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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헬조선의 알파고 2023. 7.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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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오늘의 젊은 작가 13)(양장본 HardCover)
문학성과 다양성, 참신성을 기치로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 갈 신예들의 작품을 엄선한 「오늘의 젊은 작가」의 열세 번째 작품 『82년생 김지영』. 서민들의 일상 속 비극을 사실적이면서 공감대 높은 스토리로 표현하는 데 재능을 보이는 작가 조남주는 이번 작품에서 1982년생 '김지영 씨'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백을 한 축으로, 고백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들을 또 다른 축으로 삼아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슬하에 딸을 두고 있는 서른네 살 김지영 씨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속말을 뱉어 내고,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를 식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김지영 씨의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지영 씨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설은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이다. 리포트에 기록된 김지영 씨의 기억은 ‘여성’이라는 젠더적 기준으로 선별된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1999년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고 이후 여성부가 출범함으로써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이후, 즉 제도적 차별이 사라진 시대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내면화된 성차별적 요소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지나온 삶을 거슬러 올라가며 미처 못다 한 말을 찾는 이 과정은 지영 씨를 알 수 없는 증상으로부터 회복시켜 줄 수 있을까? 김지영 씨로 대변되는 ‘그녀’들의 인생 마디마디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소를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
조남주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16.10.14

 

2015년 가을

양수색전증 :: 분만중 양수가 모체혈중으로 들어가서 모체에 급성쇼크, 출혈, 핍뇨 등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자궁내압의 이상항진, 자궁내면에 대한 정맥개구, 태반의 손상 등으로 양수성분이 모체로 유입해서 폐소동맥의 폐쇄, 저혈압, 폐부종, 호흡곤란 등의 쇼크증상이 일어난다. 양수에는 트론보르파스틴성 작용이 있기 때문에 혈액응고가 일어나고 그때문에 DIC가 발생한다. 혈소판, 피브리노겐의 감소, FDP의 증가에 대해서 헤파린, 피브린노겐, 부신피질호르몬을 투여하고 출혈에 대해서는 신선혈 수혈이 유효하다. 모아의 사망률이 높다. 예후도 불량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수색전 [amniotic fluid embolism, 羊水塞栓, Fruchtwasserembolie] (간호학대사전, 1996. 3. 1., 대한간호학회)

 

“대현아, 요즘 지영이 많이 힘들 거야. 저 때가 몸은 조금씩 편해지는데 마음이 많이 조급해지는 때거든. 잘한다, 고생한다, 고맙다, 자주 말해 줘.”

“이건 또 무슨 유체 이탈 화법이야? 아이고 그래, 잘하고 있다, 김지영. 고생한다, 고맙다, 사랑한다.”

 

무려 20년 전, 두 사람만 아는 어느 볕 좋은 오후의 이야기를.

 

정대현 씨는 취했더랬나 보다 안심하면서도 어떻게 그런 끔찍한 주사가 있을까 새삼 몸서리를 쳤다. 사실 취해서 필름이 끊긴 거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고작 맥주 한 캔이었다.

 

정대현 씨는 자꾸만 아내가 낯설어졌다. 아내가, 2년을 열렬히 연애하고 또 3년을 같이 산, 빗방울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눈송이처럼 서로를 쓰다듬었던, 자신들을 반씩 닮은 예쁜 딸을 낳은 아내가, 아무래도 아내 같지가 않았다.

 

