New York Movie》(1939), 《주유소 Gas》(1940),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1942)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둘째 날 오전: 이 불공평한 세계와 자기파괴적인 봉사 활동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포크와 나이프가 쟁반에 부딪치는 소리, 커다란 뷔페용 스테인리스 냄비들에 요리를 채우는 직원들이 내는 소리가 모두 한데 섞여 우웅, 하는 거대한 소음이 되었다.

 

이날은 빈 접시를 보며 탄수화물과 인간 심성의 관계에 대해 잠시 사색했다. 인간은 얼마나 물질적인 존재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탄수화물이 모자랄 때 행복해지기는 굉장히 어렵다. 탄수화물이 모자라고 몸이 피곤할 때 타인에게 친절해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체내 탄수화물 농도와 타인에 대한 관용 간의 상관관계는 그래프로 표시하면 직선으로, 간사할 정도로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그 직선에서 떨어져, 배가 고플 때도 타인에게 친절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상대를 깊이 사랑하거나, 뭔가 강력한 동기가 있거나(예를 들어 다음 선거에 출마해야 한다든가), 아니면 군자 수준으로 자기 절제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어딘지 거북해진다. 인간 내면의 행복이나 선량함은 외부 세계와 별 관련이 없다는 생각이 좀 더 위안이 되는 세계관이다. 빌 게이츠의 자식으로 태어나도 불행할 수 있고, 중앙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매일 물 긷는 데에만 네 시간씩 써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틀렸다.

한 인간이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외부 환경이 전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몇몇 성인과 초인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물질세계에 형편없이 휘둘린다. 부자 나라의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행복하고 심지어 선량한 삶을 살 기회를 보다 많이 갖게 되지만,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면 영적으로도 황폐한 인생을 살 가능성이 커진다. 포로수용소에 포로 9999명과 함께 갇혔는데 식량이 천 명분밖에 없으면 나 역시 악마가 되어 동료의 시신을 뜯어먹기 위해 치고받으며 싸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 나라의 부잣집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이 불공평한 세계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현금이 아닌 다른 쿠폰들, 예를 들어 좋은 머리라든가 아름다운 용모를 물려받은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그 거대한 불의도 내 한 몸의 탄수화물 부족을 이기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가히 우주적 규모의 불의와, ‘탄수화물 섭취량과 주관적 행복의 상관관계’라는 엄연한 진실 양쪽 모두를 본 인간에게는 네 가지 길이 있다고 본다. 초월, 절망, 체념, 위선.

 

나는 현실적인 길은 체념과 위선 두 가지뿐이며, 그중에는 체념이 위선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부분을 체념하고, 아주 조금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면서, 동시에 아무리 노력해도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은 결코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파도 소리조차 없었다. 그렇게 잔잔한 바다는 처음 봤다. 한강도 바람이 부는 날에는 이보다 더 물살이 거칠다. 세계 최고의 서퍼가 와도 도리가 없을 바다였다. 왠지 우리 발걸음도 조심스러워졌다.

 

나는 목만 물 위로 내놓고 반쯤 눕다시피 해서 하늘을 보았다. 흰 부분은 더없이 희고, 파란 부분은 더없이 파랬다. 그렇게 시야 가득히 하늘이 꽉 찬 광경을 보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그 아래 바다에서는 물이 꾸준히 내가 있는 쪽으로 밀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런 풍경 속에 있자니 정신이 멍해져서, 최면에 걸린 듯한 기분도 들었고 뭔가 종교적인 감동도 살짝 일었다.

 

나는 맥주를 다 마신 뒤 비치 타월을 얼굴 위에 덮고 그날의 네 번째 낮잠을 잤다.

일어나보니 팔다리가 온통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벌겠다. 기왕 다 타버린 거 이제 와서 선크림을 발라봤자 뭐하겠나 싶었다. 그런 만사 귀찮은 기분이 불길한 전조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둘째 날 오후: 허구를 상상하는 능력과 깊은 밤중에 있는 듯한 기분

D몰 중심부에는 대관람차가 있었는데 사람은 아무도 태우지 않고 저 혼자 열심히 돌고 있었다.

 

아무 곳이나 사진을 찍어 아무런 보정 없이 출력해도 그대로 그림엽서가 될 것 같은 풍경이었다.

 

선글라스를 쓴 채로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정신이 다시 멍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왜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는지, 왜 자전거를 타고, 왜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며 러닝하이를 느끼려 하는지.

사람들은 멍해지려고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피로하게 만든다.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대신 괴로움에 빠뜨린다. 이것이 선악과(善惡果)의 정체다.

생각은 현실을 넘어선 허구를 상상하는 능력이다. 생각 덕분에 우리는 애국이니 박애니, 살을 비비며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랑을 넘어선 거대한 사랑을 상상한다. 구원이니 해탈이니, 근육의 나른함과 위장의 포만감을 넘어선 거대한 행복을 상상한다. 계급이니 국가니, 내가 표정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을 넘어선 거대한 집단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허구를 상상하기 때문에 우리가 거대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거대한 행복을 얻지 못했으며, 거대한 집단 속에서 소외되었다고 여기게 된다.

 

현대 예술가들이 처한 딜레마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림도 음악도 시도, 현대에 와서는 기쁨과 충일감, 무아지경으로부터 멀어졌다. 오늘날 예술은 사람들을 더 깊고 복잡한 생각으로 이끈다. 현대 예술은 이제 본질적으로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작업이 되어버렸다.  

 

“아, 바지 젖었어!”

“얘, 난 팬티도 젖었어.”

꼬마 아이를 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 어머니를 돕고 싶은 마음에 내가 불쑥 끼어들어 아이에게 말했다. 꼬마 아이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난데없이 끼어든 수염 난 아저씨가 위험인물인지 아닌지 판단하느라 말을 멈췄다. 판단이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 뒤에 숨는 편을 택했다. 엄마를 적군으로 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아이는 불평을 보류했다. 작전 성공.

 

내가 생색을 내자 HJ는 한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은 여전히 지도를 향한 채였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로 가는 길을 연구하는 사람 같았다.

 

오전에 배가 부르도록 마셨기에 그냥 관성으로 마시는 맥주였는데,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금방 흥미를 잃은 나와 달리, HJ는 뇌 수술을 하는 신경외과 의사처럼 실로 꼼꼼하게 서가에 꽂힌 책을 한 권 한 권 살폈다. 작가 이름순으로 정리된 책장에서 Z까지 훑어본 HJ는 다시 A로 눈을 돌렸다. 오줌 참는 꼬마처럼 발을 동동 구르던 나는 HJ를 서점에 남기고 밖으로 나왔다.

 

 

 

둘째 날 밤: 우주를 여행하는 기분과 멍한 화장품 광고용 얼굴

부부 싸움을 한 것은 실로 몇 년 만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 모든 사태가 경악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마음의 또 다른 한 부분에서는 HJ가 하는 말을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어떻게 상대방을 굴복시킬지를 궁리하고 있었다.

 

“《여행의 기술》에 보면 결국 여행은 주관적인 거라고 해. 아무리 좋은 걸 보고,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자기가 기분이 나쁘면 그 여행은 나빴다는 거지.”

 

다방구 :: 술래잡기 놀이의 하나. 일정한 기둥을 정한 뒤 술래가 숨은 사람을 찾아서 손으로 치면 포로가 된다. 잡힌 포로들은 그 기둥에 손을 잡고 길게 늘어서 있다가 포로가 아닌 사람이 술래 몰래 ‘다방구‘라고 하면서 잡은 손을 끊어 주면 끊긴 다음 사람부터 살아나게 되는 놀이 방식이다. 이때 만약 그 기둥을 치면서 ‘다방구‘라고 하면 잡힌 모든 포로가 풀려난다.
다방구, 술래잡기, 땅따먹기, 구슬치기, 말뚝박기, 공차기를 하며 땅거미가 내려앉아 친구들의 모습이 희미해질 때까지 놀고 또 놀았다.
[네이버 국어사전] 다방구

 

모히토를 마신 HJ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게 맛없는 모히토는 처음 마신다고 했다. 내가 한 모금 마셔보니 모기 물린 데 바르는 물파스 같은 맛이었다.

 

남자들이 머릿속으로 그리는 이상형의 외모라는 게, 대개 흐릿하고 두루뭉술한 2D 이미지일 뿐이라 실제 인간이 뿜어내는 생생한 기운을 당할 수 없을 따름이다. HJ가 지금보다 20센티미터 정도 키가 더 컸거나, 반대로 그만큼 더 작았거나, 아니면 20킬로그램쯤 살이 더 쪄 있었더라면 나는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지금보다 20센티미터 정도 더 크거나 작지 않고 지금의 키인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그러니 우리가 맺어진 데에는 우연이 크게 작용했다. 우리는 우연의 허락을 받고 사귀게 되었다.

 

우연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우리는 뭐든 할 수 있다. 우연은 아무리 연이어 일어나봤자 우연의 연속일 따름이다. 거기에 의지가 섞여 들어가야 운명이 된다.

 

 

 

셋째 날 오전: 숨을 쉬는 법과 사도마조히즘의 세계

내가 화를 꾹 참으며 정중한 말투를 썼더니 상대방이 “지금 무슨 외교 회담하자는 거예요?”라고 비꼬았다.

 

떡밥 가루가 물에 조금 풀리자마자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가 달려들었다. 과장이 아니라 열대어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물고기로 된 눈보라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었다.