토란 :: 토련(土蓮)이라고도 한다. 열대 아시아 원산이며 채소로 널리 재배하고 있다. 알줄기로 번식하며 약간 습한 곳에서 잘 자란다. 알줄기는 타원형이며 겉은 섬유로 덮이고 옆에 작은 알줄기가 달린다.
잎은 뿌리에서 나오고 높이 약 1m이다. 긴 잎자루가 있으며 달걀 모양 넓은 타원형이다. 잎몸은 길이 30∼50cm, 나비 25∼30cm이고 겉면에 작은 돌기가 있다. 양면에 털이 없고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으로 밋밋하다. 잎몸 밑부분은 밑으로 처진다. 드물게 잎자루 사이에서 1∼4개의 꽃줄기가 나오는데, 8∼9월에 막대 모양의 꽃이삭 위쪽에 수꽃, 아래쪽에 암꽃이 달린다. 꽃을 싸는 불염포는 길이 25∼30cm, 나비 약 6cm로서 곧추서며 수술은 6개이다.
땅속부분의 알줄기를 식용한다. 모구(母球)·자구(子球)·손구(孫球)가 생기는데, 모구는 떫은맛이 강하여 먹지 못하는 것도 있다. 잎자루가 건조하면 어떤 품종이든 먹을 수 있으나 생줄기의 경우는 대부분 떫은맛이 강하다.
고온성 식물로서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재배하기 어렵다. 재배는 비교적 쉬우며 봄에 종구(種球)를 심는다. 건조에 매우 약하므로 가물 때에는 물을 주고 이랑면에 짚을 깔아주거나 풀을 덮어준다. 병충해는 매우 적다. 한국·인도·인도네시아 등에 분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토란 [土卵]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자기 가족 먹이려고 음식 하는 게 뭐가 고생이야? 명절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음식 만들고, 먹고, 그러는 재미지.”

 

순간 김지영 씨의 두 볼에 사르르 홍조가 돌더니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눈빛은 따뜻해졌다.

 

잠시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거대한 빙하 위에 온 가족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정수현 씨가 길게 한숨을 쉬었는데 찬 입김이 나와 하얗게 흩어졌다.

 

그때 소파에서 동생과 장난치고 있던 정수현 씨의 여섯 살 난 큰아들이 떨어지며 울음을 터뜨렸는데, 아무도 달래지 못했다. 입을 떡 벌리고 정신을 못 차리는 어른들을 한번 둘러보며 아이는 금세 눈치껏 눈물을 멈췄고, 정대현 씨의 아버지가 호통을 쳤다.

 

정대현 씨는 화가 나지 않았다. 막막했고, 착잡했고, 두려웠다.

 

 

 

1982년~1994년

가끔 엄마는 김지영 씨의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을 크게 벌리게 한 다음, 혓바닥 위로 진하고 달고 고소한 가루를 한 숟갈 부어 넣어 주곤 했다. 가루들은 침과 섞이며 녹아들어 끈적해지다가 캐러멜같이 말랑한 덩어리가 되었다가 스르르 목으로 넘어가 사라졌고, 입안에는 마르는 것도 아니고 떫은 것도 아닌 묘한 감촉만 남았다.

함께 살던 할머니 고순분 여사는 김지영 씨가 남동생 분유를 먹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분유를 얻어먹다 할머니께 들키기라도 하면 김지영 씨는 입과 코로 가루가 다 튀어나오도록 등짝을 맞았다.

 

할머니의 억양과 눈빛, 고개의 각도와 어깨의 높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까지 모두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최대한 표현하자면, ‘감히’ 귀한 내 손자 것에 욕심을 내? 하는 느낌이었다. 남동생과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 김지영 씨는 그 ‘아무’보다도 못한 존재인 듯했다. 언니도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사실 어린 김지영 씨는 동생이 특별 대우를 받는다거나 그래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원래 그랬으니까. 가끔 뭔가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자신이 누나니까 양보하는 거고, 성별이 같은 언니와 물건을 공유하는 거라고 자발적으로 상황을 합리화하는 데에 익숙했다. 어머니는 터울이 져서 그런지 누나들이 샘도 없고, 동생을 잘 돌봐 준다고 항상 칭찬했는데, 자꾸 칭찬을 받으니까 정말 샘을 낼 수도 없었다.  

 

얼굴이 하얗고 손이 고운 할아버지는 평생 흙 한 줌 쥐어 보지 않았다. 가족을 부양할 능력과 의지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계집질 안 하고, 마누라 때리지 않은 게 어디냐고, 그 정도면 괜찮은 남편이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어머니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소리 없이, 베개가 흠뻑 젖도록, 밤새 울었다. 아침이 되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침이 줄줄 흐를 정도로 입술이 퉁퉁 부었다.