 

다들 어휘력이 빈곤해 조금 전에 본 별세계를 묘사하거나 그에 대해 토의할 실력이 되지 않았다.

에스키모들에게는 눈을 묘사하는 단어가 수십 가지라고 한다. 그런 단어들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땅에 눈이 쌓인 정도와 습도를 세밀히 분간하고 어제 내린 눈과 오늘 내린 눈의 다른 점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다. 바닷속 풍경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려면 그런 단어들을 알아야 했다. 그러나 그 배에 있던 한국인 관광객들이 해저에 대해 아는 단어라고는 열대어, 불가사리, 니모, 산호 정도가 고작이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중년 남녀 일곱 사람이 비밀스러운 종교의식이라도 치르고 온 사람들처럼 갑판에 얌전히 앉아 뭍을 기다리는 모습은 좀 웃겼다.

 

우리가 물 밑에 들어갔다 나온 뒤 한동안 말이 없었던 이유는 수면 아래가 정말로 처음 보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신세계를 체험하면 새로운 감각들에 뇌가 놀라게 되고, 익숙한 구세계를 달리 보게 되고, 신세계의 영토만큼 넓어진 머릿속 세계지도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찾게 된다.

어릴 때는 그런 일들이 매일 일어났다. 하루하루가 열광과 감탄, 발견과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10대가 되고 20대가 되자 신세계라고 할 정도의 새로운 경험이 확 줄어들었다. 진짜 새로운 경험은 많지 않다. 첫 비행은 대개 비행기 좌석에 안락하게 앉아서 경험하기 마련이고, 그 경험은 고속버스를 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첫 강연은 대학생 때 조별 과제를 발표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서른이 되자 그런 경험은 거의 남지 않았다. 어떤 신세계는 의도적으로 피했다. 출산이라든가 창업 같은 것.

어떤 신세계는 구세계를 너무 파괴적으로 흔들어놓기 때문에 오락의 범주에 놓을 수 없다. 첫사랑, 첫 섹스, 첫 직장 생활 같은 것들이다. 첫 해외여행, 첫 스마트폰 사용 같은 경험은 삶에 적당한 활기를 주지만 스트레스도 제법 준다. 첫 족욕 체험, 첫 그리스 요리 시식 같은 경험은 한두 시간 정도 안전한 즐거움을 준다. 스쿠버다이빙은 놀라운 체험이었다. 그리스 식당에 가는 정도의 비용과 수고로 첫 해외여행 정도의 새로움을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가성비의 체험은 흔치 않다.

그러나 얄팍했다. 적어도 내게는.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새로운 종교가 될 수 있겠지만 내게는 그럴 수 없는 경험임을 나는 즉시 알았다. 해외여행, 스마트폰, 그리스 요리가 다 내게는 그러했다. 좋긴 좋았고 한 번쯤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어느 이상 빠져드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었다. 섹스도, 행위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얄팍하다. 탄트라 요가 섹스나 사도마조히즘의 세계를 탐험한들 거기에 깊고 거대한 무엇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마라톤 풀코스를 다섯 차례 달리면서 잠시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을 몇 번 느끼긴 했다. 그러나 결코 그 감각이 마약과도 같은 희열이나 중독성을 주지는 않았다. 달리는 시간 대부분은, 그냥 억지로 달렸다. 11년간의 기자 생활도 비슷했다.

더 나아가서는, 신세계를 발견하는 일에 우리 사회가 과도한 찬탄을 보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생의 특정 시기에 신세계를 탐색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다. 마흔이나 쉰에라도 종교나 마약의 대용품이 될 만한 분야를 찾는다면 좋은 일이다. 그리스 요리나 사도마조히즘이라도 좋다. 그러나 신세계를 찾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직업을 바꾸고, 분기마다 새 취미에 열정적으로 도전하며, 어딘지 모를 이상향을 찾아 쉴 새 없이 떠돌아다니는 삶이 바람직한 걸까? 그걸 낭만이라고 포장하는 건 시시한 사기 아닐까. 그것은 기실 그 사람의 세계가 그만큼 황량하고 별 볼 일 없음을 폭로할 따름이지 않은가. 어느 정도 날씨가 괜찮고 마실 물과 식량이 있는 평평한 땅을 찾으면 방랑을 멈추는 게 정상이다. 거기에 건물을 짓고 사람을 불러 모아야 한다.