 

어머니는 혼자 병원에 가서 김지영 씨의 여동생을 ‘지웠다’. 아무것도 어머니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모든 것은 어머니의 책임이었고, 온몸과 마음으로 앓고 있는 어머니 곁에는 위로해 줄 가족이 없었다. 맹수에게 새끼를 잃은 동물처럼 울부짖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의사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미치지 않은 것은 오로지 할머니 의사의 그 한마디 덕분이었다.

 

“너 고생만 시키고. 미안하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는데 순간 아버지의 등 뒤로 커다란 그림자가 생겼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본인 몸집보다 더 큰 상자들을 번쩍번쩍 들어 마루에 옮겨 놓고 아버지 곁에서 비질을 했다.

“은영 아빠가 나 고생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둘이 고생하는 거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혼자 이 집안 떠메고 있는 것처럼 앓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러라고 한 사람도 없고, 솔직히, 그러고 있지도 않잖아.”

 

어머니는 이 나이에 뭘 배우겠느냐고 손을 내저으며 웃었는데, 그때 어머니의 나이가 서른다섯이었다.

 

공장 동료들은 거의 또래의 여자아이들이었다. 나이도, 배움도, 집안 사정도 비슷비슷했다. 어린 여공들은 직장 생활이 원래 그런 건 줄 알고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일만 했다.

 

그제야 어머니와 이모는 사랑하는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는 자신들에게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지영 씨가 국민학교 때였는데 담임 선생님이 일기장에 적어 주신 한 줄짜리 메모를 물끄러미 보던 어머니가 문득 말했다.

“나도 선생님 되고 싶었는데.”

엄마는 그냥 엄마만 되는 줄 알았던 김지영 씨는 왠지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아 웃어 버렸다.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김지영 씨의 어머니가 된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 작지만 묵직하고 굳건한 돌덩이. 김지영 씨는 그런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고 왠지 슬펐다. 어머니는 김지영 씨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너저분하게 흐트러진 딸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넘겨 주었다.

 

좋아한다면 더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도 그래야 하는 거다. 그게 여덟 살 김지영 씨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1995년~2000년

1982년에는 여아 100명당 106.8명의 남아가 태어났는데, 남아의 비율이 점점 높아져 1990년에는 116.5명이 되었다. 자연적인 출생 성비는 103명에서 107명이다.

 

옷차림이나 근무 태도를 핑계로, 알바비를 담보로 접근해 오는 업주들, 돈을 내면서 상품과 함께 어린 여자를 희롱할 권리도 샀다고 착각하는 손님들이 부지기수였다.

 

“근데,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 많아요.”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할지 안 할지, 애를 낳을지 안 낳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그 전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의 일에 대비하느라 지금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살아야 해?”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는 외삼촌들과 거의 왕래하지 않는다. 충분히 각오하고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희생에 대한 후회와 원망은 깊고 길었고, 결국 그 응어리가 가족 관계를 망쳤다.

 

“그동안 힘들게 일해서 다섯 식구 먹여 살리느라 고생했어. 고마워. 그러니까 이제 놀아. 차라리 놀라고. 중국의 중, 자도 꺼내지 마. 투자하는 순간 이혼이야.”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자식들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정작 자식들의 현재를 건사하지 못했다.

 

 

 

2001년~2011년

고향에 내려가 1년만 돈을 벌겠다고 했다. 돈 말고는 어떤 것도 위로나 격려가 되지 않을 것 같아 김지영 씨는 친구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늘 온화하고 여유롭던 남자 친구는 김지영 씨의 작은 변화나 무신경에도 빡빡하게 감긴 태엽이 순식간에 풀리는 것처럼 종종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아무것도 못하고 흘려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우울했다가, 불안했다가, 화를 냈다.

 

“내가 몇 번을 말하니? 여자는 힘들어서 못해요. 너희는 그냥 동아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우리한테 힘이 되는 거야.”

“저 선배한테 힘 돼 주려고 나오는 거 아니거든요? 기운 없으면 보약 한 재 해 드시던가. 내가 진짜 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악착같이 나와서 여자 회장 꼭 보고 말 거야.”