 

 

 

셋째 날 오후: 조각조각 난 사유지와 성스러운 의무

봉두난발 :: 우리말 가운데 쑥대머리란 표현이 있는데, 채가 긴 머리털이 마구 흐트러져 어지럽게 된 머릿결을 가리킵니다. 봄이 되면 여기저기 피어나는 쑥은 그 맛이 일품인데도 아무렇게나 어지럽혀진 모습에 비유됩니다. 그래서 쑥밭 하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빈터만 남은 거친 땅을 가리키지요.
[네이버 지식백과] 봉두난발 [蓬頭亂髮] - (쑥 봉, 머리 두, 어지러울 란, 터럭 발) (고사성어랑 일촌 맺기, 2010. 9. 15., 기획집단 MOIM, 신동민)

 

한낮의 바닷가는 조각조각 난 사유지였고, 최소한의 장비로 수익을 올리는 부동산이었다.

 

“그건 사랑이 아냐. 그냥 성실한 거야.”

 

“그게 사랑이야.”

 

성실한 게 사랑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부모의 사랑보다는 부모의 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좋은 아버지의 자질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겠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성실함의 양은 초인적인 수준이고, 그런 초인적인 성실함은 사랑이 없으면 발휘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제 와서는 알 수 없는 문제이고, 무의미한 문제다.

 

“자기는 내가 이렇게 짜증 내고 화내고 그러는데 왜 나를 좋아해?”

짐을 챙기며 HJ가 물었다.

“나중에 복수하려고. 나한테 푹 빠지게 만든 다음에.”

내가 대답했다.

“〈아내의 유혹〉처럼? 눈 밑에 점 하나 찍고?”

“응.”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군.”

HJ가 말했다.

 

나와 HJ는 껴안고 석양을 보았다.

“이제 나 좋아?”

내가 물었다.

“나한테 복수할 거야?”

HJ가 되물었다.

“안 할게.”

“그럼 많이 좋아.”

 

 

 

셋째 날 밤: 바빌론의 타락한 창녀들과 2 더하기 2는 5

처음 중국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단둥(丹東)의 더러운 골목에서 거지 소년 한 명이 나를 수십 미터나 쫓아오며 잔돈을 달라고 내 앞에서 여러 차례 무릎을 꿇었다. 그에 비하면 팔찌를 안 사준다고 소리를 지르고 토라지는 소녀는 동화책에 가까웠다.

 

《동물들의 침묵》에는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반까지 소련을 방문한 서구 지식인들과 기자들 이야기가 나왔다. 미국이 대공황을 겪던 시기에 소련을 방문한 저널리스트나 작가들은 대개 자본주의에 부정적이었다. 기자들은 소련을 찬미하는 글을 열심히 써서 송고했다.

그러나 당시 소련에서는 집단농장 정책의 실패로 대공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대기근이 벌어져 2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 대도시 길거리에 굶어 죽은 시체가 굴러다녔다. 아무리 외부인이었다 해도, 아무리 소비에트 당국이 숨겼다 해도 도저히 모를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소련 어디에나 떠돌이 고아들이 있었다. 모스크바 거리에서도 군인들이 굶주림에 지친 농민들을 총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귀중품을 가진 것 같은 사람들을 비밀경찰이 납치해 물건을 숨긴 장소를 대라고 고문하는 일이 너무 공공연해서 그에 대한 농담이 만연할 정도였다. 그런데 좌파 기자들과 지식인들은 그런 광경을 보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영국 기자 가레스 존스는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보도했다가 다른 기자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기자단이 합심해서 가레스 존스의 기사를 반박하는 시리즈 기사를 내보냈다. 가레스 존스는 결국 소련에서 쫓겨났다.

어쩌면 당시 기자 몇몇은 정말로 떠돌이 고아나 굶주린 농부나 비밀경찰이나 군인들의 총을 보지 못했던 것 아닐까. 소련 검열 당국이 보여준 번쩍번쩍한 공장 설비와 사치품 상점, 활기차 보이는 공사 현장, 멋진 구호가 적힌 현수막들에 눈이 멀어서 말이다. 내가 이곳에서 산호 해변과 파란 바다와 아름다운 노을에 눈이 멀어 있는 것처럼.

 

‘하지만 단지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벽 앞에서 그 벽과 타협하지도 않을 것이다.’

 

원곡의 멜로디는 편곡자에게 세계의 기초이면서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인 것이다.

 

그렇다고 결혼 제도를 통째로 적으로 몰아붙이는 행위 역시 나는 새로운 억압 안에 자신의 상상력을 가두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은 해방이라는 이름의 억압이다.