 

김지영 씨는 감기 기운이 있는지 몸이 으슬으슬 추워서 신입생들이 난방을 켜 놓고 카드 게임을 하는 방에 찾아가 침구 더미 사이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들어갔다. 바닥은 뜨끈했고, 긴장했던 몸이 녹으면서 늘어졌고, 후배들의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섞여 웅웅 울리며 꿈처럼 몽롱하게 들려왔다.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고 숨도 막혔는데 그냥 계속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어야 했다. 오히려 김지영 씨가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자신의 존재를 들킬까 조마조마했다. 한참 후 선배들이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주위가 조용해져서야 한증막 같은 이불 속에서 나와 여자 방으로 옮길 수 있었다.

 

고민 끝에 사직서를 냈고, 이래서 여자는 안 된다는 비아냥이 돌아왔다. 선배는 여자를 자꾸 안 되게 만드니까 이러는 거라고 대답했다.

 

김지영 씨는 안개가 잔뜩 낀 좁은 골목길에 서 있는 기분이었고, 기업들이 하반기 공채를 시작하자 안개는 빗줄기가 되어 맨살 위로 쏟아져 내렸다.

 

처음에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는데 면접 날짜가 다가오자 조금씩 호감이 생겼고 나중에는 정말 간절해졌다.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김지영 씨도 씁쓸했는데, 한편으로는 저런 대답이 높은 점수를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후회했고, 그런 자신이 한심했다.

 

“그런 개자식은 손모가지를 부러뜨려 놔야지! 그리고 당신도 문제야! 면접이랍시고 그딴 질문 하는 것도 성희롱이라고! 남자 지원자한테는 이런 질문 안 할 거 아냐?”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달빛이 새파랗게 쏟아지는데…….

 

잘될 거라는 막연한 낙관도, 그깟 취직 좀 늦어지면 어떠냐는 무책임한 위로도, 왜 이 정도 스펙밖에 갖지 못했냐는 흔한 질타도 하지 않았다. 준비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고,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돕고,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술을 사 주었다.

 

그동안 불안과 자괴와 무기력이 표면장력이 버틸 수 있는 최대한까지 불룩하게 담겨 있는 유리컵 속의 물처럼 버티고 있었다.

 

깜깜해진 하늘 위로 공평한 선물처럼 드문드문 일정하게 눈이 내렸고, 바람이 한 번씩 두서없이 불면 눈송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남자 친구가 떨어지는 눈송이를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며 이리저리 팔을 뻗었는데 눈송이는 매번 아슬아슬 비켜 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얼핏 육각형 모양이 살아 있는 커다란 눈송이가 남자 친구의 검지 끝에 살며시 앉았고, 김지영 씨는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물었다.

“너 회사 잘 다니게 해 달라고. 덜 힘들고, 덜 속상하고, 덜 지치면서, 사회생활 잘하고, 무사히 월급 받아서 나 맛있는 거 많이 사 달라고.”

김지영 씨는 가슴속에 눈송이들이 성기게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충만한데 헛헛하고 포근한데 서늘하다. 남자 친구의 말처럼 덜 힘들고, 덜 속상하고, 덜 지치면서, 어머니의 말처럼 막 나대면서 잘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은실 팀장은 4명의 팀장 중 유일한 여자 팀장이었다. 초등학생 딸이 하나 있는데,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며 육아와 가사는 완전히 어머니께 맡기고 본인은 일만 한다고 들었다. 누군가는 멋지다고 했고 누군가는 독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뜬금없게도 남편을 칭찬했다.

 

첫 직장, 첫 업무에서 처음으로 인정을 받았다. 김지영 씨는 팀장의 그 한마디가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얼마나 큰 힘이 될지 예감했다.

 

김지영 씨는 얼굴형도 예쁘고 콧날도 날렵하니까 쌍꺼풀 수술만 하면 되겠다며 외모에 대한 칭찬인지 충고인지도 계속 늘어놓았다.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

 

김지영 씨는 남자 친구에게 업혀 무사히 집에 들어갔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는 무사하지 못했다.