인간은 가치를 좇는 존재다. 그리고 가치를 좇는 행위 자체가 세상에 폭력적인 질서를 부여한다. 제멋대로 세계를 가치 있는 것, 가치가 덜한 것, 가치 없는 것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그런 질서는 필연적으로 구속과 억압을 만들어낸다. 모든 광명은 반드시 그림자를 만든다. 아니, 이건 적절치 않은 비유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종이에 데생을 할 때 펜으로 어둠을 그려서 빛을 표현하듯, 그림자가 광명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옳겠다. 왜냐하면, 그 모든 가치는 결국 허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구속과 억압을 통해 겨우 그 허구가 현실 세계에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결혼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사람이 영원한 사랑을 믿으며,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한눈팔지 않고 상대에게 충실하겠다는 공개 선언이다. 이것은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개념이다. 인간은 열정을 금방 잃고, 섹스의 가능성이 있는 타인을 향해 수시로 한눈을 팔며, 오래도록 한 가지 대상에 충실할 수 없는 존재다. 그것이 해방된 상태의 인간이다. 결혼은 그런 자연스러운 충동을 억압해서 허구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운명적 사랑, 백년해로라는 개념을. 우리는 운명을 구속함으로써 운명을 만든다.

내 생각에 결혼의 핵심은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지키겠다는 선언에 있었다. 그 선언을 더 넓은 세상에 할수록 우리의 사랑은 더 굳건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식은 거부하되 혼인신고는 했다. 우리는 국가를 향해 선언했다. 이 약속을 어기게 되면 그 상처가 반드시 어느 국가 서류에 흔적을 남기게 만들었다. UN이 혼인신고를 접수했다면 UN에 했을 것이다.

이것이 허구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가톨릭 사제의 삶이 왜 고귀한가? 하느님이 그 삶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인가? 신을 믿지 않는 나는, 사제들의 삶에 가치를 부여한 것은 사제들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지키기 어려운 구속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고, 사제 서품을 통해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선언하고, 사제복을 입고 자신이 선언자임을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때문이다. 허구와, 허구가 만들어내는 구속을 받아들일 때 의미 있는 삶이 시작된다. 그것이 내가 이해하는 '2 더하기 2는 4'다. 이 수식은 넘어설 수 없는 한계지만, 동시에 많은 가치를 가능하게 하는 출발선이기도 하다. 공리 없이는 수학도 없다. 때로는 멍해지는 것이 좋지만, 언제까지나 선셋 세일링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의 삶은 바다가 아닌 뭍 위에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모든 억압에 반대한다’는 말은 그냥 난센스일 뿐이다. 물론 미신적이고 비본질적인 억압, 예단은 얼마를 해 가야 한다는 따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그러나 해방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언제나 가치를 찾는 여정의 한 수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인위적인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면, 인간은 유인원이 된다. 일단 외출할 때에는 옷을 걸쳐야 한다는 사회적 억압에 반대해 여름에는 홀랑 다 벗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모국어라는 억압에서도 탈출해야 하지 않을까? ‘사과’를 ‘자갈’이라고 부르고 ‘나무’를 ‘개’라고 부르고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는 말 대신 ‘뚫훍뀄땃찡부리쌍광쾅’이라는 새로운 인사말을 쓰는, 자기만의 언어를 창조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비독점적 다자연애’ 같은 개념을 우습게 본다. 왜냐하면, 낭만적 사랑이라는 가치는 독점성과 배타성이라는 구속이 있어야 겨우 발생하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비독점적 다자연애에서 ‘연애’를 빼면 무엇이 남는가? 그것은 기껏 해봐야 호혜 평등한 섹스 서비스 교환에 지나지 않는다. 곧장 말해 섹스, 얄팍한 섹스다. 그게 사랑이면 딜도나 오나홀과도 사랑할 수 있다. 내 생각에 폴리아모리가 어쩌고 하는 인간은 ‘해방 놀음’에 빠진 철부지거나 욕 안 먹고 바람을 피우고 싶은 위선자 둘 중 하나다.

 

‘멜랑콜리한 듀오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그 메모를 적을 때는 그게 굉장히 재치 있으면서 의미 있는 키워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지금은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무엇을 뜻하는 얘긴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생에 대한 은유였을까? 남은 인생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알기 위해서는 살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 남은 인생에 적극적으로 간여할 수밖에 없다, 뭐 그런 생각이었을까? 지금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재치 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떠올리려니 그 정도 생각밖에 안 난다.

 

 

 

넷째 날 오전: 캘리포니아 드리밍과 수확체감의 법칙

“자기는 뭐가 제일 좋았어?”

아침을 먹으며 HJ가 내게 물었다. ‘여행이 거의 다 끝났다’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 여행이 인생에 대한 비유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의 중반을 넘기고서야 어떻게 하면 시간을 의미 있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다시 한번 처음부터 시작하면 진짜 잘할 수 있는데, 생각하면서.

 

슬슬 나는 이게 농담인가, 진담인가 의심스러워졌다.

 

HJ가 가난한 집 딸의 자세를 아직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즐거움을 맛볼 때도 늘 본전을 생각하는 습관이 그녀의 몸속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토요일에 소파에 편히 앉아서 컴퓨터로 〈라디오 스타〉를 보는 데에는 전기료밖에 들지 않는다. 샌드위치는 내가 전날 밤에 마트에 갔다가 사 온 떨이 상품이다. 30퍼센트나 40퍼센트 정도 할인된 물건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마시는 커피는 인스턴트커피 중에서는 꽤 가격이 비싼 ‘프리미엄 제품’이지만, 그래 봐야 스틱 하나에 350원 정도밖에 안 한다. 이 정도 비용을 들이고 이 정도 기쁨을 맛보다니! 그게 HJ가 그 순간을 행복하게 느낀 이유다.

지방선거일은 덤으로 생긴 공휴일이다. 여름이 오는데 HJ가 기여한 바는 없다.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날은 따뜻해졌고, 오늘은 주말도 아닌데 쉬는 날이야! 아싸!’ 그래서 HJ는 그 순간을 행복 리스트에 올린 것이다. 하지만 보라카이에서 느끼는 모든 즐거움에는 상당한 요금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우리는 즉물적인 쾌락을 맛볼 때도 실은 무의식중에 비용 대비 편익을 계산한다.

 

행복을 얻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생산요소가 한 종류가 아니라 여러 종류인 거지. 거기에는 성숙한 인격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해. 그리고 거기에도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동해서, 그런 요소 중 어느 것 하나만 잔뜩 넣는다고 해서 쉽게 행복감이 높아지지는 않는 거야. 물질적인 방면으로는 전혀 노력을 들이지 않고 정신력으로만 행복을 성취하겠다고 하면 사명대사 수준으로 도를 닦아야 해. 반대로 정신적인 노력 없이 물질적인 비용만으로 행복을 얻는 것도, 그러려면 패리스 힐튼급으로 돈이 많아야 할걸? 그런데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부자가 되어야 할까?

 

“내 생각에는 그런 밸런스 찾기 쉬워. 어느 정도의 절제력과 현재 가치로 1억 5000만 원 정도의 연봉이면 누릴 수 있을 거 같아.“

 

이게 나의 행복 철학이다. 정신, 육체, 돈의 삼각형 이론.

 

 

 

넷째 날 오후: 중세풍 모험과 게을러터진 바다사자

호이스트 :: 비교적 소형의 화물을 들어 옮기는 장치.
창고·철도역 등에서 화물의 운반이나 공장에서의 기계분해·조립에 사용된다. 원동기·기어감속장치·감기통 등을 한 조로 하고 권상용(捲上用) 로프 끝에 훅(hook)을 장치하여 화물을 들어올린다.감기통을 손도르래로 움직이게 하는 수동(手動) 호이스트, 전동기를 사용한 전기 호이스트·텔퍼(telpher) 등이 있다. 단순히 호이스트라고 할 때는 일반적으로 전기 호이스트를 말한다. 고정되어 있는 것도 있으나 보통은 트롤리와 짝이 되어 I형 레일의 아래쪽 플랜지 위를 주행하게 되어 있다.
전동기는 바닥에서 밧줄로 조작한다. 권상하중은 0.5∼5t 정도이지만, 그 중에서도 1∼3t의 것이 가장 많다. 장거리 주행·원방조작의 것에서는 전동(電動) 트롤리가 사용된다. 주행거리가 길 때, 바닥면에 장애물이 있을 경우 등 바닥에서의 조작이 불가능할 때는 운전실을 설치한 텔퍼(공중 케이블)가 사용된다. 이것은 역(驛) 등에서 선로를 타고 넘어 다른 플랫폼에 화물을 운반할 때 등에 사용된다.
탄갱(炭坑) 등 가스가 폭발할 우려가 있는 곳에서는 전기기계를 사용할 수 없으므로 압축공기를 이용해서 감기통을 회전시켜 로프를 감아 올리는 공기 호이스트가 사용된다. 구조에 따라 압축공기로 작동하는 피스톤과 크랭크 기구로 회전력을 얻고, 감속기어로 드럼을 회전시키는 회전식과 피스톤의 운동으로 직접 화물을 들어올리는 직동식(直動式)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이스트 [hoist]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몇몇 백인은 그 살인광선 아래 대나무로 만든 침상을 갖다 놓고 눕거나 엎드려서 도마뱀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한 소녀가 마루 끝에 서서 뛰어들지 말지를 몇 분이나 망설였다. 뒤에서 한 청년이 살금살금 다가가 소녀를 밀었다.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떨어졌고 다른 청년들은 모자란 물개들처럼 끽끽 웃었다.

 

우리는 다리 없는 의자에서 점점 등이 아래로 내려와 마침내는 게을러터진 바다사자 같은 자세가 되었다. 천장을 쳐다보니 선풍기 팬이 바람이 아니라 최면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로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젊은이들도 선풍기 팬이 떨어져서 손가락이 하나나 두 개쯤 잘린다면 잘린 손가락을 들고 킬킬 웃으면서 댓츠 오케이, 암 쿨, 그럴 것 같았다.