 

김지영 씨는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김지영 씨의 일상도 전쟁이었고, 긴장을 놓으면 당장 피투성이가 될 순간순간에 다른 누군가의 안위를 살필 여유가 없었다. 서운함은 냉장고 위나 욕실 선반 위, 두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계속 무심히 내버려두게 되는 먼지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두 사람 사이에 쌓여 갔다. 그렇게 멀어지다가 그 밤 일로 크게 싸웠다.

그동안 김지영 씨가 취하도록 술을 마신 일이 없다는 것도, 그날은 회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셨다는 것도, 전화를 대신 받은 남자 동기와는 아무 일 없었다는 것도 남자 친구는 알고 있었다. 아주 잘 알았지만, 사실 그건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미 바짝 말라 버석이는 묵은 감정의 먼지들 위로 작은 불씨가 떨어졌다. 가장 젊고 아름답던 시절은 그렇게 허망하게 불타 잿더미가 되었다.

 

김지영 씨의 머릿속에서 몇 안 되는 미혼 남자 직원들의 얼굴이 빙글빙글 돌다가 문득, 상대가 꼭 미혼이라는 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두통이 몰려왔다.

 

못 버틸 직원이 버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보다, 버틸 직원을 더 키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게 대표의 판단이다. 그동안 김지영 씨와 강혜수 씨에게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를 맡긴 것도 같은 이유였다. 두 사람을 더 신뢰해서가 아니라, 오래 남아 할 일이 많은 남자들에게 굳이 힘들고 진 빠지는 일을 시키지 않은 것이다.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 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었다고 한다. 망연히 주저앉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안 되면 벽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한다. 사업가의 목표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고, 최소 투자로 최대 이익을 내겠다는 대표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효율과 합리만을 내세우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입사부터 지금까지 남자 동기들의 연봉이 쭉 더 높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이미 그날 용량의 충격과 실망이 모두 소진됐는지 큰 감흥은 없었다. 더 이상 대표와 선배들을 믿고 따르며 열심히 일만 할 자신이 없어졌는데, 또 밤이 지나 술이 깨고 나니 습관처럼 회사에 나가게 됐다. 예전과 다름없이 시키는 대로 주어진 일을 해냈다. 하지만 열정이라든가 신뢰 같은 감정은 분명 흐려졌다.

 

 

 

2012년~2015년

정대현 씨의 어머니가 갑자기 두 번밖에 본 적 없는 김지영 씨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차분하고 싹싹한 데다 센스도 있다면서 자신이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을 기억했다가 다음 만남에 전통차를 사 왔다고, 감기 기운 때문에 목소리가 조금 안 좋은 것도 바로 알아채더라고 했다. 사실 선물은 백화점에서 적당한 가격으로 추천받았던 것이고, 환절기라 감기 얘기를 했을 뿐 목소리가 달라진 것은 전혀 몰랐다. 별 뜻 없었던 행동들이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하자 김지영 씨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나요. 다 하면서 배우는 거죠. 지영이가 잘할 거예요.”

아니요, 어머니. 저 잘할 자신 없는데요. 그런 건 자취하는 오빠가 더 잘하고요, 결혼하고도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김지영 씨도, 정대현 씨도,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뭐가 이렇게 급해? 어차피 우리 결혼식도 했고 이미 같이 사는데. 혼인신고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잖아.”

“마음이 달라지지.”

김지영 씨는 정대현 씨가 서두르는 게 왠지 기분 좋았다. 좋았는데, 좋아서 들뜨고 설레고, 폐인지 위인지 알 수 없는 몸속 어딘가에 가벼운 공기가 가득 들어차는 기분이었는데, 정대현 씨의 대답이 짧고 가느다란 바늘처럼 김지영 씨의 마음에 콕, 구멍을 냈다. 부풀어 올랐던 마음은 서서히, 조금씩, 가라앉았다. 김지영 씨는 결혼식이나 혼인신고 같은 절차가 마음가짐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혼인신고를 하면 마음이 달라진다는 정대현 씨가 책임감 있는 걸까, 혼인신고를 하든 안 하든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자신이 한결같은 걸까. 김지영 씨는 남편이 듬직하면서도 동시에 묘한 거리감을 느꼈다.