“이런 가게 주인이 되고 싶어. 왜냐하면, 여기는 사람들이 다들 행복해 보여. 손님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무슨 축제 속에서 사는 것 같아.”

HJ가 나와 비슷한 상태였는지, 게으름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이 되면 축제 속에 사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을걸.”

내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사람이 왜 그렇게 속이 꼬였어? 젊은 남자애들이랑 젊은 여자애들이 막 웃으면서 좋아하니까 자기도 기분 좋지 않아?”

“아니, 전혀 아닌데. 젊은 애들이 울거나 성내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긴 한데, 이렇게 젊음을 만끽하면 그건 또 그것대로 싫어. 내 젊음도 아닌데. 어린애들은 서툴고 쑥스럽게 웃는 게 딱 귀엽고 좋다고. 저렇게 방방 뛰어노는 건 싫어. 난 쟤들 나이 때 신촌의 더러운 호프에서 김빠진 가격 파괴 맥주를 마시며 겨우 젊음을 맛봤다고. 그거 분명히 남은 맥주 재활용한 거였을 텐데.”

 

마사지를 받은 게 아니라 시간 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몰라. 난 누가 머리만 만져주면 바로 잠이 들어. 미용실 가서도 만날 자. 무슨 강아지 유전자 같은 게 몸에 섞여 있나.”

 

몸이 녹은 버터처럼 되었어.

 

별들이 떴다. 술집들이 불을 켰다. 보라카이 해변은 일요일 저녁이나 월요일 저녁이나 분위기가 다르지 않았다. 필리핀 바비큐 소스 냄새가 나고, 술과 기대에 취한 젊은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우리는 바닷가에 앉았다.

 

 

 

넷째 날 밤 ~ 다섯째 날: 승합차의 최종 도착지와 유황 지옥에 빠지는 기분

여기에는 카페라테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뜨거운 카페라테를 달라고 하자 점원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시킨 게 원숭이 골이나 모기 눈알이라도 된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는 몇 번이나 주문을 확인했다. 카페라테요? 뜨거운 거로요?

 

HJ는 회사 사람들에게 선물한다고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렸다. 열쇠고리니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이니 비누니 하는 것들을 파는 상점이었다.

“자기는 그런 걸 받아서 기분 좋은 적 있었어? 정 사람들한테 뭘 사주고 싶으면 밥 먹고 커피나 한 잔씩 돌려.”

내가 핀잔을 줬더니 HJ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내 말이 맞다며 가게에서 나왔다.

 

HJ는 승합차 안에서 “이놈의 보라카이……”라며 이를 갈았다. 불과 두 시간 전에 다시 오고 싶다고 한 장소였는데.

 

음료수든 음식이든 사람당 뭔가 하나씩을 주문해야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었다. 라운지에서는 한식을 팔았는데 가장 싼 메뉴가 김치볶음밥이었다. 가격은 330페소. 보라카이에서 먹은 요리들에 비하면 충격적으로 비싼 값이었다. 사실상 쿠션 있는 의자와 무료 와이파이에 책정된 요금이었다.

우리를 제외한 한국인 관광객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괴한 광경이었다. HJ는 처음에 다른 사람들을 비웃었다.

“아니, 조금만 참으면 이제 곧 원 없이 한국 음식을 먹을 텐데, 뭘 그걸 못 참고 여기서부터 김치볶음밥이야? 참내.”

한 시간쯤 지난 뒤에 HJ가 내게 물었다.

“나 김치볶음밥 한 그릇 시켜도 돼?”

330페소짜리 김치볶음밥에는 반찬이 두 종류가 나왔는데 하나는 배추김치고 다른 하나는 무김치였다. 김치에 목말랐던 한국인을 위한 식사였다. HJ는 볶음밥의 묵은지가 아주 제대로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새벽 5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수하물 수취대에서 사람들을 보니 아주 가관이었다. 젊은 여자들의 얼굴은, 음, 여자들의 그런 얼굴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대학생 때 MT 둘째 날 아침에 보는 여학생들의 얼굴과도 달랐다. 민낯이 아니라 화장을 한 상태였고 마스카라도 잘 살아 있는데 표정은 다 썩어 있었다.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수취대 주변을 뛰어다니는데 아이의 눈 아래에도 다크 서클이 커다랗게 져 있었다.

 

버스에 설치된 TV에서 나오는 아침 방송 프로그램에서 말린 과일의 위험성을 열심히 경고하고 있었다. ‘기준치 초과’니 ‘이산화황’이니 하는 붉은 자막들이 느낌표와 함께 화면에 퍽퍽 찍혔다. 표백제와 설탕이 그렇게 잔뜩 들었다나. 그게 말린 바나나 여섯 봉지를 들고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본 TV 방송이었다.