 

자녀가 반드시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혼인신고 할 때 부부가 합의했다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다.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경우는 호주제가 폐지된 2008년 65건을 시작으로 매년 200건 안팎에 불과하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변명하려는 말들이 빌미가 되어 싸움은 계속 도돌이표를 찍고 있었다.

 

“그냥 하나 낳자. 어차피 언젠가 낳을 텐데 싫은 소리 참을 거 없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낳아서 키우자.”

정대현 씨는 마치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사자, 라든가 클림트의 「키스」 퍼즐 액자를 걸자, 같은 말을 하는 것처럼 큰 고민 없이 가볍게 말했다. 적어도 김지영 씨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부부가 모두 퇴근이 늦고 주말 출근이 많아 어린이집이나 베이비시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양가 부모님도 아이를 돌봐 주실 형편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길 방법부터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몰려왔다.

 

자신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뒤집힐지 모르는 데에 비하면 남편이 열거한 것들은 너무 사소하게 느껴졌다.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는데 지하철에서 좀 울어도 됐다. 당황해서 일단 내리긴 했지만 다음 지하철을 타고 가도 됐다. 그런데 굳이 택시를 잡아 탔다. 그냥 그날은 그러고 싶었다.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일상은 예전과 달라졌고 달라진 일상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예측과 계획이 불가능할 것이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

 

“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려서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더러운 옷들이 스스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 물과 세제를 뒤집어쓰고, 세탁이 끝나면 다시 걸어 나와 건조대에 올라가지는 않아요. 청소기가 물걸레 들고 다니면서 닦고 빨고 널지도 않고요. 저 의사는 세탁기, 청소기를 써 보기는 한 걸까.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물론 김지영 씨는 책임감을 가지고 최대한 아이를 잘 키울 것이다. 하지만 대견하다거나 위대하다거나 하는 말은 정말 듣기 싫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힘들어 하는 것조차 안 될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김지영 씨는 고맙다는 말만 했다. 이제 와서 어머니께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가정이 있고 부모가 있다는 건, 그런 짓을 용서해 줄 이유가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대표님 생각부터 고치세요. 그런 가치관으로 계속 사회생활하시다가는 이번 일 운 좋게 넘기더라도 비슷한 일 또 터집니다. 그동안 성희롱 예방교육 제대로 안 한 건, 아시죠?”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라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

 

실제로 0~2세 자녀를 돌보는 전업주부의 여가 시간은 하루 4시간 10분 정도고,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주부의 여가 시간은 4시간 25분으로 하루 15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아이를 기관에 보낸다고 주부가 푹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를 데리고 집안일을 하느냐 아이 없이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순 없지. 그런데 지영아,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 나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너 하고 싶은 일 못 하게 만든 걸로도 모자라,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라고는 못하겠다. 아무튼 지금 내 생각은 그래.”

 

설렘은 잦아들고 무기력이 찾아왔다.

 

 

 

2016년

해리장애 :: 기억, 의식, 정체감의 상실과 같이 정상적인 의식 기능이 변화되거나 혹은 일시적인 장해를 나타내는 경우다. 전형적으로 스트레스 경험 및 그에 수반된 불안과 관련된다. 적응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해리장애 등은 모두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 세 가지 장애에 따라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양상은 상이하다. 유사한 상황이 서로 다른 소인과 취약성을 지닌 개인에게는 아주 다른 반응을 유발할 수도 있다. 해리장애가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로 야기된 불안과 갈등을 피하기 위해 다양하고 극적인 방법을 채택한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지워 버리기 위해 갑작스럽고 일시적인 의식의 변화가 나타난다. 종종 비현실감, 소원감, 그리고 이인감을 포함하고, 때로는 자기정체감의 상실과 변화를 나타낸다. 또 중요한 개인적 사건을 회상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정체감을 일시적으로 망각하여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의 주변환경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서 방황하다가 발견되기도 한다.
해리반응은 다른 기능과 통합되는 어떤 정신기능이 서로 구분된 방식으로 혹은 자동적인 방식으로 작용하는 일련의 과정으로서, 보통 의식적인 자각이나 기억회상의 영역 밖에서 작동한다. 사고, 감정, 행동상의 변화가 나타나며, 그로 인해 새로운 정보를 정상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다른 정보와 연결하거나 통합하지 못한다. 해리장애는 점진적으로 혹은 갑작스럽게 나타날 수 있으며, 지속기간도 일시적이거나 만성적일 수 있다. 해리장애의 원인에 대한 이론적 견해는 다양하다.
정신분석이론에서는 해리장애를 외상적 경험에 대한 방어기제로 해석한다. 바람직하지 않은 사건이나 자기의 일부가 전반적으로 억압된 결과다. 성격 전체를 의식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극심한 외상경험을 억압하고, 그 결과 건망증이나 둔주가 나타날 수 있다. 행동주의적 관점에서는 해리현상이 스트레스 사건과 그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해 주는 회피반응의 기능을 한다고 본다.
기존에는 해리장애를 히스테리 신경증 해리형(hysterical neurosis, dissociative type)이라고 불렀으나, DSM-Ⅳ에서는 해리성 기억상실증(dissociative amnesia), 해리성 둔주(dissociative fugue), 해리성 정체감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그리고 이인증(depersonalization)의 네 가지 조건을 해리장애로 분류하였다. DSM-Ⅳ-TR에서는 이들 해리장애의 진단기준을 적용하였고, 달리 분류되지 않는 해리 장애로 분류될 수 있는 해리성 황홀경(dissociative trance disorder)에 대한 진단 지침을 포함하고 있었다. DSM-5에서 해리장애진단에 있어서의 주요변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 비현실감은 과거에 이인성장애 진단명과 증상구조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이인/비현실감 장애로 명명된다. 둘째, 해리성 기억상실 상태는 이제 분리된 진단이 아니라 해리성 기억상실로 더 명확하게 진단된다. 셋째, 해리성 정체감 장애의 진단 기준이 관찰 보고된 정체성 분열 증상과 충격적 사건 뿐 아니라 일상사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병적 집착이 정체성 분열의 특징을 기술하는 것으로 포함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해리장애 [dissociative disorders, 解離障礙] (상담학 사전, 2016. 01. 15., 김춘경, 이수연, 이윤주, 정종진, 최웅용)

 

김지영 씨가 선택해서 내 앞에 펼쳐 놓은 인생의 장면 장면들을 들여다보며 나는 내 진단이 성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세상이 있다는 뜻이다.

 

 

 

작가의 말

딸이 살아갈 세상은 제가 살아온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되어야 하고, 될 거라 믿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딸들이 더 크고, 높고, 많은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품 해설 - 우리 모두의 김지영

그런데 좀처럼 ‘나’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통해 내가 구성되는데, ‘나’를 구성할 만한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정체성에 보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경험은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다양한 정체성들 중에서도 자기 정체성의 핵심은 ‘성’이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주목하면 한국인의 절반은 상당히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 성에 기반한 “젠더는 사랑, 결혼, 가족 구성, 출산, 양육, 노령화를 포함한 사적인 영역부터 경제, 종교, 정치, 미디어, 학교 등 모든 공적 영역에 작동하는 강력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면서 개인적 관계들이 끊어지고 사회로부터 배제돼 가정에 유폐된다. 게다가 아이를 위한 것들만 허락된다. 아이를 위해 시간·감정·에너지·돈을 써야 하고, 아이를 매개로 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엄마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면 엄마의 자격을 의심 받는다.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아이를, 다음 세대를 키우는 것은 여성의 의무가 아니라 사회의 의무인데, 개별 가정에서 대부분 엄마가 ‘독박육아’를 하고 있는 현실에 분노가 치민다.

 

대부분의 남성들에게 내 아내, 내 딸과 다른 여성들은 이렇게 분리된다. 그리고 내 아내와 내 딸은 내가 아닌 다른 남성들에게 ‘김치녀’ 또는 ‘맘충’이라 불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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