 

오후에는 목욕탕에 갔다. 온탕에 들어갔더니 유황 지옥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살갗이 벗겨지는 듯했다.

 

나는 허구에 대해서 생각했다. 때로는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해방이라는 명목으로, 때로는 삶의 의미라는 구실을 내세워 다가오는 허구들. 나는 그 허구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쉴 새 없이 허구를 만들어내고 그 허구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다. 심지어 나는 그 일로 돈을 벌려 하고 있다. 허구는 익사에 대한 공포와 수면 위로 탈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며, 바닷물이자 산소통 그 자체다. 어떤 허구에는 다른 허구로 맞서고, 어떤 허구에는 타협하며, 어떤 허구는 이용하고, 어떤 허구에는 의존할 수밖에 없다.

 

 

 

21개월 뒤: 이러저러한 물 순환의 단계와 앰브로즈 비어스의 최후

그 전까지 우리는 부부 간의 사랑이 어떤 바다 같은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바다는 가만히 있어도 그 위로 비가 내린다. 땅에 내리는 비도 이러저러한 물 순환의 단계를 거쳐 결국 바다로 돌아온다. 결혼이라는 약속은 사회적으로, 또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구속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갈등을 무마시키는 힘이 있다. 그럴 때면 사소한 싸움도, 물이 바다로 돌아오는 과정처럼 보인다. ‘칼로 물 베기’ 어쩌고 하는 속담도 그래서 나온 것이리라.

하지만 실제로는, 그 구속력은 물 순환을 일으키는 자연의 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하고 예외가 많다. 우리의 사랑은 바다보다는 호수에 가까웠다. 호수의 수량을 유지하려면 강에서 물을 계속 공급받아야 한다. 노력을 들여 강의 흐름과 유량을 섬세히 관리하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호수의 수위가 쑥 낮아질 수도 있다. 우리가 보라카이에서 둘째 날 겪은 일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달콤하게 졸릴 때 이를 닦았다가 잠이 달아나면 얼마나 억울한지 아는가.

 

앰브로즈 비어스는 《악마의 사전》에서 행복을 이렇게 정의한다. ‘행복: 타인의 불행을 바라보며 얻는 쾌감.’

 

나이가 엇비슷한 친척들은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솔직히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나는 대신 수많은 평행우주에 있는 장강명을 상상한다. 식사를 한 뒤 사무실에서 졸음을 참으며 바로 오후 업무를 해야 하는 장강명. 아니면 너무 바쁘거나 돈이 없어서 제대로 끼니를 때우지도 못하는 장강명.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지 못한 장강명. 말썽쟁이 자식들에게 시달리는 장강명. 그들의 불행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행복해진다. 모두 허구이지만, 이 행복감은 실체다. 허구라는 건 정말 굉장하다. 우주 몇십 개를 새로 만들어내는 데에도 별 힘이 들지 않는다.

다만 그런 허구가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려면 형식적이면서도 실체적인 종지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멋진 허구가 개별성을 얻지 못한 채 다른 허구와 섞이고, 흐려지다가 이내 사라져버린다. ‘2014년 11월에 나는 HJ와 3박 5일로 보라카이에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이런저런 교훈을 얻었고, 전체적으로 너무 좋았다’고 매듭을 지어야 한다. 그래야 그 사건이 하나의 이야기로 설 수 있고, 이후의 다른 사건들이 그 이야기에 침입하지 못한다.

앞으로 우리 부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런 에세이를 써놓은 주제에, 내가 술에 취해 바람을 피우게 될지도 모르고, HJ가 운명적인 사랑을 발견해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마 이 책은 결혼과 사랑과 믿음에 대한 지독한 아이러니의 사례가 되겠지. 나는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2014년 11월에 나는 HJ와 3박 5일로 보라카이에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훼손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이야기 속에서 행복하고, 결말은 ‘너무 좋았다’이다. 나는 2014년 11월을 그 이야기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내 인생에서 틀림없이 좋았던 부분을 틀림없이 좋은 것으로 지켜준다. 그게 이야기의 힘이다. 그 힘을 얻고 싶어 이 에세이를 쓴다.

 

그는 인간 본성이나 사회 현상에 대해서는 냉소적이었지만, 젊은 작가들에게 친절했고 누구보다 ‘멋진 이야기로서의 인생’을 산 사람이었다. 그는 신문기자였고 소설가였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판초 비야가 이끄는 농민 혁명군을 취재하려고 멕시코에 갔고, 혁명군과 함께 다니다 행방불명됐다. 이쯤 되면 거의 황홀한 종지부다.

 

 

 

작가의 말

이 책에 다른 분들께 전하는 교훈이 있다면, ‘여행지에서는 음식을 너무 많이 사 오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주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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